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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641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104권

by Kay/케이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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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04

 

 

대보적경 제104권


수 삼장 달마급다 한역
송성수 번역


36. 선주의천자회 ③

6) 파보살상품(破菩薩相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면 보살마하살로서 처음에 마음을 낸[初發心] 이를 무슨 이치 때문에 처음에 마음을 내었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삼계(三界)를 평등하게 관찰하면서 온갖 생각이 생기면 이와 같은 것을 맨 처음에 마음을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문수사리야, 이것을 보살이 처음 마음을 내었다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옵건대 만일 어떤 보살이 탐욕의 마음이 생기면 이것도 처음 마음을 낸 것이요, 성내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도 처음 마음을 낸 것이며,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면 이것도 처음 마음을 낸 것이 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처음 마음을 낸다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그때 선주의(善住意) 천자(天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대사(大士)여, 만일 모든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킨다 하여 이것을 처음 마음을 낸 것이라 한다면, 온갖 번뇌의 속박을 받는 범부는 모두가 곧 마음을 낸 보살이라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저 모든 범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 3독(毒)의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온갖 범부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항상 이 3독의 마음을 낸 이’라고 하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범부는 마음의 세력이 미약하고 하열한지라 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킬 수 없거니와 오직 모든 부처님․세존과 아라한과 벽지불과 물러남이 없는 지위[不退轉地]의
모든 보살들만이 비로소 이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부는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시어 이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잘 알지 못하여 모든 의심의 그물에 빠지게 하십니까? 몹시 두려워할 만한 일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치 저 나는 새가 공중을 오고 갈 때, 그 새의 발자국이 허공에 있는 것입니까, 오고 감이 없는 것입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오고 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이런 이치 때문에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라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오직 저 모든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물러나지 않는 보살만이 일으킬 수 있을 뿐입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의지하는 곳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일으킨다[發]고 하고, 취착(取着)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미 의지하는 곳이 없고 또 취착이 없으면 이것은 곧 없는 구절[無句=斷見]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분별이 없는 구절[句]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생길 수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진실하지 않은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합니다. 이것은 물건이 아닌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오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가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생김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반연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증득함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다투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합니다. 이것은 생각하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말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깨지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글자가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붙잡음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머무름이 없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취하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며, 이것은 버리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하고, 이것은 뽑지 않는 구절이니 이것을 일으킨다 합니다. 천자여, 이것이 보살로서 처음에 마음을 낸 것입니다. 천자여, 마음을 낸 보살이 만일 이와 같은 온갖 법에 대하여 애착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보지도 않고 알지도 않으며, 듣지도 않고 인식하지도 않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하면 이것을 일러 곧 참으로 마음을 내었다 합니다. 천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은 법계(法界)와 평등(平等)과 실제(實際)와 방편(方便)에 의지한다면 그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 만일 기필코 이와 같이 의지한다면 곧 그는 눈과 귀와 뜻 등을 일으키는 것이요, 곧 그는 색취(色取)와 나아가 의취(意取) 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곧 모든 소견이 일어나고, 무명(無明)과 유애(有愛)가 일어나며 12인연(因緣)의 갈래가 일어나고, 5욕(欲)의 일들이 일어나며, 삼계(三界)에 대한 애착이 일어나고, 나라는 소견[我見]이 일어나며, 내 것이라는 소견[我所見]이 일어나고, 나라는 소견이 근본이 되어 예순 두 가지 소견이 일어나며,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가르침[法]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며, 승가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자기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다른 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며, 땅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물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며, 불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바람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며, 허공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의식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며, 사전도(四顚倒)가 일어나고, 사식주(四識住)가 일어나며, 5개(蓋)가 일어나고, 8사(師)가 일어나며, 9뇌(惱)가 일어나고, 십악업의 길[十惡業道]이 일어납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제 요약하여 말하건대 온갖 분별과 분별하는 곳과 온갖 언어와 모양과 온갖 나아갈 데와 욕구(欲求)와 온갖 취착과 생각과 기억과 장애를 보살은 마땅히 일으키니 그대는 사실대로 알아야 합니다. 천자여, 이런 이치 때문에 이제 그대가 만일
이 모든 법에 대하여 애착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을 곧 진실로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야, 너는 이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처음 마음을 내는 이치를 자세히 연설하였도다. 문수사리야, 너는 일찍이 한량없고 끝없는 항하의 모래 수보다 많은 모든 부처님․세존께 공양하였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느니라.”
그때 존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문수사리가 말한, 보살이 맨 처음에 마음을 내는 것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는 일은 서로 평등하면서 차이가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사리불아, 옛날 연등(然燈) 세존께서 나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마나바(摩那婆)야, 너는 미래 세상에 아승기 겁을 지나 부처를 이루리니, 그 명호는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각이라 하리라’고 하셨느니라. 사리불아, 나는 그때 역시 이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서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그와 같이 사리불아, 너는 마땅히 저 모든 보살이 처음에 마음을 내는 이치를 알아야 하리니, 마치 문수사리가 말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이치를 이해하옵건대, 모든 것이 처음에 내는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의 말씀과 같이 처음에 내는 것은 모두가 내지 않는 것이며, 그 내지 않는 것이란 곧 보살이 맨 처음에 마음을 내는 것이옵니다.”
이 법을 말할 때에 3만 3천의 보살은 무생법인을 증득하였고, 5천의 비구는 모든 법 가운데서 번뇌가 다하면서 해탈하였으며, 60억의 모든 천자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법눈이 깨끗해졌다.

그때 존자 대가섭(大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문수사리야말로 다시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지었나이다. 이와 같이 의미가 깊은 법문을 널리 연설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롭게 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옵니다.”
문수사리가 가섭에게 말하였다.
“대덕 가섭이여, 나는 정말로 짓기 어려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지을 것이 없고 또한 이미 지었거나 지금 짓거나 장차 지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이여, 나는 모든 법에 있어서 지은 것도 짓지 않은 것도 없을 뿐이니, 그 이치도 역시 그렇습니다. 또 대가섭이여, 나는 중생을 해탈시킨 일도 없고 속박한 것도 없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섭이여, 어떻게 세존 앞에서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짓는다’는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또 대가섭이여, 나는 지은 바가 없으니, 부디 나에게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짓는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또 대가섭이여, 나는 참으로 짓지 않았습니다. 유독 나만이 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래께서도 짓지 않으셨고 벽지불도 짓지 않았으며 아라한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가섭이여, 어떠한 사람이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지었단 말입니까? 만일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지었다고 굳이 말한다면 오직 젖먹이나 범부로서 그렇게 말한 것이요, 그것은 잘한 말이라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마치 모든 여래께서 이미 다 얻었거나 지금 얻거나 장차 얻을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도 역시 얻을 것이 없거니와 오직 저 범부만이 모두를 다 얻기 때문입니다.”
때에 대가섭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대사(大士)여, 모든 부처님께서 어떤 것들을 얻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나를 얻지 못하시고, 복가라(福伽羅)를 얻지 못하시며, 중생을 얻지 못하시고, 수명(壽命)을 얻지 못하시며, 사부(士夫)를 얻지 못하십니다. 또 단견(斷見)을 얻지 못하시고, 상견(常見)을 얻지 못하시며,
모든 음(陰)을 얻지 못하시고, 모든 입(入)을 얻지 못하시며, 모든 계(界)를 얻지 못하시고, 모든 이름과 물질[名色]을 얻지 못하시며, 욕계(欲界)를 얻지 못하고, 무색계(無色界)를 얻지 못하십니다. 또 분별을 얻지 못하시고, 생각을 얻지 못하시며, 염처(念處)를 얻지 못하시고, 원인으로 생김[因生]을 얻지 못하시며, 뒤바뀜을 얻지 못하시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얻지 못하시며, 이 세상을 얻지 못하시고 저 세상을 얻지 못하시며, 나를 얻지 못하시고, 내 것을 얻지 못하시며, 나아가 온갖 모든 법을 얻지 못하십니다. 대덕 가섭이여,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차례로 얻지 못하시고, 또한 상실하지도 않으시며, 얽어매지도 않으시고, 풀지도 않으시며, 취하거나 버리지도 않으시며,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지도 않으시나니, 가섭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이와 같은 법문을 깨달아 아셔야 합니다. 만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 모두를 얻지 못하신다면 곧 그것들은 법이 아니고 들을 것도 없거니와 모든 범부는 이것을 얻나니 그러므로 범부는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짓지마는 모든 부처님은 짓는 것이 아니요, 벽지불도 짓는 것이 아니며, 아라한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범부가 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섭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들을 짓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단견을 짓고 상견을 지으며 염착(染着)을 짓고 의지(依止)를 지으며 기억[憶念]을 짓고 취하거나 버림을 지으며 나아가 저 온갖 쓸모 없는 이론과 높거나 낮음을 분별하고 따르는 등의 일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대덕 가섭이여,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일체의 법을 모두 짓는 것이 없고, 이미 지었거나 지금 짓거나 장차 지을 것도 없으시거니와 오직 저 범부만은 짓기 어려운 일을 능히 짓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어떠한 것을 이름하여 무생법인이라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무슨 이치 때문에 다시 법에서 생함이 없음[無生]을 인지(忍知)한다 하시며, 보살은 어떻게 하면 이 인지하는 법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실로 어떤 사람도 생하는 법 가운데서 무생인(無生忍)을 얻는 이는 없느니라.
‘얻는다’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다만 언어와 이름이 있을 뿐이니, 생함이 없는 법은 얻을 수 없고 반연(攀緣)을 여의기 때문에 법인(法忍)을 얻지 못하느니라. 얻는 바 없는 것을 얻었으니 얻는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어 이 때문에 무생법인을 얻는다고 말하느니라. 또 문수사리야, 저 무생법인이라 함은 이른바 일체 법이 생함이 없는 것을 인지(忍知)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옴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감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나가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주인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취함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버림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니라. 일체 법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진실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동등함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동등하며 동등함[等等]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법이 견줄 데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물듦이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파괴가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니라. 일체 법이 더러움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깨끗함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공한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모양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여여(如如)한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요, 일체 법이 법성(法性)인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이 실제(實際)인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일체 법은 분별도 없고 상응(相應)함도 없으며 기억도 없고 쓸모 없는 이론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작용도 없고 세력도 없는지라, 미약하고 하열하고 거짓이어서 마치 요술과 같고 꿈과 같으며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거울의 형상과 같고 파초와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물보라와 같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며, 인지할 만한 것 또한 인지할 만하지 않으며 법이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요, 다만 이름으로 그런 법을 말할 뿐이니라. 그러나 그 이름도 역시 얻을 수 없으며, 본래 성품이 스스로 여읜 그러한 것을 인지(忍知)한다고 말하나니, 믿고 이해하여 즐거이 들어가서 미혹도 없고 의심도 없고 놀람도 없고 두려워함도 없고 동요함도 없고 침몰함도 없으면서 두루 몸에 가득 차면 바르게 받아서 행하거니와 몸을 얻지 않으니 또한 머무는 곳이 없느니라. 문수사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 가운데서 무생인을 얻는 것이며 온갖 생각을 행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인지[忍]한다 함은 무엇을 인지하는 것이옵니까? 경계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인지한다고 하나이까?”
그때에 저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대사(大士)여, 어떤 것을 가리켜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이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어느 법이 눈을 파괴하는가. 저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이 바로 눈을 파괴하나니, 빛깔이 눈을 파괴하는 것처럼 저 소리가 귀를 파괴하며 나아가 법이 뜻을 파괴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천자여, 만일 보살이 눈으로 빛깔을 보면서도 모양을 취하지 않고, 즐겨 빠지지도 않으며, 분별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사랑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으며, 본래 성품이 공임을 알아 기억하거나 생각함이 없으면, 뭇 빛깔에 다치거나 망가지지 않나니 나아가 뜻․법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천자여, 만일 그 6정(情)이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고, 파괴도 없고 손상도 없으면, 이러한 보살은 법인(法忍)에 머무르게 되나니, 법인에 머무르기 때문에 모든 법에 대하여 분별하는 것이 없고, 나거나 나지 않음이 없으며, 새거나 새지 않음이 없고, 착하거나 착하지 않음이 없으며, 하거나 하지 않음이 없고,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분별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곧
무생법인이라 합니다.”
이 법을 설할 때 6만 3천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1만 2천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어떻게 하면 보살마하살이 행[勝行]을 일으켜 초월하면서 한층 더 모든 지위[地]에 들어가나이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대체 누가 그 사이에서 훌륭한 행을 일으켜 초월하면서 한층 더 모든 지위에 들어가는 이가 있다고 하십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진 이께서 어찌 모든 보살들이 행한 훌륭한 행과 여러 가지의 한층 더함과 초월하면서 10지(地)를 원만하게 함을 모르시겠나이까?”
문수사리가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천자여, 나는 부처님께서 ‘모든 법은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설하신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대는 믿지 않는 것입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세존의 정성스런 말씀을 누가 감히 믿지 않겠나이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마치 저 요술로 된 사람과 요술에 어찌 수승한 행과 초월함과 한층 더 들어감과 나아가 10지를 두루 갖추는 일이 있겠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만일 요술로 된 사람과 요술에 초월하는 행과 한층 더 들어감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도 역시 이와 같이 초월하면서 한층 더 들어감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마치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으므로 한층 더 들어감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만일 모든 지위에 한층 더 들어가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곧 한층 더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 역시 지위에 한층 더 들어가는 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모든 법은 한층 더 들어감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법은 법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른바 물질[色]은 느낌[受]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느낌도 물질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며, 생각[想]은 지어감[行]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지어감도 생각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며, 의식[識]은 물질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물질도 의식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자여, 이와 같이 하여 온갖 법에 대하여 모두가 이처럼 네 구절[四句]을 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또 눈은 귀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귀도 눈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며, 코는 혀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혀도 코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며, 몸은 뜻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하고 뜻도 몸 가운데에 한층 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법은 그 성품이 각기 다르고 자기의 경계만을 행하면서 완고하고 어리석고 앎이 없고 깨달음도 없나니 마치 풀․나무․담장․벽․기와․돌과 같고 거울 속의 형상과 같으며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증득하거나 접촉할 수도 없고 한 모양[一相]이어서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모든 일체 법은 초월하거나 한층 더 함이 없을 뿐더러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습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저 온갖 법에는 초월하거나 한층 더함이 없음을 이해하면, 다시는 모든 지위를 분별하지 않고 도(道)에 들어감도 없으며, 지위를 버리는 일도 없고 또한 물러남도 없으며 저 보리의 초월하고 한층 더하는 가운데서 잃거나 소멸함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사람이 저 음(陰)․계(界)․입(入)이 바로 진실임을 보면 그는 초월함과 한층 더함이 없나니 그 까닭은 모든 법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이것을 가리켜 보살이 도의 지위를 초월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비유하면 마치 마술사가 열 겹의 수레와 궁전을 마술로 만들어 놓고 그 마술로 만든 사람을 그 안에 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나 궁전은 일정한 처소가 있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없나이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보살의 지위에서 초월함과 한층 더함이 있음을
보는 일도 그와 같습니다.”

7) 파이승상품(破二乘相品)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대사여, 혹 어떤 사람이 대사에게 와서 출가(出家)하기를 소원한다면 대사께서는 그때 어떻게 대답하실 것이며, 어떻게 그를 위하여 출가에 대한 법을 말씀하실 것이며, 어떻게 계(戒)를 주시고 계를 지니도록 가르치시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출가를 원한다면 나는 마땅히 그에게 이런 말을 하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는 이제 출가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출가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에게 진실하게 출가하는 법을 가르쳐주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천자여, 만일 출가하기를 구하면 곧 욕계(欲界)를 구하는 것이요, 색계(色界)를 구하는 것이며 또한 무색계(無色界)를 구하는 것이요, 다시 세간의 5욕 (欲)의 쾌락을 구하고, 그리고 미래 세상에서 받을 과보에 대한 모든 일들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선남자로서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법을 증득하지 못할 것이요, 법을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곧 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만일 취하는 것이 없으면 그는 법을 증득하게 되고 법을 증득하기 때문에 마음을 보지 않으며 마음을 보지 않기 때문에 곧 출가하지 않고 출가하지 않기 때문에 출가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출가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는 곧 일으키지 않습니다.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생(生)함이 없고 생함이 없기 때문에 그는 곧 괴로움이 다하며 괴로움이 다하기 때문에 마침내 다하고 다하기 때문에 그는 곧 다함이 없으며 다함이 없기 때문에 다할 수가 없나니, 다할 수 없으면 곧 그것은 허공입니다. 천자여, 나는 그때에 선남자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또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로 와서 출가하기를 소원하면 나는 다시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는 이제 출가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 마음은 생함이 없고 일으킬 수도 없기 때문이니, 그대는 다른 것을 하면서 이 마음을 보전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또 천자여,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나에게로 와서 출가하기를 소원한다면 나는 다시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만일 지금 수염과 머리칼을 잘라 내거나 없애지 않으면 그대들은 곧 진실한 출가를 한 것이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세존의 설법에는 잘라 내거나 없애는 바가 없습니다.”
선주의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을 잘라내지 않고 또한 없애지도 않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물질[色]의 법을 잘라내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으셨으며,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도 역시 잘라내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으셨습니다. 천자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수염과 머리칼을 없애야 비로소 출가한 것이 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곧 나라는 모양[我相]에 머무는 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모양에 머무르기 때문에 평등함을 보지 못하고, 또 나를 보기 때문에 중생을 보며, 중생을 보기 때문에 수염과 머리칼을 보고, 수염과 머리칼을 보기 때문에 깎아 없앤다는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천자여, 그가 만일 나라는 모양을 보지 않으면 남이라는 모양도 보지 않고, 남이라는 모양이 없기 때문에 아만(我慢)도 없으며, 아만이 없기 때문에 우리[吾我]라 함이 없고, 우리라 함이 없기 때문에 분별함이 없으며, 분별함이 없기 때문에 동요함이 없고, 동요함이 없기 때문에 쓸모 없는 이론이 없으며, 쓸모 없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취하거나 버림이 없고, 취하거나 버림이 없기 때문에 짓거나 짓지 않음도 없으며, 끊거나 끊지 않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합침도 없으며, 덜함도 없고 더함도 없으며,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며, 생각함도 없고 기억함도 없으며, 설명도 없고 언어도 없나니, 이렇게 되면 곧 이름하여 진실에 편히 머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진실의 뜻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진실이란 허공입니다. 이와 같은 허공은 진실이라고 이름할 수 있나니, 일어남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줄거나 늘어남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허공을 진실이라 합니다. 성품의 공함[性空]도 진실이라 하며 여여(如如)도 진실이라 하고, 법계(法界)도 진실이라 하며, 실제(實際)도 진실이라 합니다. 이처럼 진실이란 곧 진실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그 진실함 속에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선주의에게 다시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나에게로 와서 출가하기를 소원하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이제 만일 저 가사(袈裟)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나는 곧 그대들을 참으로 출가한 이들이라 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모든 부처님․세존은 취하는 법이 없고 연설하신 것에도 취착하지 않습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어떠한 것들을 취하시지 않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물질[色]의 항상함이나 덧없음을 취하지 않고 나아가 의식[識]의 항상함이나 덧없음을 취하지 않으며, 눈[眼]의 항상함이나 덧없음을 취하지 않고 나아가 뜻[意]의 항상함이나 덧없음을 취하지 않으며, 빛깔[色]을 취하지 않고 나아가 법(法)을 취하지 않으며, 탐욕을 취하지 않고 성냄을 취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취하지 않고 뒤바뀜도 취하지 않습니다. 천자여,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취하지 않고 역시 버리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천자여, 만일 가사를 취한다면 그는 곧 있다는 견해와 생각이 큰 줄을 알아야 합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나는 ‘가사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청정해지고 해탈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은
천자여, 모든 부처님․세존의 큰 보리의 처소[大菩提處]에는 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어떠한 법이 가사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어떠한 법이 가사냐고 묻는데 탐욕 그것이 가사요, 성냄이 바로 가사며, 어리석음이 바로 가사요, 원인(因)이 가사며 모든 소견이 가사요, 이름과 물질[名色]이 가사며, 허망한 생각이 가사요, 집착이 가사며, 취하는 모양이 가사요, 언어가 가사입니다. 이와 같이 쓸모 없는 이론과 온갖 일체 법이 바로 가사인 것입니다. 만일 모든 법에 착함과 착하지 않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음을 알면 이것은 가사가 없다고 합니다. 만일 가사가 없게 되면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면 더러움[垢濁]도 없으며 더러움이 없으면 장애도 없고, 장애가 없기 때문에 또한 짓는 것도 없나니, 이것을 일러 생각하여 헤아린다[思量]고 합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생각하여 헤아린다 하시는데, 무슨 이치 때문에 생각하여 헤아린다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저 생각하여 헤아린다 함은 법의 평등함에는 더하거나 덜함[增減]도 없고 짓거나 짓지 않음[作不作]도 없으므로 생각하여 헤아린다 합니다. 천자여, 만일 법에 대하여 더하거나 덜함을 짓지 않을 수 있으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같이 다시는 생각하거나 분별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생각하여 헤아린다고 합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어떠한 것들을 이름하여 더하거나 덜함을 짓지 않는다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평등을 초월하는 것이니, 평등을 초월하고 나면 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과거도 얻을 수 없고 미래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법은 여(如)가 아닌지라 더하거나 덜함으로 짓는 것이 없으며, 내가 짓는 것도 없고 사람으로 짓는 것도 없으며, 중생으로 짓는 것도 없고 수명으로 짓는 것도 없으며, 단견(斷見)으로 짓는 것도 없고 상견(常見)으로 짓는 것도 없으며, 분별하는 음(陰)․입(入)․계(界)로 짓는 것도 없고,
분별하는 불(佛)․법(法)․승(僧)으로 짓는 것도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계율을 지니면서 짓는다, 이것은 계율을 깨뜨리면서 짓는다, 이것은 번뇌하면서 짓는다, 이것은 청정하면서 짓는다, 이것은 과위를 얻으면서 짓는다, 이것은 수다원(須陀洹)이 짓는다, 이것은 사다함(斯陀含)이 짓는다, 이것은 아나함(阿那含)이 짓는다, 이것은 아라한(阿羅漢)이 짓는다, 이것은 벽지불이 짓는다, 또 이것은 바로 공이면서 짓는다, 이것은 모양이 없으면서 짓는다, 이것은 소원이 없으면서 짓는다, 이것은 명(明)․해탈(解脫)이 짓는다. 이것은 욕심을 여의면서 짓는다’고 생각함도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천자여, 이 모두는 들어본 적이 없는[無聞] 범부를 위하여 헤아리고 분별하면서 이런 법을 말할 뿐입니다. 그대는 곧 이것은 가장 하열한 어리석은 사람이 법을 얻고자 망령되이 생각하면서 집착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여래는 그의 집착을 끊게 하기 위하여 이 헤아리고 분별하고 짓고 짓지 않는 일을 연설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선주의 천자는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장하나이다. 대사여, 이러한 뜻의 깊은 법문을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도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야 너는 이제 그러한 법을 능히 말하였도다.”
그때 문수사리는 다시 선주의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출가하기를 소원하면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만일 그대가 지금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는다면 곧 참된 출가라 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족계를 받는 법에는 오직 두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두 가지 법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첫째는 바르고 평등한 계[正平等戒]를 받는 것이요, 둘째는 삿되고 평등하지 않은 계[邪不等戒]를 받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삿되고 평등하지 않은 계란 어떤 것인가 하면, 나라는 소견[我見]에 떨어지고, 사람이라는 소견[人見]에 떨어지며, 중생이라는 소견[衆生見]에 떨어지고, 수명이라는 소견[壽命見]에 떨어지며,
사부라는 소견[士夫見]에 떨어지고, 아주 없다는 소견[斷短見]에 떨어지며, 항상 있다는 소견[常見]에 떨어지고, 삿된 소견[邪見]에 떨어지며, 교만(憍慢)에 떨어지고, 탐욕에 떨어지며, 성냄에 떨어지고, 어리석음에 떨어지며, 욕계(欲界)에 떨어지고, 색계(色界)에 떨어지며, 무색계(無色界)에 떨어지고, 취착하여 분별하는 데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천자여, 이것을 요약하여 설명하면 온갖 착하지 않은 법 가운데에 떨어지고 악지식(惡知識)을 따르면서 온갖 법을 허망하게 취하여 벗어나고 해탈할 줄을 모르는 데에 떨어지는 것이니, 천자여, 이것은 삿되고 평등하지 않은 계를 받는다고 합니다. 천자여, 이 가운데 바르고 평등한 계율을 받는 것이란 무엇인가 하면, 공함은 평등이요, 모양이 없음이 평등이며, 소원이 없음이 평등입니다. 천자여, 만일 이와 같은 3해탈문(解脫門)에 들어가 사실대로 깨달아 알면서 분별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면 온갖 법에서 물러남이 없나니, 천자여, 이것을 가리켜 바르고 평등한 계를 받는다고 합니다. 또 천자여, 만일 탐욕이 일어나고 성냄이 일어나고 어리석음이 일어나며, 욕망[愛]과 무명(無明)이 일어나며, 나라는 소견이 일어나고 나라는 소견이 근본이 되어 예순두 가지 소견[六十二見]이 일어나며, 세 가지 삿된 행[三邪行]이 일어나고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이 일어나며, 나아가 여덟 가지 삿됨[八邪]과 아홉 가지 괴로움[九惱]과 열 가지 착하지 않은 업의 길[不善業道] 등이 일어난다면 그 때문에 바른 계[正戒]를 받는다고 합니다. 천자여, 비유하면 온갖 종자와 풀과 나무와 숲은 모두가 대지(大地)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지만 그 땅은 평등하여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것이 없듯이 천자여, 만일 부처님 법 가운데서 계율을 바르게 받으면 그 때문에 구족하게 성취됩니다. 천자여, 비유하면 온갖 풀과 나무와 종자가 대지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더욱 자라나듯이 천자여, 이와 같이 바른 계율을 갖추어 받아야 합니다. 그 까닭은 계율에 머무르면 도법(道法)이 더욱 자라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 종자와 같이 계율도 역시 그러합니다. 또 마치 종자가 더욱 자라면 결실을 맺었다는 이름을 붙이듯이 계율에 머무르면 일체의
보리를 돕는 갈래의 법[助菩提分法]이 타나나고 더욱 자라므로 성취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천자여, 이것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세존과 모든 성문이 받는 바른 계율인 것이며, 이른바 저 3해탈문에 들어가서 온갖 쓸모 없는 이론과 언어가 소멸하는 곳입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구족계를 능히 받는다면 이것은 바르게 받은 것으로서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이제 다시 이와 같이 출가하고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이에게 이렇게 가르치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만일 금계(禁戒)를 지니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을 가리켜 곧 진실하게 지닌다고 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온갖 일체 법은 모두 취할 것이 없나니, 그 때문에 지닐 수가 없거늘 어떻게 이 계율만을 유독 지님이 있겠습니까?
천자여, 계율을 지닐 수 있다면 곧 삼계(三界) 동안을 지닐 것입니다.
천자여, 그대의 뜻에서는 무엇으로 계율을 삼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만일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두루 갖추면 이것을 계율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어떤 것을 바라제목차라 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을 지니면서 3업(業)을 두루 갖추면 이것을 곧 바라제목차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바로 현재 어느 곳에 이 몸의 업[身業]으로서 지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처럼 과거나 미래에도 역시 지을 것이 없으므로 그는 일체의 짓는 것도 없고 모양조차 없는데도 혹은 청색이다, 황색이다, 적색이다, 백색이다, 그리고 파리색(頗梨色)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 이름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설명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 이름은 무위(無爲)여서 실로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이와 같아서 뜻으로 짓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무위가 유위(有爲)를 지을 수 있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일 지니지 않으면 참으로 계율을 지닌다 합니다. 천자여, 만일 증상 계학(增上戒學)과 증상 심학(增上心學)과 증상 혜학(增上慧學)을 말한다면 배움의 실제(實際)를 위하여 ‘지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계학이라 하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심학이라 하며, 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혜학이라 한다’고,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심학[最上心學]이라 하나니, 심학에서처럼 계학과 혜학도 역시 그러합니다. 천자여, 만일 마음을 얻지 못하면 곧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면 지혜를 생각하지 못하며, 지혜를 생각하지 못하면 다시는 온갖 의혹을 일으킴이 없습니다. 이미 의혹이 없다면 곧 계율을 지니지 않는 것이요, 만일 계율을 지니지 않는다면 이것을 곧 참으로 계율을 지니는 것이라 합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그가 계율을 지닌다면 하고자 하는 것이 없고,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 까닭에 물러남이 없으며, 물러남이 없는 까닭에 그는 곧 청정하고, 그는 청정한 까닭에 곧 해탈하게 되며, 그는 해탈한 까닭에 곧 정진을 얻고, 그가 정진한 까닭에 곧 번뇌[漏]가 없으며 그는 번뇌가 없는 까닭에 곧 바른 행에 머무르고, 바른 행에 머무르는 까닭에 곧 모양이 없으며, 모양이 없는 까닭에 그것은 곧 허공과 같나니 저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배우면 곧 배우지 않는 것이 되고 그는 배움이 없는 까닭에 곧 진실한 배움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배우느냐 하면
처소가 없는[無處] 곳에서 배웁니다. 어떤 것을 처소가 없다는 것인가 하면 공이요, 평등입니다. 천자여, 만일 공하고 평등한 데에 바르게 머무르면 이것을 진실로 계학(戒學)에 머무른다 합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고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으면 나는 다시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이제 만일 저 온갖 삼천대천세계의 믿음이 돈독한 시주자[檀越]에게서 공양과 뭇 살림 기구를 받으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계율을 청정하게 지닌다고 한다’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이른바 만일 어떤 사람이 저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 이 세 가지를 취하면 이것은 은혜를 갚는 것이 됩니다. 또 만일 그것을 보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되고, 또 그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되며, 또 그것을 분별하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됩니다. 천자여, 만일 그것을 보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는다면 갚을 만한 그 무엇이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본래부터 마지막까지 청정한 것이 갚음이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그가 만일 취하고 보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그리고 갚겠다는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은 범부로서 아라한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범부는 언제나 항상 집착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면서 여기서는 받고 저기서는 주었으며 그것은 더럽고 이것은 깨끗하다고 하기 때문이니, 이런 분별 때문에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은혜를 갚는 까닭은, 모든 범부는 나고 죽는 존재[有]여서 후생의 몸을 취하는 것이므로 이 때문에 그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모든 아라한은 다음 생을 받지 않는지라 끝내
보지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고 이것과 저것이 없으며 다시는 몸을 받지 않거늘 어디에 은혜를 갚겠습니까? 천자여, 만일 그의 보시를 받는다면 마땅히 세 가지 청정함[淨]을 행한 연후에 받아야 합니다. 세 가지 청정함이란 첫째는 자기의 몸을 보지 않으니 곧 보시하는 이가 없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보지 않으니 곧 받는 이가 없는 것이며, 셋째는 재물을 보지 않으니 곧 보시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청정이 최고의 청정함이니 이렇게 청정하거늘 다시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천자여, 이런 이치 때문에 나는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믿음이 돈독한 시주자의 온갖 공양거리를 받으면서도 분별하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가리켜 세간의 진실하고 수승한 복전(福田)이라 하고, 그것을 가리켜 진실한 출가라 하며, 그것을 가리켜 청정하게 지니는 계율이라 한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를 받고 나면 다시 가르치나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이제 고요한 곳[阿蘭拏]에 가지도 않고 마을에 있지도 않으며, 가까운 데에 살지도 않고, 먼 데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혼자 앉아 있지도 않고, 대중 속에 있지도 않으며, 말이 많지도 않고, 잠자코 있지도 않으며, 걸식하지도 않고, 청을 받지도 않으며, 누더기를 입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서 옷과 발우를 받지도 않으며, 많이 먹지도 않고, 욕심이 적지도 않으며, 많이 구하지도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나무 아래에 앉지도 않고, 한 데에 있지도 않으며, 썩어 문드러진 약을 먹지도 않고, 고기와 소(蘇)도 받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만일 온갖 두타(頭陀)에 대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수행하면 곧 구족하게 두타를 행한다고 하나니 그 까닭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행하면 곧 그것은 거만한 마음으로 모든 모양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할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이렇게 행한다면 곧 이런 생각을 하리니, ‘나는 누더기를 받았고 나는 걸식을 한다. 나는 나무 아래에 머무르고 나는
거리에 앉아 있다. 나는 고요한 곳에 가고 나는 썩어 문드러진 약을 먹는다. 나는 욕심이 적고 나는 만족할 줄을 알며 나는 두타를 행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바르게 행하는 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그것을 행하면서도 온갖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때 나조차도 보지 않거늘 하물며 두타의 공덕이 있다고 헤아리겠습니까? 만일 있다고 본다면 옳지 못합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만일 어떤 이가 이와 같이 두타를 행하면서 기억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면 나는 그것을 일러 진실한 두타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만일 이러한 사람이라면 탐욕을 털어 버리고 성냄을 털어 버리며, 어리석음을 털어 버리고 삼계(三界)를 털어 버리며, 5음(陰)을 털어 버리고 12입(入)을 털어 버리며 18계(界)를 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나는 진실한 두타라고 말합니다. 왜냐 하면 그 두타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으며 닦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으며 법이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진실한 두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고 계를 받고 나면 다시 가르쳐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이제 4성제(聖諦)를 관찰하지도 말고 4념처(念處)를 닦지도 말며, 4정근(正勤)을 닦지도 말고, 4여의족(如意足)을 닦지도 말며, 5근(根)을 닦지도 말고, 5력(力)을 닦지도 말며, 7각분(覺分)을 닦지도 말고 8성도(聖道)를 닦지도 말며, 37조보리법(助菩提法)을 닦지도 말고, 3해탈문(解脫門)을 증득하지도 말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저 4성제란 생함이 없는 모양에 들어가 있으므로 기억하거나 알 수도 없고, 닦거나 증득할 수도 없나니 저 생함이 없는 가운데서 어떻게 증득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천자여, 그러므로 나는 ‘염처(念處)라 하면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온갖 모든 법이기 때문에 염처라 한다’고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비구가 욕계에 머무르지도 않고 색계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색계에 머무르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비구가 4념처에 머무르지 않는지라 4념처를 생각하며 닦는다’고 하나니, 어떻게 그것대로 생각하고 닦겠습니까? 생각하지도 않고 닦지도 않기 때문에 ‘생각하고 닦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서 차례로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법[三十七助菩提法]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천자여, 저 선행비구(禪行比丘)는 모든 법에서 얻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닦지도 않고 증득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저 모든 법은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법과 같나니, 그것이 비록 이름은 있다 하더라도 얻을 수 없고 오직 분별하는 인연 때문에 생길 뿐이며 한 모양이어서 모양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름으로 설명하지만 그 설명도 역시 없기 때문이니, 비록 또 이름으로 증득하여 안다 하더라도 끝내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곧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법을 사실대로 깨달아 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선주의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대사여, 선행(禪行)비구라 하시는데, 어떤 것을 선행비구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저 비구란 모든 법에서 다만 하나의 행만을 취하면서 극히 수순(隨順)하는 사람이니, 이른바 생함이 없는[無生] 것이 선행이요, 또 취할만한 조그마한 법도 없는 것이 선행입니다. 또 어느 법도 취하지 않나니, 이른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취하지 않고 삼계(三界)를 취하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취하지 않는 이와 같은 평등이 바로 선행입니다. 천자여, 선행을 하는 이는 하나의 법도 상응함이 없으며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나니, 이것이 선행인 것입니다.”

그때 거기 모인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이 모두 함께 의심하기를 ‘지금 이 문수사리가 하신 말씀이 이와 같다면 어떻게 성현의 말씀과 상응할 수 있겠느냐. 세존께서는 항상 ‘만일 어떤 사람이 3해탈문에 들면 열반이라 한다’고 말씀하셨고, 또 부처님께서는 ‘만일 어떤 이가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법을 수행하면 곧 열반을 증득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문수사리는 다시 ‘이 보리를 돕는 행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또 ‘저 삼해탈문에 들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행여 문수사리가 허망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고 하였다.
이때 문수사리는 모든 비구와 대중들이 다 함께 의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곧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가장 훌륭하고 믿을 만하신 세존께서 당신을 일러 너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다[智慧第一]”라고 하셨습니다.
대덕이여, 당신은 언제 욕심 여의는 법을 증득하셨습니까? 우선 그 법을 증득할 때 4성제(聖諦)는 보지 않으셨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갈래의 법[三十七助菩提分法]은 닦지 않으셨습니까?”
“닦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3해탈문(解脫門)에는 들지 않으셨습니까?”
“들지 않았습니다. 대사여, 저는 그때 볼 수 있고 없앨 수 있고 닦을 수 있고 증득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어느 한 법도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법은 작용[爲]이 없고 생함[生]이 없고 말[言]이 없어서 그것은 공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공이라 하면 그 어디에 증득할 만한 것이 있었겠습니까?”
이 법을 말할 때에 대중 안의 3만의 비구가 법에서 번뇌[漏]가 다하면서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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