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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05 불교 (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 하권

by Kay/케이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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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 하권

 

대방광보협경 하권


송 천축 구나발타라 한역
김달진 번역


이때 문수사리 동자는 외도(外道)들 가운데서 이 같은 바른 법으로 점차 열어 보여 5백 외도로 하여금 번뇌를 멀리 여의고 청정한 법의 눈[法眼]을 얻게 하였으며, 8천 외도는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문수사리 동자가 화현한 5백 무리가 문수사리 앞에 오체(五體)를 땅에 대어 예배하고 말했다.
“불타(佛陀)께 귀의합니다. 불타께 귀의합니다.”
그러자 다른 외도들 가운데 믿고 이해하지 못하던 이도 그 5백 마납(摩納)이 이같이 여쭙는 것을 보고는, 모두 그를 본받아 오체를 땅에 대어 예배하고 여쭈었다.
“저희들도 불타께 귀의하옵고 불타께 귀의합니다.”
이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은 만다라꽃[曼陀羅華]을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나누어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하라.”
그때 문수사리 동자는 모든 대중과 함께 세존 계시는 곳에 이르러 공경히 둘러 에워싸고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한편 다른 대중들도 모두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고, 외도 니건자(尼乾子)의 제자들도 만다라꽃을 부처님께 뿌려 공양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이에 문수사리가 화현한 마납들은, 문수사리가 가지(加持)한 힘을 입은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감히 부처님을 뵙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를 법신(法身)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법문도 듣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들을 수 없는 것을 법문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훌륭한 승가도 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와 성승(聖僧)은 무위(無爲)의 법을 닦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공덕도 짓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법계 가운데는 공덕도 없고 칭찬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도(道)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 모든 법이 맨 끝에는 도뿐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과(果)도 얻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잎사귀와 꽃이 없는 열매라야 해탈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고(苦)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2행(行)을 여의어야 해탈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집(集)도 끊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법이 맨 끝에는 화합함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멸(滅)도 증득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 모든 법이 맨 끝에는 멸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도(道)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유(有)와 무(無)를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4념처(念處)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모든 법이 처(處)와 비처(非處)도 여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4정단(正斷)도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모든 법은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와 행(行)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신족(神足)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모든 법은 오고 감을 여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5근(根)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모든 근(根)이 이치를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5력(力)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 모든 법이 힘도 없고 또한 힘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7각분[覺]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제일의(第一義) 가운데는 깨달을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8정도를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간의 것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선정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항상 고요한 선정 중에는 요동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혜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출세간(出世間)의 지혜는 더 닦아야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3명(明)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밝다는 것이 맨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해탈법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법성(法性)은 얽매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사문(沙門)도 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번뇌의 속박을 여의어야 사문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바라문도 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물질을 끊어버려야 바라문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비구도 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법성(法性)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피안(彼岸)에 이르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6입은 항상 적멸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조그만 것으로 만족할 줄도 모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욕심을 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만족함을 알지도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법은 취(取)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적정함도 갖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몸과 마음에 과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벗을 사귀지도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삼계와 함께 머물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벗도 가까이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둘이 있다고 해도 보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한적한 곳[阿練若]에도 있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삼계의 모든 행이 모두 한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툼 없음도 닦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견줄 이가 없이 독보(獨步)하여야 다툼이 없다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걸식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저희들은 먹는다는 생각도 영원히 끊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일체 생사의 모든 행도 무서워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진실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탐ㆍ진ㆍ치도 무서워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망상과 분별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번뇌도 부지런히 끊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번뇌 속에서도 그 자성만은 여여(如如)하여 더럽힘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견(我見)도 벗어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나의 몸은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모든 소견도 깨끗이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번뇌 속에서도 자성만은 여여한 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뒤바뀜도 끊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성품이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모든 흐름도 건너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5개(蓋)도 끊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5개는 해탈이 꿰뚫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모든 속박도 벗어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진리 속에는 속박 모양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뉘우침도 끊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진리에 뉘우침이 없는 것을 사문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의심도 버려 여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언제나 청정한 해탈법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근심의 화살[箭]도 뽑아버리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해탈의 믿음이어야 꿰뚫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열반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마지막 열반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문을 말할 때에 2백 비구는 모든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의 해탈을 얻었으며, 이때 대중 가운데 2백 비구가 먼저 4선(禪)을 얻고는 증상만(增上慢)에 멈추어 최후신(最後身)이라 하면서 남을 업신여겼다.
이들이 자리로부터 일어나 떠나면서 말하였다.
“아까 말한 법문은 모든 일체 세간과는 서로 엇갈린다. 우리들은 수순법(隨順法)만을 들어 왔는데, 지금 이 말을 들으니 법도 아니며, 계율[毘尼]도 아니며, 도사(導師)의 말씀도 아니다.”
부루나는 즉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저 2백 비구가 자리로부터 떠나면서 ‘아까 말한 법문은 모든 세간과는 서로 엇갈린다’고 말하였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부루나여, 이는 반드시 그 곡절이 있기 때문에 아까 말한 법문이 세간과는 서로 엇갈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간이란 모든 5음(陰)과 18계(界)와 12입(入)에 머물렀으니, 이 모든 사람들은 생사를 여의고 열반에 가고 싶으나 능히 나고 죽는 본래 성질을 영원히 얻을 수 없어서 곧 열반임을 알지 못하며, 또한 그 속에는 나고 죽는 것조차도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므로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세간과 서로 엇갈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4제(諦)가 있다고 억측하는 이는 이와 서로 엇갈리니, 제일의(第一義) 가운데는 이 4제도 없습니다. 또는 도(道)도 없고 덕도 없는 것입니다. 서로 엇갈린다고 하는 이는 둘[二]에 머무른 까닭이니, 만일 둘에 머무른다면 곧 서로 엇갈림이 있게 마련입니다.
도는 평등한 까닭에 일체 법에 평등함을 둘이 없는 것이라고 이름합니다. 만일 둘이 없는 것임을 안다면 서로 엇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나라는 것을 억측하는 이라면 증상만이 있으니, 증상만이 있는 이는 서로 엇갈림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일 높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는다면 이는 평등한 것입니다.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으며 하려 함도 없고 하지 않으려 함도 없는 그런 사람은 증상만이 없다고 합니다. 만일 증상만이 없다면 서로 엇갈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간과 다투는 것이 아니고 세간이 나와 다투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다투는 것 등은 모두 끊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다투는 근본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것은 진실하고 저것은 진실하지 않다 하며, 이것은 바르고 저것은 삿되다 하는 등이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바라문들은 진실하다고 주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할는지, 이것은 허망하고 저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바르고 저것은 삿되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이런 것이 모두 없어져 버린다면 그대가 무슨 수로 따지겠습니까?”
그때 문수사리는 2백 비구가 가는 길 앞에 큰 불을 화현하여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모두 큰 불이 타오르자, 능히 통과하지 못하고 곧 신통력을 부려 공중을 타고 가려고 하는데 다시 철망이 꽉 덮여 있었다.
그들 비구는 위에는 철망이 덮여 있고 아래는
큰 불이 타오름을 보자, 방향을 잡지 못하고 놀라고 겁내어 머리끝이 쭈뼛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기타(祇陀) 숲으로 향하는 길이 연꽃에 뒤섞여 장엄한 것만이 보였으며, 또한 많은 대중이 부처님께 나아가 법문을 들으려고 하는 것만이 보였다. 그들은 곧 기타 숲 가리라 화원으로 발길을 돌려 세존 계시는 데에 이르러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부루나는 말하였다.
“내가 그때 그들 비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디로 가며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들 비구들은 말하였다.
‘대덕 부루나여, 우리들은 벌써 모든 번뇌가 다하고 4선(禪)을 이루어 온갖 신통을 구족한 아라한으로서 문수사리 동자로부터 엇갈리는 법문을 들었기에 그를 버리고 가는 길인데, 이 불국토에 큰 불이 타올라서 능히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에 신력을 부려 허공으로 솟으려 하였더니 다시 위로는 철망이 꽉 덮이고 아래로는 불이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지금 우리는 부처님께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지위를 묻고 싶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부루나야, 만일 큰 불을 만났을 때에 능히 큰 불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루나야, 만일 삿된 소견 그물에 떨어졌을 때에 능히 그 철망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루나야, 만일 애욕의 물에 빠졌을 때에 능히 그 물은 통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부루나야, 그들 비구는 탐ㆍ진ㆍ치의 불을 끄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능히 그 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부루나야, 그들 모든 비구들은 삿된 소견 그물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능히 그 철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부루나야, 그들 비구는 애착의 물에 빠져 있으니, 능히 큰물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루나야, 이 불이나 철망이나 물은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다. 다만 문수사리의 힘으로 가지한 까닭에 그런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루나야, 탐ㆍ진ㆍ치와
소견ㆍ애착 같은 이러한 모든 법이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다. 다만 뒤바뀜과 망상과 분별과 탐욕과 자타(自他)로부터 생긴다. 그러기에 “나고 죽는다, 내가 없다”는 것도 아무 소속이 없는 것이다.
만일 산란한 마음을 없애고 바른 수행을 일으키되 고요한 곳에 있어 선정을 닦아 장엄하여 선정을 얻고 나면 교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머무르고 집착하지 않은 안정된 마음으로 모든 법을 관찰하되, ≺어느 법이 이 인(因)이며, 어느 법이 이 연(緣)인가?≻ 하고 이렇게 관찰하여야 여실히 본 것이다.
이른바 무명과 인연과 모든 행 내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모인 것을 바로 옳지 못한 데에 떨어진 것이라 한다. 그러기에 무명이 없어지면 모든 행이 멸하고, 나아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의 모임이 없어지니, 이것을 바른 견해라 하며, 이것을 무위(無爲)의 바른 지위라 한다.
과거의 무명은 없앨 수 없고 미래나 현재의 무명도 없앨 수 없다. 다만 바르지 못한 생각 때문에 무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무명이 없어진다면 바르지 못한 생각도 다시는 얼어나지 않는 것이며, 바르지 못한 생각이 없어진다면 무명도 따라서 없어지니, 무명이 없어진다면 필경멸(畢竟滅)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무명이 없어지면 모든 행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바른 생각으로 여실히 관찰하여 알고 보면, 이 4대의 몸이란 아무 의식도 없는 것이어서 마치 초목이나 기와나 조약돌 같고, 그림자 같고,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몸도 그와 같고 이 마음도 그와 같고 이 뜻도 그와 같고 이 의식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마음이란 모양과 빛깔이 없어서 붙잡을 수도 없으며, 또한 환(幻)과 같아서 말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바깥도 아니며, 안도 아니며, 또는 이 두 군데의 중간도 아니다.
만일 비구가 이와 같이 바른 생각을 이룬다면 일체 법이 본래 나지[生] 않음을 알 것이니, 법이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제일의(第一義)가 된다.’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그들 2백 비구는 나쁜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번뇌를 아주 다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때 살차니건타자는 모든 도중(徒衆)을 잃고 기분이 언짢은 채 사위성으로 출발하여 기타숲의 급고독정사 가리가 화원에 계시는 부처님 세존 앞에 이르러 서로 인사를 마친 다음 한쪽으로 물러앉아 여쭈었다.
“구담(瞿曇)이시여, 제가 자주 들으니, 사문 구담께서는 환술의 힘을 가지고 남의 도중을 가로챈다고 하더니, 이제 직접 보았습니다.
문수사리로 하여금 저의 도중을 파괴하여 당신 앞에 끌어다 놓고 삿된 법을 배우도록 하며, 저에게 와서 저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도록 하여 놓고 마음대로 이용합니다.”
때마침 승지(勝志)라는 어떤 출가 외도가 함께 그 모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외도 승지는 친근한 말씨로 살차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니건자여. 세존과 비구 승가와 문수사리 앞에서 그런 무엄한 생각을 두다가 영원히 이로움을 잃고 괴로움만 받은 뒤에 저 악도에 떨어지려 들지 마시오.
살차 니건자여, 내가 비유하는 말을 듣고 그 뜻을 분명히 이해하시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서 소(酥)를 구한다는 것이 병을 들고 항하에 가서 물을 담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그 마개를 뽑고 보였지만 몹시 헛수고만 하였지 소(酥)가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니건자여, 그대들 모든 외도는 속박을 끊으려 하여 계율을 받고 몸을 지져서[炙身] 겉치레를 할지라도 모두 다 삿된 것이어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것이 항하에 가서 물을 담아 가지고 온 사람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세존께서 다스리고 계시는 이 법회에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으레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질 것이오.
또한 니건자여, 어떤 사람은 본래 영리하고 슬기로워서 소(酥)를 구하고자 할 때에 바로 진짜 젖[乳]을 구하여 그릇 속에 담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그 마개를 뽑고 보니 공력은 매우 적게 드렸지만 많은 생소(生酥)를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생소로부터 숙소를 얻게 되고, 다시 숙소로부터 제호(醍醐)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건자여,
부처님 정법 시대에 집에 있는 이나 집을 떠난 이가 깨끗한 신심을 구족하고 길을 알아서 힘써 닦고 뛰어나게 정진한다면 손쉽게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 저 지혜로운 사람이 젖을 구하여 그릇에 담아 소(酥)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니건자여, 어떤 두 사람 가운데 이쪽 사람이 저쪽 사람의 백천 개나 되는 질그릇을 깨뜨리고는 좋은 보배 그릇으로 보상하여 주었다면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이쪽 사람이 저쪽 사람을 손해시켰다고 하겠소?”
니건자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승지여.”
승지는 말하였다.
“이와 같이 니건 외도 제자들은 저 질그릇이 깨진 것과 같고, 다시 여래의 법 가운데 들어온 것은 보배 그릇을 얻음과 같아서, 도리어 이익을 보았지 손해는 없는 것이오.
또한 니건자여, 어리석어 아무 지혜도 없는 상주(商主)는 모든 장사꾼을 이끌어 나쁜 길도 가게 하지만 훌륭한 지혜를 가진 상주는 모든 장사꾼을 불쌍히 여겨 바른 길로 배치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니건자여, 당신들은 그렇듯 스승이라고 자칭하지만, 이는 도를 알지 못한 이이며, 도를 잘하지 못한 이이며, 도를 보지 못한 이이며, 능히 도를 설명하지 못할 이입니다.
그러기에 당신들은 중생을 이끌어 그른 도에 몰아넣지만, 지금 세존께서는 위대한 상주로서 훌륭한 도를 알아 인도하시며, 도를 보시고 도를 설명하셔서 모든 외도를 이끌어 바른 길에 배치하시는 것이오.
또한 니건자여, 당신의 도중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당신은 모두 이끌고 가도록 하시오.”
그때 1만 2천 사람은 도로 살차를 따라 도를 배우러 갔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밝음[明]을 얻고 부처님께서 “잘 왔다, 비구야.” 하고 말씀하시자, 모두 사문이 되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외도 승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살차를 따라가는 1만 2천 사람을 보았느냐?”
승지는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승지야, 그들 여러 사람은 모두 이다음 미륵부처님이 처음 갖는 법회에 날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그들은 이같이
깊은 법문을 듣고 또한 나를 공양하였기 때문이다.
그 살타도 또한 미륵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지혜로 으뜸가기가 지금 나의 처소에 있는 사리불과 같을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알기는 하면서도 다만 그 아만 때문에 삿된 소견을 버리지 못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이때 승지는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다음 말법 세상에는 증상만을 일으키는 비구가 많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다음 말법 가운데 법이 멸하려고 할 때에는 증상만을 일으키는 이를 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능히 행을 닦아서 그 4선(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4선을 얻어야 증상만을 일으키니, 다음 말법 가운데 법이 멸하려고 할 때에는 모든 비구가 마음에 머무를 수도 없거니, 더구나 어떻게 4선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선남자여, 다음 말법 세상에는 증상만을 일으키는 이를 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증상만은 대체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견(信見)이며, 둘째는 선만(禪慢)이다.
선만이란 이익과 명예를 위하여 증상만을 일으키는 것이며, 신견이란 증상만을 일으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증상만을 일으키는 이는 으레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진다.”
승지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남이 속으로 일으키는 증상만을 알려면 마땅히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범부가 열반을 얻으려고 하면 실은 아라한이 아니라는 이 말을 듣고서 놀라고 겁낸다면 이는 범부의 증상만인 줄 알 것이다. 여래가 실로 아라한이 아니라는 이 말을 듣고서 놀라고 겁낸다면 이도 범부의 증상만이 뻔한 것이니, 실로 아라한이 아니다.
능히 보시 받은 은혜를 깨끗이 갚으나 만일 일체 번뇌가 없다면 이는 의뢰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세간의 복밭[福田]이 되는 것이며, 일체 번뇌가 있다면 의뢰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세간의 복밭이 되지 못한다.
만일 그 속에서 헤맨다면 이도 증상만이 일체 법을 열반에 끌어들이고도, 만일 그 속에서 분별하고 관찰한다면, 이도 증상만이 뻔한 것이다. 일체 법을 마땅히 알지도 못하고 마땅히 끊지도 못하고 마땅히 증득하지도 못하고 마땅히 닦지도 못하여서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면, 이도 증상만이 뻔한 것이다.”
승지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증상만이 없는 이는 어떤 인상(印相)이 있습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엇갈림도 없고 없어짐도 없다면, 이는 증상만이 없는 인상인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어떤 소리가 능히 그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고 겁내게 함이 없음이 마치 사자왕을 일체 소리가 놀라게 하고 겁내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증상만이 없는 비구는 모든 소리를 듣고도 공포를 내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는 소리를 마치 메아리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그 메아리 소리와 같아서 심ㆍ의ㆍ식은 없고 소리만 들릴 뿐이니, 이렇듯 심ㆍ의ㆍ식을 여실히 알고 나면, 일체 소리가 모두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며,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알고 나면 무슨 법을 가져 이 소리라고 확정 지을 것인가 알지 못한다.
만일 부처님의 소리를 듣고도 탐애하지 않으며, 외도의 소리를 듣고도 비방하지 않으며, 청정한 법을 듣고도 탐애하지 않으며, 더러운 법을 듣고도 비방하지 않는다면 일체 가지고 있는 전제(前際)와 후제의 소리를 잘 알기 때문에 이 같은 인상은 증상만이 없는 것이다.
높고 낮음이 없는 인상과 여실한 인상과 도를 바르게 본 인상과 한결같이 도에 든 인상과 법계에 평등한 인상과 진여를 무너뜨리지 않는 인상과 진여를 어기지 않는 인상과 실제(實際)에 머무는 인상과 제일의공(第一義空:대승의 열반)에 든 인상과 3세에 평등한 인상과 처음부터 생멸이 없는 인상과
바른 법성을 관(觀)하는 인상 등 이러한 인상은 일체 법을 결인(結印)한다.
이러한 비구를 다툼이 없는 것이라 한다. 즉 듣고도 의심하지 않고 놀라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나에도 매달리지 않고 법에도 매달리지 않아서 일체에 평등하다.”
그때 승지 외도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선지식으로부터 이 참다운 도와 대승(大乘)의 공덕을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이 문수사리로부터 이 법문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여래께서는 알맞게 법을 말씀하셔서 저로 하여금 듣고 빨리 조보리법(助菩提法)을 수습하여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게 하소서. 이는 널리 일체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 중생들을 위한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승지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이 있어 빨리 지혜를 얻고 대승(大乘)을 구족한다. 무엇이 두 가지냐 하면, 정진하는 것과 방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 정진하는 것은 법대로 하여 얻은 재물을 모두 내어 버림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보시하고서 되갚아 주기를 바라지 않고 모두 일체지(一切智)에 회향(廻向)함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일체 악과 불선법을 끊고 모든 선법을 이루어 구족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청정한 계율을 굳게 지니되 다음 세상을 위하지 않고 온통 위없는 도에 회향함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인욕을 수행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침해하려는 마음이 없음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모든 선법을 모아서 싫어하거나 게으름이 없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모든 선근을 모아서 위없는 도에 회향함이다.
또한 정진하는 것은 모든 선정에 있어 피로해 하는 마음이 없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모든 선정에 있어 맛난 음식을 탐착하지 않음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모든 많이 들은 것을 모으되 만족스럽게 여김이 없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바른 생각으로 훌륭한 지혜와 슬기를 닦음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4섭법[攝]을 놓아버리지 않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중생을 분발시켜 교화함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굳게 머무르게 하는 것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몸과 마음에 매달리지 않고 집착된 법을 놓아버림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자심(慈心)으로 일체 중생을 똑같이 대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자법(慈法)으로 중생을 똑같이 대하는 사랑에 매달리지 않음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여 일체지의 마음을 내게 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일체 법 관하기를 모두 환(幻)처럼 여기되 일체지의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음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삼매를 일으킴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지니고 수호하여 누진(漏盡)에 떨어지지 않도록 함이다.
또한 정진하는 것은 마치 머리 위에 붙은 불을 끄듯이 거룩한 진리를 수습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멸(滅)을 증득(證得)함에 따르지 않음이다. 또한 정진하는 것은 모든 상호를 원만하게 하고 선(善) 모으기를 게으르지 않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법신을 관함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중생계를 청정하게 함이다. 또 정진하는 것은 37조보리법(助菩提法)을 모음이며, 방일하지 않는 것은 고요한 해탈법에 안주(安住)함이다.
승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이 소유한 좋은 방편의 업은 모든 정진으로 말미암아 이루게 되고, 보살이 소유한 일체지의 업은 방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지혜와 방편을 이루어 위없는 바른 도를 무서워하거나 물러나지 않는다.”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외도 승지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청정한 마음으로 기뻐하여 허공에 솟아오르기를 높이 7다라수(多羅樹)만큼 하였으며,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큰 광명이 널리 비쳤으며, 모든 하늘의 음악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올렸고, 하늘에서는 여러 가지 꽃이 쏟아졌다.
그때 세존께서는 승지의 마음을 아시고 곧 빙긋이 웃으셨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웃으실 때에는 여러 백천 가지 색광(色光)이 입으로부터 나와서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를 널리 비추며, 위로는 범천세계(梵天世界)까지 뻗쳐 해와 달빛을 가리고 마궁(魔宮)을 은폐시킨 다음 그 몸을 오른쪽으로 백천 번 돌고 도로 그 정수리로 들어갔다.
이때 대덕 아난은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고 자리로부터 일어나 의복을 바로 한 다음 오른쪽 어깨를 벗어 매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며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게송으로 여쭈었다.

지혜와 복력의 꽃과
원만한 광명을 가져 세간을 인도하시고
32상의 꽃과
온갖 좋은 것으로 스스로 장엄하시며

걸음걸이는 코끼리나 사자와 같으시고
또한 용맹스레 정진력을 발휘하시는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웃으셨는지
원하건대 풀어 말씀하여 주소서.

그 말씀은 떨치는 우레와 같으시고
부처님의 소리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시며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소리와
범음성(梵音聲:여기서는 경법의 소리를 말함)과도 같으시어

삼천대천세계의 소리와
제천(諸天) 및 사람의 소리로는
부처님 소리와 견주려 한들
산수(算數)로도 미칠 수 없으며

성문과 연각이나
모든 보살의 지혜로는
부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일체지(一切智)시여.

모니(牟尼)시여, 시원스레 말씀하여 주소서.
무슨 까닭으로 웃으셨습니까?
사람ㆍ하늘ㆍ용ㆍ아수라가 듣는다면
빨리 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마음은 두 변(邊)을 여의셨고
또한 가운데도 집착하지 않으셔서
일체 집착을 없애셨으며
평등하심이 허공과 같으시어

일체 헤아릴 수 없이
일체 세간을 초월하시니
제가 등공지(等空智)께 여쭙겠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웃으셨습니까?

푸르고 노란 금색의 광명과
빨갛고 하얀 색이
입으로부터 나와서
항하의 모래와 같이 한량없이 많은

세계를 널리 비추시었으니
넓고 멀어서 저 허공과 같은
악도가 멸하고 즐거움을 얻게 되기는
도사(導師)의 광명을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릎에서 광명을 놓으실 때엔
이 성문에게 수기하여 주시고
만일 손에서 광명을 놓으실 때엔
벽지불에게 말씀하여 주시니

이같이 대승법을 수기하여 주시고
일체 지혜의 도와 광명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신 다음
도로 청정한 정수리로 드셨습니다.

거룩하십니다. 인중천(人中天)이시여,
삼계가 다 함께 공양드리는 바이니

원하건대 도사이시여,
진리를 풀어 한껏 말씀하시어
대중들이 의심 끊고 기쁘게 하소서.
무슨 까닭으로 웃으셨는가를
천만억 중생이 듣는다면
마음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이렇게 청하고 나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선남자 승지가 무생법인을 얻고 7다라수 높이의 허공에 솟아올라서 나에게 합장 예배하고 백천의 하늘과 함께 공양하는 것을 보았느냐?”
아난은 여쭈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였다.
“아난아, 이 선남자 승지는 일찍이 72억 부처님에게 모든 선근을 심고 보살의 도를 행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수습하였다.
그때 항상 큰 전륜왕이 되어 모든 여래를 공경하여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으며, 항상 범행(梵行)을 닦고 모든 부처님 법을 다 지녀 수호하였다.
아난아, 이 선남자 승지는 마땅히 금세로부터 계속 한량없고 수없는 모든 부처님을 만나 공경하여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것이며, 항상 범행을 닦아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도에 머물게 할 것이다.
그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내는 동안 보리도를 모은 다음 위없는 참되고 바른 도를 얻어 최정각(最正覺)을 이루고, 명호를 지광왕(智光王)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覺]……불세존이라 하여 세간에 나타날 것이며, 불국토의 이름은 희견(喜見)이며, 겁의 이름은 일보엄(一寶嚴)이라 할 것이다.
아난아, 그 희견국토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같을 것이고, 그 국토에 있는 중생은 무루(無漏)의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일 것이며, 모든 나쁜 물질이 없고, 여러 중생들은 서로서로 공경하면서 즐겁게 지낼 것이다.
그 국토의 중생은 모두가 지광왕부처님 뵙기를 좋아하고, 나아가 꿈결에도 부처님을 뵈어서 언제나 부처님 염(念)하기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국토를 희견이라 한다.

그 겁 동안에는 다만 한 여래께서 계셔서 불사(佛事)를 지으시며, 부처님과 중생의 수명도 똑같이 1겁씩이다. 그러므로 그 겁의 이름을 일보엄이라 한다.
아난아, 그 지광왕부처님께는 전부 보살승만 92억이 있을 것이니, 그들은 모두 처음 법회 때에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을 것이다.
그 지광왕여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는 마땅히 그 사자진거(師子進去)보살에게 먼저 수기를 주시어 부처님이 되게 하실 것이니, 명호는 사자상(師子相)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불세존이며, 수명은 10중겁(中劫)을 지낸 뒤에 열반에 드실 것이다.
마땅히 한량없고 가없는 보살승(菩薩僧)이 있어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전신사리(全身舍利)로 한 보탑(寶塔)을 세우는데, 가로와 세로는 60유순(由旬)이 되고, 높이는 80유순이 되게 하여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하게 꾸밀 것이며, 한량없는 중생이 공양을 드릴 것이다.”
그때 승지보살은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다음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을 읊어 무너지지 않는 법계를 찬탄하였다.

색계 및 법계와
중생계가 동등하니
이 계(界)는 지계(智界)와 같은 것으로
지금 나에게 수기하셨네.

수계(受界) 및 번뇌계(煩惱界)가
허공계와 같으며
모든 법도 이 계(界)와 같은 것으로
지금 내가 그와 같이 오네.

법계 및 욕계와
또는 삼계가
허공계와도 같은데
나에게 수기하심도 그와 같네.

생사계 및 열반계가
법계와도 같고
이 계(界)와 수계(水界) 및
지계(地界)와 풍계(風界) 및 화계(火界)와

5온[陰] 및 12처[入]과 18계(界)와
안계(眼界) 및 안식계(眼識界)와
의계(意界) 및 법계인
이 경계가 또한 같네.

그러나 음(陰)으로 나에게 수기하시지도 않으며
입(入)으로 수기하시지도 않으며
명색(名色)으로 수기하시지도 않으며
내계(內界) 및 외계(外界)로서 수기하시지도 않고

다만 음성이 들렸기 때문에
도사께서 나에게 수기하신 줄 알았네.
그러나 음성도 바로 고요하며
부처님께서 마음과 뜻이 없으나
마음을 내어 수기하시네.

나도 식(識)이 없으나

도기(道記)를 받을 수 있네.
나와 같이 부처님 또한 그러하시며
부처님과 같이 나도 그러하네.
모든 중생 또한 그러하므로
수기를 주시고 수기를 받네.

수기란 바로 진실하고
여여하여 모든 것을 떠나서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진실한 실제(實際)에 안주하네.

내가 지금 등정각(等正覺)께 예배하오니
일체 법에 똑같이 들어가서
허공처럼 조작함이 없이
방편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네.

이때 승지보살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다음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베껴 써서 대중 가운데서 자세히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어라.”
아난은 여쭈었다.
“제가 이미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문수사리의 신통으로 가지(加持)한 것[爲文殊師利神通所持]이라 할 것이며, 또한 일체 모든 마군과 외도의 소리를 없앤 것[滅除一切諸魔外道音聲]이라 할 것이며, 또한 보배를 채취한 것[採寶]이라 할 것이며, 또한 보배 상자[實篋]라 할 것이니,이렇게 받아 지닐지어다.”
이 경을 말씀하시자, 문수사리 동자와 승지보살 등 큰 성문과 대덕 아난 등 모든 대중과 하늘ㆍ용ㆍ야차(夜叉)ㆍ제천(諸天)과 사람ㆍ건달바(乾闥婆) 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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