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44권
대보적경 제44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⑩
7) 시라바라밀품 ③
“다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청정한 시라를 완전히 갖추고서 모든 행 가운데서는 항상 즐거울 수 없다는 생각[不可樂想]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에 대해서는 부모라는 생각[父母想]을 일으키며, 저 유정들에게는 보존하기 어렵다는 생각[難保想]을 일으키고, 묘한 5욕(欲)에 대해서는 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非妙想]을 일으키며, 느끼어 분별하여 아는 일에 대해서는 앎이 없다는 생각[無識想]을 내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는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관찰하기를 ‘만일 마음에 평등함을 일으켜야 한다면 마땅히 마음을 뛰어나서 적멸(寂滅)에 들어가야 하며, 만일 마음에 평등하지 않음을 일으켜야 한다면 마땅히 더러워진 마음[染心]으로 하여금 바꾸어져서 평등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눈의 빛깔이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을 내지만, 물든 마음의 일어남과 없어짐은 수면(隨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저 마음의 바탕[體]이 생김은 반연할 대상인 경계에 대하여 허망한 마음으로 청정하다고 헤아리는 것이라 만일 그것이 이치답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 바탕은 청정하지 않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알고 나면 곧 해탈하게 될 것이요 만일 그것을 해탈하면 곧 그것을 다하게 되리니, 거기서 어느 것을 다하느냐 하면, 이른바 탐냄[貪]이 다하고 성냄[瞋]이 다하고 어리석음[癡]이 다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다하면 곧 탐냄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한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만일 찰나 동안의 탐냄이 사라지거나 다함이 있다면 곧 탐냄과도 다르고 다함과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탐냄은 이것이 진실이어야 하고 다함도 이것은 진실이어야 하리니, 만일 탐냄 이것이 진실이라면 없어지거나 다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사리자야, 온갖 유정은 모두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이치답지 않은 생각 때문에 탐욕을 내는 것이다. 탐욕이란 분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만일 분별이 없다면 헤아리거나 집착함이 끊어지는 것이요, 만일 헤아림과 집착함이 끊어지면 곧 진실함이 없느니라. 진실함이 없기 때문에 그 중에서는 탐내는 것이 없고 탐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곧 진실이요,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 가운데서는 괴로움이 없고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불에 타는 듯한 시달림이 없으며 불에 타는 듯한 시달림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곧 진실이니라.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 가운데서는 뜨거운 열이 없고 열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곧 맑고 시원한[淸凉] 것이요 이것이 곧 열반이니, 열반 가운데는 탐애(貪愛)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열반이란 ‘나는 이와 같은 탐애를 마땅히 제거하고 소멸시켜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 탐애가 다했기 때문에 열반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곧 능히 탐내는 이[能貪]와도 다르고 탐할 바[所貪]와도 다르며 열반과도 다르니라.
이것이 만일 다르다면 곧 그것에서 그것이 되나니, 만일 그것에서 그것이 된다면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그것의 진실을 찾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구한 뒤에는 견고한 진실을 얻지 못하리니, 만일 견고한 진실이 없다면 곧 그것은 바로 공허한 것이요, 그것이 공허한 것이라면 곧 고요할 것이며, 만일 고요하다면 곧 그것은 공일 것이라서 공하여 없거늘 어느 법을 나라거나 내 것이라 하겠느냐? 만일 항상하거나 한결같거나 머무르거나 변하면 곧 유정(有情)도 없고 목숨[命者]도 없나니, 이와 같기 때문에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일으킴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나와 내 것이기에 이것은 나요, 이것은 내 것이라고 헤아리고 나와 내 것을 일으키느냐 하면, 뒤바뀌어서 나를 헤아리기 때문에 내 것을 집착하고 내 것을 집착하기 때문에 곧 작용[所作]이 있나니,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네 가지 행을 일으키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으로 짓는 것이요, 말과 마음으로 짓는 것이며, 뜻으로 생각하여 추악한 말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로부터 몸을 움직이며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온갖
어리석은 범부는 나와 남이라는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각에 집착하게 되고 생각에 속박을 당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러한 일에 대하여 뒤바뀌었음을 알고 나서 모든 행과 함께 서로 익히거나 가까이 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익히고 가까이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내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두려움 없음[無畏]을 구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나는 마땅히 그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하고 그들과 함께 친하고 사랑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의지하기에 일체 중생에 대하여 부모라는 생각을 일으키는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중생은 저 과거의 오랜 세상으로부터 아버지가 아니거나 어머니가 아닌 이를 쉽게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은 틀림없이 일찍이 나의 아버지거나 어머니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탐내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생각을 버렸고 성내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생각을 버리고서 생사에 헤매며 끊지 못한다’고 하나니,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런 일로 말미암아 깊이 생각한 뒤 모든 중생에 대하여 권속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사리자야, 저 과거의 아승기야를 더 초월하여 광대하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겁 때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명호는 최승중(最勝衆) 여래․응공․정등각․명행원만․선서․세간해․무상장부․조어사․천인사․불 박가범이었느니라.
그 부처님은 세간에 9구지(拘胝) 년 동안 사셨고 9구지 나유다의 대성문들이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는
그때에 득념(得念)이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왕궁에서 태어났고 형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므로 대중들이 보기 좋아하였으며 제일의 원만하고 청정한 빛깔과 몸매를 성취하였었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이 처음 태어날 적에 그의 부모는 각각 8만 4천의 어린아이 채녀(綵女)들을 그에게 하사하여 친한 벗과 권속으로 삼게 하였고, 다시 8만 4천의 예쁜 채녀들을 그에게 내려 부모와 지식(知識)과 벗[友]으로 삼게 하였으며, 다시 8만 4천의 채녀들에게는 보살을 받들어 잘 자라게 하기 위하여 항상 곁에 있으면서 돕고 시중들게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그때 보살의 아버지는 이 보살을 위하여 더울 때와 비 올 때와 추울 때에 머물 궁전을 지어 놓고 그 보살로 하여금 그 때를 따라 그 궁전에서 머무르게 하였고, 또 한량없는 백천의 음악으로써 보살을 에워싸고 즐겁게 지내게 하였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모든 음악을 들을 적에 그 소리가 나면 나고 없어진다는 생각을 일으키면서 그 음악 소리가 앞에서 나타나다가도 잠시 그치기도 하므로 곧 생각하기를 ‘이 소리는 무엇에 의지하면서 일어나고 어느 곳에서 생기는 것일까? 또 무엇에 의지하면서 쉬고 어느 곳으로 사라지는 것일까?’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이렇게 관찰할 때에 밤낮이라는 차별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무상하다는 생각과 온갖 세간은 즐거울 수 없다는 생각만을 일으켰느니라.
사리자야, 그때에 득념보살은 4만 년 동안 일찍이 쾌락에 대하여 탐착을 낸 적이 없고 또 4만 년 동안 모든 욕심 가운데서 일찍이 탐내거나 물든 일이 없었느니라. 이때에 보살은 깊은 궁전에 있으면서 4정려(靜慮)에 들어가 다섯 가지 신통을 일으켜 곧 내궁(內宮)으로부터 신족(神足)의 힘으로 허공을 올라가 최승중 여래․응공․정등각․박가범께로 가서 그 부처님께 청해 물어서 조그마한 착한 법만을 얻고 도로 본궁(本宮)으로 돌아왔었느니라.
사리자야, 이 득념보살은
저 여래께서 열반하신 그 날에 여래가 계신 곳으로 다시 가서 모든 필추에게 묻기를 ‘최승중부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이제 뵙고 친히 공양하려 합니다’라고 하자, 그때에 여러 필추들은 득념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당신은 아직 모르십니까? 여래께서 오늘 열반에 드셨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이미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을 알고는 곧 그 자리에서 온 몸을 땅에 던지고 슬피 울면서 기절하였으며 한참 만에야 다시 소생한 뒤에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세간을 비추셨고
모든 법의 저 언덕[彼岸]에 이르신 이인데
나는 방일(放逸)한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스스로를 속였단 말인가?
백천 겁의 구지(拘胝)만에야
여래는 한 번 출현하게 되시거늘
나는 받들어 섬기지 못했으니
그 누구를 의지하며 구제자로 삼을까?
나 스스로 생각하건대
어머님은 친근하고 선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째서 여래를 찬탄하지 않아서
내가 처음 나서부터 뵙게 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친근하고 선한 사이가 아니었다.
나를 모든 욕심에 떨어뜨려
그것에 붙들려 있게 하여
세간의 의지처[世間依]를 못 섬기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육십 가지 묘한 음성 듣지 못하여
이생에서 큰 이익 상실하게 되었으니
부처님을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저 언덕에 이르신 이요
세간을 이롭게 한 대비(大悲)하신 분인데
나는 교만과 방일에 붙잡혀
양족존(兩足尊)을 섬기지 못하였구나.
천억이나 되는 나유다의 겁에도
부처님을 뵙기는 매우 어려운데
나는 공양을 올리지 못하고
열반하신 뒤에야 오게 되었구나.
지금 내가 거듭 생각하건대
부모는 모두가 좋은 이가 아니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어째서 부처님을 찬탄하지 않았던가?
가장 으뜸이신 세존을 뵈옵고
항상 여래 곁에 머무르면서
널리 모든 공양을 닦으며
바른 법을 듣게 하지 않았을까?
여래께서 널리 드날리시는
육십 가지 미묘한 음성을
나는 일찍이 듣지 못하고
열반하신 뒤에야 오게 되었구나.
나는 지금 큰 이익을 상실하였다.
열반하신 뒤에야 오게 되어서
먼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미묘한 법 연설함이 없으니 말이다.
“사리자야, 그때에 득념보살은 곧 그곳에서 슬피 울고 있다가
일어나 최승중여래께서 반열반하신 평상으로 나아가서 애통해 하다가 목이 메인 채로 여래를 오른편으로 백천 번 돌고 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서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중생 위하는 진실로 높은 이며
위없는 미묘한 법 드날리셨으니
제가 이제 지성스런 마음을 일으킴은
훌륭한 보리를 얻기 위함이었나이다.
저는 이제 여래의 발에 예 올리오니
세계에서 진실한 말씀과 대지혜 지닌 분이시여
원컨대 저도 이러한 지혜 얻어
가장 으뜸이신 이께서 얻은 것과 같게 하시옵소서.
저는 하열하고 지혜가 없어
마라(魔羅)의 무리 속에 떨어져 있었고
집에 편히 살면서 부딪히는 일이 많아
부처님[人中上]을 섬기지는 못했사옵니다.
저는 이미 일찍이 훌륭한 복을 닦아
이로 인해 잠시 동안 부처님을 뵈었으나
부처님께서는 바른 법을 드리우지 않았기에
저는 이제 극심한 고통 받고 있나이다.
저는 이제 하늘․용 등 대중 앞에서
지성껏 진실한 말을 일으키나니
저의 본래 소망이 사실대로라면
말씀대로 모두 이루어져야 하오리다.
원컨대 저는 미래 세상에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분이 되어지이다.
매우 깊은 이치와 광대한 작용과
위없는 진실한 법 보고 듣게 하시며
그때에 모든 재난 저에게는 생기지 않아
이미 생긴 욕심들도 가까이하지 않으며
여색(女色)에도 자재하여 따라 옮김이 없고
마라의 감옥을 꺾어 무너뜨리며
날 때마다 늘 모든 부처님 뵙게 되고
위없는 바른 법을 눈앞에서 듣게 되며
모든 부처님 뵙게 되면 청정한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모든 행을 닦게 하여지이다.
만일 제가 일으킨 지성스런 말씀이
반드시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라면
이로 인해 여래께서 도로 일어나 앉으심이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하소서.
보살이 지성스런 말을 마치자
여래는 바로 그때 일어나 앉으시니
백천 구지의 모든 하늘들이
훌륭한 의복을 바쳐 올렸다.
이때에 보살은 마음이 기뻐서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올라가
허공에 서서 편히 머문 뒤에
묘한 게송[伽他]으로 부처님을 찬탄했다.
자심(慈心)으로 세간 이롭게 하시고 대광명 비추시고
첫째가는 설법자이시며 큰 신통 지니시고
깨달은 이시며 세간 가엾이 여기는 의지처이시고
위없는 바른 법을 널리 펴신 이옵니다.
사리자야, 그때에 득념보살은 이와 같이 여러 찬탄하는 게송을 널리 말한 뒤에 대중으로 하여금 갑절 더 기쁘게 하기 위하여 다시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저는 미래 세상에 부처가 되어
수기(授記)를 보이는 세존이 되리니
당신들 대중들은 따라 배우면서
여래께 공양을 일으켜야 하리라.
세간의 의지처이시고 부사의한 분이신데
그 누가 이분에게 믿음 내지 않으리까?
우리들과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열반하셨는데도 도로 일어나 앉으셨습니다.
사리자야, 이 득념보살은 최승중여래의 법 가운데서 크게 공양을 베풀어 모든 선의 근본[善]을 심었나니, 곧 이와 같은 선근의 힘 때문에 여기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저 착한 세계인 모든 천상 세계에 태어나서 20대겁(大劫) 구지 동안에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고, 또 20대겁의 구지 동안을 지나면서 욕락(欲樂)을 받지 않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득념보살은 이런 동안에 7천의 모든 부처님을 친히 뵙고 받들어 섬겼으며, 모든 부처님께 널리 공양을 베풀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항상 범행(梵行)을 수행하다가 그 최후의 겁 마지막 세상인 때에 저절로 선근의 힘 때문에 일어난 뛰어나고 으뜸가는 몸을 얻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으니, 명호는 사라왕(娑羅王) 여래․응공․정등각․명행원만․선서․세간해․무상장부․조어사․천인사․불 박가범으로서
세간에 출현하셨느니라.
사리자야, 이 사라왕부처님은 20구지 해 동안 살아 계시면서 모든 제자들과 두 번 모여서 설법하셨으니, 첫 번째 대회에서는 성문 제자들이 20구지나 있었고, 두 번째 대회에서는 4만이 있었는데 그 모두는 다 대아라한이어서 모든 샘[漏]을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었고 큰 세력을 획득하였으며, 나아가 모든 마음이 자재한 제일의 저 언덕에 이르렀느니라.
사리자야, 저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사리(舍利)를 유포하여 널리 탑[靈廟]을 세웠으며 정법(正法)은 세상에 만 년 동안 머물렀느니라.”
그때에 박가범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알아야 한다.
이 득념보살은
20겁 구지 동안에
일찍이 악도(惡道)에 떨어진 적 없었다.
또 이러한 겁을 지나면서
모든 탐욕을 익히지 않았으며
이러한 그 중간 동안에
7천의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법을 좋아하여
항상 청정한 행을 수행한지라
최상의 보리를 깨치시니
명호는 사라왕부처님이셨다.
20구지가 천 번이 되도록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머물렀고
으뜸가는 보리를 깨친 뒤에는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셨다.
20구지 년 동안 살아 계시면서
미묘한 법을 널리 연설하시니
20구지의 성문들과
그 밖의 4만 대중은
모두 다 모든 번뇌를 다하였고
모두 부처님의 신선 대중[仙衆]이었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사리가 널리 유포되어서
탑이 완전히 가득 차게 되었으니
그 수는 6만 구지나 되었다.
열반하신 뒤에는 정법(正法)이
1만 년 동안 세상에 머물렀고
부처님의 바른 설법을 들은 뒤엔
모두가 청정한 믿음을 내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하여
지혜로운 이 의심 내지 않고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속히 적멸(寂滅)을 증득하게 되리라.
“또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청정한 계율로서 모든 중생에 대하여
부모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왜냐하면 ‘나는 옛날에 탐내는 마음 때문에 어머니라는 생각을 버렸고 성내는 마음 때문에 아버지라는 생각을 버렸었다. 나는 이제 시라바라밀다를 행하여 청정한 계율에 편히 머무르며 저 모든 욕심에 대하여 항상 싫어하고 저버리는 마음을 일으키리라’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탐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바른 뜻을 지음으로써 모든 욕심을 진실로 어기고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빠른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욕심의 모양을 분명히 알고 또 모든 욕심을 어기고 싫증내는 일도 분명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모든 욕심을 분명히 알고 모든 욕심을 어기고 싫증내는 일도 분명히 안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말한 바의 모든 욕심이란 탐애(貪愛)이니, 이를테면 안식(眼識)으로 인식하는 모든 빛깔을 탐내고 사랑하는 것을 바로 욕심이라 하고, 이식(耳識)으로 인식하는 모든 소리를 탐내고 사랑하는 것을 바로 욕심이라 하며, 이와 같이 비식(鼻識)으로 인식하는 모든 냄새와 설식(舌識)으로 인식하는 모든 맛과 신식(身識)으로 인식하는 모든 감촉을 탐내고 사랑하는 것을 바로 욕심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탐애가 있으면 집착이 있느니라. 무릇 집착하는 것을 맺음[結]이라 하고, 맺음은 일으킴[發起]이라 하며, 일으킴은 속박[縛]이라 하고 또한 진실하지 않은 쓸모없는 이론[不實戱論]이라고도 하나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일체 중생은 모두가 진실하지 않은 쓸모없는 이론의 모든 속박에 얽매이고 있으며, 이 얽매이는 속박에 두루 매이고 더욱 왕성하게 두루 속박되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일체 중생은 무엇에 얽매이기 때문에 속박된다고 하는가? 이른바 빛깔의 속박[色縛]에 얽매이기 때문에 속박된다고 하고, 나아가 소리․냄새․맛․감촉의 속박에 얽매이기 때문에 속박된다고 하느니라. 또 무엇 때문에 빛깔에 속박된다고 하는가?
이를테면 자기 몸에서 얻는 모든 빛깔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我想]과 목숨이라는 생각[命者想]․
삭취취라는 생각[數取趣想]․항상하다는 생각[常想]․한결같다는 생각[恒想]․변하지 않는다는 생각[不變異想]․실제라는 생각[實想]․온전하다는 생각[全想]․한 가지로 합한다는 생각[一合想]을 망령되이 일으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의 생각을 빛깔의 속박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빛깔의 속박에 얽매인다고 하는가? 이를테면 일으킨 바나 자체(自體)의 모양에 대하여 매우 친근히 하고 보배롭게 여기면서 널리 나에 대한 사랑을 일으키어 모든 아내와 첩이며 온갖 여색(女色)을 그리워하고 집착하기를 마지않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빛깔의 속박에 얽매인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중생은 이미 모든 욕심의 법을 수용하게 된 뒤에는 착하지 않은 업을 짓고 모든 욕심의 과실(過失)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모든 욕심의 과실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온갖 모든 욕심은 과실이 아님이 없나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모든 과실에 대하여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악도(惡道)에 나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욕심이 중한 과실 때문이니, 너를 위하여 그 모양을 열어 보이리라.
사리자야, 어찌하여 악도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 모든 욕심이 중한 과실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나는 ‘나는 온갖 욕심을 익히고 가까이 하는 때에는 조그마한 악이라도 짓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지은 과보가 성숙되면 조그마한 고통이라도 섭수(攝受)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리라.
그러므로 사리자야, 나는 관찰하건대 온갖 천(千) 세계 속에서 중생의 큰 원수는 아내와 첩과 여색에 대한 모든 욕심보다 더 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지혜로운 이라 하면 바로 이는 여래요, 지혜 없는 이라 하면 중생을 말하는 것이지만, 만일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꾸짖는 것이라면 이것은 진실인 것이요, 만일 모든 지혜 없는 이들이 섭수한 것이라면 곧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모든 지혜 없는 이들이 어느 것을 섭수하는가? 이른바 모든 유위(有爲)의 법을 섭수하고, 아내와 첩이며 여색의 모든 욕심과 남녀 등을 섭수하느니라. 저 지혜가 없는 이는 또 처자(妻子)와 모든 여색 등에 섭수당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차츰차츰 다시 서로가 섭수하게 되면
저 성인의 도(道)를 섭수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저 지혜 없는 이들은 남녀와 처첩이며 모든 여색 등에 얽매이기 때문에 모든 착한 법에 있어서 장애(障礙)가 많이 생기느니라. 어느 것에 장애가 되는가? 이른바 출가에 장애가 되고 시라(尸羅)에 장애가 되고 정려(靜慮)에 장애가 되고 천상의 길에 장애가 되고 열반에 장애가 되며 또 묘하고 착한 법에 장애가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저 지혜 없는 이들이 만일 남녀와 처첩이며 모든 여인에 대한 색욕(色欲)을 섭수하면 간략하게 말하여 그것은 원수를 섭수하는 것이라 곧 지옥과 축생과 염마(焰魔)의 귀신 세계 등을 섭수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섭수는 요점을 들어 말하건대 그것은 곧 온갖 착하지 않은 법을 섭수하여 모든 성현의 법을 장애하는 것이니라. 또 만일 남녀와 처첩이며 모든 여인에 대한 색욕을 섭수하고 나아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섭수하면 그것조차도 장애가 되거늘 하물며 그 밖의 훌륭한 일이겠느냐?
사리자야, 이와 같은 장애를 요약하여 말하면 이른바 부처님 뵙는 것을 장애하고 법 듣는 것을 장애하며 스님들 받드는 것을 장애하는 것이요, 부처님을 뵙고 얻게 되는 청정한 믿음을 장애하고 법을 들어서 얻게 되는 청정한 믿음을 장애하며 스님들을 받들어 얻게 되는 청정한 믿음을 장애하는 것이니라.
또 요약하여 말하면 완전히 재난이 없게 되는 것을 장애하고 신재(信財)․계재(戒財)․문재(聞財)․사재(捨財)․혜재(慧財)․참재(慚財)․괴재(愧財)를 장애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이가 남녀와 처첩의 모든 색욕 등을 섭수하면 곧 믿지 않음[不信]․나쁜 계율[惡戒]․삿된 들음[邪聞]․인색함[慳悋]․악하고 삿된 지혜[惡邪之慧]․제 부끄러움 없음[無慚]․ 남 부끄러움 없음[無愧]을 섭수하는 것이며, 또 다시 질병과 종기와 독화살과 불 무더기와 독사를 섭수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이가 집에 살고 있기를 좋아하여 빠져서 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곧 무덤 사이에 있기를 좋아하는 줄 알아야 하리니, 그러므로 나는 ‘집에 살고 있기를 좋아함은 마치
무덤 사이나 넓은 벌판에 있으면서 의탁하거나 이야기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리니, 곧 모든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상실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남녀와 처첩이며 모든 여인에 대한 색욕에 맛들이면 그것은 곧 조약돌로 된 우박에 맛들이는 것이요, 그것은 곧 날카로운 칼날에 맛들이는 것이며, 그것은 곧 불이 이글거리는 철환에 맛들이는 것이요, 그것은 곧 불이 이글거리는 쇠 평상에 맛들이는 것이며, 그것은 곧 불이 이글거리는 쇠 책상에 맛들이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이가 꽃다발과 향 바르는 일에 맛들이면 그것은 곧 불이 이글거리는 쇠 꽃다발에 맛들이는 것이요, 또한 그것은 똥․오줌을 몸에 바르는 일에 맛들이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이가 살고 있는 집을 섭수하면 그것은 아주 이글거리는 쇠 항아리를 섭수한 줄 알 것이요, 만일 어떤 이가 노비와 심부름꾼을 섭수하면 그것은 지옥의 옥졸을 섭수한 줄 알 것이며, 만일 어떤 이가 코끼리와 말과 낙타․당나귀․소․양․닭․돼지 등을 섭수하면 그것은 지옥 안에 있는 검고 얼룩덜룩한 개들을 섭수한 줄 알 것이요, 또 그것은 100유선나(踰繕那) 만큼이나 되는 금군(禁軍)의 병졸을 섭수한 줄 알 것이니,
요점을 들어 말하건대 만일 어떤 이가 처첩과 남녀며 모든 여인에 대한 색욕을 섭수하면 그것은 곧 온갖 많은 괴로움과 근심과 슬픔과 번뇌의 무더기를 섭수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차라리 1천 유선나 만큼의 쇠로 된 큰 평상이 이글거리며 극도로 뜨겁고 두루 뜨거우며 사나운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그 평상에 의지하고 붙어 있을지언정 저 부모가 맡겨준 처첩이나 모든 여인의 색욕에 대해서는 음욕의 마음으로써 멀리서조차도 그 모양을 보지 않아야 하리니, 하물며 친히 달라붙고 안아 가지는 것이겠느냐?
왜냐하면 사리자야, 부인(婦人)이란 곧 많은 고통이 오는 근본이요, 곧 장애가 되는 근본이며, 바로 살해(殺害)를 하는 근본이요, 바로 얽매이게 되는 근본이며, 바로 근심을 부르는 근본이요, 바로 원수가 되는 근본이며, 바로 소경이 되는 근본이기 때문이니, 부인은 거룩한 지혜의 눈을 없애는 것인 줄 알아야 하고 부인은 마치 이글거리는 쇠 꽃을 땅에다 흩어 펴놓고
발로 그 위를 밟는 것인 줄 알아야 하며, 부인은 모든 삿된 성품이 유포되고 더욱 자라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연 때문에 부인이라 하는가? 이른바 부인이란 무거운 짐을 더하게 한다 하나니, 왜냐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지게 하기 때문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으로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갖고 가는 데가 있게 하기 때문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지고 두루 돌아다니게 하기 때문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이 무거운 짐으로 인해 마음이 고달프고 괴로움을 받게 하기 때문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으로 인해 핍박을 받게 하기 때문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으로 인해 상해를 입게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또 무슨 인연 때문에 부인이라 하는가? 이른바 부인이란 이 모든 중생들이 맡긴 물건을 보내 주는 곳이요, 이 사랑을 탐한 노예는 그 흐름에서 빠져 죽는 곳이며, 이 부인에 순종하는 이는 세금을 바치는 곳이요, 이 부인이 아양을 떨면 미혹되는 곳이며, 이 부인이 훌륭하면 돌아가 의지할 곳이요, 이 부인에 굴복하는 이는 의지하고 기댈 곳이며, 부인이 마음대로 하면 멋대로 거리낌 없이 노는 곳이요, 부인의 노예가 된 이는 고달프고 괴로움을 받는 곳이며, 부인을 따라 움직이는 이는 우러르면서 사모하는 곳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인연 때문에 이 모든 곳을 부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세간의 중생들은 이 부인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무거운 짐을 버리지 못하나니, 어떠한 무거운 짐을 버리지 못하는가? 이른바 5온(蘊)이니라. 어떤 것이 5온인가? 색온(色蘊)․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이니라.
사리자야, 세간의 부인은 중생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5온의 무거운 짐을 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5온을 부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다시 어떤 인연 때문에 세간 사람들은 부인을 옛부터 제2가 된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이와 같은 여인은 그가 바로
시라를 범하는 제2의 동반자(同伴者)이기 때문이요, 그가 바로 위의를 범하는 제2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며, 그가 바로 바른 소견을 범하는 제2의 동반자이기 때문이요, 그가 바로 마시고 먹고 할 때에 제2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며, 그가 바로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세계를 갈 적에 제2의 동반자이기 때문이요, 그가 바로 성인의 지혜와 열반을 장애하고 온갖 고통을 받아들이게 하는 제2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옛부터 제2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무엇 때문에 세간 사람들은 부인을 어머니들[母衆]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온갖 여인들은 많은 허물을 내고 끝없이 요술처럼 속이기 때문에 어머니들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어머니들을 좇으면서 자유자재하면 곧 마라(魔羅)의 손 안에 떨어져서 자유자재하게 악을 짓고 있는 줄 알 것이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세간의 온갖 여인들은 많은 허물을 내고 끝없이 요술처럼 속이면서 마음은 몹시 경솔하고 마음은 대단히 들떠 있으며, 그 마음은 음탕하게 놀고 기울어져서 서 있지 못하며, 마음은 마치 산에 사는 검은 원숭이와 같고, 마음은 마치 원숭이[猨猴]와 같아서, 요술처럼 속이는 재주를 잘 부리게 되는 줄 알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모든 모양 때문에 여인을 어머니들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머니들이란 말은 곧 어머니의 요술 마을[母幻村]이라고 하며, 또 요술로 된 성읍(城邑)이라 하기도 하고, 요술로 된 왕의 도읍이라 하기도 하고, 요술로 된 손님[客]의 정자라 하기도 하고, 요술로 된 사람의 여관이라 하기도 하고, 요술로 된 나라요, 요술로 된 마을이요, 요술로 된 처소요, 요술로 된 방소라 하기도 하며, 또 그것은 요술로 된 세간이요, 그것은 요술로 된 세계요, 그것은 끝이 없는 요술이요, 그것은 광대한 요술이요, 그것은 한량없는 요술이며, 그것은 불가사의한 요술이라고도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욕심의 중한 과실로 말미암아 악도에 나아가게 되므로 여인을 이름하여 어머니의 요술 마을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 배워서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갖가지 요술로써 속이는 일을 보이고 나타내는 것처럼, 사리자야, 어머니의 마을도 역시 그러하여 여인이 요술처럼 속이는 기술을 잘 배워서 장부(丈夫)로 하여금 보고 듣고 만지고
접촉하며 모두가 그에게 얽매이도록 하는 것이니라.
또 모든 여인들은 남을 미혹시키고 아양떠는 법을 교묘히 아나니, 아양떨 줄을 알기 때문에 세력이 자유자재하여 노래하고 춤을 추고 희롱하며 웃고 또는 울고 가고 오고 서고 앉고 눕는 온갖 때에 장부로 하여금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면서 그 여인을 따라 얽매이고 부림을 받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세간에서 다 익은 벼논에 큰 우박이 내리면 꺾이고 상하는 것이 너무도 심한 것처럼, 사리자야, 이 어머니의 요술 마을도 마치 큰 우박이 장부의 밭에 떨어져 온갖 백법(白法:善法)의 싹을 꺾고 없애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따위의 악도에 나아가게 하는 탐욕의 중한 과실을 온갖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것이 요술처럼 미혹시킨 것임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지라 다시 사랑하는 아내와 첩이며 모든 여인에 대한 색욕을 섭수하면서 그 때문에 헷갈리고 취하여 있느니라.
또 사리자야, 총명하고 지혜로운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모든 욕심에 대하여 그 허물을 깊이 알고 나서는 곧 바른 법에 의지하여 두 가지 생각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모든 어리석은 범부에 대해서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惡人想]을 일으키고, 부처님과 보살에 대해서는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善人想]을 일으키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는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마땅히 착한 장부의 세계로 가야 하고 저 악한 장부의 세계로는 가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지옥과 축생과 염마의 귀신 세계로는 가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시라를 훼범하는 세계로는 가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계를 범하면서 사는 곳으로는 가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가장 훌륭하고 위없는 앞의 모든 법을 여읜 장애 없는 세계로 가야 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지혜의 세계로 가야 한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흐름을 거스르면서 수행해야 하며 흐름을 순종하는 자는 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사자처럼 외쳐야 하며 야간(野干)처럼 울지는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금시조왕(金翅鳥王)의 큰 세력을 나타내 보여야 하며 미세한 곤충이 지닌 힘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어질고 선량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험악하고 심란한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현량(賢良)하고 훌륭한 선비의 청정한 밥을 먹어야 하며 저 불량하고 낮은 이의 깨끗하지 않은 밥은 먹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미묘한 정려(靜慮)와 가장 훌륭한 정려와 특수한 정려와 최고의 삼마지(三摩地)에서 얻는 그런 종류의 정려를 수행해야 하며 그런 종류가 아닌 정려와 그릇되고 하열한 정려는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부처님의 정려에 즐겁게 노닐어야 하며 성문과 독각과 온갖 어리석은 범부의 정려에 노닐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의지함이 없는[無依] 정려를 수행해야 하며 물질[色]에 의지하는 정려는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또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하고 지계(地界)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하며 또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욕계(欲界)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하고 또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이 세상[此世]과 다른 세상[他世]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또 이미 보았거나 이미 들었거나 이미 기억하였거나 이미 알았거나 이미 얻었거나 이미 접촉했거나 이미 증득했거나 한 이와 같은 것에 의지하는 정려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하나니, ‘나는 마땅히 의지함이 없는 정려를 닦고 익혀야 한다. 이를 닦고 익히는 까닭에 마땅히 자신을 손상하지 않고 다른 이도 손상하지 않으며 또한 다 같이 손상하지도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원만하게 이룩한 부처님의 지혜를 추구해야 하거늘 어찌 다시 세간의 모든 욕심을 구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와 같이 총명하고 지혜로운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등의 모든
바른 관찰을 짓고 나서는 다시 네 가지 싫증내고 여의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모든 욕심에 대하여 싫증을 내고 여의려 하며, 모든 존재[有]에 대하여 싫증을 내고 여의려 하며, 은혜를 모르는 모든 중생에 대하여 싫증을 내고 여의려 하며, 온갖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이들에게 싫증을 내고 여의려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일으키는 네 가지 싫증내고 여의려는 생각이라 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모든 유정이 악도(惡道)에 있으면서 예쁜 여색을 보고 탐심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면 마땅히 네 가지 싫증내고 여의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물러나서 잃는다는 생각[退失想]이요, 뒤바뀌어 타락한다는 생각[顚墮想]이며, 뒷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行厠想]이요, 고름이 터지고 똥 찌꺼기 같아서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膿潰糞穢不淨想]이 그것이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모든 악도에 있으면서 모든 정식(情識)이 있는 것이 예쁜 여색을 보는 것조차도 오히려 이와 같은 네 가지 생각을 일으켜야 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사리자야, 대승(大乘)에 머무르는 모든 족성자(族姓子)는 온갖 유위(有爲)의 행을 싫어하고 여의는 이도 예쁜 여색을 보면 물러나서 잃는다는 생각과 뒤바뀌어 타락한다는 생각과 뒷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과 고름이 터지고 똥 찌꺼기 같다는 이러한 네 가지 생각을 일으키거니와 만일 이러한 생각을 일으켰는데도 탐심이 생기면 마땅히 다시금 세 가지 친척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나니, 이른바 어머니 또래가 되는 이들에게는 어머니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손위 누이와 손아래 누이 또래가 되는 이들에게는 손위와 손아래의 누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딸 또래가 되는 이들에게는 딸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내가 말한 것을 듣고 잘 이해하는 이는 마땅히 이 경전의 시라바라밀다를 따라야 하리니, 왜냐하면 오랜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나의 부모가 아니었던 중생은 쉬이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은 모두가 일찍이 나에게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만일 처첩이나 여인을 가까이 한다면 곧 과거의 어머니를 가까이 하는 것이 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나의 말을 들은 뒤에는 청정하기 위해서도 마땅히 이와 같이 격려하고 힘써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온갖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저 바른 법에 대하여 거역하고 믿지 않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바른 법을 따르고 거역함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이러한 모든 관(觀)을 수행하는데도 아직도 탐심이 따르게 되면 보살은 다시금 ‘이렇게 생겨나는 탐심은 무엇을 보고 나는 것인가?’라고 이치대로 관찰해야 하느니라.
만일 눈에서 탐심이 일어난다면 보살은 거듭 이치대로 그것을 관찰해야 하나니, ‘나는 눈에서 염애(染愛)가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누가 눈을 능히 보는 이인가? 눈이 눈을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자체(自體)가 자체를 보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것 역시 눈이요 이것 역시 눈이어서 모두가 4대(大)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 요소[大種]에서 생겼기 때문에 자체로 말미암아 이 자체에서 염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요 나[我] 자체에서 염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이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에서 염애가 일어났다면 마땅히 이것에서도 염애가 일어나야 하리니,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온갖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들은 차별이 없는 데에 머물지만 나는 이제 마땅히 차별되는 법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욕각(欲覺)은 도무지 덕(德)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전전(展轉)하여 동일한 이치인지라
도무지 차별된 성품이 없나니
이치에 어긋나는 삿된 고집으로 말미암아
이 탐애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4대(大)에서 생겨난 것이거늘
어떻게 도로 4대를 물들일 수 있겠는가?
모든 법은 마치 요술과 같으므로
탐애를 일으킬 까닭이 없다.
우리들이 삿되게 분별하면서
망령되이 탐애하는 마음 일으키나니
하열한 이는 탐애심을 내게 되지만
어질고 착한 이는 탐애가 없다.
두루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실로 탐애를 구할 만한 것 없는데
다만 허망한 분별 때문에
이런 탐애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렇게 관찰한 뒤에도 오히려 탐심에 따라 쫓기는 이는 부처님께서 말씀한 모든 법을 들었으면 그 선근의 힘 때문에 다시 이 경전을 따라야 하느니라.
이른바 눈[眼]은 마치 물거품을 집거나 만질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물거품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我]가 없고 또한 유정(有情)도 없고 목숨[命者]도 없고 삭취취(數取趣:보특가라)도 없고 마납바(摩納婆)도 없고 장부(丈夫)도 없고 뜻대로 생기는 몸[意生]도 없고 짓는 이[作者]도 없고 받는 이[受者]도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등의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는 온갖 법 가운데에서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떠 있는 거품의 성질이 견고하거나 충실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떠 있는 거품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삭취취도 없고 마납바도 없고 장부도 없고 뜻대로 생기는 몸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등의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는 모든 법 가운데서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아지랑이에 업이 미혹되어 갈애(渴愛)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아지랑이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파초의
몸이 곧거나 견고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파초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이 눈은 마치 꿈에서는 사실대로 보는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허망한 꿈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메아리가 뭇 연[衆緣]에 매인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메아리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빛의 그림자가 업에 의지하여 그림자로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빛의 그림자 등의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뜬구름이 회오리바람에 어지러이 흩어지는 모양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구름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흐르는 번갯불이 번쩍 하는 사이에 스러지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번갯불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어느 것이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이 눈은 마치 허공이 나와 내 것[我所]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저 허공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무엇이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에 앎이 없음은 마치 풀과 나무와 흙과 돌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앎이 없는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에는 작용(作用)이 없고 바람[風大]을 따라 활동하고 움직이느니라. 왜냐하면 작용이 없는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속임수와 부정(不淨)한 것과 썩어 문드러진 것이 쌓인 무더기니라. 왜냐하면 속임수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거짓이고 꺾여 파괴되어 흩어져 없어지며 다하는 법이니라. 왜냐하면 거짓으로 된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마치 언덕과 우물에는 항상 쓰러짐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언덕과 우물 등의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애착함이 생기는 것인가?
사리자야, 눈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마침내 죽음에서 끝나느니라. 왜냐하면 저 오래도록 머무르지 않는 온갖 모든 법에는 본디 나가 없고 또한 유정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삭취취도 없고 마납바도 없고 장부도 없고 뜻대로 생기는 몸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등의 조작도 없고 작용도 없는 연(緣)이 모여 생긴 모든 법 가운데서 그 누가 능히 물들어 애착하는 이며 또 어느 곳에서 물들어 집착함이 행해지는 것인가?
이와 같이 온갖 안팎의 모든 근진(根塵)의 법을 널리 해설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바르게 관찰할 때에 다시 모든 탐애에 끌린다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관(觀)을 지으면 그야말로 모든 법 가운데서 영원히 탐애를 여읜 줄 알지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마침내 청정하여져서 모든 탐애가 소멸된다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청정하게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온갖 중생을 살해하는 업을 짓지 않으며 나아가 명난(命難)도 없나니, 모든 중생들을 끝내 해치지 않느니라. 온갖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업을 짓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남의 살림 기구를 끝내 빼앗거나 훔치지 않느니라. 온갖 음탕한 삿된 행을 익히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마침내 모든 여색(女色)에 빠지는 데로 나아가지 않느니라.
온갖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모든 중생들에게 속이는 짓을 하지 않느니라. 온갖 거친 말을 하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모든 중생들을 끝내 헐뜯거나 욕하지 않느니라.
온갖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모든 중생들에게 파괴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 권속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니라. 온갖 허튼 소리와 번드레한 말을 전하지 않고 말에는 반드시 헤아림이 있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끝내 기이한 말투로나 문구로써 발라 맞추거나 꾸미지 않느니라.
다른 이의 재물에 탐착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수용하는 모든 것에 끝내 애착하거나 물듦이 없느니라. 괴롭거나 욕되는 모든 일을 온전히 참아 내고 추악한 말을 들어도 능히 견뎌 내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끝내 분이나 성을 내지 않느니라. 모든 법 가운데서 삿된 소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목숨을 해치는 재난도 없나니, 끝내 그 밖의 천신(天神)들을 믿거나 섬기지 않고 오직 부처님께만 청정한 믿음으로 귀의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시라가 청정하다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결함이 없는[不缺]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지혜 없는 이들과는 서로 친근하지 않기 때문이며, 뚫리지 않은[不穿]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평등하지 않은 삶을 멀리하기 때문이며, 얼룩지지 않은[不斑]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나쁜 사람과 모든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며, 뒤섞이지 않은[不雜]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오직 백법(白法)만이 자라게 되기 때문이니라.
공양 받을 만한[應供]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자유로이 행해지기 때문이며, 칭찬하는[稱讚]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지혜 있는 이의 꾸지람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잘 수호하는[善守]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앎[正知]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이며, 헐뜯지 않은[不呰]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모든 허물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며, 잘 보호하는[善護]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모든 감관의 문을 잘 방위하기 때문이니라.
높고 넓은[高廣]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온갖 부처님께서 기억해 주시기 때문이며, 욕심이 적은[少欲]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청정한 양(量)을 알기 때문이며, 만족해 할 줄 아는[知足]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기꺼이 끊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바른 행[正行]의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몸과 마음으로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고요하게 처하는[處靜]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번거롭고 시끄러움을 싫어하기 때문이며, 성인의 종성으로서 잘 기뻐하는[聖種善喜]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남의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고 희망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두타의 공덕으로 일이 적은[杜多功德少事]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자유로이 모든 선근이 생장하기 때문이며, 말씀대로 행하는[如說而行]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세간의 모든 하늘 사람들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며, 크게 인자한[大慈]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온갖 목숨 있는 유정들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大悲]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온갖 모든 고뇌를 견디고 참기 때문이며, 크게 기쁘게 하는[大喜]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저 법락(法樂)에서 물러나거나 손감됨이 없기 때문이며, 크게 평등히 여기는[大捨]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온갖 사랑함과 성냄을 마침내 끊기 때문이니라.
항상 자기의 허물을 반성하는[常省己過]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항상 속마음에서 잘
살피며 비추기 때문이며, 그들의 결점을 비방하지 않는[不譏彼闕]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중생들의 마음을 잘 따르며 보호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성숙시키는[成熟衆生]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지막에는 보시의 저 언덕[彼岸]에 잘 이르기 때문이며,
잘 수호하는[善守護]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지막에는 계율의 저 언덕에 잘 이르기 때문이며, 미워하거나 해치는 마음이 없는[無憎害心]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지막에는 인욕의 저 언덕에 잘 이르기 때문이니라.
물러나지 않는[不退轉]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지막에는 정진[正勤]의 저 언덕에 잘 이르기 때문이며, 선정 부분이 원만한[定分圓滿]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구경에는 정려(靜慮)의 저 언덕에 잘 이르기 때문이며, 바르게 듣고 싫증이 없는[正聞無厭]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지막에는 큰 지혜의 저 언덕에 잘 이르기 때문이며,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親近善友]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각분의 자량[覺分資糧]을 잘 닦고 쌓기 때문이니라.
악한 벗을 멀리 여의는[遠離惡友]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평등하지 않은 길을 버리기 때문이며, 몸을 돌보거나 그리워하지 않는[不顧戀身]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무상하다는 생각으로 항상 관찰하기 때문이며, 목숨을 돌보거나 그리워하지 않는[不顧戀命]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그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항상 보존하지 않기 때문이며, 뉘우침을 일으키지 않는[不起悔]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마음이 매우 청정하기 때문이며, 거짓으로 나타내지 않는[不詐現]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방편이 좋고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번뇌로 뜨겁지 않는[不惱熱]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뛰어난 뜻[增上意]에서 잘 청정하기 때문이며, 가벼이 들뜨지 않는[不輕掉]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영원히 모든 탐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며, 뽐내면서 젠체하지 않는[不高慢]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온화하고 유순하고 질박 정직하기 때문이며, 억세고 사납지 않는[不强戾]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성품이 어질고 착하기 때문이며, 잘 조복된[善調伏]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분을 내거나 성을 냄이 없기 때문이니라.
적정(寂靜)한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성품이 편안하게 가다듬어졌기 때문이며, 잘 말하는[善語]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그 말씀한 바대로 하고 거스름이 없기 때문이며, 유정을 성숙시키는[成熟有情]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항상 모두 거두어 주는 법[攝法]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바른 법을 수호하는[守護正法] 시라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나니 성스러운 법 재산[聖法財]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총명하고 지혜로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청정한 계율의 무더기로 시라바라밀다를 온전히 갖추고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보살의 묘한 행을 잘 수행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시라바라밀다라고 하나니,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힘써 이 보살행을 수행하면 온갖 악마[魔]와 악마의 백성인 천자(天子)들이 이 보살을 번거롭게 하거나 어지럽히지 못하며 또 저 다른 외도의 이론에 꺾이거나 굴복되지도 않느니라.”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583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6권 (2) | 2024.01.13 |
---|---|
[적어보자] #3582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5권 (2) | 2024.01.13 |
[적어보자] #3580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3권 (4) | 2024.01.12 |
[적어보자] #3579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2권 (0) | 2024.01.12 |
[적어보자] #3578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1권 (0) | 2024.0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