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2권
대보적경 제2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1. 삼률의회 ②
“다시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어떤 사람이 거짓 보살행을 닦는 체하면서 스스로 드날리며 게으른 마음을 내리라. 게으른 마음을 내고는 독각(獨覺)과 아라한보다 거룩하다고 하며 이치 아닌 데 머무나니 이것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이라 이름하며, 장차 악취에 떨어지게 되리라.
다시 가섭아, 미래세에 어떤 사람이 나쁜 짓에 머물러서 나쁜 짓을 짓는 까닭에 중생상(衆生相)을 취하여 설법하기 위하여 닦나니, 그럴 듯하게 보시․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정려(靜慮)․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야단스럽게 유포하느니라. 만일 진실하게 이 경을 설하는 자가 있으면 곧 남들이 미워하고 싫어하여 버림받게 된다 하느니라. 이 경 가운데서 사견(邪見)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이 이 경을 알지 못하고 비방하며 파계한다’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다들 도둑 행위의 더럽힘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이 제 허물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정등보리(正等菩提)를 파괴하느니라. 덮어 감춤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품고 위없는 불과[無上佛果]를 비방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승가(僧伽)에 수순하지 아니하고 은혜 갚을 줄을 알지 못하며 개발(開發)을 행하니, 어떤 것을 개발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여래의 설법으로 남의 마음을 개발한다 하면서 자주 말로써 남을 속이고 유혹하는 까닭에 음식을 받아먹게 되느니라.
가섭아, 그때에는 말을 잘 보호하지 아니하고 여래의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나무라고 훼방하느니라. 다시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그 일을 같이하여 위의를 거두어 잡지 아니하고 부정한 곳에 머무르며, 부정한 곳에 머무른 자를 위하여
법문을 설하므로 이 법은 차츰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천히 여김이 되느니라. 이렇게 차츰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버리고 절에 들어와서 법을 듣기 위하여 자리에 나아가 앉으니, 그때에 비구가 그들을 위하여 열반과 흡사한 것을 연설하느니라. 가섭아, 내가 보건대 그때에 500의 법 아닌 문이 있나니,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따라가니 500번뇌가 조금도 줄어듦이 없으며 하는 일이 속인과 다름이 없느니라. 장차 이러한 큰 두려운 일이 있으니, 다시 그 가운데서 이익을 희망하겠는가?
그러므로 보리를 구하는 마땅히 모든 비구니를 가까이 하지 말며, 또한 마땅히 이러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일체 사귀어 놀기를 버리며, 어느 때나 모든 이익[利養]을 버리고 걸식을 받들어 행하며, 좋은 의복을 버리고 누더기[糞掃衣]를 받아 지니며, 일체의 누각․방우(房宇)․평상․와구(臥具)를 버리고 시냇가나 바위 굴․나무 아래에 머무르며, 온갖 병의 인연으로 의약․자구(資具)의 수용물을 버리고 내버린 약에 의지해야 한다.
모든 중생이 옛적의 친속(親屬)인 줄을 알고, 크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몽둥이로 치거나 나무라고 꾸짖음을 항상 참고 견디며, 끝내 남을 치거나 헐고 꾸짖지 아니하며, 일체 친구와 시주와 권속과 집을 버리고 마땅히 자기의 업행(業行)과 지혜를 수순하여 저 집에 있는 속인과 같게 하지 말며, 항상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교훈을 수순하여 받들어야 한다.
가섭아, 세상에 만일 어떤 사람이 별해탈을 등질 생각을 일으키면 곧 부처의 두려움 없는 힘을 등짐이 되나니, 만일 부처의 두려움 없는 힘을 등지는 자라면 곧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등지게 되느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받을 이숙(異熟)의 한량없는 큰 고통은 가령 삼천대천세계
일체 중생이 지옥고를 받을지라도 앞 중생이 받는 고통에 비하면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천 구지(俱胝)내지 산수(算數) 비유와 우파니사담분(優波尼沙曇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만일 이러한 큰 고뇌를 여의려면 마땅히 이러한 종류의 악행을 멀리 떠나야 한다. 비구가 이런 악인과 비록 천 유순이나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멀리 피할 것이거늘 하물며 가까이 하겠느냐? 만일 이런 나쁜 이름만 듣더라도 오히려 놓아 버리겠거든 하물며 어찌 보고 듣고서 멀리 여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한 가지 법을 가까이 친할지니 어떤 것이 한 가지 법이냐? 말하자면 온갖 법이 다 있는 것이 없느니라. 만일 모든 법이 있음이 없는 법의 지혜[法忍]를 얻으면 곧 이러한 악인을 가까이 친하여 공양하고 이점 어기지 않으리라.
이 사람은 다시 마땅히 두 가지 법을 가까이 친하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 법이냐? 말하자면 모든 법이 본래 있음이 없음을 구하며, 또한 모든 법성(法性)을 구하되 또한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어떻게 구하는가? 저 구하는 바와 같이 도무지 얻을 것이 없나니, 얻을 것 없는 가운데 마땅히 얻을 것 없다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마치 사견(邪見)을 여의듯이 삼계 일체의 마음을 여의는 것이 보리행을 따르는 것이요, 온갖 형상의 마음[一切相心]을 여의는 것이 보살행을 따르는 것이니라. 보살행이란 앞에서 말한 것이 보살행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 법을 듣고 마땅히 버리면 곧 미래세에 미륵세존을 섬기어 마음에 잘난 체하지 않고 또한 비열하지 않고 이렇게 외쳐 말하리라. ‘상쾌하도다. 안락하도다. 내가 악마의 그물과 모든 악취를 벗어났도다.’
가섭아, 후세에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몸이 이 법에 수순하는가를 관찰하고 다시 발심하여 이 가르침을 받아 지니면 여래는 ‘이 사람이 결정코 마땅히 나의
바른 법을 수호하리라’고 아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재물이 한량없는 어떤 장자의 아들이 그 집에서 한 물그릇을 보고 아버지 재물이란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자. 그가 후에 그 아버지가 죽고 재물이 흩어져 없어졌을 적에 문득 그 그릇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물건이로다’하며, 곁에 두거나 혹은 잘 간직하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그때에 모든 비구가 또한 이와 같이 이 경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여래께서 부드럽고 미묘한 큰 범음성(梵音聲)으로 연설하신 것이다’라고. 또 어떤 비구는 듣고 비방하리라. 법을 지니는 자가 대중[人衆:伴侶]이 적고 처소가 좋지 못한 데서 이 경전을 가지고 밤낮으로 수호하면 심히 비방을 당하리라. 이와 같은 사람은 내가 또한 알고 보느니라. 미륵세존에게 부촉하노니, 말법시대에 마땅히 여래의 법성(法城)을 수호하여 다음 세상에 걸림 없는 큰 보시를 삼게 하리라.
또 가섭아, 만일 선남자 중에서 이 법을 듣고는 그 지혜를 따라 수행하여 깊은 믿음과 바른 소견을 성취한 중생은 미래세에 미륵불을 만나 처음 법회에서 범행(梵行)을 갖추어 닦으며, 미륵불 말법시대에 또한 여래의 법성을 수호하리라.
가섭아, 내가 이제 두루 관찰하나니 내지 한 사람도 나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이가 없고, 오는 세상 50년 중에 이 경전을 듣고 비방하지 않고 능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만일 지금 나를 보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한 자는 오는 세상 50년 중에 이 경을 받아 지녀 읽어 외우게 되리라. 내가 그 공덕을 찬탄하게 하기 전에
저희들이 스스로 온갖 지혜의 지혜[一切智智]와 한 몸이 될 때에 나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희유하고 기특하도다, 석가모니불께서 우리를 잘 거두어 잡아 주시고 호념하셨도다’라고 말하리라.
그러므로 가섭아, 마땅히 이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법을 배우는 자는 그 구함에 따라 일체 공덕을 증득하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그때에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성문(聲聞)의 도를 끝마쳤으므로 다시 큰 법을 희구함이 없으니, 이 법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나게 되었사오며, 저는 여기서 매우 만족한 줄을 알아 끝내 온갖 지혜의 지혜를 이룩하지 못하오니 세존이시여, 위없는 보리는 희유한 일이오니 우리 성문은 증즉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이제 너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부연하나니, 네가 이제 이러한 큰 일에 의혹을 내지 말아라. 너희들 또한 마땅히 속히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리라.
가섭아, 만일 모든 중생이 법에 목말라 하는 마음을 성취하며, 법을 구하는 마음을 성취하면 차츰 모두 무상보리를 증득하리라. 이미 증득하고는 일체의 희구심[希求心)을 끊기 위하므로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바른 법을 선설하리라.
가섭아, 보살이 마땅히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정진을 발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물질[色]․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을 구하지 않고 무루법(無漏法)을 구하는 것이며, 지계(地界)도 없고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도 없으며, 지계라 말하지 않고 수계․화계․풍계라 말하지 않는 것이며, 온갖 언설(言說)이 다 이름으로 표시할 뿐, 이 표시법이 다 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이 마땅히 이 표시법을 가지고 묻고 실답게 여기지 않음이 그것이니라.”
그때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들은 여래께 실로 의혹이 없나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묻기를 ‘이 표시법이 진실이 아니라 할진대 부처님의 음성과 말씀으로 표시하신 것이 허망함이 되느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미래세에 모든 비구가 몸으로 계행을 닦지 않고, 마음으로 의리를 알지 못하며, 진에(瞋恚)가 치성하고 언사가 사나워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법대로 읽고 외우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는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기 때문이니라.
미래세의 비구가 이 경전이 표시한 법에 머무르는 것이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과 같으리라. 다시 어떤 비구들은 재가자(在家者)의 법에 머물러서 저 승의제(勝義諦)에 희구함이 없나니, 마치 장님이 금관으로 그 머리를 꾸몄어도 자기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그때를 당하여 모든 비구들도 그러하여 이런 경의 언설․문자를 보고 오히려 받아 지니지도 못하거니, 하물며 다시 닦을 승의(勝義)에 들어가겠느냐?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꾸지람을 받았다면 이 아이가 뒷날에 이 사람의 이름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의 비구들도 이와 같이 이 경이 여실히 허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알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좋은 의복을 탐내어 도리어 이 경에 공포심을 내느니라.
가섭아, 마치 개구리를 잡아매듯이 원숭이의 손을 잡아매면, 이 원숭이가 그 잡아맨 끈을 얼굴로 돌아보지도 않으며 그 앞에 머무르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마치 여우가 개에게 쫓겨 무덤 사이 굴 속 깊은 구덩이로 달려 들어가듯이 그때에 비구들이 이 경을 듣고는 여우가 달음질하듯 하느니라.
여우의 달음질이란 말하자면 금계를 범하고 이 경을 비방하며, 이 경을 듣고는 퇴속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욕심의 경계에 달려가며, 여인에게 달려가며, 싸우는 곳․시끄러운 곳․의술과 단사(斷事)에 달려가느니라.
거기에서 함부로 금계를 범하나니 나는 ‘이들이 무덤 사이로 달려간다’고 하느니라.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악취에 떨어지나니 마치 여우가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칼나무․칼날․창숲 등 큰 지옥을 달리게 되나니 여우가 깊은 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말세의 비구가 ‘말로 표시한 법이 진실이 아닐진대 여래의 말씀도 진실이 아니지 않겠느냐?’하고 말하고 그가 또 말하기를 ‘부처님이 표시한 법을 진실이라 할진대 모든 표시한 법도 또한 진실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슬기로운 비구는 묻기를 ‘대덕(大德)이여, 지금 무엇을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 공(空)을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 표시(말)를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라고 하여, 그가 만일 ‘나는 표시를 내세워서 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대답하기를 ‘네가 곧 부처님이로다. 왜냐하면 네가 언설로 표시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내가 공을 내세워서 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에게 묻되 ‘마땅히 나를 위하여 말하라. 어떤 것을 내세워서 공이라 하는가? 왜냐하면 말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을 공이라 하나니, 만일 말로 표시하여 공이라 한다면 혹 나[我]와 나의 것․중생․수자(壽者)․공이 아닌 것을 공이라 하리라’라고 하라.
또 그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온갖 법이 공한 것을 좋아하는가?’하고 물어, 그가 만일 ‘나는 온갖 법이 공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면, 슬기로운 자는 말하기를
‘너는 오랫동안 사문(沙門)․석자(釋子)임을 잊었도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가 공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나와 중생․수자와 삭취취(數取趣)를 말하지 않느니라’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온갖 법이 공하였으므로 내가 공성(空性)을 좋아하노라’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마음으로 오히려 온갖 법이 공한 것도 좋아하는데 하물며 여래의 정등각(正等覺)이겠느냐?’라고 하라. 다시 ‘인자(仁者)여, 눈이 여래인가? 귀․코․혀․몸․뜻이 여래인가?’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여래이며, 귀․코․혀․몸․뜻이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이제 너도 여래로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여래가 아니며, 귀․코․혀․몸․뜻이 또한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인자여, 너는 이렇게 말하라. 눈이라는 표시(말)는 여래가 아니며 내지 뜻이라는 표시는 여래가 아니다. 곧 드러내 보이지 않은 것이 여래이다’라고 하면, ‘내가 이곳에서 어찌 깨닫지 않겠느냐?’라고 하여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여래가 아니지만 또한 눈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내지 뜻이 여래가 아니지만 또한 뜻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여래가 말씀하신 12처(處)란 것은 말하자면 눈의 경계[眼處]․빛깔의 경계[色處] 내지 뜻의 경계[意處]․법의 경계[法處]이다. 이것이 곧 중생과 중생이란 명자(名字)이다. 인자여, 눈의 경계가 여래냐 , 여래가 아니냐? 내지 법의 경계가 여래이냐, 여래가 아니냐?’라고 하라.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눈의 경계가 여래이며 내지 법의 경계가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인자의 말과 같다면 일체 중생과 산림(山林)․대지(大地)가 다 여래이겠도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눈의 경계가 여래가 아니며 내지 뜻의 경계도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거든 ‘인자의 말과 같을진대 여래는 법 아닌 것이 도리어 법이겠도다’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빛깔이 여래가 아니며 내지
법도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거든 ‘만일 그렇다면 어찌 법 아닌 것으로써 여래라 하겠는가?’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곧 법 아닌 것으로써 여래라 한다’고 하거든, ‘만일 그렇다면 모든 중생이 부모에 불효하고 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을 공경치 않으며, 살생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간음하며, 거짓말․이간질․사나운 말․잡된 말과 탐냄․성냄․사견 등이 여래이겠도다’라고 하여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법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법 아닌 것과 법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여래이다’ 라고 하여라. ‘만일 비법과 비법 아닌 것이 여래라면 곧 표시가 없도다. 인자여, 그러면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이 여래이냐?’라고 하여라.
가섭아, 마땅히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을 절복(折伏)해야 한다. 내가 세간 사람이나 하늘에게 이렇게 법대로 말하면 같이 맞서서 변론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오직 진에(瞋恚)․우치한 사람은 나의 말을 견디어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열어 보이더라도 믿음을 내지 않고 공법(空法)을 비방하고 놓아 버리고 가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 경을 받아 지녀야 한다. 미래세에 비구가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장차 세 가지 이름으로 드러내 보이리니, 세 가지라 함은 ‘단멸(斷滅)이라 말하며 아무 것도 없다, 온(蘊)도 없다[無蘊], 또는 공경할 것도 없다[無恭]’를 이르느니라.
그때에 이러한 경전이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느니라. 네가 그때를 관찰해 보아라.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법을 공경하지 않고 다만 드러내 보여진 명자(名字)와 언어에 의지하여 승(僧)이란 이름을 띠었을 뿐 진실한 덕이 없느니라. 비록 부처님의 명호를 일컬으며 남에게 말하여 보이지만 바로 알지 못하니, 어떻게 여래를 우러러 받들까보냐? 비록 불법을 해설하지만 능히 여래의 뜻을 알지 못하나니 어떻게 잘 설법한다고 하겠느냐?
4쌍(雙)․8배(輩)가
부처님의 제자이지만 성문의 승려들은 다만 그 이름만 알았지 공덕에는 그 뜻을 알지 못하며, 능히 이름에 의한 실덕(實德)을 거느려 지니지 못하고, 의복․음식․와구․의약의 인연을 위하여 법을 비방하느니라.
보살은 그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러한 경(經)에 깊이 희유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받아 지니고 읽어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말세에 법성(法城)을 수호하기 위함이니라.
가섭아, 내가 생각건대 과거 91겁에 비어[空] 법이 없을 적에 이런 경이 다시 유포되지 않았느니라. 또 과거에 천 겁을 뛰어넘어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이름을 휴식열뇌(休息熱惱)라 하였다. 세상에 머물기를 팔만 사천 겁, 보살을 성숙시키고 세간을 이익 되게 하셨느니라.
또 과거에 여래가 계셨으니 이름을 무변력(無邊力)이라 했고, 세상에 머물기를 20억 겁, 저 20억 겁에 보살도를 행한 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느니라.
가섭아, 네가 부처님을 보아라.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을 닦아서 중생을 거두어 들였던가?
가섭아, 말세에 겁이 다하려 할 적에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은 제 몸을 가볍게 하고 천히 여기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겁이 다할 때에 한 사람이라도 능히 나의 처소에서 이 법을 믿어 안다면 매우 희유한 일이라고 생각하라. 모든 중생이 칼과 몽둥이를 지니고 우리를 쫓지 않으면 또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라. 왜냐하면 이 법이 곧 선장부(善丈夫)의 법이라, 저 모든 행(行)에 행의 생각이 없으며 깨달아 알기 어려운 까닭이니라.
만일 아견(我見)․중생견(衆生見)․명견(命見)․삭취취견(數取趣見)․유견(有見)이 있거나 만일 모든 온(蘊)에 의하여 계견(戒見)․다문견(多聞見)․불견(佛見)․법견(法見)․열반견(涅槃見)을 일으키는 자는 여래가 모두 이것이 사견(邪見)이 되는 줄을 아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는 저 열반에도 분별이 없으며 또한 얻을 것이 없나니, 만일 열반에 분별을 일으키거나 또는 얻을 것이 있다고 하면 여래는 다 사견이라고 말하느니라.
사견은 곧 무지(無智)라 이름하고 무지는 손해라 이름하고 손해는 어리석은 장부라 이름하나니, 어리석은 장부는 큰 보리에 욕망이 없으며 멀리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없느니라.
가섭아, 미래세에 비구의 나이가 이십․삼십․사십 내지 백세에 이르러서 늙음에 핍박되어도 의복을 치장하며, 비록 머리를 깎았더라도 위의(威儀)를 훼손하게 되며, 늙고 병들어 위광(威光)이 없으며, 삿된 법에 끌려들어서 목숨을 마칠 때에 죄의식의 막고 가리움이 되고, 게을러서 닦지 못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는 세 가지로 도를 증득한 체 나타내어 보이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혹은 위의를 꾸며 나타내며, 혹은 거짓 정행(淨行)을 닦아 지니는 체하며 혹은 손을 들어 외치기를 ‘나와 동등한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이 세 가지 일로 증득한 체하느니라. 이 사람은 다 증상만(增上慢)에 떨어지나니 목숨을 마칠 적에 뉘우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에 나리라. 그러므로 가섭아, 내가 이제 분명히 너희들에게 이르나니 나는 너희들의 참 선지식이라, 너희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겨서 뒤에 큰 괴로움을 받기를 저 모리가(募理迦:尾宿)․반지가(畔地迦:路生)․파리바라리가(波利婆羅理迦:女梵志)가 모든 고통을 받듯이 하지 않게 하려 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끝내 아견․중생견․수자견․보특가라견(補特迦羅見)에 집착한 자로서 내 법 가운데 출가하기를 허락하지 않느니라. 내가 허락하지 않는데 억지로 출가하면 모두가 도둑이라, 시주의 무거운 보시를 먹을 뿐, 또한 참된
비구계를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차라리 6일 동안 단식할지언정 내 법에 출가하고는 무거운 시주의 보시를 먹으면서 아견․중생견․수자견․삭취취견 내지 열반견을 일으켜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마땅히 정진심을 발하되 아견․중생견․수자견․삭취취견․유견․열반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일체의 견을 끊기 위하여 마땅히 설법해야 한다.
가섭아, 이러한 경을 내가 이제 모든 보살에게 부촉하나니, 왜냐하면 그들의 의욕이 나와 같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들의 의욕이 나와 같다면 이것은 나의 반려(伴侶)라, 곧 나의 부촉을 감당할 만하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괴로움이 핍박하여도
도무지 구호할 이 없도다.
오직 세간의 큰 길잡이[導師]로서
희론 여읜 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고뇌의 중생들
하찮은 사도를 닦으며
차츰 탐욕만 늘어가
이 때문에 악취에 떨어지네.
길잡이도 보호자도 없이
험악한 광야에 머물러
삿된 길에 빠져드니
마침내 안온(安穩)함이 없도다.
마치 사람이 재물을 지니고
먼 길에 장사를 떠났다가
중도에 도둑이 덤비어
재물 몽땅 빼앗기듯이.
재물 잃고 빈손으로 돌아오니
이익 보려다 괴로움만 더하고
남에게 꾸어온 빚 때문에
시달림 받기 더욱 괴로워.
비구도 또한 이처럼
법을 위하여 집을 나왔건만
본래 지녀온 법의 재산
깨끗한 행업(行業) 다 소멸되고
오직 머리만 빡빡 깎고
모든 사견에 어리석게 떨어져
나[我]니 중생이니 하는
보특가라의 생각에 집착하도다.
공법(空法)을 말하는 비구
삭취취에 집착하지 않음을
이 사람에 비방심 일으키면
어느덧 지옥에 떨어지리니.
화내고 꾸짖는 인연으로
서로서로 비방만 하며
제 허물 남 알까 겁내며
남의 허물만 망령되이 퍼뜨리며.
몸으로 나쁜 짓, 입으로 나쁜 짓
뜻으로는 아첨만 하고
뒤바뀐 생각으로 사견에 흐르니
이 사람은 악취에 떨어지리.
온갖 나쁜 짓하고는
쏜살같이 3도(途)에 가서
뭇 괴로움에 불타게 되니
누가 능히 구호해 주리.
오는 세상의 어떤 비구는
난폭하고 진에심(瞋恚心)이 많아
보리도로 달려 나아가는
참다운 행자를 괴롭히나니.
이 모든 사나운 무리는
이러한 경전을 비방하여
다시는 석사자(釋師子)의 가르침
받들어 지니지 않으리.
서로 진에심만 일으켜
번갈아 괴롭히고 해치며
남의 허물만 드날려
사나운 소문 사방에 퍼지네.
헛되이 남에게 누명 씌움은
자기의 수치처럼 되나니
선량한 이는 돕는 이 적고
삿된 친구는 세력이 늘도다
이것은 바른 법이 없어질 때
악인의 세력이 강할세라
나의 사랑하는 제자로서
이른바 착한 비구들은
마땅히 다른 방향을 향하여
안온한 곳을 찾아갈지니.
사나운 무리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불쌍한 마음 일으켜
마땅히 이 경 가운데
자세히 살피어 생각하라.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장소를 가리어 머무르라’고.
바른 법이 무너져 없어질 때
선량한 벗 얻기 어렵나니
여래가 찬탄한 장소에
서로 따라 함께 나아가라.
누가 말하기를 이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 거든
마땅히 대선인(大仙人)께서
도 얻는 곳으로 나아갈지니라.
다시 말하기를
‘인자여, 그대가 진실로 잘 말했도다.
불탑(佛塔)을 돌며 도를 구하라’고.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니.
차라리 저곳으로 가보리.
마음도 기쁜 보리의 도량
이곳은 머무를 곳 못되나니
사나운 무리에게 핍박되기에.
비구여, 저리로 나아가자.
나를 위하여 나아가자.
부처님 노니시던 곳
그 옛날 조용히 계시던 곳.
거닐고 조용히 앉으시던 곳
돌이나 또는 빈터이거나
모여 같이 탄식하고
위하여 자주 울어도 보리.
이것이 저 대선인께서
거닐고 수용(受用)하며
옛날에 일찍이 노니시면서
위없는 법바퀴[法輪]를 굴리신 곳이니.
유위(有爲)는 마침내 무상(無常)한 것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 등과
하늘․용이 다 모였을 적에
교화하여 기쁘게 하시던 일
우리는 이제 볼 수가 없고
어찌하여 빈 것만 볼까?
때로는 이 도량의
가장 거룩한 보리지(菩提地)에
같이 와 모인 뒤에는
이치와 같이 생각할지니.
부처님께서 일찍이 이곳에 앉으시어
위없는 불과(佛果)를 이루시고
악마의 무리를 두렵게 하시기
마치 여우의 무리와 같이.
이것은 보리의 도량
부처님께서 단정히 계신
과거와 또는 미래의
모든 부처님 자리.
조용히 앉으신 대웅(大雄) 세존님
백억 하늘의 경례받으시며
이레 동안 가부좌(跏趺坐)하시어
자세히 보리수를 보셨네.
우러러보기와 공양을 마치시자
다음엔 녹림(綠林) 동산으로
여기서 처음 법바퀴 굴리시니
그 음성 범천[梵世]을 울리었네.
저 모든 비구들은
자주 슬피 울었다.
‘다섯 사람 제도하시려고
도사가 이곳에 오시었다’라고.
다섯 사람은 처음 부처님 뵙고
근심․걱정 자아내면서
규칙을 세워 약속하기를
‘우리는 일어나 맞지 말자’고.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다섯 비구 위하여 설법하시니
감로(甘露)의 열매가 때맞춰 익었네.
법바퀴 굴리던 곳에 경례하며
슬퍼하며 자주 우나니
다음엔 열반하시던 곳을 찾아
부처님이 최후의 몸으로
이 사라수(沙羅樹) 쌍림 아래
중생에 이익 주시던 일을.
몸을 부수고 지절(支節)을 나누어
이곳에서 열반에 드심이여.
슬프도다, 우리 부처님 대성존
석가의 큰 열반이시여.
이제 다만 이름만 듣고
아깝다, 우리가 뵙지 못함이여.
도사는 또한 이곳에서
최후로 선현(善賢)을 제도하셨네.
지혜의 눈으로 먼저 보시고
이것이 최후의 제도를 받을 것
혹은 닦을 때에 명(命)을 마치거나
혹은 목숨 마칠 때에 발심하거나
혹은 닦음을 마치고는 죽거나
다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을.
이후 말세에는
깊고 넓은 법이 잠겨 버리어
계를 지니거나 계를 허는 사람이
다 신도의 공양을 얻어
남의 무거운 시은(施恩)을 받고는
살같이 악취에 떨어지리니.
너희들 비구들은
이러한 차별을 관하라.
슬기로운 이는 나중에 닦더라도
재빨리 인간․천상의 과보 받을 것을.
이들은 세상을 비치는 등불
세간을 불쌍히 여기는 자이며
모든 슬기로운 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네.
항상 부지런히 닦아 나아가며
뛰놀며 기뻐하면서
장차 대각존(大覺尊)이 될 것이며
또한 미륵불을 만나 섬기리.
저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대중 가운데서 수기(授記)를 받아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자재로운 위신력 나타내리니.
나는 성실한 말로
이러한 무리를 위안하나니
그가 부처를 못 보았더라도
부처 본 것과 다름없으리.
내가 옛적 보리를 구할 때
모든 부처님을 예경했으니
만일 모든 여인들이
위없는 보리에 나아간다면
나와 한량없는 부처가
모두 그들를 위안하리니
재빨리 사내 몸 얻어
미륵세존을 만나보리라.
저 부처님 공양하고는
구하는 바가 뜻대로 되리니
마땅히 지혜를 배우는 자는
깨끗한 믿음으로 집을 떠나니.
굳고 즐겨하는[樂欲] 마음으로
많이 듣고 계 지니기를 배워
저 미륵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리.
그러므로 커다란 승리(勝利)를 듣고
믿음을 일으켜 착한 뿌리를 닦아
굳은 마음에 편안히 머물러
모든 중생들 거두어 안아 들이리.
그 누가 이러한 곳에서
구하여 이것을 얻지 못하리.
슬기롭고 정진한다면
보리를 얻기는 어렵지 않으리.
자비의 마음 닦아 익혀
굽은 마음 놓아 버리고
항상 조용함을 즐거워하면
이것이 곧 보리의 도.
만일 사람이 이 법에 있어
빈 말만 하고 실행 없다면
대중이 비록 예경하여도
이것이 두려운[可畏] 도적이로다.
만일 사람이 음식이나
여러 가지 이익을 위하여
바른 법문을 받아 지니며
서로서로 전하여 말하면
이것은 나쁜 생활의 수단
헛되이 세상을 살아감이니
이 생에 사람의 몸 버리고 보면
악취에 들어가 괴로움 받으리.
혹은 불법 안에 숨어서
거짓 비구라 이름하고
경전을 비방하며
해탈계[解脫禁]를 설한다하나니.
말하되 내가 능히
‘별해탈[木又]의 교법을 선포한다’고.
비록 비구의 몸 되었지만
마침내 인간․천상의 몸 잃으리로다.
만일 인간․천상을 비방하고
또한 온갖 지혜를 헐뜯으면
이렇게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그 죄가 저것보다 더하리니.
몸과 말․뜻을 잘 보호하여
모든 나쁜 짓 일으키지 말아라.
능히 이 세 가지 없애는 이는
반드시 열반을 얻게 되리라.
“다시 가섭아, 여래가 멸도에 든 뒤에 당시 여래 처소에서 착한 뿌리를 심은 모든 비구들은 다 열반에 들며, 수승한 의욕을 갖춘
모든 중생들이 또한 모두 세상을 떠난 후 50년에 바른 법이 없어지려 할 때에, 어떤 비구는 탐착심을 품고 그 치열한 탐욕이 그 마음을 가려서 이간질하는 말로 남을 심하게 해롭게 하며, 말씨가 거칠고 사나우며 과격하고 악랄하여 세 가지의 법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냐 하면, 의도(醫道)와, 판매하는 것과 여인을 가까이하는 것이니라. 이 세 가지 법에 머무르므로 네 가지의 일을 잃게 되니, 어떤 것이 넷이냐 하면 계온(戒蘊)과 선취(善趣)에 나는 일과 진실한 과(果)를 증득하는 일과 부처를 보는 일을 잃어버림이니라.
이 네 가지를 잃어버리므로 다시 네 가지 법을 이루게 되며, 세속을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번뇌는 더욱 치성하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하면 질투심이 더욱 치성하며, 진에의 사나운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종족에 탐착하는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음식에 탐착하는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음식에 탐착하여 여러 가지의 맛난 것을 쌓아 두며, 의복을 탐내어 마음을 가리므로 상자에 쌓아 두는 것이니라.
오로지 이런 일로 업을 삼아 사문의 법에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으며, 또한 사문의 도는 증득할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이 경을 듣고는 네 가지 처소에 떨어지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하면 법을 비방하는 데 떨어져 부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도리어 말하며, 홀로 여인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선설하며, 여래의 별해탈계를 훼방하며, 이런 경을 듣고는 더욱 법을 훼손하려 하여 악법에서 오래도록 살게 되는 것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쓴 쓸개를 사나운 개의 코에 부으면 어떻겠느냐? 개가 갑절이나 더 사나운 마음을 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저 사나운 사람은 마치 사나운 개와 또는 비사차(毘舍遮)와 같으니라. 어떤 비구가 깨끗한 마음으로 이 법을 지니고 이 법을 말하며, 진실에 머물러 욕심이 적은 자와 욕심 적음을 찬탄하는 자를 보면 이 사람에게 기쁜 마음을 내지 않고,
싫어하고 배반하는 마음을 내어 겁내고 또는 고민하느니라. 그 진에심이 마음을 가로막으므로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이 때 아닌 때, 머물러서는 안 될 곳에 머물러 있었다. 때아닌 때, 머물러서는 안 될 곳에서 남들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훼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경을 들으면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켜 훼방하고 성내고 거친 말을 더한다’고 하나니 이것은 내 가르침이 아니니라. 이들은 욕심 많은 자요, 욕심 적은 자가 아니니라.
가섭아, 나는 갖가지 이름으로 욕심 적고 족함을 좋아하는 자를 찬탄하나니, 이름하여 기르기 쉬운 자․만족하기 쉬운 자․깨끗이 닦은 자․두타행을 행하는 자․극히 단정한 자라고 하느니라. 나는 또한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는 자․정진하는 자․깨끗이 사는 자라고 찬탄하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상자 속에 많이 저축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땅히 이러한 법을 닦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구리쇠 주발이 빌수록 그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하지 말고,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 이 법을 수행할 것이요, 또한 거듭 진에를 일으키지 말며, 또한 사물(事物)을 거두어 취하지 말고 일 없고[無事] 아무 것도 없는 데[無物]에 머무르며, 머무르는 처소에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머무르는 바가 없게 하라. 제 자랑하지 말며, 또한 소와 말 등을 기르지 말며, 방일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머무르지 말고, 마땅히 용맹 정진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놓아 버리고 착한 법을 거두어 잡아 지녀야 한다.
가섭아, 내가 갖가지 이름으로 적정(寂靜)을 찬탄하나니 아란야에 머무르고 시끄러운 데 처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이 가운데 갖가지 이름으로 매우 깨끗이 닦는 행을 말하나니, 만일 매우 깨끗한 행에 머무르지 않는 이는 큰 욕심을 갖춘 이며 죄악을 짓는 이며, 곧 매우 깨끗한 행에 머문 이가 마땅히 비방한다. 가섭아 비유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4월에 부자(附子)를 먹고 갈증이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물을 구해 마실 때에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부자를 먹었으니 다시 물을 마시고 죽음에 이르지 말게 하라’고 하나, 어리석은 사람은 진심에 가려서 나무라고 꾸짖으며 남의 말을 따르지 않고 물을 마시고 죽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미래세의 비구가 유견(有見)에 탐착하여 선정에 머무르지 아니하거든 법을 지니는 자가 가르쳐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고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저 나쁜 비구는 진심에 가려서 나무라고 꾸짖으며 이 경전을 비방하느니라.
가섭아, 오늘의 여래 앞에서도 오히려 시비를 일으키거늘 하물며 미래세이겠느냐? 네가 또한 현호(賢護) 비구를 보아라. 여래가 계를 제정하여 모든 비구로 하여금 한자리에 앉아 먹게 하였는데 그는 진심에 가려져서 여름 석 달 동안을 나의 처소에 오지 않았느니라.
가섭아, 지금 내 앞에서도 오히려 이렇게 범행(梵行)을 가벼이 하는 자가 있는데 하물며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야 음식․의발(衣鉢)․의약에 탐착하여 번뇌에 덮여 진에가 치성하리니, 이런 비구는 이 법을 듣고 오히려 여래 큰 스승을 공경치 않으니리, 어찌 능히 법 지니는 비구를 공경하겠느냐? 가섭아, 이것을 착하지 않음이라 이름하며 또한 극악(極惡)이라 이름하나니 이러한 법보는 곧 숨어 없어지느니라.
그 중에 만일 큰 이익을 구하는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나의 가르침을 받는 자라도 뒤에 5탁(濁)의 찌꺼기가 덮여 올 때에는 착한 사람이 되기 어려우니라, 그때에 이러한 매우 깊은 법을 듣고서 법답게 행하는 자를 위하여 말할 것이요, 법답지 못한 자에게 말하지 말며 믿는 자를 위하여 말할 것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 말하지 말라. 내가 이제 또한 법다운 자를 위하여 말하고 법답지 못한 자에게 말하지 않으며, 믿는 자를 위하여 말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 말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자면 사나운 말[馬]은 갑옷[被甲]을 입지 않는다. 좋은 말[良馬]도 갑옷을 입히려 하면 도리어 놀라고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사나운 말이 나발과 북소리를 감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파계 비구가 어느 때든지 선장부(善丈夫)의 법을 견디어 받지 않음이 나쁜 말이 도리어 놀라며 두려워함과 같으니라.
가섭아, 파계 비구가 한마디라도 ‘모든 법은 나[我]가 없다’고 말함을 듣고는 아상(我相)에 집착하므로 문득 두려워하며 다투는데 하물며 선(善)의 갑주 입는 것을 말하겠느냐? 만일 능히 갑주를 입으면, 곧 능히 백억 마군을 항복 받아서 끝내 투쟁심을 내지 못하게 하느니라. 모든 착한 비구가 정진의 갑주를 입고 근본 두타의 공덕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이것은 깨끗이 닦는 근본, 탐냄․성냄․어리석음이 없는 근본, 질투가 없는 근본, 욕심을 여읜 근본, 홀로 처하는 성행(性行)의 근본, 잠을 깨는 근본으로서 언제나 어떤 종족에게나 성내고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갖가지 물건에 희구함이 없나니, 이러한 갑주 입기를 무(無) 근본이라 이름하느니라.
갖가지 갑주를 입으면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 처(處)에도 집착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아상(我想)을 일으키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아상․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想)․삭취취상(數取趣想)․여상(女想)․남상(男想), 지․수․화․풍이라는 생각,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라는 생각, 지계상(持戒想)․파계상(破戒想)․공성상(空性想)을 내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온갖 생각을 다 일으키지 말 것이니 온갖 생각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탐이 만일 진실로 있다면 곧 깨달아 알아라. 그 본바탕이 무엇인가를 찾아 탐애심을 없애면 어떤 곳에도 머물지 않고 머무른 곳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거짓말[妄語]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이[實語者]라고 하느니라.
여래가 말한 탐욕은 모두 나[我]라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이 사문법이며
모든 사문법은 다 얻을 것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생각에 집착하면 이 사람은 곧 나라는 생각에 집착함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으니 성인의 가르침과 사문법을 잃어 조금도 내지 못할 것이며, 또한 사문법에 머무르지 못하리니, 이러한 넓고 큰 최승의 법도 저 어리석은 자에게는 도리어 손실이 되므로 조금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적은 법이라도 집착하면 곧 극히 두려운 큰 지옥에 들어가서 한 겁을 머무르리라.
가섭아, 네가 구가리(俱迦利) 비구․건다달라(騫茶達羅) 비구․가로저수(迦盧底輸) 비구․모달라다(母達羅多) 비구․아습번(阿濕繁) 비구․포나파소(布那婆蘇) 비구․소기달라(蘇氣怛羅) 비구를 보아라. 이들은 나의 시자로서 친히 내 앞에서 나의 설법을 듣고 내가 거니는 것도 보았고, 내가 백․천 외도를 항복 받고 대중 가운데서 삿된 도법을 굴복시키는 것도 보았느니라. 이런 사람들도 오히려 나에게 신락심(信樂心)을 내지 않고 잠깐 사이라도 항상 나를 훼방하려 하므로 차츰 그 악심이 늘어갔느니라.
다시 만일 부처의 이름을 말하거든 믿어 실답게 생각하는 이는 마땅히 수미산 같은 좋은 그릇을 가지고 전단향 가루를 담아 그 위에 흩을 것이며, 삼천대천세계 같은 일산으로 공중에서 그 위에 덮을 것이니 부처를 믿는 까닭인데, 하물며 믿고 욕심을 버리고 집을 나와서 의지할 것 없이 모든 선정을 닦음이겠느냐?
가섭아, 이러한 중생은 그 중에서 가장 희유하다고 인정하노라. 능히 부처의 법을 잘 호지하며 능히 저 감로법(甘露法)을 깨달아 알리라.
마치 여러 사람이 짐승의 가죽이나 썩고 더러운 물건으로 인형(人形)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라. 혹은 갖가지 잡된 얼굴 모습을 만들고 채색을 하여 꾸며서 매우 단정하게 만들고는 사람의 얼굴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옷으로 얽어 싸서 노리개를 만드나니, 어찌 그 겉모양으로 좋다 하겠느냐? 그것이 더러운 물건으로 만든 줄을 알면 곧 내버리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나쁜 비구가 여래의 위덕과 의용(儀容)으로서 자기의 겉치레를 하지만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로소 극악인 줄을 알 것이다. 나와 남의 치레를 하지만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로소 극악인 줄을 알 것이다. 나와 남이 있다는 생각[我想]으로 말미암아 탐애심을 내는 까닭이다. 만일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실답지 않은 줄을 깨달아 알면 이런 경을 들어도 진에심을 내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훼방하고 거스르더라도 이 경을 듣고는 그런 무리를 멀리 떠날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지기 때문이니라. 만일 중생이 집착심을 품으면, 그는 곧 사견의 사람이니라. 만일 사견을 일으키면 이런 경의 여실한 교훈에 곧 진에심을 내리라.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이 있는 자는 진에심이 있는 까닭이니라.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이 경을 듣고 진에심을 내어 헐뜯고 비방하는 이는 곧 사문이 아니니라. 비록 사문이란 명칭이 있더라도 나의 성문 제자가 아니며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나의 성문 제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나는 거짓말하는 자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이[實語者]라, 능히 온갖 법의 공(空)을 진실하게 말하는 자이니라.
가섭아, 여래는 능히 아집(我執)을 깨뜨리고 그것과 싸우느니라. 만일 여래와 더불어 싸우는 자는 악마이니라. 여래는 악마의 무리가 집을 떠나 구족계(具足戒) 갖기를 허락하지 않느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청작(靑雀)이라는 작은 새가 큰 용․코끼리를 낳았다’고 하면 어떻겠느냐? 이런 말을 믿겠느냐?”
가섭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종류가 되겠느냐?”
가섭이 아뢰었다.
“같은 종류가 되지 않나이다.”
“다시 가섭아, 또 말하기를 ‘묘시조왕(妙翅鳥王)이 뱁새에서 났다’라고 하면 믿겠느냐? 같은 종류가 되겠느냐?”
가섭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다시 가섭아, 또 말하기를 반딧불이 같은 작은 벌레가 수미산을 지고 공중으로 날아갔다면 믿겠느냐? 같은 종류가 되겠느냐?”
가섭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악인이 만일 나라는 생각과 열반이란 생각에 머무르며 나를 일컬어 스승이라 한다면 같은 종류라고 할 수가 없다. 가섭아, 만일 제왕이 편안히 국계에 머물러서 백성을 어루만져 기르고 쾌락이 한량없으며 갖가지 음식이 절로 갖추어져 있고, 곁에 시신들이 왕의 교화를 받들던 때에, 어떤 모르는 사람이 재리(財利)를 위하여 왕의 신하라 자칭하고 왕의 명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임금과 신하들 가운데서 거짓 왕의 명을 펴되 ‘너희들은 마땅히 이에 머물러 있어라’하거나, 혹은 ‘너희들은 이런 일을 하여라’하는 것과 같도다. 가섭아, 여래 법왕도 이와 같이 대천세계에서 왕 노릇하여 일체의 3승(乘) 중생을 교화하되 10력(力)의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여 모든 불사를 짓되, 안락하기 끝이 없으며 음식 공양이 절로 풍족하도다.
그 가운데 남 모르는 어떤 중생이 먹고살기 위하여 나와 중생 내지 열반을 말하고 여래의 나 없는 성교[無我聖敎]를 받지 않고 ‘여래가 말씀하신 바 이 일은 마땅히 해야 하며, 이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부처를 믿고 가르침에 순종하여
비방하지 않고 그 말을 듣고, ‘이것이 훌륭하고 깨끗한 복밭[福田]이라’하여 자기의 재산과 처자의 일부분을 가지고 은근한 신심으로 법대로 베풀되, 모든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그 뒤로 잠깐도 끊임이 없느니라.
이러한 악인은 남이 모르는 어떤 사람과 같으니라. 음식을 얻어먹고는 시끄러운 곳에서 나날이 왕의 일[王事]․도둑의 일[賊事]․음식에 대한 일[食事]․음란한 일[淫事]․여인에 대한 일[女人事]․의방에 대한 일[醫方事]․술 마시는 일[飮酒事]․일식과 월식에 대한 일[日月博蝕事]․왕의 사신 다니는 일[王使去來事]․종족에 대한 일[種族事] 등을 논설하며, 혹은 ‘어느 날 어디를 가면 음식이 생긴다’느니 이런 종류의 갖가지의 말로 밤낮을 보내고 절에 돌아온다.
혹 두 번 자고 엿새를 지내면서 머무르는 곳에 또한 항상 이런 일을 말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를 잃고 위의를 바로잡지 못하며, 몽롱이 잠들 적엔 침이 흘러내리며, 항상 낮에 하던 일이 꿈에 나타나며, 혹 자기가 다른 곳으로 가되 빨리 가고 느리게 가는 갖가지의 일을 보게 되느니라. 이미 깨어나서는 서로 향하여 말하기를 ‘꿈에 네 몸이 이렇게 다니고 앉았다. 이런 곳으로부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다’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이 꿈은 길한 꿈이다. 마땅히 빨리 촌․읍․왕성에 가서 다른 집에 이르러야 된다’고 하며, 나들이하여 쏘다니면서 얼굴과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괴로움에 시달리므로 마음이 안정치 못하여 고요한 선정[等引定]이 없고 교만하고 방자하며,
여섯 감관[六根]이 혼잡하여 속인과 다름없으며, 말은 때를 맞추지 못하고 마음은 달려 흩어져서 마을의 큰 성바지 집에 돌아다니며 별해탈계를 받들어 지니지 않고, 홀로 여인을 위하여 법문을 말하되 법을 말할 때엔 물든 마음에 머무느니라. 이런 가운데 좋은 음식․의복을 얻으면 물든 마음이 마치 좋은 음식물을 씹어 삼키듯이 어리석고 탐착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집착하며,
뉘우칠 줄을 모르고 떠날 때에는 울고 가느니라.
또 두 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열어 보이느니라. 둘이라 함은 깨끗하고 좋은 보시를 얻으면 찬탄하고, 그렇지 못함을 얻으면 문득 나무라느니라. 서로 만날 때엔 서로 그 소득을 보느니라. 서로 묻기를 ‘시주가 이제 무엇을 보시할 것이며, 누구에게 베풀어줄까, 음식과 자재가 얼마나 되는가?’ 하느니라.
가섭아, 이 사람을 수행 않는 자라 이르며, 내지 목숨을 마치기까지 수행하지 않는 자라 말하느니라. 다시 남은 허물이 있어서 나쁜 뜻을 내나니, 이른바 바른 법을 비방함이니라. 가섭아, 마땅히 이러한 모든 비구에게 불쌍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장차 괴로움의 과보를 받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저 살기 위하여
제왕의 신하라 자칭하며
남 몰래 다른 곳에 나아가서
거짓 왕의 제령(制令)을 펴나니.
저곳에서 비밀의 말을 전하되
‘왕의 명령이니 거슬리면 안 된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이곳에서
저 살기 위하여 이런 짓 하도다.
거룩한 부처는
저 수없이 많은 겁(劫) 속에
목숨과 몸을 버리고
허다한 어려운 일 다 겪었나니.
이것은 법왕가(法王家)의 하인에게
꾸지람이나 벌을 받아서가 아니며
또는 이것은 하고 이것은 하지 말라고
문책하는 자가 있어서도 아니니라.
비구에게 도 닦을 장소며
아름다운 진수성찬이며
또는 가장 묘한 의복
이런 것 모두 다 바치었노라.
부지런히 재물을 구하여
계 지니는 이에게 베풀어주고
제 몸에 이바지하거나
또한 처자를 위함이 아니었네.
법대로 머물지 않는 사람은
공양만 받아먹고 달아날 뿐
다음날 서로 만날 적에는
‘내가 그때에 잘 먹었다’고 한다.
어디나 한데 모이는 곳에서
왕의 정사가 어떠니, 도둑의 일 어떠니
국경을 지키는 일이 어떠니
갖가지의 음식 요리가 어떠니
일식․월식에 대한 일이며
왕의 사신으로 가고 오는 일이며
혹은 ‘마땅히 이기리라’
혹은 ‘장차 망하리라’고 한다.
이것이 말할 바 아니언만
그들은 항상 이야기하면서
화려한 침상에 누워서
밤낮으로 즐겨 잠만 자나니.
낮으론 신도 집에 나가고
부자 많은 곳을 찾아서
‘이 보시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최상의 보시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일로 찾아가고는
자리에 앉아 부질없는 이야기로
어리석고 게을러 닦지는 않나니
마치 노새가 무거운 짐 지듯이
잠자다 꿈꾸는 가운데
이런 것 저런 것 본 것을
깨어서 남에게 말하며
서로 향하여 이야기하나니.
‘걱정 말고 웃지도 말라.
네가 장차 좋은 일 있으면
이 일이 빨리 이룩되리니
다시는 근심 걱정 말라’고 한다.
자주 촌․읍에 쏘다니며
동작이 볼 모양 없이
마치 방정맞은 원숭이가
얼굴과 눈을 희번덕거리듯
어느 부락에 들어가
여인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과
별해탈계법을 내버리나니
시주의 집을 나와서는
물건의 다소를 따지면서
적으면 준 사람 나무라기
그 집안 권속도 훼방하나니.
그 다음 서로 만날 적에
서로 물어 말하기를
‘무슨 물건, 무슨 음식을 얻었는가.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먹었다’고 한다.
대강 말하나니 이러한 일로
백 년 동안 지나리로다.
이렇게 익히어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 목숨 살려 가지고
맛있는 포도 술이며
향과 꽃을 서로 다투며
‘그 몸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것을 구하여 병뇌(病惱)를 적게 한다’고 한다.
가령 100불이 출현한들
저 사람을 어찌할 수 없나니
닦을 바 행을 버리니
속인과 다를 것이 없도다.
그 몸을 사랑하고 보호하여
나[我]․인상(人相)을 여의지 못하나니
그가 이러한 행을 짓고는
반드시 악취에 떨어지리니.
만일 바른 법을 비방하면
무거운 괴로움에 불타게 되나니
깨침의 슬기 없는 범부여,
속인과 다를 것이 무엇이리.
만일 모든 석사자(釋師子)로서
실행(實行)을 닦는 성문이라면
목숨을 살리는 인연으로써
적은 계라도 헐지 않으리.
슬기로운 이는 밥을 탐내지 않고
항상 무거운 짐이라 생각하여
몸은 부정한 것이라는 관법[不淨觀]을 닦아
시주의 빚을 돌려 갚나니.
욕심의 번뇌를 여의므로
온갖 법을 깨달아 아나니
나는 이런 것을 듣고
이 가르침 가운데 출가하였네.
슬기로운 이는 법을 비방하지 않고
저 말한 바 공한 이치[空性]에
쉼 없이 부지런히 구하여
세상 것이 모두 다 진실치 않은 줄을 안다.
용맹스럽고 슬기로운 이는
공한 이치를 깨달아 알아서
능히 마군을 겁나게 하나니
그는 넉넉히 공양을 감당할 만하리.
만일 탐착심을 여의어
공한 성품 훼손하지 않으면
불자로 매우 씩씩한 사람이라
인간․천상의 공양을 받으리.
바른 법이 장차 멸하려 할 제
세상 사람들 어리석기만 하고
부드럽고 선량한 비구로서
부지런한 자 구하기도 드무니
슬기로운 자 마땅히 걱정하라.
오래지 않아 자멸될 것을
그 뒤에 낮이고 밤이고
나[我]가 있다고 이야기할 뿐.
세간을 구호할 이 그 누구이리.
오직 사람 중 높은 이가 있을 뿐
배울 것을 닦아 행하는 이도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저들은 이러한 밀의언(密意言)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부처와 위없는 바른 법을
공경할 줄을 알지 못하나니.
바른 법이 없어지려 할 제
부지런히 정진할지니
잠깐 사이라도 법을 들어라.
오래지 않아서 못 들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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