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5권
대법거다라니경 제15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33. 천복아수라품(天伏阿修羅品)
“그 때에 세존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네 가지 법으로 필요한 것들을 훌륭히 열어 보이고 섭수(攝受)해서 넓고 크게 깨달음을 열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태어나는 곳[生處]을 싫어하게 하고 보리(菩提)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게 할 수 있느냐?’
그때에 하늘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陀那婆) 등으로 하여금 태어나는 곳을 싫어하여 여의게 할 수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지혜가 없는지라 그가 물러서는지 물러서지 않는지 알 수 없나이다.’
그 때에 하늘 제석에게는 선면(善面)이라는 한 주병천자(主兵天子)가 있었는데, 하늘 제석이 그에게 말하였느니라.
‘선면아, 너는 지금 내가 늘 타고 다니는 억경(億頃) 대상왕(大象王)에게로 빨리 가서 왼손으로 그의 겨드랑 위를 쓰다듬으며 그에게 분명하게 ‘억경아, 이제 천왕께서 나를 통해 너에게 명하시길 자기 몸을 장엄하는 일을 마땅히 나타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말하라.’
그때에 선면천은 천왕의 명을 받들고서 곧 대상왕 억경에게로 가서 천왕이 명한 대로 즉시 왼손으로 그의 겨드랑 위를 쓰다듬으면서 ‘억경아, 이제 천왕께서 나를 통해 너에게 명하시길 ≺스스로 몸의 크나큰 장엄을 나타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말하였느니라.
그 때에 큰 힘을 지닌 상왕(象王) 억경은 선면천이 왕의 명을 전하는 것을 보고 나서 문득 대신력의 신통[大身力通]을 생각하였으며, 대신력의 신통을 생각한 뒤에는 먼저 네 개의 발로 사대해(四大海)에 가득 채우자 사대해의 물이 일시에 솟아올라 수미산과 높낮이가 가지런해졌고, 다시 사방에서 두루 사대해를 변화시켜 네 개의 머리로 만들고 낱낱의 머리 위에는 각각 하나의 코가 있게 하고, 이때 상왕은 사해(四海)에 있는 네 개의 아수라 궁전[阿修羅宮]과 네 개의 초열(燋熱)에 포섭된 경계를 네 개의 코로 주위를 말아 가지고 머리 위에다 들어 올려놓았으며, 그 밖의 온갖 아수라 등 도리천왕의 궁전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역시 모두 코로 주위를 말아 가지고 머리 위에다 올려놓았느니라.
머리 위에다 올려놓은 뒤에 크게 ‘너희들은 포박 당하였다. 너희들은 포박 당하였다’라고 외쳤는데, 이와 같이 세 번을 외치고는 정수리에다 이들을 이고 뜻대로 다녔으나 땅은 무너지지 않았느니라.
모든 아수라들은 저마다 ‘아, 슬프도다. 우리들 모두는 다 죽게 되었구나. 이 권속들과 궁전과 성황(城隍)이 모조리 다른 이의 소유가 되었으니 말이다’라고 생각하였느니라. 그 때에 그 아수라들은 다시 초열이 전부 코끼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이미 그런 두려운 중생을 보고는 곧 자기 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失沒想]을 내면서 드디어 크게 혼란에 빠져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했으며, 본래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에 이 모든 아수라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아첨하고 속였던 일들이 모두 앞에 나타났느니라.
이런 일을 보고 나서는 또한 싫어하는 마음을 내면서 ‘나의 몸은 잠깐 만에 스스로 닳아 없어지겠구나. 원컨대 다시는 이와 같은 두려운 중생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14인의 동자보살이 부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저희들이 이제 어떠한 방편을 써야 이 큰 코끼리의 재난에서 벗어나게 되겠습니까?’
그 때에 선비아수라왕과 다나바는 모두 다 크게 두려워하면서 서로의 잘못을 꾸짖으며 앞서 했던 일들을 뉘우치고 있었느니라.
그때에 그 동자들은 다시 생각하기를 ‘이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은 이제 이미 큰 곤액(困厄)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저 능히 끊을 수 있음이 이 아첨의 요술[諂幻]로서 해로운지 아닌지를 한 번 관찰해 보리라’고 하였으며,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드디어 부왕에게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두려운 일들은 모두 요술이나 꿈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자 그 아수라왕이 잠깐 사이에 스스로 자각하자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이것은 바로 무슨 일일까요?’
그때에 선비왕은 동자들에게 말하였느니라.
‘우리들은 오직 이렇게 뭉쳐서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은 평소에 선근이 없어서 오로지 나쁜 업만을 행하였고, 언제나 중생에 대하여 독해(毒害)를 끼치려는 마음을 내었으며, 만 사람에게도 인자하거나 착한 마음을 내지 않았고, 오직 살생의 마음만을 내어 다른 중생들을 괴롭혔을 뿐이어서 온갖 참되지 않은 행만 더욱 자랐기 때문이다. 항시 성을 내고 원망하는 마음속에 머무르면서 다만 이와 같이 싸우며 행한 파계(破戒)의 인연으로 이제 이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동자들이 다시 말하였느니라.
‘대왕이여, 우리들은 오늘 어떠한 인연으로 코끼리를 기쁘게 해서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이 당하는 곤액의 일에서 벗어나게 할까요?’
선비왕이 말하였느니라.
‘동자들아, 이 신(神)을 제외하고 또 어느 신이 이보다 큰 이가 있겠느냐?’
동자들이 아뢰었느니라.
‘또한 큰 신[大神]이 있습니다. 이른바 여래왕(如來王)이십니다. 이제 모두 일어나야 합니다.’
그 때에 일체의 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코끼리의 등 위에 섰는데, 또한 일심으로 합장하며 말하였느니라.
‘나무 선신(南無善神)ㆍ나무 승신(勝神)ㆍ나무 대신(大神).
저희들은 이제 모두가 수승하신 온갖 신[勝一切神]과 이 위없는 신[無上神]께 귀의하나이다.
저희는 오늘부터 일체 이와 같은 아첨과 속임수를 다시 쓰지 않겠사오니, 원컨대 다시는 이와 같은 큰 액난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그 때에 모든 동자보살들은 다시 ‘우리는 이제 모든 아수라로 하여금 공경하고 합장케 해서 스스로 아첨하는 요술을 깨닫게 하여야겠다. 스스로 깨달아 알고 나면 곧 아첨하는 요술이 제거되리라’고 생각한 뒤에 저 모든 아수라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당신들은 이제 어서 와서 불ㆍ법ㆍ승에게 귀의하십시오.’
모든 동자들도 스스로 서로 말하기를 ‘우리는 이미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ㆍ세존을 깊이 믿고 물러나지 않게 하였으니, 당연히 이와 같은 큰 재난에서 해탈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하늘 제석은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이 모두 조복된 것을 알고 나서 한 하늘에게 말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저 코끼리왕에게 가서 몰래 이 주문을 외워라.’
하하체 가야바하체 난다다 부디 아시다 아다 아아차다범 사바녜
訶訶滯 迦耶婆訶滯 難陀陀 浮底 曷薩多 曷多 阿揭車答梵 娑婆禰
비샤남
鞞舍南
그 때 코끼리왕은 이 주문을 듣자마자 즉시 이와 같은 변화로 만든 모든 장엄을 거두어들이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코로써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을 말아 가지고 모두 하늘 제석의 앞에다 가져다 두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이 코끼리왕과 아수라들은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늘 제석이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희들 모든 하늘들은 비록 이와 같이 변화하는 신통의 힘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못 기이한 신통으로 저 모든 감관을 조복함은 없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교시가야, 너희는 지금 부처님ㆍ여래를 믿느냐?’
하늘 제석이 말하였느니라.
‘저희들은 오늘 여래를 깊이 믿사오며 여래께 귀의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이들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들은 역시 이 여래의 큰 지혜의 경계로 가르쳐 보여야 하오니, 저희의 알 바가 아니옵니다.’
부처님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교시가야, 너는 이제 마땅히 모든 아수라들을 가르쳐 보여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은 다 하늘의 과보[天報]를 받지만 과보를 받을 때 어지러운 마음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들에게 두 가지의 참회하는 법[悔法]을 열어 보여야 하느니라.’
34. 아수라본업품(阿修羅本業品)
그 때에 하늘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모든 아수라들은 이와 같은 초열구(燋熱口) 가운데 났사오며, 어찌 아무런 공덕의 법이 없으면서 저 초열에서 나와 사대왕(四大王)의 궁전이 머무는 곳에 이르겠나이까? 그리고 그들은 유독 옛날의 나쁜 원[惡願]이 있어서 하나의 착한 법도 없는지라, 그 뒤에 목숨을 마치면 악도(惡道)에 날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회들은 ‘그들은 오로지 온갖 착하지 않은 업을 지었을 뿐이기에 악도에 나서 이와 같은 몸을 얻었거늘, 어떻게 큰 신통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저는 이 가운데서 마음에 놀라고 의심을 내나이다. 이 때문에 이제 저는 부처님ㆍ세존께 묻사오니, 이와 같은 이치를 어떻게 알아야 되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이런 인연 때문에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모들 비유를 들겠으며 비유로써 너로 하여금 알 수 있게 하리라.
교시가야, 대저 나는 곳[生處]에 집착하는 이는 범부요, 머무르는 곳[住處]에 탐하여 물들면[貪染] 바로 축생이라 하느니라. 이런 업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갖가지 태어나는 곳을 분별하면서 지금은 이곳을 버리고 미래엔 저곳에 나야 한다고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목숨을 바쳐 후생의 몸을 받을 적에는 혹 더 뛰어나기도 하고 더 하열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업을 지을 적에 큰 원(願)을 일으키면서 ‘나로 하여금 저 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과보를 받게 하되 수명은 짧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느니라.
그들은 혹 축생도(畜生道)에 나기도 하나니, 받는 모든 몸은 갖가지 업으로 인해 갖가지 이름을 얻는데, 그 태어나는 몸[生身]과 이름 나아가 과거의 갖가지 업으로 성취한 바가 모두가 눈앞에 나타나느니라.
저 축생의 몸은 도리어 이와 같은 축생의 이름을 얻으면서 실제 자기 이름으로 일컫는 것이니, 이른바 ‘나는 바로 새다. 나는 사구니(奢拘尼; 새의 종류)이다. 나는 용이다. 나는 건달바이다. 나는 아수라이다. 나는 다나바이다. 나는 금시조이다. 나는 코끼리이다. 나는 말이다. 나는 낙타이다. 나는 당나귀이다. 나는 소이다. 나는 물소이다. 나는 개이다’라고 하며, 나아가 온갖 축생이 받는 몸까지도 일체가 다 이 몸에 의거하여 이름을 붙이느니라.
교시가야, 이제 말하노니 ‘너희들 모든 하늘이 얻는 이름도 역시 업연(業緣)으로 인한다’고 하느니라.
교시가야, 모든 아수라들이 생을 받는[受生] 것은 모두가 지나간 업[往業]을 말미암아서 지금의 이 몸을 받는 것이니,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야 하느니라. 옛날 인간 세상에 있을 적에 바른 법[正法]을 어기고 배반한 것이니, 어기고 배반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났고 또한 장차 나기도 할 것이며 혹은 때로 났었기도 하였느니라.
교시가야, 이와 같은 업을 마땅히 자세히 들어야 하며, 들은 뒤에는 받들어 행하면서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로 하여금 이런 업을 짓고서 다시는 여기에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오직 그로 하여금 악업을 끊게 하려 할 뿐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부처님ㆍ여래의 바른 가르침[正敎]에 의지하여 수행하다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후에는 부가라상(富伽羅相)을 지으면서 다른 종류의 법을 행한다 하자.
그가 만일 부가라상에 머무르면서 다른 법을 행할 적에 혹 사마타(奢摩他)의 일을 염(念)해서 여래의 바른 가르침에 의지하지 못한다면, 제 마음으로 부가라상을 분별하여 허망한 생각이 백이나 천 또는 그 이상으로 현전하면서 드디어 이 부가라상에 머무르기를 좋아해 즉각 사마타의 일을 함으로써 세간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또한 여래께서 말씀하신 비바사나(毘婆舍那)의 일에 의지하지도 못하고 부가라상을 분별하지도 못하며 또한 비바사나에 의지하지도 못하느니라. 그러나 그 중생은 다만 온갖 의복ㆍ침구ㆍ음식ㆍ탕약만을 위하여 마을이나 성읍(城邑)을 오가면서 놀고 머무를 뿐이니라.
혹은 다섯 가지 신통을 완전히 갖춘 이거나 혹은 네 가지 혹은 세 가지 혹 한두 가지도 얻지 못한 이가 모두 바른 행[正行]을 헐뜯으며 이와 같은 법을 행하니, 이미 이와 같이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고 등지면서 금계(禁戒)를 깨트려 훼손시키느니라.
부처님의 모든 제자로서 공(空)을 말할 수 있는 이는 끝내 다시는 아첨하고 속이는 마음으로 온갖 부처님 보리[佛菩提]의 일을 짊어짐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이라도 여래께서 말씀하신 무상법(無相法)에 의지하지 않으면 역시 이와 같은 무상법을 통달할 수 없으며, 이렇게 법의 모양을 통달하지 못하는지라 곧 큰 사견(邪見)의 길에 들어서게 되나니, 그 사람은 이곳에 집착하고 이와 같이 주착(主著)하면 끝내 교화할 수 있는 이도 없고 또한 막아서 못하게 할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아첨하는 요술[諂幻]에 집착하는 것이니, 만일 아첨과 속임수를 행하면 오히려 나타나지 않은 형상의 과보[不現形報]를 얻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영원히 모든 부처님 보리 가운데서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쌍(四雙) 팔배(八輩)18)의 장부나 대인(大人)이 승보(僧寶)에 떨어진 것을 드러낼 수 없나니, 그런 사람은 그 가운데서 영원히 분한(分限)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이와 같은 법의 행[法行]을 상실했으면서도 오히려 또한 다른 이의 받들어 섬김과 공양을 받기 때문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모든 세존의 처소에서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고 나아가 네 글귀로 된 한 게송[一四句偈]이라도 그 이치를 이해한다면, 그들은 이와 같이 받들어 섬겨지거나 내지 목숨이 다하도록 한 곳에 앉아 있지도 않으리라.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곳에 태어나서 항상 아첨하는 요술을 닦아 익히면서 그곳을 원을 세우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닦아 익히면서 버리지 못하며, 그 사람은 아첨하고 속이는 마음 때문에 인간에 태어날 적에도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달하지 못하고 또한 완전히 갖추지도 못하면서 오직 나쁜 행을 행할 뿐이며, 나아가 목숨이 다하면 이와 같은 곳에 태어나고, 그 옛날에 이와 같은 업을 지었는지라 목숨이 다하면 저 큰 지옥 안에 나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모든 아수라들이 몸을 받는 인연이니, 너희는 마땅히 기억하고 지녀야 하느니라.’
35. 잡류본업품(雜類本業品)
그 때에 부처님은 다시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교시가야, 그 밖의 모든 축생들의 업행(業行)과 과보(果報)는 그들이 받은 몸과 같으니, 이미 몸을 받은 뒤에는 다시 심장(心藏)을 버리고 어떤 몸을 받느냐에 따라 업을 짓고 원하고 구하면서 다시 그 몸을 받느니라. 어디서부터 이런 몸을 얻고 받는지, 또한 그 마음이 짓게 되는 행의 차별된 일을 나는 이제 해설하리니, 너는 자세히 들어야 하느니라.’
그때에 하늘 제석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이 바로 때이오니 원하옵건대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사중(四衆)은 들은 뒤에 가르침에 의거하여 받들어 행하리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일 모든 이와 같은 축생의 몸을 멀리 여의고자 하면 이 법 가운데서 마땅히 의지하고 행하여야 하며, 만일 여래의 해설한 바에 대하여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깨우쳐 알면 곧 축생의 몸 안에서의 모든 괴로운 일을 끊어 없앨 수 있느니라.’
그 때에 부처님은 다시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어떤 것을 야차(夜叉)라고 하느냐? 야차란 받는 몸에 따라 야차라는 이름을 얻느니라. 어떻게 아는가? 그는 옛날에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나쁜 업을 지어 이와 같은 안락하지 못한 몸을 얻었기 때문에 야차라 하느니라.
당시 그는 약간이라도 나쁜 행을 지으면서 이와 같은 마음을 낸 것이니, 그를 모든 스승들이 가르치고 경계할 적에는 ‘잘하십니다. 존자여, 그와 같은 일은 저도 스스로 할 수 있거늘, 존자는 무엇 하러 자주 나를 가르쳐 인도하려 하십니까?’라고 하니, 그 사람은 험상궂고 사나워서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니라. 당시 이미 이런 나쁜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야차의 몸을 얻고 그 밖의 과보는 받지 않느니라. 비록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사람과는 같지 않으며, 야차의 인연을 완전히 갖추어서 이런 나쁜 몸을 받는지라 한 군데에 머무르지도 않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야차가 몸을 받는 인연이니, 너희는 기억하고 지녀야 하느니라.’
그 때에 하늘 제석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시 나찰(羅刹)의 인연을 묻겠나이다. 어떻게 하여 이 나찰의 몸을 얻고 받으며 또한 어떤 이치로 나찰이라 하나이까? 원하옵건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며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출가(出家)한 사람이거나 재가(在家)의 사람이거나 간에 부처님ㆍ세존이 말씀하신 경교(經敎)를 듣고도 그대로 법답게 수행하지 않고 오직 아첨과 속임수만으로 사람에게 ’그대는 이제 마땅히 이 법을 수호하고 지녀야 한다’고 설법할 뿐 자기 자신은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지도 않고 다만 세상의 평판[名聞]과 도중(徒衆)의 이익만을 위하여 이런 말을 할 뿐이니, 끝내 진실한 행[實行]은 없느니라.
또한 ‘그대는 이 법을 수호하고 이 법만을 보호해야 한다’고 비록 말은 하지만, 본래의 마음은 여러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이고, 많은 재물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마을을 돌아다니고 성읍(城邑)을 오락가락하면서 다른 비구가 먼저 성읍에 있는 것을 보거나 혹은 뒤에 오면서 의복ㆍ음식ㆍ의약을 구하는 걸 보면 그가 자기보다 나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름과 이익을 범하고 빼앗으며, 이렇게 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뜨거운 번뇌가 일어나 그를 상하게 하고 해치느니라. 혹은 때로 싸우면서 저 비구와 단월(檀越)에게도 아울러 나쁜 마음을 내는데, 나쁜 마음 때문에 목숨을 마치면 곧 나찰귀(羅刹鬼) 가운데에 떨어지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나찰이 몸을 받는 인연이니, 너희는 기억하고 지녀야 하느니라. 교시가야, 이 때문에 저 출가한 이거나 재가인이거나 간에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 법을 들은 뒤에는 다른 이를 위하여 바르게 연설하라. 왜냐하면 악한 세상[惡世] 가운데서 이와 같은 법을 연설하고 다시 능히 행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은 얻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시방 세계 가운데서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이 출현하신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니라.’
제석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만일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신다면 누가 이러한 몸 받는 법[受身法]을 연설하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이제 이와 같은 이치를 묻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이치는 모두 세간 가운데에 항상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그때도 이것을 묻는 이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 때에는 그 두려움이 많고 모든 부처님ㆍ세존은 세간에 출현하시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제석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벽지불(辟支佛)이 세간에 출현하시면 어떠한 이로움이 있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일 저 모든 부처님께서 연설하실 바가 없을 때에 벽지불은 세간에 출현할 뿐이니라.
교시가야,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목숨이 끝날 것을 알고서 모든 대신들을 모아 놓고 여러 아들들을 두루 관찰하는데 성왕의 지위[聖王位]를 이을 만한 이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 때에 대중 안에 만일 성왕의 상호를 두루 갖춘 이가 있다면 묻기를 기다리면서 스스로 자세히 말하지 말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그때의 대중이 이 큰 일에 대하여 의혹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교시가야, 여래ㆍ응공ㆍ정변각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이 세계에 다시는 위광(威光)이 없는 것을 보지만 법을 알고자 하기 때문에 저 벽지불의 공행(功行)을 건립하게 되느니라.’
그 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아수라와 다나바 등에게 있는 이름은 어떠한 것입니까?’
부처님은 교시가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모든 하늘들도 역시 아수라라고 이름할 수 있으며, 하늘은 수라(修羅)라고 하느니라. 수라라는 말은 곧 아수라이니라. 어떤 것이 수라가 곧 아수라인가? 교시가야, 모든 아수라들은 모든 하늘들이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을 받는 것을 보는데, 이런 일을 볼 때 항상 생각하기를 ‘원컨대 우리들로 하여금 수라가 될 수 있게 하소서’라고 하고, 이런 생각을 한 뒤에 곧 스스로 ‘다시 어느 곳에 따로 수라가 있겠느냐? 내가 보는 바처럼 나는 진짜 수라요 내가 바로 수라이다’라고 생각하나니, 이렇기 때문에 다시 별명(別名)을 붙여서 아수라라 하느니라.’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아수라 등에게는 실로 이런 일이 있사옵니다.’
그 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다나바(陀那婆)라 하온데 다나바라는 뜻은 무엇을 말하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다나바라 이름붙인 인연과 몸 받는 법을 이제 해설하겠느니라. 만일 사람이 부처님의 교법(敎法)에 조금이라도 어기거나 등진 일이 있으면,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이느니라.’
제석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어기고 등진다[違背]는 뜻은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옛날 어떤 사람이 일찍이 사문으로서 부정(不淨)한 행을 행하고, 시주의 의복ㆍ침구ㆍ음식ㆍ탕약을 받아들이면서도 보시를 행할 적에는 시주로 하여금 장애를 많이 짓게 한 것이니, 혹 대중에게 보시하려 함이 있을 적에 보시하는 일을 훼방하기도 하고 보시하는 일에 함께 기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불선근(不善根)을 성취한 것이니라. 이러한 사람이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저 다나바 중에 나는 것이니, 보시의 행을 방해했기 때문에 다나바라 하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다나바가 몸을 받는 인연이니, 너희는 기억하고 지녀야 하느니라.’
그 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아울러 그 밖의 다른 축생으로 몸을 받는 것, 이른바 나는 새나 까마귀나 족제비나 말이나 소나 당나귀나 사자나 호랑이나 코끼리나 표범이나 또는 토끼 등에서부터 미세하게 몸을 받는 중생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업행(業行)이 있기에 이러한 형상을 얻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이 모든 축생들은 나쁜 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몸을 얻게 되어 고통을 많이 받느니라.
교시가야, 이 세 가지가 태어나는 처소[生處]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볼 겨를도 없거늘 다시 무엇 하러 묻는 것이냐?
교시가야, 만일 어떤 중생이 사람이거나 비인(非人)이거나 간에 부처님 법을 믿지 않고 스님들을 헐뜯으며 설령 믿는 마음이 있다 해도 청정하지 못하면, 청정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더러운 곳[濁處]에 나느니라. 왜냐하면 마치 저 야간(野干)이 사자나 사자의 일을 하지 못하는데도 오직 방편으로 위로하고 달래면서 싸움을 끊는 걸 제외하면 서로 다른 이름[二名]을 분별해 사자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교시가야, 만일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모든 법을 분별할 줄 모르는데다 믿음을 내지도 않고 또한 생각하여 구하지도 못한다면,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악취(惡趣)에 떨어지느니라.’
36. 설무상품(說無相品)
그 때에 방광여래는 다시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일 사람이 이러한 법구(法句)를 분별하면 저 진여(眞如) 가운데서는 끝내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저 진여 속에서는 사람도 얻을 수 없고 하늘도 얻을 수 없으며 아수라도 얻을 수 없고 다나바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신(神)과 나찰(羅刹)도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온갖 취[諸趣]까지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온갖 것을 이미 얻을 수 없거늘 어찌 누가 말할 바가 있을 수 있겠고 어떻게 설명하겠으며 무엇 때문에 설명이 있겠느냐?
왜냐하면, 교시가야, 저 진여 가운데서는 마침내 볼 수 없기[不見] 때문이니, 볼 수 없다면 그 밖의 온갖 생겨나는 구절[生句]의 처소는 오직 저 모든 여래의 방편으로 염(念)하는 때만을 제외하곤 이 다라니 법문(陀羅尼法門)의 수다라(修多羅) 가운데서 방편으로 설명할 때뿐이니라.
만일 설명이 있다고 하면 마땅히 먼저 생각하기를 ‘그것은 끝내 이 열두 구(句)를 여의지 않는다’고 해야 하리니, 어떤 것이 열두 구인가? 이를테면 아자문(阿字門)과 가자문(迦字門)이니, 이 가운데서 모름지기 자신의 행(行)을 알아야 하느니라.’
제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어떻게 하면 자신의 행을 알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 가(迦) 자란 마땅히 긴 소리[長聲]로써 대법장(大法藏)에 있는 음구(音句)를 맺어야 함이니, 억수(億數)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결집(結集)하는 가운데서 그 누가 있고 누가 없으며, 무엇이 이루어지고 무엇이 파괴되겠느냐?
그 아자문이란 온갖 문구의 음[文句音] 가운데에 두루 포섭되어 평등하게 열어 일으키는 것이니, 이른바 볼 수 없는 것을 능히 보며 본 뒤에는 곧 광명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이 가운데의 광명은 바로 이 다라니 수다라의 법문 가운데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제석이 다시 물었다.
‘이 가운데서는 어느 것을 이름하여 그러하다고 하겠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이 가운데서 아(阿) 자를 이름하여 그러하다고 하느니라. 가(迦)자는 광명을 내며 나(那) 자는 능히 보는 것[能見]이니라.’
제석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능히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마땅히 다른 경계의 지혜[他境智]로써 원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보아야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이 구하고 좋아할 수 있다면 저절로 이 세 구(句)의 방편에 들어가서 곧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마치 앞서 한 비유와 방편의 설명과 같으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의 청정하면서 청정하지 않는 근본 처소[根本處所]를 믿고 행해야 하나니, 이 근본 처소에는 뿌리[根]도 없고 구(句)도 없고 가지와 잎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언설(言說)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뿌리도 없고 가지와 잎도 없는가? 뿌리와 구와 가지와 잎을 구할 만한 처소가 없기 때문이니, 반드시 이와 같이 설명해야 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비유하면 마치 뭇 새들이 신통의 힘이 없는데도 허공 속에 날아오를 수 있고, 그 새가 공중에 있으면서 스스로의 업[自業]을 익히며 바람의 힘을 타기 때문에 문득 돌아다닐 수 있어서 또한 돌아다닌 곳의 분제(分齊)의 많고 적음을 능히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처럼 교시가야, 이 세 가지 법구(法句)를 너희들은 그 한제(限齊)을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어떠한 구(句)가 긴지, 어떠한 구가 짧은지, 어떠한 구가 중간인지, 어떤 것을 지녀야 하는지, 이것들의 화합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 이 화합한 구의 양(量)이 많고 적은지를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이것이 방편이라서 다만 변화[化]와 같다 한다면, 그 사이에 어떻게 언설이 있을 수 있었으며, 다시 어떤 인연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냐? 만일 이 세 가지의 구문(句門)을 깨뜨리고자 해서 그가 만일 물을 때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그때에 하늘 제석이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다라니 수다라 법문의 세 가지 구의 뜻[句義]을 제가 이제 어찌 지혜로써 분별하며 해석할 수 있겠나이까?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방편으로 열어 보이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분별하여 알 수 있게 하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나는 이미 너희를 위하여 이 세 가지 구문을 분별하고 해설하였는데, 너희들은 들은 뒤에 바로 지니지 않고 곧 잊어버리고는 다시 정중하게 나에게 묻는구나.’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진실로 이미 저희를 위하여 이 세 가지 구의 뜻을 널리 연설하셨나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열두 구(句)를 권속으로 삼아서 이 근본 방편의 업장을 얻는 것인데도 저희는 잘 지니지 않아 곧 잊어버렸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모두는 거룩한 가르침을 받들지 못해서 여래께서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옵니다. 만일 여래께서 다시 저희들을 위하여 열두 구를 말씀하시게 되면, 저희는 마땅히 가르침에 의거하여 일심으로 받들어 지니겠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너는 여래가 방편으로 구문(句門)의 뜻을 분별하고 해설하는 것임을 아느냐? 그러면서 너는 방편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니, 나도 역시 너를 위하여 모두 분별할 따름이니라.’
37. 권수행품(勸修行品)
그 때에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그와 같이 이해하오니, 실인즉 세 가지 언교 업장의 행법[言敎業藏行法]을 여의지 않사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아 자 등의 문은 저도 이미 조그마한 부분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 가운데서 사유하여 의심을 결단하였사오나, 세존께서 모두 분명하게 아시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여래ㆍ세존의 지혜는 명료하여 끊어짐도 없고 또한 의심이나 장애도 없으니, 여래의 지혜와 변재는 너희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라. 여래가 행하는 바는 한량없는 시절의 겁수(劫數)를 지나서야 비로소 분명하게 알 수 있느니라. 내가 앞서 이미 너희들을 위하여 해설한 것처럼 너희들은 마땅히 이 업(業)을 정진하면서 수행하되 밤낮으로 엿새 동안 마음으로 아(阿) 자를 염(念)해야 하고, 또 여섯 달 동안 가(迦) 자를 염해야 하며, 다시 여섯 해 동안 저 나(那) 자를 염해야 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저 보살마하살이 만일 육 일, 육 개월, 육 년 동안을 오로지 한마음으로 이 아(阿)ㆍ가(迦)ㆍ나(那) 등의 세 글자 법문[三字法門]을 염하면, 그때 얻게 되는 공덕은 저 억수 겁 동안 온갖 보시를 행한 것보다 뛰어나느니라.
왜냐하면, 교시가야, 가령 억수 겁 동안 행한 보시라 하여도 얼마나 있을 수 있겠으며, 가령 또 억 겁 동안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온갖 필요한 바를 공경하고 공양했다 해도 그 복 또한 얼마 없으며, 설령 억 겁 동안 업행(業行)을 많이 닦아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다 하여도 그 얻게 된 과보 역시 말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저 어떤 이가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의 아ㆍ가ㆍ나 자(字)를 행하면서 육 일 혹은 다시 육 개월 내지 육 년 동안을 보내면서 얻게 되는 공덕은 많고 적음을 물을 것도 없이 모두가 부처님의 지혜[佛慧]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교시가야, 내가 지금 말한 세 가지 언교 업장을 만일 행하거나 받아 지니거나 알고 보는 이가 있으면, 모두가 다 여래 지혜의 지위[智地]에 들게 되나니, 모든 여래의 지혜는 다 이로부터 나오느니라.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모두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니, 모든 부처님의 행한 바를 능히 수순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교시가야, 이 일은 우선 차치하고 만일 사람이 육 일, 육 개월, 육 년 동안 이 세 가지 법을 지니고, 또다시 앞의 세수(歲數) 동안 이 법을 수행하면서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고, 여타의 업을 짓지도 않으며 여타의 일을 논하지도 않고, 오로지 이 업만을 닦아서 받아 지니고 버리지 않으며, 이치를 사유하여 스스로 분명히 알게 되면, 가령 억 겁 동안 모든 부처님ㆍ세존께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얻는 과보도 끝내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큰 정진을 일으켜 그 때의 수(數)보다 더 이 세 가지 문[三門]을 염하면서 모든 법을 섭수(攝受)하여 얻게 된 과보도 한량없고 그지없지만 앞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니라. 만일 사람이 이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마음을 내지 못하면, 이들이야말로 심히 크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이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이와 같은 이치를 어떻게 아는가? 비유하면 마치 번개가 칠 때에 좇아오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무르는 곳도 없지만 눈으로 보게 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불을 놓을 때 바람의 힘이 평등하면 뭇 연(緣)이 화합하여 불빛이 치성하지만 그 화계(火界)는 끝내 바람을 여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처럼 교시가야, 만일 깊고 예리한 지혜를 성취하고자 하면 반드시 부지런히 힘쓰면서 세 가지 언교 업장의 법을 관찰하여야 깊은 지혜가 비로소 성취되나니, 이와 같은 깊은 지혜는 세 가지의 법(法)을 여의지 않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마치 사람이 공을 들여 풀과 나무를 쌓아 놓고서 조그마한 불을 붙인 후에 입으로 불거나 부채로 부치거나 하면, 잠깐 동안에 큰 불덩어리가 되면서 널리 세계를 두루 비추는데, 불과 바람의 인연이 화합하여 이런 불빛이 나오는 것처럼 이 마음의 힘으로 부지런히 힘쓰고 세 가지 언교 업장의 법을 관찰하면 큰 지혜의 광명이 나와 온갖 것을 두루 비추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그 때에 하늘 제석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 세 구(句)의 이치를 마땅히 육 일, 육 개월, 육 년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아ㆍ가ㆍ나 자를 염(念)해야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육 일 동안에는 어떻게 염해야 하며, 이와 같이 염하고 나면 어떠한 모습[相貌]을 보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무엇을 아(阿) 자라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언교가 여기에서 모든 구게(句偈)를 나오게 하는 것이니, 간혹 잊어버리면 음과 뜻[音義]이 모자라고 작아지기도 하거니와, 만일 마음으로 염할 때나 또 판(板) 위에다 써서 이 아자문에 들어갈 때는 구게(句偈)의 모든 법으로써 먼저 잊어버렸던 것이 모두 스스로 기억하여 알아지느니라. 모르는 바는 모두가 간(簡) 위에 나타나되, 이와 같은 글자는 모두 손의 힘을 말미암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허공에 머물지 않으면서 글자를 이루는 것이 마치 저 큰 횃불과 같으니라.
이 모든 글자 중에서 아 자가 맨 처음이고 맨 위이며 가장 뛰어난 것이니라. 어찌하여 맨 처음인가? 맨 처음이라 일컫기 때문에 맨 처음이라 하느니라.
교시가야, 그 밖의 중생들 중에 지혜가 없는 이는 모름지기 오랫동안 행한 보살에게 물어야 하나니, 이와 같은 온갖 구의(句義)의 언론(言論)이 아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바로 처음의 궁전이니라.
교시가야, 너희들은 이 아자문을 잘 지닐지니라.’
38. 삼자문품(三字門品)
아난아, 그 때에 저 부처님의 대중 안에는 또한 상명의(上名意)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채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이미 이 세 글자문[三字門]인 아ㆍ가ㆍ나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아 자는 바로 사람의 언교[人言敎]라 하시고, 가 자는 곧 하늘의 언교[天言敎]라 하시며, 나 자는 곧 사람도 하늘도 아닌 것의 언교[非人非天言敎]라 하셨나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을 여래께서는 비록 갖가지 방편과 비유로써 나타내 보이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작은 부분이라도 깨우쳐 알게 하려고 하셨다 하더라도 이 세 글자 법문은 이치가 깊고도 심오한 탓에 실로 어리석고 어두운 저희들로서는 아직 분명히 모르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자세히 분별하여 말씀하소서.
마치 하늘의 언교가 사람의 언교와 다른 것처럼 하늘도 사람도 아닌 것의 언교가 두 가지와 다른 것도 역시 그러하나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함으로써 저 아ㆍ가ㆍ나 자를 저희들로 하여금 잘 분별하게 하셔서 이것이 사람의 언교이고 이것이 하늘의 언교이며 이것이 하늘도 사람도 아닌 것의 언교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그 상명의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마나바야, 저 보살마하살들은 결국 세간의 지혜로는 이와 같은 법문의 이치를 알 수 없느니라.
마나바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다만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온갖 세간에서 뛰어난 지혜를 구하면서 이와 같이 부처님ㆍ세존께 물을 때에야 비로소 세 가지 업장의 뜻의 처소[三藏義處]를 알게 되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이제 이와 같은 대중이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 아느냐?’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이 지금 모두 수미산 꼭대기에 머물러 있음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 수미산은 또한 무엇에 의지하느냐?’
‘대지(大地)에 의지하나이다.’
‘그 땅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땅은 물[水]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이 물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물은 바람[風]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이 바람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이 바람은 불[火]과 함께 서로 의지하면서 머무르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모든 계[諸界]는 저마다 서로 의지하여 머무르니, 이 불과 바람은 많은 힘이 모며 있기 때문에 허공 가운데에 머무르며, 허공에 머무르기 때문에 다시 허공으로 돌아가나이다. 이와 같이 모든 계는 허공에 머무르기 때문에 모든 법과 함께 서로 의지할 수 있나이다.’
‘마나바야, 이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의 언교와 하늘의 언교 내지 인간도 하늘도 아닌 언교 등 모두는 이 세 가지의 행(行)에서 나오게 되며, 또한 그 방편을 여의지 않는 가운데 너는 마땅히 그 법의 이치를 자세히 알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나에게 앞서 하늘의 언교를 물었는데, 이제 이 제석이 나의 앞에 머물러 있으므로 네가 물은 것은 곧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니라.
마나바야, 여래가 만일 온갖 언어와 결정된 뜻을 설명한다면 그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마나바야, 여래의 지혜는 보살의 지혜와 다르고 성문ㆍ연각의 지혜와도 다르며 업(業)도 또한 다르니라.
마나바야, 저 하늘의 언교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기 어렵니라.
마나바야, 너는 지금 이 하늘의 언행[天言行]을 아느냐?’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하늘의 언행에 대해 아나니, 이른바 신통, 즉 천이지(天耳智) 등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문을 저희들과 이 억수의 보살마하살들은 이미 통달하였사오나 지금은 오직 장차 올 세상의 일이 두렵기에 청하며 물을 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나타나 계시자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 있사온데, 저 모든 중생들이 친히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법문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능히 받지 못하거늘, 하물며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에 능히 아는 이가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저 말세(末世)의 모든 중생들은 모누 눈이 멀고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 있으면서 귀의할 데가 없거늘, 다시 누구에게 물어야 하겠나이까? 오직 여래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하는 이만은 제외되나이다. 그 때에는 여래의 이 수다라의 모든 법문에 의지하여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 때문에 저는 이제 여래ㆍ세존께 이 수다라의 결정된 이치에 대해 청하여 묻나이다. 이제 여래께서는 저의 마음을 비추셔서 제가 이 법에 대하여 의심의 그물이 없고 비방을 일으키지 않으며, 세존께 묻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싫증냄이 없으며, 지혜와 변재(辯才)에도 만족해함이 없음을 보셔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와 같이 여래께 물을 적에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지어야 할 바를 곧 모두 능히 지었고 말해야 할 바도 모두 다 능히 말하니, 이른바 저 무애지(無礙智)의 신통을 얻은 것이옵니다.
지혜의 변재를 얻은 뒤에는 다른 이의 온갖 음성과 언어에 대하여 모두 다 분명히 알아서 그들로 하여금 혹 선정(禪定)과 사유(思惟)의 법문에서 본 경계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게 하나이다. 이런 이치로 세존께 묻사오니, 혹 방편으로 이와 같은 신통을 잃지 않을 수 있거나 또한 온갖 언어와 음성을 알 수도 있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일곱 가지 방편이 있어서 신통을 성취할 수 있고 또한 온갖 언어와 음성도 알게 되느니라.’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 일곱 가지 방편으로 신통을 잃지 않는 것을 듣고 싶사옵니다. 원하옵건대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은 상명의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령 주문을 지닌 사람이 저 열 가지 업(業)을 갖추어서 주문의 힘 때문에 허공을 걸어 다니고 수미산 꼭대기를 밟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마나바야, 그는 실로 어리석은 사람이거늘 어찌 신통이 있겠느냐? 다만 주술(呪術)로써 산꼭대기를 오르고 몸을 나타나지 않게 하며, 또한 이 주술로써 모든 성론(聲論)을 알고 온갖 새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으며 또한 온갖 벌레나 짐승이 울고 부르짖는 것도 통달하였으니, 이와 같은 등의 일은 모두가 그 주술을 성취한 까닭이니라.
또한 마나바야, 다시 은장(隱藏)이라는 하나의 주문이 있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꼭 칠 일 동안 받아 지니고 나면, 다른 사람의 마음속과 지혜 업[智業]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다 능히 아느니라.
마나바야, 이것들은 다만 이 세간을 위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방편으로 나타내 보여서 저 언설과 음성을 말하고 알거늘, 어떻게 온갖 신통을 이룰 수 있겠느냐?
마나바야, 세간의 주술은 불법 안에서는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고, 여래의 바른 가르침에는 이와 같은 것이 없으니,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주술을 지니는 곳은 이미 밝게 드러나지도 않고 또한 허락되지도 않느니라. 여래는 어떤 때에는 간혹 따라 기뻐하기는 하지만, 비록 따라 기뻐한다 하더라도 역시 행하지는 말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여래ㆍ세존이 이미 이것을 허락하지 않거늘 무슨 일로 행하겠느냐?’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간 사람조자도 오히려 행하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세존의 모든 제자들이오리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이런 인연 때문에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은 이와 같은 것 등을 설명하는 것이니, 오직 이러한 것은 손해일 뿐이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아니니라.
또한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세존의 위없는 보리[無上菩提]의 경계는 가없는지라, 반드시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하고 오래도록 애써 고생하여야 비로소 스스로 증득하는 것이지 단지 언어로써 얻고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입의 말만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끝내 들어갈 수 없나니, 왜냐하면 마나바야, 이 모든 중생들 가운데 큰 자비의 행[大慈悲行]을 능히 행하는 것이 여래와 같은 이는 없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큰 자비에 머무르시면서 언제나 생각하기를 ‘나는 반드시 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여 언제나 기쁘게 해야겠다’고 하느니라.
마나바야, 이 가운데서 어떤 중생들은 여래의 큰 지혜[大智]를 사유하고 분별하며, 이미 사유하고 나서는 여래께로 와서 법답게 ‘해야 할 바를 구하고, 기뻐해야 할 바를 구하며, 즐겨야 할 바를 구하지만, 이와 같은 이치를 내가 어떻게 이루겠나이까?’라고 묻느니라.
이와 같이 물을 때 중생 가운데는 혹 성문승(聲聞乘)을 믿고 좋아하는 이도 있고, 벽지불승(辟支佛乘)을 믿고 좋아하는 이도 있으며, 보살승(菩薩乘)을 믿고 좋아하는 이도 있어서 짐짓 이런 질문을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해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세존은 오래 전에 이미 원만한 큰 지혜를 성취한지라 동방에 있는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들 가운데 오도(五道) 중생과 사생(四生)에 속하는 바를 능히 아시며, 또한 가없는 지혜로 그 중생에게 있는 무루(無漏)의 법으로서 이미 생긴 것[已生]과 아직 생기지 못한 것[未生]과 생기려고 하는[欲生] 방편 및 생기는 법을 관해서 모두 다 아시느니라.
또한 저 약(藥)으로 다스리는 법으로서 이미 생긴 방편과 아직 생기지 않은 방편과 생기려고 하는 방편과 약을 쓰는 법을 관해서 역시 모두 알게 되며, 또 저 다스려야 할 유루(有漏)의 번뇌로서 이미 소멸한 방편과 아직 소멸하지 않은 방편과 소멸하려 하는 방편과 소멸한 법을 관해서 모두 역시 알게 되느니라.
마나바야, 여래는 두루 이와 같은 지혜가 있는지라 동방에 있는 모든 중생의 무루ㆍ유루에 대해 능히 알며, 이미 그러하기 때문에 그 밖의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의 시방(十方)의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안의 온갖 중생들이 두루 갖춘 이런 번뇌의 병을 무슨 방편을 쓰고 어떤 약으로 다스려야 하는가를 불안(佛眼)으로써 구족하게 관해서 아시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부처님ㆍ세존은 이와 같은 큰 자비를 구족히 갖추셨을 따름인데, 중생들에 대하여 질투하는 뜻을 품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버리시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마나바야, 그런 소견은 짓지도 말라. 왜냐하면 여래의 지혜더미[智聚]가 다르고 저 이승(二乘)의 지혜더미가 다르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온갖 범부에게도 역시 지혜가 있으니, 어떤 중생들은 오직 이와 같은 범부의 지혜만을 성취하기를 구할 뿐이니라.
마나바야, 세간에도 역시 외도(外道)가 말하는 지혜 가운데 의지하는 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지혜로 여래를 생각하지 말 것이며, 집착하는 지혜[執著智]로 여래를 분별하지 말지니라. 여래께는 스스로 큰 지혜가 있느니라.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세존은 전도(顚倒)를 말씀하지 않으며 또한 부가라의 모양(富伽羅相)도 말씀하지 않나니, 세간을 위하여 이 법을 건립하는 것은 제외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은 이와 같은 것을 행할 때 세간을 수순하므로 그 안을 행하기 때문이니, 모든 보살들은 그에 대해 단정히 앉아서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이런 큰 지혜가 있으시다. 그러나 이 큰 지혜야말로 받기 심히 어렵다’고 사실대로 사유하느니라.
마나바야, 만일 모든 보살이 저 여섯 가지 바라밀[六波羅蜜]의 행을 원만하게 하고 싶다면, 언제나 단정히 앉아서 일심의 정념(正念)으로 이와 같은 법문을 받아 지니고 닦아 배워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이 가운데서 또한 어떤 중생들에게 여래ㆍ세존이 설법을 해야 하는가? 지금의 이 대증 속에는 어떤 중생도 여래의 설법을 짊어질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오직 모든 보살만이 수행하는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배우기를 구하고 뭇 일을 완전히 갖추어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또한 성문지(聲聞地) 가운데서 온갖 선(禪)ㆍ해탈(解脫)ㆍ삼매(三昧)를 설명할 수 있어서 그가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즉각 이루게 되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비유하면 마치 세간에서 노름을 교묘히 잘하는 사람과 같으니라. 이 사람은 모든 장기ㆍ바둑ㆍ투호(投壺) 등의 갖가지 노름에 대하여 모두 밝지 않음이 없으니, 이 사람이 뒷날에 모든 노름판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의 돈과 재물이며 값진 보배를 도모해 취하지만, 상대와 노름할 때는 속임수를 쓰고자 해서 먼저 그에게 져 주면서 재보를 많이 잃는데, 혹은 천만(千萬)에 이르기도 하고, 혹은 온 집안 재산과 그 밖의 밑천을 모조리 잃어서 죄다 다른 이 손에 들어가게 함으로서 반드시 앞에 있는 적(敵의 뜻을 만족시켜서 오만한 마음이 들게 한 연후에 점자로 승리를 취하니라. 이른바 형세를 분산하여 펼쳐서 이리 바꾸고 저리 변하기를 제멋대로 하고 나타났다 숨었다 떴다 잠겼다 하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서 고삐를 길게 늘어뜨려 멀리서 말을 부려 그 집안 재산을 다 없애버리나니, 이와 같이 하면서 마침내 완전히 이기기에 이르니라.
마나바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노름을 할 적에는 혹 주술로써 이기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혹 재주와 솜씨[技藝]로 이기는 것이냐?’
‘혹 신령한 약으로 이기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혹 방술의 논법[方論]으로 이기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혹 경적(經籍)으로 이기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마나바야, 그러나 이 사람은 끝내 제압하고 승리한 자이니, 이 사람은 곧바로 심정(心精)으로 기예가 성숙하여 손에 교묘한 방편이 있고 오랫동안 그 일을 익혔으니, 이 때문에 온전히 이긴 것이니라.
이처럼 마나바야, 보살이 오로지 그 일을 구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마땅히 그 사람이 전심전력으로 오래 익혀 저절로 이루게 된 것과 같다면 나중에 법을 증득할 때 어찌 장애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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