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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07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8권

by Kay/케이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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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8

 

대반열반경 제8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4.여래성품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방등경은 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방등경이 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진실한 이치를 알고자 하느냐?”
가섭이 말씀드렸다.
“저는 참으로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이치를 알고자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감로를 먹고
몸이 상하여 단명하였고
어떤 이는 감로를 먹고
수명을 연장해 장수했으며
어떤 이는 독약을 먹고 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독약을 먹고 죽었다 하네.

걸림 없는 지혜가 감로
이른바 대승의 경전
대승경전도 또한
독약이라고도 하니
소(穌)ㆍ제호(醍醐) 등과 같이
모든 석밀(石蜜)까지도
잘 삭이면 약이고
못 삭이면 독이라네.

방등경도 그러하여
지혜 있는 이는 감로라 하나
어리석은 이는 불성을 몰라
먹으면 독약이 되고
성문ㆍ연각에겐
대승이 감로 된다네.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음식들 중에
우유가 제일 좋은 맛이 되듯이
부지런히 정진하고
대승을 의지하면
대열반에 이르러서
상왕(象王)이 되나니.

중생으로서 불성을 분명히 아는 것은
가섭보살 같은 이는
위없는 감로와 같아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가섭아 너는 마땅히
삼귀의를 잘 분별하라.

이와 같이 삼보에 귀의하면
그 성품이 틀림없는 내 성품이니
내 성품에 불성 있는 이치를
그대들 분명하게 살펴본다면

마땅히 알라 그런 이들은
부처님의 비밀법장에 들어가게 된다
나[我]와 내 것[我所]들을 모두 다 알고

곧 세상을 뛰어 넘으리.

부처님과 법과 승가의 성품
제일이며 위없는 높은 이시니
내가 지금 연설하는 이런 게송은
그 성품과 그 이치가 그러하다네.

그때 가섭보살도 역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는 지금 삼보에 귀의할 데를
그런 법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위없고 두려움 없는
그 경계에 나아가게 되겠습니까?

삼보에 귀의할 줄 모르나니
어떻게 하면 내가 없게 되겠으며
어떻게 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
편안하게 위로하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대법보에 귀의할 수 있는지
바라건대 저를 위해 말씀하소서.
어떻게 하면 자재함을 얻게 되며
어떻게 하면 자재하지 못합니까?

어떻게 하면 승가에 귀의하여서
위없는 큰 이익을 얻게 되며
어떻게 하면 오는 세상 부처 이룰지
진실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오는 세상 부처님을 못 이룬다면
어떻게 하여 삼보에 귀의할 수 있는지
저는 지금 알 길이 전혀 없으나
차례차례 귀의하여 볼까 합니다.

어찌하여 아기를 배지도 않고
아들 낳을 생각을 가지겠습니까만
반드시 태 가운데 아기가 있으면
자식이 있는 이라 할 것이니.

아기가 태 가운데 만일 있다면
반드시 오래잖아 낳게 되며
이를 일러 자식이라 하나니
중생들의 업보도 그러합니다.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와도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그 이치를 모르는 인연으로써
나고 죽는 지옥에서 헤맵니다.

이름만 빌려 가진 우바새들이
진실한 그런 이치 알지 못하니
바라건대 자세하게 분별하시어
저희들의 의심 그물 벗겨 주소서.

부처님의 대자비와 크신 지혜로
가엾이 여겨 분별하여 주시고
여래의 비밀하신 보배 법장을
원하오니 저희들에게 말씀하소서.

가섭보살 너는 마땅히 알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비밀한 큰 법장을 열어 보이고
얽혀 있는 의심 그물 끊게 하노니.

이제 마땅히 잘 들어라
그대는 보살 중에서
일곱째 부처님과
명호가 같구나.

지성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는
진정한 우바새의 이름 얻으리.
여러 가지 천신에게
귀의하지 마라.

법보에 귀의하는자
살해를 떠나고
승보에 귀의하는자
외도를 멀리한다네.

삼보에 귀의하면
공포 없으리.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이미 삼보에 귀의했으니

이것은 보리로 가는 바른 길

여러 부처님들의 경계입니다.
삼보의 평등하신 그 모양에는
넓고 큰 지혜 성품 항상 있으며
우리들의 성품과 부처님 성품
둘도 없고 차별도 없다 합니다.

이런 길은 부처님의 찬탄하신 길
올바르게 나아가 있게 될 곳
옳게 알고 두루 아는 지견이오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칭찬하셨네.

나도 역시 부처님의 찬탄하신
위없는 그 길로 나아가리니
이것이 가장 좋은 감로이며
온 세상에 다시없는 큰 길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지금 성문이나 범부들처럼 삼보를 분별하지 마라. 이 대승경전에는 삼귀의의 차별된 모양이 없다. 왜냐하면 불성 가운데 법과 승이 있지만 성문과 범부들을 교화 제도하기 위하여 삼보가 모양이 다름을 분별하여 말한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세간법을 따르려면 삼귀의가 있다고 분별해야 한다.
선남자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의 이 몸이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니 만일 이 몸이 불도를 이룬다면 이룬 뒤에는 다른 세존께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이 평등하여 다 같이 중생이 귀의하게 되는 까닭이며, 법신 사리를 존중하려면 모든 부처님의 탑에 예경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중생들로 하여금 나의 몸 가운데 탑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예배하고 공양하게 하였으니, 이런 중생들이 나의 법신으로 귀의할 곳을 삼게 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참되지 않은 거짓 법에 귀의하므로 내가 차례로 참 법을 말하는 것이며, 또 참된 스님이 아닌 이에게 귀의하는 이가 있으면 내가 참 스님에게 귀의할 곳을 지을 것이며, 만일 삼귀의를 분별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마땅히 한 귀의할 곳을 지어
세 가지 차별이 없게 할 것이다.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눈이 되며, 또 성문과 연각들을 위하여 참으로 귀의할 곳을 지을 것이니 선남자야, 보살이 이렇게 한량없는 나쁜 중생들과 지혜 있는 이들을 위하여 부처님 일을 짓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전장에 나아가 싸울 때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 가운데 최고이며 제일이니 모든 병사들이 나를 의지한다.
또 어떤 왕자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다른 왕자들을 모두 조복하고 대왕의 자리를 이어서 자재할 것이며, 모든 왕자들로 하여금 내게 귀의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낮고 열등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
그리고 왕과 왕자와 대신들도 또한 그러하였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어째서 세 가지 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인가?’ 라고 사유한다. 선남자야, 내가 보여준 세 가지 일은 곧 열반이며 여래는 위가 없는 이[無上士]이다. 비유하면 사람의 몸에는 머리가 가장 위가 되고 다른 팔다리나 손발은 위가 아닌 것처럼,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가장 높은 것이며 법이나 스님은 그렇지 않다. 세간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가지가지로 차별한 모양을 나타낸 것이 사다리와 같으므로 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는 것같이 삼귀의가 다르다는 모양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는 대승에 대하여 용맹하게 결단하기를 금강도(金剛刀)와 같이 하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면서 일부러 물은 것이고 몰라서가 아닙니다. 저는 매우 용맹한 보살들을 위하여 때가 없고 깨끗하게 행동할 것을 물어서 여래로 하여금 보살들을 위하여 기특한 일을 널리 분별하게 한 것이며, 대승 방등경전을 말씀하시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여래께서 지금 대자대비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 가운데 말씀하신 보살이 깨끗이 행동할 곳에 편안하게 머무니, 곧 『대열반경』을 연설하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역시 중생들을 위하여 그러한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선양하겠으며, 또한 참으로 삼귀의할 곳을 증득하여 알겠습니다. 어떤 중생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은 저절로 삼귀의할 곳을 분명하게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비밀한 법장에는 불성이 있는 까닭이니, 이런 경전을 선양하여 말하는 이는 모두 몸 가운데 불성이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삼귀의할 곳을 먼 데서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는 세상에는 내 몸도 삼보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문ㆍ연각과 다른 중생들이 모두 저에게 귀의하여 공경하고 예배하여야 하며, 선남자들이 이런 뜻으로 대승경전을 배워야 합니다.”
가섭보살이 또 말씀드렸다.
“불성이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으니 32상과 80종호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네가 깊고 훌륭한 지혜를 성취하였으니, 내가 이제 너에게 여래장에 들어가도록 말하겠다. 만일 내[我]가 머문다면 그것은 항상한 법이니 괴로움을 떠나지 못하고, 만일 내가 없다면 깨끗한 행을 닦아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모든 법이 내가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이며, 내가 머문다면 그것은 항상하다는 소견이다. 모든 변천하는 법이 무상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아주 없다는 소견이며, 모든 행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곧 항상하다는 소견이다. 만일 괴롭다고 말하면 곧 아주 없다는 소견이며 즐겁다고 말하면 그것은 항상하다는 소견이다. 온갖 법이 항상하다는 것을 닦는 이는 항상하다는 소견에 떨어질 것이니, 마치 자벌레가 앞발로 인하여 뒷발을 옮기듯이 항상하다는 소견과
아주 없다는 소견을 닦는 이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아주 없다는 소견이나 항상하다는 소견을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런 이치로 다른 법이 괴롭다고 닦는 이는 선하지 못하다 하고, 다른 법이 즐겁다고 닦는 이는 선하다 한다. 또 다른 법이 내가 없다고 닦는 이는 번뇌의 장본[分]이며, 다른 법이 항상하다고 닦는 이는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한다. 그러므로 열반은 굴택(窟宅)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무상한 법을 닦는 것은 재물이며, 다른 항상한 법을 닦는 것은 불ㆍ법ㆍ승 삼보와 바른 해탈이다. 그리하여 불법의 중도(中道)는 두 가지 극단[二邊]을 여의고 진정한 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도 여기에는 의심이 없는 것이 마치 병에 걸린 사람이 생소를 먹고 기운이 상쾌해지는 것과 같다.
있다 없다 하는 법의 성품이 일정하지 않으니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4대(大)의 성품이 같지 않아서 제각기 어긋나는데, 용한 의사는 그것을 잘 알고 그의 치우쳐 일어남을 따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용한 의사가 되어 모든 번뇌의 자체와 모양이 다른 것을 알아 끊어 버리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에 청정한 불성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음을 보이신다. 만일 있다고 말하여도 지혜가 물들지 않아야 하며, 없다고 말하면 곧 허망한 말이다. 있다고 말하거든 잠잠하지도 말며 희롱거리로 다투지도 말고 법의 참된 성품을 알아야 할 것이니, 범부들이 희롱거리로 다투는 것은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만일 괴롭다고 말하면 어리석은 이는 이 몸이 무상하다 하여 모든 것이 괴롭다고 생각하고 몸에 즐거운 성품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무상하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몸이 모두 무상하여 날기와 같은 줄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잘 분별하여 모든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몸에 불성의 종자가 있는 까닭이다. 만일 내가 없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불법이 모두 내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지혜로운 이는 내가 없다는 것이 일부러 하는 말이며 실답지 않은 것을 분별해야 한다. 그렇게 알고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고요하다[空寂]고 말하면 범부들이 듣고는 아주 없다는 소견을 낸다.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하여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해탈이 마치 환술과 같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참 해탈을 얻더라도 곧 소멸할 것이라고 여긴다.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하여 사람 중의 사자(師子)는 비록 가고 옴이 있더라도 항상 머물고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무명의 인연으로 모든 행(行)이 있다고 하면 범부들이 듣고 분별을 일으켜 명(明)과 무명이 두 가지라는 생각을 낼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닌 것을 통달하여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임을 안다. 모든 행의 인연으로 식(識)이 있다고 하면 범부들은 행과 식이 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는 줄을 알고서 둘이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고 알 것이다.
만일 10선(善)ㆍ10악(惡)ㆍ해도 될 일[可作]ㆍ해서는 안 될 일[不可作]ㆍ좋은 갈래ㆍ나쁜 갈래, 흰 법[白法], 검은 법[黑法]을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고 할 것이다. 만일 온갖 법이 괴로운 것임을 닦으라고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실다운 성품이라 할 것이다.
만일 모든 행법이 무상하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무상하다고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 할 것이다. 만일 온갖 법이 내가 없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내가 없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임을 알 것이다.
나와 내가 없음은 성품이 둘이 아니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이치가 그러하여 말할 수 없고 한량없고 가없는 부처님들이 칭찬한 것이다. 나도 지금 온갖 공덕을 성취한 경에서 모두 말하였다.
선남자야, 나와 내가 없음의 성품과 모양이 둘이 아니니,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받아 지녀야 한다.
선남자야, 너도 마땅히 이런 경전을 굳게 지키고 기억해야 하니, 내가 먼저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와 내가 없음이 둘이 아니니, 마치 젖으로 말미암아 타락이 생기고, 타락에서 생소가 생기고, 생소에서 숙소가 생기고, 숙소로부터 제호를 얻는 것과 같다.’
이러한 타락의 성질이 젖에서 생기는가, 스스로 나는가, 다른 데서 나는가 나아가 제호의 성질도 그와 같은가? 만일 다른 데서 난다면, 곧 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젖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젖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면 젖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만일 스스로 난다면 비슷한 것이 계속되어서[相似相續] 나는 것이 아닐 것이며, 만일 서로 계속되어서 난다면 한꺼번에 나지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나지 않는다면 다섯 가지 맛이 한 때에 나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 때에 나지 않더라도 다른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젖 속에 본래 타락의 특징[相]이 있지만, 단맛이 많아서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제호도 그와 같다. 소가 물과 풀을 먹는 인연으로 혈맥이 점점 변해서 젖이 되는 것이니, 단 풀을 먹으면 젖이 달고 쓴 풀을 먹으면 젖 맛이 쓰다. 설산에 비이(肥膩)라는 풀이 있는데, 소가 그 풀을 먹으면 순전한 제호가 생겨서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검은 빛이 없다. 곡식이나 풀의 인연으로 젖의
빛깔과 맛이 다른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명(明)과 무명의 업인 인연으로 두 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무명이 달라지면 변하여서 명이 되는 것이며, 모든 법의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도 그와 같아서 두 가지 모양이 없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젖 속에 타락이 있다는 이치는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특징이 있지만, 너무 미세하여 보지 못한다면 어찌 젖의 인연으로 타락이 난다고 말하겠습니까? 무슨 법이든지 본래 없던 것을 난다고 말하는데, 이미 있는 것이면 어찌 난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일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의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면 온갖 풀 가운데도 젖이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이 젖 가운데도 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없다면 어찌하여 젖으로 인하여서 타락이 생기는 것입니까? 법이 본래 없었는데 뒤에 생긴다고 하면 젖 가운데서 왜 풀은 나지 않습니까?”
“선남자야,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다른 데서 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만일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있다면 어찌하여 그 자체와 맛이 각각 다르겠느냐?
그러므로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없다면 젖 속에 어찌하여 토끼의 뿔은 나지 않겠느냐? 젖 속에 독약을 넣으면 타락이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므로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타락이 다른 데서 난다면, 어찌하여 물에서는 타락이 생기지 않느냐? 그러므로 타락이 다른 데서 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선남자야, 이 소가 풀을 먹은 인연으로 피가 변하여 하얗게 된다. 그리고 풀과 피가 없어지고 중생의 복력이 변하여 젖이 된다.
젖이 비록 풀과 피로부터 나오지만 두 가지에서 난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인연으로부터 난다고 하는 것이며, 타락으로부터 제호에 이르는 것도 그와 같다. 이러한 이치로 소의 맛[牛味]이라 하는 것이다. 젖이 없어지는 인연으로 타락이 되니, 어떠한 인연인가? 괴는[酢] 것과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다는 것이며 나아가 제호가 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젖 가운데 반드시 타락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다른 데서 난다면 젖을 떠나고 있게 되는 것이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선남자야, 명과 무명도 그와 같아서 만일 번뇌의 결박과 함께하면 무명이라 하고, 모든 선한 법과 함께하면 명이라 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 모양이 없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먼저 말하기를 ‘설산에 비이(肥膩)라는 풀이 있는데 소가 먹으면 제호가 된다’고 한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중생이 박복하여 그 풀을 보지 못하듯이, 불성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덮여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바닷물이 비록 한결같이 짜지만 그 속에도 젖과 같이 훌륭한 물이 있으며, 설산이 비록 여러 가지 공덕으로 많은 약초가 나지만 독한 풀도 있듯이 중생의 몸도 그러하다.
비록 독사 같은 4대의 종자가 있지만 그 가운데도 묘한 약이 있으니
곧 불성이다. 이는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며 다만 번뇌에 덮였으므로 찰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들 누구나 번뇌를 끊기만 하면 불성을 보아 위없는 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마치 허공에서 번개와 우레가 구름을 일으키면 모든 코끼리의 어금니에 꽃이 생기고, 우레가 없으면 꽃이 생기지도 않고 이름도 없듯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에 덮였으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생은 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 대반열반이란 미묘한 경전을 듣기만하면 불성을 보게 되는 것이 코끼리 어금니의 꽃과 같으며, 비록 다른 경전의 온갖 삼매를 듣더라도 이 경을 듣지 못하면 여래의 미묘한 모양을 알지 못하니, 마치 우레가 없을 때에는 코끼리 어금니의 꽃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경을 들으면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의 불성을 알게 된다. 우레가 있을 때에는 코끼리 어금니의 꽃을 보게 되듯이, 이 경을 들으면 한량없는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이치로 『대반열반경』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고 말한다. 법신을 기르는 것이, 우레가 있을 때에 코끼리의 어금니 위에 꽃과 같으며, 이러한 큰 이치를 기르는 것이므로 대반열반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이 미묘한 『대반열반경』을 익히는 이는 능히 부처님 은혜를 갚을 것이며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불성은 깊고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우니,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참으로 그러하다. 너의 찬탄이 나의 말을 어기지 않는구나.”
“세존이시여, 불성은 어찌하여 깊고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까?”
“선남자야, 여러 소경들이 눈을 치료하려고 용한 의사에게 찾아갔다. 의사가 쇠 젓가락[金錍]으로 눈의 막을 째고 한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보이느냐고 물었다. 소경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다시 두 가락 또 세 가락을 들어 보이니 그때서야 조금 보인다고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여래가 아직 말씀하시지 않았을 때는 그와 같다. 한량없는 보살들이 모든 바라밀과 나아가 10주(住)를 구족하게 행하더라도 불성을 보지 못하다가 여래가 이 경을 말한 뒤에야 조금 보았다. 보살마하살들이 보고 나서 모두 이렇게 말한다.
‘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우리가 한량없는 생사에 헤매면서 항상 내가 없다는 소견에 미혹되었습니다.’
선남자야, 이와 같이 보살이 지위가 10지에 올라서도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문ㆍ연각들이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
또한 선남자야, 마치 허공에 기러기를 쳐다볼 때에 허공인지 기러기인지 모르다가 자세하게 보고야 어렴풋이 보이듯이,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다. 하물며 성문ㆍ연각들이 볼 수 있겠느냐?
선남자야, 술 취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려 할 때에 어렴풋이 길을 짐작할 수 있듯이,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목마른 사람이 넓은 벌판에 여행할 때에, 급하게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나무숲에 흰 학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가 나무인지 물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세히 보고서야 흰 학과 나무숲을 알아보듯이, 선남자야,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백천 유순쯤 먼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멀리 큰 배의 망루[樓櫓]를 바라보고
망루인가 허공인가 의심하다가, 오래오래 보고나서야 비로소 결정한 마음이 생겨 망루인 줄을 알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왕자가 허약한 몸으로 밤이 새도록 놀다가 이튿날 새벽에 모든 것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매우 분명하지 못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벼슬하는 신하가 나라 일에 골몰하다가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에 번개 빛이 잠깐 번쩍 하였다. 그때 소떼를 보고, 소떼인지 구름인지 집인지 망설이다가 오랫동안 보고서야 소인 줄을 짐작하나 오히려 분명히 결정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면서도 분명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와 같다.
또 선남자야, 계행을 지키는 비구가 벌레 없는 물을 보면서도 벌레 비슷한 모양을 보고 꾸물꾸물하는 것이 벌레인가 티끌인가 망설이다가 오래오래 보고서 비록 티끌인 줄을 짐작하지만 오히려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분명하지 못하다.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어스름한 밤에 멀리 있는 아이를 보고 소인지 사람인지 새인지 망설이다가 오래오래 보고는 어린 아이인 줄을 짐작하지만, 오히려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분명하지 못하다.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어스름한 밤에 보살의 화상을 보고 보살의 화상인가 자재천의 화상인가 대범천의 화상으로서 옷이 퇴색되었는가 생각하다가 오래오래 보고는 비록
보살의 화상인 줄 짐작하지만 그래도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그리 분명하지 못하다.
선남자야, 불성이 이렇게 깊고 아득하여 보기 어려운 것이니 부처님만이 보는 것이며,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수 없다. 선남자야, 지혜로운 이가 이렇게 분별하여서 여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성품이 이렇게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면 어떻게 육안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도 2승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경전을 따라서 믿음으로 아는 것같이, 선남자야, 성문과 연각이 이런 『대반열반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몸에 여래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대반열반경』을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불성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며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수 없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인이 아닌 범부들은 중생의 성품이 있으니 모두 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어떤 두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되었는데, 하나는 왕자이며 하나는 빈천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왕래하였는데, 그때 왕자에게 훌륭하고 기묘한 칼이 있는 것을 보고 빈천한 사람이 탐을 내었다.
그 뒤에 왕자는 그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갔다. 빈천한 사람이 다른 집에서 자다가 ‘칼, 칼’ 하면서 잠꼬대하는 것을 곁에 사람이 듣고 그 사람을 끌고 임금에게 갔더니, 왕이 물었다.
‘네가 칼, 칼 하였으니 그 칼을 내게 보여라.’

그 사람이 전후 사실을 갖추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지금 신의 몸을 도륙하고 손발을 찢더라도 칼은 얻을 수 없습니다. 신이 왕자와 친했기 때문에 함께 다니면서 눈으로 칼을 보았으나 감히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가졌을 리가 있겠습니까?’
왕이 또 물었다.
‘네가 본 칼은 모양이 어떠했느냐?’
빈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신이 본 것은 양[羖羊]의 뿔과 같았습니다.’
왕이 듣고는 흔쾌하게 웃고 말하였다.
‘너는 지금 가고 싶은 데로 가고 무서워하지 마라. 나의 광에는 그런 칼이 없는데, 더구나 왕자에게서 보았겠느냐?’
그 뒤에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그런 칼을 본 일이 있느냐?’
그런데 말을 마치고는 얼마 후 죽어버렸다. 이윽고 다른 아들을 세워 왕위를 잇게 하였더니, 그 왕이 또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궐내의 광에서 그 칼을 본 일이 있는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왕이 다시 그 모양이 어떻더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양의 뿔과 같았습니다.’
왕은 나의 광에 그런 칼이 있을 리가 있느냐고 하였다. 이렇게 차례차례로 네 임금이 모두 검사하여 보았으나 그런 칼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 지 얼마 후에 도망하였던 왕자가 다른 나라로부터 다시 본국에 돌아와서 왕이 되었다.
왕이 된 뒤에 다시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그 칼을 보았느냐?’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신들은 모두 보았습니다.’
왕은 또 그 모양이 어떻더냐고 물었다.
‘대왕이시여, 빛이 깨끗하여 우발라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양이 양의 뿔과 같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빛이 붉어서 불덩어리 같았습니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검은 뱀과 같았습니다.’
그때 임금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모두 내 칼의 참 모양을 보지 못하였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 세상에 나서 나의 진실한 모양을 설명하고, 말하고는 곧 떠나간 것이 마치 왕자가 훌륭한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한 것과 같다. 어리석은 범부들이 ‘모든 것이 내가 있다,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빈천한 사람이 다른 집에서 자다가 ‘칼 칼’ 하고 잠꼬대하던 것과 같다.
성문과 연각이 중생들에게 묻기를 ‘내가 어떤 모양인가?’ 하니 어떤 이는 ‘나의 모양이 엄지손가락 같다’ 하고, 혹은 ‘쌀 같다’ 하며, 혹은 피의 씨[稗子] 같다고 하며, 어떤 이는 나의 모양이 마음속에 있는데 해처럼 찬란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나의 모양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신하들이 칼의 모양을 모르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이렇게 나를 말하는 것을, 범부들이 알지 못하고 가지각색으로 분별을 내어 나라는 모양을 짐작하여 보는 것은 마치 칼의 모양이 양의 뿔 같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범부들이 차례차례로 계속하여 잘못된 소견을 일으키므로 그런 소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여래가 일부러 내가 없다고 말하였으니, 마치 왕자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광에는 그런 칼이 없었다’고 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오늘 여래가 말하는 참 나는 이름이 불성이니, 이러한 불성은 나의 불법 중에서 훌륭한 칼과 같다. 선남자야, 만일 범부로서 옳게 말하는 이는 곧 위없는 불법을 따르는 이며, 잘 분별하여 이것을 따라서 말하는 이는 곧 보살의 모양인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지각색 다른 언론과 주술과 말과 글자는 모두 부처님 말씀하신 것이며 외도가 말한 것이 아니다.”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글자의 근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처음에 반쪽 글자[半字]를 말하여 근본을 삼아 가지고 모든 언론과 주술과 문장과 5음의 실제 법을 기록하게 하였으므로,
범부들은 이 글자의 근본을 배운 뒤에야 바른 법인지 잘못된 법인지를 알 것이다.”
“세존이시여, 글자라는 것은 그 뜻이 어떠합니까?”
“선남자야, 열네 가지 음을 글자의 뜻이라 이름하고, 그 글자의 뜻을 열반이라 한다. 그것은 항상한 것이므로 흘러 변하지 않는다. 만일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함이 없는 것이며, 다함이 없는 것은 곧 여래의 금강 같은 몸이다. 이 열네 가지 음을 글자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阿, a:짧은 음의 아)는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삼보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금강과 같다. 또 ‘아’는 흐르지 않기 때문이니 흐르지 않는 것은 여래이다. 여래의 아홉 구멍에는 흐를 것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으며 또 아홉 구멍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것은 항상하고 항상함은 곧 여래이다. 여래는 짓는 것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는다. 또 ‘아’는 공덕이라 하니 공덕은 곧 삼보이다. 그러므로 ‘아’라고 한다.
아(阿, ā: 장음의 아)는 이름이 아사리(阿闍梨)이다. 아사리란 뜻은 무엇인가? 세간에서 성인이라 하니, 어째서 성인이라 하는가? 성인은 집착이 없으니 욕심이 없어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에 청정이라고도 한다. 3유(有)에서 흐르는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들을 제도하므로 성인이라 한다.
또 ‘아’는 제도(制度)라고 하니, 깨끗한 계행을 지키고 위의를 잘 차린다. 또 ‘아’는 성인을 의지함이라 하니, 위의와 거동을 배우고 삼보를 공양하고 공경하여 예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대승을 배우는 것이다. 선남자ㆍ선여인으로 계율을 잘 지키는 이와 보살마하살을 성인이라 한다. 또 ‘아’는 가르침이라 이름하니, ‘너희들은 이런 일은 하고
이런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위의답지 못한 일을 못하게 하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아’라고 한다.
이[億, i:남본에서처럼 짧은 음의 伊로 봐야 한다]는 곧 부처님 법이다. 범행(梵行)이 넓고 크고 깨끗하여 때가 없음이 보름달 같다. 너희들은 이런 일은 하고 이런 일은 하지 말며, 이것은 옳은 것이며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며 이것은 마군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i)라고 이름한다.
이(伊, ī:장음의 이)는 부처님 법이 미묘하고 깊어서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자재천과 대범천왕의 법을 자재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만일 이것을 보호하면 법을 보호한다고 하는 것이다. 또 자재라고 함은 세상을 보호하는 사천왕[四護世]이라 하니, 이 네 가지 자재는 『대반열반경』을 거두어 보호하며, 또 자재하게 선전하고 연설한다. 또 ‘이’는 자재하기 위하여 말하니, 그것은 방등경전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또 ‘이’는 질투를 끊으려는 것이니, 돌피를 뽑는 것 같아서 모두 길상한 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이’라고 한다.
우[郁, u:남본에서처럼 짧은 음의 憂로 봐야 한다]는 모든 경전 중에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자꾸 늘어나는 것이니 곧 대열반이다. 또 ‘우’는 여래의 성품이어서 성문이나 연각은 듣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북쪽의 울단월이 가장 훌륭하듯이, 보살이 이 경을 들어 가지면 모든 중생에게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므로 ‘우’라고 한다.
우(憂, ū:긴 음의 우)는 마치 우유가 모든 맛 가운데 뛰어난 것이듯 여래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 되며, 만일 비방한다면 이 사람은 소와 다를 것이 없다. 또 ‘우’는 이 사람을 지혜와 바른 생각이 없는
[無慧正念] 이라 이름하며,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비방하면 이 사람은 매우 불쌍한 것이다.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떠나고 내가 없다는 법을 말하므로 우(ū)라 한다.
에(, e)는 부처님들 법의 성품인 열반이므로 ‘에’라고 한다.
아이(野, ai)는 여래라는 뜻이다. 또 ‘아이’는 여래의 나아가고 멈추고 굽히고 펴는 동작으로서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아이’라고 한다.
오(烏, o)는 번뇌란 뜻이다. 번뇌는 루(漏)라고 하는 것이니, 여래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었다. 그래서 ‘오’라고 하는 것이다.
아우(炮, au)는 대승이란 뜻이다. 14음에서 이것이 나중이 되듯이 대승 경전도 이와 같아서, 모든 경과 논에서 가장 나중이므로 ‘아우’라고 한다.
암(菴, aṁ)은 모든 부정한 것을 막는 것이다. 부처님 법에서는 온갖 금은과 보물을 버리므로 ‘암’이라 한다.
아(阿, aḥ)는 훌륭한 법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은 모든 경 가운데 가장 훌륭하므로 ‘아’라고 한다.
카(迦, ka)는 모든 중생들에게 대자대비를 일으키는 것이다. 아들이란 생각 내기를 라후라와 같이하여, 묘하고 선한 뜻을 지으므로 ‘카’라고 한다.
커(佉, kha)는 착하지 않은 벗이라 한다. 착하지 않은 벗은 잡되고 더러움을 이르며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믿지 않으므로 ‘커’라고 한다.
가(伽, ga)는 장(藏)이라 이름한다. 장은 여래의 비밀한 장을 말한다.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가’라고 한다.
가(恒, gha:무거운 음의 가)는 여래의 항상한 음이다. 무엇을 여래의 항상한 음이라 하는가?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으므로 ‘가’라고 한다.
나(我, na)는 온갖 행을 파괴하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아’라고 한다.
차(遮, ca)는 곧 닦는다는 뜻이다. 모든 중생들을 조복하는 것을 닦는다 하며 그러므로 ‘차’라고 한다.
차(車, cha)는 여래가 모든 중생들을 가려 주는 것이다. 비유하면 큰 일산과 같으므로 ‘차’라고 한다.
자(闍, ja)는 곧 바른 해탈로서 늙는 모양이 없으므로 ‘자’라고 한다.
자(膳, jha:무거운 음의 자)는 번뇌가 성한 것이다. 빽빽한 숲과 같으므로 ‘자’라고 한다.
나(喏, ña)는 지혜라는 뜻이다. 참된 법의 성품을 알므로‘나’라고 한다.
타(吒, ṭa)는 염부제에서 몸을 반쯤 나타내고 법을 연설하는 것이다. 반달과 같으므로 ‘타’라고 한다.
타(佗,ṭha)는 법신이 구족한 것이다. 보름달과 같으므로 ‘타’라고 한다.
다(茶, ḍa)는 어리석은 승려이다. 항상함과 무상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다’라고 한다.
다(祖, ḍha:무거운 음의 다)는 스승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숫양[羝羊]과 같으므로 ‘다’라고 한다.
나(拏, ṇa)는 성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외도와 같으므로 ‘나’라고 한다.
타(多, ta)는 여래가 저기에서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놀라고 두려움을 떠나라.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말하겠다’라고 하므로 ‘타’라고 한다.
타(他, tha)는 어리석다는 뜻이다. 중생들이 생사에서 헤매기를 자기의 실로 몸을 얽는 누에와 같으므로 ‘타’라고 한다.
다(陀, da)는 크게 베풂이다. 이른바 대승이다. 그러므로 ‘다’라고 한다.
다(彈, dha:무거운 음의 다)는 공덕을 칭찬함이다. 이른바 삼보가 수미산처럼 높고 가파르고 커서 뒤바뀌지 않으므로 ‘다’라고 한다.
나(那, na)는 삼보가 편안히 머물러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문지방과 같으므로 ‘나’라고 한다.
파(波, pa)는 뒤바뀌었다는 뜻이다. 만일 삼보가 모두 없어졌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스스로 의혹하는 것이므로 ‘파’라고 한다.
파(頗, pha)는 세간의 재앙이다. 만일 세간의 재앙이 일어날 때에는 삼보도 끝난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성인의 뜻을 어기는 것이므로 ‘파’라고 한다.
바(婆, ba)는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力]을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라고 한다.
바(滼, bha:무거운 음의 바)는 무거운 짐이다. 위없는 바른 법을 짊어질 수 있으며 이 사람이 대보살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라고 한다.
마(摩, ma)는 보살들의 엄숙한 제도(制度)이다. 대승의 대반열반이므로 ‘마’라고 한다.
야( 蛇, ya)는 보살들이 간 데마다 중생들을 위하여 대승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야’라고 한다.
라(囉, ra)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진실한 법을 말하므로 ‘라’라고 한다.
라(羅, la:가벼운 음의 라)는 성문승은 흔들리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대승은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문승을 버리고 위없는 대승을 부지런히 닦으므로 ‘라’라고 한다.
바(和, va)는 여래 세존께서 중생들에게 큰 법의 비를 내림이라 하니, 세간의 주문ㆍ술법의 경전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바’라고 한다.
사(奢, śa)는 세 가지 화살을 멀리 떠남이다. 그러므로 ‘사’라고 한다.
사(沙, sa)는 구족하다는 뜻이다.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곧 온갖 대승 경전을 듣고 지니는 것이므로 ‘사’라고 한다.
사(娑, ṣa)는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마음을 즐겁게 함이다. 그러므로 ‘사’라고 한다.
하(呵, ha)는 마음이 즐거움이다. 신기하게 세존께서는 온갖 행을 떠났고, 특이하게 여래께서는 반열반에 드시므로 ‘하’라고 한다.
람(茶, ḷam)은 마군이란 뜻이다. 한량없는 마군들도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깨뜨리지 못하므로 ‘람’이라고 하며, 또 ‘람’은
일부러 세상을 따라서 부모와 처자를 두는 것이므로 ‘람’이라고 한다.
르(魯, r)ㆍ르(流, ṛ)ㆍ르(廬, ḷ)ㆍ르(樓, ī) 이 네 글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ㆍ교법ㆍ승가와 대법(對法)이다. 대법이라 함은 조바달(調婆達)이 일부러 승단을 파괴하며 가지가지 형상을 변화시킴과 같은 것이다. 이는 계율을 제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지혜 있는 이는 그렇게 알고 두려운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을 따르는 행이다. 그러므로 르(魯)ㆍ르(流)ㆍ르(廬)ㆍ르(樓)라고 한다.
숨을 들이키는 소리[吸氣]는 혀의 뿌리가 코를 따르는 소리이다. 긴 소리ㆍ 짧은 소리ㆍ뛰어난 소리 따위로 음에 따라서 뜻을 해석하는 것이 모두 혀와 이로 인하여 차별이 있다. 이런 글자들이 중생의 구업(口業)을 깨끗하게 한다. 중생의 불성은 그렇지 않아서 문자를 빌린 뒤에야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품이 본래 깨끗한 것이므로 비록 5음ㆍ6입ㆍ18계에 있더라도 5음ㆍ6입ㆍ18계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모두 귀의하여야 하며, 보살들도 불성의 인연으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쪽 글자[半]가 모든 경서(經書)와 기론(記論)과 문장의 근본이 된다.
또 반쪽 글자의 뜻은 모든 번뇌를 말하는 근본이므로 반쪽 글자라 하고, 완전한 글자는 모든 선한 법을 말하는 근본이다. 마치 세상에서 나쁜 짓 하는 이를 반쪽 사람이라 하고, 선한 일 하는 이를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경서와 기론은 다 반쪽 글자로 근본을 삼는다.
만일 여래와 바른 해탈도 반쪽 글자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자를 여읜 까닭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온갖 법에 거리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참으로 해탈을 얻었다.
어떤 것을 가리켜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하는가?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반쪽 글자를 없앨 줄을 안다면 이는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할 것이고, 만일 반쪽 글자만을 따른다면 이는 여래의 성품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것을 글자가 없는 뜻이라 하는가? 선하지 못한 법을 가까이 하여 닦는 이는 글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또 글자가 없는 것은 비록 선한 법을 가까이 하여 닦으면서도 여래의 항상하고 무상함과, 늘 있고 늘 있지 않음과, 법보ㆍ승보와 계율과 잘못된 계율과, 경전과 잘못된 경전과, 마군의 말과 부처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별할 줄을 모르는 이는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른다고 한다. 내가 지금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하였으니,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반쪽 글자를 여의고 완전한 글자를 잘 알아야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마땅히 글자의 수를 잘 배우겠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위없는 스승을 만나서 여래의 은근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바른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배워야 한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새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린제(迦隣提)이며 다른 하나는 원앙이다. 함께 다니면서 서로 떠나지 않으니, 괴롭고 무상하고 내[我]가 없는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떠나지 못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괴롭고 무상하고 내가 없는 법이 저 원앙과 가린제새와 같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다른 법이 괴로움이며, 다른 법이 낙이며,
다른 법이 항상함이며, 다른 법이 무상함이며, 다른 법이 나이며,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다. 마치 벼가 삼이나 보리와 다르고, 삼과 보리는 또 콩ㆍ조ㆍ감자와 다른 것과 같다. 이런 여러 가지가 움트고 싹 나고 나아가 꽃과 잎이 모두 무상한데 열매가 익어 사람이 사용할 때에는 항상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품이 진실한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이런 것들이 만일 항상하다면 여래와 같습니까?”
“선남자야,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왜냐하면 만일 여래가 수미산과 같다 하더라도, 겁이 무너질 때에 수미산은 무너지지만 여래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선남자야, 너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마라. 모든 법이 열반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항상한 것이 없나니, 세간 법으로 말하기 때문에 열매가 항상하다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을 듣기만 하면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인간과 천인을 이익 되게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암라(菴羅)나무가 꽃이 처음 필 때에는 무상하다고 하지만 열매가 익어서 이익 됨이 많으면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때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을 듣고 나면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곧 모든 인간과 천인을 이익 되게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금의 광석이 녹을 때에는 무상한 것이며, 녹아서 순금이 되면 이로움이 많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한다. 선남자야, 그와 같이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때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인간과 천인을 이익 되게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참깨가 기름을 짜기 전에는 무상하다 하지만, 짜서 기름이 되면 이익 됨이 많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때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만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인간과 천인을 이익 되게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여러 가지 흐르는 물이 모두 바다로 가는 것과 같이, 모든 경전의 선정 삼매를 닦으면 모두 대승 『대열반경』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끝까지 불성이 있음을 잘 말하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다른 법이 항상하고 다른 법이 무상하며 나아가 내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근심하고 슬퍼하는 독한 살을 이미 떠났습니다. 근심하고 슬퍼함을 하늘이라 하지만 여래는 하늘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사람이라 하지만 여래는 사람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25유라 하지만 여래는 25유가 아니어서, 여래는 근심이나 슬퍼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선남자야, 무상천(無想天)은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수명이 없을 것이며, 수명이 없으면 어찌하여 5음ㆍ6입ㆍ18계가 있겠는가? 이러한 이치로 무상천의 수명이 머무는 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선남자야, 마치 나무의 신[樹神]이 나무를 의지하여 있지만 가지에 의지하거나 마디에 의지하거나 줄기에 의지하거나 잎에 의지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비록 일정한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무상천의 수명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깊고 깊어 알기 어려운 것이다.
여래는 진실로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뇌가 없지만, 중생에게 대자비심을 일으켜 근심ㆍ슬픔이 있는 듯이 나타내어 중생들 보기를 라후라처럼 한다. 또 선남자야, 무상천들이 가진 수명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며 다른 이는 미칠 수 없다. 나아가 비상비비상천도 그와 같다.
가섭아, 여래의 성품은 청정하고 물들지 않는 것이 화신(化身)과 같은데, 어찌하여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에게 근심ㆍ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부처님 법을 널리 선포하며, 없다고 하면 어떻게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고 하겠느냐? 만일 라후라처럼 평등하게 보지 않는다면 이런 말은 곧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선남자야, 부처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법도 헤아릴 수 없으며 중생의 불성도 헤아릴 수 없으며 무상천의 수명도 헤아릴 수 없으니, 여래가 근심이 있는지 근심이 없는지는 부처님의 경계이며 성문이나
연각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허공에는 집이나 티끌이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만일 집이 허공을 인하여 머물지 않는다고 하면 그런 경우는 옳지 않다. 이런 이치로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허공에 머물지 않았다 할 수 없으니 범부들은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하지만 허공은 실로 머물 데가 없다. 왜냐하면 성품이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마음도 그와 같아서 5음ㆍ6입ㆍ18계에 머물렀다거나 머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무상천의 수명도 그러하고 여래의 근심과 슬픔도 그러하니, 만일 근심과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고 말하며, 만일 근심과 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성품이 허공과 같다고 말하겠느냐?
선남자야, 마치 환술쟁이가 가지각색 궁전을 변화시켜 만들고 죽이고 기르고 얽매고 놓아주며, 또 금ㆍ은ㆍ폐유리ㆍ보물과 숲과 나무들을 만들어도 모두 참된 성품이 없으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세상을 따라서 근심 슬픔을 나타내지만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미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는데 어찌하여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었으니 이것이 무상하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 슬픔이 있는 것이며,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과 슬픔이 없는 줄을 알겠지만, 여래가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알 사람이 없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하품(下品)인 사람은 하품 법만 알고 중품(中品)ㆍ상품(上品) 법은 모르며, 중품 사람은 중품만 알고 상품은 알지 못하지만 상품 사람은 상품도 알고 중품ㆍ하품도 아는 것과 같이 성문ㆍ연각도 그와 같아서 자기의 처지만 알고 있다. 그러나 여래는 그렇지 않아서 자기의 처지와 다른 이의
처지까지 알기 때문에 여래를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환술 같은 변화를 나타내어 세상을 따르는 것을 범부의 육안으로는 진실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래의 걸림 없고 위없는 지혜를 모두 알고자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다른 법은 내가 있고 다른 법은 내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원앙과 가린제의 성품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부처님 법은 마치 원앙이 함께 행하는 것과 같다. 가린제와 원앙은 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높은 곳을 가려서 새끼를 두고 기르며 그런 뒤에야 본래대로 편안히 노닌다.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머물게 함이, 저 원앙이나 가린제가 높은 곳을 가려서 새끼를 두는 것과 같다.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할 일을 마치게 하고 대반열반에 들어간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다른 법은 괴롭고 다른 법은 즐거움이라고 한다. 모든 행은 괴로움이고 열반은 즐거움이니 가장 미묘하여 모든 행을 무너뜨리는 까닭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으로서 열반을 얻는 이를 제일 즐거움이라 합니까?”
“선남자야, 내가 말한 것같이 모든 행이 화합한 것을 늙고 죽음이라 한다.”

삼가고 방일하지 마라.
이런 것이 감로이다.
방일하고 근신하지 않으면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방일하지 않은 이는
죽지 않을 곳 얻게 되고
방일하게 노는 이는
죽을 길만 가게 되리.

방일함은 함이 없는 법이며, 함이 있는 법은 제일 괴로운 것이다. 방일하지 않음은 열반이며 열반은 감로라 하여 가장 큰 즐거움이다. 모든 행을 따라감은
죽는 것이니 가장 큰 괴로움을 받고, 열반에 나아가면 죽지 않는 것이니 가장 훌륭한 낙을 받는다. 만일 방일하지 않으면 비록 모든 행을 모으더라도 이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죽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몸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방일이며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음인가? 성인이 아닌 범부는 방일이라 하니 항상 죽는 법이며, 세상에서 뛰어난 성인은 방일하지 않으므로 늙고 죽음이 없다. 왜냐하면 제일가는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에 드는 까닭이다. 이런 이치로 다른 법이 괴로움이며 다른 법이 즐거움이며, 다른 법이 나이고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라 하였다.
사람이 땅에서 공중을 쳐다볼 때 새가 날아간 자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중생도 그러하여 하늘눈이 없고 번뇌 속에 있어서 스스로 여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의 비밀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하늘눈이 없는 자는 참 나를 알지 못하여 제멋대로 나라는 것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번뇌로 말미암아 짓는, 함이 있는 것은 무상하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법은 항상되고 다른 법은 항상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정진하는 용맹한 사람
산꼭대기에 있게 되면
평지나 넓은 들에 있는
범부들을 항상 보게 되리.

위가 없이 훌륭한
지혜 궁전 올라가면
제 근심을 소멸하고
중생 근심도 보게 되리.

여래는 한량없는 번뇌를 모두 끊고 지혜의 산에 있으면서, 중생들이 한량없는 번뇌 속에 항상 있는 것을 본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게송으로 말씀하신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열반에 들어가면 근심도 기쁨도 없는데, 어찌하여 지혜의 궁전에 올라가며, 또 어떻게 산 위에 있으면서 중생을 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혜의 궁전이라 함은
열반을 말하는 것이다. 근심이 없는 이는 여래이며, 근심이 있는 이는 범부이다. 범부는 근심하는 것이므로 여래는 근심이 없다. 수미산 꼭대기는 바른 해탈을 말하고, 정진함은 수미산이 흔들림이 없음에 비유된다. 평지는 함이 있는 행이니, 모든 범부들이 평지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행을 짓는다.
지혜란 것은 바른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니, 유(有)를 여의고 항상 머물기 때문에 여래라고 한다. 여래는 한량없는 중생들이 항상 모든 유의 독한 살에 맞았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여래는 근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 하면 등정각(等正覺)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가섭아, 모두 인연이 있는 것이니, 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이 있는 곳을 따라서 그 가운데 여래가 태어나는 것이며 비록 태어나더라도 실제로는 나는 일이 없다. 그런 까닭에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가린제나 원앙 등의 새와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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