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45권
대보적경 제45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⑪
8) 찬저바라밀다품(羼底波羅蜜多品)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저바라밀다(羼底波羅蜜多:羼提波羅蜜多)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부지런히 힘써 닦아 배우며 보살행을 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찬저바라밀다에 머무르는 까닭에 참는 힘을 온전히 갖추면서 성품이 확고부동하고 바르게 되어서 모든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이거나 독사와 전갈과 모기와 등에며 바람이나 햇빛 등의 접촉에 있어서 모두 견디고 참아낼 수 있으며, 또 추악한 말이나 비루한 말씨며 몸에 의해 일어나는 맹렬한 고통스런 느낌[受]을 능히 참아내고 모진 채찍이나 가혹한 고초로 목숨을 빼앗기고 죽기에 이르는 이러한 온갖 고통스런 느낌도 능히 견디고 참아 내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능히 갖추게 되면 이를 곧 찬저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나는 옛날 오랜 동안 아직 성불하지 못했을 때에 보살행을 행하면서 언제나 인욕(忍辱)을 닦았느니라.”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세존은 보살이었을 적에 인욕을 닦아 쌓으시면서 보살행을 행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 보살행을 행할 적에 많은 중생들이 자주자주 와서 헐뜯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법 아니게 꾸짖었으며 나의 면전에서 모든 법이 아닌 못된 나쁜 말들을 하였었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그 마음을 억누르면서 성을 내지도 않고 인색하거나 몹시 괴로워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생각하기를 ‘모든 행 가운데서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 이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적은 법에서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버리는 생각을 닦아야 하며 또 나는 그에게 마땅히 자비를 일으켜야 한다.
왜냐하면 세간의 중생들은 거의 모두가 헐뜯고 욕질을 하고 꾸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업 때문에 도로 다시 이와 같은 모양의 꾸짖고 헐뜯는 과보를 얻게 되며 태어날 때마다 항상 누추하고 나쁜 몸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추한 일을 좋아하지 않거늘 어찌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 일을 하기 좋아한단 말인가?
왜냐하면 이와 같이 꾸짖고 헐뜯는 모든 악업은 바로 상응하지 않는 업이라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업이라 하고 어리석은 범부의 업이라 하며 또 이것은 하열한 업이요, 착한 사람의 업이 아니요, 성현의 업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업 때문에 지옥과 축생과 염마의 세계에 떨어지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쁜 세계[惡趣]의 권속들이 되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야차[藥叉]의 몸을 받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야차의 근본과보(根本果報)를 느끼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아귀의 몸을 받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아귀의 근본과보를 느끼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사람 세계[人趣]의 몸을 얻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사람 세계의 근본과보를 느끼는 것이다.
또 이 꾸짖고 헐뜯는 업으로 말미암아 아래 세계[下趣]와 아래 세계의 근본과보를 얻고 느끼는 것이니, 나는 이제 하열한 세계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만일 내가 이와 같은 일을 구하고 짓는다면 모든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그리고 저 중생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지만 나는 이미 진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같지 않아야 한다’고 할 뿐이었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로서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나를 따르면서 이 법을 닦고 배워야 하리니,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다른 이가 헐뜯고 욕질하고 꾸짖을 때에는 곧 이 바른 법의 뜻 지음과 생각에 의지하며 참아낼 수 있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인욕의 힘 때문에 다시 한량없는 모든 묘한 선근을 얻게 되나니, 가령 모든 값진 보배로 부처님의 세계인 4대주(大洲)를 가득히 차도록 보시한다 해도 앞의 공덕에 비교하면 모두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인욕의 행은 극히 장한 장부라야 닦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은 대부분 이 헐뜯고 욕질하고 꾸짖는 데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니, 그렇기 때문에 나고 죽는 데에 유전하면서 단절하지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로서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스스로 힘써 격려하고 자세히 관찰해야 하며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다른 이로부터 꾸짖음과 훼방을 당할 때에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생각할 수 있느냐? 만일 생각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장한 일이겠지만 만일 생각할 수 없다면 장한 일이라 하지 못하리라’고 하고 또 그 밖의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는 마땅히 관찰하기를 ‘나는 지금 일체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고 특수하게 다른 모양이 있겠느냐?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로서 나에게 성을 내고 해치는 이는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일찍이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니, 내가 만일 그들과 같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모든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으며 어떻게 다르고 희기(希奇)한 모양이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다른 사람이 성을 내고 있을 때에 그만 버리겠다는 마음을 낸다면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일찍이 생각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나로서 마땅히 할 것이 아니다’고 하며, 또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그에게 성을 낸다면 곧 지혜가 없고 인욕의 힘이 없는 것이며 또한 본래의 서원[本願]을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성을 낸다면 이런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섭수해야 하고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내가 만일 한 유정에게라도 성을 낸다면 보살로서 거두어 주고 교화하는 법이라 하지 못하리니, 그 누가 나에게 청하여 보살의 도를 행하겠느냐? 하물며 옛날에 서원하기를 ≺나는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나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리라≻고 하였음이겠는가?
이런 큰 서원을 일으킨 때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다 같이 나를 증명하시며 생각하시기를 ≺이 족성자(族姓子)는 발심하여 이와 같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覺]에 머무른 뒤에는 장차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바른 법을 연설하겠구나≻라고 하셨을 것이다. 또 지금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장애 없는 지혜[無障礙智]로써 걸림 없이 보시면서 현재 나를 증명하며 아시리니, 그러므로 다른 이가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다 해도 성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과 보리와 법이며 승가대중을 만일 버리겠다는 마음을 내면 기억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동방으로 긍가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긍가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응공․정등각께서 현재 머물러 계시는데 그 부처님 세존께서도 모두 내가 마음으로 바른 서원을 낸 것을 증명하며 아시고 남방․서방․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계신 이들께서도 역시 그와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바른 서원을 일으킬 때에는 모든 부처님께서 소리를 같이하여 나의 인욕의 힘을 찬탄하시리니,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사자후(獅子吼)를 한 뒤에 다시 야간(野干)의 소리는 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라 함은 ‘나는 마땅히 큰 인욕의 힘을 증득해야 한다’는 말이요, 야간의 소리라 함은 중생들에 대하여 성을 내고 꾸짖고 헐뜯는 등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그에게서 이익을 얻게 되어야 비로소 남을 이롭게 하는데 나도 그와 같아서 중생에게서 이익을 얻고서야 그들을 이익되게 한다면 나와 세간 사람들이 무슨 차별이 있겠으며 어떤 특수함과 희기한 모양이 있겠는가?’라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만일 그가 이 사람에게 의(義)로운 이익이 없게 되면 이 사람도 또 그 사람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는 일을 하는데, 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나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다 하여 나도 다시 그들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는 일을 한다면 나와 중생이 무슨 희기함과 차별이 있겠으며 다른 점이 있겠는가?’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법 속에서 마땅히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서로가 원수로 대하고 있다. 만일 그에게서 이익을 얻으면 좋은 벗이라 하지만 만일 이익을 얻지 못하면 다시 서로가 죽이고 해치고 한다.
나는 이러한 깊은 허물들을 보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일체 중생들이 나의 몸에 대하여 모든 이익과 안락을 짓고 있거나 나의 몸에 대하여 의로운 이익이 없거나 간에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반드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할 뿐이다’라고 하나니, 찬저바라밀다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령 그가 나에게 이익 없이
여러 백 구지 겁을 지난다 해도
그 유정이 뭇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끝내 버리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만일 세상의 재물 이익 얻으면
서로 칭찬하며 착한 벗이라 하다가
세상의 재물 이익 얻지 못하면
피차간에 원수 되어 서로가 해친다.
가령 이 남섬부주와
혹은 또 3천의 부처님세계에
가득 찬 값진 보배 가져 와서 보시한다 해도
항상 내가 구하는 것은 착한 벗이다.
가령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와서
내 몸의 뼈마디를 끊는다 해도
나는 마땅히 그 모든 중생에게
평등함과 이익에 두 마음이 없으리라.
헐뜯고 욕하여도 나는 참아야 하고
온갖 어려움과 고통 또한 참으며
중생을 위하여 인욕의 힘을 찬탄하고
자신도 큰 인욕에 머물러야 한다.
세간의 포악한 모든 유정이
칼과 독 등으로 서로가 해치면
잘 화합시켜 착한 벗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성현으로서 할 총명한 모습이다.
나는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를 배우지 않고
또한 그들과는 달라야 하리니
범부와 성인이 행할 일로서
유전(流轉)함과 적멸(寂滅)의 차별 때문이다.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마땅히 이렇게 하면서 바른 법을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다시 생각하기를 ‘가령 백천 나유다 구지의 대겁(大劫) 동안에 모든 중생들이 항상 칼이나 몽둥이나 기와․돌․흙덩이 등 갖가지 것을 가지고 해를 끼치고 있을 적에 다만 잠깐만이라도 작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면 오히려 기뻐하고 경하하면서 ≺기이하도다. 이런 유정은 성자(聖者)로구나. 나의 목숨을 온전히 끊어 놓지 않으니≻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로부터 한층 더 닦고 배우며 또 생각하기를 ‘가령 중생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나의 목을 긍가강의 모래알만큼 많이 자르고 벤다 해도 나는 그에게 끝내 분해하거나 성을 내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무릇 분해하거나 성을 내면 백천의 대겁 동안 쌓고 모은 선근이 빠른 속도로 없어져 버리므로 만일 나의 이 선근이 성을 냄으로 해서 없어지고 나면 다시 그 만큼의 백천 대겁을 지나도록
처음부터 다시 애써 성스러운 도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극히 얻기 어렵게 되리니, 그러므로 나는 인욕의 갑옷을 입고 견고한 힘으로써 성냄의 군사를 꺾어야 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로서 대승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이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악마가 그 틈[便]을 얻게 되나니, 이미 틈을 얻고 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장애가 되느니라.
사리자야, 분해하고 성내는 마음이란 보리의 도를 요란(擾亂)하게 하나니, 마음이 요란하면 악마가 지니는 악마의 일[魔業]을 일으키느니라. 여기서 어떤 것을 악마의 일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보살의 마음이 옷과 발우에 머물러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마음이 걸식에 머물러 모든 시주(施主)의 집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마음이 명예[名聞]와 공경과 이익에 머물러 버리지 못하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출가하는 법에 항상 싫증을 내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업신여기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비고 고요한 곳을 뜻하거나 구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그 밖의 지혜를 기꺼이 구하여 익히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 오파타야와 아차리야의 두 훌륭한 스승에게 숭앙함과 공손한 마음을 닦지 않으면 그것도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분해하고 성내는 마음은 보리를 요란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곧 요란한 마음에 머무르는 보살마하살이 모든 악마에게 부림을 받기 때문에 모든 악마의 일을 짓는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오랜 세월동안 모든 중생들이 악마들에게 틈을 엿보게 하는 것은 성을 내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하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그런 일을 자세히 설명하리라.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에 대선인(大仙人)이었고 이름은 수행처(修行處)였느니라. 그때 어떤 악마가 욕설을 퍼붓는 5백의 건장한 장부들을 변화로 만들어서 항상 나를 따르며 욕설을 퍼붓게 하였느니라.
밤이나 낮이나 가고 오고 서고 앉고 누울 때나, 승방이나 고요한 방이나 마을이나 속가나 또는 거리나 고요한 데나 할 것 없이 언제나 나를 따라 앉고 서고 하면서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악마들은 추악한 말로 헐뜯고 욕하고 꾸짖었나니, 이렇게 5백 년 동안을 잠시도 그만두는 일이 없었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스스로 기억하건대, 저 5백 년 동안 그 악마들에게 욕질을 당하면서도 일찍이 그들에게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고 항상 자비로써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관찰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선남자로서 시라(尸羅)를 수호하고 모든 착한 법을 갖추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성품이 가벼워진 이라면 그에게 모든 이익을 지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는 이라 할 것이며 또 그에게 이익을 지을 뿐만 아니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만일 어떤 중생이 억세어서 조복하기 어렵고 시라를 범하여 모든 악한 법을 감추어서 성품이 흐리고 탐냄과 어리석음이 더해진다 하더라도 만일 내가 그에게 모든 이익을 짓는다면 그도 곧 말하기를 나를 행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이라고 할 것이요, 나아가 그에게 이익을 지음으로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속히 이룩하였으니 먼저 그로 하여금 적멸(寂滅)을 증득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은 만일 성내는 마음이 그의 앞에 나타나 있을 때는 마땅히 이와 같이 크고 바른 모든 생각을 내어야 하나니, 만일 이런 생각을 내면 이익되는 모든 일이
속히 원만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지나간 세상에 이와 같은 찬저바라밀다로 보살행을 수행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나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구하고자 하면 모든 인욕의 힘을 항상 온전히 성취하여 온갖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에서나 바람과 햇빛이며 모기․등에․독사․전갈 등의 접촉을 참고 견뎌내야 하고, 또 추악한 말이나 비루한 말씨며 몸에 의해 생기는 맹렬한 모든 고통을 참아내야 하며, 또 모진 채찍과 가혹한 고초로 목숨을 빼앗고 죽기에 이르는 이와 같은 고통스런 느낌도 다 같이 참아내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이 인욕에 편히 머무른다 하나니, 찬저바라밀다를 속히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찬저바라밀다인가? 보살마하살은 이것에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인욕하는 법의 모양을 온전히 갖추고 원만하게 이루느니라.
사리자야, 보살이 인욕하는 것은 성을 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분해하면서 원망함이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노하여 해침이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원망하며 다툼이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모든 번뇌가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자신을 잘 보호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다른 이를 잘 보호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니라.
또 몸을 잘 수호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말을 잘 수호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마음을 잘 수호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이치대로 자세히 살피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모든 욕심을 싫어하고 여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청정한 업보에 의지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몸이 착하고 청정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말이 착하고 청정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마음이 착하고 청정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니라.
또 하늘과 인간의 원만하고 청정한 쾌락을 받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여래의 상호(相好)로 원만하게 장엄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여래의 말씀과 범음(梵音)이 미묘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보살행을 행하면서 모든 선(善)의 근본을 거두어 주어 무너지거나 잃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중생으로서 핍박받는 고뇌를 벗어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며, 온갖 미움과 원한을 없애버리나니 이것이 보살의 인욕이니라.
사리자야, 요약하여 말하건대, 온갖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佛法]과 대자(大慈)․대비(大悲)․대희(大喜)․대사(大捨)의 한량없고 원만한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이 모두 이 보살마하살의 찬저바라밀다로 성취되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마땅히 모든 인욕의 바른 행을 온전하게 갖추어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욕설과 꾸짖음을 당하면서도 끝내 보복하지 않으면 그 언어가 마치 메아리 소리와 같다 함을 잘 통달하기 때문이요, 만일 매를 맞으면서도 끝내 보복하지 않으면 몸의 형상이 마치 그림자와 같다 함을 잘 통달하기 때문이요, 만일 분한 일을 당하면서도 끝내 보복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마치 허깨비와 같다 함을 잘 살피기 때문이요, 만일 칭찬이나 훼방을 당하면서도 끝내 좋아하거나 성냄이 없으면 자기 몸의 덕(德)이 원만해졌음을 잘 알기 때문이니라.
또 이익을 얻거나 잃은 데에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이 조복되어 고요한 데에 머무르기 때문이요, 좋은 칭찬도 바라지 않고 나쁜 이름도 범하지 않으면 광대한 지혜를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헐뜯는데도 기죽지 않고 칭찬하는데도 뽐내지 않으면 덕이 잘 머물러서 기울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요, 모든 고통스런 일에 일찍이 싫어하거나 미워함이 없으면 고통받는 중생에게 깊이 사랑을 품기 때문이요, 모든 즐거운 모양에 대해 일찍이 기뻐하거나 좋아함이 없으면 유위(有爲)의 즐거움은 그 성품이 덧없다 함을 알기 때문이니라.
또 세간의 여덟 가지 법[八法]에 물들지 않으면 온갖 존재의 갈래[有趣]에 의하여 나지 않기 때문이요,
자신의 모든 고통을 잘 참고 견디면 끝내 다른 이로 하여금 고뇌를 받지 않게 하기 때문이요, 훌륭한 보리에서 마음에 퇴굴(退屈)함이 없으면 각분(覺分)의 자량이 잘 원만해지기 때문이요,
몸이 갈가리 찢기고 나아가 목을 베는데도 능히 참고 견디면 여래의 금강(金剛)과 같은 몸을 희구하기 때문이요, 몸과 살을 베고 저미는데도 잘 참고 견뎌내면 여래의 묘한 상호를 희구하기 때문이요, 변괴와 나쁜 일들을 잘 참고 견뎌내면 온갖 착한 업의 힘을 심고 있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등의 모양을 보살마하살이 찬저바라밀다를 성취한다 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의 모든 인욕의 모양은 이른바 보살마하살로서 수행할 인욕인 것이니, 그것을 곧 마지막의 인욕[畢竟堪忍]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일 ‘나는 훼방과 욕설을 참아낼 수 있다’고 여기면서 인욕을 일으키면 그것은 곧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인욕[俱生之忍]이라 하기 때문이니, 그와 같은 인욕은 마지막의 인욕[畢竟忍]이 아니니라.
또 만일 ‘누가 욕설을 퍼붓는 이며, 또 무엇이 욕설을 듣는 것인가?’라고 여기면서 인욕을 일으키면 그것은 곧 서로 비교하는 법의 인욕[校計法忍]이라 하며, 만일 ‘이 눈이 눈을 욕하는 것인가?’고 여기면서 인욕을 일으키면 그것은 곧 모든 감관을 관찰하는 인욕[觀諸處忍]이라 하며, 만일 ‘이 가운데서는 욕설을 퍼붓는 이나 당하는 이가 없다’고 여기면서 인욕을 일으키면 그것은 곧 온갖 중생이 없는 데에 깨쳐 드는 인욕[悟入一切無衆生忍]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모든 인욕은 모두가 보살의 마지막의 인욕이 아니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욕하는 소리는 다만 글자들이 있을 뿐이다’고 하면 곧 메아리 소리 같은 인욕[響聲之忍]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인욕은 마지막의 인욕이 아니니라. 또 만일 ‘그와 나는 다 같이 무상한 이다’라고 하면 곧 무상함을 깨친 인욕[悟無常忍]이라 하며, 만일 ‘그는 뒤바뀜이 있지만 나는 뒤바뀜이 없다’고 하면 곧
뽐내면서 낮추어 보는 인욕[高下之忍]이라 하며,
만일 ‘그는 올바른 도리가 아니지만 나는 올바른 도리이다’라고 하면 곧 걸맞음과 걸맞지 않은 인욕[相應不相應忍]이라 하며 만일 ‘그는 삿된 도에 머무르고 있거니와 나는 바른 도에 머물러 있다’고 하면 곧 두 도를 분별하는 인욕[二道別忍]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인욕은 마지막의 인욕이 아니니라.
또 만일 말하기를 ‘나는 공(空)한 것은 참지만 소견 갈래[見趣]는 참지 않는다. 나는 모양 없는 것[無相]은 참지만 모든 각관(覺觀)은 참지 않는다. 나는 소원 없는 것[無願]은 참지만 뜻하여 구하는 것은 참지 않는다. 나는 조작이 없는 것[無作]은 참지만 모든 행(行)은 참지 않는다. 나는 미혹[惑]이 다한 것은 참지만 번뇌는 참지 않는다. 나는 모든 착한 것은 참지만 착하지 않은 것은 참지 않는다. 나는 죄가 없는 것은 참지만 죄가 있는 것은 참지 않는다.
나는 샘이 없는 것[無漏]은 참지만 샘이 있는 것은 참지 않는다. 나는 세간 벗어나는 것[出世]은 참지만 세간은 참지 않는다. 나는 청정한 것은 참지만 더러운 것은 참지 않는다. 나는 열반은 참지만 생사(生死)는 참지 않는다’라고 하면, 사리자야, 이와 같은 모든 인욕은 다만 다스리고 끊는 인욕[治斷之忍]이란 이름만을 얻었을 뿐이요, 모두가 보살의 마지막의 인욕이 아니니라.
또 사리자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보살의 마지막의 인욕[畢竟忍]을 수행하는가?
사리자야, 만일 공을 따르면서도 모든 소견이 줄어지지 않고 모든 공한 성품에서도 더함[增益]이 없으면 이와 같은 인욕을 바로 보살의 마지막의 인욕이라 하느니라.
또 공을 따르면서도 구하는 원이 줄어지지 않고 소원이 없는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며, 공을 따르면서도 모든 행이 줄어지지 않고 조작이 없는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며, 공을 따르면서도 번뇌가 줄어지지 않고 미혹이 다하는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며, 공을 따르면서도 착하지 않은 것이 줄어지지 않고 저 착한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며,
공을 따르면서도 죄가 있는 것이 줄어지지 않고 죄가 없는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며, 이렇게 하여 나아가 공을 따르면서도 생사가 줄어지지 않고
열반의 성품에서도 더함이 없으면, 사리자야, 이와 같은 모양으로써 인욕을 내면 곧 보살마하살의 마지막의 인욕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온갖 모든 법은 생겨나게 하는 주체[能生]도 아니요, 생겨나게 되는 객체[所生]도 아니요, 이미 난 것도 아니요, 현재에 나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법도 생겨날 것이 없느니라. 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하는 것도 없나니, 만일 이 다함이 없는 것을 잘 알 수 있으면 곧 보살마하살의 마지막의 인욕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법은 이것이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며, 더함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자람[長養]도 없고 성하거나 쇠함도 없으며, 짓는 이도 없고 일으키는 이도 없느니라. 일으킴이 없기 때문에 다함도 없나니 이와 같이 인욕하면 곧 보살마하살의 남이 없는 인욕[無生之忍]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보살행을 행하면서 만일 이와 같은 인욕을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저바라밀다가 원만하게 성취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찬저바라밀다에 편히 머물러 부지런히 닦아 배우면서 보살행을 행하면 모든 악마와 악마의 무리인 천자(天子)들에게 요란함을 당하지 않으며 또한 외도의 삿된 이론에 꺾이거나 조복되지도 않느니라.”
9) 비리야바라밀다품(毘利耶波羅蜜多品) ①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비리야(毘利耶)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는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정근바라밀다(正勤波羅蜜多:毘利耶波羅蜜多)를 정진하고 나아가 닦아 배우며
보살행을 행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물러나지 않는 비리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여서 소중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큰 정진을 일으켜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면서 간절히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마지막까지 연구하고 이치를 통달하여 널리 다른 사람들에게 펴 연설하고 열어 보이며 혹은 또 써서 지니면서 이치대로 닦고 배우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살행을 행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설령 다른 이가 무서움과 두려움을 주면서 말하기를, ‘만일 네가 이 보살장의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거나 나아가 널리 다른 사람에게 열어 보이고 써서 지니면서 이치대로 닦고 배우면 나는 백 개의 화살과 창으로써 너의 몸을 꿰뚫어서 너의 목숨이 끊어지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고 하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그러한 때에 비록 이런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두는 일이 없이 두려워함도 없고 무서워함도 없고 놀람도 없으면서 네 가지 견고하고도 용맹스러운 위세를 일으켜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에 한층 더 정진해서 버리지도 않고 멀리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면 날카로운 신해(信解)와 견고한 신해와 견고한 인욕과 견고한 정근(正勤)을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견고한 인욕과 견고한 정근에 대한 방편과 비유를 말해 주어서 보살들로 하여금 견고한 인욕과 견고한 정근을 얻어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게 하리라.
사리자야,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중생으로서 태로 나는 것[胎生]․알로 나는 것[卵生]․습기로 나는 것[濕生]․화하여 나는 것[化生]이거나, 빛깔[色]이 있는 것이거나 빛깔이 없는 것이거나, 생각[想]이 있는 것이거나 생각이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거나, 볼 수 있는 것이거나 볼 수 없는 것이거나 간에 그 모든 중생들이 찰나 동안에 모두 사람의 몸이 되어서 보살에게 다 같이 백천의 극히 중한 원수가 되어서는 그 여러 원수들이 보살에게 말하기를
‘네가 만일 이 보살장 경전의 차별된 문구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나아가 널리 다른 사람에게 열어 보이거나 써서 지니고 이치대로 닦고 배우면 우리들 모든 사람은 동시에 너를 포박하여 너의 목숨을 끊어버릴 것이다’라고 한다 해도,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그러한 때에 비록 이런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도무지 한 생각의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이 다만 네 가지 바른 법을 갖추어 지니면서 오로지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힘써 구할 뿐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비리야바라밀다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한다 하느니라. 또 다시 가없는 세력과 용맹스런 정진을 성취하여 바른 노력[正勤]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마음과 뜻[心意]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청정한 계율[淨律]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큰 인욕[大忍]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삼마지[等持]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큰 지혜[大慧]에 용감하고 굳세지며, 바르게 행하는 훌륭한 지혜[正行勝智]에 모두 다 용감하고 굳세지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지혜의 힘을 온전히 갖춘 까닭에 가령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이 저마다 다투어 백천의 칼을 가지고 와서 보살에게 거스르고 해를 끼친다 해도 보살은 그때에 모든 유정들에 대하여 끝내 조그마한 한 생각의 성냄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인욕의 힘에 머무르기 때문에 마치 대범왕과 같고 제석천왕과 같고 소미로(蘇迷盧)의 네 개 보배 산왕과 같아서 동요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자비에 머무르고 항상 의해(意解)를 일으켜 중생을 구제하며 행하는
모든 것에서 끝내 물러남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의 마음은 마치 큰 땅덩이와 같고 마음은 마치 큰 물과 같고 마음은 마치 큰 불과 같고 마음은 마치 큰 바람과 허공과 같으며, 또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의 근본원인을 잘 대치하여 닦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은 긍가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한,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온갖 값진 보배를 가져다 한량없는 여래․응공․정등각께 받들어 보시하고,
또 어떤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바라밀다를 행하는 이로서 이와 같은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듣고 이 경을 들은 뒤에는 고요한 곳으로 가서 이러한 법을 생각하면서 닦고 배우되 아직 모든 보살들이 좋아하여 익히고 행하는 것을 닦고 배우지 못하게 된다 해도
사리자야, 이러한 보살마하살은 비리야를 수행하는 까닭에 한량없는 모든 미묘한 선근을 섭수하고 지니는 것이므로 저 보시를 행하는 이로서는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와 같은 선근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모든 보살마하살은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마땅히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또 쓰고 베껴 널리 다른 이들에게 해설하고 바른 노력을 일으켜 용맹스럽게 닦고 익혀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행하지 않고 행하는 곳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행하지 않고 행하는 곳이란 이른바 열반이니라.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나쁜 하늘의 악마가 행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며 이른바 행한다 함은 바르게 노력하는 착한 사람들이 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착한 사람이라 함은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독각과 부처님의 제자들이니,
왜냐하면 모든 성인의 길에 오르는 온갖 착한 사람과 부처님 세존은 모두가 열반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일체 중생은 거의 모두가 세 가지 처소를 행하고 있나니, 어떤 것이 세 가지 곳인가? 이른바 악도(惡道)를 따르고 악도를 향해 나아가며 장차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보살마하살은 물든 법[雜染法]에서는 끝내 따르지 않고 오직 벗어나게 되는 계율과 인욕과 많이 들음[多聞] 등의 깨끗한 모든 법을 구할 따름이니라.
사리자야, 세간의 중생들은 대부분이 업이 없는[無業] 데에 머무르면서도 항상 자기 자신은 업이 있는 데에 머무른다고 헤아리며 세간의 중생들은 거의 모두가 게으름을 피우면서 항상 자기 자신은 바른 노력을 일으키고 있다고 여기나니,
그러므로 사리자야, 총명하고 지혜로운 보살마하살은 끝내 저 업이 없고 게으른 이들과는 함께 서로가 익히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또한 그 수효 안에 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바른 노력을 일으키는 큰 보살들과 같이 행하고 서로 익혀 가까이 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어떤 중생도 저 가장 뛰어나고 물듦이 없는 청정한 모양과 큰 열반에 청정한 신해(信解)를 보는 보살과 같은 이들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비리야바라밀다를 일으키는 보살마하살은 스스로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할 뿐만 아니라, 온갖 유정을 섭수하여 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바른 행을 수행하여 부지런히 정진해서 열어 보이고 가르치고 인도하여 중생을 성인이 되는 길에 편안히 있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보살을 이름하여 장한 장부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른 노력으로 느슨함이 없고
항상 큰 정진을 갖추는 이면
보살장의 법을
총명하게 항상 받아 지니리라.
법의 이치를 잘 생각하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하여
힘써 청정한 법만을 구하나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보살이라 한다.
바르게 노력하여 큰 지혜 지닌 이는
묘한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앉아
악마의 군사들을 꺾어버리나니
반야(般若)로 인해 정진하는 까닭이다.
현재 계율을 수호하면서
모든 세간을 맡아 지니는 이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정진함이 한이 없다네.
“또 사리자야, 이러한 대승(大乘)인 큰 보살장의 미묘한 경전이 세간에 유포되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큰 기쁨을 내게 하며, 또 복덕과 지혜를 끌어내어 큰 재보의 풍부함을 느껴 그로 하여금 더욱 자라게 하며 모든 하늘들의 훌륭한 쾌락을 느끼게 하고 온갖 것이 원만하여 구족함을 느끼게 하며, 온갖 모든 부처님 여래의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所畏]과 걸림 없는 지해[無礙智解]와 대자․대비․대희․대사와 공통하지 않은 부처님의 법[不共佛法]을 능히 내느니라.
요약하여 말하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이끌어 내어 악마를 꺾어버리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며, 또 맹렬한 지혜를 일으켜 생겨나는 근본을 궁구하여 최후의 괴로움까지 끊어서 열반에 근접하게 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장차 다가올 세상에 나와 너희들이 반열반한 뒤의 마지막 5백 년[後五百歲] 동안에 박복한 중생들은 이 경에 대하여 믿음과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허물어 없애면서 버리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며, 또 한량없는 복덕이 있는 중생들은 이 경을 공경하고 받들어서 이치대로 닦아 배우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리니, 그것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요,
시라(尸羅)를 구하기 위해서요, 많이 들음을 구하기 위해서요,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智見)을 구하기 위해서요, 온갖 불법을 구하여 일체 중생을 이익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요,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수행하기 위해서요, 생사에 유전(流轉)함을 버리고 성인의 도를 닦기 위해서요, 바른 법을 연설하여 하늘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해서요, 탐애(貪愛)를 여의고 성내는 마음을 조복하며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무명(無明)을 없애면서 밝은 지혜를 일으키기 위해서이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중생은 이 법을 듣고 나서 온갖 모든 착한 법을 구하기 위하여 뛰어나게 용맹스런 비리야를 일으킬 것이요, 이와 같은 미묘한 법을 들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법에서 장애가 없고 결정되며 의심함이 없을 것이니라.
사리자야, 그때 또 어떤 한량없는 중생들은 복의 과보가 돕는 것이라 왕성한 뜻[增上意]에 머무르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하여 이 경전을 들을 것이요, 들은 뒤에는 광대한 기쁨을 얻어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극히 잘 연구하고 말씀대로 수행할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그때에 여래의 교법(敎法)을 듣기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리니, 저 모든 중생은 어떤 차별된 인연으로 우연히 이와 같은 경전을 듣게 되고 들은 뒤에는 광대한 기쁨을 얻을 것이며 기쁨이 생긴 뒤에는 견고한 정진을 일으켜 이와 같은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보(法寶)에서 적은 부분이나마 취하게 될 것이니라.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닷물 위에 빛과 향기와 맛을 모두 다 갖춘 한량없이 많은 갖가지 익은 과일이 떠내려갈 적에 어느 한 장부가 용맹스런 힘을 일으켜 바닷속으로 들어가 손발을 놀리면서 그 과일 두세 개만을 건진 뒤에 이 장부는 그 과일을 가지고 바다에서 나와 한 곳으로 가서 맛을 보고는 그제야 그 맛이 아주 좋고 희유함을 알고서 이내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묘한 과일은 빛과 향기와 맛이 갖추어져 있구나. 나는 태어나서부터 아직 이런 것을 먹어본 일이 없다. 또 힘을 내어 바다로 들어가서 남은 과일을 모두 건져오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바다로 가서 이리저리 두루 살펴보았으나
그 과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매우 후회하면서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나는 어째서 지난번에 많이 건져오지 못해서 이제 이런 한량없이 많은 맛있는 과일을 잃게 되었단 말인가?’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내가 반열반한 뒤 마지막 5백 년 동안에 위없는 바른 법이 소멸하려 할 때에 한량없는 모든 중생이 믿음이 적고 베풂이 적고 계율이 적고 지혜가 적고 수행하는 정진이 적은 이들도 어떤 차별된 인연으로 우연히 이와 같이 보배로운 경전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요, 법을 들은 뒤에는 이 경 가운데서 조그마한 부분의 작고 얕은 이치만을 얻게 되고 나아가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닐 것이나,
다시 악마의 요란과 장애를 받고 여러 사람들의 공경과 문의와 공양과 칭찬이며 신봉을 받지 못하게 되면, 이 경을 지닌 이는 저 여러 사람들이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곧 이 경을 버리고 관심 두지 않다가, 먼저 들었던 경 가운데에서의 미세한 부분의 이치를 가지고 한 고요한 곳으로 가서 생각하고 관찰하여 보니 마음에 기쁨이 생기므로 다시 뉘우치고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아아, 기이하도다. 나는 이제 좋은 이익을 크게 잃어버렸구나. 모든 부처님 여래의 위없는 바른 가르침을 어째서 많이 듣고 받아들이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하며, 또 여래께 앞에서 바른 생각을 일으켰던 것보다 갑절이나 더 깊이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라.
사리자야, 그러할 때에 어떤 여러 필추들은 악마에게 홀렸기 때문에 이 경을 들은 뒤에도 여러 사람 앞에서 비방하면서 ‘이 경전의 모든 문장은 겉치레나 하는 이들이 지은 것이요 실로 부처님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하는 이도 있으리니, 그러한 까닭에 그 여러 필추들은 이 경전을 전혀 듣고 받아들이지 않게 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법을 듣고 나면
마땅히 장애가 없을 것이므로
모든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가장 으뜸가게 의심이 없어진다.
복이 적은 모든 이들은
듣지 못할 것이나
복이 많은 모든 이들은
이 경전을 잘 듣게 되리라.
복이 적은 사람들은
비록 듣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요
복이 많은 이는 듣게 된 뒤에
머리에 꽂는 장식품[鬘]과 같으리라.
복이 적은 모든 이들은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니
장차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됨이
소경이 구덩이에 떨어짐과 같고
복이 많은 사람은
듣고 나면 기쁨을 내므로
장차 착한 세계에 가서 태어남이
소(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으리.
복이 얇은 모든 이들은
들은 뒤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므로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캄캄한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만났어도 들은 것이 적으면
다시 악마의 요란함을 당하며
부처님의 보리를 비방하는 까닭에
속히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청정하고 묘한 지혜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며, 나아가 사부대중의 마음을 환히 아느니라. 어느 한 필추(苾蒭)․필추니(苾蒭尼)․오파삭가(鄔波索迦)․오파사가(鄔波斯迦)가 장차 오는 세상에 정법(正法)이 소멸할 때에 혹 어떤 이는 이러한 경전을 듣고 따르면서 받아들이지만 혹 어떤 이는 들은 뒤에 업신여기면서 비방하기도 하며 혹 어떤 중생은 전혀 듣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것을 온갖 여래는 청정한 지혜로써 모두 환히 아시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과 그 밖의 온갖 중생이 이 경전을 들은 뒤에 받아들여 정진하면서 닦아 익히면 네 가지 장애가 없는 청정한 법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시라에 장애가 없는 청정함을 성취하며, 둘째 구족하게 어려움이 없는 청정함을 성취하며, 셋째 모든 부처님을 만나 친히 섬기고 공양함에 장애가 없는 청정함을 성취하며, 넷째 자씨(慈氏)부처님을 만나 처음 뵙게 된 뒤에 장애가 없는 청정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저 모든 중생이 이 경을 들은 뒤에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러 묘한 선근을 그 방편에 따라 반드시 획득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성취하게 되는 네 가지 위없는 청정한 법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정법이 소멸한 때에 어떤 보살이 보살마하살로서 대승에 편히 머물러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이들은 이 경전을 한층 더 부지런히 닦아 배우면서 큰 정진을 일으켜 듣고 받아 지니고 쓰고 읽고 외우며 이치를 궁구하여 널리 다른 이들에게 펴 말하고 드날리고 열고 드러낼 것이니, 그 때에는 으레 열 가지 장애되는 법이 세간에 나타날 것이므로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따라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다만 용맹스런 정진을 일으켜 이 경을 받아 지닐 따름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열 가지 장애여서 지혜 있는 이들이 깨달아 알되 따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해서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입이 다물어져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 곧 이 경을 이룩하여 세울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첫 번째의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그 눈을 아프게 만들어서 곧 이 경을 이룩하여 세울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두 번째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비구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몸의 온 뼈마디를 일시에 병이 들게 하여 곧 이 경을 이룩하여 세울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세 번째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그가 머무르는 곳에서 마음이 기쁘지 않아 이내 버리고 싶게 하여 곧 이 경을 이룩하여 세울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네 번째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서로 분(忿)과 성[恚]을 내면서 분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더욱 해를 끼치게 하며 곧 이 경을 성립할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다섯 번째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하며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경을 지닌 이로 하여금 언쟁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고, 송사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고, 비방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고,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게 하고, 성내는 일이 일어나게 하여
이 일로 말미암아 피차간에 입 속에서 창이 돋아나서 서로 싸우고 서로 해치고 서로 어기고 이 경전을 유포할 수도 없고 그 밖의 일을 지으려는 뜻을 일으키게 하나니, 이것을 여섯 번째의 장애되는 일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여러 필추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이 경전을 듣고 외우고 익히려고 하는데 그때에 악마가 파괴하고 소멸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상을 짓되 혹은 속인의 형상으로 혹은 출가한 이의 형상이 되어 그가 있는 데로 와서 그 뜻을 요란시켜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닐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비방하게 하며 다시 그 밖의 일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나니, 이것을 일곱 번째의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깊이 깨달아 알되,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정법이 없어지려 할 때에 어떤 여러 연소(年少)한 필추들이 이 경전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고 마음으로 좋아하며 나의 법과 계율 가운데서 비리야바라밀다를 행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깊은 마음으로 편히 머무르고 또 이 경전을 공경하며 듣게 되고 들은 뒤에는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때에 여러 연소한 필추들은 오파타야(鄔波柁耶)와 아차리야(阿遮利耶)의 본래부터 배우고 있던 두 스승에게 장애를 받아 자신의 법에 대하여 하려 하는 의욕[樂欲]을 내지 않게 되나니, 이때에 두 스승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지니고 있는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부처님의 보리도 아니고, 이는 바른 법도 아니고 비나야(毘奈耶)도 아니며 큰 스승의 가르침도 아니다’라고 하므로 그때에 그 필추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면서 부처님의 보리를 이내 버리게 되느니라.
이때 두 스승은 계속해서 필추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법과 계율을 정진하면서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라고 하면, 그때에 그 필추들은 믿고 받아들인 뒤에 먼저 닦고 익혔던 뛰어난 선근은 스승으로 인해 무너져서 모두 다 끊어지고 소멸되느니라.
사리자야, 저 여러 필추들은 선근이 끊어진 뒤에는 다시 악마에게 미혹을 당하게 되고 미혹을 당하는 까닭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서 법을 장애하는 업을 지으며 목숨을 마치려 할 때는 나쁜 경계가 앞에 나타나 마음이 헷갈리면서 갈팡질팡 헤매며 젊은 나이로 죽음에 이르러 다시
모여 나타나므로 지옥의 업을 거듭 일으키게 되나니, 사리자야, 이와 같이 미래에 오는 착하지 않은 모든 일들을 여래께서는 모두 환히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연소한 필추들이 이 경전에 대하여 모든 나쁜 소견을 일으켜 비방하고 믿지 않으면서 무릇 나돌아다닐 때나 오고 가고 할 때에 갖가지 언사로써 늘 비방하게 되리니, 여래께서는 이런 것을 모두 환히 아시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로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대승에 머무른 이는 마땅히 그때에 네 가지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스스로 조복하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며, 둘째 자기 자신이 짓는 일만 관찰하되, 남에게 관계되는 모든 일들은 관찰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저 유정들에게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며, 넷째 고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이의 마음을 따라 보호하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생각은 대승에 머무르는 이면 비방을 당할 적에 반드시 일으켜야 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한량없는 중생들은 모든 삿된 소견을 지니고 있으므로 저 바른 법을 연설하는데도 필추들조차 믿어 받는 이가 적고 공경하거나 존중하는 마음을 품고서 경의 이치를 청해 묻지도 않으며 공양하거나 친근히 하면서 가고 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받들어 섬기지도 않고 도리어 경멸하는 생각을 내며,
법이 아닌 것을 연설하는 데서는 필추들이 믿어 받는 이가 많고 큰 세력을 얻게 되어 중생들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하며 그 이치를 청해 묻고 공양하며 이 법이 아닌 것을 칭찬하게 되므로, 이런 인연 때문에 다시 이 경전을 헐뜯게 되고 비웃게 될 것이니라.
사리자야, 그러할 때에 모든 중생들로서 이 경전을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이것을 듣자마자 헐뜯게 되고 갑절이나 더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기뻐하고 좋아하는 이라는 비방을 받기 때문에 곧 이 경전에 대해 하려 하는 의욕을 버리고 하려 하는 의욕을 여의게 되므로
모든 필추들은 한층 더 심하게 이 경전을 전독(轉讀)한 이로 하여금 대중의 모임 앞에서 열어 보이지도 못하게 하나니, 이것을 여덟 번째의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깨달아 알아야 하며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여러 비구들은 탐애(貪愛)에 가려져 있으므로 거의 모두가 남의 재물을 빼앗고 훔치며 세간의 세 가지 좋지 않은 법을 좋아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세간의 옷과 발우를 추구(追求)하기 좋아하는 것이며, 둘째 세간의 음식을 추구하기 좋아하는 것이며, 셋째 세간의 쓸모 없는 이론[戱論]과 교묘하게 꾸며진 글과 게송을 추구하기 좋아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을 바로 아홉 번째의 장애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깨달아 알아야 하며 마땅히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장차 오는 세상에 정법이 소멸할 때에 어떤 여러 보살은 대승에 편히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경전에 대하여 용맹하고 뛰어나게 정진하며 쓰고 받아 지니고 연구하고 독송하며 널리 다른 사람들에게 열어 보이고 연설하겠지만,
그 모든 사람들은 모든 악마에 붙잡히고 번뇌와 업장(業障)에 가려지는지라 세간의 업(業)을 기뻐하고 세간의 업을 좋아하여 방편으로 애써 세간의 사업을 구하면서 세간의 담론(談論)을 갈수록 더욱 즐기고 방편으로 애써 세간의 담론을 구하고 잠자기를 기뻐하고 좋아하며
방편으로 애써 구하며 여러 가지 어지러운 일을 기뻐하고 좋아하며 방편으로 애써 구하며 여러 가지 어지러운 일을 집착하므로 이 경전을 받아 지닐 수 없게 되며 또 전독하거나 그 이치를 연구하지도 못할 뿐더러 다른 이들에게 널리 펴며 열어 보이지도 못하느니라.
사리자야,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이보다 더 안[內]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으며 이보다 더 속히 헐어버리고 없애는 일도 없나니, 다만 게으름을 피우는 모든 나쁜 필추들만은 그렇지 않느니라.
이것을 열 번째의 장애되는 법이라 하나니,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마땅히 깨달아 알되,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법이 멸할 때는 장애가 많아
갖가지 악마의 일이 일어나므로
깨끗한 법을 닦아 익히지도 못하고
훌륭한 열반도 구하지 못한다.
지혜가 적은 이는 나쁜 생각 갖추어서
바른 법에 편히 머무르려 하지 않고
갖가지 그릇된 법 갖추어 행하므로
틀림없이 나쁜 갈래[惡趣]로 가리라.
저 모든 중생들은 임종할 때에
그를 위해 구호해 주는 이도 없고
또 저 오파타야와 아차리야도
죽으면 세 악취(惡趣)에 떨어질 것이다.
백천 구지 나유다 겁 동안
세간 이익 구하면서 갖은 고통 겪으며
항상 세 가지의 불에 타고 있거늘
어떻게 그를 속히 해탈하게 하겠느냐?
나 이미 위없는 정등각(正等覺)을 이루어서
미묘하고 맑은 법륜 굴리지만
하늘과 세간들은 굴릴 수 없으므로
이제 굳이 굴리면서 중생을 제도한다네.
이렇게 하는데도 그 때의 중생들은
나와 세간에서 얻기 어려운 법 버리고
악마의 모든 일들 가까이 익히므로
끝없고 극심한 고통 받게 되리라.
그가 익히고 행하는 보시․계율 등과
보리인 성스러운 도의 인연을 장애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힘씀이 있다 해도
저 바른 길을 헷갈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을 듣는 이들이
나 없음과 모든 공한 이치 연설하면서
이 법의 바른 행에 편히 머무를 때에
악마에게 당연히 장애를 받게 된다.
이것이 가장 훌륭하고 진실하건만
뛰어나고 실답지 않은 데서 뛰어나고 실답다는 생각하며
도리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헐뜯나니
속히 지옥에 떨어질 줄 알지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께
견고한 애정과 깊은 공경 일으키어
이러한 바른 법을 듣고 나면
기뻐하고 따르면서 칭찬하리라.
악마는 그가 기쁨을 낸 것을 알고
권속들과 함께 근심하면서
갖가지 두려운 모양을 나타내어
그 사람에게 갖은 훼방을 놓는다.
혹은 변화로 필추의 몸이 되어
거짓 친한 척하며 속삭이듯 하면서
‘이것은 바른 보리의 도가 아니거늘
어째서 여기에 달려가고 있는가?’라고 하면
어떤 중생들은 이 경에 대해
견고하게 비리야에 머무르다가도
유혹된 뒤에는 경멸하면서
그만둬 버리고 배우고 닦지 않는다.
악마에 미혹되어 산란해지면
악마의 뜻에 따라 붙잡혀서
이 경은 바른 법이 아니라면서
곧 적멸(寂滅)을 영영 버린다.
그는 또 큰 길잡이[大導師]를 버리고
위없는 법을 힘써 구하지도 않으며
또 나[我]에 대한 탐애를 낸 뒤에
속히 저 지옥으로 나아가고 만다.
그때에 어떤 소수의 중생이
이 공한 법을 힘써 구하려 하나
화합하여 같이 닦아 익힐 수 없는지라
저마다 다른 지방으로 흩어져 간다.
이와 같이 위없는 훌륭한 법을
듣는 이마다 모두 헐뜯게 되므로
법을 지닌 이는 두려워하며 멀리 도피할 것이니
이런 모양이 미래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이 나라에는 법 지닌 이가 전혀 없고
먼 데에 있더라도 많지 않으며
이 경을 받아 지닌 이가 있다 해도
모두 다 버리면서 묻지 않을 것이다.
세간의 의지처인 성인의 가르침 중의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위없는 법이지만
한량없는 장애가 미래에 있으리니
그 요연(了然)하기 마치 현재와 같으리라.
그 때에도 법을 지닌 어진 이가 있으면서
몸과 목숨 돌보지 않고 고요한 데에 머물러
이런 법을 닦아 익히고 널리 펴리니
속히 착한 갈래에 나아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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