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615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78권

by Kay/케이 2024. 1. 19.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78

 

대보적경 제78권


후진 삼장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17. 부루나회 (富樓那會) ②

4) 구선근품(具善根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켜 항상 네 가지 법을 닦아 익히고 가까이 하면 곧 일체의 좋은 법을 두루 거둬들이고 온갖 선근도 두루 갖출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부루나야,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의 마음을 일으켜 인욕(忍辱)하는 법을 닦아 익히고 가까이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인욕의 법을 수행할 때에 마치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에 곧 평등한 바라밀을 얻고 또한 일체 중생의 평등한 바라밀도 얻느니라.
이 보살은 마음의 평등한 바라밀과 지혜의 평등한 바라밀을 성취하여,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어 있거나 잠을 자거나 간에, 혹 그때에 어떤 사람이 똥이 담긴 병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독이 든 병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펄펄 끓는 물병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여러 쓰레기를 가지고 오거나, 또는 불이 이글거리는 숯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똥오줌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뜨거운 재를 가지고 오거나 하여 그의 머리 위와 몸에다 내리쏟는다 해도 보살은 이 일에 성을 내거나 원한을 품으면서 마음을 산란하게 갖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내가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거나 또는 나쁜 마음으로 그를 보지 않아야 하며, 다만 한마음으로 자신의 이익되는 법을 구하면서 닦고 있던 일에만 마음을 오로지 쏟으며 중단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이렇게 ‘이 사람은 무슨 인연 때문에 이 똥을 담은 병과 독을 넣은 병과 재와 불을 가지고 와서 나의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일까? 나의 몸은 그런 물건과 인연 때문에 아프거나 괴롭지는 않다’고 하면서 그의 마음을 조복해야 하느니라.
보살은 이때에 이와 같이 뭇 인연의 법을 관찰하면서 ‘누가
이런 물건을 내리쏟고, 이 물건이 누구에게 내리쏟으며, 어떠한 물건으로 내리쏟는 것일까?’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 사람이 이와 같이 사실대로 생각하면 ‘누가 그것을 내리쏟는 이이고, 누가 그것을 받는 이이며, 어느 것이 그러한 법인가?’의 어떠한 법도 보지 못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하고 관찰할 때에는 이것도 저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얻을 수 없으며 모두가 볼 수도 없나니, 이 보살은 온갖 법을 얻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성을 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느니라.
부루나야,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생각하는데도 오히려 성이 나고 한스런 마음이 일어나면 다시 이렇게 바른 생각으로 사유해야 하나니, ‘무슨 접촉[觸]의 인연이 나의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접촉이라는 것이 어디에 접촉되는 것일까? 몸에 있게 되는가, 마음에 있게 되는가?
만일 몸에 있다면 몸은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과 그림자와 형상과 같은 것이어서 깨닫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나도 아니고 그[彼]도 아니다. 만일 마음에 있다면 마음은 형색이 없고 생각마다 나고 없어지면서 잠시 동안도 머무르지 않으며,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니다. 다만 허망한 기억과 생각으로 분별하면서 ≺이것은 괴롭다, 이것은 즐겁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이 허망한 기억과 생각으로 분별을 내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평등한 참 모습을 관찰하여야 한다. 나는 성현이 하는 일을 닦아 익혀야 하고 범부들의 하는 짓은 따르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이 성현들의 하는 일인가 하면 모든 법에서 멀리 여의고 해탈하는 것이다. 나는 멀리 여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요, 화합(和合)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허망한 기억과 생각으로 분별하는 것은 이는 모두 화합이다. 무엇을 위하여 화합하는가 하면 바로 탐욕을 위하여 화합하는 것이요, 바로 성을 내고 어리석음을 위하여 화합하는 것이다.
어떻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위하여 화합한다 하는가 하면 몸이 어리석고 몸에 대한 소견[身見]이 어리석고 몸에 대한 소견을 탐내기 때문에 몸이 고통을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성냄과 화합한다고 한다. 또 몸에 대한 소견이 어리석기 때문에, 몸에 대한 소견을 탐내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어리석음과 화합한다고 한다. 만일 사람이 이와 같이 3독(毒)에 얽매이게 되거나 혹은 이와 같은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게 되면 모든 부처님께서도 구제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이겠는가? 나는 모든 인연의 법을 잘 관찰하고 공한 법을 잘 관찰하여야 한다’고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따르면서 바르게 모든 인연의 법을 관찰하면 ‘그 누가 내리쏟고, 그 누가 받으며, 어떤 물건으로 내리쏟는가?’의 어떠한 법도 보지 못하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모든 법은 뭇 인연의 법으로부터 생기며 제 성품은 본래 공하여 반드시 얻을 수가 없거늘 나는 어째서 얻을 것도 없는 그 허망한 법 가운데서 법을 얻으려고 업을 지으면서 성을 내고 있으며 행(行)의 인연을 일으킨단 말인가?
나는 이제 성을 내거나 한을 품는 마음이 없으면서 지음[作]도 없고 일으킴[起]도 없고 생김[生]도 없는 법을 수행해야 하며, 마땅히 공한 법을 관찰하면서 나의 마음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짓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고 생김도 없는 법을 관찰해야 하고 짓거나 일으키는 법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사실대로 모든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이제 이 허망한 아무 것도 없는 법 가운데서 억지로 법을 짓고 허망하게 성을 내거나 한을 품는 등의 일을 억지로 짓지 않아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법의 본체[體]에 의지하면 곧 성을 내고 한을 품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법의 참 모습은 마침내 공하며 그 가운데서는 의지할 만한 법의 본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생각하면 그 마음은 고요하여지면서 성이나 원한이 일어나지 않느니라.
또 이 보살은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어 있거나 잠을 자거나 간에,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좋고 아름다운 향과 가루향과 바르는 향을 가지고 와서 또는 유명한 좋은 꽃을 가지고 와서 그의 몸 위에 뿌려 준다거나 또는 훌륭한 향과 꽃으로 된 영락과, 첨복화(瞻蔔花)와 만바리사화(鬘婆梨師花)와 만중화(鬘衆花)로 된 영락으로 그 몸을 덮어 싸준다거나, 또는 가늘고 부드럽고 훌륭한 의복, 즉 가시의(加尸衣)와 구섭의(拘攝衣)와
구진바의(拘珍婆衣)와 교시야의(憍施耶衣)와 추마의(蒭摩衣)와 겁패의(劫貝衣)와 가는 흠바라의(欽婆羅衣)와 가는 비단옷[繒衣] 등의 이러한 부드럽고 가는 옷으로 그 몸을 덮어 싸준다거나,
또는 훌륭한 비단으로 된 일산과 당기와 번기 등을 그 위에 펴서 시설한다거나, 또는 모든 하늘의 이름 있는 꽃과 향과 좋은 옷과 값진 보배와 영락 등으로 그의 몸을 덮어 싸준다거나, 또는 천상에 있는 감미로운 음식을 가져와 올리더라도 보살은 이러한 갖가지의 공양에 대하여 좋아하거나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그 사람을 친근히 하고 따르면서 그의 뜻에 따라 오고 가고 하면서 방문하거나 하지 않으며, 치우친 마음으로 애착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이런 일에 평등한 마음으로써 모든 법의 평등함을 통달하여야 하며,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중생들에 대하여 성을 내거나 한을 품지 않아야 하며 사랑하는 생각도 내지 않아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두 가지 일은 그것은 다 같이 번뇌이기 때문이니, 나는 이제 여기에서 좋아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법의 사실 그대로를 잘 통달하여 알아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번뇌 중에는 사랑하는 인연이 합쳐진 이것이 가장 중하고 이와 같은 번뇌는 골수까지 깊이 사무쳐서 결사(結使:번뇌)의 법 가운데서 탐애하는 마음으로 염착(染着)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탐착하던 일이 만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게 되고 한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모두 스스로 그의 몸을 탐하고 사랑하는데 침노가 있게 되면 곧 성을 내고 한을 품는다. 그러므로 성을 낸다는 것은 곧 염애(染愛)의 과보요 탐착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과보인 줄 알 것이다.
나는 이제 염애의 나쁜 마음을 여의고 모든 법 중에서 탐착함이 없어야 한다. 우리들은 탐내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요, 성내기 위하여 배우는 것도 아니며, 어리석기 위하여 배우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땅히 모든 법의 진실함을 배워 모든 법의 모양에 대하여 사실대로 관찰해야 하고 말씀한 바에 따라 그 가운데서
사실대로 행하여야 하며 다만 업보(業報)의 인연에만 의지하여야 한다.
모든 공양에서나 괴로운 일에 대하여는 모두가 전생에 지었던 업행의 인연인 줄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모든 뜻에 맞는 법이라 하여 기뻐하거나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요 거스르는 법이라 하여 성을 내거나 한을 품지도 않을 것이며, 다만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서 분을 내거나 성을 내는 일이 없어야 하고 탐애를 따르거나 성냄을 따르거나 어리석음을 따르는 나쁜 법이 마음에서 생길 수 없게 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부루나야, 보살이 이 첫째의 법을 성취하면 모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이치를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지혜를 찬탄하고
또한 계율을 지닌 이를 칭찬하며
인욕을 행하는 이를 칭찬하고
또한 법을 많이 들어 앎을 늘 찬탄하느니라.

나는 선법을 행하면서
인자한 마음으로 좋은 말을 하는 이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마땅함에 따라 많은 덕(德)을 찬양한 이를 칭찬하느니라.

나는 항상 5욕(欲)을 꾸짖고
성내며 한을 품고 어리석은 사람과
질투하고 오만하고 아첨하는 이와
어지러이 중생을 번거롭게 하는 이며

느리고 게으른 마음을 지닌 이와
사나워서 함께 말하기 어려운 이와
은혜를 저버리고 갚을 줄 모르는 이와
작은 일에도 크게 성을 내는 이며

이익[利養]을 탐내고 구하면서
나만이 이익을 얻어야 하고
남은 얻지 못하게 하려 하는
이러한 이들을 나는 칭찬하지 않느니라.

지혜가 적은 이라, 이익에 있어서
스스로 남의 소득을 질투하려 하고
다른 이의 집에 괴로움을 끼치는
이런 이들을 나는 칭찬하지 않느니라.

이익을 구하고 얻기 위하여
쉽게 위의(威儀) 있는 행을 바꾸는
이러한 생활은 청정한 것 아니며
나의 법과는 아주 동떨어지느니라.

도를 수행하지 않는 이는
이러한 모든 허물이 있나니
이들은 나쁜 도(道)의 인연이라
칭찬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느니라.

나라는 나쁜 소견[我見]을 끊지 않으면
탐애하는 마음이 많아지나니
탐애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에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게 되느니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나니
인욕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억센 마음을 꺾어 조복하면
빨리 부처님 도를 이루게 되느니라.

나는 인자한 마음을 행하면서
인욕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모든 법은 공하고 인연으로 생긴지라
아무 데도 속함이 없는 줄 알 것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모든 법이 있고

이 법은 마음을 일어나게 할까?
허망한 생각으로 성을 내면서
곧 모두가 공임을 기억하지 않느니라.

허망한 생각은 삼계(三界)를 내고
이어받는 몸은 끊어지지 않나니
허망한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곧 이러한 허물이 없게 되느니라.

항상 모든 법을 생각하고 헤아려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줄 알 것이며
늘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해야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느니라.

계율을 여의고 고통 받는 중생은
교만(憍慢)에 다치고 해를 받나니
그를 위해 고통 없애는 법을 말해주면
이익되는 바가 많이 있느니라.

설령 사람이 동쪽에서부터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에서부터
똥과 독이 든 병을 가지고 와서
그 머리 위에다 내리쏟는다 해도
나는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서
누가 내리쏟고 누가 당하는 이이며
어떤 법을 나라고 하는가를
관찰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느니라.

나쁜 얼굴빛으로 그를 보거나
무슨 죄로 이런가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굳고 강한 생각만을 일으켜
인자한 마음으로 그를 감싸주느니라.

이것은 전생에 지었던 업연(業緣)으로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 줄 알 것이며
받은 뒤에도 다시 짓지 않고
부처님의 도 안에 편히 머무느니라.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없으리라고
괴로움을 받는 일을 헐뜯을지라도
이것은 틀림없는 업연인지라
비록 오래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느니라.

중생들이 세간에 있으면서
항상 선악의 업을 일으키는데
내가 지금 이 고통을 받는 것은
반드시 이는 업연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도로 악(惡)으로써 갚으면
뒤에 다시 고통의 과보를 받거늘
어찌 나쁜 일로써
그 사람에게 끼칠 수가 있겠느냐?

마땅히 위없는 법을 구하고
구한 뒤에는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며
중생들을 모든 고뇌에서
해탈시키고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설령 사람이 향과 꽃과
영락으로 나에게 공양한다 하여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평등한 관(觀)을 익혀야 하느니라.

미워함과 사랑함은 도(道)가 아니므로
항상 버림의 마음[捨心]을 수행하여야 하며
바르게 모든 법을 관찰하면서
누가 주는 이고 누가 받는 이냐고 하느니라.

공이 주고 공이 받는 것인가?
안도 공이고 바깥도 공이다.
공에는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없으며
모두 다 나가 없느니라.

공에는 탐내거나 여읨도 없고
공에는 번뇌도 없으며
또한 청정함도 없나니
더러움과 깨끗함을 여읜 그것이 공이니라.

공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고
공 가운데에는 모든 성품도 없으며
공은 항상 공하여 모양이 없나니
이것으로 청정한 도(道)에 견주느니라.

설령 어떤 사람이 와서
조각조각 나의 몸을 찢는다 해도

그에 대하여 성을 내지 않고
업연으로 그런 일이 있는 줄 알 것이니라.

중생들이 선과 악을 일으켜
그 업 따라 스스로 과보를 받나니
나는 틀림없이 전생의 악(惡)으로
지금 이 고통의 과보를 받느니라.

지금 이 악의 과보를 받으면서
몸은 마치 그림자와 형상과 물거품과
환술과 허깨비와 아지랑이 같아서
없으며 공이며 필경공(畢竟空)인 줄 관찰하라.

만일 사람의 몸이 갈가리 찢길 적에
어떤 사람이 나를 도와준다면
마땅히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되
기쁘게 여기지는 않아야 한다.

이익이 있다 하여 기뻐하지도 않고
욕을 한다 하여 성내지도 말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장애가 되며
부처님의 바르고 참된 도가 아니다.

마땅히 온갖 모든 탐애와
성내는 마음을 여의어야 하고
항상 공하여 고요함을 닦으면서
모든 장애를 모두 끊어야 한다 하느니라.

인욕은 10력(力)의 근본이 되고
모든 부처님의 신통의 근원이며
장애 없는 지혜[無礙智]와 대비(大悲)도
모두가 인욕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4제(諦)와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와 8성도분(聖道分)은
모두가 인욕으로 근본을 삼거늘
무슨 지혜로 인욕을 닦지 않겠는가?

나는 바라내(波羅奈)에서
위없는 법륜을 굴릴 적에
역시 인욕으로 근본을 삼았나니
모든 부처님은 늘 인욕을 칭찬하느니라.

너희들도 역시 공과 인욕과
생멸(生滅)이 없음을 닦아야 하나니
모든 법의 모양이 항상 그러하여야
부처님의 공덕을 얻게 되느니라.

“또 부루나야, 보살마하살은 5욕을 여의면서 항상 출가하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출가를 따르며 출가에 마음이 쏠리면서 5욕을 탐내지 않고 출가한 뒤에는 모든 시끄러운 데를 여의면서 먼 산이나 숲에서 살며 좋은 법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 둘째의 법을 성취하면 모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에 항상 출가하기를 좋아하면
항상 출가할 수 있으며
언제나 산과 숲에 있기를 좋아하면
공덕이 더욱더 늘어나느니라.

고요한 곳을 가까이 하면
곧 5욕에 대한 집착을 여의게 되나니
이 안에는 뭇 시끄러움이나
모든 선법을 잃는 인연이 없느니라.

모든 말을 하는 일도 없고
오가면서 방문하는 일도 없으며
한가하고 고요하며 상쾌하나니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바니라.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은
언제나 가까이 하여
마을을 탐내고 좋아하거나

이익을 가까이 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만일 이익을 얻고 기뻐한다면
잃을 때에는 근심하고 괴로워하게 되나니
이 사람은 부처님께 공양한다 하여도
공양을 했다고 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허물을 없애고자 하면
모든 이익을 여의어야 하며
멀리 떨어진 고요한 데 있으면서
공한 법을 닦고 익힐 것이니라.

“또 부루나야, 보살은 항상 배우면서 법을 구하고 구한 뒤에는 읽고 외우는 것이니, 이를테면 청정한 계율과 두타(頭陀)의 미세한 법을 구하고 욕심이 많으면서 만족해함이 없는 법은 구하지 않으며, 탐욕을 없애기를 구하고 탐욕을 더하지 않으며, 성내는 일을 부수기를 구하고 성내는 일을 더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끊기를 구하고 어리석음을 더하지 않으며, 교만심을 깨뜨리기를 구하고 교만한 일을 구하지 않으며, 아만을 부수기를 구하고 아만이 자라는 일을 구하지 않느니라.
나와 내 것을 끊는 법을 구하고 나와 내 것을 더하는 법은 구하지 않으며, 나 없음의 법을 구하고 나와 사람과 중생과 수명에 의지하는 법은 구하지 않으며, 항상 큰 지혜를 얻는 법을 구하고 큰 지혜에서 물러나는 법은 구하지 않으며, 항상 같을 이 없는[無等] 지혜를 얻는 법을 구하고 조그마한 지혜를 얻는 법은 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구족하게 되는 법을 구하고 모든 공덕을 갖추지 않는 법은 구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법을 구하고 구한 뒤에는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바르게 관찰하며 말씀한 대로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세간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장하다’하는 칭찬까지도 구하지 않으며, 많은 중생을 교화하여 이 법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부루나야, 이 셋째의 법을 성취하면 온갖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출가하기를 좋아하고
계율을 지니면서 두타를 행하나니
이로써 지혜가 더욱 늘어나고
지혜의 비로 뭇 흐름을 불리느니라.

이 깊고도 청정한 법을 얻어
바른 기억으로써 그 이치를 생각하며
말씀한 대로의 그 가운데서
들은 바대로 행하느니라.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써
남들을 위하여 널리 해설하며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서
마음으로는 바라는 바 없느니라.


모든 공덕에서의 맛을 얻어
스스로 그 법의 안에 머무르며
또한 다른 사람들도 머무르게 하나니
이 때문에 불법은 더욱 증가하느니라.

만일 한량없는 겁 동안에
쌓은 바의 모든 공덕이면
모두 바로 앞에 나타나게 하여
보살도(菩薩道)에 거두어들이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깊은 법으로써
부처님이 칭찬한 것을 구해야 하며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설하게 되면
공덕은 그로부터 생기느니라.

“부루나야,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지니면서 두타의 법 안에 편히 머무르면 온갖 선근과 복덕을 갖출 수 있느니라.
부루나야, 과거 오랜 옛적의 한량없고 그지없고 불가사의한 아승기겁 전에 그때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미루건타(彌樓揵馱)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었느니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6천 세였고 한번 모인 법회의 설법으로 8백 비구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느니라.
부루나야,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법은 5백 년 동안 머물렀으며, 반열반(般涅槃)하신 뒤의 7일 동안에 그 모든 큰 제자들도 모두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들어갔느니라.
부루나야, 이 부처님께서 다섯 가지의 혼탁한 세상에 출현하셨음은 바로 지금의 나와 같았느니라. 모든 큰 제자들이 열반한 뒤에는 많은 중생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사문(沙門)의 법 안은 안온하고 쾌락하거늘 우리들이 어째서 각기 함께 출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모두가 함께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출가하였는데, 출가한 뒤에는 오직 세 가지의 일만을 행했을 뿐이니라.
그 하나는 항상 돌아다니면서 속인의 집을 왔다 갔다 한 것이고, 둘째는 이익만을 탐착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간 것이며, 셋째는 살만 찌우면서 복과 지혜가 없었던 것이니라. 이 세 가지의 일만을 하면서 그 밖의 일은 닦지 않았으므로 100년 뒤에는 모든 큰 제자들이 모두 다 소멸되었느니라.
이들의 비구는 대개가 속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부처님의 모든 심오한 경전과 계율을 지니며 두타를 하는 미세한 행의 묘한
법은 모두 다 폐지하고 다시는 읽거나 외우지 않았느니라.
부루나야, 그러한 때의 모든 비구들은 5욕을 즐기고 행하면서 음식만을 탐하였느니라.
그때에 국왕에게는 타마시리(陀摩尸利)라는 아들 하나만이 있었으므로 왕은 몹시 애지중지하였느니라. 그때에 그는 고요한 데에 있으면서 생각하였느니라.
‘미루건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법을 얻으셨을까? 지금의 모든 제자들은 모두가 함께 방일하면서 모든 속인들과 함께 하는 일들이 똑같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있을 때에 어느 천신(天神)이 그에게로 와서 몸은 숨긴 채 보이지 않으면서 말하였느니라.
‘왕자여,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얻으신 깊은 법은 청정하고 결연(決然)하셨습니다.’
그때에 왕자는 천신이 하는 말을 듣고 곧 말하였느니라.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얻으신 깊은 법이 청정하고 결연하셨다면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러자 대답하였느니라.
‘왕자여, 이 법은 물질[色]도 없고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도 없으며 음(陰)․계(界)․입(入)도 없고 5욕도 없으며, 또한 욕심도 없었습니다. 미루건타 부처님께서는 이 깊은 법의 청정하고 결연함을 얻어서 중생들을 위하여 연설하셨습니다.’
그때에 왕자는 다시 천신에게 물었느니라.
‘우리들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법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해하여 알면서 말씀한 대로 행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천신은 말하였느니라.
‘왕자여, 당신은 한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을 하면 얻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부루나야, 그때에 왕자는 생각하였느니라.
‘지금 이 천신이 나의 뜻을 깨우쳐 주었구나. 나는 출가하여 이 깊은 법을 구하여야겠다.’
그리고는 곧 부모에게로 나아가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부모에게 아뢰었느니라.
‘저는 이제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 안에 출가하여 도를 닦고자 합니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대답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무엇 때문에 우리를 버리고 출가하려 하느냐? 지금의 모든 도인들은 불법 안에서도 속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단다.’
그때에 그 부모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지금의 모든 비구들은
방일하면서 5욕을 받으며
농사를 짓고 장사하고 있으므로
속인들과 다름이 없다네.

가난하여 괴로움이 많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라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하여 출가하였다네.

너는 이제 왕가에 태어나서
부귀와 쾌락이며 5욕을 누리고
모든 값진 보물들이 많거늘
무엇 때문에 출가를 한단 말인가?

타마시리 왕자는 게송으로 부모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저는 영화와 지위 구하지 않고
얻더라도 버리고 여읠 것이며
저는 이제 오직 부처님 법의
깊고 청정한 계율만을 구하고자 합니다.

어떤 천신이 저를 깨우치면서
저의 출가를 권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법을
저는 얻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천신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 법이 지금 소멸하려 하므로
저는 돕고 수호하며 지녀야겠습니다.

부모는 게송으로 타마시리에게 대답하였느니라.

깊은 경전은 이미 멸하여 다하였고
지니거나 독송하는 이도 없거늘
너는 장차 어디에서
부처님의 깊은 법을 얻어듣는단 말이냐?

만일 사부대중 가운데에
깊은 이치를 외우는 이가 있다면
너는 먼저 그로부터 받고
그러한 뒤에 출가해야 한다.

타마시리가 게송으로 그의 부모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저는 이제 부지런히 정진하여
청정한 계율로 두타를 행하며
먼 산과 숲 안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깊고 청정한 법을 구하겠습니다.

부루나야, 타마시리는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하직한 뒤에 출가하였으므로 그 부모는 침묵한 채 제지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리하여 그는 곧 비구에게로 가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계를 받은 뒤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느니라.
‘미루건타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설법하여 모든 제자들은 가르쳤습니까? 저는 얻어들은 뒤에 그 말씀대로 수행하겠습니다.’
부루나야, 그 비구들은 타마시리 비구에게 말하였느니라.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듣지 못하였으며 다만 화상(和尙)이신 모든 스승들이 행한 바를 따르고 있을 뿐이니,
그대도 이제 그와 같은 법을 행하여야 됩니다.’
그때에 타마시리 비구는 여러 비구들에게 대답하였느니라.
‘당신들은 가난하고 천한 데서 출가하였고 그 때문에 오늘날 옷과 밥만을 귀히 여기면서 하는 일들이 속인들과 똑같을 뿐입니다. 당신들은 이제 나와 함께 부처님의 깊고 청정한 법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그때 비구들은 게송으로 타마시리 비구에게 말하였느니라.

우리들이 하고자 했던
이런 일은 모두 이미 얻었고
의복과 음식이 극히 풍족하며
왕의 사역(使役)도 면했다.

안온하고 아주 쾌락을 누리며
감히 업신여기는 이도 없고
속인들이 때로 괴롭히던 일도
이제 모두 다시는 없다.

이것을 곧 열반이라 하고
첫째가며 유쾌한 안락인 것이니
이 일보다 더한 그 밖의 것은
우리는 모두 필요가 없다.

우리들에게는 옷과 발우가 많고
탕약과 물건도 아주 많으며
속인들이 늘 대주고
단월(檀越)들의 집도 또한 많다.

부루나야, 그때에 타마시리 비구는 모든 비구들의 이러한 게송을 듣고 나자 마음이 구슬퍼져서 눈물을 떨구며 울었느니라. 그리고 다른 정사(精舍)로 나아가서 다시 이런 일을 비구들에게 물었느니라.
‘미구건타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설법하여 모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까? 나는 얻어들은 뒤에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비구들도 역시 그렇게 대답하였으므로, 그때에 타마시리 비구는 곧 이 비구들을 버리고 떠나 혼자 산과 숲의 깊숙하고 먼 데로 들어가서 정성껏 일심으로 깊은 법을 구하고자 하였느니라.
그 즈음에 미루건타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 가운데 견뢰(堅牢)라는 큰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요한 행을 닦으며 혼자 깊은 산에 살면서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한 줄을 알았으며 마음에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였고 할 일을 다 마쳤으며 6통(通)과 3명(明)을 얻은 큰 아라한이었으니, 바로 지금의 나의 제자 마하가섭(摩訶迦葉)과 같은 이였느니라.

이 견뢰 비구가 머무르던 깊은 산의 석굴(石窟) 벽 위에는 이러한 게송이 써 있었느니라.

나고 죽고 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음은
탐욕으로 맛을 즐기기 때문이니
원수를 길러 무덤 안으로 들어가
헛되이 모진 고통을 받고 있구나.

몸의 악취(惡臭)는 마치 시체와 같고
아홉 구멍에서는 부정(不淨)이 흐르는데
마치 뒷간 벌레가 똥을 좋아하듯이
어리석어서 몸을 탐냄은 그와 똑같네.

기억과 생각으로 망령되이 분별함이
그것이 곧 5욕의 근본인 것이니
지혜로운 이로서 분별하지 않으면
5욕은 곧 끊어지고 소멸한다.

삿된 생각은 탐착을 내고
탐착은 번뇌를 내는 것이니
바른 생각으로 탐착함이 없으면
그 밖의 번뇌도 역시 다한다.

부루나야, 견뢰 비구가 석굴 벽 위에 이 네 글귀의 게송을 써놓았는데, 타마시리 비구가 깊은 산을 돌아다니다가 이 석굴 벽 위의 네 글귀 게송을 보게 되었느니라. 이 게송을 보고 나서 읽고 외우며 그 이치를 생각하다가 잠깐 사이에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얻고는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옛날 다비하셨던 곳으로 갔었느니라. 그곳에 도달한 뒤에 예배하고 세 바퀴를 돌고는 가부하고 앉아 서원을 세우되 ‘저는 부처님을 뵙지 못하거나 그 밖의 법을 듣지 못하면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부루나야,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의 이름은『팔백천문경(八百千門經)』이었는데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이 경을 외워 지니고 있었으므로 석제환인은 타마시리 비구가 깊은 마음으로 법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도리천(忉利天)으로부터 그곳으로 내려와서 그를 위하여『팔백천문경』을 설하고 또 그와 함께 네 가지의 다문본구(多門本句)와 일곱 가지의 중구(重句)와 열 네 가지의 문구(門句)를 설해 주었느니라.
타마시리 비구는 이를 다 듣고 나서 외워 지녔으므로 모든 법 안에서 지혜가 밝게 되었으며 미루건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청정하여 공에 상응하고 여읨[離]에 상응하는 모든 깊고 묘한 경전이 저절로 그의 마음에 새겨졌느니라.
또 미루건타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부처님의 몸과 비구대중과
머무르던 곳이며, 정사․평상․책상․대회(大會) 및 4중(衆) 등을 나타내었으며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와 사람인 듯하나 사람 아닌 이들의 온갖 대중의 모임도 모두 볼 수 있게 하였느니라.
타마시리 비구는 모든 법 안에서 지혜의 눈을 얻었으므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점차로 나아가 본국(本國)의 부모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을 위하여 청정하여 공에 상응하고 여읨에 상응하는 모든 깊고 묘한 경전을 설하였고 불법의 뭇 공덕을 찬탄하며 드날렸느니라.
부루나야, 그때에 타마시리 비구의 부모와 궁인(宮人)과 대신과 관속들은 이 법을 듣고 나서 믿는 마음으로 공경하면서 타마시리 비구에게 말하였느니라.
‘원컨대, 대덕(大德)이여, 저희들을 제도하셔서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 안에서 출가할 수 있게 하소서.’
부루나야, 그때에 8만 4천의 사람들은 국왕과 왕비를 따라 일시에 출가하였고 출가한 뒤에는 모두를 타마시리의 비구 대중들이라고 일컬었느니라.
부루나야, 이 타마시리 비구는 도로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을 계속 흥성하게 하였고 많은 중생들을 그 안에 머물 수 있게 하였으니, 그것은 전생에 큰 자비의 마음으로 법을 보호하겠다는 서원 때문이니라.
이 타마시리 비구는 한 마을로부터 한 마을에 이르고 성(城)으로부터 성에 이르고 나라로부터 나라에 이르기까지 유행하면서 미루건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공덕을 칭찬하였으며, 또 청정한 공에 상응하고 여읨에 상응한 모든 깊은 경법(經法)으로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였으므로 그 때의 타마시리 비구를 많은 사람들이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으며 이름과 소문이 널리 퍼졌느니라.
부루나야, 타마시리 비구는 이와 같이
널리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한 이후에 목숨을 마쳤으며, 그 모든 제자인 비구ㆍ비구니와 우바새ㆍ우바이들은 모두가 같이 화합하여 온갖 향나무를 쌓아 공양하면서 몸을 화장한 뒤에 함께 세로와 넓이가 10리(里)되는 탑을 일으켜 뭇 꽃과 향이며 가루향․바르는 향․영락․번기 및 일산으로써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느니라.
부루나야, 타마시리 비구는 목숨을 마칠 때에 도로 이 염부제(閻浮提) 안에 태어나기를 서원했으므로 곧 그 서원에 따라 왕가(王家)에 가 태어났고 이름을 득념(得念)이라고 하였느니라.
그는 미루건타 부처님 후의 300년째 되는 해에 그 법 안에 출가하였고 그의 본래의 서원으로써 전생을 아는 지혜[宿命智]를 얻었기 때문에 모든 법문의 구절과 다라니(陀羅尼)의 구절을 도로 다 얻었으며, 이 다라니를 얻은 힘 때문에 먼저 아직껏 듣지 못했던 경을 중생들에게 널리 연설하였고 전생에 일찍이 연설했던 것은 말해 주지 않았느니라.
부루나야, 그때에 모든 타마시리 비구 대중들 가운데에서 지혜가 깊고 밝으며 선근이 두터운 이는 득념이 말하는 모든 경전을 듣고는 마음으로 모두 따라 기뻐하면서 믿어 받고 공경하며 득념 비구를 공양하고 수호하였느니라.
그 가운데의 비구로서 위덕이 없고 근기가 둔한 이와, 완악하고 막혀서 선근이 엷은 이는 득념 비구가 말하는 새로운 법을 듣고는 믿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거역하고 잘못이라 하면서, ‘이러한 경전 등을 우리들은 화상(和尙)인 모든 스승들에게서 듣지도 못했고 또한 본래의 타마시리 큰 스승에게서도 듣지 못했다’고 하였느니라.
부루나야, 그 중에 지혜가 깊어서 이치[義]에 의지한 이들은 언어를 따르지 않고 이치에 의지한 까닭에 마음으로 거역하지 않았으며,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을 보호하였고 득념 비구를 공경하면서 수호한 것이니라.
부루나야, 그때의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들의 80나유타 사람들은 득념 비구가 말하는 경법을 따랐느니라.
부루나야, 그때에 타마시리의 모든 제자들은 2부(部)로 구별되었나니 한쪽은 타마시리의 비구 대중이라 하였고, 또 한쪽은 득념의 비구 대중이라고 하였느니라. 득념 비구는 ‘나는 바로 타마시리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타마시리 비구는 사람들 모두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고 그는 보살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데, 만일 스스로 말을 한다면 사람들이 의심하면서 득념 비구를 사람들은 모두가 ‘그는 보살이지 아라한이 아니다’라고 알 것이기 때문이었느니라.
부루나야, 득념 비구는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널리 이익되게 한 이후에 다시 목숨을 마쳤으며 그의 모든 제자들은 온갖 향나무를 쌓아 공양하면서 몸을 불사른 뒤에 사부대중이 두루 모여서 큰 스승인 보살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함께 세로와 넓이 5리(里) 되는 탑을 일으켜 뭇 향과 꽃이며 가루 향․바르는 향․영락․번기 및 일산으로써 공양하고 공경하고 찬탄하였느니라.
부루나야, 득념 비구는 목숨을 마칠 때에 다시 이 염부제에 태어나기를 서원했으므로 그 서원에 따라 큰 장자의 집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야사(耶舍)라고 지었느니라. 그는 본래의 서원 때문에 전생 일을 알게 되었고 미루건타 부처님의 400년째 되는 해의 나이 7세 때에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며 모든 다라니를 얻었느니라. 그리하여 그 다라니의 힘 때문에 사람들을 위하여 전에 아직 듣지 못했던 경을 설해 주었느니라.
이때에 득념의 비구 대중과 타마시리의 비구 대중은 그 가운데서 선근이 두터운 이는 야사가 말하는 모든 법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모두가 법락(法樂)을 얻었느니라.
부루나야, 이 모든 비구들은 이치에 의지하여 머무르되, 언어를 따르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야사 비구에게서
전에는 듣지 못했던 공에 상응한 깊은 경을 듣고 제일의(第一義)에 부합되었으므로 믿어 받고 거역하지 않았으며 받아 지니고 외우면서 말씀한 대로 행한 것이니라.
부루나야, 그 가운데에 비구로서 완악하고 막혀서 선근이 엷은 이는 야사 비구에게서 전에 듣지 못했던 경을 듣고 제일의인 공에 상응하는 깊은 경전에 부합되지 못했으므로 믿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거역하고 헐고 부수면서 ‘이와 같은 법을 우리들은 화상이신 모든 스승으로부터도 듣지 못했고 또한 득념 보살인 큰 스승에게서도 듣지 못했다’고 하였느니라.
부루나야, 야사 비구로부터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믿고 받은 이들은 모두가 타마시리의 비구들과 득념의 비구들을 미워하고 시샘하고 업신여기면서 같이 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함께 경법을 독송하거나 강설하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비방하면서 ‘그것은 부처님 법도 아니고 큰 스승의 가르침도 아니었다’고 하였느니라.
부루나야, 그때에 야사 비구는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을 널리 유포하기 위하여 한 마을로부터 한 마을에 이르면서 중생들에게 연설하였으므로 이롭게 한 바가 많았으며 80억 나유타 인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느니라.
야사 비구는 이와 같이 이익되게 한 뒤에 다시 목숨을 마쳤으며 그 야사 비구를 따른 7만 인들은 야사 비구를 위하여 7만의 탑을 일으켜 뭇 향과 꽃이며 바르는 향․가루향․영락․번기 및 일산으로써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느니라.
부루나야, 야사 비구는 목숨을 마칠 때에 다시 이 염부제에 태어나기를 원했으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 바로 그 원에 따라 다시 왕가에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에 모든 하늘들이 큰 소리로 ‘지금 태어난 왕의 아들은 중생을 크게 이롭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 외친 소리에 따라 이름을 도사(導師)라고 지었느니라. 그는 나이 14세 때에
미루건타 부처님 법의 5백 년째 되는 해에 출가하여 도를 배웠으며 이 도사 비구는 경서를 널리 독송하고 법을 많이 들어 앎에 깊이 들어갔으므로 문장과 말이 아름답고 설법을 탁월하게 하였느니라.
부루나야, 이 도사 비구는 한 마을로부터 한 마을에 이르고 성으로부터 성에 이르고 나라로부터 나라에 이르면서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을 유포하였으며 이롭게 한 바가 많았느니라.
그때에 타마시리와 득념과 야사의 모든 비구 대중들은 모두가 와서 한데 모여 도사에게로 와서 함께 헐뜯고 파괴하려 하였는데 그때에 도사 비구는 그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그대 비구들은 어떠한 일을 묻고 따지려는가? 무슨 일을 묻겠으며, 어떻게 묻겠는가?’라고 하자 모든 비구들은 이 말을 들은 뒤에 근심하고 언짢아하면서 잠자코 묻지도 못했으며 도사 비구를 방해하지도 못하였느니라.
이 도사 비구는 마지막의 악한 세상에 법이 소멸하려 할 때에 한 마을로부터 한 마을에 이르고 성으로부터 성에 이르고 나라로부터 나라에 이르고 8백만의 사람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고 그 사람들은 죽은 뒤에 모두가 다 천상에 가 났느니라.
부루나야, 이 도사 비구의 이익되게 한 바가 그와 같았으니 오늘밤에 목숨을 마치고 나면 다음날 밤에 법은 소멸하였느니라.
부루나야, 미루건타 부처님의 법이 소멸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깊고 청정한 공에 상응하는 경법도 모두가 다 소멸하였느니라.
부루나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이런 깊은 경으로써 불법을 수호하면 스스로 선근과 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부루나야, 이 도사 보살이 목숨을 마친 뒤에는
곧 그 국토의 상방(上方)인 열 번째 세계에 태어났으며, 그때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선안(善眼)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4)․아라하(阿羅訶)5)․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6)이었느니라. 그는 곧 다시 출가하였으며, 전생에 지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 지혜가 깊고 밝았으며 변재가 그지없었고 신속하면서 걸림이 없었느니라.
이 도사 비구는 선안 부처님 법 가운데서 8만 4천 년 동안 모든 선법을 닦았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다시 그곳에 나서 두 번째의 부처님이신 일증견(日增肩) 부처님을 만나 그 부처님께 출가하여 선근을 닦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느니라.
또 목숨을 마친 뒤에는 도로 그 뒤의 부처님이신 불공행(不空行) 다타아가타․아라하․삼먁삼불타를 만났고 그 부처님 법 안에 다시 출가하여 7만 년 동안 부지런히 선근을 닦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느니라.
그때에 그의 이름은 수라(首羅)라 하였는데 불공행 부처님은 그에게 수기하되 ‘내가 멸도한 뒤에는 이 수라 비구가 부처님이 될 것이며 그 명호는 무애안(無礙眼) 다타아가타․아라하․삼먁삼불타라고 하리라’ 하셨느니라.
부루나야, 보살이 이 셋째의 법을 성취하면 온갖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이치를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심히 깊고 청정한
결정된 법[決定法]을 듣고
자신은 편히 머무르면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느니라.

세간은 근본[底]을 얻지 못하나니
보살은 거기에 빠지지 않고
청정한 계율 안에 머무르면서
널리 중생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본사(本事)와 비유(譬喩)로
중생에게 보이되 부처님의 도[佛道]로써 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이것이 바로 결정된 법이니라.

보살은 이익을 능히 행하고
또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모든 불법을 수호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되 보리로써 하느니라.

중생은 법과 같이 닦고
보살은 중생을 위해 수행하며

중생을 부처님 도로써 가르치면
곧 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모든 부처님 도를 보호하여 지니고
또한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면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과
하늘 사람들의 공경과 공양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청정하고
모든 공의 깊고 묘한 법을 듣고
일심으로 생각하며 구해야 하나니
그러면 곧 지혜가 더욱 자라느니라.

“또 부루나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행(行)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 모든 행이 갖추어지면 곧 선근과 복덕을 두루 갖출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이 행인가 하면, 부루나야, 보살은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고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방편을 행하는 것이니라. 어떤 이가 보살의 선지식인가 하면, 보살이 그로부터 이와 같은 경전과 교화하는 방편을 듣게 될 모든 부처님과 아라한과 그리고 깊은 마음으로 부처님 도를 구함이 있는 보살이니, 이런 분들을 모두 보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 넷째의 법을 성취하면 곧 모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보살들이
마땅히 해야 할 법을 말하리니
보시한 뒤에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후회나 한(恨)이 없을 것이니라.

어떻게 기뻐하느냐 하면
즐거움이 온 몸에 두루 찬 것이니
항상 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보살의 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보시한 것을
보리에 회향(廻向)하면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자신의 이익도 한량이 없느니라.

만일 구걸함이 있는 이를 보면
마음에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며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부처님 도를 베풀어주는구나.

나는 이 사람으로 인하여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를 얻게 되며
이 사람은 나에게 부처님을 보여주어
부처님 도를 교화하는구나.

나는 이제 이 사람을 만났으니
쾌히 큰 길함[吉]과 이익을 얻었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온몸에 가득 차서
다시 그 밖의 일은 즐겁지 않다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오면
멀리서 보고는 문안하면서
‘어진 이시여, 어떠한 물건을 구합니까?
나는 다 당신에게 주겠습니다.’라고 하느니라.

만일 구하는 것이 없다고 하면
보살도 기뻐하면서
‘나를 교화하기 위하여
짐짓 구할 것이 없다고 하는구나.

이 어진 이가 즐기는 것은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법으로써
지금 와서 나를 깨우치며
보리의 인연을 얻게 하는구나.

나는 이제 이 사람으로 인하여
다시 가르침을 얻되 법으로써 하였나니
그대가 구하는 바 없다고 하는
이 말은 장하다는 말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느니라.

만일 이 물건이 필요하므로
이것을 나에게 주라고 할 때에
보살에게 만일 그것이 있으면
기뻐하면서 ‘당신이 가지시오’라고 하느니라.

만일 보시를 행하고 나서
그 뒤에 후회하는 일이 없음은
부처님의 도를 생각하기 때문이니
마음에선 항상 기쁨을 얻느니라.

보시한 뒤에는 회향하고
중생에겐 모두가 몫이 있으므로
두루 부족함이 없게 하며
모두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얻게 하느니라.

만일 보살의 도를 행하면
중생은 나의 이름을 듣고
저절로 그치고 만족할 줄 알며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지금 우리나라의 중생은
도를 따르며 모두 만족할 줄 알고
모든 5욕의 집착을 버리며
모두가 즐거이 출가하려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는 행의
보시로써 회향하면서
‘원컨대 언제나 보시를 행하며
중생들도 나를 본받게 하소서’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를 행하면서
자비로 중생을 감싸준다면
모든 세간에서
이것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느니라.

마치 큰 부자인 장자[長者]가
재산이 넉넉하고 보물이 많은데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여러 해 동안 먼 데를 돌아다녔었는데
장자는 그 아들이 돌아왔음을 듣고
기쁨과 즐거움이 온몸에 두루 차며
오래 이별하였다가 이제 돌아왔으니
그것은 마치 다시 낳은 것 같으리라.

보살은 걸인(乞人)을 보았을 때
그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나니
장자의 기쁨은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만일 보시하는 행을 하고 나면
마음이 곧 크게 기뻐지겠지만
인자한 마음에서 나게 되는 즐거움의
이 즐거움도 비할 데 없느니라.

마치 왕이 죄인을 다스리면서
팔다리를 갈가리 찢게 할 적에
죽일 이가 죽일 곳으로 데리고 가서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 하는데
왕이 용서하며 영광스런 지위를 내리면
이 사람은 크게 기뻐하나니
오히려 보살이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여 기쁨을 얻는 것보다는 못하다.

보살이 도를 행할 때에
복전(福田)을 구하지 않으면서
걸인이 있으면 곧 주기 때문에
큰 기쁨과 즐거움을 얻느니라.

보살이 만일 부처님과 아라한과
벽지불을 만나게 되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만나기 어려움을 알고

짐짓 나아가 공양하고 보시하느니라.

보살은 위덕(威德)이 있고
밝고 영리하며 마음이 조순(調順)하고
공덕을 즐기며 도를 구하면서
부처님과 그의 대중에게 공양하느니라.

깊은 공경으로써
천신(天神)들을 받들며 섬기지 않나니
오직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만은 그렇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벽지불이
저절로 열반을 얻었다면
역시 나아가서 공양하나니
여기에는 모든 공덕이 있느니라.

보살은 또한 복전의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잘 아나니
세간의 모든 지혜 있는 이는
나쁜 의도를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계(持戒)의 품류에 편히 머무르고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감싸주며
정진함이 견줄 데 없으면
인욕과 지혜와 불법을 많이 들음이 넓어지느니라.

이런 모든 공덕을 행하면
세간에서 높고 존귀한 이며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여
위없는 법륜을 굴릴 수 있느니라.

보살이 이 위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잘 수행하면
온갖 모든 선근이
모두가 바로 앞에 나타나게 되느니라.

한량없는 억수(億數)의 겁 동안에
닦은 모든 공덕은
모두가 다 이 행할 바의
보살도에 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보살은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닦고
출가하여 산과 숲에 살면서
조용한 곳에 있기를 좋아하느니라.

항상 모든 청정하고
깊은 결정된 법을 구하여
보살의 행을 두루 갖추면
이 때문에 저절로 더욱 자라게 되느니라.

5) 신력품(神力品)
그때에 세존께서는 신통의 힘으로써 몸의 낱낱 털구멍으로부터 함께 백천만 억의 광명을 놓았고 또 그 낱낱 털구멍으로부터 수미산만큼의 크고 맹렬한 불길을 내었으며, 또 그 낱낱 털구멍으로부터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나오셔서 설법을 하셨다.
그때에 모인 대중들은 이와 같은 큰 신통의 힘을 둘 다 보았으며 그때에 세존께서는 신력을 나타내신 뒤에 다시 그대로 되시고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가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이런 신력을 내는 것을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여래는 항상 이와 같은 신력이 쉬는 일이 없는데도
지금의 모든 제자들은 다만 여기에 있으면서 설법만 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실로 시방의 항하 모래알같이 많은 수의 세계에서 항상 불사(佛事)를 지으면서 쉬는 일이 없으며 또한 시방의 세계에서 이와 같이 설법하고 있느니라.
부루나야, 만일 사람이 진실한 말로 ‘어떤 분이 같을 이 없되 같고[無等等] 견줄 데 없는 사람일까? 양족존(兩足尊)이신 복전은 지극히 깊어서 측량하기 어렵고 끝없이 행하는 이라, 발을 들어 한 걸음 걸으실 적에도 중생으로서는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행을 하시면서 발을 들고 발을 내리는가를 알 수도 없고 생각하거나 헤아릴 수도 없다’고 한다면, 마땅히 나는 이 부루나와 일체 중생이 ‘여래가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하면서 발을 들고 발을 내리는가?’를 생각하거나, 헤아릴 수 없는 이라고 말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이치를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존은 어떤 생각과 어떤 행으로
발을 올리고 내리고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가를
중생은 언제나 이 일을 모르느니라.

신통의 힘도 한량없고
행하는 곳도 한량없으며
공덕도 한량없기 때문에
첫째가는 지극히 높고 존귀한 이시니라.

큰 신통과 지혜는 한량없어
모두 알 수 있는 이가 없나니
가령 일체의 사람의
지혜와 신통력이
모두가 사리불과
그리고 목건련과 같다 하여도
내가 발을 들고 발을 내리는 일을
또한 알지 못하느니라.

바로 온갖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벽지불이 되게 한다 하여도
나의 한 걸음걸이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부처님 법이겠는가?

가령 한량없는 해와 달을
합하여 하나의 해를 만든다 해도
여래의 한 털구멍에서 나오는
그 광명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가령 7만억
나유타 세계의
일륜(日輪)의 세로와 넓이 등으로
한량없는 국토를 두루 비추고

이와 같은 모든 큰 해들이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것을
합쳐서 하나의 해를 만들어
그 하나의 광명이 수미산만큼 하며

이렇게 모든 큰 해가
항상 시방 세계를 비춘다 하여도
부처님의 광명에 비하면
나타나지도 않음이 마치 불에 타는 나무와 같으니라.

이 모든 큰 햇빛은
나무의 잎도 꿰뚫지 못하며
모든 산과 강물과 석벽(石壁)도

모두 다 막히고 거리끼느니라.

여래의 광명으로 비추게 되면
온갖 수미산과
철위산(鐵圍山)과 금강산(金剛山)도
꿰뚫어 지나가며 막힘이 없느니라.

그 광명과 신통의 힘과
위덕이 한량없거늘
오직 믿지 않는 이만은 제외하고
누가 본들 마음을 내지 않겠느냐?

중생들이 이와 같은 광명과
큰 신통의 힘을 보면
대부분이 위없는 마음을 내면서
우리들도 얻어야겠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자
아난(阿難)이 이내 여쭈었네.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웃으시옵니까?
걸림 없는 지혜[無礙智]를 지닌 이시여, 대답하여 주소서.”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대답하셨네.
“중생들이 지금 내가
나타낸 큰 신력을 보고
발심하여 부처님이 되기를 원하느니라.

대중 가운데의 3만 인이
이 법을 수호하고 지니기를 원하면서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이러한 경을 찬탄하고 독송하겠다.’ 하느니라.

이 사람들은 내가 멸도하고 나면
이 경법을 얻어듣고
중간이나 마지막이나
들은 뒤엔 말한 대로 수행하리라.

도의 마음[道心]을 일으키는 것도 어렵고
부처님 법을 깊이 좋아하기도 어려우며
이후 세상에 이들의 경전을
지니고 독송하는 것도 어려우니라.

천만억 수의 겁 동안에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기도 심히 어렵고
이 뒤의 말세(末世) 동안에
이 경을 설하는 것도 어려우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와 같은 경을 너에게 갑절 더 부탁하고 맡기노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염부제 안에 이와 같은 보살장경(菩薩藏經)이 있게 됨에 따라 곧 불법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등의 깊은 경전이 소멸되기 때문에 말씀한 대로 행하는 법도 역시 소멸되고 말씀한 대로 행할 법이 소멸되기 때문에 불법도 곧 소멸되느니라.
아난아, 너는 이제 첫째가는 공양거리로써 나에게 공양해야 하느니라. 어떻게 제자로서 첫째가는 공양거리로 나에게 공양하느냐 하면, 너는 마음으로 이름 있는 꽃과 좋은 향과 가루향과 바르는 향이며 번기․일산․영락․의복 및 음악으로 여래를 찬탄함을 으뜸가는 공양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하나니, 아난아, 이와 같은 것을 첫째가는 공양이라 하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등의 깊은 경을 얻어듣고는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 말한 대로 수행하는 것을 바로 첫째가는 공양거리로써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모두 다 같이 법에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였으며 세간의 모든 공양 거리를 귀히 여기지 않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지금 이 경을 정중하고 은근히 너에게 부탁하고 맡기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아난아, 나는 이와 같은 등의 경을 배워서 지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위없는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본래 보살도를 행하실 때에 역시 이와 같은 등의 경을 배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역시 이와 같은 등의 경을 배워서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위없는 법륜을 굴리실 것이며, 현재 계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도 본래 보살의 도를 행하실 적에 역시 이와 같은 등의 경을 배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지금 법 바퀴를 굴리고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이 보살장경을『전법륜경(轉法輪經)』이라 하나니, 마땅히 받들고 지녀야 하느니라.
나는 바라내국(波羅奈國)의 이사산(梨師山) 녹원(鹿園) 가운데서 성문 제자들과 함께 법륜을 굴렸거니와 아난아, 나는 지금 이 죽원(竹園) 가운데서 이 보살장경의 물러나지 않는 바퀴[不退轉輪]를 굴리면서 온갖 중생들의 의심을 끊고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모두가 이 허공 아래의 땅에서 이 보살장경을 말씀하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역시 모두가 이 허공 아래의 땅에서 이 보살장경을 말씀하실 것이며, 나도 지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역시 이 허공 아래의 땅에서 이 보살장경을 말하고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 땅은 바로 부처님의 큰 탑이어서 하늘과 사람의 세간에서 공양할 곳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 땅은 유독 다른 데와는 공통하지 않은 공덕이 있나니, 이른바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여기서 모든 깊은 경전을 연설하신 것이니라.
아난아,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는 중생들이 이 죽원에 들어오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키지 않게 되느니라. 아난아, 여래가 비록 그 밖의 여러 정사에 머물러 있기는 하나 모두가 그러한 공덕은 없느니라. 왜냐 하면 아난아, 지금의 이 가란타(迦蘭陀)의 죽림(竹林)에 축생이 들어오면 음욕을 일으키지 않고, 새들이 들어오면 때가 아닐 때에는 울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마갈타국(摩竭陀國)의 병사(洴沙) 요정(澆頂) 대왕이 옛날 처음 왕위에 오른 뒤에 여러 채녀(婇女)들과 함께 이 동산에 들어와서 함께 즐기려 하였으나 들어와서는 마음이 음욕이나 오락이나 실없는 일을 하려는 생각이 없어짐을 저절로 깨달았고, 모든 채녀들 역시 모두가 음욕의 마음이 없어지면서 즐기려는 생각이 없어짐을 저절로 깨달았느니라.
그때에 왕은 기뻐하며 매양 생각하기를 ‘원컨대 세간에 부처님께서 계시면 저의 나라에 출현하소서. 저는 만나 뵙고, 뵌 뒤에는 마음으로 믿겠사오며 믿은 뒤에는 공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동산을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겠으며 부처님께서 이 안에 계시면 저는 마땅히 법을 들겠습니다. 왜냐하면 공양 받을 만한 이가 이 동산에 머물러야 하며, 5욕이 있는 사람은 머무를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병사왕이 이 죽원에 들어와서 이런 착한 마음이 생겼음은 모두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동산 안에 계시면서 이 보살장경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이 동산이 지닌 공덕은 다른 곳과는 같지 않으며, 온갖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의 모두가 예배하고 공경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 동산에는 독사나 지네와 모기와 등에 등의 해악이 없으며, 만일 그 안에 머무르게 되면 다시 독한 마음이 없어지므로 역시 이 죽원은 다른 곳의 공덕과는 같지 않나니, 내가 설령 100년 동안 이 죽원이 지닌 공덕을 설명한다 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아난아, 지금의 이 죽원정사(竹園精舍)는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니,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래 죽원에 이러한 공덕이 있었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본래 부처님의 시자(侍者)가 되려고 하지 않았던 그러한 죄를 저는 이제 참회하며 용서를 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처음 법에서 법안(法眼)이 청정함을 얻은 그때에 이미 그러한 죄는 소멸되었느니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