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86권
대보적경 제86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2. 대신변회(大神變會)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대중 1,250인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은 8천 인이었으며, 문수사리(文殊師利)와 상주천자(商主天子)도 그 모임 안에 함께 있었다.
그때에 상주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항상 몇 가지의 신변(神變)으로 중생을 조복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 가지 신변으로써 중생을 조복하느니라. 첫째는 법을 설하는 것[說法]이요, 둘째는 가르치고 경계하는 것[敎誡]이며, 셋째는 신통(神通)이니라.
어떤 것을 법을 설하는 신변[說法神變]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여래는 걸림이 없는 큰 지혜로써 미래 세상의 온갖 중생들의 마음 쓰는 차별을 보며, 3보(寶)에 대하여 믿거나 믿지 않는 것과 그리고 업과 그의 과보를 모두 다 분명히 아느니라.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현재 세상에 행하게 된 나쁜 원인은 장차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져서 업에 따라 과보를 받음이 틀림없어서 어긋남이 없다는 것과, 또 그 중생이 착한 업의 인연과 서원한 힘 때문에 나쁜 갈래에서 나와 인간․천상 안에 나서 혹은 성문승(聲聞乘)과 벽지불승(辟支佛乘)과 대승(大乘)으로써 해탈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한 겁을 지나면서 고통을 받고 쾌락을 받으면서 장차 열반을 얻고 여러 부처님들을 만나게 되는 등의 이러한 업이 틀림없어서 어긋남이 없다는 것과, 또 그 중생이 착한 업의 인연과 서원한 힘 때문에 욕계(欲界)나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 나며, 그러한 겁을 지나면서 이와 같은 승(乘)으로써 해탈하게 되기도 하고, 이와 같은 행으로써
부처님을 뵙게 되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게 되는 것 등.
이러한 온갖 상품․중품․하품의 착한 업과 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이르기까지도 여래는 모두 다 알면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니, 이것을 법을 설하는 신변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가르치고 경계하는 신변[敎誡神變]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이와 같이 모든 계율 지닌 이를 가르친다 하면, ‘이것은 지어야 하고 이것은 짓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믿어야 하고 이것은 믿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친근하여야 하고 이것은 친근하지 않아야 한다. 이 법은 뒤섞여 물들었고 이 법은 청정하다’고 하며, 온갖 공덕과 착한 도의 자량(資糧)을 섭수하느니라.
‘이와 같은 도(道)를 행하면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얻는다. 이와 같은 도를 행하면 대승을 성취한다. 법이 아니면 여의어야 하고 법대로 머물러야 한다.’고 하며, 부처님께서 가르친 것과 같이 결정코 어긋남이 없게 하면서, ‘이것은 지옥의 업(業)이다. 이것은 방생(傍生)의 업이다. 이것은 아귀의 업이다. 이것은 인간․천상의 업이다. 착하지 않은 일은 버려야 하고 착한 법은 닦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길이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이들 중생은 인간과 천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점차로 열반에 든다’고 하면서 이와 같이 가르쳐 보이며 끝내 헛되이 지나지 않나니, 이것을 가르치고 경계하는 신변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신통의 신변[神通神變]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교만한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라면 혹은 한 개의 몸이 여러 개의 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여러 개의 몸이 한 개의 몸이 되기도 하며, 산이나 절벽이나 담을 아무런 장애 없이 드나들기도 하며, 몸 위에서는 물을 내기도 하고 땅에 들어가기를 마치 물과 같이 하기도 하며, 물을 밟기를 마치 땅과 같이 하고 해와 달의 위덕을 손으로 더듬어 만지기도 하며, 혹은 큰 몸을 나타내어 범천세계까지 이르며 나아가 광대하게 되어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기도 하는 등 장소에 따라 알맞게 나타내면서 중생을 조복시키나니, 이것을 신통의 신변이라 하느니라.”
그때 상주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신변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에게는 다시 더 수승한 신변이 있느니라.”
그리고는 곧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연설하여 모든 보살들이 깊은 법인(法忍)을 얻고 많은 악마를 꺾어 조복하게 하며, 또한 여래의 보리법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네 개의 큰 바닷물을 손바닥에 놓으시면 그 물 안에 사는 중생들이 번거롭게 움직이는 일도 없으리니 이와 같은 신변은 아직 수승한 것이 못 되옵니다.
만일 여래께서는 온갖 법으로서 말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고, 소리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고, 문자도 없고, 쓸모 없는 이론도 없고,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도 없고,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여의어서 온갖 말의 길이 끊어지고 고요하여 밝게 비추는 것에 대하여 문자와 언어로써 분별하여 나누어 보이면 세간에서는 알지 못할뿐더러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으로서도 들은 이면 놀라고 두려워하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가장 큰 신변이라 하나이다.
또 여래께서 삼천대천세계를 입 속에 넣는다 하면 4천하(天下)도 장애될 것이 없고, 해와 달의 광명 역시 가려지지 않으면서 본래 그대로 머무르고 있으며, 그 안에 있는 중생들 역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도 깨달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신변도 아직 수승한 것이 못 되옵니다. 만일 여래께서 온갖 법으로서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고, 문자도 없고, 이름과 모양도 없으며, 나아가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의어서 온갖 말의 길이 끊어지고, 고요하여 밝게 비추는 것에 대하여 문자와 언어로써 널리 연설하여 드러내 보이면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가장 큰 신변이라 하나이다.
또 여래께서 공통하지 않은 몸과 신통의 힘 때문에 모든 중생에 따라 갖가지로 나누어 보이면서 모두를 기쁘게 하시니, 이와 같은 신변도 아직 수승하다고 못 하옵니다.
이른바 여래의 큰 신변이라 함은
나가 없는 데서 나를 말씀하시고, 중생이 없는 데서 중생을 말씀하시며, 사람이 없는데서 사람을 말씀하시고, 양육(養育)이 없는 데서 양육을 말씀하시며, 이름이 없는데서 이름을 말씀하시고, 물질[色]이 없는 데서 물질을 말씀하시며,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이 없는 데서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을 말씀하고, 장소[處]가 없는 데서 장소를 말씀하시며, 계(界)가 없는데서 계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다.
비록 눈[眼]의 공을 말씀한다 하더라도 눈은 공을 말하지 않고, 비록 빛깔[色]의 공을 말씀한다 하더라도 빛깔은 공을 말하지 않으며, 안식(眼識)의 공을 말씀한다 하더라도 안식은 공을 말하지 않고, 나아가 뜻[意]의 공과 법(法)의 공과 의식(意識)의 공도 역시 그와 같으며, 이와 같은 등의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앎도 없고 말이 없는 법을 말씀하여 온갖 나고 없어지는 모양을 꺾어 없애나니, 이것이 곧 여래의 가장 큰 신변이옵니다.
이와 같은 신변은 눈과 상응(相應)하지도 않고, 빛깔[色]과 상응하지도 않고, 안식(眼識)과도 상응하지 않으며, 귀․소리․이식(耳識)과, 코․냄새․비식(鼻識)과, 혀․맛․설식(舌識)과, 몸․감촉․신식(身識)과, 뜻․법․의식과도 상응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신변은 몸과 합하지도 않고 마음과 합하지도 않으며, 행도 없고 조작도 없어서 모든 경계를 여의므로 온갖 세간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세간이라 함은 5온(蘊)을 이름하지만, 범부는 이것을 망령되이 집착을 내면서 혹은 5온을 항상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무상하다고 말하기 때문이옵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간에서는 망령되이 5온을 항상 있다고 보면서 무상(無常)하다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고, 망령되이 5온을 즐겁다고 보면서 5온이 괴롭다[苦]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며, 망령되이 5온을 나라고 보면서 나 없다[無我]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고, 망령되이 5온을 깨끗하다고 보면서 깨끗하지 않다[不淨]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며, 5온을 내 것[我所]이라 헤아리면서 내 것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고, 5온을 진실이라 헤아리면서 진실하지 않다[不實]는 말을 들어도 믿음을 내지 못하옵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여래의 신변은 마음의 모양에서 벗어나므로 듣는 이들이 기뻐하지도 않고 온갖 세간으로서는 믿지 못할 일이옵니다.
또
눈의 경계를 초월한 빛깔의 법[色法]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신변이라 하며, 귀의 경계를 초월하여 소리의 법이 아니기 때문에, 나아가 뜻의 경계를 초월하여 뜻의 법[意法]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 보일 수도 없고 지혜로 알 것도 아니니, 이것을 신변이라 합니다.
또 공하고[空]․모양 없고[無相]․소원이 없어서[無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공함과 모양 없음과 소원이 없음을 말하나니, 이것을 신변이라 합니다. 일어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고, 성품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생김도 없고, 소멸함도 없는 본래의 열반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열반을 말하나니, 이것을 신변이라 합니다.
또 보시는 청정하고 3륜(輪)이 청정하기 때문에 이것을 신변이라 하나이다. 어떤 것이 3륜인가 하면, 아상(我相)과 중생상(衆生相)을 여의고 보리를 생각하지 않아서 지니는 계율이 청정함을 바로 신변이라 하나니, 즉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짓는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인욕이 청정함을 바로 신변이라 하나니 찰나(刹那)에 무너지고 없어져서 집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요, 정진이 청정함을 바로 신변이라 하나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어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선정이 청정함을 바로 신변이라 하나니 마음에 의지하는 것이 없고 안팎이 고요하기 때문이요, 지혜가 청정함을 바로 신변이라 하나니, 모든 법을 밝게 비추어 온갖 소견을 없애기 때문입니다.
또 법에는 벗어나는 모양이 없는데도 벗어나는 법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법에는 차별이 없는데도 문자로 분별하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며, 법에는 행할 것이 없는데도 수행이 있음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법에는 오고 감이 없는 데도 오고 감이 있음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며, 하나의 도(道)를 증득하면서 모든 과위를 건립하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한 맛[一味]의 법에서 3승(乘)을 분별하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합니다.
모든 부처님이 오직 이 한 분의 부처님일 뿐인데도 한량없는 부처님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온갖 불국토가 오직 하나의 불국토일 뿐인데도 한량없는 불국토를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며, 한량없는 중생은 곧 하나의 중생일 뿐인데도 한량없는 중생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모든 부처님의 법이 오직 한 부처님의 법일 뿐인데도 한량없는 법을 말씀하시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며, 법은 드러내 보일 수 없는데도 모든 법을 드러내 보이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하고, 법은 얻을 것이 없는데도 닦아 익혀 증득하게 되므로 이것을 신변이라 합니다.”
그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온갖 법에 있는 모든 언설을 모두 신변이라 하고 있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언설은 실로 말할 것이 없으므로 큰 신변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을 설할 때에 1만 2천 천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5백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에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상주 천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신변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곧 신변이거늘 어째서 놀라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천자께서는 무슨 비밀한 뜻으로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천자가 말하였다.
“모든 법은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움직임이 없으면서 움직이므로 큰 신변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착한 업[善業]을 지은 이는 천상에 나서 큰 위덕이 있게 되므로 이와 같은 착한 업은 불가사의(不可思議)요, 온갖 중생들이 가고 오고 하면서 나고 죽는 것도 역시 불가사의하나니, 불가사의라 함은 큰 신변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가지의 경계도 불가사의합니다. 첫째는 업(業)의 경계가 불가사의하고, 둘째는 용(龍)의 경계가 불가사의하며, 셋째는 선(禪)의 경계가 불가사의하고, 넷째는 부처님[佛]의 경계가 불가사의합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법을 말하여 큰 신변이라 하므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사리불이여,
만일 여래께서 이 신변을 말씀하시면 허공이 두려워합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자가 말하였다.
“만일 허공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저에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으신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당신이 어찌 허공과 같단 말씀입니까?
천자가 말하였다.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공(內空)과 외공(外空)도 다 허공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바로 허공의 성품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천자여, 당신의 말씀과 같이 오래지 않아 역시 이런 신변을 나타내시겠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큰 신변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상주 천자는 옛날에 모든 세존과 문수사리를 공양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변재(辯才)를 성취할 수 있사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이 문수사리가 성숙시켰느니라. 사리불아, 아주 옛날 한량없는 겁 전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는데, 그 명호는 등수미(等須彌)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었고, 나라의 이름은 안락(安樂)이었으며 겁의 이름은 환희(歡喜)였느니라.
사리불아, 그 부처님의 세계는 온갖 중생이 두루 안락하였고, 조금도 괴로워하는 신음소리도 없었으며, 그 부처님 국토는 금․은․유리와 파리의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고 땅은 편편하여 마치 손바닥과 같았으며, 청정하고 부드럽기 마치 하늘의 묘한 옷과 같았고, 모든 어려운 곳[難處]이란 없었으며, 하늘과 사람이 가득 차서 안온하고 흥성하여 쾌락을 누림이 한량없었나니, 이 때문에 안락세계라고 이름하였느니라.
그 불법 중에는 순수한 보살들뿐이어서 정진함이 용맹하여 지혜의 광명으로 수다라왕다라니(修多羅王陀羅尼)를 얻었고
변재가 그지없었으며, 선교방편으로 분별하고 설법하였으며, 신령한 도(道)와 지혜로 악마를 꺾어 부수었고, 해탈하여 걸림이 없었으며, 정인(定忍)을 성취하였고 근성(根性)을 잘 알아서 병에 따라 약을 주었으며, 큰 복덕과 지혜의 양식을 갖추었고 모든 중생들을 위한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 주었느니라.
신통의 힘으로써 부처님 세계를 두루 노닐었고 지혜와 행의 바다에 들어가 보시와 계율과 지혜와 다문(多聞)에 편히 머물렀으며, 끝없는 선근을 방편으로 회향하여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의 불법에 머물렀고, 삼매와 모든 선(禪)의 해탈에 유희하였나니, 그 세존은 이러한 등의 큰 보살을 권속으로 삼았느니라.
그 세계에는 정장엄(淨莊嚴)이라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있어서 바른 법으로 세간을 교화하였고, 4천하(天下)의 왕으로서 7보(寶)가 구족하였느니라. 왕에게는 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정장엄왕과 그의 후궁(後宮)들도 역시 모두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느니라.
그 등수미여래의 수명은 70구지 살이었고, 그 때의 정장엄왕은 백천 년 동안 그 여래와 보살들을 받들어 섬기면서 의복과 음식과 온갖 쾌락의 거리로써 공양하였으며, 왕과 천 명의 아들과 그의 후궁들은 청정한 믿음을 얻어 법을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다시는 다른 마음이 없었으며, 항상 부처님 앞에서 손수 공양하고 친근하면서 법을 들었느니라.
이렇게 백천 년을 지나고 나서 왕과 천 명의 아들과 내궁(內宮)들은 네 가지의 생각[四念]을 획득하였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부처님과 보살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보시를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보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었느니라. 이러한 생각을 얻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부처님과 모든 보살을 뵐 수 있었느니라.
뒷날 어느 때에 정장엄왕과
그의 권속들은 법을 듣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는데, 그때에 그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대중 가운데서 갖가지의 신변(神變)을 나타내고 계셨으므로 그때에 정장엄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이보다 더한 신변이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대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여래께서는 또 더 수승한 신변이 있느니라. 이른바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현재는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고, 심심소(心心所)가 없는데도 3세(世)의 심심소의 법을 말하며, 한 맛[一味] 가운데서 세 가지 해탈을 말하고, 하나의 멸(滅)을 증득하는 데서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말하며, 모든 법의 공하고[空]․모양 없음[無相]․ 소원 없음[無願]을 열어 보이고, 전도되어 괴로워하는 중생을 성숙시키며, 모양이 없고 함이 없음[無爲]을 말하여 보리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단(檀)바라밀을 말하고, 머무름도 없고 지음도 없이 시(尸)바라밀을 말하며, 나 없는 법에서 찬제(羼提)바라밀을 말하고, 몸과 마음이 고요하면서 비리야(毘離耶)바라밀을 말하며, 혼란하지도 않고 섭수하지도 않으면서 선(禪)바라밀을 말하고, 저 언덕과 이 언덕을 여의는 것으로 반야(般若)바라밀다를 말하며, 생각에 동요됨 없이 방편을 행하고, 의지하는 모양을 여의면서 인자함[慈]을 닦으며, 지음이 없는 법으로써 가엾이 여김[悲]을 닦아 익히고, 즐거워함을 여의면서 기쁘게 함[喜]을 닦으며,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버림[捨]을 닦는 것이니라.
보는 바 없음으로써 천안(天眼)을 일으키고, 듣는 바 없음으로써 천이(天耳)를 일으키며, 반연하는 바 없음으로써 타심지(他心智)를 일으키고, 과거를 여읨으로 숙명지(宿命智)를 일으키며, 몸과 마음이 동요되지 않음으로 신족(神足)을 일으키고, 법에 머무르지 않음으로 염처(念處)를 닦으며, 생멸이 없는 것으로 4정근(正勤)을 닦고, 근(根)이 아닌 것으로 근을 말하며, 힘[力]이 아닌 것으로 힘을 말하고, 모든 법이 고요한 것에서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말하며, 차별 없이 8성도(聖道)를 닦고, 고요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사마타(奢摩他)를 닦으며,
법의 모양을 멀리 여의면서 비발사나(毘鉢舍那)를 닦고 본래 고요하여 사라지는 것이므로 열반을 말하는 것이니라.’
그 세존께서 정장엄왕과 천 명의 아들과 그의 권속을 위하여 이 신변의 법을 말씀하실 때에 8만 4천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정장엄왕과 천 명의 아들은 법인(法忍)을 증득하면서 부처님의 신력으로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느니라.
마치 수미산이
큰 바다에 비쳐지듯이
여래의 거룩한 광명이
모든 대중을 가리워 주나이다.
마치 처음 해가 돋으면서
온갖 어둠을 깨뜨려 버리듯이
세존의 백호상(白毫相)은
부처님세계를 두루 비추나이다.
마치 달이 원만하여
광명이 왕성한 것처럼
부처님의 덕(德)도 원만하여
지혜의 광명이 두루 비추나이다.
비유하면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계시면서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사옵니다.
마치 사자왕이
숲과 들에서 사자후를 하듯
인간의 사자(師子)께서는
성품이 공함을 외치시옵니다.
말씀하신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치우친 소견[邊見]을 여의게 하므로
사자후(師子吼)라 하나이다.
온갖 모양
나거나 없어짐에 대해
나고 없어지는 것이 없음을 설하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이 언덕[此岸]을 분별하고
혹은 저 언덕[彼岸]을 보이시면서
모든 법에 머무르지 않으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물들고 청정한
두 모양에 분별이 있으면서도
모든 법의 성품은 청정하다고 하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은 행은
분별에서부터 생기는 것인데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나고 죽는 법은
무상하고 나 없는 것인데
뒤바뀜에서 생긴다고 말씀하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나고 죽는 것과 열반은
본래부터 고요하며
이것이 큰 보리라 하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모든 소견에 얽매이게 되어
세간을 헤매는 것인데
성품이 공함을 열어 보이시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여래 길잡이께서
나타내시는 신변으로
모두 다 열어 보일 수 있으므로
사자후라 하나이다.
온갖 어기는 일과 순종하는 일에 있어
그 마음은 동요되지 않으면서
항상 평등함에 머문다면
수순하는 법인(法忍)이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매우 심오한 고요한 법을 수순하면서도
또한 그 안에서 증득하지 않으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모든 허물과 악(惡)을 멀리 여의고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면서
그 가운데서 집착함이 없으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모든 법의 공한 소리와
온갖 소견의 소리를 말하면서
두 가지에 모두 다 집착함이 없으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끝이 없는 부처님 법의 소리와
갖가지 번뇌의 소리에서
소리의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보시와 지계와 다문(多聞)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에 대하여
법대로 하면서 수행하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평등하게 온갖 것을 관찰하면서
보리의 도를 청정하게 하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여래는 스스로 뜻과 말로써
모든 불법을 열어 보이시는데
여기에 의혹이 없게 된다면
수순하는 법인이라 하나이다.
만일 제가 보리를 증득하여
큰 사자후로
이 신변(神變)을 연설하게 되면
지금의 부처님 말씀처럼 할 것입니다.
저는 불가사의한
위없는 큰 복 밭에서
이미 종자를 심었기에
끝내 물러남이 없을 것입니다.
가령 대지(大地)가 무너지고
큰 바다가 모두 바짝 마른다 해도
제가 심었던 선근은
영원히 잃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과 성품은
마치 허공과 같음을 분명히 알고
보리의 종자를 깊숙이 심었기에
그지없는 복덕을 얻을 것입니다.
저의 지금 생각과 즐거움과 같은 것은
부처님만이 증명하고 아실 수 있나니
하늘과 사람과 건달바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끝내
모든 천상의 묘한 과보 구하지 않겠으며
저는 마땅히 지혜를 증득하여
인간 중에서 높은 부처님과 같이 되겠나이다.
저는 백천 년 동안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였사오니
보리에 나아가기 위하여
이런 그지없는 업을 닦았나이다.
저는 지금 천 명의 아들과
그리고 후궁이며 권속들과 함께
항상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보리가 성숙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지금 좋은 이익을 얻어
모든 부처님을 잘 뵈었고
이 법을 잘 듣게 되어서
보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나이다.
만일 보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면
법을 사랑하고 좋아함이 되나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불승(佛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때 대중 가운데에 법속질(法速疾)이라는 보살이 있다가 정장엄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당신은 여래의 신변(神變)을 수순하지 않고 있으며 사자후라 하나이다. 또한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왕이여, 보리란 법계(法界)에 머물러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앎도 없고 행함도 없으며, 빛깔도 아니고 모양도 아니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음이 마치 허공이 그림을 그릴 때에 닿거나 장애가 없는 것과 같나니, 본래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보리라 함은 모든 곳에 들어가나니 모든 법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보리는 분별함이 없나니 모든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며, 보리는 고요하나니 그치고 쉰 모양이기 때문이요, 보리는 성품이 청정하나니 헤아림과 집착을 여의기 때문이며, 보리는 움직이지 않나니 뒤섞여 어지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보리란 마음의 평등이라 하나니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보리란 중생의 평등이라 하나니 본래 생김이 없기 때문이며, 보리란 나지 않으면서 난다[不生生] 하나니 인연(因緣)에 성품이 없기 때문이요, 보리란 드러내어 보일 수가 없나니 마음[心]․뜻[意]․의식[識]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보리는 행하는 것이 없나니 모든 경계를 뛰어넘기 때문이요, 보리는 쓸모 없는 이론이 없나니 거칠게 생각하는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며, 보리는 공하나니 성품과 모양이 공하기 때문이요, 보리는 모양이 없나니 온갖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며, 보리는 소원이 없나니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보리는 조작이 없나니 업보(業報)가 없기 때문이며, 보리는 함[爲]이 없나니 세 가지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보리는 성품과 모양이 이와 같나니, 만일 이 법에 대하여 원하거나 구함이 있으면 한갓 스스로 고달플 뿐입니다. 왜냐하면 마치 보리의 성품을 보살이 마땅히 행해야 하듯이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으면 바른 행[正行]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정장엄왕은 법속질보살에게 아뢰었느니라.
‘원컨대, 저를 위하여 보살의 바른 행을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자 법속질이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모든 가진 물건을 버리는 것이 보살의 행[菩薩行]이니 중생은 평등하여 분별이 없기 때문이요, 두타(頭陀)로 계율을 배우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계율의 성품이 평등하여 행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성을 내는 뜨거운 번뇌를 여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참는 성품은 평등하여 마음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견고하고 용맹한 것이 보살의 행이니 정진은 평등하여 마음의 작용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삼매로 해탈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선정은 평등하여 반연할 것이 없기 때문이요, 문혜(聞慧)의 자량 이것이 보살의 행이니 지혜의 성품은 평등하여 생각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범주(梵住)에 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더러움과 깨끗함이 평등하여 둘을 다 같이 여의기 때문이요, 모든 신통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신통은 평등하여 생각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재를 두루 갖추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법과 이치가 평등하여 마음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요, 수승한 견해를 성취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법계는 평등하여 동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7각분(覺分)을 닦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법계는 평등함을 밝게 관찰하면서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요, 4섭법(攝法)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모든 법이 평등하여 그 일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마음의 성품은 평등하여 분별이 없기 때문이요,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청정하고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32상(相) 이것이 보살의 행이니 법의 모양이 없음을 관찰하여 평등에 들기 때문이요,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세 가지의 업을 여의어 성품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따라 기뻐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모든 중생은 평등하여 나가 없기 때문이요,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마치 꿈과 같아서 성품이 평등함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항상 착한 업을 닦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업이 평등하여 업보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견고하게 수행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온갖 법은 마치 환술과 같다고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고통을 잘 참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평등하여 고통은 생기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요, 착한 벗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벗과 벗 아닌 이에게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을 힘써 닦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과보가 평등하여 구할 것이 없기 때문이요, 많이 들으면서 싫증냄이 없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법을 말하고 법을 듣는 것이 다 같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법에 인색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평등하게 설법하면서 바라거나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른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평등하게 모든 불법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며, 항상 진실한 지혜를 구하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성품은 평등하기 때문이요, 그 마음을 겸손하면서 낮추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에게 겸손하면서 낮추기 때문이며, 온갖 착한 공덕을 두루 거두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 공덕은 평등하여 생각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정장엄왕은 이와 같은 보살의 행에 대한 설법을 듣고 기뻐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내며 즉시 의복과 몸을 장식한 장신구를 벗어서 법속질보살에게 주었으며, 왕의 천 명의 아들도 저마다 몸을 장식한 장신구를 벗어서 보살에게 올리면서 이와 같이 말하였느니라.
‘원컨대 온갖 중생들이 보살의 행을 성취하도록 이런 변재를 얻게 해주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유쾌히 좋은 이익을 얻었으므로 이러한 참 선지식(善知識)을 뵙게 되어서 공경하고 공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때에 법속질보살이 정장엄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당신이 공양하는 것은 아주 하열한 것이니, 다시 더 수승한 공양이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보살은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모두가 보리에 나아가면서
가령 한 겁이 다하도록
아들과 딸을 받들어 보시한다 해도
만일 사람이 도(道)의 뜻을 일으켜
믿음으로써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르면서 닦고 배우면
그 복이 앞의 것보다 뛰어납니다.
과거와 미래 세상의
모든 여래께서
집을 버리지 않고
위없는 도를 이루게 된 이는 한 분도 없습니다.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출가하는 법을 칭찬하셨나니
만일 부처님께 공양하기 좋아하면
부처님께 의지하여 출가해야 합니다.
설령 항하 모래만큼 많이 가득 차도록
값진 보배를 부처님께 공양한다 해도
하루 동안만이라도 출가하여
고요함을 닦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는 곧 보리를 가까이 하면서
악마 군사들을 꺾어 부수게 되며
출가하여 방일하지 않으면
청정한 법[白法]이 더욱 자라납니다.
뭇 선근을 무너뜨리지 않고
모든 번뇌를 멀리 여의며
집안 일의 누[累]를 버리고
도를 따름을 성인들은 칭찬하셨습니다.
집을 버리고서 번뇌의 속박을 여의고
번뇌를 없애고서 악마의 속박을 여의며
마음이 풀려 물듦 없음[無染]을 행하면
오래지 않아 보리를 증득할 것입니다.
그때 정장엄왕은 이 게송을 들은 뒤에 자재한 왕위에 대한 온갖 애욕을 모두 다 버려 여의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훌륭한 법률(法律) 가운데에 출가하여 계(戒)를 받겠습니다.’
그러자 등수미여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대왕이여, 출가하면 우환이 없으므로 나는 언제나 권하고 찬탄하나니, 집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그대는 아직 왕위에 대해 애착하고 있으니, 나는 그대가 법답게 머물도록 하겠느니라.’
그러자 그때 정장엄왕은 천 명의 아들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너희들 중에서 누가 왕업을 이어받겠느냐?’
모든 아들들이 함께 말하였느니라.
‘저희들도 출가하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왕은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이 만일 출가하면 이 4천하 국토의 국민들을 그 누가 돌보겠는가? 만일 너희들이 대비(大悲)가 견고하다면 마땅히 왕이 되어 주어서 두루 중생들이 선법(善法)에 편히 머무르게 해야 하느니라.’
그러자, 그때 천 명의 아들 중에서 염대비(念大悲)라는 한 왕자가 있다가
곧 게송으로써 부왕에게 대답하였느니라.
부왕이시여, 부처님의 법에서
얻은 모든 공덕으로
저는 슬퍼하면서 왕위를 받겠으며
또한 이와 같이 배우겠습니다.
저는 항상 범행(梵行)을 닦으면서
몸이 다하도록 8계(戒)를 지니겠으며
저는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겠고
향과 꽃으로 꾸미지도 않겠습니다.
몸에는 장엄하는 장식을 버리고
금으로 된 평상과 자리에 눕지도 않겠으며
발에는 금으로 된 신을 신지 않고
머리에는 보배관을 쓰지 않겠습니다.
하늘의 묘한 옷도 입지 않고
모든 음악을 구경하지 않겠으며
기이한 짐승들과도 희롱하지 않고
궁녀(宮女)들을 따르지도 않겠습니다.
4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10선도(善道)를 널리 행하겠으며
집에서 사는 잘못을 책망하고
출가한 법을 찬탄하겠습니다.
자재한 교만심을 버려 여의고
불․법․승을 친근히 하겠으며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고
항상 삼계를 싫어하겠습니다.
보시(布施)․애어(愛語)․이익(利益)․동사(同事)로써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면서
두루 대승(大乘)에서
모두 성숙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밤과 낮의 여섯 때에
마땅히 부처님께로 나아가서
법을 듣기 위하여
저 여래께 공양하겠습니다.
그때 등수미여래는 염대비 왕자를 칭찬하셨느니라.
‘장하고 장하구나. 선남자야, 너는 평등한 법을 보았기 때문에 대비(大悲)와 출가에 대한 바른 믿음에 머물러 있으니 집에 있는 보살로서는 가장 수승하구나. 출가한 공덕과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때 정장엄왕은 곧 염대비를 세워서 왕위를 잇게 하고는 999명의 왕자들과 함께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였으며, 출가하고 나자 등수미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이러한 신변(神變)의 법을 말씀하셨으므로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다섯 가지의 신통을 얻었고, 염총지(念總持)와 다문(多聞)과 지혜(智慧)를 얻었느니라.
그때에 염대비는 보름날 관정(灌頂)하여 왕위를 받고 역시 이 법으로써 4천하의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펴 보이고 교화하였으므로 92구지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모두가 등수미여래의 법에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며 대승에 머무르면서 불퇴전(不退轉)을 얻었느니라.
사리불아, 너는 이 법의 한량없는 공덕으로 온갖 선근 중생을 성숙시킨 것임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저 정장엄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지금의 상주 천자요, 법속질보살은 바로 지금의 문수사리며, 저 천 명의 아들은 이 현겁(賢劫) 동안의 천 분의 부처님이요, 염대비 왕자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니라. 사리불아, 이 모든 보살들은 깊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하면서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니라.”
옛날 수행하셨던 법을 말씀하실 때에 3만 2천의 하늘과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에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그대와 상주 천자는 오래도록 범행(梵行)을 수행하셨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하셨으며 모든 선근을 심으셨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범행이라 하면 8성도(聖道)를 말하는데, 이것은 유위(有爲)의 법이지만 저는 곧 무위(無爲)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범행이라 하면 행한 것이 있음을 말하는데, 저는 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또 범행이라 함은 두 모양[二相]을 말하는데, 저는 두 모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또 범행이라 하면 번뇌를 없앤다고 말하는데, 저는 번뇌가 없고 또한 없앤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5욕(欲)에 빨리 내달을 때에 범행을 말하게 되는데, 저는 5욕을 본래 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악마의 길을 초월하는 일을 범행이라 하는데, 저는 항상 모든 악마의 길 안에 편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착한 법을 성취하는 일을 범행이라 말하는데, 저는 선과 악에 대해 도무지 얻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성문과 연각이 머무는 바른 지위를 범행이라 하는데, 저는 증득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열반을 수행하는 도를 범행이라 하는데, 저는 열반에 대하여 원하거나 구한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래도록 범행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또 사리자여, 당신은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 많이 공양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여래께 공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냐하면 여래는 물질[色]이 아니므로 역시 볼 수가 없거늘 어떻게 여래께 공양할 수 있겠습니까? 여래는 느낌[受]이 아니므로 온갖 느낌이 끊어지고, 여래는 생각[想]이 아니므로 온갖 번뇌[結]를 여의며, 여래는 지어감[行]이 아니므로 끝끝내 조작이 없고, 여래는 의식[識]이 아니므로 마음과 뜻을 초월하거늘 어떻게 여래께 공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다음에 또 여래는 성품의 공을 행하신 까닭에 눈과 빛깔[色]의 경계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끝에 머물기 때문에 귀와 소리[聲]의 경계도 아니며, 두 모양을 여의었기 때문에 코와 냄새[鼻]의 경계도 아니고, 알 만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혀와 맛[味]의 경계도 아니며, 장애되는 모양이 없기 때문에 몸과 접촉[觸]의 경계도 아니고, 평등함에 들어갔기 때문에 뜻과 법(法)의 경계도 아니거늘 어떻게 여래께 공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또 여래란 저마다 법계(法界)인지라 ‘여여(如如)요 실제(實際)에 들어가서 대공(大空)에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본래의 성품이며, 모든 쓸모 없는 이론이 끊어지고 반연할 것이 없으며,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삼계에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현재 세상이나 과거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지극히 고요하며, 몸과 입과 뜻을 여의고 형용도 모양도 없으며, 비방도 칭찬도 없고, 샘[漏]도 잃음[失]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모든 곳에 두루하다’고 하거늘 어떻게 여래께 공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또 사리불이여, 그대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근을 심었다’고 하였는데 이 선근(善根)은 몸에 대한 소견[身見]의 뿌리도 아니요,
탐내고 성냄의 뿌리도 아니며, 뒤바뀜[顚倒]의 뿌리도 아니요, 5온(蘊)․6입(入)․7식주(識住)의 뿌리도 아니며, 8사(邪)와 9뇌(惱)와 10불선(不善)의 뿌리도 아닙니다.
저 선근은 계학(戒學)의 뿌리도 아니요, 심학(心學)의 뿌리도 아니요, 혜학(慧學)의 뿌리도 아니며, 바르게 도에 나아가는[正趣道] 뿌리도 아니요, 명해탈(明解脫)의 뿌리도 아니며, 4제(諦)와 6통(通)의 뿌리도 아니요, 9차제정(次第定)과 10무학(無學)의 뿌리도 아니며, 5근(根)․5력(力)․7보리분(菩提分)․8성도(聖道)의 뿌리도 아닙니다.
또 선근은 결사(結使:번뇌)의 뿌리도 아니요, 장애의 뿌리도 아니며, 악작(惡作)의 뿌리도 아니요, 난다거나 없어진다는 소견[生滅見]의 뿌리도 아니요, 아주 없다거나 항상 있다거나 하는 소견[斷常見]의 뿌리도 아니며, 나라는 소견[我見]․사람이라는 소견[人見]․중생이라는 소견[衆生見]․수명이라는 소견[壽者見]의 뿌리가 아니며, 온마(蘊魔)․번뇌마(煩惱魔)․사마(死魔)․천마(天魔)의 뿌리도 아닙니다.
저 선근은 망념(妄念)의 뿌리도 아니고, 무명(無明)의 뿌리도 아니며, 지어감[行]․의식[識]․이름과 물질[名色]․여섯의 감관[六入]․접촉[觸]․느낌[受]․욕망[愛]․집착[取]․존재[有]․남[生]․늙고 죽고[老死] 근심하고 괴로워하는[憂惱] 뿌리도 아닙니다.
저 선근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뿌리도 아니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뿌리도 아니며,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뿌리도 아니요, 성문과 연각이 증득할 뿌리도 아닙니다.
보살의 선근이라 함은 마음에 머무르지 않는 온갖 지혜[一切智]의 뿌리요, 자기가 짓거나 다른 이가 짓거나 함이 없는 뿌리이며, 인욕으로 조복하는 뿌리요, 몸․입․뜻을 장엄하는 뿌리며, 대자대비의 뿌리요, 온갖 중생을 성숙시키는 뿌리며, 온갖 법을 섭수하는 뿌리요, 온갖 불법을 성취하는 뿌리며, 3보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뿌리요, 온갖 가진 물건을 버리면서도 과보를 구하지 않는 뿌리입니다.
또 뭇 착한 일을 쌓으면서도 제석(帝釋)이나 범왕(梵王)을 구하지 않는 뿌리요, 큰 정진을 일으키면서 소승(小乘)을 좋아하지 않는 뿌리이며, 선정을 닦아 익히면서도 맛들여 집착하지 않는 뿌리요, 버리지 않는 행과 지혜의 뿌리이며, 두루 모든 행에 들어가서 방편을 닦는 뿌리요,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구족하는 뿌리이며,
다라니(陀羅尼)와 무애변(無礙辯)을 얻는 뿌리요, 신통의 힘을 얻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뿌리이며, 보리수(菩提樹)에 나아가고 법륜을 굴리는 뿌리입니다.”
문수사리가 이 세 가지의 결정된 이치를 말하자마자 모든 대중들은 함께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갖가지의 꽃을 세존과 문수사리 위에다 뿌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부처님의 세계 안에 문수사리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요, 문수사리가 아니면 온갖 중생들의 광대한 선근을 성숙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라도 문수사리께서 말씀하신 법문을 얻어듣고서 놀라지도 않고 괴이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면, 온갖 악마의 일[魔業]과 장애를 멀리 여의고 이 대승에서 청정한 광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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