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09권
대보적경 제109권
수(隋) 천축(天竺) 삼장 사나굴다(闍那崛多) 한역
송성수 번역
39.현호장자회(賢護長者會) ①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王舍) 큰 성의 가란타장자 죽원(迦蘭陀長者竹園)에서 모든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할 일을 다 마치고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이들로서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그 대중의 으뜸이었다. 이때에 그 모든 비구는 세존을 에워싸고 법을 듣고 받으려 하였으며 몸과 마음이 조순(調順)하여 잠드는 일이 없었다. 바로 그때 여래․세존의 얼굴빛이 아침해에 갓 핀 연꽃처럼 단정 엄숙하고 환히 빛났으며 빙그레 웃으면서 기뻐하셨으므로 모든 비구들은 ‘지금 바가바(婆伽婆)께서는 어떠한 법문을 말씀하려 하시기에 얼굴 모습이 저렇게도 빛나고 환하실까’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가장 큰 거부(巨富)요, 상인의 우두머리[商主]인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발다라파리(跋陀羅波梨)수(隋)나라 말로는 현호(賢護)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천 명의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위력이 마치 대지(大地)를 진동시킬 듯하였는데 의젓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서 세존 앞을 향하여 왔다. 그때 장자의 아들 현호(賢護)는 전생에 지은 복의 인연으로 하늘들이 누리는 과보를 받았으며, 몸은 부드럽고 연하여 마치 갓 나온 어린 꽃가지와 같았다. 부처님께 와서 여래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묘한 용모와 고요하고 맑고 안정된 공덕이 간직한 몸이 마치 금나무의 광명처럼 빛나고 번쩍거리면서 대나무 숲[竹林]에 두루 가득 찬 것을 자세히 살펴보며 있었다.
이때 현호는 곧 부처님께 청정한 신심(信心)을 내면서 합장하고는 ‘세간 안에
큰 명문(名聞)을 얻으셔서 살바야(薩婆若)요,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아라하(阿羅訶)․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하시더니, 헛된 말이 아니라 진실이로구나’라고 생각한 뒤에 곧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였다. 그리고 나서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일심으로 고개 들고 세존을 자세히 보면서 눈을 잠시도 깜박이지 않았다. 이렇게 여래를 우러러보고 있을 때 그의 몸은 엄연(儼然)하여 기울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때 세존은 발다라파리 장자가 마음속으로 이와 같이 간절히 우러르는 것을 보시고 다시 몸에서 묘한 광명을 내시니, 광명이 비출 때에 그 발다라파리 장자는 곧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얻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다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는 길게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가엾이 여겨 주소서.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에게 가르쳐 보이소서. 큰 성인이신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 곁에서 신심을 낸 지 오래지 않았사오니, 저를 위하여 현재의 일을 좇으면서 한 법문만이라도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지금 간절히 우러르면서 모든 법을 듣고 싶어하나이다. 나고 죽는 가운데서 번뇌에 핍박받아 의혹이 많이 있고 마음은 항상 분별하고 있나이다. 가엾이 여기셔서 설법을 하시어 저로 하여금 의혹을 끝내 끊게 하소서. 큰 성인이신 세존이시여, 저는 바른 지견[正知]이 없기 때문에 미혹하여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번뇌의 나루를 벗어날 줄 모르나이다. 오직 큰 성인 세존께서는 바로 일체지(一切智)시라 세간에서 희유함은 마치 여의주(如意珠)와 같으시니, 모든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시어 성취하게 하시기 때문이옵니다. 또 세존께서는 부모와 같으셔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좋은 과보를 얻게 하는 바로 그 근본이시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발다라파리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발다라파리야, 만일 의심이 있으면 이제 너 마음대로 물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분별하며 해설하여 주리라.”
그때 발다라파리 장자는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기뻐하면서 마음에 의심난 것을 묻고자 곧 일어나서 물러나 한 쪽에 가 섰다. 한쪽으로 가 선 그의 몸의 위엄과 광명이 너무나도 원만하고 구족하였다.
그때 장로 아난 비구가 그를 보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장자의 아들 발다라파리는 몸의 광명과 덕의 힘이 그 어떤 왕의 위덕보다 훌륭하오며 뛰어나고 절묘하여 무리에서도 출중하고 단정하여 사랑 할만 하나니 세간 안에서는 짝할 이가 없겠나이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장로 아난아, 너는 이제 이 발다라파리 장자의 집안에 있는 모든 즐거운 일들을 듣고 싶으냐. 그 즐거움을 누리는 과보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하여 주리라. 설사 도리천(忉利天)의 제석천왕이라 하더라도 미칠 수가 없겠거늘 하물며 이 중생이겠느냐. 이 염부제에서 그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옳지 못한 일이니라. 다만 장자의 사내아이 소마부지(蘇摩浮抵)수(隋)나라 말로 진월(眞月)이라 한다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느니라.”
그때 아난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이 발다라파리 장자의 집안에 무슨 훌륭함이 있기에 세존께서는 그렇게도 칭찬하시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장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이 장자 아들이 지니고 있는 자재(資財)와 선근은 너무도 넓고 크나니,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차례로 말하리라. 아난아, 이 장자의 아들에게는 무릇 6만이나 되는 최대의 거상(巨商)들이 항상 그의 뒤를 따랐으며, 그 모든 거상들은
저마다 한량없는 기이한 재보를 지니고 있어서 부유하고 풍요로우니라. 그 발다라파리의 집안에는 항상 사방과 위와 아래에 으뜸가고 묘하게 만든 6만 개의 평상과 와탑(臥榻)이 펼쳐져 있고 여러 색깔이 섞인 상보로 그 위를 덮었으며, 다시 아주 진한 붉은 색이 섞인 비단으로 안석과 비게가 만들어졌고, 그 양 곁에는 여러 색깔이 섞인 예쁜 천과 교사야(憍奢耶) 등이 있으며 곳곳마다 일제히 네 가지의 제구가 있느니라. 또 화완포(火浣布)와 삼․모시 등등 사방의 토지에서 나오는 갖가지 의복과 여러 가지 기이한 물건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그 집을 장엄하였고, 그들의 모든 의상(衣裳)은 부드러워서 마치 손바닥처럼 깨끗하고 윤기가 났으며, 그 집안 곳곳에는 진주와 영락을 두루 갖추어 매달아 놓고 장식으로 삼았느니라. 또 6만의 채녀(婇女)들은 단정하고 뛰어나게 잘 생긴데다 살결은 곱고 매끄러웠으며 실없이 웃지도 않고 하는 말은 묘하며 자태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뜻을 잘 맞추었으므로 성을 냈던 이들도 그들을 보기만 하면 저절로 기뻐하였고, 근심과 걱정이 있던 사람도 그들을 만나기만 하면 이내 위안이 되었으며, 그들의 우스갯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트이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효행이 있고 유순하였느니라. 자기 남편을 우러르면서 아내로서 예절을 완전히 갖추었고, 다른 남자에 대하여는 음욕의 마음을 여의었으며, 혹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면서 합장하고는 눈썹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몸을 굽히면서 공경하였고, 오로지 그의 남편만을 향하면서 딴 데는 돌아보는 일이 없었느니라. 이따금 저마다 그들의 남편을 유달리 사랑한 까닭에 마음에 질투를 내고 서로 싸우고 혐오하면서 눈썹을 찌푸리고 코를 찡그리는 것이 마치 굽은 갈고리 같았으나 이것을 핑계로 삼아 장난을 하는 것이요 실은 질투하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손톱은 가늘면서 길고, 손가락 마디는 둥글면서 곧았으며, 복사뼈와 팔목은 세밀하게 생기어 간드러진 몸매를 지녔으며, 요염한 맵시로 뒤돌아보면서 걸음을 조용히 걸었고, 행동 거지는 몸을 뒤틀면서 아양을 부렸으며, 머리칼은 감청색(紺靑色)이면서 부드럽고 윤기가 흘렀으며 머리를 땋고 빗질한 교묘한 솜씨는 남을 놀라게 하고 유혹 할만 하였느니라.
이러한 모든 채녀들 가운데는 시중을 들거나 몸을 기대거나 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모든 채녀들은 모두가 오로지 자기 남편만을 받들었으므로 청정한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 채녀들은 최대의 종성(種姓)을 자랑하는 터라 그들의 집안에 있을 때에도 평판이 좋았으므로 다 같이 대갓집으로 시집가게 되었느니라. 이와 같은 갖가지 장엄을 갖춘 장자 현호의 집안은 헤아릴 수도 없이 크고 넓었느니라. 또 그 장자가 음식을 먹으려 할 때에는 6만 가지나 되는 국과 밥 등의 진수성찬이 나왔는데 마치 천상의 주방과 똑같았으며, 그 밥은 전부 쌀밥이고 빛과 맛이 뛰어나서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추었느니라.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내 녹아버리고, 먹은 뒤에는 속이 갑갑하지 않고 시원해졌으니, 그가 받는 과보는 마음에 맞도록 저절로 이르렀으며, 또 먹고 나면 몸에 빛이 나고 가뿐해지면서 모든 악취가 없어졌느니라. 또 그 장자의 집안에는 6만 대의 수레가 있었는데 수레마다 갖가지 진기한 장식품을 장엄하였고, 진주를 위아래에 똑같이 사이사이에 섞어 넣었으며, 모든 예쁜 천으로 그 위를 덮었느니라. 또 향과 꽃을 저마다 널리 흩어 놓았고 땅에는 물을 뿌려서 먼지가 없었으며 청정하면서 윤이 났느니라. 또 그의 집안에는 다시 온갖 최상의 음악이 울렸는데 손으로 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타기도 하며 입으로 불기도 하는 등 그 음향들은 미묘하여 거의 신비한 경지에 이르렀고, 노래와 곡조가 맞아들어 어울림은 마치 집비둘기들이 내는 소리와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고 듣기 좋았으니, 이와 같이 미묘한 것들로 그 집을 장엄하였느니라. 또 그의 집안에 있는 동산의 숲과 나무들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고, 화초들은 사이사이에 섞여서 붉고 선명함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 나무와 숲 사이에는 새들이 저마다 낭랑하게 우짖는데 그 지저귐은 온화하고 청아하여 마치 천상의 궁전과 같으며 수미산의 뭇 보배를 한데 합쳐 놓은 것 같고 용이 사는 굴과도 같으니라.
또 온갖 등불을 켜 놓았는데 그
등불의 광명은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이 곳곳마다 환히 빛나서 밤에도 낮과 다르지 않느니라. 또 그의 집의 소유인 성(城)이 나라 안에 6만 개나 있는데 그 성에는 각각 길과 거리가 맞닿아 있고, 적을 물리치는 망루(望樓)가 두루 갖추어져 있으며, 그 성의 곳곳에는 각국의 장사문들이 왕래하고 모이면서 언어로 진기한 보물과 재화(財貨)들을 서로 사고 팔면서 교환하느라 와글거리는 시장을 이루고 있나니, 그 백천만의 대중은 헤아릴 수조차 없느니라. 또 그 성의 사방 둘레에는 동산이 있고 수백천 종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꽃과 열매가 흐드러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므로 벌떼들이 다투어 날아와서 그 향기와 맛에 취하고 있으며, 또 그 모든 성에는 코끼리와 말과 수레들이 많이 있느니라.
아난아, 그 성안에 있는 모든 큰 부자인 장자와 거사 거상과 장사꾼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두 함께 발다라파리가 지닌 공덕을 찬탄하면서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칭송하거늘 하물며 그의 명문(名聞)이겠느냐. 마음으로 모두가 그를 만나보기를 원하고 있느니라. 또 그 나라의 임금 파사닉왕(波斯匿王) 조차도 발다라파리 장자가 지닌 재보의 풍부함과 형세와 복덕을 보고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겸손해 하였으니 마치 가난한 사람이 그의 재보를 부러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그리고 저 장자의 동자 진월(眞月)에게는 매양 끼니때가 되면 천 가지나 되는 진귀한 음식이 아침저녁마다 좌우에 바라는 대로 저절로 차려지느니라. 또 5천의 채녀들이 그를 에워싸고 받들어 섬기며 재미있게 즐기느니라.
아난아, 장자의 동자 진월이 받게 되는 쾌락을 제석천왕에게 비교하여도 천 배나 더 나으며, 발다라파리의 형모와 얼굴빛과 창고와 재보며 받는 쾌락의 과보에 견주어도 백 배 더 나으며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또 아난아, 이 발다라파리 장자에게는 탈의(奪意)라 하는 묘한 수레가 있는데, 미묘하고 곱고 정교하게 생겨서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느니라. 이 수레 안에는 하늘의 보배자리[天寶座]가 있으며, 그 수레는 순전히 하늘의 모든 보배를 사이사이에 섞어서 장식하였고, 그 모든 하늘보배인 마노(馬瑙)와 금강(金剛)과 진주(眞珠)와 진기한 조개에서 나오는 번쩍거리는 광명은 마치 허공에 별이 장엄한 것과 같나니, 수레가 다닐 때에는 신속하기가 마치 바람과 같았느니라.
아난아, 발다라파리가 수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바다 안으로 가서 값진 보물을 캐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의 뜻대로 이내 가서 이르며, 즐거움을 다 누린 뒤에 만일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면 그가 마음먹은 대로 이내 와 닿느니라.”
그때 아난은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합장 공경하면서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발다라파리 장자는 옛날에 어떠한 선근을 지었기에 금생에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이옵니까?”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장로 아난아, 네가 알고 싶으면 마땅히 자세히 들어야 하느니라. 이 인연은 모두가 과거 세상에 부처님 곁에서 선근을 심었기에 지금 이렇게 훌륭하고 으뜸가는 과보를 얻은 것이니라.
아난아, 나는 기억하느니라. 옛날에 한 분의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그 명호는 낙광(樂光)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이었느니라.
아난아, 그때 이 발다라파리 장자는 그 부처님 곁에서 성문(聲聞) 비구의 몸이었는데 이름이 법계(法髻)였느니라. 지니는 계율이 완전치 못하고 어김이 많았으면서도 모든 부처님의 교법을 잘 연설하여 남이 아직 듣지 못한 법을 열어 보였던 큰 법사였느니라. 한번 들으면 수다라장(修多羅藏)을 모두 다 지녔고 또한 율장(律藏)도 지니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법요(法要)를 설하였으며, 널리 알면서 능한 변재에 그 의미는 매우 깊었고, 낭랑한 음성으로 남들이 듣기 좋게 하였으므로 법을 들은 이면 기뻐하는 마음을 내었나니, 이로 말미암아 영원한 세상 동안에 다시는 그 어떤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았느니라.
아난아, 그는 이와 같이 법을 보시한 인연 때문에 91겁 동안 항상 천상과 인간에 와 나면서 단정한 몸을 얻고 부귀를 누렸느니라.
아난아, 이 장자의 아들이 얻게 된 묘한 수레의 과보를 다시 너를 위하여 차레로 설하겠느니라.
아난아, 발다라파리 장자는 그 낙광 부처님의 세상에서 법사로 있을 때에 모든 범행으로 계율을 지니는 비구가 파리해지고 힘이 약하여 견디지 못한 것을 보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모두 다 보시하였고, 다시 신과 버선과 가죽신 등의 물건을 만들어서 기쁘게 베풀어 주었나니, 이 공덕으로 인하여 지금 묘한 수레의 뜻대로 되는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또 아난아, 옛날에 명호가 가섭(迦葉)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는 부처님이 계셨느니라. 그때 그 부처님은 이 장자에게 말씀하시되 ‘미래 세상에 명호가 석가모니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는 부처님이 계시리니, 그 부처님 세존께서 너에게 수기를 주시니라’고 하셨느니라.
아난아, 이 발다라파리 장자는 모름지기 내가 가르쳐서 알게 하였느니라.”
그때 아난이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장자의 아들은 이와 같이 부유하고 재산을 많이 쌓아두었으면서도 성품이 유화하고 뽐내지 않으며 5욕(慾)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물들지 않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야 하느니라. 무릇 이 지혜로운 이는 재산과 모든 5욕으로써 마음에 교만을 내지 않느니라. 아난아, 이 장자의 아들은 묘한 법의 인연 때문에 그지없는 온갖 복의 과보를 많이 받는 것이니라.”
그때
발다라파리 장자가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서 의심된 것을 묻고자 곧 일심으로 부처님 앞에 있으면서 길게 무릎 끓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대자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을 섭수 하시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소서. 저는 이제 마음속에 있던 의심을 묻고자 하오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에게 설하시어, 의심을 끊을 수 있게 하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리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발다라파리야, 마음에 있던 의심을 끊어 없애고자 하면 지금이 바로 때이니, 네 마음대로 물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분별하며 해설하여 주리라.”
그때 발다라파리 장자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에게는 신식(神識)이 있는 줄 아옵니다. 이 신식은 마치 보배 상자와 같아서 아직 열지 않았을 때에는 그 안에 어떠한 보배가 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신식의 모양은 어떠하오며 다시 무슨 인연으로 신식이라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사람이 죽으면 손과 다리와 눈이 없어지고, 목숨을 마칠 때에는 모든 감관[根]이 소멸하고 모든 요소[大]가 분리되려 하는데 이 신식만은 어찌하여 이 몸 안으로부터 이동하여 나오게 되나이까?
세존이시여, 이 신식은 다시 어떠한 색(色)이고, 다시 어떠한 체(體)이며, 몸 안에서 어떻게 이 신식이 떠날 수 있나이까? 또 어떻게 이 몸을 버리면서 다른 몸을 이루게 되고, 어떻게 이 모든 요소[大]와 모든 입(入)을 버리고는 다음 세상으로 향하게 되며, 어떻게 저마다 다른 몸을 이루게 되나이까?
세존이시여, 사람이 이제 죽고 나면 미래 세상의 모든 입(入)이 어떻게 따라오게 되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지은 모든 선근이 미래 세상에서 그 과보를 받게 되며, 이미 이 세상에서의 모든 입(入)과 음(陰) 등으로 지었던 선근이 어떻게 다시 뒤의 다른 모든 음(陰) 가운데서 그 과보를 받게 되나이까?
또 어떻게 이 신식이 그곳에서 몸을 얻게 되며, 어떻게 모든 입(入)의 바탕이 그곳을 따르게 되나이까?”
그때 세존께서 장자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발다라파리야, 그렇고 그러하느니라. 네가 물은 것과 같나니, 너는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신식이 가고 오고 옮아가고 소멸하는 것을 말하여 주리라.
발다라파리야, 마치 바람의 요소[風大]가 비록 형색이 없어서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연에 따라 형색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 형색을 나타낸다는 뜻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비유컨대 바람이 불 적에 모든 나무를 움직이고 산과 벽과 물가에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며 춥고 더운 인연을 냄으로써 느낄 수 있느니라. 그러나 그 바람의 자체[體]는 볼 수도 없고 손과 발과 눈 등도 역시 그와 같아서 볼 수가 없으며, 모든 빛깔[色] 위의 더욱더 뛰어난 곳[勝處]인 검기도 하고 혹은 희기도 한 것도 또한 볼 수 없느니라.
발다라파리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의 경계도 역시 그러하여 빛깔[色]로써는 이르지도 않으며, 다만 받아들임[入]과 행[行]하는 것으로 자체를 지어 빛깔을 나타낼 뿐이니, 이 신식의 경계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해서 저 곳에서 이 신식의 경계가 느낌[受]․접촉[觸]이라 이름하는 법계(法界)를 얻는가. 또 어떻게 해서 이 신식의 경계가 이 몸을 버린 뒤에 갈애[愛]와 접촉 등을 받느냐 하면 비유컨대 바람이 향기를 옮기는 것과 같나니, 이 꽃향기는 바람으로부터 불어 알지만 그 바람이 실로 꽃의 향기를 가져온 것도 아니요, 또한 바람이 없는데 꽃의 향기가 온 것도 아니니, 그 향기는 빛깔이 없고 그 바람도 역시 빛깔이 없으며 그가 맡는 향기의 근원도 역시 빛깔이 없느니라.
발다라파리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저 죽은 사람의 신식이 옮아가려 할 때 접촉과 느낌 등의 모든 경계를 지닌 뒤에,
저 세상에서 부모가 화합(和合)한 그런 후에 식이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그 신식이 있기 때문에 곧 느낌이 있고 촉이 있어 화합하여서 이루어짐을 아나니, 마치 훌륭한 사람의 신식이 강하고 수승하기 때문에 향기의 근원이 있으며 향기의 근원이 수승하기 때문에 수승한 향기가 있는 것이니라. 또 두 몸[二身]의 수승함이 있기 때문에 두 일[二事]의 수승함이 있음을 볼 수 있느니라. 두 일이 수승하다 함은 이른바 물질[色]과 접촉[觸]이니 바람이 많기 때문에 꽃의 향기도 역시 많은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신식이 크기 때문에 느낌도 역시 크고, 느낌이 크기 때문에 신식도 역시 크며, 신식이 크기 때문에 모든 경계도 역시 크나니, 그런지라 이것이 선(善)이요 이것이 악(惡)임을 아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이가 화판(畵板)을 잘 만들어 놓은 후에 하고 싶은 대로 모두를 그릴 수 있으며 뜻으로 잘 알기 때문에 색깔에 따라 그릴 수 있지만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만일 색깔이 없으면 색깔을 나타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神識)은 여섯 가지 색신(色身)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눈으로 인하여 모양[色]을 보되 그 온갖 것은 신식의 지혜이니, 눈으로 인하여 모양을 보는 그것은 실로 모양이 없고, 귀로 인하여 소리를 듣는 그것도 역시 모양이 없으며, 코로 인하여 향기를 맡는 그것도 역시 모양이 없고, 혀로 인하여 맛을 아는 그것도 역시 모양이 없으며, 몸으로 인하여 촉감을 깨닫는 그것도 역시 모양이 없고, 뜻으로 인하여 모든 요소[大]가 있는 그것도 역시 모양은 없으며, 온갖 것을 아는 그것도 역시 모양이 없나니, 그 경계 안에도 역시 모양이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렇게 하면서 차례로 이 신식은 모두가 역시 모양이 없는 줄 알아야 하리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그런데 네가 묻기를 ‘이 신식은 어떻게 이 몸을 버리고 저 세상에 이르는가’라고 하는데 발다라파리야, 대저 목숨이 다할 때에는 이 신식은 업(業)이 지니느니라. 이 업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마치 적멸삼매(寂滅三昧)에 들어간 사람이 신식(神識)과 몸[身體] 중에서 몸이 소멸하고 난 다음 신식이 적멸에 들어 머무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은 죽은 사람 곁에서 몸과
모든 요소[大]를 버리며, 버리고 난 뒤에는 오직 기억하는[念] 힘만이 있으면서 ‘나는 바로 저 아무개다’라고 이렇게 알뿐이니라. 무릇 사람이 몸을 버릴 때에는 두 가지의 촉(觸)과 바른 기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바른 기억[正念]이요, 둘째는 촉(觸)이니라.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몸에 두 가지 느낌이 부딪치나니[觸] 첫째는 몸이라는 느낌[身受]이요, 둘째는 기억이라는 느낌[念受]이니라. 죽은 뒤에는 기억에 촉(觸)이 있는 것이니라.
또 네가 ‘신식이라 함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는데, 종자가 있으면 싹을 낼 수 있듯이 지혜로부터 신식이 생기나니, 그것을 곧 기억[念]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요 종자이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느니라. 그런 뒤에는 도리어 촉을 느끼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지혜를 알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느니라. 그 뒤에는 다시 선악을 느끼고 또한 선악의 경계를 잘 알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나니, 마치 종자에서 싹이 나는 것과 같이 그의 몸이 성취되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느니라.
또 발다라파리야, 너는 또 묻기를 ‘이 신식은 어떻게 몸을 버린 뒤에 저 곳으로 향하여 옮아가느냐’라고 하는데 비유하면 마치 거울 속에 몸의 형상이 비치면서 나타나는 것과 같고, 또 마치 진흙덩이로 된 모형(模型) 안에서 몸의 형상을 찍어내는 것과 같으며, 또 해가 나올 때에는 모든 어둠을 없앴다가 그 해가 지면 도로 다시 어두움이 생기는 것과 같나니, 그러나 그 어두움은 항상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항상 정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니라. 그러나 그 어두움은 빛깔도 없고 느낌도 없어 볼 수가 없느니라. 그와 같아서 이 신식도 몸을 낸 뒤에는 마치 어두움이 광명을 떠나는 것처럼 그러하여 그 사람은 이 신식을 보지 못하느니라. 그러면서도 신식은 이 몸을 받나니, 비유하면 여인이 아이를 가졌을 때에 내가 가진 아이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혹은 검은가, 흰가, 혹은 모든 감관이 갖추어져 있는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혹은 손발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되어 있지 않는가’를 모르지만, 그 태 속에 있는 아이는 뜨거운 음식이 닿으면 알아차려서 곧 꿈틀거리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같아서 이 신식이 오고 가고 펴고
움츠리고 눈을 함께 뜨고 감고 하나니, 옛날에 지었던 업 때문에 웃고 말하는 등, 모든 존재[有]가 태어나면서 얻는 색신(色身) 안에 신식이 머무르고 있지만 모든 중생은 내 몸 안에 머무르고 있는 식은 어떠한 체(體)인가를 알지 못하느니라.
발다라파리야, 이 신식은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흘러가 이르지만 모든 존재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느니라.
발다라파리야, 모든 존재와 신식과 6근(根)의 경계가 바로 6계(界)의 곳이요, 4대(大)의 곳이요, 5음(陰)의 곳이니라. 발다라파리야, 이와 같은 신식 등의 경계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발다라파리야, 비유하면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木人]이 하나의 기관(機關)으로써 모든 일을 지으면서 달리고 뛰는 등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것과 같으니라. 발다라파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나무사람은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냐?”
발다라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물으신 것은 저의 경계가 아닌지라 저의 지혜로는 대답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다라파리야, 그것은 묘한 지혜의 힘으로 갖가지 일을 짓는 것이요, 그러나 그 묘한 일은 색이 없고 지혜로써 내는 것이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몸을 지닌 사람도 신식의 교묘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요, 그러면서 이 갖가지 몸은 신식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으며, 이 신식이 몸을 만든 까닭에 생겨났지만 이 신식은 다함이 없나니 오히려 법계(法界)를 닦고 익히기[修熏] 때문에 옛날의 모든 몸의 기억과 뜻이 성취되느니라. 비유하면 햇빛과 같나니, 이 신식도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하느니라. 마치 햇빛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모든 시체를 비출 때 그것에 물들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그 악취는 햇빛을 여의고서 나는 것도 아닌 것처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이 처음 생기려 할 때에 그 더러운 데 있으면서 모든 부정(不淨)한 것을 먹고 또 개나 돼지 같은 짐승의 배 안에 배어 있으면서도 그
신식은 저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또 발다라파리야, 이 신식은 몸을 버린 뒤에는 선과 악이 행한 바를 따르나니 그 뜻이 무엇인가 하면, 이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는 곧 저 죄와 복을 받는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바람이 산마루로부터 나와 첨파(瞻婆)나무의 숲에 이르면 그 접촉으로 인하여 미묘한 향기를 느끼게 되지만 악취가 나는 곳에 이르거나, 또는 온갖 시체가 썩는 곳에 이르기도 하는 것과 같으니라.
발다라파리야, 저 바람은 여러 곳에 이르면서 여러 가지 냄새를 취하나니, 마치 바람이 향기를 거느리고 지나가는데도 그 바람에는 빛깔[色]이 없고 그리고 향기에도 빛깔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몸을 버리고 난 뒤에 선과 악을 거느리고 옮아가면서 이와 같이 차례로 떠나가는데 그 신식이 옮아가려고 함은 마치 잠을 자면서 꿈에 사람이 온갖 물건들을 알면서도 그 몸은 본래 자고 있는 자리에서 옮아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복이 있어 다시 생겨나는 신식이 옮아가려 할 때에는 마치 꿈에서 온갖 일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그런데 이 신식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고 또한 그 어떤 구멍으로부터도 나오지도 않으며 그 신식이 나올 때에도 역시 모든 구멍을 구하지 않느니라.”
그때 발다라파리가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달걀이나 거위의 알은 껍질 안에 있고 그 껍질에는 구멍이 없거늘 어떻게 신식을 알게 되며 특별히 껍질이 깨져 있지 않는데 그 신식은 어떻게 옮아가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첨파 등의 모든 꽃으로 쪼인[熏] 검은 깨[烏麻]가 잘 익은 뒤에 기름을 짜면 이것을 첨파꽃 등의 기름이라 하거니와, 마치 저 향기는 검은깨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그 향기가 옮아가고, 그 향기가 검은깨에 달라붙어 있지도 않으며, 깨와 꽃이 함께 화합하기 때문에 향기가 서로 달라붙은 것이니, 향기는 깨 씨에서 구멍을 구한
연후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 그 두 가지로 인하여 그 향기는 옮아온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은 알 껍질을 깨뜨리지 않아도 묘한 향기는 옮아가나니, 이 신식의 옮아감도 역시 그와 같으므로 너는 그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이 신식이 옮아가지 않음은 마치 햇빛과 마니보배[摩尼寶]의 광명과도 같나니,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다시 이 신식의 옮아감은 마치 땅에 뿌리는 종자와 같아서, 그 종자를 땅 속에 던져 놓으면 싹이 나고 줄기와 잎과 열매가 생기면서 혹은 희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하며 저마다 그 자체의 맛과 힘이 성숙되지만 그 땅의 요소[地界]는 하나이니, 물․불․바람의 요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은 한 법계를 가지고 모든 존재[有] 안에서 몸을 성취한 이후에야 생기나니 혹은 흑색이거나 백색이거나 적색 등이기도 하며 혹은 본래 성품이 억세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느니라.
또 발다라파리야, 목숨을 마칠 때 이 신식은 몸을 버리고 나서 후생에 받을 몸의 종자의 인(因)을 이루어 손과 발 등의 몸을 만들고자 하나, 당시에는 아직 몸뚱이[身分]는 있지 않기에 땅 부분[地分]을 버리고 법계의 부분[法界分]을 취하는데 그 모든 경계는 기억[念]과 함께 화합하느니라. 그리하여 그 기억은 믿고 공경하는 힘으로써 법계와 기억이 화합하여 신식을 취하면 신식을 여의고서 계를 볼 수 없으며 역시 법계를 여의고 신식은 인(印)을 지니지도 않느니라. 그런데 그 신식은 바람이 보조가 되어, 그 밖의 법계는 모두가 미묘하게 되나니, 이른바 기억의 요소[念界]와 느낌의 요소[受界]와 법의 요소[法界]와 색깔의 요소[色界]가 그것이니라.”
그때 발다라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신식은 어떻게 해서 빛깔[色]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두 가지 빛깔[色]이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바깥[外]이니라. 안의 빛깔[內色]이라 함은, 이른바 눈을 가리키며,
바깥이라 함은 바로 그 빛깔[色]이니라. 만일 안식(眼識)이 있다면 그것은 안의 빛깔[內色]이라 하느니라. 귀는 안이요 소리는 바깥이며, 코는 안이요 냄새는 바깥이며, 혀는 안이요 맛은 바깥이며, 몸은 안이요 촉감은 바깥이며, 뜻은 안이요 법은 바깥이니라.
발다라파리야, 비유하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밤에 잠을 자다가 꿈에 갖가지 모든 하늘의 묘한 빛깔과 가장 수승하고 으뜸가는 일들을 보고 그 사람은 비할 데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내었지만 잠에서 깨고 나자 이내 보이지 않았으므로 날이 샌 뒤에 다른 이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내가 어제 밤에 꾸었던 꿈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가장 묘하고 가장 으뜸가는 단정하게 생긴 여인들의 형상을 보았고, 백천 수의 장부 대중들도 보았으며, 동산의 숲도 보았고,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나는 꿈에서 보았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몸이 부드럽게 생기고 손발은 단정 엄숙하였으며 팔과 어깨는 곧고 길었으며 몸은 날씬하였고 허리와 다리도 맵시가 있었습니다’고 하면서 그 장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모든 사람들의 신체의 형용과 장엄한 영락 등을 자세히 설명하였느니라. 그때 그 장님은 이같이 말한 형체에서 신식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장님이 잠을 자며 꿈속에서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
발다라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옵신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저에게 해설하여 주소서. 이 일을 어떻게 볼 수 있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발다라파리야, 너는 알아야 하느니라. 육안(肉眼)으로써 지혜의 힘을 인하여, 장님은 꿈속에서 본 것이요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니라. 발다라파리야, 마치 꿈속에서 사람이 빛깔[色]을 잠시 보면서 그의 죽음을 바르게 기억하는 것처럼, 사람이 안의 빛깔[內色]을 보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발다라파리야, 다시 너에게 해설하거니와 그 죽은 사람의 신식은 마치 종자가 옮아가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종자가 땅 위에 뿌려지면
대(大)를 받고 취하는 것처럼 이 신식도 바른 기억을 받고 나서 그 느낌[受]을 받은 뒤에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받으며, 그런 뒤에 몸을 버리고는 옮아가는 것이니라.”
발다라파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 신식이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받으며, 그런 뒤에야 옮아가나이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연꽃의 색깔이 마니보(摩尼寶) 곁에 있을 때에 마니보는 연꽃 색깔에 따라 변하는 것과 같아서 만일 검은 색을 놓으면 그 그림자 형상은 이내 검게 변하고, 흰 색 안에다 놓으면 곧 변하여 흰 색이 되나니, 그 그림자의 형상은 그 있는 곳을 따르면서 마니보는 곧 그 색깔을 같이하므로 놓아두는 곳과 그 지분(地分)을 따라 색이 곧 변하나니, 이와 같이 신식도 선과 악을 받으면서 곧 옮아감이 역시 그러하느니라.”
그때 발다라파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신식은 어떤 체(體)로서 나타나나이까?”
부처님께서 발다라파라에게 말씀하셨다.
“이 신식은 형상도 없고 모여 있는 곳도 없고 쌓아 둔 곳도 없으므로 마침내 얻을 수도 없으며 말로 할 수도 없느니라. 이 신식은 생김도 있고 멸함도 있고 괴로워함도 있지만 역시 말로는 할 수 없느니라. 발다라파리야, 비유하면 마치 씨에서 싹이 생기지만 상한 씨에서는 싹이 생길 수가 없고, 부서진 씨에서도 싹은 생길 수 없으며, 좋은 씨에서라야 비로소 싹이 생길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발다라파리야, 너는 저 씨와 싹이 어느 곳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느냐. 혹 줄기에 있는 것이냐, 잎사귀에 있는 것이냐, 뿌리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그 씨는 나뭇가지에 있는 것이냐.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도 몸의 어디에도 의지하거나 머무른 데가 없느니라. 눈에 있지도 않고, 귀에 있지도 않으며, 코에 있지도 않고 뜻에도 있지 않나니, 마치 씨에서 싹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생겨난 씨와 싹은 취함[取]과 느낌[受]을 근본으로 삼아서 곧 수태하며 수태한 뒤에는 곧
촉(觸)이 있나니, 마치 싹이 생기고 나서 의지한 때에는 곧 가지와 잎과 꽃이 있고, 가지와 잎과 꽃이 있으면 곧 씨가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도 먼저 신체를 이루고, 신체를 이룬 뒤에는 그 신식은 머물 만한 곳이 없으며 그렇다고 역시 신식을 여의고서 몸이 있는 것도 아니니라. 마치 저 종자가 나무에서 익은 뒤에야 씨가 있게 되는 것이요, 열매가 생기면서 바로 씨가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몸과 목숨을 마칠 때에는 신체 가운데서 이 신식이 드러나는 것이로되 느낌[受]으로써 화합하고, 욕망[愛]으로써 서로 속박하며, 기억[念]으로써 서로 붙잡고, 좋은 반연으로써 화합하거나 혹은 좋지 않은 반연으로써 화합하고, 바람의 경계[風界]로써 서로 유지하면서, 지혜로 훈습(薰習)하여 업의 인연을 따라 부모가 화합한 연후에야 이 신식은 드러나는 것이니라.
발다라파리야, 비유하면 마치 잘 만들어지고 좋고 밝은 거울로 얼굴의 모양을 보는 것과 같나니, 얼굴이 없는데 얼굴의 모양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밝은 거울이 없는데 얼굴의 모양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마치 밝은 거울과 얼굴의 두 연(椽)이 화합하여야 얼굴의 모양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으며, 그러면서 그 얼굴의 형상에는 빛깔이 없고 느낌도 없고 또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만 몸을 따라 움직일 뿐이니라. 그 거울 속의 형상은 역시 몸이 하는 대로 움직이므로 말하고 옮아가고 움직이고 펴고 움츠리고 숙이고 쳐다보는 등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따라 거울 속 얼굴 표정도 역시 이러한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라.
발타라파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얼굴 모양은 무슨 일로 인하여 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는 것이냐.”
발다라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람의 신체로 인하여 그 거울 속에서 나타나나이다. 마치 이 형체는 그 몸의 빛깔을 따르는 것처럼 얼굴도 역시 그와 같은 빛깔이 있고 그 모양에서도 역시 그와 같은 빛깔이 있으며 모든 감관이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않았거나 그 얼굴의 모양은 그 거울 속에서 역시 그와 같이 그런 현상을 나타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다라파리야, 마치 저
밝은 거울에 얼굴의 모양이 이루어짐은 몸이 있기 때문에 밝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나타내듯이 이 몸도 그와 같아서 신식으로 인하여 느낌[受]이 있고 취함[取]이 있고 알음이 있고 모든 행과 생각함이 있어 신체를 이루는 것이니라. 저 밝은 거울이라고 함은 부모와 화합하는 인연이니, 그러므로 몸이 소멸하고 나면 신식의 형상도 없는 줄 알지니라. 마치 저 밝은 거울에서 얼굴의 형상이 나타날 따름이요 또 맑은 물 속이라야 다시 얼굴의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신식도 이 몸의 형상을 버리고 나면 저곳으로 가서 다른 모든 음(陰)을 받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니구다나무[尼拘陀樹]의 씨나 우담바라(優曇婆羅) 등의 모든 나무의 씨가 비록 가늘고 작더라도 극히 큰 나무와 가지를 낼 수 있고, 큰 나무와 가지를 낸 뒤에는 그 형상을 버리고 다시 다른 곳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씨의 경계[子界]가 나무의 형상을 버리고 나면 때로 바짝 마르면서 그 본래 지닌 맛을 잃게 되고 그 본래 맛이 소멸하고 나면 그 나무는 곧 말라죽게 되느니라.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은 미세하여 일정한 색의 형상이 없나니, 모든 몸을 내고 나면 다시 그것을 버리고 다시 먼저와 다른 몸을 이루게 되느니라. 마치 보리․밀․검은 깨 등의 작은 알과 큰 알 등의 씨는 뿌려지는 땅에 따라 그 땅에서 곧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은 모든 중생의 몸 안에서 저 곳으로 옮아가 곧 취함[取]도 있고 느낌[受]도 있으면서 혹은 죄를 받기도 하느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저 세상으로 옮아가는 것은, 마치 꿀벌이 꿀을 찾아서 꽃 안에 들어가 그 맛과 향기를 취하다가 그 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꽃으로 옮아가며 혹은 나쁜 꽃은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아가며 꽃 위에 앉은 뒤에는 그 꽃에 달라붙어서 그 향기와 맛을 취하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도 많은 선근으로 하늘의 몸을 받아 가기도 하고 하늘의 몸을 받은 뒤에는 나쁜 과보 때문에 또 지옥․축생․아귀 등의 몸을
받기도 하며 받은 뒤에는 다시 그와 다른 몸을 받는 것이니라.
그리고 이 신식을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 하면, 마치 울금향(鬱金香)의 씨나 홍람화(紅藍花)나 분다리꽃[分陀利花]의 씨가 그 자체의 본분에 따라 색깔도 일정하지 않고, 그 씨 안에서는 싹을 볼 수도 없으며, 또한 일정한 색깔도 없는데 그러면서 그 씨가 땅에 들어가 물을 얻으면 윤택해지면서 곧 싹을 내며, 싹이 난 연후에야 꽃이 피되 그 색깔은 씨 안에서 얻어 볼 수도 없고 또한 씨를 여의고서 싹과 색깔이 있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나서 저 몸을 이루려고 할 적에는 그 살덩이 안에 아직 모든 감관이 있지 않거늘 하물며 모든 입(入)이겠느냐. 이미 모든 감관과 입이 없거늘 어찌 천안(天眼)과 천이(天耳)와 냄새와 맛과 촉감이 있을 수 있겠으며, 자체에는 앎이 있을 수 있되 이치로야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나는 그때 이러한 모든 업을 지었고 나는 과거 세상에 이러한 몸이었다’라고 다만 신식으로 인하여 느낄 뿐이니라. 비유하면 누에가 제 몸의 입에서 실을 내어 고치를 만들면서 그의 몸을 감고 얽은 뒤에 그 속에서 죽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도 스스로 몸을 낸 뒤에 도리어 스스로가 업을 짓는 것은 마치 누에가 실을 내어 제 몸을 휘감은 뒤에 곧 스스로 몸을 없애는 것과 같으니라. 또 스스로 몸을 없앤 뒤에 다른 곳으로 옮아감은 마치 연꽃이 물 속에 피어 있을 때는 곧 묘한 색깔과 향기며 맛이 있고 그러면서도 그 꽃 안에서는 물의 정체(正體)를 얻어 볼 수 없다가 그 꽃이 없어진 뒤에 다른 땅 속에다 씨를 놓아두면 곧 빛깔과 향기가 되살아나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이 옮아가는 곳에는 모든 근(根)․경(境)․계(界)가 함께 옮아가지 않으며 느낌[受]도 옮아가지 않고 옮아가는 것은 오직 법계만이 있을 뿐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여의주(如意珠)가 가는 데마다 바라는 물건이 있으면 곧 생각하는 대로 얻는 것과 같으며, 마치 하늘의 광명이 스스로 햇빛을 따라 운행하면서 햇빛이 이르는 곳에 광명도 역시
그곳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이 옮아가는 곳에는 느낌[受]과 생각[想]과 법계 등이 서로 따르면서 여의지 않느니라.
또 다음에 이 신식은 몸을 버리고 나면 모든 존재[有]를 취하는데 쌓고 모아 취한 뒤에는 살도 없고 뼈도 없이 뒤에 받을 몸으로 나와서, 그는 색신(色身)과 존재와 모든 접촉을 취하되 천안(天眼)으로 선과 악을 살펴보면서 받고 취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작은 대추나무거나 천 년 묵은 대추나무거나 암마라(菴摩羅)의 열매거나 가비타(迦毗陀) 열매 등이거나 간에 그 열매에는 저마다 한 가지씩의 맛이 있나니 쓰거나 시거나 달거나 혹은 짜기도 하는 등의 여섯 가지 맛이 있거니와 그 모든 열매가 익은 뒤에 그 맛을 간직한 종자가 다른 곳으로 옮아가면 저마다 저절로 그 곳에서의 맛이 있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 신식의 씨도 옮아간 처소에 따라 그 스스로 촉(觸)이 있으면서 복과 복 없는 일이 있게 되며 존재[有]와 기억[念]이 저절로 따르면서 옮아가느니라.
또 이 신식은 몸을 버릴 적에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이 몸을 버리기 때문에 이것을 염식(念識)이라 하며, 신식은 착한 업과 착하지 않은 업을 알고 이 업이 나를 따라 가는 것을 알며, 나는 이 업을 따라서 가는 것도 알게 되나니, 이와 같은 일들을 알기 때문에 신식이라 한다’라고 하느니라.
또 이 몸이 지었던 온갖 모든 업을 알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나니, 마치 바람이 때로는 차기도 하고 때로는 덥기도 하며 때로는 악취를 따라 냄새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향으로 인하여 향기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바람이 있음을 아는 것처럼 이러한 신식의 체(體)는 색이 없으면서도 집취(執取)의 원인인 색을 말미암아 혹은 욕취(欲取)의 원인으로, 혹은 계율을 지니면서 과보를 구하는 집취의 원인으로, 혹은 느낌과 느낌의 원인을 신체를 받아 색이 성취되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그 대중 가운데에 장자의 동자 소마부지(蘇摩浮坻)수(隋)나라 말로 진월(眞月)이라 한다가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그 색의 취함을 관찰하여야 하고, 어떻게 욕취를 관찰하여야 하며, 어떻게 견취를 관찰하여야 하고, 어떻게 계취(戒取)를 관찰하여야 하오며, 어떻게 모름지기 관찰하여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진월(眞月)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지혜 있는 이라면 네가 묻는 바를 알고자 하리니,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진월아, 좋은 색이 있거나 좋지 않은 색이 있거나 간에 육체(肉體)를 좇으면서 모름지기 힘줄과 피․맥․기맥․해골․뇌․대장․소장․폐장․심장․간장․신장․비장․담장․비게․골수․가래․어혈․눈물․콧물․침 등은 청정하지 못하고 악취가 나며 덧없고 두려워할 만하며, 터럭․머리칼․수염과 살점․피부로 덮어씌워져 모여 있으며, 모여진 모든 색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관찰해야 하느니라. 이루어진 4대란, 색을 취하여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색을 취한다[取色]고 하느니라.
소마부지야, 그 몸은 부모가 화합함으로써 단단하고 딱딱하게 이루어졌나니 그것은 곧 땅의 요소[地大]요, 온갖 묽고 부드러운 것은 물의 요소[水大]라 하며, 온갖 따뜻하고 익게 하는 것은 불의 요소[火大]라 하고, 온갖 요동하면서 구부리고 펴고 하는 것은 바람의 요소[風大]라 하느니라. 그리고 온갖 아는 것은 소리․냄새․맛․촉감 등의 경계라 하며 기억하고 아는 것이기 때문에 신식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소마부지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죽을 때에는 그 색계(色界)를 버리고 신식이 몸에서 나오며 그 몸을 버리고 나서는 ‘이것이 바로 나의 몸이었다’라고 알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진월에게 대답하셨다.
“진월아, 이 몸을 받아서 바로 머무를 적에 몸의 업[身業]이 이미 다하면 모든 경계[界]를 버리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우유를 물에 타서
불로 끓이면 그 뜨거운 열기 때문에 우유와 물은 저마다 구별되며, 우유에 있는 모든 기름의 맛은 색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진월아,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죽은 사람은 몸이 구별되며 모든 요소[大]도 역시 구별되고 신식도 역시 구별되느니라. 그러나 그 신식은 모든 요소를 취하고 그리고 법계를 취하느니라. 그런 뒤에 법계를 훈습한 기억이 선과 악을 취하면서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마하가량나약의 소(摩訶迦良那藥蘇)수(隋)나라 말로는 크고 참된 약이 되는 소(大眞藥蘇)라는 말이다에서 갖가지 약의 맛과 힘을 취하여 닳으면 그 속에는 혹 매운 맛․쓴 맛․신 맛․짠 맛․싱거운 맛․단 맛이 있는데, 그 모든 맛들을 취한 뒤에 몸으로 들어가 소화되어 빛깔과 향기 등의 맛을 취하고 나면 그 소(蘇)의 체성은 버리고 옮아가면서 약의 맛을 이루는 것과 같나니, 이 신식도 그와 같아서 몸을 버린 뒤에는 선과 악을 취하고 그리고 법계를 취하면서 이 신식은 옮아가는 것이니라.
‘저 소(蘇) 맛의 체(體)’라고 함은 곧 몸에다 비유한 것이요, ‘저 모든 약이 섞이면서 모인다’라고 함은 저 모든 감관[根]에 비유한 것이며, ‘모든 약의 색과 향기와 맛과 촉감’이라고 함은 신식이 옮아가기 때문에 신식이라 한다는 데에 비유한 것이요, ‘모든 맛이 변한다’라고 함은 곧 신식이 옮아간다는 것이니,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하느니라.
‘사람과 색은 구별되며 다르다’라고 함은 혹은 좋은 색이기도 하고 혹은 나쁜 색이기도 하다는 것이요, ‘혹 몸으로 들어간 크고 참된 약인 소가 잘 소화되었다’라고 함은 곧 착한 업에 비유한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만일 ‘그 크고 참된 소를 먹은 뒤에 몸이 마비되고 황색을 띠게 되었다’라고 하면 그것은 곧 착하지 않은 업에 비유한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큰 마하가량나약의 소와 같은 보배’라고 함은 이 신식을 말함이니라. 마땅히 마하가량나약의 소가 모든 약의 색과 맛을 취하고 취한 뒤에는 크고 참된 약이 되지만 그 소에는 손발과 모든 감관이 없고 다만 그 맛만을 취한다고 관찰해야 하나니,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이는 진실로 몸을 버린 뒤에는 모든 경계를 버리고 오직
법계만을 취하며, 취하고 받고 한 뒤에는 선과 악을 취하면서 가는 것이니라.
진월아, 저 사람이 몸을 버린 뒤에는 오는 세상에서 바른 기억[正念]을 얻고, 하늘 기억[天念]을 얻으면서, 혹은 욕천[欲天]들을 보기도 하고, 혹은 열여섯 개의 큰 지옥을 보기도 하며, 혹은 몸의 모든 감관이 다 갖추어진 것을 보기도 하나니, 그는 그러할 때에 ‘이것이 바로 나의 몸이었다’라고 알게 되는 것이니라.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그는 기억으로 갖가지 모양을 보게 되나니, 혹은 미묘한 수레들을 보기도 하고 혹은 미묘한 동산 숲을 보기도 하며, 그 동산 숲 안에는 새로 나서 우거지고 사랑할 만한 온갖 수목이 있고 혹은 묘한 못이 있기도 하며 혹은 갖가지로 성취한 모든 일들을 보기도 하느니라. 그는 이러한 모든 모양들을 보면서 마음에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안온하고 법답게 목숨을 마치면서 그 사람의 신식은 마치 말을 타고 가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하느니라.
‘말을 탄다’는 말은 마치 어떤 사람이 싸움터에 있으면서 몸에는 좋고 견고한 갑옷을 입고 말의 고삐를 잘 잡고 속히 올라타고 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니, 그와 같아서 이 식도 반연의 갑옷을 입은 좋은 과보로 속히 들숨․날숨[出入息]을 타고, 모든 계(界)와 모든 입(入) 등을 버리고, 버린 뒤에는 후생(後生)을 취하면서 모든 범천(梵天)과 아가니타천(阿迦膩陀天)에 이르기까지의 미묘한 곳에 가 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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