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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06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7권

by Kay/케이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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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7

 

대반열반경 제7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4. 여래성품[邪正品]④

그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들에게 마땅히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야, 나의 말과 같이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 가지 마군이 있는 까닭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군이 말한 경전과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마군과, 마군이 말한 것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저희들이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중생이 마군의 행을 따르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그런 무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가섭아, 내가 열반한 지 7백 년 뒤에 마왕 파순이 점점 나의 법을 혼란하게 할 것이다. 마치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입듯이 마왕 파순도 그와 같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모양을 가장하기도 하고, 또 수다원(須陀洹)의 몸과 아라한의 몸과 나아가 부처님의 몸을 꾸미되 마왕의 유루한 형상으로 무루한 몸을 가장할 것이다. 마왕 파순이 나의 바른 법을 파괴하면서 말할 것이다.
‘보살이 옛날에 도솔천에서 없어지고 이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올 때에 부모가 애욕으로 접촉한 것에 의지하여 그 몸을 낳아 기른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에 나서 모든 세간의 인간과 하늘 대중에게 공경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적에 고행할 때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나라와 처자까지 가지가지로 보시한 까닭에 지금 불도를 이루었으며, 그런 인연으로 천상 사람ㆍ세간 사람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의 공경을 받는다.’
만일 이렇게 말을 한 경전이나 계율이 있으면 마군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경과 율에 말하기를 ‘여래는 벌써부터 불도를 이루었지만 지금 성불하는 일을 보이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부모의 애욕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따르기 위하여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다면, 이런 경과 율은 참으로 여래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른다면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께서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래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 시방[十方]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여래가 세상에 나서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것은 여래가 방편으로 보인 것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여래가 말씀한 경전과 율이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보살이 탄생한 뒤에 부왕이 사람을 시켜 태자를 데리고 천신의 사당에 가게 했을 때에 천신들이 보고 내려와서 예경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누군가가 다시 논란하여 말할 것이다.
‘천신은 먼저 났고 부처님께서는 나중에 났는데 어떻게
천신이 부처님께 예경하였을 것인가?’
이것은 파순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경에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천신의 사당에 갔을 때에 마혜수라천ㆍ대범천왕ㆍ제석천왕들이 모두 부처님 발에 합장하고 예경하였다’라고 하면 이런 경과 율은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다.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을 따르는 이는 곧 보살이다.
어떤 경이나 율에 ‘보살이 태자로 있을 때에 음욕으로 말미암아 사방에서 아내를 맞아 궁중에 두고 5욕으로 즐기며 기뻐하였다’고 말하였으면, 그러한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이다.
만일 ‘보살은 이미 오래전에 탐욕과 처자의 생각을 떠났으며 나아가 삼십삼천의 훌륭한 5욕락도 침 뱉듯이 버렸는데 더구나 인간의 욕락이겠는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고 말하였으면 그런 경과 율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마군의 경과 율을 따르면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경과 율을 따르면 곧 보살이다.
또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타정사에 계실 때에 비구들에게 종ㆍ하인ㆍ소ㆍ양ㆍ코끼리ㆍ말ㆍ나귀ㆍ노새ㆍ닭ㆍ돼지ㆍ고양이ㆍ개ㆍ금ㆍ은ㆍ폐유리ㆍ진주ㆍ파리ㆍ자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가패ㆍ벽옥ㆍ구리ㆍ가마솥ㆍ크고 작은 쟁반 따위를 받아 두라 허락하셨고, 밭 갈고 나무 심고 장사하고 곡식을 쌓아 두는 일들을 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여 허락하셨다’고 말하였으면 그런 경과 율은 모두
마군의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타정사의 나리루(那梨樓) 귀신 있는 곳에 계실 때에 여래께서 바라문 고저덕(羖羝德)과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금ㆍ은ㆍ폐유리ㆍ파리ㆍ진주ㆍ자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보패ㆍ보석ㆍ종ㆍ하인ㆍ동남ㆍ동녀ㆍ소ㆍ양ㆍ코끼리ㆍ말ㆍ나귀ㆍ노새ㆍ닭ㆍ돼지ㆍ고양이ㆍ개 따위의 짐승과 구리ㆍ가마ㆍ솥ㆍ쟁반 따위와, 가지각색의 평상ㆍ포단과 살림에 필요한 집 따위를 받아 두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다음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밭을 갈고 나무를 심고 무역을 하고 손수 음식을 만들고 방아를 찧고 맷돌질을 하는 것과, 몸을 다스리는 주술과 매를 길들이는 방법과, 천문을 보고 역서를 만들고 점을 치고 남녀의 상을 보고 해몽을 하고 남자다 여자다, 남자가 아니다 여자가 아니다 하는 따위의 64능(能)과, 사람을 현혹하는 18주술과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혹 세간의 한량없는 세속 일을 말하고, 흩는 향ㆍ가루향ㆍ바르는 향ㆍ쐬는 향ㆍ꽃다발ㆍ화만ㆍ머리 빗는 방법을 숭상하거나, 간사하고 아첨하여 이양을 탐내거나, 복잡하고 분주한 데를 좋아하며, 희롱하고 웃고 이야기하거나, 고기 생선을 즐겨 먹거나, 독약을 만들거나 향유를 짜는 것이다.
일산을 받고 가죽신을 신고 부채를 만들고 상자 만들고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며, 쌀ㆍ곡식ㆍ밀ㆍ보리ㆍ콩ㆍ과실 따위를 저축하거나, 국왕ㆍ왕자ㆍ대신이나 여인들을 가까이하거나 소리를 높여 웃거나 잠잠하거나, 법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잘하고 못하고 좋고 나쁘고 선하고 악하고 좋은 신 좋은 옷을 부질없이 이야기하거나, 가지가지 부정한 물건을 시주들의 앞에서
칭찬하거나, 술집ㆍ기생집ㆍ놀음판 따위의 부정한 곳에 출입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비구들 중에 섞이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런 이는 마땅히 비구를 그만두고 속세로 돌아가서 국민의 구실을 극진히 해야 하니 마치 돌피와 가라지를 뽑아버리듯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경과 율에 제정된 것이니 모두 부처님의 말이다.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보살이 천신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천신의 사당에 들어갔으니 그 천신은 범천ㆍ대자재천ㆍ위타천ㆍ가전연천이었다. 들어간 까닭은 모든 하늘들을 조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보살이 외도들의 잘못된 언론에 들어가서 그의 위의와 문장과 기예(技藝)를 알지 못하고, 하인들의 투쟁을 화합시키지 못하므로 남녀ㆍ국왕ㆍ대신의 공경을 받지 못한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약을 화합할 줄을 모르니, 모르기 때문에 여래라 한다. 만일 안다면 나쁜 소견을 가진 무리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래는 원수든 친한 이든 마음이 평등해서 칼로 몸을 베거나 향으로 바르거나 그런 두 사람에게 이익 된다거나 해롭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중도에 머물러 있으므로 여래라고 한다.’
이런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보살이 일부러 천신의 사당에 들어갔고, 외도의 법에서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서 그의 위의와 예절을 알기도 하고 모든 문장과 기예를 이해도 하였다. 글방과 재주를 배우는 곳에 일부러 들어가서 하인들의 투쟁을 잘 화합하며, 여러 대중과
동남ㆍ동녀와 후궁ㆍ후비와 백성ㆍ장자ㆍ바라문ㆍ국왕ㆍ대신과 빈궁한 사람들 중에 가장 높았다. 또 그들의 공경을 받아서 이러한 일들을 나타내기도 하며, 비록 여러 가지 소견 속에 있더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연꽃에 티끌이 묻지 않는 듯하였다.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이런 방편을 행하여 세상 법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경과 율은 여래의 말씀인 줄을 알아야 한다.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는 대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래께서 나에게 경과 율을 해설할 때에, 나쁜 법 중에서 가볍고 무거운 죄와 투란차(偸蘭遮)의 성질이 중대한 것은 우리의 율문에서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오래전부터 그런 법을 익혀 왔는데, 너희들이 믿지 않으니 내가 어찌 우리 율을 버리고 너희의 율을 따르겠느냐? 너희의 율은 마군이 말한 것이고 우리의 경과 율은 부처님께서 제정한 것이다.
여래께서 먼저 아홉 가지 법인(法印)을 말하고 그 아홉 가지 인으로 우리의 경과 율을 인가하였다. 당초부터 방등경전이라고는 한 구절 한 글자도 듣지 못하였다. 여래가 말씀한 한량없는 경과 율에 방등경이 어디 있느냐? 그런 중에서 열 가지 경이란 이름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만일 있다면 그것은 조달(調達)이 지었을 것이다. 조달은 나쁜 사람으로 선한 법을 없애려고 방등경을 지은 것이니 우리는 믿을 수 없으며, 그런 경전은 마군의 말이다. 왜냐하면 불법을 파괴하고 시비하려는 것이므로 그런 말이 너희의 경에만 있고 우리의 경에는 없다.
우리의 경과 율에는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후 나쁜 세상에
반드시 부정한 경과 율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대승 방등경전이다. 오는 세상에는 이런 나쁜 비구가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아홉 가지 경전보다 뛰어난 방등경전이 있으니 어떤 사람이나 그 뜻을 아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경과 율을 바르게 아는 이로서 온갖 부정한 것을 멀리 떠나며 미묘하고 청정하기가 보름달과 같을 것이다.’
다시 이렇게 말한다.
‘여래께서 비록 낱낱 경과 율에서 이치를 연설하기를 항하의 모래와 같다 하더라도 우리의 율에는 없으니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있다면 어째서 여래께서 우리의 율에서는 말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죄를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한다.
‘이런 경과 율을 내가 받아 지닐 것이다. 그 이유는 나를 위하여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함을 알게 하였으며 번뇌를 끊고 지혜와 열반과 좋은 법의 인연을 지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만일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려고 방등경을 말하셨다’고 하면, 이런 사람은 진정한 나의 제자이다. 만일 방등경을 배우지 않는 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불법을 위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소견을 가진 외도들의 제자이다. 이러한 경과 율은 부처님께서 말한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마군의 말이다.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곧 보살이다.
또 선남자야,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래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성취한 바가 아니므로 무상하고 바뀌는 것이며 공한 법을 얻어서 내가 없다고 하고 세상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경과 율은
마군이 말한 것이며, 만일 여래의 정각은 헤아릴 수 없으며 한량없는 아승기 공덕으로 성취하였으므로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런 경과 율은 부처님께서 말한 것이다.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비구가 바라이(波羅夷)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 뭇 사람이 모두 이르기를 〈바라이 죄를 범했으니 다라나무를 끊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구는 실상 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항상 말하기를 〈4바라이에서 한 가지만 범하여도 쪼갠 돌을 다시 붙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남보다 뛰어난 법을 얻었다〉고 스스로 말하면 그것은 바라이를 범한 것이다.
그 이유는 실지로는 얻은 것이 없으면서 겉으로 얻은 듯이 꾸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 되는 법을 잊은 것이어서 바라이라고 한다.
어떤 비구가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며 깨끗이 계행을 가지면서 고요한 곳[阿練若]에 있는 것을 임금이나 대신이 보고, 이 비구가 아라한과를 얻은 줄 생각하고 앞에 나아가 찬탄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이 스님은 몸을 버리고 우유약를 얻을 것이다.’
비구가 듣고 임금께 말하였다.
‘나는 실제로 사문의 도과(道果)를 얻지 못하였으니 대왕은 나에게 도과를 얻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바라건대 대왕은 나에게 만족함을 모르는 법을 말하지 마십시오.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잠자코 들을 것입니다. 내가 이제 잠자코 듣는다면 부처님들의 꾸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족함을 아는 행실은 부처님께서 칭찬하는 것이니 나는 몸이 다하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만족함을 아는 행을 닦으려 합니다. 또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도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이니, 대왕께서 나더러 도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대로 받지 않아야 만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때 임금이 대답하였다.
대사는 참으로 아라한과를 얻어서 부처님과 다름이 없습니다.’
왕은 널리 알려서 나라 안팎의 사람들과 궁중의 후비들로 하여금 모두 그가 사문과를 얻은 줄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들은 이들은 모두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어 공양하고 존중하였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비구는 참으로 범행이 청정한 사람이다.
그런 인연으로써 여러 사람들이 큰 복덕을 얻게 되었으므로 이 비구는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환희로운 마음을 내어 찬탄하고 공경한 것이니 이 비구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이 사람이 죄를 얻으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또 어떤 비구가 부처님의 비밀하고 깊은 경전을 설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으며, 이 성품이 있으므로 한량없는 억천의 번뇌를 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다만 일천제(一闡提)는 제외한다.
임금이나 대신들이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불성도 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의 몸에 반드시 불성은 있지만 부처가 되고 안 되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 만일 일천제가 아니라면 부처가 될 것은 의심이 없습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진실로 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 사람이 반드시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으나,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은 아니다.
또 어떤 비구가 출가할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라.’
이 사람이 비록 위없는 도과는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복을 얻은 것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라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한다면 모든 비구들도 모두 범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옛날 80억 겁 전에 모든 부정한 물건을 항상 여의고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위의가 성취되어 여래의 위없는 법장을 닦으면서 이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부처라 하며 대자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과 율은 부처님의 말씀이니, 이러한 것을 따르지 못하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고, 따르는 이가 있으면 곧 대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4바라이ㆍ13승잔(僧殘)ㆍ2부정법(不定法)ㆍ30사타(捨墮)ㆍ91타(墮)ㆍ4참회법(懺悔法)ㆍ중다학법(衆多學法)ㆍ7멸쟁(滅諍) 등도 없고, 투란차와 다섯 역적죄와 일천제도 없다. 만일 비구가 이런 것을 범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면 외도들은 천상에 날 것이다.
왜냐하면 외도들은 범할 계율이 없는 까닭이다. 이것은 여래가 일부러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이런 계율을 설하신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 음행을 하려면 법복을 벗고 세속 옷을 입은 뒤에 음행을 하라.〉
그러므로 음행할 인연을 생각하더라도 나의 허물이 아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비구가 음행을 하고 해탈을 얻은 이가 있으며, 혹은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니 옛날에나 지금에나
있는 일이라, 나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혹은 네 가지 중대한 죄를 범하고 혹은 다섯 가지 중대한 계를 범하며 혹은 온갖 부정한 일을 행하고도 진정한 해탈을 얻었다.
여래의 말씀에 〈돌길라(突吉羅) 죄를 범하면 도리천의 세월로 8백만 년을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셨으나 역시 여래께서 사람을 두렵게 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또 여래께서 〈바라이로부터 돌길라까지의 가지가지 죄가 가볍고 중대한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율사들이 부질없이 이런 말을 지어내어 부처님께서 제정하셨다고 하지만 필경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은 마군의 경과 율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계율에서 작은 계율을 범하여 내지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괴로운 과보를 한없이 받게 된다. 이렇게 알고 내 몸을 방비하되 거북이 여섯 군데 감추듯 하라.’
그런데 어떤 율사가 다시 ‘무슨 계를 범하더라도 아무 죄보도 없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한 법만을 그저 지나도
이를 망어(妄語)라고 이름하니
뒷세상 보지 않으면
짓지 않을 죄가 없으리.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불법이 이렇게 청정한데 하물며 투란차 죄를 범하거나 승잔죄ㆍ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 어찌 죄가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이런 법들을 매우 깊이 방비하고 수호할 것이니, 만일 수호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계율이라 하겠는가? 나의 경전 중에도 말하기를 ‘4바라이나 나아가 미세한 돌길라를 범하더라도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라’ 하였다. 중생이 계율을 수호하여 지니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성을 보게 되겠는가?
모든 중생에게 비록 불성이 있다 하지만 계행을 잘 지키고 볼 것이며, 불성을 보고서야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다. 아홉 가지 경에는 방등경이 없으므로 불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경에는 말하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있는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런 말을 하는 이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앞에서 말씀한 대로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말을 아홉 가지 경전에서는 듣지 못하였는데, 만일 있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바라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아서 실로 바라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이가 말하기를 바다에 일곱 가지 보배만 있고 여덟 가지는 없다 하여도 이 사람은 죄가 없듯이, 아홉 가지 경전 가운데 불성이 없다고 하여도 죄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대승의 위대한 지혜의 바다에 불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고, 2승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성이 없다 하여도 죄가 없으며 이런 경지는 부처님들이 아는 것이고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듣지 못하였으면 어떻게 불성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어떤 것이 비밀한 법장인가? 방등 대승경전이다.
선남자야, 외도들은 혹은 내가 항상하다 말하고 혹은 내가 아주 없다고 말하는데, 여래는 그렇지 않아 내가 있다고도 말하고 내가 없다고도 말한다. 이것을 중도라 한다.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할 때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번뇌가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4바라이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이가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다.
또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다면 그 이유는 불성이 있는 까닭이다. 불성이 있는 이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이 인연으로 나는 이제 보리를 성취하였다.’
이 사람은 바라이 죄를 범하였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불성이 있더라도 좋은 방편을 닦지 못하였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법이 깊고 깊어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임금이 묻기를 ‘어떤 것이 비구가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지는 것인가?’하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어떤 비구가 이익과 음식을 위하여 모든 아첨과 간사와 거짓말을 꾸며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진짜 비구인 줄을 알게 하며, 그 인연으로 내가 많은 이익과 큰 명예를 얻게 될 것인가?
이 비구는 매우 어리석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실로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지 못하였지만,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도과를 얻은 줄로 알게 하며, 어떻게 하면 모든 우바새ㆍ우바이들이 나를 보고 〈이 사람의 복덕은 참말로 성인이다〉라고 하게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오로지 법은 구하지 않고 이익만 구하였다. 다닐 때마다 점잔을 빼고 가사와 발우를 가지며 위의를 차리고 아라한처럼 고요한 곳에 혼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보고는 〈이 비구는 가장 거룩한 이며 고행을
부지런히 하여 적멸(寂滅)한 법을 닦는다〉고 칭찬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런 인연으로 나의 제자들이 많아지고, 사람들도 의복ㆍ음식ㆍ포단ㆍ탕약 등으로 공양할 것이며, 여러 여인들도 나를 존중하고 애경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일을 하는 비구ㆍ비구니는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지는 것이다.
또 어떤 비구가 있었다. 위없는 바른 법을 세우기 위하여 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라한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보고는 이 스님은 ‘아라한이다, 좋은 비구다, 착한 비구다, 고요한 비구다’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심을 내게 되면 이 인연으로 한량없는 비구들을 권속으로 삼게 될 것이며,
이 일로 말미암아 파계한 비구와 우바새들로 하여금 계율을 지키게 하면, 그 인연으로 바른 법을 세우고 여래의 위없이 훌륭한 이치를 빛낼 것이다. 방등의 대승법의 교화를 열어서 드러내고 많은 중생들을 해탈하게 할 것이다. 여래가 말씀한 경과 율에 대하여 가볍고 무거운 뜻을 잘 이해하게 할 것이다.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도 불성이 있고, 여래비장(如來秘藏)이라는 경이 있는데 이 경에서 〈마땅히 부처님 도를 이루어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으리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량없는 우바새들을 위하여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도 모두 불성이 있으니 나와 네가 함께 여래의 경지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어야 한다.’
이렇게 설하는 사람은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진다고 하지 않고 보살이라고 한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돌길라 죄를 범하면 도리천의 세월로 8백만 년 동안에 지옥에 떨어져 모든 죄보를 받는다 하였는데, 하물며 일부러 투란차 죄를 범하는 것이겠는가?’ 대승법 중에 투란차 죄를 범한 비구가
있으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대승경 중의 투란차 죄인가?
어떤 장자가 절을 짓고 화만으로 부처님께 공양할 때에 어떤 비구가 꽃을 꿴 실을 보고 묻지 않고 가지면 투란차 죄라 한다. 알거나 모르거나 범죄가 되는 것이며, 만일 탐내는 마음으로 부처님 탑을 파괴하면 투란차 죄를 범하는 것이니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국왕이나 대신이 탑이 낡은 것을 보고 중수하며 사리에 공양할 때에 탑 속에서 보배를 얻어 비구에게 맡긴 것을 비구가 제 마음대로 사용하면 이런 비구는 부정(不淨)이라 한다. 많은 투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니, 선한 우바새들은 그 비구를 가까이하거나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말아야 한다.
또 이런 비구는 근(根)이 없다, 근이 둘이다, 근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근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여자를 탐할 때는 몸이 여자가 되고, 남자를 탐할 때는 몸이 남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구는 나쁜 근[惡根]이라 하여 남자라고 하지도 않고 여자라고 하지도 않으며, 출가라고도 하지도 않고 재가(在家)라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비구는 친근히 하거나 공양하거나 공경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 법에서 사문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어루만져 기르는 것이며 나아가 개미 따위라도 두려움 없는 보시를 하는 것이 사문의 법이다. 술을 마시거나 냄새를 맡는 것까지 끊는 것이 사문의 법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며 꿈에서도 거짓말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이며, 애욕의 마음을 내지 말고 꿈에서까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사문의 법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꿈에 음행을 하면 계를 범하는 것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러나 음욕에 대하여 더럽다는 생각을 하고 잠깐이라도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며, 여인을 사랑하는 번뇌를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꿈에 음욕을 행하면 깨어서 뉘우쳐야 한다.
비구가 걸식하다가 공양을 받을 때에는 흉년에 아들의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해야 하며 만일 음욕을 내었으면 빨리 버려야 한다. 이런 법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과 율이니,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이름이 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이러한 것을 허락하셨다. 한 다리를 항상 들고 있는 것ㆍ잠자코 말하지 않는 것ㆍ못에 빠지는 것ㆍ불에 뛰어드는 것ㆍ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것ㆍ험한 데를 피하지 않는 것ㆍ독약을 먹는 것ㆍ단식하는 것ㆍ재나 흙 위에 눕는 것ㆍ제 손발을 결박하는 것ㆍ중생을 살해하는 방법과 주문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전타라들과 근이 없는 이ㆍ근을 둘 가진 이ㆍ근이 일정치 않은 이ㆍ몸이 불구인 이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는 일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말하면 이는 마군의 말이라고 한다.
나는 먼저 다섯 가지 우유와 유밀(油蜜)과 교사야(명주ㆍ비단)옷과 가죽신 따위를 허락하였다.
그런데 그것 외에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마하릉가(摩訶楞伽)를 입으며 모든 종자를 저축하며 풀이나 나무 따위도 목숨이 있다고 허락하였으며, 이런 말씀을 하고 열반에 드셨다’
만일 어떤 경과 율이 그렇게 설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적은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이다. 나는 한 다리를 항상 들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며, 법을 위하여 가고 머물고 앉고 눕기를 허락했을 뿐이다. 독약을 먹고 단식을 하고 다섯 가지 뜨거움으로 몸을 태우고 손발을 결박하고 중생을 살해하는 방법과 주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옥이나 상아로 가죽신을 단장하고 종자를 저축하고 초목도 목숨이 있고 마하릉가를 입으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만일 세존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하는
이는 외도의 권속이고 나의 제자가 아니다.
나는 다만 다섯 가지 우유와 유밀 따위를 먹고 교사야옷을 입을 것을 허락하였을 뿐이며, 4대는 목숨이 없다고 말하였다. 만일 경과 율에 이런 말을 적은 것은 부처님의 말이다. 부처님께서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나의 참 제자이며, 부처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고, 부처님의 경과 율을 따르는 이는 대보살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이 다른 것을 지금 너에게 자세히 베풀어 말하였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에야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것으로 부처님 법의 깊은 이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을 찬탄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야, 네가 이처럼 분명하게 분별하니, 매우 지혜롭구나.”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운 것[苦]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이냐? 만일 괴로운 것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면, 온갖 축생과 지옥 중생에게도 성스러운 진리가 있을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깊은 경계가 항상 머물고 변치 않는 비밀한 법신임을 알지 못하고 밥 먹는 몸[食身]이며 법신(法身)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여래의 도덕(道德)과 위력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므로 법을 법이 아니라고 보고, 법 아닌 것을 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져 생사에 헤맬 것이며, 번뇌[結]가 많아져서 여러 가지 고뇌(苦惱) 받을 것이다.
만일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거나, 혹은 항상 머문다는 말을 한번이라도 듣는다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며, 뒤에 해탈을 얻을 때에 여래의 항상
머물고 변치 않는 이치를 증득할 것이다. 증득하고 나서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내가 옛날에 이런 이치를 들었는데 이제 해탈을 얻어 증득하여 알았다. 나는 당초에 이 이치를 몰라서 생사에 헤매기를 다함이 없이 하였는데, 오늘에야 참 지혜를 얻었다.’
이렇게 안다면 참으로 괴로움을 닦는 것이어서 이익이 많겠지만, 만일 알지 못하면 아무리 부지런히 닦아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겠지만, 만일 이렇게 닦지 못하면 괴로움이라고는 하겠지만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다.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란 것은 진실한 법 가운데서 진실한 지혜를 내지 못하고 종과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으며, 잘못된 법을 바른 법이라 하고 바른 법을 끊어버려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다. 이런 인연으로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생사에 헤매면서 많은 고통을 받고, 천상에 나거나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깊은 지혜가 있어 바른 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 천상에도 나고 바른 해탈을 얻게 된다. 만일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알지 못하여 바른 법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고 모두 없어지는 법이라고 한다면, 그 인연으로 한량없는 세월에 생사에 헤매면서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다.
만일 법이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알면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이름한다. 만일 이와 같이 닦지 못하면 괴로움의 발생이라고는 하겠지만,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苦滅諦]란 것은 설사 공한 법을 많이 닦아도 그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온갖 법을 없애는 까닭이며 여래의 참 법장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닦는 것은 공한 법을 닦는 것이다. 괴로움의 소멸을 닦는 것은 모든 외도들과는 어기는 것이다. 공한 법을 닦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한다면, 모든 외도들은 공한 법을 닦으니 역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래장(如來藏)이 있음을 보지 못하더라도 온갖 번뇌를 없애 버리면 들어갈 수가 있다’
잠깐 동안이라도 이 마음을 낸다면 그 인연으로 모든 법에 자재함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은 내가 없고 공적하다’고 닦는 이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한량없는 세월에 생사 중에 헤매면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닦지 않는 이는 번뇌가 있더라도 빨리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아는 까닭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이름한다. 이렇게 괴로움의 소멸을 닦아 익히는 이는 나의 제자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닦지 못하면 공한 법을 닦는다고 해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고 함은 불보ㆍ법보ㆍ승보와 바른 해탈을 말한다. 어떤 중생이 뒤바뀐 마음으로 삼보와 바른 해탈은 없고, 생사에 헤매는 것이 환술과 같다고 말하며 그런 소견을 익힌다면 그 인연으로 삼계에 헤매면서 오래오래 고통을 받을 것이다. 만일 바른 마음을 내어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변치 않으며, 법보ㆍ승보와 바른 해탈도 그러함을 보면, 이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세월에 자재한 과보를 마음대로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 옛적에 네 가지 뒤바뀐 마음으로 법 아닌 것을 법이라 여기고 한량없는 나쁜 업의 과보를 받았는데, 지금 그런 소견을 없앴으므로 부처님의 정각을 이루었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삼보가 무상하다고 말하면서 그런 소견을 닦으면 그것은 허망하게 닦는 것이며,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며, 법이 항상 머문다고 닦는 이는 나의 제자이다. 진실한 견해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닦는 것을 4성제(聖諦)라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에야 깊고 깊은 성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닦는 법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 가지 뒤바뀜이[顚倒] 있다. 괴로움이 아닌데 괴롭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뒤바뀜이라 하는데, 괴로움이 아니라는 것은 여래이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여래가 무상하고 변이(變異)한다는 것이다.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큰 죄이며 괴로움이다. 여래가 이 괴로운 몸을 버리고 열반에 드는 것이 마치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하면, 그것은 괴로움이 아닌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므로 뒤바뀜이라고 한다.
내가 만일 여래가 항상하다고 말하면 곧 나라는 견해[我見]이다. 나라는 견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가 있는 것이므로,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여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즐거움을 받는다고 하겠는데, 여래의 무상함이 괴로움이니 만일 괴로움이라면 어떻게 즐거움을 내겠는가? 괴로운데 즐겁다는 생각을 내기 때문에 뒤바뀜이라고 하는 것이다.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뀜이라 하니, 즐겁다는 것은 여래이며, 괴롭다는 것은 여래가 무상하다는 것이다. 만일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면 이는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여래는 항상 머무니 이것이 즐거움이다.
만일 내가 말하기를 여래가 항상하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열반에 들며, 만일 여래가 괴로움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을 버리고 열반을 취한다고 하는가?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냄으로써 뒤바뀜이라 하니 이것이 첫 번째 뒤바뀜이다.
무상한데 항상하다는 생각과 항상한데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뒤바뀜이라 한다. 무상하다는 것은 공한 법을 닦지 않는 것이며, 공한 법을 닦지 않으므로 목숨이 단명한 것이다. 만일 공적한 법을 닦지 않고 장수한다고 하면 이것을 뒤바뀜이라 하니, 이것은 두 번째 뒤바뀜이다.
내가 없는데 나라고 생각하고, 나에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바뀜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도 내가 있다고 말하고
부처님 법에서도 내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 사람은 비록 나는 있다고 말하나 불성(佛性)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없는 데서 나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므로 뒤바뀜이라 한다. 부처님 법에서 내가 있다는 것은 곧 불성인데, 세간 사람들은 불법에는 내가 없다고 말하니, 이것은 나라는 데서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만일 말하기를, ‘부처님 법에는 결코 내가 없으므로 여래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내가 없는 것을 닦으라 하셨다’고 한다면 뒤바뀜이라 하니, 이것은 세 번째 뒤바뀜이다.
깨끗한데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부정한데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바뀜이라 한다. 깨끗하다 함은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어서 잡식하는 몸이 아니고 번뇌 있는 몸이 아니고, 육신의 몸이 아니고 힘줄과 뼈로 얽힌 몸이 아닌데, 만일 말하길 ‘여래는 무상하여 잡식하는 몸이며 나아가 힘줄과 뼈로 얽힌 몸이며, 법보ㆍ승보와 해탈도 없어지는 법이라 하면 그것을 뒤바뀜이라 한다.
부정한데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바뀜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몸에는 한 가지도 부정한 것이 없으니 부정한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청정한 곳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여래는 부정관(不淨觀)을 말씀하셨으니 이 말은 허망한 말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을 뒤바뀜이라고 한다. 이것은 네 번째 뒤바뀜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바른 소견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전의 우리는 모두 잘못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25유에 나[我]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라는 것은 여래장이라는 뜻이다.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진 것이 곧 나라는 것이다. 이 나란 것이 본래부터 한량없는 번뇌에 덮였으므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가난한 여인의 집안에 순금 독이 묻혀 있었는데, 집안 식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도 몰랐다. 수단 많은 한 이상한 사람이 가난한 여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삯을 줄 것이니 나를 위하여 풀을 뽑아주시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할 수 없으나, 나의 아들에게 순금 독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뒤에 그대의 일을 해 주겠소.’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내가 방편을 알고 있으니 그대의 아들에게 순금 독을 보여줄 수 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우리 집 식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데, 그대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내가 아는 방법이 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도 보고 싶으니 내게도 보여 주시오.’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집에서 순금 독을 파냈더니, 여인이 보고 매우 기뻐서 기이하게 여기면서 그 사람을 숭배하였다.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순금 독을 가난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내가 이제 모든 중생에게 있는 불성이 번뇌에 가렸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마치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집에 있는 순금 독을 보지 못한 것과도 같다.
여래가 오늘 중생에게 있는 본각(本覺)의 광을 두루 보이니, 그것은 불성이다. 모든 중생들이 이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여래에게 귀의할 것이다. 수단이라 함은 곧 여래이며, 가난한 여인은 온갖 중생들이고, 순금 독은 불성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를 하자면, 어떤 여인이 한 아들을 낳아 길렀는데 어린 아기가 병이 들었다. 그 여인이 걱정하면서 의사를 찾았는데, 의사가 와서 생소와 우유와 석밀 세 가지로 약을 만들어 주고 먹이게 하면서 여인에게
말하였다.
‘아기가 약을 먹은 뒤에는 젖을 주지 말았다가 약이 소화된 후에 젖을 주시오.’
여인은 곧 쓴 맛을 젖꼭지에 발랐다. 그리고 아기에게 말하였다.
‘젖에 독약을 발랐으니 젖을 먹을 수 없다.’
아기가 목이 마르고 허기져서 어머니의 젖을 빨려다가 독한 냄새를 맡고 가까이 오지를 않았다. 먹은 약이 소화된 뒤에 어머니가 젖꼭지를 씻고 아기를 불러 젖을 주려고 하였으나, 아기는 먼저 독한 냄새를 맡은 까닭에 배가 고파도 참고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기를 달래며 말했다.
‘먼저는 네가 약을 먹었기 때문에 독약을 발랐으나 지금은 약이 소화되었기 때문에 독약을 씻었으니 걱정 말고 와서 먹어라.’
그 말을 듣고 아기는 차츰차츰 다시 젖을 빨게 되었다.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내가 없는 법을 닦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닦고 나라고 하는 마음을 아주 끊어 버리고 열반에 들게 한 것이다. 세간의 허망한 소견을 덜려는 것이며, 세간을 초월하는 법을 보이려는 것이며, 세간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망하고 참이 아님을 보이려는 것이며, 내가 없는 청정한 몸을 닦게 하려는 까닭이다. 마치 여인이 아들을 위해서 젖에 쓴 것을 바른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공한 법을 닦게 하기 위하여 모든 법이 나랄 것이 없다고 말하였으며, 어머니가 젖을 씻고 아들을 불러 젖을 빨게 하듯이, 나도 그러하여 여래장을 말하는 것이므로 비구들은 공포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저 아기가 어머니가 부르는 말을 듣고 다시 와서 젖을 빨듯이 비구도 그와 같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없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야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실로 내가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기가 갓 태어날 때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만일 내가 있다면
태어나던 날에도 앎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내가 없는 줄을 압니다. 만일 반드시 내가 있다면 태어난 뒤에는 죽는 일이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다 불성이 있어 항상 머문다면 무너짐이 없을 것이며, 만일 무너짐이 없다면 어찌하여 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ㆍ전타라ㆍ축생의 차별이 있겠습니까? 지금도 업의 인연이 가지가지 같지 않고 여러 갈래가 각각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있다면 모든 중생이 낫고 못함이 없을 것이니, 이런 이치로 불성이 항상한 법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만일 불성이 반드시 항상하다면 무슨 인연으로 죽이는 일ㆍ훔치는 일ㆍ음행하는 일ㆍ이간하는 말ㆍ욕설하는 말ㆍ거짓말ㆍ번드르르한 말ㆍ탐욕ㆍ성내는 일ㆍ삿된 소견이 있습니까? 만일 나라는 성품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술 취한 뒤에는 아득하고 허황하겠습니까? 나라는 성품이 항상하다면 소경도 빛을 보고 귀머거리도 듣고 벙어리도 말하고 절름발이도 걸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는 성품이 항상하다면 불구덩이ㆍ큰물ㆍ독약ㆍ칼ㆍ검ㆍ나쁜 사람ㆍ나쁜 짐승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내가 항상하다면 한번 지낸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잊지 않았다면 ‘무슨 인연으로 내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하겠습니까? 만일 내가 항상하다면 늙고 젊고 성하고 쇠하던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항상하다면 어느 곳에 머물겠습니까? 콧물ㆍ침ㆍ푸른빛ㆍ누른빛ㆍ붉은빛ㆍ흰빛 따위에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항상하다면 몸에 두루하였을 것이니, 참기름이 빈 데가 없는 것 같아서 몸을 끊을 적에는 나도 끊어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임금의 집에 기운 센 장사가 있었는데, 그의 양미간에 금강주((金剛珠)가 있었다. 그가 다른 장사와 힘 겨루는 내기를 하다가 그 장사에게 떠받쳐서 양미간의 구슬이 살 속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고, 구슬 있던 데는 부스럼이 생겼다. 곧 의사를 불러 치료하게 했는데 의사가 처방과 약을 잘 아는 터라, 이 부스럼은 구슬이 몸에 들어간 까닭인 줄을 알았다. 구슬이 살 속에 박힌 줄을 알고는 장사에게 물었다.
‘그대의 양미간의 구슬은 어디에 있는가?’
장사가 놀라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의사 선생님, 나의 구슬이 없어졌습니까? 그 구슬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요술처럼 없어졌습니까?’
그때 의사는 장사를 위로하였다.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싸울 때에 구슬이 몸으로 들어가서 지금 살 속에 박혔으며 지금도 그 모양이 밖으로 보입니다. 당신들이 다툴 때에 너무 성이 나서 구슬이 살에 박힌 줄을 모른 것입니다.’
이에 장사는 의사의 말도 믿지 않고 말하였다.
‘만일 가죽 속에 있다면 고름과 피가 어째서 나오지 않으며, 만일 살 속에 박혔다면 보이지 않을 것인데, 당신은 왜 나를 속입니까?’
의사가 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치니 구슬이 분명하게 거울에 나타났다. 장사가 그것을 보고서야 놀라 탄식하며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선지식을 가까이하지 못하였으므로 불성이 있는 것도 보지 못하였다. 음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에 가려졌기 때문에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ㆍ전타라ㆍ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문중에 태어나며, 마음으로 지은 가지각색 업으로 인하여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귀가 먹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고 앉은뱅이ㆍ곱사등이가 되어 25유에서 온갖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마음을 가려서 불성을 알지 못하니, 마치 장사가
구슬이 몸속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잃었다고 하듯이, 중생들도 역시 그러하다. 선지식을 가까이 할 줄을 모르는 까닭에 여래의 비밀한 보배 광을 알지 못한다.
내가 없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성인이 아닌 이들이 비록 내가 있다고 말하나 나의 참 성품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나의 제자도 그러하여 선지식을 가까이 하지 못하므로 내가 없는 것을 닦으면서도 내가 없는 데를 알지 못한다. 내가 없다는 참 성품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가 있다는 참 성품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선남자야, 여래가 이렇게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저 의사가 장사에게 금강 구슬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중생들이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서 불성을 알지 못하다가, 번뇌가 없어지면 그때서야 분명히 증득하게 되는 것이, 마치 저 장사가 거울 속에서 구슬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불가사의하다.
또 선남자야, 설산에 낙미(樂味)라는 약이 있는데, 맛이 매우 달고 깊은 숲속에 있으므로 사람이 잘 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냄새를 맡고 그곳에 이 약이 있는 줄을 알았다. 지나간 세상에 어떤 전륜왕이 이 약을 얻으려고 설산에서 군데군데 나무통을 만들어 놓고 이 약을 받게 하였다. 약이 성숙되면 땅에서 흘러 나와 통에 모이는데 그 맛이 진짜 맛이었다. 그 전륜왕이 죽자 약이 변하여 시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였다. 본래 한 맛이던 것이 흐르는 곳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달라졌다. 이 약의 참 맛은 산에 머물러 있어 마치 보름달과 같았다.
박복한 사람들이 약을 얻으려고 공을 들여 땅을 파도
얻지 못했는데, 다른 전륜왕이 세상에 나서는 그의 복력으로 약의 진정한 맛을 얻었다.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맛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숲 속에 묻혀 있으므로 무명이 두터운 중생들이 맛좋은 약을 보지 못한다. 불성이 번뇌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맛을 내니 소위 지옥ㆍ축생ㆍ아귀ㆍ천상ㆍ인간ㆍ남자ㆍ여자ㆍ남자 아닌 이ㆍ여자 아닌 이ㆍ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 따위가 되지만, 불성은 웅장하고 용맹하여 깨뜨릴 수 없으므로 살해하지 못한다.
만일 살해할 수 있다면 불성이 끊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불성은 끊을 수 없다. 성품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나의 성품은 곧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니, 이렇게 비밀한 법장을 무엇으로도 깨뜨리거나 소멸할 수 없으며, 비록 깨뜨리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면 증득하여 안다. 이런 인연으로 살해할 이가 없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살해할 이가 없다면 나쁜 업이 없을 것입니다.”
“가섭아, 참으로 살생하는 일이 있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이 5음 속에 있으니 5음을 깨뜨리면 살생이라 할 것이며 살생하면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ㆍ전타라ㆍ남자ㆍ여자ㆍ남자 아닌 이ㆍ여자 아닌 이 따위와 25유의 차별이 있어 나고 죽는 데 헤매는 것이다. 성인 아닌 사람이 나에 대하여 크고 작은 모양을 억측할 때에 피[稗]의 씨 같다, 쌀 같다, 콩 같다,
엄지손가락 같다 하여, 가지각색 허망한 생각을 내지만 허망하게 생각하는 모양은 참되지 않다. 세상을 뛰어난 나의 모양을 불성이라 하니 이렇게 나를 생각함이 가장 선한 일이다.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땅 속에 있는 보물 독을 잘 알고 괭이로 땅을 파는데, 모래와 자갈과 반석은 무난하게 파고 내려갈 수 있지만, 금강륜(金剛輪)에 이르면 뚫을 수 없다. 금강륜은 창이나 도끼로는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도 그러하여 모든 논자(論者)나 천마 파순이나 천상 사람과 세간 사람은 깨뜨릴 수 없다. 5음의 모양은 만들어진 것이니, 만들어진 것은 모래나 돌과 같아서 뚫을 수 있고 깨뜨릴 수 있지만, 불성인 참 나는 금강륜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다. 그러므로 5음을 깨뜨리는 것을 살생이라 한다. 선남자야, 불성은 반드시 이러하여 헤아릴 수 없다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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