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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88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23권

by Kay/케이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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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23

 

대방광불화엄경 제23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그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한 대보살이 저마다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보살들과 더불어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국토 밖으로부터 부처님 계신 데로 왔었다. 그 이름은 금강당(金剛幢)보살ㆍ견고당(堅固幢)보살ㆍ용맹당(勇猛幢)보살ㆍ광명당(光明幢)보살ㆍ지당(智幢)보살ㆍ보당(寶幢)보살ㆍ정진당(精進幢)보살ㆍ이구당(離垢幢)보살ㆍ성수당(星宿幢)보살ㆍ법당(法幢)보살이었다.
그들이 떠나 온 세계는 묘보(妙寶)세계ㆍ묘락(妙樂)세계ㆍ묘은(妙銀)세계ㆍ묘금(妙金)세계ㆍ묘마니세계ㆍ묘금강세계ㆍ묘파두마세계ㆍ묘우발라세계ㆍ묘전단세계ㆍ묘향세계며, 각각 부처님 계신 데서 범행을 닦았으니, 이른바 무진당불(無盡幢佛)ㆍ풍당불(風幢佛)ㆍ해탈당불(解脫幢佛)ㆍ위의당불(威儀幢佛)ㆍ명상당불(明相幢佛)ㆍ상당불(常幢佛)ㆍ최승당불(最勝幢佛)ㆍ자재당불(自在幢佛)ㆍ범당불(梵幢佛)ㆍ관찰당불(觀察幢佛)이었다.
그 보살들이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서는 부처님 발에 정례하였고, 부처님의 신력으로 묘보장(妙寶藏) 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었으니, 보배 그물로 두루 덮어 사면에 가득하였으며, 모든 보살 대중이 제각기 온 곳을 따라 사자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그 몸에서 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의 청정한 광명을 놓으니, 이 한량없는 광명은 보살의 청정한 마음인 모든 허물이 없는 큰 원력으로 일어난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고 청정한 법을 나타내 보이며, 보살들의 평등한 원력으로 일체 중생을 널리 구호하니, 모든 세간에서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보는 이는 헛되지 아니하여 모두 조복되었다.
그 보살들은 한량없는 공덕을 이미 성취하였으니, 이른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다니되 장애가 없으며, 의지한 데 없는 청정한 법신을 보았으며,
지혜 몸으로 무량한 몸을 나타내어 시방으로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섬기며, 부처님들의 한량없고 그지없고 부사의한 자재한 법에 들어갔으며, 한량없는 온갖 지혜의 문에 머물러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법을 잘 알며, 모든 법 가운데서 두려움이 없게 되어 간 데마다 연설하매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변재가 다하지 아니하며, 큰 지혜로 다라니문[摠持門]을 열고, 지혜 눈이 청정하여 깊은 법계에 들었고, 지혜의 경계가 끝없으며, 끝까지 청정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
이 세계의 도솔타천궁에 보살 대중이 이렇게 모여오는 것처럼 시방의 모든 도솔타천궁에도 이런 이름을 가진 보살들이 모여왔는데, 그 떠나 온 나라와 부처님들의 명호가 꼭 같아서 차별이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 두 무릎에서 백천억 나유타 광명을 놓아 시방의 온 법계와 허공계를 두루 비추니, 저 보살들이 이 부처님의 신통 변화하시는 모양을 다 보고, 이 보살들도 저 여러 부처님의 신통 변화하시는 모양을 보았다.
이 보살들은 지난 옛적에 비로자나여래와 함께 선근을 심으면서 보살의 행을 닦았으며,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신 깊은 해탈문에 깨달아 들어가서 무차별한 법계의 몸을 얻었으며, 일체 국토에 들어가되 머무는 데가 없고 한량없는 부처님께 나아가 섬겼다. 잠깐 동안에 법계로 돌아다니되 자재하여 걸림이 없고 마음이 청정하여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배와 같으며, 무량무수한 부처님들이 항상 호념하여 힘을 가피하시어 구경(究竟)이요 제일인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항상 깨끗한 생각으로 위없는 깨달음에 머물렀다. 생각생각마다 온갖 지혜의 곳[一切智處]에 항상 들어가며, 작은 것이 큰 데 들어가고 큰 것이 작은 데 들어가되 모두 자재하여 막힘 없이 사무치고, 부처님 몸을 얻어 부처님과 함께 있으며, 온갖 지혜[一切智]를 얻고서 온갖 지혜로부터 몸을 내었으며, 일체 여래의 행하시는 곳에 따라 들어가서 한량없는 지혜의 법문을 열었다. 금강당의 큰 지혜인 저 언덕에 이르고 금강 삼매를 얻어 모든 의혹을 끊었으며,
부처님들의 자재한 신통을 얻고 시방의 국토에서 백천만억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면서도 온갖 수(數)에 집착이 없으나, 능히 닦고 배워서 구경까지 성취하고 방편으로 모든 법을 정돈하고 건립하였다.
이러한 백천억 나유타 말할 수 없는 끝없이 청정하고 삼세 일체의 무량 공덕장(公德藏) 보살 대중이 모여와서 부처님 계신 데 있었는데, 광명으로 인하여 보이는 모든 부처님 처소에도 역시 이와 같았다.
그때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는 세상에 나지도 않고
열반도 없지마는
본래의 큰 원력으로
자재한 법 나타내시네.

이 법은 헤아릴 수 없고
마음으로 요량도 못하니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러야
부처님 경계 보게 되리.

육신이 부처 아니요
음성도 그렇거니와
육신과 음성을 떠나서
부처님 신통을 보는 것도 아니라.

지혜가 적은 이는
부처님의 참된 경계 알지 못하니
청정한 업을 오래 닦아야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리라.

정각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데 없건만
청정하고 미묘한 육신
신력으로 나타나는 것.

한량없는 세계에서
여래의 몸 나타내어
미묘한 법 말씀하지만
그 마음 집착이 없네.

지혜는 끝단 데 없어
온갖 법 분명히 알고
법계에 널리 들어가
자재한 힘 나타내나니,

중생과 모든 법
알고 보면 걸림없는 것
여러 가지 모양을 나타내어
모든 세계에 두루하네.

온갖 지혜 구하여
위없는 각을 이루려면
청정하고 묘한 마음으로
보리행 닦을 것이요,
누구나 여래의 이러한
위력과 신력을 보려거든
가장 높으신 어른께
공양하고 의심내지 말라.

그때 견고당(堅固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는 수승하기 비길 데 없고
깊고 깊어 말할 수 없으며
말로 할 길이 뛰어나
청정하기 허공과 같네.

사람 중 사자의
자재한 신통력 보라.
분별을 여의었지마는
그래도 분별로 보나니,

깊고 깊은 미묘한 법
도사께서 연설하시니
이러한 인연으로
비길 데 없는 몸 나타내네.

이것은 큰 지혜
부처님의 행하시던 곳
이것을 알고자 하는 이
항상 부처님을 친근하라.

뜻으로 짓는 업 항상 청정해
모든 여래께 공양하여도
고달프거나 싫은 생각 없어야
부처님 도에 들어갈 것이,


끝없는 공덕 갖추고
보리심에 굳게 머물러
의심 그물 제해 버리면
부처님 뵙기 만족 없으리.

온갖 법 통달한 이야
참말로 불자이니
이런 사람은 부처님의
자재하신 힘 알리라.

광대한 지혜의 말씀
의욕(意欲)이 모든 법의 근본이라고
마땅히 좋은 희망으로
위없는 각 뜻 두어 구하라.

누구나 부처님을 존경
부처님 은혜 갚으려 하면
저 사람 언제나
부처님 계신 데 떠나지 않으리.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부처님 듣고 뵈오면서
청정한 원을 닦지 않고
부처님 행하신 길 밟을 수 있으랴.

그때 용맹당(勇猛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밝고 깨끗한 눈
해로 인하여 빛을 보나니
깨끗한 마음 그와 같아서
부처님 힘으로 여래를 보고,

마치 정진하는 힘으로
바다의 밑바닥 다할 수 있나니
지혜의 힘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부처님 보리.

마치 비옥한 밭에
뿌린 씨 잘 자라듯이
깨끗한 마음 밭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법 생장하나니.

어떤 사람 보배 광 얻으면
빈궁한 고통 아주 여의나니
보살들도 불법 얻으면
때를 여의고 마음 깨끗해.

마치 아가다 약이
모든 독을 소멸하듯이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소멸하나니.

진실한 선지식은
여래의 칭찬하는 것
그의 위신력으로
부처님 법 듣게 되나니.

가령 한량없는 겁 동안
부처님께 재물을 보시하여도
부처님의 실상 알지 못하면
이것은 보시라 할 수 없고,

한량없는 여러 가지 상호로
부처님 몸 장엄하지만
그 여러 가지 상호에서
부처님을 보는 것 아니다.

여래ㆍ등정각(等正覺)
고요하여 동하지 않으나
널리 몸을 나타내어
시방세계에 충만하시네.

마치 끝없는 허공
나지도 죽지도 않나니
부처님 법도 그러하여
끝까지 생멸이 없네.

그때 광명당(光明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인간과 천상에서
또 모든 세계에서
여래의 청정하고도
미묘한 색신을 보나니

마치 한 마음의 힘으로
가지가지 마음 내듯이
한 부처님의 몸으로
모든 부처님 나타내시네.

보리는 두 법이 없고
여러 모양도 없지만
두 가지 법 가운데
장엄한 몸 모양 나타내고,

법의 성품 공적함을 알지만
요술처럼 일어나는 것
행하는 일 다하지 않나니
도사께서 이렇게 나타나,

삼세의 모든 부처님
법신이 청정하시나
교화할 중생을 따라
묘한 육신 널리 나타내


내가 이런 몸 짓는다고
여래는 생각 않지만
자연으로 나타내나
분별을 내는 일 없고,

법계는 차별이 없으며
의지한 데도 없지마는
그러나 이 세간에
한량없는 몸 보이며,

부처님 몸 변화한 것 아니고
변화하지 않음도 아니나
변화가 없는 법에서
변화한 형상이 있네.

정각은 헤아릴 수 없어
법계와 허공과 평등하고
깊고 넓어 끝단 데 없으매
말로 형용하지 못하리.

온갖 곳에 행하는 길
여래는 잘 통달하시매
법계의 모든 국토에
걸림없이 다니시나니.

그때 지당(智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온갖 지혜 걸림없는 줄
믿는 사람이 있어
보리행 닦아 익히면
그 마음 측량 못하리.

모든 국토에
한량없는 몸 나타내시나
몸은 어떤 곳에 있지도 않고
법에도 머물지 않나니.

부처님 부처님마다
신력으로 나타내는 몸
부사의한 세월에
세어서 끝낼 수 없어

삼세의 모든 중생들
그 수효 알 수 있지만
여래의 나타내는 몸
그 수효 다할 수 없네.

어떤 때는 하나거나 둘
혹은 한량이 없는 몸
시방세계에 두루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아닌 것,

마치 깨끗한 보름달
모든 물 속에 비치어
그림자 한량없지만
달의 자체는 둘이 아니듯이,

걸림없는 지혜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온갖 세계에 나타나지만
부처님 자체는 둘이 없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닌데
교화할 중생을 따르노라고
한량없는 몸 보이시나니,

부처님 몸 과거도 아니고
또 미래도 아니지만
잠깐 동안에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함을 보이네.

요술로 만드는 형상
나지도 일어나지도 않는 듯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
나타내지만 나는 일 없어.

그때 보당(寶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 몸 한량없지만
한량 있음을 보이시니
보는 중생을 따르므로
도사께서 그렇게 나타내고

부처님 몸 처소가 없지만
모든 곳에 가득 차시니
허공이 끝이 없듯이
이런 일 헤아릴 수 없어,

마음으로 요량할 것도 아니며
거기서 마음 일어난 것도 아니니
부처님의 경계에는
끝까지 생멸이 없네.

마치 병난 눈으로 보는 것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듯
세상에서 부처님 뵈옵되
역시 그러한 줄 알 것이,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여래께서 세간에 나시매
중생들은 출현한 걸 보지만
실상은 출현한 일 없네.


국토나 밤이나 낮으로
부처님을 볼 수 없나니
몇 해라 잠깐이라 하는 말
모두 그런 것이다.

중생들은 말하기를
어느날 부처님 성도하셨다 하나
부처님께서 보리 얻음은
날짜에 얽매이지 않나니.

여래는 분별을 떠나서
시간도 수량도 초월한 것
삼세의 여러 부처님
출현하심도 그러하니라.

마치 찬란한 해는
어두운 밤과 합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어느날 밤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법도 그러하여,

삼세의 모든 겁이
여래와 합하지 않지만
삼세 제불이라 말하나니
부처님의 법이 그러하니라.

그때 정진당(精進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들
몸도 같고 이치도 그런 것이니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마땅한 대로 가지가지 나타나네.

그대는 모니세존을 보라.
하시는 일 매우 기이하시어
법계에 가득하시니
온갖 곳에 남은 데 없네.

부처님 몸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는 것 아니나
신력으로 나타내나니
도사의 법이 그러하니라.

중생들의 종류에 따르며
전세에 지은 업대로 하매
이렇게 가지가지 몸
나타내심이 각각 다르다.

부처님들의 몸 이와 같아서
한량없고 셀 수 없나니
대각 세존을 제외하고는
말하고 생각할 이 없네.

마치 나를 생각할 수 없어
마음 작용으로 취할 수 없듯이
부처님 생각할 수 없음도 그와 같아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낼 것 아니며

세계를 생각할 수 없으나
청정하게 장엄한 것 보듯이
부처님 생각할 수 없음도 그와 같아서
미묘한 모습 모두 나타내네.

마치 모든 법들이
여러 인연으로 생기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선한 업 빌려야 하네.

마치 여의주가
중생의 마음 만족케 하듯이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온갖 소원을 만족케 하도다.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도사께서 출현하심은
본래의 원력을 따름이라
시방에 두루 응하네.

그때 이구당(離垢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의 큰 지혜 광명
모든 세간 두루 깨끗하게
세간이 깨끗해지면
부처님 법을 열어 보이네.

가령 어떤 사람이
중생 수효와 같은 부처님 보려면
그들의 마음에 모두 응하지만
실제로는 오는 곳 없어,

부처님을 경계로 하고
오로지 생각해 쉬지 않으면
이 사람 부처님 보되
그 수효 마음과 같으리.

희고 깨끗한 법 이루어
모든 공덕 갖추고
온갖 지혜에 대하여
전심으로 생각하고 버리지 않나니,

도사께서 중생 위하여
근기에 맞춰 법문을 연설
교화할 곳에 따라
가장 훌륭한 몸 나타내며,


부처님 몸이나 세간이나
모두 나[我]랄 것 없나니
이것 깨달아 정각 이루고
다시 중생에게 말하네.

모든 사람 가운데 사자
한량없이 자재한 힘으로
생각과 평등한 몸 보이니
그 몸이 제각기 같지 않고,

세간의 이와 같은 몸
부처님 몸도 그러하니
그 성품 분명히 알면
그 이름 부처라 하리.

여래는 널리 알고 보시어
온갖 법 환히 아시니
부처님 법과 보리를
둘 다 얻을 수 없어,

도사는 오고 가는 일 없고
머무는 곳도 없나니
전도(顚倒)를 영원히 여의면
등정각이라 이름하네.

그때 성수당(星宿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는 머무는 데 없으면서
모든 세계에 두루 머물매
온갖 국토에 모두 가고
온갖 곳에서 모두 보도다.

부처님 중생의 마음 따라
온갖 몸 나타내시니
도를 이루고 법을 연설하고
그리고 열반에 드시나니,

부처님을 헤아릴 수 없나니
누가 능히 부처님 생각하고
누가 능히 정각을 보고
누가 능히 승한 몸 나타내리.

온갖 법 모두 진여(眞如)요
부처님 경계도 그런 것
단 한 가지 법이라도
진여 속에 생멸이 있는 것 아니니,

중생들이 허망하게
부처라 세계라 분별하지만
법의 성품 아는 이에겐
부처도 세계도 없네.

여래가 앞에 나타나
중생들이 믿고 기쁘게 하지만
부처님 자체 찾을 수 없고
저들도 보는 것 없어라.

누구나 만일
온갖 집착 멀리 여의면
걸림없어 마음이 환희하고
법을 깨닫게 되리.

신력으로 나타내는 것을
곧 부처라 이름하나
삼세의 모든 때에
구하여도 있지 아니해,

만일 능히 이렇게
맘과 뜻과 법을 안다면
온갖 것 모두 알고 보고
여래를 빨리 이루게 되리.

말로써 부처님들의
자재하심 보이거니와
정각은 말도 초월했으나
말을 빌어서 말할 뿐.

그때 법당(法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세간의 고통을
항상 달게 받을지라도
마침내 여래를 떠나서
자재한 힘 보지 않을 수 없어.

만일 모든 중생들
보리심 내지 못하였어도
부처님 이름 한번 들으면
결정코 보리 이루리.

지혜 있는 사람 누구나
한 순간 도에 대한 마음 내면
반드시 위없는 세존 이루리니
의혹을 내지 말아라.

여래의 자재하신 힘
무량겁에 만나기 어려워
잠깐만 신심 내어도
위없는 도를 빨리 이루리.

설사 생각생각마다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한대도
진실한 법 알지 못하면
공양이라 말할 수 없어,


이런 법 듣기만 해도
부처님 여기서 나시나니
한량없는 고통 겪더라도
보리의 행 버리지 말라.

부처님들이 들어가셨던
큰 지혜 한 번 들으면
넓은 법계 가운데서
삼세의 대도사 이루려니와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다녀도
이렇게 묘한 법 구하잖으면
언제나 보리를 이룰 수 없네.

중생들 끝없는 옛적부터
나고 죽는 데 오래 헤매고
진실한 법 알지 못하매
부처님 일부러 출현하시네.

모든 법 깨뜨릴 수 없고
깨뜨릴 사람도 없어
자재하신 큰 광명
세간에 널리 보이네.

25. 십회향품(十廻向品) ①

1) 부처님의 가지(加持)
그때 금강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보살지광(菩薩智光)삼매에 들어갔다.
이 삼매에 든 뒤에 시방으로 각각 십만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계시니, 명호는 다같이 금강당(金剛幢)이며 그 앞에 나타나서 함께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이 보살지광삼매에 들었도다. 선남자여, 이것은 시방으로 각각 십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부처님들이 신력으로 그대에게 가피하려는 것이며, 또한 비로자나여래의 지난 세상의 서원의 힘과 위신의 힘이며, 또 그대의 지혜가 청정한 연고며, 모든 보살의 선근이 더욱 승한 연고로, 그대로 하여금 이 삼매에 들어서 법을 연설케 하려는 것이니, 보살들로 하여금 청정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게 하려는 연고며, 걸림없는 변재를 갖추게 하려는 연고며, 걸림없는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려는 연고며, 온갖 지혜라는 큰 마음에 머물게 하려는 연고며, 다함 없는 선근을 성취하려는 연고며, 걸림없는 선한 법[白法]을 만족케 하려는 연고며, 넓은 문인 법계에 들게 하려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신력을 나타내는 연고며 지난 시절을 생각하는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께서 여러 근을 보호하심을 얻으려는 연고니라.
한량없는 문으로 여러 가지 법을 연설케 하려는 연고며, 듣고는 다 알아서 받아 지니고 잊지 않게 하려는 연고며, 보살들의 모든 선근을 거두어들이려는 연고며, 세상을 뛰어나는 도를 이루게 하려는 연고며, 온갖 지혜의 지혜를 끊지 않으려는 연고며, 큰 서원을 개발(開發)하려는 연고며, 진실한 이치를 해석하려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선근을 닦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여래의 종성을 두호하려는 연고니, 이른바
보살의 열 가지 회향을 연설하려는 것이니라.
불자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 위신의 힘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할 것이니, 부처님의 호념을 얻은 연고며, 부처의 가문에 편안히 머문 연고며, 출세간하는 공덕을 더하는 연고며, 다라니의 광명을 얻은 연고며, 장애 없는 불법에 들어간 연고며, 큰 광명으로 법계를 널리 비추는 연고며, 허물 없는 깨끗한 법을 모은 연고며, 광대한 지혜의 경계에 머문 연고며, 장애 없는 법의 광명을 얻은 연고니라.”
이때 여러 부처님께서 금강당보살에게 한량없는 지혜를 주고, 걸림없는 변재를 주고, 글귀와 뜻을 분별하는 좋은 방편을 주고, 걸림없는 법의 광명을 주고, 여래의 평등한 몸을 주고, 한량없이 차별한 깨끗한 음성을 주고, 보살의 부사의하게 잘 관찰하는 삼매를 주고, 파괴할 수 없는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는 지혜를 주고, 모든 법을 관찰하여 성취하는 공교한 방편을 주고, 모든 곳에서 온갖 법을 연설하는 끊임없는 변재를 주었으니, 그것은 이 삼매에 들어간 선근인 때문이다.
그때 여러 부처님은 각각 오른손으로 금강당보살의 정수리를 만지시니, 금강당보살이 정수리 만짐을 받고는 곧 선정으로부터 일어나서 모든 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부사의한 큰 서원이 법계에 충만하며 일체 중생을 널리 구호하나니, 이른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회향을 닦아 배우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회향이 몇 가지가 있는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회향이 열 가지가 있나니, 삼세의 부처님들이 함께 연설하십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이요, 둘은 깨뜨릴 수 없는 회향이요, 셋은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이요, 넷은 온갖 곳에 이르는 회향이요, 다섯은 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이요, 여섯은 일체 평등한 선근에 들어가는 회향이요, 일곱은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따라주는 회향이요, 여덟은 진여의 모양인 회향이요, 아홉은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 회향이요, 열은 법계에 들어가는 무량한 회향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회향이라 하나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이 이미 말씀하셨고,
장차 말씀하시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제1회향
“불자들이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을 여의는 회향이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단(檀)바라밀을 행하고, 시(尸)바라밀을 청정히 하고, 찬제(羼提)바라밀을 닦고, 정진(精進)바라밀을 일으키고, 선(禪)바라밀에 들어가고, 반야(般若)바라밀에 머무르며, 대자ㆍ대비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로 이러한 무량 선근을 닦으며, 선근을 닦을 때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선근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여 모두 청정케 하며, 필경에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 등의 한량없는 고통을 길이길이 여의게 하여지이다.’
보살마하살이 선근을 심을 적에, 자기의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합니다.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의 집이 되리니 모든 괴로운 일을 면케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구호가 되리니 모든 번뇌에서 해탈케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귀의할 데가 되리니 모든 공포를 여의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나아갈 데가 되리니 온갖 지혜에 이르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안락처가 되리니 구경의 편안할 곳을 얻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광명이 되리니 지혜의 빛을 얻어 어리석은 어둠을 멸하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횃불이 되리니 모든 무명의 암흑을 깨뜨리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등불이 되리니 끝까지 청정한 곳에 머물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길잡이가 되리니 그들을 진실한 법에 들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대도사(大導師)가 되리니 걸림없는 큰 지혜를 주려는 연고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여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 주며, 모두 온갖 지혜를 얻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친구 아닌 이를 수호하고 회향하되 친구와 다름이 없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이 평등한 성품에 들어간 연고로, 중생에게 잠깐도 친구가 아니란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설사 어떤 중생이 보살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보살은
자비한 눈으로 보고 성내지 아니하며, 중생들의 선지식이 되어 바른 법을 연설하여 닦아 익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큰 바다는 어떠한 독한 것으로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러하여, 어리석고 지혜 없고 은혜를 모르고 심술 궂고 완악하고 교만하여 잘난 체하고 마음이 캄캄하여 선한 법을 알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나쁜 중생들이 갖가지로 못견디게 굴더라도 능히 움직이지 못합니다.
마치 일천자(日天子)가 세간에 나타날 적에 소경들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숨어버리지 아니하며, 또 건달바성이나 아수라의 손이나 염부제의 나무나 높은 바위나 깊은 골짜기나, 티끌ㆍ안개ㆍ연기ㆍ구름 따위가 가린다고 해서 숨어버리지 아니하며, 또 시절이 변천한대서 숨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큰 복덕이 있고, 마음이 깊고 넓으며,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여 물러나지 않고, 공덕과 지혜에 끝까지 이르며, 높고 훌륭한 법에 뜻을 두어 구하며, 법의 광명이 두루 비치어 온갖 이치를 보며, 모든 법문에 지혜가 자재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이익하려고 선법을 닦으며, 실수하여서도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내지 아니합니다.
중생들의 성품이 추악하고 소견이 잘못 들고 성 잘 내고 흐리어 조복하기 어렵다 하여, 문득 버리고 회향하는 일을 닦지 않는 것이 아니니, 보살은 오직 큰 원력의 옷으로 스스로 장엄하여 중생을 구호하고 잠깐도 퇴전하지 아니하며, 중생들이 은혜 갚을 줄을 모른다 하여 보살의 행에서 퇴전하여 보살의 도를 버리지 아니하며, 어리석은 범부들과 한 곳에 있다 하여 모든 진실한 선근을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들이 허물을 자주 일으키매 참을 수 없다 하여 그들에게 싫증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마치 해가 한 가지 일만을 위하여 세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한 중생만을 위하여 선근을 닦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고, 일체 중생을 널리 구호하기 위하여 선근을 닦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부처님 세계만을 깨끗이 하려거나, 한 부처님만을 믿으려거나, 한 법만을 알기 위해서, 큰 지혜와 원력을 일으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청정케 하려고, 모든 부처님을 널리 믿으려고, 모든 부처님을 섬기고 공양하려고, 모든 부처님 법을 널리 알려고, 큰 서원을 세우고, 선근을 닦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법으로 반연할 경계를 삼아, 광대한 마음과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내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마음을 닦아서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 평등하나니, 보살이 이렇게 모든 선근을 살펴보고, 신심이 청정하며 대비심이 견고하여, 매우 깊은 마음ㆍ환희한 마음ㆍ청정한 마음ㆍ가장 승한 마음ㆍ부드러운 마음ㆍ자비한 마음ㆍ불쌍히 여기는 마음ㆍ거두어 보호하는 마음ㆍ이익하는 마음ㆍ안락한 마음으로써 널리 중생을 위하여 진실하게 회향하는 것이요,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선근으로 회향할 때에 생각하기를 ‘나의 선근으로써 모든 갈래의 중생들이 모두 청정한 공덕이 원만하여서 파괴할 수 없게 되며, 다함이 없어 항상 존중하게 되며, 바른 생각을 잊지 아니하며, 결정한 지혜를 얻고 한량없는 지혜를 갖추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이 일체 공덕을 원만하게 장엄하여지이다’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이 선근으로써 일체 중생이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여 헛되게 지내지 아니하며,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청정한 신심이 무너지지 않으며, 바른 법을 듣고 의혹을 끊으며, 기억하여 잊지 아니하고 말한 대로 수행하며, 여래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몸으로 짓는 일이 청정하여 한량없이 광대한 선근에 편안히 머물며, 빈궁함을 영원히 여의고 일곱 재물이 만족하며, 부처님 계신 데서 항상 따라 배우고 한량없이 기묘한 선근을 성취하여, 평등하게 깨달아 온갖 지혜에 머물러, 걸림없는 눈으로 중생을 평등하게 보며, 모든 상호로 몸을 장엄하여 흠이 없으며, 음성이 정묘하여 공덕이 원만하고, 여러 근이 조복되어 십력을 성취하며, 선한 마음이 만족하여
의지한 데 없는 데 머무르며, 한량없이 머무름을 얻어 부처님이 머무시는 데 머물게 하여지이다’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이 나쁜 업을 짓고 중대한 고통을 받으며, 이런 장난으로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법을 듣지 못하고 스님들을 알지 못함을 보고는, 생각하기를 ‘내가 저 나쁜 갈래에서 중생들을 대신하여 가지가지 괴로움을 받으며 그들을 해탈케 하리라’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더욱더 정진하여 버리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공포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고달퍼하지도 않나니, 무슨 까닭인가. 그가 서원한 대로 일체 중생을 책임지고 해탈케 하려는 연고입니다.
보살이 이때에 생각하되 ‘일체 중생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여러 가지 고통 중에서, 업을 따라 헤매고, 삿된 소견에 지혜가 없어 선한 법을 잃어버렸으니, 내가 마땅히 구호하여 벗어나게 하리라’고 합니다.
또 ‘중생들이 애욕의 그물에 얽매이고 어리석은 뚜껑이 덮이며, 모든 유(有)에 물들어 따라다니고 버리지 못하며, 고통의 우리에 들어가고 마군의 업을 지어 복과 지혜는 모두 없어지고, 항상 의혹을 품어 편안한 것을 보지 못하고 뛰어날 길을 알지 못하며, 나고 죽는 속에서 바퀴 돌듯 쉬지 못하고 고통의 수렁에 항상 빠져 있거늘, 보살이 그것을 보고는 크게 자비한 마음과 크게 이익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해탈을 얻게 하려 하여 온갖 선근으로 회향하고 광대한 마음으로 회향하되, 삼세 보살들이 닦는 회향과 같이 하며 『대회향경』에 말한 회향과 같이 하여, 모든 중생이 모두 청정함을 얻으며 필경에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성취하여지이다’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되 ‘내가 닦은 행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요, 나 자신을 위하여 해탈을 구함이 아니며,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 그로 하여금 온갖 지혜의 마음을 얻고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모든 괴로움을 해탈케 하려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되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온갖 고통을 갖춰 받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한량없이 나고 죽는 고통의 구렁에서 뛰어나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일체 세계의 온갖 나쁜 갈래에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도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선근을 부지런히 닦을 것이니,
왜냐 하면 내가 차라리 혼자서 이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마땅히 지옥ㆍ축생ㆍ염라왕 등의 험난한 곳에서 이 몸을 볼모로 잡히고 모든 나쁜 갈래의 중생들을 속죄(贖罪)하여 해탈을 얻게 하리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되 ‘일체 중생을 보호하여 마침내 버리지 아니하려 하나니, 내 말이 성실하여 허망하지 말아지이다. 왜냐 하면 나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제도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이요, 내 몸을 위하여 위없는 도를 구함이 아니며, 또한 오욕(五欲)의 경계나, 삼계의 가지가지 낙을 구하기 위하여 보리의 행을 닦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세간의 낙이란 것은 모두 고통이요, 마군의 경계는 어리석은 사람이 탐하는 것이요, 부처님들이 꾸중하신 바이니, 모든 괴로움이 이것으로 생기며,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의 처소는 성내고 싸우고 서로 훼방하고 능욕하나니, 이런 나쁜 일들은 오욕을 탐하므로 생기는 것이다. 오욕을 탐하면 부처님을 멀리 여의게 되고, 천상에 나는 일도 장애하거든,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랴’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세간에서 조그만 욕락을 탐하다가 한량없는 고통 받음을 관찰하고는, 저 오욕락(五欲樂)을 위하여 보리를 구하거나 보살의 행을 닦지 아니하고, 다만 일체 중생을 안락케 하려고 마음을 내어 수행하여 큰 서원을 만족하며, 중생들의 괴로움의 오랏줄을 끊고 해탈을 얻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이렇게 선근으로 회향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이르는 낙[究竟樂]과 이익하는 낙과 받지 않는 낙과 고요한 낙과 의지한 데 없는 낙과 변동하지 않는 낙과 한량없는 낙과 버리지 않고 물러가지 않는 낙과 멸하지 않는 낙과 온갖 지혜의 낙을 얻게 하리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내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조복하고 어거하는 스승[調御師]이 되고 군대 맡는 신하가 되어 지혜의 횃불을 들고 편안한 길을 보여 험난을 여의게 하며, 알맞은 방편으로 진실한 뜻을 알게 할 것이며, 또 나고 죽는 바다에서 온갖 지혜를 가진 좋은 뱃사공이 되어 중생을 건네어 저 언덕에 이르게 하리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여러 가지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는 것은 적당한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생사에서 뛰어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을 섬기고 공양케 하며, 장애 없는 온갖 지혜의 지혜를 얻게 하며, 마군을 여의며, 나쁜 벗[惡知識]을 멀리하고 모든 보살과 선지식을 친근케 하며, 모든 죄를 멸하고 청정한 업을 이루게 하며, 보살의 광대한 행과 원과 무량한 선근을 구족케 하려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선근으로 옳게 회향하고는 생각하기를 ‘사 천하의 중생이 많음으로 해서 여러 해가 뜨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한 해가 떠서 일체 중생을 모두 비추는 것이니라. 또 중생들이 자신의 광명으로 인하여 낮과 밤을 알고 다니며 관찰하며 여러 가지 업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일천자(日天子)가 뜨므로 말미암아 이런 일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 해는 하나뿐이요 둘이 아니니,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선근을 닦아서 회향할 때에 생각하되 ‘저 중생들이 자기도 구호하지 못하거든 어떻게 남을 구호하리요.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마음이 외로워 짝이 없도다’라고 하고, 선근을 닦아서 이렇게 회향하나니, 이른바 일체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널리 비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인도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깨우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돌아보아 기르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거두어 주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을 성취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려는 연고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려는 연고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해가 온갖 것에 두루 비치어도 은혜를 갚으려 하지 않는 것같이, 중생들의 나쁜 일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서원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한 중생이 악하다고 해서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만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 회향하여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안락을 얻게 하리라’고 합니다.
선근이 비록 적으나 중생들을 널리 포섭하여 환희한 마음으로 광대하게 회향하나니, 만일 선근이 있으면서도 일체 중생을 이익하려 하지 않으면 회향이라 이름할 수 없지만, 한 선근이라도 널리 중생으로 반연할 바를 삼으면 회향이라 이름합니다.
중생을 집착할 것이 없는 법의 성품에 안돈하여 두려는 회향, 중생의 성품이 동하지 않고 변하지 않음을 보는 회향,
회향하는 데 의지함도 없고 취함도 없는 회향, 선근의 모양을 취하지 않는 회향, 업과 과보의 자체 성품을 분별하지 않는 회향, 오온(五蘊)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오온의 모양을 깨뜨리지 않는 회향, 업을 취하지 않는 회향, 과보를 구하지 않는 회향, 인연에 물들지 않는 회향, 인연으로 일으킨 것을 분별하지 않는 회향, 명칭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처소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허망한 법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중생의 모양ㆍ세계의 모양ㆍ마음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마음의 전도(顚倒)ㆍ생각의 전도ㆍ소견의 전도를 일으키지 않는 회향, 말하는 길[語言道]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 일체 법의 진실한 성품을 관하는 회향, 일체 중생의 평등한 모양을 관하는 회향, 법계의 인(印)으로 여러 선근을 인치는 회향, 모든 법의 탐욕 여읜 것을 관하는 회향입니다.
일체 법에 선근을 심은 일이 없다고 아는 것도 이러하고, 모든 법이 둘이 없으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관하는 회향도 이러합니다.
이러한 선근으로 회향하면 청정하게 상대하여 다스리는 법을 수행하여 생기는 선근은 모두 출세간하는 법을 따라가는 것이므로 둘이란 모양을 짓지 아니하니, 업에 나아가 온갖 지혜를 닦는 것이 아니고, 업을 여의고 온갖 지혜에 회향하는 것도 아니며, 온갖 지혜가 곧 업이 아니지만 업을 떠나서 온갖 지혜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업이 빛[光影]과 같이 청정하므로 과보도 빛과 같이 청정하고, 과보가 빛과 같이 청정하므로 온갖 지혜의 지혜도 빛과 같이 청정하며,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모든 시끄러움과 분별을 여의었으며 이렇게 알고서 선근의 방편으로 회향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적에 중생을 제도하여 쉬는 일이 없고, 법이란 모양에 머물지 않으며, 비록 모든 법이 업도 없고 과보도 없는 줄을 알지만, 모든 업과 과보를 잘 내어서 어기지 아니하나니, 이러한 방편으로 회향을 닦습니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에 모든 허물을 여의어서 부처님들이 찬탄하십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을 여의는 첫째 회향입니다.”
이때 금강당보살이 시방의 온갖 대중들을 관찰하여
법계에 이르고, 깊은 뜻[句義]에 들어서 한량없는 마음으로 좋은 행을 닦으며, 대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두루 덮어 삼세에 여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모든 여래의 공덕 법장에 들어가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내며, 중생들의 마음을 잘 분별하여 그들이 심은 선근이 성숙함을 알고, 법신에 머무르면서 일부러 청정한 육신을 나타내고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사의한 겁 동안 도를 닦아서
정진하는 굳은 마음 걸림없으며
중생의 무리들에 이익 주려고
부처님의 공덕을 항상 구하네.

세상을 잘 다스리는 동뜬 사람이
그 뜻을 잘 닦아서 밝고 깨끗해
모든 중생 건지려는 마음을 내니
그 사람 회향장에 능히 들도다.

용맹하게 정진하여 힘을 갖추고
지혜가 총명하고 뜻도 청정해
수많은 중생들을 널리 건지니
참을성 있는 마음 동할 수 없고.

마음이 잘 머물러 같을 이 없고
뜻이 항상 청정하여 매우 기쁘며
이렇게 남을 위해 행을 닦으니,
땅덩이가 모든 것을 용납하는 듯,

자기 한 몸 쾌락을 구하지 않고
일심으로 여러 중생 구호하려고
이렇게 대비심을 일으키므로
걸림없는 지위에 빨리 드시네.

시방에 널려 있는 여러 세계의
많은 중생 모두 다 거두어 주어
그들을 구호하려 잘 머문 맘
이와 같이 모든 회향 닦아 배우네.

보시를 수행하여 크게 기쁘고
계율을 잘 지니어 범하지 않고
정진하는 날쌘 마음 까딱도 없이
여래의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하도다.
마음이 크고 넓어 끝단 데 없어
의젓하게 참는 힘 동할 수 없고
깊고 깊은 선정으로 항상 비치며
지혜가 미묘하여 부사의하니,

온 시방에 가득한 세계 가운데
이렇게 청정한 행 갖춰 닦으며
이와 같은 공덕을 모두 회향해
한량없는 중생을 안락케 하네.

보살이 선한 업을 닦으시는 일
한량없고 그지없어 셀 수 없나니

이렇게 모든 중생 이익 주어서
위없는 높은 지혜 머물게 하며,

옛날에 모든 중생 건지시려고
한량없는 겁 동안 지옥에 있어
조금도 싫어하는 생각이 없고
용맹한 마음으로 늘 회향하며,

빛과 소리 맛과 향기 구하지 않고
부드러운 촉각(觸覺)도 바라지 않고
언제나 모든 중생 구제하려고
위없는 좋은 지혜 항상 구하며,

지혜가 청정하기 허공과 같고
끝없는 보살의 행 닦아 익히며
부처님 행하시던 모든 행들을
저 사람 그와 같이 항상 배우며,
보살이 모든 세계 두루 다니며
많은 중생 모두 다 편안케 하고
모든 이로 하여금 환희케 하되
보살행을 닦는 일 싫음 없으며,

여러 가지 독한 마음 덜어버리고
가장 높은 지혜를 항상 닦되
나 한 몸의 안락을 구하지 않고
중생들의 고통을 떠나게 하니,

이 사람의 회향이 구경에 가서
마음이 청정하여 삼독 여의매
삼세의 여래께서 부촉한 바로
위없는 큰 법성에 머물러 있네.

모든 빛에 조금도 물들지 않고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아서
그 마음 삼유에서 아주 뛰어나
가진 공덕 모두 다 회향하오며,

부처님이 알고 보는 많은 중생을
모두 다 거두어서 남기지 않고
서원 세워 해탈을 얻게 하려고
그들 위해 수행하며 크게 즐기네.

그 마음 생각마다 편히 머물고
지혜도 넓고 커서 짝이 없나니
우치를 여읜 생각 항상 고요해
모든 업이 언제나 청정하더라.
저 여러 보살들이 세상에 있어
안과 밖 모든 법에 집착이 없고
바람이 걸림없이 허공에 불듯
보살들의 마음도 그러하도다.

몸으로 짓는 업이 모두 청정코
여러 가지 말씀도 허물이 없어
마음은 언제나 여래께 향해
부처님들 모두 다 환희케 하네.

시방의 한량없이 많은 국토에
부처님 계신 데는 모두 나아가

거기서 대비 세존 만나 뵈옵고
공경하고 우러러 섬기옵니다.

마음이 청정하고 과실 없으매
세간에 들어가도 두렵지 않고
위없는 여래도(道)에 머무르고도
삼유의 큰 법못이 다시 되도다.

온갖 법을 부지런히 관찰도 하고
유와 비유(非有) 따라서 생각하면서
이와 같이 참 이치에 나가 이르고
다툼 없는 깊은 곳에 들어가도다.

이렇게 견고한 도(道) 닦아 이루면
중생들이 깨뜨릴 수가 없으며
모든 법의 성품을 통달하여서
삼세에 아무 데고 집착이 없네.
이렇게 회향하여 저 언덕 가서
중생들이 모든 때를 여의게 하여
모든 것 의지한 곳 길이 여의고
의지할 데 없는 곳에 가게 하도다.

수많은 중생들의 말하는 법이
그들의 종류 따라 각각 다른데
보살이 분별하여 모두 말하나
마음에 집착 없고 걸림도 없네.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을 닦아
공덕이나 방편을 말할 수 없고
시방의 모든 세계 가운데에서
많은 부처님들로 칭찬케 하네.
양옥(良沃) : 뒷글자는 오(烏)와 혹(酷)의 반절이다.
저괴(沮壞) : 앞글자는 자(慈)와 려(呂)의 반절이다.
진흔(瞋很) : 뒷글자는 호(胡)와 간(懇)의 반절이다.
완독(頑毒) : 앞글자는 오(五)와 환(還)의 반절이다.
맹고(盲瞽) : 뒷글자는 공(公)과 호(戶)의 반절이다.
수곡(邃谷) : 앞글자는 수(雖)와 수(遂)의 반절이다.
진무(塵霧) : 뒷글자는 망(亡)과 우(遇)의 반절이다.
폐악(獘惡) : 앞글자는 비(毘)와 제(祭)의 반절이다.
갑주(甲胄) : 뒷글자는 직(直)과 우(祐)의 반절이다.
점결(玷缺) : 앞글자는 다(多)와 첨(忝)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고(苦)와 혈(穴)의 반절이다.
농함(籠檻) : 앞글자는 로(盧)와 홍(紅)의 반절이다.
몰닉(沒溺) : 뒷글자는 노(奴)와 력(歷)의 반절이다.
대학(大壑) : 뒷글자는 가(呵)와 각(各)의 반절이다.
위지(爲質) : 뒷글자는 음이 치(致)이다.
투송(鬪訟) : 앞글자는 도(都)와 두(豆)의 반절이다.
단절(斷截) : 뒷글자는 작(昨)과 결(結)의 반절이다.
견삭(罥索) : 앞글자는 고(古)와 연(兗)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소(蘇)와 각(各)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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