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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39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34권

by Kay/케이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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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34

 

대방광불화엄경 제34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32. 보왕여래성기품 ②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알아야 합니다. 즉 여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은 그 공덕이 무량하나니, 그것은 행이 무량하기 때문이요, 시방에 충만하여 오고 감이 없기 때문이며, 나고 머물고 멸함을 떠나 행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떠나고 몸이 없기 때문이며, 성품이 허공과 같아 다 평등하기 때문이요, 일체 중생에 나도 내 것도 없고 그 끝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세계에 다함이 없고 변함이 없기 때문이요, 미래 세상에 끊어지지 않으나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며, 여래 지혜에 의심이 없고 둘이 없어 평등하며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관찰하기 때문이요, 등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본행을 회향하여 자재하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보현보살은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외웠다.

여러 대중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의 십력의 법은
이 일체 세간에서
가장 훌륭해 그 위가 없네.

그것은 모두 같을 이 없음과 같고
또한 저 허공과 같나니
그 공덕이 짝할 것 없으면
그 경계도 헤아릴 수가 없네.

모든 여래의
그 공덕은 한량이 없어
일체의 다른 중생은
그것을 헤아릴 수가 없네.

여래의 하나의 법문도
일체 모든 중생들로는
한량없는 억 겁 동안에
생각하여도 다할 수 없네.

시방의 모든 부처 세계를
모두 부수어 티끌 만들 때
어떤 사람이 다 계산하여
그 수를 모두 다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여래의 한 털의
공덕을 계산하여도
그 적은 부분도 알지 못하리.

어떤 한 사람이
허공 세계를 다 재어 알고
또 둘째 사람이
따라 세어 수량을 안다 할 때

그가 무수한 억 겁 동안에
저 허공을 다 재어 알 수 있어도
저 여래의 모든 공덕은
이루 다 끝까지 말할 수 없네.

또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삼세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활동을 다 센다 할 때

중생들 수와 같은 그 겁은
그래도 다 셀 수 있어도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의
그 수는 다 셀 수 없나니.

비유하면 모든 법계의
그 한계를 알 수 없나니
일체라 하나 일체가 아니어서
볼 수도 취할 수도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모든 여래의
그 경계는 한량없나니
일체라 하나 일체가 아니어서
그 법계는 다할 수 없네.

비유하면 저 여여(如如)의 성품은
허망을 떠나 적멸하기에
나는 것도 없거니와 또
멸하는 것도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여래와
또 그 일체의 경계도
저 여여의 성품과 같아
더하거나 또 덜하지도 않네.

미래 세상의 끝에도
진실로 그것은 그 끝이 없고
삼세의 성품은 진실을 떠나
그것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저 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그 경계도 또한 그러하나니
저 일체 삼세의 일을
통달하여 아무 걸림이 없네.

모든 법에는 변함이 없나니
성품이 공해 지음 없기 때문이며
더러움 떠나 청정하나니
그 성품은 마치 허공과 같네.

저 일체 모든 여래의
청정한 성품도 그와 같나니
성품이라 하나 성품이 없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네.

저 바른 법의 성품은
일체 언어의 길을 떠났나니
일체의 뜻[趣]이라 하나 뜻도 또 아니어서
모두 다 적멸한 성품이네.

일체 모든 여래의
경계도 또한 그와 같나니
언어의 길을 다 멀리 떠났기에
어떤 비유로도 말할 수 없네.

모든 부처님의 깨달은 법은
성품과 모양이 다 적멸하나니
새가 공중을 나는 것 같아
그 발자취를 찾을 길 없네.

한량없는 큰 서원의 결과로
깨끗한 색신을 이루어 얻고
십력의 공덕을 두루 갖추어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이네.

여래의 깊고도 또 깊은 법을
만일 누구든 알려 하거든
마치 저 허공과 같이
부디 그 뜻을 깨끗이 하라.

허망한 생각과 그릇된 견해와
뒤바뀐 생각을 멀리 떠나고
청정한 도를 닦아 익히면
끝내는 깨끗한 뜻을 얻으리.

그러므로 모든 불자들이여
일심으로 자세히 잘 들으라.
그 부처님의 경계를
나는 이제 조금만 설명하리라.

모든 십력의 공덕은
이루 다 셀 수 없지만
저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나는 이제 조금만 연설하리라.

저 일체의 길잡이님은
청정한 몸의 업과 또 입의 업과
뜻의 업을 다 일으켰나니
그러므로 그 경계 다 청정하네.

저 여래의 깊은 경계와
청정하고 묘한 법륜과
또 열반의 모든 선근을
나는 이제 분별해 설명하리라.

비유하면 저 대천세계의
국토가 처음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조그만 인연으로써
그 세계가 이룩된 것 아니며

한량없는 방편의 힘과
일체의 모든 인연이
저 삼천대천세계를 이루어
중생을 편히 머물게 한 것처럼

그와 같이 모든 부처님
그 성품이 일어나는 법의
한량없는 그 공덕 창고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네.
시방 일체 세계를
모두 부수어 티끌 만들 때
그 티끌 수를 모두 다 세고
중생 마음을 다 알려 한다면

그 티끌과 중생들 마음
그 수는 그래도 알 수 있지만
일체 모든 십력의
그 공덕은 다 알 수 없네.

비유하면 저 짙은 구름이
큰 비를 마구 쏟아 내리면
저 네 가지 풍륜이 일어나
삼천세계를 능히 이루며

저 중생들의 모든 선근과
저 보살들의 공덕의 힘으로
삼천세계가 생겨서
중생들을 편히 두는 것처럼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저 인연의 법의 구름이
큰 지혜의 풍륜을 일으켜
때를 떠나 그 뜻을 깨끗이 하고

일체의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닦아서 익힌 모든 선근을
중생들에게 회향해 주어
등정각을 빨리 이루게 하네.

비유하면 허공에서
홍주라는 비를 내릴 때
삼천대천세계가
처음 생길 때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세계도
그것을 감당해 받을 수 없고
움직이지 않는 그 풍륜이
허공을 의지해 있는 것처럼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으로 등정각을 이루어
시방 일체 세계에
법 구름이 큰 비를 내려

훌륭한 법계에 가득히 차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저 큰 보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을 받아 지닐 수 없네.

공중에서 일어나는 구름과 비
그것은 지을 것도 지은 이도 없으며
본래 어디서 온 곳도 없고
또 가도 가는 곳도 없나니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 구름이 그 감로를 내리지만
그것은 본래 온 곳도 없고
가도 또한 가는 곳 없네.

저 일체 모든 보살들
한량없는 행 닦아 익히어
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 있으면
그들 위해 바른 법을 내리네.

비유하면 큰 구름이 비를 내릴 때
그 빗방울 셀 사람 아무도 없지만
오직 저 마혜수라왕만이
그것을 분별해 아는 것처럼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법 비를 내려
모든 부처 세계에 가득히 찰 때
그를 세는 사람 아무도 없네.

그러나 일체 세계 주인이 되는
오직 저 위없는 법의 왕만이
손바닥의 보배를 보는 것처럼
그것을 모두 분별해 잘 아네.

없애야 할 것은 능히 없애고
일으켜야 할 것은 일으키면서
일체 삿된 견해 없애 버리고
갖가지 공덕 보배 잘 기르네.

여래는 바른 법을 비처럼 내려
온갖 번뇌를 모두 없애고
셀 수 없고 한량이 없는
갖가지 선근을 모두 다 내네.

바른 견해를 닦아 익히어
뒤바뀐 행각을 멀리 떠나고
저 모든 부처님들은
공덕 보배를 깊이 다 아네.

비유하면 저 허공에서
한맛의 물이 두루 내릴 때
중생들 과보의 그 힘을 따라
일으키는 물건이 각기 다르듯

여래께서 바른 법의 비를 내릴 때
큰 자비의 한맛인 물이지마는
교화 받을 중생 근기 따르기 때문에
갖가지로 다르게 말씀하시네.

세계가 처음으로 이루어질 때
먼저 형상 세계 궁전을 일으키고
다시 욕심 세계 그 천상에서
차례로 그 궁전을 일으키나니

그리고 다음에 인간에서는
각각 그들의 사는 곳 짓고
다음에는 건달바와 모든 용들의
사는 그 곳을 차례로 일으키네.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로소 등정각을 이루시고는
처음에는 보살행을 일으키고
다음에는 연각의 교법을 일으키네.

그리고 또 자재한 마음으로
일체 성문들을 교화하시고
다음에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선근을 닦게 하시네.

맑고 깨끗한 연꽃을 보고
부처가 나오실 줄 하늘은 알며
비로 말미암아 바람이 일면
바람은 능히 세계를 일으키네.

여래는 큰 광명을 놓아
부처와 보살을 잘 분별하고
그 지혜의 바퀴를 일으키어
모든 부처법을 다 통달하네.

물은 풍륜을 의지해 머무르고
대지는 수륜을 의지해 머무르며
온갖 보배 나무는 땅을 의지하지만
허공은 어디에도 의지하는 데 없네.

지혜 바퀴는 여래를 의지하고
그 자비는 지혜를 의지하며
공덕은 방편을 의지하지만
법신은 어디에도 의지하는 곳이 없네.

저 대지가 일체 중생의
그 이익을 따라 일으킬 때에
물과 육지의 모든 중생들
제각기 모두 안락 얻나니


허공을 의지해 사는 중생과
욕계ㆍ색계의 모든 하늘과
두 발 또는 네 발 가진 것
그들 모두 다 이익을 얻네.

법왕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가 한번 세상에 나면
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이익을 얻게 하나니

만일 누가 보고 듣거나
공경하거나 또 공양하면
그는 온갖 번뇌 모두 없애고
여래의 법을 깊이 잘 알리.

여래 성품이 일어나는 법
세간의 아무도 잘 알 수 없네.
그러나 나는 조금만 말했나니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은 여러 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을 알고 보는[知見] 보살마하살은 어떤가. 여래를 알고 보는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히 성취합니다. 왜냐하면,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한 법이나 한 행이나 한 몸이나 한 세계로 한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그 보살마하살은 여래를 알고보고는 한량없는 법과 한량없는 행과 한량없는 몸과 한량없는 세계를 갖춰 성취하여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저 허공은 빛이 있는 곳이나 빛이 없는 곳이나 어디고 다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는 것도 아니요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형상이나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곳, 일체의 세계, 일체의 법, 일체의 중생, 어디고 가지만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몸이 아니어서, 교화할 곳을 따라 그 몸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처음으로 승행문(勝行門)에 들어가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허공이 아주 넓어 일체 중생을 다 수용하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과 세간의 선근을 비추면서도 세간의 선근을 떠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은 일체의 물들어 집착하는 것을 모두 끊었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둘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해가 세상에 나오면 한량없는 일로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즉 어둠을 없애고 일체 산림과 약초와 온갖 곡식과 풀ㆍ나무 등을 기르며, 냉기와 습기를 없애고, 허공을 비춰서는 허공의 중생을 이롭게 하며, 연못을 비춰서는 연꽃을 피게 하고,
두루 비추어 일체 빛깔과 형상을 나타내며, 세간의 일들을 다 성취시킵니다. 왜냐하면 해는 광명을 두루 놓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몸의 해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일로 일체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합니다. 즉 악을 없애는 이익으로 선법을 기르고, 두루 비추는 이익으로 일체 중생의 어둠을 없애며, 대자(大慈)의 이익으로 중생을 구호하고, 대비(大悲)의 이익으로 일체를 제도하며, 바른 법의 이익으로 모든 근(根)과 힘[力]과 각의(覺意)를 기르고 견고한 믿음의 이익으로 마음의 때[垢濁]를 없애며, 법을 보는 이익으로 인연을 깨뜨리지 않고 하늘눈의 이익으로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중생을 다 보며, 해침을 버리는 이익으로 중생의 일체 선근을 깨뜨리지 않고 지혜 광명의 이익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 꽃을 피우며, 발심하는 이익으로 일체 보살행을 성취합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몸의 해는 일체 지혜 광명을 두루 놓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셋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해가 뜨면 먼저 일체 큰 산왕(山王)을 비추고 다음에 일체 큰 산을 비추며, 다음에 금강보산을 비추고 그런 뒤에 일체 대지를 두루 비추는데, 햇빛은 ‘나는 먼저 큰 산왕을 비추고 차례로 내지 대지를 두루 비추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그 산과 대지에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에 그 비침에 먼저와 나중이 있을 뿐입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무량무변한 법계 지혜의 해를 성취하여, 항상 한량없고 걸림없는 지혜 광명을 놓을 때, 먼저 보살마하살 등 큰 산왕을 비추고 다음에 연각을 비추며, 다음에 성문을 비추고 결정된 선근 중생을 비추어 알맞게 교화하며, 그런 뒤에 일체 중생과 내지 사정(邪定)을 다 비추어 미래의 이익을 위한 인연을 짓습니다. 그러나 여래 지혜의 햇빛은 ‘나는 먼저 보살을 비추고, 내지 사정을 비추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만 큰 지혜의 광명을 놓아 일체를 두루 비춥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해나 달이 세상에 나오면, 내지 깊은 산과 그윽한 골짜기까지도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여래 지혜의 해나 달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를
두루 비추어 밝지 않은 곳이 없지만, 다만 중생들의 욕망과 선근이 같지 않기 때문에 여래의 지혜 광명도 각기 다른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넷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저 해가 세상에 나오더라도 날 적부터 장님인 중생은 그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육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그 장님인 중생이 비록 해를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햇빛의 이익은 받습니다. 즉 그 햇빛으로 음식과 살림살이 도구를 얻고 냉기와 습기를 없애어 몸을 가뿐하게 하며, 바람기ㆍ한기ㆍ담증ㆍ종기 등 병을 모두 치료해 안온하고 즐겁습니다.
여래의 지혜의 해가 세상에 나오는 것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그릇된 견해ㆍ계율을 깨뜨림ㆍ무지ㆍ그릇된 생활 등으로 날 적부터 장님이 된 중생은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심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그 장님인 중생이 여래의 지혜 햇빛은 보지 못하더라도 여래의 지혜 햇빛의 이익은 얻습니다. 즉 사대(四大)의 모든 고통을 없애어 몸이 안락하고 일체 번뇌와 고통의 근본을 끊습니다.
불자들이여, 여래에게 광명이 있으니 그 이름을 일체 공덕 무더기[一切功德積聚]라고 하고,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일체를 두루 비춤[普照一切]이라 하며,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청정하고 자재하게 두루 비춤[淸淨自在普照]이라 하고,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큰 묘한 음성을 냄[出大妙音]이라 하며,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일체 말하는 법을 두루 비춤[普照一切諸語法]이라 하고,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일체 의혹을 자재하게 없앰[自在除滅一切疑惑]이라 하며,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의지하는 데 없이 두루 비춤[無依普照]이라 하고,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지혜가 자재하여 일체 경계의 허망을 없앰[智慧自在除滅一切境界處妄]이라 하며,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모든 교법을 분별하여 상대에 알맞게 큰 소리를 냄[分別諸乘隨其所應出大妙音]이라 하고, 또 광명이 있으니 이름을 원만하고 자재한 음성으로 모든 세계를 장엄하여 중생들을 다 청정하게 함[圓滿自在音聲莊嚴諸刹悉令衆生皆得淸淨]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여래는 낱낱 털구멍에서 이런 천 가지 광명을 놓는데, 5백 광명은 아래쪽을 두루 비추고 5백 광명은 위쪽을 두루 비춥니다. 보살마하살은 각각 그 세계 여래 처소에서 그 광명을 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청정한
열 머리ㆍ열 눈ㆍ열 귀ㆍ열 코ㆍ열 혀ㆍ열 몸ㆍ열 손ㆍ열 발ㆍ열 자리ㆍ열 지혜를 두루 갖춥니다.
그 보살들은 보살행의 자리로 말미암아 얻은 모든 감관[諸入]이 다 청정하고 계율로 모든 선근과 일체종지를 성취하며, 성문과 연각들은 다 일체 번뇌를 없애고 지혜가 적은 날 적부터 장님된 중생들은 그 몸이 부드럽고 안온하고 즐거우며,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여 모든 감관을 제어하고, 사념처법[四念處法]을 원만히 성취하며,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모든 나쁜 세계의 중생들은 온갖 고통이 없어져 모두 안락을 얻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인간이나 천상에 나지마는, 어떤 인연과 위신의 힘으로 거기 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 날 적부터 장님된 중생들은 ‘나는 범천이다. 나는 범천으로 화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때 여래께서는 두루 자재한 삼매에 편히 머물면서 여래의 여덟 가지 묘한 음성을 내어 그 중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생들은 범천도 아니요, 범천으로 화한 것도 아니며, 부처님의 신력을 입었기 때문에 여기 와서 난 것이다.’
그들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전생(前生)에 나쁜 갈래에 있다가 거기 와서 난 것을 알고는 못내 기뻐하면서, 각각 우담화 구름ㆍ향 구름ㆍ오락 도구 구름ㆍ일체의 옷 구름ㆍ일산 구름ㆍ당기 구름ㆍ가루향 구름ㆍ묘한 보배 구름ㆍ사자 당기 구름ㆍ반달 누각 구름ㆍ찬탄하는 장엄거리 구름 등을 들고 여래께 나아가 받들어 공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처님의 신력을 입어 지혜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곧 그들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십니다.
불자들이여,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해는 날 적부터 장님된 중생까지도 이롭게 하여 선근을 길러 완전히 성취하게 하나니,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다섯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보름달에는 아주 기특하고 희한한 네 가지 법이 있는 것과 같으니 네 가지란 이른바 모든 별빛을 압도하고 차고 기울음을 나타내 보이며, 염부제의 맑은 물에는 어디고 그 그림자를 나타내고 누구나 보는 중생에게는 다 얼굴을 대해 주는 것입니다.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아주 기특하고 희한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네 가지란, 이른바 성문ㆍ연각ㆍ유학(有學)ㆍ무학(無學) 등 그 모든 법의 공덕의 별들을 압도하고, 그 상대를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이 같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며, 법신은 항상 머물러 늘거나 주는 일이 없고, 그 그림자는 일체 세계의 깨끗한 마음을 가진 중생들의 보리 그릇에 나타나, 그 듣는 법을 따르고 해탈한 지위를 따르므로, 교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여래께서 그 앞에 나타났다 말하지만 그 진실한 법신에는 나와 남이 없어 불사를 완전히 성취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섯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대범천왕은 적은 방편으로, 대천세계 중생들이 각기 대범천왕이 자기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지마는, 그는 몸을 나눈 것도 아니요 갖가지 몸이 아는 것도 아닌 것처럼, 불자들이여, 여래도 그와 같아 몸을 나누지도 않고 갖가지 몸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중생들에게 교화할 것에 따라 그 몸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중생들을 차별해 나타내 보이려고 생각한 일은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일곱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어떤 대의왕(大醫王)이 약으로 치료하는 모든 법을 잘 알아 일체 처방하는 법을 다 통달하여 염부제의 약초가 그 앞에 보이기만 하면 그것을 다 분별해 알고, 또 그는 전생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모든 처방하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모든 병을 다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대의왕은 임종 때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저 중생들은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교묘한 방편을 나타내리라.’
그리하여 몸에 약을 바르고 주술을 행합니다.
‘나는 죽은 뒤에도 몸이 마르지 않고 또 무너지지도 않으며, 몸의 네 가지 위의를 갖추어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의왕의 일을 향해 온갖 병을 다스리되 생전과 같이 되리라.’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의 위없는 의왕도 그와 같아서, 모든 다스리는 법을 모두 알아 중생들의 모든 번뇌의 병을 고치며, 무량한 억 나유타 겁 동안 선근을 닦고 익혀 반야바라밀을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며, 약을 바르고 주술을 가지는 방편을 잘 외우고는 부처의 음성으로 먼저 보살행의 지위와 반야바라밀과 교묘한 방편과 약과 주술의 힘에 편히 머무르고 수명을 지니면서, 조그만 방편으로 불사를 지어 중생을 구호하고 번뇌를 멸하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덟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저 큰 바다에 보조명정장(普照明淨藏)이라는 마니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 광명이 중생들 몸에 닿으면 모두 한 빛이 되며, 그를 보는 사람은 눈이 곧 청정해지고, 그 광명이 비치는 곳에는 목가(目佉)라는 보배가 두루 가득히 내려, 무량한 중생을 다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합니다.
여래 법신도 그와 같아서, 큰 보배왕의 공덕이 쌓이는 큰 지혜의 창고가 됩니다. 그 여래께서는 보신지(寶身智)라는 광명이 있는데, 그 광명에 닿은 사람은 모두가 부처님의 몸과 한 빛이 되고, 그 광명을 보는 중생은 다 청정한 법의 눈을 얻으며, 또 그 광명에 닿는 중생은 다 빈천의 고통을 없애어 부귀하고 안락하며, 내지 위없는 보리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불자들이여, 여래의 법신은 차별이 없어 일체 중생을 위해 불사를 짓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아홉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큰 바다에 보배가 있으니 이름이 일체 세간을 장엄하는 여의마니보배왕[一切世間莊嚴如意摩尼寶王]으로서 백만의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여, 그 보왕이 머무는 곳에 있는 일체 중생은 모든 고통과 근심이 다 없어지고 그 소원을 모두 성취합니다. 그러나 복이 적은 중생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여래 법신의 마니보왕도 그와 같아서, 그를 보거나 듣는 중생은 생사의 고통이 모두 없어집니다. 그리하여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잠깐이라도 오로지 생각하면, 다 그를 보고 모두 기뻐하면서 소원을 다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래의 법신을 복이 적은 중생으로서는 보지 못하는데, 부처님의
신력으로 그 교화할 중생을 따라 몸을 나타내 보이는 때는 제외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째 승행으로서 여래를 알고 보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깨끗한 마음을 원만히 성취하여 시방에 가득 차며, 법계에 깊이 들어가 나지도 멸하지도 않아 삼세에 평등한 진실한 경지[眞實際]에 편히 머물면서 일체의 허망을 모두 멸하고, 미래 세상에 들어가 바른 법이 일체 세간과 일체 법계와 일체 부처 몸의 한량없는 장엄에 가득 찹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은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외웠다.

비유하면 저 허공 성품은
시방세계와
모든 부처 세계와
아무 데도 이르는 곳 없는 것처럼

빛 있는 곳과 빛 없는 곳과
일체 중생 무리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가는 것도 아니요 안 가는 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청정하고 묘한 법신도
이르지 않는 곳 없어
모든 법계에 가득 차 있네.

부처님의 그 묘한 법신은
아무도 그것 볼 수 없지만
중생들 교화하기 위해
부처님은 그 몸을 나타내 보이네.

비유하면 저 허공 성품은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지만
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걸림이 없이 온갖 업 짓게 하되

나는 지금 무엇을 짓는가
어떻게 짓는가
또 누구를 위해 짓는가
저 허공이 이런 생각 없는 것처럼

저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그 깨끗한 몸의 업에 의해
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희고 깨끗한 법 이루게 하네.

여래의 그 깨끗한 법신은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나
내가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그런 생각은 법신에 없네.

비유하면 밝고 깨끗한 해가
이 염부제에 나타나서는
모든 어둠 없애 버리고
빈 곳이 없이 두루 비추며

일체의 온갖 보배 산들과
이 대지의 모든 꽃 못[華池] 등
그 일을 따라 자라게 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해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또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선근을 기르게 하며

지혜의 광명을 모두 이루어
일체의 어둠을 없애 버리고
길잡이님을 뵈옴으로써
일체 즐거움을 갖추게 하네.

비유하면 저 해가 떠오를 때에
먼저 큰 산왕을 비추고
다음에는 차례로
일체 큰 산을 모두 비추며

다음에는 모든 작은 산들과
다른 높은 곳을 모두 비추고
그런 뒤에야 이 세계의
대지를 두루 비추는 것처럼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청정한 지혜의 햇빛으로
먼저 모든 보살의
공덕의 큰 산왕들 비추고

다음에는 차례로
모든 연각 비추며
또 다음에는 차례로
성문과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을 비추고

그런 뒤에야 차례로
일체 중생을 비추되
내게는 광명 있다는
그런 생각이 법신에는 없네.


비유하면 밝고 깨끗한 해가
세간에 나타남 같아서
장님은 그것을 보지 못하나
좋은 이익을 그에게 주나니

주리고 목마르는 근심 없애어
그 몸을 부드럽고 즐겁게 하나니
알아야 하네, 밝고 깨끗한 해는
이롭게 하지 않는 것 하나도 없네.

부처님 해도 그와 같아서
이 세간에 한 번 나타나서는
신심의 눈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를 위해 이익을 지어 주나니

혹은 여래의 말소리 듣거나
혹은 여래의 광명에 닿으면
그를 위하여 인연이 되어 주어
끝내는 그 보리를 이루게 하네.

비유하면 저 보름달빛이
모든 별빛을 다 압도하고
일체 중생에게 나타나 보이되
차기도 하고 혹은 기울기도 하며

맑은 물이면 어디에서도
그 그림자 다 나타내어
이 세간의 중생들 모두
그 얼굴 대하게 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깨끗한 그 보름달도
이승(二乘)의 무리들 다 압도하고
그 교화를 받는 이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 나타내 보이며

인간 천상의 깨끗한 마음의
보리 그릇에 그림자 나타낼 때
그들은 각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을 대했다 하네.

비유하면 저 대범천왕이
범천궁(梵天宮)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저 대천세계 어디에서나
그 몸을 두루 다 나타내며

자재한 힘을 두루 갖추어
한량없는 그 몸을 변해 나타내
어디고 보이지 않는 곳 없지만
그 몸을 나누어 그런 것이 아니네.

길잡이님도 그와 같아서
자재한 힘을 두루 갖추어
저 시방의 모든 세계에
한량없는 몸 두루 나투네.

그 몸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어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는데
두루 응해 중생 앞에 나타나지만
그 몸을 나누어 그런 것이 아니네.

비유하면 저 큰 의왕이
병을 다스리는 법을 잘 알아
누구나 그에게 보이는 사람이면
어떤 병이고 다 고칠 수 있는데.

그는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이렇게 혼자 생각했나니
내가 이제 죽고 난 뒤에는
저 앓는 중생들 의지할 데 없으리.

그리하여 그 몸에 약을 바르고
또 스스로 주문 외우기를
내가 이제 목숨을 마치더라도
생전과 조금도 다름없으리.

이와 같이 저 모든 부처님은
위없는 큰 의왕으로서
방편의 지혜를 다 잘 배우고
일체를 아는 지혜 두루 갖추고

과거에 닦은 한량없는 행으로
깨끗한 법신을 나타내 보이나니
누구나 그를 보는 중생은
번뇌의 큰 병을 모두 고치네.

비유하면 저 큰 바다에 있는
온갖 마니의 보배왕들이
가지가지의 맑고 깨끗한
묘한 광명을 두루 놓을 때

그 광명에 닿는 중생은
모두 그것과 같은 빛 되고
누구나 그것을 보는 중생은
청정한 눈이 열리는 것처럼

부처 보배도 그와 같아서
지혜 광명을 두루 놓을 때
누구나 그 광명에 닿는 사람은
모두 부처와 한 빛이 되며

누구나 그를 보는 사람은
다섯 가지 깨끗한 눈을 갖추어
갖가지 어둠을 모두 없애고
여래의 그 자리에 편히 머무네.

비유하면 저 여의주 보배
일체의 소원을 이루어 줄 때
누구나 그것을 얻는 사람은
그 소원을 모두 원만히 이루네.

그러나 여의주는 생각 않나니
나는 세간을 이롭게 한다고
그러나 공덕이 적은 중생은
그 보배왕을 얻지 못하네.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소원을 만족시켜 주나니
누구라도 무엇을 구할 때에는
그 소원 모두 이루어 주되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 않나니
나는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그러나 나쁜 마음 품은 사람은
여래의 몸을 보지 못하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의 미묘한 음성을 어떤 것이라고 알고 보는가. 그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음성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음을 알고 봅니다. 여래의 갖가지 미묘한 음성은 일체 중생을 다 기쁘게 하며, 한량없는 바른 법을 연설하여,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은 다 그것을 이해하게 합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의 몸을 시원하게 하고 그 마음을 안정시켜 산란하지 않게 하여, 생멸이 없는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게 합니다.
비유하면 그것은 메아리와 같이 주인이 없지마는, 모든 선근(善根)을 내어 기르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이요, 매우 깊어 밑바닥이 없음을 알고 보기 때문이며, 정직하여 끝내 법계에 드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이요, 끊임없이 법계를 포섭하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이며, 무너뜨릴 수 없는 구경의 법계를 알고 보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음성이 분량[量]도 아니요, 분량이 없는 것도 아님을 알고, 주인도 아니요, 주인이 없는 것도 아님을 알며, 지혜도 아니요, 지혜가 없는 것도 아님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가 장차 무너지려 할 때는 으레 법이 그러하여 네 가지 음성이 저절로 나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 초선(初禪)은 안락하여 욕심과 분노를 떠나므로 욕심 세계를 멀리 벗어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고는 다 자연히 초선을 성취하여 욕심 세계의 몸을 버리고 범천에 나는 것입니다.
둘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 2선(禪)은 안락하여 각관(覺觀)을 떠나고 각도 없고 관도 없이 범천의 몸을 멀리 떠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중생은 다 저절로 2선을 성취하여 범천의 몸을 버리고 광음천(光音天)에 나는 것입니다.
셋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 3선은 안락하여 기쁨과 사랑을 떠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중생은 다 저절로 3선을 성취하여 광음천의 몸을 버리고 변정천(遍定天)에 나는 것입니다.
넷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 4선은 안락하여 모든 고통을 멀리 떠난다’ 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중생은 다 저절로 4선을 성취하여 변정천의 몸을 버리고 과실천(果實天)에 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세계가 장차 무너지려 할 때에 으레 그런 법이기 때문에, 저절로 네 가지 음성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주인도 없고 지은 이도 없는 것처럼, 여래의 묘한 음성도 그와 같아서 주인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면서
저절로 네 가지 묘한 음성을 내어 불법에 순응합니다.
그 네 가지 소리란 무엇인가.
첫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일체의 행은 고통이요, 지옥ㆍ축생ㆍ아귀 세계는 고통이며, 염라왕은 고통이요, 악행을 행하면 고통이며, 공덕이 없는 것은 고통이요,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이니, 인간이나 천상에 나고 싶으면 선근을 심고 갖가지 공덕을 닦아 팔난(八難)을 멀리 떠나고 어려움이 없는 곳을 얻으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중생은 착각을 버리고 선근을 닦아 익혀 팔난을 멀리 떠나고 인간이나 천상에 나는 것입니다.
둘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모든 행의 고통은 다 왕성하여 마치 철환(鐵丸)을 태우는 것과 같다. 모든 행은 다 파괴되는 것이요, 고요한 열반은 불붙는 고통을 멀리 떠나 시원하고 안락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중생은 다 선근을 닦고, 선근을 닦고는 음성의 인(忍)을 얻으며, 음성의 인을 얻고는 성문의 교법[聲聞乘]을 배우는 것입니다.
셋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성문의 교법을 배우는 사람은 작은 지혜를 배우고 남을 의지해 깨닫는다. 그보다 더 훌륭한 도가 있으니, 그것은 연각의 교법으로서 남을 의지해 깨닫는 것이 아니니 너희들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도를 즐기는 중생은 이 말을 듣고 연각의 교법을 배웁니다.
넷째 소리는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성문이나 연각보다 더 훌륭한 도가 있으니 그것은 대승으로서, 보살행을 닦아 육바라밀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갖추어 물러나지 않으며,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생사를 아주 떠나 위없는 보리로 향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중생으로서 근기가 예민하고 과거에 한량없는 선근을 닦았으며, 또 부처님의 신력을 받은 사람이면, 이 소리를 듣고 보리심을 냅니다.
여래의 미묘한 음성은 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요,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첫째 훌륭하고 묘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메아리는 산을 인해 소리가 일어나 쌓이는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면서, 갖가지 소리를 따라 모두 응대하지만 실은 응대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여래의 묘한 음성도 그와 같아서, 일정한 곳이 없이 다만 그 상대를 따라 음성을 내지만 그 음성은 진실이 아니어서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둘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그것은 저 천상의 미묘한 음성과 같나니, 허공에서 저절로 생겨 방일하는 천자들을 깨우쳐 말합니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오욕은 무상하고 허망하며 뒤바뀐 생각으로서 잠깐 동안에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람을 거슬러 횃불을 잡는 것과 같이 우치한 사람의 하는 짓이니 너희들은 방일하지 말라. 만일 방일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방일하는 천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고 오욕을 싫어하기 때문에, 각각 궁전을 버리고 정법당(正法堂)에 나아가, 선법을 닦아 익히고 바른 도를 즐거워합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나 하늘의 묘한 음성은 주인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 방일하는 여러 천자들에게 이익을 줍니다.
여래의 묘한 음성도 그와 같아서, 방일하는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바른 법의 음성을 내어 그들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이른바 집착하지 말라는 음성, 방일하지 말라는 음성, 무상하고 괴롭고 공이요 나가 없다는 음성, 고요한 열반의 음성 등이니, 그것은 다 일체 법계에 충만하여 그 상대를 따라 모두 기쁘게 하고, 각각 그 좋아하는 바를 따라 모든 교법을 수학하게 합니다.
또 한량없는 큰 지혜의 소리와 물러나지 않는 소리, 모든 보살행을 갖춘 소리, 여래 일체지의 지위 소리 등을 내나니, 이 소리를 들은 무량 무수 아승기 중생들은 선법을 닦아 익히는데, 혹은 성문이나 벽지불승을 배우고, 혹은 위없는 마하연승을 배웁니다. 그러나 여래의 묘한 음성은 모든 모양을 뛰어나고 언어의 길이 끊어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셋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자재천왕에게 하늘의 보녀(寶女)가 있는데, 이름은 선구(善口)로서, 그 한 마디 말은 백천 가지 즐거운 음성을 내고, 그 낱낱 즐거운 음성이 또 백천 가지 즐거운 음성을 냅니다. 불자들이여, 그 선구의 한 음성이 한량없는 미묘한 음성을 내는 것처럼 여래의 음성도 그와 같아서, 한 음성에서 한량없는 음성을 내고 그 상대를 따라 다 깨닫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넷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대범천왕이 범천의 대중 가운데서 범음성을 낼 때 일체 대중이 그것을 다 듣지만 그 소리는 그 대중 밖으로는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범천 대중은 각각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범천왕은 우리에게만 말하고 다른 하늘은 상대하지 않는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최상의 미묘한 음성을 낼 때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만 다 듣고 그 대중 밖으로는 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중생은 근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소리를 들은 대중은 각각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여래께서는 우리만을 위해 설법하시고 다른 사람은 상대하시지 않는다.’
여래께서는 소리를 내지만 내는 것이 없고 부처님 음성을 듣는 사람도 그 듣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중생들을 위해 불사를 짓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다섯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물의 성품은 다 같은 맛이지만 그 그릇을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맛이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물은, ‘나는 여러 맛을 내리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의 미묘한 음성도 그와 같아서, 이른바 해탈의 맛이라는 한맛이지만 교화를 받는 중생들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래의 음성은, ‘나는 갖가지의 다른 음성을 내리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섯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아뇩달(阿耨達)용왕이 매우 짙은 구름을 일으켜 염부제에 가득 채우고 큰 비를 두루 내리면, 온갖 곡식과 초목은 더욱 자라고 모든 강과 못은 가득 찹니다. 그러나 그 많은 빗물은 용왕의 몸이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지만 한량없는 중생을 다 이롭게 합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큰 자비의 구름을 일으켜 세계에 가득 채우고 위없는 감로의 바른 법을 두루 내려,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매우 기뻐하면서 선근을 내고 바른 법을 기르며 모든 교법을 갖추게 합니다. 그러나 여래의 음성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일체 중생을 다 이롭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일곱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저 마나사(摩那斯)라는 용왕은 장차 비를 내리려 할 때 먼저 짙은 구름을 일으켜 허공에 가득 채우고는 이레 동안 어리어 있으면서 비를 내리지 않고, 먼저 중생들로 하여금 그 업을 성취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큰 용왕은 자비심이 있기 때문데, 이레가 지난 뒤에 차츰 보슬비를 내려 대지를 두루 적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장차 법의 비를 내리려 할 때는 먼저 법의 구름을 일으켜 중생을 두루 덮으면서도, 곧 감로의 법의 비를 내리지 않고, 먼저 중생들의 모든 근기를 성숙시키고 모든 근기가 성숙된 뒤에야 차츰 감로의 법 비를 내립니다. 만약 깊은 법을 바로 연설하면 중생들이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에, 여래는 차츰 일체종지의 감로의 법의 맛을 조금씩 내리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여덟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저 바다 가운데 있는 대장엄(大莊嚴)이라는 큰 용왕은 열흘, 스무날, 혹은 백 날, 천 날, 혹은 백천 날 동안 계속해 비를 내립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나 그 비는 ‘나는 열흘, 내지 백천 날 동안 내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만 그 용왕에게 불가사의한 자재로운 힘이 있기 때문에, 열흘 내지 백천 날 동안 비를 내리는 것입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그와 같아서, 미묘한 감로의 바른 법을 내리려 할 때는 열 가지 음성, 스무 가지ㆍ백 가지ㆍ천 가지ㆍ백천 가지ㆍ혹은 팔만 사천행의 갖가지 음성, 내지 한량없는 억 나유타 음성으로 분별해 설법하여 일체 중생을 다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여래의 미묘한 음성은, ‘나는 갖가지로 설법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법계는 청정하여 차별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설법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아홉째 훌륭한 행으로서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사가라(娑伽羅)라는 용왕은 용왕의 큰 자재력(自在力)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천하로부터 내지 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 큰 짙은 구름을 일으켜
육천(六天)을 두루 덮을 때 갖가지 빛깔이 있습니다. 즉 어떤 곳은 염부단금빛 같고, 어떤 곳은 유리빛 같으며, 어떤 곳은 백은빛 같고, 어떤 곳은 파리빛 같으며, 어떤 곳은 매괴(玫瑰)빛 같고, 어떤 곳은 마노빛 같으며, 어떤 곳은 훌륭한 보배 창고의 빛 같고, 어떤 곳은 빨간 진주빛 같으며, 어떤 곳은 묘한 향빛 같고, 어떤 곳은 갖가지 옷빛 같으며, 어떤 곳은 맑은 물빛 같고, 어떤 곳은 여러 가지 섞인 빛 같습니다.
이런 한량없는 빛깔 구름으로 네 천하와 내지 여섯 하늘을 덮고는 갖가지 번갯불을 내니, 이른바 염부단금빛 구름은 유리빛 번갯불을 내고 유리빛 구름은 염부단금빛 번갯불을 내며, 백은빛 구름은 파리빛 번갯불을 내고 파리빛 구름은 흰 은빛의 번갯불을 내며, 매괴빛의 구름은 마노빛 번갯불을 내고, 마노빛 구름은 매괴빛의 번갯불을 내며, 훌륭한 보배 창고의 빛 구름은 빨간 진주빛 번갯불을 내고 빨간 진주빛 구름은 훌륭한 보배 창고의 빛 번갯불을 내며, 묘한 향빛의 구름은 갖가지 옷 빛의 번갯불을 내고, 갖가지 옷 빛의 구름은 묘한 향(香)빛의 번갯불을 내며, 맑은 물빛 구름은 갖가지 잡색 번갯불을 내고 갖가지 잡색 구름은 맑고 물빛 번갯불을 내는데, (자세히 말한다) 내지 한 가지 빛 구름은 여러 가지 빛 번갯불을 내고 여러 가지 빛 구름은 한 가지 빛 번갯불을 냅니다.
또 갖가지 큰 천둥소리를 떨쳐 중생들을 모두 기쁘게 합니다. 이른바 천녀의 노랫소리, 천상의 즐거워하는 소리, 용녀의 노랫소리, 건달바녀의 노랫소리, 긴나라녀의 노랫소리, 대지의 소리, 큰 바다 소리, 사슴왕의 소리, 혹은 신기한 무리들의 기묘한 갖가지 새소리, 혹은 갖가지 노랫소리 등입니다.
그때 용왕은 여러 가지 바람을 일으키면서 보슬비를 내려 한량없는 중생을 편하고 이롭게 하며, 네 천하로부터 여섯 하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한량없는 다른 비를 내립니다. 이른바 큰 바다 가운데에는 홍주(洪澍)라는 비를 끊임없이 내리고, 타화자재천에는 노래하고 유희하는 소리의 비를 두루 내리며, 화자재천에는 해탈의 밝고 깨끗한 광명 보배의 비를 두루 내리고,
도솔타천에는 상투에 꽂는 밝은 달의 신주(神珠)의 비를 두루 내리며, 야마천에는 갖가지 장엄거리를 두루 내리고, 33천에는 묘한 향의 비를 두루 내리며, 사천왕천에는 보배옷 비를 두루 내리고 용왕의 궁전에는 붉고 밝은 진주의 비를 내리며, 아수라가 사는 곳에는 복원적(伏怨敵)이라는 무기의 비를 내리고, 울단월에는 온갖 꽃비를 두루 내립니다.
이렇게 자세히 말하면, 온 네 천하에 갖가지 비를 내리지만 그 용왕은 마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데, 다만 중생들의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그 비에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신 위없는 법왕도 그와 같아서, 장차 한량없는 큰 법을 내리려 할 때는 먼저 청정한 몸 구름으로 일체 법계를 두루 덮고 그 상대를 따라 몸의 구름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중생은 여래 생신(生身)의 구름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신력으로 부지하는 몸 구름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 색신의 구름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갖가지 몸의 구름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공덕 몸의 구름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지혜 몸의 구름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무너지지 않는 몸의 구름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두려움 없는 몸의 구름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법계몸의 구름을 봅니다.
불자들이여, 여래는 이런 한량없는 몸의 구름으로 일체 세계를 두루 덮고 그 상대를 따라 광명의 번갯불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중생은 여래의 이르지 않는 데가 없음[無所不至]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무량무변한 것을 비춤[照無量無邊]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부처님의 미묘한 가르침에 들어감[入佛微密之敎]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밝고 깨끗하게 두루 비춤[明淨普照]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깨끗한 비춤[淨照]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무진장의 다라니 문에 들어감[入無盡藏陀羅尼門]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산란하지 않은 바른 생각[不亂正念]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물러나지 않는 지혜[不退智慧]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모든 갈래를 따라 들어감[順入諸趣]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보고, 어떤 중생은 여래의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만족시킴[普令衆生滿足諸願]이라는 광명의 번갯불을 봅니다.
불자들이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중생들을 두루 위해 여래의 광명 번갯불을 내고는 한량없는 온갖 큰 삼매의 천둥소리를 냅니다. 이른바 바른 깨달음 삼매의 천둥소리, 더러움을 떠난 고요한 바다 삼매의 천둥소리, 일체 법에 자재한 삼매 천둥소리, 금강 같고 원만한 삼매의 천둥소리, 수미산왕 당기 삼매 천둥소리, 해인(海印)삼매의 천둥소리, 햇빛 삼매의 천둥소리, 중생들을 다 기쁘게 하는 삼매의 천둥소리, 다함없는 공덕 창고 삼매의 천둥소리, 무너지지 않는 해탈을 얻은 아라한 삼매의 천둥소리 등을 냅니다.
불자들이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부처 몸의 구름에서 한량없는 갖가지 삼매의 천둥소리를 내어 감로의 법을 연설하려 할 때는, 먼저 여래의 큰 지혜 풍륜의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내고, 걸림없는 큰 자비에서 일어나, 일체 중생과 보살들로 하여금 그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져 다 크게 기뻐하게 합니다.
여래는 이와 같이 바른 법의 구름과 큰 자비의 구름과 불가사의한 구름으로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한 뒤에, 비로소 불가사의한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립니다. 이른바 도량에 앉은 일체 보살을 위해 무너뜨릴 수 없는 법계의 큰 구름의 비를 내리고, 최후의 몸을 가진 보살을 위해, 여래의 비밀한 가르침과 보살의 즐거움이 자재한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리며,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보살을 위해 청정하게 두루 비치는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리고, 수기를 얻는 보살을 위해 여래의 장엄한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리며, 법인을 얻는 보살을 위해 공덕의 보배와 지혜의 꽃이 끊이지 않는 보살행의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립니다.
향(向)과 행(行)의 보살을 위해 물러나지 않는 행으로 교화의 문과 매우 깊은 문에 들어가되 싫증을 내지 않는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리고,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을 위해 여래의 결정한 행과 대자대비로 중생을 구호하는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리며, 연각을 좋아하는 이를 위해 인연을 깊이 알고 단상(斷常)의 견해를 떠나 무너지지 않는 해탈 과보의 법 구름의 비를 내리고, 성문 되기를 구하는 이를 위해 번뇌의 원수를 항복 받는 지혜 창고의 법 구름의 비를 내리며, 선근을 닦아 기르는 중생과 결정되고 결정되지 않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기쁜 법문 구름의 비를 내립니다.
불자들이여, 이런 열 가지의 무량무변한 큰 법 구름의 비를 내려 법계에 충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불자들이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그 마음이 평등하여 피차가 없지만 다만 중생들의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여래의 법 비는 차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째 훌륭한 행으로서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주강(澍降) : 앞글자는 음이 주(注)이고, 뒷글자는 고(古)와 항(巷)의 반절이다.
감수(堪受) : 앞글자는 구(口)와 함(含)의 반절이다.
장중(掌中) : 앞글자는 제(諸)와 량(兩)의 반절이다.
수륙(水陸) : 뒷글자는 력(力)과 죽(竹)의 반절이다.
백곡(百穀) : 뒷글자는 고(古)와 록(祿)의 반절이다.
훼목(卉木) : 앞글자는 허(許)와 귀(貴)의 반절이다.
영습(冷濕) : 앞글자는 로(魯)와 정(朾)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실(失)과 입(入)의 반절이다.
담음(痰%{疒+人+镸}) : 앞글자는 도(徒)와 감(甘)의 반절이다. 뒷글자는 어(於)와 금(禁)의 반절이고, 또한 음(癊)으로 쓰기도 한다.
독통(毒痛) : 뒷글자는 타(他)와 공(貢)의 반절이다.
수단(脩短) : 앞글자는 식(息)과 류(流)의 반절이다.
명련(明練) : 뒷글자는 랑(郞)과 전(殿)의 반절이다.
간조(乾燥) : 앞글자는 고(古)와 한(寒)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소(蘇)와 로(老)의 반절이다.
도주(塗呪) : 앞글자는 동(同)과 도(都)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직(職)과 구(救)의 반절이다.
빈천(貧賤) : 뒷글자는 재(才)와 선(線)의 반절이다.
기갈(飢渴) : 뒷글자는 고(苦)와 갈(曷)의 반절이다.
호향(呼響) : 앞글자는 황(荒)과 조(鳥)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허(許)와 량(兩)의 반절이다.
자장(滋長) : 앞글자는 자(子)와 지(之)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지(知)와 장(丈)의 반절이다.
매괴(玫瑰) : 앞글자는 음이 매(梅)이고, 뒷글자는 음이 회(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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