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85권
대보적경 제85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1. 수환사발타라기회(授幻師跋陀羅記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 속에서 큰 비구 대중 1,250인과 함께 계셨다. 모두가 아라한으로서 대중이 잘 아는 이들이었다.
보살마하살도 50인이 있었으니, 큰 신통을 얻어 변현(變現)이 자재하였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과 다라니(陀羅尼)를 증득하였다. 그의 이름은 사자(師子)보살․사자혜(師子慧)보살․묘전단(妙栴檀)보살․조어(調御)보살․대조어(大調御)보살․광승(光勝)보살․광현(光現)보살․광위(光威)보살․광엄(光嚴)보살․명각(明覺)보살․중상(衆上)보살․조어중생(調御衆生)보살과 현겁(賢劫) 중의 온갖 보살들이었으며, 미륵(彌勒)보살마하살과 문수사리(文殊舍利) 법왕자(法王子) 등이 그 상수(上首)였다.
또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바세계의 주인 대범천왕(大梵天王) 및 모든 한량없는 하늘․용․야차․아수라․건달바․긴나라․마후라가 등의 대중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여래․세존께서는 명성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널리 세간에 떨친 이시니, 이른바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며, 온갖 것을 아시는 이요 온갖 것을 보시는 이며,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해(無礙解)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를 성취하신 이요, 5안(眼)을 완전히 갖추신 이며, 기설(記說)의 신비한 변화와
교회(敎誨)의 신기한 변화와 신통(神通)의 신비한 변화가 모두 다 원만하신 이며, 삼천대천세계의 대지(大地)와 성읍(城邑)과 초목과 우거진 숲과 수미산 등과 큰 바다와 강물이며 모든 하늘의 궁전을 한 털끝 위에다 놓고 허공에 세워두되, 혹은 1겁 또는 1겁을 지나도록 마음대로 하시면서도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게 하실 수 있는 이였다.
이때에 왕사성의 국왕과 대신․바라문․거사 등의 온갖 인민들이 모두가 여래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깊이 내었으므로 모든 훌륭한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탕약으로써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그 성 가운데에는 발타라(跋陀羅)라는 한 환술사(幻術師)가 있었는데 기이한 이론을 잘 익히고 주술(呪術)이 교묘하였으므로 모든 환술사 가운데 가장 우두머리였다.
마갈제국(摩竭提國)에서 오직 진리를 본 사람과 바르게 믿고 있는 우바새․우바이들만을 제외한 그 밖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환술에 현혹되어 귀의하고 믿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때 그 환술사는 여래의 공덕과 명성을 듣고 생각하였다.
‘지금 이 성 안의 온갖 중생들은 모두가 다 나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있으나 오직 구담(瞿曇) 사문만은 아직도 믿지 않고 조복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제 그에게로 가서 시험하여 보리라. 그가 만일 나에게 귀의하면 마갈제의 사람들은 반드시 모두 나를 갑절 더 공경할 것이다.’
그때 그 환술사는 전생에 심은 좋은 인연이 성숙되어 때가 왔기에, 그리고 세존의 위덕의 힘 때문에 왕사성으로부터 기사굴산으로 갔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광명은 백천의 해보다 뛰어나고, 얼굴의 잘 생김은 마치 둥근 달과 같으며, 몸 형상의 원만함은 마치 니구타 나무[尼拘陀樹]와 같고, 백호상(白毫相)의 청정함은 마치 마니(摩尼)의 광명과 같으며, 그 눈은 감색(紺色)이어서 마치 푸른 연꽃과 같고, 나아가 범천(梵天)에서조차도 정수리를 볼 수 없으며, 60종의 청정으로써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이렇게 환술사는 여래의 위덕이 특히 높으신 것을 보았으면서도 오히려 삿된 교만을 품고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그를 시험하여 보리라. 만일 그가 온갖 것을 알고 보는 이라면 나의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말하였다.
“내일 저의 미미한 공양이나마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그 환술사와 왕사성의 모든 중생들이 근기가 성숙되어 때가 왔음을 관찰하시고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잠자코 청을 받으셨다.
그 환술사는 세존께서 그의 청을 받아들인 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였다.
‘지금 이 구담이 나의 생각을 모르고 있으니, 틀림없이 그는 온갖 지혜[一切智]를 지닌 사람이 아니구나.’
그리고는 곧 하직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이때 목련(目連) 존자는 그 모임 안에 있다가 이런 일을 보고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발타라가 여래와 비구들에게 속임수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그의 청을 받아들이지 마옵소서.”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그리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이에게는 그런 속임수를 쓸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일을 오래 전에 이미 끊어 없앴다. 모든 법이 본래 남이 없음[無生]을 실제로 증득하였기 때문에 나는 오랜 겁 동안 바른 행에 편히 머물러 있거늘 그 어떤 사람이 나를 속일 수 있단 말이냐?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그가 짓는 것은 진실된 환술이 아니지만 여래가 짓는 바는 바로 진실된 환술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법은 환술과 같다 함을 실제로 증득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가령 모든 중생들이 발타라와 같은 환술을 성취하였다 하여도 여래에 견주면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 내지 산수와 비유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다시 이어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환술사가 삼천대천에 있는 모든 세계를 변화로 나타내어서 장엄하게 꾸밀 수 있겠느냐?”
목련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목련아,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하나의 털끝 가운데에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를 변화로 나타내어 장엄할 수 있되, 오히려 여래의 신력을 다하지 않느니라.
목련아, 알아야 하느니라. 쇄괴(碎壞)라는 큰 풍륜(風輪)이 있는데 그 바람은 삼천대천세계를 파괴할 수 있고, 다시 비람바(毘嵐婆)라는 풍륜이 있는데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고 다시 설립시킬 수도 있으며, 다시 고동(鼓動)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그 바람은 항상 세계를 뱅뱅 돌릴 수 있고, 다시 안주(安住)라는 풍륜이 있는데 그 바람은 유정천(有頂天)까지 갈 수 있느니라.
다시 표산(飄散)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그 바람은 수미산과 흑산(黑山) 등을 날려 흩어버릴 수가 있고, 다시 맹염(猛焰)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겁화(劫火)로 불이 탈 때에 그 사나운 불길을 위로 범천(梵天)까지 치솟게 할 수 있으며 다시 지식(止息)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겁화로 불이 탈 때에 그 바람으로 겁화로 탄 불을 꺼서 그치게 할 수 있느니라.
다시 청량(淸凉)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하나의 구름을 부려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을 수 있으며 다시 변주(遍霔)라는 풍륜이 있는데 겁화로 불이 탈 때에 두루 세계에 큰비를 내릴 수 있고, 다시 건갈(乾竭)이라는 풍륜이 있는데 겁수(劫水)로 떠내려보낼 때에 그 물들을 바짝 마르게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풍륜을 내가 만일 자세히 다 말하려면 겁을 다하여도 다하지 못할 것이니라.
목련아, 알아야 하느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환술사는 이러한 모든 풍륜 가운데서 잠시라도 편안히 머무를 수 있겠느냐?”
목련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목련아, 여래는 이러한 풍륜 가운데서도 가고 서고 앉고 눕되 동요됨이 없을 수 있고, 또 다시 이와 같은 풍륜에다 겨자씨를 넣어 놓고 모든 풍륜이 짓는 일을 그 속에서 나타낼 수 있으며, 그리고 겨자씨에는 더함도 없고 줄어짐도 없으면서 모든 풍륜과는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느니라.
목련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가 성취한
환술의 법은 한도 없고 끝도 없느니라.”
그때에 대목건련(大目乾連) 존자와 모든 대중들은 여래의 이런 말씀을 듣고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면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소리를 같이하여 부르짖었다.
“저희들은 지금 큰 위덕과 신통을 지닌 길잡이를 만났으므로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이라도 여래․세존의 이러한 신력을 듣게 되면 믿음과 이해를 깊이 낼 것이요, 이 사람들은 반드시 크고 좋은 이익을 얻게 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 환술사는 곧 그 밤에 왕사성으로 나아가서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에다 변화로 도량(道場)을 만들어 넓고 편편하게 해 놓고, 비단의 번기와 일산으로 갖가지로 장엄하고는 모든 꽃과 향을 뿌리고 보배의 장막으로 덮어두었다.
다시 8천의 모든 보배로 된 나무를 늘어 세우고 그 보배 나무 아래에는 낱낱이 사자좌(師子座)를 놓고 한량없는 깔개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모든 비구들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다시 변화로 온갖 음식을 만들었고 아울러 5백의 시중 들 사람들을 만들어서 흰옷을 입히고 장엄한 꾸미개로써 장식하여 놓았다.
이렇게 다 변화로 만들고 나자마자 사천왕(四天王)이 그곳으로 와서 환술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일 여래께 공양하기 위하여 변화로 한량없이 장엄한 기구들을 만들어 놓았도다. 이런 인연으로 큰 공덕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대를 돕고 여래께 공양하기 위하여 여기에다 변화로 두 번째 도량을 만들고자 하는데 허락하겠는가?”
환술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기이하다는 마음을 내며 곧 허락하였다. 그러자 사천왕은 곧 한량없이 수승하고 미묘하며 장엄한 기구를 변화로 만들어 놓았는데, 환술사가 만든 환술보다 갑절 더 뛰어났다.
이때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은 다시 3만의 모든 하늘들과 함께 도량으로 내려와서
환술사에게 말하였다.
“나도 이제 그대의 공양을 돕기 위하여 도량을 장엄하겠다.”
환술사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또 허락하였다. 그러자 제석천왕은 여래를 위하여 변화로 당우(堂宇)를 만들었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수승한 궁전과 같았고, 다시 변화로 파리질다(波利質多)와 구비다라(俱鞞陀羅) 등의 하늘의 묘한 나무들을 만들어서 차례로 줄을 지어 벌여 세웠다.
환술사는 그때에 그런 일들을 보고 나서 감탄하고 놀라고 후회하면서 그 변화로 된 것을 거두려고 그의 주술을 다 부렸으나 변화로 만든 일들은 완연하면서 본래 그대로였으므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아주 기이한 일이다. 나는 옛날부터 변화로 된 것이면 마음대로 없애 버리기도 하고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없애지 못하겠구나. 반드시 저 여래가 그렇게 하는 까닭이리라.’
그때에 제석천왕은 그의 마음속을 알고 환술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여래를 위하여 장엄해 놓은 도량을 없애지 못하는구나.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여래께 한 생각의 마음이라도 일으키면 이 착한 근본으로 말미암아 마침내는 반열반(般涅槃)의 인(因)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제석천왕이 하는 이런 말을 듣고 마음에 몹시 기뻐하다가 그 밤을 지난 뒤에 여래께로 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다 마련하여 놓았습니다. 가엾이 여겨 주시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여서 왕사성으로 들어가 그 환술사가 만든 도량으로 나아갔다.
마갈제국의 외도와 범지(梵志)며 바라문 등은 모두가 여래께서 환술사에게 현혹되기를 바랐으므로 그것을 보기 위하여 모두가 여래께 와서 모였으며, 모든 비구와 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도 여래의 신비한 변화와 사자후(師子吼)를 보고자 하여
역시 모두가 와서 모였다.
그때에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신력으로서 그 환술사와 제석천왕과 사천왕으로 하여금 각각 세존께서 자기가 장엄하여 놓은 곳에 계신 것을 보게 하였다. 그때에 환술사는 그것을 보고 나서 교만을 버리고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여래께 잘못을 참회하오며 사과드리나이다. 저는 먼저 부처님을 망령되이 속이려고 환술로써 갖가지의 장엄하는 일을 만들어 놓았으며 뒤에는 부끄러워하면서 뉘우쳤으나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환술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과 모든 살림 기구는 환술로 만들어진 것[幻化]이니 이를테면 업(業)으로 된 환술이기 때문이요, 모든 비구 대중들도 역시 이는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를테면 법으로 된 환술이기 때문이며, 나의 몸도 역시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니 지혜로 된 환술이기 때문이요, 삼천대천의 온갖 세계도 역시 온갖 중생과 같이 환술로 된 것이기 때문이며, 무릇 소유법(所有法)도 이는 환술 아닌 것이 없나니 인연이 화합하여 된 환술이기 때문이니라. 너는 이제 환술로써 만든 음식을 차례대로 돌리도록 하라.”
이리하여 그 환술사는 사천왕과 석제환인과 같이 온 권속들이며 그리고 환술로 만든 시중 드는 사람들과 함께 즉시 음식들을 가져다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였으며, 같이 모인 대중들도 모두가 다 배불리 먹었다.
그때 마하가섭(摩訶迦葉)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음식 이것이 환술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알고
받는 이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런 평등함을 분명히 알 때에야
비로소 청정한 보시라 하리라.
대목건련도 말하였다.
자리 이것이 환술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알고
앉은 이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런 평등함을 분명히 알 때에야
비로소 청정한 보시라 하리라.
사리불(舍利弗)도 말하였다.
변화로 만들어진 시중 드는 사람들과 같아서
받는 이의 마음 또한 그러하나니
보시하는 이도 그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청정한 보시라 하느니라.
수보리(須菩提)도 말하였다.
보시한다 하여 보시라고 여기지 말고
받는다 하여 받는다고 여기지 말라.
보시하는 이도 그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청정한 보시라 하리라.
아난다(阿難陀)도 말하였다.
보시한 바는 마치 허공과 같고
받는 이도 또한 얻을 수 없나니
몸과 마음에서 멀리 여의는
그 보시가 가장 청정하리라.
광당(光幢)보살도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저 환술사가
환술로써 장엄한 일들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와 같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네.
광엄(光嚴)보살도 말하였다.
마치 자리와 모든 나무들이
모두 환술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이 환술같은 마음과 허공이
어찌 조금이라도 차별이 있으랴.
사자(師子)보살도 말하였다.
야간(野干)이 일찍이
사자의 울음소리 들은 일이 없는 지라
그의 마음에 두려워하는 일 없이
숲과 나무 사이를 울부짖고 다니다가
마침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달아나 숨으려 해도 장소가 없듯이
환술사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래의 앞에서는 상대조차 안 되네.
항상 외도들 가운데서는
자기가 부처님보다 낫다고 하였으나
환술사가 아무리 조작한다 하더라도
그 환술은 끝이 있게 된다.
여래께서 성취한
환술은 다함이 없으므로
모든 하늘․악마로서는
그 맨 끝을 알아내지 못하리.
사자혜(師子慧)보살도 말하였다.
시중을 드는 사람과 음식과
그리고 먹는 이 등이
다 허깨비임을 분명히 알면
훌륭한 보시이니 그보다 위가 없다네.
미륵(彌勒)보살도 말하였다.
마치 불에서 소유(蘇油)를 얻을 때에
차츰차츰 더 왕성하여지듯이
세존께서 환술사를 대하면서
환술하는 변화 또한 그와 같도다.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도 말하였다.
이 모임의 뭇 착한 일들은
본래 그 전에부터 된 것이 아니듯이
온갖 법도 그러하여서
항상 과거와 동등하다네.
그때에 세존께서는 그 환술사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한 명의 장자(長者)를 변화로 만드시어 모임 안으로 들어와서 환술사에게 말하게 하였다.
“당신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환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사문 구담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온갖 음식들을 마련하였습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래께서는 지금 모든 비구들과 함께 사왕(闍王)의 궁전에 계시면서 공양을 받아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때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말미암아 그 환술사가 여래와 모든 비구들이 그곳에 계시면서 공양하시는 것을 보게 하였다.
또 다시 변화로써 두 번째의 장자를 만들어서 환술사에게 말하게 하였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환술사는 대답하였다.
“나는 사문 구담을 공양하려 하고 있습니다.”
장자는 다시 말하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래께서는 지금 모든 비구들과 함께 범지(梵志)의 마을 안을 돌아다니시면서 걸식하고 계십니다.”
그때에 부처님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그 환술사가 도리어 여래와 모든 성인들이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서 걸식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하였다.
또 다시 변화로 세 번째의 장자를 만들어서 환술사에게 말하게 하였다.
“여래께서는 지금 저 의왕(醫王) 기바(耆婆)의 동산 안에 계시면서 모든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고 계십니다.”
그때에 부처님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그 환술사가 모두 그와 같은 일들을 보게 하였다.
다음에는 또 변화로 석제환인을 만들어서
환술사에게로 와서 다시 말하게 하였다.
“여래께서는 지금 삼십삼천(三十三天)에 계시면서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신다.”
그때에 환술사는 다시 여래께서 하늘 대중들 안에 계시면서 모든 법요(法要)를 연설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환술사는 다시 숲과 나무와 꽃과 잎 사이와 모든 사자좌 위며, 그리고 왕사성과 마을의 담장과 집과 전각 등 모든 수승한 곳에서 모든 상호(相好)를 갖춘 여래를 보았고, 또한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스스로 참회하면서 사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환술사는 오직 부처님의 신체만을 보았고 다른 것은 보지 못했으므로 기뻐 펄쩍펄쩍 뛰면서 곧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게 되었다.
삼매로부터 일어나서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는 옛날 염부제(閻浮提)에서
환술로서는 저보다 나은 이가 없었으나
지금 부처님의 신통에 견주어 보니
조금도 미칠 수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비로소
모든 부처님의 생각하기 어려운 힘과
마음 따라 능히 변하여 나타냄과
항하 모래같이 많은 부처님으로 변화하신 일을 환히 알았습니다.
뵙게 된 모든 여래는
상호(相好)를 원만히 갖추셨으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어느 분이 참 부처님이신지 나타내 보이소서.
이 모든 여래께
저는 공양을 닦고 싶사오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어느 것이 수승한 과보인가를 말씀하여 주소서.
만일 사람이 부처님께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든 범부는
안락(安樂)에서 물러나 잃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존 앞에서
먼저 범했던 것들을 들추어내오니
망령되이 여래를 시험한 죄를
남김 없이 없애 주시기를 영원히 비나이다.
범왕과 제석과 그리고 대중은
저를 모두 증명하며 알아주소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지금 보리 마음을 일으키옵니다.
지혜의 광명으로써
세간을 깨닫게 하고
감로(甘露)의 법을 베풀어주어
모두 다 가득 차게 하겠나이다.
만일 사람이 부처님에게서
이와 같은 신비한 변화를 보고
그리고 뜻에 맞는 말씀을 들으면
훌륭히 걸림 없는 지혜를 행하겠습니다.
어찌 밝은 지혜가 있는 이라면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나이까?
원컨대 보리의 도(道)와
두루 청정한 행을 보여주소서.
어떤 것이 수행을 하면서
2승(乘)에 들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행할 곳에서
높이 받들어 공양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품위와 예의를 갖추고
모든 의심과 뉘우침을 여의게 되옵니까?
어떻게 하면 법을 많이 들어 앎을
싫증내지 않고 견실하게 닦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말하여
바른 법을 즐기게 하고
이득을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서
은혜를 잘 보답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중생들에 대하여
언제나 우정(友情)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착한 벗을 가까이 하고
나쁜 벗을 버리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모든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는 마음에 게으름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배워야 할 것을
존중하고 청정하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종성(種性)이 결정되고
이치대로의 마음[如理心]을 성취하며
이치대로가 아닌 것을 버리고
바른 생각을 두루 갖추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겁을 내지 않고
악마에 포섭되지 않게 되며
이치[義理]를 생각하면서
중생들을 버리지 않겠나이까?
어떻게 하는 것이 버리지 않는 것이고
가지지 않으면서도 거두어 가지며
바른 행에 들어가게 되고
좋은 방편을 두루 갖추겠나이까?
어떻게 하면 자비를 닦으면서
모든 신통을 성취하게 되며
걸림 없는 변재[無礙辯]을 증득하고
다라니(陀羅尼)를 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법인(法忍)을 얻고
청정한 변재(辯才)를 얻게 되며
버려야 할 법을 당연히 버리고
매우 심오한 이치에 들 수 있겠나이까?
어떻게 하면 서원(誓願)한 일이
다 원만하게 되어
모든 바라밀(波羅蜜)에서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얻겠나이까?
저는 이와 같은 법을
부지런히 수행할 것을 원하오니
원컨대 대비(大悲)하신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널리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만일 온갖 법이
허깨비와 같다 함을 분명히 알면
이 사람은 능히
백억의 모든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구지(俱胝)의 세계에 가서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리니
비유하면 마치 발타라가
물질이 없는 데서 여러 물질을 나타냄과 같으니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머무름도 없고 오감도 없으니
바로 세존이 변화한 몸이요
그리고 비구 대중들이니라.
또한 나거나 없어짐도 없으며
열반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는 바로 여래의
불가사의한 신통 변화이니라.
또한 마치 환술로 변화하는 이가
코끼리․말․군사와 진영(陣營)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을 현혹되게 하면
허망한 소견으로 진실이라 여기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이 코끼리와 말과 군사는
성품도 없고 또한 생김도 없듯이
모든 부처님은 색상(色相)이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느니라.
나라는 소견[我見]에 머무는 사람은
망령되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나니
물질의 모양과
종족(種族)과 태어난 곳과
나아가 맑은 음성[梵音聲]으로써
여래를 관찰하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또한 심식(心識)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분별하기란 어렵나니
모든 부처님의 법성의 몸[法性身]은
3세를 초월하시느니라.
제 성품[自性]은 모든 모양을 여의기에
법의 수(數)에 떨어지지 않나니
나타난 모든 여래의
제 성품도 생겨남이 없느니라.
또한 온(蘊)․계(界)․처(處)도 없고
의지할 것 없는 데에 머무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5안(眼)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내가 부처님을 뵈었다 한다면
그것은 곧 뵙지 못한 것이니라.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다 함은
마치 공중에 난 새의 발자국과 같나니
네가 뵌 것과 같은 부처님과
그 밖에 아직 보지 못한 것은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아
한 모양[一相]이어서 차별이 없느니라.
계율․선정․지혜․해탈과
그리고 해탈지견(解脫知見)과
모든 여래의 공덕은
다 차별이 없나니
모든 것은 공의 성품에 머무는 것
법에 집착할 것 없느니라.
모든 것은 환술이어서
성품도 없고 생겨남도 없나니
한 부처님께 공양하게 되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고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은
모두 함께 복과 이익을 능히 내시므로
모든 부처님께 널리 보시하면
모두 큰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다 같이 평등함을 증득하신
청정한 법 성품인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여래는
갖가지의 차별이 없느니라.
네가 먼저 물은 것과 같이
어느 분이 참 부처님인가 하면
마땅히 산란한 마음을 버리고
자세히 들어라. 나는 널리 말하리라.
바른 기억과 지혜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모든 것은 생겨남이 없거늘
허망한 소견으로 진실이라 하나니
색상(色相)이 만일 생김이 있다면
마땅히 소멸함도 있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모든 여래는
끝내 생겨남이 없나니
그것 또한 이미 생겨난 것도 아니요
흩어져 소멸함도 없느니라.
이것으로써 여래를 관찰하되
볼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을 삼으라.
네가 보았던 부처님은
방위에 의지하지 않으시느니라.
모든 범부들은
5온(蘊)에 의지하지만
마땅히 5온에 대하여
부처님과 같은 방법으로 관찰해야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
중생에 이르기까지
모양 없음[無相]으로 모양을 삼아
의지하는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관찰한다면
속히 보리를 증득하리니
모든 법은 있는 것이 아니건만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인(因)과 연(緣)의 체성이 공하고
짓는 이[作者]의 성품을 여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분명히 통달하게 되면
인과 연과 짓는 이가 공하리라.
그가 곧 물듦을 여읜
청정한 법을 분명히 알면
청정한 법안(法眼)으로써
모든 여래를 뵐 수 있느니라.
환술사는 이런 말씀을 듣고 나서 순법인(順法忍)을 얻었고, 5천 명의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2백 명의 보살들은 무생인(無生忍)을 증득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공양을 다 마치시고 환술사가 보시한 서원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시한 물건에 있어서
보시한 이와 받은 사람이
평등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이 곧 보시의 원만함이니라.
그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여래께 원하옵니다.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환술사를 가지(加持)하셔서 지금 베풀어주신 장엄한 일들을 7일 동안만 없어지지 않게 해 주소서.”
이때에 여래께서는 대중의 간청 때문에 환술사가 만든 도량을 7일 동안 장엄한 그대로 있게 하셨다.
그때에 여래께서는 모든 비구들과 큰 보살들과 하늘․용․야차․건달바 등에게 공손히 둘러싸여 기사굴산으로 돌아가셔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때에 환술사는 다시 부처님께로 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돌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저를 위하여 모든 보살의 도를 연설하시어
부지런히 수행하는 이면 속히 보리의 도량(道場)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를 위하여 말할 것이니라.”
환술사가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 가지의 법이 있나니, 만일 이 보살의 도를 잘 수행하면 속히 보리의 도량에 이를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리의 마음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중생들을 언제나 버리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선근(善根)을 구하면서 만족해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니면서 크게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에게는 다시 두루 청정한 행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율의(律儀)가 청정한 것이요, 둘째는 의요(意樂)가 청정한 것이며, 셋째는 지혜(智慧)가 청정한 것이요, 넷째는 받아 남[受生]이 청정한 것이니라.
또 네 가지의 법이 있나니, 오직 보살의 행만이 저 2승(乘)에 들어가지 않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선정을 닦아 익히면서도 가서 남[生]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매우 심오한 법에 대하여 마음으로 간택(簡擇)하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갖가지 변재로써 법의 걸림 없음[無礙]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또 행할 처소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한적한 곳에 머무르기 좋아하는 것이요, 둘째는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에 대하여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행[諸行]에 가고 옴이 없음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또 존중하고 공양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첫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며, 셋째는 교만을 버리고 여의는 것이요, 넷째는 말씀한 대로 수행하는 것이니라.
또 위의(威儀)를 구족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때[時]를 아는 것이요, 둘째는 처소[處]를 아는 것이요, 셋째는 고요한 것이요, 넷째는 진실한 것이니라.
또 의심과 뉘우침을 여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후회할 일을 미리 막아 지켜야 하고, 둘째는 모든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친근하기를 좋아해야 하며, 셋째는 듣게 된 이치에 대하여는 항상 잘 생각해야 하고, 넷째는 인자한 마음이 아니면 다른 이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것이니라.
또 많이 들어 싫증이 없게 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자기와 다른 이의 바른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다른 이의 의혹을 끊어 없애 주기 때문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잘 거두어 지니기 때문이요, 넷째는 모든 여래에 대한 칭찬이 그지없기 때문이니라.
또 많이 들어서 견고하고 충실해지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잘 이해하여 분명히 아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모든 악(惡)을 짓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다른 이들에게 열어 보이는 것이요, 넷째는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라.
또 설법의 이익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항상 다른 사람의 향기로운 맛과 음식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의복과 갖가지의 공양을 받는 것이며, 셋째는 악마와 그의 권속들의 세력을 미약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하늘이 보호하고 껴잡아 주므로 악마가 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다른 이로 하여금 말한 법을 믿고 좋아하게 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마음에 욕심이 적기 때문이요, 둘째는 언제나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며, 셋째는 말이 부드럽기 때문이요, 넷째는 몸이 법을 따르기 때문이니라.
또 바른 법을 연설하면서 희망함이 없는 것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나고 죽고 하는 가운데 항상 두려움을 품는 것이요, 둘째는 세간의 이익과 친한 벗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을 항상 옹호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성종(聖種)을 잘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또 은혜를 알아 은혜에 보답하는 것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보리에 나아갈 것을 권고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지을 업(業)을 알아서 잃거나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중생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처럼 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보살로서의 할 일을 잘 수행하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중생에게 우정(友情)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인욕의 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기 때문이요, 둘째는 중생을 복되게 하고 이익되게 하면서도 보답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크게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항상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요, 넷째는 비록 많이 괴롭히고 해친다 하더라도 역시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착한 벗을 마땅히 친근히 해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는 수승한 의요(意樂)를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보살로서의 바른 행을 성취하는 것이요, 넷째는 보리를 찬탄하고 권하는 일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모든 나쁜 벗을 버려 여의어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2승(乘)을 찬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보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나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선(善)을 해치고 무너뜨리는 것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항상 한마음으로써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여래의 모든 공덕을 칭찬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받은 율의(律儀)가 두루 청정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수승한 의요(意樂)로써 큰 서원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면서 마음에 게으름이 없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스로 경하하면서 ‘나는 지금 가장 맨 위의 복전(福田)에 공양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요, 둘째는 ‘내가 공양함으로 말미암아 중생도 역시 공양한다’고 하는 것이며, 셋째는 ‘공양하고 난 뒤에는 보리의 마음이 견고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요, 넷째는 여래의 32상(相)을 보고 선근이 더욱 자라나는 것이니라.
또 모든 배울 것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내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나쁜 길[惡道]을 뛰어넘는 것이요,
둘째는 착한 갈래[善趣]에 나게 되는 것이며, 셋째는 여래를 존중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서원이 원만하게 되는 것이니라.
또 배워야 할 것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리의 마음을 항상 버리거나 여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쓰는 것이며, 셋째는 바라밀을 정진하면서 수행하는 것이요, 넷째는 한량없는 법을 들으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또 배워야 할 것에 청정한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악(惡)을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공성(空性)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소견을 없애고 무너뜨리는 것이니라.
또 삼매의 종성[三昧種姓]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시끄러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둘째는 고요함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마음에 산란함이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근이 늘어나기 때문이니라.
또 이치대로의 마음으로 성취해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닦았던 착한 법을 회향(廻向)하여 보리에 나아가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이 항상 고요하면서 집착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해탈의 문[解脫門]을 항상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것이요, 넷째는 일찍이 이승의 열반을 구하거나 증득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이치대로가 아닌 마음은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나고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함이 있는 것이요, 둘째는 수행할 바를 믿거나 받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비밀스런 교법에 대하여 수승한 견해[勝解]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넷째는 모든 선근을 닦아 익히지 않는 것이니라.
또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을 잘 닦고 배워야 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살은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한량없는 겁 동안 나고 죽음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먼저 온갖 중생의 근성(根性)의 차별을 분명히 알면서 그에게 설법하여 번뇌를 버리게 하여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땅히 온갖 악을 끊고 온갖 선을 닦아
악마 군사를 항복받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야 하는 것이요, 넷째는 삼천대천세계의 한량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하나의 범음(梵音)으로써 모든 법요(法要)를 연설하는 것이니라.
또 겁내는 마음이 없고 악마가 꺾을 수 없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법은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이치대로의 바른 지혜와 상응하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법에 대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는 것이요, 넷째는 온갖 모양에 대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또 이치를 생각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온갖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임을 아는 것이요, 둘째는 조그마한 법도 생긴다고 하는 것이 없다고 함을 아는 것이며, 셋째는 인연으로 생기는 법 그것은 곧 생김이 없는 것임을 아는 것이요, 넷째는 법은 생기는 것도 없고 소멸하거나 무너지는 것도 없음을 아는 것이니라.
또 중생을 버리지 않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고달픔을 참는 것이며, 셋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항상 네 가지 거두어 주는 법을 닦는 것이니라.
또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보시에 대해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요, 둘째는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것을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스스로 깨닫고 살핌을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요, 넷째는 다른 이의 선(善)을 더욱 자라게 하면서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라.
또 언제나 거두어 지녀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아주 작은 선근이라도 역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이의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면서 마음에 게으름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보시와 계율에 대한 설법을 들으면 잘 믿고 받는 것이요, 넷째는 온갖 이익과 명예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바른 행[正行]에 들어가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냐 하면, 첫째는 통지(通智)를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는 큰 삼매(三昧)에 머무르는 것이며, 셋째는 공성(空性)을 닦아 익히는 것이요, 넷째는 집착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라.
또 뛰어난 방편에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에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살은 모든 마음을 일으킬 때 보리의 마음을 우두머리로 삼으며, 번뇌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게 하거늘, 하물며 모든 착한 마음 등을 일으키는 것이겠는가? 둘째는 모든 중생이면 삿된 소견에 머무른 이까지도 모두 법의 그릇이 된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음을 분명히 아는 것이요, 넷째는 해탈을 닦아 익히면서 삼매의 문에 대하여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라.
또 크게 인자한 마음을 닦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을 구호하는 것이요, 둘째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 것이며, 셋째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니라.
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의 법인가 하면, 첫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나쁜 길을 여의고 착한 갈래에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나쁜 행을 버리고 착한 법을 익히게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소승을 여의고 대승에 들게 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여의고 열반을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신통을 성취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애착함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온갖 법은 환술과 같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넷째는 사마타(奢摩他)를 닦으면서 산란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걸림 없는 변재[無礙辯]를 얻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이치에 따르면서 글[文]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법(法)을 따르면서 사람[人]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을 분명히 통달하여 문자를 여의는 것이요,
넷째는 분명한 문자에 의지하여 연설하되 다함이 없는 것이니라.
또 다라니(陀羅尼)를 얻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많이 듣는 것에 대하여 만족해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많이 들어 아는 이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며, 셋째는 갖가지의 이름으로써 진실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요, 넷째는 비밀스런 가르침[秘密敎]을 따르면서 바르게 나아가 드는 것이니라.
또 법인(法忍)을 능히 얻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뛰어난 견해[勝解]를 많이 닦는 것이요, 둘째는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자량(資糧)이 원만한 것이요, 넷째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게으름이 없는 것이니라.
또 청정한 변재(辯才)를 얻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설법하는 사람에게 거스름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법사를 존중하면서 공손하게 받드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많이 들어 안다 하여 스스로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견문이 적은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라.
또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할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하며, 둘째는 성문승(聲聞乘)을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하며, 셋째는 연각승(緣覺乘)을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하며, 넷째는 착한 법이라는 생각을 마땅히 버려 여의어야 하는 것이니라.
또 매우 심오한 이치에 들어가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위(有爲)의 법에 대하여 깊이 연기(緣起)를 통달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밀한 이치를 바르고 분명히 아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의 성품[法性]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깊이 내는 것이요, 넷째는 온갖 법에 대하여 공한 이치를 분명하게 통달하는 것이니라.
또 서원이 원만하게 되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시라(尸羅:계율)가 청정한 것이요, 둘째는 나쁜 업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며, 셋째는 아첨과 속임수가 없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니라.
또 모든 바라밀에서 물러나지 않는 네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선교방편으로 하나의 바라밀에 능함으로써
모든 바라밀을 두루 통달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교방편으로 하나의 중생을 따라 앎으로써 모든 중생을 두루 아는 것이며, 셋째는 선교방편으로 하나의 법의 청정함을 증득함으로써 모든 법의 청정함을 두루 증득하는 것이요, 넷째는 선교방편으로 한 분의 부처님을 환히 앎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두루 아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법의 성품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보살의 네 가지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환술사 발타라는 무생인(無生忍)을 증득하여 마음이 뛸 듯이 기쁜 나머지 즉시 그 몸을 땅에서 7다라(多羅) 높이만큼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기뻐하시며 빙그레 미소지으셨다. 그러자 그 입으로부터 한량없는 광명이 나왔으며, 그 광명은 모든 부처님세계를 두루 비추고는 다시 돌아와 여래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에 아난 존자는 생각하였다.
‘여래․응공․정등각께서 미소를 나타내심은 그 까닭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으로 물었다.
삼계에 널리 떨치신 정변지(正遍知)이시고
위덕(威德)과 지혜를 생각하기 어려운 이시며
이미 보리와 공덕의 언덕에 도달하신 이께서
지금 미소지으셨으니 무슨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시방과 다섯 갈래 세계의 모든 중생의
마음 작용과 종성(種性)의 상․중․하를
여래께서는 그 모두를 환히 아시는데
지금 미소지으셨으니 무슨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하늘․8부(部)의 모든 대중이
내는 갖가지 묘한 음성
여래의 청정한 음성에 견주면
가라(歌羅)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옵니다.
세존의 광명은 시방에 두루하여
한량없는 부처님세계를 널리 비추시나니
해와 달과 마니(摩尼)와 범천의 광명도
여래에 비교할 것이 없나이다.
이미 성품이 공한 매우 심오한 법을 환히 아시고
나 없음과 사람 및 중생이 없음이며
있고 없음의 두 치우침도 다 버리고 여의어
3제(際)를 잘 아심이 마치 물 속의 달과 같나이다.
이제 누가 최상승(最上乘)에 나아가
여래의 법 종성을 이어받았으며
광대한 3보(寶) 중에 태어났겠습니까?
그 미소지으신 까닭을 말씀하여 주소서.
여래께서 나타내신 미소의 광명은
저 모든 승(乘)에 따라 차별이 있어서
무릎이나 어깨에서 없어지게 되는
이런 것은 저 2승 사람을 위한 것이옵니다.
지금 놓으셨던 한량없는 광명은
저 여래의 정수리로 들어갔나니
하늘 중에서 가장 수승하신 이여,
어느 사람을 이 불승(佛乘)에서 수기하셨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발타라를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는 9만 2천 겁을 지나 대장엄(大莊嚴) 국토에서 선화겁(善化劫) 동안에 성불하게 되리니, 명호는 신변왕(神變王) 여래․응공․정등각이라 하시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인민들이 흥성하고 안온하고 풍요로우며, 땅이 편편하면서 부드럽기 마치 도라솜[兜羅綿]과 같고, 꽃과 열매가 달린 모든 나무가 줄지어 서 있으며, 당기․번기와 보배 일산으로 장엄되어 있으면서 많은 악기가 저절로 울리고, 묘한 향기가 두루 가득 차며, 구하는 음식은 생각을 따라 이르게 되고, 수용하는 모든 살림 기구들은 마치 도리천(忉利天)과 다름이 없을 것이요, 그 국토는 언제나 갖가지의 장엄을 나타내기 때문에 대장엄 국토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그 국토의 인민들은 모두가 대승에 머물러서 믿음이 깊고 견고할 것이며, 그 신변왕 여래는 수명이 만 년이요, 정법(正法)은 세상에 꼭 백억 년 동안 머물 것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려 하실 때에는 명칭(名稱)보살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되리니, 명호는 일체최승(一切最勝) 여래․응공․정등각이라 하리라’고 할 것이니라.”
그때에 발타라는 여래께서
이렇게 수기하신 것을 듣고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말하였다.
“저는 이제 여래․응공․정등각과 교법과 비구스님께 귀명하옵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구지(俱胝)의 수 동안 백천 번 은근하게 아뢴 뒤에 다시 말하였다.
“마치 세존께서 진여(眞如)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온갖 법은 진여와 다름이 없고, 차별도 없고, 부족함도 없고, 분별도 없고, 생김도 없고, 조작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제가 지금 귀의함도 역시 그와 같나이다.”
그때에 아난 존자가 발타라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여와 같이 귀의한다면 당신은 이제 어찌 부처님 법의 성품[法性] 가운데서 얻을 것이 있겠습니까?”
환술사가 대답하였다.
“저의 몸이 곧 여래의 법 성품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여래는 둘도 없고 구별도 없으며, 모든 법은 진여이기 때문입니다. 진여라 함은 온갖 법의 차별이 없는 성품이니, 온갖 중생들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존자여, 아셔야 합니다. 둘이 없다[無二] 함은 분별할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둘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에는 다만 이름이 있을 뿐임을 두루 아는 그것이 부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이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발타라에게 이러한 지혜와 변재가 있으니 말씀이옵니다. 옛날에는 환술로써 세간을 어지럽게 하더니, 이제는 다시 지혜로써 어지럽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발타라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진실로 그러하느냐?”
발타라가 말하였다.
“마치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 미혹하고 어지럽게 하는 일이라면, 저도 역시 이와 같이 세간을 미혹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나 없는 가운데서 중생(衆生)과 수명(壽命)이 있다고 말씀하시므로 이것은 세간을 크게 미혹하고 어지럽게 한 것이며, 또 여래께서는 보리를 증득하신 뒤에 조그마한 법도 이것은 나고 죽고 가고 온다 함을 보지 않으면서도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니, 제 생각으로는 오직 여래만이 크게 미혹하고 어지럽게 하신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너의 말과 같으니라. 모든 부처님․여래는 나 없는 가운데서 나고 죽고, 가고 옴이 없는 데서 세속을 따라 중생들을 말하는 것이요, 또한 조그마한 법도 열반이라 할 것이 없는데 열반의 법을 증득하기 위하여 열반을 말하는 것이니라.”
발타라는 이런 말씀을 듣자마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선남자의 머리와 수염을 깎아주고 구족계(具足戒)를 수여하도록 하라.”
미륵보살은 부처님의 교지(敎旨)를 받들어서 곧 출가하게 하였으며, 구족계를 받고 출가한 뒤에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출가한 자는 오직 형상일 뿐이요 진실한 출가가 아니옵니다. 만일 모든 보살로서 진실로 출가한 이면 모든 형상을 여의고 삼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성숙시켜야 비로소 진실한 출가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에 5천 명의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모두가 번뇌[漏]에서 마음이 해탈하였다.
그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저희들은 어떻게 받아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수환사발타라기법문경(授幻師跋陀羅記法門經)』이라 하며, 또한 이라고도 하나니,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미래의 세상에 여래를 뵙고자 하거나, 또는 중생들을 위하여 불사(佛事)를 짓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연설해야 할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런 사람이면 이미 여래를 뵌 것이 되며, 또한 이미 다른 이들을 위하여 불사를 지은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일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 유통시킨 이라면 곧 중생을 가엾이 여겨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한 것이 되느니라. 만일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고자 한다면 역시 이 경을 부지런히 닦고 익혀야 하나니, 이 경에서는 위없는 보리가 능히 나오고 이 경이야말로 위없는 보리를 능히 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경을 또한 『출생보리경(出生菩提經)』이라고도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이 경전을 받아 지니면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몸에 머물러 계시는 줄 알아야 하거늘 하물며 그 안에서 이치대로 수행하는 것이겠는가?”
그때 발타라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또한『발각선근경(發覺善根經)』이라고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부처님에게서 이 경을 듣고서 온갖 선근이 모두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아난 존자와 발타라와 하늘․사람의 대중들이며, 아수라와 건달바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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