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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4권
대법거다라니경 제14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31. 입해신변품(入海神變品)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사자분신(師子奮迅)의 큰 삼매를 버리시고 나서 큰 자비와 일체지(一切智)로써 두루 시방(十方)과 대중을 관하셨느니라.
당시 그 대중 가운데는 이름이 정숙(井宿)이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본래 그는 마니보(摩尼寶)를 만드는 집의 아들이었느니라.
그때 저 세존은 곧 그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정숙아, 너는 이제 여래ㆍ응공ㆍ정변각과 함께 저 큰 바다[大海]에 들어가겠느냐?’
그 때에 정숙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저 바다 가운데서 불사(佛事)를 행하시려 하나이까? 어떠한 업(業)을 짓기에 그러한 명(命)을 하시옵니까?’
방광여래가 정숙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큰 바다 동쪽 가에 초열(燋熱)이라는 물이 흘러나오는 수구(水口)가 있는데, 그 초열 아래에는 아수라(阿修羅)의 궁전이 있고 그곳에 지금 열네 보살이 있느니라.
나는 그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 아수라의 몸을 받지 않게 하려 함에서이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아수라의 업을 짓지 않게 하려 함에서요, 또한 그들로 하여금 갖가지 지옥의 업과 행을 짓시 않게 하려 함에서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시자 정숙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다 건너 어디에 머무르나이까?’
방광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그 초열이란 곳에는 선비(善臂)라는 아수라왕이 있으며 열네 보살은 그 왕의 아들들이니라.’
정숙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다시 어떠한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들이 그 안에서 났나이까?’
부처님은 정숙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이제 번거롭게 거듭 이런 일을 묻지 말라. 우리들은 오직 그곳으로 빨리 나아가야 할 뿐이니라.’
그 때에 방광세존은 이와 같은 말씀하시고는 곧 정숙보살마하살과 함께 변화로 된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허공을 노닐면서 나아가셨으며, 억수의 모든 보살들도 역시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세존을 뒤따라갔느니라.
다시 구십억의 저 아라한들도 역시 저마다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세존을 뒤따라갔고, 또 온갖 인간세계 안의 대중과 재화광왕(祭火光王)의 장수와 모든 병사들 이만 팔천이 대장을 우두머리로 삼아 팔만의 잘 길들인 향상(香象)을 타고 세존을 뒤따라 허공으로 올라 나아갔느니라.
그 왕은 자재(自在)하고 큰 위덕이 있었는지라 모든 신하들 이만 팔천과 함께 모두가 흰 코끼리[白象]를 타고 뒤따라갔으며, 그 밖의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안의 온갖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 등으로서 먼저 방광 부처님ㆍ세존의 처소에서 법을 듣던 이들도 저마다 역시 신통의 힘으로 부처님을 따라갔었느니라.
그 때에 방광여래는 먼저 큰 바다에 이르러서 식사를 마치시고는 바다의 남쪽 언덕[南岸]을 건너 동쪽으로 점차 가서 초열이란 곳에 이르자 드디어 멈추셨느니라.
아난아, 그때에 저 세존은 바닷가에 머무르신 뒤에 곧 눈썹 사이로부터 마치 한 개의 터럭을 백천억으로 쪼개 나눈 듯한 하나의 미세한 광명을 놓으셨으니, 그 광명이 곧장 아수라의 궁전에 들어가 두루 아수라의 궁전을 비추자 당시 선비아수라왕은 이 광명을 접하고는 엉겁결에 놀라 일어나면서 어쩔 줄을 몰랐으며 온갖 아수라들도 모두가 크게 두려워하면서 빨리 선비왕의 처소로 달려 나가서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지금의 이 아수라 궁전을 자세히 보십시오. 갑가기 이렇게 크고 치성한 광명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지금이 겁재(劫災)라 심상치 않은 불이 위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문에 이런 훨훨 타는 맹렬한 불길이 지극히 왕성한 광명으로 번쩍이며 보인 것입니다.
대왕이여,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슨 연유로 오늘 아수라의 궁전에 갑자기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그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수라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어진 이들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지금 해안(海岸)에 계시면서 아수라 궁전에 내림(來臨)하려 하신다.
어진 이들아, 알아야 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방광여래께서는 눈썹 사이의 흰 털이 감추어진 곳으로부터 한 개의 터럭을 백천억으로 쪼개 나눈 듯한 하나의 광명을 놓으셨는데, 바로 그 광명이 이 궁전에 나타났을 뿐이다.
어진 이들아, 여래의 광명은 심히 만나기 어려워서 얻거나 볼 수 없는데,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여기에 오셔서 이르신 것이다.’
저 모든 아수라들은 큰 바다 아래에 머물면서 경계 주위에는 모두 물길[水道]을 설치하고 낱낱의 제방(隄防)도 마치 수미산과 같았으니, 당시 저 세존은 생각하시기를 ‘이 아수라들은 오직 놀라고 두려워하고만 있을 뿐이구나’ 하시면서 험(險)한 것을 설치하여 자신들을 수호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곧 화염(火焰)이라는 한 금강신(金剛神)을 부르셔서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대신(大神)이니 변화할 수 있느냐?’
금강신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변화할 수 있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물으셨다.
‘네가 변화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금강신이 말하였다.
‘저는 물길 앞에서 신력(神力)을 하나하나 나타내어 두려운 대력(大力)을 지닌 두 명의 건장한 거인을 그 물길 앞에 머물게 함으로서 저 아수라로 하여금 갑자기 그와 같은 뛰어나고 건장한 거인을 보게 되면 두려움이 한층 더하여 저절로 항복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금강아, 네가 반드시 할 수 있다면 속히 그런 변화를 내도록 하라.’
그때에 금강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곧 신통의 힘으로 물길 앞에다 저 형상이 높고 크기가 다라수(多羅樹)만큼인 변화된 두 거인을 놓아두었고, 그 변화로 된 거인은 손으로 이 모든 물길을 쳐서 모두가 빠져 들어가 곧장 수륜(水輪)예 이르게 하였느니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면서 저마다 서로 말하였느니라.
‘희유하고도 희유하구나. 우리의 이 궁성(宮城)에 깊고 비밀한 재난[深密難]이 닥쳤도다. 게다가 모든 큰 나찰(羅刹)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니, 이 무슨 두려운 일이기에 이렇게 현전할까?
어진 이들이여, 함께 보았으니 어떻게 달아나 자취를 감추겠소?’
또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이제 함께 저 해안으로 가야 되겠다’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수라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곧 그의 열네 명의 아들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은 이 아수라 궁전을 살펴보아라. 이와 같은 갖가지 괴이한 일들이 다투어 일어나고 있다. 동자(童子)들아, 우리들은 이제 어떠한 일을 해야 하겠느냐?’
그때에 동자들이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모들 아수라들은 이미 전단 숲[栴檀林] 속에 있는데, 무슨 두려워할 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선비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지금 방광여래께서 하실 일이 있어서 이 해안으로 오셨다. 그 위덕 때문에 아수라(阿修羅)와 다나바(陀那婆) 등으로 하여금 몹시 두려움이 생기게 하였다.’
그 모든 동자들이 다시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이 아수라 궁전에 오신 연유를 자세히 아십니까?’
왕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어느 곳에서 이런 심상(心想)이 있었겠느냐? 저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도 처음부터 말씀이 없으셨는데 내가 또한 어떠한 일로 미리 알 수 있겠느냐?’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예로부터 혹시 세존께서 아수라 궁전에 오신 적이 있다는 것을 보셨거나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내가 나서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다. 모든 아수라들은 삼보(三寶)를 믿지 않거늘 어찌 부처님을 뵐 수 있었겠느냐?
동자들아, 나는 지금까지 여래께서 인연이 있으셔서 아수라의 궁전에 이르신 일을 보지 못하였다. 오직 저 모든 하늘처럼 아수라가 크게 싸울 때만이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비로소 출현하셨을 뿐이다. 그 때 모든 하늘들이 이겼고 아수라들이 진 것을 보자 자신들의 뜻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달아나면서 방향과 처소를 잃었고 해로움을 피하여 자취를 감추면서 연뿌리로 도망쳐 들어갔었다.
나는 오늘 이런 생각[想]으로 부처님의 위력 있는 신령함을 말하기는 하나, 모든 여래는 끝내 한 중생에게라도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내시지 않으며 허물을 구하지도 않고 오직 가엾이 여김만이 있으실 뿐이니, 아수라들의 마음이 칼과 같은 것을 보시면서도 자비로 두루 덮으시면서 이런 신통을 나타내어서 모든 아수라로 하여금 나쁜 생각을 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얻게 하실 뿐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억수의 모든 보살들과 구십억의 모든 큰 아라한과 제화왕이 거느린 육십만의 장병들과 대중들, 나아가 온갖 하늘ㆍ응ㆍ야차ㆍ건달바 등 이와 같은 대중들까지도 모두가 변화로 하나의 금강신이 되어서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뒤를 따르며 수호하게 하였고, 또한 모두가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있게 하였으며, 이와 같이 변화시킨 뒤에 초열의 입구에 나아가 그들이 머무르는 곳에 이르렀느니라.
다시 모두를 변화로 비인(非人)을 만들어 에워싸서 아수라로 하여금 더욱 두렵게 하였기 때문에 그때 선비왕은 궁전에서 거닐고 있다가 저 세존께서 한량없는 억백천 나유타 대중인 이른바 보살ㆍ성문ㆍ제화왕의 대중 내지 한량없는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 등 팔왕(八王)의 대중들에게 에워싸여 계신 것을 보았으니, 이와 같이 보고는 동자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동자들아, 너희는 이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지금 이와 같은 큰 위신(威神) 때문에 모든 아수라들로 하여금 전단숲 속에서 이런 두려움을 내게 하였다.’
동자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저희들도 이미 보았습니다.’
그때에 그 동자들은 세존을 보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들 중생들은 마땅히 조그마한 힘으로써 이렇게 이른 것은 아니며, 오직 정진의 힘을 완전히 갖춘 이가 이와 같은 뭇 힘으로 이 아수라의 궁전에 올 수 있었으리라. 우리들은 이제 이와 같이 희유해서 실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이런 기이한 일을 보았도다.
이른바 낱낱의 사람 뒤에는 모두가 이와 같이 크게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 금강저를 가지고 있고, 저 모든 비구들도 역시 저마다 한 사람씩 금강저를 가시고 있으면서 모두가 금시조 위에 올라 타 있다. 또한 한량없는 모든 하늘들과 모든 용ㆍ야차ㆍ건달바의 대중이 앞뒤로 에워싸고 있고, 또한 사바세계의 주[娑婆世界主]인 대범천왕(大梵天王)이 각기 한량없는 권속의 하늘들과 함께 좌우에서 모시고 서 있으며, 또한 한량없는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제화왕 내지 한량없는 천(千)의 수(數)의 소왕(小王)들 모두가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여래ㆍ세존의 발아래 몸을 던져 공경하여야겠다.’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들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동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
그때에 모든 동자들은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지금 무슨 일을 하려 하십니까?’
선비왕은 말하였다.
‘나와 모든 아수라는 삼보를 믿지 않았다.’
저 여러 동자들이 다시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만일 가시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스스로 오실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부처님께는 이와 같은 지혜가 있어서 남으로부터 듣지 않아도 모두 저절로 능히 아신다고 나는 들었다. 이런 말을 믿겠느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실로 이런 지혜가 있다는 것을 비록 듣지는 못했지만 모두 저절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저 삼세의 온갖 중생에게 있는 심념(心念)이 생겼든 아직 생기지 않았든, 소멸하였든 아직 소멸하지 않았든 간에 모두 다 환히 아시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알지 못한 것이 없고, 보지 못한 것이 없으며, 증득하지 못한 것이 없고, 깨닫지 못한 것이 없으며, 참지 못한 것이 없으십니다.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일체를 아시고 일체를 보십니다.’
그때에 선비왕은 동자들에게 말하였다.
‘틀림없이 너희들의 말과 같다. 우리의 이 궁전이 작은데, 어떻게 이와 같은 대중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저희들의 의견(意見)으로는 이러한 중생들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무슨 연유로 그렇다는 것이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아수라 궁전은 어느 곳에 머물러 있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물속에 머물러 있다.’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우선 살펴보십시오. 지금 이렇게도 많은 큰 사람들이 이 물속에 있지만, 마침내 어느 한 중생도 옷의 한 귀[角]에 물이 젖은 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들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중생들은 머무르는 곳이 없구나‘라고 한 것입니다.
대왕이여, 또한 저희들이 보고 있는 하나의 금시조왕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 중에는 곧 한량없는 억백천 나유타(那由他) 수의 금시조왕이 있어서 탈것이 됩니다.’
아난아, 그때에 방광여래는 그 선비아수라와 동자들의 말을 기억하시고는 정숙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정숙아, 너는 속히 선비아수라왕의 궁전 위로 가서 앉은 뒤 곧 이 대정진삼매(大精進三昧)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이에 정숙보살은 세존의 가르침을 받들어 곧장 선비아수라의 궁전으로 나아가 도착한 뒤에는 전각으로 올라가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루면서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저 대정진정(大精進定)에 들었느니라.
그때에 정숙보살은 이와 같은 정진정(精進定)에 들어간 뒤에 삼매의 힘으로 곧 그 궁전을 동서로 육만 사천 유순, 남북으로 일만 육천 유순으로 크게 넓히고서 기묘하게 장엄하여 칠보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그 뭇 보배는 대부분 값을 칠 수조차 없는 귀중한 마니보(摩尼寶)와 진주였으니, 이와 같은 수승한 보배는 미묘하고 단아하게 널리 퍼져 여래의 발아래까지 이르렀으며, 뭇 보배 그물이 그 위를 가득 덮었느니라.
또한 모든 곳에는 모두 비단을 걸었고 천상의 갖가지 묘한 향을 피웠으며, 그 궁전 밖의 둘레에는 모두 일곱 겹으로 된 해자[濠塹]가 있는데 값을 칠 수 없는 귀중한 보배로 그 사이를 메워 장엄하였고, 언덕을 가지런히 하여 바람이 그 사이에 모이게 하였으며, 여러 가지 공덕의 물[功德水]이 완전히 가득 찼는데, 그 물은 깨끗하여 모든 더러움이나 흐림이 없느니라.
그 해자 안에는 갖가지 꽃이 만발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우발라(優鉢羅)꽃과 파두마(波頭摩)꽃과 구모두(拘牟頭)꽃과 분다리(分陀利)꽃으로서 그 꽃의 향기는 마치 천상의 만다라향(曼陀羅香)과 같았느니라.
또한 그 해자의 양쪽 언덕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많이 있게 하였으니, 이른바 하늘의 묘한 향나무[天妙香樹]요, 하늘의 묘한 꽃나무[天妙花樹]이며, 하늘의 묘한 과일나무[天妙果樹]요, 하늘의 의복 나무[天衣服樹]이며, 하늘의 음식 나무[天飮食樹]요, 하늘의 뭇 보배 나무[天衆寶樹]이며, 하늘의 영락 나무[天瓔珞樹]요, 하늘의 음악 나무[天音樂樹]였느니라.
또한 그 모든 해자의 양쪽 언덕에 있는 수많은 붉은 전단나무가 둘레를 에워싼 것이 마치 도솔천궁(兜率天宮)의 보처(補處) 보살이 있는 곳과 같았으니, 이 궁전을 장엄한 것도 역시 그러해서 모두가 변화로 만든 것이었느니라.
그 때에 정숙보살마하살은 일심의 정념(正念)으로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곧 방광부처님께로 나아갔고, 이른 뒤에는 머리 조아려 여래의 발아래 예배하고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거룩한 가르침을 받자와 힐 일을 다 마쳤고 다 함께 이 대중들을 위하여 자리를 펴서 마쳤나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정숙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마나바야, 너희 모든 보살은 여래께서 장차 이 법을 연설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고, 분명하게 안 뒤에는 여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그와 같이 하였구나.’
그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여러 동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동자들아, 너희는 이 궁전을 보아라. 어찌하여 갑자기 이러한 일이 저절로 일어났느냐?’
그때에 여러 동자들은 곧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런 일에 대하여 놀라거나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래 세존께서는 신력(神力)이 두루 갖추어지셨고 또한 불가사의한 지혜[不思議智]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내신 신력은 조그마한 부분이라 어찌 괴이하게 여길 거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여래의 제자가 한 일이지 여래가 하신 것도 아닙니다. 여래ㆍ세존께는 따로 불가사의한 지혜 업[智業]이 있어서 오히려 온갖 중생의 경계가 아니거늘 어찌 한 중생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난아, 그때에 여러 동자들이 곧바로 발심(發心)해서 여래를 생각할 적에 여래는 곧 그 여러 동자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 드디어 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들은 이제 모두가 저 청상삼매(靑相三昧)에 들어갈지니라.’
그때 온갖 대중들은 가피력을 입었기에 모두가 청상삼매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삼매에 들어간 뒤에는 엉겁결에 갑자기 그 궁전으로 올라갔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먼 길을 간 것과 같았느니라. 그 모든 대중이 움직이지도 않고 엉겁결에 여래의 힘으로 그 궁전에 오른 것도 역시 그와 같았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저 세존과 모든 성문ㆍ보살ㆍ하늘ㆍ사람의 대중들이 금시조 위에 있고 일체가 다 금강밀적(金剛密迹)이 있으면서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이런 일을 본 뒤에 따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요술은 모두를 속이고 미혹되게 하는 일이다. 오직 우리들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고 하였으며,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도 이제 역시 이와 같은 모든 요술의 일을 널리 나타내야겠다’고 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힘쓰면서 갖가지 요술을 부리려고 뜻을 내었지만 모두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마침내는 저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잠깐 동안에도 변화할 수 없었고 또한 하나의 색상(色相)도 나타낼 수 없었으며, 그의 몸이 지나면서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곳에는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큰 몸을 지닌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광명을 놓으면서 신령한 금강저로 그의 머리를 치려고 하는 것이 다 보였느니라.
그는 이것을 보고 나서 곧 요술 부리는 일을 거두어들였으니, 설령 요술을 부리려 한다 해도 끝내 이루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지금 어쩌다 갑자기 이러한 고뇌를 만나서 이 요술의 법조차 상실하고 없어지게 되었단 말이냐? 나는 언제나 이것으로 몸을 장엄하는 처소로 삼았는데, 이제 결정코 잃었다면 나아갈 데가 어디인가? 나의 몸은 오래지 않아서 역시 저절로 닳아 없어지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그 여러 동자들은 곧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원컨대 이제는 두려워하지 마소서. 왕께서는 이제 속히 세존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십니다. 만일 여래를 여의신다면 어디가 귀의할 곳이겠습니까? 무릇 이르는 곳마다 모두 두려운 것이리니, 이 때문에 속히 여래께 예배하셔야 할 뿐입니다.’
그때에 그 아수라왕은 모든 아들들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경계는 바로 누가 짓는 것이냐?’
동자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이것은 모두 여래의 경계이며 여래의 방편입니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모든 아수라에게 비록 천의 수[千數]의 모든 요술 법이 있다 하더라도 여래께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래께는 한량없고 헤아리거나 셀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모든 요술의 법이 있으십니다.
대왕이여, 이제 어디로 나아가려 하십니까? 설사 즉시 다시 바다 밑의 초열 입구로 들어가서 이와 같은 모든 대인(大人)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한들 끝내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오늘은 우선 잠시라도 여래의 발아래 머무르면서 지나친 근심을 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여, 먼저 제자의 신통을 살펴보십시오. 오히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일을 나타내거늘 하물며 여래이겠습니까?’
그 때에 그 부처님은 생각하시기를 ‘여러 동자들은 바른 법 가운데 착오가 없구나. 이제 바른 법을 깨닫게 하여 성취하게 하리라’고 하였으며, 저 여래가 이렇게 생각하실 때 여러 동자들은 스스로 깨달아 알았으며, 깨달아 알고 나서는 ‘지금 이 여래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어 짐짓 여기에 오셨구나. 우리는 오늘 억지로라도 우리의 부왕(父王)을 붙들어서 여래께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는 저마다 아버지에게 크게 공경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손으로 아버지의 팔을 붙잡거나 몸뚱이를 받들기도 하면서 함께 붙들고 여래께로 나아갔으며, 부처님께 이른 뒤에는 마치 저 만족할 줄 아는 모든 보살들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그와 같았느니라.
그때에 열네 명의 동자와 그의 부왕은 모두 다 사지를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방광여래의 발아래 예배하였으며, 이렇게 하기를 은근히 두 번 세 번 하기에 이르렀으며, 예배가 끝나자 무릎을 꿇고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으로 일곱 바퀴 돌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갖추었고 희유한 뜻을 일으켰느니라.
그때에 그 동자들은 곧 부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중생들이 어찌 저 미미하고 작은 인연을 위하여 이 바다 밑의 초열 입구에 들어왔겠습니까? 이 초열 입구에는 일찍이 어떤 사람도 여기에 이른 이가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초열 입구는 이와 같이 악취가 나면서 더럽고 이와 같이 거칠고 비루하니, 여기는 극한 악을 행한 중생들이 사는 곳이자 가장 믿지 않은 중생들이 머무는 데라서 부모에게 효순하지 않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지도 않으며,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리들, 즉 법에 어긋난 중생들이 가득한 가운데에 오늘 세존께서는 무엇을 하러 오셨겠습니까?
대왕이여, 큰일과 무거운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저절로 이 누추한 궁전에 강림(降臨)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때에 그 선비아수라왕은 이런 말을 듣고 나서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여러 동자들아, 나는 이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陀那婆) 등을 모아 놓고 모든 공양거리를 베풀어 세존께 바쳐 올려야겠다.’
이와 같이 말을 마치고 곧 상군(上軍)이라 하는 한 아수라에게 명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초열 위로 가서 천 개의 소리가 나는 소라[千音螺]를 불고 아울러 큰 북[大鼓]을 치면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을 모두 모이게 하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여래ㆍ세존과 제자들이 지금 여기에 와 계시므로 나는 공양거리를 장만하여 부처님과 스님들께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상군아수라는 왕의 명을 받고 초열 위에 이르러서 천 개의 소리가 나는 소라를 불고 아울러 큰 북을 치면서 큰 음성을 내었느니라.
그때에 큰 바다 안과 초열에 있던 온갖 아수라와 다나바며 모든 용ㆍ야차ㆍ나 찰ㆍ악귀(惡鬼) 내지 바다 안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이 음성을 듣고 난 뒤에 모두가 크게 두려워하면서 ‘무슨 인연으로 오늘 모든 아수라들이 이런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모든 하늘들과 아수라가 싸워 큰 싸움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지금 이렇게 소라를 불고 북을 치면서 그 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모두가 선비왕에게로 모여 말하였다.
‘대왕이여, 오늘 무슨 연유로 소라를 불고 북을 쳤습니까? 저 하늘들의 일도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곧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여래ㆍ정각(正覺)께서 지금 여기에 강림하여 계신다. 나는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너희들에게 명한 것이지 다른 일은 없다.’
그 때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왕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곧 함께 궁전으로 올라가서 그 궁전이 희유하게 장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가령 온갖 하늘과 인간세계 내지 용궁이라 하여도 일찍이 이와 같이 특이하고 미묘하게 장엄하여 화려한 데는 없었으니, 이 모습을 본 그들은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전에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무슨 연유로 오늘 이 궁전이 이렇게도 크게 장엄되었습니까? 저희는 모든 하늘과 용궁의 처소도 구경하였지만 일찍이 이와 같은 일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때에 대답하였느니라.
‘너희가 지금 비록 보았지만 아직 누구 마음의 원력[心願力]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하리라.’
‘대왕이여, 저희는 실로 누가 한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선비왕이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는 명호가 방광이라는 부처님이 계시며, 또한 모든 성문과 큰 보살들, 나아가 온갖 하늘ㆍ사람의 대중까지 모두 여기에 와 있다. 그 부처님의 제자에 정숙이라는 분은 바로 큰 보살마하살인데, 이 궁전 위에 앉아서 오직 마음의 원력(願力)으로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동안에 즉각 이런 장엄의 일을 변화시켜 지었을 뿐이다.
그때에 선비아수라왕과 구십억 나유타의 모든 아수리와 다나바와 모든 용들 내지 큰 바다에 있는 모든 중생들은 이 북과 소라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을 적에 마음에 다른 걱정이 없었고 딴 일을 짓지도 않으면서 저마다 ‘오늘 바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게 될까? 저 선비왕이 이 큰 소라를 불고 이런 큰 북을 치게 하니 말이다’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니라.
그때에 선비아수라왕과 큰 병사들은 궁전에 올라가 두루 살펴보다가 저 여래께서 한량없는 백천의 대중들에게 좌우와 앞뒤로 둘러싸여 계셨는데, 천 수(數)의 대중과 한량없는 억 수ㆍ한량없는 백억 수ㆍ한량없는 천억 수ㆍ한량없는 백천억 수ㆍ한량없는 나유타(那由他) 수ㆍ한량없는 백 나유타 수ㆍ한량없는 백천 나유타 수가 있고, 또한 한량없는 성문 대중과 사람의 대중과 하늘의 대중ㆍ한량없는 범천의 대중ㆍ한량없는 정거천(淨居天)의 대중들이 있어서 역시 좌우에서 그 부처님ㆍ세존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느니라.
또 모든 성문들과 출가한 이거나 집에 있는[在家]이거나 하늘이거나 용이거나 간에 모두에게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광명을 번쩍거리면서 몹시 두려운 모습으로 그들의 뒤를 따르며 수호하고 있는 것도 보았으며 또 저마다 금시조왕을 타고 있는 것도 보았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나서는 기특한 마음을 내고 기뻐하여 날뛰면서 저마다 ‘이 분들은 모두 다 큰 신통의 힘 때문에 여기 올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들은 이런 희유한 일을 관찰해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ㆍ세존의 어느 한 제자가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마음의 원력으로 이러한 큰 장엄을 능히 이룬 것이며, 또한 이 방광여래께서도 큰 신통이 있고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을 갖추셨는지라 이것을 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모두 다 전에 없던 희유함과 특별한 마음을 일으켰으며, 이런 마음을 낸 뒤에는 모두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여래의 앞에 온몸을 땅에 대고 발에 예배하며 공경하였느니라.
아난아, 그때에 방광여래는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 이러한 지극히 정성스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잠깐 동안에 곧 수징삼매(水澄三昧)에 들었으며, 그 부처님ㆍ여래께서 수징삼매에 들었을 적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에 숙명지(宿命智)를 얻게 되어서 스스로 과거에 지었던 모든 아수라의 업(業)과 인연의 일을 보게 되었느니라.
이런 일을 보고 나서는 크게 괴로워하면서 저마다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모든 악(惡)을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아수라의 궁전에 태어났고, 갖가지의 불선업(不善業)을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두려워할 만한 큰 몸을 얻었구나. 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어떠한 중생도 이와 같이 두렵고 무서운 큰 악업을 지은 이도 없으리라’고 하면서 모든 아수라는 저마다 스스로 정(定)에 들어가서 옛날 본래 지었던 업[本業]을 보았느니라.
이미 보고 나서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염려하였으며, 지옥에 날 때의 몸의 크고 작음과 모든 고통의 과보도 다 함께 명료해졌으니, 이른바 옥졸(獄卒)과 모든 죄인들이 손에 칼과 자귀ㆍ도끼ㆍ창ㆍ공이ㆍ방망이 등의 갖가지 고통을 주는 기구를 가지고는 다투어 와서 몸을 핍박하는 것이었느니라.
또한 끓는 가마솥[鑊湯]과 화로의 숯[鑪炭]이 이글거리면서 사납게 타오르며, 산과 강물에는 재와 쓰레기가 가득히 찼고, 지옥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다른 것은 없었으니, 이와 같이 무시무시하고 활활 타는 고통의 기구들도 보았느니라.
그들은 이런 것을 보고 나서 다시 크게 두려워했으니, 설사 세간에 일곱 개의 해[日]가 한꺼번에 나와서 하늘과 땅의 만물(萬物)이 모조리 다 녹아 없어진다 해도 이 사나운 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나니라. 이러한 일들을 보고 나서 저마다 서로 말하기를 ‘우리 아수라와 다나바는 잠깐 동안에 다 멸망하리라. 오늘 헤아려 보건대 장차 어떻게 벗어나서 이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금빛 손을 들어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을 일으켜 세웠는데, 모두는 방광여래께서 금빛의 손으로 친히 자신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심을 보았느니라.
이와 같은 큰 신력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 대하여 다시 더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모두가 함께 오른편으로 일곱 바퀴를 돌고 합장하고는 다시 일곱 바퀴를 돌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의복을 매만지고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여래와 모든 대중은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어 이 미미한 공양이나마 받아 주소서.’
그 때에 부처님은 선비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모든 아수라들아, 그렇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들은 허락을 받자 모두 크게 기뻐해 날뛰는 것이 한량없었으며, 그들은 저 대중들로부터 나와 부처님의 발아래 나아가서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셨으니 마땅하게 장만하겠나이다.’
32. 불승수미산정품(佛昇須彌山頂品)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큰 바다의 초열(燋熱) 입구로부터 나와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궁(忉利天宮)에 오르려고 하셨느니라.
당시 하늘 제석[天帝釋]은 곧 만상(慢上)이라는 한 음식을 맡은 천자[主食天子]에게 명하였느니라.
‘네가 만든 음식으로 다 마련할 수 있겠느냐?’
식천(食天)이 대답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천왕이여, 음식을 모두 마련하겠습니다.’
하늘 제석이 다시 말하였느니라.
‘너는 얼마만이면 마련하겠느냐?’
식천이 대답하였느니라.
‘많고 적음에 따라 능히 때를 맞추어 하겠습니다.’
이에 하늘 제석은 식천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부처님 앞에 가서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이 때임을 아시옵소서.’
그 때에 방광여래는 선비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너는 이제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궁을 보고 싶으냐?’
선비가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오늘은 누가 제가 저 수미산 꼭대기에 이르러 천상의 쾌락을 받도록 들어주어야 하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가도록 하자. 나아가 일체의 아수라와 다나바 등까지도 나는 모두 저 산꼭대기에 있는 하늘 제석의 선법전(善法殿) 위에 가게 할 터이니, 필요한 바에 따라 마음껏 먹도록 하라.’
그때에 선비왕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 위의 모든 하늘들과 아수라와 다나바들은 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싸우고 있사온데, 오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너는 이제 여래의 언교(言敎)로 너의 심념(心念)을 바루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 모든 아수라와 저 하늘들로 하여금 화합해 모여서 궁전에 함께 있게 하겠으며, 한 사람도 괴롭게 핍박당하는 이가 없게 할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야, 너는 빨리 돌아가서 이 많은 모든 대중들을 위하여 평상을 펴도록 하라.’
그때에 하늘 제석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삼가 거룩한 가르침을 받자오리이다.’
이에 하늘 제석은 초열의 처소로부터 없어지면서 수미산 꼭대기로 나왔으며, 그 때에 저숙(氐宿)이라고 하는 자리를 펴는 한 천자에게 명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속히 선법전에 나아가서 모든 평상을 펴서 세존을 모시도록 하라.’
그 자리를 펴던 천자는 천왕의 명을 받들고 선법당으로 나아가서 평상을 펴려고 하였는데, 벌써 여래와 모든 제자들과 모든 하늘의 대중ㆍ모든 범천의 대중ㆍ모든 아수라와 다나바의 대중ㆍ온갖 사람의 대중들 모두가 먼저 앉아 있었느니라.
그 때에 자리를 펴려던 천자는 부처님과 대중이 이미 좌정해 있는 것을 보고는 음식을 마련하게 하려고 제석에게 아뢰었느니라.
‘천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지금 여래와 모든 제자들, 그리고 하늘ㆍ용과 대중들은 다 함께 먼저 선법전에 앉아 계십니다.’
그때에 하늘 제석은 ‘희유하고도 희유하구나, 아, 도리천이 지극히 미혹해 있어서 세존께서 이제 이러한 신력이 계셨는데도 우리 하늘들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였구나. 또한 여래께서 이 궁절에 행차하신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라서 그랬으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늘 제석은 곧 발리사(跋利沙)라는 한 산천의 아들[算天之子]에게 말하였느니라.
‘너는 지금 빨리 가서 그 북을 쳐 이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로 하여금 때맞추어 구름처럼 모이게 하여라.’
발리사천은 천왕의 명을 받자 있는 힘을 다해서 하늘의 북을 쳤느니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하늘의 북 소리를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괴롭고, 괴롭도다. 우리들에게 이제 큰 재액이 이르렀구나. 그대들은 알아야 하오. 이 하늘 제석이 큰 요술로 우리들을 속이고 유혹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하였소’라고 하였는데, 그때에 하늘 제석은 모든 아수라들이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는 거듭 다시 아수라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조금 전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을 모이게 하기 위하여 이 하늘 북을 친 것입니다. 부디 다른 걱정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 때에 삼십삼천은 저마다 한량없는 백천억 수의 권속과 천녀(天女)들을 데리고 선법전으로 나왔으며, 선법전에 도달한 뒤에는 머리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는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저마다 서로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지금 여래ㆍ세존의 큰 신통력을 보셔야 합니다. 모든 아수라들과 다나바들은 언제나 땅 아래 살고 있었는데 이제 이 천상에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오.’
그 때에 하늘 제석은 삼십삼천에게 명하였느니라.
‘너희 모든 하늘들은 다 함께 저마다 한마음이 되어서 그 밖의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 것이며, 오직 여래와 대중에게 공양할 것만을 생각하여라.’
그 하늘 제석은 이와 같이 명하고 나서 자신이 먹을 모든 공양거리를 세존과 제자들에게 받들어 올렸으며, 그리고 제화왕(祭火王)의 온갖 대중들과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과 욕계의 모든 하늘들과 그 밖의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하늘들과 같은 대중들이 모두 와서 모여 앉았느니라. 그들 모두에게는 뭇 하늘들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였으니, 마치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식사를 모두 마쳤느니라.
바로 그때 제석천왕은 서서 먹을 뿐 앉지도 않았는데, 그는 부처님ㆍ세존께서 다 잡수신 것을 보자 기쁨이 충만하여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면서 용모를 단정히 하여 합장하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선비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이리 오너라. 지금부터는 이 천왕(天王)과의 오래 묵은 원한[宿怨]을 풀어 버리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라. 너도 역시 나에게서 법을 들은 제자이다. 너희들 두 사람은 언제나 화합하여 여래의 법을 행하면서 다시는 싸우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때에 하늘 제석과 선비왕은 같이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아수라와 모든 하늘들은 항시 싸우려는 마음이 있으면서 끝내 스스로 기뻐하는 마음을 낼 수 없었사온데 다행히 세존의 위신(威神)과 덕의 힘[德力]을 입사와 아수라로 하여금 이 천궁(天宮)까지 오게 하셨나이다.’
그때에 그 두 왕이 이러한 말을 하자마자 저 방광부처님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오늘의 일은 바로 너희 이 열네 동자 보살마하살의 자비의 힘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교시가야, 너는 이 열네 보살의 옛날의 인연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들은 과거에 이 삼십삼천 가운데에 났었는데, 이 모든 하늘들이 언제나 저 모든 아수라들과 크게 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고 해치면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큰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원컨대 저희는 미래에 저 아수라 궁전에서 나되 선비왕의 일곱 대부인(大夫人)에게서 각각 두 아들로 나게 하소서. 그곳에 난 뒤에 저희는 저 아수라와 이 모든 하늘들을 교화하여 언제나 기뻐하면서 다시는 원한의 마음이 없게 하겠사오며, 그 결과가 원한 바대로 되면 설사 거기서 겁(劫)을 지나도록 산다 하여도 감히 사양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교시가야, 이런 인연 때문에 이 모든 보살들은 이 하늘에서 죽어서 선비왕의 아들이 된 것이니라.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제도하는 지혜의 힘만으로는 홀로 이러한 큰일을 이룰 수 없었으니, 이 때문에 이제 여래ㆍ응공ㆍ정변각에게 청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초열(燋熱)의 재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니라.
이들은 거기에 있으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모든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소서. 저희들은 지금 큰 액난이 있는 곳에 있사오며, 비록 본래의 서원[本願]이 있다 하더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나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여러 가지 큰 괴로움과 큰 위험과 큰 재난이 많사오나, 설령 저희가 큰 지옥에 태어난다 하여도 끝내 본래 서원한 마음은 버리거나 여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교시가야, 너는 이제 이 모든 보살에게 저 옛날에 이러한 서원이 있었음을 알라.
교시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ㆍ세존은 이런 보살을 능히 호지(護持)하느냐?’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온갖 축생인 승냥이ㆍ이리ㆍ여우ㆍ개며 나아가 모기나 개미에 이르기까지도 호지하시거늘 어찌 유독 보살마하살들이겠나이까? 이들은 온갖 중생을 위하여 구호할 이 없는 이를 구호하는 것이니, 마치 소경이 광명도 없고 아주 캄캄한 가운데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저 능히 흩어 없애는 것 역시 그와 같나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이 아수라왕에게 ’당신은 이제 이 하늘에 머무르고 싶습니까?’라고 물어 보라.’
그때에 하늘 제석이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곧 선비아수라왕에게 물었다.
‘어진 이여, 당신은 세존의 언교(言敎)를 들으셨습니까?’
선비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천왕이여.’
제석이 다시 말하였다.
‘어진 이여, 당신은 지금 진실로 이런 곳에 계시기를 원하십니까?’
선비왕이 말하였다.
‘천왕이여, 이와 같은 일은 묻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모든 아수 라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설사 여러 전단숲과 그 밖의 다른 곳이라 하여도 몹시 악취가 날 뿐이거늘, 어찌 감히 이런 모든 하늘의 궁전을 바라기나 했겠습니까? 바로 세존의 큰 자비와 위력 있는 신령함이 온갖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저희로 하여금 이 수미산 천궁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천왕이여, 당신이 나에게 묻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즉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 할지언정 당신은 나에게 묻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삼십삼천은 저절로 이루어진 복의 과보[福報]라 모자라는 바가 없지만, 저희 모든 아수라들은 복을 받지도 못하였고 많은 일에서 아첨과 속임수만이 많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모두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런 곳을 탐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또한 천왕이여, 이제 거듭 아룁니다. 모든 아수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원한 것은 수미산 위를 좋아하고, 모든 하늘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도즙[蒱桃漿]을 마시는 것이었으니, 이 세 가지 일을 위하여 항상 하늘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역시 모자람이 있고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받습니다. 싸움을 할 적에는 저 사천왕(四天王)이 갖가지 몽둥이로 우리들을 때리고 해치므로 본래 있던 곳으로 도망쳐 옵니다.
천왕이여, 이런 인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 할지언정 나에게는 묻지 마셔야 하십니다.
또한 천왕이여, 비유하면 저 장부가 음욕으로 여인을 탐할 적에 모든 재보와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비록 허락을 얻었다 하더라도 구하던 마음에 계합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그때 온밤 내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데, 나중에 그 여인이 한 번 와서 뜻을 이루었다면, 천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때에 장부는 이 여인을 얻어서 몹시 기뻐하겠습니까?’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기뻐할 것입니다.’
아수라왕 선비가 다시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천왕이여, 모든 아수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수미산 꼭대기에 살게 해서 모든 하늘의 일을 보고 알게 하라’는 마음을 항시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이제 여기에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만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로 물어야 합니까?
또한 천왕이여, 마치 저 장사꾼 우두머리[商主]가 큰 바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진기한 보배를 구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위험을 돌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는 처음 해안(海岸)에 도달하였는데, 갑자기 뭇 배를 만나서 붉은 전단[赤旃檀]을 싣고 저절로 돌아오게 되거나 혹은 갖가지 배에 기이한 보배를 가득히 채워 일시에 다투어 오거나 하면, 천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때 장사꾼 우두머리는 위험한 재난을 겪지도 않고 기이한 보배를 많이 얻었으므로 또한 더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그 장수의 우두머리의 기쁨이야말로 한량없을 것입니다.’
선비가 다시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천왕이여,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선근을 심지도 않고 공덕을 짓지도 않았는데, 이제 갑자기 이르기 어려운 곳을 얻고서도 몹시 기뻐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에 하늘 제석과 아수라왕은 둘이 같이 기뻐하면서 함께 세존께로 나아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는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아수라와 크게 싸우는 일을 편히 쉬게 되었느냐? 또 아수라와 다나바와 싸우는 인연도 끊어 없앴느냐?’
그때에 하늘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자와 이미 일미(一味)를 이루었나이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며, 저는 처음부터 모든 아수라를 해치려는 이런 나쁜 마음은 없었사오니, 다만 이 아수라만 몹시 불쌍하나이다. 혹 고행(苦行)을 닦아서 조그마한 몸의 힘을 얻으면 심회(心懷)가 견디질 못하고 저와 싸우기를 좋아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저에게 억경(億頃)이라는 코끼리가 있음을 모르고 있으니, 만일 이 코끼리로 하여금 한 번 성이 나게 하면 곧 저 큰 바다의 물도 바짝 마르게 하나이다. 그렇게 크게 싸움을 할 때는 다시 크고 건장한 큰 몸으로 변화하는데, 마치 수미산이 대지(大地)를 머물러 지니는 것 같으며 네 발과 코로 한 발짝씩 걸을 때도 마치 수미산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코끼리의 그 몸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하며, 그 큰 바닷물의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하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러하느니라. 정녕 그러하느니라.’
그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에 생각하기를 ‘나에게는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코끼리가 있다’고 하였으며, 제가 탄 뒤에는 다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을 살펴보라. 진실로 크게 어리석고 혼미하여 나에게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힘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제 이 몸 이외의 큰 코끼리의 불가사의한 힘은 차치하고라도 저에게는 다시 오른손에 쥐고 있는 큰 금강저(金剛杵)가 있으므로 또한 ‘만일 나로 하여금 이제 손 안에 있는 금강저를 시험 삼아 놓게 한다면,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인 사대해 안의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의 궁전은 일시에 소멸되고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비록 이와 같은 신력이 있다 하더라도 끝내 그들을 파괴하려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어떤 물러서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의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에게 속박을 당할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때릴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벨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끊을 때에 보복하고 해치려 한다면 끝내 옳지 못할 겁니다. 오직 부처님ㆍ세존만이 스스로 이런 일을 아실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 보살마하살이 이런 일을 대할 적에는 언제나 스스로 이와 같이 착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온갖 즐거움을 버릴 따름이며, 세간에서 여의고 파괴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을 도로 화합하도록 하겠다’고 해야 하나이다. 그 때에 보살은 언제나 행을 염(念)해야 하며, 이와 같이 뜻[意]을 삼가서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항시 법을 염(念)해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세존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세존의 가르침대로 하겠나이다. 또한 마치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 저마다 오히려 서로를 공양하는 것처럼 저희들도 역시 서로서로 공경하고 공양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무릇 마시고 먹을 것은 모두 다 선비아수라왕과 나누어서 함께 하겠사오며, 그 밖의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도 다 함께 무외(無畏)를 베풀어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겠나이다.’”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31. 입해신변품(入海神變品)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사자분신(師子奮迅)의 큰 삼매를 버리시고 나서 큰 자비와 일체지(一切智)로써 두루 시방(十方)과 대중을 관하셨느니라.
당시 그 대중 가운데는 이름이 정숙(井宿)이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본래 그는 마니보(摩尼寶)를 만드는 집의 아들이었느니라.
그때 저 세존은 곧 그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정숙아, 너는 이제 여래ㆍ응공ㆍ정변각과 함께 저 큰 바다[大海]에 들어가겠느냐?’
그 때에 정숙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저 바다 가운데서 불사(佛事)를 행하시려 하나이까? 어떠한 업(業)을 짓기에 그러한 명(命)을 하시옵니까?’
방광여래가 정숙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큰 바다 동쪽 가에 초열(燋熱)이라는 물이 흘러나오는 수구(水口)가 있는데, 그 초열 아래에는 아수라(阿修羅)의 궁전이 있고 그곳에 지금 열네 보살이 있느니라.
나는 그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 아수라의 몸을 받지 않게 하려 함에서이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아수라의 업을 짓지 않게 하려 함에서요, 또한 그들로 하여금 갖가지 지옥의 업과 행을 짓시 않게 하려 함에서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시자 정숙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다 건너 어디에 머무르나이까?’
방광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그 초열이란 곳에는 선비(善臂)라는 아수라왕이 있으며 열네 보살은 그 왕의 아들들이니라.’
정숙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다시 어떠한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들이 그 안에서 났나이까?’
부처님은 정숙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이제 번거롭게 거듭 이런 일을 묻지 말라. 우리들은 오직 그곳으로 빨리 나아가야 할 뿐이니라.’
그 때에 방광세존은 이와 같은 말씀하시고는 곧 정숙보살마하살과 함께 변화로 된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허공을 노닐면서 나아가셨으며, 억수의 모든 보살들도 역시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세존을 뒤따라갔느니라.
다시 구십억의 저 아라한들도 역시 저마다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세존을 뒤따라갔고, 또 온갖 인간세계 안의 대중과 재화광왕(祭火光王)의 장수와 모든 병사들 이만 팔천이 대장을 우두머리로 삼아 팔만의 잘 길들인 향상(香象)을 타고 세존을 뒤따라 허공으로 올라 나아갔느니라.
그 왕은 자재(自在)하고 큰 위덕이 있었는지라 모든 신하들 이만 팔천과 함께 모두가 흰 코끼리[白象]를 타고 뒤따라갔으며, 그 밖의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안의 온갖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 등으로서 먼저 방광 부처님ㆍ세존의 처소에서 법을 듣던 이들도 저마다 역시 신통의 힘으로 부처님을 따라갔었느니라.
그 때에 방광여래는 먼저 큰 바다에 이르러서 식사를 마치시고는 바다의 남쪽 언덕[南岸]을 건너 동쪽으로 점차 가서 초열이란 곳에 이르자 드디어 멈추셨느니라.
아난아, 그때에 저 세존은 바닷가에 머무르신 뒤에 곧 눈썹 사이로부터 마치 한 개의 터럭을 백천억으로 쪼개 나눈 듯한 하나의 미세한 광명을 놓으셨으니, 그 광명이 곧장 아수라의 궁전에 들어가 두루 아수라의 궁전을 비추자 당시 선비아수라왕은 이 광명을 접하고는 엉겁결에 놀라 일어나면서 어쩔 줄을 몰랐으며 온갖 아수라들도 모두가 크게 두려워하면서 빨리 선비왕의 처소로 달려 나가서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지금의 이 아수라 궁전을 자세히 보십시오. 갑가기 이렇게 크고 치성한 광명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지금이 겁재(劫災)라 심상치 않은 불이 위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문에 이런 훨훨 타는 맹렬한 불길이 지극히 왕성한 광명으로 번쩍이며 보인 것입니다.
대왕이여,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슨 연유로 오늘 아수라의 궁전에 갑자기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그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수라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어진 이들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지금 해안(海岸)에 계시면서 아수라 궁전에 내림(來臨)하려 하신다.
어진 이들아, 알아야 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방광여래께서는 눈썹 사이의 흰 털이 감추어진 곳으로부터 한 개의 터럭을 백천억으로 쪼개 나눈 듯한 하나의 광명을 놓으셨는데, 바로 그 광명이 이 궁전에 나타났을 뿐이다.
어진 이들아, 여래의 광명은 심히 만나기 어려워서 얻거나 볼 수 없는데,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여기에 오셔서 이르신 것이다.’
저 모든 아수라들은 큰 바다 아래에 머물면서 경계 주위에는 모두 물길[水道]을 설치하고 낱낱의 제방(隄防)도 마치 수미산과 같았으니, 당시 저 세존은 생각하시기를 ‘이 아수라들은 오직 놀라고 두려워하고만 있을 뿐이구나’ 하시면서 험(險)한 것을 설치하여 자신들을 수호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곧 화염(火焰)이라는 한 금강신(金剛神)을 부르셔서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대신(大神)이니 변화할 수 있느냐?’
금강신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변화할 수 있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물으셨다.
‘네가 변화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금강신이 말하였다.
‘저는 물길 앞에서 신력(神力)을 하나하나 나타내어 두려운 대력(大力)을 지닌 두 명의 건장한 거인을 그 물길 앞에 머물게 함으로서 저 아수라로 하여금 갑자기 그와 같은 뛰어나고 건장한 거인을 보게 되면 두려움이 한층 더하여 저절로 항복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금강아, 네가 반드시 할 수 있다면 속히 그런 변화를 내도록 하라.’
그때에 금강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곧 신통의 힘으로 물길 앞에다 저 형상이 높고 크기가 다라수(多羅樹)만큼인 변화된 두 거인을 놓아두었고, 그 변화로 된 거인은 손으로 이 모든 물길을 쳐서 모두가 빠져 들어가 곧장 수륜(水輪)예 이르게 하였느니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면서 저마다 서로 말하였느니라.
‘희유하고도 희유하구나. 우리의 이 궁성(宮城)에 깊고 비밀한 재난[深密難]이 닥쳤도다. 게다가 모든 큰 나찰(羅刹)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니, 이 무슨 두려운 일이기에 이렇게 현전할까?
어진 이들이여, 함께 보았으니 어떻게 달아나 자취를 감추겠소?’
또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이제 함께 저 해안으로 가야 되겠다’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수라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곧 그의 열네 명의 아들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은 이 아수라 궁전을 살펴보아라. 이와 같은 갖가지 괴이한 일들이 다투어 일어나고 있다. 동자(童子)들아, 우리들은 이제 어떠한 일을 해야 하겠느냐?’
그때에 동자들이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모들 아수라들은 이미 전단 숲[栴檀林] 속에 있는데, 무슨 두려워할 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선비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지금 방광여래께서 하실 일이 있어서 이 해안으로 오셨다. 그 위덕 때문에 아수라(阿修羅)와 다나바(陀那婆) 등으로 하여금 몹시 두려움이 생기게 하였다.’
그 모든 동자들이 다시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이 아수라 궁전에 오신 연유를 자세히 아십니까?’
왕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어느 곳에서 이런 심상(心想)이 있었겠느냐? 저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도 처음부터 말씀이 없으셨는데 내가 또한 어떠한 일로 미리 알 수 있겠느냐?’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예로부터 혹시 세존께서 아수라 궁전에 오신 적이 있다는 것을 보셨거나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내가 나서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다. 모든 아수라들은 삼보(三寶)를 믿지 않거늘 어찌 부처님을 뵐 수 있었겠느냐?
동자들아, 나는 지금까지 여래께서 인연이 있으셔서 아수라의 궁전에 이르신 일을 보지 못하였다. 오직 저 모든 하늘처럼 아수라가 크게 싸울 때만이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비로소 출현하셨을 뿐이다. 그 때 모든 하늘들이 이겼고 아수라들이 진 것을 보자 자신들의 뜻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달아나면서 방향과 처소를 잃었고 해로움을 피하여 자취를 감추면서 연뿌리로 도망쳐 들어갔었다.
나는 오늘 이런 생각[想]으로 부처님의 위력 있는 신령함을 말하기는 하나, 모든 여래는 끝내 한 중생에게라도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내시지 않으며 허물을 구하지도 않고 오직 가엾이 여김만이 있으실 뿐이니, 아수라들의 마음이 칼과 같은 것을 보시면서도 자비로 두루 덮으시면서 이런 신통을 나타내어서 모든 아수라로 하여금 나쁜 생각을 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얻게 하실 뿐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억수의 모든 보살들과 구십억의 모든 큰 아라한과 제화왕이 거느린 육십만의 장병들과 대중들, 나아가 온갖 하늘ㆍ응ㆍ야차ㆍ건달바 등 이와 같은 대중들까지도 모두가 변화로 하나의 금강신이 되어서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뒤를 따르며 수호하게 하였고, 또한 모두가 변화로 된 금시조를 타고 있게 하였으며, 이와 같이 변화시킨 뒤에 초열의 입구에 나아가 그들이 머무르는 곳에 이르렀느니라.
다시 모두를 변화로 비인(非人)을 만들어 에워싸서 아수라로 하여금 더욱 두렵게 하였기 때문에 그때 선비왕은 궁전에서 거닐고 있다가 저 세존께서 한량없는 억백천 나유타 대중인 이른바 보살ㆍ성문ㆍ제화왕의 대중 내지 한량없는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 등 팔왕(八王)의 대중들에게 에워싸여 계신 것을 보았으니, 이와 같이 보고는 동자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동자들아, 너희는 이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지금 이와 같은 큰 위신(威神) 때문에 모든 아수라들로 하여금 전단숲 속에서 이런 두려움을 내게 하였다.’
동자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저희들도 이미 보았습니다.’
그때에 그 동자들은 세존을 보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들 중생들은 마땅히 조그마한 힘으로써 이렇게 이른 것은 아니며, 오직 정진의 힘을 완전히 갖춘 이가 이와 같은 뭇 힘으로 이 아수라의 궁전에 올 수 있었으리라. 우리들은 이제 이와 같이 희유해서 실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이런 기이한 일을 보았도다.
이른바 낱낱의 사람 뒤에는 모두가 이와 같이 크게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 금강저를 가지고 있고, 저 모든 비구들도 역시 저마다 한 사람씩 금강저를 가시고 있으면서 모두가 금시조 위에 올라 타 있다. 또한 한량없는 모든 하늘들과 모든 용ㆍ야차ㆍ건달바의 대중이 앞뒤로 에워싸고 있고, 또한 사바세계의 주[娑婆世界主]인 대범천왕(大梵天王)이 각기 한량없는 권속의 하늘들과 함께 좌우에서 모시고 서 있으며, 또한 한량없는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제화왕 내지 한량없는 천(千)의 수(數)의 소왕(小王)들 모두가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여래ㆍ세존의 발아래 몸을 던져 공경하여야겠다.’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모든 아들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동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
그때에 모든 동자들은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지금 무슨 일을 하려 하십니까?’
선비왕은 말하였다.
‘나와 모든 아수라는 삼보를 믿지 않았다.’
저 여러 동자들이 다시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만일 가시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스스로 오실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동자들아, 부처님께는 이와 같은 지혜가 있어서 남으로부터 듣지 않아도 모두 저절로 능히 아신다고 나는 들었다. 이런 말을 믿겠느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실로 이런 지혜가 있다는 것을 비록 듣지는 못했지만 모두 저절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저 삼세의 온갖 중생에게 있는 심념(心念)이 생겼든 아직 생기지 않았든, 소멸하였든 아직 소멸하지 않았든 간에 모두 다 환히 아시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알지 못한 것이 없고, 보지 못한 것이 없으며, 증득하지 못한 것이 없고, 깨닫지 못한 것이 없으며, 참지 못한 것이 없으십니다.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일체를 아시고 일체를 보십니다.’
그때에 선비왕은 동자들에게 말하였다.
‘틀림없이 너희들의 말과 같다. 우리의 이 궁전이 작은데, 어떻게 이와 같은 대중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저희들의 의견(意見)으로는 이러한 중생들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무슨 연유로 그렇다는 것이냐?’
여러 동자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아수라 궁전은 어느 곳에 머물러 있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물속에 머물러 있다.’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우선 살펴보십시오. 지금 이렇게도 많은 큰 사람들이 이 물속에 있지만, 마침내 어느 한 중생도 옷의 한 귀[角]에 물이 젖은 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들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중생들은 머무르는 곳이 없구나‘라고 한 것입니다.
대왕이여, 또한 저희들이 보고 있는 하나의 금시조왕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 중에는 곧 한량없는 억백천 나유타(那由他) 수의 금시조왕이 있어서 탈것이 됩니다.’
아난아, 그때에 방광여래는 그 선비아수라와 동자들의 말을 기억하시고는 정숙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정숙아, 너는 속히 선비아수라왕의 궁전 위로 가서 앉은 뒤 곧 이 대정진삼매(大精進三昧)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이에 정숙보살은 세존의 가르침을 받들어 곧장 선비아수라의 궁전으로 나아가 도착한 뒤에는 전각으로 올라가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루면서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저 대정진정(大精進定)에 들었느니라.
그때에 정숙보살은 이와 같은 정진정(精進定)에 들어간 뒤에 삼매의 힘으로 곧 그 궁전을 동서로 육만 사천 유순, 남북으로 일만 육천 유순으로 크게 넓히고서 기묘하게 장엄하여 칠보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그 뭇 보배는 대부분 값을 칠 수조차 없는 귀중한 마니보(摩尼寶)와 진주였으니, 이와 같은 수승한 보배는 미묘하고 단아하게 널리 퍼져 여래의 발아래까지 이르렀으며, 뭇 보배 그물이 그 위를 가득 덮었느니라.
또한 모든 곳에는 모두 비단을 걸었고 천상의 갖가지 묘한 향을 피웠으며, 그 궁전 밖의 둘레에는 모두 일곱 겹으로 된 해자[濠塹]가 있는데 값을 칠 수 없는 귀중한 보배로 그 사이를 메워 장엄하였고, 언덕을 가지런히 하여 바람이 그 사이에 모이게 하였으며, 여러 가지 공덕의 물[功德水]이 완전히 가득 찼는데, 그 물은 깨끗하여 모든 더러움이나 흐림이 없느니라.
그 해자 안에는 갖가지 꽃이 만발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우발라(優鉢羅)꽃과 파두마(波頭摩)꽃과 구모두(拘牟頭)꽃과 분다리(分陀利)꽃으로서 그 꽃의 향기는 마치 천상의 만다라향(曼陀羅香)과 같았느니라.
또한 그 해자의 양쪽 언덕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많이 있게 하였으니, 이른바 하늘의 묘한 향나무[天妙香樹]요, 하늘의 묘한 꽃나무[天妙花樹]이며, 하늘의 묘한 과일나무[天妙果樹]요, 하늘의 의복 나무[天衣服樹]이며, 하늘의 음식 나무[天飮食樹]요, 하늘의 뭇 보배 나무[天衆寶樹]이며, 하늘의 영락 나무[天瓔珞樹]요, 하늘의 음악 나무[天音樂樹]였느니라.
또한 그 모든 해자의 양쪽 언덕에 있는 수많은 붉은 전단나무가 둘레를 에워싼 것이 마치 도솔천궁(兜率天宮)의 보처(補處) 보살이 있는 곳과 같았으니, 이 궁전을 장엄한 것도 역시 그러해서 모두가 변화로 만든 것이었느니라.
그 때에 정숙보살마하살은 일심의 정념(正念)으로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곧 방광부처님께로 나아갔고, 이른 뒤에는 머리 조아려 여래의 발아래 예배하고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거룩한 가르침을 받자와 힐 일을 다 마쳤고 다 함께 이 대중들을 위하여 자리를 펴서 마쳤나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정숙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마나바야, 너희 모든 보살은 여래께서 장차 이 법을 연설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고, 분명하게 안 뒤에는 여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그와 같이 하였구나.’
그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여러 동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동자들아, 너희는 이 궁전을 보아라. 어찌하여 갑자기 이러한 일이 저절로 일어났느냐?’
그때에 여러 동자들은 곧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런 일에 대하여 놀라거나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래 세존께서는 신력(神力)이 두루 갖추어지셨고 또한 불가사의한 지혜[不思議智]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내신 신력은 조그마한 부분이라 어찌 괴이하게 여길 거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여래의 제자가 한 일이지 여래가 하신 것도 아닙니다. 여래ㆍ세존께는 따로 불가사의한 지혜 업[智業]이 있어서 오히려 온갖 중생의 경계가 아니거늘 어찌 한 중생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난아, 그때에 여러 동자들이 곧바로 발심(發心)해서 여래를 생각할 적에 여래는 곧 그 여러 동자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 드디어 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들은 이제 모두가 저 청상삼매(靑相三昧)에 들어갈지니라.’
그때 온갖 대중들은 가피력을 입었기에 모두가 청상삼매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삼매에 들어간 뒤에는 엉겁결에 갑자기 그 궁전으로 올라갔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먼 길을 간 것과 같았느니라. 그 모든 대중이 움직이지도 않고 엉겁결에 여래의 힘으로 그 궁전에 오른 것도 역시 그와 같았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저 세존과 모든 성문ㆍ보살ㆍ하늘ㆍ사람의 대중들이 금시조 위에 있고 일체가 다 금강밀적(金剛密迹)이 있으면서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이런 일을 본 뒤에 따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요술은 모두를 속이고 미혹되게 하는 일이다. 오직 우리들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고 하였으며,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도 이제 역시 이와 같은 모든 요술의 일을 널리 나타내야겠다’고 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힘쓰면서 갖가지 요술을 부리려고 뜻을 내었지만 모두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마침내는 저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잠깐 동안에도 변화할 수 없었고 또한 하나의 색상(色相)도 나타낼 수 없었으며, 그의 몸이 지나면서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곳에는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큰 몸을 지닌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광명을 놓으면서 신령한 금강저로 그의 머리를 치려고 하는 것이 다 보였느니라.
그는 이것을 보고 나서 곧 요술 부리는 일을 거두어들였으니, 설령 요술을 부리려 한다 해도 끝내 이루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지금 어쩌다 갑자기 이러한 고뇌를 만나서 이 요술의 법조차 상실하고 없어지게 되었단 말이냐? 나는 언제나 이것으로 몸을 장엄하는 처소로 삼았는데, 이제 결정코 잃었다면 나아갈 데가 어디인가? 나의 몸은 오래지 않아서 역시 저절로 닳아 없어지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그 여러 동자들은 곧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원컨대 이제는 두려워하지 마소서. 왕께서는 이제 속히 세존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십니다. 만일 여래를 여의신다면 어디가 귀의할 곳이겠습니까? 무릇 이르는 곳마다 모두 두려운 것이리니, 이 때문에 속히 여래께 예배하셔야 할 뿐입니다.’
그때에 그 아수라왕은 모든 아들들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경계는 바로 누가 짓는 것이냐?’
동자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이것은 모두 여래의 경계이며 여래의 방편입니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모든 아수라에게 비록 천의 수[千數]의 모든 요술 법이 있다 하더라도 여래께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래께는 한량없고 헤아리거나 셀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모든 요술의 법이 있으십니다.
대왕이여, 이제 어디로 나아가려 하십니까? 설사 즉시 다시 바다 밑의 초열 입구로 들어가서 이와 같은 모든 대인(大人)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한들 끝내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오늘은 우선 잠시라도 여래의 발아래 머무르면서 지나친 근심을 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여, 먼저 제자의 신통을 살펴보십시오. 오히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일을 나타내거늘 하물며 여래이겠습니까?’
그 때에 그 부처님은 생각하시기를 ‘여러 동자들은 바른 법 가운데 착오가 없구나. 이제 바른 법을 깨닫게 하여 성취하게 하리라’고 하였으며, 저 여래가 이렇게 생각하실 때 여러 동자들은 스스로 깨달아 알았으며, 깨달아 알고 나서는 ‘지금 이 여래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어 짐짓 여기에 오셨구나. 우리는 오늘 억지로라도 우리의 부왕(父王)을 붙들어서 여래께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는 저마다 아버지에게 크게 공경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손으로 아버지의 팔을 붙잡거나 몸뚱이를 받들기도 하면서 함께 붙들고 여래께로 나아갔으며, 부처님께 이른 뒤에는 마치 저 만족할 줄 아는 모든 보살들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그와 같았느니라.
그때에 열네 명의 동자와 그의 부왕은 모두 다 사지를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방광여래의 발아래 예배하였으며, 이렇게 하기를 은근히 두 번 세 번 하기에 이르렀으며, 예배가 끝나자 무릎을 꿇고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으로 일곱 바퀴 돌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갖추었고 희유한 뜻을 일으켰느니라.
그때에 그 동자들은 곧 부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중생들이 어찌 저 미미하고 작은 인연을 위하여 이 바다 밑의 초열 입구에 들어왔겠습니까? 이 초열 입구에는 일찍이 어떤 사람도 여기에 이른 이가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초열 입구는 이와 같이 악취가 나면서 더럽고 이와 같이 거칠고 비루하니, 여기는 극한 악을 행한 중생들이 사는 곳이자 가장 믿지 않은 중생들이 머무는 데라서 부모에게 효순하지 않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지도 않으며,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리들, 즉 법에 어긋난 중생들이 가득한 가운데에 오늘 세존께서는 무엇을 하러 오셨겠습니까?
대왕이여, 큰일과 무거운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저절로 이 누추한 궁전에 강림(降臨)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때에 그 선비아수라왕은 이런 말을 듣고 나서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여러 동자들아, 나는 이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陀那婆) 등을 모아 놓고 모든 공양거리를 베풀어 세존께 바쳐 올려야겠다.’
이와 같이 말을 마치고 곧 상군(上軍)이라 하는 한 아수라에게 명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초열 위로 가서 천 개의 소리가 나는 소라[千音螺]를 불고 아울러 큰 북[大鼓]을 치면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을 모두 모이게 하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여래ㆍ세존과 제자들이 지금 여기에 와 계시므로 나는 공양거리를 장만하여 부처님과 스님들께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상군아수라는 왕의 명을 받고 초열 위에 이르러서 천 개의 소리가 나는 소라를 불고 아울러 큰 북을 치면서 큰 음성을 내었느니라.
그때에 큰 바다 안과 초열에 있던 온갖 아수라와 다나바며 모든 용ㆍ야차ㆍ나 찰ㆍ악귀(惡鬼) 내지 바다 안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이 음성을 듣고 난 뒤에 모두가 크게 두려워하면서 ‘무슨 인연으로 오늘 모든 아수라들이 이런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모든 하늘들과 아수라가 싸워 큰 싸움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지금 이렇게 소라를 불고 북을 치면서 그 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모두가 선비왕에게로 모여 말하였다.
‘대왕이여, 오늘 무슨 연유로 소라를 불고 북을 쳤습니까? 저 하늘들의 일도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곧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여래ㆍ정각(正覺)께서 지금 여기에 강림하여 계신다. 나는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너희들에게 명한 것이지 다른 일은 없다.’
그 때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왕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곧 함께 궁전으로 올라가서 그 궁전이 희유하게 장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가령 온갖 하늘과 인간세계 내지 용궁이라 하여도 일찍이 이와 같이 특이하고 미묘하게 장엄하여 화려한 데는 없었으니, 이 모습을 본 그들은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전에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무슨 연유로 오늘 이 궁전이 이렇게도 크게 장엄되었습니까? 저희는 모든 하늘과 용궁의 처소도 구경하였지만 일찍이 이와 같은 일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때에 대답하였느니라.
‘너희가 지금 비록 보았지만 아직 누구 마음의 원력[心願力]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하리라.’
‘대왕이여, 저희는 실로 누가 한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선비왕이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는 명호가 방광이라는 부처님이 계시며, 또한 모든 성문과 큰 보살들, 나아가 온갖 하늘ㆍ사람의 대중까지 모두 여기에 와 있다. 그 부처님의 제자에 정숙이라는 분은 바로 큰 보살마하살인데, 이 궁전 위에 앉아서 오직 마음의 원력(願力)으로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동안에 즉각 이런 장엄의 일을 변화시켜 지었을 뿐이다.
그때에 선비아수라왕과 구십억 나유타의 모든 아수리와 다나바와 모든 용들 내지 큰 바다에 있는 모든 중생들은 이 북과 소라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을 적에 마음에 다른 걱정이 없었고 딴 일을 짓지도 않으면서 저마다 ‘오늘 바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게 될까? 저 선비왕이 이 큰 소라를 불고 이런 큰 북을 치게 하니 말이다’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니라.
그때에 선비아수라왕과 큰 병사들은 궁전에 올라가 두루 살펴보다가 저 여래께서 한량없는 백천의 대중들에게 좌우와 앞뒤로 둘러싸여 계셨는데, 천 수(數)의 대중과 한량없는 억 수ㆍ한량없는 백억 수ㆍ한량없는 천억 수ㆍ한량없는 백천억 수ㆍ한량없는 나유타(那由他) 수ㆍ한량없는 백 나유타 수ㆍ한량없는 백천 나유타 수가 있고, 또한 한량없는 성문 대중과 사람의 대중과 하늘의 대중ㆍ한량없는 범천의 대중ㆍ한량없는 정거천(淨居天)의 대중들이 있어서 역시 좌우에서 그 부처님ㆍ세존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느니라.
또 모든 성문들과 출가한 이거나 집에 있는[在家]이거나 하늘이거나 용이거나 간에 모두에게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광명을 번쩍거리면서 몹시 두려운 모습으로 그들의 뒤를 따르며 수호하고 있는 것도 보았으며 또 저마다 금시조왕을 타고 있는 것도 보았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나서는 기특한 마음을 내고 기뻐하여 날뛰면서 저마다 ‘이 분들은 모두 다 큰 신통의 힘 때문에 여기 올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들은 이런 희유한 일을 관찰해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ㆍ세존의 어느 한 제자가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마음의 원력으로 이러한 큰 장엄을 능히 이룬 것이며, 또한 이 방광여래께서도 큰 신통이 있고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을 갖추셨는지라 이것을 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모두 다 전에 없던 희유함과 특별한 마음을 일으켰으며, 이런 마음을 낸 뒤에는 모두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여래의 앞에 온몸을 땅에 대고 발에 예배하며 공경하였느니라.
아난아, 그때에 방광여래는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 이러한 지극히 정성스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잠깐 동안에 곧 수징삼매(水澄三昧)에 들었으며, 그 부처님ㆍ여래께서 수징삼매에 들었을 적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에 숙명지(宿命智)를 얻게 되어서 스스로 과거에 지었던 모든 아수라의 업(業)과 인연의 일을 보게 되었느니라.
이런 일을 보고 나서는 크게 괴로워하면서 저마다 생각하기를 ‘나는 옛날에 모든 악(惡)을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아수라의 궁전에 태어났고, 갖가지의 불선업(不善業)을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두려워할 만한 큰 몸을 얻었구나. 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어떠한 중생도 이와 같이 두렵고 무서운 큰 악업을 지은 이도 없으리라’고 하면서 모든 아수라는 저마다 스스로 정(定)에 들어가서 옛날 본래 지었던 업[本業]을 보았느니라.
이미 보고 나서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염려하였으며, 지옥에 날 때의 몸의 크고 작음과 모든 고통의 과보도 다 함께 명료해졌으니, 이른바 옥졸(獄卒)과 모든 죄인들이 손에 칼과 자귀ㆍ도끼ㆍ창ㆍ공이ㆍ방망이 등의 갖가지 고통을 주는 기구를 가지고는 다투어 와서 몸을 핍박하는 것이었느니라.
또한 끓는 가마솥[鑊湯]과 화로의 숯[鑪炭]이 이글거리면서 사납게 타오르며, 산과 강물에는 재와 쓰레기가 가득히 찼고, 지옥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다른 것은 없었으니, 이와 같이 무시무시하고 활활 타는 고통의 기구들도 보았느니라.
그들은 이런 것을 보고 나서 다시 크게 두려워했으니, 설사 세간에 일곱 개의 해[日]가 한꺼번에 나와서 하늘과 땅의 만물(萬物)이 모조리 다 녹아 없어진다 해도 이 사나운 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나니라. 이러한 일들을 보고 나서 저마다 서로 말하기를 ‘우리 아수라와 다나바는 잠깐 동안에 다 멸망하리라. 오늘 헤아려 보건대 장차 어떻게 벗어나서 이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금빛 손을 들어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을 일으켜 세웠는데, 모두는 방광여래께서 금빛의 손으로 친히 자신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심을 보았느니라.
이와 같은 큰 신력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 대하여 다시 더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모두가 함께 오른편으로 일곱 바퀴를 돌고 합장하고는 다시 일곱 바퀴를 돌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은 의복을 매만지고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여래와 모든 대중은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어 이 미미한 공양이나마 받아 주소서.’
그 때에 부처님은 선비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모든 아수라들아, 그렇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들은 허락을 받자 모두 크게 기뻐해 날뛰는 것이 한량없었으며, 그들은 저 대중들로부터 나와 부처님의 발아래 나아가서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셨으니 마땅하게 장만하겠나이다.’
32. 불승수미산정품(佛昇須彌山頂品)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큰 바다의 초열(燋熱) 입구로부터 나와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궁(忉利天宮)에 오르려고 하셨느니라.
당시 하늘 제석[天帝釋]은 곧 만상(慢上)이라는 한 음식을 맡은 천자[主食天子]에게 명하였느니라.
‘네가 만든 음식으로 다 마련할 수 있겠느냐?’
식천(食天)이 대답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천왕이여, 음식을 모두 마련하겠습니다.’
하늘 제석이 다시 말하였느니라.
‘너는 얼마만이면 마련하겠느냐?’
식천이 대답하였느니라.
‘많고 적음에 따라 능히 때를 맞추어 하겠습니다.’
이에 하늘 제석은 식천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부처님 앞에 가서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이 때임을 아시옵소서.’
그 때에 방광여래는 선비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너는 이제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궁을 보고 싶으냐?’
선비가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오늘은 누가 제가 저 수미산 꼭대기에 이르러 천상의 쾌락을 받도록 들어주어야 하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가도록 하자. 나아가 일체의 아수라와 다나바 등까지도 나는 모두 저 산꼭대기에 있는 하늘 제석의 선법전(善法殿) 위에 가게 할 터이니, 필요한 바에 따라 마음껏 먹도록 하라.’
그때에 선비왕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 위의 모든 하늘들과 아수라와 다나바들은 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싸우고 있사온데, 오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너는 이제 여래의 언교(言敎)로 너의 심념(心念)을 바루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 모든 아수라와 저 하늘들로 하여금 화합해 모여서 궁전에 함께 있게 하겠으며, 한 사람도 괴롭게 핍박당하는 이가 없게 할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야, 너는 빨리 돌아가서 이 많은 모든 대중들을 위하여 평상을 펴도록 하라.’
그때에 하늘 제석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삼가 거룩한 가르침을 받자오리이다.’
이에 하늘 제석은 초열의 처소로부터 없어지면서 수미산 꼭대기로 나왔으며, 그 때에 저숙(氐宿)이라고 하는 자리를 펴는 한 천자에게 명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속히 선법전에 나아가서 모든 평상을 펴서 세존을 모시도록 하라.’
그 자리를 펴던 천자는 천왕의 명을 받들고 선법당으로 나아가서 평상을 펴려고 하였는데, 벌써 여래와 모든 제자들과 모든 하늘의 대중ㆍ모든 범천의 대중ㆍ모든 아수라와 다나바의 대중ㆍ온갖 사람의 대중들 모두가 먼저 앉아 있었느니라.
그 때에 자리를 펴려던 천자는 부처님과 대중이 이미 좌정해 있는 것을 보고는 음식을 마련하게 하려고 제석에게 아뢰었느니라.
‘천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지금 여래와 모든 제자들, 그리고 하늘ㆍ용과 대중들은 다 함께 먼저 선법전에 앉아 계십니다.’
그때에 하늘 제석은 ‘희유하고도 희유하구나, 아, 도리천이 지극히 미혹해 있어서 세존께서 이제 이러한 신력이 계셨는데도 우리 하늘들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였구나. 또한 여래께서 이 궁절에 행차하신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라서 그랬으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늘 제석은 곧 발리사(跋利沙)라는 한 산천의 아들[算天之子]에게 말하였느니라.
‘너는 지금 빨리 가서 그 북을 쳐 이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로 하여금 때맞추어 구름처럼 모이게 하여라.’
발리사천은 천왕의 명을 받자 있는 힘을 다해서 하늘의 북을 쳤느니라.
그때에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하늘의 북 소리를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괴롭고, 괴롭도다. 우리들에게 이제 큰 재액이 이르렀구나. 그대들은 알아야 하오. 이 하늘 제석이 큰 요술로 우리들을 속이고 유혹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하였소’라고 하였는데, 그때에 하늘 제석은 모든 아수라들이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는 거듭 다시 아수라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조금 전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을 모이게 하기 위하여 이 하늘 북을 친 것입니다. 부디 다른 걱정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 때에 삼십삼천은 저마다 한량없는 백천억 수의 권속과 천녀(天女)들을 데리고 선법전으로 나왔으며, 선법전에 도달한 뒤에는 머리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는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저마다 서로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지금 여래ㆍ세존의 큰 신통력을 보셔야 합니다. 모든 아수라들과 다나바들은 언제나 땅 아래 살고 있었는데 이제 이 천상에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오.’
그 때에 하늘 제석은 삼십삼천에게 명하였느니라.
‘너희 모든 하늘들은 다 함께 저마다 한마음이 되어서 그 밖의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 것이며, 오직 여래와 대중에게 공양할 것만을 생각하여라.’
그 하늘 제석은 이와 같이 명하고 나서 자신이 먹을 모든 공양거리를 세존과 제자들에게 받들어 올렸으며, 그리고 제화왕(祭火王)의 온갖 대중들과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과 욕계의 모든 하늘들과 그 밖의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하늘들과 같은 대중들이 모두 와서 모여 앉았느니라. 그들 모두에게는 뭇 하늘들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였으니, 마치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식사를 모두 마쳤느니라.
바로 그때 제석천왕은 서서 먹을 뿐 앉지도 않았는데, 그는 부처님ㆍ세존께서 다 잡수신 것을 보자 기쁨이 충만하여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면서 용모를 단정히 하여 합장하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선비아수라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선비야, 이리 오너라. 지금부터는 이 천왕(天王)과의 오래 묵은 원한[宿怨]을 풀어 버리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라. 너도 역시 나에게서 법을 들은 제자이다. 너희들 두 사람은 언제나 화합하여 여래의 법을 행하면서 다시는 싸우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때에 하늘 제석과 선비왕은 같이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아수라와 모든 하늘들은 항시 싸우려는 마음이 있으면서 끝내 스스로 기뻐하는 마음을 낼 수 없었사온데 다행히 세존의 위신(威神)과 덕의 힘[德力]을 입사와 아수라로 하여금 이 천궁(天宮)까지 오게 하셨나이다.’
그때에 그 두 왕이 이러한 말을 하자마자 저 방광부처님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오늘의 일은 바로 너희 이 열네 동자 보살마하살의 자비의 힘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교시가야, 너는 이 열네 보살의 옛날의 인연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들은 과거에 이 삼십삼천 가운데에 났었는데, 이 모든 하늘들이 언제나 저 모든 아수라들과 크게 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고 해치면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큰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원컨대 저희는 미래에 저 아수라 궁전에서 나되 선비왕의 일곱 대부인(大夫人)에게서 각각 두 아들로 나게 하소서. 그곳에 난 뒤에 저희는 저 아수라와 이 모든 하늘들을 교화하여 언제나 기뻐하면서 다시는 원한의 마음이 없게 하겠사오며, 그 결과가 원한 바대로 되면 설사 거기서 겁(劫)을 지나도록 산다 하여도 감히 사양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교시가야, 이런 인연 때문에 이 모든 보살들은 이 하늘에서 죽어서 선비왕의 아들이 된 것이니라.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제도하는 지혜의 힘만으로는 홀로 이러한 큰일을 이룰 수 없었으니, 이 때문에 이제 여래ㆍ응공ㆍ정변각에게 청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초열(燋熱)의 재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니라.
이들은 거기에 있으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모든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소서. 저희들은 지금 큰 액난이 있는 곳에 있사오며, 비록 본래의 서원[本願]이 있다 하더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나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여러 가지 큰 괴로움과 큰 위험과 큰 재난이 많사오나, 설령 저희가 큰 지옥에 태어난다 하여도 끝내 본래 서원한 마음은 버리거나 여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교시가야, 너는 이제 이 모든 보살에게 저 옛날에 이러한 서원이 있었음을 알라.
교시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ㆍ세존은 이런 보살을 능히 호지(護持)하느냐?’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온갖 축생인 승냥이ㆍ이리ㆍ여우ㆍ개며 나아가 모기나 개미에 이르기까지도 호지하시거늘 어찌 유독 보살마하살들이겠나이까? 이들은 온갖 중생을 위하여 구호할 이 없는 이를 구호하는 것이니, 마치 소경이 광명도 없고 아주 캄캄한 가운데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저 능히 흩어 없애는 것 역시 그와 같나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이 아수라왕에게 ’당신은 이제 이 하늘에 머무르고 싶습니까?’라고 물어 보라.’
그때에 하늘 제석이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곧 선비아수라왕에게 물었다.
‘어진 이여, 당신은 세존의 언교(言敎)를 들으셨습니까?’
선비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천왕이여.’
제석이 다시 말하였다.
‘어진 이여, 당신은 지금 진실로 이런 곳에 계시기를 원하십니까?’
선비왕이 말하였다.
‘천왕이여, 이와 같은 일은 묻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모든 아수 라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설사 여러 전단숲과 그 밖의 다른 곳이라 하여도 몹시 악취가 날 뿐이거늘, 어찌 감히 이런 모든 하늘의 궁전을 바라기나 했겠습니까? 바로 세존의 큰 자비와 위력 있는 신령함이 온갖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저희로 하여금 이 수미산 천궁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천왕이여, 당신이 나에게 묻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즉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 할지언정 당신은 나에게 묻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삼십삼천은 저절로 이루어진 복의 과보[福報]라 모자라는 바가 없지만, 저희 모든 아수라들은 복을 받지도 못하였고 많은 일에서 아첨과 속임수만이 많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모두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런 곳을 탐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또한 천왕이여, 이제 거듭 아룁니다. 모든 아수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원한 것은 수미산 위를 좋아하고, 모든 하늘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도즙[蒱桃漿]을 마시는 것이었으니, 이 세 가지 일을 위하여 항상 하늘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역시 모자람이 있고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받습니다. 싸움을 할 적에는 저 사천왕(四天王)이 갖가지 몽둥이로 우리들을 때리고 해치므로 본래 있던 곳으로 도망쳐 옵니다.
천왕이여, 이런 인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 할지언정 나에게는 묻지 마셔야 하십니다.
또한 천왕이여, 비유하면 저 장부가 음욕으로 여인을 탐할 적에 모든 재보와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비록 허락을 얻었다 하더라도 구하던 마음에 계합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그때 온밤 내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데, 나중에 그 여인이 한 번 와서 뜻을 이루었다면, 천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때에 장부는 이 여인을 얻어서 몹시 기뻐하겠습니까?’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기뻐할 것입니다.’
아수라왕 선비가 다시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천왕이여, 모든 아수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수미산 꼭대기에 살게 해서 모든 하늘의 일을 보고 알게 하라’는 마음을 항시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이제 여기에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만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로 물어야 합니까?
또한 천왕이여, 마치 저 장사꾼 우두머리[商主]가 큰 바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진기한 보배를 구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위험을 돌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는 처음 해안(海岸)에 도달하였는데, 갑자기 뭇 배를 만나서 붉은 전단[赤旃檀]을 싣고 저절로 돌아오게 되거나 혹은 갖가지 배에 기이한 보배를 가득히 채워 일시에 다투어 오거나 하면, 천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때 장사꾼 우두머리는 위험한 재난을 겪지도 않고 기이한 보배를 많이 얻었으므로 또한 더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그 장수의 우두머리의 기쁨이야말로 한량없을 것입니다.’
선비가 다시 말하였다.
‘그와 같습니다. 천왕이여,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선근을 심지도 않고 공덕을 짓지도 않았는데, 이제 갑자기 이르기 어려운 곳을 얻고서도 몹시 기뻐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에 하늘 제석과 아수라왕은 둘이 같이 기뻐하면서 함께 세존께로 나아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는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아수라와 크게 싸우는 일을 편히 쉬게 되었느냐? 또 아수라와 다나바와 싸우는 인연도 끊어 없앴느냐?’
그때에 하늘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자와 이미 일미(一味)를 이루었나이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며, 저는 처음부터 모든 아수라를 해치려는 이런 나쁜 마음은 없었사오니, 다만 이 아수라만 몹시 불쌍하나이다. 혹 고행(苦行)을 닦아서 조그마한 몸의 힘을 얻으면 심회(心懷)가 견디질 못하고 저와 싸우기를 좋아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저에게 억경(億頃)이라는 코끼리가 있음을 모르고 있으니, 만일 이 코끼리로 하여금 한 번 성이 나게 하면 곧 저 큰 바다의 물도 바짝 마르게 하나이다. 그렇게 크게 싸움을 할 때는 다시 크고 건장한 큰 몸으로 변화하는데, 마치 수미산이 대지(大地)를 머물러 지니는 것 같으며 네 발과 코로 한 발짝씩 걸을 때도 마치 수미산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코끼리의 그 몸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하며, 그 큰 바닷물의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하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러하느니라. 정녕 그러하느니라.’
그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에 생각하기를 ‘나에게는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코끼리가 있다’고 하였으며, 제가 탄 뒤에는 다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을 살펴보라. 진실로 크게 어리석고 혼미하여 나에게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힘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제 이 몸 이외의 큰 코끼리의 불가사의한 힘은 차치하고라도 저에게는 다시 오른손에 쥐고 있는 큰 금강저(金剛杵)가 있으므로 또한 ‘만일 나로 하여금 이제 손 안에 있는 금강저를 시험 삼아 놓게 한다면,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인 사대해 안의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의 궁전은 일시에 소멸되고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비록 이와 같은 신력이 있다 하더라도 끝내 그들을 파괴하려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어떤 물러서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의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에게 속박을 당할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때릴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벨 때나 또는 다른 이가 끊을 때에 보복하고 해치려 한다면 끝내 옳지 못할 겁니다. 오직 부처님ㆍ세존만이 스스로 이런 일을 아실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 보살마하살이 이런 일을 대할 적에는 언제나 스스로 이와 같이 착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온갖 즐거움을 버릴 따름이며, 세간에서 여의고 파괴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을 도로 화합하도록 하겠다’고 해야 하나이다. 그 때에 보살은 언제나 행을 염(念)해야 하며, 이와 같이 뜻[意]을 삼가서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항시 법을 염(念)해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세존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세존의 가르침대로 하겠나이다. 또한 마치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 저마다 오히려 서로를 공양하는 것처럼 저희들도 역시 서로서로 공경하고 공양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무릇 마시고 먹을 것은 모두 다 선비아수라왕과 나누어서 함께 하겠사오며, 그 밖의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도 다 함께 무외(無畏)를 베풀어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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