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3권
대반열반경 제13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7. 성행품 ③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집(集)의 참된 이치[集諦]를 관찰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집의 참된 이치가 음(陰)의 인연이라고 관찰한다. 집(集)이라는 것은 도리어 유(有)를 사랑하는[受] 것이다. 사랑에는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자기의 몸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는 필요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5욕락을 얻지 못하였을 때 마음을 두어 오로지 구하는 것이며, 얻고 나서 더욱 심하게 오로지 집착하는 것이다.
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욕계의 사랑이며 둘째는 색계의 사랑이며 셋째는 무색계의 사랑이다. 또 세 가지가 있다. 업의 인연으로 사랑하는 것과 번뇌의 인연으로 사랑하는 것과 고의 인연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출가한 사람에게는 네 가지 사랑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탕약이다. 또 다섯 가지가 있다. 곧 5음을 탐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에 따라 온갖 것을 애착하고 분별하여 헤아리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다.
선남자야, 사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한 사랑이며, 둘째는 선하지 못한 사랑이다. 선하지 못한 사랑은 어리석은 범부가 구하는 것이며, 선한 사랑은 보살이 구하는 것이다. 선한 법을 사랑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하지 못한 것이고 둘째는 선한 것이다. 2승을 구하는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라 하고 대승을 구하는 것은 선한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범부의 사랑은 집이라 이르고 참된 이치라 이르지 않으며, 보살의 사랑은 참된 이치라 이르고 집이라 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이며 사랑을 위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세존께서 다른 경전에서는 중생들에게 업이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혹은 교만과 6촉(觸)과 무명이 5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뜻으로 4성제(聖諦)를 말씀하시면서 오직 사랑의 성품만이 5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너의 말대로 모든 인연이 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5음은 반드시 사랑을 원인으로 한다. 선남자야, 비유하면임금이 밖으로 유행(遊行)을 다니면 대신과 권속이 모두 따라다니듯이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이 가는 곳에는 모든 번뇌들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비유하면 끈끈한 옷에는 티끌이 와서 닿는 대로 붙는 것처럼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는 곳을 따라서 업과 번뇌도 머무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야, 축축한 땅에는 모든 싹이 잘 나는 것처럼 사랑도 그러하여 모든 업과 번뇌의 싹을 내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사랑을 깊이 관찰하는 데 아홉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고, 둘째는 나찰의 딸로 아내를 삼은 것 같고, 셋째는 아름다운 꽃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고, 넷째는 식성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먹는 것 같고, 다섯째는 음란한 여자와 같고, 여섯째는 마루가(摩樓迦)의 씨와 같고, 일곱째는 부스럼 속에 군살[瘜]과 같고, 여덟째는 폭풍과 같고, 아홉째는 살별[彗星]과 같다.
왜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남에게 빚을 졌을 때, 아무리 갚으려 하여도 남은 빚 때문에 옥에 갇혀 풀려나지 못한다. 성문이나 연각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는 버릇[習氣]이 남아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왜 나찰의 딸로 아내를 삼은 것 같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나찰의 딸을 데려다가 아내를 삼았는데, 그 나찰의 딸이 아이를 낳는 대로 잡아먹고, 아이를 모두 잡아먹고는 또 남편까지 잡아먹었다. 선남자야, 사랑이란 나찰의 딸처럼 중생들이 선근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선근의 아이가 끝나면 또 중생까지 잡아먹어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게 하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나찰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왜 아름다운 꽃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는 성품이 있었는데, 꽃가지에 독사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나아가서 꽃을 잡았다. 그리고 잡는 동시에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 모든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5욕락의 꽃을 탐내어 애욕의 독사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문득 취하면 애욕의 독사에게 물려서 죽는다. 그리고 3악도에 떨어지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아름다운 꽃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왜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 복통이 생겨 설사가 나서 죽는 것과 같다. 사랑이란 음식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갈래 중생들이 탐욕과 집착으로 억지로 먹고 그 인연으로 3악도에 떨어지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음란한 여자와 같다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음란한 여자와 정을 통하면 그 여자는 갖가지 교태를 부리며 친절한 모양을 나타내어 이 사람이 가진 재산을 몽땅 빼앗고, 재산이 없어지면 마침내 쫓아내는 것과 같다. 사랑이란 음녀도 그와 같아서 지혜 없는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어 정을 통하면 사랑이란 음녀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선한 법을 몽땅 빼앗는다. 그리고 선한 법이 없어지면 쫓아내어 3악도에 떨어지게 하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음란한 여자와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마루가(摩樓迦) 씨와 같다고 하는가? 비유하면 마루가 씨를 새가 먹으면 똥에 섞여 땅에 떨어지거나 바람에 불려 나무 밑에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문득 싹이 트고 자라서 니구타(尼拘陀)나무에 감기고 얽혀,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게 하는 것과 같다. 사랑이라는 마루가 씨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법을 얽어서 자라지 못하고 말라 없어지게 한다. 그리고 말라 없어져 3악도에 떨어지게 하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마루가 씨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부스럼 속에 있는 군살[瘜]과 같다고 하는가? 사람이 부스럼이 오래되어 군살이 박히면 그 사람은 부지런히 다스리고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내버려 두면 군살이 점점 커져 벌레가 생기고 창질이 되어 그 인연으로 필경엔 죽게 되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범부의 5음 부스럼도 그와 같아서 사랑이 그 속에서 군살이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부지런히 사랑의 군살을 다스려야 한다. 만일 다스리지 않으면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부스럼 속의 군살과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폭풍과 같다 하는가? 거센 폭풍은 산을 흔들고 천지를 진동하며 깊이 박힌 뿌리를 뽑는 것과 같다. 애욕의 폭풍도 그와 같아서 부모에게도 나쁜 마음을 내며, 지혜 많은 사리불 등의 위없이 깊이 박힌 보리의 뿌리도 뽑지만 보살은 제외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폭풍과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혜성과 같다고 하는가? 비유하면 혜성이 나타나서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흉년과 병에 쪼들리며 모든 고통에 얽히는 것과 같다. 사랑이라는 혜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근의 종자를 끊어 버리며, 범부들로 하여금 곤궁한 흉년을 만나고 번뇌라는 병에 얽혀 나고 죽는 데서 헤매면서 온갖 고통을 받게 하지만 보살만은 제외된다. 이것을 혜성과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러한 아홉 가지 사랑의 결박을 관찰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범부들은 괴로움만 있고 참된 이치는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괴로움도 있고 참된 이치도 있으나 진실한 것은 없으며, 보살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으므로 괴로움은 없고 진실한 참된 이치가 있다고 한다.
또 범부들은 집(集)만 있고 참된 이치[諦]는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집도 있고 집의 참된 이치[集諦]도 있으며 보살들은 집에서 벗어나 집이 없으므로 집은 없고 진실한 참된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은 멸(滅)이 있으나 진실한 것이 아니며, 보살마하살은 멸도 있고 진실한 참된 이치도 있다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은 도가 있어도 진실하지 않지만 보살마하살은 도도 있고 진실한 참된 이치도 있다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멸도 보고 멸의 참된 이치[滅諦]도 본다고 하는가? 이것은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만일 번뇌가 끊어지면 항상하다 하고, 번뇌의 불을 멸하면 적멸이라 한다. 또 번뇌가 없어지므로 즐거움을 받게 되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은 인연을 구하므로 깨끗하다고 한다. 또 25유(有)를 받지 않으므로 세상을 벗어났다고 하며, 세상을 벗어났으므로 나는 항상하다고 이름한다.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힘이나, 남자ㆍ여자나 나고 머물고 없어짐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적멸한 참된 이치라 이름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이렇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멸의 참된 이치[滅聖諦]를 관찰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도의 참된 이치[道聖諦]를 관찰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두운 가운데서는 등불에 의하여 크고 작은 물건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8성도에 의하여 온갖 법을 보는 것이다. 항상한 것[常]과 무상한 것[無常], 함이 있는 것[有僞]과 함이 없는 것[無爲], 중생과 중생 아닌 것, 물(物)과 물 아닌 것[非物], 괴로움과 즐거움, 나[我]와 내가 없음[無我], 깨끗함[淨]과 깨끗하지 않음[不淨], 번뇌와 번뇌 아닌 것, 업과 업 아닌 것, 진실함[實]과 진실하지 않음, 승(乘)과 승 아닌 것, 알음알이와 알음알이 없는 것, 다라표(陀羅驃)와 다라표 아닌 것, 구나(求那)와 구나 아님, 견(見)과 견 아님, 색과 색 아님, 도와 도 아님, 풀림[解]과 풀리지 않음, 보살이 이와 같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8성도(聖道)가 도의 참된 이치[道聖諦]라면 뜻이 상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믿는 마음이 도이니 모든 번뇌를 제도한다고 설하시고, 혹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 도이니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고 설하시며, 또 이것은 보살의 도를 돕는 법이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정진하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시고 또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몸의 염처[身念處]를 관찰하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며, 마음을 오로지하여 몸의 염처를 부지런히 정진하고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바른 정[正定]이 도라고 말씀하시고 마하가섭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른 정이 참으로 도이고, 바르지 않은 정은 도라고 하지 않는다.
만일 바른 정에 들면 5음의 나고 없어짐을 생각할 수 있지만 바른 정에 들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혹은 한 법을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닦아 익히면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모든 근심과 괴로움과 번뇌를 멸하고 바른 법을 얻게 된다. 곧 이것을 염불삼매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무상한 생각을 닦는 것이 도라고 하시고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무상한 생각을 많이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혹은 ‘고요한 절간 같은 데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이루리라’하고 말씀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사람에게 법문을 연설함이 도라고 말씀하시면서 ‘법문을 들으면 의심이 끊어지고 의심이 끊어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계행을 가지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금계를 부지런히 닦아 지니면 그 사람은 나고 죽는 고통에서 제도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이는 깨끗한 계율에 안정된 것이며, 어떤 중생이 나에게 친근히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말씀하시기를 ‘자비를 닦는 것이 도이니 자비를 닦는 이는 번뇌를 끊고 흔들리지 않는 곳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지혜가 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부처님께서 파사파제(波闍波提) 비구니에게 이르시기를 ‘자매여, 성문들처럼 지혜의 칼로 모든 종류의 번뇌를 끊으라’하셨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보시가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부처님께서 예전에 바사닉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왕은 마땅히 내가 지나간 옛날에 보시를 많이 행한 인연으로 오늘날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이루었음을 아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8성도가 도의 참된 이치라고 한다면 이런 경전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저 여러 경전들이 허망하지 않다면 저 경전에는 무슨 인연으로 8성도는 도의 참된 이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경전에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여래께서 그때는 어찌하여 잘못하셨습니까? 그러나 저는 반드시 부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잘못을 멀리 떠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너는 지금 보살 대승의 미묘한 경전에 있는 비밀을 알고자 하여 이렇게 묻는구나. 선남자야, 그러한 모든 경전이 모두 도라는 참된 이치에 들어갔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믿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믿는 것이 신심의 근본이며 보리의 도를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한 것이 잘못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한량없는 방편을 잘 알고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렇게 가지가지로 법을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마치 훌륭한 의원이 중생들의 가지각색 병의 원인을 알고 그 병에 따라 약을 지으며 금기할 것을 잘 알지만 물은 금기하는 데 들지 않는다. 혹 생강 물ㆍ감초 물ㆍ세신(細辛) 물ㆍ흑설탕 물ㆍ아마륵 물ㆍ니바라(尼婆羅) 물ㆍ발주라(鉢晝羅) 물을 먹기도 하고, 혹 찬물ㆍ더운 물ㆍ포도 물ㆍ안석류(安石榴) 물을 먹기도 한다.
선남자야, 이와 같이 훌륭한 의사는 중생들의 병을 잘 알며 가지각색 약에 금기가 많지만 물은 금기에 들지 않는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방편을 잘 알고 한 가지 법에서도 중생을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과 모양을 분별하여 말하는 것이다. 저 중생들이 말하는 대로 받아 지니고 받고 닦아 익히면 번뇌를 끊게 되는 것이다.
마치 병난 사람이 의원의 가르침을 따르면 병이 낫는 것과 같다.
또 선남자야, 여러 가지 말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 대중이 갈증을 견디지 못하여 외쳐 말하기를 ‘나는 물이 마시고 싶다. 나는 물이 마시고 싶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냉수를 가지고 그 사람들에 따라서 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파니(波尼) 혹은 울특(鬱特)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리람(利藍) 혹은 사리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바야(婆耶) 혹은 감로 혹은 우유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물의 이름으로 대중에게 말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여래께서도 그와 같아서 한 가지 성인의 도[一聖道]로써 여러 성문을 위하여 ‘믿는 근본[信根本]’으로부터 나아가 8성도까지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선남자야, 비유하면 금으로 장식품을 만드는 사람이 한 가지 금으로 여러 가지 영락을 마음대로 만드는 것과 같다. 목걸이ㆍ금사슬ㆍ가락지ㆍ팔찌ㆍ비녀ㆍ귀고리ㆍ천관(天冠)ㆍ비인(臂印) 따위로,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모두 금이 아닌 것은 없다.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 가지 부처님의 도를 중생들에 따라서 가지가지로 분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혹 한 가지로 말하니 부처님의 도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고 하며 혹 두 가지로 말하니 선정과 지혜이며, 세 가지로 말하니 소견과 지혜와 슬기며, 네 가지로 말하니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도(無學道)ㆍ불도(佛道)이다. 혹 다섯 가지로 말하니 믿고 행하는 도[信行道]ㆍ법대로 행하는 도[法行道]ㆍ믿고 해탈하는 도[信解脫道]ㆍ보고 이르는 도[見到道]ㆍ몸으로 증하는 도[身證道]이며, 여섯 가지로 말하니 수다원도ㆍ사다함도ㆍ아나함도ㆍ아라한도ㆍ벽지불도ㆍ불도이이다.
혹 일곱 가지로 말하니 염각분(念覺分)ㆍ택법(擇法)각분ㆍ정진(精進)각분ㆍ희(喜)각분ㆍ제(除)각분ㆍ정(定)각분ㆍ사(捨)각
분이며, 여덟 가지로 말하니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며, 아홉 가지로 말하니 여덟 성인의 도[八聖道]와 믿음이다.
혹 열 가지로 말하니 10력(力)이며, 열한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大慈)이며, 혹 열두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大悲)이며, 열세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이며, 열여섯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와 부처님께서 얻으신 3정념처(正念處)이며, 또 스무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와 3정념처이다.
선남자야, 도는 하나이지만 여래가 예전에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로 분별하셨던 것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불은 하나이지만 타는 것을 말미암아 가지가지 이름이 있어 장작불ㆍ짚불ㆍ겻불ㆍ밀기울불ㆍ소똥불ㆍ말똥불 등이라고 하는 것같이 선남자야, 불도도 그러하여 하나이며 둘이 아니지만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한 가지 식(識)을 여섯 가지로 분별하여 눈에서는 안식이라 하고, 나아가 뜻에서는 의식이라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도란 것도 그와 같아서 하나이며 둘이 아니지만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시느라고 갖가지로 분별하시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한 가지 색(色)이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빛이라 하고 귀로 듣는 것은 소리라 하고, 코로 맡는 것은 냄새라 하고 혀로 맛보는 것은 맛이라 하고, 몸으로 깨닫는 것은 촉이라 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도도 그와 같아서 하나이며 둘이 아니지만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시느라고 갖가지로 분별하셨다.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8성도를 이름하여, 도의 참된 이치[道聖諦]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4성제를 부처님 세존께서 차례로 말씀하였으니 이런 인연으로 한량없는 중생이 나고 죽는 데서 제도되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부처님께서 어느 때에 항하의 언덕 시수림(尸首林) 속에 계실 때에 작은 나뭇잎을 드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손에 잡은 잎이 많겠느냐, 모든 땅에 있는 풀과 나무의 잎이 많겠느냐?’ 하셨다. 비구들이 ‘세존이시여, 모든 땅에 있는 풀과 나뭇잎은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나, 여래께서 잡으신 잎은 적어서 말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여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내가 깨달은 모든 법은 땅에 난 초목의 잎과 같고, 내가 중생을 위하여 말한 법은 손에 잡은 잎과 같다’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래의 깨달으신 한량없는 법이 만일 4제(諦)에 들어간다면 이미 말씀하신 것이며 만일 들어가지 않는다면 5제(諦)가 있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그대가 지금 물은 것은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모든 법은 모두 4성제 안에 들어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한 법이 4제 안에 들어 있다면 여래께서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야, 비록 그 안에 들어있지만 말하였다고 이름할 수 없다. 왜냐하면 4성제를 아는 데 두 가지 지혜가 있으니, 하나는 중품 지혜이며 다른 하나는 상품 지혜이다. 중품은 성문ㆍ연각의 지혜이며, 상품은 부처님과 보살의 지혜이다. 선남자야, 모든 음(陰)이 고통인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음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그러나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입(入)이란 것을 문(門)이라 하고 고통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입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이다. 이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계(界)란 것을 분(分)이라 하고 성품이라 하고 고통이라 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한다. 모든 계를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색(色)이 파괴되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색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느낌[受]으로 깨닫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느낌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깨닫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상(想)으로 모습을 취하여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이 생각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취하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행[行]으로 짓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행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짓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식(識)으로 분별하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식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아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사랑의 인연으로 5음을 내는 것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한 사람의 사랑을 일으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줄은 성문ㆍ연각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 온갖 중생이 일으키는 이러한 사랑을 아는 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번뇌를 멸함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번뇌를 분별함을 헤아릴 수 없고 멸함도 그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도의 모양이 번뇌를 여의는 것인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도의 모양을 분별함이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여의는 번뇌도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세제(世諦)를 아는 것을 중품 지혜라 하고, 세제를 분별함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야, 온갖 행(行)이 무상하고 모든 법이 내가 없고 열반이 고요한 것이 제일의(第一義)인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한다. 제일의가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아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한다.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세제와 제일의제의 뜻이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제일의제 가운데 세제가 있습니까? 세제 가운데 제일의제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1제(一諦)일 것이고 없다면 여래의 허망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선남자야, 세제란 것이 곧 제일의제인 것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2제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좋은 방편[善方便]이 있어서 중생들을 따라서 2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말만을 따른다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간법이며 둘째는 출세간법이다. 선남자야, 출세간의 사람이 아는 것은 제일의제라 하고 세간 사람이 아는 것은 세제라 한다. 선남자야, 5음(陰)이 화합한 것을 아무개라 하며 범부 중생이 그 일컫는 대로 따르는 것은 세제라 한다. 5음에도 아무개라는 이름이 없고, 5음을 여의고도 아무개라는 이름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출세간 한 사람이 그 성품과 모양과 같이 아는 것을 제일의제라 한다.
또 선남자야, 혹 어떤 법은 이름도 있고 실상도 있으며, 혹 어떤 법은 이름은 있으나 실상이 없다. 선남자야, 이름은 있으나 실상이 없는 것은 곧 세제이며, 이름도 있고 실상도 있는 것은 제일의제이다. 선남자야, 나ㆍ중생ㆍ수명ㆍ알고 보는 것[知見]ㆍ기르는 것[養育]ㆍ장부(丈夫)ㆍ짓는 이[作者]ㆍ받는 이[受者]ㆍ더울 때의 아지랑이ㆍ건달바 성ㆍ거북의 털ㆍ토끼의 뿔ㆍ불 바퀴[旋火輪]ㆍ5음ㆍ18계ㆍ6입 등은 세제라 이름하고, 고ㆍ집ㆍ멸ㆍ도는
제일의제라 한다.
선남자야, 세간법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명사(名詞) 세간이며, 둘째는 구절(句節) 세간이며, 셋째는 속박(束縛) 세간이며, 넷째는 법 세간이며, 다섯째는 집착(執着) 세간이다. 명사 세간이란 남자ㆍ여자ㆍ옹기ㆍ옷ㆍ수레ㆍ집 등의 물건을 명사 세간이라 하다. 또 구절 세간이란 네 글귀가 한 게송이라 하는 따위의 게송을 구절 세간이라 한다. 또 속박 세간이란 걷어 합하는 것ㆍ얽어매는 것ㆍ속박ㆍ합장 따위를 속박 세간이라 한다. 무엇이 법 세간인가? 종을 쳐서 대중을 모으며 북을 울려 군대를 준비시키며 소라를 불어 시간을 알리는 것 따위를 법 세간이라 한다.
무엇을 집착 세간이라 하는가? 물든 옷 입은 사람이 멀리 있는 것을 보고는 저는 사문이지 바라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노끈을 맺어서 몸에 가로 찬 사람을 보고는 저 사람은 바라문이지 사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는 집착 세간이다. 선남자야, 이런 것을 다섯 가지 세간법이라 한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이런 다섯 가지 세간법에 대하여 잘못된 마음이 없어 사실대로 아는 것은 제일의제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타거나 베거나 죽거나 파괴함은 세제라 하고, 타는 일이 없고 베어지지 않고 죽는 일이 없고 파괴됨이 없는 것은 제일의제라 한다. 또 선남자야, 여덟 가지 괴로운 모양은 세제라 하고, 나는 일도 없고 늙음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랑과 이별하는 것도 없고 미운 이와 만나는 것도 없고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도 없고 5음이 성한 것도 없는 것을 제일의제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뛸 때에는 뛰는 이라 하고, 거둘 때에는 거두는 이라 하고, 음식을 장만할 때에는 식모라 하고, 재목을 다룰 때에는 목수라 하고, 금ㆍ은을 다룰 때에는
금은 장인이라 한다. 이처럼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같이, 법도 그러하여 실상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화합으로 인하여 나는 것은 세제라 하고 12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은 제일의제라 한다.”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진실한 이치[實諦]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뜻이 어떤 것입니까?”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이름이 참된 법이다. 선남자야, 법이 참되지 않으면 진실한 이치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뒤바뀜이 없는 것이니, 뒤바뀜이 없는 것을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허망이 없는 것이니 허망이 있으면 진실한 이치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이름이 대승이니, 대승이 아니면 진실한 이치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며 마군의 말이 아니다. 만일 마군의 말이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라면 진실한 이치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항상하고[常] 즐겁고[樂] 내[我]가 있고 깨끗한 것[淨]을 진실한 이치라고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참된 것이 진실한 이치라면 참된 법은 여래와 허공과 불성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와 허공과 불성이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괴로움[苦]이 있고 이치[諦]가 있어 진실이 있으며, 집(集)이 있고 이치 가 있어 진실이 있다. 열반[滅]이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으며, 도(道)가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다. 선남자야, 여래는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며, 허공은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며, 불성은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다.
문수사리야,
괴로움이라는 것은 무상한 모습이며 끊을 모습이어서 진실한 이치가 되는 것이다. 또 여래의 성품은 괴로움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끊을 모습도 아니므로 진실이 되는 것이며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또 선남자야, 집이라는 것은 5음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괴로움이라고도 하고 무상이라고도 하고 끊을 수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여서, 진실한 이치가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집의 성품도 아니고 음(陰)의 원인도 아니고 끊을 수 있는 모습도 아니므로 진실이라 한다. 또한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다.
선남자야,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가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항상하다고도 하고 무상하다고도 한다. 곧 2승들이 얻는 것은 무상이라 하고 부처님께서 얻는 것은 항상하다고 하며 증득한 법이라고도 하므로, 진실한 이치라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열반이라 이름하지 않으나 번뇌를 없애며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니다. 또 증득하여 안다고도 이름하지 않으며 항상 머물러서 변함이 없으므로 진실이라 한다. 또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선남자야, 도라고 하는 것은 능히 번뇌를 끊으며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며 닦아야 할 법이므로 진실한 이치라 한다. 여래는 도가 아니지만 번뇌를 끊으며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니며 닦아야 할 법도 아니며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으므로 진실이라 한다. 또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다.
또 선남자야, 진실이라는 것은 곧 여래이며 여래는 곧 진실이다. 또 진실이라는 것은 곧 허공이며 허공은 곧 진실이다. 진실이라는 것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진실이다. 문수사리야,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괴로움의 다함도 있고 괴로움의 대상도 있다. 여래는 괴로움이 아니며 나아가 괴로움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진실이라 말하고 이치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또 허공과 불성도 그와 같다. 괴로움이란
것은 함이 있고 번뇌가 있으며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는 함이 있음이 아니고 번뇌가 아니고 고요하여 안락하므로 진실이며 이치는 아닌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뒤바뀌지 않는 것을 진실한 이치라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네 가지 이치 가운데 네 가지 뒤바뀜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어찌하여 뒤바뀜이 없는 것을 진실한 이치라 이름하고 온갖 뒤바뀜이 있는 것은 진실이라 이름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모든 뒤바뀐 것은 모두 괴로운 이치[苦諦]에 들어간다. 모든 중생에게 뒤바뀐 마음이 있으므로, 뒤바뀌었다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부모와 존장의 가르침을 받지 않거나, 받고도 수행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을 뒤바뀌었다 한다. 이렇게 뒤바뀐 것이 괴로움 아닌 것이 없으므로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허망하지 않으면 곧 진실한 이치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허망한 것은 진실한 이치가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온갖 허망한 것은 모두 괴로운 이치에 들어가므로, 어떤 중생이 남을 속이면 그 인연으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법들을 허망이라고 한다. 이러한 허망은 고통 아님이 없으므로 괴로움이며, 성문ㆍ연각이나 부처님 세존께서는 멀리 여의고 행하지 않는 것이므로 허망이라 이름한다. 이러한 허망을 부처님이나 2승은 끊어 버리는 것이므로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대승이 진실한 이치라면 성문이나 벽지불승은 진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2승들은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하니 성문ㆍ연각이 모든 번뇌를 끊은 것은 진실이라 이름하고,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않음은 바뀌는 법이므로
진실하지 않다고 한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으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하다면 마군의 말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군이 말한 것이 성인의 이치에 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마군이 말한 것은 두 가지 이치[二諦]에 포섭되는데, 괴로움과 집(集)이다. 무릇 이런 것은 법도 아니고 계율도 아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지 못하며, 종일토록 말하여도 한 사람도 괴로움을 보고 집을 끊으며, 열반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는 이가 없으므로 허망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허망한 것을 마군의 말이라고 한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다’ 하셨는데, 외도들도 말하기를 ‘내게 있는 한 가지 도는 청정하고 둘이 없다’고 합니다. 만일 한 가지 도가 진실한 이치라면, 저 외도들과 더불어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만일 차별이 없다면 한 가지 도가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든 외도는 괴로움이란 참된 이치와 집이란 참된 이치만 있고, 열반이란 참된 이치와 도라는 참된 이치는 없다. 열반이 아닌데 열반이라 생각하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 생각하고, 과(果)가 아닌 것을 과라 생각하고, 인(因)이 아닌 것을 인이라 생각하니 이러한 뜻으로 저들에게는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다’는 것이 없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항상하고 내가 있고 즐겁고 깨끗한 것을 진실한 이치라 한다’고 하면, 모든 외도에게 진실한 이치가 있고 부처님 법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도들도 말하기를 ‘모든 행(行)이 항상한 것이다. 어찌하여 항상하다 하는가? 뜻에 맞든지 뜻에 맞지 않든지 간에, 모든 업보를 잃어버리지 않고 받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뜻에 맞는 것은 10선업의 과보이며 뜻에 맞지 않는 것은 10불선업의 과보이니 만일 모든 행이 무상하다면 업을 지은 이는 여기서 없어졌는데, 누가 저기서
과보를 받겠습니까? 이런 뜻으로 모든 행이 항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인연이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행이 무상하다면 죽인 것과 죽은 것이 둘이 모두 무상한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누가 지옥에서 죄의 갚음을 받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지옥에서 과보를 받는다면 모든 행이 무상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을 오로지 두어 생각하는 것도 항상하다 할 것입니다. 가령 10년 전에 생각하던 것을 100년이 되어도 잊어버리지 않으므로, 항상하다고 하겠습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본래 생각하던 일을 누가 기억하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인연으로 온갖 행이 무상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기억도 항상하다 할 것입니다. 곧 어떤 사람이 먼저 보았던 다른 이의 손ㆍ발ㆍ머리ㆍ목 등의 모습을 오랜 뒤에 보고는 문득 기억하게 됩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본래 보았던 모습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가지 지어야 할 업을 오래 익혔다면 처음 배웠던 때로부터 3년을 지나거나 5년을 지나서도 잘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셈하는 법은 하나로부터 둘이 되고, 둘로부터 셋이나 나아가 백천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첫 번째의 하나가 없어질 것이며, 첫 번째의 하나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둘이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하나뿐이고 둘이 될 수 없지만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므로 둘이 되고 나아가 백천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읽고 외우는 것처럼 한 아함(阿含)을 외우고 두 아함에 이르며, 나아가 세 아함과 네 아함에 이릅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외우는 일이 4아함에 이를 수 없을 것인데, 이와 같이 외우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인연으로 항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옹기나 옷이나 수레나 남의 빚을 지는 것이나 땅의 현상ㆍ산ㆍ강ㆍ나무ㆍ숲ㆍ약초ㆍ잎새ㆍ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일 따위가 모두 항상한 것도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이 다 말하기를 ‘모든 행이 항상하다’고 하니, 만일 항상하다면, 곧 진실한 이치라고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떻게 아느냐 하면 받는 이가 뜻에 맞는 과보를 얻는 까닭이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움을 받을 이는 반드시 그것을 얻으니 이른바 대범천왕ㆍ대자재천ㆍ석제환인ㆍ비뉴천과 모든 인간과 천신들이 이런 이치로 반드시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즐거움이 있다. 중생들로 하여금 소망을 구하게 하는 까닭이다. 굶주린 이는 밥을 구하고 목마른 이는 물을 구하고 추운 이는 따듯함을 구하고 더운 이는 서늘함을 구하고 피곤한 이는 쉬기를 구하고 병난 이는 낫기를 구하고 애욕이 있는 이는 색을 구한다. 만일 즐거움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구하겠는가? 구하는 것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는 줄 안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보시하면 즐거움을 얻는다. 세상 사람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곤란한 이에게 의복ㆍ음식ㆍ와구ㆍ의약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가루향ㆍ바르는 향ㆍ집ㆍ의지할 데ㆍ등불 따위로 즐거이 보시한다. 이렇게 갖가지로 보시하는 것은 내가 후세에 좋은 과보를 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인연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는 줄을 안다. 즐거움을 받는다는 것은 인연이 있으므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만일 즐거움이 없다면 어찌 인연이 있겠는가? 토끼 뿔은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없지만 즐거움은 인연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상품ㆍ중품ㆍ하품으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하품의 즐거움은 제석천왕이며, 중품의 즐거움은 대범천왕이며, 상품의 즐거움은 대자재
천왕이다. 이러한 상품ㆍ중품ㆍ하품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안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깨끗함이 있다. 왜냐하면 깨끗함이 없으면 탐욕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만일 탐욕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깨끗함이 있음을 알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 말하기를 ‘금ㆍ은ㆍ보배ㆍ유리ㆍ파리ㆍ자거ㆍ마노ㆍ산호ㆍ진주ㆍ구슬ㆍ옥ㆍ가패(珂貝)ㆍ냇물ㆍ연못ㆍ음식ㆍ의복ㆍ꽃ㆍ향ㆍ가루향ㆍ바르는 향ㆍ등촉의 밝음 따위들이 모두 깨끗한 것이다. 또 깨끗한 것이 있다. 5음은 곧 깨끗한 그릇에 깨끗한 물건을 담은 것으로서 인간ㆍ천신ㆍ신선ㆍ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부처님들이다. 이런 뜻으로 깨끗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내가 있다. 보는 일이 있으며 짓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옹기장이 집에 들어가서 비록 옹기장이의 몸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옹기장이의 물레와 노끈을 보고는 그 집에 옹기장이가 있을 줄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나란 것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색을 보고 반드시 내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만일 내가 없으면 누가 색을 보겠습니까? 소리를 듣거나 나아가 촉감[觸]과 법을 아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또한 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모양으로 인하여 아는 것입니다. 무엇을 모양이라 합니까? 숨 쉬고 눈 깜박이고 목숨이 있고 마음을 쓰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탐내고 성내는 따위가 모두 나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으니 맛을 분별하는 까닭입니다. 어떤 사람이 과일을 먹으면 맛을 알므로 내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도구를 들고 업을 짓기 때문입니다. 낫을 들고 풀을 베며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으며 병을 들고 물을 길으며 수레를 잡고 말을 모는 따위가 모두 내가 도구를 들고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갓 태어났을 때에 젖을 먹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버릇이므로 내가 있는 줄을 반드시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화합하여 다른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병ㆍ옷ㆍ수레ㆍ밭ㆍ집ㆍ산림ㆍ나무ㆍ코끼리ㆍ말ㆍ소ㆍ양 등이 화합하면 이익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속에 있는 5음도 그러하여 눈 따위의 근이 화합하였으므로 나를 이익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부인(否認)하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物]이 있으므로 부인함이 있지만, 물질이 없으면 부인할 것이 없다. 만일 부인함이 있으면 내가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짝하고 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한 것과 친하지 않은 것은 짝이 아니고 바른 법과 삿된 법은 짝이 아니고, 지혜 있고 지혜 없는 것은 짝이 아니며, 사문과 사문 아닌 이ㆍ바라문과 바라문 아닌 이ㆍ아들과 아들 아닌 이ㆍ낮과 낮 아닌 것ㆍ밤과 밤 아닌 것ㆍ나와 나 아닌 것 따위는 짝하거나 짝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내가 있는 줄을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이 가지가지로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반드시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뜻으로 외도들도 나가 있다는 것은 참된 이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항상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고 나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이는 사문이 아니며 바라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고 죽는 데 미혹되어 온갖 지혜인 대도사를 떠났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사문ㆍ바라문들은 탐욕에 빠져서
선한 법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또 이 외도들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의 옥에 갇혀서 참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외도들은 업과 과보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줄을 알지만 나쁜 법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외도들은 바른 법과 바른 생활[正命]로 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혜의 불이 없어서 소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 외도들이 비록 훌륭한 5욕락을 탐구하려 하지만 선한 법이 부족하여 부지런히 닦지 않기 때문이며, 또 이 외도들이 비록 바른 해탈에 이르고자 하지만 계율을 가지는 일이 성취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이 외도들이 비록 즐거움을 구하지만 즐거움의 인연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 외도들이 비록 온갖 고통을 미워하지만 그의 행하는 일이 고통의 인연을 여의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4대의 독사에게 얽혀 있으면서도 방일한 짓만 행하고 조심하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무명에 덮여서 선한 벗을 멀리 떠나고 무상한 삼계의 활활 타는 큰불 속에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고치기 어려운 번뇌의 병을 만나고도 지혜 있는 용한 의원을 구하지 않으며, 이 외도들이 오는 세상에서 그지없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인데, 선한 법의 양식으로 장엄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 외도들이 항상 음욕이라는 재앙의 해침을 받으면서도 도리어 5욕락의 독함을 안고 있으며, 이 외도들이 성내는 마음이 치성하면서도 도리어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이 외도들이 항상 무명에 덮여 있으면서도 도리어 나쁜 법을 구하며, 이 외도들이 항상 삿된 소견에 속으면서도 도리어 그 속에 친근한 생각을 내며, 이 외도들이
맛있는 과일을 먹으려 하면서도 쓴 종자를 심기 때문이다.
또 이 외도들이 번뇌의 캄캄한 방에 있으면서도 도리어 지혜의 횃불을 멀리 여의며, 이 외도들이 번뇌의 목마름을 걱정하면서도 도리어 짠물을 마시며, 이 외도들이 나고 죽는 끝없는 바다에 빠졌으면서도 도리어 훌륭한 뱃사공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 외도들이 미혹하고 전도되어 모든 행이 항상하다고 말하지만 모든 행이 항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114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5권 (4) | 2023.10.11 |
---|---|
[적어보자] #3113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4권 (2) | 2023.10.11 |
[적어보자] #3111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2권 (4) | 2023.10.11 |
[적어보자] #3110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1권 (4) | 2023.10.10 |
[적어보자] #3109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0권 (2) | 2023.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