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6권
대반열반경 제26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⑥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는 데는 처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내어 모두 성취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믿음[信]이며 둘째는 곧은 마음[直心]이고 셋째는 계행[戒]이며 넷째는 선지식을 친근히 함[親近善友]이며 다섯째는 많이 아는 것[多聞]이다.
어떤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3보를 믿고, 보시에 과보가 있음을 믿고, 두 가지 진실한 이치[二諦]를 믿고, 1승의 도에 다른 길이 없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빨리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분별하여 3승을 만든 것을 믿고, 제일의제를 믿고, 좋은 방편을 믿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믿는 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모든 중생이 깨뜨리지 못하며, 이렇게 믿으므로 성인의 성품을 얻어 보시를 행하면, 많거나 적거나 모두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고 생사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계행을 가지는 것과 많이 듣는 것과 지혜도 그와 같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비록 이런 믿음이 있더라도 또한 견해를 짓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대열반을 닦아 첫 번째 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곧은 마음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중생에게 질직한 마음을 짓는다. 모든 중생들은 인연을 만나면 아첨하고
굽은 마음을 내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다 인연인 줄을 아는 까닭이다. 보살마하살은 비록 중생들의 나쁜 허물을 보더라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번뇌가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번뇌가 생기면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 보살은 중생에게 선한 일이 있음을 보면 칭찬을 한다. 무엇을 선한 일이라고 하는가? 불성을 말한다. 불성을 칭찬하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살마하살이 불성을 칭찬하여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고 하시나, 그 뜻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처음 『열반경』을 펴실 때에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어떤 병난 사람이 용한 의원과 약과 간병할 사람을 만나면 병이 쉽게 낫지만 만나지 못하면 나을 수 없고, 둘째는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수 없고, 셋째는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것이다.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묘한 법문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만,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한다. 이들은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이다.
둘째는 아무리 선지식ㆍ부처님ㆍ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들어도 보리심을 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여도 내지 못한다. 그들은 일천제이다. 셋째는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
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 그들은 보살이다’라고 하셨다.
만일 만나거나 만나서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성을 칭찬하는 것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고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선지식ㆍ부처님ㆍ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고 하시나, 이 의미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천제들도 불성이 있으므로 법문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일천제라고 하는가? 선근을 끊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이 의미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성을 끊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불성은 끊을 수 없는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근을 끊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예전에 12부경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선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항상한 것이며, 둘째는 무상한 것입니다.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고 무상한 것은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무상한 것은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만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겠습니까?
불성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일천제가 아닌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일천제라는 말을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불성을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고 하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말씀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4대하가 아뇩달못에서 흘러내리는데, 천상 사람과 세간 사람이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 근원으로 돌아간다 고 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보리심도 그와 같아서 불성이 있는 이는 법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계행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거나, 보시하거나 보시하지 않거나, 닦거나 닦지 않거나, 지혜롭거나 지혜롭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우타연산(優陀延山)에서 뜬 해가 남쪽까지 왔다가 생각하기를 ‘나는 서쪽을 가지 않고 도로 동쪽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불성도 그와 같아서 법을 듣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 않고 보시하지 않고 닦지 않고 지혜롭지 않다고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여래께서는 인과의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의미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타락이 생기지 못할 것이며,
니구타(尼拘陀) 씨에 다섯 길[五丈]만큼 자랄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 되는 나무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불성 가운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품이 없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겠습니까? 이런 뜻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시는 것이 이런 의미와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매우 희유하여 우담화(優曇花)와 같다. 첫째는 나쁜 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며, 둘째는 죄가 있으면 참회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대단히 희유하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은혜를 짓는 사람이며, 둘째는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새로운 법을 물어 배우는 사람이며, 둘째는 옛것을 익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새것을 짓는 사람이며, 둘째는 옛것을 닦는 사람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법 듣기를 좋아하고 둘째는 법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며, 둘째는 답변을 잘하는 사람이다. 질문을 잘하는 이는 그대이며, 답변을 잘하는 이는 여래이다. 선남자야, 잘 묻는 것을 인하여 위없는 법의 수레를 운전하며, 12인연의 나무를 시들게 하며, 가없는 생사의 큰 강을 건너며, 마왕 파순과 더불어 싸우며 파순이 세운 전승의 깃발을 꺾는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세 가지 병자 중에 용한 의원과 간병하는 이와 약을 만나거나 또 만나지 않고 병이 쾌차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나거나 못 만나거나 간에 수명은 결정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한량없는 지난 세월에 세 가지 선한 일을 닦았으니, 상품ㆍ중품ㆍ하품이다. 이렇게 세 가지 선을 닦았으므로 수명이 결정된 것이다. 저 북구로주(北俱盧洲) 사람이 수명이 천 년인 것 같아서, 병에 걸린 이가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하는 이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병이 낫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정한 수명을 얻은 까닭이다.
선남자야, 내가 말한 것처럼 병난 이가 만일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나면 병이 낫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야, 이런 사람은 수명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은 비록 다하지 않았으나 아홉 가지 인연을 만나면 목숨이 단명하는 것이다. 무엇이 아홉인가? 첫째는 먹어서 편안하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먹는 것이며, 둘째는 많이 먹는 것이며, 셋째는 먹은 것이 채 소화되기 전에 또 먹는 것이며, 넷째는 대소변이 때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병이 났을 때에 의원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여섯째는 간병하는 이가 시키는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억지로 참고 토하지 않는 것이며, 여덟째는 밤에 다니고, 밤에 다니므로 나쁜 귀신이 침노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방사(房事)가 너무 과도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용한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나을 것이며,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한 것과 같이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낫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의 수명이 다하였으면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쾌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의원과 약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낫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보리심을 낸 이는 선지식과 부처님과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마땅히 보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능히 보리심을 낸 까닭이며, 북구로주 사람의 수명이 결정된 것 과 같다. 내가 말한바와 같이 수다원으로부터 나아가 벽지불이 선지식이나 부처님과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 만일 부처님이나 보살이 말씀하시는 깊은 법을 듣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저 수명이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아홉 가지 인연으로 목숨이 단명하는 것과 같다. 저 병난 사람이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쾌차하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을 들으면 보리심을 내고,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보리심을 내지 못한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야, 일천제들이 선지식ㆍ부처님ㆍ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일천제의 마음을 끊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한 법을 끊은 까닭이다.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만일 보리심을 내면 다시 일천제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가? 일천제들은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마치 수명이 다한 이는 비록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난다 하더라도 쾌차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수명이 다한 까닭이다.
선남자야, 일천(一闡)은 믿음[信]이란 말이며, 제(提)는 갖추지 못하였다[不具]는 말이니 믿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믿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좋은 방편[善方便]이란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좋은 방편 닦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좋은 방편을 닦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정진[進]이란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정진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정진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으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생각한다[念]는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생각함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생각함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선정이란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선정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하며, 불성은 선정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지혜라는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지혜가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무상한 선[無常善]이라는 말이며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무상한 선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불성은 항상하며 선도 아니고 선하지 않음도 아니다.
왜냐하면 선한 법은 반드시 방편으로부터 얻는데, 불성은 방편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선하지 않음도 아니라고 하는가? 능히 선한 과보를 얻는 까닭이며, 선한 과보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또 선한 법은 나면서 얻는 것이고 불성은 나면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선이 아니며, 나면서 얻은 선한 법을 끊었으므로 일천제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일천제가 불성이 있다면 어째서 지옥의 죄보를 막지 못하는가? 하지만 선남자야, 일천제 가운데는 불성이 있지 않다.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어떤 왕이 공후(箜篌)의 소리를 들으니 청아하고 미묘하여 마음이 쏠리고, 즐겁고 사랑하는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에게 묻기를 ‘이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하였다.
대신은 ‘아름다운 소리는 공후에서 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또 소리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공후를 가져다가 왕의 앞에 놓고 말하기를 ‘대왕이여, 이것이 그 소리입니다’ 하였다.
왕은 공후에게 말하기를 ‘소리를 내라, 소리를 내라’ 하였으나, 공후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공후의 줄을 끊었으나 그래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 가죽과 나무까지 모두 깨뜨리면서 소리를 찾아보았으나 소리는 없었다.
그러자 왕은 어째서 거짓말을 하느냐고 대신을 꾸짖었다. 대신은 왕에게 ‘소리를 내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공교로운 수단과 여러 가지 인연을 말미암아서야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머물러 있는 데가 없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찾아봄
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그러나 일천제는 불성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쁜 갈래의 죄를 막을 수 있겠는가? 선남자야, 일천제가 만일 불성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 나쁜 갈래에 이르지 않을 것이며, 일천제라고 하지도 않겠지만 자기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지 않으므로 3악도에 떨어지고, 3악도에 떨어지므로 일천제라고 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우유에 타락의 성품이 없으면 타락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니구다 씨에 다섯 길 될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의 나무가 생기지 못하리라’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하겠지만, 지혜 있는 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품이란 없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인연의 힘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물과 우유를 섞어서 한 달 동안을 그냥 두어도 타락이 되지 못하지만 파구수(頗求樹)의 즙을 한 방울만 우유 속에 떨어뜨리면 곧 타락이 된다. 만일 본래 타락이 있었으면 어찌 다른 인연을 반연하겠느냐?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보게 되는 것이며,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만일 모든 인연을 반연한 뒤에야 이룬다면 이것은 불성이 없는 것이니, 성품이 없음으로써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남의 선함을 칭찬하고 남의 결점을 말하지 않는 것을 질직한 마음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항상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며, 설사 허물이 있더라도 즉시 참회하고 스승과 동무들에게 숨기지 않으며,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책망하여 다시 범하지 않으며, 가벼운 허물에도 중한 죄를 지은 줄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이가 물으면 ‘참으로 범하였다’라고 대답하고, 그 죄가 좋으냐고 물으면 ‘좋지 않다’고 하며,
또 묻기를 잘한 짓이냐 하면 ‘잘못한 짓’이라 대답하고, 또 묻기를 그 죄가 선한 결과냐 선하지 않은 결과냐 하면, ‘이 죄는 선한 결과가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또 묻기를 ‘이 죄를 누가 지었는가, 부처님이나 교법이나 스님들이 지은 것 아니냐?’ 하면, ‘부처님과 교법과 스님들이 지은 것이 아니며, 내가 지었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번뇌로 모여진 것이나 곧은 마음이기 때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믿고, 불성을 믿으므로 일천제라고 이름할 수 없으며, 곧은 마음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한다. 설사 중생의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의약(醫藥) 따위를 수없이 받더라도 많다고 할 것이 아니니, 이런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계행을 닦는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천상에 나기 위해서가 아니며 공포 때문도 아니며, 나아가 외도들의 개의 계[狗戒]ㆍ닭의 계[鷄戒]ㆍ소의 계[牛戒]ㆍ꿩의 계[雉戒]를 받지 않고
파계를 짓지 않으며, 흠이 있는 계[缺戒]를 짓지 않으며, 잡계(雜戒)를 짓지 않으며, 성문(聲門)의 계를 짓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의 계와 시라(尸羅)바라밀 계를 받아 가져 구족계(具足戒)를 얻고도 교만을 내지 않는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열반을 닦는 데, 세 번째 계를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선지식을 친근히 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선한 도를 말하고 나쁜 도를 말하지 않으며, 나쁜 도는 선한 과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선남자야, 나의 몸이 곧 모든 중생의 참된 선지식이므로 부가라(富伽羅) 바라문1)이 가진 나쁜 소견을 끊었다.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나를 친근히 하면 비록 지옥에 태어날 인연이 있더라도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저 수나찰다(須那刹多) 등이 지옥에 떨어질 것인데, 나를 보았으므로 지옥 인연을 끊고 색계천(色界天)에 난 것과 같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있지만 중생의 진정한 선지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천제의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예전에 바라나국에 있을 때에 사리불이 두 제자에게 하나는 백골을 관하게 하고, 하나는 숨을 세는 관법[數息觀]을 가르쳤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모두 선정을 얻지 못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잘못된 소견을 내어 열반이라는 무루의 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일 있다면 내가 얻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받은 계율을 잘 지킨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 비구들이 잘못된 소견을 낸 것을 보고, 사리불을 불러서 이렇게 꾸중하였다.
‘네가 옳게 시키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두 제자에게 뒤바뀌게 법을 말한 것이냐? 그 두 사람의 성품이 각각 다르니, 하나는 세탁하던 이였으며, 다른 하나는 금은을 다루는 사람[金師]이었다. 금은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숨을 세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빨래하던 이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 두 사람이 잘못된 소견을 내었다.’
그리고 내가 두 사람의 정도에 알맞게 법을 말하여 주었더니, 두 사람이 듣고 아라한과를 얻었으므로 내가 모든 중생에게 진정한 선지식이 되는 것이며, 사리불이나 목건련이 아니다.
만일 중생으로서 매우 중대한 번뇌에 속박된 이가 나를 만나면 나는 방편으로써 그를 끊게 한다. 나의 동생 난타(難陀)가 큰 탐욕이 있는 것을 내가 가지가지 방편으로 끊어 주었고, 앙굴마라(鴦掘魔羅)는 지독하게 성내는 일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서 성내는 마음이 끊어졌고,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매우 어리석었으나 나를 본 인연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없어졌고, 파희가(婆熙伽) 장자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두터운 번뇌가 쌓였지만 나를 보고 나서 끊어졌다. 아무리 추악하고 미천한 사람이라도 나를 친근히 하여 제자가 된 이는 그러한 인연으로 모든 천상 사람과 세간 사람의 공경과 친애함을 받는다.
시리국다(尸利鞠多)는 잘못된 소견이 치성하더니, 나를 본 인연으로 나쁜 소견이 소멸되었으며, 나를 봄으로써 지옥의 인을 끊어 버리고 천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지은 이는 기허전타라(氣噓旃陀羅)이며,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나를 보고 목숨을 이은 이는 교시가이며, 마음이 미쳐서 산란하다가 나를 보고서 본마음을 회복한 이는 수구담미(瘦瞿曇彌)이다.
백정의 아들로서 나쁜 업을 많이 짓다가 나를 보고 아주 버린 이는 천제(闡提) 비구이며, 나를 본 인연으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 않으려 한 이는 초계(草繫) 비구이다. 이런 뜻으로 아난 비구는 반쯤 범행(梵行) 갖는 이를 선지식이라 하였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범행을 구족한 이라야 선지식이라고 한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열반을 수행하여 네 번째 선지식 친근함을 구족한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이것을 일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한다. 12부경은 그만두고 비불략(毘佛略)2)만을 배워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것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한다. 12부경은 그만두고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그것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한다.
이 경전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네 글귀 한 게송만을 배워 가지거나, 다시 이 게송도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머물러 성품이 변하지 않음을 배워 지녀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한다. 또 이 일은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법을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법이 성품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여래가 비록 온갖 법을 말하여도 항상 말하지 않는 줄을 알면 이것을 일러 보살이 대반열반을 수행하여 다섯 번째 많이 앎을 구족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선남자ㆍ선여인이 대열반을 위하여 이 다섯 가지를 구족하게 성취하면 짓기 어려운 일을 지을 것이며,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것이며,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할 것이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고 하는가? 어떤 이가 참깨 하나를 먹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믿어 한량없는 아승기겁이 되도록 항상 참깨 한 개를 먹는다. 또 불에 들어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겁 동안에 아비지옥에 있으면서 맹렬한 불더미에 들어간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참기 어려운 일을 참는다고 하는가? 만일 손이나 작대기나 칼이나 돌로 때리는 고통을 받는 인연으로 대열반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몸으로 그런 일을 받으면서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참기 어려움을 참는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고 하는가? 만일 나라나 성이나 처자나 머리나 눈이나 뇌수(腦髓)를 남에게 보시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자기가 가진 나라나 성이나 처자나 머리ㆍ눈ㆍ뇌수를 다른 이에게 보시한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고 한다.
보살은 비록 짓기 어려운 일을 지었더라도 내가 그런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하고도 역시 그와 같이 한다. 선남자야, 어떤 부모가 외아들을 두었으면 소중하게 사랑하여 좋은 의복과 좋은 음식으로 때를 따라 공급하고 모자람이 없게 하며, 그 아들이 부모에게 버릇없는 마음으로 욕설을 하더라도 부모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여워하지 않고, 내가 아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 보기를 외아들같이 하니, 아들이 병이 나면 부모도 병이 나고 의원과 약을 구하여 정성으로 치료하며, 병이 나은 뒤에도 아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번뇌의 병에 걸린 것을 보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을 말해 주어 번뇌를 끊게 하고, 번뇌가 끊어진 뒤에도 내가 중생을 위하여 번뇌를 끊게 하였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만일 그런 생각을 내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한다. 오직 생각하기를 한 중생에게도 내가 법을 말하여 번뇌를 끊게 한 일이 없다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중생에게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공삼매(空三昧)를 잘 닦은 까닭이다. 보살은 공삼매를 닦았으니 누구에게 성을 내고 기뻐함을 내겠는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산에 있는 나무들이 불에 타거나 사람이 찍거나 물에 떠내려가더라도, 이 나무가 누구에게 성을 내며 기뻐함을 내겠는가?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성도 내지 않고 기쁨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삼매를 닦은 까닭이다.”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공합니까? 공으로써 공하게 하므로 공합니까? 만일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공을 닦은 뒤에야 공함을 보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을 닦아서 공함을 본다고 하시며, 성품이 만일 공하지 않다면 비록 공을 닦더라도 공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야, 모든 법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온갖 법의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선남자야, 색의 성품은 얻을 수 없다.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고 하겠는가? 색의 성품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이 아니며, 지ㆍ수ㆍ화ㆍ풍을 여의지도 않았고,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지도 않으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여의지도 않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색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겠는가? 성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이라고 한다.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비슷한 것이 서로 계속하므로 범부들이 보고 나서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하지 않다고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법의 성품이 본래 공적함을 보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로 본다면 이 사람은 사문이 아니며 바라문이 아니다.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며,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며, 부처님과 보살들을 보지 못할 것이니, 그는 마군의 권속이다.
선남자야,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공하며, 보살은 공을 닦음으로 인하여 법의 공함을 보게 된다. 선남자야, 마치 모든 법의 성품이 무상한 까닭으로 멸(滅)이란 것이 능히 멸하듯이 만일 무상하지 않으면 멸이란 것이 멸할 수 없다. 함이 있는 법에는 나는 모양[生相]이 있는 까닭으로 생이란 것이 능히 생하며, 멸하는 모양[滅相]이 있는 까닭으로 멸하는 것이 능히 멸한다. 모든 법에는
괴로운 모양[苦相]이 있기 때문에 고(苦)라는 것이 능히 괴롭게 한다.
선남자야, 소금의 성질이 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짜게 하며, 사탕의 성질이 달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달게 하며, 식초의 성질이 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시게 하며, 생강의 성질이 맵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맵게 하며, 하리륵(呵梨勒)3)의 성질이 쓰기 때문에 다른 것을 쓰게 하며, 암라(菴羅) 열매의 성질이 담백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담백하게 하며, 독약의 성질은 해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롭게 하며, 감로의 성질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하며, 다른 물건에 섞어도 죽지 않게 한다. 보살이 공을 닦음도 그와 같아서 공함을 닦는 까닭으로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한 것을 보는 것이다.”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소금이 짜지 않은 물건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를 닦는 것도 그와 같다면 이 삼매는 선한 것도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어서 성품이 뒤바뀌었을 것이며, 공삼매로써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것이니 어떻게 보겠습니까?”
“선남자야, 이 공삼매로는 공하지 않은 법을 보아서 공하게 하지만 뒤바뀐 것이 아니다. 마치 소금이 짜지 않은 것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도 그와 같아서 공하지 않은 것을 공하게 한다. 선남자야, 탐욕은 있는 성품이며 공한 성품이 아니다. 탐욕이 만일 공하다면 중생이 그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지옥에 떨어진다면 어찌하여 탐욕의 성품이 공하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색의 성품은 있는 것이니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고 하는가? 뒤바뀐 것을 말한다. 뒤바뀐 까닭에 중생이 탐욕을 내는 것이다. 만일 색의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을 내게 하겠는가? 탐욕을 내게 하므로 색의 성품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뜻으로 공삼매를 닦음은 뒤바뀐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모든 범부들은 여인을 보면 여인이란 집착을 내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 비록 여인을 보더라도 여인이란 집착을 내지 않으며, 집착을 내지 않으므로 탐욕이 생기지 않고, 탐욕이 생기지 않으므로 뒤바뀐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살도 따라서 여인이 있다고 말한다. 만일 남자를 보면서 여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다. 그래서 내가 천제(闡提) 비구에게 말하기를 ‘만일 낮을 가지고 밤이라 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며, 밤을 가지고 낮이라 한다면 그것도 뒤바뀜이 되겠지만, 낮을 낮의 모양이라 하고 밤을 밤의 모양이라 하는 것이야 어찌 뒤바뀜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모든 보살의 9지(地)에 머문 이는 법의 있는 성품[有性]을 본다. 이렇게 봄으로써 불성을 보지 못하고, 만일 불성을 본다면 다시 모든 법의 성품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공삼매를 닦으므로 법의 성품을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불성을 보는 것이다.
불보살에게 두 가지 말이 있으니, 첫째는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이며, 둘째는 성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중생을 위하여 법의 성품이 있다고 말하고, 현성들을 위해서는 법의 성품이 없다고 말한다. 공하지 않은 이가 법의 공함을 보게 하기 위해서 공삼매를 닦아 공함을 보도록 하며, 법의 성품이 없다는 이도 공삼매를 닦으므로 공한 것이다. 이런 뜻으로 공을 닦아서 공을 보는 것이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법이니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선남자야, 그렇다.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보는 것이 없으며, 보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며,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곧 온갖 법이다. 보살마하살은 대열반을 닦으므로 온갖 법에 대하여 보는 것이 없다. 만일 보는 것이 있다면 불성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여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음을 본다.
선남자야, 보살은 다만 삼매를 봄으로써 공을 보는 것만이 아니다. 반야바라밀도 공하고, 선정바라밀도 공하고, 정진바라밀도 공하고, 인욕바라밀도 공하고, 지계바라밀도 공하고, 보시바라밀도 공하며, 빛도 공하고 눈도 공하고 알음알이도 공하며, 여래도 공하고 대반열반도 공하므로 보살은 모든 법이 다 공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비라성에 있으면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너는 걱정하지 말고 슬피 울지 마라’하였더니, 아난은 ‘여래 세존이시여, 지금 나의 친속들이 모두 죽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겠습니까? 여래께서는 저와 같이 이 성에 났으며,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친척이며 권속인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홀로 수심이 없으시고 안색이 화평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나는 또 말하기를, ‘너는 가비라성이 참으로 있다고 보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적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너는 석가족이 모두 친속이라고 보지만, 나는 공삼매를 닦았으므로 보는 것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너는 걱정하지만 나는 안색이 화평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래와 보살들은 공삼매를 닦으므로 수심하지 않으시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최후로 열째 공덕을 구족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은 37도품(道品)을 닦아서 대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들어가고,
중생들을 위하여 『대반열반경』을 분별하여 해설하며 불성을 나타낸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과 벽지불과 보살로서 이 말을 믿는 이는 모두 대반열반에 들어가며, 믿지 않는 이는 생사에서 바퀴 돌 듯 한다.”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 경에 대하여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성문 제자가 어리석어서 계율을 파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12부경을 버리고 여러 가지 외도의 경전을 읽고 외우며, 글 짓고 글씨 쓰며,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받아 두면서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전단을 가지고 보통 나무로 바꾸며, 금을 놋쇠로 바꾸며, 은을 납으로 바꾸며, 비단을 삼베로 바꾸며, 감로를 독약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떤 것을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고 하는가? 나의 제자가 공양을 얻기 위하여 속인들에게 정법을 연설하는데 속인이 마음이 방일하여 들으려 하지 않으며, 속인을 높은 곳에 앉게 하고 비구는 낮은 곳에 있으며,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공급하더라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말하여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고 하는가? 놋쇠는 색ㆍ소리ㆍ향기ㆍ맛ㆍ감촉에 비유하고 금은 계율에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들이 색 따위의 인연으로 계율을 파하는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은을 납으로 바꾼다고 하는가? 은은 열 가지 선한 일에 비유하고, 납은 열 가지 나쁜 일에 비유한 것이다. 나의 제자들이 열 가지 선한 일을 버리고 열 가지 나쁜 법을 행하는 것을 말하여 은을 놋쇠로 바꾼다 고 한다.
어떤 것을 말하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고 하는가? 삼베는 남부끄럼[慚]도 없고 제부끄럼[愧]도 없는 데 비유하고, 비단은 남부끄러워하고
제부끄러워하는 데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가 남부끄럽고 제부끄러운 것을 버리고 남부끄럼도 모르고 제부끄럼도 모르는 것을 익히는 것을 일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고 한다.
어떤 것을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고 하는가? 독약은 가지가지의 이양에 비유하고 감로는 무루법에 비유한 것이다. 나의 제자가 이양을 위하여 속인들을 향하여 자기가 무루(無漏)를 얻었다고 하는 것을 말하여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고 한다.
이런 나쁜 비구들을 위하여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염부제에 널리 유포할 것이니, 그때 나의 제자들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여 선포하면 저 나쁜 비구들에게 죽게 될 것이다. 그 나쁜 비구들도 여럿이 모여 혹독한 규칙을 만들고 있으면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거나 쓰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는 이는, 모두 함께 있지도 않고 같이 앉아 말하지도 않으면서
그 이유를 말하기를 ‘『열반경』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견(邪見) 가진 자가 만든 것이니, 사견 가진 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이고, 육사외도가 말한 것은 부처님의 경전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비구에게 가지가지 물건을 받아 두라고 허락하셨고, 6사들은 제자에게 모든 물건을 받아 두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런 말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제자들에게 다섯 가지 우유[牛五味]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제정하지 않으셨고, 6사들은 다섯 가지 소금과 다섯 가지 우유와 비계와 피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런 것을 먹지 말라 한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경전이라고 하겠는가? 또 부처님과 보살은 3승의 법을 말씀하였는데, 이 경에서는 1승만을 말하여 대열반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런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옳은 경전이라 하겠는가? 또한 부처님께서는 필경에 열반에 드셨는데, 이 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 경은 12부 중에 들지 않으며, 이것은 마군의 말이고 부처님의 말이 아니다’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런 사람들은 나의 제자라고는 하더라도 이 『열반경』을 믿고 따르지 못한다. 선남자야, 이런 때를 당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반 구절만이라도 믿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내 제자이며, 이렇게 믿음을 인하여 불성을 보아서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여래께서는 오늘에 『대열반경』을 잘 열어 보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인하여 『대열반경』의 한 구절, 반구 절이나마 깨달았으며, 한 구절 반 구절을 깨달았으므로 조금의 불성을 보았으니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대열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열 번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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