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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05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6권

by Kay/케이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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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6

 

대반열반경 제6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4. 여래성품③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반열반 가운데 네 종류 사람이 바른 법을 수호하고 바른 법을 세우며 바른 법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겨, 세간의 의지가 되고 천상과 세간 사람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고도 번뇌의 성품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이 첫째이며, 수다원(須陀洹)을 얻은 사람과 사다함(斯陀含)을 얻은 사람은 둘째이며, 아나함을 얻은 사람이 셋째이며, 아라한을 얻은 사람이 넷째이다. 이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간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어떤 이를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이라 하는가?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위의를 갖추어 바른 법을 세우며, 부처님께 들은 것을 글과 뜻을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분별하고 연설한다. 탐욕이 없는 것은 도이고 탐욕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라 하며, 큰 사람이 깨달을 여덟 가지 법을 자세히 말한다. 죄를 지은 이에게는 죄를 털어 놓고 참회하게 하고 제거하여 소멸하게 하며, 보살의 방편으로 행하는 비밀한 법을 잘 안다. 이는 범부이고 제8인(人:忍)이 아니며, 제8인은 범부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하며, 부처라고는 하지 않는다.
둘째는 수다원과 사다함이니, 바른 법을 얻으면 그대로 받아 지니며,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말한다. 만일 법을
듣고도 쓰지 않고 받아 가지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 하인이나 부정한 물건을 쌓아 두라고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를 둘째 사람이라 하니, 이 사람이 비록 둘째 자리나 셋째 자리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이름을 보살이라 하며 수기를 받은 것이다.
셋째는 아나함이니, 아나함은 바른 법을 비방하거나 종이나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두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하거나, 외도들의 경과 논을 받아 가지거나, 객진(客塵) 번뇌에 장애가 되거나, 모든 업의 번뇌에 덮여 있으며, 여래의 진실한 사리(舍利)를 간직하였거나, 밖의 병(病)의 해침을 당하거나, 4대 독사의 침해를 받거나, 나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옳은 것이며, 세상 법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옳지 않고 대승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옳은 것이다. 태어나는 몸에 8만의 벌레가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않고, 음욕을 영원히 떠나서 꿈에서도 부정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옳은 것이며, 임종할 때에 두려움을 낸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 아나함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음은 위에 말한 것과 같으며, 모든 허물이 영원히 오염시키지 못하고 오고 가면서 주선하므로 보살이라 이름하고, 이미 수기를 받았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것을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한다.
넷째는 아라한이니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어 무거운 짐을 버렸고, 자기의 이익을 얻어 할 일을 이미 마쳤고, 제10지에 머물렀으며,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지가지 빛과 몸매를 모두 나타내어 모든 장엄과 같이하여, 부처님 도를 이루려 하면
곧 이룰 수가 있다.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아라한이라 한다. 이러한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하여,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여래와 같으므로 사람 가운데 수승하며 귀의할 곳이 되는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사라경(瞿師羅經)』에서 부처님께서 구사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들이 바른 법을 파괴하려고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화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를 두루 갖추고, 둥근 광명이 한 길이며, 얼굴은 보름달처럼 원만하고 양미간의 백호상(白毫相)은 옥이나 눈보다도 희다. 이렇게 장엄하고 너에게 올 것이니 너는 잘 살펴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정하여야 하며, 깨닫고 나서는 항복받아라’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마군들이 부처님의 형상으로도 변화하는데 하물며 아라한 등의 네 가지 몸으로 변화하지 못하겠습니까? 허공에서 눕고 앉으며 왼쪽 옆구리로는 물을 내고 오른쪽 옆구리로는 불을 내며, 몸에서 불꽃과 연기 내기를 불더미같이 할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는 그 속에서 신심을 낼 수 없으며, 혹 말을 하더라도 그대로 받을 수 없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하는 말에도 의심이 있으면 그대로 받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그런 것에 있어서이겠느냐? 그러기에 잘 분별하여 좋은 일인지 좋지 못한 일인지, 할 만한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를 알고서 행하면 긴긴 밤중에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선남자야, 도둑개가 밤에 집에 들어오는 것을 그 집 하인들이 알았으면, 곧 호령하여 쫓아 보내면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도둑개가
듣고 곧 도망갈 것이다. 그대들도 오늘부터 파순을 항복시켜야 하니 파순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는 그런 형상을 꾸미지 마라. 만일 일부러 꾸민다면 다섯 가지 속박으로 너를 묶을 것이다.’
그러면 파순이 듣고 곧 달아나기를 도둑개같이 하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구사라 장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마군을 항복시키면 대반열반에 가깝게 될 터인데, 여래께서 어찌하여 이 네 종류 사람이 의지할 데라 말씀하십니까? 이 네 종류 사람이 말을 하더라도 꼭 믿을 수는 없습니다.”
“선남자야, 나의 말도 그런 뜻이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선남자야, 나는 육안(肉眼)을 가진 성문들을 위하여 마군을 항복시키라고 말한 것이며, 대승을 배우는 사람에게 말한 것이 아니다. 성문들은 천안(天眼)이 있다 하여도 육안이라 말하고, 대승을 배우는 사람은 육안이 있더라도 불안(佛眼)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이 대승 경전은 불승(佛乘)이라 하니 불승이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건장하고 용맹하면 겁약한 무리들이 와서 의지하니 용맹한 사람이 겁약한 사람을 항상 이렇게 가르친다.
‘그대들은 이렇게 활과 살을 잡으며 창으로 찌르고 갈고리로 끌어당기고 줄로 얽는 법을 배워라.’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싸움하는 일은 칼날을 밟는 것 같지만 두려운 생각을 내서는 안 된다. 천상 사람ㆍ세간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약한 줄 생각하고, 스스로는 용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용맹하지 못하면서 거짓 건장한 모양을 가장하여 활과 살과 칼 따위의 병장기로 엄숙하게 차리고 전장에 나와서 큰소리로 외치더라도,
그대들은 그 사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 사람이 그대들의 두려워함이 없는 기색을 보면 오래지 않아 물러가기를 저 도둑개같이 할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성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마왕 파순을 두려워하지 마라. 만일 파순이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너에게 오거든, 네가 견고한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마군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면 그 마군은 근심하고 불안하여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다.’
선남자야, 저 건장한 사람이 다른 이를 따라서 익히지 않듯이, 대승을 배우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깊고 비밀한 경전을 듣고 마음으로 환희하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대승을 배워 익히는 사람은 지나간 세상에서 한량없는 억 천 마군이 와서 침노하더라도 그런 것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아갈타(阿竭陀) 약을 얻으면 독사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 약의 효력을 의지하는 까닭이며, 또 모든 독기를 소멸할 수 있는 까닭이다. 대승 경전도 그와 같아서 아갈타 약이 모든 마군과 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을 항복받아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용이 흉악한 성질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려 할 때에 혹은 눈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기운을 내뿜기도 하므로, 모든 사자ㆍ호랑이ㆍ표범ㆍ늑대ㆍ이리ㆍ개 따위가 모두 공포를 느끼는 것과 같다. 이런 짐승들은 소리를 듣거나 형상을 보거나 그 몸을 건드리기만 하여도 생명을 잃게 된다. 주문을 잘하는 사람이 주문의 힘으로써 이러한 악독한 용ㆍ금시조(金翅鳥)ㆍ코끼리ㆍ사자ㆍ호랑이ㆍ
늑대 따위를 잘 길들여서 타기도 하고 몰고 다니면, 저 나쁜 짐승들이 주문하는 사람을 보기만 하여도 곧 조복된다.
성문과 연각도 그와 같아서 마왕 파순을 보고 공포를 내지만, 파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군의 짓만 한다. 대승을 배우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성문들이 마군을 무서워하여 대승에 대하여 신심을 내지 못함을 보고, 먼저 방편으로 마군을 항복받아 길들이고 조복하여 타고 다닐 수 있게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가지가지의 묘한 법을 연설하면 성문ㆍ연각들은 마군이 항복됨을 보고는 무서운 생각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대승의 훌륭한 법에 대하여 믿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고 ‘우리들도 이제부터는 이러한 바른 법에서 장애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또 선남자야, 성문과 연각은 번뇌에 대하여 공포심을 내지만 대승을 배우는 사람은 조금도 공포가 없다. 대승을 배우는 사람은 이런 힘이 있으므로 내가 예전에 말한 것은 저 성문ㆍ연각으로 하여금 마군을 조복하게 하려 함이었고, 대승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은 소멸하거나 굴복할 수 없는 것이니, 매우 기특한 일이다. 어떤 이가 듣고 받아 가지며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인 줄을 믿으면, 이런 사람은 대단히 희유하여 우담바라 꽃과 같을 것이다.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이가 이렇게 미묘한 대승 경전을 듣고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이런 사람들은 오는 세상에서 백천억겁이 지나도록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에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이 이 미묘한
대열반의 경전을 믿지 않고 비방할 것이다.”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중생들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얼마쯤 후에 이 경을 비방하며, 어떤 선한 중생이 그렇게 법을 비방하는 무리를 제도하겠습니까?”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 약 40년 동안에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다가 그 뒤에는 땅에 숨어버릴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사탕수수ㆍ멥쌀ㆍ석밀ㆍ우유ㆍ소(酥)ㆍ제호 등이 있는 데서는 그곳 사람들이 그것이 제일 좋은 음식이라 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좁쌀이나 피[稗]를 먹으면서도 자기네가 먹는 것이 제일 좋은 음식이라고 할 것이니 이 박복한 사람은 나쁜 업보를 받는 탓이다.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좁쌀이나 돌피는 이름도 듣지 못하고 멥쌀ㆍ사탕수수ㆍ석밀ㆍ제호만 먹을 것이니, 이 미묘한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그와 같아서 박복한 둔근(鈍根)들은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치 박복한 사람이 멥쌀이나 석밀을 싫어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2승들도 그와 같아서 위없는 『대반열반경』을 싫어할 것이며, 어떤 중생이 이 경전 듣기를 좋아하며 듣고 환희하여 비방하지 않는 이는 복 있는 사람이 멥쌀을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임금이 험악한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 사탕수수ㆍ멥쌀ㆍ석밀이 있지만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쌓아 두고 아끼면서 먹지 않고, 좁쌀과 돌피 쌀만 먹었다. 다른 나라 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딱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여러 수레에 멥쌀과 사탕수수 따위를 실어 보내니, 그 임금이 받아서 온 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하였다. 백성들이 그것을 먹고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저 나라 임금의 덕분으로 우리들이 훌륭한 음식을 먹었다’고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 네 종류 사람도 그와 같다. 위없이 큰 법의 대장이 되었는데, 이 네 종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다른 지방의 한량없는 보살들을 보니, 비록 대승 경전을 배우고 제 손으로 쓰기도 하고 남을 시켜 쓰기도 하지만 이양(利養)을 위하고 명예를 위하고 법을 알기 위하고 의지하기 위하고 다른 경을 사기 위하여 하는 일이어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널리 선전하지 못하므로 이 미묘한 경전을 그 지방으로 보내어 보살들에게 주고, 그들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보리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 보살들이 이 경을 얻고 곧 다른 이들에게 널리 연설하여 한량없는 대중으로 하여금 대승법의 맛을 받게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한 보살의 힘으로 듣지 못하던 경전을 듣게 한 것으로서 저 나라 사람들이 임금의 힘으로 훌륭한 음식을 먹게 된 일과 같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열반의 경전이 유전하는 데는 그곳이 곧 금강이며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금강과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이 경을 듣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그 소원을 모두 성취하게 되어 오늘날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희 비구들은 잘 받아 지녀라. 어떤 중생이나 이러한 경전을 듣지 못하는 이는 매우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러한 대승 경전의 깊은 이치를 받아 지닐 수 없는 까닭이다.”

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열반하신 후 40년 동안 이 대승 『대열반경』이 염부제에 유전되다가 그 뒤에 땅에 묻힌다면, 그런 뒤 얼마나 있다가 다시 나오게 됩니까?”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정법시대가 80년이 남았으면 먼저 40년 동안에 이 경전이 염부제에서 다시 법의 비를 내릴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런 경전을 정법이 멸하려는 때, 계율이 무너지는 때, 잘못된 법이 성할 때, 법다운 중생이 없는 때에 누가 능히 들어 받고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워서 통달하게 하며, 이롭게 하며 공양하고 공경하고 쓰고 해설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셔서 분별하여 말씀하셔서, 보살들로 하여금 듣고 받아 지니고, 지니고는 우유약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네가 이러한 이치를 잘 물었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희련(熙連)강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런 경전을 받아 지니고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1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 경전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이를 위하여 널리 연설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2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바로 이해하고 믿고 좋아하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도 다른 이를 위하여 널리 연설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3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널리 연설하면서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4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16분 중에서 1분의 뜻을 연설할 것이니, 비록 연설하더라도 구족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5항하의 모래 수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며, 다른 이를 위하여 16분 중에서 8분의 뜻을 연설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6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16분 중에서 12분의 뜻을 연설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7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16분 중에서 14분의 뜻을 연설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여덟 항하의 모래 수 부처님 계신 데서 보리심을 내었으면, 이 나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경전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를 권하여 쓰게 하며, 자기가 받들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서 받들게 하며
읽고 외우고 통달하고 옹호하며 굳게 유지하게 할 것이다.
세간의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서 이 경을 공양하고 다른 이를 권하여 공양하게 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읽고 외우고 예배하는 일도 이와 같이 할 것이며, 구족하게 해석하여 뜻을 다할 것이다.
곧 여래는 항상 머물러 변역하지 않고 필경까지 안락하다는 것이며, 중생마다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하고 여래의 모든 법장을 잘 알며,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하고 위없이 바른 법을 세우며 받아 지니고 옹호할 것이다. 만일 처음으로 우유약심을 내는 이는 오는 세상에서 이러한 바른 법을 세우고 받아 지니고 옹호할 것이니, 네가 오는 세상에서 법을 수호할 사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보리심을 내는 이는 오는 세상에서 위없이 바른 법을 수호할 수 있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어떤 나쁜 비구가 내가 열반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 여래가 열반에 든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여래가 세상에 있으면서 나의 이익을 방해하더니, 이제 열반에 든다니 누가 다시 나를 못살게 굴겠는가? 못살게 구는 이가 없으면 나는 도로 그전대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 여래가 세상에 있을 때에 계율로 엄하게 금지하였는데, 이제 열반에 든다니 모두 버릴 것이다. 가사를 받는 것은 본래 형식을 위한 것이니 이제는 나무 끝의 깃발과 같이 찢어버리겠다.’
이런 사람들이 대승 경전을 비방하고 거역할 것이다.
선남자야, 너는 이렇게 기억하여라. 만일 어떤 중생이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면 이 대승 경전을 믿을 것이고 믿고 받아 지닐 것이며, 다른 중생이 법을 좋아하는 이가 있거든 그를 위하여 이 경전을 말하면 그 사람이
듣고 지난 세상의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은 죄업이 모두 소멸할 것이다.
만일 이 경전을 믿지 않는 이는 금생에 한량없는 고통의 시달림을 받고, 여러 사람에게 모욕을 당할 것이며, 목숨을 마친 뒤에 다시 태어나도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며, 얼굴은 추악하고 살림이 곤궁하여 항상 구차하며, 태어날 때마다 빈궁하고 미천하고 바른 법을 비방하는 나쁜 소견을 가진 문중에 나게 될 것이다. 임종할 때에도 흉년을 만나거나 난리를 당하거나 포악한 임금이나 원수들의 침해를 받을 것이며, 비록 선지식이 있더라도 만나지 못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얻지 못하며, 비록 조그마한 이익은 얻더라도 항상 기갈에 시달리고, 다만 용렬한 하등 사람만이 상종하고 국왕이나 대신은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설법하는 것을 듣거나 그것이 이치에 맞아도 믿어주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좋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 날개가 부러진 새는 날아다닐 수 없듯이 이 사람도 그러하여 오는 세상에는 천상에나 인간에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대승 경전을 믿는 사람은 타고 난 얼굴이 설령 누추하더라도 경전의 공덕으로 단정하여지고 신수와 위의가 날마다 좋아지며, 천상ㆍ세간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고 공경하며 사랑하여 떠나려 하지 않는다. 국왕ㆍ대신이나 일가친척들이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 믿고 공경할 것이니 나의 성문 제자들도 제일 희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대승 경전을 널리 연설하여야 할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안개와 이슬이 아무리 자욱하더라도 해
뜰 때까지만 있는 것이며, 해가 뜨면 어쩔 수 없이 스러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지은 나쁜 업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머물러 있는 세력은 대열반의 해를 볼 때까지니, 대열반의 해가 뜨면 모든 나쁜 업이 소멸하게 된다.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나 사미의 10계를 받지 못하였을 때에, 어떤 장자가 스님들의 공양을 청하면 대중과 함께 가서 공양을 받는다. 계는 비록 받지 못하였으나 대중 축에 들어 있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대승 경전인 『대반열반경』을 배우고 지니고 쓰고 읽고 외우는 이도 그와 같아서 지위가 비록 10주(住)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이미 10주 수(數)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부처님의 제자거나 아니거나 간에, 혹 탐심으로 혹은 이양을 위하여 이 경을 한 게송만이라도 듣고 비방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우유약에 이미 가까워진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네 종류 사람은 세간의 의지가 된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네 종류 사람이 부처님 말씀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할 리는 결코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너는 이 네 종류 사람에게 공양하여야 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인 줄을 알고 공양하겠습니까?”
“가섭아, 바른 법을 세우거나 수호하는 이가 있으면 이런 사람에게 따라가 여쭙고 몸과 목숨을 버려서 그를 공양할 것이니, 내가 대승 경전에서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

바른 법을 아는 이가 있거든
그가 늙은이거나 젊은이거나
잘 받을어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기를
불 섬기는 일을 하는
바라문과 같이 하여라.

바른 법을 아는 이가 있거든
그가 늙은이거나 젊은이거나
잘 받을어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기를
하늘들이 제석천왕을
섬기는 듯이 하여라.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스승에게 공양하는 것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이제 의심이 있으니 해설하여 주십시오. 만일 나이 많은 대덕 스님이 계행을 엄정하게 가지면서 젊은이들에게 모르는 일을 물을 때에 어찌하여 공경하고 예배하여야 합니까?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면 계행을 가졌다고 이를 수 없겠습니다. 만일 젊은이가 계행을 엄하게 가지면서 계행을 파한 늙은 스님에게 모르는 것을 물을 때에도 예배하여야 합니까? 또 출가한 사람이 집에 있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물을 때에도 예배를 하여야 합니까?
그러나 출가한 이는 집에 있는 사람에게 예배하지 않는 것이며, 불법 중에는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스님을 공경하여야 하니, 나이 많은 스님은 먼저 구족계를 받아 위의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공경하고 공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계를 파한 이는 부처님 법에서 용납하지 않으니, 좋은 밭에 가라지[稊稗] 같다 하였습니다. 또 부처님 말씀에 법을 아는 이가 있으면 늙은이든 젊은이든 제석천왕 섬기듯이 공양하라고 하였으니 이 두 구절 말씀의 뜻이 어떠합니까? 여래의 허망한 말씀이 아닙니까? 또 부처님 말씀에 계행을 가지는 비구도 범할 때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또 다른 경전에서는 파계한 이를 다스리라 하였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는 오는 세상의 보살
들로서 대승을 배우는 이를 위하여 그런 게송을 말한 것이며, 성문 제자를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한 것은 바른 법이 멸하고 계율이 파괴될 때와 파계하는 일이 많고 법답지 못한 짓이 성행할 때와 모든 성인들이 숨고 나타나지 않을 때와 종과 같은 부정한 것을 받아 쌓을 때에, 네 종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나마 세상에 나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다.
모든 비구들이 제각기 종과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아두면서도 정한지 부정한지도 알지 못하고, 계율인지 계율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그런 비구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그들과 함께 빛[光]을 섞으면서도 티끌은 함께하지 않고 자기의 행할 곳과 부처님의 행하는 곳을 잘 분별하여 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바라이죄를 범한 것을 보고도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 나타나서 바른 법을 세우고 보호하게 하려는 까닭으로 침묵하며 다스리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사람은 법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에 비록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파계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임금이 병이 나서 죽었고 아들은 어려서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전타라(旃陀邏)가 재물이 수없이 많고 권속도 많았다. 그래서 그 세력으로써 나라가 허약해진 틈을 타서 임금의 자리를 억지로 빼앗았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나라의 거사와 바라문들이 배반하여 다른 나라에 도망가기도 하고, 나라 안에 있는 이들도 그 전타라 왕을 옳게 보려 하지 않았다. 또 어떤 장자와 바라문은 본래 있던 데를 떠나지 않고, 마치 나무가 났던 자리에서 쓰러지듯이 그곳에서 죽으려 하였다.
전타라 왕은 나라 사람들이 도망하여 가는 줄을 알고 다른 전타라들을 보내어
길목을 지키게 하였다. 7일 후에는 북을 치면서 바라문들에게 호령하여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정수리에 물을 부어주는 사람[灌頂師]에게는 나라의 반을 나누어 상을 주겠다.’
모든 바라문은 이 말을 들었으나 한 사람도 오지는 않고 말하였다.
‘그런 일을 할 바라문이 어디 있겠느냐?’
전타라 왕은 또 말하였다.
‘바라문들 중에 나의 정수리에 물을 부어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면, 나는 모든 바라문들을 끌어다가 전타라들과 한데서 거처하며 먹고 자고 일을 같이하게 하겠지만, 만일 내 정수리에 물을 붓는 이가 있으면 나라의 반을 나누어 상을 줄 것이며, 주술을 부려서 가져오는 삼십삼천의 감로수 불사약을 나누어서 함께 먹겠다.’
그때 나이 20살쯤 되고 깨끗한 행을 닦고 머리를 기르고 주술을 잘 아는 어떤 바라문 동자가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대왕이여, 대왕의 명령을 제가 모두 따르겠습니다.’
왕은 대단히 기뻐서 이 동자로 관정사(灌頂師)를 삼았다. 바라문들은 이 소문을 듣고 모두 성을 내면서 그 동자를 꾸짖었다.
‘네가 바라문으로서 어찌하여 전타라의 스승이 되느냐?’
그때 왕은 나라의 반을 갈라서 동자에게 주고 나라 일을 함께 다스리며 여러 해를 지났다.
한번은 동자가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우리 가문의 법을 어기고 일부러 와서 왕의 스승이 되고 모든 비밀한 주문을 왕에게 가르쳤는데, 왕은 아직도 저를 친근히 하지 않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어째서 내가 그대를 친근히 하지 않는다고 하느냐?’
동자는 말하였다.
‘선왕께서 마련하여 두었던 불사약을 한 번도 나누어 먹지 않았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좋소, 좋소. 대사여, 나는 참으로 알지 못했으니 대사는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그때 동자는 왕의 말을 듣고 불사약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대신들을 청하여 함께 먹었다. 모든 신하들이 먹고 나서 왕에게 말하였다.
‘유쾌한 일입니다. 대사에게는 참말로 불사약이 있습니다.’
왕은 그 사실을 알고 스승에게 말하였다.
‘대사는 어째서 대신들하고만 감로약을 나누어 먹고 내게는 주지 않았소?’
그때 동자는 독약이 섞인 다른 약을 왕에게 주어 먹게 하였다. 왕은 그 약을 먹고 잠깐 동안에 약의 독이 발작하여 혼절하여 땅에 쓰러지고 인사불성이 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 그때 동자는 전왕의 태자를 세워 왕을 삼고 말하였다.
‘임금의 용상에 전타라가 앉아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저는 본래 전타라가 임금이 된다는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으며, 전타라가 나라와 백성을 다스려서는 결코 안 되는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이제 임금이 되셨으니 선왕의 법을 이어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동자는 이런 일을 하고 나서 다시 해독하는 약을 전타라에게 먹여 깨어나게 하고, 그런 뒤에 나라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동자는 비록 그런 일을 하였지만 바라문의 법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거사나 바라문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모두 칭찬하여 말하였다.
‘그대가 전타라 왕을 잘 몰아내었다.’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에 바른 법을 보호할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방편으로써 계를 파괴한 자나 이름만 빌린 자나 모든 부정한 것을 쌓아 두는 스님들과 더불어 모든 사업을 함께 한다. 그때의 보살들이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범하였지만 계행을 비방하는 나쁜 비구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 줄을 알았다면 곧 그에게 가서 공경하고 예배하고 네 가지 일로 공양하며 경전이나 모든 필요한 물건을
받들어야 한다. 자기에게 없다면 방편을 써서 단월에게 빌려서라도 이바지하여야 하니, 이런 일을 위하여서는 여덟 가지 부정한 것도 저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저런 나쁜 비구들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니, 마치 동자가 전타라를 몰아내고자 한 일과 같은 까닭이다.
그때에 보살들이 비록 이런 사람을 공경하고 예배하며 여덟 가지 부정한 것을 받아 쌓더라도 죄가 없다. 그 이유는 이 보살이 나쁜 비구들을 배척하고 청정한 스님들로 하여금 편안히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며 대승 방등경전을 유포하여 모든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내가 다른 경전에서 그런 두 게송을 말하여 보살들로 하여금 바른 법을 수호하는 사람을 함께 찬탄하라 한 것은 저 거사와 바라문들이 동자를 찬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법을 수호하는 보살도 그와 같으니 어떤 사람이나 만일 법을 수호하려는 이가 파계한 스님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죄가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으면 그런 사람은 스스로 재앙을 받을지언정 법을 수호하는 사람은 죄가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도 교만한 생각으로 덮어두고 참회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파계한 것이겠지만, 보살마하살이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계를 범하는 것은 파계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만한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죄를 드러내어 참회하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그런 까닭에 경전 중에서 내가 덮어 놓고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바른 법을 아는 이가 있는 곳에는
늙은이나 젊은이나 빨리 나아가
잘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기를
불 섬기는 일을하는
바라문과 같이 할 것이며,
욕계의 6천 중의 둘째 하늘이
제석천왕 섬기듯 해야 하리라.


이런 인연으로 나도 성문 배우는 이를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보살들을 위하여 이 게송을 말한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보살마하살이 계율에는 비록 느슨하나 본래 받은 계는 그대로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왜냐하면 본래 받은 계는 그대로 있어 잃은 것이 아니다. 설령 범하였더라도 곧 참회하며, 참회하면 깨끗하다. 선남자야, 마치 낡은 둑이 구멍이 뚫리면 물이 새는 것과 같다. 사람이 막지 않기 때문이니 막기만 하면 새지 않는다. 보살도 그러하여 비록 파계한 사람과 함께 포살(布薩)하고 계를 받고 자자(自恣)하고 비구의 일을 같이하더라도 본래 있는 계율은 낡은 둑이 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청정하게 계율을 가지는 이가 없으면 스님들이 줄고 느슨하고 게으름이 날마다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정하게 계를 가지는 이가 있으면 곧 구족하여 본래 받은 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대승[乘]에 느슨한[緩] 이는 느슨하다 하겠지만, 계에 느슨한 이는 느슨하다고 하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대하여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면 계율을 받든다고 한다. 바른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대승의 물로 목욕하므로 보살은 비록 현재에 계를 파하여도 느슨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과 스님들 중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암라(菴羅) 열매가 설었는지 익었는지를 알 수 없듯이 파계하고 지계함을 어떻게 압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미묘한 대열반의 경전을 의지하면 알기 쉽다. 어째서 『대반열반경』을 의지하면 안다고
하느냐? 농사꾼이 나락 씨를 심고 가라지 따위의 김을 매는 것을 육안으로 보면 잘 맨 밭이라 하겠지만, 열매가 여물 때에는 풀과 곡식이 각각 다르다. 여덟 가지 일이 승단을 오염시키니 잘 제거하면 육안으로 보고 청정한 줄을 알 수 있다. 계율을 지키는 자와 파계하는 자가 같이 있을 때에는 육안으로 보고는 분별하기 어렵지만, 나쁜 짓이 드러나면 알기 쉬울 것이다. 마치 이삭이 팬 뒤에는 가라지를 알기 쉬운 것과 같다. 스님들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부정한 독사 같은 법을 여의면 깨끗한 성스러운 대중의 복밭이라 하여 천상 인간의 공양을 받지만, 청정한 과보는 육안으로는 분별할 수 없다.
또 선남자야, 어떤 가라가(迦羅迦) 숲에 많은 나무 가운데 진두가(鎭頭迦)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라가 열매와 진두가 열매는 비슷하여 분별하기 어려운데, 그 열매가 익었을 때에 어떤 여인이 그 열매를 따서 모았다. 그런데 진두가 열매는 일부분밖에 안 되고 가라가 열매가 대부분이었다. 그 여자는 어느 열매인지 알지 못하고 저자에 가지고 가서 팔았다. 어리석은 아이들이 분간할 줄 몰라서 가라가 열매를 사서 먹고 곧 죽고 말았다.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그 여인에게 어디서 이 열매를 땄느냐고 물었다. 그 여인이 열매를 딴 곳을 말하니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그곳에는 많은 가라가나무와 한 그루의 진두가나무가 있다.’
그러면서 비웃고 가버렸다.
선남자야, 대중 가운데 여덟 가지 부정한 법도 그와 같아서, 그 중에는 여덟 가지 부정한 법을 받는 이가 많고, 다만 한 사람만이 계행을 깨끗하게 가지고
여덟 가지 부정한 법을 받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법답지 못한 것을 받아 두는 줄을 알지만, 함께 일을 하면서 버리고 떠나지 않는 것이, 마치 가라가 숲 가운데 한 그루의 진두가나무가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우바새가 그 대중들의 법답지 못한 것을 보고는 공경하지도 공양하지도 않았고, 공양하려 할 때에는 그들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저러한 여덟 가지 일을 받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포살하고 함께 갈마하고 함께 자자합니까?’
대중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가엾이 여겨 그런 것을 받도록 허락하셨다.’
우바새는 말하였다.
‘기원정사에 있는 여러 비구들이 혹은 금이나 은을 받으라고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도 하고, 혹은 허락하지 않으셨다고도 한다.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이는 허락하셨다는 비구들과는 함께 있지도, 계를 말하지도, 자자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흐르는 강물도 함께 먹지 않았다. 모든 이양하는 물건을 함께하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말하는가? 부처님께서는 하늘 중의 하늘이시니 비록 받으셨다 하더라도 당신네들은 받아 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만일 받는 이가 있으면 그들과 함께 계를 말하거나 자자하거나 갈마하거나 스님들의 일을 함께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함께 계를 말하거나 자자하거나 갈마하거나 스님들의 일을 같이한다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니 저 어리석은 사람이 가라가 열매를 먹고 죽는 것과 같을 것이다.’
또 선남자야, 어떤 도시에 약장사가 있어서 설산에서 나는 좋은 약을 팔면서 다른 약도 팔았는데, 맛이 좋기는 비슷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모두 설산에서 나는 약을 사려고 하였으나 분별할 수 없었으므로 약 파는 곳에 가서 설산에서 나는 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약장사가 있다고 대답하고는
다른 약을 주면서 설산에서 나는 약이라고 속였다. 약을 사는 사람은 육안으로 보기 때문에 잘 분별하지 못하고 약을 사 가지고 가서 설산에서 나는 좋은 약을 얻었다고 좋아하였다.
가섭아, 성문 대중 가운데는 이름만 빌린 비구도 있고 진실한 비구도 있고 화합한 비구도 있으며, 계행을 갖는 이도 있고 계율을 파한 이도 있다. 그런데 이 대중에게 평등하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니, 이 우바새가 육안으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약을 사는 사람이 설산의 좋은 약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구는 계행을 가지고 누구는 계행을 깨뜨리며, 누가 참 비구이고 누가 가짜 비구인가 하는 것은 천안통을 얻은 이라야 아는 것이다.
가섭아, 만일 우바새가 그 비구가 파계한 줄을 알았다면 보시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지 말아야 하며, 그 사람이 여덟 가지 법답지 못한 것을 받아둔 것을 알았다면 요구하는 것을 공급하거나 예배하거나 공양하지 말아야 하며, 스님들 가운데 파계한 이가 있으면 가사를 입었다는 인연만으로는 공경하고 예배하지 말아야 한다.”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좋은 말씀이십니다. 여래의 말씀이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으니, 제가 금강의 보배와 같이 받들어 지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비구들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하여야 할 것이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합니까?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말며,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 이 네 가지 법은 네 종류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법’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대반열반이니 모든 부처님 법이 곧 법의 성품이며, 법의 성품이
곧 여래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가 여래는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법의 성품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니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은 세상에 나서 법을 수호하는 사람이니, 그런 줄을 알고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여래의 비밀하고 깊은 법장을 잘 아는 까닭이며,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아니,
만일 여래가 무상하고 바뀐다고 말하면 옳지 않다. 이 네 종류 사람은 곧 여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여래의 비밀한 말씀을 잘 이해하고 또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잘 알고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안다면 이런 사람은 이양을 위하여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도 의지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는가?
법에 의지함은 곧 법의 성품이며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음은 곧 성문이다. 법의 성품은 곧 여래이며 성문은 곧 함이 있는 것이다.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함이 있는 것은 무상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파계한 몸으로 이양을 위하여 여래가 무상하고 바뀐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에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결정한 이치라고 한다.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이치는 깨달음이며 깨달았다는 뜻은 못나고 약하지 않음이며, 못나고 약하지 않다는 뜻은 만족함이며, 만족하다는 뜻은 여래의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여래의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은 법이 항상함이며, 법이 항상하다는 뜻은 승가가 항상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인가? 꾸며대는 언론과 번드르르한 문장이다. 부처님께서 말한 경전들과 같이 탐심이 많아 만족한 줄을 모른다거나, 간교하고 아첨한다거나, 가면으로 친한 체하거나, 점잖은 모양을 꾸며 이양을 구하거나, 세속 사람들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부처님도 비구들에게 종이나 부정한 물건인 금ㆍ은ㆍ보배ㆍ곡식ㆍ창고ㆍ소ㆍ양ㆍ코끼리ㆍ말 따위를 받아서 저축하는 일과 장사하여 이익을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흉년드는 세상에서 제자들을 불쌍히 여겨 비구들에게 저축하고 오래도록 묵게 하면서 손수 밥을 지으며 받지 않고 먹을 것을 허락하셨다’고 한다면 이런 말은 의지할 수 없다.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지혜라고 함은 곧 여래이니 만일 성문들이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면 그런 식은 의지하지 말아야 하며, 여래가 곧 법신인 줄을 알면 그러한 참 지혜는 의지할 만하다. 여래의 방편으로 이룬 몸을 보고 그것이 5음ㆍ6입ㆍ18계의 소속된 것이며 음식으로 기르는 것이라 말하면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식은 의지하지 못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나 그런 경전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불요의경은 성문승이니 부처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듣고 의심을 내고 이 법장에서 큰 지혜를 내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은 이름을 불요의라 한다. 요의라 함은 보살의 진실한 지혜를 말함이니, 그 마음을 따르는 걸림 없는 지혜는 마치 어른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그것을 요의라 한다.
또 성문승은 불요의이며 위없는 대승은 요의이다. 성문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불요의이며 보살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요의이다. 만일 여래가 음식으로 자란다 하면
불요의이며 만일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요의이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는 것이 나무가 다하여 불이 꺼짐과 같다 하면 그것은 불요의이며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 하면 그것은 요의이다.
성문승의 법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성문승을 말하였으므로 마치 장자가 아들에게 반쪽 글자[半字]를 가르친 것과 같다.
선남자야, 성문승은 밭을 처음 갈고는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것을 불요의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성문승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대승의 법은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대승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의지해야 하니 이것은 요의라 한다. 이러한 네 가지 의지할 데를 마땅히 증득해 알아야 한다.
또 ‘이치’에 의지하라는 것은, 이치는 질박하고 솔직한 것이며 질박하고 솔직한 것은 광명이다. 광명은 못나거나 약하지 않은 것이고, 못나거나 약하지 않은 것은 여래이다. 또 광명은 지혜이며 질박하고 솔직함은 항상 머무는 것이다.
여래가 항상하다는 것은 ‘법에 의지함’을 이르는 것이다. 법은 항상함을 이르는 것이며 또한 가없음을 말한다. 헤아릴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고 얽어맬 수도 없지만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만일 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미묘한 말로 무상하다고 말하면 이런 말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승가는 항상하고 함이 없고 변하지 않으며 여덟 가지 부정한 것을 받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식이 짓고 식이 받는다고 말하면 화합승(和合僧)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화합이라 함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식은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요의’에 의지한다 함은 요의는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다. 가면으로 위의가 청백한 듯이 나타내며, 교만하고 높은 체하여 이양을 탐하지 않으며, 여래가 방편으로 말한 법에 대하여 집착을 내지 않으면 이것을 요의라 이른다. 만일 이런 가운데 머무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이미 제일의에 머문 줄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요의라고 함은 경전에 말하기를 ‘모든 것이 타는 것이며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것이 괴롭고 모든 것이 공하고 모든 것이 내가 없다’고 한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그 까닭을 말하면 집착하기 때문에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모든 것이 탄다’고 함은 ‘열반도 타는 것’이라고 여래가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무상하다’ 함은 열반도 무상하다는 것이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 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므로 불요의경이라 하니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말하기를‘여래께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며 시기를 잘 아신다. 시기를 잘 아시므로 가벼운 것을 무겁게 말하고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말하셨다’고 한다. 또 ‘여래께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이바지할 단월이 있어 궁핍함이 없게 할 줄을 아셨으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종이나 금ㆍ은이나 재물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아 두거나 장사하여 팔고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또 만일 제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단월이 없거나, 흉년을 당하여 음식을 구하기 어렵고 정법을 건립하고 호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이나 금ㆍ은이나 수레나 집이나 밭이나 곡식 따위를 받아 두기도 하고 쓸 것을 무역하도록 허락하셨으나, 마땅히 깨끗이 보시하는 신심이 견고한 단월이어야 한다’고 하면, 이러한 네 가지 법은 의지하여야 한다. 어떤 계율에나 아비담(阿毘曇)이나 수다라(修多羅)라도 이 네 가지에 위반하지 않는 것을 의지할 것이며, 어떤 이가 ‘때가 되었거나 때가 아니거나 법을 수호하지 않거나 간에, 여래께서 모든 비구에게 이렇게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라고 허락하셨다’고 말하면, 그런 말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계율이나 아비담이나 수다라에 이 말과 같은 것이 있으면 이러한 세 가지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육안을 가진 중생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의지할 것을 말하였으며, 혜안(慧眼)이 있는 이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네 가지 의지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법이란 것은 곧 법의 성품이며, 이치라 하는 것은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이며 지혜란 것은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이며, 요의라 하는 것은 온갖 대승의 경전을 통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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