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83권
대보적경 제83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0. 무진복장회(無盡伏藏會) ①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천 인과 함께 계셨으니, 모두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여 사자후(師子吼)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보살마하살도 5백 인이 있었으니 모두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었고 말 재주가 걸림이 없었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였고 불퇴전의 지위[不退轉地]에 머물렀으며, 모든 삼매(三昧)를 갖추었고 신통에 유희하였으며, 중생들의 마음의 작용[心行]과 나아가는 바를 잘 알았다
그 명호는 일당(一幢)보살․월당(月幢)보살․보광(普光)보살․월왕(月王)보살․조고봉(照高峰)보살․비로자나(毘盧遮那)보살․사자혜(師子慧)보살․공덕보광(功德寶光)보살․일체의성(一切義成)보살․성취숙연(成就宿緣)보살․성취원행(成就願行)보살․공혜(空慧)보살․등심(等心)보살․희애(喜愛)보살․낙중(樂衆)보살․전승(戰勝)보살․혜행(慧行)보살․전득(電得)보살․승변(勝辨)보살․사자후(師子吼)보살․묘언음(妙言音)보살․능경각(能警覺)보살․교전행(巧轉行)보살․적멸행(寂滅行)보살 등 이러한 보살마하살들이 상수(上首)였다.
또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사바세계의 주인[娑婆世界主]과 범천왕(梵天王)과 큰 위덕이 있는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 이러한 한량없는 여러 대중들이 함께 있었다.
그때에 전득(電得)보살이
모든 대중들이 고요하고 청정하며 큰 용상(龍象)들이 모두 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조그마한 의심이 있어 이제 묻고자 하오니, 여래께서는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전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응공․정등각은 네가 거리낌 없이 묻는 바를 너에게 말하여 줄 것이니라.”
전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떤 법을 성취하면 중생들의 온갖 소망을 만족시킬 수 있고 모든 허물에 물들어 집착되지 않으며, 그 근성(根性)에 따라 방편으로 인도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기필코 평등함을 증득하여 세간에 있으면서 물듦 없음이 마치 연꽃과 같으며, 법계(法界)에 동요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노닐며, 항상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색신(色身)을 보지 않으며, 3해탈(解脫)에 머무르고 정위(正位)에 들지 않으며 중생의 욕망에 따르고 부처님 국토를 엄정(嚴淨)하게 하며 찰나 동안에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나이까?”
그때에 전득보살마하살은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물었다.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이여
그지없이 아시고 보시는 분이라
공통한 법[共法]에 편히 머무르면서
모든 세간을 이익되게 하나이다.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보시고
세간의 의지처가 되어 주시며
모든 삿되고 바른 길을 보이시어
필경에는 안락하게 하시옵니다.
수승한 공덕을 쌓고 모음이
마치 보배의 무더기와 같으며
세간에서 지혜의 태양이시고
삼계에서 공양 받을 만한 높은 분이시옵니다.
원컨대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어
보살의 도를 성취하게 하소서.
얼굴의 모습은 둥근 달과 같으시고
사마타(奢摩他)를 두루 갖추셨나이다.
고요한 법을 열어 보이시어
모든 번뇌를 없애 주시니
원컨대 보살의 행을 말씀하시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소서.
부처님의 세계와 수명(壽命)과
색신(色身)과 권속이며
3업(業)과 모든 법이
다 청정하시나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청정한 보살의 행을 말씀하여 주소서.
어떻게 악마를 항복받으며
어떻게 설법하나이까?
어떻게 하면 가르침을 잊지 않나이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널리 말씀하소서.
어떻게 하면 용맹스레 정진한 이가
두루 나고 죽는 데에 들어가서
한 모양[一相] 안에 편히 머무르고
법에서 항상 동요함이 없게 되나이까?
어떻게 모든 부처님 처소에
친근하게 공양을 하며
항상 부처님의 색신을 살피면서
마침내는 모든 모양을 여의겠나이까?
비록 3해탈을 증득하여
마치 새가 허공을 나는 것 같다 하더라도
아직 모든 공덕을 갖추지 못하면
끝내 열반에 들지 못하나이다.
모든 근성(根性)과 욕망을 알아
두려울 것이 없음에 수순하게 하고
또한 염착을 내지 않고
그 중생을 성숙시키며
먼저 세간의 즐거움을 베푸시고
그 뒤에 청정한 마음을 내게 하나이다.
수승한 지혜를 두루 갖추시고
최상의 보리를 증득하셨으니
이와 같이 깊고 묘한 이치를
원컨대 여래께서는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전득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선남자야, 부처님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물어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며, 현재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미래 세상의 모든 보살들을 잘 섭수(攝受)하는구나. 그러므로 전득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야 한다. 너를 위하여 말해 주리라.”
전득보살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전득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 복장[五伏藏]과, 대복장(大伏藏)․다함 없는 복장[無盡伏藏]․변무진복장[遍無盡伏藏]․끝이 없는 복장[無邊伏藏]이 있으니, 보살이 이와 같은 복장을 두루 갖추면 영원히 빈궁함을 여의고 곧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며 조그마한 공력(功力)으로써도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탐애하는 행의 복장[貪行伏藏]이요, 성을 내는 행의 복장[瞋行伏藏]이며, 어리석은 행의 복장[癡行伏藏]이요,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等分行伏藏]이며, 모든 법의 복장[諸法伏藏]이니라.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탐애하는 행의 묻힌 갈무리라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이 탐애(貪愛)하는 행과 상응하면 뒤바뀌고 얽매여서 행의 모든 모양에 따라 갖가지로 분별하면서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 등의 모든 경계 안에서 집착함이 견고하고 즐겨 빠지며[耽樂] 혼미하게 되나니, 보살은 그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그 모든 중생은 원하고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느 경계에 물들고 익히면서 더욱 강성한가? 어떠한 신해(信解)를 두루 갖추고 성취하였는가? 옛날에 일찍이 어떠한 선근을 심었는가? 어느 승(乘) 가운데서 장차 나아갈 수 있겠는가? 지니고 있는 선근은 오래 전에 성숙되어 있는가?’ 하는 등을 여실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의 온갖 욕심을 끊게 하기 위하여 그 착한 마음이 언제나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자세히 관찰하면서 치료하여 주어야 하느니라.
전득아,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의 근기와 행은 서로 달라서 알기 어려우므로 성문과 벽지불로서도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거늘 하물며 모든 범부와 외도이겠느냐?
그러므로 전득아, 혹 어떤 중생은 비록 모든 욕심에 집착한다 하더라도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잘 성숙시키는가 하면, 혹 어떤 중생은 겨우 음욕의 경계에 접촉하기만 하면 혹은 염심(染心)으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곧 위없는 명탈(明脫)이 성숙되며, 혹 어떤 중생은 예쁜 여색(女色)을 보면 마음에 음욕의 염심을 내지만 그 빛깔이 변하고 무너지면 이내 깨달아 알면서 음욕의 괴로움이 문득 쉬고 깊이 덧없음을 생각하며 곧 위없는 명탈이 잘 성숙되느니라.
혹은 또 어떤 중생은 비록 여인을 보고도 탐착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뒤에 생각하면서 염심을 일으켜 그의 형용을 상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혹 어떤 중생은 꿈속에서 뜻에 맞는 여색을 보고 마음에 탐착을 내어 생각을 두면서 추구(追求)하게 되며,
혹 어떤 중생은 여인의 음성을 듣고 탐애를 내었다가 어느 때에 잠시 그를 보고는 탐하던 마음을 여의면서 곧 위없는 명탈이 성숙되나니, 그러므로 전득아, 보살은 이 갖가지의 탐애에 관한 병과 탐애에 대한 약을 교묘히 잘 알 것이며, 법계(法界)에는 두 모양[二相]이 없으므로 이 법계에 미혹된 중생에 대하여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전득아, 탐애하고 성을 내고 어리석은 것과 법계의 지혜[法界智]는 조그마한 법도 얻을 만한 것이 없나니,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보는 바와 같은 이 모든 중생은 이 모양이 없고 제 성품[自性]이 공하고 고요하고 붙인 이름[假名]으로 시설하여 있는 화합된 법 가운데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것을 여실하게 관찰하여 그 미혹되고 탐욕 있는 중생에 대하여 대비(大悲)에 머물러서 옛 서원을 원만하게 하고 법계에서 동요하지 않으면서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로써 성숙시켜야 한다.’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장부가 저 여인에 대하여 망령되이 청정하다는 생각을 내면서 무거운 탐염(貪染)을 일으키면 보살은 곧 단정하고 예쁘면서 색상(色相)이 구족하고 값진 보배와 영락의 갖가지로 장엄하여 마치 옛날에 본 적이 없는 천녀(天女)와 같은 여인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 중생에 따라 그로 하여금 애착하게 하다가 지극히 탐하고 사랑한 뒤에는, 그가 감당할 수 있음을 헤아리면서 방편을 써서 그 탐욕의 독화살을 뽑아 주고는 자재(自在)한 힘으로써 도로 여인의 몸으로 변하여 그 사람의 앞에 나타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법계를 통달하게 하고는 이내 없어지면서 보이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여인이 그 장부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보살은 곧 그를 위하여 장부의 몸으로 나타나서 나아가 그의 탐욕의 독화살을 뽑아 주고 그를 위하여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법계에 들어가게 하고는 이내 없어지면서 보이지 않느니라.
전득아, 이 모든 탐애하는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공용이 없는
지혜로 한량없는 억천의 법문을 내어서 중생들을 깨우쳐 주어 모두가 해탈하게 하느니라. 그러나 역시 ‘나는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설법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중생으로서 해탈을 얻은 이도 없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무열용왕(無熱龍王)이 그의 업의 힘[業力] 때문에 그 궁전 안에서 네 개의 큰 강물[四大河]을 내어 모든 중생으로서 물이나 뭍에 머무는 이들을 위하여 여름철의 뜨거운 고뇌에서는 시원하게 하여 주고 꽃과 열매를 윤택하게 하며, 5곡(穀)을 알차게 하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면서도 그 용왕은 ‘나는 지금 이 강물이 흘러나오게 한다. 이미 흘러나오게 했다. 장차 흘러나오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네 개의 강물은 항상 스스로 가득히 넘쳐흐르면서 중생의 소용이 되어 주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옛날의 서원을 성취하여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해설하고 온갖 나고 죽는 뜨거운 고뇌를 없애주며, 두루 인간과 천상에 거룩한 해탈의 쾌락을 베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 보살은 역시 ‘나는 지금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절로 운행하는 대비(大悲)의 마음에 머물러 중생을 관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바를 따라 설법하느니라.
또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제석(帝釋)에게 있는 12나유타(那由他)의 모든 천녀(天女)들에게 그 제석의 자재한 힘 때문에 여러 몸을 나타내어 모든 천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욕락(欲樂)에 모두 만족함을 얻게 하므로 저마다 생각하기를, ‘지금 나 혼자만이 제석과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고 하나, 이 제석은 실로 물든 바가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으로서 제도해야만 할 이에게는 그의 의요(意樂)에 따르면서 성숙되게 하지만 그러나 이 보살은 역시 물들어 집착함이 없느니라.
다시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해가 산봉우리에 떠오를 때에 광명이 염부제를 두루 비추면서 비추어진 곳은 청․황․적․백의 갖가지 형색으로 모두 다 나타나지만,
그 햇빛은 하나의 빛깔이요 하나의 광명이어서 차별된 빛깔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의 해가 법계를 비추면서 중생에게 반연하는 것이 한 모양이라 그 의요(意樂)에 따르면서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두 모양[二相]이 없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탐애하는 행의 복장[貪行伏藏]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혹은 1겁 아니 1겁이 지나도록 모든 중생의 갖가지 의요를 따라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면서 갖가지의 언사(言詞)로써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역시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또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순금이 공업(工業)의 힘으로 말미암아 뜻대로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갖가지의 영락과 장엄구들은 그 모양이 저마다 다르지만 금의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면서 모든 중생의 갖가지의 의요를 따라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갖가지의 언사로써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역시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이것이 항상 법계의 한 모양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은 이와 같이 복장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로 설법할 수 있고, 그들은 법을 들은 뒤에 그지없는 거룩한 재물[聖財]을 두루 풍부하게 갖추게 되므로 생사(生死)에서의 곤궁함을 영영 끊게 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성을 내는 행의 복장[瞋行伏藏]이라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들이 교만과 상응하여 나와 내 것을 헤아리면서 자기와 다른 이의 모양에 머물러 오랜 옛적부터 오면서 자비와 인욕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내는 뜨거운 번뇌로 자기 자신의 그 마음을 무너뜨리며, 불․법․승을 기억하지 않고 성을 내는 독에 가려져서 법에 미혹되어 있느니라.
보살은 그 성을 많이 내는 중생에 대하여 끝내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지 않으면서 오직 생각하기를,
‘기이하게도 중생이 어리석어서 미혹되어 있구나. 모든 법의 본래 성품은 고요하여 때가 끼거나 흐림도 없고 어울림도 없고 어기거나 다툼도 없는 멀리 여읜 법 가운데서 뒤바뀜과 상응하여 망령되이 성을 내고 한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할 뿐이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머물러서 언제나 스스로 간절한 생각을 지니며, 설령 그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는 일이 있다 하여도 성내는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인욕에 편안히 머무느니라. 만일 그 한량없이 성을 내는 중생들이 서로 어기면서 마음에 성을 내고 원한을 품으면 이 업(業)이 이루어진 뒤에는 반드시 독사 같은 나쁜 갈래에 떨어질 것이므로, 인욕에 머무는 보살은 인자한 생각의 힘으로써 이런 중생들을 교화하여 나쁜 갈래의 과보를 받지 않게 하고 반드시 평등함을 증득할 수 있게 하여야 하리니, 이것을 보살이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의 성을 내는 행을 없애 주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전득아, 보살이 만일 성내는 중생들을 보면 생각하기를, ‘모든 법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거늘 이 모든 중생들이 모양을 따르면서 행하고 망령되이 분별을 내면서 이 평등하고 어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있다. 저 모든 중생들은 법계의 성품을 분명하게 몰라서이니, 만일 이 중생이 법의 성품을 본다면 끝내 다른 이에게 분을 내거나 성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법계의 본래 성품을 분명하게 모르는 까닭이니, 이 때문에 성을 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니라.
보살은 저 성을 많이 내는 중생들에 대하여 갑절 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대비(大悲)에 머무를 것이며, 옛날의 서원을 원만하게 이루면서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로써 중생들의 성내는 행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갖가지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되, 역시 ‘나는 중생의 성내는 일을 없애기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법계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에 편히 머물러서 번뇌의 행을 없애는 것이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어둠을 제외하고서 광명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어둠을 제거시키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와 같은 어둠과 광명의 성품은 모두가 허공과 같아서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지혜에 의거하여 교묘한 설법으로 갖가지 성을 내는 중생을 꺾어 없애지만 법계에 대하여 차별을 짓지 않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해에서 나오는 광명이 비추는 곳은 달라도 모두 해에게 포섭되듯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성내는 일을 없애고 조복하려고 하지만 있는 언설이 모두 법륜이니, 법계에 대하여 차별을 짓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성을 내는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공용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여 그 중생들의 갖가지 성을 내는 행을 따르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면서도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지금 현재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성을 내는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의요(意樂)에 따라 갖가지의 문자와 언어로써 방편을 쓰고 연설을 하되 그의 성내는 행의 맨 끝 가장자리[邊際]를 얻지는 못하나 이 보살의 지혜와 변재(辯才)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잘 말하여 이와 같은 성을 내는 행의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癡行伏藏]이라 하느냐 하면, 전득아, 모든 보살들의 이러한 행은 심히 어려운 일이 되느니라. 모든 중생으로서 미혹한 행을 따르는 이와,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이와, 무명(無明)의 태와 알에 둘러 쌓여 있는 이와, 누에가 고치에 있는 것같이 스스로 얽매여 있는 이와,
법계 안에서 방편이 없는 이와, 해야 할 행을 잘 관찰하지 않는 이와, 나라는 소견에 집착한 이와, 삿된 도를 행하는 이와, 우둔한 행에 머무는 이와, 벗어나기 어려운 이 등, 이러한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처음 발심(發心)할 때부터 큰 가행(加行)을 일으키되 고달파하지도 않고 또한 게으르지도 않는 것이니라.
그리고 생각하기를, ‘어떠한 인연과 어떠한 수승한 견해[勝解]로써 어떻게 설법을 하여야 이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의 행에 들어가서 해탈을 얻게 할까?’라고 하느니라.
보살은 옛날 법계를 잘 관찰한 까닭에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대비(大悲)에 머무르고, 그 중생이 법계의 미혹된 것을 안 뒤에는 감당할 만한 힘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모두 조복되게 하면서도 역시 ‘나는 지금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옛날에 서원한 힘으로써 연기(緣起)를 잘 관찰하여 저절로 백천의 법문을 연출하면서 중생의 무명의 업행(業行)을 끊어 없애고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용한 의사는 많은 병을 잘 치료하는데 먼저 의학의 방술과 여러 이론을 모두 익혔으므로 병의 모양을 보기만 하면 분명히 알며, 주문이나 약으로 시술하기만 하면 낫지 않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여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저 어리석은 행을 쌓은 중생들을 위하여 그의 근성(根性)에 따라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면서 모두 다 분명히 알게 하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연기(緣起)를 잘 관찰하면서 이러한 어리석은 행을 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그 근성과 욕망에 따라 갖가지의 문자와 언어로써 교묘하게 연설하며 그의 어리석은 행의 맨 끝 가장자리를 얻지는 못하나 이 보살의 지혜와 변재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온갖 법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교묘하게 연설하여 이와 같은 어리석은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이와 같은 행을 끊기 위하여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等分行伏藏]이라 하느냐 하면, 비유하면 마치 4면으로 된 거울이 맑고 밝아서 아무런 때도 끼지 않은 것을 네거리에다 걸어 놓으면 대하는 색상(色像)마다 모두가 그 안에 나타나면서 더하거나 덜함도 없고, 그리고 이 밝은 거울은 역시 ‘나는 이 갖가지의 색상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나 밝게 잘 닦아진 거울이기에 온갖 모양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법계의 거울을 밝게 잘 닦았기에 공용이 없는 삼매[無功用三昧]에 머물러서 모든 중생의 마음이 작용하는 차별에 따라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여 모두가 분명히 알게 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면서 법의 모양과 중생의 모양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법계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이 네 가지 행과 상응하는 중생에 대하여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서 그의 근성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법계와 중생의 세계에 대하여 두 모양이 없음을 사실대로 관찰하나니, 그러한 법계와 중생의 세계가 둘도 없고 차별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기 때문이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허공은 갖가지의 차별된 모양도 없고 건립함도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여 온갖 법을 분명히 알고 한 모양[一相]에 들어가며 또한 옛날의 서원의 힘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행을 따라 갖가지로 설법하면서도 법계에 대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전득아, 이 똑같이 나눈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관찰하여 모두를 다 분명히 아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용한 의사는 병을 알고 약을 주는 것처럼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갖가지로 설법을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그들의 뜻함과 좋아함에 따라 갖가지의 언사로써 교묘하게 연설하며, 그의 모든 행의 맨 끝의 가장자리를 얻지는 못하나 보살의 지혜와 변재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잘 말하여 이와 같은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0. 무진복장회(無盡伏藏會) ①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천 인과 함께 계셨으니, 모두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여 사자후(師子吼)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보살마하살도 5백 인이 있었으니 모두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었고 말 재주가 걸림이 없었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였고 불퇴전의 지위[不退轉地]에 머물렀으며, 모든 삼매(三昧)를 갖추었고 신통에 유희하였으며, 중생들의 마음의 작용[心行]과 나아가는 바를 잘 알았다
그 명호는 일당(一幢)보살․월당(月幢)보살․보광(普光)보살․월왕(月王)보살․조고봉(照高峰)보살․비로자나(毘盧遮那)보살․사자혜(師子慧)보살․공덕보광(功德寶光)보살․일체의성(一切義成)보살․성취숙연(成就宿緣)보살․성취원행(成就願行)보살․공혜(空慧)보살․등심(等心)보살․희애(喜愛)보살․낙중(樂衆)보살․전승(戰勝)보살․혜행(慧行)보살․전득(電得)보살․승변(勝辨)보살․사자후(師子吼)보살․묘언음(妙言音)보살․능경각(能警覺)보살․교전행(巧轉行)보살․적멸행(寂滅行)보살 등 이러한 보살마하살들이 상수(上首)였다.
또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사바세계의 주인[娑婆世界主]과 범천왕(梵天王)과 큰 위덕이 있는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 이러한 한량없는 여러 대중들이 함께 있었다.
그때에 전득(電得)보살이
모든 대중들이 고요하고 청정하며 큰 용상(龍象)들이 모두 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조그마한 의심이 있어 이제 묻고자 하오니, 여래께서는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전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응공․정등각은 네가 거리낌 없이 묻는 바를 너에게 말하여 줄 것이니라.”
전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떤 법을 성취하면 중생들의 온갖 소망을 만족시킬 수 있고 모든 허물에 물들어 집착되지 않으며, 그 근성(根性)에 따라 방편으로 인도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기필코 평등함을 증득하여 세간에 있으면서 물듦 없음이 마치 연꽃과 같으며, 법계(法界)에 동요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노닐며, 항상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색신(色身)을 보지 않으며, 3해탈(解脫)에 머무르고 정위(正位)에 들지 않으며 중생의 욕망에 따르고 부처님 국토를 엄정(嚴淨)하게 하며 찰나 동안에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나이까?”
그때에 전득보살마하살은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물었다.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이여
그지없이 아시고 보시는 분이라
공통한 법[共法]에 편히 머무르면서
모든 세간을 이익되게 하나이다.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보시고
세간의 의지처가 되어 주시며
모든 삿되고 바른 길을 보이시어
필경에는 안락하게 하시옵니다.
수승한 공덕을 쌓고 모음이
마치 보배의 무더기와 같으며
세간에서 지혜의 태양이시고
삼계에서 공양 받을 만한 높은 분이시옵니다.
원컨대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어
보살의 도를 성취하게 하소서.
얼굴의 모습은 둥근 달과 같으시고
사마타(奢摩他)를 두루 갖추셨나이다.
고요한 법을 열어 보이시어
모든 번뇌를 없애 주시니
원컨대 보살의 행을 말씀하시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소서.
부처님의 세계와 수명(壽命)과
색신(色身)과 권속이며
3업(業)과 모든 법이
다 청정하시나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청정한 보살의 행을 말씀하여 주소서.
어떻게 악마를 항복받으며
어떻게 설법하나이까?
어떻게 하면 가르침을 잊지 않나이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널리 말씀하소서.
어떻게 하면 용맹스레 정진한 이가
두루 나고 죽는 데에 들어가서
한 모양[一相] 안에 편히 머무르고
법에서 항상 동요함이 없게 되나이까?
어떻게 모든 부처님 처소에
친근하게 공양을 하며
항상 부처님의 색신을 살피면서
마침내는 모든 모양을 여의겠나이까?
비록 3해탈을 증득하여
마치 새가 허공을 나는 것 같다 하더라도
아직 모든 공덕을 갖추지 못하면
끝내 열반에 들지 못하나이다.
모든 근성(根性)과 욕망을 알아
두려울 것이 없음에 수순하게 하고
또한 염착을 내지 않고
그 중생을 성숙시키며
먼저 세간의 즐거움을 베푸시고
그 뒤에 청정한 마음을 내게 하나이다.
수승한 지혜를 두루 갖추시고
최상의 보리를 증득하셨으니
이와 같이 깊고 묘한 이치를
원컨대 여래께서는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전득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선남자야, 부처님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물어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며, 현재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미래 세상의 모든 보살들을 잘 섭수(攝受)하는구나. 그러므로 전득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야 한다. 너를 위하여 말해 주리라.”
전득보살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전득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 복장[五伏藏]과, 대복장(大伏藏)․다함 없는 복장[無盡伏藏]․변무진복장[遍無盡伏藏]․끝이 없는 복장[無邊伏藏]이 있으니, 보살이 이와 같은 복장을 두루 갖추면 영원히 빈궁함을 여의고 곧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며 조그마한 공력(功力)으로써도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탐애하는 행의 복장[貪行伏藏]이요, 성을 내는 행의 복장[瞋行伏藏]이며, 어리석은 행의 복장[癡行伏藏]이요,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等分行伏藏]이며, 모든 법의 복장[諸法伏藏]이니라.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탐애하는 행의 묻힌 갈무리라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이 탐애(貪愛)하는 행과 상응하면 뒤바뀌고 얽매여서 행의 모든 모양에 따라 갖가지로 분별하면서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 등의 모든 경계 안에서 집착함이 견고하고 즐겨 빠지며[耽樂] 혼미하게 되나니, 보살은 그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그 모든 중생은 원하고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느 경계에 물들고 익히면서 더욱 강성한가? 어떠한 신해(信解)를 두루 갖추고 성취하였는가? 옛날에 일찍이 어떠한 선근을 심었는가? 어느 승(乘) 가운데서 장차 나아갈 수 있겠는가? 지니고 있는 선근은 오래 전에 성숙되어 있는가?’ 하는 등을 여실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의 온갖 욕심을 끊게 하기 위하여 그 착한 마음이 언제나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자세히 관찰하면서 치료하여 주어야 하느니라.
전득아,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의 근기와 행은 서로 달라서 알기 어려우므로 성문과 벽지불로서도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거늘 하물며 모든 범부와 외도이겠느냐?
그러므로 전득아, 혹 어떤 중생은 비록 모든 욕심에 집착한다 하더라도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잘 성숙시키는가 하면, 혹 어떤 중생은 겨우 음욕의 경계에 접촉하기만 하면 혹은 염심(染心)으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곧 위없는 명탈(明脫)이 성숙되며, 혹 어떤 중생은 예쁜 여색(女色)을 보면 마음에 음욕의 염심을 내지만 그 빛깔이 변하고 무너지면 이내 깨달아 알면서 음욕의 괴로움이 문득 쉬고 깊이 덧없음을 생각하며 곧 위없는 명탈이 잘 성숙되느니라.
혹은 또 어떤 중생은 비록 여인을 보고도 탐착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뒤에 생각하면서 염심을 일으켜 그의 형용을 상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혹 어떤 중생은 꿈속에서 뜻에 맞는 여색을 보고 마음에 탐착을 내어 생각을 두면서 추구(追求)하게 되며,
혹 어떤 중생은 여인의 음성을 듣고 탐애를 내었다가 어느 때에 잠시 그를 보고는 탐하던 마음을 여의면서 곧 위없는 명탈이 성숙되나니, 그러므로 전득아, 보살은 이 갖가지의 탐애에 관한 병과 탐애에 대한 약을 교묘히 잘 알 것이며, 법계(法界)에는 두 모양[二相]이 없으므로 이 법계에 미혹된 중생에 대하여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전득아, 탐애하고 성을 내고 어리석은 것과 법계의 지혜[法界智]는 조그마한 법도 얻을 만한 것이 없나니,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보는 바와 같은 이 모든 중생은 이 모양이 없고 제 성품[自性]이 공하고 고요하고 붙인 이름[假名]으로 시설하여 있는 화합된 법 가운데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것을 여실하게 관찰하여 그 미혹되고 탐욕 있는 중생에 대하여 대비(大悲)에 머물러서 옛 서원을 원만하게 하고 법계에서 동요하지 않으면서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로써 성숙시켜야 한다.’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장부가 저 여인에 대하여 망령되이 청정하다는 생각을 내면서 무거운 탐염(貪染)을 일으키면 보살은 곧 단정하고 예쁘면서 색상(色相)이 구족하고 값진 보배와 영락의 갖가지로 장엄하여 마치 옛날에 본 적이 없는 천녀(天女)와 같은 여인의 몸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 중생에 따라 그로 하여금 애착하게 하다가 지극히 탐하고 사랑한 뒤에는, 그가 감당할 수 있음을 헤아리면서 방편을 써서 그 탐욕의 독화살을 뽑아 주고는 자재(自在)한 힘으로써 도로 여인의 몸으로 변하여 그 사람의 앞에 나타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법계를 통달하게 하고는 이내 없어지면서 보이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여인이 그 장부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보살은 곧 그를 위하여 장부의 몸으로 나타나서 나아가 그의 탐욕의 독화살을 뽑아 주고 그를 위하여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법계에 들어가게 하고는 이내 없어지면서 보이지 않느니라.
전득아, 이 모든 탐애하는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공용이 없는
지혜로 한량없는 억천의 법문을 내어서 중생들을 깨우쳐 주어 모두가 해탈하게 하느니라. 그러나 역시 ‘나는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설법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중생으로서 해탈을 얻은 이도 없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무열용왕(無熱龍王)이 그의 업의 힘[業力] 때문에 그 궁전 안에서 네 개의 큰 강물[四大河]을 내어 모든 중생으로서 물이나 뭍에 머무는 이들을 위하여 여름철의 뜨거운 고뇌에서는 시원하게 하여 주고 꽃과 열매를 윤택하게 하며, 5곡(穀)을 알차게 하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면서도 그 용왕은 ‘나는 지금 이 강물이 흘러나오게 한다. 이미 흘러나오게 했다. 장차 흘러나오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네 개의 강물은 항상 스스로 가득히 넘쳐흐르면서 중생의 소용이 되어 주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옛날의 서원을 성취하여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해설하고 온갖 나고 죽는 뜨거운 고뇌를 없애주며, 두루 인간과 천상에 거룩한 해탈의 쾌락을 베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 보살은 역시 ‘나는 지금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절로 운행하는 대비(大悲)의 마음에 머물러 중생을 관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바를 따라 설법하느니라.
또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제석(帝釋)에게 있는 12나유타(那由他)의 모든 천녀(天女)들에게 그 제석의 자재한 힘 때문에 여러 몸을 나타내어 모든 천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욕락(欲樂)에 모두 만족함을 얻게 하므로 저마다 생각하기를, ‘지금 나 혼자만이 제석과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고 하나, 이 제석은 실로 물든 바가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으로서 제도해야만 할 이에게는 그의 의요(意樂)에 따르면서 성숙되게 하지만 그러나 이 보살은 역시 물들어 집착함이 없느니라.
다시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해가 산봉우리에 떠오를 때에 광명이 염부제를 두루 비추면서 비추어진 곳은 청․황․적․백의 갖가지 형색으로 모두 다 나타나지만,
그 햇빛은 하나의 빛깔이요 하나의 광명이어서 차별된 빛깔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의 해가 법계를 비추면서 중생에게 반연하는 것이 한 모양이라 그 의요(意樂)에 따르면서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두 모양[二相]이 없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탐애하는 행의 복장[貪行伏藏]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혹은 1겁 아니 1겁이 지나도록 모든 중생의 갖가지 의요를 따라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면서 갖가지의 언사(言詞)로써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역시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또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순금이 공업(工業)의 힘으로 말미암아 뜻대로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갖가지의 영락과 장엄구들은 그 모양이 저마다 다르지만 금의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면서 모든 중생의 갖가지의 의요를 따라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갖가지의 언사로써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지만, 그러나 법계에는 역시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이것이 항상 법계의 한 모양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은 이와 같이 복장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로 설법할 수 있고, 그들은 법을 들은 뒤에 그지없는 거룩한 재물[聖財]을 두루 풍부하게 갖추게 되므로 생사(生死)에서의 곤궁함을 영영 끊게 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성을 내는 행의 복장[瞋行伏藏]이라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들이 교만과 상응하여 나와 내 것을 헤아리면서 자기와 다른 이의 모양에 머물러 오랜 옛적부터 오면서 자비와 인욕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내는 뜨거운 번뇌로 자기 자신의 그 마음을 무너뜨리며, 불․법․승을 기억하지 않고 성을 내는 독에 가려져서 법에 미혹되어 있느니라.
보살은 그 성을 많이 내는 중생에 대하여 끝내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지 않으면서 오직 생각하기를,
‘기이하게도 중생이 어리석어서 미혹되어 있구나. 모든 법의 본래 성품은 고요하여 때가 끼거나 흐림도 없고 어울림도 없고 어기거나 다툼도 없는 멀리 여읜 법 가운데서 뒤바뀜과 상응하여 망령되이 성을 내고 한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할 뿐이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머물러서 언제나 스스로 간절한 생각을 지니며, 설령 그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는 일이 있다 하여도 성내는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인욕에 편안히 머무느니라. 만일 그 한량없이 성을 내는 중생들이 서로 어기면서 마음에 성을 내고 원한을 품으면 이 업(業)이 이루어진 뒤에는 반드시 독사 같은 나쁜 갈래에 떨어질 것이므로, 인욕에 머무는 보살은 인자한 생각의 힘으로써 이런 중생들을 교화하여 나쁜 갈래의 과보를 받지 않게 하고 반드시 평등함을 증득할 수 있게 하여야 하리니, 이것을 보살이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의 성을 내는 행을 없애 주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전득아, 보살이 만일 성내는 중생들을 보면 생각하기를, ‘모든 법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거늘 이 모든 중생들이 모양을 따르면서 행하고 망령되이 분별을 내면서 이 평등하고 어김이 없는 법 가운데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있다. 저 모든 중생들은 법계의 성품을 분명하게 몰라서이니, 만일 이 중생이 법의 성품을 본다면 끝내 다른 이에게 분을 내거나 성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법계의 본래 성품을 분명하게 모르는 까닭이니, 이 때문에 성을 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니라.
보살은 저 성을 많이 내는 중생들에 대하여 갑절 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대비(大悲)에 머무를 것이며, 옛날의 서원을 원만하게 이루면서 공용이 없는 지혜[無功用智]로써 중생들의 성내는 행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갖가지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되, 역시 ‘나는 중생의 성내는 일을 없애기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법계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에 편히 머물러서 번뇌의 행을 없애는 것이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어둠을 제외하고서 광명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어둠을 제거시키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와 같은 어둠과 광명의 성품은 모두가 허공과 같아서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지혜에 의거하여 교묘한 설법으로 갖가지 성을 내는 중생을 꺾어 없애지만 법계에 대하여 차별을 짓지 않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해에서 나오는 광명이 비추는 곳은 달라도 모두 해에게 포섭되듯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성내는 일을 없애고 조복하려고 하지만 있는 언설이 모두 법륜이니, 법계에 대하여 차별을 짓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성을 내는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공용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여 그 중생들의 갖가지 성을 내는 행을 따르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면서도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지금 현재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성을 내는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의요(意樂)에 따라 갖가지의 문자와 언어로써 방편을 쓰고 연설을 하되 그의 성내는 행의 맨 끝 가장자리[邊際]를 얻지는 못하나 이 보살의 지혜와 변재(辯才)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잘 말하여 이와 같은 성을 내는 행의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癡行伏藏]이라 하느냐 하면, 전득아, 모든 보살들의 이러한 행은 심히 어려운 일이 되느니라. 모든 중생으로서 미혹한 행을 따르는 이와,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이와, 무명(無明)의 태와 알에 둘러 쌓여 있는 이와, 누에가 고치에 있는 것같이 스스로 얽매여 있는 이와,
법계 안에서 방편이 없는 이와, 해야 할 행을 잘 관찰하지 않는 이와, 나라는 소견에 집착한 이와, 삿된 도를 행하는 이와, 우둔한 행에 머무는 이와, 벗어나기 어려운 이 등, 이러한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처음 발심(發心)할 때부터 큰 가행(加行)을 일으키되 고달파하지도 않고 또한 게으르지도 않는 것이니라.
그리고 생각하기를, ‘어떠한 인연과 어떠한 수승한 견해[勝解]로써 어떻게 설법을 하여야 이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의 행에 들어가서 해탈을 얻게 할까?’라고 하느니라.
보살은 옛날 법계를 잘 관찰한 까닭에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대비(大悲)에 머무르고, 그 중생이 법계의 미혹된 것을 안 뒤에는 감당할 만한 힘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모두 조복되게 하면서도 역시 ‘나는 지금 설법한다. 이미 설법하였다. 장차 설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옛날에 서원한 힘으로써 연기(緣起)를 잘 관찰하여 저절로 백천의 법문을 연출하면서 중생의 무명의 업행(業行)을 끊어 없애고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용한 의사는 많은 병을 잘 치료하는데 먼저 의학의 방술과 여러 이론을 모두 익혔으므로 병의 모양을 보기만 하면 분명히 알며, 주문이나 약으로 시술하기만 하면 낫지 않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여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저 어리석은 행을 쌓은 중생들을 위하여 그의 근성(根性)에 따라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면서 모두 다 분명히 알게 하느니라.
전득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연기(緣起)를 잘 관찰하면서 이러한 어리석은 행을 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그 근성과 욕망에 따라 갖가지의 문자와 언어로써 교묘하게 연설하며 그의 어리석은 행의 맨 끝 가장자리를 얻지는 못하나 이 보살의 지혜와 변재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온갖 법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교묘하게 연설하여 이와 같은 어리석은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이와 같은 행을 끊기 위하여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의 어리석은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또 전득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等分行伏藏]이라 하느냐 하면, 비유하면 마치 4면으로 된 거울이 맑고 밝아서 아무런 때도 끼지 않은 것을 네거리에다 걸어 놓으면 대하는 색상(色像)마다 모두가 그 안에 나타나면서 더하거나 덜함도 없고, 그리고 이 밝은 거울은 역시 ‘나는 이 갖가지의 색상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나 밝게 잘 닦아진 거울이기에 온갖 모양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법계의 거울을 밝게 잘 닦았기에 공용이 없는 삼매[無功用三昧]에 머물러서 모든 중생의 마음이 작용하는 차별에 따라 백천의 법문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여 모두가 분명히 알게 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면서 법의 모양과 중생의 모양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법계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이 네 가지 행과 상응하는 중생에 대하여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서 그의 근성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법계와 중생의 세계에 대하여 두 모양이 없음을 사실대로 관찰하나니, 그러한 법계와 중생의 세계가 둘도 없고 차별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기 때문이니라.
전득아, 비유하면 마치 허공은 갖가지의 차별된 모양도 없고 건립함도 없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계를 잘 관찰하여 온갖 법을 분명히 알고 한 모양[一相]에 들어가며 또한 옛날의 서원의 힘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행을 따라 갖가지로 설법하면서도 법계에 대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전득아, 이 똑같이 나눈 행은 2만 1천이요 그리고 그 모든 행은 8만 4천이니, 보살은 관찰하여 모두를 다 분명히 아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용한 의사는 병을 알고 약을 주는 것처럼 공용이 없는 지혜로써 갖가지로 설법을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 복장을 증득한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1겁 또는 1겁이 지나도록 그들의 뜻함과 좋아함에 따라 갖가지의 언사로써 교묘하게 연설하며, 그의 모든 행의 맨 끝의 가장자리를 얻지는 못하나 보살의 지혜와 변재 또한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법계의 차별이 없는 모양을 잘 말하여 이와 같은 똑같이 나눈 행의 복장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728x90
반응형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622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85권 (2) | 2024.01.21 |
---|---|
[적어보자] #3621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84권 (2) | 2024.01.21 |
[적어보자] #3619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82권 (0) | 2024.01.20 |
[적어보자] #3618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81권 (0) | 2024.01.20 |
[적어보자] #3617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80권 (0) | 2024.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