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05권
대보적경 제105권
수 삼장 달마급다 한역
송성수 번역
36. 선주의천자회 ④
7) 파이승상품 ②
그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이제 진실로 날카로운 지혜[利智]를 밝게 말씀하셨사오며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공의 법인[空忍]을 명쾌하게 말씀하여 주셨나이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당신의 말처럼 날카로운 지혜를 밝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날카로운 지혜란 바로 젖먹이 아이나 범부에게 있나니 그 까닭은 온갖 범부를 바로 날카로운 지혜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날카로운 지혜라 하는가. 이른바 지옥에 대한 날카로운 지혜요, 축생의 대한 날카로운 지혜며, 아귀에 대한 날카로운 지혜요, 염마(閻魔)에 대한 날카로운 지혜며, 나아가 삼계(三界)에서의 온갖 날카로운 지혜가 그것이니, 이와 같은 것에 취착하고 상응하는지라 날카로운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나고 죽는 번뇌의 처음과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저 모든 범부는 탐욕에 집착함이 날카롭고, 성냄에 집착함이 날카롭고, 어리석음에 집착함이 날카로우며 나아가 저 모든 소견과 이름과 물질에 집착하고 상응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지혜라 하거니와 모든 부처님․세존과 성문과 연각과 법인을 얻은 보살에게는 이러한 날카로운 지혜가 없습니다. 이것을 온갖 범부가 취착하고 상응하는 날카로운 지혜라 합니다.”
이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지금 지혜[智]를 드러내려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행(行)을 따르려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어구[句]를 따르려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문자와 어구[字句]를 따르겠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모든 보살은 하나의 문자나 하나의 어구에 대하여 애초부터 이동(移動)하지 않지만 그 문자와 어구의 뜻의 문과 처소의 가깝고 멀고 얕고 깊은 것을 모두 사실대로 압니다. 이를테면 공한 곳을 알고 모양이 없는 곳을 알며 소원이 없는 곳을 알고 멀리 여의는 곳을 알며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알고 생김이 없는 곳을 알며 여여(如如)한 곳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에서 받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으며 이해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나니 그러므로 오직 문자와 어구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야. 너는 이제 이미 다라니(陀羅尼)를 얻었기에 그렇게 분별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실로 저 다라니를 얻지 않았나이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이라도 이 다라니를 얻었다면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범부라 할 것이며 부처님․세존이나 모든 보살은 다라니를 얻은 것이 아니옵니다. 그 까닭은 세존이시여, 저 모든 어리석은 범부․중생들은 취착함이 있는 까닭에 다라니를 얻게 되기 때문이옵니다. 어떤 것에 취착(取箚)하느냐 하면 이른바 나[我]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사람[人]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수명(壽命)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장부(丈夫)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아주 없음[斷滅]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항상 있음[常恒]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나이다. 탐욕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성냄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어리석음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무명(無明)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유애(有愛)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몸에 대한 소견[身見]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나이다. 5음(陰)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12입(入)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18계(界)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기억[憶念]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분별(分別)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고, 예순 두 가지 견해[六十二見]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행(行)에 취착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얻사오니, 그러므로 범부는 다라니를 얻나이다. 그 까닭은 만일 법에 그가 어리석게 취착하게 되면 이것이 곧 범부가 얻는 것이며, 부처님은 얻는 것이 아니요, 성문도 얻는 것이 아니요, 벽지불도 얻는 것이 아니요, 보살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런 이치 때문에 오직 저 범부만이 다라니를 얻나이다. 왜냐 하면 저 모든 범부는 어리석은 까닭에 취하고 얻는 것이 있다고 하거니와 부처님․세존과 보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 만일 다라니를 얻지 않으셨다면 저 어리석고 둔한 지위에 떨어지신 것은 아니신가요.”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 둔합니다. 왜냐 하면 무릇 어리석고 둔하다 함은 아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데 내가 행한 곳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세존과 모든 성문․연각․보살은 모두가 어리석고 둔한 데에 떨어져 있거니와 모든 범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범부는 수효[數] 안에 있거니와 그 밖의 지혜로운 사람은 온통 어리석고 둔한 데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수다원(須陀洹)도 걸리적거리는 행 때문에 탐욕의 마음을 내어 수효 안에 떨어져 있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모든 범부들이 수효가 아니겠습니까? 천자여, 그러므로 나는 어리석고 둔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는 진실로 저 다라니를 얻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하나의 법도 얻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말할 때에 저 대중 안의 5백의 비구들이 이 법문을 듣고서 믿음을 내지 못한지라 크게 두려워하면서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며 이런 나쁜 마음을 낸 뒤에 버리고 떠나가다가 곧 스스로 자기 몸이 큰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이제 잠시 멈추소서. 이렇게 매우 깊은 경전을 설하지 마소서. 왜냐 하면 지금 이 대중 가운데 5백의 비구들이 이 법문을 듣고는 믿음을 낼 수 없어 크게 두려워하면서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키다가 이내 자신의 몸이 저절로 지옥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지금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지옥에 떨어질 하나의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생하는 것이 없거늘 당신은 지금 어째서 갑자가 나에게 설법을 그치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리불이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나라는 소견에 의지하고, 사람이라는 소견에 의지하며, 중생이라는 소견에 의지하고, 수명이라는 소견에 의지하나니, 이런 모든 소견에 의지한 뒤에 비록 다시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여래․응공․정변각과 비구승들에게 온갖 도구를 공양하고 구하는 대로 받들어 공급하며 이렇게 공양하기를 목숨이 다하도록 멈추지 않는다고 예를 들어 봅시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하는 매우 깊은 경전을 듣고 온갖 세간에서 믿을 수가 없는 이를테면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고, 조작이 없다는 것과, 넓고 크고 고요하여 생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나가 없고,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다는 것과, 덧없고, 괴롭고, 나 없다고 하는 것 등 이와 같은 모든 법을 들은 뒤에 비방을 하다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시다. 그러나 사리불이여, 곧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러한 매우 깊은 법을 듣고 나서 비록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지옥에서 나오게 되면 속히 열반을 증득하게 되거니와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비록 또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수의 여래․응공․정변각께 공양한다 하더라도 나에 취착하여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법을 듣지 않으면 끝내 그들은 해탈하지도 못할 뿐더러 속히 열반을 증득하지도 못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문수사리야,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진실로 너의 말과 같으니라. 만일 어떤 이라도 이와 같이 매우 깊고 미묘한 경전을 듣게 되면 세간에 출현하신 부처님을 만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어떤 이가 수다원의 과위를 증득하려 하면 반드시 이 경을 좇아야 하고, 사다함을 증득하려 하거나 아니함과 아라한을 증득하려 하여도 반드시 이 경을 좇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나에 집착하지 않아야 법을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니, 이 법을 증득할 때에는 보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너는 알아야 하느니라. 이 5백의 비구들이 비록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뒤에 지옥에서 나오면 속히 열반을 증득하거니와 저 어리석은 범부인 사람은 보고 얻는 데에 빠지고 의심에 떨어지기 때문에 여래께 공양한다 하여도 해탈을 얻지는 못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모든 비구는 다시금 이로 인하여 해탈을 하거나 속히 열반을 증득하게 되거니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속히 해탈할 수 없느니라. 그 까닭은 이 매우 깊은 법문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문을 듣게 되거나 단 한번 귀에 스치기만 하여도 비록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여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속히 해탈하게 되거니와 그밖에 어떤 이가 소견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 것이라면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8) 파범부상품(破凡夫相品)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이제 저에게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그대는 이제 만일 짓거나 구하려 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장차 그대에게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유위(有爲)로 지으면 청정한 행이라 할 수 있거니와 무위(無爲)로 짓는다면 무엇을 청정한 행이라 하겠습니까? 또 천자여, 만일 보고 얻음이 있으면 청정한 행이라 할 수 있거니와 만일 보고 얻음이 없으면 무엇을 청정한 행이라 하겠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지금 차라리 청정한 행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청정한 행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무릇 청정한 행이란 곧 청정한 행이 아니기 때문이니, 청정한 행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청정한 행이라 합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요설변재(樂說辯才)를 구족하셨기에 이렇게 장애 없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내가 장애 없는 변재를 구족하였다면 곧 장애가 성립됩니다. 왜냐 하면 무릇 이 나와 내 것에 취착함은 모두가 분별을 말미암기 때문이요, 온갖 분별은 장애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이제 만일 온갖 중생의 목숨을 끊어 없애되 칼을 잡지도 않고 막대기를 가지지도 않으며 몽둥이를 쥐지도 않고 흙덩이를 들지도 않고서 그 일을 행하게 되면 나는 그대와 같이 청정한 행을 닦겠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또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중생이란 말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저는 중생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니, 모두가 생각하며 취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러므로 이제 나는 그대에게 ‘모름지기 나라는 생각을 없애야 하고, 사람이라는 생각을 없애야 하며, 중생이라는 생각을 없애야 하고, 수명이라는 생각을 없애야 하며, 이름이라는 생각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듯 제거하는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없애는 데 어떠한 기구를 가지고 없애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항상 저 날카로운 지혜의 칼로 없앱니다. 그렇게 없앨 때에는 저 날카로운 지혜의 칼을 마땅히 잡아서 마땅히 없애야 하되, 잡고 있다는 생각과 없앤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천자여, 이런 이치 때문에 그대는 나라는 생각과 중생이라는 생각을 잘 알아야 하리니, 이것을 진실로 모든 중생을 없앤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그대에게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다시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만일 10악업의 길[十惡業道]을 수행하고 다시 검고 흐린 더러움[垢] 있는 법을 성취하며, 온갖 10선업의 길[十善業道]을 놓아 버리고 맑고 청정한 법[淸白法]을 파괴하여 흩어버리면 나는 그대와 함께 범행을 닦겠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온갖 염탁[染濁]과 청백(淸白)은 모두 다 평등한 것입니다. 그것이 평등하면 나는 그대와 청정한 행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어떠한 법으로 염탁의 평등함[染濁平等]을 삼겠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탐내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그것을 염탁의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다시 어떠한 법으로 청백의 평등함[淸白平等]을 삼겠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여법(如法)한 성품과 실제(實際)와 3해탈문인 그것을 청백의 평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곧 그대로 하여금 진실한 법계(法界) 가운데서 구족하게 수행하여 이리저리 오고 가게 하리니, 그런 일이 좋겠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니, 염탁과 청백 등 모든 것이 평등해진 뒤에야 비로소 함께 청정한 행을 닦을 수 있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가 지금 만일 죽어야 할 사람을 데려다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는 그의 머리를 벤다면 나는 그대에게 이러한 청정한 행을 허락하겠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죽어야 할 이는 누구고, 어느 것이 머리며, 누가 죽이겠습니까? 천자여, 그대는 이제 알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탐욕을 죽여야 하고, 성냄을 죽여야 하고, 어리석음을 죽여야 하며 이렇게 하여 아만과 질투와 속임수와 아첨과 집착과 취하는 모양과 느낌[受]․생각[想] 등을 죽여야하니, 천자여, 이것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오로지 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다가 탐욕의 마음이 일어나면 이내 깨달아 알면서 방편으로 흩어 없애어 다시 고요하게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흩어 없애느냐 하면, 그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바로 공이요, 이것은 청정하지 않다’고 하고 이 욕심이 나는 곳과 없어지는 곳을 찾으면서 ‘어디서부터 왔고, 가면 다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안에서 그 누가 물들이고, 누가 물들임을 받는 이며, 어느 것이 물들이는 법이냐’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관찰하면 물드는 이도 보지 못하고, 물들임을 받는 사람도 보지 못하며, 물들이는 일도 보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취하는 것이 없고,
취하지 않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없으며, 버리지 않기 때문에 받는 것도 없나니, 버리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면 곧 욕심이 사라진 열반이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온갖 느낌[受]과 마음[心]도 역시 그와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없애는 법은 곧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그가 살해하는 때는 먼저 그 머리를 벤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살해라, 이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가 지금 만일 모든 부처님을 배반하고 교법과 승가를 훼방할 수 있으면 나는 장차 그대와 이와 같이 청정한 행을 함께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이제 무엇 때문에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의 뜻과 같다면 무엇으로 부처님을 삼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여여(如如)한 법계(法界)를 가리켜 저는 부처님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여한 법계는 염착[染箚]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대가 지금 만일 모든 부처님을 훼방할 수 있으면 나는 장차 그대와 그렇게 청정한 행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천자여, 그대의 뜻과 같다면 무엇으로 교법을 삼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욕심을 여의어 고요해짐을 교법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고요한 법은 염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대가 이제 만일 바른 법을 비방할 수 있으면 나는 장차 그대와 이와 같이 청정한 행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그대의 뜻으로는
무엇으로 승가를 삼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위법(無爲法)을 성승(聖僧)이라 합니다.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성현은 무위로써 이름을 삼는다’고 하셨으므로 무위의 법을 성문승(聲聞僧)이라 하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무위법은 집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대가 이제 만일 성승(聖僧)을 파괴할 수 있다면 나는 장차 그대와 이와 같이 청정한 행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뵙는다고 하면 그는 곧 부처님에 집착하는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교법을 본다고 하면 그는 곧 교법에 집착하는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승가를 본다고 하면 그는 곧 승가에게 집착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불․법․승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만일 사람이 부처님을 보지도 않고 법을 듣지도 않으며 스님들을 알지 못하면, 그는 부처님을 배반하지도 않고 법을 비방하지도 않으며 스님네를 파괴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불․법․승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만일 사람이 부처님을 사랑하고 교법을 사랑하며 스님들을 사랑하면 그는 불․법․승에 염착하게 됩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불․법․승에 염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욕심을 여의고 해탈[離欲寂滅]한다고 합니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대가 지금 만일 불․법․승에 염착하지 않으면 나는 곧 그대와 이와 같은 청정한 행을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희유하고 희유하나이다. 오늘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이치를 연설하셨는데 저는 대사에게 무엇으로 은혜를 갚아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은혜를 갚지 말아야 합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제가 이제 어떻게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은혜를 갚지 말아야 하나니 그 까닭은 천자여,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이 바로 갚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지금 정녕 은혜를 갚지 말라고 하셨나이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은혜를 갚지도 않고 또한 갚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무엇 때문에 다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무릇 어리석은 사람은 갖가지 법을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키며 갖가지 행을 행하는 등, 이와 같이 갖가지 소견과 행을 지음으로써 생각하기를 ‘나는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이것은 행이 바른 선남자가 아닙니다. 저 행이 바른 선남자라면 아주 조금도 짓는 것이 없으며 혹은 짓거나 짓지 않거나 간에 그는 끝내 ‘나는 은혜를 갚을 생각이다’고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천자여, 은혜를 갚지 않는다 함은 마치 부처님․세존께서 평등함을 연설하신 것과 같나니, 이를테면 모든 법은 짓는 것이 없고 짓는 곳도 없으며, 모두가 평등함에 들어가서 옮아감도 없고 초월함도 없으며,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며, 짓거나 짓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은혜를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어느 곳에 머무시기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忍)에 머물러서 말씀하십니까, 법(法)에 머물러서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내가 머문 곳은 인도 아니고 법도 아닙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실로 어느 곳에 머무시기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머무르는 곳이 없습니다. 마치 변화로 된 사람이 머무는 것처럼 그와 같이 나는 머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저 변화로 된 사람은 다시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나이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마치 여여(如如)가 머무는 것처럼 허깨비도 그렇게 머뭅니다. 천자여,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어느 곳에 머물러 있습니까? 인입니까, 법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내가 말한 인(忍)은 다만 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머무는 곳이 없나니, 법(法)도 역시 그와 같아서 머무는 곳도 없고 움직임도 없으며 분별함도 없습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모든 법은 모두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머문다고 말하는 까닭은 바로 여래께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여래는 저 여여(如如)한 법 중에 머무르며 온갖 중생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여여에 머무르되 본래부터 이동하지 않기 때문이니, 마치 중생의 여(如)가 곧 여래의 여요, 여래의 여가 곧 중생의 여이어서 중생과 여래는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습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사문[沙門那]이라고 하셨는데 그 사문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사문(沙門)도 아니고 바라문(婆羅門)도 아니면 그것을 곧 진실한 사문이라 합니다. 그 까닭은 그는 욕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색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진실한 사문이라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눈이 새지[漏] 아니하고, 귀가 새지 아니하며, 코가 새지 아니하고, 혀가 새지 아니하며, 몸이 새지 아니하고, 뜻이 새지 아니하면 나는 다시 진실한 사문이라고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언설[說]에 의지하지 않고, 증득[證]에 의지하지 않고, 처소[處]에 의지하지 않으면 나는 또 진실한 사문이라고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으며, 다친 데도 없고, 부스럼도 없으면 나는 또 진실한 사문이라고 말합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저 언구[句]는 사문도 아니고 바라문도 아니니, 이것을 진실한 사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나이다. 대사여, 실로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어진 이께서는 뜻함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아서 연설한 것에는 장구(章句)가 없고 또한 처소도 없으며, 마음이 함께 환히 통달하여, 남아서 버리는 것이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의 마음은 굳세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나는 스스로 뜻을 다잡지 않고 풀어 놓아버린지라 마음이 편안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굳세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그 뜻은 또 무엇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마음에 꺼리는 것이 없이 성문의 지위에 들고 연각의 경계에 처하여 있나니, 이것을 방심(放心)이라 합니다. 나는 또 마음에 꺼리는 것이 없이 모든 진로(塵勞)와 생사(生死) 안에 들어있으면서도 역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같은 번뇌의 허물을 미워하지 않나니, 이것을 방심이라 합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희유하신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과거 세상에서 오래도록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셨고 많은 덕의 근본[德本]을 심으셨기 때문에 이렇게 연설하실 수 있고 미묘함이 이와 같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부처님들께 공양한 일도 없고 선근도 심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나는 애초부터 전생에 겪었던 일을 보지도 않고 또 미래 세상에 할 일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역시 짓는 것이 없고 모든 부처님 법에서도 일찍이 건립한 일이 없거늘 어떻게 많은 덕의 근본을 심었겠습니까?”
9) 신통증설품(神通證說品)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저는 옛날 일찍이 여환삼매(如幻三昧)를 들은 적이 있는데 원하옵나니 자비를 베푸셔서 이 정수(正修)를 드러내 보여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여환삼매의 깊은 경계를 보고 듣고 싶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저는 진실로 듣고 싶나이다.”
그때에 문수사리는 말한 대로 이내
여환삼매에 들어갔다. 그러자 때를 맞추어 시방의 항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의 온갖 경계들이 저절로 앞에 나타났다.
이때 선주의 천자는 동방의 항하 모래같이 많은 불국토 안에 있는 온갖 일들을 모두 다 보았다. 비구가 이와 같은 경전을 찬양하면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비구니의 형상이나 우바새와 우바이의 형상도 보았고, 혹은 대범천왕과 하늘의 제석왕과 사천왕도 보았으며 인간인 전륜성왕도 보았고, 혹은 온갖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도 보았으며 온갖 날짐승․길짐승과 그 밖의 여러 형상의 좋은 것과 추한 것도 보았는데 모두가 설법을 하고 있었다.
이 동방에서와 같이 남방․서방․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위와 아래의 모든 시방에서도 이처럼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 국토에 있는 모든 일들이 역시 그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었으나 그 모든 일들은 문수사리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그때 선주의 천자는 이러한 시방 불국토의 온갖 경계를 보고 기뻐 춤을 추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문수사리가 삼매에서 일어나자 선주의 천자는 일심으로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아까 저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의 한량없는 경계를 보았는데 불사(佛事)는 역시 달랐으나 저마다 이와 같은 경전을 연설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가 아까 보았던 동방에 있는 모든 경계는 진실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이러한 동방과 그 밖의 시방에 있는 모든 경계도 또한 진실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온갖 모두는 거짓이어서 진실한 것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온갖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없기 때문이니, 그것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세간을 속이는 것이요, 온갖 모든 법은 점차 변하여 옮아가나니 덧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허망합니다. 나타나고 이루어지는 일도 그 본체와 진실을 따져보면 마침내 얻을 수 없어서 짓지도 않고 나지도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문수사리는 선주의를 칭찬하였다.
“장하고 장합니다. 천자여,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습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 있던 5백의 보살은 이미 4선(禪)을 얻었고 5통(通)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이 보살들은 선정에 의지하여 앉고 일어나면서 아직 법인(法忍)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역시 비방하지는 않았다.
그때에 그 모든 보살들은 숙명통(宿明通)이 있었기에 옛날에 스스로 지은 나쁜 업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혹은 부처님과 절을 헐었고 탑을 무너뜨렸으며 승가를 파괴하기도 하였던 일들을 보았다. 그들이 이와 같이 남아있는 업을 분명하게 보자 깊은 근심과 뉘우침이 생겨나 항상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매우 깊은 법을 깨달아 들어가지 못했고, 나라는 마음으로 분별하면서 그 죄를 잊지 못했다. 그 때문에 깊은 법인을 얻을 수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5백 보살의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주기 위하여 곧 위신력으로 문수사리를 깨우치시니, 문수사리는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단정히 하고는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손에 날카로운 칼을 잡고 곧장 세존께 나아가서 살해하려 하였다. 그 순간 부처님은 문득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멈추어라, 너는 멈추어라. 역죄(逆罪)를 지어서는 안 되느니라. 나를 해치지 말라. 나는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며 아
주 큰 해를 입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문수사리는 본래부터 나가 없고 사람이 없고 장부가 없으며, 다만 마음속에서만 나와 사람이 있다고 보나니,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에 그는 벌써 나를 해친 것이므로 곧 해쳤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모두 함께 생각하기를 ‘모든 법은 모두 허깨비와 같은지라 이 안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장부도 없고 마노사(摩奴闍)도 없고 마나바(摩那婆)도 없으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라한도 없으며, 부처님도 없고 교법도 없고 승가도 없으므로 이런 역죄도 없고, 역죄를 지을 이도 없거늘 어찌 역죄에 떨어질 이가 있겠는가. 그 까닭은 지금의 이 문수사리는 총명하고 거룩하게 통달하여 지혜가 남보다 더 뛰어나므로 모든 부처님도 찬양하기 때문이요, 이 분은 이미 걸림 없는 깊은 법인을 얻었고 이미 일찍이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세존께 공양하였으므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훌륭하게 분별하여 알면서 이와 같은 진실한 법을 연설할 수 있으며 모든 여래를 평등하게 생각하며 공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칼을 쥐고 여래를 해치려 하자 세존께서는 급히 말씀하시되 ‘멈추어라, 멈추어라. 문수사리야, 너는 나를 해치지 말라. 만일 반드시 해치려 한다면 마땅히 잘 해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까닭은 이 안에 만일 하나의 법이라도 화합된 무더기가 있으면 틀림없이 성취하리니, 이름이 부처님이요 교법이요 승가요 아버지요 어머니요 아라한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니, 결정코 취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하나도 이룰 수 없느니라. 그러나 지금 이 모든 법은 본체도 없고 실제도 없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도 아니어서 허망하고 뒤바뀌고 공한 것이 마치 허깨비와 같다. 그러므로 이 안에는 죄를 얻는 사람도 없고 얻을 만한 죄도 없거늘 그 누가 살해를 하는 이며 또 그 누가 재앙을 받는 이냐’라고 하셨다.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관찰하여 명료하게 알고 나자 그 즉시 무생법인을 얻게 되었으므로
기뻐 뛰면서 그 몸이 일곱 다라수[七多羅樹] 높이의 허공으로 솟아올라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모든 법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이것은 분별로 말미암아 일어나네.
이 안에는 아무 것도 있지 않으니
온갖 법은 모두가 다 공이도다.
뒤바뀌고 허망한 생각으로 인하여
어리석게도 나라는 마음을 취하며
내가 지었던 옛날의 허물을 기억하고
지은 업 중에서 가장 심한 죄를 헤아리네.
과거에 대역(大逆)의 죄를 지었으니
부모와 어진 복전(福田)을 살해한 것이요,
아라한과 비구를 살해한 것이니
이것은 극히 중한 악(惡)이다.
저 악한 업 때문에
나는 장차 큰 고통을 받을 것이네.
의심 그물에 빠진 중생은
법을 듣고 후회하며 미혹을 제거하네.
명성 높으신 이는 나의 독(毒)을 뽑아 주고
나의 의심을 깨뜨려 없애 주시니
나는 이미 법계(法界)를 깨달은지라
많은 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네.
모든 부처님은 훌륭한 방편으로
저희들의 뜻을 잘 헤아리시고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며
모든 의심과 속박을 풀어 주시네.
어느 곳에 모든 부처님이 계실까?
교법과 승가도 역시 그러하나니
부모도 본래 스스로 없고
아라한도 공하고 고요하도다.
이러한 곳에서는 살해함이란 없거늘
어떻게 업과 과보가 있으리.
환술과 같으니 생함이 없으며
모든 법의 성품도 역시 그와 같네.
큰 지혜 지니신 문수라는 분은
법의 근원을 깊이 통달하셨는데
스스로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달려가 여래의 몸을 핍박하였다.
마치 칼처럼 부처님도 그러하여
한 모양[一相]이어서 둘이 아니고
모양이 없어 생함도 없거늘
이 안에서 어떻게 살해가 있으랴.
이 ‘칼을 잡은 묘한 법문’을 말할 때 시방의 항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때 저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는 모든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시자(侍者)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대중 안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함께 그들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이 신변(神變)은 그 누구의 위덕이기에 세간의 대지(大地)를 진동하게 하나이까?”
그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각기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들아, 지금
사바(娑婆)라는 세계가 있으니 그 국토에는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각이라는 명호를 지니신 부처님이 현재 설법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문수사리라 하는 한 우두머리 보살마하살이 있는데, 오래 전에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 보살이 새로 배우는 보살들의 집착하는 마음을 깨기 위하여 몸소 날카로운 칼을 잡고석가여래께 달려가서 깊은 법을 드러내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대지가 이렇게 진동한 것이며, 부처님․세존은 지혜의 칼로 깊은 법을 연설하시어 다시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법안(法眼)이 청정하여지고 마음에 해탈을 얻게 하셨으며, 깊은 법인을 증득하고 보리에 편히 머무르게 하신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러한 큰 신통 변화를 세우셨을 때, 방편의 힘으로 그 대중 안에 와 있는 새로 배우는 온갖 보살들의 선근이 미미하여 아직 분별을 여의지 못하고 모양을 취하는 중생인지라 그들로 하여금 모두 다 칼을 잡았던 일을 보지 못하게 하였고, 또한 그 설법한 것도 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선 이미 매우 사납고 악한 업을 지으셨고 이와 같은 천상과 인간 세계의 가장 큰 스승[大師]까지도 해치려 하셨습니다. 이 업이 만일 성숙해진다면 어느 곳에서 받으실 것입니까?”
그때 문수사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대덕이여, 당신의 말씀과 같아서 나는 이제 그렇게 매우 중한 악업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실로 어느 곳에서 받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리불이여, 제 소견 같아서는 만일 변화로 만들어진 사람이 요술 같은 업이 성숙하면 그때 나도 그렇게 받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저 요술로 된 사람은 마음이나 분별이 없고 생각함도 없기 때문이니, 모든 법은 모두가 허깨비와 같기 때문입니다. 또 사리불이여, 내가
이제 당신에게 물으리니, 당신 뜻대로 대답해 보십시오.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의 뜻과 같다면 실로 칼을 보았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또 반드시 그 나쁜 업을 얻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또 반드시 저 과보를 받는다고 보십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그 칼이 이미 없는지라 다시 업보도 없거늘, 그 누가 이런 업을 짓고 그 누가 그 과보를 받기에 도리어 나에게 과보를 받을 곳을 묻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내가 보는 것과 같이 실로 어떠한 법도 업보가 성숙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업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업보가 성숙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시방 세계에서 온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다 같이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위덕의 힘으로 이 문수사리에게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로 가서 이와 같은 법을 연설하게 하시어, 그곳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함께 저희들과 다름없이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이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각기 일심으로 자기 부처님의 세계를 관찰할지니라.”
그때 시방의 모든 보살들은 문수사리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나서 곧 저마다 본래의 자기 부처님의 세계를 관찰하였다. 그러자 저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의 앞에 있으면서 대중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설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며, 다시 저마다 선주의 천자와 이 법문을 문답하는 모습도 보았다. 또 저마다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든 모습도 보았고
또 그 모든 천자들의 수효의 많고 적음도 이곳과 다르지 않는 것도 보았으며 또 저마다 부처님 세계가 이곳과 다름없이 청정하고 장엄하며 미묘한 것도 보았다. 그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일을 보고 나서는 수특한 마음[殊特心]을 내고 전에 없던 일을 얻고서 소리를 같이하여 찬탄하였다.
“매우 기이하고 수특하나이다. 지금의 이 문수사리는 도덕이 높고 뛰어나서 이 세계에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서도 시방의 부처님 앞에 널리 나타나 있나이다.”
그때 문수사리가 시방의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들어야 합니다. 비유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 배운 뒤에는 그 본래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면서도 요술로 갖가지의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미 반야바라밀의 요술과 같은 법을 배웠기 때문에 곧 모든 요술 같은 법 가운데서 시방의 부처님 국토마다 형상을 나타내거나 모든 불사를 짓고자 하면 뜻대로 곧 다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모두가 허깨비와 같기 때문이니, 이런 이치 때문에 할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해와 달이 허공에 있으면서 처음부터 내려온 일도 없이 모든 그릇 속으로 들어가되, 그 광명이 널리 비치어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시방의 부처님 앞에 널리 나타납니다. 혹은 성문이나 연각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범왕과 제석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혹은 사천왕과 전륜성왕의 일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국왕과 대신으로서 정사하고 교화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서 온갖 악한 세계의 중생들의 형상도 뜻대로 다 나타낼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역시 처음부터 일으킨다거나 짓는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10) 칭찬부법품(稱讚付法品)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만일 어떤 이라도 이 수다라(修多羅)의 깊은 법문을 들을 수 있다면 세간에 출현한 부처님을 만나는 것과 똑같아 다름이 없느니라. 문수사리야, 만일 이 법문을 들으면 수다원을 증득한 것과 다름이 없고, 사다함을 증득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아나함을 증득한 것과 다름이 없고, 아라한을 증득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그것은 여여(如如)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야, 또 만일 이 경을 듣고 마음을 믿고 이해하게 되면, 저 맨 나중 몸의 보살[後身菩薩]이 보리수 아래의 도량[道場]에 앉아 반드시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법문은 곧 그것이 3세의 모든 부처님․세존의 요긴한 도[要道]이기 때문이니라.”
그러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나이다. 마치 공과 같아서 다름이 없고, 모양이 없는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소원이 없는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고, 여여(如如)와 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법계와 같아서 다름이 없고, 실제(實際)와 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평등(平等)과 같아서 다름이 없고, 해탈(解脫)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욕심을 여읜 것[離欲]과 같아서 다름이 없나이다.”
그때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깊은 법문을 수호하고 지니어 저 훗날 말세(末世) 5백 년 동안에 이 경전이 염부제(閻浮提)에 두루 행해지고 유포되어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로 하여금 모두 함께 들을 수 있게 하소서.”
문수사리가 이런 청을 할 때에 곧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음악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모든 나무는 저절로 울창하여졌으며, 온갖 꽃은 모두 다 피어났다. 또 이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니 햇빛과 달빛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으며, 백천억의 하늘들은 기뻐 뛰면서 전에 없던 일들을 얻고는 허공에 있으면서 온갖 종류의 꽃과 모든 꽃다발과 바르는 향, 가루 향을 비내리듯 뿌리니 향기는 두루 퍼져서 시방에 가득히 찼으며, 하늘의 음악을 울리니 그 소리는 온화하고 청아한 가운데 모두 다 함께 합장하고 소리를 같이하며 찬탄하였다.
“희유하고 희유하며 기특한 법문이도다. 지금 이 문수사리 대사의 설법을 듣고 우리는 복의 모임까지 재차 염부제에서 이 큰 법륜을 만났지만 그 어떤 중생이라도 선근을 완전히 갖춘 이후에야 이 깊은 법을 들을 수 있으리라. 만일 모든 중생이 들은 뒤에 믿고 행하면 이 사람이야말로 이미 일찍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또한 이미 깊은 법인을 얻은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하리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이 경전을 듣고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나거나 침몰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속 깊이 좋아하게 되면 이 사람이야말로 2승(乘)의 선근 안으로 오지 않는 사람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이 기이한 상서로움은 이 법문이 미래 세상 염부제 안에서 두루 행하고 유포되면서 머물고 유지되어 소멸하지 않으려는 때문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조금 전에 나타난 상서로움은 오직 이 경전이 염부제에서 두루 행하여지고 유포되면서 머무르고 유지되어 소멸하지 않으려는 때문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다시 성실(誠實)함을 세우셔서 이 경전이 후세에 유행하되 더욱 왕성하여 소멸하지 않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만일 3해탈문으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가리켜 성실이라 한다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하여 소멸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실한 말이 될 것이니라. 문수사리야, 만일 괴롭고[苦]․덧없고[無常]․공하고[空]․나 없음[無我]을 가리켜 성실한 말이라 한다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실한 말이 될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이 ‘나[我]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으며, 장부가 없고, 마노사(摩奴闍)가 없으며, 마나바(摩那婆)가 없고, 번뇌가 없으며, 청정함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이 ‘나고 죽음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물질도 없으며,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으며, 존재도 없고 알음도 없으며, 몸도 없고, 몸으로 증득[身證]함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마음의 과보도 없으며, 기억도 없고, 기억하는 곳[念處]도 없으며, 일으킴도 없고, 일으키는 곳[發處]도 없으며, 물질과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귀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코도 없고 냄새도 없으며, 혀도 없고 맛도 없으며, 몸도 없고 접촉도 없으며, 뜻도 없고 법도 없으며, 욕계도 없고 색계도 없고 무색계도 없으며, 단견(斷見)도 없고 상견(常見)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법이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이 ‘수다원도 없고 수다원의 과위도 없으며, 사다함도 없고 사다함의 과위도 없으며, 아나함도 없고 아나함의 과위도 없으며, 아라한도 없고 아라한의 모든 법도 없으며, 벽지불도 없고 벽지불의 모든 법도 없으며, 여래도 없고 여래의 모든 법도 없으며, 평등함을 증득함도 없고, 힘[力]도 없고, 두려움[畏]도 없으며, 지혜의 결과도 없고, 성스럽게 증득함도 없으며,
공도 없고, 모양이 없음도 없고, 소원이 없음도 없으며, 욕심을 여의는 곳도 없고, 본래 성품을 얻음도 없으며, 평등함도 없고, 증득하는 곳도 없으며, 어두움도 없고, 밝음도 없으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저 언덕도 없고 이 언덕도 없고 그 중간도 없으며, 기억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법이 바로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두루 행하고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하면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이 법문에는 중생과 믿음과 해탈과 얻는 과위와 상응함과 상응하지 않음도 없으며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법이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두루 행하고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하면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참으로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과거의 모든 여래․응공․정변각께서 말씀하기를 그 어떤 법도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가운데서 번뇌를 없애고 해탈하여 열반하게 함이 없고, 또한 중생이나 어떤 법의 나고 없어짐도 없으며 나아가 허물도 없으며 나옴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라고 하셨나니, 마치 과거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도 역시 그러하다’고 하셨나이다. 만일 이들의 법이 바로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두루 행하고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하면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참으로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또 마치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할 때에도 ‘보살로서 이 삼매와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는 이도 없고, 또한 그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언어와 구절의 이치도 없으며 한 문자나 구절도 말하지 않았고 들은 사람도 없으며 이해한 사람도 없고 성불하는 사람도 없다’ 하는 이와 같은 법이 바로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두루
행하고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참으로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계신(戒身)도 없고, 삼매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해탈지견(解脫知見)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법이 바로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참으로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모든 보살들은 보시를 행하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도 않으며, 인욕을 닦지도 않고, 정진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선정에 들어가지도 않고, 반야(般若)를 얻지도 않으며, 보리를 구하지도 않고, 모든 자리[地]를 바꾸지도 않으며, 부처의 도를 얻지도 않고, 모든 힘[力]을 얻지도 않으며,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얻지도 않고, 모든 몸매[相]를 얻지도 않으며, 모든 변재(辯才)도 얻지 않고, 법 바퀴를 굴리지도 않으며, 중생을 제도하여 정각(正覺)을 취하게 하지도 않는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법이 바로 성실한 말씀이라면, 맨 나중 말세의 5백 년 동안에 이 경의 법문이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어 더욱 왕성해져서 소멸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참으로 성실한 말씀이리이다.”
문수사리가 이 성실한 말씀을 말하면서 맹세할 때에 삼천대천세계의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때 미륵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이 있기에 지금 이 세계가 이렇게 크게 진동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아, 너는 이제 그러한 일을 묻지 말아야 하리라. 그 까닭은 미래 세상의 중생들은 근성이 둔하고 믿음이 적은지라 듣는다 하여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과 교만에 떨어져서 오랜 세월 동안 편안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때 미륵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말씀하여 주옵소서. 세존께서 만일 말씀하시면 온갖 세간의 천상과 인간의 대중들에게 많은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경전은 옛날에 이미
74억 백천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세존들께서 바로 이 방소(方所)에서 찬양하고 말씀하신 것이며, 모두가 문수사리와 선주의 천자 등으로 인하여 문답하며 논의한 것이니라.”
미륵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와 선주의 천자는 이 법문을 들은 지 오래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7아승기겁 전에 부처님․세존이 계셨으니, 그 명호는 보화최상사자유보승공덕취(普花最上師子遊步勝功德聚) 여래․응공․정변각이었느니라. 이 선남자들은 그 부처님으로부터 맨 처음 이 경을 들은 것이니라.”
이 경을 설하신 때에 대중 안에 있던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중생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이보다 갑절되는 중생들이 물러나지 않는 법인에 머물렀으며, 이보다 갑절되는 중생들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법눈이 깨끗해졌다.
그때 세존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이에 문수사리와 선주의 천자와 그리고 시방의 모든 보살 대중이며, 그곳에 있던 모든 하늘들과, 존자 사리불․존자 마하 가섭과 모든 비구 대중들이며, 나아가 그곳에 있던 모든 하늘․사람․아수라․모든 용․귀신 등의 온갖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믿어 받아지니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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