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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75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송 상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頌)

by Kay/케이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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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송(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頌) 상권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송 상권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頌)
비사거(毘舍佉) 모음
의정(義淨) 한역
이창섭 번역
1. 구족계(具足戒)를 받는 의식을 만들어 밝히고 필추들 이 행하여야 할 법식
조복(調伏)1)을 열어 넓히니
조복의 뜻을 잘 익혀
조복 속에 바르게 안주하면
조복 안 된 마음 버릴 수 있네.
이와 같은 스님과 법과
성중(聖衆)들에게 공경히 절하오며
나는 지금 알음알이[解]를 따라서
간략히 비나야(毗奈耶:律藏)를 거두어 모았노라.
게으르고 지혜 적은 사람은
자세한 글에서는 두려운 마음 생겨
비록 부지런히 노력하더라도 역시 즐겁지 않으니
이 조복의 바다에 들어와서
그들을 들어오게 한다면
큰 피로감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게송으로 맺어 단계를 만들면
뛰어난 사람은 나루터길 보고서
재물이 원만함을 찬탄하리니
뛰어난 범궁(梵宮)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
삼매와 열반도
나란히 계율로 말미암아 얻게 되나니
이 비나야를 벗어난다면
모든 일 청정할 수 없도다.
마치 지극히 깨끗하게 옷을 빨고자 할 때
맑은 물에서 세탁하지 아니함과 같고
또한 달무리 이지러지면
밤 깊어 빛나는 광명
생기지 않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출가한 사람에게서
계율에 흠집이 생기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그러므로 게으르고 나태함을 버리고
마땅히 계(戒)로 장엄함을 즐길 것이며
짓고 짓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자
부지런히 계율의 가르침을 들을지어다.
필추는 마땅히 마음을 내어
비나야 이해함을 구하여야 하니
반드시 먼저 스스로 밝히고
후에 마땅히 가르쳐서 전해야 하네.
그리하면 능히 사부대중 가운데에서
크게 공경함을 받을 것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은밀히 이 사람을 지켜주리니
부지런히 바른 법문을 구하고
유정(有情)을 이익 되게 하며
스스로 계의 쌓임을 지키고
잘 보호하여 이지러지게 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계를 범하였을 경우에도
모두 찾아와 물어보기 청하면
결택(決擇)된 내용 가운데서
공교롭고 묘한 방편 얻어서
원망하던 곳도 조복시킬 수 있고
법과 법구(法俱)를 알아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으리라.
만약 자기가 있는 지방에
계율의 가르침에 밝은 사람 있다면

부처님 말씀하기를 ‘나는 염려 없다’ 하셨으니
그로 말미암아 빛나는 광명 일어나리라.
부처님은 이와 같이
율장 공덕의 불가사의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부지런히 율장을 구하여
이를 받아 간직하여야 하리라.
필추가 만 10년 동안을
스스로 거룩하게 율장 지켜서
법과 의식에 환하게 밝게 되면
출가하는 이에게 구족계를 줄 수 있고
계경(戒經)과 광범위한 해석
글과 내용 모두 잘 정통하면
다른 사람의 의지가 되고
그들을 능히 가르칠 수 있도다.
비단 내용의 해득이 적은 사람이나
지식이 얕은 사람일지라도 일에 의문이 많을 경우에는
내용을 분석하여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대사(大師)의 말씀에 혼란이 없고
계본(戒本)을 자세히 해석하고 있으니
만약 분명히 해득하지 못하면
한평생을 어리석게 보내고
끝내 다른 사람에 의지하며 살아가리라.
마땅히 늙은 스님께 의지하여 머물러라.
만약 의지할 곳 없는 젊은 사람이라면
스승이 젊거든 섬겨서는 안 되나니
나머지는 모두 소작(小作)2)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라.
모든 출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정에 따라 한 스승을 찾아가서
어려운 일을 물어보아야 하고
그런 곳이 없다면
때에 응하여 섭수(攝受)해야 한다.
만약 5무간죄(無間罪)를 지었거나
도적들이 사는 곳에 사는 사람이거나
몸이 변화하여 사람의 형태가 아니거나
외도의 벙어리 귀머거리 따위나
또는 태어날 때부터 성불구자(性不具者)나
더렵혀진 필추니는 마치 짠 소금밭과 같아서
계율의 씨앗이 생겨나지 아니한다.
변죄(邊罪)를 범한 사람이나
빚을 지고 아울러 병이 있는 사람과
현재 왕이나 대신, 장군이거나
큰 도적과 그 노예들이나
태어난 곳이 천하고 외진 씨족이거나
열 손가락이 달라붙은 사람이거나
손발이 모두 뒤틀리고 절름발이거나
꼽추나 납작코나
상처를 입어 여자에게 업혀 있는 사람과
키가 크고 추악하며 뇌가 작은 사람과
지나치게 충치가 많은 사람이나
사팔뜨기로 눈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
눈이 크고 작은 황포(黃泡)가 있는 사람과
또는 붉거나 빨간 거품이 있는 사람들
이와 같이 몸이 단정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줄여서 막아야 할 일을 말한다면
요컨대 오직 세 종류로 압축된다.
색과 형태와 씨족(氏族)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승가 대중이 더렵혀진다.
색은 붉은 머리카락의 사람 등을 말하고
형태란 흉악한 얼굴과 머리모양이며
또 당나귀와 같은 귀나 머리를 가진 사람과
귀나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이나
코끼리ㆍ말ㆍ원숭이의 모습을 한 사람이나
코에 구멍이 하나뿐인 사람
눈이 없고 소나 말과 같은 치아를 지닌 사람이나
혹은 치아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씨족이란 전다라(旃陀羅:白丁)나
죽세공인(竹細工人)ㆍ청소부
절도 등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율에서 막는 사람들이다.
만약 청정하게 믿는 사람이 있어서
말하는 데 허물이 모두 없다면
온몸을 두루 살펴보고
장애되는 법이 없는지 물어보고 알아보아
거두어들여 8일이 지날 때까지
마음에 두고 잘 모습을 보아야 한다.
만약 먼저 관찰한 경우에는
하루의 수고를 겪지 않아도 된다.
먼저 삼귀의(三歸依)의 법을 내려주고
다음에 다섯 가지 학처(學處)를 내려준다.
이에 호응하는 사람은
선명한 속인의 옷을 입고
스님 앞에 서야 하며
승단에서 허가하게 되면
마땅히 출가법에 의하여
먼저 모범이 될 스승을 청하고
다음 열 가지 학처를 내려준다.
이를 받고 나서 사미[求寂]3)가 된다면
모든 대중이나 속인의 반려자들이
그에게 아마도 찬탄하고 절하리라.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는 까닭에
의혹을 타파하고 모든 가려진 그늘이 제거된다.
큰 신선의 옷을 입은 까닭에
이 빛나는 광채가 성대하여
마치 해가 처음 솟아오르듯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원(圓)이 생기면
마른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그가 받은 구족계로
온갖 죄가 모두 소멸되어
중앙에 있으면서 그 광명이
시방세계에 가득하리라.
필추라면 계율 줄이는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
변방에 구족계 받는 사람은
다섯 가지 허물에 한해서 뜻에 따라 용서받는다.
동방의 경계는 분도발달나(奔荼跋達那)
이 경계에 나무가 있으니 사라수(沙羅樹)라 부른다.
북쪽 산은 올시라(嗢尸羅)이니
절 이름은 답마바반나(答摩婆畔那)이다.
서쪽 경계 마을 이름은 솔토노(窣吐奴)며
남쪽 가장자리 성은 섭벌라(攝伐羅)라 하나니
부처님 말씀에 이 경계 안을 중방(中方)이라 하고
이 경계 밖은 변국(邊國)이라 부른다.
필추의 지계(持戒)가 청정하면
다른 이에게 구족계를 줄 수가 있다.
이는 소라와 조개껍질이
썩은 공중의 나무에서 우는 것이 아니다.
법을 잡은 사람은 계율을 알고
그 밖의 네 사람 아홉 사람도 청정하니
구족계 받으면 칭찬받을 만하며
모든 천신도 공경히 절하고
수많은 삼계안의 중생도 같다.
청정한 사람이 법을 잡으면
갈마 하는 데 장애 없으니 거룩하도다.
구족계를 받게 되는 다섯 가지 인연은
비바사(毘婆沙)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열 종류의 방법으로 구족계를 얻는다.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
이를 자각수(自覺受)라 부른다.
교진여(憍陳如)를 우두머리로
선정의 도(道) 얻은 다섯 사람
현명한 사람들의 모든 청정심
그들은 모두 따라 귀의할 수 있었고
법전도 이로 말미암아 얻게 하였다.
거룩하게 찾아와 필추가 된
큰 씨족인 가섭파(迦攝波:迦葉)는
존경할 스승 얻을 길 없었으며

동자 오타이(鄔陀夷)는
훌륭히 문답을 하여
대사의 뜻을 헤아렸네.
부처님 말씀에 구족계를 이루려면
중앙나라에는 열 사람이 채워져야 하고
변방의 수효는 다섯이 채워져야 한다고 하셨다.
혹 이보다 넘는 경우도 있으나
불자(佛子)를 잡는 데는 모름지기
법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교답미(喬答彌) 대세주(大世主)가
청한 것을 인연하여
부처님은 8경법(敬法)을 설법하시니
이를 이름하여 구족계 얻었다 한다.
이 여덟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계율을 받는 경우는
모두 백사갈마에 의함은
앞에 말한 바에 근거 하니라.
구족계 받는 일은 모두가 승낙하면
받자마자 곧 구족계는 끝난다.
마땅히 5시(時)에 차등 두고 알리니
겨울과 봄, 우기, 우기가 끝남, 길어질 때이다.
해 그림자를 헤아리고 사람 수에 근거하여
겨울 넉 달은 구월 보름에서
정월 보름에 이르기까지
봄 넉 달은 정월 보름에서
오월 보름까지
우기(雨期) 한 달은
오월 보름에서 유월 보름까지
우기가 끝난 때는 오직 밤낮으로
유월 16일부터 길 때는 17일 새벽까지에서
구월 보름에 이르기까지
석 달에 하루가 모자라는 것
이것을 5시의 차등이라 한다.
끝난 때는 구족계로 나아가니
하안거(夏安居) 중에 함께 하는 경우는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계를 받으나
길 때는 새벽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하안거와 함께 하면 존중받으며
구족계를 받을 때는 필추로부터
반 달 동안 교수(敎授)를 청하고
필추와 가까이하여 여름 좌선을 한다.
생각에 따라 이부(二部) 대중 안에서
필추를 욕하지 않고
그들의 파계(破戒)를 꾸짖지 않는다.
만약 승잔죄(僧殘罪)를 범하면
이부 대중 가운데서 반 달 동안 참회를 행한다.
필추니는 구족계를 받고 비록 백 년이 되었더라도
새로 계를 받은 필추에게
정중하게 마땅히 절을 하여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8경법(敬法)이라 한다.
여자가 남자 모습을 하고
대장부가 여자 형상을 한 사람과
속인과 성불구자는
친히 가르쳐서는 안 된다.
역적과 불구[形殘] 등은
비록 착하더라도 가로막아야 하며
그들에게 구족계를 내릴 경우에는
대중 승단이 모두 죄를 얻으니
원만한 구족계 아닌 것을 즐기지 말라.
태어난 해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 생김새를 잘 살펴보고
그 모습이 스무 살이 되지 않았는가를 의심하여
원만한 구족계를 준다.
밝은 지혜로 헤아려 나이가 차게 하되
태중의 나이와 윤달도 헤아려야 한다.
그 태의 나이를 헤아려도
스무 살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미 가운데 배치하여야 한다.
이는 구족계를 받을 나이가 되지 않은 사람이니
혹시 한두 해가 지나서

비로소 제 나이가 기억나면
앞 년 수를 차감하여 채울 수 있다.
이를 이름하여 훌륭한 구족계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뢰는 소리를 듣고 나서
그의 귀가 갑자기 귀머리가 된다면
이것 역시 훌륭한 수계(受戒)로다.
부처님은 허물없는 사람에게
문호를 열어줌을 허락하시니
바르게 구족계를 받았을 때
남자 형상이 여자로 바뀌면
이를 구족계를 받았다고 표현하나
마땅히 필추니 안에 배치하여야 한다.
만약 스승으로서 아뢰는 소리 듣고
형상이 변한다면
이는 구족계라 부르지 않는다.
법을 잡은 사람이 덕이 없고
계를 받는 사람이 땅에 있거나
법을 잡은 사람이 공중에 살면
두 세계의 바탕 이미 다르니
구족계를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전륜왕(轉輪王)이 태자를 길러서
종통을 이을 자손이 흥륭함을 얻으니
사미를 보호하는 경우도 역시 그렇다.
성스러운 가르침이 더욱 불어나게 해야 하나니
만약 스승이 사미를 보내서
어떤 일로 높은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사지와 몸이 다치면
이로 말미암아 성스러운 가르침이 막힌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출가한 사람은 자비를 근본으로 삼기에
비록 일곱 살 난 어린아이라도 역시 출가를 허락한다.
말 달릴 줄만 알면 사미가 된다.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데
발우가 없으면 허락하지 않는다.
발우는 꼭 있어야 하니
이것이 걸식의 인연이 된다.
가령 윗자리 스님은 기쁨 속에 사는데
사미는 배고파도 발우가 없어
밥 먹을 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밥그릇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발을 빌려서
출가한 사람에게 주어 구족계를 받게 하는 등
범지(梵志)의 법처럼 하지 말아라.
이는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만약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사의(四依)를 말해주지 않으면
이 고난(苦難)한 수행 이야기를 듣고
범지는 곧 속세로 되돌아간다.
만약 한 사람이 갈마의 일을 잡고
한 경계에서 네 사람이 받으면
이는 스님이 스님을 위한 행사며
수법(受法)이라 부르지 않는다.
두 사람 세 사람이
동시에 원만한 구족계를 받을 경우
얼굴 모습 비록 차별이 있어도
여기에는 장유(長幼)의 구별은 없다.
앉은 위치에 따라 이익 받으니
서로 다시 절할 필요는 없다.
만일 일을 맡아볼 사람을 파견할 경우
그에 따라 차별이 지어진다.
나머지 방일(放逸)한 사람을 위해서는
겁을 주는 갈마를 하고
꾸짖고 나서는 직접 몰아내어
싫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만약 삼장(三藏)의 가르침을 알거나
큰 명성과 칭송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광대한 복덕을 생기게 하니
몰아내고 내보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로 말미암아 무리진 사악한 사슴이
사자의 새끼를 무서워하듯

속인들에게도 청정한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가령 큰 스승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면
이 머묾에는 뚜렷한 광명이 있다.
마치 대우왕(大牛王)과 같이
방일한 그들의 행동이
불교를 이지러지게 할 수 있다고 꾸짖고 책망하며
네 가지 무겁고 더러운 행을 밝힌다.
사악한 집착으로 어리석음을 지키는 마음과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세속들이 모두 의논하여 비난하고
집안을 더럽혀 싸움과 말다툼이 생긴다.
이와 같은 계율을 허무는 사람은
대중이 함께 건치를 울려
한마음으로 급히 몰아 쫓아내야 한다.
그가 기둥을 안고 있으면 그 기둥을 잘라야 마땅하고
문고리를 잡고 있으면 그것도 역시 잘라야 한다.
권화(勸化)할 때는 마땅히 닦고 다스리게 하여
혹 대중의 율법을 써도 된다.
필추의 형상을 조롱하면
이를 이유로 승단에 머무르지 않게 한다.
정중하게 함께 승단에서 쫓아내면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말한 사람들은
죽은 시체와 같은 사람이니
함께 머물 이유가 전혀 없다.
모든 승단이 함께 몰아 쫓아내서
이 때묻고 더러운 사람을 제거하고
필추니도 그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
다만 경건하고 공손하되
가까이에서 일을 하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가 걸식할 때는 응해서 주어도 된다.
질투(嫉妬)에 접촉하면 반은 병이 생기니
이를 오반택가(五半宅家)4)라 한다.
모든 알지 못하는 사람 위하여
간략히 그 모습 말하리라.
만약 그가 와서 몸을 껴안으면
마음에 탐욕과 음욕이 일어나니
지혜 있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이 껴안고 있는 사람이 성불구자임을.
질투심으로 이미 남자의 기세라 하고
그와 더불어 교회(交會)를 하게 되면
병이 병으로 인해서
더욱 병 속에 떨어지는 사람이라 한다.
혹 무기 등으로 상해당하여도
살아남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자라 생각하니
두 뿌리[二根] 모두 나타나지 않고
반달은 남자가 되고 반달은 여자가 된다.
이를 이름 하여 반등황문(半等黃門)이라 부르니
만약 음욕의 법으로 말할 경우
성불구자라 할 수도 없다.
만약 두 뿌리가 모두 갖추어 있다면
이를 이형(二形)이라 부르니
이는 사악하고 오염된 마음이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사악한 외도(外道)임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의 법을 받아들이면
이를 취외인(趣外人)이라 부른다.
혹 때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법을 훔쳐 법의(法衣)를 입고
함부로 필추의 알음알이를 짓는 것은
모두 적주(賊住)라 부른다.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악한 견해로
몸소 필추니를 더럽히고
술을 마시고 삼존(三尊)을 훼손하면
이를 사미의 허물이라 한다.
열 가지 일에 만약 범하는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은 곧 쫓아내야 한다.
만약 버려둘 경우에는 응하는 바에 따라
그 죄를 들추어 벌로 다스린다.
만약 변죄(邊罪)를 범하지 않으려면
법에 따라 학처(學處)를 버리고
속가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찾아오면

필추들은 환영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혼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계를 버리되
환하게 아는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나는 계를 버리니 그대는 마땅히 알라’라고 한다면
이를 이름하여 참다이 학처를 버리는 것이라 한다.
계를 받는 의식이 끝나면
곧 네 가지 바라이죄(波羅夷罪)를
설법해주어야 하며
지혜 있는 사람이 먼저 알려서
악한 일을 행하지 못하게 한다.
마음에 덮어두고 숨기지 아니함으로써
한 사람에게 변죄나 무거운 죄를 밝혀 드러내면
이를 학처를 받은 사람[授學人]이라 부른다.
다음 온갖 수행법을 밝혀야 하니
이것이 출가의 가늠되는 의식이다.
전전하며 서로 가르쳐야 하고
존엄한 법이 멸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하늘이 새벽이 되려 하면
일어나 반드시 스승 앞에 있어야 하고
깨끗이 양치질한 다음
마땅히 먼저 존상(尊像:불상)에 예배드려야 하며
다음 스승 옆에 이르러
앉을 도구를 갖다 놓고
수건과 물과 양치도구 등은
춥고 따뜻한 시절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때로 일찍 일어나야 하며
소상하게 살피고 스승 옆에 나아가
공경하고 소중하게 몸을 주무르면
남다른 뛰어난 복이 생길 수 있다.
혹 초저녁이나 밤중에
스승 있는 곳에서 의문을 묻기도 하니
스승을 곧 편안히 앉게 하며
의문에 따라 삼장(三藏)으로 결택을 하여 준다.
새벽이 되어 날이 새면 안부를 묻는 일과
예배를 드리면 공경하는 마음 생기니
이로 말미암아 은혜의 이익이 많으며
능히 친히 시비(是非)를 가르쳐줄 수 있게 된다.
늘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지어서
거기에서 정중한 마음이 일어나
방 안을 훌륭히 소제하고
수행할 곳을 청정하게 하며
단(檀)을 만들어 마땅히 공양드려야 하며
향과 꽃은 있는 것에 따라 마련하고
날마다 삼보(三寶)를 공경하면
이것이 4제(諦)의 인연이 된다.
혹 때로는 향전에 예배드리고
오른편으로 탑 주위를 맴돈다.
서로 가까이에 나이 많은 분 있으면
사정에 따라 예배를 행하고
그를 위해 몸이 견고하기를 빈다.
설사 견고하지 못한 몸일지라도
격려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
어리석고 타락한 생각에 따르지 말고
때에 따라 공양을 마치거든
경을 읽고 외운 뒤에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가사를 입었을 때뿐 아니라
마음에 기쁨을 지녀야만 만족한 경계이다.
14일이나 15일은
장정(長淨)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대중과 화합해서 마땅히 일을 해야 하고
만약 어긋나 홀로 지을 때는
마땅히 스스로 자기를 살핀 뒤에
허물이 있으면 청정을 구하고
작은 죄 가운데 이르기까지도
늘 크게 두려운 생각을 내야 한다.
혹 승단의 주방에 가서
그곳에서 영위하고 마련하는 것을 보고
드물게 묘한 과일이나 음식을 만나면
살핀 뒤 높은 분에게 아뢰어서 알게 하고

시봉과 공양은 항상 부지런하고 공경스럽게 하며
발우를 씻는 일 등도 모두 해야 한다.
높은 스님 계신 곳에서
비록 모든 스님이 모두 일할 때라도
스승이 양을 알아 내려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파계한 사람에게는
위로하거나 예를 갖추어 공경하지 말고
받아쓰는 것을 나누어 주지도 말지니
죽은 시체를 태우는 나무와 같다.
사미들조차도
계(戒)를 가진 속인에게 절하지 않거늘
하물며 필추가
속가의 음욕을 탐내는 사람에게
절해서야 되겠는가?
필추가 얻은 마지막 과보가
만약 작다면 예배드리지 아니하니
하물며 나머지 생사윤회 안에서
돌고 도는 어리석고 굳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겠는가.
무학(無學)의 경지를 설법함을 주로 하고
학(學)의 단계의 사람은
아비가 물려준 재물같이 여겨야 한다.
부지런히 정(定)을 닦고 경을 읽고 외우는 사람은
정성의 정도에 따라 허물없지만
그 밖의 게으른 사람 등은
재물을 빚진 사람이라 부른다.
파계한 사람은 완전히
생활과 주거할 곳을 가로막아야 하며
신심으로 절집을 경영할 사람은
오직 계율에 안주하여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거운 죄 범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절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원래부터 허락되지 않는다.
측간 가까이에서는
여러 말 해서는 안 된다
경을 읽고 옷을 빨고 염색하는 등
이런 일은 모두 허락되지 않는다.
소변 대변보는 곳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소리를 내고
한두 번 다른 곳을 두드려 보라.
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소변 볼 때 바람기운 있거든
천천히 나오게 하고 소리 나게 하지 말라.
기세 이르러 막강하게 유지될 때는
뒷간 안에서는 말해서는 안 된다.
산가지(籌)이나 흙덩어리 등을
먼저 지녔다가 아랫도리를 닦아내고
다음 두세 번 흙으로 문질러
맑은 물로 씻어 깨끗이 하고
왼손은 일곱 번 흙으로 문질러야 한다.
이를 청정이라 부른다.
두 손은 그 후 일곱 번 사용하니
이는 모두 따로따로 안배함이다.
이 밖에 또 한 무더기의 흙이 있어서
그대가 지닌 것을 씻는 데 쓴다.
장딴지 허벅지 발을 씻으니
이를 이름하여 외정(外淨)이라 한다.
이 일은 사리자(舍利子)로 인하여
생긴 법이며
이와 다를 경우 악작죄를 초래한다.
두 손은 잘 마음을 써서
씻어서 지극히 청정케 하라.
그 뜻은 구린 냄새 제거함에 있으며
몸을 청정케 할 수 있음에 있다.
만약 이 법에 의하지 않으면
백 무더기 흙이 있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더러운 몸으로는 삼존불에 예배드리기에 합당치 않고
또한 다른 사람의 절을 받지도 못한다.
나머지 일도 모두 지을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 친히 손수 가로막으신다.
만약 치목(齒木)을 씹지 않거나
마늘과 매운 음식을 먹는다면
그 일도 앞의 경우와 같다
상세한 것은 율장 속의 설명과 같다.
두 스승에게 묻지 아니하고도

다섯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대소변 보고 물을 마시고
아울러 깨끗이 양치질하고
또 같은 경계 안에서 49심(尋) 안에서는
사정에 따라 예의범절 지킨다.
이 밖의 일은 모두 스승에게 아뢴다.
손발을 씻는 일 등에서부터
세력 분수 밖에 나가는 일과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도
모두 아뢰야 한다.
총체적으로 아뢰느냐 개별적으로 아뢰느냐는
당시의 상황에 달려 있다.
머리 숙여 한 번 절하고
합장하고 곧 아뢰며
오파타야(鄔波馱耶:화상)께 아뢰기를
“나는 손을 씻고 밥을 먹습니다”라고 하고
그 밖의 일은 다만 일이 있을 때
이에 준하여 아뢰면 된다.
만약 아뢰지 않으면
하나하나가 모두 죄를 초래한다.
밥 먹을 때는 마음을 써야 하며
주고받는 데 법에 따라야 한다.
옷을 간직하고 분별하는 등의 일도
일이 이지러짐이 있게 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10년을 지나오도록
의지하는 곳에서 떠날 수 없다.
5년 동안 악을 막는 율법 밝히고
다음은 뜻에 따라 지방을 유행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르는 곳에서도 문득
의지할 스승 찾아야 하니
만약 의지할 스승 없으면
옷과 음식의 이득을
소화할 수 없느니라.
[ 제 1 부 ]
2. 네 가지 타승법(他勝法:波羅夷法)
1) 부정행학처(不淨行學處)
부처님 말씀하신 세 가지 죄가 있으니
전혀 다스릴 수 없는 죄이며
대중이 제거하는 죄이며
그 밖의 죄는 사람 따라 모두 참회할 수 있다.
네 가지 바라이죄는
지극히 무거운 죄니 공경하여야 한다.
만약 어느 한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곧 필추를 허물게 된다.
처음부터 12년 동안은
밝기가 가을 물 맑은 것처럼 행동하니
이때는 허물이 없었다.
13년이 지나면서
소진나(蘇陣那)는 아들을 얻기 위해
이 때문에 두 가지 음란을 행했다.
또한 암자의 필추는 원숭이 사는 곳에서 허물을 범하니
부처님께서는 학처를 설하셔서
탐욕 등을 제거하고자 하셨는데
음욕에 빠져드는 죄업 가운데서
어떻게 그대는
열 가지 큰 이익을 보고
많은 사람에게 이익의 즐거움 주겠는가?
많은 계율을 널리 제정한 것은
부처님께서 대자대비하시기 때문이다.
세 곳 창문(瘡門) 안으로
탐욕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기를 바라니
바라이라는 뱀에게
물리면 치료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핍박하여
함께 비행을 저지르는데
계율을 갖춘 사람이 이에 빠져 집착하여
이 정황 속에서 염착이 생기면
타승죄(他勝罪)를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썩어 허물어진 창문 안에서나

혹은 지극히 작은 경계에서
혹 생지(生支)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는 모두가 추악한 죄를 얻는 것이다.
차라리 자기의 생지를
독사의 입 안에 넣어둘지언정
여근(女根) 속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고통의 과보 무궁히 받게 되리니
만약 까만 독사 만난다면
오직 자기 한 몸 망치지만
만약 무거운 금제 허물면
영겁의 세월 동안 모진 고통 받으리라.
음욕을 행하는 모습에 여러 종류 있으니
진실을 범하는 여덟 가지 죄가 이룩된다.
인연 따라 그 일 같지 아니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소상하게 살피리라.
필추가 수행할 만한 곳은
이쪽저쪽 근기에 손상이 없으나
방편으로 한계를 지난 곳에 들어가면
즐거움을 받는 두 마음 완전하다.
처음 두 방편은 죄짓는 일
토라죄(吐羅罪) 각기 두 가지로 다르며
가볍고 무거운 일 같지 않으니
모두가 계경의 상세한 글과 같다.
인연을 물어보면 비록 대답은 두 가지로
물음에 따라 대답함이니
처음부터 두 가지 인연 아니면
거기에 포함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2) 불여취(不與取)학처
다만 필추니 승단에서는
스스로 영위(營爲)하여 집을 짓는다.
이때 왕가(王家:나라)의 나무 취하면
이로 말미암아 범죄의 원인을 만든다.
다른 사람 물건에 도둑의 마음을 일으키어
본래의 물건이 있던 곳에서 옮겨 놓고
만약 자기의 물건이라는 생각을 내어서
그 물건 값이 5마쇄(磨灑)에 이르거나
5마쇄를 넘어서면
모두 함께 죄를 범한다.
돈은 당시의 상황에 준하고
생각으로 책심(責心)을 내어
물건을 만지면 토라죄를 얻는다.
평탄하고 순수한 빛깔을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은 다만 추악한 죄일 뿐이지만
만약 벗겨지고 째져서
다른 색 나타나면
한계를 넘어서 남김 없는 죄를 짓는다.
만약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허물고 음모나 그물을 치면
토라죄를 얻고
복을 위해서
유정(有情)을 내치면
곧 악작죄를 짓게 된다.
그 경지(競地) 찾아보면 두 종류 있으니
끊어진 곳은 혹 왕가(王家)
다른 두 곳은 더 뛰어난 것 얻으니
여기에서 필추는 추악한 죄 얻는다.
그 두 곳은 다른 곳보다 뛰어나
그곳 사람들은 방편을 버린다.
바라이(波羅夷)의 불길이
이 필추의 몸을 불태워
주술로 다른 사람의 재물 취하고
마니(摩尼) 등 여러 물건을 훔치는 것을
필추가 눈으로 멀리 이를 바라본다면
곧 근본죄를 얻게 되도다.
자기 땅의 싹의 성취를 위하여
다른 땅의 결실을 바라지 않고
물이 모자라면 다른 이의 밭두렁을 막거나
싹이 손상될까 두려워
물도랑 둑을 끊어버리면
자기 밭의 싹은 열매를 이루지만
다른 사람의 싹은 훼손되고 허물어지니
알지어다. 그 열매를 근거하여

무거운 죄나 때로는 가벼운 죄 얻게 되느니라.
중요한 것은 마음이 모든 죄 멀리하면
능히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필추가 되어
반대로 다른 사람의 재물 도둑질하고
훔치는 도적들의 제자가 될 것인가?
금 등을 탈취할 때
도적 무리들을 깨우쳐주지 않으면
일에 따라 가볍고 무거운 죄가 따른다.
도적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빌어서
반값에 혹 전부를 되돌려 받고
도적을 관리에게 보내게 되면
곧 토라죄를 얻게 된다.
필추는 도둑인데
사미는 총명한 마음으로 제자가 되어
이 사미를 데리고 떠나면
토라죄를 얻는다.
이 죄는 승단을 파괴한 무리와 비슷하다.
나라 세금 받는 경계 지점에 이르러
관문이나 나루터에서
재물과 합쳐져서
스스로 지고 가든지 혹은
다른 사람에서 지니게 하여
도둑질할 마음으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면
도둑질은 곧 죄를 얻게 되고
그 물건의 양을 헤아려 보아
그 값이 5마쇄에 이르면
그 죄는 반드시 타승죄가 성립된다.
그가 세관(稅官)이 있는 곳에 이르러
불법승(佛法僧)을 위한 것이라 하고
혹은 부모를 위한 재물이라 말하여
널리 그 공덕을 찬양하여
약값과 옷을 살 길을 열기를 허락받거나
좋은 물건은 항상 비축해 두었다가
청정하게 만들어
세관 있는 곳을 지나간다면
이는 세금의 한계가 아니 될 것이다.
옷감이나 실은 잘라 두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혹
흙 묻고 더러운 것을 사용하니
부처님은 그런 것을 깨끗하게 하라 하셨다.
이것을 지니고 세금 받는 곳에 가도 되며
만약 다른 사람에게서 옷 등을 빌려서
탐욕 때문에 자기 재물로 만들거나
훗날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지 아니한다면
곧 토라죄를 얻게 된다.
만약 배 위에 올라가서
가진 발우 등 물건을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았다면
삼가 손에 잡고 마음에 잘 간직하라.
상대는 잡고 있는데 나는 버릴 경우
그에게 손괴된 사실을 알리고
그 값어치에 준하여 갚기를 바라서
이는 반드시 갚아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청하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서 음식을 먹었다면
그 먹은 일은 악작죄를 짓는다.
필추가 이미 이와 같다면
나머지 대중들도 이와 같이 말하게 된다.
혹 때로는 임금이나 도적이 준 물건
혹 다른 사람에게 맡겨 기탁한 물건이
따로 물건의 주인이라는 마음 없다면
그가 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서 보시 받았을 경우
그가 대인(大人)이 아님을 알고
시절을 안다면 받아서는 안 되나
모르고 받았다면 허물이 없다.
만약 천한 사람에게서 보시 받을 경우
마땅히 잘 생각하고 헤아려야 하며
높은 어른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에게서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나 그 밖의 사람이
승단의 물건을 갖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줄 경우 이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
쓰고 나서 병이 진정되어 돌려줄 일을 생각하면

몸이 죽더라도 허물은 없다.
명(命)이 있을 때는 인연을 따라야 하며
힘써 모름지기 빌고 구하여
재물을 얻은 곳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소나 양 등 중요한 물건이나
재목과 논밭 등을 수용할 때는
승단이 있으면 그 가르침에 따르고
다른 사람 말은 가로막아 듣지 않아야 한다.
사는 곳과 정원과 논밭
또는 잠자리 도구 등의 물건은
도리로써 늘 수호하여
시주한 사람의 복이 더하게 하라.
이곳 승단의 소중한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저당 잡혀서는 안 되며
나누어도 안 되고
파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이 계율은 결정적인 말이며
절의 높은 곳에 세워두고
스님들을 불러 모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라.
마땅히 이와 같은 곳에
정인(淨人)의 집을 마련하고
사업을 맡겨 일하게 할 때
풍부하게 옷과 밥을 주어야 한다.
만약 병이 생겨 일하지 못할 때는
부처님이 사람을 보내서
역시 공양하고 돌보게 하신다.
사람을 때리고 고문하고 또 머리를 깎거나 자르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일이며
속박하고 가해하여 중생들을 괴롭히는 일은
성현들이 모두 멀리 떠난다.
복덕을 위해 전지(田地)를 버릴 경우
분수를 지어 취해야 하며
이렇게 수용할 때 허물없으니
이는 옛 왕법(王法)이 이룬 일이다.
모든 평론(評論)이 이루어진 곳에
부처님께서 사람을 보내서 말을 하지 않으면
필추와 사미는
여기에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바른 견해 얻으면
간직하여 사견(邪見) 지닌 사람과
파계한 사람에게 전해주고
이름만 헛되게 믿음과 보시에 떨어져
다른 사람의 음식을 받을 때
배[腹]의 양을 헤아려 취해야 한다.
쓸데없이 많은 음식 받는 것을 타락한 보시라 이름 하니
청정한 계율 지닌 사람은 알아야 한다.
부모와 병든 사람 위하여
음식을 취하는 것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 밖에 이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줄 경우
끝내 주인에게 알려서 알게 하여야 한다.
길 가는 곳 등에서
칼이나 바늘 등을 보았을 때는
마땅히 검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서
형상을 물어본 뒤 주인에게 돌려주라.
그 물건을 대중에게 알린 뒤에
대중 가운데 사흘 동안 머물게 하여도
이를 인식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마음대로 충당하여 절에서 사용하여도 된다.
자기 일로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혹 복이 된다고 하여
필추가 고용살이를 수락한다면
이 일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친한 벗과 자기 생각으로
다소간의 돈을 때에 따라 사용할 때
도둑질한 돈이 아니면 허물이 없다.
혹 말해서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도 된다.
친지에 세 종류가 있으니
상ㆍ중ㆍ하의 등급을 알아야 한다.
순수하고 곧은 사람은 서로 알 만한 사람이며
가벼워 뜨는 사람은 친구로 삼지 말라.
세 종류의 서로 아는 사람에게는

상등(上等)의 친구는 중ㆍ하의 친구가 망라되나
중간에 처하면 중간과 하등만 포함되고
하등의 친구는 하등만 모이게 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문병하면서 바야흐로 교화할 때는
마땅히 의원과 약을 구해야 하며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기탁하여도 되는 일이나
필추니와 함께 기름을 빌어서는 안 된다.
3) 단인명(斷人命)학처
필추가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여
사슴 사냥꾼으로 손수 죽이게 하고
복을 위하여 발우 등을 탐내니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이 막으셨다.
고의로 죽인 것이며 잘못 죽인 것이 아니니
스스로 죄를 짓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시켜 죽이기도 하며
사람이 죽음을 권고하고 찬탈할 때
곧 타승죄를 초래한다.
만약 죽이는 방편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것을 보고 따라 기뻐하거나
불을 질러 숲과 들을 불태우거나
혹 산 사지 마디[生支]를 칼로 베거나
사람들 앞에서 고기를 먹거나
이는 모두 토라죄를 얻는다.
병든 사람과 간병하는 사람에게
만약 어리석게 법식을 가르치려거든
마땅히 의사에게 물어보거나
그 밖에 혹 나이 많은 노인에게 물어보아서
비로소 병자에게 약을 주어야 한다.
이와 다르면 가벼운 죄 얻는다.
만약 병든 사람에게 물건을 공급할 때는
병의 증상에 맞는 것을 비축하여야 하고
그 밖의 물건도 지닐 수 있다.
청정한 물건을 애처롭고 슬픈 마음 따라
부처님은 대중을 보내시어
함께 병든 사람을 돌보게 하셨으며
혹 차례로 돌보아도 되니
모든 일은 모두 순서에 따르게 하셨느니라.
병든 사람에게는 절하지 않고
병든 사람도 역시 다른 사람에게 절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좋은 마음으로 돌보고
함께 앉을 자리에 앉아
병든 사람 앞에서
죽음이 거룩하다고 찬양하지 아니한다.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나면
이로 말미암아 죽음을 즐거워한다.
그대 능히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수호하여 이지러지고 잃는 일 없게 하며
깊이 삼보를 믿으면
곧 열반의 궁전으로 나아가리라.
만약 그대 몸 죽은 뒤에는
하늘 궁전이 정녕 멀지 아니하리라.
열반은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으니
형체의 목숨 다함을 근심하지 말아라.
필추가 이런 말을 한다면
곧 월법(越法)의 죄 얻게 되니라.
마땅히 오래 살 것이라 말하고
이 병은 제거할 수 있으니
남은 수명을 법대로 머물라고 말하라.
착한 사람은 마땅히 오래 머물러
생각 생각마다 넓고 큰
복덕의 모임이 불어나리라.
병이 있어 괴로워하는 사람은
병을 아는 의사의 교시를 받아야 한다.
때와 장소를 잘 알아서
약을 주어야 하며
적당히 약을 주어서는 안 된다.
고의로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권유하면
그 마음의 선악을 논할 것 없이

스스로 사람을 죽인 것이고
또한 사람을 팔아넘긴 사람이니
모두가 토라죄 얻게 된다.
발우 등에 탐하는 마음 생겨
원을 일으켜 다른 사람 죽게 하면
저 전다라들과 같은 무리니
이 사람은 악작죄를 얻는다.
비록 웃더라도 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으로 서로 살짝 찔러 권고하여
지난날 열일곱 사람의 대중이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망했느니라.
바닥을 제약하는 등 업을 지을 때
속인들과 서로 돕지 말아라.
무거운 짐 진 사람의 짐을
받아 들어주지 아니하면
이로 연유하여 장인(匠人)을 죽인다.
만약 벽돌 등이 쪼개지고 갈라지면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때 반드시 알려야 한다.
하루 종일 일만 해서는 안 되니
마치 나그네가 된 사람과 같아진다.
필추가 감독하며 일할 때는
곳에 따라 권유하며 교화하고
새벽 아침에 밥을 공급해야 하니
피로를 풀게 하려 함이다.
그가 만약 일을 맡아보는 사람일 때는
도적이 찾아오면
안의 북적북적함을 듣게 하고
일부러 돌 등을 집어 던지되
중생을 손상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열 자 밖까지는 나무나 돌을 던져도 된다.
삼가 계율에서 배운 일 생각하여
자비심을 손상케 하지 말아라.
일 감독을 맡아보는 사람은
대중 가운데 노인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밤중에 설법할 경우에는
문 등을 굳게 지켜서
절집에 알뜰히 도둑을 막고
자물쇠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섯 종류의 문을 닫는 방법으로
사는 곳을 지켜야 한다.
위아래의 두 문고리는
자물쇠로 거듭 잠가야 한다.
눈앞에 나타난 일에 따라
당직하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다만 한두 곳의 안전을 기할 뿐
차례에 준하여 함께 곁들여 지켜야 한다.
만약 그들이 전혀 손대지 아니하였을 경우
잃은 것을 헤아려 되돌려 갚아야 한다.
필추가 길을 가다가
동행하는 사람이 유행병에 전염되면
마땅히 부모같이 생각하고
공경하여 병을 지탱할 수 있게 하라.
늙은 부모가 걸어갈 수 없을 경우
오시(午時)까지 도착하지 못할까 하여
아들이 떠밀어 이로 인해 늙은이가 죽게 되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4) 설상인법(說上人法)학처
흉년이 들어 필추들이
사실상 뛰어난 공덕 없는데도
서로서로 헛되게 칭찬을 하니
부처님은 이로 인해 막으셨다.
남달리 뛰어난 깨달음을
나는 얻었노라 말해서는 안 되니,
우쭐한 오만심을 제거하라.
이는 곧 변죄를 얻는다.
스스로 상인(上人)의 법이 없다면
모든 선정(禪定) 얻을 수 없다.
성인의 도의 일부분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대열반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뛰어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아울러 성문사과(聲聞四果) 얻는 사람을 말한다.
지혜란 고제(苦諦) 등이 다한 것을 뜻하며

보았다는 것은 진리[眞諦]를 본 것을 말한다.
고요한 선정은 네 종류를 말하니
홀로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을 나는 아노라.
나는 모든 천신(天神)들을 보았으며
나는 천룡(天龍) 등을 만났으며
나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였고
그들도 나와 함께 이야기하였노라고
말할 때 이는 변죄를 범한다.
나는 모든 천신의 소리 들었으며
그들이 와서 몸소 나를 섬긴다.
혹 야차(夜叉) 따위들도 온다.
이와 같은 말은 모조리 변죄를 이룬다.
만약 다만 누더기 귀신만 보았다면
이는 다만 토라죄만 얻는다.
이는 귀신 가운데 천한 귀신이라
이 때문에 변죄는 아니다.
과보로 신통력과 지혜 얻었다 할 때
고름으로 허물어져 죽은 시체 생각하라.
스스로 변죄 다스리는 칼을 잡고
억지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즐기지 말아라.
설사 필추가 소필사차(蘇畢舍遮:부처)를
비방하는 사람 만났다 하더라도
생각으로 그것이 자신이라 여기고
설법할 때는 다만 악작죄를 얻는다.
싸움에서 이김과 하늘에서 비옴과
남자가 태어남과 코끼리 소리 들음은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알리라.
이와 다르다면 곧 추죄(麤罪) 짓느니라.
[ 제 2 부 ]
3. 열세 가지 승가벌시사법(僧伽伐尸沙法:僧殘法)
1) 고설정(故泄精)학처
만약 세 가지 창문(瘡門)을 벗어났다 하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의 한 부분에
고의로 그 부정한 것을 누설했다면
이는 반드시 승잔죄(僧殘罪)를 범한다.
누설한다는 것은 몸 안에 있는 정액이
그 본래의 곳에서 옮겨짐으로써
즐거움을 자아내고 죄를 범하는 것이다.
정액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정액이 움직이려 할 때에
마음을 거두어 본래의 장소에 있게 하면
이때는 무거운 허물은 없고
다만 가벼운 과실만이 허용된다.
만약 그것이 본래의 장소에서 옮겨질 경우
흘러나온 정액이 아직 몸 안에 있다 해도
고의로 누설한 정액이 몸 안에 있으니
이는 오직 토라죄 만을 초래한다.
정액에 다섯 가지 차이 있으니
엷은 정액 짙은 정액 붉은 빛깔
누런 빛깔 푸른 빛깔이 그것이다.
최후의 푸른 빛깔 정액은
전륜왕(轉輪王)과 전륜왕의 맏아들의 빛깔이며
나머지 아들들은 모두 누런 빛깔이며
붉은 빛깔은 여러 대신의 정액이다.
짙은 정액은 뿌리가 성숙한 것이며
뿌리가 성숙되지 않았거나 여자에게 상한 사람
이런 것 등은 모두 엷은 정액이라 부른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정액을
만약 누설한다면 모두가 승잔죄를 얻는다.
담장이나 병 구멍 등 구멍 난 곳에
고의로 접촉하여 그의 정액 누설하면
토라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몸이 상하는 것은
큰 돌로 때리는 것보다 더하다.
비록 움직여도 누설하지 아니한 경우
물든 마음으로 자기의 뿌리를 헤아려
공중에서 춤추며 뿌리를 흔들거나
혹 손으로 잡고 당김으로 말미암아
정액이 새어나오게 되거나

바람에 거슬리게 물 흐름에 거슬리게 유지한다면
모두가 토라죄를 얻는다.
만약 바람 따라 물 흐름 따라 맡겨두면
악작죄를 얻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더럽고 물든 생각으로
짐짓 자기의 생지를 바라본다면
물든 마음은 이익이 없으니
늘 마땅히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욕실(浴室) 속에서나 어루만지거나 부딪치거나
길 가다가 허벅지와 서로 비벼져서
홀연히 정액이 저절로 흐르거나
몽정할 경우에는 모두가 죄가 없다.
이와 같이 널리 설명을 베푸는 것은
필추와 대중들에 대한 가르침이다.
만약 사미 등의 경우에는
모두가 악작죄를 초래한다.
처음 이부대중의 죄의 원인은
각기 그 가볍고 무거운 구별이 있다.
첫째 무거운 죄는 대중 앞에서 참회하여야 하고
가벼운 죄는 네 사람을 상대로 참회하면 된다.
두 번째 원인이 무거운 죄는 네 사람을 상대로 참회하고
가벼운 것은 한 사람을 상대로 참회한다.
대중 앞에 참회할 때는 승단에 요청하도록 하여야 하고
나머지 죄는 한 사람이면 된다.
죄를 범한 사람을 상대로 참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니
같은 죄를 지어서 이를 털어놓는다면
때 묻은 것이 때 묻은 것을 제거하는 일이라 용납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청결한 사람으로 하여금
범한 죄에 따라 대중이 죄를 가르쳐야 하느니라.
만약 죄를 덮어두고 숨기는 마음 있으면
문득 별거법(別居法:遍住法)을 주어야 하나니
그에게 별거법 행하게 하여
지성으로 마음을 비추어보고
대중에게 깊은 공경심 갖게 하도록
마땅히 별거의 법을 내려야 한다.
이와 다른 법은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별거의 법을 수행하다가
다시 번뇌로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의 어리석음이 성한 까닭에
때로는 혹 무거운 죄를 짓는다.
이때는 마땅히 다시 법을 적용하여
본래의 별거법을 행하게 한다.
이와 같이 세 번을 하기에 이르게 되면
계율에 근거하여 제자리에 되돌아가게 조치하여 준다.
이는 가엾게 여길 만한 곳을 이룬 것이니
번뇌로 말미암아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큰 참회 일으킨다면
혹 마음속으로 겸하(謙下)할 수 있으나
비록 이와 같이 조복한다 하더라도
악한 마음에서는 고칠 수 없다.
이 사람에게는 경계 안에 머무는 일을
버리도록 조치하고
내지는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만약 싫고 떠나려는 마음 생기면
그 생각 즐거움을 환하게 알게 된다.
기쁜 생각 생기면
승단에서 구제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조치 내려주어야 한다.
기쁜 생각의 물로 마음을 세탁하여
남아 있는 때 묻은 마음도 청정하게 하여야 하고
이 가운데서 마땅히 죄에서 벗어나야 하느니라.
이십 명의 수효를 채워 승단에서
오직 승단만이 주인이 되어
승단이 그의 생각 즐거움을 알고
승단이 그에게 가르침을 내려준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행하여야 하며
대중 속에 처하여 그 이익됨을 가르친다.
승단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대중의 가르침이라 부른다.
죄를 털어놓고 나서 목숨이 다하거나

혹 별거하는 위치에서 목숨이 다하면
비록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마땅히 좋은 세계 속에 태어나리라.
이 애달파 할 만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품고 수행을 버려서는 안 된다.
스스로 지은 업보로
계속 악한 세계에서 고통이 몸을 얽매이게 하지 말아라.
만약 두루 삼장(三藏)을 지니고
지극히 부끄러워한다면
대중 가운데서 존경받아
큰 복덕 지닌 여섯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로 곧 죄를 면제하리니
모름지기 지성한 마음으로
은근하고 정중하여 속이는 마음 없어야 한다.
한 번 참회하고 거듭 범하지 않으면
이를 법에 응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목구멍 이하의 털을 제거하고
아울러 아랫도리를 물로 씻는 법은
병으로 인한 일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일을 짓는다면
토라죄를 지어 몸을 해치게 된다.
2) 촉녀(觸女)학처
발에서 머리에 이르기까지
물든 마음으로 여자와 접촉하고
가사 없이 문득 대중을 가르치거나
막는 것이 있더라도 토라죄에 해당한다.
만약 고의로 여자와 밀고 당기거나
호화로운 수레를 따라다니면서
막는 것이 있건 없건 여자와 접촉해서
즐거움을 받는 죄는 앞의 죄와 같으니라.
여자가 찾아와서 접촉할 때
필추가 이에 염착(染着)이 생긴다면
이것도 앞에서 말한 죄와 같다.
여자와 밀고 당기고
막는 것이 있고 없는 것도 앞에서 말한 죄와 같다.
본래 지은 행이 음란한 생각으로
여자의 몸에 접촉하거나 애착을 느끼면
곧 토라죄를 얻는다.
이는 타승죄의 원인이 되므로
이에 근거하여 음란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토라죄를 얻는 것으로는
작은 남근(男根)ㆍ고자 등이 짓는 죄이다.
방생(傍生)에게 짓는 것은
모두 악작죄를 짓는다.
3) 비악어(鄙惡語)학처
필추가 추악한 말을 하는 것은
온전히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니다.
여자를 상대로 음탕한 말을 하면서
이것도 역시 스님이 구제한 것이고
그대 몸은 지극히 보드랍고 매끄럽다.
세 가지 창문은 사랑할 만하다 하거나
혹 이는 좋지 않다고 하거나
형세가 추하다고 하거나
이 물건 갖고 와서 나에게 주니
너의 남편은 복진 사람이로다.
어떻게 너와 합쳐져
나에게 즐거움을 맛보게 하여주는가라는 말들을 하며
말할 때 엽바(葉婆)를 따르면
곧 중교죄(衆敎罪)를 짓는다.
엽바(葉婆)와 함께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다만 토라죄를 얻는다.
만약 여자가 찾아와 요구할 때
추악한 말을 하지 아니하면
앞에서 말한 도리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
추악한 말을 하면 곧 음탕한 말이 된다.
이 속에 추악한 말이란

남녀가 교회(交會)할 때 하는 말이라
지방 따라 정해진 말은 없고
장소에 의거하여 죄를 논한다.
미치광이나 마음이 산란한 사람
더듬거리는 사람과 처음 범하는 사람
및 모질게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
이 모두는 죄를 범한 부류가 아니다.
4) 색공양(索供養)학처
자신을 찬탄하며
방편을 써서 공덕을 말하고
음탕한 말로 여자 앞에 상대하면
중교(衆敎)의 칼에 곧 베이게 된다.
뛰어난 사람이 최고라 하면서
누이동생하며 사랑하고 잊지 못한다 말하며
공양을 공봉(供奉)이라 말하고
그렇게 이해할 때는 곧 죄를 얻는다.
이른바 계율을 갖춘다는 것은
계온과 상응하는 것이다.
알지어다. 거룩한 법이란
정온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혜온과 상응하는 것을
청정행이라 부른다.
쌍쌍이 서로 어울려 교회하면
이는 음욕을 행하는 것이다.
필추가 더러운 마음에 오염되어
가령 한마디 말을 한다 하더라도
여자가 그 말뜻을 이해한다면
이것도 역시 승잔죄(僧殘罪)를 범한 것이다.
만약 여자가 도리가 아닌
음욕에 찬 말을 하면서
그대는 청정한 사람이니
나는 지금 공양할 마음 일으켰는데
그대는 이와 같이 계율 갖추어
항상 거룩한 법 안에 존재하여
남달리 뛰어나게 공양 받을 만하니
탁겁(濁劫)에 실로 만나기 어려운 이로다.
그가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필추는 이 말 따라 대답하면서
안으로 오염된 마음 있다면
곧 중교죄를 이룬다.
여자가 공양하는 사람은
무량한 과보를 얻는다 하고
음욕에 찬 말을 하지 않으면
이는 토라죄만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음욕에 관한 법을
필추의 처지에서 말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아니하여도
역시 토라죄를 얻는다.
여자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음욕의 글자는 제외하고
그대는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아니하면
역시 이와 같은 것도 토라죄에 해당한다.
혹 무지한 사람에게 말하거나
음욕이 제외되면 악작죄를 짓는다.
그것이 나의 말이라 말하지 아니하거나
여자가 말할 때도 이와 같이 하는
모든 오염된 말들에서
필추는 모두 죄를 얻는다.
이 가운데 더럽게 오염된 삶이란
이는 여자에 염착한 마음을 말하니
이에 근거하여 음욕을 행할 수 있다.
이외에 토라죄를 얻는 것은
장부(丈夫) 반택[扇侘] 등이며
방생은 오직 악작죄를 지을 뿐이다.

5) 매가(媒嫁)학처
직접 하거나 사람을 시키거나
여자와 남자를 화합하게 하면
저 승잔(僧殘)의 칼을 지니어
자기 몸을 베어 상하게 한다.
수수부(水授婦)나 재빙부(財娉婦) 등
대략 일곱 가지 부인을 얻는 길이 있으며
사사로이 통하는 일에는
열 가지 모습을 헤아리게 되는데
이 모습을 지금 곧 말하리라.
일곱 종류의 부인이란 물을 붓고 얻는 부인
재물로 얻는 부인
임금의 깃발로 얻는 아내와
스스로 즐겨 남의 처가 되는 여자
의식주 때문에 시집가는 여자
함께 생활하는 여자와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여자 등이 그것이다.
물을 남편 손에 붓기 때문에
그 일에 따라 이름이 세워진 것이며
만약 재물로 아내를 취하였을 경우
이는 재물로 얻었다고 한다.
큰 도적이 강제로 쳐서 취한 여자
이것은 임금의 깃발로 지은 처이다.
스스로 다른 사람의 처가 되기를 허락한 사람
이는 스스로 즐겨 사는 여자라 한다.
옷과 밥 때문에 찾아온 여자
이를 의식에 머무는 여자라 부른다.
두 사람이 재산을 공유하면서
함께 목숨을 살아가는 인연으로 삼아
이와 같이 더불어 계약을 맺는 경우
이를 함께 사는 여자라 한다.
잠시 만나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닌 경우
이를 수유부(須臾婦:잠깐 동안의 아낙네)라 부른다.
일곱 종류의 부인이 남편과 헤어질 경우
일곱 종류의 각기 다른 일이 있다.
곧 떠나는 것과 오래 말다툼하는 것과
풀을 꺽어 3종으로 하는 것과
혹 또 기왓장을 세 방향에 던지는 것과
너는 나의 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법에 따라 버리고 떠나는 것과
혹은 높은 소리로 외쳐서 알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처음 세 종류의 부인이
남편과 헤어진 것을 다시 합쳐지게 하면
이 한 번 두 번 세 번 차례대로
돌색흘리다(突色訖里多:突吉羅)를 얻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는
차례에 따라
한 번 두 번 세 번의 토라죄를 얻는다.
저 일곱 번째의 남녀를 화합시킬 경우
곧 승잔죄를 얻게 된다.
이 가운데 사사로이 통한 사람 또한 다음과 같다.
남편이 죽었거나 혹 다른 곳으로 갔거나 하여
이 여자를 어미가 보호하고 있다면
이는 어미가 보호하는 여자[母護]라 하고
이와 같이 아비가 보호하는 부호(父護)
조부 조모와 그 밖의 친척들이 보호하는 여자[親護]가 있으니
여기서 친척이라 말하는 것은
부모의 친족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아비와 남편이 모두 죽었다면
이는 형제의 보호를 받는 여자[兄弟護]라 한다.
만약 자매가 있다면
자매가 보호하는 경우[姉妹護]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라문족이나 찰리족의 경우
이를 종족의 보호를 받는 여자[種護]라 한다.
바자족(婆雌族)과 구자족(俱雌族)은
종문의 보호를 받는 여자[宗護]며
왕법의 보호를 받는 여자[王法護]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금계(禁戒)가 있고
법을 갖추어 머무는
이와 같은 열 종류의 보호받는 여자 있으니
여자마다 사사로이 통하는 경우에도 차별이 있다.
앞에서 말한 사통(私通)과
마지막 네 종류의 여자들이

여기에서 만나서 남자와 합쳐지게 한다면
반드시 결정적으로 승잔죄에 해당한다.
이 남자는 왜 혼인하지 아니하는가?
이 여자는 왜 시집가지 아니하는가?
필추가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곧 악작죄를 초래한다.
6) 조소방(造小房)학처
스스로 노력하여 작은 승방 만들 때
법을 잡은 사람은
허물이 없는가 비추어본다.
승방의 크기 등에 죄를 범하는 일 없어야 하니
이와 다르면 승잔죄 얻게 된다.
이 작은 방에 처신하여도
네 가지 위의(威儀)를 지을 만해야 하니
가고 머물고 앉고 누울 때
수용(受用)이 안락하게 하여야 한다.
방 길이의 한도는 12장수(張手)
부처님께서 손을 벌리신 길이이며
너비는 오직 7장수라야 한다.
이 방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
오직 부처님께서 한 번 손을 벌리신 길이는
보통사람의 세 배에 해당하니
합치면 1주(肘) 반이 된다.
이것이 바른 크기며 다른 것은 그르다.
그 기준에 근거하면 이곳의 크기는
길이가 보통사람의 18주에 해당하고
너비는 10주 반에 해당하니
방의 크기는 이와 같이 설한다.
부정한 곳에는 뱀과 전갈이 있고
크고 작은 벌 개미 등이 있다.
말다툼이 생기는 것은
길 가까이에 있는 좋은 나무이니
이것은 천사나 왕가[天王]의 집이다.
강물 가까이에 절벽 우물 등이 있다면
이는 진취(進趣)가 없는 곳이라 한다.
이러한 허물이 제거된다면
이치에 합당하게 방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지도나 전수 없이
만들어야 하며
갈등 없이 형세의 몫이 있어야 한다.
필추가 부정한 곳에 처신하여
죄를 얻는 것을 토라(吐羅)라 한다.
모든 허물이 모두 있게 되며
결정코 중교죄(衆敎罪)를 얻게 된다.
모든 허물 근심 모두 제거되면
이 집에는 아무 허물도 없게 된다.
최초로 범한 사람과 혹 미치거나 마음이 산란하고
병과 고통에 핍박 받는 사람은
설사 승방을 짓는다 하더라도
죄를 범함이 없다.
이것은 곧 크게 인연을 여는 일이다.
7) 조대사(造大寺)학처
주인 있는 큰 절[毗訶羅]은
본래 그 크기와 수효에 제한 없으니
여기서 큰 절이라 하는 것은
크기와 진귀한 보물과 재산을 지닌 곳을 말한다.
8) 무근방(無根謗)학처와 가근사(假根事)
근거 없는 말을 하는 것은 타승죄이니
상대방의 청정한 행 허물고자 하거나
형상이 비슷한 일을 말하는 것
이 두 가지 일을 지금 설명하리라.
한때 연화색이라는
청정한 믿음 지닌 필추니 있어서

어떤 일로 못가에 갔을 때
실력자가 찾아와 절하였다.
그때 이곳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서
벗의 처지로 두 사람이 서로 따라
물을 취하려 못가에 갔다가
두 사슴이 교미하는 것을 보았다.
이 일 보고 나서
벗된 처지에서 곧 서로 필추와 필추니에게 알리기를
‘그대들은 음사(婬事)를 행하는 것을 보았는가?
나는 이미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것을 오랜 원수 맺힌 사람에게 말하여
형상이 비슷한 일을 서로 모의하여
실력자를 허물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의 연기(緣起)는
설명에 따라 차별이 있겠지만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알아야 하니
이것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죄를 이루는 것이다.
9) 파승(破僧)학처
가려진 곳에서의 충고와
대중 앞에서 하는 충고에서
세 번째 차단을 권고하기에 이르기까지
한 덩어리로 뭉친 승단을
허물고자 하는 사람은
곧 중교죄(衆敎罪)를 얻게 된다.
그 일을 막고자 할 때
여러 사람에 알리지 아니하는 것을
개별적인 충고[別諫]라 부르고
‘그대, 구수여, 승단의 화합을 깨는 일 하지 말라’고 알리면서
개별적인 충고로 권유해도 그치지 아니하면
마땅히 갈마를 하여 충고하되
백사갈마의 법을 쓰고
여러 도움 주는 동반자들도 함께 아우른다.
화합이란 한마음으로 뭉치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 두 종류의 파괴가 규정지어진다.
화합을 파괴하는 법을 따르는 것은
열네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법에 맞는 설법을 법이 아니라 하고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하며
마음을 조복하는 것을 잘못이라 하는
이와 같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평론(評論)은 말다툼이 아니며
범죄에 관한 논쟁과 일에 관한 논쟁
이 안에 네 종류의 말다툼이 있느니라.
깨닫고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알리라.
온갖 말들로
대중을 불화(不和)하게 하고 다른 마음 품게 하여
이에 연유하여 싸움과 갈등이 생겨나니
이것을 평론의 논쟁을 짓는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분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인하여
법이 아닌 말로 서로 주장하면
이로 말미암아 싸움과 갈등 생기니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말다툼이 아니다.
존재하는 몸과 말과 마음 있으니
이 세 가지는 각기 한 종류
혹은 두 종류 혹은 두세 종류가 있다.
간략히 말하면 그것은 여섯 가지 일에 연유한다.
필추가 여자와 더불어
알지 못하는 사이 같은 방에 잠자거나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과
사흘 밤에 이르도록 한방에서 잠잤다면
이는 몸과 상응하는 죄에 해당한다.
여자를 위하여 다섯 여섯 마디
그와 더불어 설법할 때
고의로 지은 마음이 아니고
말마디 수가 불어나게 되었다면
이는 말로 말미암은 죄임을 알아야 한다.
포살을 할 때 묻는 경우
허물이 있는데도 덮어주고 숨긴다면
이를 뜻으로 짓는 죄라 부른다.
이로 말미암아 악작죄를 초래한다.

몸과 마음으로 고의로 목숨을 해치거나
주지 아니하는데도 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일 등
이러한 죄는 두 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
대여섯 마디의 말을 한 다음
다시 고의로 말 수를 불린다면
이를 마음과 말의 두 가지로 짓는 죄라 부른다.
거짓말도 역시 이와 같다.
고의로 살해하려는 마음 일으키고
아울러 말로 상대방의 몸을 친다면
이를 몸ㆍ말ㆍ마음으로 짓는 죄라 부르니
이것은 세 가지 이유로 말미암는다.
무엇을 착한 마음 가운데서
필추가 죄를 범하는 것이라 하는가?
불전(佛殿) 위에서 풀을 뽑아
다시 돋아나지 아니하게 하고
또한 부처님 공양하기 때문에
좋은 마음 짓는 것 같은 일을 말함이다.
상투를 맺는 외도(外道) 배우면 곧 죄를 얻으며
줄지어 늘어서는 것은 무죄라 허용된다.
고의가 아니게 성인의 말씀 어기거나
승단의 제정한 명령을 어기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라 한다.
그에게 악한 마음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마음먹고 법을 어기면
이는 모두 선(善)이 아니나
이런 마음 번복하면 선이 됨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방승(傍乘:傍系의 法)을 말하자면
이와 같이 무량한 종류가 있다.
이 모두 죄와 허물 조작하고
싸움과 다툼 이로 인연하여 일어나니
말다툼의 죄를 범한다는 것 알아야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 등도
고요한 집안을 어지럽히는
싸움과 말다툼을 생기게 한다.
이 말다툼을 일삼아서
승단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해도
악작죄를 초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개별적으로 충고해도
만약 버리지 아니한다면
이는 악작죄를 초래한다.
대중에게 알려도 버리지 아니하면
토라죄에 해당하고
급기야 처음 갈마를 말하고
이와 같이 하여 두 번째 말하고
최후에는 승교죄(僧敎罪)를 얻게 된다.
10) 수조파승(隨助破僧)학처
이에 따라 전전하는 사람들은
죄악을 짓게 되는 필추 대중이다.
개별적인 충고 등 차별이 있음은
이와 같이 모두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11) 오가(汚家)학처
만약 집안을 더럽히는 사람 있다면
더럽히는 데 두 종류의 다른 점이 있다.
첫째는 잡거(雜居)라 부르고
둘째는 수용(受用)을 말한다.
잡거는 여자와 살면서
희롱하며 도거(掉擧)하는 것이며
수용이란 함께 밥 먹고
꽃과 과실을 따면서
눈과 귀와 생각의 인식작용으로
여자를 보는 등의 세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개별적인 충고 등은
앞에서 말한 악작죄와 다를 바 없다.

12) 악성위간(惡性違諫)학처
이와 같은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중교죄(衆敎罪) 얻게 된다.
착한 말에 따르려 하지 아니함을
악한 말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루 다른 사람의 뛰어나 점 등을
배우는 것을 학처(學處)라 한다.
마땅히 훈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청정한 법을 따라야 하며
이미 말한 것과 같은 법들을 따르고
큰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개별적인 충고 등에도
죄악을 버리지 아니한다면
가볍고 무거운 죄 등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이와 같은 열세 가지 일들에 대한
교훈은 승단이 있는 곳에 인연하여 얻게 되는데
아홉 가지는 처음부터 죄가 되며
네 가지는 세 번의 충고로
말미암아 생기는 죄이다.
4. 두 가지 부정법(不定法)
대략 중교죄(衆敎罪)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상응함이 적은
일정하지 아니한 죄를 내가 곧 말하리라.
큰 스승이 말씀하신 두 가지 법은
필추 오타이와 급다가
서로 친밀하였으니
이 일로 말미암아 부정법(不定法)이
널리 승단에서 제정되었다.
한 사람의 필추와 한 사람의 여자가
가려진 곳에 함께 앉아서
음탕한 일을 하거나 또는 가리는 것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것을
두 가지의 정해지지 아니한 법이라 한다.
고요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며
은밀한 일이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장, 울타리 속, 밤 시각, 발로 가린 곳,
우거진 수풀 속이 다섯 가지의 은밀한 곳이다.
이런 곳을 걸어가고 멈추고 앉고 누웠던 일을
필추가 사실대로 말하여
그 말이 청정한 신도의 진술과 같다면
그 일에 준하여 허물을 다스린다.
만약 길을 가고 머무는 일 등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아니한다면
마땅히 죄를 주고 구하는 성격의 사건이다.
갈마로 아뢰는 등은 앞에서 한 의식과 같고
만약 벌로서 다스리는 법을 얻으면
다른 사람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줄 수 없으며
함께 경행(經行)하거나
더불어 의지해서도 안 되며
한자리에 같이 앉아도 안 되고
죽을 때까지 벌로서 다스리는 일을 행한다.
죄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서
두 가지 정해지지 않은 법이란 명칭이 생긴 것이다.
[ 제 3 부 ]
5. 서른 가지 사타법(捨墮法:泥薩祇波逸底迦法)
1) 축장의불분별(畜長衣不分別)학처
필추가 열흘이 넘도록
옷을 분별하지 않고 비축하면
지옥[泥薩祗]의 진토(塵土)에 떨어져
흙덩어리로 더렵혀진 죄인의 몸이 된다.
옷을 물들이고 재단하여 바느질을 마치면
이를 옷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옷을 비축하고 지닌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거두어들여 자기 소유로 삼는 일이다.
지벌라(支伐羅:三衣)는 이루었고

갈치나의(羯恥那衣:공덕의)를 내놓지 않는
이와 같은 등의 일에는
이 가운데 네 가지 구별이 있다.
털옷과 삼베옷 낙마(落麻)와
모직과 비단과 명주와 모시옷
이것을 일곱 종류의 옷이라 한다.
어떻게 분별하여 재단하는가?
최소의 양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로 세로 팔꿈치 하나의 부피가 되면
죄가 이룩되어 지옥에 떨어진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죄를 설하여 참회하지 않으면
또한 사이도 없이
죄에 떨어지니, 면제 받을 수 없다.
세 가지 일 가운데 한 가지를 지으면
혹 두 가지가 청정한 것이 아니니
세 가지 일을 모두 지은 다음에야
비로소 허물없는 사람이라 부른다.
이 죄에서 말하지 아니한
혹 발우나 바랑 등도
후에 만약 얻었다면
모두 같이 니살기(泥薩祗)이니
버려야 할 재물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죄에 떨어져 상하게 되니
악한 세계에 타락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름하여 바일저가(波逸底迦)라 부른다.
2) 이삼의숙(離三衣宿)학처
늘 세 가지 옷과 함께 같이 지내야 하며
대중이 하는 작법(作法)을 제외하고는
인연 없이 다른 곳에서 잠자서는 안 된다.
이와 다르면 곧 죄를 얻는다.
한두 집 혹은 수많은 집
마을 밖을 에워싼 구덩이 등
담장과 울타리가 두루 모두 에워싼 곳에는
하나나 혹은 많은 세분(勢分)이 있다.
세분이란 높고 시원한 장원이나
천신에게 제사 올리는 묘우(廟宇) 등이니
혹 차별이 나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이름은 다르나 같은 세분이니
한 줄로 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알지어다. 이 모두 같은 집이니
농사꾼과 낮고 천한 백성 등
하나같이 같은 부류 같은 마을이다.
두 집은 두 줄로 구별되니
범지(梵志)와 농사꾼이 다른 것과 같다.
여기에 많은 문을 세워 놓으면
이것을 수많은 집이라 한다.
이 가운데 세분은
바깥 둘레의 너비가 한 길[一尋]이나
혹 닭이 날다가 떨어지는 곳이니
그가 모이를 쫓는 곳에 국한된다.
큰 집ㆍ점포ㆍ누각과 마당
또 외도들의 집이나
배와 나무 수레가 에워싼 곳에는
이와 모두 하나나 혹은 많은 세분이 있다.
형제의 분별이 없고
혹 또 오직 한 사람만이 사는 곳도 있다.
이것은 한 집인 까닭에
하나의 세분이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세분은
많은 세분이 있음으로써 생기며
그것이 따로따로 문을 세웠기에
문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많은 집이 있는 곳에
창고 등도 또한 그렇게 많다.
알지어다. 모든 세분은

같고 다른 차별이 있다.
외도가 만약 다르다고 볼 경우
같고 다른 세분은 각기 다르며
이 세분이 같지 아니한 것은
입고 있는 의복 등이 다른 것을 말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 사는 집 등에서는
모든 일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외부로 퉁소와 장고 등을 안배하고
또한 대나무를 쪼개는 곳 등이다.
만약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있다면
이를 하나의 세분이라고 한다.
그림자와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
그 밖으로 있는 한 길의 땅은
사람과 옷이 같은 세분을 이룬다.
이곳에서 세 가지 옷을 입고
필추는 곳에 따라 잠을 잔다.
이는 모두 죄가 없는 일이다.
천신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 등
대문은 다 같이 하나이기에
옷을 떠나서 이곳에서 잠자더라도
죄 속에서 손상 받지 아니한다.
길을 갈 때의 세력의 한계는
49심(尋)에 국한된다.
앉고 머물고 누울 때 옷과의 거리는
한 길을 넘어서는 안 된다
3) 월망의(月望衣)학처
비록 지벌라(支伐羅)를 얻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바라는 것이 있으면
한 달을 기한으로 하나니
분별하지 않아도 범함이 없다.
팔월 보름날에서 정월 보름날까지
어느 한 달 동안은 옷을 받는 때이다.5)
그 후는 옷을 받는 때가 아니다.
이때 친척 등에게 바랄 곳이 있거나
시체를 버리는 숲 속에 있는
죽은 사람의 옷이나
장지(葬地)에서 보내오는 왕환의(往還衣)6)
다른 사람이 버린 누더기 옷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나 아란야처나
길에 버려진 것이거나 개미 벌레가 구멍을 낸 것이거나
갈기갈기 찢어진 옷 등이 있고
또한 다섯 종류의 차별이 있다.
불에 탔거나 물에 잠긴 옷
유모(乳母)가 버린 옷과
쥐가 갉아먹은 옷과 소가 씹은 옷 등이다.
알지어다. 또 다섯 종류의 옷이 있으나
옷을 말하는 인연은 이것으로 끝낸다.
일에 따라 세 가지 옷을 풀이하니
알지어다. 이는 차례를 말함이다.
널리 그 짓는 모습 말한다면
새로 만든 옷과 전에 쓰던 옷
이것을 두 종류의 옷이라 한다.
필추가 옷을 짓고자 할 때
이 법을 지금 말하리라.
만약 새로 승가지(僧伽胝)를 지을 때는
두 겹으로 잘라지어야 하고
니사단(尼師但)도 또한 그렇다.
다른 옷은 모두 뜻에 따라 지어서
넉 달이 지나서야 입고 사용한다.
만약 헌옷으로 승가지를 지을 경우
이 옷은 네 겹으로 만들고
나머지 다른 옷은 두 겹으로 만든다.
만약 다시 더욱 겹쳐 만들려면
집어내서 서로 떨어지게 하고
집어내서 떨어지는 것은 간직하여도 된다.

열흘이 지나면 분별하여야 하고
대의(大衣)의 조(條)는 같지 아니하다.
9조 등 아홉 계층으로 나누고
마지막에는 25조에 이른다.
이 각기 다른 점을 설명하리라.
처음 3품(品)의 옷은 2장(長) 1단(短)
다음 3품의 옷은 3장 1단
마지막 3품의 옷은 만다라(曼茶羅)며 4장 1단이다.
여기서 3품이라 하는 것은
이 대의(大衣)의 단(壇)의 격차를 말함이다.
이 옷의 크기를 말하리라.
상(上)은 세로 3주(肘), 가로 5주
하(下)는 세로 2주 반, 가로 4주 반이다.
두 가지 사이의 것을 중(中)이라 한다.
7조와 5조가 있으며
크기와 수효는 모두 비슷하다.
다시 5조의(條衣)를 설명한다면
가로 4주 반, 세로 2주이다.
가난한 사람은 좋은 것을 얻기 어렵기에
가엾이 생각하여 열어 허락한다.
이를 근거로 사람의 크기를 재보아야 하니
여기서 말하는 팔꿈치의 길이란
지극히 긴 사람도 있고 또
지극히 짧은 사람도 있다.
옷의 크기는 몸에 따라야 하며
상ㆍ중ㆍ하 세 가지 옷의
감 부분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
좁힐 때는 두 손가락 크기만큼 좁히고
넓힐 때는 네 손가락 크기만큼 넓힌다.
두 가지 사이의 것을 중(中)이라 하며
이와 같은 주량(肘量) 대로 줄인다.
지키고 간직해서는 안 되는 법은
모두 털로 된 옷들이다.
이를 입고 마을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또한 대중 속에 가서도 안 된다.
밥 먹은 뒤 불탑에 절하면서
시주의 물건이란 생각을 하라.
이와 같이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고
자르지 아니한 지벌라(支伐羅) 입고
마을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니
만약 어기면 악작죄(惡作罪)를 부른다.
어려운 일 있으면 따라 사정을 들어주어야 하고
미워하고 욕하며 믿음 없는 사람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함께 머물기 어렵다.
쫓겨나 길을 떠나려 하는 사람에게
기탁하는 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기탁할 만할 필추라면
비록 바다 밖에 사는 사람이라도
역시 친한 벗이 될 수 있다.
여분의 옷은 분별하여야 하며
자기 나라나 다른 지방이거나
기탁한 사람이 죽었음을 알게 되면
다른 필추가 사는 곳에
마땅히 기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약 옷을 분별할 때
가까이에 기탁한 사람이 아니거나
역시 대하지 않은 사미 등은
친한 위탁인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지니기를 청하거든
상대방 필추에게 기탁하라.
만약 그가 죽었음을 알게 되면
이 옷은 마땅히 대중에게 주어야 한다.
모든 옷의 섶 가장자리에는
마땅히 먹실로 표시를 하여
옷이 어지럽게 뒤섞이지 않고
쉽게 알게 하여 마음 쓰지 아니하게 하다.
필추가 만약에 죽었다면
그가 지닌 여섯 가지 물건은
병을 간호한 사람에게 상으로 주어야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승단에 맡겨 나눈다.

세 가지 옷은
천을 잘라 끊어서 만들어야 하며
니사단 또한 그렇다.
생활의 도구와 옷에 열세 가지 있으니
대략 그 이름을 거론한다면
세 가지 옷과 방석
속옷[涅槃僧] 두 가지
승각기(僧脚崎) 두 벌
얼굴을 닦고 몸을 닦는 수건이 두 가지
머리 깎을 때 입는 옷과
부스럼 종기를 가리는 옷과
열세 번째는 약의 자료와 도구다.
이는 모두 겹쳐진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밖의 모든 여분의 옷들은
각각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며
곳에 따라 이에 응하여 지어야 한다.
필추가 필요한 것은 지니고
안에 승각기 없이
윗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고 보호해서 받아 써야 하고
나머지 물건들도 또한 모두 그렇다.
물들여야 할 것은 물들여야 하며
재봉해야 할 것은 재봉해야 하고
가져야 할 것은 가져야 한다.
작법(作法)하여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며
필추가 새 옷을 얻을 때는
마땅히 세 종류의 괴색(壞色)을 해야 한다.
즉 푸른색과 붉은 돌과 나무껍질 빛깔의 옷이 그것이다.
탐내고 물든 생각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자금색[紫金]과 홍람색[紅藍]과 울금향색[鬱金香]과
주사(朱砂)빛깔과 대청빛[大靑]과 붉은 가지빛[紅茜]과
황단색[黃丹]과 소방색[蘇枋:검붉은 빛깔] 등 8대색(大色)으로
필추라면 옷을 물들이려 하지 말아라.
명주를 포개 지은 옷을 입거나
모직의 옷과 주단으로 된 요[褥]
또한 가볍고 엷은 옷감 등은
자르지 아니하고 지녀야 한다.
그 가운데 털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은 모두 가장자리를 접어 지녀서
욕심 적은 사람들이
자르고 바느질하는 심한 고생을
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만약 5조의(條衣)로 몸을 가리면
대중의 하는 일에 참여 할 수 있다.
7조의는 청정한 곳에서
작업할 때는 입는 것을 막지 아니한다.
승가지(僧伽胝)는 대중들 사이에 처신 할 때나
밥 먹을 때나 탑에 예배를 드릴 때나
또는 성황당(城隍堂)에 들어갈 때 등
이런 곳에서는 모두 걸쳐야 한다.
포개 입는 명주옷이나 요와 낙타털 겉옷 등
모든 귀중하게 포개 입는 옷들은
벌레 있는 물에 빨지 말아라.
다른 사람의 주단 깐 자리에 누워 잘 때는
속옷은 필요 없고 7조의를 써야 하니
접어서 네 겹으로 포개야 한다.
한밤중에도 잠드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옷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서 잠자면
그의 옷은 잘라 마름하지 아니한다.
가령 물들이지 아니한 옷일지라도
방편으로 지닌다면 또한 계율을 열어서 허락한다.
병이 없는데도 한 가지 옷만 입으면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옷이 없으면 또한 목욕도 하지 못한다.
어려움이 있어서 허락을 따라야 할 때는
자상한 마음으로 한 사람을 보내서
환한 빛깔의 겉옷 등을 빌려 와서
골고루 평등하게 받아 써야 한다.
비단 빌려 얻은 사람뿐 아니라
자기도 흰 빛깔의 옷을 입었을 경우
낮에 누워서 염색하는 동안 외부와 차단해야 한다.
승단의 물건을 받아 쓸 때는
안팎을 모두 차단하여야 한다.
환한 빛깔의 털옷을 입고 외부로 향하거나
유행(遊行)할 때는 이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만약 벼룩이나 이 등이 무서우면
앉거나 누워 있을 때 따라 옷을 열고
아리야니담(阿利耶你緂:聖者가 입는 화려한 옷)은
오직 승단의 허가를 받아 비축한다.
그것이 이 나라를 벗어날 때는
곧 나라의 명예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승단에서 수시로 가르침이 있으면
명주옷을 사용해도 합당하다.
이 밖에는 모두가 잡담(雜緂)을 입고
사람 따라 따로따로 모두가 비축할 수 있다.
아래옷을 단단히 하기 위해
허리춤을 끈으로 묶어두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허가하셨다.
이 경우 두루 둥글거나 모난
세 종류의 끈으로 묶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이부자리를 새로 꾸밀 경우
다른 물건의 좋고 나쁜 정도에 따라
마땅히 옷 안감으로 충당하여야 하고
알몸으로 자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필추가 소유한 옷은
사람을 고용해서 빨아서는 안 된다.
만약 스스로 좋은 사람을 시켜 빨 경우
빨래그릇 속에서 천천히 빨고
두들겨 옷이 상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다시 염색한 것을 빠지게 하면
옷이 빨리 망가져 일을 망친다.
이는 부처님께서 막는 일이니
만약 계율 갖춘 사람이라면
옷을 잘 받아 사용하여
그 보시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
불어난 복덕이 항상 흐르게 하라.
품 너비는 겨우 1주(肘) 반
길이 가운데는 3주가 되는 것도 있으니
이것이 세 가지 옷을 담는 부대의 크기와
다시 치수를 불리면 곧 합당하지 아니하다.
필추가 다른 사람의 옷을 얻었을 때
오래 두들겨서 광택이 나는 옷이라면
물을 뿌려 색이 바래게 하여야만
비로소 출가한 사람의 거동에 맞는다.
손타리(孫陀利)가 옷을 얻어서
좋아하는 난타(難陀)를 위하여 두드리니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제정하셨으니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 생길까 두려워하셨느니라.
품 너비는 자기 뼘을 펼친 정도에 국한하고
길이는 1주 반이다.
마땅히 붉은 흙으로 물들여서
승가리에 엮어 두어라.
이 물건 가지고
어깨머리에 붙여두면 된다.
땀으로 대의(大衣)가 더러워질까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만약 옷 가까이 섶 가장자리가
곧 파손되려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거든
마땅히 실로 꿰매서
못쓰게 되게 하지 말고 지키고 간직하여야 한다.
죽은 사람의 몸이 아직 훼손되지 아니하였을 때는
그 옷을 취하지 말아라.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까닭에 계율을 손상케 한다.

장차 누더기 옷을
필추가 시체에서 취하거나
아래로 벌레나 개미 때문에 손상되었으면
7, 8일 동안 햇볕에 쏘이고
빨고 물들여서 사용해야 한다.
모든 시체의 옷을 입은 사람은
승단의 잠자리를 사용해선 안 되며
걸식할 때는 문 밖에 머물러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명령으로 나아갈 때는
시체가 있는 곳에서 온 사람임을 알리고
반드시 다시 정중한 청이 있으면
집안에 들어가 따라 앉는다.
만약 탑에 예배하거나 반제(畔睇:예경하는 것)라고 할 때는
둘레 1심(尋)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물고기와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또한 민간인의 집에 머물지도 아니한다.
만약 그것이 승단의 겉옷이라면
염색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지녀도 된다.
서다림(逝多林)에서 베푼 옷이라면
그 이유 때문에 염색이 허락되지 아니하나
만약 그것이 승단의 물건이라면
니살기의 죄는 범하지 아니한다.
사람 따라 옷에 관하여 범하는 죄가 있으나
버릴 때는 마땅히 법에 따라야 한다.
4) 사비친니완의(使非親尼浣衣)학처
옷 위에 더러운 정액 남은 것을 보고
이로 말미암아 짐짓 탐욕 일어나
급다(芨多)가 이로 인연해 아들을 얻게 된다.
필추가 친척 아닌 필추니에게 옷을 빨게 하거나
또는 염색하게 하거나 두드리게 하면
사타죄(捨墮罪)로 몸을 상한다.
만약 필추니를 시켜 옷을 빨게 하는 등
한 가지 죄만 범해도 곧 몸이 손상한다.
친족이 아니라고 만약 의심한다면
이는 악작죄(惡作罪)를 초래한다.
손바닥으로 한 번 두드리거나
물감으로 한 번 옷 주물러도
필추가 비록 착한 마음 지녔어도
학처에 오점이 생긴다.
5) 취비친니의(取非親尼衣)학처
만약 친족이 아닌 필추니로부터
필추가 옷을 취할 경우엔
연민의 정이 없기 때문에
얻을 때 사타죄(捨墮罪)을 초래한다.
주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지니
물건과 물건을 바꾸는 것은 허물이 없다.
살 때는 해당하는 값에 근거하고
혹 때로는 그 정황에 맡겨도 된다.
필추니가 재물이 있어
결심하여 갖고 와서 보시하거나
혹 미묘한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법사로 받들거나
때로는 구족계 받는 것을 보고
물건을 갖고 와 서로 돕거나
도적에게 빼앗겼을 때 보시하는 물건은
받아도 모두 범하는 것이 없다.

6) 종비친거사부걸의(從非親居士婦乞衣)학처
친족이 아닌 속인에게나 혹은 속인의 부인에게
필추의 옷이 현재 있다고
이에 따라 구걸하면 마침내 죄를 초래한다.
값싼 옷과 실을 구걸하다가
문득 훌륭하고 비싼 옷을 얻게 되거나
일부를 구하다가
완전한 옷을 얻었다면
이를 받았을 때는 허물이 없다.
7) 과량걸의(過量乞衣)학처
필추가 옷을 잃거나 빼앗겨
사람들이 많은 옷 보시할 경우
다만 위아래 한 벌의 옷만 취하고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윗옷 길이는 11주(肘)
아래옷 길이는 7주에 이른다.
이는 속인의 옷에 기준한 것이며
이를 상하의(上下衣)라 부른다.
스님의 대의(大衣)는 15주이니
두 겹으로 접어서 윗옷으로 삼고
10주로 아래옷으로 삼는 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상하의라 말한다.
상대로부터 옷을 구걸할 때
만약 채우고 남았다면
마땅히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니
다시 보시해서 받아들이는 일은
상황에 따라 허락된다.
8) 비친거사부공판의(非親居士婦共辦衣)학처
만약 속인의 부부가
옷값을 마련 하고자 하여
필추가 그들에게 찾아가
만약 얻으면 죄를 얻어 상하게 된다.
친족이 아닌 경우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일곱 종류의 옷을 얻고
옷의 바탕이 단단하면
이를 청정한 물건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옷값을 구걸할 때는
혹 5에서 10에 이르는
가리사바나(迦利沙波拏)를 구걸한다.
옷의 빛깔과 분량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만약 이러한 옷을 구하려고
구걸할 때는 악작죄를 초래하거나
니살기죄를 얻기도 한다.
많이 얻어도 범하지 않는 것은
필추가 만약 옷이 없을 경우이니
얼굴과 모습이 단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로 말미암아
세 가지 옷을 입도록 제정하셨다.
9) 비친거사부각판의(非親居士婦各辦衣)학처
옷에 관한 일은 모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나
따로 옷값을 주는 일이 다르니
마땅히 인연이 일어난 곳의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10) 왕신송의가(王臣送衣價)학처

만약 관정(灌頂)을 받은 임금이나
바라문 등이나
대신이나 장수가
옷값을 갖고 찾아오게 할 경우
심부름 온 사람이 옷값을 주면
자신이 응대할 바 아님을 알려야 한다.
나는 청정한 옷만 받는다는 것을
심부름 온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마땅히 일을 맡아보는 사람은
신심 있는 사람이라 말해준다.
필추가 옷을 구할 때는
마침내 여섯 번에 이르기까지 반복하되
만약 다시 나머지 옷을 얻게 되면
받아 가져도 청정함을 이룬다.
분에 넘치게 구하고자 하여 얻으면
이는 근본죄를 초래한다.
만약 여섯 번 돌려주는 회수를 넘겨도
그가 스스로 옷을 보내온다면
나는 욕심이 멎은 사람이니
마땅히 옷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해야 하며
그래도 만약 그가 다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공경하게 옷을 수여(授與)한다면
이 물건은 마땅히 받아 가져야 하며
이를 사용할 때도 허물이 없다.
사는 곳에 네 가지 구별 있으니
창(敞)ㆍ사(舍)ㆍ전(田)ㆍ점(店)이다.
창이라 하는 것은 기와 등을 입힌 집을 말하고
사라고 하는 것은 거처하는 집을 말하며
전이라 하는 것은 농사짓는 곳이니
벼ㆍ감자ㆍ곡식ㆍ보리농사 짓는 곳이며
점이라 하는 것은 돈과 물건을 저장하는 곳이다.
이 힐문(詰問)하는 것에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라.
말을 기다려 천천히 대답해야 하니
만약 급속하게 말하면
곧 악작죄를 초래한다.
그가 필추가 온 것을 보고
“스님 잘 오셨습니다”라고 하거나
혹 “참 잘 오셨습니다”라고 하며
“이곳에 앉으십시오”라고 하고
혹 “밥을 드십시오”라고 하거나
혹 때로는 “떡을 드십시오”라고 하고
혹 “비시장(非時漿)을 드십시오”라고 하는 것이니,
간략히 말하면 이 여섯 가지 일이다.
시주(施主)는 정인(淨人)을 시켜
“이 사람은 청정 합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이때 그렇지 아니하면
곧 악작죄를 초래한다.
필추가 옷을 기탁하고 떠나면
그와 친애하는 사람을
보내온 사람에게 심부름시켜
친한 벗이 사용하게 하여도 허물이 없다.
길을 가는 도중에
상대가 죽은 것을 알게 되면
이는 곧 죽은 사람의 물건이라
옷이 많을 때도 많이 가진 허물은 없고
그 물건은 다른 경우에서 가린 내용과 같이 처분한다.
11) 용야잠사작부구(用野蠶絲作敷具)학처
만약 새로 명주실로 요를 만들어
그것이 이룩되면 사타죄를 범한다.
여기에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으니
바랑을 만들 경우와 팔찌[杆]를 만들 경우이니
두 가지를 만들면 모두 죄를 범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 쓰게 하면 허물이 없다.
시주에게 많은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의 복과 수명이 불어나게 한다.

12) 순흑양모작부구(純黑羊毛作敷具)학처
순수한 검은 양털을 사용하여
새로 잠자리 도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구하고 찾을 때 얻기 어렵고
또한 바른 수행에 방해가 된다.
13) 과분용모작부구(過分用毛作敷具)학처
잠시 양털을 사용할 경우
네 근이면 누울 수 있는 요가 된다.
검은 털이 두 근, 나머지 털이 각기 한 근
이는 법에 맞는 일이라 죄가 없다.
검은 털이란 본질적으로 검은 털이며
목 부분에 한하여 흰 털이라 부른다.
머리와 배와 발에 있는 털은
걸어가는 곳의 털임을 알아야 한다.
희고 긴 털이 만약 모자라거나
나아가 반 냥 밖에 안 되어서
이것으로 요를 만들기를 끝내면
반드시 죄가 됨을 서로 알아야 한다.
검은 것은 구하기 쉽고 다른 것은 구하기 어려우면
순 흑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한다.
만약 다른 곳에서 얻었을 경우
받아쓰는 일은 마땅히
그 내용에 따라야 한다.
14) 육년부구(六年敷具)학처
만약 손수 누울 요를 만들었다면
억지로라도 6년이 지나도록 간직해야 한다.
6년 동안에 다시 만들 때는 범하는 것이니
승단에서 갈마를 한 경우는 제외한다.
만약 필추가 1년 만에
다시 두 번째 요를 만든다면
그 일을 시작하면 악작죄를 초래하고
이루어졌을 때는 근본죄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2년ㆍ3년ㆍ4년
마침내 5년이 끝나는 때에 이르러
6년째에 들어갔을 경우는
비록 만든다고 하더라도 가로막는 한도가 아니다.
15) 불첩좌구(不帖坐具)학처
만약 새로 방석을 만들 경우
부처님 뼘으로 한 뼘에 해당하게
헌것을 새것에 덧대고
괴색(壞色)이 단단하게 유지되게 하여야 한다.
만약 한 뼘 이내에서
마음먹고 한 조각이라도 너비를 줄인다면
문득 근본죄를 만나 곤장 얻어맞아
모지게 이 사람 몸 아프게 한다.
옛 것이 지극히 썩어 허물어져서
오래된 까닭에 감당할만한 것이 없고
혹 오직 새것만이 있을 경우
헌것을 덧대지 아니해도 범하는 것이 아니다.
16) 담양모(擔羊毛)학처
몸소 양털을 갖고
역(驛) 세 곳이 지나도록 가지 말아라.
적은 양의 양털로 모자 등을 만들어
가만히 지녀도 죄는 아니다.
마을의 반을 가면 악작죄이니, 반 구로사(俱盧舍)이다.

일 구로사를 만약 넘으면
마을을 넘는 것이니, 사타죄를 얻는다.
17) 사비친니벽양모(使非親尼擘羊毛)학처
친족이 아닌 필추니에게
필추가 세탁 등을 하게 하거나
지닌 털을 그가 씻을 경우에
이는 곧 계율을 손상하는 일이다.
만약 따로 씻게 하는 등의 일을 하거나
혹은 모든 일을 다 맡아 하게 한다면
이것으로 얻는 죄는 시킨 일에 상응하고
다만 악작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8) 착축전보(捉畜錢寶)학처
부처님은 필추들이
금은을 손에 잡는 것을 막으셨다.
만약 세 가지 옷과 길양식[道糧]과
병에 필요한 약은 당연히 지니고 가야 한다.
필추는 마땅히 욕심이 적고
짓는 일도 적고 경영하여 희구하는 것도 적어야 하며
마음은 열반을 즐기는 데 두고
양(量)과 때를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19) 출식구리(出息求利)학처
이득을 위하여 일을 일으키고 생기게 하여
재물과 곡식 등을 내주고 받아들이면서
이익을 찾아다니면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방망이가
문득 탐욕한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한다.
멀리 가서 이익을 구하거나 기한을 정하거나
이자 돈이 생기거나 저당 잡히는 물건을 받아들이거나
일이 이루어지건 이루어지지 아니하건
일으키고 생기게 하는 데 네 가지 다름이 있다.
혹 다른 곳에 가서 이익을 구하고
행장(行裝)을 차려 배나 수레를 타고
또한 같이 갈 동반자를 찾는 등
이것을 멀리 가서 이익을 구하는 것이라 부른다.
일곱 배에 해당하는 이익을 얻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재산을 내주고
문서와 패쪽으로 증거를 삼고 보증할 사람을 세우는 등
이것을 기한을 정하는 것이라 한다.
본래 이익이 나기를 구하고자 하여
두 배에 해당하도록 이자가 불어나면
문서나 패쪽으로 시일을 계산하여 돈을 징수하는 일
이것을 이자 돈이 생겨난다고[生利] 부른다
마니보주(摩尼寶珠)나 산호(珊瑚) 등
진주 같은 물건을 저축하고 거두어
계약을 명시하고 기한을 작성하여 요구하는 일
이것을 저당 잡히는 물건을 받아들인다[納質]고 부른다.
이 가운데서는 이익이 아직 생기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미 악작죄를 부른 것이며
이득이 생겼을 경우에는
곧 사타죄를 초래한다.
죄를 이루게 된 것은 자기가 지은 죄이다.
노상 장엄(莊嚴)을 위하여 갖춘 것이라 한다.
이루지 아니한 것은 금 등의 경우
이는 모두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삼보(三寶)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방편을 써서 이득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일을 맡아볼 사람을 뽑되
속가의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임금과 여러 관속(官屬)들의 시주들을
사귀어 공개하지 말아라.
재물을 주었을 때
뒤쫓아 찾기 어렵고

혹 전연 이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저당물을 받아들일 때는 형편을 잘 관망하여서
줄 물건과 잘 비교하여 헤아려보고
착한 사람이라 위임하여 부탁할 만한 사람일 경우
저당물이 없이 돈을 주어도
계율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다.
20) 매매(賣買)학처
따로 교역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필추는 몸소 물건을 사야 한다.
해야 할 말을 잘 관망하고
값을 결정할 때는 오직 세 번만 수작하라.
마땅히 곧 팔고 살 것이 있다 하더라도
원래 이득을 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아니한다.
만약 개별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어
팔고 살 때에는 허물이 없다.
만약 삼보를 위한 일로
팔고 살 필요가 있을 경우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일을 하되
속가의 관습을 어기지 말아라.
만약 어떤 사람이 공양을 마련하기 위하여
절을 찾아와 물건 흥정[市易]을 하는 경우
마땅히 값을 내려 주어
그로 하여금 신심이 불어나게 하여야 한다.
기름과 삼[麻], 곡식과 콩 등이
그 속에 벌레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늘지고 찬 곳에 갖다 두어
그들 스스로 인연 따라 나가게 맡겨두라.
비록 그늘진 곳에 갔다 두었더라도
생긴 벌레가 아직 남아 있다면
방안 단지 속에 넣어두고
밀폐해서 손상이 없게 하라.
21) 축장발(畜長鉢)학처
발우를 비축하는 데 두 종류 있으니
무쇠발우와 사기발우다.
지닌 지 열흘을 넘기면
반드시 죄 모습 속에 있게 되리라.
만약 알맞은 양과 양을 줄여서
남음이 있으면 저축하여야 한다.
구족계 받는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분별하지 않아도 허물이 없다.
22) 걸발(乞鉢)학처
다섯 가지로 발우를 얽어맬 수 있으나
합당하지 않는 발우는 다른 발우를 구걸한다.
묘하고 좋은 발우를 구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만약 살 경우는 죄가 아니다.
필추가 구멍 난 발우를 때울 때
녹는 물건을 사용해선 안 된다.
검은 사탕ㆍ주석ㆍ자주 빛 광석ㆍ
진흙ㆍ초 등은 모두 막는다.
구멍 난 발우 때우는 데 다섯 종류 있으니
쇳조각으로 서로 물리게 하거나
쇳조각을 못 박거나
쇠못으로 때우거나
무쇠가루로 때우거나
물고기 이빨 같은 물건으로 때운다.
법에 근거하여 발우를 바꾸거나
얻으면 죄가 없으나
이와 다른 것을 구걸하면
악작죄에 해당하고 발우를
얻었을 때는 니살기(尼薩祇)를 얻는다.
얻은 여분의 발우는
버려서 승단에 두게 하고
바꾸어가며 취하다가 최후로 갖는 사람은
마땅히 법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굽히되, 밥에 닿아서는 안 되고

두 되의 쌀이나 밥을 받아 담고
아울러 채소음식을 담을 만한 것
이것을 큰 발우[大鉢]라 부른다.
한 되의 쌀이나 밥을 받아 담고
아울러 김치와 채소를 담을 수 있는 것
이것을 작은 발우라 부르며
이 두 발우의 사이를 중간 발우라 부른다.
이것을 세 종류의 발우라 하고
만약 발우에 구슬만한 구멍 있으면
때워서 보완하되 정성을 드린다.
도구를 만드는 것은
필요한 사람이 지니게 하자는 것이니
승단의 창고 속에 둔다
발우가 있어야만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고
대중의 작법하는 수고 입지 아니하게 되느니라.
다만 도적 때문에 공포심이 생길 경우에
다시 또 되돌아오고자 할 때는 여기서 제외된다.
23) 자걸루사비친직(自乞縷使非親織)학처
친족이 아닌 베 짜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옷감을 짜게 하면 죄를 범한다.
값을 치루거나 친족에게 보내서
짜게 할 경우에는 허물이 아니다.
24) 거사부사비친직(居士婦使非親織)학처
속인이 베 짜는 사람에게
필추를 위하여 옷감을 짜게 한다면
그 언저리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아첨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말을 해주고
크게 하고 솔질하며 자르고 두드리게 하면서
음식으로 베 짜는 사람을 유혹하여
그 사람이 그 행위와 같이 일한다면
곧 사타죄를 얻게 된다.
크다는 것은 넓고 큰 것을 말하며
솔질한다는 것은 부드럽고 매끄럽게 하는 것이며
자른다는 것은 실마디 맺힌 것을 제거함이며
두드린다는 것은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떡을 구걸하여 베 짜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다섯 가지 정식(正食) 등의 음식을 주는 것이며
그에게 식량을 준다는 것은
쌀ㆍ콩 등임을 알아야 한다.
25) 탈의(奪衣)학처
필추가 다른 사람에게 옷을 주면
성이 나도 다시 도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애처롭고 가엾은 사람에겐 허물없으니
의욕적으로 상대방을 돕고자 하다가
몸을 움직이면 이는 몸으로 짓는 업이고
말로 한다면 말의 죄 이룩된다.
이 두 업 가운데서
어느 한쪽만 따라도 곧 죄를 부른다.
더 나아가 옷 모서리가
아직 몸이 벗어나지 아니하여도
악작죄를 얻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옷 모서리가 몸을 벗어나면
곧 사타죄를 범하게 된다.
26) 급시의(急施衣)학처
다만 이는 여름 동안만의 이익이다.
하안거에 좌선하는 사람만이
응할 자격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아니하니
이 몫에 참여하면 악작죄 초래한다.
하안거에 옷을 관장하는 사람 없으면
다른 이로부터 옷을 받는 것은 합당치 않다.

만약 옷을 보시하기 어려운 일 있으면
돈 등도 모두 받아도 된다.
급히 보시하는 데 다섯 종류 있으니
병들었을 경우와 병든 사람을 위하는 경우
죽으려 하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위하는 경우와
길을 떠나려 하는 까닭에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수의(隨意:自恣)일까지 열흘 이내는
이때는 마땅히 물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옷 때를 지나면
이는 곧 비축하는 데 합당치 아니하다.
만약 시주가 알려오기를
“내가 곧 손수 보시 하리다”라고 하였다면
이를 받아 취하고 일을 드러내
모든 대중에게 말하면 죄는 하나도 없다.
만약 자자 후 이득을 얻었다면
모두가 하안거에 좌선하는 사람에게 속하지만
또한 하안거가 없는 사람에게도
공통적으로 함께 수의(隨意)의 일을 한다.
27) 난야이의(蘭若離衣)학처
암자에 공포가 있을 경우
세 가지 옷 가운데서
속인의 집에 한 벌의 옷을 맡기는 것은
그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옷을 떠나서 잠자는 것은
여섯 밤 동안은 죄가 없으나
7일째 날이 밝으면
암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전하안거(前夏安居)가 아니며
이를 후하안거라 부른다.
이 가운데 만약 도적이 있다면
이것이 재난임을 알아야 한다.
의심나고 두려운 곳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자나 호랑이 등을 말하고
공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모기ㆍ멍에 등
많은 대중을 괴롭히고 독을 주는 것을 말한다.
28) 우욕의(雨浴衣)학처
봄의 마지막 한 달
4월 보름날에서 5월 보름까지
만약 그가 비옷[雨浴衣]이 필요하다면
이때는 구걸하여도 좋다.
앞 안거일 까지는
아직도 한 달이 남아 있으니
이때는 지켜 지녀야 한다.
하안거에 들어가면 사정에 따라 사용하며
두 달 반 동안은
필추가 비옷을 사용할 수 있다.
미리 구하거나 기간이 지난 뒤에도
지니고 있다면 이는 곧 사타죄를 초래한다.
만약 수의(隨意)하는 날이 되어
보시로 좋은 옷과 재물 얻게 되면
백이갈마(百二羯磨)의 법으로
대중 앞에서 받아야 한다.
대중 승단이 함께 허가하게 되면
정중하게 각기 마음을 써서
하루 동안에 만들어 이루게 하고
물건의 바탕은 단단하여야 한다.
법대로 옷을 만들고 나면
꽃 향수로 잘 장엄하게 장식하여
대중 가운데 놓아두고
법을 맡은 사람이 펼쳐보아야 한다.
가치나의(迦絺那衣)가 베풀어짐으로 말미암아
필추는 풍부한 이익을 얻으니
즉 열흘 안에는

분별하지 않고 지닐 수 있고
비록 승가지(僧伽胝) 없다 해도
인간세계에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대중과 따로 전전하며 식사를 해도
이 모두 허물이 없고
비록 필추에게 알리지 않고서도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상세한 글에는 열 가지를 갖추었으나
여기서는 줄여서 다섯 가지만 쓴다.
즉 8월 보름날에서 정월 보름날까지
이 다섯 달 안에 국한하여
가치나의의 시기라 부른다.
아랫사람의 뜻대로 행동하고 또한 그 일을 마치고
별거(別居) 생활을 행하고 아울러 외부로 나갈 수 있다.
하안거 기한을 채우지 못하였거나 허물었거나
후안거만 치룬
사람은 해당되지 않나니
신도나 사미와 아울러
배움을 준 사람에게 부탁하여
가치나의를 받아서는 안 되나
나머지 이익은 모두 주어야 한다.
계율을 깨뜨리거나 행이 허물어진 사람
대중의 작법을 방해한 사람과
법이 아닌 무리 속에 들어간 사람과
다른 곳에서 하안거 좌선을 한 사람
이와 같은 다섯 종류의 사람들은
이익도 주는 것이 없고 풍요한 도움도 없다.
그는 보시한 물건을 소비할 수 없기에
계율을 지킨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
29) 회중물입기(廻衆物入己)학처
만약 승단 앞에 나타난 물건을
이를 되돌려서 자기에게 귀속시키면
그 이익은 가장 소화하기 어렵다.
당장 받아들이면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 받는다.
다른 사람이 보시한 옷과 돈 등과
여러 가지 음식 등
이 두 종류의 물건을 차단하는 것을
회환(廻換)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
이는 대중이 낳은 이익인데
다른 승단에게 준다면
악작죄를 초래하나
근본죄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른 대중의 이익을
함께 이쪽 승단에 돌려주면
만약 그 물건이 이에 귀속할 때는
모든 대중이 모두 니살기죄에 저촉된다.
불상이나 탑을 만드는 사람에게나
나아가 축생들에게 주거나
아래위 누각ㆍ처마 등에도
되돌려 졌을 때에는 모두 악작죄가 된다.
30) 칠일약(七日藥)학처
필추를 상대로 주는 소락(酥酪)ㆍ꿀 등을
받아 취하여 지키고 간직할 때
자신이 취한 경우 마음대로 먹되
7일까지는 계율에 어긋남이 없다.
니살기죄는 마땅히 버려야 하니
이것이 모름지기 착한 필추이다.
사이를 두고 하루 밤을 넘기려 하면
그 죄 마땅히 설명되어야 한다.
둘째 날에 옷을 되돌려주면
본래의 주인은 마땅히
그의 구걸에 따라야 한다.
인색한 마음으로 되돌려주지 아니하면
강제로 빼앗아 갖고 와도 된다.

세 가지 옷 가운데 한 가지만이 있는데
다시 또 다른 옷을 얻게 된다면
그의 몸이 아직 청정하지 못하기에
받았을 때는 모두 죄를 범한다.
옷 등으로 말미암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버린다[捨]는 표현이 생긴 것이고
또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사타(捨墮)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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