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0권
대법거다라니경 제10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21. 차방품(遮謗品)
“그 때에 저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람이 이 다라니경을 듣고 의혹을 내거나 전도된 생각을 일으키고, 의혹과 전도를 낸 뒤에 다시 가장 무거운 비방의 마음을 낸다면, 세존이시여, 그들은 무슨 인연으로 이 법을 비방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중생이 어떻게 이 법문을 받아 지니겠나이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그 모든 중생들은 이 법문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곧 어기고 배반하면서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모든 보살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공덕을 멀리 여의는 중생은 장차 어느 곳에 나며 어떠한 과보를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너희는 이제 무슨 인연으로 나에게 이 일을 묻느냐?’
보살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감히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 이와 같은 일을 묻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서 많은 중생들은 자기 마음의 힘[自心力]과 신행심(信行心)으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받으면서도 그에 의거하여 행하지 않고, 다시 이 설법하는 법사에 대하여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고 심히 깊은 법에 대하여 비방하는 일을 더하나이다. 이 때문에 저희는 이제 중생으로 하여금 어리석음을 끊어 없애고 미래 세상 가운데서 재앙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일을 묻사옵니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ㆍ세존의 심히 깊은 비밀한 지혜[最深密智]와 가장 으뜸가고 뛰어난 지혜[最上勝智]와 가장 미묘한 지혜[最微妙智]에 대하여 한 구절[一句]에 이르기까지도 비방을 내는 이면, 이 사람은 장차 한량없는 악한 과보[惡報]를 받을 것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여래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더욱 더 비방하고, 또한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 법에 이미 신심(信心)이 없으면서 스스로 비방하고 나선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이와 같은 큰 지혜 문[大慧門] 가운데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도 비방하고 믿지 않게 하면서 많은 장애를 짓고, 나아가 다른 사람이 읽고 외우고 듣고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한다면, 이 구업(口業)으로 인하여 갖가지 악을 짓는 것이므로 앞으로 틀림없이 한량없는 악한 과보를 받게 뭔 것이니라.
마나바야,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일체를 듣지 못하게 할지언정 그로 하여금 듣고 나서 거칠고 중한 비방을 하는 것을 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라.
마나바야,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기와나 돌로써 입을 일백 년 동안 막아 두게 할지언정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비방하는 업을 지으면서 ‘이 법문은 여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하지는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니라.
마나바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삿되고 교만한 마음[邪慢心]에 머무르면서 경전을 비방하는지라, 그 밖의 다른 중생에게도 큰 장애를 주는 것이니라.
마나바야, 저 모든 나쁜 사란들은 비단 어리석어서 이런 맡을 할 뿐만이 아니요, 다시 간탐과 질투에 머무르면서 이 경을 헐뜯는 것이거늘, 내가 이제 어찌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 가운데서 능히 성취할 수 없게 하겠느냐?
마나바야,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쇠똥을 먹으면서 한량없는 백천억 년을 지나게 할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을 위하여 이 법을 비방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니라.
마나바야,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솔새 바늘[菅針]이나 찌르는 가시나무 위에 누워서 천억 년을 지나게 할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평상이나 깔개를 위하여 이 법을 헐뜯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마나바야,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하여금 벌거숭이가 되어서 천억 년을 지나게 할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복을 입기 위하여 이 법을 비방하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니라.
마나바야, 저 모든 나쁜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비방할 때 나타나는 나쁜 업을 나는 이미 설명하였는데, 너는 먼저 나에게 모든 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미래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과보를 얻는가를 묻는구나.
마나바야, 이 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받는 과보를 나는 설명하지 않겠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만일 이 과보의 허물을 설명하면, 어쩌면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일을 들은 뒤에 다시 더욱 비방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저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어떤 중생이 이 법을 비방한 과보를 감당해 들을 수 없다 해도,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자세히 분별하여 말씀하시어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다 함께 들어서 알 수 있게 하소서.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들이 이 일을 듣지 못하면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꺼이 비방을 낼 것이므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이제 연설하셔야 하옵니다.’
그 때에 방광부처님은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진실로 너희 말과 같으니라.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온갖 중생을 깊이 사랑하고 염려하기에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일구 법문[一句門]을 연설하여 모든 지혜의 뜻을 드러내느니라.
마나바야, 어떤 중생이라도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공덕 더미를 구족하게 성취하여야 비로소 이와 같은 법문을 받아 지닐 수 있느니라.
마나바야, 너희는 저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온갖 불선(不善)의 더미를 두루 갖추며 온갖 선(善)의 근본을 멀리 여읜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이와 같은 나쁜 중생들은 이 법을 비방한 까닭에 온갖 큰 고뇌의 더미를 두루 받으며 온갖 큰 안락을 멀리 여의느니라.
마나바야, 저 착하지 않은 사람이 부처님 법을 비방하면 미래 세상에 지극히 나쁜 과보인 이른바 지옥ㆍ아귀ㆍ축생의 갖가지 고뇌를 받는다고 내가 이미 너희를 위하여 간략하게 해설하였나니, 앞서 간락하게 해설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마나바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님의 법을 비방한 까닭에 고통의 과보를 받으면서 어떤 악취(惡趣)든 받지 않음이 없으며 한량없는 겁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벗어나느니라. 비록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언제나 재난이 있는 곳과 사견(邪見)을 지닌 집안에 태어나며, 혹은 하늘 악마의 패거리와 권속이 되어서 그 마음이 잔인하고 해로운 것이 마치 나찰(羅刹)이나 염마왕(閻魔王)과 같으리니, 나쁜 마음을 익히어 부처님 법을 비방한 까닭이요, 모든 중생을 이끌어 삿된 업[邪業]을 행한 까닭이며, 안온함을 좋아하지 않고 고통의 과보를 받은 까닭이니라.
마나바야, 저 비방한 사람이 지극히 중한 악을 지었으면서도 선의 과보를 얻는다는 일은 끝내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마나바야, 그러므로 너희들은 설법하려 할 적에 출가한 사람이나 재가의 사람이 몸소 너에게로 오든 간혹 너희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던 이 법을 들은 사람과 그 밖의 시주(施主)가 너희에게 공양하거나 찬탄을 하면, 너희는 이때 응당 한마음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고요히 쉬어서 법답게 그들을 위하여 설해야 하며, 아첨이나 왜곡하지 말고 성낸 마음을 멀리 여의며 모든 허물과 잘못을 버리고 쟁론(諍論)을 없애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때에는 깊은 법을 연설하여 저 중생으로 하여금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게 하고, 저 모든 중생들이 이미 깊은 법을 듣고 한 구절 혹은 한 글자에 이르기까지라도 믿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가장 희유(希有)하여 곧 한량없고 가없는 복 더미를 얻을 것이니, 부디 그들로 하여금 믿지 않는 마음과 믿지 않는 인연을 일으켜서 장차 한량없고 가없는 나쁜 과보를 받게 하지 말지니라.’”
22. 지경공덕품(持經功德品)
“그 때에 저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중생들이 스스로 이 법을 능히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면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연설하되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라도 다른 이로 하여금 받아 지니게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얼마의 공덕을 얻게 되고 어떠한 선근에 머무르나이까? 이 법을 능히 연설하면서 의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 사람은 옛날에 어떠한 행을 닦았고 어떠한 서원을 세운 것이며, 몇 분의 여래께 친근하면서 공양하였고, 몇 분의 부처님 처소에서 심히 깊은 법을 들었나이까?
세존이시여, 저 법사는 누구를 위하여 이와 같은 깊은 법을 널리 연설하며, 그 법을 듣는 모든 중생들도 역시 옛날에 몇 분의 여래의 처소에서 어떠한 선근을 심었기에 지금과 뒷세상에서 깊은 설법을 듣고 좋아하면서 청취하며 마음이 물러서지 않나이까? 이와 같은 등의 이치를 저희는 모두 듣고자 하오니,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자세히 분별하여 연설하여 주소서.’
그 때에 방광여래는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출가한 사람이든 재가의 사람이던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은 법문을 듣되 한 글귀에 이르기까지라도 그 가운데서 능히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면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리하여 중생을 섭수(攝受)해서 남에게 이와 같은 법문을 널리 연설하되 한 글귀에 이르기까지라도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면서 혹은 다른 이를 위하여 말하게 했다면, 나는 이제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의 과보를 설명하고자 하노라. 어떤 중생도 능히 믿고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이 다라니경을 지닌 사람, 이와 같은 사람만이 비로소 믿을 수 있을 뿐이며, 혹은 과거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이 법문을 들은 자만이 역시 믿음을 낼 수 있느니라.
마나바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깊은 경의 공덕을 간략하게 해설하겠느니라.
마나바야, 만인 어떤 사람이 이 다라니문의 한 글귀에 이르기까지라고 능히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설할 때 얻는 공덕은 가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수효로 계산할 수도 없나니, 나는 비유로써 조그마한 부분만을 해설할 뿐이니라.
마나바야, 가령 백억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모든 중생 가운데서 짓는 바의 공덕이라 하여도 앞의 한 구절을 받아 지닌 선근에 비교하면 백천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마나바야, 가령 다시 천억의 제석천왕[天帝釋]이 닦은 공덕이라 하여도 앞의 선근에서 바라보면 백천만 분의 일에도 역시 미치지 못하느니라.
마나바야, 가령 다시 백천억 배(倍)보다 더한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닦은 공덕이라 하여도 앞의 선근에 견주면 백천만 분의 일에도 역시 미치지 못하느니라.
마나바야, 앞의 일은 차치하고 가령 다시 수다원(須陀洹) 등의 세 가지 과위[果]를 얻는 공덕이라 하여도 오히려 견줄 바가 되지 못하고,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아라한과 벽지불에게 있는 공덕이라 하여도 끝내 역시 견줄 것이 못 되느니라.
마나바야, 내가 이미 설했듯이 경을 지니는 공덕은 세간의 온갖 선근에 견주어서 모조리 사유하고 헤아린다 하여도 비유(比喩)할 수 없으며, 오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의 온갖 공덕만이 앞의 법사가 얻은 바의 선근과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공덕은 이 다라니 법문을 말미암아 생기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일체 모든 그 밖의 법문으로는 모두 견줄 수 없느니라.
마나바야, 너희들은 무슨 필요로 그 밖의 다른 법문을 들어야겠느냐? 오직 이 다라니를 지녀야 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어느 한 법도 이 다라니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없고 또한 어느 한 의심도 이 다라니로 결단하지 못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오직 저 여러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서 방편으로 다시 모든 여타의 경전들을 해설하여도 모두가 이 법문을 여의지 않느니라.
또한 어떤 중생은 일찍이 지나간 옛날 모든 세존 앞에서 이 법문을 들었는데, 이런 인연 때문에 다시 지금의 세상에서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받아 지니는 것이니라. 혹은 옛날에 이 경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설법에서 다른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마나바야, 여래가 해설한 여타의 경전들의 갖가지 법의 모양은 끝내 이 다라니문의 세 가지 교장(敎藏)을 여읨이 없느니라.
마나바야, 마치 먼저 비유로 지대(地大)의 성품을 해설하는 것과 같으니라. 지대는 두루하고 가없어서 헤아릴 수 없고, 또한 어떤 사람도 그 가[邊]를 아는 이가 없으며, 오직 한량없고 가없는 경계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가없고 셀 수 없다는 생각[無邊無數想]을 능히 짓는 사람이라도 수량(數量)으로 삼을 수도 없느니라.
마나바야, 이 다라니 법문도 가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역시 그와 같나니, 오직 선남자(善男子) 등으로서 큰 지혜를 지닌 이 만이 비로소 헤아릴 뿐이니라.
마나바야, 저 선남자는 혹 옛날에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일찍이 이와 같은 다라니문을 들었던 것이니, 본래 들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앞에서 다시 이 심히 깊은 부처님 법을 듣게 되느니라.’
그 때에 모든 보살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다라니 법문의 세 가지 언교의 업장을 저희들은 이미 알았사오니, 읽고 외우면서 말씀하신 대로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와 같은 법을 이미 들었사오니, 한량없는 기쁨과 한량없는 즐거움과 한량없는 쾌락과 한량없는 이로움은 오직 부처님ㆍ세존만이 스스로 깨달아 아실뿐이지 온갖 중생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할 바이옵니다.
세존이시여, 혹 또한 어떤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세 가지 업장 법문의 경계와 변제를 알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마나바야, 이 세 가지 언교의 업장 법문은 어떤 사람도 그 변제를 알 수 없느니라. 가령 온갖 중생들 중에 앞에서 설했듯이 큰 명칭이 있고, 근성이 예리하며,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있는 자가 일 겁 또는 백 겁 또는 백천 겁, 나아가 한량없는 겁에 이른다 하여도 세 가지 언교 업장문의 사소한 변제조차 끝내 알지 못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널리 연설할 수도 없느니라.
마나바야, 오직 여래의 지혜와 변재로만 능히 비유해 설할 수 있고 능히 이곳에 들어가 의심의 그물을 결단하는 것은 제외하노라.’”
23. 위타회과품(爲他悔過品)
“그 때에 전단나보살마하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의를 정돈하고서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채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방광여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 앞에 있으면서 이와 같은 모든 악한 중생들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나이다. 저 법을 비방하는 모든 나쁜 중생들은 이 다라니문에 대하여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라도 비방하는 마음을 내되 이미 비방하였거나 비방하고 파괴하고 헐뜯으려 하면서 한 중생과 더불어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 장애를 짓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모든 나쁜 중생과 나아가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가운데서 수많은 이런 나쁜 중생들이 받아들이는 행이 전도되어 올바른 법을 비방하게 되리니, 저는 이제 그들을 위하여 부처님 앞에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 중생을 위한 것은 구호(救護)가 없기 때문이요, 안목(眼目)이 없기 때문이며, 지혜가 없기 때문이요, 나쁜 말[惡口]을 갖추었기 때문이오니, 저는 이제 그들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세존 앞에 있으면서 이와 같이 참회한다면, 그는 이 가운데서 어떤 선근을 얻으며 어떠한 공덕을 얻게 되나이까?’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전단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마나바야, 너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 마음을 훈습하여 여래께 청하여 묻는구나. 만일 선남자가 저 법을 깨뜨리는 나쁜 중생을 위하여 지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면 반드시 한량없는 큰 공덕의 더미를 얻게 되느니라.
마나바야, 이 공덕의 더미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것이지만, 이제 비유로 약간이나마 열고 펼쳐서 중생으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내게 하겠느니라.
마나바야, 이와 같이 동쪽에 있는 모든 세계의 중생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마하(摩訶) 시주(施主)가 되고, 그와 같이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ㆍ아래의 두루 시방에 있는 중생 모두가 다 마하 시주가 되어서 한량없고 가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모든 대겁(大劫)을 지나면서 언제나 이른바 금ㆍ은의 뭇 보배와 의루ㆍ음식ㆍ탕약ㆍ방사의 갖가지 도구들을 보시한다면, 그리고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이 모두 한 군데에 모여서 보시를 받게 한다면, 마나바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복덕의 더미가 과연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전단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복덕의 더미는 진실로 넓고 크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만일 어느 한 사람이 한량없는 겁 동안 보시를 한다면 그 공덕은 그 끝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한량없는 중생들이 수없는 겁 동안 보시를 행하는 복 더미로서 그 분한(分限)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녕 그러하느니라. 마나바야, 그들 한량없는 중생들이 한량없는 겁수(劫數) 동안 한량없이 보시를 행하여 생긴 그 한량없는 복 더미를 비록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오히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앞의 온갖 법을 비방하는 대중 가운데서 다만 한 사람만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함으로써 생기는 선근으로 얻게 되는 공덕의 한량없고 가없어서 헤아리거나 비교할 수도 없는 것만 못하거늘, 하물며 한량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는 것이겠느냐?
또한 마나바야, 이런 세계의 법을 비방하는 나쁜 중생들은 차치하고, 가령 시방의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안에서 바른 법을 비방하는 중생이라 하여도, 마나바야, 다만 한 사람만을 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얻는 복 더미와 생기는 선근조차도 오히려 한정할 수 없거늘, 하물며 널리 시방의 중생들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는 것이랴?
이와 같은 복 더미는 선근이 주지(住持)해서 섭수하고 증장(增長)한 공덕의 더미로서 산수로 계산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불가사의하거늘, 이와 같은 공덕을 그 누가 능히 믿을 이가 있겠느냐, 오직 물러서지 않는[不退] 보살마하살만이 조금 믿을 수 있을 뿐이니라.’
그 때에 전단나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선남자 등이 이와 같은 행을 할 적에는 어떤 것을 구하고 싶어서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단나야, 그 선남자는 보리(菩提)를 위하여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저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는 것이니, 이 선근을 반연하여 다시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고 끝내 이와 같은 자재한 수용[自在受容]을 얻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대중 가운데에 월상(月上)이라는 우바새가 있었는데, 그 우바새의 집은 재보가 풍부해서 값어치가 백천억금이나 되는 진주(眞珠)와 영락(瓔珞)으로 몸과 목을 장엄하였고, 또한 값어치가 백천억금이 되는 하나의 묘한 보배[妙寶]도 있었느니라.
그 때 우바새는 자리에서 일어나 즉시 진주와 영락을 풀어서 방광여래께 받들어 올렸고 다시 묘한 보배는 전단나 보살에게 보시하였느니라.
그 때에 저 월상은 이렇게 올린 뒤에 다시 더욱 깊은 공경과 크게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일으켰느니라.
‘나의 집에는 창고와 보배 광[寶藏]이며 살림살이가 모두 다 완전히 갖추어져 있으니, 이런 때에 여래와 전단나에게 청정하게 보시해야겠구나.’
그리고 다시 생각하였느니라.
‘이제 성자(聖者) 전단나께서 만일 내가 일으키는 이러한 마음을 알고 나면 세존께 말씀드릴 것이다. 세존께서 들으신 뒤에 곧 전단나 보살을 시켜 나에게 친히 가르쳐 보이면, 그 때에 받들어 받아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저 모든 보살행을 배워야겠다.’
장자 월상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킬 적에 전단나 보살은 타심지(他心智)로 관찰하여 알고 나서는 곧 방광여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분명히 보았사옵니다. 이 모임의 대중 가운데 월상우바새가 다시 깊은 마음을 일으키며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런 때에 집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청정한 마음으로 세존께 받들어 올려야겠다’고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우바새는 큰 마음[大心]을 일으킬 수 있고, 아울러 이와 같은 지혜의 변재(辯才)와 보시의 변재와 버림[捨棄]의 변재가 있어서 여래께 청하여 발심(發心)한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 하면서도 여래의 도덕(道德)이 너무도 뛰어나고 위신(威神)이 높고 먼지라 감히 청하지 못하고 있나이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진실로 이 우바새를 위하여 세존께 이러한 일을 청하며 아뢰옵니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전단나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전단나야, 너는 이제 타심지를 성취하였구나. 한량없고 수없는 겁 동안 오래도록 저 모든 선근을 닦아 익혔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나도 역시 이 우바새의 마음을 알았지만 다만 이 모임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이 마음을 접어 둔 채 말없이 있었을 뿐이며, 또한 일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이 법 가운데서 너 전단나의 행하는 바를 배우게 할 따름이었느니라.’
그 때에 전단나 보살마하살이 그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여, 당신은 지금 진실로 이러한 생각이 있었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존자여, 저는 지금 진실로 이러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공경하는 마음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 때문에, 희유한 마음 때문에 감히 여래ㆍ세존께 묻고 아뢰지 못했을 뿐입니다. 지금 성자 전단나 보살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세간의 온갖 중생 중에 구호할 이 없는 이와 정념(正念)이 없는 이와 도와 인도할 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세존 앞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시면서 의지가 되고 길잡이가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나서 곧 성자 전단나 보살에게 아주 큰 희유한 마음과 깊이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었으며, 성자 전단나께서는 처음부터 법을 비방하는 중생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으면서도 그들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셨으니 과연 뛰어나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에게 연민의 마음이 있어서 제가 생각한 바대로 여래께 묻고 청하셨습니다. 만일 저의 이와 같은 지성스런 마음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저의 소원은 원만하지 못했을 것이니, 저의 마음을 가져다 여래께 물으셨으므로 저는 소원에 의지해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자 전단나 보살께서는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 속의 중생을 위하여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셨으며, 또한 이와 같이 저를 위하여 이 무거운 짐의 큰일[大事]을 물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전단나 보살이 다시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도 또한 이 월상우바새가 청한 물음을 들으셨어야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나는 이미 이 월상이 청한 바를 들었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이익과 바라는 바가 있더냐?’
전단나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모자라는 바도 없고 또한 바라는 바도 없나이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옛날 일찍이 들었사온데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한 벌 옷과 한 끼의 밥으로 항하 모래만큼 많은 겁[恒河沙劫]을 지나셨고, 한 번 결가부하고 앉으시면 역시 항하 모래만큼 많은 겁을 지나셨는데, 그러면서도 몸이 손상되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으셨다고 하옵니다. 오직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셨을 뿐이기 때문이오니, 그 까닭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함께 여실한 법 가운데에 편히 머무르게 하려 함이요,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참된 법[眞法]을 얻게 하려 함이옵니다. 이 때문에 여래는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시고 비유로 말씀하실 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이와 같은 갖가지 방편을 중생은 친히 뵈면서도 오히려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거늘, 하물며 뒷날 여래를 뵈옵지 못할 이는 어떠하겠나이까?’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전단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보물을 보시해서 여래가 결가부하고 앉은 무릎 위에 놓아둔다 하여도 모든 여래께서는 끝내 받는 바가 없으며, 성문의 제자들도 역시 이 진짜 보물을 받을 수 없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이 가운데서 응당 이 우바새는 오랜 세월 동안 이롭고 몸과 마음이 안락한 이임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하며, 그가 바친 진주 영락과 묘한 보배들은 다시 그에게 주어야 하느니라. 다만 그 행하는 법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뭇 보배를 비록 부처님ㆍ여래와 성문 제자가 이미 취득하지도 않고 또한 수용하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직 보시만으로 공덕이 더욱 자란다는 걸 가르쳐 보여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요, 또한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월상우바새는 여래 앞에서 거룩한 가르침을 듣자마자 곧 오른손으로 전단나 보살의 팔을 붙잡고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전단나 보살과 함께 그 대중으로부터 나와서 같이 그의 집으로 돌아와 자리를 펴고 앉은 뒤에 집안사람들에게 명하여 창고를 열게 하고서 친히 경계하며 말하였다.
‘나의 창고 안에 있는 모든 값진 보물들을 이제 남김없이 다 내와서 나의 눈앞에 놓아두도록 해라. 정밀한 것과 거친 것, 아울러 대강의 수량을 보려고 한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나는 여래ㆍ응공ㆍ정변각과 모든 성문 제자의 대중에게 받들어 바치면서 공양하겠다.’
그 때에 장자의 아내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이런 마음을 능히 내셨으니 참으로 큰 선[大善]을 이루시겠습니다. 저는 비록 아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본디 이런 일을 평소 생각하였으나 아직 방편이 없어서 먼저 아뢸 겨를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경사스런 명(命)을 듣고 나니 본래의 마음에 몹시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이 보배 더미는 오래도록 보존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장자여, 저의 어리석은 소견 같아서는 지금의 이 보배 광[寶藏]은 의지하거나 믿기 어려운 것이니, 오직 모든 부처님 복전(福田)에 기탁해야 할 뿐입니다. 이 공덕만이 희유하여 끝내 이지러지거나 상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자여, 저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의 선인(先人)으로부터 칠세(七世)의 진기한 보배가 땅 속에 파묻혀 있지만 끝내 헛되이 버려져 있고 그 밖의 재물도 곧 잿더미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라고 하나니, 설령 조금은 보존됨이 있다 하여도 누가 그것을 쓰겠습니까?
장자여, 이것이야말로 큰일[大事]이므로 빨리 때맞추어 하여야겠습니다. 오늘 비록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 바쳐 올려서 저 쌓아 모으고 감추면서 인색했던 마음을 깨뜨렸다 하더라도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실로 조금 늦었다고 여겨집니다.
장자여, 저분들은 만나기 어려운 분이므로 저희들은 모름지기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해야 합니다. 만일 그분들에게 법을 들을 수 있어서 법의 마음이 생길 적에 그것은 여타의 세간 이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장자는 아내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성자 전단나 보살을 뵈었고 그분 말씀도 들었기 때문에 공경과 크게 희유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또한 이 보살께서는 유독 저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안에서 법을 비방하는 중생을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도 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다시 그분의 이롭게 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공경과 희유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또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큰 서원을 세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제나 갖가지 행하기 어려운 고행(苦行)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내는 다시 장자에게 경계하며 말하였다.
‘어진 이여,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마시고 속히 이 큰 보살님을 따라서 여래께로 나아가야 하며, 이와 같이 크고 간절한 마음을 내어서 여래께 공양해야 합니다. 예로부터 어떤 사람도 이와 같이 큰 공양을 능히 일으킨 이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장자는 몸소 집안에 있는 모든 창고와 칠세(七世) 동안 지나오면서 땅 속에 묻힌 모든 보배까지 남김없이 눈앞에다 내어 놓고 자세히 살피면서 비교하고 헤아려도 두루할 수 없자 곧 전단나 보살에게 아뢰었다.
‘성자 전단나여, 저는 이제 이 재물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서 모든 고뇌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마치 저 뭇 벌이 단 꿀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꿀을 성취하면 먹든 먹지 못하든 스스로 몸을 해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전단나 보살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과 같습니다.
장자여, 당신의 선인(先人)들은 이 재보를 모으느라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갖은 고통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애로운 마음으로 하나의 중생을 생각하면서 보시를 행하지도 못하였고, 헛되이 간탐하는 마음 때문에 이 재물을 수호하다가 목숨을 마치게 되어서는 악도(惡道)에 나게 되었고, 거기에 난 뒤에는 착한 생각이 있을 수 없으니 설사 그 때 착한 생각을 내려고 해도 큰 고통이 침노하고 핍박하거늘 어찌 마음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장자여, 당신의 친척과 권속조차도 구제할 수 없거늘 모든 그 밖의 다른 중생이야 어찌 다시 논할 것이겠습니까?’
아난아, 그 때에 저 장자는 전단나 보살마하살에게서 이런 가르침을 듣자마자 곧 방광여래와 모든 대중들에게 공양을 많이 베풀었고, 이미 공양하고 나서는 여래의 처소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으며, 몸이 다하도록 수행하면서 세존께 그 모든 재보를 공양하며 다함이 없었느니라.
이에 월상은 다시 전단나 보살에게 아뢰었느니라.
‘성자여, 지금으로부터 다시 어떠한 방법으로 여래께 공양하는 것이 있습니까? 제가 만일 안다면 응당 모두 닦고 짓겠습니다.’
전단나는 말하였다.
‘성자여, 이 재보의 더미가 실로 옛날에는 어디서 생겼고 지금은 어디로 소멸하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는 곳과 가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자여, 비유하면 마치 꿀벌이 한량없는 억수(億數)로 함께 생겨나서 병과 항아리 등에 있는 꿀을 차례대로 식용으로 쓰면서도 이 벌들은 이 꿀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이르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그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장자여, 이 재보의 광[藏]은 덧없고 머무르지 않으며 땅 아래 파묻힌 것은 점차로 수원[水聚]에 이르면서 마침내는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장자여, 당신은 이 가운데서 다시 잘 생각하기를, ‘내 선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다만 간탐의 독[慳毒] 때문에 자기 마음을 속이면서 재화를 모으고 나쁜 업을 더욱 자라게 하셨다. 슬프도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지금 어느 곳에나 계실까? 갖은 애를 쓰면서 벌어 모으고 다스렸지만 마지막에는 이룬 바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소용없는 일과 헛된 이름으로 남보다 낫기만을 구했을 뿐이며, 질투가 연이어서 끊이지 않았고, 몹시 탐내면서 맛에 집착하였으니, 이런 업의 인연으로 영원히 악도에 빠져 있겠구나’라고 해야 합니다.’”
24. 육도품(六度品) 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저 선각(先覺)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야 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살의 법[菩薩法]을 해석하겠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계율을 청정하게 지녀서 결점이나 줄어듦이 없으면 결정코 의리의 장엄[義利莊嚴]을 성취하리니, 마치 모든 보살이 바른 계율[正戒] 안에 머물러 가장 으뜸으로 계를 지니면 필경에는 청정하여 여실한 문[如實門]에 들어가 법지(法智)를 수순하고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며, 계의 공덕 더미는 넓고 크고 가없어서 그 한계를 능히 알 수 있는 이가 없으므로 설사 세간의 온갖 범부와 내지 성문이며 벽지불이라 하여도 모두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 때에 선각보살이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이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이 억수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의 계행(戒行)이 성취한 참된 모양[眞相]을 구족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선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말한 바의 계율이란 이름하여 불가사의한 곳[不思議處]이니라. 계행의 공덕이 성취하는 것이 이와 같은지라 동요할 수가 없고, 더러움(垢濁)이 없어서 청정하고 원만하며, 영원히 뭇 악이 다하면서 머무르는 데가 없고, 넓기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잡아 지닐 수가 없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이와 같은 모든 바라밀(波羅蜜)은 이른바 단나(檀那)바라밀이요, 시라(尸羅)바라밀이며, 찬제(羼提)바라밀이요,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며, 선나(禪那)바라밀이요, 반야(般若)바라밀이니라.
이 가운데서 단나바라밀은 가장 첫째[初上]이다. 감소(減少)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유(有)와 후생(後生) 가운데서 천왕(天王)이 처소에 이르는 이도 있거니와, 혹 감소함이 있으면 뒷날 태어나는 곳에서 빈궁하고 하천(下賤)한 이가 되어 옷과 밥이 모자라서 구걸로 스스로 살아가게 되며 언제나 나고 죽으면서 유전하며 오가는 것이니, 빈궁하기 때문에 단나바라밀이 청정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단나바라밀에서 저절로 손감(損減)하는 것이니라.
마나바야, 어떤 보살도 한결같이 선(禪)에 있는 이는 없으며 오직 여래만이 한 번 들어가서 나오지 않을 뿐이니, 모든 보살이 항상 정(定)에 있는 것은 아니니라. 만일 항상 정에 있다면 생사를 피하여 수호하게 되지만, 모든 보살이 저 유(有)의 태어나는 곳을 반연하고자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염혹(染惑)을 남기니라. 반드시 알지니, 그 때 잠시 동안 지근(智根)은 버리지만 저 정진근(精進根)은 전혀 버리는 바가 없으며, 이 때문에 보살도(菩薩道)를 버린다고는 하지 않느니라.
저 한량없는 생사에 처할 때 이 탐염의 마음[貪染心]을 버리든 버리지 않던 간에 당시 비록 정진이 있다손 치더라도 보리[菩提]는 얻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유(有)로서 태어나는 곳을 반연하더라도 정진을 버리지는 않느니라. 이처럼 마나바야, 그것도 역시 두 마음[二心]이 없고 화합하여 나란히 짓는 것이니라.
마나바야, 내가 기억하건대 옛날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겁을 지나 한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보화(寶火) 여래ㆍ응공ㆍ정변각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으로 세간에 출현하셨느니라.
마나바야, 그 부처님의 권속에는 오직 스물네 명의 성문과 다시 여섯 명의 큰 보살만이 있었을 뿐이니라.
마나바야, 저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독송한 경은 염부상바라밀경(閻浮上波羅蜜經)이었느니라. 그 여섯 보살은 모두 저마다 하나의 바라밀 행 가운데에 머물렀느니라.
제일의 보살은 단나바라밀을 찬탄하면서 곧 단나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았고, 제이의 보살은 시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곧 시라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았으며, 제삼의 보살은 찬제바라밀을 찬탄하면서 곧 찬제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았고, 제사의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곧 비리야 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았으며, 제오의 보살은 선나바라밀을 찬탄하면서 곧 선나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았고, 제육의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역시 반야바라밀을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서 일심으로 반야의 공덕을 수행하며 다시는 다른 생각이 없었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보화부처님은 그 모든 보살들의 심지(心志)가 나아가는 바를 알기 위하여 본래 수행하고 있는 바를 물었고, 그 모든 보살들은 성스런 질문을 받게 되자 곧 저마다 본래의 마음에 따라 행한 바대로 대답하였느니라.
그 때에 보화 세존은 생각하기를, ‘이 보살들 모두가 처음 들어가기 위하여 뜻을 내어 수행하는구나. 나는 이제 그들의 뜻을 수순하면서 거역하지 말아야겠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을 거역하면 퇴몰(退沒)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시고, 이에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아느냐?’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섯 가지 바라밀을 저희들은 이미 알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희들은 어떻게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고 지니느냐?’
모든 보살들은 저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갖가지 바라밀을 칭찬하면서 말하였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무엇을 이름하여 제일의 보살이 단나바라밀을 즐겨 행한 것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그 보살은 단나바라밀을 행할 적에 무릇 모든 가지고 있는 것과 나아가 살고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라도 요구하면 모두 다 주었으며, 보시한 채녀(婇女)도 그 수효가 구천 명이었느니라.
모든 채녀들의 아름다움은 말로 두루 설명하기 어려우니, 이제 간략하게 그 여인들의 값어치를 말하겠노라. 마치 이 염부제(閻浮提)에 있는 모든 재보의 여러 가지 물건으로 이른바 저절로 난 진짜 보배인 금ㆍ은ㆍ유리ㆍ가패(珂貝)ㆍ미옥(美玉)ㆍ산호(珊瑚)ㆍ진주(眞珠)와 같은 물건들과 또한 염부제에 있는 온갖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야대ㆍ당나귀 등과 그 밖의 온갖 네 발 달린 짐승과 같은 무리들과 또한 염부제에 있는 모든 인민들과 그 밖의 중생으로서 업(業)이 있거나 업이 없거나, 재물[財]이 있거나 재물이 없거나 간에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앞에서 보시한 구천 명의 여인들과 견준다면 오히려 한 여인의 값어치에도 대적할 수 없으리니, 그런데도 그 보살은 깊은 마음으로 단나바라밀을 좋아했기 때물에 사람이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면 이 구천의 아름다운 여인들까지도 모조리 그들에게 주었느니라.
그리고 그 보살은 집에 머무르면서 다시 구천 마리의 흰 코끼리와 구천 마리의 값을 칠 수도 없이 귀중한 보배로운 말로 보시하였으니, 이와 같은 좋은 말은 갈기와 꼬리의 터럭 빛깔은 모두 석대(石黛)와 같았으며, 또다시 계시마왕(鷄翅馬王)과 같고 또한 전륜왕의 보배로운 말과도 같아서 채찍을 들기만 해도 단번에 달려서 큰 바다를 건넜나니, 이와 같은 말들을 남김없이 다른 이들에게 보시하였느니라. 보살은 다시 값을 칠 수 없는 으뜸가는 보배를 역시 구천(九千)이 다 차도록 모조리 보시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 밖의 물건도 두루 다 말할 수 없지만, 구하는 이를 보기만 하면 모두 가져다 보시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그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한 뒤에는 곧 보화여래의 법 가운데서 세간을 싫어하여 출가한 뒤에 부지런히 힘쓰면서 단나바라밀을 닦아 원만하게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제일의 보살마하살이 단나바라밀을 즐겨 행한 것이니라. 또한 마나바야, 무엇을 이름하여 제이의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즐겨 행한 것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그 보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적에 언제나 계율 지니는 것[持戒]을 찬탄하면서 저 외도의 오통(五通) 선인(仙人)들을 이기기 위하여 구족히 다섯 가지 신통을 닦았으며,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뒤에는 보화여래의 법 가운데서 출가하여 계율을 지니면서 오직 세 가지 옷만을 간직하였고, 여래의 가르침에는 가없는 양[無邊量]의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에 자재(自在)함을 얻었고, 여래의 지혜[如來智]를 이루고 계의 더미[戒聚]를 발생해서 이와 같은 몸을 얻었으며, 나아가 서른 두 종류의 대인의 묘한 상호[大人妙相]를 이루어 원만하게 되었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그 때에 그 보살은 시라바라밀을 찬탄하였고 구족하게 계율을 지니면서 행이 평등하였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제이의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즐겨 행하면서 머문 것이니라.
또한 마나바야, 무엇을 이름하여 제삼의 보살이 찬제바라밀을 즐겨 행한 것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그 보살이 인욕(忍辱)을 행할 때에 혹 왕궁에 태어나 왕이나 태자가 되어서 위력이 구족하기도 하였는데, 겁탁(劫濁)의 세상일 때라서 모든 중생들은 대부분 그릇된 법[非法]을 행하면서 부모에 불효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바른 믿음을 지니지 않고, 집에 사는 이들을 더럽히고 남의 집을 파산시키며, 언제나 도적질을 일삼고 남의 인장의 기록[印記]을 파괴하며, 다투기를 좋아하고 사납게 굴면서 착한 말을 쓰지 않고, 다른 이의 나쁜 짓을 보면 칭찬하기도 하고 혹은 잠자코 있기도 하며, 입의 허물을 단속하지 못하면서 망령되이 시비(是非)를 말하고, 살생ㆍ도둑질ㆍ이간질ㆍ거짓말의 열 가지 악(惡)을 두루 행하면서 열 가지의 선[十善]을 멀리 여의는 이런 나쁜 사람들이 점차로 불어나고 많아져서 날마다 일천, 이천 내지 수천이나 되는 이들이 관청에 체포되어 왕자 앞에 이르게 되었고, 그 사이에는 다시 갖가지 나쁜 사람들이 담장을 뚫고 금역(禁域)을 위반하기도 하고, 혹은 성(城)을 넘고 관(關)을 넘기도 하며, 혹은 버리고 내친 이를 도피시키기도 하고, 혹은 남의 아내를 침범하기도 하며, 혹은 남의 물건을 속이기도 하고, 혹은 시비를 거짓 증명하기도 하는 등 이런 허물이 많은 이들이 관리에 붙잡혀서 죄다 목에 칼을 쓰고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수갑과 차꼬와 형틀에 얽매인 채 차례로 끌려와 왕자 앞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이렇게 하기를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왕자는 자비와 인내로써 처음부터 가혹하게 굴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었고 갑자기 형벌에 의해 죽이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창고의 재보를 내어 그들에게 베풀었을 뿐이며, 그런 뒤에는 죄의 경중에 따라 꾸짖고 놓아 주면서 경계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나는 부처님을 믿기 때문에 뭇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며, 또한 너희를 놓아 주면서 지극한 고통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이니, 너희는 이 은혜를 기억하면서 악을 끊고 선을 닦기를 바라노라’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그 왕자는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나쁜 왕이나 염마의 사자[閻摩使者]가 죄인을 다스리고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내가 법답게 인욕을 능히 행한 이라면 응당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여 세존께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비록 오랫동안 이와 같은 인욕의 법을 익혔다 하더라도 역시 온갖 때에 형벌을 행하면서 저 중생들에게 해를 가해 옥 속에 가두고 나아가 속박하거나 때릴 수는 없으며, 뒷날에는 다만 꾸짖어서 놓아 보낼 뿐이기는 하지만 역시 다시는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 없는 모든 중생들의 나쁜 말과 나쁜 일을 거듭하여 보거나 들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당연히 부처님께 그들을 구제해 주시도록 청하여 모두가 구경(究竟) 속에서 편안히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그 왕자는 이런 일을 생각하고 나서 곧 보화부처님께로 나아가서 도착한 뒤에는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공경하며 돌고는 물러나 서서 이런 일들을 자세히 말씀드렸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보화세존은 왕자의 말을 듣고 찬제바라밀을 수순하여 인가(印可)하시고는 그로 인해 칭찬하셨느니라.
‘장하고 장하도다. 너는 착한 장부[善丈夫]라서 이제 이 나쁜 세상의 의롭지 못한 대중 가운데서 이와 같은 찬제바라밀을 수행할 수 있었느니라.’
그리고 저 부처님ㆍ세존은 다시금 왕자를 위하여 찬제바라밀을 널리 연설하셨으며, 그가 설법을 듣고 나서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본래의 궁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인욕 가운데 더욱더 견고하여졌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제삼의 보살마하살이 저 찬제바라밀을 즐겨 행하며 머문 것이니라.’”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524 불교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2권 (2) | 2024.01.01 |
---|---|
[적어보자] #3523 불교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1권 (2) | 2024.01.01 |
[적어보자] #3521 불교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9권 (2) | 2024.01.01 |
[적어보자] #3520 불교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8권 (2) | 2023.12.31 |
[적어보자] #3519 불교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7권 (2) | 2023.12.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