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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04 불교 (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 중권

by Kay/케이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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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 중권

 

대방광보협경 중권


송 천축 구나발타라 한역
김달진 번역


“그때 문수사리 동자는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별안간 보살의 신통력으로 연꽃 그물을 만들어 타오르는 불을 두루 덮고 그 속을 지나간 다음, 문득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대의 신통력이 뛰어납니까, 나의 신통력이 뛰어납니까?’
이에 나는 말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큰 금시조(金翅鳥)가 나는 것이 빠르겠습니까, 조그마한 새가 나는 것이 빠르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 두 마리 새 가운데 무엇이 빠르겠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저의 신통력은 그 조그마한 새와 같고 당신의 뛰어난 신통력은 그 금시조 보다 더욱더 뛰어납니다.’
문수사리는 곧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아까 그대는 혼자서 문수사리의 신통력이나 나의 신통력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대답하였습니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물었습니다.
‘그대는 그런 줄을 어떻게 압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성문들은 습기(習氣)를 끊지 못했기 때문에 본래 평등하지 못함에도 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그대의 말과 같습니다.
사리불이여, 지난 세상에 어떤 큰 바닷가에 두 선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욕법(欲法)이요, 둘째는 범여(梵與)였습니다. 그때 욕법은 5신통을 얻었고, 범여 선인은 주술(呪術)의 힘으로 능히 공중을 날아 노닐었습니다.
어느 때 그들 두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신통력으로 큰 바다를 지나서 그 거주하는 데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범여 선인이 말하기를, ≺그대의 신통력과 나의 신통력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니, 다음에도
이 바다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에 있는 나차(羅叉)의 늪[渚]에 까지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나차가 나와서 퉁소의 젓대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에 범여 선인은 그 소리를 듣고 나서 공중으로부터 굴러 떨어졌고, 그러고 나서 주술의 힘이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욕법 선인은 그 범여 선인을 가엾이 여겨 그의 바른 팔뚝을 이끌고 거주하는 데로 돌아왔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범여 선인이 어찌 딴 사람이겠습니까? 달리 보지 마십시오. 바로 그대의 몸이었고, 지금 나는 바로 그때의 율법 선인이었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그때에도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다고 여기더니, 지금에도 또한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다고 여기는군요. 왜냐하면 그것은 치우친 소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리불은 다시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또한 내가 문수사리를 모시고 남쪽으로 백천의 모든 불국토를 지나 노닐 때를 회상하건대, 그때 한 국토의 이름은 일체장엄(一切莊嚴)이었고, 부처님의 명호는 보대(寶大)였습니다. 나는 문수사리와 함께 그 국토에 이르렀습니다.
문수사리는 거기에 이르시어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지금 이 불국토를 보았습니까? 또한 지나온 모든 국토도 다 보았습니까?’
그때 나는 말하였습니다.
‘이미 보았습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이 모든 국토 가운데서 무슨 일들을 전부 보았습니까?’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물이 가득한 것도 보았고 혹은 불이 가득한 것도 보았으며, 아무것도 없는 세계도 보았고, 혹은 풍요롭고 즐거운 곳도 보았습니다.’
문수사리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보았다는 것입니까?’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만일 많은 물을 보았을 때에는 곧 물을 보았노라 하고, 만일 많은 불을 보았을 때에는 곧 불을 보았노라 하고, 만일 텅 빈[空] 데를 보았을 때에는 곧 텅 빈 데를 보았노라 하고, 만일 풍요롭고 즐거운 곳을 보았을 때에는 곧 풍요롭고 즐거운 곳을 보았노라 할 뿐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보았던 경계는 이것뿐입니까?’
그때 나는 되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떤 모든 불국토를 보았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습니다.
‘허공 세계가 이 모든 부처님 세계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대는 홀림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물과 많은 불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과 풍요롭고 즐거운 곳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그대가 보았던 바는 모두가 진실하지 못하여 생멸이 서로 따르지만 허공 세계란 인연으로 있지 않아서 그 자성이 안주(安住)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객진(客塵)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려 할지라도 그 심성(心性)만은 끝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다. 대덕 사리불이여,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 동안 화재가 치열할지라도 끝내 허공을 태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낱낱 중생이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 동안 역죄(逆罪)와 착하지 못한 업을 지을지라도 그 심성만은 끝내 더럽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능히 이 법계의 성품이 청정하여 가림이 없음을 알고 다섯 가지 장애와 열 가지 티끌의 가림이 없어서 속박의 행이 마음을 괴롭힘이 없음을 알면 이를 가림 없는 법문이라 합니다. 만일 이 법문에 의한다면, 일체 모든 법에 가림이 없고 일체 법성의 청정함을 알아서 끝내 모든 법이 마음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문수사리의 신통한 변화와 설법은 이와 같습니다. 내가 그 모든 신통한 일을 보건대, 보살도 통달하지 못할 터인데, 더구나 성문들이겠습니까?”
그때 대덕 아난(阿難)은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도 일찍이 문수사리의 신통한 변화를 보았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어느 때 세존께서는 이 사위국(舍衛國)의 기타숲[祇陀林] 속에 있는 급고독정사[給孤窮精舍]에서 큰 비구 8백 사람과 모든 보살 1만 2천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마침 때 아닌 큰 구름이 끼고 비가 이레 낮, 이레 밤이 지나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모든 대덕 성문들 가운데 선정 및 해탈을 얻은 이와 선정에 든 이는 이레 동안 먹지 못하였고, 기타 범부 및 모든 학인(學人)들은 닷새 동안 먹지 못하여 배고프고 지쳐서
능히 부처님 세존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이 모든 비구가 몹시 괴로우니, 마땅히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쭈어야겠다.’
나는 바로 부처님 세존 계시는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비구들이 닷새 동안 먹지 못하고 몹시 지쳐 평상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너는 지금 이 일을 문수사리에게 가서 말하라. 그가 마땅히 비구 승가가 먹을 것을 마련하여 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명령을 받들고 문수사리가 있는 방으로 나아가서 그런 일을 낱낱이 말하였습니다. 그때 문수사리는 제석ㆍ범천과 사천왕 등을 위하여 설법하다가 곧 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난이여, 그대는 지금 가서 자리를 깔아 놓았다가 만일 때가 되거든 바로 건추(楗槌:시간을 알리는 나무로 만든 기구)를 치라.’
나는 문수사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다음 바로 자리를 깔아 놓고 한쪽에 머물러 있으면서 문수사리가 어느 때에나 방에서 나오는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수사리는 제석ㆍ범천과 사천왕 등을 위하여 자세히 설법만을 하고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일체 몸을 분별하는 삼매(三昧)로서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문수사리가 모든 비구로 하여금 밥 먹을 때를 놓치지 않게 할 것인가?’
그때 문수사리는 그 몸을 변화하여 모든 제석ㆍ범천과 사천왕 등을 위하여 그 일체 몸을 분별하는 삼매를 말하고, 한편으로는 곧 이 일체 몸을 분별하는 삼매에 들었다가 방으로부터 나와 사위대성에 들어가 차례로 밥을 빌었는데도 나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마왕 파순(波旬)이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문수사리가 사자후(師子吼)를 마치고 사위대성에 와서 밥을 빌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사위성을 가려서 드나드는 모든 바라문이나 장자와 거사들을 없이 하여 밥을 보시하지 못하도록 하리라.’

그리하여 문수사리 동자가 가는 곳마다 문이 죄다 닫히고 오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문수사리는 바로 그 마왕 파순이 모든 사람들을 가린 줄 알고는, ‘지금 내가 마땅히 진실한 맹세를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로 진실한 맹세를 세웠습니다.
‘저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세계 가운데 가득 차 있는 여러 마군으로서는 다만 나의 한낱 털구멍 속에 스며 있는 복과 지혜도 있을 수 없다.
만일 나의 이 말이 진실이라면 마왕이 가린 것이 마땅히 없어질 것이요, 마왕 자신은 거사의 모양으로 변화하여 네거리와 골목길을 다니면서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마땅히 문수사리께 보시하고 마땅히 문수사리께 보시하라. 만일 그에게 보시하는 이는 훌륭한 과보(果報)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에게 온갖 즐거워하는 도구를 백천억 년 동안 보시할지라도, 이 문수사리에게 하나의 손톱 끝만큼 보시하고서 얻는 복덕만은 못할 것이다.≻’
문수사리가 잠깐 사이에 이런 맹세를 세우자, 여러 하늘들은 바로 성안의 모든 문을 열어 놓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문수사리 동자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한편 마왕 파순은 거사의 모양으로 변하여 네거리와 골목길을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마땅히 문수사리께 보시하고 마땅히 문수사리께 보시하라. 만일 그에게 보시하는 이는 훌륭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일체 중생에게 온갖 즐거워하는 도구를 백천 년 동안 보시할지라도 문수사리에게 하나의 손톱 끝만큼 보시하고서 얻어지는 복덕만은 못하다.’
그때 문수사리는 신통력으로 가졌던 발우에 갖가지 미묘한 음식과 다과 등을 받되 마치 다른 그릇에 제각기 담은 것처럼 서로 뒤섞이지 않아서 5백 비구와 1만 2천 보살이 먹을 음식이 한 발우 속에 담겨져 있는데도,
그 발우가 줄어들거나 넘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문수사리 동자는 사위대성에서 걸식을 마친 다음 사위성을 나와 발우를 땅 위에 놓고 마왕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청정한 사람이 되려면 이 발우를 가지고 앞으로 가라.’
그러자 마왕 파순은 능히 그 발우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문수사리에게 여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땅 위에 놓인 발우를 도저히 들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마왕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너는 큰 위신력을 가졌음에도 어찌 땅 위의 조그마한 발우를 들지 못하느냐?’
이에 마왕 파순은 그의 신력을 다하였으나 발우를 털끝만큼도 들 수 없었고 전에 없던 일임을 이상하게 여겨 문수사리에게 여쭈었습니다.
‘저의 신력은 이사타산(伊沙陀山)을 뽑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공중으로 던졌었는데, 지금은 이 조그마한 발우를 털끝 하나만큼도 들 수가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발우는 중생 가운데 위대한 사람으로서 큰 힘을 지닌 이가 들 것이요, 너 파순이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문수사리 동자는 곧 한 손가락으로 땅 위에 놓인 발우를 들어 파순의 손에 넘겨주시면서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정인(淨人)이 되어 이 발우를 들고 앞서서 가라.’
마왕 파순은 힘을 다하여 발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자재천자(自在天子)는 1만 2천 천자와 함께 문수사리 동자를 둘러 시종하고 있다가 발아래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돈 다음 마왕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심부름꾼이 아닌데, 무슨 까닭에 발우를 들고 그 앞에서 걷고 있느냐?’
마왕 파순은 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다시는 위대한 힘을 가진 이와 같이 겨루지 않겠습니다.’
천자는 마왕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너 또한 큰 신력을 갖지 않았느냐?’
그때 마왕 파순은 문수사리가 가지(加持)하여 준 힘을 입었기 때문에 곧 천자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어리석은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밝은 지혜의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며, 교만한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큰 지혜의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며, 모든 삿된 견해의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비고 모양 없고 작위[作]가 없는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다.
모든 뒤바뀐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바른 진리의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며,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 하는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큰 자비의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며, 탑ㆍ진ㆍ치의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3해탈의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며, 나고 죽는 것의 힘은 바로 마왕의 힘이며, 생멸이 없고 모든 행이 없어서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은 힘은 바로 보살의 힘이다.’
마왕 파순이 이 법문을 말할 때 모든 하늘 무리 가운데 5백 천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1천2백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습니다.
이때 문수사리는 마왕 파순과 함께 그 발우의 음식을 가져다 가리라 화원 앞에 놓고 함께 밖으로 나갔는데도, 나는 그때까지 문수사리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밥 먹을 때가 되었어도 그저 방에서 나오지 않은 줄로만 알고서 생각하였습니다.
‘문수사리가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밥 먹을 때를 놓치지 않게 할 것인가. 마땅히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자세히 이 일을 여쭈어 보리라.’
그리고는 바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러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밥 먹을 때가 벌써 되었사오나 문수사리가 그저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저 가리라 화원에 가서 보지 않았느냐?’
저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대덕 세존이시여, 하나의 조그마한 발우가 있는데, 그 속에 음식이 가득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빨리 건추를 쳐서 비구들을 모아라.’
저는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비구들은 많은데, 그 하나의 발우 밥을 가지고서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것을 염려하지 말아라. 그 발우의 밥은 설령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일체 모든 중생이 백천 년 동안 먹을지라도 오히려 없어지지 않는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는 문수사리의 힘으로 마련된 발우이기 때문이니, 문수사리는 한량없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의 공덕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건추를 쳐서 비구 승가를 모았습니다. 과연 그 발우의 음식은 서로 뒤섞여 있지도 않았으며, 온갖 종류의 맛이 한량없어서 대중들이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그 음식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왕 파순은 문수사리 동자를 괴롭혀 볼 샘으로 곧 4천 명의 비구를 변화로 만들되, 의복은 떨어지고 거동은 추악한데다가 깨트려진 발우를 들었으며, 코와 눈은 비뚤어지고 손과 발은 절름거리는 아주 추악한 꼴로서 맨 끝자리에 앉아 음식을 실컷 먹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마왕 파순은 변화한 비구마다 마가타(摩伽陀) 나라에서 나는 열 가지 음식을 먹이는데, 발우의 음식은 그대로 가득하여 줄어들지 않고, 여러 화원지기와 심부름꾼들은 그 음식을 나르느라고 은근히 골탕만 먹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문수사리는 신통력으로 마왕 파순으로 인하여 화현한 비구들로 하여금 손과 입에는 음식이 푸짐하여 줄어들지 않으나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아서 기운이 막히고 눈이 뒤집혀 모두 땅바닥에 쓰러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너의 여러 비구는 어찌하여 다시 더 먹지 못하고 있느냐?’
마왕은 대답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이 모든 비구가 땅바닥에 쓰러져 죽게 되었으니, 당신이 독 있는 음식을 준 것이 아니오?’
문수사리는 파순에게 말하였습니다.
‘독을 이미 끓은 사람이 다시 무슨 독이 있겠느냐. 속에 독이 들어 있는 이는 남에게 독을 쓰지만 속에 독이 없는 이는 남에게 독을 쓰지 않는다. 마왕 파순아, 이른바 독이란 탐ㆍ진ㆍ치를 말함이니, 거룩한 법으로 잘 다스려진 이는 남에게 독을 쓸 리가 없는 것이다.
또 마왕 파순아, 이른바
독이란 무명과 애욕을 말함이니, 나와 내 것이 있다고 주장하며, 인연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름과 물질이 있다고 주장하며, 애욕과 성냄이 있다고 주장하며, 아견(我見)과 중생견이 있다고 주장하며, 모든 가려 속박된 것을 주장하며, 모든 모여 쌓인 것을 억측하며, 종성을 자랑하며, 모든 입(入)에 집착한다.
항상 삼계에 머무르면서 의지하여 지키는 것에 얽매여 굳이 지키고 추려내며, 왔다 갔다 하는 몸을 애착하여 목숨에 굳게 집착하며, 부정(不淨)한 생각으로서 번뇌를 좋아하며, 모든 잘못을 일으키면서 인연을 어기며,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으로서 상대에게 굽히거나 교만을 내며, 망령된 생각과 분별하는 것으로 거짓을 나타내 보이며, 소굴에 집착하여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고 죄었다 늦췄다 하면서 공(空)에 놀라고 무서워한다.
생각 없는 가운데서도 타락하는 생각을 내며, 조작 없는 가운데서도 생사를 무서워하는 생각을 내며, 집착 없는 데서도 무서워함을 일으키는 생각을 내며, 생사를 벗어나는 데서도 속박을 일으키는 생각을 낸다.
거센 물결 속에서도 제도하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보리를 돕는 법에도 옳지 못한 법이라는 생각을 내며, 옳지 못한 견해 속에서도 바른 견해인 체하는 생각을 내며, 악지식(惡知識)임에도 선지식이라는 생각을 내며, 부처님을 배반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업신여기며, 교만을 버리지 않고 다툼을 증장한다.
실(實)을 불실(不實)이라고 생각하고, 불실을 실(實)이라고 하는 생각을 증장하며, 욕락 가운데서도 공덕이라는 생각을 내며, 함[爲]이 있는 가운데서도 도리어 현혹된 마음을 내며, 생사를 조작함에도 그 잘못을 보지 못하며, 열반 가운데서도 놀래고 겁내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파순아, 이 같은 모든 법을 미묘한 법문 가운데서는 독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바른 법 가운데서는 그런 것이 없다.
파순아, 감로(甘露)와 같은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편안한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희론(戱論)이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잘못이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번뇌[結使]가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한다.
뛰어나고 요긴한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겁내거나 무서워함이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분별함이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자기나 남에게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한다.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고, 집이 되고 귀의할 데가 되고 멈출 데가 되고 수호할 것이 되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차분한 것으로 다스리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저절로 때가 없이 깨끗하여 환히 비추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한다.
방향이 바른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모든 망상을 없애어 잘 다스리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적당함을 따라 잘 가르치고 인도하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자기도 말하고 남도 말하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한다.
법대로 모든 외도를 다스리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모든 마군을 항복하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며, 생사의 흐름을 끊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한다.
바른 생각의 법을 바로 불법이라 이름하니, 염처(念處)에 머무는 까닭이다. 4정단(正斷)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모든 악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며, 신족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관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5근법(根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믿음을 으뜸으로 삼기 때문이며, 5력법(力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아무도 그를 항복 받을 이가 없기 때문이며, 7각분법[覺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차례대로 깨닫기 때문이며, 8정도(正道)의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바른 흐름에 들어가기 때문이라 합니다.
삼매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마침내는 적정하기 때문이며, 지혜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모든 거룩한 해탈법을 잘 관통하기 때문이며, 진리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분노하고 성냄이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모든 변재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법과 말과 뜻과 잘 설명함이 막힘이 없기 때문이며, 덧없고 괴롭고 나[我] 없는 법을 분명히 아는 것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일체 유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며, 공(空)한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일체 모든 외도를 항복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적정한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열반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바라밀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이라 합니다.
방편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잘 포섭하여 제도하기 때문이며,
자법(慈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잘못된 지혜가 없기 때문이며, 비법(悲法)이 부처님 법이라 하니 박절함이 없기 때문이며, 희법(喜法)을 부처님 법이라 하니 기쁘지 못한 것을 없애기 때문이며, 사법(捨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지을 바를 판별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선정법(禪定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교만을 없애기 때문이며, 삼보를 끊어 버리지 않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보리의 마음을 내기 때문이며, 일체가 안락하여 괴로움이 없는 법을 바로 부처님 법이라 하니 모든 있는 것[有]을 부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마왕이 거느린 5백 천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참으로 찬탄할 법문입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이 법문 가운데서 머물게 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문득 빙긋이 웃으시기에 아난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대덕 세존이시여, 지금 무슨 연유로 빙긋이 웃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파순이 변화로 만든 비구들을 보았느냐?’
아난은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벌써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5백 년 동안에 법이 없어지려 할 때에는 으레 그와 같은 추한 형상의 비구들이 나타나 그와 같은 더러운 옷을 되는 대로 걸치고 다닐 것이므로 그렇듯 천덕스럽고 지혜가 없을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다음 세상의 비구들은 번뇌가 중하여 이익에 탐착하고 온갖 세속 일을 지으며, 모든 비니(毘尼)를 버리고 해탈계(解脫戒)를 어기고 청정한 법을 여의며, 그 오고 가는 데에 있어 현재법의 이로움만 중히 여기고 다음 세상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멀고 귀 먹고 발 절고 노망하고 어리석고 온갖 병에 걸린 이들이 모두 나의 정법(正法) 가운데 와서 집을 떠나서 계율을 받지만 그 권속과 시봉하는 사람들만 소중하게 여기므로, 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나의 설법이 이같이 바르고 이같이 사랑스럽거늘 모든 하늘들은 그때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제천(諸天)은 근심이 없어져 마왕 파순은 도리어 몹시 기뻐하여 아무 걱정함이 없을 것이다.’
이에 저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마왕 파순은 도리어 기뻐하여 아무 걱정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나쁜 비구는 마업(魔業)만을 일삼기 때문에 마왕 파순은 운영하여 짓는 일이 없었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그들 비구가 힘써 정진하기를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한다면 마왕은 그러한 사람에게서 곧 나쁜 점을 구한다.
그러므로 아난아, 마땅히 그 방편에 힘을 다할 것이니, 얻지 못한 것은 얻게 하고 해탈하지 못한 것은 해탈하게 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은 증득하게 하며, 마군을 항복하고 불법을 성하게 하며 바른 법을 호지하여 법공양을 짓고 방일함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의 교법이다.’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5백 비구는 몸과 목숨을 놓아버리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런 악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허공에 솟아올라서 불로 몸을 태웠고, 백천의 모든 하늘은 공양을 드렸으며, 2백 비구는 번뇌를 아주 여의어 청정한 법의 안목을 얻었고, 2백 비구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다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 보살은 법의 지혜[法忍]를 얻었습니다.
제석ㆍ범천과 사천왕 및 모든 권속은 부처님 발아래 예배한 다음,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이 지상에 머물러 계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그런 악한 세상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이 이 경전을 듣는다면 다시는 게으름과 법 아닌 것을 짓지 않을 것이며, 또한 마군의 모든 나쁜 과업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듣고 나서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질 뻔 하였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저는 문수사리 동자가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성취한 것을 보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때 대덕 가섭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도 일찍이 문수사리의 희한한 신통력을 보았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때 세존께서 부처를 이루신 지 오래되지 않았고, 나는 출가한 지 오래되었었습니다.
그때 문수사리 동자는
처음 이 사바세계에 이르렀는데 보상(寶相)부처님께서 계시는 보왕(寶王)세계로부터 와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뵙고 공경히 공양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사위국의 기타 숲 속에 있는 급고독정사에 계시면서 석 달 동안 여름 안거(安居)를 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래 앞에서나 여러 스님들 가운데서나 혹은 밥 먹을 때에나 설계(說戒)하는 날에나 경행(經行)할 때에도 도무지 문수사리를 보지 못하였다가 석 달을 지나고 자자(自恣)할 때가 되어서야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에 나는 곧 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어느 곳에서 여름안거를 났습니까?’
그는 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나는 이 사위대성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왕후 궁전에서 한 달 동안 머물러 있었고, 다시 한 달 동안은 어린아이들의 학당(學堂)에서 머물러 있었고, 다시 한 달 동안은 음녀(婬女)의 방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여겨 곧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부정한 사람과 자자를 같이할 것인가?’
바로 강당을 나와서 건추를 두드린 다음 문수사리 동자를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저 마하가섭이 무슨 까닭으로 건추를 쳤는지 알아보아라.’
문수사리는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보았더니 바로 저를 쫓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지금 자재한 신력과 신통한 경계를 나타내어 저 성문들로 하여금 청정한 마음을 얻어서 그대에게 개운하지 않은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하라.’
이에 문수사리 동자는 곧 삼매에 들었으니, 그 삼매의 이름은 온 부처님 국토를 나타낸다[現一切佛土]는 것이었습니다.
문수사리가 삼매에 들자 시방의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모두 두타(頭陀)로 제일가는 마하가섭이 건추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마하가섭아, 너는 지금 무슨 까닭으로 건추를 쳤느냐?’
저는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여름 안거 석 달 동안을 왕후의 궁과 음녀의 방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하기에 그를 쫓아내기 위하여 건추를 쳤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몸에 광명을 놓으시어 두루 시방을 비추시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시방세계에 무엇이 보이는가를 두루 관찰하라.’
그리하여 내가 두루 관찰하여 본즉,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시방세계 가운데서 마하가섭이 각기 나타나 건추를 치면서 문수사리를 쫓아내려 하고 있었고, 이 세계 여러 군데에서도 문수사리가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 문수사리를 쫓아내려고 하는가? 이 세계에 문수사리이냐, 아니면 시방세계에 있는 문수사리이냐?’
이에 저는 부처님 세존의 발아래 예배하고 여쭈었습니다.
‘저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을 들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는 법왕자(法王子)로서 이 같은 불가사의한 보살의 공덕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부처님으로부터 한량 있는 지혜를 이루고서 도리어 한량없는 지혜를 헤아리려 하였으니, 이는 제가 앎이 없는 탓으로 건추를 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하가섭아, 너는 지금 시방세계에 그저 나타난 문수사리로만 보았을 뿐이지만, 여름안거 석 달 동안을 왕후의 궁과 음녀의 방에서 머물러 있었던 문수사리 동자는 바로 바사닉왕의 궁중에 있는 5백 여인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였다.
또한 5백 음녀와 5백 어린이로 하여금 위없는 바른 도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였으며, 또한 백천 중생에게 성문법으로써 다스려 주었고 한량없는 중생들은 모두 하늘에 태어나게 하였다.’
이에 저는 여쭈었습니다.
‘대덕 세존이시여, 문수사리는
무슨 법을 설하여 이같이 중생을 교화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너는 지금 문수사리에게 물어보아라. 마땅히 너에게 대답하여 줄 것이다.’
이에 저는 바로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법을 말씀하시어 이같이 중생을 교화하고 다스렸습니까?’
문수사리는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한갓 법만을 설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덕 가섭이여, 모든 중생에게 오락으로 좋아하게 하여 다스리기도 하며, 혹은 자비로 보호하여 주기도 하며, 혹은 위력으로 굴복시키기도 하며, 혹은 재물로 이끌어 들이기도 하며, 혹은 탐내어 요구하기도 합니다.
혹은 거룩한 장엄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신통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제석[釋]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범천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사천왕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전륜왕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각기 형편에 따라 모든 하늘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혹은 고운 말로도 하고, 혹은 추악한 말로도 하다가 때로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하며, 혹은 꾸짖고 벌 주기도 하며, 혹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익을 주기도 하며, 혹은 그 아들로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대덕 가섭이여, 모든 중생은 갖가지 행업이 있기 때문에 갖가지 법으로써 다스리는 것입니다.
대덕 가섭이여, 나는 방편으로써 중생계를 교화한 다음 법을 설명하여 맨 끝까지 모두 다스려지게 합니다.’
저는 그때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그대가 다스린 중생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대답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내가 다스린 것은 저 법계와 같습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법계는 얼마나 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습니다.
‘중생계와 같습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중생계는 다시 얼마나 됩니까?’
문수사리는 바로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허공계와 같다. 이와 같이 가섭이여, 중생계나 법계나 허공계가 둘이 없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공연히 세상에 나오시어 아무것도 다스리는 바가 없으십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비유컨대 사람이 열병(熱病)을 앓는다면
자연히 온갖 망령된 말을 하게 되는 것이지, 그 속에 무슨 하늘 귀신이 있어서 그렇겠습니까? 다행히 훌륭한 의사가 있어 그에게 소(酥)를 먹인다면 열병이 바로 멎고 망령된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할는지, 과연 그 속에 있던 하늘 귀신이 떠나서 그 병이 나았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문수사리여. 소를 마셨기 때문에 열병이 나은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그 훌륭한 의사야말로 그를 이롭게 함이 많지 않겠습니까?’
저는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수사리여.’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이와 같은 세간의 뒤바뀜과 열병은 나와 나라고 하는 생각이 없는 것임에도 나라고 하는 생각에 머무르다가 이미 생사에 번갈아 구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그 형편에 따라 법문을 아시고 나라는 생각을 아시어 뒤바뀜을 끊으신 다음 이 중생을 위하여 법문을 연설하십니다.
그 법문을 다 듣고 나면 일체 생각을 제거하여 집착된 바가 없을 것이며, 일체 생각을 다 알고 나면 모든 흐름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를 곧 열반이라 합니다.
대덕 가섭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할는지, 과연 그 가운데 나다, 중생이다, 목숨이다, 처자다, 장부다, 열반이다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여래께서는 이런 이로움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나오시어 평등한 모양만을 보여 주실 뿐이며,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시어 다만 번뇌(煩惱)가 진실이 아님을 알도록 하실 뿐입니다.’
저는 말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할 일은 매우 어렵겠습니다. 즉 중생의 자성은 어디까지나 적정한(寂靜)한 것임을 알아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되 그 장엄을 버리지 않고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으며, 중생의 자성이 어디까지나 열반이거늘 오히려 큰 서원을 세우는 장엄을 일으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보살의 장엄은 여여(如如)와 똑같습니다.’

저는 또 여쭈었습니다.
‘문수사리여, 원컨대 보살이 일으키는 훌륭한 장엄을 말하여 주십시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보살마하살은 서른두 가지의 훌륭한 장엄을 일으킵니다. 무엇이 서른두 가지인가? 보살은 끝없는 생사에 헤매는 중생을 포섭하여 훌륭한 장엄을 나타내니 꿈과 같은 공성(空性)이기 때문이며, 보살은 한량없는 중생을 해탈시키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나라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여 섬기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거나 법신의 모양과 같기 때문이며, 보살은 일체 불법을 받아 듣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메아리나 소리의 모양과 같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불법을 수호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모든 법이 평등한 모양임을 통달한 때문이며, 보살은 일체 모든 마군을 항복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일체 번뇌의 성품과 모양이 청정한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외도를 항복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유(有)와 무(無)의 소견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연의 모양을 알게 하기 때문이며, 보살은 소유한 일체를 다 놓아버리고서 훌륭한 장엄을 나타내니, 일체를 다 놓아버려 남은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계율과 두타(頭陀)의 공덕을 이루고자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행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은 인욕으로써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상해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은 정진으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몸과 마음의 차분한 모양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은 일체 선정과 지혜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일체 의지해야 할 모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걸림 없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무명의 어리석은 소견의 모양을 깨끗이 제거한 때문이며, 보살은 좋은 방편으로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일체 지어지는 모양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보살은 대자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허공의 모양과 같기 때문이며, 보살은 대비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5도(道)가 허공의 모양과 같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대희(大喜)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근심과 괴로운 모양을 없앤 때문이며, 보살은 대사(大捨)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괴롭고 즐거운 모양을 여윈 때문이며, 보살은 매우 신통한 지혜를 원만히 닦고서 훌륭한 장엄을 나타내니 해탈법을 관찰하되 마치 손바닥 보듯 하며 의심된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은 모든 법이 내가 없다는 것조차도 생각지 않고서 훌륭한 장엄을 나타내니 성문이나 연각의 자리 모양에 떨어질까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5음(陰)을 마치 도둑처럼 관찰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나타내니 환(幻)의 모양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은 4대(大)를 마치 독사처럼 관찰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법계의 모양과 같기 때문이며, 보살은 6입(入)을 마치 공(空)의 무더기처럼 관찰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원수나 도둑의 모양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은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소굴에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모든 있다는 것을 기어코 포섭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보살은 대비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물러가는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며, 보살은 위대한 의왕(醫王)이 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모든 중생이 소유한 병에 따라 법의 약을 주기 때문이며, 보살은 큰 상주(商主)가 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3승(乘)을 보여 주어 도의 모양을 내기 때문이다.
보살은 삼보(三寶)의 종자를 끊지 않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일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은 모든 법성이 생멸 없음을 알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모양을 얻은 때문이다.
보살은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삼계의 일체 번뇌를 버리고 성문이나 연각의 자리 모양을 버린 때문이며, 보살은 도량을 장엄하고서 훌륭한 장엄을 일으키니 한결같은 생각으로 여실(如實)히 지혜에 응하여 모든 법의 모양을 뚜렷이 알기 때문입니다.
가섭이여, 이것을 보살이 일으키는 서른두 가지의 훌륭한 장엄이라 하니, 보살마하살은 이런 장엄으로써
스스로 장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대의 체(體)는 그 성실을 변동할 수도 있지만 이 보살은 위없는 도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한 훌륭한 장엄만 일으켜도 오히려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이를 터인데, 더구나 서른두 가지나 되는군요. 또한 문수사리여, 성문법 가운데는 훌륭한 장엄이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그러므로 성문에는 모든 보살과 같은 큰 장엄과 나아가 명자까지도 없습니다. 대덕 가섭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비유컨대 용맹스런 장부는 모든 갑옷과 병기로써 스스로 잘 장엄을 하고 예리한 칼을 가졌는데, 못난 사람이 스스로의 장엄을 허술하게 하였다면 이 두 가지의 장엄이 서로 비슷하다 하겠습니까?’
저는 여쭈었습니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덕 가섭이여, 보살의 장엄은 일체 성문이나 모든 연각으로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보살이 훌륭한 장엄을 말할 때 1만 2천 천자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문수사리 동자의 불가사의한 신통과 이와 같은 한량없는 지혜를 보았습니다.”
이때 대덕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도 일찍이 문수사리 동자가 한 일을 보았습니다. 옛날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의 암라수(菴羅樹) 동산에서 큰 비구의 무리 5백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살차니건타자(薩遮尼乾陀子)가 비사리대성에 거주하면서 6만 권속과 같이 부처님께 공경히 공양하였습니다.
나는 마침 삼매에 들어서 그들 니건자를 관찰한 결과 백천이나 되는 니건자들이 마땅히 교화를 받아들일 듯하기에 즉시 그들에게 나아가 법문을 말하여 주었는데, 그들은 전혀 듣는 이도 없고 또한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도리어 비소하고 추악한 말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나는 하나도 교화를 받는 이가 없이
석 달 동안 헛수고만 하였고, 석 달을 지낸 다음에는 내 마음도 언짢아서 그대로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문수사리는 바로 5백 외도를 변화로 만든 다음 스스로 사범(師範)이 되어 그들 5백 제자를 거느리고 살차니건자 앞에 찾아가 그의 발아래 예배하고 살차에게 말하였다.
‘제가 일찍이 대사의 이름과 공덕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멀리 이 비사리 까지 왔습니다. 당신이 저의 스승이 되어 주신다면 저는 제자가 되겠으니, 원컨대 받아들여 가엾이 여기고 가르쳐 주셔서 저로 하여금 사문 구담(瞿曇)을 만나 보지도 않게 하시고, 또한 서로 엇갈리는 그의 법을 듣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이에 살차는 대답하였다.
‘좋다, 좋다. 그대는 순진하고 청정하니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내가 다스리는 법을 알 것이다.’
그런 다음 살차는 바로 자기의 무리에게 명령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이 5백 마납(摩納)과 화합하여 함께 살고 서로 묻되 너희들은, 그가 하는 말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이때 문수사리 동자와 화현한 5백 제자는 차례대로 앉아 니건자의 계법(戒法)을 들었는데 위의가 그들보다 뛰어났으며, 가끔 삼보의 공덕도 찬탄하고 한편 살차의 공덕도 찬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이 서로 가까워지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때 문수사리는 그들 대중이 이미 모인 것을 보고 문득 말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바 주술경서(呪術經書)와 비제차경(毘提遮經)을 읽고 외울 때에는 저 사문 구담이 지니신 공덕이 우리의 경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문 구담은 진실한 법과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저 사문 구담을 낳고 기른 부모님도 청정하였으며, 아울러 전륜왕의 종족으로서 온갖 복스런 상호로 그 몸을 장엄하였다.
또 듣건대 태어나실 때에 대지가 진동하였고, 제석ㆍ범천이 옹위하여 모셨으며, 바로 일곱 걸음을 거니시면서 입으로 외쳤다.
≺나는
일체 세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위대하므로 이제 나는 마땅히 모든 생사를 없애겠다.≻
제석과 범천은 공중에서 저절로 생겨난 두 가지 물로 목욕을 시켜드렸으며, 세간과 하늘의 음악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큰 광명은 온 세계를 두루 비추어 모든 악도(惡道)를 없애고, 귀머거리가 듣고 장님이 볼 수 있게 되어, 그때 일체 중생은 괴로움에 얽매이지 않아 안락하고 함이 없었다.
바라문이 관상하였다.
≺만약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왕이 되고 만일 출가하면 부처님[佛法王]이 되기도 하지만, 구담께서는 그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시며, 도량에서 백억의 마군을 항복 받고 보리(菩提)의 도를 이루신 다음 다른 사문ㆍ바라문이나 마군ㆍ범천 및 사천왕이나 하늘ㆍ사람이나 일체 세간에서는 도저히 굴릴 수 없는 묘한 법 바퀴를 굴리시니, 그 말씀하신 바가 참으로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모두 훌륭한 것이었다.
어떤 것이 처음이 훌륭한 것인가? 몸의 훌륭한 행과 입과 뜻의 훌륭한 행을 말한다. 어떤 것이 중간이 훌륭한 것인가? 수행하는 가운데 뛰어난 계율을 배워 행하며 뛰어난 정(定)과 뛰어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어떤 것이 나중이 훌륭한 것인가? 공삼매(空三昧)의 해탈 법문과 무상삼매(無相三昧)의 해탈 법문과 무원삼매(無願三昧)의 해탈 법문을 말한다.
또한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믿어 방일하지 않음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생각을 한 군데에 안정시킴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훌륭하고 묘한 지혜를 말함이다. 또한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부처님을 믿어 무너뜨리지 않음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법을 믿어 무너뜨리지 않음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증과를 얻은 훌륭한 스님들을 믿어 무너뜨리지 않음을 말한다.
또한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남으로부터 법문을 들음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바른 생각으로 수행함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바른 견해를 얻음을 말함이다. 또한 처음이 선하다는 것은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음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바른 도를 수행함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진멸(盡滅)의 이치를 증득함을 말함이니, 이를 성문의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보살의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훌륭한 것이라 하는가?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을 바로 처음이 훌륭한 것이라 하고, 하승(下乘)을 생각하지 않음을 바로 중간이 훌륭한 것이라 하고, 일체지에 회향함을 나중이 훌륭한 것이라 한다. 또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모든 중생에 대한 대자의 마음이 평등함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모든 중생에 대한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무슨 방편이든지 베풀어 줌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희(喜)와 사(捨)의 마음이 평등함을 말함이다.
또한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간탐(慳貪)함을 항복하고 파계함을 버리고 성냄을 여의고 게으름을 끊고 산란한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어리석음을 없애버림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모든 바라밀로써 일체지에 회향함을 말함이다.
또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교화함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른 법을 수호함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교묘한 방편으로 정위(正位)에 떨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또 처음이 훌륭하다는 것은 저 대지(大地)와 같이 유지하여 일체 보살의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음이며, 중간이 훌륭하다는 것은 훌륭한 방편으로 나아가고 멈출 줄을 알아서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머무름이며, 나중이 훌륭하다는 것은 일생 동안에 관정(灌頂)하여 정위(正位)를 받음을 말함이니, 이를 보살의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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