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101권
대보적경 제101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34.공덕보화부보살회(功德寶花敷菩薩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250인과 한량없는 보살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때 그 모인 대중 가운데 개부공덕보화(開敷功德寶花) 보살이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뒤에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오니 가엾이 여기시어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공덕화(功德花)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마음대로 물어라 그대를 위하여 설하겠노라.”
그때 공덕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시방세계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 여래의 명호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들이 받아 지니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공덕화야, 그대는 지금 하늘과 인간의 세간과, 미래 세상의 모든 보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러한 이치를 묻는구나. 귀기울여 듣고 그 뜻을 잘 생각할 지니라. 그대를 위하여 설하겠노라.”
공덕화가 답하였다.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공덕화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동방(東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일체법공덕장엄(一切法功德莊嚴)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보집일체이익겁(普集一切利益劫)이라 한다. 현재 그 곳에서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무량공덕보장엄위덕왕(無量功德寶莊嚴威德王) 여래라 하느니라. 수명은 헤아릴 수 없고 그 부처님 대중의 모임은 한량없고 그지없나니 이들은 모두 청정하고 위대한 보살들이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지니면 곧 육만 겁 동안의 나고 죽는 죄를 멸하게 되고 몸을 바꾸어 요설무애(樂說無礙)라는 다라니(陀羅尼)를 얻게 되느니라. 십구지의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세존께서 두루 설하신 법은 항상 그에게 변재(辯才)를 주면서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이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지니면
장차 이러한 모든 공덕 얻게 되며
또한 그 밖의 훌륭한 법을 성취하면서
제일가는 부처님 보리를 속히 증득하리라.
“또 공덕화야, 남방(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공덕보장엄(功德寶莊嚴)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광대공덕겁(廣大功德劫)이라 한다. 현재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공덕보승장엄위덕(功德寶勝莊嚴威德)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몸을 바꾸어 장차 일륜광명변조삼매(日輪光明遍照三昧)를 얻게 되리라.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원하는 대로 왕생하며, 또한 한량없는 공덕과 장엄한 불국토를 섭수(攝受)하여 그 세계에 태어난 뒤에는 32상(相)을 갖추고 걸림 없는 변재를 얻으며 몸을 바꾸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몸이 바뀌어 생각하기 어려운 선정[難思定] 얻으며
32상으로 장엄하고
한 생[一生]에 보리의 과위(果位)를 증득하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서방(西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이일체우암(離一切憂闇)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능승왕겁(能勝王劫)이라 한다. 현재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일체법수승변재장엄(一切法殊勝辯才莊嚴)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독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고 칼이 그들을 베지 못하며, 불이 그들을 태우지 못하고 물이 그들을 빠뜨리지 못하리라. 이 몸을 버린 뒤에는 화생(化生)하여 백선(百旋)이라는 다라니를 얻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물과 불과 칼과 독이 해치지 못하며
몸을 바꾸어 화생의 보(報)를 받게 되고
백선 다라니를 성취하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북방(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이진암(離塵闇)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지대명칭겁(持大名稱劫)이라 한다. 현재 그 곳에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적집무량변재지혜(積集無量辯才智慧)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곧 60구지(俱胝) 나유타(那由他)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일이 될 것이다. 변일체제(遍一切處) 다라니와 무진장(無盡藏) 다라니를 얻으며 미처 보리를 이루기 전이라도 끝내 삼악취(三惡趣)에 들어가지 않으며, 항상 모든 부처님 세계에 왕생할 것이며 보살의 행을 수행하면서 한량없는 악취의 중생을 제도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불퇴전(不退轉)을 얻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얻게 되는 공덕은 끝이 없으며
반드시 다라니를 얻게 되고
위없는 보리의 과위를 성취하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동남방(東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승묘장엄(勝妙莊嚴)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출생공덕겁(出生功德劫)이라 한다. 현재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천운뢰후성왕(千雲雷吼聲王)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청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몸을 바꾸어 부처님의
4무소외(無所畏)와 4신족(神足)과 대자대비와 18불공법(不共法)을 얻을 것이며, 얻게 되는 국토의 공덕과 장엄도 서방의 극락세계(極樂世界)와 같아서 조금도 다르지 않으리라. 만일 여인이 받아 지니게 되면 그녀들은 모두 장부의 몸으로 바꾸어지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지니면
불가사의하고 훌륭한 공덕을 얻으며
한량없는 부처님을 항상 뵙게 되고
여인이면 장부의 몸으로 바뀌어지리라.
“또 공덕화야, 서남방(西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무량장엄(無量莊嚴)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능생묘법겁(能生妙法劫)이라 한다. 현재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최상묘색수승광명(最上妙色殊勝光明)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곧 90구지의 모든 부처님 여래를 받들어 섬기는 일이 될 것이며, 도탈일체중생삼매(度脫一切衆生三昧)를 얻게 되리라. 도탈일체중생삼매라 부르는 이유는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삼매에 의거하여 법을 설할 때에는 삼천대천세계 안의 악취중생들이 모두 해탈하며 인간과 천상에 나게 되면서 두루 안락을 얻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니, 이것이 마치 열의(悅意) 여래의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항상 누리는 안락과 같기 때문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태어날 때마다 항상 큰 위덕 갖추며
여러 감관과 빛깔과 힘이 모두 뛰어나고
지혜가 그지없고 집착한 바 없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서북방(西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이구(離垢) 세계라 하고, 겁의 이름은 광족겁(廣族劫)이라 한다. 그 곳에는 현재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종종승광명위덕왕(種種勝光明威德王)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몸을 바꾸어 무량변재장엄(無量辯才莊嚴) 다라니를 얻고 80구지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모두 다 받아 지니며 얻게 될 국토의 공덕과 장엄 역시 서방의 극락세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이 명호 받아 지니면
국토는 마치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와 같으며
깊은 모든 법의 지혜를 성취하고
한 생[一生] 동안에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동북방(東北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무(無憂) 세계라 한다. 겁의 이름은 변재장엄겁(辯才莊嚴劫)이요, 그곳에 현재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무수겁적집보리(無數劫積集菩提)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곧 80구지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 공양하는 것이 되고, 몸을 바꾸어 60가지 음성과 변재를 두루 갖추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지혜가 끝이 없어 저 언덕에 이르며
80구지의 부처님께 공양한 것과 같고
몸을 바꾸어 묘한 변재를 증득하게 되리라.
“또 공덕화야, 상방(上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무량공덕장엄위덕(無量功德莊嚴威德) 세계라 한다. 겁의 이름은 무량후성겁(無量喉聲劫)이요, 그곳에 현재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허공후성정묘장엄광명조(虛空喉聲精妙莊嚴光明照)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태어나는 곳마다 종족(種族)이 존귀하고, 성품이 밝고 총명하며, 세속의 글과 말을 잘 통달하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신뢰하며, 모든 땅[地]안에서 청정한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두루 갖추고, 전생의 일을 아는 지혜[宿命智]를 얻으며 다섯 가지의 신통을 얻고 또한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을 얻으며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태어날 적마다 모든 부처님을 여의는 일이 없고
여덟 가지 범천의 음성[梵音聲]을 두루 갖추며
제일가는 보리의 과위를 속히 증득하리라.
“또 공덕화야, 하방(下方)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종종음성(種種音聲) 세계라 한다. 겁의 이름은 적집지혜겁(積集智慧劫)이요, 그곳에 현재 부처님이 계시는데 명호는 일체법문신변위덕광명조요(一切法門神變威德光明照曜) 여래라 하느니라. 만일 믿음이 청정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면 몸을 바꾼 뒤에 성취정각(成就正覺) 다라니를 얻고 90구지의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설하신 법을 받아 지니며 한 생 동안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지니면
성취정각의 다라니를 얻으며
한량없는 모든 불법 받아 지니고
한 생 동안에 큰 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그때 개부공덕보화(開敷功德寶花) 보살과 일체공덕변재음(一切功德辯才音) 보살은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고 8만 구지의 보살은 모두 다 위없는 보리를 향해 나아가 불퇴전을 얻었으며 3나유타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모두 설하시자 법을 들은 공덕화 보살과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건달바 등이 크게 기뻐하면서 믿음을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였다.
35. 선덕천자회(善德天子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대중 일천 인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 일만 인과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모든 천자들도 함께 있었으며, 문수사리 보살마하살과 선덕천자(善德天子)도 그 대중 속에 함께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이르셨다.
“너는 마땅히 이 모든 하늘의 대중과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심묘(深妙)한 경계를 연설해야 하리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눈․귀․코․혀․몸․의지의 경계가 아니요, 빛깔․소리․냄새․맛․촉감․법의 경계도 아님을 알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경계 아닌 것이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옵니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부처님께서 얻으신 그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슨 경계가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空)의 경계이니 모든 소견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모양이 없는[無相] 경계이니 온갖 모양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소원이 없는[無願] 경계이니 삼계(三界)가 평등하기 때문이요, 지음 있는 것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함이 없는[無爲] 경계이니 함이 있는 것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함이 없는 경계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억함이 없는[無念] 것이 곧 함이 없는 경계이니라.”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함이 없는 것 등이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어서 기억함이 없게 된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이렇게 말하게 됩니까?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에 설하는 바도 없고 설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가히 설할 수가 없나니,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야, 부처님의 경계를 어디에서 구하여야겠느냐?”
“온갖 중생의 번뇌 안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의 번뇌의 성품은 얻을 수 없나니, 성문이나 연각으로서 알 수 있는 바가 아닌 까닭에 이것을 곧 모든 부처님의 경계라 합니다.”
“문수사리야, 부처님의 경계는 늘거나 줄어듦[增減]이 있느냐?”
“늘거나 줄어듦이 없습니다.”
“어떻게 일체 중생의 번뇌의 본 성품을 분명히 아느냐?”
“부처님의 경계가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번뇌의 본래 성품도 늘거나 줄어듦이 없습니다.”
“어떤 것을 번뇌의 본래 성품이라 하느냐?”
“번뇌의 본래 성품은 바로 부처님 경계의 본래 성품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의 성품이 부처님의 경계와 다르다면 곧 ‘부처님은 온갖 법의 평등한 성품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리니, 번뇌의 성품이 곧 부처님의 경계의 성품이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평등한 성품에 머무른다’고 설합니다.”
또 물으셨다.
“너는 여래가 어떠한 평등에 머무른다고 보느냐?”
“제가 이해한 것과 같다면 중생들이 현재 짓고 있는 욕심․성냄․어리석음이 머무는 그 자리에 평등하게 여래는 머물게 됩니다.”
“중생이 현재 짓고 있는 3독(毒)의 번뇌는 어떠한 평등에 머무르는 것이냐?”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평등한 성품 안에 머무릅니다.”
“문수사리야, 그 성품이 공한 가운데 어떻게 다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겠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것이 있는 가운데 성품의 공한 것이 있어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기에 그 가운데서 성품의 공함이 있다고 말하느냐?”
“문자와 언어 가운데서 성품의 공함이 있다고 말하며, 성품의 공함이 있기 때문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비구들아, 생김[生]이 없고, 함[爲]이 없고, 지음[作]이 없고, 일어남[起]이 없는 것이 있느니라. 만일 생김이 없고 함이 없고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는 것이 있지 않다면, 역시 생김이 있고 함이 있고 지음이 있고 일어남이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생김이 없고 일어남이 없는 것도 있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생김도 있고 일어남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고 하심과 같습니다. 그와 같아서 세존이시여, 만일 성품의 공함이 없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다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의 온갖 소견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이런 이치 때문에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번뇌가 머문다는 것은 바로 성품의 공함이 머무른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행을 관하는 사람[觀行]이 번뇌를 여의면서 성품의 공함을 구한다면 서로가 걸맞지 않거늘 어떻게 따로 성품의 공함이 있어서 번뇌와는 다르다 하겠습니까? 만일 번뇌를 관하면 바로 이것이 성품의 공함이니, 바른 수행이 되겠나이다.
”문수사리야, 너는 번뇌에 머물러 있느냐? 번뇌를 여의었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모든 번뇌는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평등한지라 저는 바르게 수행하여 이 평등에 들어가나니 곧 번뇌를 여의지도 않고 번뇌에 머무르지도 않습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스스로를 가리켜 욕심과 소견과 다른 번뇌를 여의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 두 가지 견해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두 가지 견해인가 하면 번뇌가 있다고 여기는 상견(常見)과 번뇌가 없다고 여기는 단견(斷見)이 그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르게 수행하는 이는 나와 남[自他]이나, 있다 없다[有無]하는 모양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법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어떤 것에 의지하여야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되느냐?”
“바르게 수행하는 이는 의지하는 바가 없습니다.”
“도(道)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수행하는 것이냐?”
“만일 의지하는 바가 있어서 수행한다면 곧 이것은 함이 있는[有爲] 것입니다. 만일 함이 있는 것을 행하면 평등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생기고 머무르고 무너짐[生住壞]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함이 없는[無爲]가운데서는 혹시 수(數)가 있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함이 없는데도 수가 있다면 그것은 곧 함이 있는 것이요, 함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성현이 함이 없음을 증득하면 곧 이런 법이 있거늘 어찌 수가 없다 하느냐?”
“법에는 수가 없기 때문에 성현은 수를 멀리 여의나니 그러므로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문수야, 너는
성현의 법[聖法]을 증득하였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化人]에게 ‘너는 성현의 법을 증득했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야,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면 곧 증득하였다거나 증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모든 법은 모두가 환술과 같다’고 설하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하였느니라, 그러하였느니라.”
“만일 일체 법이 모두 환술과 같다면 어떻게 ‘너는 성현의 법을 증득하였느냐, 증득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십니까?”
“문수야, 너는 3승(乘)에서 어떤 평등을 증득하였느냐?”
“부처님 경계의 평등이오니 저는 그것을 증득하였습니다.”
“너는 부처님의 경계를 증득하였느냐?”
“만일 세존께서 증득하셨다면 저도 역시 증득하여야 되나이다.”
그때 존자 수보리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경계를 증득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성문의 경계에서 얻은 것이 있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성자(聖者)는 얻은 것도 아니고 얻지 않은 것도 아닌 데서 해탈하였습니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여래께서도 역시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계가 없는 것도 아닌 데서 해탈하셨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새로 뜻을 일으킨 보살을 돕지도 않으면서 법을 연설하시는군요.”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수보리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어떤 의사가 병든 이를 돕는다고 맵거나 시거나 쓰거나 떫은 약들을 주지 않는다면 그 의사는 그 병든 이를 낫게 해주는 것입니까, 죽음을 주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것은 죽음의 고통을 주는 것이지 안락을 베푸는 일은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 설법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만일 다른 이를 보호하여 그가 놀라거나 두려워할까 염려스러워 이처럼 매우 깊은 이치를 숨기고서, 다만 여러 글귀와 번드르르한 글과 말로만 그에게 연설한다면 이는 곧 중생에게 늙고 병들고 죽은 고통을 주는 것이요,
병이 없는 안락과 열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을 연설할 때에 5백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리었으며, 8천의 하늘과 사람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안에서 법 눈[法眼]이 깨끗해졌으며 7백의 천자(天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원을 세웠다.
‘저희들은 장차 미래 세상에 문수사리와 같은 변재를 얻을지어다.’
그때 장로 수보리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성문승의 법으로 성문을 위하여 말씀하지 않습니까?”
“온갖 승(乘)의 법이 바로 제가 설하는 법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성문승이십니까, 벽지불승이십니까? 응(應)․정등각승(正等覺乘)이십니까?”
“나는 성문승이면서도 다른 이의 음성으로 인하여 이해를 내지 않고, 나는 벽지불승이면서도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며, 나는 응․정등각승이면서도 본래의 서원[本願]을 버리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이 어떻게 성문입니까?”
“그 모든 중생들이 아직 일찍이 법을 듣지 못했으면 법을 얻어듣게 하기 위하여 나는 성문이 됩니다.”
또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벽지불입니까?”
“중생과 법계(法界)를 믿게 하고 깨닫게 하나니, 그 때문에 나는 벽지불이 됩니다.”
또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정등각입니까?”
말하였다.
“온갖 모든 법과 법계는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분명히 아는 까닭에 나는 응․정등각이 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결정코 어느 자리[地]에 머물러 계십니까?”
“온갖 자리에 다 머무릅니다.”
“당신이 범부의 자리에야 머무르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나는 역시 틀림없이 범부 자리에도 머무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떤 비밀한 뜻[密意]이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든 법은
제 성품이 평등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일 온갖 법이 다 평등하다면 어느 곳에서 모든 법을 건립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문의 자리입니까, 벽지불의 자리입니까, 보살 또는 부처님의 자리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비유하면 시방의 허공 중에서 ‘여기는 동쪽의 허공이다’ 하고 이와 같이 ‘여기는 남쪽․서쪽․북쪽이요, 동․서․남․북 사이의 방향이며 위와 아래다’라고 말을 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은 언설로 갖가지 차별을 둔다고 하여도 그 허공에는 차별이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어진 이여, 온갖 법의 필경공(畢竟空) 가운데서 갖가지 모든 자리[地]의 모양을 건립한다 하여도 역시 공한 성품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증득하여 드셨다가 도로 나오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어진 이는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보살의 지혜와 방편입니다. 정성이생에 사실대로 증득하여 들었으나 방편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활을 아주 잘 쏘는 사람이 자신의 원수를 죽이려고 한다고 비유해 봅시다. 그 명사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마침 그 아들은 너른 들판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명사수는 아들을 자신의 원수로 잘못 알고 활을 쏘았습니다. 그의 아들이 ‘제게는 잘못이 없는데 왜 저를 죽이려하십니까’ 하며 크게 울부짖고서야 비로소 그 명사수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리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그 화살을 뽑아 주니 바로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보살도 그와 같이 성문과 벽지불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정성이생에 들어가 있지만 다시 그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문이나 보살의 지위에서 떨어지지는 않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부처님의 자리[佛地]라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보살이 이런 자리를 얻게 되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일 모든 보살이 온갖 자리에 머물면서도
머무는 것이 없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온갖 자리를 두루 잘 연설하면서도 낮고 천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이가 수행하면서 온갖 중생의 번뇌를 다하고자 하나 법계는 다함이 없고 비록 함이 없음에 함이 있음을 행하며,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수행하지 않고 생각으로 열반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뜻하고 원한 바를 모두 원만하게 하고, 나 없음의 지혜[無我忍]를 얻으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면서 저 지혜 없는 사람에게 성을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법을 구하는 이를 위하여 법륜(法輪)을 굴리지만 법계에는 또한 차별이 없나니 이렇게 수행하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만일 모든 보살이 악마와 원수를 꺾어 조복하면서도 실제로는 4마(魔)를 짓고 있으면 이런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의 행을 모든 세간 사람들이 믿기란 심히 어렵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보살의 행은 세간에 있어서 세간의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저에게 이 세간을 초월하는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간이란 5온(蘊)을 이름한 것입니다. 이 5온 가운데서 물질[色]은 물보라의 성품이요, 느낌[愛]은 물거품의 성품이며, 생각[想]은 아지랑이의 성품이요, 지어감[行]은 파초의 성품이며, 의식[識]은 환술의 성품입니다. 이와 같이 세간의 본래 성품은 물보라요 물거품이며, 아지랭이요 파초며 환술과 같은 것인 줄 알아야 하나니 이런 가운데에는 온(蘊)도 없고 온이라는 문자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문자도 없으며, 세간도 없고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만일 5온을 이와 같이 바르게 알면 이것을 가리켜 훌륭하게 안다고 하나니 만일 바로 훌륭하게 알면 본래부터 해탈한 것이요, 본래부터 해탈하였다면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5온의 본래 성품은 공한 것입니다. 본래 성품이 공한 것이라면 나와 내 것이 없고, 나와 내 것이 없으면 이것을 곧 둘이 없으며, 본래부터 둘이 없으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으면 집착할 것도 없으며,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이 5온은 인연(因緣)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연에 속한다면 나에 속하지도 않고 중생에게 속하지도 않으며, 만일 나에 속하지도 않고 중생에게 속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곧 주인이 없는 것이요, 주인이 없다면 취하는 이가 없고 취하는 이가 없으면 다툼이 없으며, 이런 다툼이 없으면 이것이 사문(沙門)의 법이니, 마치 손으로 허공을 그으면 닿거나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공하고 평등한 성품을 수행하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5온의 법계는 똑같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라 이것은 경계[界]가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 경계가 없다면 땅의 요소[界]도 없고 물․불․바람의 요소도 없으며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도 없고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과 나고 죽음[生死]과 열반(涅槃)의 경계도 없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들고나면 세간과 함께 하면서도 머무는 바가 없어 세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 세간을 초월하는 법을 말할 때 2백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으므로 저마다 울다라승(鬱多羅僧)의 옷을 벗어서 문수사리를 덮어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이 법문에서 믿음과 이해를 내지 않는다면 그는 얻는 바도 없고 증득한 바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 수보리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당신들은 조금이라도 얻거나 증득한 바가 있습니까?”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만일 증상만에 빠진 사람이라면 얻은 것이 있고 증득한 것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증상만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얻은 것도 없고 증득한 것도 없으니 그들이 어느 곳에서 이런 생각을 움직이면서 스스로 ‘나는 이와 같이 얻었다, 나는 이와 같이 증득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일 그 안에서 생각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바로 악마의 업[魔業]일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습니다.
“장로여, 당신들이 이해한 대로라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증득하기에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까?”
비구들이 말하였다.
“오직 부처님․세존과 문수사리만이 우리가 얻은 바와 증득한 바를 아십니다. 대덕이여, 우리들이 이해한 대로라면 만일 괴로움[苦]의 모양을 분명히 알지 못한 자가 말하기를 괴로움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증상만인 것입니다. 이와 같아서 ‘쌓임[集]은 끊어야 한다, 사라짐[滅]은 증득해야 한다, 도[道]는 닦아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증상만인 것입니다. 그는 괴로움․쌓임․사라짐․도의 모양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도를 이미 닦았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인 것입니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모양이냐 하면 생김이 없는 모양[無生相]입니다. 이와 같이 쌓임․사라짐․도의 모양이 생김이 없다면 모양도 없고 얻을 바도 없나니, 그 가운데서는 조금이라도 알만한 괴로움과 끊을 만한 쌓임과 증득할 만한 사라짐과 닦을 만한 도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거룩한 진리[聖諦]를 설명하는 데도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증상만이 아닌 것이요, 만일 놀라거나 두려워한다면 증상만인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그 모든 비구들을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그리고 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은 일찍이 가섭 부처님[迦葉佛]의 법 중에서 문수사리가 설한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들었느니라. 이 비구들이 과거에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수행하였던 까닭에 지금 듣고 수순하여 속히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차례로 나의 법 가운데서 이 매우 깊은 법을 듣고서 믿고 이해한 이들은 모두가 장차 미륵(彌勒)의 법 앞에서 대중의 수효에 들게 될 것이니라.”
그때 선덕천자(善德天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어진 이께서는 이 염부제 안에서는 자주 설법을 하시는군요. 청하옵나니, 어진 이께서는 도솔타천(兜率陀天)에 다녀와 주소서. 그 곳의 모든 천자들도 오래 전에 광대한 선근을 심었는지라 만일 법을 듣게 되면 곧 환히 알 터인데 쾌락에 집착하는 까닭에 부처님께로 와서 법을 듣지 못하고 스스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문수사리가 이내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선덕 천자와 그곳에 모인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가 자신들도 도솔타천의 천궁으로 들어갔다고 여기게 하였다. 대중들은 도솔타천의 동산 숲과 궁전과 누각과 난간과 창문을 보았으며 사이사이에 섞인 장엄함과 층급이 높고 넓어서 스무 겹으로 된 보배누각과 뭇 보배로 된 그물 장막과 하늘의 꽃이 두루 퍼져서 피어 있고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으며 공중에서는 여러 천녀(天女)들이 만다라(曼陀羅)꽃을 뿌리며 노래하고 찬탄하며 재미있게 놀면서 쾌락을 누리는 것을 보았다.
선덕 천자가 이런 광경을 보고 나서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저희들이 이렇게도 속히 도솔타천궁으로 와서 이런 동산의 숲과 모든 하늘들을 보게 되었습니까? 문수사리여, 저희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십시오.”
그때 장로 수보리가 선덕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대중의 모임을 떠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간 것입니다. 이 문수사리께서 신통 변화를 일으켜 그대들이 도솔천궁에 들어가 있는 것을 스스로 보게 한 것입니다.”
그때 선덕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는 삼매(三昧)와 신통 변화를 유희하면서 한 찰나 동안에 이 대중이 모두 도솔천궁에 들어가 있음을 나타내 보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야, 너는 문수사리의 신통 변화를 어찌 이 정도만
보았느냐. 내가 아는 바로도 문수사리가 만일 항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의 공덕과 장엄을 하나의 불국토에 모으려고 하면 모두 다 그렇게 나타낼 수 있으며 혹은 손가락 끝으로 항하 모래만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듣고 상방(上方)으로 항하 모래만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가서 그 허공에다 놓아두기도 하며 또 모든 부처님세계에 있는 모든 4대해(大海)의 바닷물을 한 털구멍 속에다 넣어두어도 그곳에 사는 물 속의 중생들은 좁아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은 내지 않고 모두들 자신들이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느니라. 또 온갖 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모두 다 겨자씨 속에다 넣어 두어도 수미산에 의지하여 살고 있던 모든 천자(天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본 궁전에 있다고 여기며 또 모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온갖 5도(道)의 중생들을 모두 다 그의 손바닥 안에다 편안하게 놓아두면 뭇 묘한 살림 기구들이 마치 온갖 즐겁고 장엄한 나라의 것과 같다고 여기게 하면서 모두가 함께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느니라. 또 모든 세계에 있는 온갖 불무더기를 모두 다 하나의 도라(兜羅)솜 안에 편안히 놓아두기도 하며, 또 모든 부처님 세계에 있는 모든 해와 달을 한 털구멍에다 모두 숨길 수 있나니 하고자하는 일은 모두가 뜻대로 할 수 있느니라.”
그때 악마가 비구로 모습을 바꾸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문수사리가 저희들의 눈앞에서 이러한 신통 변화를 짓는 것을 보고 싶나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짓 말씀을 하시나이까? 모든 세간사람으로서는 믿지 못할 일이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대중의 모임에서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여라.”
그때 문수사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모든 법에서 자재한 장엄삼매(莊嚴三昧)에 들어가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은 신통 변화를 모두 나타내 보이자 악마와
대중의 모임과 선덕 천자가 다 보았다.
그때 대중들은 이런 신통변화를 보고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셨기에 이런 정사(正士)가 있어서 세간에서 이런 법문을 열고 모든 신통 변화를 나타내십니다.”
그때 악마가 문수사리의 위신력으로 인해 이런 말을 하였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과연 문수사리는 그런 신통이 있사옵니다. 지금의 이 대중의 모임에서도 역시 희유하게 여기면서 문수사리의 신통 변화를 믿고 이해하게 되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설령 항하 모래만큼 많은 모든 악마들이 있다 하여도 이를 믿고 이해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어려움을 주지 못할 것이옵니다. 악마 파순(波旬) 역시 항상 부처님의 틈을 구하면서 중생을 괴롭혀 왔으나 이제부터 스스로 서원을 세우나니 ‘만일 이 법문이 유행하는 곳에서 어떤 이라도 믿고 이해하여 좋아하면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연설하는 이가 있으면 사방으로 백 유순에 이르는 그 안은 지나가지도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의 권속은 여래의 법을 끊어 없애려는 이가 있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로 하여금 그 마음을 산란하게 할 것이오니, 저는 그들을 항복시키기 위하여 다라니를 설하겠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문을 쓰고 베끼어 읽고 외며 사람들에게 연설하면 모든 하늘의 악마들도 좋은 이익을 얻게 되고 그 설법하는 이도 몸과 마음이 즐거워서 부지런히 수행하게 하고 걸림 없는 변재와 다라니를 주어 받들어 섬겨서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탕약을 공양하되 모자람이 없게 하겠나이다.
그 주문은 곧 이러하나이다.
달지타 아말려 비말려 체다저 아갈비 시다설도로 서예두야벌저
怛姪他一 阿末麗二 毘末麗三 替哆低四 阿羯椑五 是多設堵嚕六 誓曳杜野筏低七
부다벌저가미려 선저 소보저 보보세 지리소계 위제 가예
部多筏低伽米麗八 ■低九 蘇普低十 普普細十一 地唎蘇溪十二 㥜提十三 可詣十四
미세례 앙구려발려 호로홀려 색혜 수수미제지아 아나벌저저
米洗禮十五 央矩麗跋麗十六 呼盧忽黎十七 索醯十八 輸戍米提地唎十九 阿那筏低底
저사타니 홀리다리저 홀리다비저 기로차도비저만달라부치나치
底使咤泥二十 吃唎多唎低二十一 吃唎多費低二十二 𦘺盧遮都費低漫怛囉★馳那馳
로가 아 발라목다애박소리야
𡀔迦二十三 阿去聲跋羅目多■嚩蘇唎耶二十四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념으로 이 다라니를 받아 지니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항상 모든 하늘․용․신․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 및 마후라가들의 수호를 받을 것이며 온갖 악귀(惡鬼)가 그를 노리지 못하리이다.”
저 악마 파순이 이 주문을 말할 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악마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너의 변재는 이 문수사리의 신통 경계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문수사리가 신통 변화를 나타내고 악마 파순이 주문을 말하는 때에 3만 2천의 하늘과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에 문수사리는 신통의 힘을 거두어들이면서 이 대중의 모임으로 하여금 모두 다 스스로 본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보게 하였다.
그때 문수사리가 선덕 천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야 그대는 도솔천궁으로 가서 내가 그곳에 갈 것이라고 하늘들에게 알릴 지니라.”
그러자 선덕 천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세존의 발과 모든 보살과 대덕 성문에게 예배하고
그의 권속들을 공손하게 둘러싸면서 대중들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도솔타천에 이르러 선덕 천자는 모든 천자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대들은 알아야 합니다. 문수사리께서 그대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일부러 이곳에 오십니다. 그대들은 마땅히 모든 욕락(欲樂)을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수순하게 법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선덕 천자는 훌륭하게 도량을 장엄한 뒤에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지금이 바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이때 문수사리는 1만의 보살과 5백의 성문 그리고 하늘․용․야차․건달바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는 그 모임에서 사라져 도솔타천에 나타났다. 모든 보살과 성문과 대중들도 함께 따라가 그 도량에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았다. 때에 모든 대중들은 사천왕(四天王)과 삼십삼천(三十三天)․야마(夜摩)․도솔(兜率)․화락(化樂)․타화자재(他化自在)의 모든 천자들과 악마 범천(梵天)․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서로 외치기를 “문수사리께서 지금 도솔타천에 오셔셔 막 설법하려 하십니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백천의 모든 하늘들이 빠짐없이 와서 모이어 이 욕계(欲界)의 천궁을 다하여도 수용할 데가 없었다. 그때에 문수사리는 곧 신통력으로 그 모든 하늘들로 하여금 스스로 넓혀져 서로 거리낌이 없음을 보게 하였다.
그때 선덕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모든 대중들이 이미 모였나이다. 저희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소서.”
문수사리가 선덕 천자에게 말하였다.
“네 가지 법이 있으니, 보살이 방일(放逸)하지 않고 머무르면 곧 온갖 부처님의 법을 섭취(攝取)하게 되리라. 어떤 것이 법인가? 첫째는 계율(戒律)을 지키면서 많은 견문[多聞]을 갖추는 것이요, 둘째는
선정(禪定)에 머무르면서 지혜(智慧)를 수행하는 것이며, 셋째는 신통(神通)에 머무르면서 큰 지혜[大智]를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고요함[寂靜]에 머무르면서 항상 관찰(觀察)하는 것이니라.
천자들이여, 여덟 가지 법이 있어 계율에 들어가니 그 여덟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몸[身]이 청정하고, 둘째는 말[語]이 청정하며, 셋째는 뜻[意]이 청정하고, 넷째는 소견[見]이 청정하며, 다섯째는 두타의 공덕(頭陀功德)이 청정하고 여섯째는 생활[命] 이 청정하며, 일곱째는 온갖 거짓으로 나타내는 기이한 모양을 버리고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함이 청정하고, 여덟째는 온갖 지혜를 버리지 않는 마음이 청정한 것이니 이것을 계율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천자들이여,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 많은 견문[多聞]에 들어가나니, 그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존중하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을 낮추는 것이며, 셋째는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바른 기억을 잃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들은 대로 받아 지니는 것이요, 여섯째는 마음으로 잘 관찰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들은 그대로 다른 이에게 다시 가르쳐 주는 것이며, 여덟째는 자신을 칭찬하거나 다른 이를 헐뜯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많은 견문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천자들이여,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 선정(禪定)에 들어가나니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고요히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는 것이요, 둘째는 시끄러운 곳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며, 셋째는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편안한 것이며, 다섯째는 마음이 선정[定]의 경계에 반연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모든 음성의 모양을 끊는 것이며, 일곱째는 음식을 줄이면서 몸을 지탱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성현의 즐거움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선정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천자들아,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 지혜(智慧)에 들어가나니,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온(蘊)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고, 둘째는 계(界)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며, 셋째는 처(處)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고, 넷째는 연기(緣起)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며, 다섯째는 진리[諦]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고, 여섯째는 과거․현재․미래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고, 일곱째는 모든 승[一切乘]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며,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법[一切佛法] 에 대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 능숙하나니 이것을 가리켜 지혜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천자들아,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 신통(神通)에 들어가나니 첫째는 천안통(天眼通)이니 보는 데에 장애가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천이통(天耳通)이니 듣는 데에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천심통(天心通)이니 모든 중생의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숙명통(宿命通)이니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신족통(神足通)이니 온갖 신통변화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누진통(漏盡通)이니 온갖 중생의 번뇌를 다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번뇌에 머무르지도 않고 해탈을 취하지도 않음이니 방편의 힘 때문이요, 여덟째는 성문(聲聞)에 의지하여 해탈하면서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신통에 드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어 지혜에 들어가나니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괴로움의 지혜[苦慧]요, 둘째는 쌓임의 지혜[集智]요, 셋째는 사라짐의 지혜[滅智]요, 넷째는 도의 지혜 [道智]며, 다섯째는 인의 지혜[因智]며, 여섯째는 연의 지혜[緣智]요, 일곱째는 3세의 지혜[三世智]며, 여덟째는 온갖 지혜[一切智]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 고요함[寂靜]에 들어가나니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안[內]이 고요하고, 둘째는 바깥[外]이 고요하며, 셋째는 욕망[愛]이 고요하고, 넷째는 취함[取]이 고요하며, 다섯째는 존재[有]가 고요하고, 여섯째는 태어남이 고요하며, 일곱째는 온갖 번뇌가 고요하고, 여덟째는 삼계가 고요한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어 관찰[觀察]에 들어가나니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계율[戒]이요, 둘째는 견문[聞]이며, 셋째는 선정(禪定)이요, 넷째는 지혜(智慧)이며, 다섯째는 신통(神通)이요, 여섯째는 지(智)이며, 일곱째는 열반[寂滅]이요, 여덟째는 방일하지 않는[不放逸] 것이니, 천자들아, 이것을 가리켜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편히 머물면서 방일하지 않는 까닭에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모두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천자들아 마땅히 이 방일 하지 않는 데에 의지하면 곧 세 가지 즐거움이 언제나 줄어들지 않으리니 세 가지 즐거움이란 첫째는 하늘의
즐거움[天樂]이요, 둘째는 선정의 즐거움[禪樂]이며, 셋째는 열반의 즐거움[涅槃樂]이니라.
또 천자들아, 방일하지 않은 데에 의지하여 머물면 세 가지 괴로움을 여의게 되리니, 세 가지 괴로움이란 이른바 행고(行苦)와 고고(苦苦)와 괴고(壞苦)가 그것이니라. 또 방일하지 않으면 세 가지 두려움을 초월하리니 세 가지 두려움이란 이른바 지옥과 축생과 아귀가 그것이니라. 또 방일하지 않는 이는 3유(有)를 초월하게 되리니 이른바 욕유(欲有)와 색유(色有)와 무색유(無色有)가 그것이니라.
또 천자들아, 방일하지 않은 데에 머무르면 세 가지 때[垢]를 여의게 되리니 세 가지 때란 이른바 탐욕의 때[貪垢]와 성냄의 때[瞋垢]와 어리석음의 때[癡垢]이니라. 또 방일하지 않으면 세 가지 배울 곳[學處]에서 원만함을 얻으리니 이른바 증상계(增上戒)와 증상심(增上心)과 증상혜(增上慧)가 그것이니라. 또 방일하지 않으면 항상 3보(寶)를 친근하면서 공양할 수 있으리니 3보란 이른바 불보(佛寶)와 법보(法寶)와 승보(僧寶)가 그것이니라.
또 방일하지 않는 데에 의지하여 머무르면 세 가지 바라밀의 장애[三波羅蜜障]을 여의게 되리니 세 가지 장애란 첫째는 스스로 인색함이요, 둘째는 보시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시샘하는 것이며, 셋째는 인색한 사람을 따르는 것이니라.
스스로 계율을 어기면서 계율 지닌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계율을 어긴 사람을 따르는 것이요, 스스로는 성을 내면서 인욕 하는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성을 내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며, 스스로는 게으르면서 정진하는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게으른 사람을 따르는 것이요, 스스로는 마음이 어지러우면서 선정 닦은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을 따르는 것이며, 스스로는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 있는 이를 미워하고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 있는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지혜 없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니라. 그때 천자들이여, 이것을 가리켜 방일하지 않는 데에 의지하여 머무르면 세 가지 바라밀의 장애를 멀리 여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니라.
또 천자들이여, 방일하지 않는 데에 의지하여 머무르면 세 가지 바라밀을 돕는 법[伴助]을 얻게 되나니, 그 세 가지 법이란 이른바 보시가 더욱 자라고 과보를 구하지 않으면서 보리에 회향(廻向)하는 것이요,
계율이 더욱 자라고 하늘에 나기를 구하지 않으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인욕이 더욱 자라고 모든 중생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요, 정진이 더욱 자라고 갖가지의 선근에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선정이 더욱 자라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요, 지혜가 더욱 자라고 항상 착한 업을 닦으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가리켜 방일하지 않는 데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얻게되는 바라밀의 세 가지 돕는 벗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천자들이여, 방일하지 않는 데에 머무르면 온갖 착한 법이 더욱 자라게 되나니 부처님께서 인가(印可)하신 것이니라.
또한 온갖 법은 허공과 같나니 마땅히 이 4정근(正勤)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4정근이란, 이른바 모든 법은 지음이 없으니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일으키고, 법 성품은 청정하나니 이미 생긴 악을 소멸하기 위하여 정진을 일으키며, 모든 법은 고요하나니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이 생겨나도록 정진을 일으키고, 온갖 법은 처소도 없고 행(行)도 없으니,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사라지지 않도록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천자들이여, 이것이 모든 보살의 4정근이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것이니라.
또 모든 천자들이여, 법 성품은 평등하여 생김이 없고 소멸함도 없으니 이 법 성품에 의하여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모든 악(惡)을 짖지 않으며 법 성품에 순종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뭇 선(善)을 닦느니라. 이와 같이 닦은 이는 닦을 바가 없게 되느니라. 또 모든 법에서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을 정근(正勤)이라 하느니라.
또 모든 천자들이여, 마땅히 4념처(念處)를 관찰해야 하느니라. 이른바 몸[身]이 머무는 곳도 없고, 느낌[受]이 머무는 곳도 없으며, 마음[心]이 머무는 곳도 없고, 법(法)이 머무는 곳도 없느니라. 머무는 곳이 없으므로 건립하는 곳도 없나니 이것을 염처(念處)라 하느니라.
또 4여의족(如意足)을 관찰해야 하나니 첫째는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착한 법을 즐거이 닦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정진을 일으키면서 탐욕을 끊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은 얻을 수가 없는데도 모든 부처님 법을 증득하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은 허깨비와 같고 법은 의지할 바가 없으니 온갖 집착[取着]을 초월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5근(根)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신근(信根)이니 반드시 모든 법 안에서 편안히 머무르는 것을 제일로 삼는 것이요, 둘째는 정진근(精進根)이니 모든 행을 두루 닦으면서 부처님의 몸을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염근(念根)이니 모든 법을 두루 갖추고 마음이 잘 조복되어 부드러워져서 잊음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정근(定根)이니 번뇌를 멀리 여의고 잠과 졸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혜근(慧根)이니 모든 법을 결단(決斷)하고 바른 관(觀)이 앞에 나타나면서 다른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라.
모든 힘[力]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와 같은 모든 법 성품 안에 편안히 머무른지라 온갖 번뇌가 이를 무너뜨리지 못하나니, 이것을 가리켜 힘이라 하느니라. 이 힘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수승한 법을 얻어 같지도 다르지도 않음을 여실하게 환히 앎으로 각분(覺分)이라 한다. 만일 모든 법을 차례로 깨달으며 환히 알면 이 도(道)로 말미암아 차례로 수행하여 비밀을 통달하고 법에서 흔들림이 없어지므로 거룩한 도[聖道]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천자들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37품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야 하나니 모든 행을 벗어나고 다시는 장애가 없고 지혜가 훨훨 타올라 마침내 고요해 지느니라. 마침내 고요해진다[究竟寂靜]는 것은 모든 법은 일어남이 없고 또한 다한 바도 없으며, 다한 바가 없기 때문에 지을 바가 없고, 지을 바가 없기 때문에 또한 짓는 것이 없거나 받는 것이 없거나 받는 이가 없거나 시설(施設)이 없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을 가리켜 구경적정이라 하느니라.”
이 법을 설할 때에 7만 2천의 천자(天子)들은 모든 법 가운데서 법 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때 선덕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보살은
어떻게 도(道)를 닦아 익히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나고 죽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고, 욕망[愛]과 집착[著]을 버리지 않으면서 중생을 제도하여 성도(聖道)에 이르게 하는 것을 보살이 도를 닦아 익힌다고 하느니라. 천자여, 도를 닦아 익힌다 함은 청정한 성품의 공에 묘하게 머무는 것이니 왜냐 하면 보살은 고요한 마음으로 일체법의 본래성품이 청정함을 보면서 온갖 소견에 집착하기 좋아하고 수면(隨眠)에 편히 머물러 방편이 없는 중생을 위하여 일체법의 본래 성품이 공한 이치를 연설하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이 모든 중생은 성품이 공한 가운데서 소견을 내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모양[相]이 없고 소원[願]이 없고 지을 바가 없는 일체법의 본래 성품은 생김이 없으나[無生] 오래도록 번뇌에 물들고 나고 없어지는 소견을 익힌 범부를 위하여 이 생김이 없는[無生] 것에 대하여 믿음과 즐거움을 얻게 한다. 그렇지만 나고 없어짐에 대하여 역시 동요하는 바가 없느니라. 천자여, 이것을 일러 보살이 도를 닦아 익힌다고 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마땅히 보살의 가고 오는 도[去來道]를 보아야 하느니라.”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을 보살의 가고 오는 도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보살은 보리를 증득하면서 가고, 법을 설하면서 오며, 모든 선정과 해탈을 얻으면서 가고, 현재 욕계(欲界) 안에 태어나면서 오며, 성현의 도에 들기 때문에 가고 대비(大悲)로 중생을 성숙시키기 때문에 오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면서 가고, 중생을 받기 때문에 오며, 온갖 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가고, 중생을 벗어나게 하려고 오며, 서원이 견고하여서 가고, 서원에 자기 성품이 없어서 오며, 3해탈문(解脫門)이라서 가고, 일부러 받아 나서 오며, 보리도량에 있기 위하여 가고, 중생을 보리에 편히 세우기 위하여 오느니라.
천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의 오고 가는 도라 하느니라.”
이 보살의 도를 설할 때에 5백의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때 선덕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은 일찍이 일체공덕광명(一切功德光明)이라는 세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세계는 어디에 있으며 어떤 여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고 계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 일체공덕광명 세계는 여기서 상방(上方)으로 십이 항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 세계를 지나서 있으며 보현(普賢) 여래께서 그곳에 계시면서 설법하시느니라.”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그 세계와 여래를 뵙고 싶습니다.”
그때 문수사리는 곧 광명장엄삼매(光明莊嚴三昧)에 들어가서 그 삼매의 힘으로 큰 광명을 놓아 십이 항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 세계를 지나 그 일체공덕광명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이때 그곳에 있는 보살이 물었다.
“이 광명은 어느 곳에서 온 것입니까?”
그 곳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하방(下方)으로 십이 항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 세계를 지나 사바(娑婆)라는 세계가 있고 그 국토에 석가모니(釋迦牟尼) 여래․응․정등각 부처님께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그곳에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는데 광명장엄삼매에 들어가서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으므로 그 광명이 이 모임에 비쳐 온 것이니라.”
그 모든 보살들은 보현여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석가모니 세존과 문수사리를 뵙고 싶나이다.”
그때에 보현여래는 큰 광명을 놓으셔서 십이 항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 사바세계까지 이르게 하신 뒤 그 보살들로 하여금 이곳에 있는 보살 대중의 모임을 분명히 보게 하셨다.
그때에 그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저
사바세계에 가겠느냐?”
그때 지법거(持法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사바세계에 가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이 바로 적절한 때이니라.”
그러자 지법거 보살은 10억의 모든 보살들과 함께 그 나라에서 사라져 도솔타천에 나타나 큰 광명을 놓으며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그때에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와 제석․범왕․호세(護世)며 모든 천자들과 모든 성문․보살 대중들은 전에 없었던 일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모든 보살들은 신통을 부리니 참으로 희유하구나.”
그때 모인 대중들은 이 광명으로 인하여 일체공덕광명 세계를 보았고 또 보현 여래 국토의 장엄함을 보았는데 그것을 말하자면 일겁이 지나도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문수사리가 이런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있을 때에 7나유타 모든 천자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 지법거 보살이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함께 석가 여래를 뵙고 예배하였으면 합니다.”
그때에 문수사리는 그 곳의 천자들 가운데 제도해야 할 이는 모두 다 제도한 뒤에 지법거가 거느리고 온 모든 보살 대중과 큰 성문․하늘․용․야차․건달바 등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으며 도착하자마자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으로 가서 섰다.
그때 지법거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현 여래께서 문안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병환도 없으시고 괴로움도 없으시며 기거하심에 가뿐하시고 안락하게 지내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이 문수사리와 지법거 정사(正士)가 신통 변화와 지혜와 광명으로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나니 온갖 보살들로서는 지혜와 방편의 깊은 경계를 알지 못하리라. 너희 선남자들은 마땅히 이 문수사리․지법거․정사와 아울러 모든 보살들이 지닌 신통․변재․지혜와 모든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기고 중생을 성숙시키는 일들을 배워야 하느니라. 이 모든 정사들은 수없는 겁을 지나오면서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다른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러 항상 불사(佛事)를 지었느니라. 만일 모든 중생이 이 모든 정사들의 경계에 들면 장차 오는 세상에 다시는 악마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장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법문을 잘 지녀서 3보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
그때 지법거 보살마하살은 이 모임에서 일어나 그들의 권속들과 함께 본래 그들이 살던 부처님의 세계로 돌아갔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모두 설하여 마치시니, 선덕 천자와 장로 아난과 모든 세간의 하늘․용․건달바․아수라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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