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42권
대보적경 제42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⑤
7) 시라바라밀품(尸羅波羅蜜品) ①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시라(尸羅)바라밀다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이것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보살행을 수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행하는 까닭에 세 가지 묘한 행이 있나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묘한 행[身妙行]이요, 둘째는 말의 묘한 행[言妙行]이며, 셋째는 뜻의 묘한 행[意妙行]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몸의 묘한 행이라 하고 말의 묘한 행이라 하며 뜻의 묘한 행이라 하느냐? 사리자야, 이른바 보살마하살은 산목숨 죽이는 것[殺生]을 멀리 여의고, 도둑질[不與取]을 멀리 여의고, 음욕의 삿된 행[欲邪行]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이것을 몸의 묘한 행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거짓말[妄語]을 멀리 여의고, 이간하는 말[離間語]을 멀리 여의고, 추악한 말[鹿惡語]을 멀리 여의고, 꾸미는 말[綺語]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이것을 말의 묘한 행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탐착(貪著)과 성냄[瞋恚]과 삿된 소견에 대하여 모두 지닌 것이 없나니, 이것을 뜻의 묘한 행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세 가지 묘한 행을 두루 갖추기 때문에 이것을 시라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떤 것이 몸의 묘한 행이고, 말의 묘한 행이며, 뜻의 묘한 행일까’라고 생각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만일 몸으로써 산목숨을 죽이는 일과 도둑질과 음욕의
삿된 행을 하는 등의 업을 짓지 않으면 이것이 몸의 묘한 행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보살마하살은 ‘만일 말로써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과 추악한 말과 꾸미는 말의 업을 짓지 않으면 이것이 말의 묘한 행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보살마하살은 ‘만일 뜻으로써 탐착과 성냄과 삿된 소견의 업을 짓지 않으면 이것이 뜻의 묘한 행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니, 이와 같은 바른 생각을 갖추는 까닭에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만일 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않는다면 이 업이 건립될 수 있는 것일까?’라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이치대로 관찰하는 것이니, 만일 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않는다면 이 업은 건립될 수 없느니라.
만일 청색․황색․백색․홍색과 또는 파지색(頗胝色)이라면 이 업은 또 눈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코․혀․몸․뜻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 업은 능히 내는 것[能生]도 아니요, 낼 것[所生]도 아니며, 이미 난 것도 아니어서 집수(執受)할 수도 없고, 도무지 이 업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분명히 알면 이 시라의 성품은 만들거나 지을 수가 없나니, 만일 만들거나 지을 수 없으면 건립할 수도 없고, 건립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그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관해(觀解)한 힘으로 말미암아 묘한 행과 시라를 보지 않고, 시라를 갖춘 이도 보지 않으며, 시라의 회향할 곳도 보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면 필경 망령되이 존재하는 몸에 대한 소견[身見]을 일으키지 않나니, 왜냐하면 사리자야,
몸에 대한 소견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서 ‘이것이 계율을 지니는 것이요, 이것이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면 저 수호함과 의칙(儀則)에 있어서 행(行)과 경계[境]가 모두 다 구족하여져서 바르게 깨달아 행하게 되나니, 바르게 알아 행하기 때문에 계율을 지니는 이[持戒者]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자신을 취하거나 집착하지도 않고, 남을 취하거나 집착하지도 않으며 행을 행하는 것이요, 시라를 허물지도 않고 시라를 취하지도 않으며 행하는 것이니, 만일 나를 취하거나 집착하면 곧 시라를 취하는 것이지만 나를 집착하지 않으면 시라를 취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시라 이것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면 곧 온갖 율의(律儀)를 훼범하지 않을 것이요, 율의를 훼범함이 없으면 곧 시라를 훼범하지 않는다 하고 또한 시라를 집착하거나 취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연으로 이 시라를 집착하거나 취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온갖 법은 남의 모양[他相]을 알기 때문이니, 만일 남의 모양을 연유한다면 나가 없을 것이니, 만일 나가 없다면 어느 것을 집착하고 취하겠느냐?”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몸과 말과 뜻이 청정하여
수행할 때에 온갖 청정함을 항상 닦으면
언제나 청정한 모든 금계(禁戒)에 머무르게 되나니
이것을 보살이 시라를 갖춘 것이라 하느니라.
성현이요 총명한 모든 보살은
10업도(業道)를 잘 보호하고 지니나니
몸과 말과 뜻으로 짓지 않는지라
이렇게 지혜 있는 이에게 시라를 말한다.
만일 조작함도 아니고 생기는 것도 아니라면
집착함도 형상도 드러남도 없나니
형상과 드러남이 없는 까닭에
일찍이 건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라는 만들거나 짓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도 아니며
코도 혀도 몸도 아니요
마음과 뜻으로 아는 것도 아니다.
만일 6근(根)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
곧 시설할 수 있는 이도 없나니
이와 같이 관찰하여 시라가 청정하면
일찍이 시라에 의지하고 집착하고 머무를 일이 없다.
계율을 지닌다고 교만심을 내지 않고
나라는 생각으로 시라를 수호하지 않으면
시라를 잘 수호하며 계라는 생각 없으리니
시라의 행과 깨달음의 행[覺行]이 두루 갖추어지리.
망령되이 지니는 신견(身見) 없애버리면
보는 것과 보는 이가 일찍이 없나니
보는 이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는지라
계율 지닌 이와 계율 범한 이를 보지 못하리.
수호함 없는 법의 이치에 잘 들어가면
위의가 구족하여 불가사의하며
묘하게 바로 알고 수호하게 되나니
이를 제외하고는 다시 계 갖춘 이[具戒者] 없다.
나라는 생각 없으면 시라도 없고
나에 의지할 것이 없으므로 계에 의지하나니
나는 구경(究竟)에 늘 두려움 없이
몸과 나와 시라에 집착하지 않는 이라 말하리라.
나 없음을 말하는 이면 계율 취하지 않고
나 없음을 말하는 이면 계율에 의지함 없으며
나 없음을 말하는 이면 계율을 바라지 않고
나 없음을 말하는 이면 계율에 마음이 없다.
시라를 훼손하지 않고 계율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나라고 헤아려서 계율 일으키지 않고
의지할 대상인 나와 계율이란 생각 없으면
매우 깊은 지혜의 행이요, 보리의 행이다.
이와 같은 시라는 두려울 것 없으므로
이 사람은 항상 시라 범하지 않나니
만일 모든 법을 집착하지 않게 되면
이러한 시라여야 성인께서 칭찬하리라.
나라는 소견 지닌 모든 범부는
나와 계율 갖추었음을 헤아리며 계율을 지니므로
그가 호계(護戒)의 과보를 받은 뒤에는
3악취(惡趣)에 항상 얽매이리라.
만일 나라는 소견 끊어 없애면
그에게는 나와 내 것[我所]이 없는지라
진실하게 계율 지닌 이요 소견 없는 이이므로
두려움과 악취에 떨어짐이 없다.
만일 이렇게 계의 행[戒行]을 알면
시라 범함을 보는 것 없고
오히려 나와 3유(有)도 보지 않거늘
하물며 계율 지님과 계율 범함을 보게 되랴.
“또 사리자야, 이와 같이 시라바라밀다를 행하는 보살마하살이 보살행의 청정한 계율을 행할 때에
열 가지 매우 중요한 마음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심오한 마음을 일으켜 모든 행을 믿고 받들며, 둘째 심오한 마음을 일으켜 더욱 힘써 정진하며, 셋째 열렬히 격려하면서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즐기며, 넷째 숭상하고 존중할 온갖 업을 널리 갖추며, 다섯째 심오한 생각으로 온갖 과보를 믿고 받들며,
여섯째 모든 성현께 공경하는 마음을 깊이 내며, 일곱째 존중할 모든 오파타야(鄔波柁耶)와 아차리야(阿遮利耶)를 청정하게 모시고 받들며, 여덟째 성현들께 공양할 뜻을 일으키며, 아홉째 모든 바른 법에 대하여 뜻을 격려하면서 구하고 청하며, 열째 보리를 구할 때에 신명(身命)을 돌보지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시라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열 가지 심오한 마음의 법이 있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심오한 마음에 편히 머물러서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이니, 어떤 것을 모든 착한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세 가지 묘한 행이니 몸의 묘한 행이요, 말의 묘한 행이며, 뜻의 묘한 행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세 가지 묘한 행에 편히 머무르면 대보살장(大菩薩藏)의 미묘한 법문을 힘써 구하려 하리니, 왜냐하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법문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착한 법을 일으키나니
이 법을 얻어 듣기 위하여
모든 성현께 공양하는 것이다.
법과 성인에 대하여
열렬히 격려하며 공경심을 일으키되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인자한 마음으로 질투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말을 할 적에
말마다 사랑스런 말[愛語]을 하나니
말하는 것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양이라
하는 말이 거칠거나 비루함이 없다.
뜻의 업은 언제나 선(善)에 있어서
일찍이 모든 악을 좋아함이 없으며
항상 법의 성품[法性]을 관찰하므로
공경하며 인자한 마음에 머무른다.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을 들으며
법에 대하여 공경하고 나면
속히 큰 보리를 깨치게 되리.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열 가지 가장 훌륭한 법에 머무르면 보살장 법문을 부지런히 구하는 까닭에 모든 성현과 모든 스승과 어른에 대하여 더욱 힘써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나아가 물을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은 열 가지 발심(發心)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관찰하기를 ‘이 병든 몸은 모든 요소[界]의 독사가 항상 서로가 어기고 해치는지라 모든 고뇌가 많고 여러 우환들이 많으며, 미친 증세와 악성의 종기․옴․염병이며, 풍병․열병․담병 등 여러 가지 병의 무더기이다’라고 하고,
또 ‘이 몸이란 마치 병(病)과 같고 상처와 같고 화살에 맞은 것과 같고 난폭한 물의 흐름과 같고 망나니와 같아서 요동하고 쉬지 않아서 언뜻 생겼다가 언뜻 없어진다’고 관찰하며, 또 ‘이 몸은 거짓으로 되어서 파리하고 허약하고 말라비틀어지고 속히 파괴되는 것이라 잠시 동안 머무르는 것이므로 좋아하기도 어려우며, 그 상태는 마치 무덤과 같다’고 관찰하느니라.
그때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 병든 몸으로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찍이 이러한 복전(福田)을 만난 일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야 만나게 되었고 또 이와 같은 몸을 잘 받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지혜의 목숨을 기르고 견고하지 않은 몸을 버리고 견고한 몸을 얻어야겠다’고 하고,
부지런히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저 어질고 거룩한 오파타야와 아차리야의 모든 존경스러운 스승들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첫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요소[界]의 난폭한 독사가
차츰차츰 서로 의지하고 달라붙어
어느 하나가 더하여 움직이고 일어나면
큰 우환이 이르게 된다.
이른바 눈과 귀와 코며
혀와 이와 뱃속의 장부에서 생기는
이러한 모든 병환과 괴로움은
모두 다 몸에 의지하여 생긴다.
악성의 종기와 미친 증세와
옴과 큰 역질 따위와
그 밖의 갖가지 모든 병들은
몸에 의지하여 생기게 된다.
이 몸은 마치 병환과 같고
종기와 화살에 맞은 것 같나니
이와 같은 독으로 상해된 몸인지라
속히 파괴되고 잠시 동안 머무름은
마치 저 무덤으로 나아감과 같아서
모두가 다 덧없는 모양이다.
너불거리면서 문드러질 몸이라
여러 가지 병으로 속히 나고 없어지나니
나는 부처님의 몸이 될 원인인
어질고 착한 업을 닦아야 하리.
저 썩고 파괴되고 문드러지며
쇠퇴하고 늙을 덧없는 몸을
바꾸어서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생각하기 어려운 법신(法身)을 이루리라.
이와 같이 노후하고 파괴되며
두루 항상 흐르는 더러운 몸으로써
장차는 이와 같은
흐름이 없고 더러움 없는 몸을 증득하리라.
설령 사람이 추위와 더위 두려워서
막고 가리며 굳게 지킨다 해도
마침내는 늙고 병들어 죽나니
모든 고통에 삶겨지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춥고 더운 몸에 대해
두루 견디고 능히 참으면서
장부의 업을 장엄하게 되면
속히 위없는 몸을 이루리라.
나는 마땅히 세상에서 존중받는 이에게
부지런히 힘써 공양하여서
견고하거나 진실하지 않은 몸을
저 견고하고 진실한 몸으로 바꾸리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첫 번째 마음을 일으킨 뒤에는 부지런히 힘써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에 대하여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더욱 공양에 힘쓸 것이며,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몸 이것은 견고하지 않은 성질이어서 단단하지 않으니, 임시로 덮어 가리고 씻고 두드리거나 주물러 준다 해도 마침내는
파괴되고 흩어지고 닳아 없어지는 법으로 돌아간다’고 해야 하느니라.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옹기장이가 찰흙을 이겨서 만든 기와 그릇이 크건 작건 간에 마침내는 파괴되고 마는 것처럼, 사리자야, 몸은 견고하지 않아서 마침내는 파괴되고 마는 것도 저 기와 그릇과 같으니라.
또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나뭇가지에 의지해 있는 꽃과 잎과 열매가 마침내는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사리자야 몸은 견고하지 않아서 반드시 떨어지는 법이요, 그 세력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도 마치 저 익은 열매 등과 같으니라.
또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풀 끝에 맺힌 서리와 이슬 방울이 햇빛이 비치면 반드시 더 머무르지는 못하는 것처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몸이 견고하지 않은 것도 마치 저 서리와 이슬방울 같아서 역시 오래도록 머무르지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와 여러 흐름 때문에 거품 덩어리가 일더라도 모두가 견고하지 않아서 그 성질이 허약하여 힘껏 손댈 수도 없는 것처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이 몸이 견고하지 않음도 마치 물거품과 같고, 본성이 허약한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사리자야, 마치 하늘에서 큰비가 올 적에 빗물 위에 거품이 어지럽게 떠다니되 천천히 생겼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처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몸이 견고하지 못한 것도 마치 물 위의 거품과 같아서 그 성품의 경박함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깊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여 이런 일을 안 뒤에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오랜 세월 동안에 이와 같은 견고하지 않은 몸을 받았고 일찍이 이러한 복전을 만난 일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이와 같은 몸을 잘 받았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지혜의 목숨[慧命]을 기르면서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겠다’고 하고, 부지런히 힘써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두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치 세상의 모든 옹기장이가
찰흙으로 이겨 만든 굽지 않은 그릇은
모두가 파괴되고 마는 것처럼
중생들의 목숨도 역시 그와 같다.
비유하면 나뭇가지에 의지해 있는
온갖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다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역시 그와 같다.
마치 풀 끝에 이슬이 맺혔다가
햇빛이 나와서 비추게 되면
잠시도 더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역시 그와 같다.
마치 강물이나 바다의 거품들은
그 성질이 본디 허약한 것처럼
이와 같이 견고하지 않은 몸이라
허약하고 덧없음도 역시 그와 같다.
비유하면 하늘에서 큰비가 올 때에
빗물에서 생겨 떠다니는 거품은
찰나에 속히 소멸되는 것처럼
견고하지 않은 몸도 역시 그렇다.
견고하지 않은데도 견고하다는 생각 내고
견고한 데서는 견고하지 않다 하면서
삿되게 분별하며 행하는 것이면
견고하고 진실함을 증득하지 못한다.
견고한 데서는 견고하다는 지혜 내고
견고하지 않은 데서는 견고하지 않음 알아
바르게 분별하며 행하는 것이면
견고하고 진실함을 능히 증득하리라.
견고하고 진실한 생각을 닦기 위해
작게는 물그릇까지도 보시하나니
그 때문에 견고하지 않은 이 몸을
견고하고 진실한 몸으로 바꾼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두 번째 마음을 일으킨 뒤에는 부지런히 힘쓰며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더욱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나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들에게 붙잡혀서 그 성품이 게을러져 정진을 닦지 않았으며, 하열하고 우둔하며 삿되고 악한 소견이 많았다.
이렇듯 어리석고 착하지 않은 마음을 망령되이 일으킨지라 보시도 없었고 사랑도 없었고 복도 짓지 않았으며, 좋은 일이 없었을 뿐더러 나쁜 일만 더욱 자라게 할 모든 업의
과보만 늘어났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탐욕에 미혹되고 어지럽혀져서 오랜 세월 동안 헤매며 갖가지 악한 업을 지었다. 이 업의 힘 때문에 더럽고 악한 제 몸의 과보를 받아 귀신 세계에 태어나서 궁핍하고 구차하게 살았고, 모든 뛰어나고 훌륭한 복전도 없었다.
또 나는 일찍이 아귀 세계에 태어나서 항상 숯불을 먹으면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기도 하였고, 또 여러 백천 년 동안 물이란 이름조차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몸에 닿기나 해보았겠는가?’라고 하며,
또 생각하기를 ‘그러나 나는 이제 이와 같은 가장 뛰어난 복전을 만나게 되었고, 또 좋은 몸의 과보를 얻어서 많은 살림을 이룩하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착한 업을 널리 닦으면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스승이신 오파타야와 아차리야를 받들어 섬기리라’고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세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선지식(善知識)을
항상 친근하고 공손히 받들면
곧 이런 성품이 이루어지나니
그러므로 자주 친근히 해야 한다.
악한 벗에게 붙들려 있으면서
어질고 착한 벗을 멀리 여의고
게으름을 피우며 비루한 정진으로
간탐과 질투며 아첨함이 많았다.
보시할 것 없다는 삿된 소견으로
모든 악견을 뽑아내려 하지 않았기에
나는 일찍이 아귀 세계에 나서
못되고 나쁜 몸을 받게 되었다.
나고 죽고 하는 오랜 세월 동안에
두려울 만한 어두움 속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에 두루 시달리며
갖은 고통을 많이 받았다.
여러 백천 년 오랜 동안에
일찍이 물이라는 이름조차 듣지 못했고
청정한 복전을 만나지도 못했나니
이런 재난 없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만나기 어려운 세간을 만났고
또 현명한 이름 받들게 되었으니
어려움 없이 두루 갖추게 되었다.
또 악한 벗을 여의게 되고
어질고 착한 벗을 만났으므로
맹세코 몸과 목숨 돌보지 않으리니
장차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다.
청정하고 착한 마음으로
존경스런 스승들을 공손히 모시며
또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리니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이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이 세 번째 마음을 일으킨 뒤에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이나 더 받들어 공경하고 더욱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에 붙들려서 게으름을 피우며 정진이 하열했기에 지혜가 없고 어리석었다.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앎으로 말미암아 어떤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으면서 그렇게도 슬피 울고 통곡할 적에 도리어 몸이며 손으로써 망령되이 때리며 갖가지로 괴롭혔다.
이런 인연으로 곧 이와 같이 한량없는 악한 소견을 일으켰던 것이니, 악한 업도 없고 악한 업의 과보도 없는 줄 여겼었다. 또 성을 내면서 마음을 덮어 가리웠기 때문에 갖가지 악한 업을 지은 것이요, 이 업보 때문에 더럽고 나쁜 몸을 얻어서 축생이 되어 핍박받고 구차하게 살았으며 온갖 뛰어나고 훌륭한 복전이 없었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그 세계에서 혹은 낙타가 되기도 하고, 소와 당나귀 등이 되어서 꼴을 먹고 게다가 매를 맞고 호통을 당하며 공포에 떨면서 지냈으며,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짐을 졌다’고 하며,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찍이 이와 같은 복전을 만나지 못했는데 나는 이제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이렇게 훌륭한 몸을 받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이 견고하지 못한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기 위하여 스승을 섬기며 공양하리라’라고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네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저 오랜 세월 동안에
성스러운 도에 오를 줄 모르고서
낙타와 소․당나귀가 되어
갖은 고통을 숱하게 받았다.
나 이제 사람 몸을 얻게 되었으니
어질고 착한 업을 닦아야겠으며
이로 말미암아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
총명하고 지혜로운 모양이다.
나는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 내어
모든 부처님 법 건립하고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며 뵈오리니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이다.
생각하기 어려운 과거 겁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였으며
가고 오는 곳이 이익이 없는데도
복전이 없이 목숨을 길렀다.
선지식은 멀리 여의고
항상 악한 벗만 가까이 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라 움직였으므로
자주자주 악한 세계에 떨어졌다.
나 일찍이 축생으로 있으면서
갇히고 몰리고 두들겨 맞았나니
이런 악한 업으로 말미암아
좋지 않은 고통의 과보를 받았다.
드디어 악한 세계에 떨어져 있을 때는
낙타와 소와 당나귀가 되었으며
짐이 무거운데다 채찍으로 맞았으니
착한 벗을 친히 하지 않은 까닭이다.
나는 이제 얻기 어려운
사람의 몸과 착한 벗을 만났고
게다가 좋은 곳에 나게 되었으며
또 어려움도 없게 되었음은
거북이 오랫동안 바다에 있다가
물에 떠있는 나무 구멍 만나 기뻐함과 같다.
몸과 말을 잘 막고 수호하며
정진하는 마음이 강하고 성하며
아첨하지 않고 착한 벗 섬기면
지혜의 목숨과 몸이 자라리라.
만일 어떤 존중하는 스승이
나의 지혜 마음 일으키면
훌륭하고 묘한 법을 널리 연설하는
보리의 도를 깨달으신 큰 스승이다.
복과 지혜 구족하신 분께
바르는 향과 가루 향이며
갖가지 의복과 꽃다발을 공양하고
나는 마땅히 공경하며 받들어야 한다.
현재 시방에 계신 부처님은
훌륭한 이치를 늘 열어 보이시고
그지없는 금빛의 해[日]를 비추시나니
마땅히 수행하며 공양해야 한다.
두루 모든 불국토에 노닐면서
조어사(調御師)께 널리 공양하며
보리의 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
대각(大覺)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네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써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더욱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옛날 오랜 세월 동안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에 붙들려 게으름을 피우며 정진하지 않았으므로 지혜가 없고 어리석었다. 나쁜 소견을 일으켜 그와 같이 믿고 알며, 그와 같은 욕락(欲樂)으로 말미암아 망령되이 생각하기를,
≺만일 온갖 유정인 온갖 중생을 혹은 몸과 살을 가져다 하나의 가마솥에 같이 삶거나 혹은 그 몸을 가져다 같이 잘게 저며서 회를 치는 이런 일을 해도 복이 아니라고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나쁜 소견을 일으키며 ≺이로 말미암아 악을 초래하지도 않고 이로 말미암아 악을 내지도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런 허망한 소견 때문에 ≺또 큰 바다의 저 언덕에 있는 모든 중생에게 온갖 것을 보시하여 두루 충족하게 하는 이런 일을 해도 죄가 아니라고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망령되이 다른 꾀를 내면서 ≺이로 인하여 복을 초래하지도 않고 이로 인하여 복을 내지도 않는다≻고 하였으며, 허망한 소견 때문에 ≺또 큰 바다의 저 언덕에 있는 모든 중생을 모두 다 베어 죽인다 해도 역시 이로 인하여 악을 초래하지도 않고 또 이로 인하여 악을 내지도 않는다≻고 하였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런 일을 한 뒤에 그것이 죄인가, 죄가 아닌가, 그것이 복인가, 복이 아닌가를 분명하게 몰랐으므로 악한 소견을 가까이 익혔고 어리석음에 가려져서 착하지 않은 여러 중한 악업을 많이 지었다.
이 업보로 말미암아 못나고
더러운 지옥의 몸을 받아 지옥 가운데서 혹은 철환을 삼키기도 하고, 혹은 톱으로 잘리기도 하였으며 갖가지 갖은 고통을 맛보았고 그 고통은 끊임없이 상속되어 그치지 않았었다. 나아가 저 여러 백천 년 동안을 지나면서도 오히려 즐거운 소리조차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몸으로 접촉하였겠는가?’라고 하느니라.
그때 보살은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찍이 이와 같은 복전을 만난 일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이와 같은 몸을 잘 얻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지혜의 목숨을 기르면서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고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스승을 받들어 섬기리라’고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다섯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이 악한 벗과 친하면서
나쁜 마음의 속임수를 당하고
여러 악한 소견에 의지한지라
한갓 악업만을 일으키고 지었다.
큰 바다의 이 언덕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음식을 보시하여 충만하게 한다 해도
복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큰 바다의 저 언덕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모두 다 죽인다 해도
악업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러한 모든 악한 소견을
자주 익히고 항상 친근한지라
극히 고통받는 지옥에 떨어져서
몸과 머리의 피를 짜냈다.
옛날에 세 가지 악한 세계에서
한갓 백천 개의 몸을 다하면서도
일찍이 모든 부처님과
세간의 길잡이를 뵙지 못했다.
세상의 착한 벗이라는 명칭을
그 소리조차도 듣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인간 세계의 복을 받았으니
어질고 착한 업을 닦아야 한다.
사람 몸 얻기는 매우 어렵고
오래 사는 수명을 얻기도 어려우며
바른 법 듣는 것도 만나기 어렵고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도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이미 사람 몸을 얻었고
이 위태로운 수명을 얻었으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도 만났고
여래의 바른 가르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는
몸과 말과 마음의 악업 짓지 말 것이요
나로 하여금 미래의 세상에서
좋지 않은 괴로움의 과보 받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청정한 마음으로
마땅히 청정한 업을 닦아야 하고
몸과 말과 뜻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의 어려운 행 행해야 한다.
나는 끝내 스승과 사람들의
허락된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또 공양을 일으켜야 하리니
부처님의 보리를 위해서이다.
나는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고
요술 같은 거짓된 마음 없이
곧은 길을 열고 닦아야 하리니
부처님의 보리도를 위해서이다.
두려움 없는 큰 보살은
이미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고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면서
지혜의 방편을 완전히 갖춘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다섯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이나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에 붙잡혀 게으름을 피우며 정진을 게을리 하였으므로 지혜가 없고 어리석었다.
이 악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믿고 알고서 이와 같은 욕락으로 망령되이 생각하여 영접하고 전송하거나, 몸을 굽히거나, 무릎 꿇고 예배하거나, 합장하거나, 문안하는 등 모든 착한 업보를 부정하였고, 교만[慢]에 가려져 악업을 많이 지었으며, 이 악업의 과보를 말미암아 사람의 세계[人趣]에 있으면서도 비루하고 더러운 형상을 받았고 모든 복전에 대해 일찍이 청정한 지혜의 목숨을 기르지도 못하였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기억하건대, 옛날에 고독하고 빈궁하고 하천한 몸을 받아 남에게 매인 노비 따위였고, 또 색욕(色欲)을 즐기는 유정 중생으로서 온갖
색욕의 모양에 탐착하여 평등하지 않은 나쁜 행을 하는 무리에 있으면서 갖가지 모든 나쁘고 삿된 소견을 일으켜 시라를 헐뜯고 바른 소견을 훼손하였다.
그리하여 세 가지 착하지 않은 근기[不善根]에 머무르고, 네 가지 행하지 않아야 할 곳[不應行處]에 머무르며, 다섯 가지 덮개[蓋]에 가려지고, 여섯 가지 존중할 데에 공경하지 않으며, 일곱 가지 법(法)에 능히 따라 옮겨가지 못하고, 여덟 가지 삿된 성품[邪性] 가운데서는 삿되게 행을 결정하며, 아홉 가지 괴로운 일[惱害事]에서는 시달림을 받고, 열 가지 악업의 길[惡業道]에 항상 다니며 악한 일을 하곤 했었다.
지옥의 원인이 되는 길에서는 늘 얼굴을 마주 하면서도 천상의 원인이 되는 길에서는 저버리고 얼굴을 돌렸으며, 모든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들에게 붙잡혀 있었으며, 악마와 원수를 따르고 자유롭게 행하며 모든 착한 법을 멀리하여 온갖 착하지 않은 법이 나타나게 하였다. 또 이러한 일을 위하여 멋대로 매를 때리고 호통을 치며 두려움을 주면서 차마 하지 못할 일도 억지로 부리고 남을 못살게 굴었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아직 이와 같은 복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악을 받았지만 나는 이제 만나게 되었고 또 이와 같은 몸을 잘 받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하며, 또 마땅히 스스로 지혜의 목숨을 기르고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으면서 스승과 어른을 받들고 섬겨야 한다’고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여섯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쁜 벗을 친근하여 교만을 더하면서
한량없는 여러 겁을 지난지라
인간 세계에 태어나도 노비의 몸이었고
모든 존재[有]에서 오랜 세월 동안 헤매었다.
나는 이제 이미 얻기 어려운
제일 용맹한 사람 몸을 얻었고
또 묘한 국토에 태어났으며
부처님을 만나 청정하여 어려울 것이 없다.
어질고 착한 훌륭한 벗이라면
보살행의 도(道)를 펼 수 있는 이요
마음 보배가 자란 보살들인데
여러 구지(拘胝) 겁만에 이제야 만났다.
덧없고 허망하고 경박한 이 몸은
마치 물거품이요 거품더미 같고
또 요술과 장난으로 된 물건 같으며
꿈을 꿀 때의 잠꼬대 등과 같다.
목숨은 번개같아 오래 있지 못하여
생각마다 사라져 없어지며
이 목숨은 찰나에 가고 말 것이니
그러므로 견고하지 못한 목숨 견고하게 바꿔야 하리.
나는 기억하건대, 옛날의 오랜 세월 동안에
교만산(憍慢山)의 깊고 험한 곳에 있었고
일찍이 과거에 속아 살면서
부사의(不思議)한 백 겁의 바다를 지났었다.
나는 이제 몸의 탐애를 다 버리고
수명을 그리는 마음도 없애고
속히 교만을 버리고 여의어
존중하는 스승을 깊이 받들어야 한다.
세상에서 다 같이 존경하는 어른은
이른바 부모와 형 등이니
속히 교만을 버리고 여의어
가장 극진하게 숭앙하고 공경해야 한다.
묘한 보리에 근접한 보살들은
나와 함께 보리의 행 받드는 것이니
견고하게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 내며
즐거이 공양하고 섬겨야 한다.
옛날에는 교만을 중히 여겨 더욱 자라게만 했고
조어사의 교만 끊는 법을 몰랐지만
마땅히 위없는 지혜의 금강(金剛)으로
교만의 산 영원히 꺾어야 한다.
보리의 묘한 행이 원만하게 이룩되면
가장 훌륭한 보리좌(菩提座)에 머물러서
다투는 마군(魔軍)들을 꺾어 조복하고
4류(流)의 중생들을 제도해야 한다.
시방의 모든 병을 앓는 사람들
똥 속에 누운 것을 모두 싫어하리니
그에 대하여 자비의 뜻 일으켜
구제하고 나아갈 데가 되어 준다.
큰 보시의 바라밀에 편히 머무르고
부처님의 위덕 막아 보호되며
구족하게 인욕의 행 닦아 이루고
바른 노력[正勤] 일으켜 앞에 나타나게 한다.
모든 정려바라밀을 얻어
이때에 조복되는 마음에 머무르고
큰 지혜의 좋은 방편에 머물러서
온갖 높으신 복전을 위해야 한다.
더욱 왕성한 복의 힘은 이러하여
불가사의한 좋은 지혜이므로
얻게 되면 첫째가는 자재한 지혜이니
때로는 물그릇까지도 바쳐야 한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여섯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에게 갑절이나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에 착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에게 붙잡혀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열하게 정진하였으므로 지혜가 없고 어리석었다.
이 악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믿고 알아 이와 같은 욕락으로 망령되이 생각하기를 ≺흑업(黑業)은 없고 흑업의 과보[黑業報]도 없으며, 백업(白業)은 없고 백업의 과보도 없으며, 흑백업(黑白業)은 없고 흑백업의 과보도 없으며, 흑백이 아닌 업[非黑白業]도 없고 흑백이 아닌 업의 과보도 없다≻고 하였다’고 하느니라.
또 ‘사문․바라문에게 ≺어느 것이 착한 것이고, 어느 것이 착하지 않은 것인가? 어느 것이 죄가 있고, 어느 것이 죄가 없는 것인가? 어느 것을 닦아야 하고, 어느 것을 닦지 않아야 하는가? 어느 것을 지어야 하고, 어느 것을 짓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청해 묻지 않았고,
또 ≺어떠한 행을 닦으면 오랜 세월 동안에 이치도 없고 이익도 없이 모든 고뇌만 받게 되는가?≻라는 것과, 또는 ≺어떠한 행을 지으면 오랜 세월 동안에 이치도 있고 이익도 있으며 모든 안락을 받게 되는가?≻라고 청해 묻지도 않았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 남을 업신여김[慢]과
저 잘난 체하는 것[勝慢]에 가려진 까닭에 착하지 않은 악업을 많이 지었다. 이 업보로 사람의 몸을 얻게 되었으나 모든 감관이 결여되었고 뛰어난 복전에서 아직 지혜의 목숨을 기르지 못했으며,
비록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 해도 엎어진 그릇[覆器]과 같고 철없는 어린아이였고, 어리석고 귀머거리며 소경이어서 좋고 나쁜 이치에 대하여 분명히 알거나 널리 펼 수 있는 힘도 없고 재능도 없었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런 뛰어난 복전을 만나지 못했었기에 모든 악을 지었지만, 나는 이제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모든 감관을 갖춘 몸을 잘 얻게 되었으니, 나는 마땅히 모든 복전에 의지하여 더욱 지혜의 목숨을 자라게 해야겠고, 또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모든 힘과 재능을 구하며 좋은 말과 나쁜 말의 이치를 분명히 통달해야겠다.
또 마땅히 설법하는 법사에게 ≺어느 것이 착한 것이고, 어느 것이 착하지 않은 것인가? 어느 것은 죄가 있고, 어느 것은 죄가 없는가? 어느 것은 닦아야 하고, 어느 것은 닦지 않아야 하는가? 어느 것은 지어야 하고, 어느 것은 짓지 않아야 하는가? 어떠한 행을 지어서 저 성문(聲聞)과 독각(獨覺)의 법을 눈앞에 나타나게 하고, 어떠한 행을 지어서 모든 부처님의 법과 보살의 법을 눈앞에 나타나게 할 것인가?≻하고 청해 물어야겠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부지런히 힘쓰면서 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시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면서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며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물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일곱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옛날 과거 여러 백 겁 동안에
나에게 이익되는 착한 벗을 멀리하고
착함과 착하지 않음과 죄 있음과 죄 없는
모든 업과(業果)를 청해 묻지 않았다.
증상만(增上慢)의 자재한 힘으로 말미암아
지옥과 아귀의 세계에 떨어졌고
나쁜 생각 익히는 도반들 때문에
여러 백 겁 동안 악도(惡道)에 떨어졌다.
혹은 인간 세계에서 익힌지라 여러 천 겁 동안에
윤회하며 받은 몸은 감관이 불구(不具)였고
어느 것이 착하고 착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죄가 있고 죄가 없는가를 그것조차 모르면서 모든 업과 지었다.
지금 나는 용맹하고 건강한 사람 몸 얻어
모든 감관 구족하고 청정하며
모든 어려움 멀리하고 어려움 없음 얻었으니
마치 거북이 목을 늘여 물 위의 나무 구멍을 만난 것 같다.
세간에 광명을 비추는 이 만났고
욕심 여읜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 듣게 되었으니
이때 나는 세간의 높은 이에게
착함과 착하지 않음 따위의
모든 업과를 청해 물으리라.
어떻게 간탐하면 모든 세계[趣]에 떨어지고
어떻게 간탐 없는 시주(施主)가 되며
어떻게 아첨하여 시라를 더럽히고
어떻게 계율로 재산 온전하게 지킵니까?
어떻게 성을 내어 남을 어지럽히고
어떤 것이 성냄 없는 인욕의 힘이며
어떻게 게으르면 마음이 산란하고
어떻게 힘쓰면 정려(靜慮)를 즐깁니까?
어떤 나쁜 지혜로 벙어리 되고 어리석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혜로우면 진실을 즐기며
어떻게 오롯하게 보리를 수행하여
구족하게 성현의 행을 찾고 구합니까?
어떻게 자비를 세간에 두루 펴고
어떻게 모든 악취(惡趣) 구제하며
어떻게 법을 즐겨 싫증내는 맘 없이
보리의 모든 행의 창고를 구합니까?
어떻게 시방 세계에 현재 계시는
모든 부처님 세존께 나아가게 되고
어떻게 공경하면 공업(功業)을 닦게 되며
어떻게 보현행(普賢行)을 청해 묻습니까?
나는 이제 바로 법사와
존중할 이에게 청하며 묻나니
어떻게 스승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어떻게 스승의 뜻을 기쁘게 합니까?
불자(佛子)는 이미 이러한 마음 내어
광대하고 미묘한 복의 힘을 쌓고
훌륭하고 자재한 지혜의 힘 쌓나니
기뻐하여 물그릇까지도 받들어 보시한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일곱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에 착한 벗을 멀리하고 나쁜 벗에 붙잡혀 게으름을 피우며 하열하게 정진하였으므로 어리석고 둔하여 앎이 없음은 마치 벙어리 염소와 같아서 온갖 바른 이치와 상응(相應)하는 문구와, 바른 법과 상응하는 문구와, 고요함과 상응하는 문구와, 멸하여 그침[滅止]과 상응하는 문구와, 바른 깨달음[正覺]과 상응하는 문구와, 모든 사문과 바라문의 열반 등과 상응하는 문구를 버리고 여의었다.
이와 같은 모든 문구를 버리고 여읜 뒤에는 도리어 다시 온갖 이치 아닌 것과 상응하는 문구와, 법이 아닌 것과 상응하는 문구며, 나아가 열반이 아닌 것과 상응하는 문구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궁구하여 통달하였다.
이러했기 때문에 망령되이 소견을 일으켜서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장부의 과위도 없고, 세력도 없고, 용기도 없고, 행도 없고 위엄도 없다≻고 하였고, 혹은 한꺼번에 생각하면서 ≺행의 위엄도 없다≻고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인(因)도 없고 연(緣)이 없어도 유정으로 하여금 물듦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인연(因緣)으로 말미암아 유정이 물들게 되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고, 또 생각하기를 ≺인도 없고 연이 없어도 유정으로 하여금 청정함을 얻게 할 수 있으므로 인연으로 말미암아 유정이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이와 같은 평등하지 않은 원인에 의지하여 원인이 없다는 소견 때문에 갖가지 악한 업을 많이 지었다. 이 업보 때문에 나는 옛날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을 때에도 모든 몸이 온전하지 못하였고, 모든 복전에서 지혜의 목숨을 기르지 못하였다.
비록 인간 세계에 있었기는 하나 엎어진 그릇과 같았고, 철없는 어린아이였고 어리석고 귀머거리고 소경이어서 바른 이치와 상응하는 문구와 나아가 열반과 상응하는 문구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궁구하여 통달할 힘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이런 뛰어난 복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허망한 소견을 내었지만 나는 이제 만났으니, 나아가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으면서 마땅히 바른 이치와 상응하는 문구와 바른 법과 상응하는 문구와 고요함과 상응하는 문구와 나아가 열반과 상응하는 문구를 대할 힘과 재능을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은 등의 바른 법의 문구는 모두가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에 속한 것이므로 나는 이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궁구하여 통달하기 위하여 반드시 최상의 바른 노력을 일으켜 목숨이 다하도록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겠다.
내가 이제 시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함은 이 보살장의 법을 능히 받고 능히 지니고 능히 읽고 능히 외우면서 수행하고 공양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하며 또 복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을 잘 짓고 쌓아서 이 두 가지 힘으로 말미암아 항상 보살장의 법을 친근할 것이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여덟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법의 진실한 이치와 상응하려면
도지(道支)의 길을 닦아 익혀 따라야 하고
적멸(寂滅)을 증득하려 하면
열반의 길 능히 흘러 통해야 한다.
나는 옛날 이와 같은 법을 멀리하고
도리어 모든 악에 물들고 익혀
법도 아니고 이치도 아니며 고요함도 아니었고
나아가 열반과도 상응하지 않았다.
정진도 없고 세력도 없고
장부의 과위도 없고 위세도 없다 하고
모든 행도 없고 용맹도 없다 하며
모두가 다 공하여 얻을 것이 없다고 부정하였다.
모든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으며
그리고 세간의 부모도 없으며
흑법과 백법도 없으며
과(果)와 보(報)가 모두 다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악한 소견을
끝없는 때로부터 항상 익혀 행한지라
이로 말미암아 지옥 세계에 떨어져서
갖은 고통 받으면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와 같이 헤매면서 축생 세계 받았고
염마(焰魔)의 악한 세계에도 떨어졌으며
때로는 인간에 태어나게 되었어도
어리석고 지혜 없는 벙어리였다.
철없는 아이였고 귀머거리며 소경이어서
아둔하고 미련하고 앎이 없었으며
이로부터 다시 지옥에 떨어져서
심한 고통 받은 뒤에 더 어리석어졌다.
나는 한량없는 오랜 겁으로부터
이런 청정한 몸 얻은 일 없었는데
이미 만나 모든 감관 갖추었으니
이때에 속히 더 정진해야 한다.
모든 법의 진실한 이치와 상응하면
적정(寂靜)함을 돕는 벗이 되어서
보리도(菩提道)와 보리에 나아가게 되나니
나는 때맞추어 이 법 구해야 한다.
모든 대보살장은 비밀하고 깊어서
진실한 이치와 상응하나니
저 백천 구지 겁을 지나는 동안에
만일 얻어 듣게 되면 희유(希有)한 일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불법도
한량없고 수없고 불가사의하나니
내가 힘써 받아 이미 지님은
부처님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다.
또 바른 노력으로 공경심을 일으켜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며 공양해야 하나니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위없는 법을 들어야 한다.
두려울 것 없는 대보살들은
이러한 용맹스런 마음을 일으키며
지혜의 방편을 잘 성취하나니
나아가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한다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여덟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일체 중생은 의(義) 없는 행에 붙잡혀 몸과 목숨을 돌보며, 의 없는 행에 집착하면서 뜻을 격려하며 오로지 의 있는 이익[義利]을 닦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의 없는 행에 집착한다 하는가?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면서 각분(覺分)의 법에는 희망하는 뜻이 없고 나[我]와 내 것[我所]을 길잡이로 삼아 항상 그 몸을 방호하고 덮어 가리며 목욕하고 다스리고 장식하고 보배로이 수호하는 것이니, 이러면 곧 의 없는 행에 집착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의 없는 행에 집착함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뜻이 없고 나와 내 것을 길잡이로 삼아 아내와 첩과 아들딸과 형제와 벗이며 권속․친척들을 방호하고 덮어 가려서 온갖 모든 수용하는 기구에 이르기까지 보배로이 여기며 집착하는 것이니, 이러면 곧 의 없는 행에 집착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의 없는 행에 집착함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뜻이 없고 나와 내 것을 길잡이로 삼아 노비와 어린 하인들을 거느리고 몰아쳐 부리고 몹시 속박하면서 지키나니, 이러면 곧 의 없는 행에 집착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가?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菩提心)을 길잡이로 삼아 오로지 훌륭하고 착한 몸의 업[身業]과 뜻의 업[意業]과 말의 업[語業]을 닦는 것이니 이러면 곧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 것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오로지 다나(柁那)바라밀다와 나아가 반야(般若)바라밀다까지를 닦아 이끌어 내나니, 이러면 곧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 것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서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오로지 보시(布施)․애어(愛語)․이익(利益)․동사(同事)를 수행하여 온갖 중생들을 섭수하여 교화하나니, 이러면 곧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 것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오로지 염처(念處)와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분(覺分) 등 이러한 도의 갈래를 닦나니, 이러면 곧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 것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부모와 모든 스승과 어른들에 대하여 오로지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몸을 굽히고 합장하고 경하하면서 문안을 드리고 영접하며 전송하고 공급하고 섬기면서 아울러 온화하고 유순한 업을 닦나니, 이러면 곧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 것이 있나니, 이를테면 몸과 목숨은 돌보지 않으면서 각분의 법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고, 묘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3보(寶)의 처소에서 법의 가르침을 따라 오로지 닦으며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은 오로지 의 없는 일에 집착하기 때문에 의 없는 행에 붙잡혀서 몸과 목숨을 돌아보고 방일하며 게으르지만 나는 이제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기 때문에 의 있는 이익에 수호를 받고 있다. 나는 마땅히 한층 더 정진하여 몸으로 모든 설법하는 법사에게 공양하고 섬기면서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하고 마땅히 복과 지혜의 두 가지 힘의 양식을 닦아야 하며 복과 지혜의 힘의 양식을 닦기 때문에 위없는 미묘한 보리를 친근하게 되리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며 이와 같은 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아홉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항상 몸과 목숨을 돌아보며
보리 구하는 것 원하지 않으면서
뒤섞여 물든[雜染] 3업(業)을 일으킨다.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몸과
처자와 권속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의(義) 없는 일을 보배로이 여기나니
이것을 어리석은 범부라 한다.
노비와 어린 종을 억지로 부리고
네 발 달린 짐승들을 많이 기르면서
의 없는 일에 실로 집착하나니
이것을 지혜가 없는 이라 한다.
많은 재물과 곡식을 쌓아 두고
보시하지도 않고 먹고 쓰지도 않으면서
의 없는 일을 실로 집착하나니
창고만을 지키는 어리석은 이라 한다.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은
실로 의 없는 일에만 집착하지만
묘한 지혜를 갖춘 보살은
의 있는 이익들을 힘써 구한다.
몸과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기뻐하며 보리를 돕고
갖가지 착한 업을 일으키나니
이를 오로지 의 있는 이익 닦는다 한다.
방편으로써 보시와 계율과
인욕과 바른 노력과 정려며
묘한 지혜를 잘 닦아 익히나니
이를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공양하고
모든 스승과 어른에게 공급하고 모시며
3보를 깊이 공경하고 받드나니
이를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한다.
온갖 법을 모두 포섭하고 있는
모든 보살의 묘한 법장(法藏)을
외우고 지니고 열어 드날리나니
이를 오로지 의 있는 이익을 닦는다 한다.
이렇게 오로지 닦는 의로운 이익은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는 바이니
정진하며 잘 상응하면
그가 바로 훌륭한 두려움 없는 제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킨 뒤에
청정하게 믿는 마음으로써
존중하는 법사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물그릇에 이르기까지 받들어 보시한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아홉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써서 대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세간의 중생들은 삿된 편벽(偏僻)이 자재하여 도리어 스승의 가르침에 집착하므로 얻게 되는 것이 없다. 어떤 것을 얻지 못하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재산이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재산인가? 이른바 믿음[信]․계(戒)․들음[聞]․제 부끄러움[慚]․남 부끄러움[愧]․평등함[捨]․지혜[慧]이다. 이와 같은 등의 법을 바로 성스러운 재산이라 하지만, 저 중생들은 이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극히 빈궁하다고 한다’라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묘하고 좋고 자재함[妙善自在]을 닦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공경히 받아야겠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묘하고 자재함으로 말미암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공경히 받아 증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증득하게 되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재산이다.
어떤 것을 보살의 성스러운 재산이라 하는가? 보살장 법문의 차별이다. 보살의 묘하고 좋고 자재함을 분명히 아는 것이 곧 설법하는 법사의 묘하고 좋고 자재함이니, 보살장 법문의 차별에 대하여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펴 드날리고 연설하여 건립하고 열어 분별하며 드러내 보이면서 유포하는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보살장에 편히 머무르고 나면 성스러운 법의 재산을 얻게 되어서 영원히 빈궁함을 끊고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며 이 마음을 일으킨 뒤에는 묘하고 좋고 자재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공손히 받아서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번째로 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의 하열한 모든 중생은
아첨과 미혹으로 간사함이 많고
뒤바뀌고 편벽되게 이치답지 않은 고집으로
오직 악을 멋대로 행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다.
이를 깊이 안 뒤에야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분별하고 널리 펼 수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선인(仙人)의 성스러운 재산을 얻나니
신(信)․계(戒)․사(捨)․문(聞)․참(慙)․괴(愧)․혜(慧)니라.
이와 같은 7재(財)의 다함 없는 창고를
그릇 아닌 이임을 알면 열어 보이지 말 것이나
세간에는 착한 중생으로서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법의 그릇 될 만한 이가 많다.
아첨 없는 좋은 말로 와서 청해 묻고
묘하고 좋고 자재하며 얌전하고 우아하며
항상 용맹스런 정진을 일으켜
바른 법 공경하며 늘 듣기를 좋아한다.
부처님들의 묘한 보리 증득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몸과 목숨 돌보지 않는 이
그가 바른 법을 감당할 그릇임을 알지니
다시 깊고 묘한 이치 받아 지닐 수 있다.
길잡이께서 큰 자비를 일으키어
섞임 없는 참된 법계(法界) 해설해 주나니
모든 대보살의 미묘한 법장도
그것에 의해 뛰어난 보리를 건립하도다.
또 그 가운데서 널리
부처님의 견고하고 성스러운 재보를 열어 보이나
온갖 모든 법은 공한 모양이라
모양이란 모양도 없고 나라는 모양도 없으며
수명도 없고 변이(變異)함도 없으며
모든 희론(戱論)도 없고 받을 법장도 없다.
온갖 모든 법의 제 성품[自性]은
인연 따라 나지 않고 모양도 없으며
처음에 생겨남도 없고 나중에 멸함도 없는
모양 없는 진여(眞如)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만일 자재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이면
스승의 가르침에 뒤바뀐 집착 없이
저절로 가장 뛰어나게 본래 경계의
배울 바 해탈의 문 열어 보이게 된다.
청정한 믿음․시라․참(慚)․괴(愧)며
바른 들음[正聞]․평등한 보시[捨施]․지혜[般羅若]의
이 다함 없는 7재(財)의 법장을
그들을 위해 분별하며 널리 드러냈다.
불자(佛子)가 유화하며 묘하고 자재하면
착한 벗의 가르침을 따르나니
내가 그 말하는 법사를 받들어 섬김은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다.
보살은 마침 이 마음을 일으킨 뒤에
목마르고 굶주린 이를 가엾이 여기면서
깨끗한 기와 그릇 가지고 와서
맑은 물을 가득히 담아 수시로 보시한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은 열 번째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대보살장을 구하기 위하여 설법하는 법사를 갑절 더 받들어 섬기고 한층 더 공양에 힘쓰되 물 담는 그릇까지도 보시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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