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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23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1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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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1

 

대당용흥삼장성교서(大唐龍興三藏聖敎序)

어제(御製)

들으니 드높아 창창함이여, 하늘이 별자리를 벌려 모양을 드러냈고, 드넓어 망망함이여, 대지가 산천을 두어 모습을 이루었다. 우러러 천문(天文)을 살펴봐도 이미 저러하고, 구부려 지리(地理)를 돌아봐도 역시 이러하다.
대개 묘지(妙旨)가 깊고 그윽하니 명언(名言)의 길이 저 멀리 끊겼으며, 진여(眞如)가 맑고 고요하니 성상(性相)1)의 뜻이 모두 다 사라졌다.
처음으로 마음의 용틀임을 일으키니 법문의 우레가 메아리쳐 울렸고, 미혹한 무리들을 권장하여 인도하니 깨침의 머리는 우러러 바른 길[司方]2)을 기다렸다.
분명히 알라. 변하는 거짓 이름이 변하지 않는 이름을 무너뜨리지 못하며, 걸림이 없는 말씀은 말씀이 떠난 데서 밝혀진다.
더욱이 모양을 벗어난 모양이니 홀로 삼계(三界)의 으뜸이라 칭하고, 하늘 가운데 하늘이니 이에 6통(通)3)의 성인이라 부른다. 법왕(法王)은 예리한 견해로 일흔두 임금4)을 품어 길렀으며, 범왕[梵]과 제석[帝]은 시기를 타서 1만 8천 년을 굳게 지켜왔다. 주행하는 별[周星]5)이 채색을 안았으니, 말은 성인 탄생의 징조와 부합하고, 한나라의 해[漢日]에 상서가 흘렀으니, 일은 신비로운 현몽(現夢)과 일치한다.
때문에 위세가 진사겁(塵沙劫)6)에 떨칠 수 있으며, 교화가 세속 경계를 덮을 수 있었다. 옥과 같은 하얀 털7)이 빛을 놓아 어둠을 없애고, 금과 같이 귀한 입8)을 크게 열어 막힘을 뚫었다. 번뇌의 도둑[煩惱賊]을 무찌르는 데 어찌 방패와 창을 빌리겠는가. 생사의 마군[生死軍]을 무너뜨림은 오직 지혜의 힘을 의지할 뿐이다. 뚜렷이 밝은 경지를 열어 널리 끝없는 세계를 거두어들였고, 영원히 기쁜 문을 터서 두루 유정(有情)의 생명을 끌어안았다.
비록 하늘에 넘치는 욕심의 물결일지라도, 경계의 바람이 멈추니 어느새 맑아졌고, 햇빛을 가리는 마음의 티끌일지라도, 법문의 비가 적시니 곧바로 걷히었다. 돌아가 의지하는 자는 재앙을 녹이어 복덕을 이루고, 되돌려 베푸는 자는 위험을 버리어 안정을 얻는다. 참으로 “더없이 높구려. 그 이룬 공덕이여. 더없이 넓구려. 무어라 이름하랴”고 말하리라.

단지 어리석고 무지한 4생(生)이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하여 한량없이 아득한 6취(趣)에 함께 묶였을 뿐이니, 어찌 허망한 꽃이 진실이 아니며, 물속의 달이 견고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5음(陰) 가운데를 치달아 좇으며, 삼계(三界)의 지경에서 허덕인다.
이들 중생을 거두어들이니, 결국 법문을 기다렸다. 흰 말이 서쪽에서 오니 심오한 말씀이 동쪽을 덮었다. 세존께서 근기를 따라 널리 펴시니, 중생들은 성품을 좇아 미혹을 벗는다. 마명(馬鳴)9)은 귀중한 편서(編書)로 아름다움을 선양하였으며, 용수(龍樹)10)는 보배의 게송(偈頌)으로 꽃다움을 드날렸다. 이에 멀리 진단(震旦)에 알려지고, 두루 염부(閻浮)에 퍼지면서 반자(半字)ㆍ만자(滿字)11)의 교가 따로 나뉘고, 대승법(大乘法)과 소승법(小乘法)이 함께 달렸다.
뛰어난 법덕을 갖춘 불도징(佛圖澄)12)과 도안(道安)13)은 발맞춰 훌륭한 도량에 머물고, 고상한 인품을 지닌 법림(法琳)14)과 혜원(慧遠)15)은 나란히 법다운 사찰에 자취를 보이니, 드디어 미묘한 말씀으로 모범이 드러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훌륭한 영예를 남겼으며, 지극한 수행으로 법규가 흘러나와 시방 곳곳이 다 차도록 무성한 열매를 드날렸다.
마침내 후주(後周)의 시대가 열리면서[膺運]16) 크게 마(魔)의 바람이 몰아치니, 드디어 천하의 사찰은 모두 헐렸거나 폐지되고 말았으며, 도량의 승려는 함께 세속으로 내몰려 섞여 버렸다. 한심하구나. 적막한 선정(禪定)의 터전에는 쓸쓸히 좌선(坐禪)의 자리만을 남겨 놓았으며, 황량한 지혜의 동산에는 더 이상 경행(經行)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에 개황(開皇)17)에 이르러 거듭 사원(寺院)을 고쳐 세우는 일이 진행되었으나, 오히려 대업(大業)18)을 만나서 다시 찢겨 흩어져 종잡을 수 없는 일을 당하니, 귀신은 통곡하고 신령은 신음하며, 산악이 울부짖고, 바다가 들끓었다. 이미 도탄에 빠졌으니, 어찌 가람(伽藍)인들 온전하겠는가. 바른 법은 몰락하고, 사견(邪見)만 더욱 자랄 뿐이다. 여기에 사람은 깨침의 길목을 알지 못하여 고통과 쌓임[集]의 구역에서 허덕이고, 세속은 참다운 종지가 파묻혀서 덮고 묶는 번뇌 가운데에 얽히고 말았다.
이에 우리 큰 당나라에 천하를 두었으니, 위로는 소수(巢燧)19)를 능멸하고, 아래로 희헌(羲軒)20)을 내려다본다. 세 분 성인21)이 다시 빛나니, 온 세상이 하나가 되었다. 위엄은 다스림을 더하고, 덕택은 한없이 덮였다. 대지의 맥락이 잡혀 두터운 덕을 돌렸고, 하늘의 벼리가 뻗쳐 진실한 덕을 보냈다. 다시 부처님의 해가 밝아졌고, 거듭 청정한 하늘을 수놓았다. 용궁(龍宮)이 여덟 버팀목을 떠받쳤으니 사해가 고루 안정되고,
영취(靈鷲)가 다섯 봉우리와 함께하니 어찌 높음을 다투랴.
크게 불교를 선양하여 넓힘은, 진실로 황실 조정에 속한 일이다. 대선복사(大先福寺)의 역경을 맡으신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은 범양(范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씨(張氏)이다. 5대(代)가 한나라에 봉직한 뒤로 삼태(三台)가 진(晉)나라에 벼슬하기 전까지는, 높은 벼슬은 나눠 광채를 발했고, 군자의 덕은 합쳐 채색을 떨쳤다. 고조(高祖)께서 동쪽 제(齊)나라 군수(郡守)에 오르니, 인풍(仁風)은 부채를 좇았고, 단비는 수레를 따랐다. 교화는 육조(六條)를 선양하였고, 정사는 10부(部)를 행하였다. 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함께 세속의 영화를 싫어하여 은자(隱者)의 한 언덕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은자의 세 뜰에서 마음대로 거닐면서, 조화(調和)를 품어 본질을 체득하고, 심성(心性)을 닦아 정신을 길렀으며, 지초의 꽃[芝秀]은 동쪽 산에서 따왔으며, 맑은 물은 남쪽 샘에서 길어왔다. 당연히 신선의 경계에 깊숙이 들어 하얀 구름에 깃들어 묻힌 이라고 하리라. 연못가의 두루미도 여기서는 소리를 삼켰으며, 논두렁의 망아지도 이 때문에 그림자를 멈추었다.
법사(法師)는 어려서 이미 사리 판단이 빼어나서 일찍부터 뛰어난 총명이 알려졌다. 겨우 떠들며 돌아다니는 나이[辯李之歲]22)를 넘기자, 마음에 출가(出家)를 원했으며, 겨우 배움을 좇아 돌아다니는 나이[遊洛之年]23)를 지내자, 서국(西國:인도)을 탐방하려고 결심하였다. 이에 경사(經史)를 해박하게 연구하였고, 옛날과 지금을 배워 환히 알았으며, 삼장(三藏)의 그윽한 요점을 총괄하였고, 1승(乘)의 심오한 내용을 널리 밝혔다. 이뿐이랴. 고요히 머물러 정려(靜慮)를 닦고, 복잡한 생각을 쉬어 선정(禪定)에 들었으니, 저 산 속의 숲을 의지하여 이 쌓인 번뇌를 멀리 떠난 것이다.
3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속에 품은 뜻을 이루게 되었다. 함형(咸亨) 2년에 광부(廣府:廣州)로 갔다. 뜻을 같이한 사람이 처음에는 열 명이 되었으나, 돛대를 올려 배가 떠날 때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남쪽의 큰 바다를 돌며 멀리 떠나서 서쪽의 먼 나라를 향하여 오래 달렸다. 천 겹 암초(暗礁)를 겪고, 만리 파도를 능멸하며, 점차 천축(天竺)에 이르렀고, 다음에 왕사성(王舍城)에 도착하였다.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신령한 봉우리[靈峰]는 아직 그대로 있고, 여래께서 도(道)를 이루신 신성한 자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폐사성(吠舍城:毘舍離城) 중에 번기[幡]와 일산[蓋]을 드리운 흔적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급고원(給孤園) 안에 황금을 흩은 자리도 여태껏 남아 있다.
삼도의 보배 계단[三道寶階]24)은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하고, 팔대의 신령한 탑[八大靈塔]은 저 멀리 아득히 직접 보는 듯하다.
서른이 넘어 나라를 돌아보는 사이,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지냈다.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얼마나 잡아끌어 오래 머물렀으며, 아뇩지(阿耨池) 가에서 얼마나 세속의 때를 씻어 비췄던가.
법사(法師)는 자비(慈悲)를 방으로 삼았고, 인욕(忍辱)을 옷으로 여겼다. 오래도록 재계(齋戒)하여 한 끼니의 밥으로 몸을 돌보았으며, 오래도록 좌선(坐禪)하여 종일토록 게으르지 않았다.
또 예부터 번역하는 이들은 먼저 범문(梵文)을 근거한 뒤에 한역(漢譯)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말을 정리할 때 비로소 학자(學者)에게 의지하였고, 뜻을 밝혀낼 때 별도로 승도(僧徒)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제 법사는 이와 다르다. 이미 5천축의 말에 능통하였고, 2제(諦)25)의 심오한 종지를 상세히 알았다. 뜻을 번역하고 글을 엮는 일은 다 자기로부터 나왔고, 말을 지시(指示)하고 이치를 결정하는 일은 옆에서 구하지 않았으니, 한(漢)나라의 마등(摩騰)보다 뛰어나고, 진(秦)나라의 나집(羅什)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증성(證聖) 원년(元年) 여름 5월에, 4백 부에 가까운 50만 송(頌)의 범본경(梵本經)과 금강좌진용(金剛座眞容) 1포(鋪)와 사리(舍利) 3백 과를 가지고 도읍에 도착했다.
측천대성황제(則天大聖皇帝)께서 하늘의 진동으로 황제의 시기를 알리자, 하늘의 뜻을 받들어 기강(紀綱)을 바로잡게 되면서 불법(佛法) 계승을 임무(任務)로 삼았고, 중생 제도에 마음을 기울였다.
이에 모든 신하에게 명령을 내리고, 겸하여 사부대중에게 교시하니, 무지개 깃발은 햇빛을 지웠고, 환영의 예악[鳳吹]26)에 구름도 멈췄다. 향은 6수(銖)27)에 흩어지고, 꽃은 오색(五色)으로 나부낀다. 쟁쟁한 금옥의 소리는 장중하고, 휘황한 광채의 빛깔은 찬란하다. 이 가운데 법사(法師)는 상동(上東)의 문에서 영접되어 수기사(授記寺)로 모셔졌다.
여기서 우전(于闐) 삼장28)과 대선복사(大先福寺) 사주(寺主) 사문 복례(復禮)29) ①중국 당대(唐代)의 고승. 경조(京兆)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황보(皇甫)씨며, 생몰 연대는 미상(未詳)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대흥선사(大興善寺)에 머물면서 불전(佛典)과 함께 유학(儒學), 시가(詩歌)도 깊이 연구하여 일찍이 지바하라(地婆訶羅)ㆍ실차난타(實叉難陀)를 따라서 『대장엄경(大藏嚴經)』과 『화엄경(華嚴經)』을 번역하였다. 고종(高宗) 영융(永隆) 2년(681)에 태자문학(太子文學:唐代의 經籍官吏) 권무이(權無二)가 불전(佛典)에 대한 10조의 질의[釋典稽疑]를 제출하자, 복례는 여기에 『십문변혹론(十門辯惑論)』 2권을 지어 답변하니, 권무이는 굴복하고 제자가 되었다. 저서로는 『진망송(眞妄頌)』을 남겼다. 이 책은 진심(眞心)과 망심(妄心)의 관계를 논설한 것으로서, 당대의 고승들에게 의심을 들어 해답하여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것은 징관(澄觀)과 종밀(宗密)의 답변뿐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복례는 법장(法藏)이 설한 가명보살(假名菩薩)의 교의(敎義)에 반대, 글을 올려 법장을 강남(江南)으로 쫓아낼 것을 주청(奏請)하였다고 한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참조.
②당대의 고승으로서 당시에 고결한 덕(德)과 행(行)으로 존경을 받았다. 일찍이 칙명(勅命)으로 현수 법장(賢首法藏)의 역장(譯場)에 참여하여 법장(法藏)ㆍ도성(道成)과 공동으로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入法界品)」을 번역했다고 한다. 그 외 사적(事蹟)과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와 서숭복사주(西崇福寺主) 법장(法藏)30) 등과 『화엄경(花嚴經)』을 번역하였다. 그 뒤 대복선사(大福先寺)로 가서 천축(天竺) 삼장 보사말다(寶思末多)와 수기사주(授記寺主) 혜표(惠表), 사문 승장(勝莊), 자훈(慈訓) 등과 더불어 근본부율(根本部律)을 번역하였다.
그 대덕(大德)들은
4선(禪)의 선정(禪定)에 마음을 집중하여 6도(度)의 실천에 생각을 합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법의 거울[法鏡]을 마음의 바탕에 달고, 계의 구슬을 성품의 바다에 밝혔다. 문장의 숲이 우뚝 빼어나니, 깨침의 나무에 향기가 그윽하고, 지혜의 횃불을 환히 밝혔으니, 계수의 달빛은 그림자와 똑같다. 본래의 황금과 순박한 구슬은 바로 이 분들이 아니고 누구랴. 참으로 사원(寺院)의 동량(棟梁)이요, 진정 법문(法門)의 용상(龍象)이로다.
이미 제잡경률(諸雜經律) 2백여 권을 번역하여 다 책으로 만들고, 이내 모두 황실(皇室)에 바쳤으므로, 그 외 다른 계율(戒律)의 모든 논서도 비로소 뒤이은 번역을 기다리게 되었으니, 5편(篇)31)의 교(敎)도 자세히 밝아지고, 8법(法)32)의 인(因)도 상세히 드러나리라. 거위의 구슬33)을 모범 삼아 지키니, 벌레의 목숨도 다치지 않고, 뜨는 주머니[浮囊]34)를 반드시 결점이 없는 데서 취한다면, 기름 발우[油鉢]35)는 끝내 쏟아지지 않음을 기약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의 기강(紀綱)을 숭상한다면, 중생의 이목(耳目)은 열리리라.
엎드려 원하오니, 위로는 먼저 떠나신 성조(聖祖)를 도와 영원히 칠묘(七廟)의 터전이 이어지게 하시고, 아래로 이 미천한 몸에 닿아서 항상 하늘[九天]의 수명을 누리게 하소서. 가련한 생명을 장수(長壽)의 경계로 옮겨주시고, 야박한 세속을 후덕(厚德)한 원천에 이르게 하시며, 세월마다 풍년이 들어 시절마다 화기가 넘치게 하시고, 머나먼 변방(邊方)이 안정되고 가까운 도회(都會)를 정숙케 하옵소서.
돌아보니 조정의 일이 급하고 나라의 일이 많아 밤중의 여가를 타서 하늘에 가득한 덕을 기리다 보니, 허공을 헤아려 고요를 두드리는 듯, 부족하나마 머리말을 짓노라.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제1권


의정(義淨) 한역
주호찬 외 번역


비나야서(毘奈耶序)

이 세상 모든 중생 애민(哀愍)하시는
대비하신 부처님께 예배하노니
얼굴의 원만하심 뜨는 해 같고
눈빛 깨끗함은 푸르른 연꽃

부처님 조복가(調伏家)에 태어나시고
제자 대중 모두를 조복하시고
대중의 허물 조복하시어 제거하시니
법 가운데 존귀하신 분께 공경히 예를 올리노라.

부처님 말씀이신 삼장(三藏) 가운데
비내야(毘柰耶)의 가르침이 으뜸이니
내가 이 가르침
널리 펴고자 비나야장 훌륭한 뜻 찬송하노라.

나무엔 뿌리가 제일이라서
가지와 줄기가 여기에서 생겨 나오는 것과 같이
부처님 말씀 중엔 계율이 근본이라

모든 선법(善法) 능란하게 생기게 하네.

비유하면 마치 큰 제방을
어떠한 폭류라도 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계법(戒法) 또한 이와 같아서
훼방을 모두 다 막네.

모든 부처님 보리를 증득하시고
독각(獨覺)의 몸과 마음 고요해져서
아라한 되기까지는
모두 계율을 말미암아 행하여 이루어지네.

3세의 모든 현인과 성인들이
유위의 속박에서 멀리 떠날 때
모두가 계율로써 근본을 삼아
편안히 쉴 곳을 찾으셨다네.

이러한 조복의 가르침으로
인간 세상에 편안히 머무른다면
모든 여래의
바른 법장은 멸하지 않으리.

계율이 편안하게 세워진다면
여래의 바른 법 등불이리니
이것을 떠나서는 따로
편안히 쉬게 될 열반 길 없네.

부처님께서 세상을 유세하실 때
곳에 따라 경과 법 설교했으나
계율의 가르침은 이와 같지 아니했나니
그러므로 만나기 어려움 알라.

땅이 모든 중생 싣고
모든 풀과 나무 길러내듯이
계율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능히 복과 지혜 모두를 길러내네.

부처님께서 계율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공덕 생긴다 말씀하셨으니
받들어 지키면 해탈을 얻고
허물어 깨뜨리면 악취(惡趣)에 태어나네.

코끼리나 말[馬]이 만일 길들여지지 않았으면
갈고리와 채찍으로 제어하듯이
계율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조복되지 않은 중생 잘 순종시키네.

성(城)에는 해자(垓字)가 둘러 있어서
모든 원수와 적들을 막는 것처럼
계율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계율 깨뜨림을 막게 해 주네.

비유하면 큰 바다의 물이
능히 시신을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계율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능히 계율 깨뜨림을 제거할 수 있다네.
계율은 바로 법 가운데 왕이며
모든 부처님들 이끄심의 첫째가 되니
필추(苾蒭:비구)를 장사꾼에 비유하자면
이보다 값진 보배 더는 없다네.

계율을 깨뜨림은 뱀독보다 더하고
계율은 아가타(阿伽陀)1)와 같아서
망상이 무성하면 조복시키기 어려우니
율법으로 고삐와 재갈을 삼을지라.

율법이란 좋은 길을 가노라 치면
언제나 건널 다리 만들어 주고
악취(惡趣)의 바다에 빠졌을 때도
배와 뗏목 되어 준다네.

만일 험난한 인생길을 간다면
계율이 훌륭한 인도자 되며
만일 무외(無畏)의 성(城) 오르려 한다면
계율로 사다리를 삼을지라.

대사(大師:부처님)께서는 가장 존귀하신 분이신데
계율의 가르침을 친절히 말씀하셨으니
이 둘은 다르지 않으니
모두 함께 머리 숙여 귀명(歸命)해야 하리라.

부처님과 불제자가
모두 다 함께 계율의 가르침에 귀의하여서
계율에 공경하는 마음 생기니
그러므로 내가 귀명하여 예배드리네.


나는 계율에 귀의하여 찬탄하나니
이 가르침 마땅히 존중해야 하리.
첫머리에 귀의한다면
길상(吉祥)한 일 성취하리라.

비내야(毘柰耶)의 큰 바다
끝도 없고 아득하여 알 길이 없네.
차별의 모양도 끝이 없으니
내가 어찌 모두 다 알 수 있으리.

대사의 계율의 가르침 바다
깊고 깊어 알 길 없으니
내 지금 힘이 닿는 대로
약간만을 대략 찬탄하리라.

세존께서 열반하실 때
여러 대중 모두에게 알려 주기를
너희들은 내가 멸도하거든
계율을 모두 존경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거듭 찬송하면서
비내야를 설하노니
너희들 마땅히 정성된 마음으로
조복하여 가르침 잘 들으라.
별해탈(別解脫)의 경(經)2) 듣기 어려워
한량없는 구지(俱胝) 겁을 지나왔으니
독송(讀誦)하고 수지(受持)함도 이와 같아서
설한 대로 행하는 자 다시 만나기 어렵네.

제불이 출현하신 것은 즐거움이요
미묘한 정법(正法)을 연설하신 것도 즐거움이며
승가(僧伽)가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도 즐거움이요
화합하며 함께 닦고 용맹정진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성인을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며
더불어 함께 사는 것 또한 즐거움인데
어리석은 사람들 만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항상 즐거움을 받는 것[常受樂]이라 한다네.

시라(尸羅:계율)를 구족한 자 만나는 것 즐거움이며
다문을 만나는 것 또한 즐거움이며
아라한을 만나는 것은 참 즐거움이니
이는 후생(後生)의 몸을 받지 않기 때문이네.

나루터 묘한 계단 올라가는 것은 즐거움이며
법으로 항복받아 이긴 것도 즐거움이니
바른 지혜 증득하여 불과(佛果) 생길 때
아만(我慢) 다 없애니 즐거움이네.

만약 뜻을 결정할 수 있거든
6근(根)의 욕심 잘 길들여 다문(多聞) 갖추고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숲 속에 처해
고요하고 한가로운 아란야(阿蘭若)에 있는 것은 즐거움이네.

두 손 모아 합장하여 공경하면서
석가모니부처님께 예배하노니
별해탈(別解脫)과 조복(調伏)의 계율에 대해
나는 설하노니 그대들은 잘 들어라.

들은 후에는 바른 수행 하여야 하리.
대선(大仙)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따라
여러 가지 작은 죄가 되는 것까지
용맹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리.

심마(心馬)는 제어하기 어렵나니
용맹 결심 언제나 계속해 가리.
별해탈은 마치 재갈에
매우 날카로운 많은 침이 있는 것과 같네.


만약에 사람이 계율 어기면
가르침 듣고는 곧 그칠 수 있게 되리.
대사(大士)는 훌륭한 말과 같아서
마땅히 번뇌의 장애를 뛰어넘으리.

사람이 만약에 이러한 재갈 없고
지금까지 희락(喜樂)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번뇌의 장애에 빠질 것이며
생사의 고해에서 돌며 헤매리.

총괄해서 게송을 거두어 말하였다.

만약에 부정행(不淨行)을 짓고
도둑질을 하고 살생을 하며
높은 스님 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러한 자와는 함께 머물지 말라.

1. 부정행학처(不淨行學處) ①

낱낱이 게송을 거두어 말하였다.

소진나(蘇陳那)는 필추로서
산중에 있으면서 계율을 어기지 않았고
약요(弱腰)와 장근(長根) 및
묘희(妙喜) 세 사람은 모두 다 계율 어겼네.

하루 종일 방에서 자고 있어도
한가한 산림 중에서 욕심을 떠난 사람이
소진나의 전생의 인연이었으므로
앞의 게송에서 총괄해서 거둔 것임을 마땅히 알라.

이때 박가범(薄伽梵:세존)께서 처음 깨달음[覺]을 증득하신 지 12년이 되어서는 여러 성문(聲聞) 제자들이 과실(過失)이 없었으며 종기[瘡]와 포진[疱]이 생기지 않았다.
세존께서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별해탈계경(別解脫戒經)을 간략하게 설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악 짓지도 말고
일체의 선 마땅히 닦아
스스로 마음 두루 조복하라.
이것이 바로 제불(諸佛)의 가르침일세.

신업(身業)을 잘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며
구업(口業)을 잘 지키는 것도 좋은 일이며
의업(意業)을 잘 지키는 것 또한 좋은 일이나
이 세 가지 업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네.

필추는 일체를 보호하여야
여러 가지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나니
구업을 잘 지키고
의업을 또한 잘 지키며

몸으로는 모든 악을 짓지 않으니
언제나 세 종류의 업(業)을 깨끗이 하네.
이것이 곧 대선께서 행하신
도에 수순(隨順)하는 것이라네.

13년이 되었을 때에 부처님께서 율씨국(栗氏國)에 계셨는데, 갈란탁가(羯闌鐸迦) 마을에 갈란탁가의 아들로서 이름이 소진나(蘇陳那)인 사람이 있었는데, 부자로서 많은 재물과 노복이 있었다. 금ㆍ은을 비롯한 갖가지 보물과 곡식이 넘쳐나고 쌓아 둔
재물과 보화가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과 같았다. 또한 같은 부류의 종족에서 아내를 맞아들여 환락(歡樂)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에 불ㆍ법ㆍ승 삼보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깊이 생겨 삼보에 귀의하고, 5학처(學處)3)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른바 살생ㆍ도둑질[偸盜]ㆍ음행[欲邪行]ㆍ거짓말[虛誑語] 및 음주[飮諸酒] 등 나쁜 짓을 모두 멀리 버리라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신앙심이 날로 커져 곧 집을 버리고 집 아닌 곳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법복(法服)을 입고서 바른 신앙을 향하려고 출가를 했으나 여러 친속(親屬)들과 섞여 지내는 것이 마치 옛날 집에 있을 때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 구수(具壽) 소진나는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어찌 내가 훌륭한 설법을 듣기 위해 출가하였다고 하겠는가.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마땅히 친족들과 서로 떨어져 머물러야겠다. 나는 지금 마땅히 친족들을 떠나서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인간세상을 떠돌아다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곧 친속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떠나갔는데 세상이 큰 기근을 만나 걸식하기가 어려웠다.
‘부모가 자식조차 건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걸식하는 사람들이겠는가.’
또 소진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나의 친속들은 재물과 음식들이 풍부하니 저 갈란탁가 마을에 가서 승전(僧田)에 넓게 차려서 공양할 것을 권하리라. 보릿가루거나 죽이거나 상시식(常施食)이거나 청환식(請喚食)이거나 혹은 8일식(日食)ㆍ14일식ㆍ15일식이라도 여러 친속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복업(福業)을 짓도록 하는 것이 요익(饒益)한 일이 되는 것이다.’
때에 소진나가 곧 다른 지방을 떠나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점차 떠돌다가 드디어 갈란탁가 마을에 이르러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란야의 한 작은 방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때에 소진나는 친속들이 있는 곳에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불ㆍ법ㆍ승 삼보를 널리 찬양하며 대중들에게 모든 공양을 베풀어서
요익한 일을 짓도록 권하였다.
때에 소진나는 아란야에 있으면서 두다행(杜多行)을 닦았다. 단지 3의(衣)와 분소의(奮掃衣)만을 걸치고 상걸식(常乞食)과 차제걸식(次第乞食)을 하였다. 때에 친족들은 매일 매일 항상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하였다.
소진나가 옷과 발우를 갖추고 마을에 들어가 차례대로 걸식하며 그의 본가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응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나왔다. 소진나의 어머니는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그때 늙은 여자종이 있다가 소진나를 보고 그 모습을 알아차렸다. 아무 얻은 것이 없이 바삐 나가는 것을 늙은 여종이 보고는 소진나의 어머니가 있는 곳에 가서 말하였다.
“마님께서는 알지 못하십니까? 소진나께서 고향마을을 오랫동안 떠나 있더니 지금 고향에 돌아와서 걸식을 하려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바삐 돌아갔습니다.”
이때 소진나의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아들이 어찌 옛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사문에 대해 괴로운 마음을 내어 속가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겠는가. 사문(沙門)을 애착함이 없고 사문으로서 받는 괴로움과 수치스러움을 싫어하여 사문의 행을 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는 드디어 마을을 나와 소진나가 거처하는 곳으로 찾아가 말하였다.
“소진나야, 너는 옛 생각에 그리움이 있느냐? 사문에 대해 괴로운 마음을 내어 속가에 돌아오려고 하느냐? 사문을 애착함이 없고 사문으로서 받는 괴로움과 수치스러움을 싫어하여 사문의 행을 버리려느냐?
소진나야, 우리 집안의 재물과 너의 처가 집 재산에 대해 너는 또한 내 말을 잘 들어라. 나 자신이 소유한 금은보화를 쌓아둔 것도 크게 늘어나 양편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또 너의 아버지 재물에 대해 관청에서 봉인한 것도 금전으로 따져볼 때 그 수량이 백천만억이나 된다. 하물며 또 다른 모든 잡다한 재물과 보화를 합하면 얼마나 많겠느냐? 네가 집으로 돌아오면 정(情)에 따라 즐거움을 얻고 마음대로 복을 베풀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자 이때 소진나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나는 옛 생각이 그립지가 않습니다. 옛집에 돌아가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문을 애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문으로서 받는 괴로움과 수치스러움을 싫어하여 버리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이때 소진나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는 곧 자신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그를 돌려보낸 후 다른 계교가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때에 소진나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네가 월경할 시기가 돌아오면 알려주겠느냐?”
며느리가 공손히 응락하였다가 그 후 다른 때 월경일이 닥치자 말하였다.
“어머님, 제가 지금 월경일이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시어머니가 말하였다.
“월경을 끝내면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는 여러 가지 꽃과 장식을 꽂으며 몸에는 좋은 향수를 바르고 여러 가지 영락(瓔珞)을 차거라. 몸에 장신구란 장신구는 모두 갖추어 마치 소진나가 옛날 집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신부 방에서 즐기던 일이면 모두 다 하거라.”
며느리가 듣고 나서 장엄하게 꾸미는 일을 두루 끝내자 시어머니 있는 곳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어머님, 소진나가 옛날 저를 좋아했던 것처럼 이미 다 꾸몄습니다. 목욕하고 몸을 장엄하였으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의복을 입었습니다. 만약 할 일이 있다면 지금이 그때입니다.”
때에 소진나의 어머니는 드디어 신부와 함께 수레를 같이 타고 소진나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갔다. 도착하자 수레에서 내려 몇 걸음을 걸었을 때 소진나가 작은 방에 있다가 외유하려고 막 나서려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서 말하였다.
“소진나야, 네가 이른바 옛날이 그립지 않다는 것을 말하였다.……(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므로 생략함)……지금 너의 신부가 몸이 깨끗하니 마땅히 자손을 남겨서 재물들을 관청에 다 뺏기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때 소진나는 앞서 부처님으로부터 계율을 받지 않은 상태로서 애욕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 어린 신부를 보자 염착심(染着心)이 생기고, 욕정이 일어나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떻게 합궁해야겠습니까?”
어머니가 말하기를 자손을 두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소진나는 옛 부인의 손을 이끌고 곧바로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법복(法服)을 벗어 버리고 드디어 두세 번 부정한(不淨) 행을 하였다.
그때 유정(有情)으로서
지극히 뛰어난 행을 구하는 이가 해탈의 성품을 가지고 열반에 취향하여 생사와 삼계와 5취(趣)를 버려 마음에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최후의 몸으로 승묘천(勝妙天)에서부터 와서 부인의 태에 의탁하였다.
만일 지혜가 밝은 여인이라면 다섯 가지의 특별한 지혜가 있어서 다른 여자와 달랐다. 첫째 남자에게 욕심이 있음을 아는 것이고, 둘째 시절(수태 시기)을 아는 것이며, 셋째 누구한테서 임신된 줄을 아는 것이고, 넷째 태아가 남자인 것을 아는 것이며, 다섯째 태아가 여자인 것도 아는 것이다. 만약 오른쪽 옆구리에 의지해서 자라면 남자일 것이고, 왼쪽 옆구리에 의지해서 자라면 여자일 것이다.
그때 그 부인은 마음에 기쁨이 생겨서 시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님[大家]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저는 이미 임신을 했습니다. 오른쪽 갈비 아래에서 놀고 있으니 사내아이가 틀림이 없으며 종가(宗家)를 빛낼 것입니다.”
그 시어머니가 듣고 나자 크게 경사스러워하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내 지난날부터 마음으로 가문을 이을 훌륭한 아들을 바라왔으니 저 아이가 장성하여 끝내 복덕을 갚을 것을 생각해서 항상 복과 지혜를 닦아 우리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바라야 한다.”
시어머니가 이 일을 알고 나서는 곧 며느리를 높은 집에 머무르게 하고, 때에 따라 공급하게 했으며, 여자 의사로 음식을 조리하게 해서 어긋남이 없게 하고, 몸에 영락을 갖추어서 하늘의 채녀(婇女)가 환희원(歡喜園)에서 놀 때 하는 위의와 같이 했다. 항상 상좌(牀座)에 처하게 하며, 발로 땅을 밟지 못하게 하며, 눈으로 좋지 않은 색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며, 침식과 왕래에 일찍이 어기거나 거스르지 못하게 했다.
9개월이 지난 뒤에 곧 한 아들을 낳으니 얼굴 모양이 단엄하여 사람들이 사랑하고 좋아하였다. 이마는 넓고 눈썹은 길며 콧대는 높고 곧으며 이마는 둥글고 낯빛은 아름다운 금과 같으며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나서 뭇 사람들이 다 공경하고 우러러보았다. 삼칠일이 지나자 기쁘게 종친들을 모아 놓고 그 시어머니가 여러 친지들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 아이를 지금 무어라고 이름 지을까요?”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였다.
“이 아이는 종자법에 의해서 얻었으니 종자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곧 즉석에서 양모(養母) 여덟 명을 두어 둘은
함께 젖을 먹이고, 둘은 아기를 돌보며, 둘은 목욕시키고, 둘은 같이 놀게 하고 우유와 발효 우유[酪]와 치즈[酥]와 정제한 석밀(石蜜)과 다른 묘하고 단 음식을 가지고 기르게 하니, 빨리 장대해져서 마치 연꽃이 못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점점 자라 아이가 되매 기예와 산수와 글[書] 인각[印]을 배워서 취하는 것[取]과 주는 것[與]과 저당을 잡는 것[質納]에 모든 묘함을 다하였다. 이른바 상보(相寶)ㆍ상의(相衣)ㆍ상택(相宅)ㆍ상목(相木)ㆍ상상(相象)ㆍ상마(相馬)ㆍ상남(相男)ㆍ상여(相女)의 여덟 가지의 점상을 잘하였다.
그가 그 뒤에 깊은 올바르게 믿는 마음이 생겨서 삼보에 귀향해서 5학처(學處)를 받고 아버지와 같이 신심이 찰나찰나마다 증장하여 드디어 집을 버리고 집이 아닌 곳에 나가서 출리행(出離行)을 구했다. 법률(法律)을 잘 설하는 이에게 머리와 수염을 깎게 하고 법복을 입었다. 홀로 한가하고 조용한 곳에서 방일하려는 마음을 없애며, 부지런히 용맹정진에 전념하면서 깨끗하게 범행을 닦아 현법(現法) 가운데서 깨달음을 원만히 하여 무명(無明)의 씨를 타파하고 삼계의 번뇌를 끊어 아라한을 성취했다.
3명(明)ㆍ6통(通)하고 8해탈을 갖추어 여실지(如實知)를 얻고, 나의 생애를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을 이미 세우고, 할 일을 이미 마쳐서 후유(後有)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는 것이 마치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는 것과 같으며, 칼로 쪼개거나 향을 바르더라도 사랑이나 미움은 일어나지 아니하여 금을 보아도 흙 등과 다름이 없었으며, 모든 명예와 이익도 버리지 않은 것이 없어서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 등이 모두 공경하였다.
이때 구수 종자(種子)가 아라한을 증득하고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며 곧 게송을 설하였다.

성행(聖行)이 이미 원만하니
아버지의 재물에 떨어지지 않네.
나는 이 최후의 몸으로
모든 허물을 다 제거하였네.

때에 소진나가 부정행을 짓자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백천 성문(聲聞)과 필추 대중 속에서
이른바 탐(貪)ㆍ진(瞋)ㆍ치(癡)의 마음을 버리고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 하라고 설법하셨다.
그때 소진나도 또한 대중 속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이미 법을 듣고 나니 마음에 근심과 번뇌를 가지고 깊은 회한이 생겨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수그려서 묵묵히 말이 없었다. 곧 방으로 돌아가 근심을 품고 지냈다.
조금 지나서 모든 필추들이 거처를 순찰하다가 소진나가 거처하는 방에 와서 함께 담화를 하였는데, 소진나가 근심을 품고 지내는 것을 보고 이때 여러 필추들이 소진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전에는 손님이 오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웃으며 ‘잘 왔다’고 하고 손님을 위해서 옷과 발우와 여러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오늘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도 마음에 근심과 번뇌를 품고 얼굴을 수그리고 말조차 없는가? 소진나여, 그대는 몸이 아픈 것인가, 마음이 아픈 것인가?”
그때 소진나가 말하였다.
“여러 구수들이여, 나는 몸에 병이 난 것이 아니고 마음에 병이 있다.”
“무엇 때문에 마음에 병이 있는가?”
때에 소진나가 그 일을 갖추어 말하니, 모든 필추들이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기뻐하지도 혐오하지도 아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서는 부처님 두 발에 절하고 한쪽으로 앉아 이 일을 갖추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이때 모든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소진나는 유루(有漏) 중에서 먼저 비법행(非法行)과 부정행을 지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이 일 때문에 필추 대중을 모으셨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지자(知者)요 견자(見者)라서 알면 물으시고 알지 못하면 묻지 않으시며, 때이면 묻고 때가 아니면 묻지 않으시며, 도움이 되면 묻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묻지 않으시어서 제방을 무너뜨리듯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도움이 되기에 소진나에게 물었다.
“네가 참으로 이러한 단엄(端嚴)하지 않은 일을 하였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부처님께서 소진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문이 아니며 수순행(隨順行)을 하는 자도 아니다. 청정하지 않으면 위의가 없으니 출가인이 할 바가 아니니라. 소진나야, 어찌하여 너는 지금 탐ㆍ진ㆍ치를 벗어나서 심해탈과 혜해탈 하는 미묘한 법에 출가했는데도 이러한 법이 아니고 악이 될 일을 지었음을 말하게 하느냐? 어리석은 사람도 차라리 남근(男根)을 강한 독을 가진 독사의 입속에 넣어 둘지언정 여근(女根) 속에는 들이지 않느니라.”
세존께서는 갖가지 방편으로 염오(染汚)한 일을 설하여 소진나를 꾸짖으시고 모든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나는 열 가지 이익을 보았노라. 성문 제자를 위해서 비나야(毘奈耶)에서 그 학처(學處)를 제정하리라. 무엇이 열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승가를 섭수하였기 때문이며, 둘째는 승가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였기 때문이며, 셋째는 승가로 하여금 즐겁게 안주하게 하였기 때문이며, 넷째는 파계한 자를 항복시켰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부끄러워하던 자가 편안해졌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믿지 않던 자를 믿게 하였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믿는 자를 더욱 믿게 하였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현재의 유루(有漏)를 단절했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미래의 유루마저 단절했기 때문이며, 열째는 범행으로써 영원히 안주함을 얻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정법(正法)을 현양(顯揚)하여 사람과 하늘을 널리 이롭게 하노니, 내 지금 성문 제자를 위하여 비나야에서 그 학처를 제정함을 이와 같이 설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와 여러 필추들이 함께 학처를 얻고 학처를 버리지 아니하였으나 학처에 약해진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고, 둘이 서로 음욕을 행하는 부정행법(不淨行法)을 짓거나, 나아가 방생(傍生:畜生)과 함께 짓는다면, 이러한 필추들 또한 바라시가(波羅市迦)를 얻어서 함께 살 수가 없느니라.”
이때 세존께서 모든 필추들을 위하여 이 학처를 지으신 뒤에 갈란탁가못[羯闌鐸迦池] 죽림원에 계셨다.
이때 한 필추가 여기서 멀지 아니한 아란야의 작은 방에 있었는데, 그 숲 속에 있던 한 마리의 암원숭이가 음식을 탐하여 필추가 있는 곳에 가니,
필추가 항상 남은 밥을 주고 곧 함께 부정행을 행했다. 그때 대중에 필추들이 많았는데 돌아다니면서 순찰하다가 아란야에 이르러 필추가 머무는 곳에 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한쪽에 앉아 있었다. 저 암원숭이가 먼저 했던 나쁜 짓을 기억하고 그곳에 와서 필추에게 눈짓을 하면서 몸을 서로 부비고자 하였다. 필추가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이 볼까 부끄러워서 곧 쫓아버렸다. 이렇게 두세 번 반복하자, 암원숭이가 크게 성을 내며 곧 발톱으로 필추를 할퀴어 버리니, 머리와 얼굴과 옷이 모두 찢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한쪽을 향해서 슬피 부르짖으면서 펄쩍 펄쩍 뛰었다. 그때 모든 필추들이 이러한 일을 보고 나서 곧 물었다.
“구수여, 이 들[野] 원숭이가 무엇 때문에 처음에 와서 먼저 그대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와서 몸을 부비고자 하니, 그대가 보고 곧 물리치기를 이같이 두세 번 반복하니 진노해서 발톱으로 할퀴어서 몸과 옷을 다 찢고 슬피 부르짖으면서 펄쩍펄쩍 뛰는가?”
그때 그 필추가 모든 사실을 갖추어 말하니, 모든 필추들이 듣고 말하였다.
“구수여, 어찌 세존께서 모든 필추들이 부정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음을 모르는가?”
그 필추가 곧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계를 제정하신 것은 다만 사람의 행동을 제어한 것이지 방생의 행동을 금지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이때 모든 필추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혐오하지도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일어나 돌아가서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를 드린 뒤 한쪽에 앉아 곧 앞에 있었던 일을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오히려 규제했거든 하물며 방생(傍生)이겠느냐. 저 우치(愚癡)한 사람이 바라시가(波羅市迦)를 범했구나.”
이때 세존께서 이 일로 필추 대중을 모으시고 알면서 짐짓 물으셨다.
“필추여, 그대는 참으로 이러한 단엄하지 않은 일로 죄악법을 지었느냐?”
아뢰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께서는 갖가지로 꾸짖으셨다.……(자세한 것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함).
이때 세존께서 모든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먼저 것은
창제(創制)요, 지금 것은 수제(隨制)니라. 내 지금 다시 비나야 중에서 모든 필추들을 위하여 그 학처를 제정하니, 이 말과 같으니라.
만약 다시 필추와 여러 필추들이 함께 학처를 얻고 학처를 버리지 아니하였으나 학처에 약해진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고, 둘이 서로 음행하는 부정행법(不淨行法)을 짓거나, 나아가 방생과 함께 짓는다면, 이러한 필추들 또한 바라시가(波羅市迦)를 얻어서 함께 살 수가 없느니라.”
‘만약 다시 필추’라 함은 소진나 등을 말한다. 필추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명자(名字) 필추요, 둘째는 자언(自言) 필추요, 셋째는 걸구(乞求) 필추요, 넷째는 파번뇌(破煩惱) 필추요, 다섯째는 백사갈마원구(白四羯磨圓具) 필추다. 명자 필추란 것은, 사람이 자(字)나 이름을 지을 때 필추라고 짓는 것으로 혹은 세상이 모두 인정하거나 혹은 바로 필추 종족으로서 이로 인해 필추라고 부르는 것이니, 이것을 명자 필추라 한다.
무엇이 자언 필추냐 하면, 이 사람은 참 필추가 아닌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바로 필추다’라고 하는 것으로 혹은 바로 도둑이 주거하면서 스스로 필추라고 칭하는 것이니, 이것을 자언 필추라고 한다.
무엇이 걸구 필추냐 하면, 모든 속인으로서 항상 구걸해서 생명을 살아가는 사람을 걸구 필추라 한다.
무엇이 파번뇌 필추냐 하면, 이 사람은 능히 모든 유루(有漏)의 번뇌와 가지고 있는 맹렬한 병을 끊어 모든 고와 이숙(異熟)과 미래의 생로사(生老死)까지도 능히 잘 알아서 영원히 근본을 제거한 것이 마치 다라수(多羅樹)의 끝을 자른 것과 같이 불생법을 증득한 것이다. 이것을 파번뇌 필추라 한다.
무엇이 백사갈마원구 필추인가 하면, 몸에 장애나 어려움이 없고 작법이 원만하여 질책을 받지 않는 사람을 바로 갈마원구 필추라 한다. 지금 말한 이 필추의 뜻은 다섯 번째의 뜻을 취하였다.

‘다시’의 뜻은, 또한 이러한 무리가 남아 있다는 말이며, ‘여러 필추들’이란 말은, 함께 살고 있는 여러 남은 필추들을 말한다. ‘함께 학처를 얻었다’는 말은, 만약 먼저 원구(圓具:구족계)를 받고 이미 백 년을 지났지만 마땅히 배워야 할 바가 새로 받은 자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 새로 원구를 받은 자가 마땅히 배워야 할 바가 백 년 전에 원구를 받은 자와 그 일에 있어서 또한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시라학처(尸羅學處)와 지범궤의(持犯軌儀)는 다 서로 같은 것을 얻는 것이므로 ‘함께 학처를 얻는다’고 한다.
‘학처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같으니, 무엇을 ‘학처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가. 미친 사람과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 고통과 괴로움에 얽매인 사람과 농아와 어리석은 사람이 학처를 버리는 것은 모두 버렸다고 하지 않는다. 만일 홀로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홀로 고요하다는 생각을 하거나, 혹은 홀로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홀로 고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거나, 혹은 홀로 고요한 곳에 있지 않으면서 홀로 고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은 것도 학처를 버린 것이 아니다.
만약 중앙 지방의 사람이 변두리 지방의 사람을 만나서 중앙 지방의 말을 하면 버려도 버리는 것이 성립하지 않지만, 만약 이해한다면 버리는 것이 성립한다. 또 변두리 지방의 사람이 중앙 지방의 사람을 만나 변두리 지방의 말을 하고 중앙 지방의 사람이 중앙 지방의 사람을 만나 변두리 지방의 말을 하면 버려도 버리는 것이 성립하지 않지만, 이해한다면 버리는 것이 성립한다. 또한 변두리 지방의 사람이 변두리 지방의 사람을 만나 중앙 지방의 말을 하면 위에 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나 선정[定]에 든 비인(非人)이나 하늘 등이나 변화한 것이나 방생이나 여러 형상들에게 하였거나, 혹 때에 요란하게 하였거나, 혹은 본성인(本性人)과 함께 있는 것을 살피지 아니하고 하였다면 모두 버리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학처에 약해진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였다’란 말은, 4구(句)가 있으니, 학처를 버렸으나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있고,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였으나 학처를 버리지 않는 것도 있고, 학처를 버리고 학처에 약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있고, 학처를 버리지도 않고 학처에 약해진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학처를 버렸으나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가. 만일에 어떤 필추가 마음에 사모함을 품어 환속을 하고자 한다면 사문의 도(道)에 대해서는 애락(愛樂)하는 마음이 없고 사문이 되어서 받는 고통이 부끄럽고 싫어져서 여러 필추들의 처소에 가서 말하기를, “구수는 생각해 보소서. 나 아무개는 지금 학처를 버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학처를 버렸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나는 불타(佛陀)와 달마(達摩)와 승가(僧伽)를 버립니다”라고 하거나, 혹은 “나는 경[素呾羅]과 비내야(毘柰耶)와 논[摩㗧里迦]을 버립니다”라고 하거나, 혹은 “나는 화상[鄔波馱耶]과 의지사[阿遮利耶]를 버립니다”라고 하거나, 혹은 “내가 바로 속인임을 아십시오. 내가 바로 구적(求寂:사미)이며, 선차반택가(扇侘半擇迦)4)이며, 필추니를 더럽혔으며, 아버지를 죽이고[殺父], 어머니를 해치고[害母], 아라한을 죽이고[殺阿羅漢], 화합 승가를 파괴하고[破和合僧],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서 피가 나오게 하였으며, 바로 외도이며, 바로 외도로 향하는 자로서 적주(賊住)5)이며, 별주(別住)6)이며 불공주인(不供住人)7)임을 아십시오”라고 하고……말하기를 “나는 그대들과 같은 법을 지키고 같은 범행을 하는 데 있어서 동반자가 아니다”라고 하면, 이것을 학처를 버렸으나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였으나 학처를 버리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가? 어떤 필추가 마음으로 사모함을 품고 환속하고자 사문의 도에는 애착하고 즐기는 마음이 없고, 사문의 고행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여 필추의 처소에 가서 말하기를 “구수께서는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범행은 세우기 어렵고 수행처에는 거하기 어려우며, 홀로 있기도 어렵고 임야에 거하면서 나쁜 와구(臥具)를 받는 것도 어렵습니다. 나의 부모ㆍ형제ㆍ자매와 수업한 스승을 생각하여 나는 모든 공교(工巧)한 것을 배우고 농업을 경영하고자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정을 이어갈 것을 바랍니다.”
만약 필추가 이러한 갖가지 후회하는 말을 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학처를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였으나 학처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엇을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였고, 또한 학처도 버린 것이라 하는가?
만일 필추가 마음에 사모함을 품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함)……후회하는 말을 지어 말하기를, “나는 학처를 버린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과 같으므로 생략함)……“같은 범행을 하는 데 있어서 동반자가 아니다”라고 하면, 이것을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였고, 또한 학처도 버린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학처를 버리지도 않고 학처에 약해진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가? 앞에서 설한 모든 상을 제거한 것을 학처에 약해진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부정행을 짓는다는 말은 곧 음욕이란 말이며, 음욕이란 둘이 서로 음행하는 것을 말한다. 법이란 말은 이 법이 아닌 것에 근거하여 이름하기를 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업(身業)의 행이 잘못된 것을 이름하여 짓는다[作]고 한다. 나아가 방생과 함께한다고 하는 것은 미후(獼猴) 등을 말한다. 이것이란 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필추란 필추의 성(性)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무엇을 필추의 성이라 하는가. 원구를 받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원구라 하는가. 백사갈마(白四羯磨)이다. 짓는 일에 법대로 성취하여 구경(究竟)에 만족하고, 그 나아가 받는 사람도 원만한 마음으로 구족계[具戒]를 희구(希求)하여 맹세하고 받는 것을 기약하여 마음에 에한(恚恨)이 없으며, 말로 드러내어 밝히고 어업(語業)을 창현하므로 원구라 한다.
바라시가(波羅市迦)란 바로 매우 무거운 죄로 극히 염오(厭惡)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혐오해서 버려야 하고 애착하고 즐겨서는 안 된다. 만약 필추가 또한 조금만 범해도 곧 사문이 아니며, 석가의 아들[釋迦子]도 아니다. 필추의 성을 잃어버리면 열반의 성(性)도 어그러진다. 타락하고 무너져 거꾸러지며 남에게 눌려서 구제할 수가 없으니, 마치 다라수(多羅樹)의 머리를 자르면 다시는 살아날 수 없고 울창하게 자라 커 나갈 수 없는 것과 같으므로 바라시가라 한다.
함께 살지 않는다[不供住者]란, 이 범한 사람은 여러 필추와 함께 머무르거나 포쇄타(褒灑陀:布薩)를 하거나, 수의사(隨意事:自姿)를 하거나 단백(單白)ㆍ백이(白二)ㆍ백사(白四) 갈마를 할 수도 없고, 또 대중에게 일이 있어
열두 종류의 사람을 뽑는 데 있어서도 이 죄를 지은 사람은 뽑히지 않으며, 법이나 음식에서도 함께 수용되지 못하고 바로 물리쳐져야 한다. 그러므로 불응공주(不應供住)라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범한 모양과 그 일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거두어 말하였다.

세 곳으로 음행을 행하되
세 곳이 막혔거나 막히지 않았거나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지지 않았거나 살았거나 죽었거나
반택가(半擇迦)와 남자와 여자에게 음행을 행하는 것과

타인이 자는 것을 보고 음행을 행하는 것과
혹은 술과 약 등을 주어서 음행을 행하는 것과
핍박을 당하여 음행을 행하게 된 사람이 쾌락을 느꼈거나 못 느꼈거나
범하는 것과 범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필추가 그 세 곳에서 부정행을 지어서 음욕법을 행하게 되면 바라시가를 얻게 된다.
무엇을 세 곳이라고 하는가. 남근(男根)을, 대변을 보는 곳과 소변을 보는 곳과 입에 넣는 것을 말한다. 조금만 넣어도 바라시가를 얻게 된다. 만약 필추가 세 부류의 사람과 함께 부정행을 지어도 바라시가를 얻게 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여자와 남자와 반택가를 말한다. 만약 필추가 사음을 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살아 있는 여인의 세 가지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지지 않은 곳에 사음을 행하는데 막힌 것이 있는 것으로 막힌 것이 있는 것에 들이기도 하고, 막힌 것이 있는 것으로 막힌 것이 없는 것에 들이기도 하며, 막힌 것이 있는 것에 막힌 것이 없는 것에 들이기도 하며, 막힌 것이 없는 것으로 막힌 것이 없는 것에 들이기도 한다. 들이기만 하면 바라시가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살아 있는 여인의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음을 하는 데 있어 막힌 것 등은 앞에서와 같다. 들이기만 하면 솔토라저야(窣吐羅底也:偸蘭遮)를 얻는다. 만약 죽은 여인의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지지 않은 곳에 대한 막힌 것 등도 앞에서와 같아서 들이기만 하면 바라시가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죽은 여인의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의 막힌 것 등도 앞과 같이 들이기만 하면 솔토라저야를 얻는다. 여자와 같은 경우에도 만약 살았거나 죽었거나를 막론하고 죄의 가볍고 무거움은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인(非人)의 여자와 암컷의 짐승[傍生女]에 있어서도 살았거나 죽었거나를 막론하고 세 가지 허물어진 문의 훼손이 되었거나 되지 않았거나
막혔거나 막히지 않았거나 죄를 얻음의 가볍고 무거움은 앞과 같다.
만약 남자[人男]와 비인의 남자와 숫 짐승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두 개의 허물어진 문에서 훼손이 되었거나 되지 않았거나 막힌 것 등은 죄를 얻음이 앞과 같다. 만약 남자 반택가이거나 비인이나 짐승의 반택가가 살았든 죽었든 간에 두 개의 허물어진 문에서 허물어진 문에서 훼손이 되었거나 되지 않았거나 막힌 것 등의 죄를 얻음도 앞에서와 같다.
만약 필추가 잠자고 있는 필추에게 부정행을 행했는데, 잠을 잔 필추가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면 계율을 어긴 것이 아니며, 그 사음을 행한 자만 근본죄(根本罪)를 얻는다. 만약 잠을 잔 필추가 처음에는 알았으나 중간과 후반에 가서 알지 못했다면 계율을 어긴 것이 아니며, 그 사음을 행한 자만 근본죄를 얻는다. 만약 잠을 잔 필추가 처음과 중간에는 모두 알았으나 후반에 가서 알지 못했다면 계율을 어긴 것이 아니며, 그 사음을 행한 자만 근본죄를 얻는다. 만일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다 알기는 했으나 마음에서 즐거움이 생기지 않았다면 계율을 어긴 것이 아니며, 그 사음을 행한 자만 근본죄를 얻는다. 만일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다 알고 마음에 즐거움이 생겼다면 두 사람 모두 근본죄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처음에 잠자는 필추의 처소에 가서 계율을 범하는 것과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도 이미 이와 같고, 만약 필추니의 처소나 식차마나(式叉摩那)ㆍ구적(求寂:사미)ㆍ구적녀(求寂女:사미니)의 처소에 가서 행하는 죄를 얻음의 가볍고 무거움 또한 앞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필추니ㆍ식차마나ㆍ구적녀가 필추의 처소와 구적의 처소에 가는 경우에 각각 계율을 범하고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앞의 설명에 준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구적이 필추ㆍ필추니ㆍ식차마나ㆍ구적ㆍ구적녀의 처소에 갈 경우에 있어서 계율을 범하고 범하지 않음 역시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일 필추가 미주(米酒)나 화주(花酒)나 근피(根皮) 등의 술을 필추에게 주어서 숙취시킨 뒤에 부정행을 하여 술 취한 필추가 처음과 중간과 끝에 알거나 모르거나 즐거움을 느꼈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 했거나 간에
죄를 얻음의 가볍고 무거움과 계율을 범하거나 범하지 않는 것……(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다른 대중에게 술을 주어서 취하게 하는 것은 모두 앞의 수면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고, 취한 것에 대한 것도 이미 그러하다.
만약 주술(呪術)과 약으로 저 사람을 미흑되고 어지럽게 하여서 그 여러 경계에서 부정행을 행하게 하거나……(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다른 무리들이 서로 죄를 얻음의 있고 없음도 앞과 같다.
만약 필추가 다른 필추를 강제로 핍박해서 함께 부정행을 행하여 저 핍박을 받은 자가 처음 들어갈 때 마음에 즐거움을 느꼈다면 둘이 모두 멸빈(滅擯)8)이 되고, 만약 들어갈 때는 즐겁지 아니하다가 들어가고 나서 즐거웠으면 둘 모두 멸빈이 된다. 만약 들어갈 때도 즐겁지 않고 들어가서도 즐겁지 않다가 나올 때 즐거웠어도 둘 모두 멸빈이 되고, 만약 핍박을 받은 자가 세 때에 모두 즐겁지 아니하였으면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며, 다른 필추를 핍박한 자만 멸빈이 된다. 핍박한 필추와 핍박한 필추니와 다른 나머지 무리들도 이에 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필추 등이 서로 범하여 핍박해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때 실라벌성(室羅伐城)에 한 장자가 있어 동류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를 삼았다. 뜻이 맞아 서로 친해져서 즐겁게 살았는데, 오래되지 않아서 곧 아들을 낳았으나 허리와 등이 연약해서 고양이와 토끼 같았다. 삼칠일이 지나자 기쁘게 종친들을 모아 놓고 그 아버지가 아들을 가지고 여러 친척들에게 알리기를, “이 아이에게 지금 무슨 이름을 지어 줄까요?” 하니,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아이의 허리가 연약하니, 마땅히 글자를 세워 약요(弱腰)라고 이름합시다” 하였다.
이 아이가 점점 자라나서 곧 선설법률(善說法律)에 출가하기를 구했다. 이미 출가하자 살던 마을에서 걸식을 다녔는데, 위의를 거두어 지켜 여러 감각기관에 어지러움이 없이 심의(心意)를 잘 다스렸다. 처소에 돌아와서 밥을 먹고 옷과 발우를 거둔 뒤 발을 씻고 방안에 들어가서는 욕정의 염오한 마음이 일어나 곧 남근(男根)을 자기 입안에 넣고 욕락을 받고자 하였다. 뒤에 다른 때에 여러 필추들이
처소들을 돌아보다가 방에 들어가서는 저 약요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근심과 한탄이 생겨서 물었다.
“구수(具壽)여, 그대는 무슨 짓을 하느냐?”
대답하였다.
“나는 욕락을 받았습니다.”
필추가 말하였다.
“어찌 세존께서 행음법을 제정하지 않으셨겠는가?”
대답하였다.
“구수여, 부처님께서는 타인과의 행위는 막으셨어도 자기에게 하는 일은 제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혐오하지도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떠나가서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평상시와 같은 위의를 가지고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과의 일도 규제했거든 하물며 자신과의 일일까? 이 어리석은 사람은 바라시가를 범했느니라. 만약 필추가 욕심을 행하여서 즐거움을 누리려는 뜻을 품고 일어나 스스로 남근을 입안에 넣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근을 스스로 입안에 넣는 것도 근본죄를 얻게 된다.”
그때 실라벌성에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남근이 매우 길었다. 당시 사람들이 이로 인해 이름을 장근(長根)이라 하였다. 불법(佛法)에 출가하여 원구(圓具)를 받았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자기의 남근을 가지고 항문에 넣어 욕락을 취했다. 때에 다른 필추가 그의 처소에 갔다가 장근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 하는가?”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타인과의 행위를 규제하셨으니, 자기에게 하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여러 필추들이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과의 행위도 오히려 규제했거든 하물며 자신에게 한 일일까? 이 어리석은 사람은 바라시기를 범했느니라.”
부처님께서 실라벌성 급고독원(級孤獨園)에 계실 때 올서니성(嗢逝尼城)서인도에 있다.에 난타(難陀)라는 큰 상주(商主)가 있었다. 큰 부자인 데다가 재물이 많고 수용한 것 또한 풍족하여 소유한 재산이 비사문왕(毘沙門王)과 같았다. 같은 종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를 삼아 즐겁게 살았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끝내 자식이 없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여러 천사(天祠)와
여러 신들[神祇] 등 곳곳에 다니면서 구걸해 보았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니 세상의 말에 “빌면 곧 자식을 얻는다”고 한 이것은 진실로 허망한 말이다. 이 같은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마다 천 명의 아들을 얻어 전륜왕같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일을 해야만 자식을 얻을 수 있으니, 첫째는 부모가 서로 만나는 것이요, 둘째는 그 어머니의 몸이 깨끗해서 임신에 적합해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식향(食香)이 현전해야 하는 일이다.
그때 저 상주는 업연(業緣)이 합해져서 그때 한 천인이 승묘천(勝妙天)으로부터 내려와서 부인의 태(胎)에 의탁하였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에게는 다섯 가지의 특별한 지혜가 있는데……(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으므로 생략함)……임신하자 아이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놀므로 기뻐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니, 드디어 높은 누각에 데려다 놓고 수시로 공급하고 시중함이 하늘의 채녀(婇女)와 같이 하였다. 달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모든 상모가 구족하여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 대하여 여러 친척들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에게 지금 무슨 이름을 지어 줄까요?”
인도의 법에는 태어난 자식이 의용(儀容)이 단정하여 사람들이 보기를 즐기는 자라면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라고 이름하였다. 그때 저 여러 친척들이 함께 상의하였다.
“지금 이 아이가 의용이 단정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기를 즐기니, 이 상주 난타의 아들을 마땅히 손타라난타라고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여덟 명의 유모를 주어서 기르니, 곧 커가는 것이 마치 연(蓮)이 못에서 자라는 것과 같았다. 학문은 4명(明:4베다)을 두루 하였고, 기예는 8술(術)을 다 익혔다. 그의 아버지가 이때 봄ㆍ여름ㆍ겨울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세 개의 정원이 있는 세 개의 궁전을 짓고, 상ㆍ중ㆍ하라고 하는 세 명의 채녀를 두고, 장엄된 누각에 올라가 모든 기악을 연주하게 했다.
이때 난타 상주는 항상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계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때 손타라난타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계산으로 웬 고생이십니까? 잠시도 한가한 때가 없으십니다.”
난타가 말하였다.
“네가 높은 누각에 있으면서 종일토록 즐기니 어찌 가업에 힘쓸 수 있겠느냐. 내가 반드시
가업을 알아야만 한다.”
손타라난타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 곧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이 말을 한 것은 나를 경각시키고자 함이다’ 하고 꿇어앉아 청하였다.
“만일 이와 같다면 제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산업을 경영하고자 합니다.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가 말하였다.
“너는 가만 있거라. 나에게 재산이 있는데 어찌 수고스럽게 멀리 가서 찾겠느냐?”
손타라난타가 말하였다.
“아버지에게 아무리 재물이 있더라도 저는 반드시 가겠습니다.”
아버지는 곧 생각하기를 ‘내 지금 마땅히 아들이 구하는 마음을 그치게 해야 한다’ 하고, 곧 열쇠를 가지고 두루 일곱 개의 창고를 열어서 금은으로 찬 것과 차지 않은 것 등이 모두 꽉 차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손타라난타에게 말하였다.
“이미 이와 같이 재보가 풍부한 것을 알았으니, 너는 마땅히 단정하게 모든 욕락을 받고 뜻대로 가지고 베풀어서 복전을 짓고 닦도록 해라. 다른 곳에 가고자 하면 이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이 물건을 저에게 보여 주셨지만 제가 만약 자식을 두게 된다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생각하였다.
‘이런 말을 하다니 훌륭하구나. 내가 죽은 뒤에도 가업을 근심하리니, 내 지금부터 점차 그 일을 가르쳐 주리라. 시험 삼아 재물을 가지고 다른 지방에 가게 하여, 첫째는 경영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둘째는 나와 친한 이를 보여 줄 것이니, 두루 지방을 돌아보아도 마음에 미혹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의 아내에게 명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손타라난타는 가업을 걱정할 것이다.”
그리고는 지나간 일을 자세히 알려 주니, 아내가 말하였다.
“이 참 좋은 일이니 뜻대로 하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의 생각이 참으로 진실하고 또한 아름답다. 내가 죽은 뒤에도 네가 가업을 알아야 한다. 전에 말한 것은 다 권유하는 뜻에서였으니, 재물과 보화를 가지고 다른 지방을 돌아다녀라.”
그때 상주 난타가 곧 사람을 보내 요령을 흔들고 소라를 불어서 널리 성읍에 사는 사람들과 사방에서 온 상인들에게 알렸다.
“지금 상주 손타라난타가
재물을 가지고 다른 지방으로 이익을 구하고자 떠난다. 그대들 중에 만약 따라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관(關)ㆍ하(河)ㆍ진(津)ㆍ제(濟)에 직접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며, 필요한 경비는 모두 미리 마련해 줄 것이다.”
그때 5백 명의 상인이 이러한 고지를 듣고 각각 재물과 보화를 준비해서 출발할 기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 난타는 널리 빈객을 모으고 행인을 많이 불러서 대접을 하고는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십시오. 이 손타라난타는 바로 내 아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의 마음에 별다른 생각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상인들은 다른 지방에 가서 재리를 구하고자 하는데, 그것에는 세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박과 술과 색(色)입니다. 만약 손타라난타가 세 가지 미혹에 물드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금지시킬 것이며, 이익이 있는 곳에서 수행해 나가도록 권하여 주시오.
만약 제군들이 악을 차단하고 선을 권하여 능히 이 가르침을 따른다면 ‘잘하였다’고 말할 것이며,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여러분은 마땅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재물과 보화로 바꾸어서 돌아간다고 말하시오.”
그리고는 아울러 손타라난타에게 말하였다.
“너는 바로 내 아들이지만 다른 상인들과 너는 다름이 없다. 저들이 좋은 말을 하면 너는 마땅히 들어야 한다.”
아들이 곧 삼가 승낙하였다. 좋은 날을 가려서 거마에 모든 물건을 싣고 5백 인과 한 패가 되어 모두 먼 길을 찾아 실라벌성에 이르러 한 점포 안에 재화와 물건을 안치하였다.
그때 실라벌성에는 현수(賢首)라는 한 음녀가 있었다. 몸을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는데, 얼굴 모양이 매우 빼어나서 사람들이 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만약 5백 금전을 주는 이가 있으면 함께 잤다. 그때 그 음녀는 상인들이 먼 올서니성에서 왔으며, 그 상수의 이름이 난타이고, 그의 아들은 손타라난타로서 의용이 단정하여 사람들이 보는 것을 좋아하며, 5백 상인과 같이 멀리 이곳까지 와서 우리 점포에 그 재화와 물건을 안치하고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곧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저 재물을 다 빼앗지 못하면 다시는 현수라고 스스로 부르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하고, 곧 여자 하인에게 명하였다.
“어느 점포에 상주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손타라난타라고 하며, 재물이 많은 거부(巨富)이다. 너는 꽃다발과 몸에 바르는 향과 훌륭한 옷을 가지고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상주시여, 이것은 바로 어르신 현수께서 저를 시켜 보내시면서 적은 신표를 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어찌 상주께서 점포에 기거하시겠습니까? 잠시 다녀가소서’라고 하라.”
여자 하인은 곧 모든 꽃다발을 가지고 상주를 찾아가서 시키는 대로 알렸다.
그때 손타라난타는 듣고 나서 여자 하인에게 말하였다.
“너는 먼저 가거라. 나는 향만(香鬘)을 입고 뒤따라 갈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 하인은 곧 앞서 집으로 돌아와서 어르신에게 보고하였다.
“저를 먼저 가라고 했으니, 그는 꼭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현수는 여자 하인의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곧바로 집안을 청소하고 이름난 꽃들을 늘어놓으며 묘한 향기로 성대하게 침실을 꾸미고 휘장을 둘러친 뒤에 상인을 기다렸다.
이때 손타라난타는 곧 세수를 하고 목욕도 하고 새로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화영(花纓)을 갖추어서 스스로 장엄하게 장식하고 마차와 시종을 앞세우고 현수의 집에 갔다.
이때 현수가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을 보니, 용모와 위의가 보통 사람과 다르므로 여자 하인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상주인 손타라난타인가?”
여자 하인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현수가 기뻐서 곧 게송을 설하였다.

부와 가난을 가릴 것도 없고
양민인가 천민인가도 논할 것 없이
다만 아름다운 용모로
곧 여인의 마음을 어지럽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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