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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563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26권

by Kay/케이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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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26

 

대보적경 제26권


양 삼장법사 만다라(曼陀羅) 한역
송성수 번역


8. 법계체성무분별회(法界體性無分別會)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8천 대비구와 함께 사위국(舍衛國)의 기타림(祇陁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1만 2천의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세계에서 와 모였으며, 다시 3만 2천 천자가 다 대승법에 귀향하였다.
그때에 대중 가운데 보살마하살로서 문수사리(文殊師利)동자와 보상(寶上) 천자라고 이름하는 이가 있었다.
그때 보상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지금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명하시어 법을 연설하게 하시면, 그 설법이 끝나자마자 모든 악마의 궁전을 다 캄캄하게 가리워서 다시는 위덕(威德)이 없게 될 것이며, 마왕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근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불쾌하게 할 것이요, 모든 악마의 무리들이 다 조복되게 하며, 모든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자로 하여금 증상만을 깨뜨리고 스스로 얻은 것을 기억하게 하며, 잘 수행하는 자로 하여금 사문의 과(果)를 얻게 하며,
이미 과를 얻은 자는 더욱더 향상하게 하며, 불․법․승의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며, 많은 대중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며, 여래께서 한량없는 겁에 쌓아 모으신 보리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며, 혹 여래가 세상에 계시거나 멸도(滅道)하신 뒤거나 항상 이 법 설함을 듣고는 향하는 도법[乘]에 따라 빨리 멸도를 얻게 할 수 있으리라.’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보상 천자가 생각한 대로 문수사리동자에게 명하시었다.
“네가 이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을 좀 해줘야겠다. 지금 이 대중들이 너의 설법을 듣고자 하는구나.”
그때에 문수사리동자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을 설해주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계 체성(體性)의 인연에 대해 설법하여라.”
“세존이시여, 온갖 법계가 법계의 체성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법계 바깥을 벗어나 있음을 들은 적이 없으니 어떻게 법계를 인연한 법을 연설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교만한 중생이 만일 이 법을 들으면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리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법계의 체성은 놀랍고 괴이함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놀랍고 괴이하게 여긴다는 것이 곧 법계의 체성입니다.”
그때에 대덕 사리불이 문수사리동자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만일 온갖 법이 다 법계의 체성이라면 중생의 어떤 것에 더럽고 깨끗함이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법계의 체성은 더럽거나 깨끗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대덕 사리불이시여, 이 모든 중생이 내 몸이 있다는 견해[身見]로 뒤바뀐 생각을 가져 나라는 자만[我勝]과 내 것이라는 자만[我所勝]에 머무르므로 이 범부는 나라는 생각[我想]을 내며, 나라는 생각에 집착하며, 또한 남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마음[心]과 심수법(心數法)을 일으켜 이 마음과 심수법으로 모든 행업(行業)의 선과 불선을 짓나니, 이 모든 중생은 행업의 인으로 과보를 얻는 것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이미 남[生]이 있으면 곧 물들어 더럽힘이 있는 것이니, 이 더럽혀 물듦, 그 자체가 법계의 체성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물듦, 그것이 법계의 체성인 줄을 안다면 이것을 희고 깨끗함[白淨]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나 본디 제일의(第一義)에는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것이며 물듦의 법도 깨끗한 법도 없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이 법을 설할 때에 백여 명의 비구가 모든 번뇌[漏]를 끊고 무루심(無漏心)을 얻었다.
그때 대덕 사리불이 문수사리동자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법계는 조금도 그릇됨이 없었습니다. 그 법을 말씀하시자 백여 명의 비구가
모든 번뇌를 끊고 무루심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이 법계가 본디 결박되어 있었던 것을 이제 풀어놓은 것입니까?”
“문수사리여, 이 법계는 본래 결박된 것이 아니니 이제 풀어놓을 것이 있겠습니까?”
“대덕 사리불이여, 이 모든 비구들은 이제 어느 곳에서 마음에 해탈을 얻었겠습니까?”
“문수사리여, 여래께서 매우 많은 성문을 조복 받아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으로 해탈을 얻게 하셨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는 세존의 성문 제자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저는 세존의 성문 제자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당신은 모든 번뇌를 끊고 무루해탈의 마음을 얻었습니까?”
“저는 무루해탈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대덕이여, 어떤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습니까? 과거의 마음입니까, 미래의 마음입니까, 현재의 마음입니까? 대덕이여, 과거세의 마음은 이미 멸한 생각이고, 미래세의 마음은 아직 이르지 않은 생각이며, 현재세의 마음은 머무르지 않나니 어떻게 대덕은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과거의 마음으로 해탈을 얻은 것도 아니요, 미래․현재의 마음으로 해탈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대덕이여, 그러면 어찌하여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다고 합니까?”
“문수사리여, 세속제(世俗諦)에 머물기에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다 말하는 것이지 제일의제(第一義諦) 가운데서는 도무지 마음이 얽매였다거나 해탈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는 법계의 체성에 세속제와 제일의제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문수사리여, 법계의 체성에는 세속제와 제일의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대덕이여, 그러면 당신은 어찌하여 세속제에 머물면서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다고 하십니까?”
“문수사리여, 어찌하여 마음으로 해탈을 얻음이 있을 수 없습니까?”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마음이 안과 밖과 중간이 있다면 이것은 해탈을 얻었다고 하겠지만, 대덕이여, 이 마음은 안․밖․중간이 없어 얽매임도 해탈도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대중 가운데 2백 비구가 문수사리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런 말을 하였다.
“만일 해탈이 없고 해탈할 마음이 없다면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 집을 나와서 도를 닦으며, 만일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도를 닦겠습니까?”
그 모든 비구들은 욕을 하고 그 대중을 등진 채 떠나 버렸다.
그때에 문수사리동자는 이 비구들을 조복받으려고 그들이 간 곳을 알고는 길을 앞질러 가서 한 비구로 변화하여 나타났다. 그 비구들이 변화한 비구의 처소에 이르러 이렇게 물었다.
“대덕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변화한 비구가 여러 비구들에게 대답했다.
“대덕이여, 나는 문수사리가 설하는 법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고, 믿지도 못하겠고 따를 수도 없기 때문에 그 대중을 떠나 온 길입니다.”
그러자 여러 비구들은 다시 변화한 비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설법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고, 믿지도 못하겠고 따를 수도 없기에 그만 그 대중을 떠나 온 것입니다.”
변화한 비구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문수사리의 설법 가운데 어떤 것이 맞지 않으며 당신 뜻에 거슬렸기에 그곳을 떠나 온 것입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문수사리는 말하기를 향해 들어가는 과[向果]도 없고 증득하는 과[證果]도 없다 하며 또 해탈도 없다고 하였으니, 우리들은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향해 들어갈 과도 없고 증득할 과도 없으며 해탈도 없다 할진대,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범행을 닦겠으며, 생사를 벗어남도 없다면 무엇 때문에 도를 닦겠는가? 이런 이치를 생각한 까닭에 그 대중을 떠나 온 것입니다.”
그러자 그 변화한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대덕이여, 당신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비방하기 위하여, 욕설하기 위하여, 그 대중을 떠나 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비방하거나 욕설하기 위하여 떠나 온 것이 아니라 다만 해탈법을 보지 못했으므로 떠나 온 것입니다.”
그러자 변화한 비구는 곧 이 비구들을 칭찬하여 말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대덕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같이 잘 생각하고 의논합시다. 만일 욕설함이 아니라면 다투어 송사함이 아니요, 다투어 송사함이 아니라면 이것은 제일의제의 사문(沙門)의 법이외다. 당신들의 마음은 어떤 모양인가요? 그 빛깔이 푸른색입니까, 노란색입니까, 붉은색입니까, 흰색입니까, 보라색입니까, 파리(頗梨)색입니까? 실다운 것입니까, 실답지 못한 것입니까? 항상한 것입니까, 무상한 것입니까? 색(色)입니까, 색이 아닌 것입니까?”
비구들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마음이란 것은 색(色)이 아니어서 볼 수 없으며, 형상의 대조가 없고 또한 접촉할 대상이 없으며 어떤 처소도 없고 가르침도 없는 것입니다.”
변화한 비구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이 마음이란 것은 실로 색이 아니어서 볼 수 없으며, 형상의 대조가 없고 또한 접촉할 대상도 없으며 처소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니, 이 마음이란 것은 안에 머무는 것입니까, 밖에 머무는 것입니까, 안팎에 머무는 것입니까?”
그러자 여러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변화한 비구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색이 아니어서 볼 수 없고, 형상의 대조가 없으며, 또한 접촉할 대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가르침도 없고, 안․밖․중간도 아니니 이 마음을 바로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성취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여, 그대의 마음은 색이 아니라 볼 수 없으며, 형상의 대조가 없고 접촉의 대상이 없으며, 처소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며, 안․밖․중간이 아니니
이 마음을 바르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성취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여, 만일 마음이 실로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성취할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탈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여, 그렇기 때문에 문수사리가 법계의 체성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대덕이여, 범부가 뒤바뀐 생각으로 나와 나의 것에 집착하여 마음의 행위를 일으켜 모든 경계에 반연심을 일으키나니, 능히 일체에 반연하여 나고 멸하는 마음을 다 멸해 버리고 변화하는 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만일 마음으로 집 떠나기를 꾀하여 구족계를 받고 도를 닦으면 과(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은 체성이 비어서 실체가 없건만 망상(妄想)으로부터 일어나나니, 만일 실체가 아닌 망상이라면 이것은 곧 생겨난 것도 아니요, 머무는 것도 아니며, 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가거나 머무르거나 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얽매임도 없고 또한 해탈도 없으며, 향하여 들어가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대덕이여, 이런 뜻으로 문수사리가 말하기를 법계 체성은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으며, 또한 향해 들어가는 것과 증득하는 것도 없으며 해탈할 것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변화한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에 모든 비구들은 번뇌가 다해 해탈하였다. 해탈을 얻고는 곧 다시 문수사리의 처소에 돌아가서 각기 울다라승(鬱多羅僧)을 벗어서 문수사리에게 공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우리를 잘 수호하여 주십시오. 우리들은 법을 믿고 깊게 조복되지 않았기에 멀리 여의고 떠나갔었습니다.”
그때에 대덕 수보리가 이렇게 물었다.
“대덕들이여,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깨달았기에 각기 울다라승을 벗어서 문수사리에게 공양하는 것입니까?”
비구들은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우리는 지금 얻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은 문수사리동자에게 공양한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우리들은 얻을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 대중에서 떠나갔었는데, 우리들은 이제 얻는다는 생각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대덕 수보리여, 이름[名]에 집착하면서 동요되고 애착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요되고 애착한다고 해도 향해 들어감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만일 향해 들어감도 없고 얻음도 없다면, 곧 여기서 능히 일체의 동요와 애착을 끊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누가 그대들을 조복시켰습니까?”
비구들이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얻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 우리를 조복시켰습니다. 이 사람은 나지도 아니하고 또한 멸도(滅道)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선정(禪定)도 아니요, 어지러운 마음도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누가 그대들을 조복시켰습니까?”
비구들이 말하였다.
“그것은 문수사리동자에게 묻도록 하십시오.”
그때에 대덕 아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 비구들은 누가 조복시켰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5음(陰)․18계(界)․12입(入)이 없는 것, 또한 범부도 아니며, 연각도 아니며, 성문도 아니며, 보살도 아니며, 여래도 아니며, 몸과 서로 응함도 아니며, 말과 서로 응함도 아니며, 마음과 서로 응함도 아닙니다.”
아난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은 누구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만일 여래가 어떤 변화한 사람을 교화한다면 그 변화한 사람이 서로 응함이 있겠습니까?”
아난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변화한 사람이란 법과 서로 응하거나 서로 응하지 않거나 함이 없을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온갖 법의 체성이 이 허깨비[幻化]인 것입니다.”
아난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당신의 말과 같이 온갖 법의 체성이 이 허깨비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이 변화한 사람이 이 비구들을 조복한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변화한 사람이 조복한 것과 같이 모든 성문도 또한 그러합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렇게 조복된 것이 올바른 조복이거늘 이러한 조복을 알지 못하는 자는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대덕 아난은 다시 문수사리동자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이 증상만을 가진 비구를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대덕 아난이여, 계의 덕[戒聚]이 청정한 체하는 것이 이 흔들림[動搖]이니 이것이 곧 뛰어난 체하는 것이요, 선정[定]의 덕․지혜[慧]의 덕․혜탈(解脫)의 덕․해탈지견(解脫知見)의 덕이 청정한 체하는 것이 곧 이 흔들림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이며, ‘내가 도를 증득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 흔들리는 망상이니 이것이 곧 증상만이며, 몸이 있다는 견해[身見]를 겁내고 또한 공(空)한 이치를 공과 같이 보고 한결같은 도(道)에 들어가서 또한 공하다고 하는 것이 바른 말이라고 하나니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몸이 있다는 견해[身見]를 공이라 하며 나아가 한결같은 도의 공에 들어가면, 이러한 공을 곧 평등공이라 하리니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대덕 아난이여, 몸이란 견해가 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다르지 않으므로 몸이란 견해가 곧 이 공이며, 공이 도와 다르지 않나니 도와 다르지 않으므로 도가 곧 이 공인 것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무명(無明)과 유애(有愛)를 겁내고 명(明)과 해탈을 좋아한다면 이것이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두 가지 모양이 있으면 해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대덕 아난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탐냄․성냄․어리석음을 겁내고 3해탈을 좋아하거나, 네 가지 뒤바뀐 생각[四倒]을 겁내고 네 가지 상[四相]을 좋아하거나, 5개(蓋)를 겁내고 5근(根)을 좋아하거나,
6입(入)을 겁내고 6신통(神通)을 좋아하거나, 7식주(識住)를 겁내고 7조도법(助道法)을 좋아하거나, 8사(邪)를 겁내고 8성도(聖道)를 좋아하거나, 9중생(衆生)의 거처(居處)를 겁내고 9차제정(次第定)을 좋아하거나 10불선(不善)을 겁내고 10무루선(無漏善)을 좋아하거나, 유위계(有爲界)를 겁내고 무위법(無爲法)을 좋아하거나 하면 이것은 곧 증상만입니다. 왜냐하면 대덕 아난이여, 이 일체가 다 흔들림이며 다 희론이기 때문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만일 흔들림이 있거나 희론이 있으면 마음이 곧 스스로 높아지며 제멋대로 경계를 반연하여 망상에 의지하여 무엇을 성취한다 합니다. 이러한 법을 자재(自在)라고 이름하나니 자재하므로 교만심을 내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러한 비구를 증상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대덕 아난이여, 어떤 것을 유위계(有爲界)가 공하다고 하는가? 공으로 공에 들어간다 하면 이것을 비구가 증상만이 있다고 합니다.”
대덕 아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비구로서 증상만이 없는 것입니까?”
“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그 안이 고요하면 곧 밖이 고요하여서 일체 경계가 혹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거나, 혹 있거나 혹 없거나, 혹 함이 있거나 함이 없거나 흔들림이 없고, 또한 망상도 없고 망상 아님도 없으며, 둘도 없고 하나도 없으며, 공덕의 장엄함도 없고 장엄 아님도 없으며, 희론도 아니요 집착도 아니며, 비로소 온갖 법의 평등을 보되 또한 평등함도 없고 평등 아님도 없으며, 어떤 한 가지 법도 능히 평등하다거나 평등하지 않다거나 할 것이 없나니,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아니하며, 망상도 없고 망상 아님도 없으며, 또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망상이란 것을 보지 않나니, 해탈을 향하여 과지(果智)의 증(證)을 얻고서 동요함이 있다는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이와 같은 비구는 증상만이 없는 도반이며, 또한 희론이 없고 나와 남의 도반이라는 생각을 멀리 하고 모든 애착을 놓나니 온갖 애착에 애착하지 않는 까닭이요, 모든 반연과 각관(覺觀)․사유(思惟)를 여의어서 사유와 해탈과 해탈향(解脫向)에 취할 자가 없이 다 고요하여, 이 고요한 인연으로 이것이 나의 몸이니 나의 것이니 하는 것을 없애고,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가서 어떤 법이라도 알고 향하고 끊고 증득할 것을 보지 않습니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수행하면 증상만이 없나니, 비고 평등한 까닭에 온갖 법이 평등하여 위와 아래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혹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가히 할 짓이나 하지 못할 짓이나, 누(漏)가 있거나 없거나, 혹 세간법이거나 출세간법이거나, 함이 있거나 함이 없거나, 이러한 위와 아래로 흔들림은 망상 아님이 없으며, 또한 이러한 모든 법을 보고 알지도 아니하고 다 평등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덕 아난이여, 만일 비구가 이렇게 아는 자는 훌륭한 해탈[善解脫]이라 이름합니다. 이런 비구는 증상만이 없는 것이니, 이런 뜻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만일 어떤 비구가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줄을 안다면 만일 허공을 움직이려 해도 손댈 데가 없듯이 사문의 법도 또한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법을 설할 적에 2백 비구가 모든 번뇌를 끊고 무루해탈(無漏解脫)의 법을 얻었다.
그때에 보상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증상만이 없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온갖 지혜의 마음과 무엇에 견줄 데 없는 마음과 삼계에 가장 거룩한 마음으로써 모든 성문(聲聞)․연각(緣覺)․외도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마음에 편히 머무르고 또한 온갖 선근을 수행하나니 더욱 증진하기 위한 까닭에, 중생을 교화하는 까닭에, 바른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는 까닭에
다른 중생을 위하여 일체지심(一切智心)을 설하나니, 이 마음은 여실히 근본이 평등한 줄을 알고는 그 마음의 체성을 들은 바와 같이 일체 중생의 체성을 깨달아 알며, 온갖 법의 체성을 깨달아 아는 까닭에 일체 선근의 체성을 깨달아 알며, 일체 선근의 체성을 깨달아 아는 까닭에 보살의 체성을 연설할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이 보리살타(菩提薩埵)가 여실하게 수기를 말하는 것이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보시하되 베풀어 주는 데 따르며, 원하는 것에 따라 베풀며, 모든 나머지 보시에 일체가 걸림이 없으며, 베풀되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집착함 없이, 깨달음도 없이, 아는 것도 없이 하면, 아는 것이 없으므로 곧 이것이 공이다. 능히 이렇게 보시의 체성을 알게 되며, 보시의 체성을 안 까닭에 여실하게 비롯함[如實始]의 체성을 알게 되며, 여실하게 비롯함의 체성을 안 까닭에 모든 법의 체성을 알게 되며, 모든 법의 체성을 안 까닭에 일체 중생의 체성을 알게 되며, 일체 중생의 체성을 안 까닭에 보살의 체성을 말하게 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보시청정이라 말하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수기(授記)라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몸을 아는 자는 곧 계(戒)를 알 것이요, 입을 아는 자는 곧 계를 알 것이요, 마음을 아는 자는 곧 계를 아는 것입니다. 몸과 입을 아는 자는 깨달음의 적정함을 알 것이요, 깨달음의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중생의 적정함을 알 것이요, 중생의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온갖 법이 적정함을 알 것이요, 온갖 법이 적정함을 아는 까닭에 여실하게 비롯함의 적정을 알 것이요, 여실하게 비롯함의 적정을 아는 까닭에 적정법의 인(因)의 적정과 연(緣)의 적정을 알게 되나니, 그들은 온갖 법에 따라서 능히 적정을 말할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말하여 보살의 계의 청정이라 말하나니, 그러므로 여실히 수기를 말하는 것이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법성이 필경 공한 줄을 알고 법성이 끝내 자재로운 줄을 알며, 모든 중생의 온갖 악(惡)을 능히 참아서 마음 일어나지 않는 인(忍)으로 바깥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중생을 등지지 않고 능히 일체의 악을 없애면, 저 중생성(衆生性)과 같이 인(忍)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인의 체성과 같이 보리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보리의 체성과 같이 온갖 법의 체성도 또한 그러하며, 온갖 법의 체성을 아는 것과 같이 여실여법(如實如法:眞如法)도 또한 그러하며, 들은 바 법이 같은 법성인 것처럼 법성계가 필경 공하나니 법성계가 필경 공하므로 모든 행이 법성에 따르는 인[行順忍]을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진실정인(眞實淨忍)으로 수기를 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보살이 삼가 일체 법행(法行)이 모든 사유(思惟)를 여의며, 모든 장엄이 없는 줄을 알고 버리고 나아가는 행[捨進行]을 이룩하나니, 혹 하는 것이 있더라도 또한 조작함이 없으며, 그 아는 것이 견고하여 일체를 능히 여의며, 안의 성품이 적정하면서 밖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정진이 고요함을 알므로 보리가 고요함을 알며, 보리가 고요함을 알므로 또한 온갖 법이 고요함을 알고 여실히 비롯됨을 알며, 들은 법과 같이 정진의 성품[精進性]이 고요하므로 일체를 능히 말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청정한 정진으로서 여실히 수기할 줄을 안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만일 보살이 모든 법이 평등하여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선정(禪定)에 들어가면, 선정의 힘으로 그 마음이 고요히 머물며, 마음이 고요히 머무르므로 의식[識]이 머무르는 데가 없으며, 의식이 머무름 없으므로 7각심(覺心)이 평등하며, 7각심이 평등하므로 선정이 평등하며, 선정이 평등하므로 보리가 평등한 줄을 알며, 보리가 평등한 줄을 알므로 일체 중생이 평등한 줄을 알며, 일체 중생이 평등한 줄을 알므로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고는 들은 법에 따라서 능히 모든 법의 체성이 평등함을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이 보살의 청정한 선정으로서 여실히 수기를 말함이라 하느니라.
또 천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지혜의 눈[慧眼]이 청정하여 여실히 온갖 법을 보고는 본 바의 법에 실로 본 것이 없으므로 흔들림이 없어서 움직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행함도 없고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으며, 행하더라도 또한 행함이 없으나 모든 위의(威儀)의 법칙이 또한 행 아닌 것도 아니며, 행이 아니라는 인연으로 모든 법이 평등한 줄을 알아서 중생을 구제함도 아니요, 보살도를 행함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행이 아니라면 곧 분별이 없어서 모든 망상․희망․탐착심을 끊나니, 이것이 보살이 모든 있다는 생각을 여의고 또한 일체 중생의 행하는 곳을 행함이니,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의 보리를 돕는 법을 쌓아 모으는 까닭이며, 바른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는 까닭이며, 3보의 종자를 끊지 않기 위한 까닭이니라.
여래의 행이란 온갖 법의 청정한 체성을 분별하는 것이 없나니, 이 반야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보리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고, 보리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중생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며, 중생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온갖 법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며, 온갖 법의 체성이 깨끗한 줄을 알므로 모든 법의 체성에 여실한 지혜를 얻으며, 여실한 지혜를 얻으므로 들은 일과 같이 이 법계 체성에 분별 없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의 지혜의 눈이 청정하여 여실히 수기를 말함이라 하느니라.
또 천자여, 보살이 몸으로 행하는 신념처(身念處)를 관하되 과거의 몸이 끝없는 줄을 알며, 미래의 몸이 나아갈 데가 없는 줄을 알며, 현재의 몸이 초목이나 기와․돌․담벼락 같은 줄을 아나니, 만일 능히 이렇게 몸과 몸의 행을 관하면
이 몸의 체성에 어리석은 행위가 고요한 선정의 사유와 병행하되 또한 일부러 일으킴이 아니로다. 사유하지 않으면 일으킴도 없어 자재하리니, 이것을 나[我]를 여읨이라 하느니라.
의식으로 머무는 바 없이 신념처의 행을 수행하되 또한 법을 가히 수행할 자가 없으며, 또한 수행하지 않음도 아니니라. 온갖 법은 체성이 없되 체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몸을 관하여 몸의 행위를 닦느니라.
마음을 관하되 마음이 허깨비[幻化]와 같으며 메아리와 같은 줄을 알아서 여실히 마음을 아느니라.
즐거운 느낌을 받되 좋아하지 아니하고 괴로운 느낌을 받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아니한 느낌을 받되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무명을 집착하지 않고 감수(感受)를 여의어서 감수에 끌린 바 되지 않나니, 이것을 여실히 수념처(受念處)를 알고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능히 이렇게 느낌의 행을 관하는 자는 모든 수법(受法)에 마음이 행하는 바가 없고 마음에 안주하지 않되 이 일체의 마음을 또한 놓아 버리지 아니하며, 보리심에 또한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며, 또한 멀리 여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마음의 행을 관하는 심념처(心念處)라 하느니라.
법의 지견(知見)과 법행(法行)과 법의 생각 없음[無念]과 사유가 없는[無思惟] 줄을 잘 알고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이 없으며, 법상(法相)을 관하지 아니하고 견(見)과 행(行)을 일으켜서 법성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법의 행을 관하는 법의 염처(念處)라 말하느니라. 이것은 온갖 법의 체성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쌓아 모은 듯 실지로 물건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나니, 들은 바 일과 같이 생각도 없고 사유도 없이 저절로 그러한 것을 법념처(法念處)라 말하느니라. 천자여, 이것을 깨끗한 법의 염처를 알고 수기를 말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천자여, 또 이 보살이 온갖 지혜의 마음[一切智心]에 자재함을 얻어서 가르친 것과 같이 바로 보고 머물되 어지럽지 않고 잃지 않으며, 처음으로 일으킨 일체 선근에 번뇌 없는[無垢] 마음의 행위를 생각하여 행하는 곳을 따라 일체를 능히 버리며, 계를 범하는 마음을 꾸짖고 계에 의지하며, 욕됨을 참아 다투어 송사함이 없으며, 몸과 입과 마음으로
중생에게 성냄을 내지 아니하며 성문․연각의 정진의 수레[精進乘]를 타고 나아가려 하지 아니하며,
온갖 선법(善法)을 사유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모든 선정(禪定)․차제정(次第定)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행하는 것 없이 모든 견해에 행함을 보지 아니하며, 모든 법에 행하지 아니하고 온갖 법에 들어가되 모든 성인과 같이 모든 경계에 행하는 것이 없으며, 비록 성인의 무리가 아닌 자를 가까이 하더라도 몸․입․마음이 하는 짓이 일찍이 꾸지람을 받지 아니하며, 남에게 믿게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선법을 구하되 홀로 행하여 반려가 없으며, 스스로 세상을 벗어나고자 정진행을 행함은 길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매듭을 끊는 까닭이니라.
마음에 번뇌가 없는 것은 계를 깨뜨리지 않는 까닭이며, 또한 나쁜 행위를 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음은 아첨함 없이 스스로 하는 짓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산란한 말이 없는 것은 입으로 하는 짓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구하는 바가 없음은 제 재산에 만족한 줄을 알기 때문이며, 남의 심부름꾼으로 몰려다니지 않음은 삿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쌓아 모음이 없는 것은 제가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희망함이 없음은 삼계의 욕심을 여읜 까닭이며,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은 나쁜 욕구가 없는 까닭이며, 적정함은 온갖 법이 다 고요한 줄을 안 까닭이며, 성냄․어리석음을 나타내 보임은 세상의 행위를 놓아 버린 까닭이며, 희론이 없는 것은 모든 희론을 끊은 까닭이며, 세간에 돌아오지 않음은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끊은 까닭이며, 법을 매우 좋아하는 것은 교만이 극복된 까닭이며,
법을 잘 이해함은 마음을 잘 다룬 까닭이며, 법을 잘 수호함은 계의 덕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마음이 잘 해탈함은 지혜의 덕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법을 놓지 않음은 거룩한 근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이며, 물러남이 없는 것은 보리심을 발하여 구경을 다하기 위해서이며,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은 일체가 세속의 행위이기 때문이며, 다투어 송사함이 없음은 모든 중생을 고루 사랑하기 때문이니라.
스스로 잘 보호하는 것은 남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함은 남보다 뛰어남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희망함을 여의는 것은 청정한 계를 보호하기 위한 까닭이며, 널리 법을 설함은
아낌이 없는 까닭이며, 법을 애호함은 일체 중생을 애호하는 마음 때문이며, 처음 발심함은 일체 선법을 쌓아 모은 까닭이며, 다른 행위가 없는 것은 온갖 법에 한 맛을 얻은 까닭이며, 동요하지 않음은 모든 움직임을 끊었기 때문이며, 종성의 차별을 보지 않음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며, 중생과 같이 함은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기 때문이며,
애초에 공하다고 관함은 온갖 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모든 견해를 다루는 것은 교화를 잘하기 위함이며, 생각이 없는 행은 행상(行想)에 집착한 모든 중생들을 조복받기 위함이며, 원하는 것 없음[無願]을 아는 것은 원하는 바를 만족하여 잘 조복된 까닭이며, 일체를 아는 것은 본래부터 지음[作]이 없는 이치를 관한 까닭이며, 착함을 행함은 선법(善法)에 만족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물건 없는 데서 물건을 관함은 물건 아닌 것이 곧 물건임을 나타내어 보이기 위해서이며,
사유 아님을 관함은 나가 적정한 때문이며,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은 중생을 관찰하여 교화하되 나 없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도행(道行) 아님이 없음은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번뇌의 매듭[結]과 그 부림[使]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며, 방편심에 마지막[畢竟]을 얻은 것은 반야를 닦아 행한 까닭이며, 일정하게 머물러 가지 않음은 끝내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을 증득하여 접촉함이 아니기 때문이며, 도와 도 아님을 여읨은 제일의(第一義)이기 때문이며,
행과 행 아님을 여읨은 일체 범부들이 정행(正行)을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장엄함도 없고 장엄하지 않음도 없음은 모든 법을 희망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며, 스스로 칭찬하지 않음은 남과 희론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에도 견줄 데 없는 지혜는 불법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함은 온갖 법이 나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인(忍)이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보살이 자재를 얻었다 함이니라.
천자여, 보살은 나는 곳을 따라 나는 줄을 알지 못함으로써 나거나 앎으로써 남이 아니니라. 이 보살은 나고 죽음을 거두어 잡아 지니되 자재를 얻은 까닭이며, 또한 만족하게 불법을 성취하였나니 이 보살은 나고
죽음에 굴러 떨어짐이 아니라, 원력으로써 나는 곳마다 자재한 지혜를 얻나니, 이것을 보살이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말하느니라. 보살이 나고 죽음의 끝을 얻었다고 자재한 지혜라 이름함이 아니라, 일체 선근이 단절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이것을 보살이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말하느니라.
보살이 모든 선근을 얻으므로 자재한 지혜라 말함이 아니라, 모든 선근에 만족심이 없으므로 자재한 지혜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삼계에 태어나지 아니하므로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삼계에 태어나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스스로의 얽매임을 여읨으로써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매듭과 부림을 끊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함으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자기를 위하므로 자재를 얻었다고 말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온갖 고뇌를 고요히 멸해 버리기 위하여 자재라고 말하느니라. 보살이 모두 다 놓아 버리므로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중생을 거두어 두루 교화하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스스로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끊었다고 자재라고 말함이 아니라, 중생의 탐냄․성냄․어리석음 등 모든 번뇌를 끊으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스스로 열반을 증득하였다고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을 증득하게 하기 위함으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스스로 번뇌를 끊으므로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모든 선근을 길러 내기 위하여 유루법(有漏法)을 끊지 않으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3해탈을 증득하여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보살이 3해탈을 명료히 앎으로 자재라 하느니라. 보살이 적멸(寂滅)한 5음(陰)에 자재하다고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게 하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여섯 감관[六根]이 고요함으로써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상․하 근기를 알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생사의 분(分)이 다함으로써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보살이 받아 남[生]을 끊어 버리지 않으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보살이 성문․연각의 해탈보다 뛰어남을 얻었다고 자재라 말함이 아니라, 보살이 도량에서 해탈의 과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수용하게 하므로 자재라 말하느니라.”
이러한 자재품(自在品)을 연설할 때에 모임 가운데 있던 3만 2천 모든 천자가 다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마음을 발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동자를 칭찬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모든 보살의 수기법을 잘 설하였도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보살이 이러한 보살의 수기법을 듣고 한결같이 믿고 이해하여 놀라거나 겁내지 아니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진실하고 위없는 도를 수기하실 것이니라.”
그때에 보상 천자가 문수사리동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수기법을 연설하셨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수기법을 말하였고 나에게는 이 법이 있느니라. 깨닫는 자가 있다면 내가 수기를 말하리라. 천자여,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법이라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음도 얻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수기를 설한다 말하겠는가?”
“문수사리여, 항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 세존께서 어찌 알고 향함이 없이 과를 얻었겠습니까?”
“천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알고 향함이 없이 과를 얻었느니라. 천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알고 향하여 과를 얻기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 아니니라.”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어떻게 법을 설하셨습니까?”
“천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또한 체성을 분별치 않고 법을 설하셨나니, 난 것도 없고 멸한 것도 없으며,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중생이 없는 것도 아니며,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도다. 천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렇게 법을 설하셨도다.”
천자는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지 않았다면 무슨 까닭에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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