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73권
대보적경 제73권
북제(北齊) 삼장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 한역
송성수 번역
16. 보살견실회(菩薩見實會) ⑬
25) 육계차별품(六界差別品) ①
그때에 정반왕(淨飯王)과 모든 권속들은 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용(龍)․용녀(龍女)․구반다(鳩盤茶)․건달바(乾闥婆)․야차(夜叉)․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가라갈사천(呵羅竭闍天)․사천왕천(四天王天)․삼십삼천(三十三天)․야마천(夜摩天)․도솔타천(兜率陀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범마천(梵摩天)․광음천(光音天)․변정천(遍淨天)과 나아가 광과천(廣果天) 등이 공양 올리는 것과 부처님께서 수기를 내리시는 것을 보며, 또 정거천들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도 들었다.
또 외도들이 수기를 얻는 것을 듣고 정반왕은 생각하기를 ‘이런 일은 희유하고도 불가사의하다. 세존께서 이렇게 잘 말씀하시니 모든 세간이 듣고 나면 이렇게 기뻐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이때에 정반왕은 아들이 사랑스러운 마음에 정의(情意)가 은근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부왕(父王)에게 말씀하셨다.
“제가 말하는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나중도 좋으며, 그 뜻은 깊고 그 맛도 좋으며, 순박하고 깨끗하여 뒤섞임이 없고 청렴하고 결백하여 물듦이 없으며 범행(梵行)의 법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범행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요소[六界]를 분별하는 법문(法門)입니다. 왕께서는 이제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셔야 하리니, 왕을 위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제가 이제 자세히 듣겠으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여섯 가지 요소를 분별하는 법문인가 하면, 대왕이시여, 말한 여섯 가지 요소란 곧 장부(丈夫)요, 여섯 가지 감관[六觸入] 역시 장부며, 열여덟 가지 의식의 경계[十八意識境界] 역시 장부입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말한 여섯 가지 요소가 곧 장부라는 것은 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대왕이시여, 그 여섯 가지 요소는 이른바 땅의 요소[地界]․물의 요소[水界]․불의 요소[火界]․바람의 요소[風界]․허공의 요소[空界]․의식의 요소[識界]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여섯 가지 요소라 하며, 여섯 가지가 곧 장부라고 하는 것도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가 여섯 가지 감관도 장부라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대왕이시여, 말한 바의 감관에서 눈의 감관[眼觸入]은 모든 빛깔을 보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하여 귀[耳]․코[鼻]․혀[舌]․몸[身] 역시 그와 같으며, 뜻의 감관[意觸入]은 법(法)을 알기 때문이니, 제가 말하는 여섯 가지 감관이 장부라 함도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가 열여덟 가지 의식의 경계도 곧 장부라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대왕이시여, 이 열여덟 가지 의식의 경계에서 눈은 뜻에 맞는 빛깔을 보면 생각하여 분별하면서 인식[思覺]하게 되고 뜻에 맞지 않은 빛깔을 보고 나서도 역시 생각하여 분별하면서 인식하게 되며 이것저것도 아닌 빛깔[捨處色]을 보고 나서도 역시 생각하여 분별하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요, 귀․코․혀․몸도 역시 그와 같으며 뜻은 법을 아는 것이므로 뜻에 맞는 법을 안 뒤에도 생각하면서 분별하고 뜻에 맞지 않은 법을 안 뒤에도 생각하면서 분별하며 이것저것도 아닌 법을 안 뒤에도 역시 생각하면서 분별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말하는 열여덟 가지 의식의 경계가 곧 장부라 함도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왕이시여, 땅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안[內]의 것이 있고, 바깥[外]의 것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을 안의 땅 요소[內地界]라 하는가 하면 곧 자기 몸 안에 있고 다른 이들의 몸 안에 있는 것으로 몸에 붙어 있고 지니고 있는 단단한 것이요 억센 것이니, 곧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빨․더러운 때․가죽․살․힘줄․뼈․골수․지라․콩팥․간․폐․대장․소장․대변․방광 및 뇌 등이 그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이런 것들을 몸 안의 땅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바깥 몸의 땅 요소[外地界]인가 하면 사람 몸 바깥에 있으면서 몸에 붙어 있지도 않고 지니고 있지도 않는 단단한 것이요 억센 것이니, 대왕이시여, 이것을 바깥 몸의 땅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안 몸의 땅 요소가 생기는 때에는 어디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때에 여인이 ‘나는 여인이다’라고 스스로 분별하고는 ‘나는 여인이다’라고 스스로 분별하고 난 뒤에, 바깥의 장부를 보고 또 ‘그는 장부다’라고 분별하고는, 이 여인이 ‘그는 곧 장부다’라고 분별하고 나서 곧 음욕에 대한 생각을 내고, 음욕에 대한 생각을 낸 뒤에는 즐거이 화합(和合)하려 하여 그 남자에 대하여 염애(染愛)를 내게 됩니다.
그 남자도 역시 ‘나는 남자다’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나는 남자다’라고 분별한 뒤에 바깥의 여인을 보고 다시 ‘그는 여인이다’라고 분별하고, 이 남자는 이렇게 분별하고 나서는 그 여인에 대하여 염애를 내며, 이 남자와 여인은 서로 염애를 낸 뒤에 곧 화합하게 되는 것이요 화합하기 때문에 가라라(歌羅羅)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 장부가 분별심을 일으키고 분별한 일은 둘 다 얻을 수 없고 여인과 여인의 성품도 얻을 수 없으며, 남자와 남자의 성품 역시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상속(相續)하지 않는 것을 분별을 내는데 그 분별 또한 제 성품[自性]을 얻을 수 없고 마치 분별하는 제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이 화합함과 화합하는 성품도 얻을 수 없으며, 마치 화합함과 화합하는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이 가라라와 가라라의 성품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제 성품을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단단하고 억센 것을 생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시여, 분별로 인하여 단단한 것과 억센 것이 생기게 되는 줄 알아야 하시며 그 단단하고 억센 것이 생기는 때에도 오는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때에는 이 몸이 목숨을 마치고 무덤 속의 죽은 시체가 되겠거니와
그 죽은 시체의 단단하고 억센 모양이 변하고 파괴되는 때에도 역시 동쪽으로 향해 가지도 않고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를 향하여 가지도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은 것을 안 몸의 땅 요소라 하는 줄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간도 텅 비게 될 것이며 또 범천(梵天)의 7보로 된 궁전에 났을 때에 그 궁전의 단단하고 강한 모양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들의 7보로 된 궁전의 견고하고 강한 것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이와 같이 하여 화락천(化樂天)․도솔타천(兜率陀天)․야마천(夜摩天)․삼십삼천(三十三天)․사천왕천(四天王天) 등에 있는 7보로 된 궁전의 견고한 형상이 생길 때에도 어디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大鐵圍山)이 견고하고 충실하여 금강과 같은 단단하고 억센 것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으며, 이와 같이 하여 수미산(須彌山)․니민달산(尼民達山)․육건달산(育乾達山)․이사달산(伊沙達山)․구제라가산(佉提羅迦山)․비달략산(鞞達略山)․비나다가산(毘那多迦山)․아엽파갈나산(阿葉波竭那山)․철위산(鐵圍山)․대철위산(大鐵圍山)․소달사나산(蘇達舍那山)․마하소달사나산(摩訶蘇達舍那山)․우상가라산(優常伽羅山)․설산(雪山)․향산(香山) 및 그 밖의 흑산(黑山)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이루어질 때와 온갖 단단하고 강한 것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이 대지(大地)의 두께는 160만 유순으로 생겨난 뒤 머무르지만 대왕이시여, 그 단단하고 억센 것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가 되면 이 세계는 무너질 것인데 이 세계가 무너지려 할 때에 이 대지는 혹은 불에 타버리기도 하고, 혹은 물에 떠내려가 버리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불려 모두 흩어져 없어지겠지만, 그 땅이 불에 타게 될 때에는 연기나 재까지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소유(蘇油)가 불에 타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아서 이 삼천대천세계가 타고 난 뒤에는 타다 남은 재도 보이지 않으며, 뒤에 물에 떠내려갈 때에도 역시 남은 것은 볼 수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소금을 물에 넣으면 녹아 없어져서 남는 것이 없게 되는 것처럼, 대왕이시여,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삼천대천세계가 물에 떠내려간 뒤에도 역시 남는 것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아서 삼천대천세계가 바람에 불려서 파괴될 때에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비람풍(毘嵐風)이라는 맹렬한 바람이 나는 새들을 향해 불면 그 새들이 흩어 없어지면서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삼천대천세계는 비람풍의 맹렬한 바람이 불어 모두 파괴되고 흩어져 없어지면서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저 땅의 요소는 이루어질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무너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안 몸의 땅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향해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땅의 요소가 생길 때에도 공이요 머무를 때에도 공이며 나서 머무는[生住] 두 때의 체성(體性)도 다 같이 공인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물의 요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안의 것이 있고 바깥 것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안 몸의 물 요소[內水界]는 자기 몸 안에 있고,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의 몸 안에 붙어 있고 지니고 있어서 물[水]과 물의 성품[水性]과 물의 바탕[體]이요, 물기[潤]와 물기의 성품과 물기의 바탕이니, 이 몸 안에 있는 눈물․콧물․침․고름․피․진물․기름․골수․젖․담․소변 등이 그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은 물질을 몸 안의 물 요소라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것이 몸 바깥의 물 요소[外水界]인가 하면 몸에 붙어 있지도 않고 지니지도 않은 물과 물의 성품과 물의 바탕이요, 물기와 물기의 성품과 물기의 바탕이 그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몸 바깥의 물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저 몸 속의 물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온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이를테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또한 눈물을 흘리고, 법을 듣고 난 뒤에 공경하며 믿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또 바람과 추위를 만나도 눈물을 흘리고, 눈이 붉어지며 아플 때에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눈물이 나올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로는 몸 안의 물 요소가 더욱 자라고 더욱 자란 뒤에 그 물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몸 안의 불 요소[火界]를 없어지게 하는데 그 불의 요소가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몸 안과 바깥의 요소가 생길 때에도 역시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몸 안과 바깥의 요소가 생길 때에도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공이며 그 물 요소의 성품도 저절로 공이 됩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때에는 그 안의 불 요소[內火界]가 더욱 왕성해지고 몸 안의 물 요소를 마르게 하는데 그 물 요소가 타서 마를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그 몸 안의 물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몸 안의 물 요소가 생길 때에도 역시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역시 공이요 체성도 스스로 공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가 되면 이 세계는 파괴됩니다. 대왕이시여, 이 세계가 파괴되려고 할 때에는 허공 중에 서른두 겹으로 겹친 구름이 일어나서 머무르고, 서른두 겹의 구름이 두루 일어나서 머무른 뒤에는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게 되고,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은 뒤에는 5중겁(中劫) 동안 하늘에서 큰비가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데 마치 코끼리왕이 싸는 오줌과 같습니다. 그 뒤에 다시 5중겁 동안 굵은 비가 내리는데 그 때에는 그 물이 쌓이고 쌓이면서 위로 범천까지 차 오르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 큰물의 요소는 처음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파괴될 때에는
이 세계 안에 두 번째의 해가 나오게 됩니다. 이 두 개의 해가 나왔을 때에는 작은 하천이나 샘물의 근원이 모두 바짝 마르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때 이 세계에는 세 번째의 해가 나오게 되는데 이 세 번째의 해가 나왔을 때에는 큰 냇물과 강물이 모두 다 바짝 마르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또 그때 이 세계에는 네 번째의 해가 나오게 되는데 네 번째의 해가 나왔을 때에는 4대하(大河)의 근원이 역시 모두 말라버립니다.
대왕이시여, 세계는 또 그때 다섯 번째의 해가 나오게 되는데 다섯 번째의 해가 나온 뒤에는 큰 바다 속의 물이 1유순․2유순․3유순, 4․5 내지 10유순의 물이 모두 바짝 마르고 20․30․40․50유순의 바닷물이 다 말라버리며, 1백 유순․2백 유순․3백 내지 1천 유순의 물이 역시 모두 마르고, 2천․3천․4천 내지 1만 유순의 물이 역시 모두 마르며 2만․3만 내지 4만 4천 유순의 큰 바닷물이 모두 다 말라버립니다.
대왕이시여, 또 그때 큰 바다에 남아 있는 물은 4만 유순에 걸쳐 남아 있다가 3만․2만․1만 유순에 물이 남으면서 점차로 없어지며, 9천․8천 내지 1천 유순과 9백․8백 내지 1백 유순으로 물이 남게 되고, 90유순․80․70․60․50․40․30․20 내지 10유순과 9유순․8유순으로 남게 되다가 1유순에 이르기까지 물이 남게 됩니다.
뒤에는 5리(里)에서 최하로 10다라수(多羅樹)․9다라수, 나아가 1다라수에 이르고 열 사람에서 한 사람에까지 물이 남게 되며 한 사람의 몸에서도 목구멍 있는 데까지 찼다가 겨드랑이에 이르고 그 다음은 배꼽에 이르고 그 다음은 허리에 이르고 그 다음은 사타구니에 이르고 그 다음은 넓적다리에 이르고 그 다음은 복사뼈에 이르기까지 물이 남게 되어 마지막에는
소 발자국에 찰 만큼의 물이 남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러할 때에 큰 바다 안에는 조그마한 습기가 있게 될 뿐이니, 마치 굵은 비가 내릴 때에 잠시 축축했다가 다시 말라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굵은 비가 뚝뚝 떨어질 때에 주위를 다 젖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큰 바닷물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그때에 큰 바다에서도 습기가 있는 데가 오직 한 손가락만을 적시게 할 분량 밖에 없게도 합니다.
대왕이시여, 그 물 요소가 점점 없어질 때에도 어디로 향해 가서 이르는 곳이 없으며, 또한 동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를 향해 나아가지도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물의 요소는 생길 때에도 역시 공이요 머무를 때에도 역시 공이며 없어질 때에도 역시 공입니다. 이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그 물 요소의 성품은 얻을 수 없고 오직 작용만이 있을 뿐이며, 남자도 아니고 여인도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불의 요소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內]이요, 둘은 바깥[外]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것이 안의 불 요소[內火界]냐 하면, 대왕이시여, 자기 몸 안에 있고 다른 이의 몸 안에도 있으며, 지니고 있는 불과 불의 바탕[體]과 불의 모양[相]이요 열(熱)의 바탕과 열의 모양이니, 이른바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은 몸 속의 따뜻하고 뜨거운 기운으로 이것이 모두 열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몸 안의 불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것이 몸 바깥의 불 요소[外火界]냐 하면, 몸 밖에 있는 것으로서 몸에 지니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불과 불의 바탕과 불의 모양이며 따뜻하고 뜨거운 열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몸 바깥의 불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또 그때에 가라라(迦羅羅)가 태 안에 있을 적에 몸 안의 불 요소가 더욱 왕성하여지면 물 요소가 점차로 적어지며 그 때문에 가라라는 점점 진해지고 점차로 단단하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쇠그릇에 엿을 달이면 불의 힘 때문에 점차로 진해지고 딱딱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불의 힘 때문에 가라라는 점점 진해지고 점점 단단해지며 가라라가 점점 진해지고 점점 단단해지기 때문에 알부타(遏浮陀)라 하고 알부타가 불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시가(卑尸迦)라 하며 비시가가 불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견고(堅固)라 하고 견고가 불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5지(支)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저 물의 요소는 불의 요소에 성숙하게 되어서 그 물의 요소는 점차로 진해지고 점차로 단단해지면서 그 때문에 살덩이[肉團]가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 불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으며 그런데도 그 물 요소를 타 없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로 어떤 병든 사람은 몸 안의 불 요소가 모두 다 없어지게 되는데 그 병든 사람의 몸 안에 불 요소가 없어져 다하면 먹는 물건이 소화되지 않으며 그 병든 사람이 소화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뒤에는 음식을 더 먹을 수 없게 되고 더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몸 안의 불 요소는 더욱더 없어지게 되며, 그리하여 그 사람은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몸 안의 불 요소가 없어지기 때문에 마침내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불 요소가 없어질 때에도 동쪽이나 서쪽․남쪽․북쪽이나 네 간방이나 위와 아래를 향하여 가지도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불의 요소는 생길 때에도 역시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역시 공이어서 그 불의 요소는 본래부터 체성이 스스로 공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때에 가면 세계도 파괴됩니다. 세계가 파괴될 때에는 몸 바깥의 불 요소가 더욱 왕성해지면서 하나의 불덩이가 되고 하나의 불덩이로 된 뒤에는 삼천대천세계를 온통 다 태워버립니다.
대왕이시여, 그 몸 바깥의 불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그때에 그 큰 불덩이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태워버린 뒤에는 다시 꺼져 없어집니다.
대왕이시여, 그 불이 꺼져 없어질 때에는 동쪽이나 서쪽․남쪽․북쪽이나 네 간방이나 위와 아래를 향하여 가지도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몸 바깥의 불 요소는 생길 때에도 역시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역시 공이며 그 큰불의 요소의 체성도 스스로 공하여 있지 않은 것이라 얻을 수도 없고 오직 작용만 할 뿐이며, 그리고 그것은 작용만 하는 것이요 남자도 아니고 여인도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바람의 요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의 것이요, 둘은 바깥의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것이 몸 안의 바람 요소[內風界]냐 하면 자기의 몸 안과 다른 이의 몸 안에 있는 바람의 요소로서 느끼게도 되고 지니고도 있는 바람과 바람의 바탕과 바람이라는 이름이요, 빠른[速疾] 것과 빠른 것의 바탕과 빠른 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니, 이른바 몸의 4지(支)에 머무는 것도 바람이요, 위(胃)에 머무는 것도 바람이며, 온 몸[五體]을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요, 모든 끝 부분을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며, 크고 작은 부분을 온통 움직이게 하는 것도 바람이요, 들이쉬고 내쉬는 숨도 역시 바람입니다.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온몸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바람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몸 안의 바람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로는 몸 안의 바람 요소가 더욱 왕성해지면서 한데로 모이기도 합니다. 더욱 왕성해져 한데로 모일 때에는 물의 요소를 마르게 하고 또한 불의 요소를 줄어들게 합니다. 그때에 물의 요소를 마르게 하고 불의 요소를 줄어들게 하면 사람 몸에 윤기가 없어지고 또한 따뜻한 기운도 없어지므로 염통과 배가 붓고 팔다리가 빳빳해지며, 모든 맥이 부풀어오르고 힘줄과 마디가 당기게 됩니다. 그때에 그 사람은 큰 고통을 받게 되고 혹은 목숨을 잃게도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몸 안의 바람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어떤 때는 병든 사람이 용한 의사를 만나고 그 의사는 병든 사람을 관찰하고 나서 병에 맞추어 약을 처방하고 병에 따라 약을 주기 때문에 바람의 병은 낫게 하지만 대왕이시여, 그 바람의 요소가 없어질 때에도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몸 속의 바람 요소는 생길 때에도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공이며 몸 속에 바람 요소의 체성도 스스로 공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몸 바깥의 바람 요소[外風界]냐 하면 몸의 바깥에 있고 몸으로는 지니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니 바람과 바람의 바탕과 바람이라는 이름이요 빠른 것과 빠른 것의 바탕과 빠르다는 이름이 붙은 것이니, 대왕이시여, 이것이 바로 바깥의 바람 요소입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로는 저 바깥의 바람 요소가 더욱 왕성하여지기 때문에
바람의 요소가 한데 모이게 되므로 한데 모일 때에는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와 줄기를 부러뜨리며 나무를 꺾고 뿌리를 뽑으며 산봉우리를 허물고 큰산을 무너뜨리고 파괴하고 부러뜨려 산산조각을 만들면서 점차로 흩어지게 하고 내지 작은 티끌이 되게 하면 이 삼천대천세계는 바람에 불려서 주위를 빙빙 돌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옹기장이가 막대기로 윤대(輪臺)를 돌리는 것처럼 이 삼천대천세계를 바람이 불어서 돌리는 것도 그와 같나니, 마치 보릿가루가 바람에 불려 먼지가 되어서 날릴 적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이 삼천대천세계는 바람에 불려서 깨지고 부서져서 가루가 된 뒤에는 작은 티끌이 되며 작은 티끌이 되고 나면 역시 볼 수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아주 사나운 바람이 일어날 때에 한 줌의 흙을 그 바람에 흩으면 아주 작은 먼지까지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이 삼천대천세계는 바람에 불려 산산조각이 되면서 가루가 되고 산산조각이 되어 가루로 된 뒤에는 하나의 남은 작은 티끌까지도 볼 수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바깥의 바람 요소가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또 여름철이 시작되면 그 바깥의 바람 요소는 모두 숨어 없어집니다. 숨어 없어지기 때문에 더울 적에도 바람이 없고 풀과 나무 위에는 이슬도 없으며 이슬이 없기 때문에 온갖 초목에는 물기가 없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그러한 바깥의 바람 요소는 없어질 때에도 역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 바람의 요소는 생길 때에도 역시 공이요 없어질 때에도 역시 공이어서 바람 요소의 체성은 스스로 공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안의 바람 요소와 바깥의 바람 요소는 둘 다 공이며, 체성은 스스로 여의고 모양 또한 스스로 여의며, 성품 또한 얻을 수 없고 없어지는 모양 역시 여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람의 요소는 짓는 것이 아니고 짓는 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허공의 요소냐 하면 허공의 요소에도 두 가지가 있어서
안의 것이 있고, 바깥 것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안의 허공 요소[內虛空界]냐 하면 자기 몸의 안과 다른 이의 몸 안에 받아 지니고 있는 것이니, 이른바 허공과 허공의 바탕과 허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이것은 몸 안에 생겨 있는 것으로 5음(陰)의 수(數)에 들어가고 6입(入)의 수에도 들어가며, 18계(界)의 수에도 들어가는데 온갖 텅 빈 구멍들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몸 안의 허공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바깥의 허공 요소[外虛空界]냐 하면, 밖에 있는 물질 아닌 것 내지 있지 않은 털과 같은 허공처를 허공이라 합니다.대왕이시여, 이것을 바깥의 허공 요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또 때로는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감관[入]을 생기게도 하는데 그 감관 등이 생긴 뒤에는 허공 요소를 에워싸므로 이때에는 안의 허공 요소의 수(數)에 들어간다고 하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법 가운데서 추구하건대, 하나의 안입(眼入)도 얻을 만한 것은 없고 오직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대왕이시여, 왜냐하면 공하여 땅의 요소가 청정하기 때문이요, 마치 땅의 요소가 청정하여 공한 것처럼 물․불․바람의 요소도 청정하기 때문에 공한 것이니, 그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때로는 온갖 물질[色]은 모두 무너져 없어지면서 허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요소는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오직 안의 허공 요소만은 편안히 머무르면서 동요하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함이 없는 열반의 경계[無爲涅槃界]가 편안히 머무르면서 동요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허공의 요소는 온갖 처소에 두루한 줄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 늪이나 너른 들판에 샘이나 못이나 우물을 판다고 하면,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기서 이루어지는 허공들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디서부터 오는 곳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만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도로 흙을 메우게 한다면,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허공의 요소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그 허공의 요소는 온데도 없고 간데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허공의 요소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바깥의 허공 요소도 역시 동요하지 않고 성품이 변하거나 바뀜이 없으며, 허공의 요소는 공하여 존재하는 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요소는 남자도 아니고 여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것이 의식의 요소[識界]냐 하면 마치 눈[眼]이 주(主)가 되어 빛깔을 반연하면 빛깔을 상대하여 알기 때문에 안식(眼識)이 생겨 혹은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여러 가지 빛깔을 알며, 또한 길고 짧고 굵고 가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이러한 온갖 빛깔 등과 물건은 안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안식의 요소[眼識界]라 합니다. 이와 같이 소리를 알고 냄새를 알고 맛을 알고 감촉을 알고 또 법을 알게 되는 것이요, 혹은 여섯 감관[六根]이 반연할 바[所緣]와 알 바를 알게 되므로 이것을 의식의 요소[意識界]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또 이 의식의 요소는 모든 감관[根]에 의지하지도 않고 또한 경계[界]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이시여, 땅의 청정한 물질[地淨色]로 안입(眼入)을 삼은 것이 아니요, 물․불․바람의 요소의 청정한 물질과 모든 그 밖의 법은 안입과 안입을 갖춘 것으로 삼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앎이 없기 때문이요 구별하여 앎이 없기 때문이며,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요 처음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기 때문이며,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또한 중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은 의식의 요소로 앞의 일들을 분명히 알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면서 다시는 생기지 않는데, 그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으며 그것이 없어질 때에도 역시 가는 곳이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을 눈의 감관이 된다고 하는가 하면 4대(大)로 이루어진 청정한 물질[色]입니다. 만일 모든 법의 체성이 스스로 공하게 된다면 어느 것이 청정한 것이고, 어느 것이 혼탁한 것이겠습니까? 모든 법 안에서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서 깨끗함과 더러움을 보겠습니까?
이와 같나니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안입(眼入)의 체성은 마침내 공하고 고요한지라 과거나 미래에서 모두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얻을 수 없고, 과거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얻을 수 없으며, 미래는 미래 세상의 일이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눈 또한 얻을 수 없음은 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체성을 얻을 수 없다면 역시 남녀의 성품도 얻을 수 없으며, 이미 남녀의 성품이 없거늘 어찌 나[我]와 내 것[我所]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시여, 만일 나와 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악마의 경계요, 나와 내 것이 없다면 그것을 모든 부처님․여래의 경계라 합니다. 왜냐하면 온갖 모든 법은 나와 내 것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안입(眼入)이 공함과 안입의 제 성품이 공함을 사실대로 환히 아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안입의 모양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안입의 체성도 공하고 고요합니다. 이 공은 안입의 모양을 여의었으므로 이것을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고 모양을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다[無願]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안입 가운데의 세 가지 공한 해탈문[三空解脫門]이 앞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무엇이 바로 이입의 요소[耳入界]와 내지 신입의 요소[身入界]냐 하면, 대왕이시여, 이 온갖 법은 세 가지 해탈문에 대해 바로 앞에 틀림없이 나타나서 법계(法界)에 나아가고 마지막에는 허공에 두루하여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작용할 수도 없고 보일 수도 없으며 이론으로 다툴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으며 측량할 수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눈으로 빛깔을 대(對)하는 것을 뒤바뀜[顚倒]이라 하며 이와 같이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접촉과 뜻의 법을 간략히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모든 법을 뜻의 경계[意境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안입이 빛깔을 대한다 함은 가서 보고 취하면서 집착하는 것이니, 이 눈은 세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뜻대로 되는 경계[順境]를 보면
좋아하는 생각을 내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계[逆境]를 보면 성내는 마음을 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中容]를 보면 평등한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아서 그 밖의 모든 귀․코․혀․몸 역시 모두가 그와 같으며, 뜻[意]으로 법(法)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만일 뜻대로 되는 경계를 반연하면 좋아하는 마음을 내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계를 반연하면 성내는 마음을 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를 반연하면 어리석고 미혹된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경계는 이 뜻으로 행하는 바요, 뜻과 함께 일어나는[遍行] 것이므로 뜻의 경계라 합니다.
대왕이시여, 그 뜻이 뜻에 맞는 물질[順色] 위에서 행해지면 탐욕을 내고 뜻에 맞지 않는 물질[違色] 위에서 행해지면 성을 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물질[中容色] 위에서 행해지면 무명(無明)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와 같아서 소리․냄새․맛․감촉․뜻으로 반연할 바의 법에서도 역시 세 가지 일이 행해지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테면 뜻이 뜻대로 되는 경계를 반연하면 그 의법(意法)에 탐욕을 내고 뜻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계를 반연하면 의법에 성을 내며, 뜻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경계를 반연하면 그 의법에 무명을 내어서 어리석음을 일으킵니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감관[根]은 마치 허깨비와 같음을 아시고, 저 경계[界]는 마치 꿈과 같은 줄을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여러 채녀(婇女)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겼는데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 꿈속의 여러 사람과 채녀들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속에 있었던 일들이 진실로 있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꿈에서 본 것에 집착하면서 진실이라고 여긴다면 그를 지혜롭다 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 속에서 보았던 여러 사람과 채녀들은 원래 없는 것이어서 역시 얻을 수조차 없거늘 하물며 서로 재미있게 즐긴 일이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다만 스스로 고달플 뿐이요 도무지 진실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고 견문이 없는 범부는 뜻에 맞는 빛깔을 대하면 눈으로 그 빛깔을 보고 나서 마음에 집착을 내고, 집착을 낸 뒤에는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 뒤에는 염착(染着)하는 마음을 내고 염착하는 마음을 낸 뒤에는 염착하는 업(業)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身三]와 입에서의 네 가지[口四]와 뜻에서의 세 가지[意三]의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는데 이 업이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무르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에 임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서 나타나 보입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은 자기 분(分)의 업이 다하면 다른 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것은 마치 꿈을 깬 뒤에 꿈 속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주(主)가 되어 그 업의 인연 때문에 이 두 가지 연(緣)으로 태어날 분[生分] 가운데서 의식[識心]이 처음에 일어나면서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염마라(閻魔羅)세계에 나기도 하고, 혹은 아수라에 나기도 하며, 혹은 천상과 인간에 나기도 하니 이전의 의식이 벌써 소멸하고 태어날 분의 의식이 생기면서 태어날 분이 상속(相續)하는 마음의 종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러나 어떤 법도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이어짐은 없으면서도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있어서 지었던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되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後識]이 소멸할 때를 죽을 운수[死數]라 하는 것이고, 최초의 의식[初識]이 생기게 되면 태어날 운수[生數]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 최후의 의식이 일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리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연(緣)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업(業)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해 죽을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최초의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태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 성품[自性]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의식은 체성(體性)이 공하고 연(緣)은 연의 체성이 공하며 업은 업의 체성이 공하고 죽음은 죽음의 체성이 공하며 최초의 의식은 최초의 의식이 공하고 느낌은 느낌의 체성이 공하며 세간은 세간의 체성이 공하고 열반은 열반의 체성이 공하며 일어남은 일어남의 체성이 공하고 무너짐은 무너짐의 체성이 공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지은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지만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으며 다만 세속에 따라 있다 할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第一義]는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온갖 법은 모두가 공하고 고요합니다. 모든 법이 공하면 이것이 공의 해탈문[空解脫門]이요, 공하여 없으면서 모양이 공하면 모양이 없는 해탈문[無相解脫門]이라 하며, 만일 모양이 없다면 원하거나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는 해탈문[無願解脫門]이라 합니다.
이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모든 법에 3해탈문을 갖추면 공과 함께 열반의 앞선 길을 행하고 모양을 멀리 여의고 원함과 구함을 멀리 여의면 구경열반의 경계[究竟涅槃界]는 결정코 법계(法界)와 같아서 허공의 끝까지 두루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감관은 마치 허깨비[幻]와 같고 경계는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니, 온갖 비유로 이와 같음을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꿈 속에서 원수와 함께 싸웠는데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 꿈 속에서 원수와 함께 싸웠던 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 속에서 있었던 일들이 진실로 있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꿈에서 본 것에 집착하면서 진실이라고 여긴다면 그를 지혜롭다 하겠습니까?”
대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 속에서는 원수라는 것조차도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싸운 일이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그저 자신만 고달플 뿐이요 도무지 진실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어서 견문이 없는 범부는 눈으로 사랑스럽지 못한 빛깔을 보면 마음에 기뻐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집착을 내며 집착을 낸 뒤에는 곧 성을 내고 성을 낸 뒤에는 그 마음이 혼탁하고 산란해져서 성을 내는 업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와 입에서의 네 가지와 뜻에서의 세 가지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는데 이 업이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에 임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서 나타나 보입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은 이런 일을 본 뒤에 마음에 두려움을 내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기 분의 업이 다하면서 다른 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것은 마치 꿈을 깬 뒤에 꿈 속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주가 되고 그 업의 인연 때문에 이 두 가지 연(緣)으로써 태어날 분(分) 가운데서 의식이 처음에 일어나면서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염마라의 세계에 나기도 하고, 혹은 아수라의 처소에 나기도 하며, 혹은 천상과 인간계에 나기도 하여 이전의 의식이 소멸하고 태어날 분의 의식이 생겨 태어날 분이 상속하는 마음의 종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법도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이어짐은 없으면서도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있어서 지었던 업과 받을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이 소멸할 때를 죽을 운수라 하는 것이고 최초의 의식이 생기게 되면 태어날 운수라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일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연(緣)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업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죽을 때에도 어디서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최초의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태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의식은 최후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연(緣)은 연의 체성이 공하며, 업은 업의 체성이 공하고 죽음은 죽음의 체성이 공하며, 최초의 의식은 최초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받음[受]은 받음의 체성이 공하며, 세간은 세간의 체성이 공하고 열반은 열반의 체성이 공하며, 일어남은 일어남의 체성이 공하고 무너짐은 무너짐의 체성이 공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지은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으며, 다만 세속을 따라 있다 할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는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다 공하고 고요합니다. 온갖 모든 법이 공하면 이것이 공의 해탈문이요, 공하여 공의 모양이 없으면 모양이 없는 해탈문이라 하며, 만일 모양이 없다면 원하거나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는 해탈문이라 합니다.
이과 같이 대왕이시여, 온갖 법에 세 가지 해탈문을 갖추면 공과 함께 열반의 앞선 길을 행하고 모양을 멀리 여의고 원함과 구함을 멀리 여의어서 구경열반의 경계는 결정코 법계와 같으면서 허공의 끝까지 두루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감관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경계는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니, 온갖 비유로 이와 같이 아셔야 하십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그의 꿈 속에서 귀신에게 홀려 마음에 두려움을 내었는데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는 꿈 속에서 보았던 귀신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 속에서 보았던 일들이 진실로 있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꿈에서 본 것에 집착하면서 진실이라고 여긴다면 그를 지혜롭다 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 속에서 보았다는 귀신이라는 것조차도 끝내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두려워함이 있겠습니까? 이 삶은 그저 자신만 고달플 뿐이요, 도무지 진실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어서 견문이 없는 범부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빛깔[捨處色]에 대하여 망령되이 집착을 내고 집착을 낸 뒤에는 집착하는 업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와 입에서의 네 가지와 뜻에서의 세 가지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는데 이 업이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에 임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 나타나 보입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은 이런 일을 본 뒤에 마음에 두려움을 내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기 분의 업이 다하면서 다른 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것은 마치 꿈을 깬 뒤에 꿈 속에서의 일을 기억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주가 되고 그 업의 인연 때문에 이 두 가지 연(緣)으로써 태어날 분(分) 가운데서 의식이 처음에 일어나면서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염마라의 세계에 나기도 하고, 혹은 아수라의 처소에 가 나기도 하며, 혹은 천상과 인간 안에 나기도 하여 이전의 의식이 소멸하고 태어날 분의 의식이 생기면서 태어날 분이 상속하는 마음의 종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법도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이어짐은 없으면서도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있어서 지었던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되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이 소멸할 때를 죽을 운수라 하는 것이며, 최초의 의식이 생기게 되면 태어날 운수라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일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연(緣)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업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최초의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태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최후의 의식은 최후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연(緣)은 연의 체성이 공하며, 업은 업의 체성이 공하고 죽음은 죽음의 체성이 공하며, 최초의 의식은 최초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받아 남은 받아 남의 체성이 공하며, 세간은 세간의 체성이 공하고 열반은 열반의 체성이 공하며, 일어남은 일어남의 체성이 공하고 무너짐은 무너짐의 체성이 공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지은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고,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은 이도 없으며 다만 세속을 따라 있다 할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는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온갖 법은 모두가 공하고 고요합니다. 모든 법이 공하면 이것이 공의 해탈문이요, 공하여 공의 모양이 없으면 모양이 없는 해탈문이라 하며, 만일 모양이 없다면 원하거나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는 해탈문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온갖 법에 모두가 세 가지 해탈문을 갖추면 공과 함께 열반의 앞선 길을 행하고 모양을 멀리 여의고 원함과 구함을 멀리 여의어서 구경열반의 경계는 결정코 법계와 같아서 허공의 끝까지 두루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감관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경계는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니, 온갖 비유를 이와 같이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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