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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67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45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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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45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45권


의정 한역


82) 입왕궁문학처 ②
그때 박가범께서는 실라벌성의 서다림에 있는 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성 안에는 세 명의 장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이름을 선여(善與)라고 하였고, 두 번째 사람은 선합(善合)이라고 하였으며, 세 번째 사람은 이름을 계승(戒勝)이라고 하였다. 이 세 장자는 각자 갖춘 특별한 덕으로 인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훌륭하게 널리 베풀 줄 아는 이를 일러서 선합 장자라고 하였으며, 뭇사람들이 믿고 복종하는 이를 일러서 계승 장자라고 하였으며, 훌륭하게 참고 용서할 줄 아는 이를 일러서 승광왕(勝光王)이라고 하였으며, 삿된 욕심을 여읜 이를 가라태자(哥羅太子)라고 하였다.
교살라국에서는 8월 보름이 지나자 많은 도적들이 들끓었는데 그 이름을 추적(秋賊)이라 하였다. 그 도적의 무리들이 서로 모여서 의논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이 시절에 적게 힘을 들이고 많은 재물을 얻어서 1년 내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말했다.
“지금 이 성 안의 선합 장자는 재물이 많고 보배가 풍족하니, 우리들은 그 장자의 처소로 가서 이렇게 속이는 말을 합시다.
‘우리들이 전에 1억의 금전을 맡겼는데 이제 필요하게 되었으니 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헛된 말이라 한다면, 우리가 함께 계승 장자를 데리고 와서 증인을 삼겠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얻어서 1년 동안 풍족하게 쓰는 것이 좋겠다.”
한 사람이 말했다.
“계승 장자가 어떻게 우리들을 위하여 증인이 되어주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의논했다.
“우리들이 억지로 힘을 써서 증인이 되게 압력을 가하자.”
“어떻게 압력을 가하려는가?”

“계승 장자는 성품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대변을 볼 때는 반드시 멀리 마을 밖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네. 우리는 그가 대변을 보러갈 때를 엿보았다가 날카로운 칼을 잡고 말하되 ‘장자여, 만약 우리에게 증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어기면 당신의 머리를 베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이 듣고서 다 같이 말했다.
“좋은 계획이다. 이 방편으로 증인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각자 칼을 가지고 계승 장자가 대변을 보는 곳으로 가서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앉았다. 장자는 대변을 볼 때가 되자 대변을 보는 곳으로 갔다가 풀숲에 있던 도적들에게 붙잡혔다.
도둑들이 말했다.
“장자여,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
“나는 정말로 당신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소.”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시오.’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겠소.”
도적들이 말했다.
“우리의 말을 따른다면 살겠지만, 만약 어긴다면 칼이 멀지 않다.”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우리에게 증인이 되어 주시오.”
“무슨 일인데 증인이 필요하오?”
도적이 말했다.
“선합 장자에게 우리가 전에 금전 1억을 맡겼다가 지금 되찾으려고 하는데, 그가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르니 증인이 있어야겠소.”
장자가 말했다.
“정말로 돈을 맡겼습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도적이 말했다.
“거짓말이오.”
장자는 듣고 나서 생각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잘못된 증언은 하지 못하겠다. 어찌 한 생(生)의 괴로움을 피해서 무량겁(無量劫) 동안 나쁜 과보를 받으랴?’
이렇게 생각하고 여러 도둑들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차라리 법을 지켜 죽기를 바랄지언정
법을 등지는 일을 하여 살기를 구할 수는 없네.
법을 지키는 일은 결정코 하늘에 오르는 즐거움을 얻겠지만
법을 등지는 일은 마땅히 지옥 속에 태어나는 것을.


장자는 게송을 마치고 나서 도둑들을 위하여 법요를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전생에 지은 악업의 인연으로 남을 속이는 일을 하였던 까닭에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한 것이오. 지금 다시 착하지 못한 일을 한다면 목숨이 죽어서는 마땅히 어디에 태어나겠습니까? 삼악취(三惡趣)를 제외하고는 아무데서도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전하고 타이르니, 여러 도적들은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모두 장자의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장자여, 저희들이 우매하고 어리석어서 선과 악을 잘 알지 못해 법답지 못한 일로 속이려고 하였나이다. 이미 가르침을 받아서 마음 깊이 경사스러워하고 기뻐하오니, 저희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장자가 말했다.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어기지 말고 선취(善趣)로 나아갈 인(因)을 지어야 합니다.”
도적들은 삼귀의와 오계를 받고 목숨이 다하도록 불살생(不殺生) 등의 계율을 지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기뻐하고 받들면서 하직하고 물러갔다.
다음으로 승광왕(勝光王)에게 한 명의 아우가 있었는데 이름을 가라(哥羅)라 하였다. 용모가 단정해서 뭇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포살일이 되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금계(禁戒)를 청하여 받았다. 계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나서는 어느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이때 마녀(魔女)가 자태를 단장하고 그곳에 와서 말했다.
“왕자께서는 이제 소년이 되셨으니 마땅히 욕락(欲樂)을 누리셔야 합니다. 늙고 쇠약해진 후라야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왕자가 듣고는 마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리석은 마음으로 외물(外物)에 미혹되어 있습니다. 나는 청정한 계율을 지켜서 삿된 길은 익히지 않습니다.”
마녀는 왕자의 뜻이 굳세고 지극히 정성을 다하자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형상을 감추고 떠났다.
그때 선여 장자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한 쪽에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승광왕 역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공경히 예배를 드린 후에 서다림의 문에 이르러서 신하에게 명하였다.
“네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아라.”
심부름하는 사람은 곧 선여 장자가 부처님 곁에서 설법을 듣는 것을 보았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한 왕은 문 밖으로 나와서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네가 만약 그 장자가 나오는 것을 보거든 그에게 ‘대왕께서 ≺장자는 빨리 우리나라에서 떠나라≻라고 명하셨습니다’라고 알려라.”
여러 천(天)들이 장자의 처소에서 공경하고 존중히 여기는 마음은 내었는데, 이 말을 듣자 각각 성내는 마음을 품고서 왕이 있는 주변에 독이 있는 벌을 풀어 놓았다.
왕은 벌에 쏘이자 급히 궁 안으로 들어갔으나 벌도 놓치지 않고 궁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왕은 벌에 쏘이고도 달리 계책이 없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와서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문득 벌에 쏘였으니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를 구제해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왕께서 선여 장자에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를 나라 밖으로 내쫓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여러 천(天)들이 노하여 이 독한 벌들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제가 이 허물을 저질렀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그에게 가서 사죄하여야 합니다.”
“제가 사죄할 때에 그의 발에 예배드려야 되나이까?”
“예를 올려야 할 것은 없습니다. 마땅히 그의 앞으로 가서 손을 잡고 말하되, ‘장자여, 내가 거친 말을 하였으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시면 됩니다.”
승광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장자의 처소로 가서 참회하였다. 장자가 그 모습을 보고 용서하자, 그때 벌들도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광경을 본 여러 사람들은 각자 희유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숭광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왕의 자리에 있으므로 저 일반 백성에게 참회하는 것이 어찌 희유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비천한 사람에게 참회하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선여 장자가 듣고는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가난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있는 대로 항상 베풀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희유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가난하지만 능히 베풀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희유한 일이니라.”
계승 장자와 가라 왕자도 또한 부처님 곁에 있었는데, 계승 장자는 도적에게 잡혔던 일을 갖추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죽을 인연이 되어서도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어찌 희유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죽을 지경이 되어서도 마음을 바르고 곧게 가졌으니, 이 또한 희유한 일이니라.”
가라 왕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녀가 요염한 차림으로 미혹시키고 어지럽게 하려고 왔는데, 제가 계행을 지켜서 법답지 않은 일을 저지르지 아니하였으니, 이 어찌 희유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사람이 부유하고 신분이 귀하면서도 능히 금계(禁戒)를 받아서 여러 세간에서 삿된 욕심을 멀리 여월 수 있으면, 이것 또한 희유한 일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인연으로 게송을 설하셨다.

만약 사람이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비천한 사람에게 참회를 구하는 것과
혹은 적은 재산을 가지고도
있는 대로 능히 베풀 수 있는 것,

설사 죽을 지경을 만났더라도
속일 마음을 내지 않은 것과
부유하고 존귀하면서도 삿된 마음을 바로잡는 것,
이 네 가지는 모두 희유한 일이라네.

그때 가난한 선여 장자와 계승 장자와 가리 왕자가 친히 부처님을 마주 대하고 각각 깊은 뜻을 여쭈자 세존께서는 이치에 맞게 일에 따라 대답해주었다. 그때 승광대왕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들이 여쭙는 것을 보았으나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우러러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우울하여 편치 못하였다.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물러나와 곧 궁 안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우울하고 편치 못해 손에 턱을 괴고 있는데, 승만 부인이 왕의 우울한 기색을 보고 물었다.
“대왕께서는 어느 곳을 다녀오셨기에 안색이 우울해 보이십니까?”
왕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부인이 말했다.
“왕께서 들으신 것이 적고 불법(佛法)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나랏일을 보면서 틈틈이
불경을 읽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자주 읽을 수가 없고, 또한 나라의 사무가 번잡하여 불경을 볼 틈이 없소. 만약 당신 승만과 행우 부인(行雨夫人)이 불경을 읽는다면 내가 밤중에 글의 뜻을 청해 듣겠소.”
부인이 말했다.
“좋습니다.”
승만 부인은 곧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교살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자 오타이께서도 역시 교살라국에서 태어나셨으니, 저는 마땅히 그 분에게 가서 경을 배우겠습니다.”
행우 부인도 또한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마갈타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자 사리자께서도 마찬가지로 마갈타국에서 태어나셨으니, 저는 마땅히 그 분에게로 가서 독송을 하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각자 좋을 대로 하시오.”
승광왕은 사리자의 처소로 가서 공경하는 일을 하고 나서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행우 부인이 존자의 처소에서 경법(經法)을 받고자 하오니, 원하옵건대 자비심을 베푸시어 가르쳐 주시기 바라나이다.”
사리자가 말했다.
“제가 지금 세존께 가서 아뢰어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왕께서 행우 부인에게 불경법(佛經法)을 가르치기 위하여 저를 청하고자 하나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가르치도록 하여라.”
사리자가 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알렸다.
“세존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제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승광왕은 이미 허락을 받고 나서 다시 오타이의 처소로 가서 아뢰었다.
“성자여, 승만 부인이 존자께 와서 불경(佛經)을 배우고자 합니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생략) ….
“세존께서 제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왕은 허락을 얻고 나자 곧 궁 안으로 들어와서 두 부인에게 말했다.
“두 대덕께서 가르치실 것을 허락하셨소.”
두 대덕은 매일같이 궁 안으로 들어와서 두 부인에게 불법을 읽는 것을 가르쳤다. 훗날 나라의 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승광왕은 군대를 보내 정벌하려 했으나 패배하고
돌아왔다.
이와 같이 하기를 여섯 번 내지 일곱 번을 되풀이 했으나, 모두 그들에게 패하여 쫓겨서 돌아왔다.
왕은 패배하였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변방에 반란이 일어났는데 군대가 정벌하러 갔다가 그들에게 항복을 하니, 내가 직접 가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 없겠다.’
왕은 곧 사병(四兵)을 엄정하게 정비해서 후야시(後夜時)에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구수 사리자는 왕이 떠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오타이는 일이 어떻게 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병마의 방울 소리를 듣자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에게 어떤 일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는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새벽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옷과 발우를 챙겨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나인(內人)이 있다가 승만 부인에게 알렸다.
“아차리야이신 오타이께서 지금 이곳에 오셨습니다.”
부인은 이 말을 듣자 가볍고 얇은 옷을 입고 문 밖에 나와 영접하였다. 오타이는 부인의 몸이 비쳐서 드러나 보이는 것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부인은 그것을 알자 곧 부끄러운 마음으로 궁 안에 들어가서 다른 옷을 입고 오타이가 있는 곳으로 와서 공손히 경을 배웠다. 그러나 두, 세 번을 반복하였는데도 여전히 새벽이 되지 않자, 궁녀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함께 나무라는 말을 했다.
“왕께서 비록 믿고 공경해서 남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필추가 때도 알지 못하고 한밤중에 찾아오고, 왕께서 보석과 보석류를 미처 갈무리하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궁문에 도달하다니!”
오타이는 새벽까지 독송하는 것을 가르쳤다.
승만 부인이 물었다.
“성자께서는 오늘 아침에 어느 곳에서 공양을 드시겠습니까?”
오타이가 말했다.
“아무 곳이나 얻는 곳에서 먹겠습니다.”
부인은 곧 발우를 가져다가 먹을 것을 가득 채워서 오타이에게 주었다. 그는 발우를 받자 병이 없기를 축원하고 그것을 갖고 밖으로 나갔다. 왕성의 문 아래에 이르렀을 때 사리자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그가 말했다.

“대덕께서 이런 태도로 정진하고 마음을 쓴다면 어떻게 능히 모든 번뇌를 단절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새벽 일찍 궁 안으로 들어가서 부인에게 경법(經法)을 가르치고 아울러 발우에 음식을 받아서 궁문을 나서고 있는데, 당신은 이제야 들어오니 너무 늦은 것이 아니십니까?”
사리자가 말했다.
“구수여, 가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마땅히 식차(式叉)1)를 제정할 것입니다.”
여러 욕심이 적은 필추들은 이 일에 관하여 듣자 곧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이 인연으로 모든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왕궁에 들어가는 것에는 열 가지 허물이 있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왕과 부인이 함께 있을 때 필추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인이 문득 웃으면, 왕은 곧 의심하기를 ‘부인이 저 필추와 함께 은밀한 곳에서 몰래 못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웃는 것인가, 혹은 앞으로 못된 일을 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인가?’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부인이 임신을 하였으면, 왕은 생각하기를 ‘필추와 함께 못된 짓을 저질러서 임신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왕이 보배와 보배 같은 것을 잃어 버렸으면, 왕은 생각하기를 ‘필추가 나의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닐까?’ 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왕이 비밀스런 말을 하였는데 그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왕은 생각하기를 ‘필추가 비밀스런 말을 옮긴 것이 아닐까?’ 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왕이 태자에게 노하여 직위를 빼앗게 되면, 태자는 생각하기를 ‘필추가 참언을 하여 나로 하여금 지금 이런 근심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태자가 부왕에게 의롭지 못한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듣고서 ‘필추가 비밀한 말을 옮겨서 태자로 하여금 효성스런 뜻을 잃게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왕이 소중히 여기던 대신이 그 직위가 낮아지게 되면, 곧 생각하기를 ‘필추가
왕에게 참언을 하여 나로 하여금 뜻과 같지 않은 곳에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지위가 낮은 대신에게 왕이 좋은 상(賞)을 주면,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하며 ‘필추가 그를 위하여 높이 영달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왕이 자주 군대를 일으켜 정벌을 하게 되면, 다른 백성들이 모두 이러쿵저러쿵 하며 ‘필추가 왕과 함께 논의하여 자주 우리들을 정벌케 하여 피곤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열째는 필추가 궁에 들어갔는데 왕이 출정하여 병사들에게 ‘노획한 것은 모두 자기 것이다’ 라고 했다가 뒤에 정벌이 끝나자 왕이 모두 빼앗아 가면,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필추가 왕으로 하여금 우리 것을 빼앗게 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모든 필추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 인연으로 마땅히 함부로 궁 안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느니라. 혹은 사병(四兵)을 안온치 못하게 하는 것은 필추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아니니라.”

총체적인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인이 웃는 것과 임신한 것과 보배를 잃어버린 것과
비밀스런 말이 새나간 것과 왕이 태자에게 노한 것과
왕을 해롭게 한 것, 낮은 자리로 쫓겨난 것, 높은 자리로 승진한 것과
자주 정벌을 한 일과 정벌에서 돌아와 노획물을 빼앗은 일이로다.

“이와 같이 나아가 내가 열 가지 이로움을 관(觀)해서 모든 필추에게 마땅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새벽이 되지 않아서 찰제리(利帝利) 관정왕(灌頂王)은 아직 보물과 보배 종류를 갈무리하지 못햇는데도 궁궐의 문 안으로 들어간다면, 다른 연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일저가(波逸底迦)이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왕사성의 죽림원 안에 계시면서 모든 필추들에게 계율을 제정하여 마치시고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섬부주 안에 두 개의 큰 성(城)이 있다. 하나는 이름을 화자(花子)라 하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승음(勝音)이라 하는데, 이 두 성은 서로 번갈아가며 성쇠를 거듭하였다. 만약 화자성이 융성하면 승음성이 쇠퇴하고, 승음성이 번성하면 화자성이 쇠퇴하였다.

승음성의 백성들이 부유하고 융성하였을 때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이름은 선도(仙道)라 하였다. 그는 바른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서 국토가 풍요롭고 안락하였으니, 전쟁도 없고 또한 병고도 없었으며 용왕이 기뻐하여 오곡이 풍년이 들었다…(생략)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왕의 부인은 이름을 월광(月光)이라 하였는데 용모가 아주 뛰어나서 뭇사람들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았으며, 왕의 태자는 이름을 정계(頂髻)라 하였다. 그리고 두 대신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름을 이익(利益)이라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을 제환(除患)이라 하였다.
마갈타국의 왕사성에 있는 왕은 이름을 영승(影勝)이라 하였는데,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서 나라에 재앙과 우환이 없었고, 나머지는 위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왕의 부인은 이름을 승신(勝身)이라 하였는데, 위의와 태도가 아주 뛰어나서 나라 안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었고, 왕의 태자는 이름을 미생원(未生怨)이라 하였다. 그리고 한 사람의 대신이 있었는데, 행우(行雨)라는 이름으로 대바라문 종족의 높고 훌륭한 귀족이었다.”
그때 선도대왕(仙道大王)은 일찍이 한 때에 큰 모임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풍요로움이 넘치는 나라가 있는가?”
대중 가운데에는 마갈타국에서 무역을 하러 온 사람이 있다가 이와 같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곳에서 동쪽으로 마갈타국의 왕사대성(王舍大城)이 있습니다. 왕의 이름은 영승(影勝)이라 하는데, 그 나라의 풍요로움이 대왕의 나라와 비슷합니다.”
선도왕은 이 말을 듣자 영승왕을 흠모하는 마음이 일어나 대신에게 물었다.
“그 왕의 나라에는 무엇이 부족한가?”
“그 나라에는 보배가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보배를 분별하는 사람을 불러서 좋은 것을 가려내게 하라. 그래서 금으로 만든 상자에 보배를 가득 채우고 왕의 칙서와 함께 마갈타국에 사신을 보내서 영승왕에게 주도록 하고, 사자에게는 ‘지금부터 왕께서 저희들과 친교를 맺도록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희들이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하게 하여라.”
사자는 왕의 서신을 가지고 왕사성의
영승왕 처소에 도착해서 글을 받들어 올리고 아뢰었다. 왕은 글과 함께 국신(國信)을 열어보고 나서 크게 기뻐하였다.
왕이 말했다.
“그 나라에는 무엇이 부족한가?”
사람들이 대답했다.
“그 나라에는 좋은 모직물이 없습니다.”
왕은 곧 마갈타국에서 산출되는 훌륭한 모직물을 상자에 가득 채워서 위의 일과 같이 하였다. 선도왕에게 보답하고 아울러 글을 보내기를 “보내오신 서신을 삼가 보았고 아울러 나라의 보배를 받았습니다. 아직 서로 만나 뵙지는 못하고 멀리서 삼가 경의를 표하는 것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희가 마땅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는 왕의 편지를 가지고 승음성에 이르자 편지와 나라의 신표를 선도왕에게 바쳤다. 왕이 경사스러워하고 기뻐하면서 사신에게 물었다.
“왕의 모습은 그 풍채가 어떠하시던가?”
아울러 그 성품과 행실도 물었다. 사신이 대답했다.
“영승왕께서는 그 외형이 장대하신 것이 대왕과 비슷하오며, 성품과 행실은 웅건하고 용맹스러워서 몸소 정벌 전쟁을 하십니다.”
왕은 곧 몸집의 크기를 헤아려서 다섯 가지 덕[五德]을 갖춘 훌륭한 갑옷을 만들어서 사신으로 하여금 가지고 가게 하였다. 무엇을 다섯 가지 덕이라고 하는가? 첫째, 몹시 더운 계절에 그것을 입으면 서늘해지는 것이고, 둘째는 칼과 도끼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고, 셋째는 화살이 뚫지 못하는 것이고, 넷째는 여러 가지 독을 잘 막아내는 것이고, 다섯째는 능히 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왕은 갑옷을 다 만들고 나자 칙서를 써서 말하였다.
“이제 보배 갑옷을 드리오니, 이것은 다섯 가지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것입니다. 제 성의를 받아주셔서 친히 입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라건대 멀리서 삼가 경의를 표하는 제 뜻을 받으셔서 다른 이에게 하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갑옷을 사신에게 주었다. 사신은 그것을 가지고 왕사성으로 와서 영승왕에게 바치고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 보배 갑옷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춘 것으로 선도대왕이 일부러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영승왕은 칙서와 갑옷을 보고 아주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서 보배를 분별하는 사람을 불러 그 값을 헤아려 보게 하였다.
보배를 다루는 사람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하나하나의 보배들은 모두 값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오나 다 헤아려 본다면 금전 십억은 되겠습니다.”

왕이 듣고는 근심스러운 생각을 내었다.
‘멀리 있는 친구가 나에게 보배로운 갑옷을 주었고, 이 하나하나의 보배들은 그 값을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것이 없으니 어떻게 사례를 할까?’
왕은 손으로 뺨을 괴고 허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때 행우 대신(行雨大臣)이 들어와 대왕의 근심스러운 얼굴빛을 보고서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무슨 까닭에 안색이 근심스러워 보이시나이까?”
“내 마음이 어찌 근심스럽지 않겠소? 먼 곳에 있는 나라의 왕이 나에게 보배 갑옷을 보냈는데, 그 하나하나의 보배들은 그 값을 알 수 없소. 우리나라에는 기이한 보배가 없어서 보답할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근심을 하는 것이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선물하기에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소?”
“그 나라의 국왕은 다만 한 벌의 보배 갑옷을 주었을 뿐이오나 대왕의 나라에는 불세존(佛世尊)이 계시옵니다. 사람 가운데 묘한 보배이시며 일체 중생이 모두 존경하는 분으로서 시방세계에서는 짝할 수 없는 가장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진실로 그렇기는 하나 어떻게 해야 되겠소?”
“모직물 위에다가 세존의 모습을 그려서 사신을 시켜 보내드리십시오.”
“그렇다면 내가 마땅히 부처님께 아뢰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받들어 행하겠소.”
영승왕은 부처님이 계신 곳에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한 쪽에 앉아서 이러한 인연사를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좋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한 폭의 불상(佛像)을 그려서 그 왕에게 보내드리면 되겠습니다.”
불상을 그리는 방법은 먼저 불상을 그리고 나서 그 상의 아래다가 삼귀의(三歸依)2)를 쓰는데,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양족(兩足) 중에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오며 , 이욕(離欲) 중에 존귀한 법에 귀의하오며 , 여러 무리 중에 존귀한 스님들에게 귀의합니다’라고 썼다.
다음으로는 오계(五戒)를 쓰되, ‘첫째는 살생을 하지 아니하며, 둘째는 훔치지 아니하며, 셋째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아니하며, 넷째는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며,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아니합니다’라고 썼다.
다음으로는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유전문(流轉門)과 환멸문(還滅門)을 쓰니,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인하여 저것이 생기니, 무명(無明)으로부터 행(行)을 연(緣)하고 나아가 쌓이고 모여서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짐으로 인하여 저것이 없어지니, 무명(無明)이 없어짐으로부터 나아가 쌓이고 모임이 모두 없어진다’라고 자세하게 썼다.
다음으로는 그림 위쪽에다가 두 개의 게송을 써서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벗어나 여의기를 구할지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지런히 정진하여
생사(生死)의 군대를 항복시키기를
코끼리가 초막집을 무너뜨리듯이 하라.

이 법률 가운데에서
닦기를 게을리하지 말지니
능히 번뇌의 바다를 다 말릴 수 있으면
마땅히 고통의 변제(邊際)를 다하게 되리라.

이와 같이 그리기를 마치고 사신에게 주면서 말하게 했다.
“불상(佛像)을 그린 그림이 본국에 도착하게 되면 넓게 드러난 곳에다가 그림을 그린 깃발과 덮개를 매달고 향과 꽃을 벌여놓아 성대하게 장엄한 뒤에 그 상(像)을 열어야 합니다. 만약 누가 묻되 ‘이것이 무슨 물건입니까?’ 하면, 그에게 대답해 주되 ‘세존의 형상으로 전륜왕위(轉輪王位)를 버리고 정각(正覺)을 이루신 분이십니다’라고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아래에 있는 글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면, 대답하기를 ‘이것은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니, 난인(難因)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할 것이며, ‘그 아래의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오계를 지켜서 인천(人天)의 도(道)에 태어나게 하는 것 ’이라고 할 것이며, ‘그 아래의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되 ‘이것은 십이연기이니 삼계오취(三界五趣)에서 유전(流轉)하고 환멸([還滅)하는 인과(因果)의 도리를 밝힌 것‘이 ’라고 할 것이며, ‘위에 있는 두 게송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이 두 개의 게송은 모든 유정(有情)들에게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해서 생사(生死)의 군대를 깨뜨리되 게을리 하지 말고 빨리 보리(菩提)에 나아갈 것을 권유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영승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기뻐하고 공경히 받아들이면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물러났다. 왕은 곧 그림을 그려서 아래 위에 그 인연사를 자세히 쓰고 갖가지 묘한 향으로
존귀한 상에 두루 향을 뿌린 뒤 가늘게 말았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상자 안에 넣고, 다시 금으로 만든 상자를 은으로 만든 상자 안에 넣고, 다시 은으로 만든 상자를 구리로 만든 상자 안에 넣고, 다시 훌륭한 향으로 상자 안을 세밀하게 채워서 향상(香像) 위에다 안치한 뒤 큰 길을 엄정히 정비하고 깃대를 앞세워서 왕사성을 떠나보냈다.
영승왕은 아울러 칙서를 작성하여 선도왕에게 말하였다.
“아직 서로 만나보지는 못하였으나 사신이 도착하거든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보배 갑옷은 세상에 드문 것입니다. 이제 세존의 형상을 그려 보내오니 삼계(三界)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사신 편으로 보냈으니 공양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왕사성에서부터 두 역 반[兩驛半] 떨어진 곳에 길을 평탄하게 닦고 성황(城隍)을 장엄하게 꾸미고, 몸소 사병(四兵)을 거느려서 깃발을 세우고 꽃 덮개를 씌우며, 넓은 곳에 존엄한 위의를 베풀어 설치하시고 은근하게 공양을 올리시면 큰 복덕을 얻을 것입니다.”
편지를 봉하여 사신에게 맡기고 명하였다.
“내가 부촉한 바와 같이 마땅히 잘 기억하고 생각해서 모두 행하도록 하라.”
사신은 명을 받들면서 공경하게 인사하고 떠나갔다. 여러 날이 걸려 승음성에 이르자 두 역 반의 거리가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그리고 신표를 보내서 왕에게 아뢰는 한편 편지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왕은 편지를 받아서 읽어 보고는 대신에게 말했다.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그 나라에 어떤 기이하고 승묘한 선물이 있기에 편지에서 말하되, 두 역 반의 거리가 되는 길을 닦고 성황을 장엄하게 꾸미며, 꽃 덮개를 씌우고 깃발을 세워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내가 몸소 사병(四兵)을 거느려서 멀리까지 영접을 나가게 한단 말인가? 이 정황을 보건대 업신여기려고 하는 것이니, 경들은 마땅히 사병(四兵)을 모두 집합시키라. 내가 직접 가서 마갈타국을 치겠다.”
대신이 말하였다.
“일찍이 듣자오니 그 왕은 도량이 크다고 하옵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선물을 아무렇게나 보내서 대왕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그의 말을 따라 친히 가셔서 살펴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약 대왕의 뜻에 맞으시면
‘좋다’고 말씀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군대를 일으켜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참으로 그런 이치가 있다면 편지에 쓴 대로 해보자.”
곧 두 역 반의 길을 평탄하게 닦았다. 그리고 또한 왕이 직접 가서 보면서 보내온 편지에 따라 성대하게 공양을 베풀고 인도해서 성읍의 평탄한 곳에 이르니 무량백천(無量百千)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향과 꽃을 두루 설치하고 큰 길에 가득 차니, 왕이 그림을 열고 우러러 보았다. 중국(中國)의 상인들이 함께 왔다가 그 상(像)을 보자 모두 합장하고 이구동성으로 함께 큰 소리를 내어 말하기를 ‘나모불타야(南謨佛陀也), 나모불타야’라고 하였다.
장엄한 위의를 보고 불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선도왕은 아직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것을 들었던 터라 깜짝 놀라서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왕이 곧 물었다.
“불타라는 이름은 무엇을 드러낸 말인가?”
상인의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중국의 어떤 성(城)은 이름을 겁비라발솔도(劫比羅跋率覩)3)라 하는데, 그 중에 정반왕(淨飯王)이 한 태자를 낳았습니다. 그는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었는데, 관상을 보는 이가 보고서 말하기를 ‘이 태자가 만약 속가(俗家)에 있으면 마땅히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칠보가 원만하고 천자(千子)를 구족하고 사주(四洲)를 항복시켜서 법으로써 교화할 것이다. 그러나 출가를 한다면 마땅히 여래ㆍ응ㆍ정등각(如來應正等覺)을 증득하여 인간과 천상에서 모두 불타(佛陀)라고 부르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그의 진실한 형상을 그린 것입니다.”
왕이 듣고는 기뻐하여 물었다.
“이 아래의 글자는 그 뜻이 무엇인가?”
상인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것은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 아래의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오계를 밝힌 것입니다.”
또 물었다.
“그 아래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유전(流轉)과 환멸(還滅)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 위의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나고 죽는 것을 싫어하여 여의고 열반을 바라고 구할 것을 권유하여 깨우쳐 주려는 것입니다.”

모두 자세하게 설하였다.
선도왕은 상인에게 십이연기의 무명(無明)ㆍ행(行) 등의 나고 죽는 도리를 듣고서 그 글을 잘 외운 뒤 궁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초저녁에 그 글에 의지하여 사유하면서 후야시(後夜時)에는 모든 세속의 일을 버렸으며, 새벽이 되자 몸을 단정히 하고 결가부좌를 한 뒤 생각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거두어 십이연기의 도리를 사량ㆍ관찰하였으니,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는 까닭에 저것이 생기니, 무명(無明)으로부터 행(行)을 반연[緣]하고, 행(行)은 식(識)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육처(六處)를 반연하고, 육처는 촉(觸)을 반연하고, 촉은 수(受)를 반연하고, 수는 애(愛)를 반연하고, 애는 취(趣)를 반연하고, 취는 유(有)를 반연하고, 유는 생(生)을 반연하고 생은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를 반연하나니, 이와 같이 커다란 고온(苦蘊)이 쌓이고 모인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이른바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는 까닭에 저것이 없어지는 것이니, 무명(無明)이 없어지면 행(行)이 없어지고, 행이 없어지면 식(識)이 없어지고, 식이 없어지면 명색(名色)이 없어지고, 명색이 없어지면 육처(六處)가 없어지고, 육처가 없어지면 촉(觸)이 없어지고, 촉(觸)이 없어지면 수(受)가 없어지고, 수가 없어지면 애(愛)가 없어지고, 애가 없어지면 취(趣)가 없어지고, 취가 없어지면 유(有)가 없어지고, 유가 없어지면 생(生)이 없어지고, 생이 없어지면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없어지나니, 이와 같이 큰 고온(苦蘊)이 쌓이고 모인 것이 다 없어지는 것이다. 선도왕은 연생(緣生)의 이치를 이미 깊이 깨달아서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지혜의 금강저(金剛杵)를 갖고 스무 가지 살가야견(薩迦耶見)을 얻었다. 이미 진리를 깨닫고 나자 아득한 마음으로 경사스러워하고 기뻐하면서 세존을 경모(敬慕)하고 앙망(仰望)하여 게송을 설하였다.

대의왕(大醫王)을 공경하여 예배드리나니
마음의 병을 훌륭하게 고쳐주셨네.
세존께서는 비록 멀리 계시지만
능히 지혜의 문을 밝혀주셨네.


왕은 기뻐하여 곧 편지를 써서 영승왕에게 알렸다.
“제가 당신의 은혜에 힘입어서 삼보가 있음을 알고 연생(緣生)의 이치를 깨달아 진제(眞諦)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 빠져있되 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에 이르러서 진흙 구덩이에서 빠져나가기를 기약하게 되었으니, 기쁘고 경사스러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필추를 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오니 방편을 써서 이곳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사신이 편지를 가지고 영승왕이 있는 곳으로 가니, 왕은 편지를 읽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승음성의 선도왕이 부처님의 형상을 뵈옵고 참다운 진리를 깨달아서 사신으로 하여금 편지를 갖고 이곳에 오게 하여 필추를 만나 뵙기를 바라고 있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필추를 보내 주소서.”
이렇게 말씀드린 뒤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떠나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생각하셨다.
‘누가 저 성(城)과 인연이 있어서 그곳에 가서 널리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을 것인가?’
성자 가다연나(迦多演那)가 그곳에 인연이 있어서 능히 교화할 수 있음을 관찰하여 아시자, 세존께서는 곧 가다연나에게 명하셨다.
“네가 저 승음성 안의 선도대왕과 여러 권속의 무리를 관하여 보아라.”
가다연나는 곧 “알았나이다”라고 대답을 하고는 가르침을 받들었다. 그리고 관찰을 하고 나서는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와서 의발을 챙긴 뒤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먹기를 마치고 와구(臥具)를 부탁해 놓고 나서 오백 명의 필추를 데리고 길을 따라 승음성으로 갔다.
영숭왕은 칙서까지 작성하여 사자를 보내서 선도왕에게 알렸다.
“연생(緣生)을 깨달아 예류과(豫流果)를 얻으시고 다시 필추를 즐거이 보고자하시니,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필추로 하여금 멀리 청하는 곳에 가도록하셨습니다. 왕께서는 은근하게 부처님과 같으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셔서 성에서 두 역 반[兩驛半] 쯤 되는 거리에 길을 잘 닦고 향과 꽃을 장엄하게 늘어놓은 뒤에 사병(四兵)을 정비하여 몸소 나와서 영접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성 안의
한적한 곳에 하나의 절을 짓되 오백 개의 방과 상탑과 와구(臥具)를 만들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고 필요한 음식들을 모두 미리 준비하십시오. 이와 같이 공양하여 섬긴다면 복을 얻는 것이 무량(無量)할 것입니다.”
사신이 편지를 가지고 가서 선도왕에게 주니, 왕은 읽고 나서 말한 대로 모두 시행하였다.
필추들이 도착하자 성으로 맞아들인 뒤에 넓고 한적한 곳에다 그림을 그린 깃발과 덮개를 매달아서 도량을 장엄하게 설치하고 필추들에게 않기를 청하였다. 무량백천(無量百千)의 대중들이 모두 구름같이 모였다. 그때 성자 가다연나는 그들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법요를 설해서 모든 대중들을 이롭게 하니, 혹은 예류과(預流果)를 얻기도 하고 혹은 나머지의 과를 얻기도 하였으며, 또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기도 하였고 혹은 성문(聲聞)ㆍ독각승(獨覺乘)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도 있었으며, 혹은 대승(大乘)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한 자도 있었다.
승음성에는 두 장자가 있는데, 하나는 이름을 저쇄(底灑)라 하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보쇄(補灑)라 하였다. 그들은 성자 가다연나의 처소에 도착하자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성자여, 저희가 이제 법률을 훌륭하게 설하는 곳에 출가하여 성자가 계신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자 하나이다.”
가다연나는 그들의 마음이 지극함을 알자 곧 출가할 것을 허락하고 구족계를 주는 한편 그 근기(根器)를 관하여 법요를 가르쳤다. 두 사람은 밤낮으로 부지런히 수행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서 모든 의혹을 단절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자, 곧 허공에 올라 온갖 신통변화를 나투고 몸에서 물과 불을 내면서 문득 무여묘열반계(無餘妙涅槃界)에 들어갔다. 그의 친족들이 곧 화장하여 공양하기를 마치고 나머지 뼈를 수습하여 두개의 탑을 조성하였다.
당시 선도왕은 매일 정오에는 항상 성자 가다연나의 처소로 가서 묘법을 설하는 것을 들었는데, 다 듣고 나면
궁중으로 돌아와서 여러 궁인들에게 말하였다.
“성자 가다연나께서는 매일 항상 나를 위하여 같은 묘법을 설하여 주신다.”
궁인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복이 있으셔서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세상을 만나셨고 인과가 원만히 이루어져서 정법(正法)을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궁인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인연이 어떠하기에 가서 법을 듣지 못하느냐?”
“저희 궁녀들은 자주 나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 성자 가다연나께서 궁전 안으로 들어오시어 설법을 하실 수 있다면 저희들도 마땅히 듣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성자의 처소로 가서 두 발에 정례(頂禮)하고 아뢰었다.
“성자여, 궁 안의 여인들이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합니다. 원하옵건대 존자께서는 자비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잠시 궁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가다연나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세존께서는 계율을 제정해서 필추가 궁 안으로 들어가 여인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왕이 말했다.
“성자여, 만약 그러하시다면 누가 궁 안에 들어가서 여인을 위하여 법을 설하겠습니까?”
“필추니가 있으면 들어가서 설법하는 것이 허락됩니다.”
선도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편지를 써서 영승왕에게 알렸다.
“궁 안에 있는 여인들이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하는데, 어떤 방편을 써서 필추니를 오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때 영승왕은 편지를 보고 나서 즉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궁 안의 왕비와 후궁들이 즐거이 바른 법을 듣고자 하오니, 필추니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나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되겠나이까?”
그때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생각하셨다.
‘어떤 필추니가 그 성 안에 있는 궁인들의 무리와 인연이 있어서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세라 필추니(世羅苾芻尼)가 능히 그들을 교화할 수 있음을 관찰하여 아시고 세라 필추니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승음성 안에 있는 궁인들의 무리를 관찰하여 보아라.”
필추니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삼가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나이다.”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오랫동안 머물던 처소로 가서 와구(臥具)를 부탁한 뒤 의발을 챙겨서 오백 명의 필추니들과 함께 승음성으로 갔다.
영승왕은 다시 그녀에게 편지를 주어서 영접하게 하고 방 오백 개를 만들어 필요한 것을 공급하게 하였다. 세라 필추니가 도량을 만들어서 대중에게 설법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삼보리심(三菩提心)을 일으켰다.
세라 필추니는 매일같이 왕궁 안으로 들어가서 왕비와 후궁들을 위하여 법요를 자세히 설하였다.
선도왕은 쟁(箏)을 아주 훌륭하게 탈 줄 알았고, 그 월광 부인(月光夫人)은 춤을 잘 추었다.
한 때 왕은 궁 안에서 스스로 쟁을 연주했고 월광 부인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 춤이 끝날 즈음에 부인의 몸에 무상상(無常相)이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이는 이레째가 되면 반드시 죽게 될 상이었다. 왕은 그것을 보자 마음에 근심이 생겨서 손으로 연주하던 쟁을 땅에다 팽개쳤다.
월광 부인이 보고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제가 추는 춤이 곡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왕께서 왜 쟁을 던져 버리시나이까?”
“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몸에 죽을 상(相)이 있는 것을 보았소. 7일 안으로 당신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오.”
월광 부인이 왕에게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저를 놓아주십시오. 저는 출가하기를 원하나이다.”
왕이 말했다.
“함께 약속을 한다면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만약 출가해서 온갖 번뇌를 단절하고 아라한과를 얻는다면 나는 그대를 단념하리라. 만약 결혹(結惑)이 남아 죽게 된다면 떠나가는 곳을 마땅히 나에게 알려주도록 하시오.”
부인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도왕은 곧 월광 부인을 인도하여 세라 필추니의 처소로 가서 발에 예배하며 말했다.
“성자여, 월광 부인이 법률을 훌륭하게 설하는 곳에서 출가를 하고자 합니다. 원하옵건대 성자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거두어서 그녀에게 출가를 허락하고 구족계를 주시기 바라나이다.”
세라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곧 출가를 허락하고 아울러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업보(業報)를 관(觀)하여 죽을 것임을 알고서 월광에게 무상관(無常觀)을 닦도록 가르쳐 주었다. 월광은 가르쳐준 말에 의지하여 무상관을 닦았는데, 이레째가 되는 날에 홀연히 죽어서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에 태어났다. 여러 천(天)의 법이 그러하듯이 처음 태어날 때에 세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내가 어디에서 죽었는가?’
이를 생각해보고는 사람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았다.
‘지금은 어디에 태어났는가?’
이를 생각해보고는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일찍이 어떤 업을 지었던가?’
이를 생각해보고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범행을 청정하게 수행하였음을 알았다. 월광천녀(月光天女)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세존께 가서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갖가지 훌륭한 천화(天花)를 옷과 두건에 가득 채워서 밤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니, 하늘빛이 환히 빛나면서 죽림원을 가득 채웠다. 곧 묘화(妙花)를 가지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 두루 흩뜨리고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나서 한 쪽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녀의 근기와 성품을 관하여 설법을 하시니, 그녀는 법을 듣고 나자 예류과(預添果)를 얻고 게송을 설하였다.

세계인천(世界人天)이 다 같이 공양함이여
능히 업의 미혹과 나고 늙고 병드는 것을 없애버렸네.
백천생(百千生)에 만나기 어려운 것을
내가 이제 다행히 만났으니 진실로 희유한 일이로다.

나는 부처님을 의지하여 결혹(結惑)을 제거해서
이제 청정한 눈을 얻었네.
고통스런 흐름을 뛰어 넘어 저 언덕에 올랐으니
끝내는 열반의 성(城)에 들어가리라.

그 천녀(天女)는 게송을 설하고 나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승음성의 선도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때 왕은 누각 위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천녀가 도착하자 몸에서 밝은 빛이 났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어서 자는 왕을 깨어나게 했다.
소리를 듣고 놀라서 깨어난 왕은 앉아서 물었다.
“소리를 낸 자가 누구냐?”

“저는 월광입니다.”
“부인은 어서 와서 내 곁에 누우시오.”
천녀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이미 몸이 죽어서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에 태어났습니다. 인간과 천상의 일은 같지 않으니 함께 잘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 만약 저와 즐거움을 함께 하시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 출가하여 도를 닦으십시오. 만약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어버린다면 모든 바람이 쉬게 되겠지만, 만약 결혹(結惑)이 있는 채로 죽게 된다면 사천왕(四天王)에 태어나서 저를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허공으로 올라가 떠나갔다. 선도왕은 이 가르침을 듣고 나자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하면서 출가하는 일을 생각하느라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이 되자 대신에게 명하였다.
“경은 가서 월광 부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시오.”
대신이 말하였다.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하늘이 깨우쳐 주심을 받고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에 머물러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계태자(頂髻太子)를 왕으로 세워서 나라 일을 맡기고, 나는 마땅히 법률을 훌륭히 설하는 곳에 출가를 해야겠다.’
선도왕은 두 대신에게 말했다.
“경들은 마땅히 아시오. 정계태자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나의 뜻이 깊고, 두 분의 경들에 대한 정의(情義) 또한 무거우니, 정계에게 선을 권장하고 악을 그치게 하여 주시오. 나는 출가를 하겠소.”
두 신하가 이 말을 듣고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가슴을 적셨다.
다시 정계에게 명하였다.
“네가 이제까지 나의 말과 가르침에 순종하였던 것처럼 지금부터는 두 대신의 말씀을 마땅히 듣도록 해서 모든 백성을 법으로써 교화하여라. 나는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태자는 말씀을 듣고 슬픈 마음에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선도왕은 부촉하기를 마치고 나서 북을 울려 널리 백성들에게 알렸다.
“모든 나라의 정사(政事)는 태자에게 맡기노라. 나는 출가를 하겠으니, 내가 왕으로 있으면서 법에 따르지 못하였던 점은 백성들이 저마다
용서하시라.”
사람들은 이 알리는 말을 듣고서 왕에게 받은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왕은 태자를 세워서 나라 일을 맡기고 많은 재화와 보물을 차별 없이 널리 베푸니, 사문ㆍ바라문과 빈천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공급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왕은 한 사람의 시자를 데리고 걸어서 왕사성으로 떠나갔다. 정계왕과 백성들은 모두 그 뒤를 따라가서 송별을 하고 돌아왔다. 왕은 점차로 왕사성에 가까워지자 어느 동산 가운데서 잠시 머물러 쉬며 시자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영승왕에게 가서 아뢰어라. ‘선도왕께서 지금 성 밖에 계십니다’라고.”
시자는 즉시 영승왕의 처소로 가서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이 듣고서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선도왕에게는 많은 군사가 있는데, 어찌하여 미리 알리지도 아니하고 홀연히 이곳에 왔는가?”
사신이 왕에게 말하였다.
“그분께서는 아무런 군대도 없이 다만 한 사람의 시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는 찰제리족으로서 관정대왕(灌頂大王)인데, 내가 지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나서 성으로 인도하여 들어오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 도로를 닦고 성곽을 장엄하게 꾸민 뒤에 몸소 사병(四兵)을 이끌고 선도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반갑게 말하며 손을 잡아 위문하고는 한 마리의 코끼리를 함께 타고 왕사성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향내 나는 끓인 물로 목욕을 하게 한 뒤에 훌륭한 옷을 바쳤다.
“왕께서는 지금 무슨 까닭에 대보위(大寶位)를 버리시고 한 사람의 시자만을 데리고 몸소 먼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대왕이시여, 저는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굳이 이곳에 온 것은 세존이 계신 곳에서 출가를 하여 구족계를 받고 청정하게 범행(梵行)을 닦아 해탈을 구하고자 함입니다.”
영승왕은 몸을 일으켜 합장하고 이와 같이 말했다.
“훌륭하시도다. 불타(佛陀)시여, 훌륭하시도다. 달마(達摩)여, 훌륭하시도다. 승가(僧伽)여,
큰 자비를 갖추시고 뛰어난 위력이 있으시니, 능히 이와 같은 찰제리 관정대왕으로 하여금 존귀한 자리를 버리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필추의 행을 닦게 하시는구나.”
영승왕은 곧 선도왕을 데리고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무량백천(無量百千)의 사부대중에게 둘러싸여 묘법을 자세히 설하시고 계셨는데, 멀리 영승왕이 선도왕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영승대왕은 선물을 가지고 나의 처소에 오고 있구나.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하느니, 모든 여래께 나아가 바치는 바로서 유정(有情)을 인도해 교화를 받는데 허물이 없게 하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묵묵히 계셨다. 그때 영승왕은 선도왕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두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한 쪽에 서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분은 승음국의 선도대왕이신데 걸어서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여래께서 법률을 훌륭하게 설하시는 곳에 출가하기를 구하고 구족계를 받아서 필추행(苾芻行)을 닦고자 하니,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거두어 주소서.”
세존께서는 곧 선도왕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필추여, 범행을 닦도록 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머리와 수염을 스스로 깎고 법복을 입고서 병과 발우를 손에 가지니, 행동하는 위의가 마치 백 살이나 된 필추와 같았다. 그때 영승왕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떠나갔고, 선도 필추는 곧 대중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이른 아침에는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차례로 다니며 걸식하였다. 당시 백천만 명의 사녀(士女)들은 그가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와서 우러러 보았고, 궁궐과 집안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누각에 올라가서 희유한 일을 함께 보았다.
선도 필추는 음식을 얻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서 먹기를 마치고는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고 앉았다. 그때 영숭왕이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선도 필추가 있는 곳으로 와서 몸소 공경하여 예배드리고 게송을 설하였다.

승음국(勝音國)의 대왕께서
백천(百千)의 성읍을 버리시고
이제 먹다 남긴 음식을 구걸하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금으로 만든 훌륭한 쟁반을
여러 보배로 장엄하였는데
이제는 다만 흙으로 만든 발우만을 지녔으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향내 나는 쌀밥에다
맛있는 반찬을 마음대로 먹었는데
이제는 거친 밥을 먹으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가시국(迦尸國)4)에서 만든 좋은 옷으로
훌륭한 모직물과 여러 그림을 그린 옷을 입었는데
이제는 분소의(業掃衣)를 걸쳤으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훌륭한 궁전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중들고 호위하였는데
지금은 홀로 나무 아래에 사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좋은 침대와 이부자리에서
곱고 부드러움을 마음대로 즐겼는데
이제는 풀 더미 위에 누우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상궁이며 후궁들과 함께
마음껏 즐겼는데
이제는 홀로 잠자리에서 쉬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전에는 더없이 비싼 코끼리를 타고
보배스러운 말과 보배로 장식한 수레를 탔는데
이제는 길을 따라 걸어 다니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창고에는 모든 것이 가득 차 있어서
수용(受用)함이 늘 마음대로였는데
이제는 가진 것이 없으니
어찌 수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으랴?

선도 필추는 이 말을 듣고 나자 마찬가지로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조복 받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을
나는 이제 모두 조복 받아 항복시켰으니
걸식을 하여 이 몸을 꾸려나가기를
소가 수레를 끄는 것처럼 하네.

영승왕이 말했다.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그런 근심스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음속에 생각하시는 것을
제가 모두 공급해드리리다.

선도 필추가 말했다.

법을 즐거워하는 모든 사람은
마음에 근심과 그리워하는 것이 없나니
만약에 법을 알지 못한다면
어두움으로부터 어두움으로 들어간다네.

대왕께서는 마땅히 잘 들으소서.
내가 이제 바른 법을 설하리니

바른 법을 잘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천상(天上)에 태어나 열반을 얻으리다.

이 몸뚱이는 사랑할 만한 곳이 없으나
하나의 덕(德)이 있으니 잘 들으소서.
잘 조복을 받아서 경계에 머물게 하면
마음을 따라서 골 안락해지리라.

가령 백 년을 산다 해도
몸뚱이의 목숨은 끝내 없어지나니
어찌하여 처자식을 위하여
재물과 음식에 탐욕을 내어 집착하리?

처자식이란 원수와 같고
보배재화는 늘 잃어버릴까 걱정이나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근심과 고뇌에서 벗어났네.

사람의 목숨이 장차 다하려 할 때에는
주술로도 약으로도 구할 수가 없나니
신선이나 여러 성인들도
능히 어기고 대항할 수가 없네.

천(天)이 비록 위력이 있고
훌륭한 곳에서 오래도록 살기는 하지만
장차 죽으려고 쇠약한 모습이 나타날 때에는
반드시 죽게 되니 능히 구할 수 없네.

여러 왕들은 자재(自在)함을 얻었고
위력이 상대할 사람이 없으며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었으나
끝내는 죽는 문에 들어간다네.

가령 고행(苦行)을 닦아서
용맹함이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고
많은 수의 군사와 같은 힘을 갖추었더라도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네.

하늘에서나 바다 속에서나
또한 산이나 바위틈에서나
어느 지방에서라도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네.

하늘에서나 바다 속에서나
또한 산이나 바위 사이에서나
어느 지방에서라도
업(業)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네.

죽고 나면 몸은 부풀어 오르고
살갗과 살은 점점 썩어 내리고
다만 백골만이 남게 되나니
이것을 보건대 무엇을 사랑할 만하랴?

여러 뼈들도 모두 삭고 흩어져서
다만 빈 해골만이 남아서
형색이 매우 보기 흉하니
누가 마땅히 사랑하고 좋아할 생각을 낼 것인가?

더운 곳에서나 서늘한 곳에서나
춥게 살거나 따뜻한 방에 살거나
언제나 목숨을 보호하여 지키지만
죽음이 침범하는 것을 면할 수가 없네.

만약 사람이 착한 인(因)을 짓는다면
과(果)는 그것과 함께 있지 않아서
왕(王) 등이 침해하지 않나니
이런 까닭에 마땅히 복을 닦아야 하네.

만약 십악(十惡)을 행하고 죽는다면
처자식들 모두는 그를 위해 울어주지도 않고
장례도 편한 대로 지내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쁜 죽음[惡死]이라 한다네.

만약에 십선(十善)을 행하고 죽는다면
처자식이 모두 기억하고 생각하며
장례도 법답게 지내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좋은 죽음[善死]이라 한다네.

태어날 때에는 오직 혼자서 왔으며
죽을 때에도 다시 혼자 가나니
스스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는지라
함께 나눌 사람이 없네.

목숨을 엿보다가 취하러 올 때에는
부모와 자식이라도 서로 구하지 못하며
친척과 보배로도

목숨을 살 수 없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밤낮 항상 따라 다니니
감추거나 피할 곳도 없어서
끝내 사왕(死王)에게 끌려간다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일을 보아서
버리고서 출가하기를 구하여
마땅히 번뇌의 바다를 여의고
태(胎) 속으로 들어가는 근심을 받지 않는다네.

나는 모든 원한과 고통을 버리고
필추의 성(性)을 이룰 수 있었나니
끝내는 나고 죽는 감옥에서 벗어나
길이 열반의 성(城)으로 나아가리.

영승왕은 선도 필추가 가르치는 묘법을 듣고 나자 마음깊이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아뢰었다.
“성자여, 나고 죽는 것이 길고 멀어서 끝내 벗어나 여의기가 쉽지 않나이다. 저는 임금의 자리에 있으므로 적정(寂靜)과는 서로 떨어져 있어서 다만 따라 기뻐할 뿐 아직은 속박을 풀지 못했나이다.”
이렇게 말한 뒤 정례(頂禮)하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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