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2권
대반열반경 제12권
북량 천축 삼장 담무참 한역
7.성행품②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성스러운 행이라는 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몸을 살피는 것이다. 그 속에는 다만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발톱ㆍ치아ㆍ부정한 것ㆍ더러운 때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지라[脾]ㆍ콩팥ㆍ염통ㆍ허파ㆍ간ㆍ쓸개ㆍ창자ㆍ위부ㆍ생장(生藏)ㆍ숙장(熟藏)ㆍ대변ㆍ소변ㆍ콧물ㆍ침ㆍ눈물ㆍ지방ㆍ뇌막ㆍ골수ㆍ고름ㆍ피ㆍ혈관 따위가 있을 뿐이다.
보살이 이렇게 전심으로 관찰할 때에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나는 무엇에 소속되어 있으며,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는가?’하고 생각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뼈가 나이겠는가? 뼈를 떠나서 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보살이 그때 가죽과 살을 제외하고 백골만을 관찰하면서 또 생각하기를 ‘백골 빛이 제각기 달라서 푸른빛ㆍ누른빛ㆍ흰빛ㆍ잿빛이니 이런 백골도 나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란 것은 푸른빛ㆍ누른빛ㆍ흰빛ㆍ잿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렇게 마음을 써서 관찰할 때 온갖 색욕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또 생각하기를 ‘뼈란 것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니, 발 뼈를 의지하여 복사뼈를 받치고, 복사뼈를 의지하여 정강이뼈를 받치고, 무릎 뼈를 의지하여 넓적다리뼈를 받치고, 넓적다리뼈를 의지하여 볼기 뼈를 받치고, 볼기 뼈를 의지하여 허리뼈를 받치고, 허리뼈를 의지하여 등골뼈를 받치고, 등골뼈를 의지하여 갈빗대를 받치고, 또 등골뼈를 의지하여 위로 목의 뼈를 받친다. 목의 뼈를 의지하여 턱뼈[頷骨]를 받치고,
턱뼈를 의지하여 치아를 받치고, 위로는 두골을 받치고, 또 목의 뼈로 어깨뼈를 받치고, 어깨뼈를 의지하여 팔뼈를 받치고, 팔뼈를 의지하여 손목뼈를 받치고, 손목뼈를 의지하여 손바닥뼈를 받치고, 손바닥뼈를 의지하여 손가락뼈를 받쳤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 몸에 있는 뼈들이 모두 나뉘어 떨어졌으며, 이런 관찰을 하고나서 세 가지 욕망을 끊었다. 첫째는 형체의 욕망, 둘째는 자태(姿態)의 욕망, 셋째는 보드랍게 닿는 욕망[細觸欲]이었다.
보살마하살이 푸른빛의 백골을 관할 때에, 이 땅의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가 모두 푸른 모양이었다. 또 푸른빛을 관하는 것과 같이 누른빛ㆍ흰빛ㆍ잿빛을 관하는 것도 그와 같았다. 보살이 이렇게 관할 때 양미간에서 푸른빛ㆍ누른빛ㆍ붉은빛ㆍ흰빛ㆍ잿빛 광명을 놓으니, 보살이 이 낱낱 광명 속에서 부처님 형상이 있음을 보았다.
보고 나서는 묻기를 ‘이 몸은 부정한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하여 앉고 일어나고 다니고, 서고 구부리고 펴고 굽히고 우러러보고 깜박이고 헐떡거리고 숨 쉬고 슬퍼하고 울고 기뻐하고 웃고 합니까? 그 가운데 주재가 없는데, 누가 그렇게 시킵니까?’하였다. 이렇게 묻자 광명 속의 부처님들이 문득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또 생각하기를 ‘혹 알음알이[識]가 나이므로 부처님들로 하여금 나에게 말하지 않게 하는가?’ 하였고, 또 관하기를 ‘이 알음알이가 차례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니, 역시 내가 아니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만일 알음알이가 나가 아니라면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나이겠는가?’ 하였고, 또 생각하기를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바로 바람의 성품이며, 바람의 성품은 곧 4대이므로 4대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지대(地大)의 성품이 내가 아니니, 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의 성품도 내가 아니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이 몸의 온갖 것에 모두 나라 할 것이 없고, 마음과 바람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가지가지 짓는 업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주력(呪力)이나 환술로 짓는 것 같고 공후가 뜻을 따라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몸은 이와 같이 부정한 여러 가지 인연을 빌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곳에서 탐욕을 낼 것이며, 만일 욕설을 듣는다면 어떤 곳에 화를 내겠는가? 그리고 나의 이 몸은 서른여섯 가지 물질이 부정하고 더러우므로 어느 곳에서 욕설을 들을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만일 꾸짖는 말을 들으면 곧 생각하기를 ‘어느 음성으로 꾸짖는 것인가? 낱낱 음성이 꾸짖지 못한다면 한 음성이 꾸짖지 못하듯이 여러 음성도 그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이치 때문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이가 와서 때린다면 또 생각하기를 ‘이렇게 때리는 이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손과 칼과 방망이와 내 몸으로 말미암아서 때리는 것이니, 내가 왜 다른 이에게 화를 내겠는가? 이것은 내 몸이 스스로 이 허물을 불러오는 것이며, 내가 5음으로 된 몸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과녁이 있으므로 화살을 맞는 것같이 내 몸도 그러하여 몸이 있으므로 때리는 일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참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할 것이고, 마음이 산란하면 바른 생각[正念]을 잃을 것이다. 바른 생각을 잃으면 선하고 선하지 않은 이치를 관찰하지 못할 것이고, 선하고 선하지 않음을 관찰하지 못하면 나쁜 법을 행할 것이고, 나쁜 법을 행한 인연으로는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이러한 관을 하고나서 4념처(念處)를 얻고, 4념처를 얻고 나서 곧 참는 지위[堪忍地]에 머물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이 참는 지위에 머물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참고 견딜 것이며, 역시 추위ㆍ더위ㆍ굶주림ㆍ목마름을 참으며, 모기ㆍ등에ㆍ벼룩ㆍ이ㆍ폭풍ㆍ나쁜 촉각ㆍ여러 가지 전염병ㆍ욕설ㆍ악담ㆍ때리는 것 따위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참고 견딜 것이므로 참는 지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아직 부동지(不動地)에 머물지 못했을 때, 계율을 깨끗하게 가지다가도 어떤 인연으로 파계하는 일이 있습니까?”
“선남자야, 보살이 부동지에 머물지 못하였을 때에는 인연이 생기면 파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섭이 공경스럽게 물었다.
“어떤 것이 그런 인연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 보살이 파계하는 인연을 가지고 다른 이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좋아하게 하며, 또 그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읽고 외우고 통달하고 쓰게 하여 다른 이에게 선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할 줄을 안다면 이런 인연으로 파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차라리 한 겁이나 한 겁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그 죄보를 받을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섭아, 이런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이 깨끗이 지키던 계율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런 사람을 붙들어 보호하며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깨뜨리고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면 옳지 않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문수사리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다. 내가 오랜 옛날에 염부제에서 큰 나라 임금이 되었으니 이름이 선예(仙預)였으며, 대승경전을 사랑하고 공경하여 마음이 순일하고, 나쁜 생각ㆍ시기하는 마음ㆍ아끼는 생각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사랑하는 말과 착한 말만을 하였고, 몸으로는 빈궁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거두어 보호하였으며, 보시하고 정진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때는
부처님이나 성문이나 연각이 없었으므로, 나는 대승 방등경전을 좋아하면서도 12년 동안 바라문을 섬기면서 필요한 것을 공양하였다. 12년 동안 보시하기를 마치고, ‘당신들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십시오’라고 말하였더니, 바라문이 대답하기를 ‘대왕이여, 보리의 성품은 있는 것이 아니며, 대승경전도 역시 그러한데, 대왕은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허공과 같게 하려 합니까?’ 하였다.
선남자야, 내가 그때 대승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문이 방등경을 비방하는 것을 듣고 즉시 그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선남자야, 그때부터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선남자야, 대승을 옹호하고 붙드는 것은 이렇게 한량없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가섭아, 또 거룩한 행이 있으니 성인의 네 가지 참된 이치인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이다. 가섭아, ‘고’는 못살게 구는 것[逼迫相]이며, ‘집’은 나고 자라게 하는 것[能生長相]이며, ‘멸’은 고요한 것[寂滅相]이며, ‘도’는 대승을 [大乘相]말한다. 또 선남자야, 고는 현상(現相)이며, 집은 전상(轉相)이며, 멸은 제상(除相)이며, 도는 능히 제하는 것(能除相)이다.
또한 선남자야, 고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다. 괴로운 이 몸에 괴롭고 시끄러움이 생기는 것[苦苦相]과, 변천하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行苦相]과, 파괴되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壞苦相]이다.
또 집은 25유이며, 멸은 25유를 멸하는 것이며, 도는 계율ㆍ선정ㆍ지혜를 닦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유루법(有漏法)에 두 가지가 있으니 원인과 결과이다. 무루법(無漏法)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원인과 결과이다. 곧 유루법의 결과는 고이며, 유루법의 원인은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루법의 결과는 멸이라고 하고 무루법의 원인은 도라고 한다.
또 선
남자야, 여덟 가지를 고라 하는데, 태어나는 괴로움ㆍ늙는 괴로움ㆍ병드는 괴로움ㆍ죽는 괴로움ㆍ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ㆍ 미운 것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ㆍ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ㆍ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五陰盛苦]이다. 이 여덟 가지 고를 일으키는 것을 집이라 하고, 이 여덟 가지 고가 없는 데를 멸이라 하고,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처(念處)ㆍ대비(大悲)를 도라 한다.
선남자야, 태어남에는 다섯 가지 태어나는 모양[出相]이 있다. 첫째는 처음 나는 것[初出]ㆍ둘째는 끝까지 가는 것[至終]ㆍ셋째는 자라는 것[增長]ㆍ넷째는 태에서 나오는 것[出胎]ㆍ다섯째는 종류에 태어나는 것[種類生]이다.
또 어떤 것을 늙음이라 하는가? 곧 늙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찰나찰나 늙는 것[念念老]과 종신토록 늙는 것[終身老]이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자라면서 늙는 것[增長老]과 없어지면서 늙는 것[滅壞老]이다. 이것을 늙는 고라 고 한다.
어떤 것을 병이라 하는가? 병이라 함은 독사 같은 4대가 서로 조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의 병이고 둘째는 마음의 병이다. 몸의 병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물에 의한 것, 둘째는 바람에 의한 것, 셋째는 열에 의한 것, 넷째는 잡병(雜病), 다섯째는 객병(客病)이다.
객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한이 아닌 것을 억지로 하는 것[非分强作]이고, 둘째는 잘못 하여서 떨어지는 것[忘誤墮落]이며, 셋째는 칼ㆍ작대기ㆍ기왓장ㆍ돌멩이에 맞는 것이고, 넷째는 귀신 들린 것[鬼魅所著]이다.
마음의 병에도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뛸 듯이 좋아하는 것[踊躍]ㆍ둘째는 무서워하는 것ㆍ셋째는 근심하는 것ㆍ넷째는 어리석은 것이다.
또한 선남자야, 몸과 마음의 병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업보이며, 둘째는 악한 상대를 멀리하지 못하는 것[不得速離惡對]이며, 셋째는 시절이 바뀌는 것[時節代謝]이다. 이런 인연과 이름과 받는 분별[受分別]을 내는 것이니, 병의 인연은 바람 따위의 병이며, 이름이라는 것은 가슴이 답답하고 허파가 부풀고 상기되고 기침하고 구역질하고 마음이 놀라고 이질이 생기는 것들이다. 또 받는 분별이라는 것은 두통ㆍ안질ㆍ수족 등의 아픔이니 이런 것을 병이라 한다.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받았던 몸을 버리는 것이다. 받았던 몸을 버리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과, 둘째 바깥 인연으로 죽는 것이다. 명이 다하여 죽는 것에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명은 다하였으나 복이 다하지 않은 것이며, 둘째는 복이 다하였으나 명은 다하지 않은 것이며, 셋째는 복과 수명이 모두 다한 것이다.
바깥 인연으로 죽는 데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운명[分]이 아닌데 스스로 해롭게 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우연히 다른 사람 때문에 죽는 것이고, 셋째는 함께 죽는 것이다. 또 세 가지 죽음이 있다. 첫째는 방일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파계하고 죽는 것이며, 셋째는 목숨을 파괴하여 죽는 것이다.
무엇이 방일하여 죽는 것인가? 대승 방등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방일하여 죽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파계하고 죽는 것인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을 범하는 것은 파계하고 죽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목숨을 파괴하여 죽는 것인가? 5음으로 된 몸을 버리는 것을 목숨을 파괴하고 죽는 것이라 하니 이런 것을 죽는 고통이라 한다.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라 하는가?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거나 흩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고 흩어지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간의 5음이 파괴되는 것과, 천상의 5음이 파괴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천상의 사랑하는 5음을 분별하여 계산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이별하는 괴로움이라 한다.
어떤 것을 미워하는 것과 만나는 고라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다. 이런 세 갈래를 분별하여 계산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이것을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라 한다.
어떤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라 하는가?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희망하는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힘을 많이
쓰고도 과보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라 한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 하는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는 것은 태어나는 괴로움ㆍ늙는 괴로움ㆍ병드는 괴로움ㆍ죽는 괴로움ㆍ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ㆍ미운 것과 모이는 괴로움ㆍ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 한다.
가섭아, 태어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이 일곱 가지 고통이 있으니, 늙는 괴로움과 나아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이다. 가섭아, 쇠하여 늙는 일이 온갖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과 여러 천신들에게는 조금도 없고, 인간에는 일정하지 않아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가섭아, 삼계에 몸을 받는 이가 태어나지 않는 이는 없으나 늙음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온갖 것은 태어나는 것이 근본이 된다.
가섭아, 세간의 중생들은 뒤바뀜이 마음을 덮어서 태어나는 것은 탐하고 늙고 죽는 것은 싫어하고 근심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 처음 태어나는 것을 볼 때에 이미 허물과 근심을 보는 것이다.
가섭아, 어떤 여인이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인의 몸매는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좋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있었다. 곧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성명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공덕대천(功德大天)입니다.’
주인이 물었다.
‘그대는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을 하는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곳마다 가지각색 금ㆍ은ㆍ폐유리ㆍ파리ㆍ진주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하인 등을 줍니다.’
주인이 듣고 환희한 마음으로 뛸 듯이 즐거워하며 말했다.
‘나에게 복덕이 있어서 그대가 지금 나의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꽃을 흩어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배하였다.
또 문밖에 다른 한 여인이 있었다.
형상이 누추하고 의복이 남루하고 더럽고 때가 많고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살빛이
부옇게 되어있었다.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의 이름은 검둥이입니다.’
‘왜 검둥이라고 이름하였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데마다 그 집 재물을 소모하게 합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칼을 들고 말하였다.
‘그대가 빨리 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을 것이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왜 그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습니까?’
주인이 물었다.
‘어째서 나를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고 하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집에 들어간 이는 나의 언니이며, 나는 언제나 언니와 거취를 같이합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거든 나의 언니도 쫓아내야 합니다.’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공덕천에게 물었다.
‘밖에 어떤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그대의 동생이라 하니 사실인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그는 분명히 나의 동생입니다. 나는 항상 동생과 행동을 같이하였고,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동생은 나쁜 짓을 하였으며, 나는 이로운 일을 하고 동생은 손해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만일 나를 사랑하거든 그도 사랑하여야 하고, 나를 공경하려면 그도 공경하여야 합니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짓도 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모두 마음대로 가시오.’
두 여인이 서로 팔을 끌고 살던 데로 가고, 주인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뛸 듯이 환희로움이 한량없었다.
그때 두 여인은 손에 손을 잡고 가난한 집에 이르렀다. 가난한 사람이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말하였다.
‘지금부터 갈 때까지 그대들은 나의 집에 항상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공덕천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게 쫓겨 왔는데,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우리에게 있기를 청합니까?’
가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지금 나를 생각하기에 나는 그대를 위하여 저 사람을 공경하며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나의 집에 있으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가섭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에 모두 버리고 조금도 받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늙고 병나고 죽음의 걱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두 가지 법을 받으려고 탐하는 것이다.
또 가섭아, 바라문의 어린아이가 굶주림에 쪼들리다가 사람의 똥 속에 암라과(菴羅果)가 있는 것을 보고 집어 들었더니 어떤 지혜 있는 이가 보고 꾸짖었다.
‘너는 바라문의 청정한 집 자손으로서 어찌하여 똥 속에 있는 더러운 과실을 집느냐?’
아이가 듣고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였다.
‘내가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씻어서 도로 버리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이가 말하였다.
‘너는 퍽 어리석은 아이다. 도로 버릴 것을 무엇 하러 집느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태어나는 일을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은 지혜 있는 이가 아이를 꾸짖는 것과 같다. 그러나 범부들이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저 아이가 과일을 집었다가 도로 버리는 것과 같다.
또 가섭아,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팔고 있었다. 멀리서 오던 사람이 허기가 나서 그 먹음직한 밥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밥 파는 이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입니다. 이 밥을 먹으면 기운이 충실하고 피부가 좋아지고 기갈이 소멸하여 천신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던 사람이 듣고 생각하였다.
‘나는 피부가 좋아지는 것도 기운이 충실해지는 것도 천신을 보는 것도 쓸데가 없고, 또 죽을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 밥을 먹고 만일 목숨을 마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여기서 파는가?’
밥장수가 대답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사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줄은 모르고 값을 많이 주고 사서 먹습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나서 피부가 좋아지고 기운이 충실해지고 천신을 보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을 면치 못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부는 어리석어서 어디에 태어나든지 모두 좋아한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독한 나무는 뿌리도 사람을 죽이고, 줄기ㆍ가지ㆍ마디ㆍ껍질ㆍ잎ㆍ꽃ㆍ열매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이 선남자야, 25유에 태어나면서 받은 5음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을 능히 죽이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똥은 많거나 적거나 구린 것처럼, 선남자야, 태어나는 것도 그와 같아서 8만 년을 살거나 10년을 살거나 모두 고통을 받는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어떤 위험한 언덕 위에 풀이 덮여 있지만 그 언덕의 가장자리에는 감로가 많이 있는 것처럼, 그것을 먹으면 천년이나 살면서 병이 영원히 소멸되고 쾌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맛만 탐하기 때문에 밑에 깊은 구덩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 집어먹으려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구덩이에 떨어져 죽는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미리 그런 줄을 알고 피해가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의 훌륭한 음식도 받고자 하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의 음식이겠느냐? 그러나 범부들은 지옥에서 철환을 먹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상의 아름다운 음식을 어찌 먹지 않겠는가? 가섭아, 이런 비유나 그 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유로 보아서 태어나는 것이 실로 큰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 『대열반경』에 머물러서 태어나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열반경』에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늙는다는 것은 기침이 생기고 상기가 일어나며, 용기와 기억력과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쾌락과 교만과 잘난 체하는 마음과 편안하고 자재함을 꺾어버리는 것이며, 허리가 구부러지고 게을러지고 기운이 없어져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다.
가섭아, 비유하면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여 곱고 번성하면 매우 사랑스럽다가 우박이 내리면 모두 부서지듯이 선남자야,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성하던 기색이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또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나라 임금에게 병법을 잘 아는 지혜 있는 신하가 있다. 적국의 왕이 거역하고 공순하지 않으면 이 신하를 보내 토벌하고, 그 적국의 왕을 사로잡아 이 나라 임금에게 끌어오게 했다.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장성하던 기색을 사로잡아 죽음이란 왕에게 끌고 가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꺾어진 굴대는 다시 쓸 수 없듯이, 늙음도 그와 같아서 다시 쓸 수 없다. 또한 가섭아, 어떤 부잣집에 금ㆍ은ㆍ폐유리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 따위의 보배가 있더라도, 도적의 떼가 그 집에 들어가면 남기지 않고 모두 빼앗아가듯이 선남자야, 장성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이란 도적이 빼앗아 간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가난한 사람이 훌륭한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탐하여 희망하더라도 가질 수 없듯이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비록 탐심이 있어 부귀와 쾌락을 받으면서 5욕락을 마음껏 즐기려 하여도 될 수 없다.
또한 가섭아, 뭍에 있는 거북이 마음으로 항상 물을 생각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하여 쭈그러지더라도 마음으로는 장성하였을 때에 5욕락을 즐기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초가을에 피는 연꽃을 모든 사람이 보기를 좋아하지만 시들고 쇠잔하면 모두들 하찮게 여기듯이 선남자야, 장성한 때의 훌륭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다가도 늙어지면 모두들 싫어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사탕무도 즙을 짜고 나면 찌꺼기는 맛이 없듯이 장성한 때의 훌륭한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에 눌리면 세 가지 맛이 없어진다. 즉 첫째는 출가하는 맛, 둘째는 경을 외우는 맛, 셋째는 참선하는 맛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보름달이 밤에는 빛이 찬란하다가도 낮이 되면 그렇지 못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러하여 장성하였을 때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몸매가 아름답다가도 늙으면 얼굴이 쭈그러지고 전신이 혼미해진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왕이 바른 법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며 진실하고 자비하여 보시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적국에게 패하여 멀리 다른 나라로 도망가니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가엾게 여기며 말하였다.
‘대왕께서 지난날에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셨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습니까?’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에 파괴되고 나면 항상 장성하였을 때에 행하던 일을 찬탄한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심지는 기름만을 의지하는 것이어서 기름이 다하면 불이 오래 있을 수 없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장성한 기름을 의지하는 것이므로, 장성한 기름이 다하면 노쇠의 심지가 어찌 오래 있겠느냐?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마른 개천은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이나 새나 짐승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어서 마르게 되면 온갖 사업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다.
또한 가섭아,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선 나무가 폭풍을 만나면 넘어지는 것처럼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음의 언덕에 다다랐을 때 죽음의 폭풍이 불면 오래도록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수레의 굴대가 꺾어지면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을 받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어린아이는 사람마다 업신여기는 것처럼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모든 무리의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다.
가섭아,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늙는 일이 큰 고통 되는 줄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이 생기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곧 병이라는 것은 모든 편안하고 즐거운 일을 깨뜨리는 것이다. 비유하면 우박이 곡식의 싹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가섭아, 사람이 원수가 있으면 마음이 항상 근심스러우며 두려운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이 생기는 고통을 두려워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품는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용모가 단정하여 왕후가 애욕을 품고 사람을 보내어 억지로 불러다가 간통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그 사람을 체포하여 놓고 사람을 시켜 한 눈을 뽑고 한 귀를 베고 한 손과 한 발을 끊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용모가 흉악하게 변하여 사람들이 미워하고 천하게 여겼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처음은 단정하고 귀와 눈이 구족하였으나, 병에 걸려 시달리면 모든 사람이 천하게 여긴다.
또한 가섭아, 마치 파초나 대나무나 노새는 씨가 맺거나 새끼를 배면
죽는 것처럼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병이 들면 죽고 만다.
또한 가섭아, 전륜왕은 군대를 맡은 대신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왕은 뒤에 따라가는 것이다. 또 물고기의 왕과 개미의 왕과 메뚜기의 왕과 소의 왕과 장사 물주[商主]가 앞을 서서 가면 다른 무리들이 모두 따라가고 뒤떨어지지 않는다. 선남자야, 죽음의 전륜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이란 신하를 따르고 멀리 떠나지 않으며, 물고기ㆍ개미ㆍ메뚜기ㆍ장사 물주라는 병의 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죽음의 무리들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가섭아, 병의 인연은 괴로움과 시끄러움과 근심과 슬픔으로 몸과 마음이 불안한 것이다. 혹은 원수와 도적이 핍박하는 것이며, 구명부대를 깨뜨리고 다리를 무너뜨리며, 바르게 생각하는 근본을 겁탈하는 것이다. 또 장성한 기색과 기운과 안락을 파괴하고 부끄러움을 버리게 하며, 몸과 마음을 뜨겁고 번민하게 한다.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병이 나는 일이 큰 고통인 것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이 생기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태워 없애는 것이다. 가섭아, 화재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태워버리지만 2선천(禪天)은 제외된다.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란 화재도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태워 없애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된다. 세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수재(水災)가 일어나면 온갖 것이 물속에 빠지지만, 3선천은 제외된다. 힘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물도 그러하여 온갖 것을 빠뜨리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된다.
또한 가섭아, 풍재(風災)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불어서 날려버리지만 4선천은 제외한다.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바람도 그러하여 모든 있는 것을 불어 없애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만은 제외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4선천은 무슨 인연으로 바람도 불어 날리지 못하고 물로도 빠뜨리지 못하고 불로도 태우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4선천은 안팎으로 걱정과 근심이 모두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초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관찰하여 생각함[覺觀]이 있고 밖으로 화재가 있으며, 2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환희함이 있고 밖으로 수재가 있으며, 3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헐떡이는 숨이 있으므로 밖으로 풍재가 있지만 선남자야, 4선천은 안팎 걱정이 모두 없으므로 모든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면 안팎 걱정이 모두 없다. 그러므로 죽음의 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금시조가 모든 용과 금ㆍ은 따위의 보배를 먹고 소화하지만 금강은 소화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들을 먹고 소화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마하살만은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강가에 있는 풀과 나무는 홍수가 나면 물에 떠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가지만 버드나무는 제외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부드럽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모두 흐름을 따라서 죽는 바다에 들어가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또한 가섭아, 나라연이 모든 역사를 모두 굴복시키지만 바람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나라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꺾어 굴복시키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어떤 사람이 원수들에게 친근한 듯이 가장하고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틈을 타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수가 조심하여 굳게 방비하므로 그 사람이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원수도 그러하여 항상 중생들의 틈을 엿보아 죽이려 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은 죽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보살들은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금강 같은 소나기[金剛瀑雨]가 갑자기 퍼부어서 약초ㆍ나무ㆍ산림ㆍ흙ㆍ모래ㆍ기왓장ㆍ돌과 금ㆍ은ㆍ유리의 모든 물건을 파괴하더라도 금강 보배는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강 소나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모두 파괴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금강보살은 제외된다.
또한 가섭아, 저 금시조가 모든 용을 잡아먹지만 삼귀의를 받은 용은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모 든 중생을 모두 잡아먹지만 세 가지 선정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선정인가? 공(空)한 것과 모양이 없는 것[無相]과 서원이 없는 것[無願]이다.
또 가섭아, 마라(摩羅) 독사는 물리기만 하면 아무리 훌륭한 주문과 좋은 약이라도 어찌할 수 없지만, 오직 아갈다(阿竭多) 별의
주문으로만 독을 없앨 수 있다. 선남자야, 죽음의 독사에게 물리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온갖 의원과 처방이라도 어찌할 수 없지만, 오직 대승의 대반열반의 주문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왕을 진노하게 했다면 그 사람은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야만 화를 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죽음의 왕은 그렇지 않아서 아무리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도 모면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란 것은 험난한 길에 노자가 없는 것이며, 갈 곳은 먼데 동무가 없으며, 밤낮으로 줄곧 가지만 끝을 알지 못하며, 깊고 어두운데 등불이 없으며, 들어갈 문은 없는데 처소만 있으며, 비록 아픈 데는 없으나 치료할 수 없으며, 가도 끝이 없고 이르러도 벗어날 수 없으며, 파괴하는 것은 없지만 보는 이마다 근심하며, 험악한 빛깔은 아니나 사람들을 무섭게 하며, 내 몸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가섭아,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죽는 일이 참으로 큰 괴로움인 줄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을 관한다고 하는가?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은 모든 고통의 근본이 된다. 이런 게송이 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있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공포가 생긴다.
사랑하는 애정만 떼어버리면
근심은 무엇이며 공포는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인연으로 근심이 있고 근심하는 고통으로 중생들이 늙는 것이니,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으로 말하자면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별 때문에 가지가지 미세한 고통이 생기는 것을 이제 그대에게 분별하여 보여주겠다.
선남자야, 지나간 세상에 사람의 목숨이 헤아릴 수 없이 길었던 때에 한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선주(善住)였다. 그때 왕이 동자로 있으면서 태자 일을 보던 때와 왕이 되었을 때가 각각 8만 4천 년이었다. 그런데 왕의 정수리에 혹[肉皰]이 났었는데, 그 혹은 부드럽기가 도라솜 같고 말랑하기가 겁패 같은 것이 점점 자랐으나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열 달이 차서 혹이 터지면서 아기가 나왔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기이하기 짝이 없었으며, 몸매가 훌륭하여 사람으로는 제일이었다. 부왕은 기뻐서 정생(頂生)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때 선주왕은 곧 나라 일을 정생에게 맡기고 궁전과 처자 권속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8만 4천 년 동안 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 정생은 어느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齋戒)를 받았다. 마침 동방에 금륜 바퀴가 있었는데, 바퀴살[輻]이 천 개이며, 속바퀴와 덧바퀴를 갖추었으며, 장인[工匠]이 만들지 않았는데 저절로 이루어져서 왔다.
곧 정생왕이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通) 선인의 말을 들으니 〈만일 찰리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을 때에 바퀴살이 천 개이며, 속바퀴와 덧바퀴가 구족한 금륜 바퀴가 장인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저절로 만들어져 온다면 그 임금은 전륜성왕이 된다〉고 한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지금 시험해 봐야겠다’ 하고, 왼손으로는 금륜 보배를 받들고 오른손으로는 향로를 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금륜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道法)과 같게 해주십시오.’
서원이 끝나자
그 금륜 보배가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서 시방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돌아와서 정생왕의 왼손에 머물렀다. 그때 정생왕은 마음이 뛸 듯이 환희로움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마땅히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다시 오래지 않아 모양이 단정하기가 백련화와 같은 코끼리 보배가 일곱 개의 가지[七支]로 땅을 디디고 있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를 받을 때, 코끼리 보배가 모양이 단정하기가 백련화와 같은 것이 일곱 개의 가지로 땅을 디디고 오면 그 임금은 전륜성왕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시험하여 보리라’ 하였다. 그리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코끼리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道法)과 같아지게 해주십시오.’
서원을 하고나니 그 코끼리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정생왕은 크게 환희로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면서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는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그 뒤에 오래지 않아 말 보배[馬寶]가 왔는데 색은 검붉고 갈기는 금빛이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성왕이 보름달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를 받을 때, 색이 검붉고 갈기가 금빛 같은 말 보배가 오면 그 왕은 전륜성왕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말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과 같아지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그 말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정생왕은 환희로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았으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는 분명히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여인 보배[女寶]가 있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제일이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았다. 몸에 있는 털구멍마다 전단 향기가 나고, 입에서 나오는 기운은 향기롭고 깨끗하기가 청련화 같고, 눈은 일 유순까지 멀리 보고, 귀로 듣는 것, 코로 맡는 것도 그와 같았다.
혀는 넓고 커서 얼굴을 덮을 수 있었으며, 몸의 빛깔은 보드랍고 얇아서 붉은 구릿빛 같았고, 정신은 총명하여 큰 지혜가 있었으며, 중생들에게는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였다. 이 여인이 손으로 왕의 옷을 잡으면 왕의 몸이 편안한지 병환이 있는지 알았으며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알았다.
그때 정생왕은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여인으로서 왕의 마음을 알면 곧 여인 보배다’라고 생각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왕의 궁전 안에는 보배 마니주가 저절로 있었으니, 순전히 푸른 폐유리로 된 것이 수레의 속바퀴 같이 크고 어두운 데서는 일 유순까지 비치며, 하늘에서 굴대 같은 비가 오더라도 이 마니주가 큰 우산이 되어 일 유순까지 덮어서 큰비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정생왕은 또 이렇게 생각하기를 ‘만일 왕으로서 마니주 보배를 얻으면 반드시 전륜성왕이다’ 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저절로 주장신(主藏臣)이 나왔다. 재물이 많아져서 풍부하기가 한량없었고, 고방에 가득 차서 넘쳐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또 과보로 얻은 눈의 힘으로 이 땅 속에 있는 모든 보배를 철저하게 보고, 왕이 생각하는 대로 모두 마련하여 내었다.
정생왕은 그를 시험하여 보려고
배를 함께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가서 주장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신기한 보배를 얻고자 한다.’
주장신이 듣고는 두 손으로 바닷물을 저었더니 열 손가락 끝에서 열 개의 보배가 나왔다. 주장신이 임금에게 받들며 여쭈었다.
‘대왕께서 필요하신 것을 마음대로 쓰십시오. 남은 것은 바다 속에 던지겠습니다.’
그때 정생왕은 마음이 크게 기뻐서 한량없이 뛰놀고, ‘나는 이제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였다.
또 오래지 않아 주병신(主兵臣)이 저절로 나타났는데, 용맹하고 지략이 많아 지모가 제일이며, 네 가지 군대를 잘 알아서 싸움을 감당할 만한 이는 성왕을 뵙게 하고 싸움을 감당하지 못할 것은 물리치고 나타나지 못하게 하며, 아직 굴복하지 않은 것은 굴복하게 하고 이미 굴복한 것은 잘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때 전륜왕은 생각하기를 ‘만일 전륜왕으로서 이 군대를 관리하는 신하를 얻으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때 정생 전륜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염부제는 안락하고 풍족한데, 나는 지금 7보(寶)가 있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다. 다시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는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동쪽의 불바제(弗婆提)가 아직 대왕의 덕화에 귀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 죄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그때 전륜성왕이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동쪽의 불바제에 이르니 그 지방의 백성들이 기뻐하며 귀화하였다.
정생 전륜왕이 또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염부제와 불바제가 모두 풍족하고 안락하며 백성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를 성취하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서쪽의 구타니(瞿陁尼)가 아직 덕화에 귀의하지 않았습니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시종들을 일으켜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서쪽의 구타니로 갔다. 그 지방의 백성들도 모두 귀화하였다.
전륜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염부제와 불바제와 구타니가 이미 안락하고 풍족하며 백성들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이제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 신하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북쪽의 울단월(鬱單越)은 아직 귀화하지 않았습니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을 날아서 북쪽의 울단월에 도착하였다. 곧 그 지방의 백성들도 환희하며 귀화하였다.
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제는 4천하가 모두 편안하고 풍족하여 백성들이 치성하고 덕화에 귀화하였고, 지금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성왕이시여, 삼십삼천은 수명이 매우 길고 쾌락 태평하여, 저 하늘 사람들의 형상이 단정하고 사는 궁전이나 앉는 평상이나 이부자리들이 모두 7보로 되어있으며, 천상의 복락을 믿고 아직 오지 않고 귀화하지 않으니 이제 한번 가서 토벌하여 항복받음이 좋겠습니다.’
그때 성왕이 다시 7보와 온갖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 도리천에 이르니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빛이 매우 푸르고 훌륭하였다. 성왕이 대신들에게 ‘이것이 무슨 빛깔이냐?’고 물으니 대신들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나무인데, 도리천에서는 여름 석 달을 이 나무 아래서 오락하며 즐깁니다.’
또 흰 구름처럼 흰빛을 보고, ‘이것은 무슨 빛이냐?’고 대신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선법당(善法堂)인데, 도리천 사람들은 그 속에 모여서 인간과 천상의 일을 의논합니다.’
그때 도리천 임금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정생왕이 온 것을 알고 친히 나와 맞이하였다. 서로 처음 보는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선법당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두 임금이 얼굴이나 몸매는 평등하여 별로 차별이 없었으나 다만 눈을 깜박이는 것이 같지 않았다. 그때 성왕이 곧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저 왕을 퇴위시키고 여기 있으면서 천왕이 되어볼까?’ 하였다.
선남자야, 그때 제석천왕은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열어 보이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였으나 깊은 이치는 통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한 인연의 힘으로 큰 위덕이 있었다. 선남자야, 이 정생왕이 제석천왕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내자 문득 떨어져서 염부제로 돌아오고, 사랑하던 천인과 이별하게 되어 큰 고통을 받았으며 또 나쁜 병을 만나서 죽고 말았다.
그때의 제석은 곧 가섭불이었고 전륜왕은 내 몸이었다. 선남자야, 이렇게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은 대단히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지난 세상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던 고통도 기억하는데, 하물며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지금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을 관찰하지 않겠느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천상에 모두 이런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이 있음을 관찰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큰칼을 쓰고 족쇄에 채이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 큰 고통이 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갈래[五道]에 태어나는 모든 것이 모두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인 줄로 관찰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원수나 큰칼 쓰는 것ㆍ족쇄 차는 것ㆍ고랑 차는 것 따위를 무서워하여 부모와 처자와 권속과 보배와 살림을 버리고 멀리 도피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일이 무서워서 6바라밀을 구족하게 수행하여 열반에 들어간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을 관찰한다고 하는가? 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구하는 것이며, 다 구한다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한 법을 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나쁜 법을 구하는 것이다. 선한 법은 얻지 못했다는 것이 고통이며, 나쁜 법은 여의지 못했다는 것이 고통이다. 이것이 5음으로 성하는 고통을 대강 말한 것이다. 가섭아, 이것을 ‘괴로움의 참된 이치[苦諦]’라고 한다.”
그때 가섭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5음으로 성하는 고통[五盛陰苦]은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석마남(釋摩男)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색이 고통이라면 모든 중생이 색을 구하지 않을 것이며, 구하는 이가 있다면 고통이라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느낌[三種受]이 있으니 괴로운 느낌ㆍ 즐거운 느낌ㆍ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不苦不樂受]이다’라고 하였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선한 법을 닦으면 즐거움을 받는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좋은 갈래에서는 여섯 가지 촉감[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곧 눈으로 좋은 빛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좋은 법을 듣거나 생각하는 것도 그와 같다’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계행을 가지는 것 즐거움이니
몸으로 모든 고통 받지 않으며
잠을 잘 때 편안함을 얻게도 되고
깨고 나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의복이나 음식을 받았을 때와
경전 읽고 외우며 거닐 때에나
산림 속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즐거움이다.
누구나 중생들을 대할 때마다
밤낮으로 자비심 항상 닦으면
그 때문에 즐거움 얻게 되리니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는 까닭이다.
욕심 없어 만족함을 알면 즐겁고
많이 듣고 분별함도 즐거움이며
고집함이 없어진 아라한들도
즐거움을 받는다고 이른다.
시방세계 여러 보살마하살
필경에 열반 언덕 이르러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을 가장 좋은 낙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모든 경전에 말씀하신 즐거움이란 뜻이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게 하면 이 이치와 맞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너는 여래에게 이 뜻을 잘 물었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하품(下品)의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잘못 내는 것이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고통의 모양이 본래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때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하열한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는 것은 하열하게[下品] 태어나는 것ㆍ하열하게 늙는 것ㆍ하열하게 병나는 것ㆍ하열하게 죽는 것ㆍ하열하게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ㆍ하열하게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ㆍ하열하게 미운 것과 모이는 것ㆍ하열하게 5음으로 성하는 것 등의 고통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열하게 태어나는 것은 3악도이며, 중품에 태어나는 것은 인간이며, 상품에 태어나는 것은 천상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일 하품의 즐거움에서 괴로운 생각을 낸다면 중품의 즐거움에는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은 생각을 낼 것이며, 상품의 즐거움에는 즐거운 생각을 낼 것입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하품의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면 혹시라도 천 번 벌을 받을 사람이, 한 번 벌을 받을 때에는 즐거운 생각을 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내지 않는다면 어찌 하품의 고통 속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가섭아, 그대의 말과 같다. 그런 뜻으로 즐거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땅히 천 번 벌을 받는데, 첫 번째 한 번은 받고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은 즐거운 생각을 내므로 즐거움이 없는 데서 허망하게 즐거움을 내는 것이다.”
가섭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한 번 하품에 태어남으로써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고, 면했기 때문에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가섭아,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석마남에게 ‘5음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다. 가섭아, 세 가지 느낌[受]과 세 가지 괴로움[三苦]이 있으니, 세 가지 느낌[三受]이란 것은 즐거운 느낌ㆍ괴로운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세 가지 괴로움이라 함은 괴로운데 괴로움[苦苦]과, 변천하는 괴로움[行苦]과, 파괴되는 괴로움[壞苦]이다. 선남자야, 괴로운 느낌이라는 것은 세 가지 괴로움으로, 괴로운데 괴로움과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며 다른 두 가지 느낌은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다.
선남자야, 이 인연으로 나고 죽는 속에 실로 즐거운 느낌이 있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품이 서로 여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 한다. 선남자야, 나고 죽는 속에는 진실로 즐거움이 없지만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세간을 따르느라고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만일 세상을 따른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허망한 것입니까? 또 부처님의 말씀대로 선한 것을 수행하는 이는 즐거운 과보를 받고 계행을 가지면 편안하여 몸에 괴로움을 받지 않습니다. 나아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이 가장 좋은 낙이라면
그런 경전에 말한 즐거운 느낌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만일 허망하다면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 동안 보리도를 닦아서 허망한 말을 여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위에서 말한 여러 즐거움을 받는다는 게송은 곧 보리도의 근본이며,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기르는 것이다. 그런 이치로 앞의 경전에 즐거운 모양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세간에서 필요한 살림거리가 즐거움의 원인이 되므로 이것을 즐거움이라 이른다.
이른바 여색을 즐기는 것ㆍ술을 마시는 것ㆍ훌륭한 음식ㆍ맛있는 음식ㆍ목마를 때 물을 만나는 것ㆍ추울 때 불을 만나는 것ㆍ의복ㆍ영락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복ㆍ하인ㆍ금ㆍ은ㆍ폐유리ㆍ산호ㆍ진주ㆍ창고ㆍ곡식 따위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즐거움의 원인이 되므로 즐겁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것들도 괴로움을 발생시킨다. 여인 때문에 남자의 괴로움이 생겨 근심하고 걱정하고 울고 나아가 목숨을 끊는다. 또 맛있는 술이나 나아가 창고와 곡식도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을 하게 한다. 이런 뜻으로 온갖 것이 모두 괴로움이며,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성문과 벽지불들은 즐거움의 원인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품(下品)의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보살만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와 같이 괴로움의 원인과 즐거움의 원인을 아는 것이다.”
북량 천축 삼장 담무참 한역
7.성행품②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성스러운 행이라는 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몸을 살피는 것이다. 그 속에는 다만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발톱ㆍ치아ㆍ부정한 것ㆍ더러운 때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지라[脾]ㆍ콩팥ㆍ염통ㆍ허파ㆍ간ㆍ쓸개ㆍ창자ㆍ위부ㆍ생장(生藏)ㆍ숙장(熟藏)ㆍ대변ㆍ소변ㆍ콧물ㆍ침ㆍ눈물ㆍ지방ㆍ뇌막ㆍ골수ㆍ고름ㆍ피ㆍ혈관 따위가 있을 뿐이다.
보살이 이렇게 전심으로 관찰할 때에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나는 무엇에 소속되어 있으며,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는가?’하고 생각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뼈가 나이겠는가? 뼈를 떠나서 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보살이 그때 가죽과 살을 제외하고 백골만을 관찰하면서 또 생각하기를 ‘백골 빛이 제각기 달라서 푸른빛ㆍ누른빛ㆍ흰빛ㆍ잿빛이니 이런 백골도 나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란 것은 푸른빛ㆍ누른빛ㆍ흰빛ㆍ잿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렇게 마음을 써서 관찰할 때 온갖 색욕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또 생각하기를 ‘뼈란 것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니, 발 뼈를 의지하여 복사뼈를 받치고, 복사뼈를 의지하여 정강이뼈를 받치고, 무릎 뼈를 의지하여 넓적다리뼈를 받치고, 넓적다리뼈를 의지하여 볼기 뼈를 받치고, 볼기 뼈를 의지하여 허리뼈를 받치고, 허리뼈를 의지하여 등골뼈를 받치고, 등골뼈를 의지하여 갈빗대를 받치고, 또 등골뼈를 의지하여 위로 목의 뼈를 받친다. 목의 뼈를 의지하여 턱뼈[頷骨]를 받치고,
턱뼈를 의지하여 치아를 받치고, 위로는 두골을 받치고, 또 목의 뼈로 어깨뼈를 받치고, 어깨뼈를 의지하여 팔뼈를 받치고, 팔뼈를 의지하여 손목뼈를 받치고, 손목뼈를 의지하여 손바닥뼈를 받치고, 손바닥뼈를 의지하여 손가락뼈를 받쳤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 몸에 있는 뼈들이 모두 나뉘어 떨어졌으며, 이런 관찰을 하고나서 세 가지 욕망을 끊었다. 첫째는 형체의 욕망, 둘째는 자태(姿態)의 욕망, 셋째는 보드랍게 닿는 욕망[細觸欲]이었다.
보살마하살이 푸른빛의 백골을 관할 때에, 이 땅의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가 모두 푸른 모양이었다. 또 푸른빛을 관하는 것과 같이 누른빛ㆍ흰빛ㆍ잿빛을 관하는 것도 그와 같았다. 보살이 이렇게 관할 때 양미간에서 푸른빛ㆍ누른빛ㆍ붉은빛ㆍ흰빛ㆍ잿빛 광명을 놓으니, 보살이 이 낱낱 광명 속에서 부처님 형상이 있음을 보았다.
보고 나서는 묻기를 ‘이 몸은 부정한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하여 앉고 일어나고 다니고, 서고 구부리고 펴고 굽히고 우러러보고 깜박이고 헐떡거리고 숨 쉬고 슬퍼하고 울고 기뻐하고 웃고 합니까? 그 가운데 주재가 없는데, 누가 그렇게 시킵니까?’하였다. 이렇게 묻자 광명 속의 부처님들이 문득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또 생각하기를 ‘혹 알음알이[識]가 나이므로 부처님들로 하여금 나에게 말하지 않게 하는가?’ 하였고, 또 관하기를 ‘이 알음알이가 차례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니, 역시 내가 아니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만일 알음알이가 나가 아니라면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나이겠는가?’ 하였고, 또 생각하기를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바로 바람의 성품이며, 바람의 성품은 곧 4대이므로 4대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지대(地大)의 성품이 내가 아니니, 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의 성품도 내가 아니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이 몸의 온갖 것에 모두 나라 할 것이 없고, 마음과 바람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가지가지 짓는 업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주력(呪力)이나 환술로 짓는 것 같고 공후가 뜻을 따라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몸은 이와 같이 부정한 여러 가지 인연을 빌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곳에서 탐욕을 낼 것이며, 만일 욕설을 듣는다면 어떤 곳에 화를 내겠는가? 그리고 나의 이 몸은 서른여섯 가지 물질이 부정하고 더러우므로 어느 곳에서 욕설을 들을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만일 꾸짖는 말을 들으면 곧 생각하기를 ‘어느 음성으로 꾸짖는 것인가? 낱낱 음성이 꾸짖지 못한다면 한 음성이 꾸짖지 못하듯이 여러 음성도 그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이치 때문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이가 와서 때린다면 또 생각하기를 ‘이렇게 때리는 이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손과 칼과 방망이와 내 몸으로 말미암아서 때리는 것이니, 내가 왜 다른 이에게 화를 내겠는가? 이것은 내 몸이 스스로 이 허물을 불러오는 것이며, 내가 5음으로 된 몸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과녁이 있으므로 화살을 맞는 것같이 내 몸도 그러하여 몸이 있으므로 때리는 일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참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할 것이고, 마음이 산란하면 바른 생각[正念]을 잃을 것이다. 바른 생각을 잃으면 선하고 선하지 않은 이치를 관찰하지 못할 것이고, 선하고 선하지 않음을 관찰하지 못하면 나쁜 법을 행할 것이고, 나쁜 법을 행한 인연으로는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이러한 관을 하고나서 4념처(念處)를 얻고, 4념처를 얻고 나서 곧 참는 지위[堪忍地]에 머물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이 참는 지위에 머물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참고 견딜 것이며, 역시 추위ㆍ더위ㆍ굶주림ㆍ목마름을 참으며, 모기ㆍ등에ㆍ벼룩ㆍ이ㆍ폭풍ㆍ나쁜 촉각ㆍ여러 가지 전염병ㆍ욕설ㆍ악담ㆍ때리는 것 따위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참고 견딜 것이므로 참는 지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아직 부동지(不動地)에 머물지 못했을 때, 계율을 깨끗하게 가지다가도 어떤 인연으로 파계하는 일이 있습니까?”
“선남자야, 보살이 부동지에 머물지 못하였을 때에는 인연이 생기면 파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섭이 공경스럽게 물었다.
“어떤 것이 그런 인연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 보살이 파계하는 인연을 가지고 다른 이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좋아하게 하며, 또 그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읽고 외우고 통달하고 쓰게 하여 다른 이에게 선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할 줄을 안다면 이런 인연으로 파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차라리 한 겁이나 한 겁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그 죄보를 받을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섭아, 이런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이 깨끗이 지키던 계율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런 사람을 붙들어 보호하며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깨뜨리고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면 옳지 않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셨다.
“문수사리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다. 내가 오랜 옛날에 염부제에서 큰 나라 임금이 되었으니 이름이 선예(仙預)였으며, 대승경전을 사랑하고 공경하여 마음이 순일하고, 나쁜 생각ㆍ시기하는 마음ㆍ아끼는 생각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사랑하는 말과 착한 말만을 하였고, 몸으로는 빈궁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거두어 보호하였으며, 보시하고 정진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때는
부처님이나 성문이나 연각이 없었으므로, 나는 대승 방등경전을 좋아하면서도 12년 동안 바라문을 섬기면서 필요한 것을 공양하였다. 12년 동안 보시하기를 마치고, ‘당신들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십시오’라고 말하였더니, 바라문이 대답하기를 ‘대왕이여, 보리의 성품은 있는 것이 아니며, 대승경전도 역시 그러한데, 대왕은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허공과 같게 하려 합니까?’ 하였다.
선남자야, 내가 그때 대승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문이 방등경을 비방하는 것을 듣고 즉시 그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선남자야, 그때부터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선남자야, 대승을 옹호하고 붙드는 것은 이렇게 한량없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가섭아, 또 거룩한 행이 있으니 성인의 네 가지 참된 이치인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이다. 가섭아, ‘고’는 못살게 구는 것[逼迫相]이며, ‘집’은 나고 자라게 하는 것[能生長相]이며, ‘멸’은 고요한 것[寂滅相]이며, ‘도’는 대승을 [大乘相]말한다. 또 선남자야, 고는 현상(現相)이며, 집은 전상(轉相)이며, 멸은 제상(除相)이며, 도는 능히 제하는 것(能除相)이다.
또한 선남자야, 고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다. 괴로운 이 몸에 괴롭고 시끄러움이 생기는 것[苦苦相]과, 변천하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行苦相]과, 파괴되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壞苦相]이다.
또 집은 25유이며, 멸은 25유를 멸하는 것이며, 도는 계율ㆍ선정ㆍ지혜를 닦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유루법(有漏法)에 두 가지가 있으니 원인과 결과이다. 무루법(無漏法)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원인과 결과이다. 곧 유루법의 결과는 고이며, 유루법의 원인은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루법의 결과는 멸이라고 하고 무루법의 원인은 도라고 한다.
또 선
남자야, 여덟 가지를 고라 하는데, 태어나는 괴로움ㆍ늙는 괴로움ㆍ병드는 괴로움ㆍ죽는 괴로움ㆍ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ㆍ 미운 것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ㆍ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ㆍ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五陰盛苦]이다. 이 여덟 가지 고를 일으키는 것을 집이라 하고, 이 여덟 가지 고가 없는 데를 멸이라 하고,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처(念處)ㆍ대비(大悲)를 도라 한다.
선남자야, 태어남에는 다섯 가지 태어나는 모양[出相]이 있다. 첫째는 처음 나는 것[初出]ㆍ둘째는 끝까지 가는 것[至終]ㆍ셋째는 자라는 것[增長]ㆍ넷째는 태에서 나오는 것[出胎]ㆍ다섯째는 종류에 태어나는 것[種類生]이다.
또 어떤 것을 늙음이라 하는가? 곧 늙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찰나찰나 늙는 것[念念老]과 종신토록 늙는 것[終身老]이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자라면서 늙는 것[增長老]과 없어지면서 늙는 것[滅壞老]이다. 이것을 늙는 고라 고 한다.
어떤 것을 병이라 하는가? 병이라 함은 독사 같은 4대가 서로 조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의 병이고 둘째는 마음의 병이다. 몸의 병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물에 의한 것, 둘째는 바람에 의한 것, 셋째는 열에 의한 것, 넷째는 잡병(雜病), 다섯째는 객병(客病)이다.
객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한이 아닌 것을 억지로 하는 것[非分强作]이고, 둘째는 잘못 하여서 떨어지는 것[忘誤墮落]이며, 셋째는 칼ㆍ작대기ㆍ기왓장ㆍ돌멩이에 맞는 것이고, 넷째는 귀신 들린 것[鬼魅所著]이다.
마음의 병에도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뛸 듯이 좋아하는 것[踊躍]ㆍ둘째는 무서워하는 것ㆍ셋째는 근심하는 것ㆍ넷째는 어리석은 것이다.
또한 선남자야, 몸과 마음의 병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업보이며, 둘째는 악한 상대를 멀리하지 못하는 것[不得速離惡對]이며, 셋째는 시절이 바뀌는 것[時節代謝]이다. 이런 인연과 이름과 받는 분별[受分別]을 내는 것이니, 병의 인연은 바람 따위의 병이며, 이름이라는 것은 가슴이 답답하고 허파가 부풀고 상기되고 기침하고 구역질하고 마음이 놀라고 이질이 생기는 것들이다. 또 받는 분별이라는 것은 두통ㆍ안질ㆍ수족 등의 아픔이니 이런 것을 병이라 한다.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받았던 몸을 버리는 것이다. 받았던 몸을 버리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과, 둘째 바깥 인연으로 죽는 것이다. 명이 다하여 죽는 것에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명은 다하였으나 복이 다하지 않은 것이며, 둘째는 복이 다하였으나 명은 다하지 않은 것이며, 셋째는 복과 수명이 모두 다한 것이다.
바깥 인연으로 죽는 데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운명[分]이 아닌데 스스로 해롭게 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우연히 다른 사람 때문에 죽는 것이고, 셋째는 함께 죽는 것이다. 또 세 가지 죽음이 있다. 첫째는 방일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파계하고 죽는 것이며, 셋째는 목숨을 파괴하여 죽는 것이다.
무엇이 방일하여 죽는 것인가? 대승 방등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방일하여 죽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파계하고 죽는 것인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을 범하는 것은 파계하고 죽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목숨을 파괴하여 죽는 것인가? 5음으로 된 몸을 버리는 것을 목숨을 파괴하고 죽는 것이라 하니 이런 것을 죽는 고통이라 한다.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라 하는가?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거나 흩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고 흩어지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간의 5음이 파괴되는 것과, 천상의 5음이 파괴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천상의 사랑하는 5음을 분별하여 계산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이별하는 괴로움이라 한다.
어떤 것을 미워하는 것과 만나는 고라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다. 이런 세 갈래를 분별하여 계산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이것을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라 한다.
어떤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라 하는가?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희망하는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힘을 많이
쓰고도 과보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라 한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 하는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는 것은 태어나는 괴로움ㆍ늙는 괴로움ㆍ병드는 괴로움ㆍ죽는 괴로움ㆍ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ㆍ미운 것과 모이는 괴로움ㆍ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괴로움이라 한다.
가섭아, 태어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이 일곱 가지 고통이 있으니, 늙는 괴로움과 나아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이다. 가섭아, 쇠하여 늙는 일이 온갖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과 여러 천신들에게는 조금도 없고, 인간에는 일정하지 않아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가섭아, 삼계에 몸을 받는 이가 태어나지 않는 이는 없으나 늙음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온갖 것은 태어나는 것이 근본이 된다.
가섭아, 세간의 중생들은 뒤바뀜이 마음을 덮어서 태어나는 것은 탐하고 늙고 죽는 것은 싫어하고 근심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 처음 태어나는 것을 볼 때에 이미 허물과 근심을 보는 것이다.
가섭아, 어떤 여인이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인의 몸매는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좋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있었다. 곧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성명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공덕대천(功德大天)입니다.’
주인이 물었다.
‘그대는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을 하는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곳마다 가지각색 금ㆍ은ㆍ폐유리ㆍ파리ㆍ진주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하인 등을 줍니다.’
주인이 듣고 환희한 마음으로 뛸 듯이 즐거워하며 말했다.
‘나에게 복덕이 있어서 그대가 지금 나의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꽃을 흩어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배하였다.
또 문밖에 다른 한 여인이 있었다.
형상이 누추하고 의복이 남루하고 더럽고 때가 많고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살빛이
부옇게 되어있었다.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의 이름은 검둥이입니다.’
‘왜 검둥이라고 이름하였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데마다 그 집 재물을 소모하게 합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칼을 들고 말하였다.
‘그대가 빨리 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을 것이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왜 그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습니까?’
주인이 물었다.
‘어째서 나를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고 하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집에 들어간 이는 나의 언니이며, 나는 언제나 언니와 거취를 같이합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거든 나의 언니도 쫓아내야 합니다.’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공덕천에게 물었다.
‘밖에 어떤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그대의 동생이라 하니 사실인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그는 분명히 나의 동생입니다. 나는 항상 동생과 행동을 같이하였고,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동생은 나쁜 짓을 하였으며, 나는 이로운 일을 하고 동생은 손해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만일 나를 사랑하거든 그도 사랑하여야 하고, 나를 공경하려면 그도 공경하여야 합니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짓도 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모두 마음대로 가시오.’
두 여인이 서로 팔을 끌고 살던 데로 가고, 주인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뛸 듯이 환희로움이 한량없었다.
그때 두 여인은 손에 손을 잡고 가난한 집에 이르렀다. 가난한 사람이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말하였다.
‘지금부터 갈 때까지 그대들은 나의 집에 항상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공덕천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게 쫓겨 왔는데,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우리에게 있기를 청합니까?’
가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지금 나를 생각하기에 나는 그대를 위하여 저 사람을 공경하며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나의 집에 있으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가섭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에 모두 버리고 조금도 받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늙고 병나고 죽음의 걱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두 가지 법을 받으려고 탐하는 것이다.
또 가섭아, 바라문의 어린아이가 굶주림에 쪼들리다가 사람의 똥 속에 암라과(菴羅果)가 있는 것을 보고 집어 들었더니 어떤 지혜 있는 이가 보고 꾸짖었다.
‘너는 바라문의 청정한 집 자손으로서 어찌하여 똥 속에 있는 더러운 과실을 집느냐?’
아이가 듣고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였다.
‘내가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씻어서 도로 버리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이가 말하였다.
‘너는 퍽 어리석은 아이다. 도로 버릴 것을 무엇 하러 집느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태어나는 일을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은 지혜 있는 이가 아이를 꾸짖는 것과 같다. 그러나 범부들이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저 아이가 과일을 집었다가 도로 버리는 것과 같다.
또 가섭아,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팔고 있었다. 멀리서 오던 사람이 허기가 나서 그 먹음직한 밥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밥 파는 이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입니다. 이 밥을 먹으면 기운이 충실하고 피부가 좋아지고 기갈이 소멸하여 천신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던 사람이 듣고 생각하였다.
‘나는 피부가 좋아지는 것도 기운이 충실해지는 것도 천신을 보는 것도 쓸데가 없고, 또 죽을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 밥을 먹고 만일 목숨을 마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여기서 파는가?’
밥장수가 대답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사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줄은 모르고 값을 많이 주고 사서 먹습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나서 피부가 좋아지고 기운이 충실해지고 천신을 보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을 면치 못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부는 어리석어서 어디에 태어나든지 모두 좋아한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독한 나무는 뿌리도 사람을 죽이고, 줄기ㆍ가지ㆍ마디ㆍ껍질ㆍ잎ㆍ꽃ㆍ열매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이 선남자야, 25유에 태어나면서 받은 5음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을 능히 죽이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똥은 많거나 적거나 구린 것처럼, 선남자야, 태어나는 것도 그와 같아서 8만 년을 살거나 10년을 살거나 모두 고통을 받는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어떤 위험한 언덕 위에 풀이 덮여 있지만 그 언덕의 가장자리에는 감로가 많이 있는 것처럼, 그것을 먹으면 천년이나 살면서 병이 영원히 소멸되고 쾌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맛만 탐하기 때문에 밑에 깊은 구덩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 집어먹으려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구덩이에 떨어져 죽는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미리 그런 줄을 알고 피해가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의 훌륭한 음식도 받고자 하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의 음식이겠느냐? 그러나 범부들은 지옥에서 철환을 먹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상의 아름다운 음식을 어찌 먹지 않겠는가? 가섭아, 이런 비유나 그 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유로 보아서 태어나는 것이 실로 큰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 『대열반경』에 머물러서 태어나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열반경』에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늙는다는 것은 기침이 생기고 상기가 일어나며, 용기와 기억력과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쾌락과 교만과 잘난 체하는 마음과 편안하고 자재함을 꺾어버리는 것이며, 허리가 구부러지고 게을러지고 기운이 없어져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다.
가섭아, 비유하면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여 곱고 번성하면 매우 사랑스럽다가 우박이 내리면 모두 부서지듯이 선남자야,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성하던 기색이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또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나라 임금에게 병법을 잘 아는 지혜 있는 신하가 있다. 적국의 왕이 거역하고 공순하지 않으면 이 신하를 보내 토벌하고, 그 적국의 왕을 사로잡아 이 나라 임금에게 끌어오게 했다.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장성하던 기색을 사로잡아 죽음이란 왕에게 끌고 가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꺾어진 굴대는 다시 쓸 수 없듯이, 늙음도 그와 같아서 다시 쓸 수 없다. 또한 가섭아, 어떤 부잣집에 금ㆍ은ㆍ폐유리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 따위의 보배가 있더라도, 도적의 떼가 그 집에 들어가면 남기지 않고 모두 빼앗아가듯이 선남자야, 장성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이란 도적이 빼앗아 간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가난한 사람이 훌륭한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탐하여 희망하더라도 가질 수 없듯이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비록 탐심이 있어 부귀와 쾌락을 받으면서 5욕락을 마음껏 즐기려 하여도 될 수 없다.
또한 가섭아, 뭍에 있는 거북이 마음으로 항상 물을 생각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하여 쭈그러지더라도 마음으로는 장성하였을 때에 5욕락을 즐기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초가을에 피는 연꽃을 모든 사람이 보기를 좋아하지만 시들고 쇠잔하면 모두들 하찮게 여기듯이 선남자야, 장성한 때의 훌륭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다가도 늙어지면 모두들 싫어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사탕무도 즙을 짜고 나면 찌꺼기는 맛이 없듯이 장성한 때의 훌륭한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에 눌리면 세 가지 맛이 없어진다. 즉 첫째는 출가하는 맛, 둘째는 경을 외우는 맛, 셋째는 참선하는 맛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보름달이 밤에는 빛이 찬란하다가도 낮이 되면 그렇지 못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러하여 장성하였을 때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몸매가 아름답다가도 늙으면 얼굴이 쭈그러지고 전신이 혼미해진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왕이 바른 법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며 진실하고 자비하여 보시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적국에게 패하여 멀리 다른 나라로 도망가니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가엾게 여기며 말하였다.
‘대왕께서 지난날에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셨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습니까?’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에 파괴되고 나면 항상 장성하였을 때에 행하던 일을 찬탄한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심지는 기름만을 의지하는 것이어서 기름이 다하면 불이 오래 있을 수 없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장성한 기름을 의지하는 것이므로, 장성한 기름이 다하면 노쇠의 심지가 어찌 오래 있겠느냐?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마른 개천은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이나 새나 짐승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어서 마르게 되면 온갖 사업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다.
또한 가섭아,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선 나무가 폭풍을 만나면 넘어지는 것처럼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음의 언덕에 다다랐을 때 죽음의 폭풍이 불면 오래도록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수레의 굴대가 꺾어지면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을 받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어린아이는 사람마다 업신여기는 것처럼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모든 무리의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다.
가섭아,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늙는 일이 큰 고통 되는 줄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이 생기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곧 병이라는 것은 모든 편안하고 즐거운 일을 깨뜨리는 것이다. 비유하면 우박이 곡식의 싹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가섭아, 사람이 원수가 있으면 마음이 항상 근심스러우며 두려운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이 생기는 고통을 두려워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품는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용모가 단정하여 왕후가 애욕을 품고 사람을 보내어 억지로 불러다가 간통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그 사람을 체포하여 놓고 사람을 시켜 한 눈을 뽑고 한 귀를 베고 한 손과 한 발을 끊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용모가 흉악하게 변하여 사람들이 미워하고 천하게 여겼다.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처음은 단정하고 귀와 눈이 구족하였으나, 병에 걸려 시달리면 모든 사람이 천하게 여긴다.
또한 가섭아, 마치 파초나 대나무나 노새는 씨가 맺거나 새끼를 배면
죽는 것처럼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병이 들면 죽고 만다.
또한 가섭아, 전륜왕은 군대를 맡은 대신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왕은 뒤에 따라가는 것이다. 또 물고기의 왕과 개미의 왕과 메뚜기의 왕과 소의 왕과 장사 물주[商主]가 앞을 서서 가면 다른 무리들이 모두 따라가고 뒤떨어지지 않는다. 선남자야, 죽음의 전륜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이란 신하를 따르고 멀리 떠나지 않으며, 물고기ㆍ개미ㆍ메뚜기ㆍ장사 물주라는 병의 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죽음의 무리들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가섭아, 병의 인연은 괴로움과 시끄러움과 근심과 슬픔으로 몸과 마음이 불안한 것이다. 혹은 원수와 도적이 핍박하는 것이며, 구명부대를 깨뜨리고 다리를 무너뜨리며, 바르게 생각하는 근본을 겁탈하는 것이다. 또 장성한 기색과 기운과 안락을 파괴하고 부끄러움을 버리게 하며, 몸과 마음을 뜨겁고 번민하게 한다.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병이 나는 일이 큰 고통인 것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이 생기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태워 없애는 것이다. 가섭아, 화재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태워버리지만 2선천(禪天)은 제외된다.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란 화재도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태워 없애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된다. 세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수재(水災)가 일어나면 온갖 것이 물속에 빠지지만, 3선천은 제외된다. 힘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물도 그러하여 온갖 것을 빠뜨리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된다.
또한 가섭아, 풍재(風災)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불어서 날려버리지만 4선천은 제외한다.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바람도 그러하여 모든 있는 것을 불어 없애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만은 제외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4선천은 무슨 인연으로 바람도 불어 날리지 못하고 물로도 빠뜨리지 못하고 불로도 태우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4선천은 안팎으로 걱정과 근심이 모두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초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관찰하여 생각함[覺觀]이 있고 밖으로 화재가 있으며, 2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환희함이 있고 밖으로 수재가 있으며, 3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헐떡이는 숨이 있으므로 밖으로 풍재가 있지만 선남자야, 4선천은 안팎 걱정이 모두 없으므로 모든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면 안팎 걱정이 모두 없다. 그러므로 죽음의 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금시조가 모든 용과 금ㆍ은 따위의 보배를 먹고 소화하지만 금강은 소화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들을 먹고 소화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마하살만은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강가에 있는 풀과 나무는 홍수가 나면 물에 떠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가지만 버드나무는 제외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부드럽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모두 흐름을 따라서 죽는 바다에 들어가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또한 가섭아, 나라연이 모든 역사를 모두 굴복시키지만 바람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나라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꺾어 굴복시키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어떤 사람이 원수들에게 친근한 듯이 가장하고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틈을 타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수가 조심하여 굳게 방비하므로 그 사람이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원수도 그러하여 항상 중생들의 틈을 엿보아 죽이려 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은 죽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보살들은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면 금강 같은 소나기[金剛瀑雨]가 갑자기 퍼부어서 약초ㆍ나무ㆍ산림ㆍ흙ㆍ모래ㆍ기왓장ㆍ돌과 금ㆍ은ㆍ유리의 모든 물건을 파괴하더라도 금강 보배는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강 소나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모두 파괴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무는 금강보살은 제외된다.
또한 가섭아, 저 금시조가 모든 용을 잡아먹지만 삼귀의를 받은 용은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죽음이라는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모 든 중생을 모두 잡아먹지만 세 가지 선정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선정인가? 공(空)한 것과 모양이 없는 것[無相]과 서원이 없는 것[無願]이다.
또 가섭아, 마라(摩羅) 독사는 물리기만 하면 아무리 훌륭한 주문과 좋은 약이라도 어찌할 수 없지만, 오직 아갈다(阿竭多) 별의
주문으로만 독을 없앨 수 있다. 선남자야, 죽음의 독사에게 물리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온갖 의원과 처방이라도 어찌할 수 없지만, 오직 대승의 대반열반의 주문에 머무는 보살은 제외한다.
또한 가섭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왕을 진노하게 했다면 그 사람은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야만 화를 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죽음의 왕은 그렇지 않아서 아무리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도 모면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죽음이란 것은 험난한 길에 노자가 없는 것이며, 갈 곳은 먼데 동무가 없으며, 밤낮으로 줄곧 가지만 끝을 알지 못하며, 깊고 어두운데 등불이 없으며, 들어갈 문은 없는데 처소만 있으며, 비록 아픈 데는 없으나 치료할 수 없으며, 가도 끝이 없고 이르러도 벗어날 수 없으며, 파괴하는 것은 없지만 보는 이마다 근심하며, 험악한 빛깔은 아니나 사람들을 무섭게 하며, 내 몸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가섭아,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죽는 일이 참으로 큰 괴로움인 줄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아,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을 관한다고 하는가?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은 모든 고통의 근본이 된다. 이런 게송이 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있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공포가 생긴다.
사랑하는 애정만 떼어버리면
근심은 무엇이며 공포는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인연으로 근심이 있고 근심하는 고통으로 중생들이 늙는 것이니,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으로 말하자면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별 때문에 가지가지 미세한 고통이 생기는 것을 이제 그대에게 분별하여 보여주겠다.
선남자야, 지나간 세상에 사람의 목숨이 헤아릴 수 없이 길었던 때에 한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선주(善住)였다. 그때 왕이 동자로 있으면서 태자 일을 보던 때와 왕이 되었을 때가 각각 8만 4천 년이었다. 그런데 왕의 정수리에 혹[肉皰]이 났었는데, 그 혹은 부드럽기가 도라솜 같고 말랑하기가 겁패 같은 것이 점점 자랐으나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열 달이 차서 혹이 터지면서 아기가 나왔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기이하기 짝이 없었으며, 몸매가 훌륭하여 사람으로는 제일이었다. 부왕은 기뻐서 정생(頂生)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때 선주왕은 곧 나라 일을 정생에게 맡기고 궁전과 처자 권속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8만 4천 년 동안 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 정생은 어느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齋戒)를 받았다. 마침 동방에 금륜 바퀴가 있었는데, 바퀴살[輻]이 천 개이며, 속바퀴와 덧바퀴를 갖추었으며, 장인[工匠]이 만들지 않았는데 저절로 이루어져서 왔다.
곧 정생왕이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通) 선인의 말을 들으니 〈만일 찰리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을 때에 바퀴살이 천 개이며, 속바퀴와 덧바퀴가 구족한 금륜 바퀴가 장인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저절로 만들어져 온다면 그 임금은 전륜성왕이 된다〉고 한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지금 시험해 봐야겠다’ 하고, 왼손으로는 금륜 보배를 받들고 오른손으로는 향로를 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금륜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道法)과 같게 해주십시오.’
서원이 끝나자
그 금륜 보배가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서 시방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돌아와서 정생왕의 왼손에 머물렀다. 그때 정생왕은 마음이 뛸 듯이 환희로움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마땅히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다시 오래지 않아 모양이 단정하기가 백련화와 같은 코끼리 보배가 일곱 개의 가지[七支]로 땅을 디디고 있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를 받을 때, 코끼리 보배가 모양이 단정하기가 백련화와 같은 것이 일곱 개의 가지로 땅을 디디고 오면 그 임금은 전륜성왕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시험하여 보리라’ 하였다. 그리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코끼리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道法)과 같아지게 해주십시오.’
서원을 하고나니 그 코끼리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정생왕은 크게 환희로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면서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는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그 뒤에 오래지 않아 말 보배[馬寶]가 왔는데 색은 검붉고 갈기는 금빛이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성왕이 보름달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계를 받을 때, 색이 검붉고 갈기가 금빛 같은 말 보배가 오면 그 왕은 전륜성왕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 말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과 같아지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그 말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정생왕은 환희로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았으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는 분명히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여인 보배[女寶]가 있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제일이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았다. 몸에 있는 털구멍마다 전단 향기가 나고, 입에서 나오는 기운은 향기롭고 깨끗하기가 청련화 같고, 눈은 일 유순까지 멀리 보고, 귀로 듣는 것, 코로 맡는 것도 그와 같았다.
혀는 넓고 커서 얼굴을 덮을 수 있었으며, 몸의 빛깔은 보드랍고 얇아서 붉은 구릿빛 같았고, 정신은 총명하여 큰 지혜가 있었으며, 중생들에게는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였다. 이 여인이 손으로 왕의 옷을 잡으면 왕의 몸이 편안한지 병환이 있는지 알았으며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알았다.
그때 정생왕은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여인으로서 왕의 마음을 알면 곧 여인 보배다’라고 생각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왕의 궁전 안에는 보배 마니주가 저절로 있었으니, 순전히 푸른 폐유리로 된 것이 수레의 속바퀴 같이 크고 어두운 데서는 일 유순까지 비치며, 하늘에서 굴대 같은 비가 오더라도 이 마니주가 큰 우산이 되어 일 유순까지 덮어서 큰비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정생왕은 또 이렇게 생각하기를 ‘만일 왕으로서 마니주 보배를 얻으면 반드시 전륜성왕이다’ 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저절로 주장신(主藏臣)이 나왔다. 재물이 많아져서 풍부하기가 한량없었고, 고방에 가득 차서 넘쳐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또 과보로 얻은 눈의 힘으로 이 땅 속에 있는 모든 보배를 철저하게 보고, 왕이 생각하는 대로 모두 마련하여 내었다.
정생왕은 그를 시험하여 보려고
배를 함께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가서 주장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신기한 보배를 얻고자 한다.’
주장신이 듣고는 두 손으로 바닷물을 저었더니 열 손가락 끝에서 열 개의 보배가 나왔다. 주장신이 임금에게 받들며 여쭈었다.
‘대왕께서 필요하신 것을 마음대로 쓰십시오. 남은 것은 바다 속에 던지겠습니다.’
그때 정생왕은 마음이 크게 기뻐서 한량없이 뛰놀고, ‘나는 이제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였다.
또 오래지 않아 주병신(主兵臣)이 저절로 나타났는데, 용맹하고 지략이 많아 지모가 제일이며, 네 가지 군대를 잘 알아서 싸움을 감당할 만한 이는 성왕을 뵙게 하고 싸움을 감당하지 못할 것은 물리치고 나타나지 못하게 하며, 아직 굴복하지 않은 것은 굴복하게 하고 이미 굴복한 것은 잘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때 전륜왕은 생각하기를 ‘만일 전륜왕으로서 이 군대를 관리하는 신하를 얻으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때 정생 전륜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염부제는 안락하고 풍족한데, 나는 지금 7보(寶)가 있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다. 다시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는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동쪽의 불바제(弗婆提)가 아직 대왕의 덕화에 귀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 죄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그때 전륜성왕이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동쪽의 불바제에 이르니 그 지방의 백성들이 기뻐하며 귀화하였다.
정생 전륜왕이 또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염부제와 불바제가 모두 풍족하고 안락하며 백성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를 성취하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서쪽의 구타니(瞿陁尼)가 아직 덕화에 귀의하지 않았습니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시종들을 일으켜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서쪽의 구타니로 갔다. 그 지방의 백성들도 모두 귀화하였다.
전륜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염부제와 불바제와 구타니가 이미 안락하고 풍족하며 백성들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이제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 신하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북쪽의 울단월(鬱單越)은 아직 귀화하지 않았습니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을 날아서 북쪽의 울단월에 도착하였다. 곧 그 지방의 백성들도 환희하며 귀화하였다.
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제는 4천하가 모두 편안하고 풍족하여 백성들이 치성하고 덕화에 귀화하였고, 지금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성왕이시여, 삼십삼천은 수명이 매우 길고 쾌락 태평하여, 저 하늘 사람들의 형상이 단정하고 사는 궁전이나 앉는 평상이나 이부자리들이 모두 7보로 되어있으며, 천상의 복락을 믿고 아직 오지 않고 귀화하지 않으니 이제 한번 가서 토벌하여 항복받음이 좋겠습니다.’
그때 성왕이 다시 7보와 온갖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 도리천에 이르니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빛이 매우 푸르고 훌륭하였다. 성왕이 대신들에게 ‘이것이 무슨 빛깔이냐?’고 물으니 대신들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나무인데, 도리천에서는 여름 석 달을 이 나무 아래서 오락하며 즐깁니다.’
또 흰 구름처럼 흰빛을 보고, ‘이것은 무슨 빛이냐?’고 대신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선법당(善法堂)인데, 도리천 사람들은 그 속에 모여서 인간과 천상의 일을 의논합니다.’
그때 도리천 임금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정생왕이 온 것을 알고 친히 나와 맞이하였다. 서로 처음 보는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선법당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두 임금이 얼굴이나 몸매는 평등하여 별로 차별이 없었으나 다만 눈을 깜박이는 것이 같지 않았다. 그때 성왕이 곧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저 왕을 퇴위시키고 여기 있으면서 천왕이 되어볼까?’ 하였다.
선남자야, 그때 제석천왕은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열어 보이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였으나 깊은 이치는 통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한 인연의 힘으로 큰 위덕이 있었다. 선남자야, 이 정생왕이 제석천왕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내자 문득 떨어져서 염부제로 돌아오고, 사랑하던 천인과 이별하게 되어 큰 고통을 받았으며 또 나쁜 병을 만나서 죽고 말았다.
그때의 제석은 곧 가섭불이었고 전륜왕은 내 몸이었다. 선남자야, 이렇게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은 대단히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지난 세상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던 고통도 기억하는데, 하물며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지금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을 관찰하지 않겠느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천상에 모두 이런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이 있음을 관찰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큰칼을 쓰고 족쇄에 채이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 큰 고통이 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갈래[五道]에 태어나는 모든 것이 모두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인 줄로 관찰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원수나 큰칼 쓰는 것ㆍ족쇄 차는 것ㆍ고랑 차는 것 따위를 무서워하여 부모와 처자와 권속과 보배와 살림을 버리고 멀리 도피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일이 무서워서 6바라밀을 구족하게 수행하여 열반에 들어간다. 가섭아,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미워하는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을 관찰한다고 하는가? 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구하는 것이며, 다 구한다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한 법을 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나쁜 법을 구하는 것이다. 선한 법은 얻지 못했다는 것이 고통이며, 나쁜 법은 여의지 못했다는 것이 고통이다. 이것이 5음으로 성하는 고통을 대강 말한 것이다. 가섭아, 이것을 ‘괴로움의 참된 이치[苦諦]’라고 한다.”
그때 가섭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5음으로 성하는 고통[五盛陰苦]은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석마남(釋摩男)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색이 고통이라면 모든 중생이 색을 구하지 않을 것이며, 구하는 이가 있다면 고통이라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느낌[三種受]이 있으니 괴로운 느낌ㆍ 즐거운 느낌ㆍ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不苦不樂受]이다’라고 하였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선한 법을 닦으면 즐거움을 받는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좋은 갈래에서는 여섯 가지 촉감[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곧 눈으로 좋은 빛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좋은 법을 듣거나 생각하는 것도 그와 같다’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계행을 가지는 것 즐거움이니
몸으로 모든 고통 받지 않으며
잠을 잘 때 편안함을 얻게도 되고
깨고 나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의복이나 음식을 받았을 때와
경전 읽고 외우며 거닐 때에나
산림 속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즐거움이다.
누구나 중생들을 대할 때마다
밤낮으로 자비심 항상 닦으면
그 때문에 즐거움 얻게 되리니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는 까닭이다.
욕심 없어 만족함을 알면 즐겁고
많이 듣고 분별함도 즐거움이며
고집함이 없어진 아라한들도
즐거움을 받는다고 이른다.
시방세계 여러 보살마하살
필경에 열반 언덕 이르러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을 가장 좋은 낙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모든 경전에 말씀하신 즐거움이란 뜻이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게 하면 이 이치와 맞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너는 여래에게 이 뜻을 잘 물었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하품(下品)의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잘못 내는 것이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고통의 모양이 본래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때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하열한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는 것은 하열하게[下品] 태어나는 것ㆍ하열하게 늙는 것ㆍ하열하게 병나는 것ㆍ하열하게 죽는 것ㆍ하열하게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ㆍ하열하게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ㆍ하열하게 미운 것과 모이는 것ㆍ하열하게 5음으로 성하는 것 등의 고통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열하게 태어나는 것은 3악도이며, 중품에 태어나는 것은 인간이며, 상품에 태어나는 것은 천상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일 하품의 즐거움에서 괴로운 생각을 낸다면 중품의 즐거움에는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은 생각을 낼 것이며, 상품의 즐거움에는 즐거운 생각을 낼 것입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하품의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면 혹시라도 천 번 벌을 받을 사람이, 한 번 벌을 받을 때에는 즐거운 생각을 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내지 않는다면 어찌 하품의 고통 속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가섭아, 그대의 말과 같다. 그런 뜻으로 즐거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땅히 천 번 벌을 받는데, 첫 번째 한 번은 받고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은 즐거운 생각을 내므로 즐거움이 없는 데서 허망하게 즐거움을 내는 것이다.”
가섭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한 번 하품에 태어남으로써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고, 면했기 때문에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가섭아,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석마남에게 ‘5음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다. 가섭아, 세 가지 느낌[受]과 세 가지 괴로움[三苦]이 있으니, 세 가지 느낌[三受]이란 것은 즐거운 느낌ㆍ괴로운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세 가지 괴로움이라 함은 괴로운데 괴로움[苦苦]과, 변천하는 괴로움[行苦]과, 파괴되는 괴로움[壞苦]이다. 선남자야, 괴로운 느낌이라는 것은 세 가지 괴로움으로, 괴로운데 괴로움과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며 다른 두 가지 느낌은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다.
선남자야, 이 인연으로 나고 죽는 속에 실로 즐거운 느낌이 있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품이 서로 여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 한다. 선남자야, 나고 죽는 속에는 진실로 즐거움이 없지만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세간을 따르느라고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만일 세상을 따른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허망한 것입니까? 또 부처님의 말씀대로 선한 것을 수행하는 이는 즐거운 과보를 받고 계행을 가지면 편안하여 몸에 괴로움을 받지 않습니다. 나아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이 가장 좋은 낙이라면
그런 경전에 말한 즐거운 느낌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만일 허망하다면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 동안 보리도를 닦아서 허망한 말을 여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위에서 말한 여러 즐거움을 받는다는 게송은 곧 보리도의 근본이며,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기르는 것이다. 그런 이치로 앞의 경전에 즐거운 모양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세간에서 필요한 살림거리가 즐거움의 원인이 되므로 이것을 즐거움이라 이른다.
이른바 여색을 즐기는 것ㆍ술을 마시는 것ㆍ훌륭한 음식ㆍ맛있는 음식ㆍ목마를 때 물을 만나는 것ㆍ추울 때 불을 만나는 것ㆍ의복ㆍ영락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복ㆍ하인ㆍ금ㆍ은ㆍ폐유리ㆍ산호ㆍ진주ㆍ창고ㆍ곡식 따위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즐거움의 원인이 되므로 즐겁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것들도 괴로움을 발생시킨다. 여인 때문에 남자의 괴로움이 생겨 근심하고 걱정하고 울고 나아가 목숨을 끊는다. 또 맛있는 술이나 나아가 창고와 곡식도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을 하게 한다. 이런 뜻으로 온갖 것이 모두 괴로움이며,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성문과 벽지불들은 즐거움의 원인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품(下品)의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보살만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와 같이 괴로움의 원인과 즐거움의 원인을 아는 것이다.”
728x90
반응형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113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4권 (2) | 2023.10.11 |
---|---|
[적어보자] #3112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3권 (2) | 2023.10.11 |
[적어보자] #3110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1권 (4) | 2023.10.10 |
[적어보자] #3109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0권 (2) | 2023.10.10 |
[적어보자] #3108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9권 (2) | 2023.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