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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47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25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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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25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25권


의정 한역
주호찬 외 번역


5. 구십바일저가법(九十波逸底迦法)

총괄적으로 거두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일부러 하는 망어(妄語)와 종자(種子)와
뽑지 않는 것과 자주 공양 받는 것과
벌레가 있는 물과 목숨과 반행(伴行)과
방생(傍生)과 도둑과 도식(徒食)이네.

맨 처음 개별적으로 거두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거짓말과 헐뜯는 말과 이간시키는 말과
들추어내는 것과 법을 설하는 것과 함께 독송하는 것과
잘못을 말하는 것과 상인법(上人法)을 얻는 것과
친한 이를 따르는 것과 곧 멸시하고 헐뜯는 것이네.

1) 고망어학처(故妄語學處)
그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갈란탁가지(羯蘭鐸迦池)에 있는 죽림원 안에 계셨다. 그때에 구수(具壽) 나호라(羅怙羅)가 이 성의 옆에 있는 온천림(溫泉林)에 머물렀다.
그때 많은 신심 있는 바라문ㆍ거사 등은 나호라의 처소에 와서 “대덕이여, 세존께서는 요즈음에 어느 곳에 머무르고 계십니까?”라고 묻곤 하였는데, 만약 불세존께서 죽림원에 계시면 그때 나호라는 곧 그들에게 말하기를 “취봉산(鷲峰山)에 계십니다”라고 하였으며, 만약 취봉산에 계시면 그들에게 “죽림원에 계십니다”라고 말하였고, 만약 필발라굴에 계시면 그들에게 “서니가굴(西尼迦窟)에 계십니다”라고 말하였고, 만약 서니가굴에 계시면 그들에게 “필발라굴에 계십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그 여러 사람들은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하였으나 뵐 수가 없었고, 몸은 피곤하고 지쳤으며 아주 수고롭고 고생스러워져서 나호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나호라는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세존을 뵈었습니까?”
그들은 대답하였다.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나호라에게 말하였다.
“성자여, 무슨 까닭으로 일부러
저희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나는 일부러 고생스럽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 사람들은 각기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고, 그때 여러 비구들이 이 일을 가지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나서 하루의 초분(初分)에 옷과 발우를 챙기시어 왕사성으로 들어가셔서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시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셔서 공양하시고 나서 공양을 드신 후에 곧 온천림이 있는 곳에서 나호라가 머무는 곳으로 가셨다. 그때 나호라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펴고 물병과 발 씻는 그릇을 잘 마련해 두고 손과 발을 씻고 나서 나아가 세존을 맞이하여 웃옷을 받으면서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앉으소서.”
부처님께서는 곧 자리에 나아가 앉으시고는 물병을 취하여 몸소 두 발을 씻으시고 나서 발을 씻는 그릇에서 많은 물을 쏟아내시고 나머지 약간을 남겨두시고는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제가 이미 그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호라여, 만약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하고, 부끄러워함도 없고,
뉘우침도 없다면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사문의 법이 결핍되었다고 설하느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릇 속에 있는 적은 물을 모두 땅에 쏟아 붓고는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적은 양의 물이 땅에 다 버려진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제가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호라여, 만약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않는다면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사문의 법을 다 버렸다고 설하느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그릇을 기울여서 땅에 닿게 하시고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그릇이 땅에 기울어진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시이여, 제가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호라여, 만약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한다면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사문의 법이 다 옆으로 기울었다고 설하느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그릇을 땅에 엎어 놓으시고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그릇이 땅에 엎어진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제가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호라여, 만약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또한 뉘우치지도 아니한다면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 사문의 법을 기울여 엎었다고 설하느니라. 다음에 나호라여, 술에 취한 코끼리 왕이 큰 힘이 있고 어금니는 수레의 굴대와 같이 살찌고 왕성하며 용맹스러워서 훌륭하게 싸우고 전쟁터에 나아가 함께 전쟁을 할 때에는 네 다리와 두 어금니와 꼬리 및 척추와 옆구리가 다 함께 작용하지만 오직 그 코만은 말아들여서 내놓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라.
나호라여, 이 코끼리는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코를 써서 부러뜨리지 않는 것이니, 저 군대의 코끼리들은 곧 이 코끼리의 왕은 목숨을 보호하고 아끼는구나라고 생각하느니라. 나호라여, 만약 그 코끼리 왕이 함께 싸울 때에 코를 내놓고 싸운다면 이때 코끼리들은 곧 이 코끼리 왕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자기편의 군대이거나 상대편의 군대이거나 만나는 대로 죽이고 해쳐서 악한 짓을 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나호라여, 만약 다시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한다면 나는 이 사람이 악을 짓지 아니함이 없다고 설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만약 사람이 실다운 법을 어기고
일부러 헛되고 속이는 말을 하여
목숨이 다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
악한 것을 짓지 않음이 없으리니
차라리 불에 단 쇳덩어리를 삼키고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을 삼킬지언정
계율을 깨뜨린 입으로는
다른 신심 있는 이의 음식을 먹지 않으리.

그때 세존께서 다시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생각이 어떠하냐?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이 손에 거울을 잡겠느냐?”
나호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들이 거울을 잡는 것은 자기 얼굴의 선하고 악한 모양을 보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너의 신업(身業)으로 지은 바는 마땅히 때때로 스스로가 관찰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러한 신업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이 신업은 나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남까지도 해치나니, 이것이 착하지 않은 일이고 이것이 괴로운 악업이다. 능히 미래에 고통스러운 이숙(異熟:果報)을 부를 것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도 해치지 않으면 이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고 편안하고 즐거운 업이니, 능히 미래에 즐거운 이숙을 부를 것인가?’”
나호라여, 만약 네가 이렇게 살펴볼 때에 곧 바로 능히 이 신업을 완전히 알 수 있다면,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은 능히 나와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착하지 않은 일이며 이것은 괴로운 악업(惡業)이다. 능히 미래에 고통스러운 이숙을 부르리라’ 하고는 이 신업을 마땅히 그 자리에서 단속하고 거두어들여서 곧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나호라여, 만약 네가 이렇게 살폈을 때에 그 자리에서 이 신업을 완전히 알 수 있다면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은 능히 나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고 이것은 안온한 업이다. 능히 미래에 즐거운 이숙을 부르리라’ 하고는 이 신업을 마땅히 일으켜서 그 훌륭한 일을 닦아야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닌 신업(身業)을 짓는 것은 마땅히 자주 스스로 잘 살펴보아야 하리니, ‘내가 이제 바로 이러한 신업을 짓고 있으니, 이 신업은 능히 나와 남을 해쳐서 마땅히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으리라’ 하고는 곧 신업을 짓지 않아야 하고, ‘만약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즐거운 과보를 받으리니, 곧 마땅히 닦고 배워야 한다’고 해야 하느니라.”
다시 부처님께서 나호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신업을 짓는 것은 마땅히 자주자주 스스로를 잘 살펴보아야 하리니, ‘내가 일찍이 이러한 신업은 능히 나와 남을 해롭게 하여 마땅히 괴로운 과보를 받으리라’ 하고는 가지고 있는 죄업을 마땅히 부처님 앞에서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으로 지은 죄를 말씀드리거나 혹은 청정한 같은 범행자(梵行者) 앞에서 그 허물을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고 드러내어 참회하고, ‘장래에는 다시는 금계(禁戒)를 거듭해서 범하지 말 것이다’라고 하고, 만약 선업(善業)을 지어서 능히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할 수 있으면 마땅히 즐거운 과보를 받을 것이니, 마땅히 기쁜 마음을 일으켜야 할지니라. ‘밤과 낮에 그 지은 바를 기뻐하고 방일하지 말아야겠다’고 해야 하느니라.
나호라여, 신업에 있어서 하려고 하는 것, 지금 막 하고 있는 것, 이미 한 것을 세 때에 살펴보는 것과 같이 구업과 의업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지니라.
나호라여, 마땅히 알라. 과거 미래와 현재의 가지고 있는 행업(行業)이 모두가 마음에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니라. 마땅히 자주 살펴보아서 망령된 생각을 버려 버리고 항상 착한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나호라여, 만약 어떤 사문ㆍ바라문 등이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업에 있어서 현재 업을 일으킬 때에는 마땅히 잘 살펴보아서 지극히 청정하고 항상 많이 닦고 익히며 마땅하게 머물러야 하느니라. 나호라여, 현재에 3업(業)을 살펴보는 데 있어 지극히 청정하고 마땅하게 머무르게 하는 것과 같이 과거ㆍ미래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런 까닭에 너는 이제 3업 가운데에서 항상 잘 살펴보아 지극히 청정하게 하여 마땅하게 머무르며 방일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호라여, 너는 마땅히 알지니
항상 3업을 살펴보아서
여러 악한 업을 짓게 하지 말지니
이것이 여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네.

이것은 바로 성문의 업이라
네가 이제 마땅히 닦을 만하니
이 행(行)을 닦고 익힐 때에
착함을 기르고 모든 악을 쉬리니.

그때 세존께서 나호라를 위하여 법을 보여 주고 가르쳐서 알게 하고 이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고 이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그때 나호라는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드리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셨으니, 이것은 바로 연기(緣起)이지만 아직 계율로 제정하지는 않았다.

부처님께서 서다림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법수(法手) 필추는 바로 석가의 제자로 이곳에 머무르면서 언설에 능하여 다른 이론을 항복시켰는데, 그때 중인도[中國]에 한 마납박가(摩納縛迦:나이 어린 淨行者)가 배움을 구하기 위하여 남방으로 갔다.
일의 자세한 내용은 앞의 제4 바라시가(波羅市迦)의 겁비라(劫比羅) 인연에서 갖추어 말한 것과 같다. 그때 마납박가가 섬기는 스승은 남방의 바라문으로 여러 논리에 널리 통하였다. 마납박가와 여러 제자들과 함께 점차로 여러 성읍(城邑)을 지나 유행하다가 드디어 실라벌성(室羅伐城)에 이르렀다. 그때 그 실라벌성 안에는 한 바라문이 대중의 우두머리였는데 남방의 대논사(大論師)가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학도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아느냐? 바라문인 남방의 대논사가 이제 이곳에 이르러 같이 논쟁할 상대방의 논리를 구하고 있으니, 만약 그 논사가 여러 논리 가운데에 뜻을 세우고 있는 자라면 너희들은 각자 익힌 바를 따라서 함께 상대해 보아라. 만약 능히 그를 논파할 수 있으면 곧 ‘훌륭하다’고 할 것이지만 만약 논파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그를 인도하여 석가의 제자 가운데로 가서 더불어 논의하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논사가 능히 석가의 제자를 논파할 수 있으면 이는 곧 우리 바라문이 이기는 것이요, 만약 그 석가의 제자가 그를 항복시킬 수 있으면 이 또한 우리 바라문이 이기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면, 능히 팔방에 큰 명성을 떨쳐서 말하기를 ‘남방의 한 큰 바라문이 4명(明)을 잘 알고 8술(術)에 신묘하게 통하여 와서 격론하기를 구하며, 실라벌성에 왔으니, 성안의 어떤 사람이 능히 그의 주장을 꺾었다고 해도 우리들 모든 사람 또한 패배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때 그 논사는 이른 아침에 옷으로 배를 가리고 손에 횃불을 들고 실라벌성에 들어갔다. 그때 성안의 바라문들의 아들이 물었다.
“대사께서는 무슨 이유로 배를 가렸습니까?”

논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받은 학업이 나의 뱃속에 가득 차 있어서 배가 터질까 두려워서 옷으로 가린 것입니다.”
또 물었다.
“어떤 이유로 대낮에 횃불을 들고 있습니까?”
논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여러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리에 어긋난 것을 보고 이제 지혜의 횃불을 밝혀서 개명시키고자 합니다.”
논사가 곧 그의 학도들과 함께 다시 어려운 것을 물으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곳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성안의 학사(學士)들이 다 모여들어서 그에게 굴복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아뢰었다.
“대사께서는 무슨 까닭에 자붕(自朋:同品)을 욕보이십니까?”
논사가 말하였다.
“어찌 여기서 다시 타붕(他朋:異品)이 있겠소?”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논사가 말하였다.
“그는 바로 누굽니까?”
그들이 말하였다.
“바로 사문 석가의 제자입니다. 요즈음에 막 사성(四姓) 중에서 일어났으나 유독 존승(尊勝)이라 일컬어지는데, 들은 것이 많고 변설이 훌륭하여 사람들에게 두루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논사께서 가셔서 그들과 함께 논하여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논사가 물었다.
“그들은 어디에 거처하고 있습니까?”
“이 성안의 서다림 안에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누가 제일 격론에 뛰어납니까?”
“그들은 모두가 널리 알고 총명하며 사리에 밝아서 말로 변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에 법수 필추가 우연히 다른 일이 있어서 그곳에 이르렀다. 여러 사람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논사에게 말하였다.
“대사께서는 이제 또 여러 다른 사문 석가의 제자들을 만나겠지만 마땅히 이 법수 필추와 함께 논란(論難)을 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논사가 곧 필추를 똑바로 바라보고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대략 이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니 결정코 논주(論主)입니다.”
곧 그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필추여, 제가 자못 스승에게서 일찍이 조금 배웠습니다. 당신과 함께 논의의 실마리를 펼쳐보고자 합니다.”
필추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매우 좋습니다. 제가 요즈음에 마음속으로 ‘논란(論難)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적수를 만나서 팅 빈 심회를 다 할 수 있을까?’ 하였더니, 당신이 멀리에서 오셨으니 참으로 제가 원하던 바입니다. 마음대로 하여 보십시오.”

논사가 물었다.
“어느 날에 대담(對談)하도록 할까요?”
필추가 말하였다.
“내일이 좋겠습니다. 어디서 할까요?”
“아무 화훤(花園)에서 합시다.”
함께 기약을 하고 나서 떠나갔다. 그때 그 논사는 함께 기약을 하고 나서 곧 그날 밤에 양종(兩宗)을 깊이 궁구하여 밝히고, 과목을 미리 만들어서 조사하고 밝히고 살피며, 잠을 자지 아니하고 사유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때 법수 필추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이 논사를 논파한다 하더라도 또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걸식하여 배를 부르게 하는 일은 면치 못할 것이고, 만약 바라문의 무리가 나를 꺾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화관(花冠)은 모두 다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 바라문은 새벽이 되자 그 화원에 나아가 우두커니 서서 필추가 그곳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법수는 기약한 곳에 가지 아니하였다. 바라문은 오래 기다려도 오지 아니하자 드디어 성안으로 돌아갔다. 그때 법수는 기약한 때가 지났으리라 짐작하고 곧 성안에 들어가 차례로 다니면서 걸식하였다. 그 바라문이 보고는 물었다.
“필추는 무슨 까닭으로 화원에 오지 않았습니까?”
그에게 말하였다.
“어느 곳의 화원 말입니까?”
바라문이 말하였다.
“당신은 어제 저와 함께 ‘그곳에서 장차 함께 주고받자’고 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법수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밤새도록 논의의 실마리를 생각해 두었더니 필추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였다고 하는구나’ 하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필추는 두 가지에서 허물이 없다. 하나는 정식(情識)이 우매한 것이고, 둘은 말재주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이다.”
다시 필추에게 말하였다.
“내일 다시 만납시다.”
필추가 그에게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 바라문은 다음날 약속한 시간이 되어 화원으로 나아가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기다렸으나 이번에도 오지 아니하여 발돋움을 해서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면서 다시 성읍으로 돌아갔다.
그때 법수는 약속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그 바라문이 보고서는 다시 물었다.

“필추는 무슨 연고로 또다시 나오지 아니하였습니까?”
법수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어찌 풍병(風病)이 있겠습니까? 어찌 오직 논의하는 한 가지 일 이외에 다시 다른 업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매일 새벽에 스승을 받들어 모시며 아직 듣지 못한 법을 공경한 마음으로 듣고, 문도들에게는 다시 스스로 알게 하고서 다시 귀인에게 가서 맞이하여 법을 설합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필추라면 일부러 망어를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대답하였다.
“저는 참으로 그러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법수 필추는 다른 논사들과 함께 나아갈 것을 허락하였으나 일부러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여 그 논사로 하여금 자주 수고롭게 왔다 갔다 하게 하였고, 여러 외도의 무리들은 이 일을 듣고 나서 각자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사문 석가의 제자는 일부러 망어를 하였다. 다른 논자와 함께 화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 놓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여 그 논자로 하여금 헛되이 수고롭게 왔다 갔다 하게 하였다.”
여러 필추들이 듣고 나서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여러 비구들을 모아 놓으시고 법수에게 물으셨다.
“네가 참으로 이렇게 일부러 망어를 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약속을 하여 놓고 일부러 가지 아니하였느냐?”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하나이다.”
세존께서는 그때에 여러 가지로 꾸짖으셨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내가 이제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그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리라. 만약 다시 필추가 일부러 망어를 한다면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라는 것은 바로 법수를 말한다. 뜻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일부러’라는 것은 고의의 마음으로 그 일을 완전히 알았다는 말이다. ‘망어’라는 것은 아홉 가지의 망어가 있으니,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두 종류의 망어는 차별이 있어서 같지 아니하다.
무엇을 아홉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타승(他勝)ㆍ승가벌시사(僧伽伐尸沙)ㆍ바일저가(波逸底迦)ㆍ제사니(提舍尼)ㆍ돌색흘리다(突色訖里多)와 근거 없는 파계(破戒)ㆍ파견(破見)ㆍ파위의(破戚儀)ㆍ파정명(破正命)을 가지고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여덟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타승ㆍ승가벌시사ㆍ바일저가ㆍ제사니ㆍ돌색흘리다와 근거 없는 견(見)ㆍ문(聞)ㆍ의(疑)로써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파계ㆍ파견ㆍ파위의ㆍ파정명과 근거 없는 견ㆍ문ㆍ의로써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만약 필추가 망어를 하려고 하면 ‘내가 망어를 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바로 망어를 할 때에는 ‘내가 바로 망어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만일 망어를 하고 나면 ‘내가 이미 망어를 하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근거 없는 견ㆍ문ㆍ의로써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5부죄(部罪)를 가지고서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네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파계ㆍ파견ㆍ파위의ㆍ파정명으로써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세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견ㆍ문ㆍ의를 가지고 망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세 가지의 망어가 있으니, ‘내가 망어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망어를 하고 있구나’, ‘내가 이미 망어를 하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두 가지의 망어라고 하는가 하면, ‘내가 바로 망어를 하고 있구나’, ‘내가 이미 망어를 하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로 망어를 이루는 것은 없다. 다시 다섯 가지의 망어가 있으니 무엇인가 하면, 스스로 망어를 하여 바라시가를 얻는 것이 있고, 승가벌시사를 얻는 것이 있고, 솔토라저야를 얻는 것이 있고, 바일저가를 얻는 것이 있고, 돌색흘리다를 얻는 것이 있다.
무엇을 망어를 하여 바라시가를 얻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만약 필추가 실제로는 상인법(上人法)을 얻지 못하였는데도 스스로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망어로 바라시가를 얻는 것이다.
무엇이 망어를 하여 승가벌시사를 얻는 것인가 하면, 만약 필추가 저 필추는 청정하여 범하는 것이 없음을 알면서도 근거 없이 타승법(他勝法)이라 비방한다면 이 망어는 승가벌시사를 얻는 것이다.

무엇이 망어를 하여 솔토라저야를 얻는 것인가 하면, 만약 필추가 스님네 가운데에 있으면서 일부러 망어를 하여 법 아닌 것을 법이라 하고, 법을 법이 아니라 하며, 율이 아닌 것을 율이라 하고, 율을 율이 아니라 한다면 이 망어는 솔토라저야를 얻는 것이다.
무엇이 망어를 하여 돌색흘리다를 얻는 것인가 하면, 만약 필추가 보름마다 포쇄타(褒灑陀:布薩)를 행하여 계경을 외울 때에 그가 “청정합니까?”라고 묻는데, 실제로는 청정하지 않아서 스스로는 범한 적이 있음을 알면서도 감추는 마음을 내어 잠자코 있으면 이 망어는 돌색흘리다를 얻는 것이다.
앞서 말한 네 가지의 망어를 제외하고 나머지 여러 망어는 모두 바일저가를 얻는다. 바일저가란 바로 불태우고 떨어진다는 뜻이니, 죄를 범한 자가 지옥ㆍ방생ㆍ아귀의 악도(惡道) 가운데에 떨어져서 불에 태워지는 고통을 받는 것을 말한다. 또 이 죄는 만약 은근하게 설하여 제거하지 아니하면 곧 가지고 있는 선법을 장애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뜻이 있는 까닭에 바일저가라고 이름한다.
여기에서 계를 범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그러므로 게송에 거두어 말씀하셨다.

만약에 실제로 보고 듣지 않았고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생각과
및 의심하여 다르게 말하는 것
이것이 망어인 줄을 알지니라.

만약 필추가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 못하였고 깨닫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는데, 이와 같은 생각[想]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깨닫고, 내가 알았다”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때에 말이면 말마다 모두가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일찍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았었는데 그 일을 잊어버리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그 일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잊어버렸다”고 말한다면, 말하는 그 말마다 모두가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안 것인데도 뒤에 마침내 의심을 했다가 그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본 것 등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는 모두가 바일저가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했는데 보았다는 등의 생각이 있어서 그가 이러한 알음알이[解]를 지어서 뒤에 내가 실제로 보았다는 등의 말을 하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본죄(本罪)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지는 아니하였지만 듣고 깨닫고 알아 그는 이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기는 하였으나 듣는 등의 일은 없었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듣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알기는 하여 그가 이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듣기는 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듣고 알기는 하여 그가 이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닫기는 하였지만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없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듣고 깨닫기는 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하여 이와 같이 인가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알기는 하지만 보고 듣고 깨닫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기는 하였지만 잊어버리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듣기는 하였지만 잊어버리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지으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아니하였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닫기는 하였지만 잊어버리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달은 것을 잊지 않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기는 하였지만 잊어버리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잊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지으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아는 것은 잊지 않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기는 하였지만 의심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본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듣기는 하였지만 의심을 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면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들은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닫기는 하였지만 의심을 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여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달은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의심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기는 하였지만 의심을 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의심하지 않아 그가 이 생각을 하여서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의심한다”고 한다면, 하는 말마다 말을 할 때에 모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지 아니하고 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에 대해서도 듣고 깨닫고 안다는 생각을 내었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면서도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기는 하였지만 듣고 깨닫고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듣지 아니하고 듣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에 대해서도 보고 깨닫고 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면서도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듣기만 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에 대해서도 보고 듣고 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닫기는 하였지만 보고 듣고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지 못하여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보고 듣고 깨닫는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알기는 하지만 보고 듣고 깨닫지는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아서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았지만 그 일을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아서 의심하지 않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기는 하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보기는 하였지만, 듣고 깨닫고 알지는 못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지도 못하였지만 듣고 깨닫고 알기는 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듣기는 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알지는 못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듣지도 못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닫기는 하였지만 보고 듣고 알지는 못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닫지는 못하지만 보고 듣고 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기는 하였지만 보고 듣고 깨닫지는 못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알지도 못하지만 보고 듣고 깨닫기는 한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본 것을 잊지 아니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잊어버렸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본 것을 잊어버리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잊어버렸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달은 것은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달은 것은 잊어버리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아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잊어버렸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아는 것은 잊어버리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잊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본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을 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본 것을 의심하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들은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들은 것을 의심하고 보고 깨닫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달은 것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의심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달은 것을 의심하고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아는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의심하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아는 것을 의심하고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본 것은 보았다는 생각을 내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보지도 못하였지만 듣고 깨닫고 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보고 깨닫고 알지 못하는 것은 보고 깨닫고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듣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깨닫고 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고, 보고 듣고 알지도 못하는 것은 보고 듣고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내었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듣고 안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아는 것은 안다는 생각을 내고, 보고 듣고 깨닫지 못한 것은 보고 듣고 깨닫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가 이 생각을 하여 뒤에 말하기를 “나는 알지는 못하지만 보고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면, 말을 할 때에 본죄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모든 가지고 있는 말을 마음에 어긋나게 말한다면 모두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만약 마음에 어긋나지 않게 말을 한다면 모두 범하는 것이 없다. 또 계율을 범하지 않는 자는, 최초로 범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혼란하거나 고통이나 번뇌에 휩싸인 사람이다.

2) 훼자어학처(毁呰語學處)
그때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의 서다림 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육중 필추가 여러 필추들에게 헐뜯는 말을 하기를 애꾸눈ㆍ앉은뱅이ㆍ곱사등이ㆍ난쟁이ㆍ너무 긺ㆍ너무 거칢ㆍ귀머거리ㆍ
소경ㆍ벙어리ㆍ절름발이ㆍ부스럼난 다리ㆍ벗어진 팔ㆍ큰 머리ㆍ처진 입술ㆍ벌레 먹은 이빨이라고 하였다. 이때 육중 필추가 이런 헐뜯는 말을 하였는데, 당시의 여러 필추들은 듣고 나서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걱정스러워하여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독송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을 모두 그만두고 근심을 품고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욕심이 적은 필추가 그 일을 보고 나서 모두가 싫어하고 천하게 여겨 경시하고 비방하는 말을 하였다.
“어째서 필추가 필추가 있는 곳에서 헐뜯는 말을 하되 애꾸눈 등의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일로 필추들을 모으시고……육중 필추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이 실제로 헐뜯는 말을 하되 여러 필추들을 괴롭혀서 애꾸눈 등이라고 하였느냐?”
육중 필추가 대답하였다.
“실로 그리하였습니다.”
대덕 세존께서는 곧 가지가지로 꾸짖으셨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므로 생략함)……이것은 사문이 마땅히 할 일이 아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면, 너희들은 마땅히 들으라.
옛날 어느 때에 마을에 어느 한 장자가 아내를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기뻐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았는데 곧 한 딸을 낳아 점점 장성하게 되었다. 장자가 혼자서 몸소 밭을 갈았다. 그때 거사의 아들이 부모를 모두 잃고 들에서 땔나무를 팔아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거사의 아들이 땔나무를 지고 밭으로 가는 곳에 이르러 밭머리에 있는 나무 아래에 나뭇짐을 내려놓고 쉬다가 그 장자가 몸소 밭갈이를 하는 것을 보고 나아가 물었다.
‘어른께서는 어찌하여 연세가 높으신 데도 몸소 일을 하시어 고생하십니까? 마땅히 마을에 계셔야 할 텐데 도리어 밭두둑에 계시는군요.’
대답하였다.
‘어서 오시오, 젊은이여. 나에게는 형제가 없고 게다가 자식도 없어서 내가 몸소 밭을 갈지 아니하면 의식을 정녕 구제할 수 없소.’
그가 곧 말하였다.
‘어른이시여, 제가 우선 대신 갈아 드릴 테니 당신께서는 잠시 쉬시도록 하십시오.’
곧 쟁기를 잡고 그를 대신하여 밭을 갈았다. 드디어 정오가 되자
집에서 먹을 것을 가져오니 불러서 말하였다.
‘젊은이여, 와서 함께 먹도록 하오.’
또한 밥을 다 먹고 나서 젊은이가 말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르신의 댁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저녁때가 되거든 마을 밖에 나오셔서 길 끝에서 만나도록 하면 되겠습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거사의 아들은 밭을 갈다가 저녁때가 되자 소를 풀밭에 풀어 풀을 먹이고 자신은 꼴짐과 나뭇짐을 지고 소를 몰고 돌아와 마을 어귀에 이르렀다. 장자가 마중을 나와 마침내 함께 장자의 집에 이르렀는데, 그때 거사의 아들은 헛간을 소제하고 마른 흙을 뿌려 불을 지피고 소에게 풀을 주었다. 장자가 보고 나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 젊은이로 인하여 이제 안락함을 누리니, 나의 어린 딸을 마땅히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함께 밥을 먹게 하고 난 뒤에 말하였다.
‘젊은이여, 마땅히 이곳에 살면서 가업에 힘쓰도록 하오. 이 어린 딸아이를 그대에게 줄 테니 아내로 삼도록 하시오.’
“아주 좋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곧 처분대로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때 그 장자의 집에는 두 마리 소가 있어서 매일같이 부리고 있었는데, 큰 소는 성질이 착하게 길들여졌는데, 작은 소는 타고난 성질이 먹는 데 탐욕스러워서 비록 거듭해서 잡아매어도 포악스러워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린아이가 성이 나서 멀리서 돌을 던져서 그 뿔 하나를 부러뜨렸기 때문에 이름 붙이기를 독각(禿角:뿔 없는 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뒤의 다른 날에도 여전히 밭의 곡식을 먹는 것이 전과 같아서 그치지 않자 곧 낫으로 그 꼬리를 잘라 버렸는데, 그것 때문에 이름 붙이기를 독미독각(禿尾禿角:뿔도 없고 꼬리도 없는 놈)이라고 하였다.
뒤의 다른 때에 거사의 아들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어르신네께서는 먼젓번에 허락하신 혼인을 치르게 하여 주십시오.’
그때 장자는 ‘좋다’고 하고는 곧 아내에게 말하였다.
‘부인, 의복과 영락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딸아이를 머지않아 결혼을 시켜야겠소.’
아내가 곧 물었다.
‘아직 남에게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혼수를 마련하겠어요?’
장자가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미 남에게 주었소.’

아내가 말하였다.
‘그가 누굽니까?’
‘그는 거사의 아들이오.’
‘이 사람의 종족은 본래 알지 못하여서 마치 백호초(白胡椒)와 같이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은데 어떻게 우리 딸과 혼인을 시킬 수가 있겠어요? 무릇 혼인이라는 것은 친척들이 다 같이 와서 음식을 먹고 뒤이어 이름을 부르며 씨족들이 이에 응하여 우리 쪽에 딸을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자가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부인, 이 거사의 아들은 스스로 우리 집에 와서 그가 나를 대신하여 수고를 한 까닭에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가 만약 없다면 다시 고생을 해야 하고 몸소 밭가는 것을 면할 수 없을 것이오.’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는 참으로 사랑하는 딸을 떠도는 작인(作人)에게 줄 수는 없어요.’
세간 사람들은 아내의 말을 많이 하였다.
그때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거사의 아들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하면 작인(作人)은 오늘로 당장 나를 버리고 떠나갈 것이고, 나는 다시 내가 밭가는 쟁기를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제 마땅히 거짓으로 방편을 써서 곧바로 떠나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때 그 작인은 다른 때에 다시 장자에게 말하였다.
‘가장께서 마땅히 혼인하는 일을 치러 주십시오.’
장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젊은이여, 나의 친족들은 그 수가 아주 많아서 다 모일 때에는 많은 음식이 필요하니, 가을에 곡식이 익어서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다시 말하였다.
‘혼인을 시켜 주십시오.’
장자는 말하였다.
‘젊은이여, 일을 하는 데는 사탕이 필요하니 사탕수수 수확을 마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다시 혼인을 시켜 달라고 하자 말하였다.
‘젊은이여, 보릿가루가 바로 밑천이 되니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이미 보리를 거두고 나서 다시 혼인을 시켜 달라고 하자 말하였다.
‘젊은이여, 묵은 벼가 다 되었으니 새 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그때 거사의 아들은 일이 자꾸 늦춰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밭곡식은 한꺼번에 일시에 이루어지는 일이 없는데 이 일의 까닭을 보건대 곧 나를 속이려는 것이구나. 나는 이제 여러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주지 않는다면 관청을 거쳐서 결정해야겠다.’
그리고는 곧 여러 사람들에게 알렸다.
‘어르신네가 혼인을 시켜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듣고 나서 장자에게 알리고 말하였다.
‘허락한다는 말을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찌하여 혼인을 시키지 않습니까?’
그때 장자는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여러분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우리집에 와 있는 객(客) 작인(作人)입니다. 내가 어떻게 내 딸을 주어 혼인을 시키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들 하였다. 그때 거사의 아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돈도 얻지 못하고 게다가 딸도 얻지 못하였다. 헛되이 세월만 머뭇거리게 하고 공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제 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야겠다.’
곧 두 마리의 소를 데리고 가서 한나절 동안 부리는데 매질을 많이 하고 마른 나무에 매어서 뜨거운 볕을 쬐게 하고, 막 돌아가자는 말을 하려고 하였다. 겁초(劫初)에 가까운 때에는 가축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었다. 그 소들은 이미 고초를 당하고 나서 큰 소가 거사의 아들에게 말하였다.
‘쯧쯧 남자여, 당신은 전에는 나에게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은혜가 부모와 같고 나의 수고로움을 알았는데, 어찌하여 이제는 매질을 많이 하고 마른 나무에 매어 놓고 뜨거운 햇볕을 쬐게 하며 나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갑니까? 내가 당신의 처소에서 무슨 잘못은 저질렀습니까?’
남자가 말하였다.
‘너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너와 관계가 있는 주인이 나에게 잘못이 있다.’
소가 말하였다.
‘그는 어떤 잘못이 있습니까?’
남자가 말하였다.
‘먼저는 나에게 딸을 주기로 하여 놓고 이제는 약속을 어기고 있다.’
소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관청을 거치지 않습니까?’
남자가 말하였다.
‘증인이 없기 때문이다.’
소가 곧 말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증인이 되겠습니다.’
남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말을 해서 할 것인가, 소의 울음소리를 내어서 할 것인가?’
소가 말하였다.
‘사람의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모양을 나타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터이니, 당신은 마땅히 맹세를 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보이겠다고 하십시오. 당신은 우리를 끌어다가 증명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되, 우리 두 마리 소를 끌어다가 헛간 안에 매어 두고 물과 폴을 주지 마십시오. 만 7일이 되면 땅속에 물과 풀이 많은 곳에다가 우리를 풀어 놓아 나아가게 하십시오. 곁의 사람들이 와서 우리가 입을 다물고 물과
풀을 먹지 않는 것을 믿음의 증험으로 보게 하시면 우리는 모양을 나타내서 왕과 대신들로 하여금 당신의 말이 사실인 것을 믿게 하면 우리는 마땅히 물과 풀을 먹겠습니다.’
그때 남자는 이 계책을 듣고 나서 곧 모두 알아듣고 무성한 풀밭에 소를 놓아두고 왕의 처소에 스스로 나아가 공경함을 다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아무 동네의 장자가 딸과 혼인시키기로 하고 여러 해 동안 저를 부려 먹었는데, 이제 그 약속을 뒤집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왕이 장자를 불러서 그 진실 여부를 물었더니, 장자가 아뢰었다.
‘저는 정말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남자에게 물었다.
‘너는 증거가 있느냐?’
‘있습니다.’
‘사람이냐, 사람이 아니냐?’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이냐?’
‘소입니다.’
‘사람의 말을 하는가, 다른 말을 하는가?’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증거가 성립될 수 있겠느냐?’
왕에게 아뢰었다.
‘그 소는 참으로 믿음성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소를 7일 동안 헛간 안에 매어 두고 물과 풀을 주지 않다가 만 7일이 지나서 땅속에 물과 풀이 많은 곳에 소를 놓아 나가게 하십시오. 제가 소들을 끌어다가 증명을 하면 반드시 기이한 모양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믿지 않으시면 소는 끝내 먹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 헛된 일이라면 저는 죽을죄를 짓는 것입니다.’
왕이 신하에게 명하였다.
‘마땅히 이 말대로 그 증험을 보도록 하라.’
대신이 명을 받들어 곧 두 마리의 소를 데려다가 헛간 안에 매어 두고 물과 풀을 주지 않았다. 그때 독미독각(禿尾禿角)이 큰 소에게 말하였다.
‘어찌 거꾸로 된 일을 기약해서 유독 우리만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는데도 굳게 닫힌 헛간 안에 갇혀서 물과 풀을 먹지 못합니까?’
큰 소가 말하였다.
‘내가 거사의 아들에게 ≺7일 동안에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머무르며……왕이 믿지 않거든 물과 풀을 먹지 않겠다≻고 보증을 하였으니, 어찌 내가 기약한 것이 아니겠는가?’
독미독각이 큰 소에게 말하였다.
‘만약 나를 풀어준다면 큰 돌이라도 오히려 먹을 것인데 하물며 물과 풀이겠습니까?’
큰 소가 말하였다.
‘이 거사의 아들은 우리들을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부모와 마찬가지로 섬겼는데, 어찌
신의를 저버리고 그 사람을 잘못되게 하겠느냐?’
독미독각이 말하였다.
‘비록 참으로 우리를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은혜가 어버이와 같기는 하지만 언제나 나를 독미독각이라고 불러서 그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곧 뿔로 그의 배를 찔러서 터뜨리고 싶었습니다.’
큰 소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 거사의 아들이 그때 다시 와서 보고는 그 소에게 물었다.
‘편안한가?’
큰 소가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편안하지만 당신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거사의 아들이 말하였다.
‘어째서 그러한가?’
큰 소가 말하였다
‘이 독미독각이 말하기를 ≺나를 풀어주면 큰 돌이라도 오히려 먹을 텐데 하물며 물과 풀이겠습니까?≻라고 하는군요.’
거사의 아들이 말하였다.
‘만약 그러하다면 나는 오늘 밤에 급히 도망해야 한다. 왕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니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큰 소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도망가지 않아도 됩니다. 마땅히 독미독각에게 코뚜레와 잡아매는 끈을 주어 그 고삐를 내 뿔에다가 매어 두십시오. 우리를 풀어 놓는 날에 만일 독미독각이 신의를 저버리고 물과 풀을 먹으려고 하면 내가 두 뿔로 코뚜레를 위로 들어 올릴 테니, 당신이 곧 말하기를 ≺지금 이 두 소가 다섯 번째 호세(護世:태양)에게 고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다섯 가지의 옹호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니,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일(日)을 말한다.
그때 거사의 아들이 마침내 독미독각에게 코뚜레를 하여 주니, 독미독각이 큰 소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걸 보십시오. 나를 고통스럽게 학대합니다.’
큰 소가 말하였다.
‘영락(瓔珞)을 걸었거늘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가?’
곧 고삐를 큰 소의 머리에 걸어서 매어두고 7일이 지나고 나자 왕과 여러 신하들이 친히 함께 와서 보고 물과 풀이 많은 밭에 두 소를 풀어 주었다. 독미독각은 물과 풀을 보자마자 곧 먹으려고 하였다. 이때 큰 소가 드디어 두 뿔로 작은 소의 코를 들어서 해를 향하여 바라보았다.
왕이 신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두 소가 해를 향하여 바라보는가?’
그때 어떤 지혜로운 신하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제 두 마리의 소가 마음으로
임금님께 아뢰기를 ≺이와 같은 일은 올바르지 아니하여 우리 두 마리의 소로 증거를 삼으십시오≻라고 하고, 또한 저 다섯 번째 호세에게 말하기를 ≺맑고 밝은 하늘이여, 저희를 도와서 증명하여 알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 이 일을 보고 아주 희유하다는 생각을 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축생이 지각이 없으나 오히려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할 수 있으니, 일이 이미 거짓이 아니다. 마땅히 그의 딸과 함께 혼인을 하도록 하라.’
곧 두 마리의 소를 풀어주고 물과 풀을 먹였다. 그때 거사의 아들은 이기고 나서 딸과 장가를 들어서 아내로 삼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방생취(傍生趣)에 있어서도 헐뜯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해칠 마음을 품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느냐? 이런 까닭에 필추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헐뜯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것은 바로 연기(緣起)이고 아직 계를 제정하지는 않았는데,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헐뜯는 말을 할 때에는 현재의 세상에서 하는 사업을 성취할 수 없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들으라.
옛날 한 마을에 어떤 장자가 살았는데 수레를 끄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 그에게 두 마리의 암소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이름이 환희(歡喜)였고, 다른 한 마리는 이름이 미미(美味)였다. 봄날에 각각 새끼를 하나씩 낳았는데 털의 색깔이 얼룩얼룩하였다. 점점 자라서 크게 되자 환회의 새끼는 그 뿔이 넓고 길었고, 미미의 새끼는 머리에 털도 없고 뿔도 없었다. 그때 장자는 이름을 불이기를, 한 마리는 환회장각(歡喜長角)이라 이름 짓고, 다른 한 마리는 미미독두(美味禿頭)라고 불렀는데, 그것들이 장성해져서는 두 마리가 모두 힘이 세었다. 뒤의 다른 때에 여러 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각자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연못이 있는 곳에 함께 모였는데, ‘누구의 소가 가장 훌륭한가?’ 하는 말을 하였다. 각자는 자기 소가 낫다고들 하자, 장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소가 가장 훌륭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어떻게 당신의 소가 가장 훌륭한지를 안단 말입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무거운 수레를 끌게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맹세하기를 금전(金錢) 5백을 걸겠다고들 하였다. 이렇게 약속하고는
곧 자기의 소를 데리고 가서 가파른 고갯길에서 무거운 수레를 끌었다.
그때 그 장자는 곧 소를 불러 말하였다.
‘환회장각아, 빨리 끌어라. 미미독두야, 너도 급히 당겨라.’
그때 머리 벗겨진 소는 자기를 헐뜯는 말을 듣고 곧 다리를 버티고 서서 수레를 끌려고 하지 않았다. 장자는 크게 노하여 곧 거친 작대기를 가지고 소를 때렸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어찌하여 이 소를 죽이려고 합니까? 이미 그것이 따르지 않았으니 내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장자는 곧 5백의 금전을 내고 매우 크게 노하여 그 두 소에게 많은 매를 때리고 마른 나무에 매어 두었다. 가축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때 두 마리의 소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먼저 우리를 길러서 모시기를 부모와 같이 하더니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에 마침내 이렇게 독하게 때렸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너희들로 말미암아 내가 5백 금전을 물어내었다.’
환희장각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의 입으로 지은 허물 때문에 스스로 금전을 벌금으로 낸 것입니다. 우리들이야 무슨 잘못을 하였습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나의 입이 어떤 잘못을 하였는가?’
소가 곧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헐뜯고 욕하여 좋은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대머리[禿頭]라고 불렀습니까? 만약 좋은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헐뜯어 말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언덕길에서 두 배로 무거운 수레를 끌겠으니, 모두가 함께 금전 1천 냥을 걸기로 약속을 하십시오.’
장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제 다시 나에게 두 배로 벌금을 물릴 셈이냐?’
소가 말하였다.
‘우리를 헐뜯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힘을 다하겠습니다.’
뒷날 다른 때에 모두가 소에게 물을 먹일 때에 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장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소가 가장 훌륭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은 이제 다시 두 배의 벌금을 물으려 합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설사 내가 다시 벌금을 준다 한들 당신들이야 무슨 손해될 것이 있겠소? 마땅히 가파른 언덕에서 무겁게 두 배로 싣고 금전 천 냥을 걸고 분명하게 약속을 하겠습니다.’
곧 말대로 약속하고 소에게
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게 하여 곧 소를 부르며 말하였다.
‘환희야, 수레를 급히 끌어라. 미미야, 수레를 빨리 당겨라.’
두 소가 듣자 곧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힘을 다하여 수레를 끌고서 평지에 이르렀다. 그가 내기에 이기자 곧 금전 1천 냥을 얻었다.
그때 어떤 천신(天神)이 허공에서 게송을 말하였다.

비록 지극히 무거운 짐을 싣고
언덕 길 아래에 있으나
두 소가 마음으로 만일 기뻐한다면
이 수레를 끌어낼 수 있네.

듣기 좋은 말을 하면
두 마리의 소는 듣고 기뻐하고
수레를 끌고 나오기 어렵지 아니하니
주인은 천금의 상을 얻었네.

이런 까닭에 언제나 사랑스런 말을 하여
귀에 거슬리는 말을 말지니
사랑스런 말을 할 때에는
죄도 없고 언제나 안락하리.”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방생(傍生)의 무리들도 헐뜯는 말을 들을 때에는 오히려 주인을 위하여 이익이 없는 일을 하나니,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이겠느냐? 이런 까닭에 필추는 마땅히 남에게 헐뜯는 말을 하지 말지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로 여러 필추들을 꾸짖으셨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므로 생략함)……내가 이제 여러 제자들을 위하여 그 학처를 제정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헐뜯는 말을 하게 되면 바일저가니라.”
‘필추’란 뜻은 앞에서와 같다. ‘헐뜯는 말’이란, 이를테면 다른 사람에게 헐뜯음과 욕된 일을 당하는 것이니, 말을 하여 드러나 나타내어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때에는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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