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30권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10. 통귀편②
14) 찬불시(讚佛詩)
(1) 사월팔일찬불시(四月八日讚佛詩) 4수 석지둔(釋支遁)
삼춘(三春) 지나자 백화가 시드는데
초여름 무더위 주명(朱明:태양)을 담았구나.
대낮은 따뜻해서 좋고
달밤은 시원해서 좋다.
보살이 성령(聖靈)을 드리우사
이 세상 홀연히 오셨는데
4천(天)의 천주(天主)가 맞이하고자
교만한 손바닥 옥의 모습이었네.
하늘을 나르며 북을 울리고
땅에는 지영(芝英)이 피어올랐고
용수(龍首)는 물가로 기울어지며
꽃잎이 흩날려 물살 덮는다.
부용꽃은 다발로 피어나서
가지마다 아침결에 꽃피웠다.
기슭 사방에 안개 어리니
감로가 옥병(玉甁)에 맺힌다.
상호(相好)에 서른두 가지 모두 다하니
현황(玄黃)이 자정(紫庭)에 비춘다.
성탄(聖誕)의 조화 헤아리기 어려우니
기쁨도 슬픔도 내지 못하리.
그윽한 뿌리 영부(靈府)에 깃들어
신령한 가지 모양도 빼어나다.
둥근 빛이 동녘에 환하니
눈부신 자태 봄의 정기보다 수려하다.
화기(和氣) 머금어 8음(音) 거두고
숨쉴 적마다 향기가 어린다.
발자취마다 물살 이는데
마음이 태허(太虛)처럼 그윽하다.
6도(度)로 세속을 계시하며
8해(解)로 세간을 씻어준다.
지혜의 연못 그윽하여 나와 남이 없는데
공(空) 그대로 유정(幽情)조차 잊는다.
(2) 영팔일시(詠八日詩4월 초파일을 기리는 시) 3수
[1]
커다란 땅덩어리 명추(冥樞)에 감돌고
양의(兩儀)는 찬란하게 비추인다.
만품(萬品)에 생기 돋아 꽃을 피우니
맑은 연못에 현성(玄聖)이 어린다.
석가모니 신령 타고 오시니
성신(聖神)도 원만하사 기틀 바로하실 제
화기(和氣)를 기르고 길러 보듬고서
영지(靈知)에 성명(性命)을 남기신다.
하시(下尸)를 구제하실지나
적멸하신 마음자리 거울도 못 비추는구나.
[2]
진인(眞人)이 신화(神化) 이루시고자
거룩한 본인(本因) 사방에 심으셨도다.
도솔천 계시던 용상(龍象)이
염부(閻浮)1)의 기슭으로 임하셨다.
수레에 오르실 제 삼춘(三春)이 지나갔고
주명(朱明)에 가까운 때 코끼리 타셨는데
8유(維)에 서운(瑞雲) 드리우고
9소(霄)가 기슭에 임하였다.
현기(玄祇)는 만무(萬儛) 춤추고
반차(般遮)2)는 영륜(伶倫)3)을 연주하니
난천(蘭泉)에 씻어서 색신(色身) 빛난다.
음 내디딤에 3재(才)가 태평할세라.
소리를 냄에 따라
5도(道) 묻혔으니
함이 없이 이루심이 더욱 고귀하고
기적 잊고 기적 이루심이 더욱 신기하구나.
[3]
그 옛적 생각할수록 아득할세라.
몸 받자는 생각도 인연 따라 생겨날진대
상호(相好) 더불어 영기(靈器) 이루셨으니
모습은 예전 부처님 모습 따랐어라.
황상(黃裳)4)에 무늬 결도 고울지니
원자(元子) 아기씨 입성에 수놓을세라.
공손하고 은혜로운 신명에다
걸음 옮기어 자취를 남기신다.
허당(虛堂)에 수라 공양 늘어놓으니
덕 높으신 영화가 참으로 기이할지라
미묘하게 감탄하는 소리 내는 듯하니
나만 헤아리는 작자(作者)의 마음이라.
여기서 무엇이
고상타 하리.
마음 거두어
태청(太淸)을 모으노라.
(3) 오월장재시(五月長齋詩)
염정(炎精:해)이 중기(仲氣) 기르는데
주리(朱離)는 양기(陽氣)를 토한다.
광한(廣漢)5)은 시원함을 잠시 사이 바꾸고
개풍(凱風:和風)이 조화롭게 불어오른다.
영월(令月)에 청재(淸齋) 열어 내어
공덕의 연못에 강토 적시누나.
사부대중 모두 모여 좋은 시절 기뻐할지니
정갈하게 몸 가꾸고 허당(虛堂)에 오른다.
맑고 시원하니 봄의 자취 어리는데
매서운 가을 서리에 언제나 조심하네.
목을 가다듬고 숲 속에서 노래하는데
은은한 기쁨을 성 바깥에서 맛본다.
거룩하신 자태는 고요하기만 한데
비단결 고운 말씀 5음(音)에 어울리나
석공이 신령스런 자태 새겨내자니
연못 그윽할새 도행(道行) 깊어진다.
가르침의 이치도 길어질지라
첩첩이 유마(維摩)의 성령(聖靈)이려니
덕음(德音)이 시방에 울려퍼짐에
가시울타리 저절로 스러진다.
커다란 성취도 시작이 반인데
대쪽에 새긴 것 간략하나마
여덟 갈래 말씀[八言]6)이 도의 벼리 거두고
번뇌 묶고자 구절구절 새겨본다네.
두려울사 은근한 글 꺾어두니
밀려드는 폭풍우도 흩어진다네.
달빛이 창문에 교교한데
우언(寓言)7)에 의지해서 무엇하리.
뜻을 이루면 통발도 잊는다는데
점점이 익혀서 묘하게 한데 거둔다.
흩날리는 경진(輕塵)도 없어지려니
열린 마음의 문 그대로 썩는데
신명(神明)의 추녀 끝에 달빛만 서린다.
뉘라서 그윽한 피안에 이를 것인가.
한 번 깨침 이루어 건너가려니
원컨대 고해(苦海)의 뱃사공 되었다.
창랑(滄浪)에 삿대 드리우고
넘실대는 파도에 손님 태우니
현도(玄道:도가의 도리)로 돌이켜
도량(道場)에 임할지라.
(4) 팔관재시(八關齋詩)와 서문 3수
잠시 하표기(何驃騎)8)와 약속하여, 8관재(關齋)의 법도 지켜야 마땅하리. 시월 스무이틀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현(吳縣)의 토산(土山)에 있는 암자에서 3일간 새벽마다 재법(齋法)을 지켰는데, 바야흐로 도사(道士)와 백의(白衣) 스물네 사람이 정갈하게 몸을 가꾸어 숙정(肅靜)하지 않음이 없었다.
나흘째 아침에야 현자들이 흩어져 갔는데, 내가 야실(野室)의 고즈넉함을 사랑하는 데다, 불사(不死)의 약을 구하려는 뜻이 있어서 홀로 남았다. 이에 붓을 들어
전송하였는데, 도를 기리는 마음에 고요히 빈 방을 지켰다. 외신(外身)의 참다움을 깨닫고 산에 올라 석간수(石癇水)의 즐거움을 모았는데, 붓을 쥐고 글을 지어 그대들과의 정을 두텁게 하고자 한다.
[1]
뜻을 세워 법재(法齋)를 이뤘으니
이인(里仁)9)에 눈 밝은 도반 있구나.
서로들 좋은 아침 기약했는데
산간에 올라 몸을 씻는다.
허당(虛堂)에 오르는 저 현자들 의젓하다.
맑은 마음 깨끗이 닦을지니
점잖은 8관재의 우리 도반들
피곤도 마다 않고 스스로를 다듬는다.
고요하게 다섯 가지 진여(眞如) 익히고
강한 마음 부드러이 하려니
법고(法鼓) 울려서 세 번 권하자
맑은 훈요가 넘쳐흐른다.
큰 제도 이루시사 발원하면서
합당(闔堂)에 모여 한배를 타니
밝으신 성현이시여
우리들 동몽(童夢)에 임하소서.
비좁은 방에서 정성 다하니
삼계도 청정하다 찬탄할진대
가상하기가 재상(宰相:하표기를 지칭함)자리 못 다하고
부지런하기가 서운(瑞雲) 떠돌 듯 하네.
[2]
아침결에 세 번 참회 올리고
쌍참(雙懺)이 한밤중에 떠오르도록
장닭이 새벽녘을 알리도록
예를 갖추다 현도(玄道)에 잠든다.
빈객 떠난 쓸쓸한 뜰에
때마침 바람이 불어온다.
갈림길 마주쳐 서성이다가
손 저어 하직하려 한다.
수레는 밭 사이로 치달리는데
번개치듯 빠르기만 하구나.
마음 식혀 걸음 모양 지으려니
간간이 금책(金策)을 드리운다.
간 사람을 망연히 쳐다볼새
쓸쓸한 마음에 외로움만 쌓인다.
이 모양다리 내가 아니고
바깥 물건 본디 적막할지라.
노래나 읊조리며 빈집으로 돌아간다.
진여(眞如)를 지켜 그윽함 희롱하며
어찌 한번 찾아가 노닐지 않겠나.
한가로이 스스로를 위안하네.
[3]
정일(靖壹)은 봉로(蓬盧)에 숨어들어
남몰래 초구(初九)10)를 읊조리는데
넓은 물가에 수풀더미 헤치니
흐르는 물 문틈에 새어든다.
숨어 사는 마음 그대로
약초 캐러 산봉우리 올라서
천 길 높이 암벽을 타넘으니
만무(萬畝)의 땅에 쑥대만 더부룩하다.
산을 쳐다보며 낙랑장송 기리며
산야를 보자니 버들가지 애처로운데
장릉(長陵)의 언덕 위로 자라며
사바세계 맑은 냇물 오른편이다.
시원한 바람결에 번뇌 씻으며
차가운 샘물에 두 손 적시니
신명(神明)의 기분 상쾌하고
봄철의 덤불가지 덥수룩하다.
3재(才)를 아득히 제도하리라.
있는 듯 없는 듯 신명 망하여
유람하면서 숨은 언덕과 함께하면서도
천지변화에 이어지는 팔 없는 것 부끄럽네.
15) 영회대덕선사산거시(詠懷大德禪思山居詩) 지도림(支道林)
(1) 영회시(詠懷詩) 5수
[1]
우두커니 앉아서 송장 부리자니
해와 달이 오고감만 거듭하는데
약상(弱喪)11)은 풍파에 시달려
흐르는 물살 만물을 유전케 한다.
중도(中道)의 높은 말씀 흘러 넘치니
고즈넉이 중현(重玄)12)만 감상할지라
중현을 뉘라서 허용하리오.
진여(眞如)를 따르고자 도리를 되새기도다.
속박을 벗어나[苟簡]13) 나를 위하는 것으로 양식을 삼고
한가로이 거닐며 나를 없애어
빛나는 마음이 거울 같으리.
허무(虛無)를 담아 자연(自然) 비추네.
켜켜이 쌓인 마음도 사라지고
조짐 없는 감회만 새롭구나.
물상(物象)을 이리저리 바라보려나
전우(全牛)조차 일찍이 못 보았다.14)
수염난 물고기 귀하다 하나
정말로 조용한 것은 통발을 잊는 것이네.
[2]
가부좌 틀고 경개 마주하자니
그윽한 사유(思惟)가 망망하구나.
거만하게 앉아서 정신의 고삐를 수습하며
이름난 책마다 거두어 본다.
노자는 한 쌍의 그윽함 입에 담았고
장자는 태초(太初)와 더불어 노닐더라.
청풍(淸風)을 모아 읊조리려니
생각마다 모두가 즐거웁구나.
넉넉한 문질(文質)을 굽어보자니,
우러를수록 두 사람[二匠:노자와 장자) 떠난 게 안타까운데
주하(柱下)로 가본들 쓸쓸할지니
텅 빈 몽읍(蒙邑)만 적막하구나.
천 년의 일이 크기만 하니
몸을 소멸시켜 공무(空無)로 돌아가노라.
무(無)가 어찌 손상될 수 있으리오.
만 갈래 돌이켜 한 길로 나간다.
도는 명상을 귀히 하는데
망상(罔象)15)만이 현주(玄珠)16) 꿰어내니
탁수(濁水)가 언제나 맑을지 한심스럽네.
맑은 냇가 비칠수록 잊기만 한다.
돌이켜 비춰야 맑아지리라.
도부(道符)를 간직하고서
마음을 세밀히 하니
형태 있는 물건마다 뚜렷하구나.
사람살이 내쳐 버리고
홀로라도 신명에 머물리라.
[3]
햇살 봄철의 밭둑에 내려 쪼이니
흘러가는 세월만 한스럽구나.
만물의 감화 그려볼지니
쓸쓸히 시운(詩韻)만 부쳐본다.
천태(天台)의 봉우리 그리울진대
험한 암벽만 치켜볼지라.
찬바람이 난초 수풀에 어리어
온갖 소리 연주하여 맑은 음률 타노라.
하늘 끝에 머물며 애써 볼지니
신명이 트여 윤택하기만 하구나.
노을 비쳐 붉은 모래 물총새 비칠지니
싱그러운 영지(靈芝) 오색도 영롱하구나.
우거진 수풀 골짜기마다 깊어지는데
한가로운 석실(石室) 안
그 속에 화토(化土)가 서려 있구나.
몸 바깥으로 그물 풀어낸다.
아무런 꾸밈없이 유심경계(有心境界) 누르려니
현리(玄理)를 휘둘러 생각 지우고
오롯한 몸은 형체 다하니
신우(神宇)가 넓기도 하도다.
돌이켜 조화(造化)도 없애고
사람살이 모양새 잠깐 보자니
원컨대 이 한 사람 자취 따르되
걸음을 높이해서 지팡이 휘두를거나.
[4]
삿된 것 막아서 방안 치우고
고즈넉이 비워서 진리 챙길새
생각마다 바위틈으로 흘러간다.
어둠 속 가운데 사람 찾는다.
그윽한 기풍 다하는 게 슬픈데
밝은 태양도 혼돈(混沌)에 물들지니
이 시절 도를 묻는 이 잠자며
다니며 노래 부른들 무엇을 인(因) 삼을까.
신령한 냇물은 물살도 지지 않는데
4악(岳)에 티끌조차 남지 않았네.
내가 그 모퉁이 맴돌 제
수레 물리고 비륜(飛輪) 매었다.
샘물 마시며 예천(醴川)처럼 달게 여기며
산 열매 따다가 시절의 진미 삼았네.
숲 속으로 가벼운 발자취 남겨 가면서
돌틈 사이로 이 한 몸 가렸다.
허무를 기려 마음 광명 익히고
덜고 덜어내어 예전 신명 돌이켰으나
애틋한 마음 번뇌 여전할지니
간간이 중기(仲氣) 새로워진다.
가까이 갈수록 이 구역 손님 아니니
멀리 갈수록 세간 바깥의 신하도 아니리.
담담하니 꾀하는 바 없으니
외로울 때 스스로를 벗삼는다.
땅의 기틀 대쪽만이 곧을지니
하늘의 햇살도 영수(穎水)로 흐른다.
신묘한 이치 급히 하여도 빠르지 못하니
도의 깨우침에 지름길 없구나.
돌사람 따로따로 우뚝할지니
그윽함 거머쥐고 기틀 살피노라.
[5]
내 한평생 무엇을 흩뜨렸을까.
나누고 나누면서 천정(天挺:자연에서 받은 재능)조차 업신여기니
무(無)에 깃들어 그윽한 곡조 거꾸로 하며
변화하여도 울창해지지 않는다.
햇수만 덧없이 흘러가
유유히 도화(道化)할 날 기약하는데
머리를 기울여 그윽한 기슭 바라며
생각은 그래도 옳게 하지 못했네.
살아가는 갈래 열세 가지이려니
날마다 죽는 때만 가까운데
원컨대 몸 안 받는 이치 얻어서
도가 높아져 조짐 없는 적막에 깃들지라.
(2) 술회시(述懷詩) 2수
[1]
난새가 날며 곤륜산에서 울지니
고고한 뜻이 명허(冥虛:어두운 터)에 펼쳐진다.
있는 듯 없는 듯 영한(靈翰)을 휘도는데
피곤한 날개 쉬고자 남쪽 기슭[南嵎]17)에 깃든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연단을 따고자 잎사귀를 물었다.
드높이 울부짖으며 예천(醴泉)의 샘물 마시는데
고개를 펴고 신명(神明)이 오동나무에 오른다.
대숲에 날개를 의탁하고
묘한 바탕 길러가니
현도(玄道)의 운수 태평만 바라노라.
고개 숙이고 영부(靈符) 기다리는데
언제나 강물이 맑아지려나
아름다운 사람을 도와 노를 젓는다.
[2]
총각(總角)이 대도(大道) 기약하며
약관(弱冠)에 쌍현(雙玄) 헤아렸다.
천하를 다니며 넝쿨을 거뒀으니
걸음새를 높이 하여 태초 이전 찾았다.
묘하게 덜어내어[妙損]18) 현도(玄道)에 벼슬하며
물살 거센 냇물마저 잊었다.19)
만사에 달관하여 못하는 게 없으니
자연의 이치 누업(累業) 내치네.
이치 다하여 신령의 장작불(靈薪)20) 늘리고
빛나는 신령의 불길 길이 전한다.
즐겁기가 조짐조차 없으니
세상 다녀도 편하기만 하구나.
기름진 먹을거리 별 맛 없으니
부드러운 것 악기 소리 아닌데
마음 지우고 만물에 맡긴 채
인연 따라 베풀어 거둔다.
(3) 영대덕시(詠大德詩)
그윽한 마음 현리(玄理)에 두었을새
조짐조차 없는 풍모 어찌 넓다고만 이르리.
만 가지 부류에 영화 드리우니
생사의 갈래가 황홀키만 하구나.
진여(眞如) 크게 맑혀서 잊었을진대
지혜의 물 대어 만물 기른다.
듣자니 예전에 포정(庖丁)이
칼을 쓰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말씀 아닌 말씀을 이어나가
중생 살피되 힘들다 저버리지 않는다.
저이가 틈을 살피듯
고요한 빛을 던진다.
제도 이루고자 밀고 당기며
마음 지우고 물상 따르니
법의 즐거움 가슴 충만하며
신령한 감회 흘러 굽어보고 우러른다.
천지와 같으면서 만품(萬品)과 다르나
사냥하는 그물 가득 드리우듯 하고
바다 건너 마음 고향 찾아가니
천지를 고루 기르는구나.
(4) 영선사도인(詠禪思道人:선사 도인을 읊음)과 서문
손장락(孫長樂)이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 그려내고서 아울러 찬송을 부쳤다. 굽어보심 마주하고 성심(誠心)을 다했으니, 구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이 하였다.21) 바위와 숲의 기세를 절묘하게 그려 넣은 것이 마치 그 사람이 이에 있듯이 하였다.
내가 그 작품을 기리고 그 문장을 아름답게 여겼으니, 잠자코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에 시 한 수 지어서 그 왼쪽을 이었으니, 이같이 읊었다.
구름 자욱한 봉우리 태초(太初)에 어리는데
솟구친 산등성이 펼쳐져 있다.
굽이진 계곡에는 난초 덮인 샘이 있고
높다란 봉우리 아름다운 나무 끼고 있다.
울창한 그늘에 금수가 노닐고
들쭉날쭉 골짜기 시냇물 길을 막는데
그 속에 충희자(冲希子) 깃들어 살고
앉은 모습 비단에 그려낸다.
자강(自强)이 불식(不息)하여 하늘보다 날래고22)
의지 약한 이 가볼 수도 없다네.
옥 같은 바탕 서리보다 엄하고
맑은 갈래 치닫는 게 늠름하다.
마음을 가리켜 한송(寒松)과 마주하고서
섣달그믐 햇수 지나도 다시 온다 이른다.
두 갈래 자취 사이 마음 보듬고
참선하느라 여념 없다.
하나를 내던져 관능(官能)의 앎 지우고
신명을 터득해야 두 가지 거둘진대
매미 허물 벗듯 몸 이어가며,
쌓여진 열 가지 허물 지그시 살필지라.
마음을 달아매어 평지풍파 없애고
공부를 깊이 하여 거친 생각 없애니
마음 거두어 험한 살림 지우는데
개울가 조심조심 건너간다.
통발 드리워 6근(根) 청정 이루고
공(空)에 들어가 7주(住)를 묻는데
허무(虛無)로 떠나가 기연(奇緣) 타고 오실지니
중생을 길이 다스리노라.
(5) 영산거(詠山居)
5악(岳)이 신기(神基) 받칠진대
4독(瀆)23)에 큰물 인다.
움직이면 보는 것마다 슬기로우며
잠자코 있으면 어짊을 드러내노라.
세상살이 즐기지 않고
상주(常住)하는 인(因)을 기릴새
근원 찾아 종고(終古)로 거스른다.
토굴 살면서 일민(逸民) 그린다.
바위 틈새 깃들어 깨끗이 씻으니
금성(金聲)이 기수(沂水) 가에 어리고
화장(華藏:聖經) 펼칠새 꽃내음 자욱하구나.
베옷자락 떨치며 티끌을 없앤다.
자취 따라 길가는 게 확굴(蠖屈) 여전할지니
대도로 나아감이 용트림하듯 하구나.
험준한 산자락 표범조차 가까이 못 하는데
분별 내면 수양(首陽)의 진리 아니다.
숲 속 산등성이 길이 머물며
고즈넉이 도균(陶均)24)에 맡긴다.
16) 염불삼매시집(念佛三昧詩集)의 서문 진(晉) 여산(廬山) 석혜원(釋慧遠)
서(序)하나니, 삼매(三昧)라 이르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올곧게 하여 마음을 쉬는 것이다. 생각을 올곧게 하여야 뜻이 하나되어 나뉘지 않으며, 마음이 쉬어야 기운이 비워져서 신명이 낭랑해지고, 기운이 비워져야 지혜가 환히 비추게 되는데, 신명이 낭랑해지면 꿰뚫지 못하는 바가 없어진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자연의 그윽한 부절(符節)일진대, 하나로 회통(會通)하여 쓰임새를 이룬다. 이로써 공경(恭敬)을 바로 지켜야 만물에 감하고 신령에 통하게 된다.
마음을 바로 다스려서 거동마다 유미(惟微)로 접어들게 하는, 이 같은 가수(假修)로 신명을 거둘지니, 이처럼 공(功)을 쌓아서 성품이 옮겨지는 것도 마치 저 시동(尸童)처럼 좌망(坐忘)에 머물며 그윽한 감회를 지극히 하여, 지혜로 우주마저 떨구고 어둠 속을 헤치며 대방(大方)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시초를 약술하자면, 보살이 처음 도위(道位)에 올라서 현문(玄門)을 엿보고 적멸무위(寂滅無爲)를 체득하여 이루지 못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그 신변(神變)에 이르면, 짧은 것을 변모시켜 상도(常度)를 혁신하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 에워싸게 하는 것이니, 3광(光)도 경개를 바꾸어 비춤이 변하게 하며, 천지를 둘둘 말아 품 안에 넣는 것이다.
또한 여러 삼매는 그 이름이 아주 복잡한데, 공을 높여 쉽게 이르는 것은 염불이 우선이다. 현묘함을 다하고 적멸(寂滅)을 거두는 이는 누구든지, 바로 ‘여래(如來)’라고 기려 부르게 된다. 신명을 거두어 변화시켜서 응하지 못하는 처소가 없어야 이 같은 정(定)에 들게 되는 것이다.
우두커니 앎을 잊어야 인연하는 바가 거울같이 될지니, 밝음을 안으로 비추어 만상(萬像)이 여기서 거듭나는데, 이는 귀와 눈으로 보고 들을 바가 아니나 보고 듣는 것마다 여기서 이뤄진다. 이로써 못처럼 깊은 허경(虛鏡)의 바탕을 보고 나면 바로 영근(靈根)을 깨우쳐 하나로 거두어 자연히 맑고 밝게 된다.
현음(玄音)으로 마음을 두드리며 그 소리를 경청한다면, 진루(塵累)가 매번 녹아서 막혔던 마음이 밝아질 것이니, 천하의 지극히 묘한 법이 아니고서야 어느 것으로 이에 견줄 것인가? 이로써 보자면 한번 감응하기만 하면 바로 오래된 습기(習氣)의 흐름을 헤쳐서 혼미한 세속의 미혹을 갈라내게 된다. 따라서 한낱
필부로서는 저 여러 가지 정(定)의 소연(所緣)을 논하여 그 우열을 따지지 못함을 익히 알 수 있으리라.
이로써 법을 받드는 여러 현자가 생각을 일규(一揆)로 거두어 이에 계합하고, 촌음(寸陰)의 시드는 그림자에 감하여 오는 과보가 아직 쌓이지 않았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이것이 법당에서 마음 씻으며 소매를 바로하고 청정으로 향하고자 한밤중에도 잠자는 것도 잊으며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닦아가는 소치이다.
저 올곧은 공덕을 쌓아가고 3승(乘)에 형통하려는 뜻을 세우는 것은 오로지 피안에 임하여 9연(緣:법상종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인연)과 함께 가려는 바이고, 곧추세운 창끝을 타넘으며 고개를 수그리고 약한 이를 부축하여 나아가는 것은 뒤따라오는 이에게 방책을 일러 주려는 바이다. 이처럼 많은 휘한(揮翰)을 보고서도, 어찌 헛되이 그 글만 외울 수 있겠는가?
17) 염불삼매시(念佛三昧詩)와 불보살찬 진(晉) 왕제지(王齊之)
[1]
오묘한 쓰임새 그윽한데
이리저리 살펴도 보이지 않네.
신명(神明)으로 어둠을 제치고
심식으로 추업(麤業) 밝힌다.
조금씩 쌓아서 스스로를 이끄는데
공들여 허무(虛無)의 뿌리 이룰지니
3관(觀)으로 저것 가려서
이것 망하면 편안해지리라.
[2]
공법(空法)이 한나라로 흘러오니
그윽한 이치가 극미(極微)에 통한다.
한데 거두어 나아갈 바 잊으니
심령(心靈)의 빛을 넓혀서
마음이 구역에 매여서는
기틀을 밝히지 못하려니
비우는 것으로 쓰임새 삼아
희유법(希有法)을 터득하노라.
[3]
마음은 하늘을 밑천 삼아 어리는데
아침 구름 언저리로 비춘다.
교화에 감응하고자
만물과 더불어 무리 짓는다.
다른 방도 없어서
받는 것은 자기 문제라
고즈넉이 연못처럼 비추는데
금빛 물결 위로 티끌만 어지럽네.
[4]
내 한평생 한탄스러운 게
전생에 지혜 없던 것이라
거룩하신 분께 의지하여
명감(冥感)의 힘 얻고자 한다.
생각 돌이켜 공덕 키워서
헤아리지 못하도록 깊고
지극하기만 바랄지니
이 마음 서쪽으로 기우누나.
(1) 살타파륜찬(薩陀波倫讚)[반야대(波若臺)를 이룩하고서 찬송시를 짓는다]
아득하구나. 통달한 분이시여,
그윽하신 공이 후대에 미쳤으니
구택(九澤)을 잠저(潛邸)로 삼으시나
밝으신 모양 모시지 못했다.
운수 트여야 만나뵐 수 있으리니
마음으로 그 자취 더듬어
꿈속에서 혼백이라도 찾아가면
성인을 만날 수 있으려나.
(2) 살타파륜입산구법찬(薩陀波倫入山求法讚:살타파륜이 산에 들어가 법을 구하는 찬)
물소리도 거센 깊은 산속에
그윽한 정성 분발하여
흐르는 물소리 귓가에 담고서
즐거이 세수하고 아침 길 떠난다.
명을 받들어 밤길 떠나니
백 갈래 생각이 묻히나니
가슴 두드리며 서원(誓願) 세우고
교화하고자 성령(聖靈) 내리시네.
(3) 살타파륜시오욕공양대사찬(薩陀波倫始悟欲供養大師讚:살타파륜이 비로소 깨닫고서 대사에게 공양하는 찬)
돌아갈 길 열렸으니
영부(靈府)의 관문 다시 열린다.
신묘한 공덕 헤아리기 어려우니
덜어내기를 기다려야 이로움 생긴다.
도의 믿음 지극하여 몸마저 잊었으니
법의 환희 기약 없이 만났구나.
당신 같은 성인 아니고서야
뉘라서 그윽한 방편 찾아볼 건가.
(4) 담무갈보살찬(曇無竭菩薩讚)
깊숙한 연못 같아서
그윽한 도 다함없으니
대학(大壑)과도 같아서
백 갈래 냇물 흘러든다.
피안의 기슭 끝없을진대
갈 길 멈추지 않는다.
세 가지 흐름이 열렸으나
이에 모두 묻히리.
(5) 제불찬(諸佛讚)[염불하다가 성령(聖靈) 임하셨다]
묘하시구나, 정각(正覺)이시여.
심묘한 바탕 없는 듯
있는 끝이 없는 듯 거동하시고
비어 있지 않는 듯 머무실지라.
화하여도 변함 없어서
그릴려도 새기지 못하고
저와 같이 참된 성품 밝혀서
이와 같은 중생들 비춰 주신다.
18) 법락사(法樂辭) (12장) 제(齊) 왕융(王融)
(1) 본기(本起)의 노래
천지는 장구하나 내 목숨 짧을지니
세상사 촉박하나 대도(大道)는 유유하네.
선정(禪定)의 길 아득히 수레 부리고
애욕의 바다에 쪽배 띄우리라.
진루(塵累)는 아직도 다하지 못하였다.
마음의 나무 어찌 헤아리려나.
정(情)의 티끌 어이 씻어내려나.
선정의 물결만 도도히 흐르는구나.
(2) 영서(靈瑞)의 노래
백신(百神)도 삼가 인사 올리고
삼령(三靈)도 이른 아침 문안드렸다.
늘 하는 삼요(三曜) 구천(九天)에 빛나니
훈풍에 달도 흔들리네.
화려한 단청 옥 같은 문설주
푸른 빛 감도는 붉은 궁궐
최우(翠羽)도 헛되이 내린 게 아닌데
수레바퀴 어찌 헛되이 움직이리.
(3) 하생(下生)의 노래
순임금 햇수에 춘삼월도 반절인데
밤하늘 명성(明星)은 멀지 않으니
천사(千祀)로 이어진 햇수 빛나니
만국에 가상(嘉祥)이 내렸다.
금빛 용안에 노을 빛 비치는데
짙푸른 나발에 아침 햇살 드리우고
진토(塵土)에 정각(淨覺) 드리우셨으니
세속이 모두 윤황(輪皇) 기리네.
(4) 재궁(在宮)의 노래
기운 어려 이궁(離宮)에 내리시니
들보 거듭 올린 전각이 떠들썩하구나.
아름다운 메아리 심신에 울리니
수려한 모습 축하하려나.
끝끝내 생로(生老)에 얽매이고
병사(病死)에 재촉받는데
정국(淨國)을 유람하면서
어찌 위성(危城)에 미련 있으리.
(5) 사유(四遊)의 노래
봄철의 가지 시드는 게 많고
가을철 잎사귀 오래 못 가니
마음도 끝내는 시들어 없어지고
사랑도 잠시 이루었다.
바람 밀려 북망산에 떨어지듯
냇물 동영(東瀛)으로 흐르듯
3승(乘)을 알고서야 마음 개운하니
1승을 얻어 몸을 다스리노라.
(6) 출국(出國)의 노래
채찍 날려 도성문 나서고
의젓하신 자태를 나무 밑에 드리웠네.
아비의 사랑 헛되이 그리워하고
규방의 한탄 서러움만 더한다.
풍모가 이미 옛자취 아닌지라
준마만 홀로 돌아갔네.
소매를 들어 사람들과 하직하고
도를 얻고자 발길 돌리시네.
(7) 득도(得道)의 노래
마음 밝혀 10력(力) 넓히시고
깊은 사유 4선(禪) 통하셨네.
축생도 거룩한 자취 받들지니
거울처럼 맑은 모습 냇물보다 더하네.
영취봉에서 정법 전하시고
녹야원에서 현도(玄道) 다하셨는데
세간의 보배 희유할진대
무엇으로 몽천(蒙泉)을 제도할거나.
(8) 쌍수(雙樹)의 노래
밝디 밝은 둥근 달 맑은 빛 뿌리니
동틀 무렵 아침에 서리 엉긴다.
기슭에서 거닐지 않고
덤불도 다하였다.
신령한 지혜 항상하고,
중생을 굽어보고 모자란 것 채우시니
운수에 감응하시어 오셨으나
고삐 매인 사람살이 여의셨구나.
(9) 중현(衆賢)의 노래
춘산(春山)의 옥 곳집에 두고
단림(檀林)의 향기에 머무셨으니
불피워 연기 사이로 가셨도다.
냇물 막아 다리 놓으셨다.
암원(菴園)의 자취 하나일지며
기원(祈園)의 갈래 한 길일지라
고금에 견줄 이 없으니
굳센 기개 연나라ㆍ제나라 어이 이을까.
(10) 학도(學徒)의 노래
예전에 내가 세월 홀시했는데
지금에야 광음(光陰) 중한 줄 아노라.
규방에 연지 곤지 늘어놓고
그 아래 비녀 꽂아 놓았다.
선열(禪悅)의 법음(法音) 겸하니
법의 즐거움에 가야금도 잊었구나.
같고 다름을 가리기 어려우나
총애(寵愛)와 수욕(羞辱)에 누가 마음쓰려나.
(11) 공구(供具)의 노래
솟구친 전각 하늘 찌르는데
대숲 사이로 바람 불어온다.
청한(淸漢)에 향기 넘치는데
그윽한 메아리 구름에 서린다.
노란 꽃 분분하니 우거졌는데
보배나무 푸른 잎 울창하구나.
곧은 마음 청정 경계 연하니
깊은 도업(道業) 천궁마저 숭배한다.
(12) 복응(福應)의 노래
그림자 메아리 달리한 적 없으니
어둡다 밝았다 다시 친해진다.
넓으신 자비 멀리 드리우니
예후(睿后)께서 티끌을 털어 주시네.
구역마다 하늘 같은 복 기릴진데
환우 바깥에 깊은 어짊 세례 받는다.
만방에 흐르니 나라의 경사인데
억조창생이 당나라 백성 즐겨하노라.
- 서현사청강필유저원응사도교(栖玄寺聽講畢遊邸園應司徒敎:서현사 에서 강의가 끝나고 저택의 뜰을 거닐며 사도의 교시(敎示)에 따름) 제 왕융
훌륭한 도업(道業)은 실로 원대할지라.
마음 쉬면 지옥도 갈라지려니
계수나무 울창하니 길렀는데
섬돌 위 난초꽃 피어난다.
허공 끝 추녀는 먼 산에 마주하는데
고루거각에 장생(長生)의 금액(金液) 임하니
싱그러운 풀 줄지어 피어나고
좋은 나무 울창하니 자라났구나.
바람에 불리어 가던 길 돌이키니
경수(逕水)의 맑은 물살 교석(喬石)에 넘실대는데
서산에 지는 해 노을 어리고
소나무 물에 비치니 꽃마저 푸르다.
화창하구나. 사람살이 바깥 경계여,
봄의 한낮도 어느덧 황혼진다.
19) 술삼교시(述三敎詩) 양무제(梁武帝)
어릴 적 주공(周公) 공자(孔子) 배워서
약관에 6경(經)을 떼었다.
효도와 의리는 책마다 연이었고
어짊과 용서는 단청마다 가득하다.
말마다 남의 나라 정벌 기리면서
착하게 잘 살아라 말을 바꾼다.
중년에 다시 도가(道家)의 책 보거니
유명(有名)이 무명(無名)과 함께한다.
금조각 녹이는 묘한 술법
진언(眞言)을 상청(上淸)에 숨겼다 하며
남모르는 행실로 음덕(陰德) 보태서
오래 사는 일만 드러내더라.
늘그막에 석가의 두루마리 펴보니
달빛이 뭇 별에 비추듯
고(苦)가 쌓인 것 처음으로 깨달았으니
인과가 더욱 분명하도다.
평등을 해치지 아니하고
지극한 이치로 무생(無生)을 돌이키더라.
분별의 뿌리 하나 되기 어려우니
성품에 집착하면 놀라기 쉬울지라
이치를 다함은 2성(聖)도 못할진대
선업의 헤아림 3영(英)도 아닐세라.
대춘나무 1억 자도 넘게 클진대
작은 풀 베어내도 다시 자란다.
큰 구름 밀려와 단비가 내리는구나.
분수 따라 각자 영예 누리고
마음에서 다른 소견 생겨날지니
보응(報應)이 서로 다르다.
차별을 어찌 지으리.
깊고 얕음은 각자 알아서 정할지라.
20) 개선사법회시(開善寺法會詩) 양 소명 태자(昭明太子)
둥지 위 까마귀 날지 않듯이
수레를 산장으로 몰게 하였다.
허리 굽혀서야 마령(馬嶺)에 오를지니
구절양장(九折羊腸) 산길 굽이굽이 거친다.
비로소 넓은 고원을 보니
차츰 산봉우리 훤하게 보이는데
낙성대(落星臺) 멀리 수풀 속 가려져 있고
아침 햇살에 새로이 안개 인다.
기러기 깊숙한 연못가 서려 있으며
찬바람이 밤서리를 녹이고
이 땅 참으로 고즈넉하니
넓은 공지에 도량 있구나.
옥수(玉樹)에다 맑디맑은 시냇물
법당의 장막과 금색 보좌
자색 기둥과 산호 같은 땅에다
신령한 당번 달을 가린다.
넝쿨 쥐고 돌계단 오르는데
계수나무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비스듬한 계곡물은 해[日]도 쉬고 싶으니
솟구치는 안개에 누각이 가로 잠긴다.
어이해야 천사(千祀)를 이어가서
백대(百代)를 우리 황업(皇業)에 돌이키려나.
신공(神功)의 비춤도 지극하지 못하니
지혜 거울 구별 없이 비춘다.
법의 수레 어두운 방 비치는데
지혜 바다 자비로 건네주려나.
근(根)과 진(塵) 씻지 못하여
광명 내리기만 바라네.
21) 망동태사부도시(望同泰寺浮圖詩)와 화답시 양 간문제(簡文帝)
멀찌감치 보이는 관불도(觀佛圖)
벽옥 두르고 구슬 이었네.
촉은(燭銀)25)은 한나라 미녀보다 고울지니
보탁(寶鐸)은 곤오(昆吾)보다 매서우리.
햇무리 일었다 지는데
바람소리 은은하니 예사롭지 않은데
서리는 노반(露盤)에 가득하고
오동나무 봉황이 새끼를 친다.
황혼의 노을 속 당번(幢幡) 나부끼고
한낮의 새는 아침 결 산오리 가벼이 보며
청정한 경계 하늘 아래 업신여기니
응진(應眞)은 경개조차 가린다.
수레 끄는 말마다 옥방울 매둘지니
여섯 푼 하늘 옷 가벼울지라
즐거운 생각을 길이 드러내니
다보탑 그 모습 보여 주네.
고해를 건네주시고
거만의 산을 타넘게 하시려나.
원컨대 4인(忍)과 같이하시어
9거(居)26)를 벗어나게 하사이다.
(1) 봉화(奉和:화답시) 왕훈(王訓)
임금 모시고 높은 누각 앉았자니
성문 바깥 수풀도 무성하구나.
옥문(玉門)이 팔방에 열렸으니
탑은 천 길이나 솟아 있다.
겹지른 두공이 한수(漢水)를 비추이니
박공은 구름 사이로 솟아 있다.
곤륜산 옥을 다듬고
여수(麗水)의 금을 새긴다.
현반(懸盤)은 두 손 받쳐 올리는 듯
수봉(垂鳳)은 날아가듯 걸려 있네.
달이 지니 서쪽 추녀 어두운데
해가 지니 기둥 동쪽 캄캄하다.
흐름 되돌려 지혜 부촉하시고
글을 새겨 신금(神衿)을 울리시니
원컨대 법주(法舟)의 도반 되시어
애욕의 강물 길이 여의게 하소서.
(2) 봉화(奉和:화답시) 왕대경(王臺卿)
아침 햇살 마주하여 눈부신데
솟구친 보탑 천 길 넘는다.
봉황(鳳皇)의 모습 영조(靈鳥)27)와 다른데
금반(金盤)이 선장(仙掌)을 대신하네.
박공은 서까래 드리우고
높은 추녀 구슬발을 드리웠네.
보배로운 땅 금모래 깔린 듯
풍경의 소리 그윽함 더한다.
갈고 새겨서 천변만화 이루고
단청마다 삼라만상 그려내니
노을 때때로 서리면서
신선이 오고 간다네.
아침 안개 가로 서리는데
하늘 높이 당번은 구름에 닿아 있네.
무지개 어려서 그치지 않는데
곤계(鵾鷄)가 어찌 우러르리.
선법(善法) 기려서 철인(哲人) 도울진대
음풍명월(陰風明月)에 양변(兩邊) 밝아지려니
배를 빌어 말세를 항해하고자 하니
저 피안 누가 넓힌다 하겠는가?
(3) 봉화(奉和:화답시) 유신(庾信)
아득하기가 상청(上淸)보다 높을지니
그윽한 법당 동경(東京)에 비기고
긴 그림자 쌍궐에 드리우니
높은 누각 구성보다 더하네.
높은 박공 가는 구름 막을진대
나부끼는 당번에 새도 놀란다.
봉황새 여기 머무니
연꽃 여기 처음 열리듯 한다.
겹겹의 보륜(寶輪)은 만월에 마주하고
목탁소리 난새 울음 비슷하니
냇물 흐르고 샘물 솟구치는데
뜬구름 엷은 빛이 있다.
서리되어 노반에 떨어져
아침 햇살에 구슬 더욱 빛나니
널리 원림까지 환해지고
은빛 나는 햇살 모래성 비춘다.
천상의 향기 계성(桂城)에 어리고
신선조차 저 통발에 잠겨들어
8해탈(解脫)의 즐거움 귀 기울이니
6진(塵)의 숙정 이에 다한다.
(4) 야망부도상상륜(夜望浮圖上相輪:밤에 부도 위의 상륜을 바라봄) 간문제
빛 가운데 봉황 드리우고
난새는 안개 속을 날아가네.
정(定)의 쓰임새 물에 있으니
노반(露盤)에 퍼다 부으리.
22) 부영오음식문시(賦詠五陰識文詩:오음식문을 읊는 시) 간문제
씻고 닦으나 신묘한 인(因) 어두우니
형태에 다시 색을 더하여
욕망의 파도 애정 따라 이는데
애욕의 그물 마음에 연한다.
금을 녹여 모습 고쳐도
다하지 않도록 점치더라도
합관(鴿觀)은 어쩔 수 없으니
기어오르는 원숭이 이로써 쉬련다.
23) 부영백론사죄복시(賦詠百論捨罪福詩) 유효작(劉孝綽)
인(因)의 갈래 서로 달라서
버리고 취하고 여념 없으니
괴로움 다하면 즐거움 이르고
즐거움 다하면 괴로움 온다.
어찌 애욕 좇아 윤회하려나.
모두가 애욕에 녹만 먹으니
마음자리 낱낱이 가려서
탁한 고락(苦樂)의 흐름 맑히리라.
24) 몽화림원계시(蒙華林園戒詩) 간문제
세간 즐겁다 탐닉하려니
세속 사람 헛된 이름 기릴지니
3공(空)을 다하기 어려울새
8풍(風)에 늘 거꾸러지네.
너와 내가 한 가지 만물일진대
한 번 시들고 한 번 피어날진대
어린 나이로 하여 기영(箕穎)28)을 아꼈으나
잠깐 사이 늙은이 되리라.
즐겁다고 쫓을 바 아니니
끝끝내 어려움만 부닥치리.
규(珪)를 집고 번국(蕃國)을 지킬지나
대기(大器)의 주인 되어 바로 하리라.
예전에 은자(銀字)를 써보다가
지금에야 고목에 피는 꽃 그려 볼진대
옥새를 옆에 차더라도
공덕 기리는 소리 무엇에 기인할꼬.
높이 자리하되 깊은 생각 못할지니
가슴 속 가득하니 근심뿐이라
내 말 거짓 아닌 진담이려니
단심(丹心)이 밝아지네.
지혜 말씀 따라서 법주(法舟) 부릴진대
중생을 이끌고자 황정(皇情)을 내리노라.
마음의 등불 켜서 어두운 방 밝힐진대
쪽배 저어 애욕 바다 벗어나리.
이 시절 늦가을 하늘도 높을진대
천기(天氣)가 맑기도 하구나.
문에는 빛살이 어리는데
해마다 구름 드리우기 기도한다네.
붉은 부용꽃 옥 소리 울리는데
자색 서리 붉은 기둥 적신다.
잎사귀 드문드문 오솔길 드러나니
샘에 산새 소리 지저귄다.
푸른 도포자락 나루터 메우는데
상투 튼 머리 수풀 헤치며 나아간다.
8해탈 크신 은혜 입고자
6진(塵)을 가벼이 한다.
법문 듣고 떠나가는 때
도성조차 아끼지 않으리.
25) 몽예참직소시(蒙預懺直疏詩)와 화답시 간문제
황정(皇情)이 덧없는 세속을 불쌍히 여겨
성왕의 덕이 어두움을 걱정하신다.
교서 내리시어 거두어 주시니
사륜(絲綸)이 지혜의 문을 열었다.
당시의 영웅이 나라에 가득하고
법려가 천원(天園)에 가득하다.
5도(道)의 얽매임 함께 끊었고
4생(生)의 원수를 소탕한다.
3승(乘)으로 애욕의 날랜 말 다스리고서
6념(念)으로 마음 원숭이 달랬다.
뜰 깊숙이 수풀 점점 묘할진대
고즈넉한 땅에 새소리만 가득하구나.
상천(上天)에 바람 불어 법고(法鼓) 울리고
풍경 소리 누각에 어린다.
새로 맺힌 매화꽃 피울지나
계수나무 지는 잎에 덮여지노라.
아침나절 자욱한 안개 돌계단 묻히려니
찬 물결 문을 적시네.
하루아침에 가르침 받고서
얽매임을 풀어지기 바라노라.
(1) 화답시 양무제
옥 같은 샘물도 다하려니와
금문(金門)의 광채 어리지 못할지라
천상의 즐거움 들어보자니
청정한 소리가 사방에 울리네.
맑은 물로 몸의 때 벗길새
참회하여 마음 맑힐지니
시든 풀도 다시 자라고
가지마다 울창해지네.29)
(2) 봉화황태자참회응조(奉和皇太子懺悔應詔:황태자의 참회시에 화답하며 조칙에 응함)와 서문 왕균(王筠)
황태자 참회시에 화답하여 황신(皇宸)에 받들어 올렸다.
망극하게도 성지를 내리고 소(疏)를 보내셨는데, 모두 열 개의 운(韻)이 부치셨다. 마음 기쁘기가 이를 데 없으니, 다시 여타의 운을 따서 비루하나마 다시 제호(題號)한다.
성지(聖智)가 성명(聖明)하시니
제덕(帝德)이 사해에 빛난다.
은혜를 속하(屬瑕)에 내리시니
해탈이 이에 있구나.
참회의 말씀 나에게 내리시니
마음 다져서 거짓을 막으리라.
이름난 스님들 정혜(定慧)로 이끄시고
조영(朝纓)이 원개(元凱)30)에 늘어섰구나.
미혹함 돌이켜 선도(善導)에 의지하니
마음 돌이켜 참답게 다스릴지나
풍경 소리 말마다 섞이는데
우뚝한 당번 백설보다 빛날지라
일찌감치 잎사귀를 떼낼지니
대나무숲 날로 싹을 틔운다.
은근히 간청 올리며
믿음 더하여 귀의하노라.
슬기롭기가 노을 같을진대
난간에 주배를 매어 놓고
이끌어 꿰이고자 하려니
저 문채 부끄럽기만 하구나.
26) 강석장흘부삼십운시(講席將訖賦三十韻詩) 양 소명 태자
강의가 파할 때, 소명 태자(昭明太子)가 서른 개의 운(韻)을 부르니, 이에 차운(次韻)한다.
법의 뜰 말리향(末利香) 은은한데
대죽 피어난 모양 아름답구나.
신령한 깨우침 그림자 지니
신선도 예서 머문다.
지혜의 이치 벽옥 같은데
난초 국화 향기 훈훈하구나.
그윽한 이치 시방 헤아리고
깊은 공덕 9축(築)에 견준다.
물결지는 연못에 쪽배 다니노라.
거리마다 금수레 가득한데
미언(微言) 끊어진 지 오래일지라
쌓이고 쌓인 번뇌 많기도 하다.
지혜 구름 피어날진대
홍진(紅塵) 가득한 마음 항복받고자
8수(水)로 파초 잎새 적신다.
3명(明)으로 중생 눈을 띄운다.
목탁 소리 새벽녘에 울려 퍼지고
향기는 저녁나절 가득할진대
여섯 용의 공경도 물리치고
한 쌍의 생쥐 애원도 내친다.
마음 나무에 공(空)의 꽃을 피워서
마음 연꽃에 향기 머금으리.
창해(滄海)가 변하는 것에 비하고
암라가 익는 것 같다.
묘한 지혜 면면하고
깊은 말씀 유유할진대
선우(善友)를 도반 삼아서
진언(眞言)으로 고질병 고치리라.
음개(陰蓋)의 성채 평정하고
능소화 노랗게 꽃 피워서
구슬 같은 꽃 8계(溪)에 그늘 지우니
옥 같은 물결 9곡(谷)에 통한다.
나무 위 청설모 오르락내리락
구름가 기러기 오락가락하는데
높으신 말씀 좋은 시절 펼지나
배운 게 없어 안타깝구나.
따스한 햇살 원앙 둥지 비추고
솔솔 부는 바람 거미집 흔드니
지는 꽃향기만 새롭구나.
구름은 멀리 뒤엉키는구나.
널리 제도하여 상원(象園)31)으로 이끄니
수레 대놓고 우두커니 기다리네.
불길 새로우면 밝아지기 힘드니
초심자 놀라 움추려든다.
화수(花水)를 여의되
칠목(漆木)32)에 어긋남 없어서
바위 속 깃드니 아낄 게 없는데
가시덤불에 편히 쉬노라.
달뜨면 그림자 지기만 바라노니
마음의 잔재 털어 버리고
애욕이 벌집 같을새
너른 벌판 깊은 못 선법(善法)에 노닐리라.
8읍(邑)도 신선 사는 산이며
네 가지 보배 신룡(神龍)의 못일진대
약초나무 길이 무성한데
선정(禪定)의 가지 어이 시들까.
기쁜 마음의 도를 듣고자
한달음에 내달려서
보배 수레 쫓을까나
신발 벗고 뒤에서 밀을까나.
27) 단출흥업사강시(旦出興業寺講詩:새벽에 흥업사 강의에 나가는 시) 양 간문제
우거진 방초 조대(朝帶)를 다시 매고
정궁(淨宮)으로 수레 몰아 이른다.
우기(羽旗)는 그림자처럼 따르고
요발 소리 바람에 섞인다.
오(吳)나라 창대 하(夏)나라 방패
짙은 녹색 궁시(弓矢) 옆에 찬 기마병
물에 비친 버들가지 벽옥 같구나.
안개 낀 듯 복숭아 붉은 빛 감돈다.
6진(塵)33)의 얽매임 때문에
5전(纏)에 눈이 머니
무리진 청학 보고서야 잘못 깨달아
물상(物象)을 살펴도 그 이치 같지 않도다.
4변(辯)의 훌륭함 이제사 알았는데
어이 3공(空)을 이를 수 있으리오.
28) 화유상서시오명집시(和劉尙書侍五明集詩) 양 원제(元帝)
황제의 공덕 우주에 두루하다며
옷자락 드리우고 태평성대 열었다며
황당(黃唐)한 정치도 부끄러운데
자사(子似)도 아름다운 소리 부끄러워하네.
잘 다스려 5례(禮)를 펴시고
치세 공덕 6영(英)34)에 이르시며
물 대주며 신감(宸鑒) 남기시고
거룻배 부리며 지혜 성품 열지라.
왕이 많더라도 오직 법왕(法王)이시리
무생으로 나지 않음 미더울지고.
인인(因因)을 여기서 볼진대
과과(果果)도 여기서 밝혔다.
대자대비 우러르니 제왕에 짝하고
세상에 크신 이름 떨치셨으니
귀장(歸藏)35)의 서죽보다 신령하시며
노사(魯史)36)의 춘경(春卿)보다 뛰어나시다.
서기는 일궁(日宮)보다 원만하시고
청풍은 월전(月殿)보다 맑으실진대
휘장 들치고 서쪽 굽어보고
장막 둘러서 남쪽 기린다.
금문(金門)에 조고(朝鼓)를 울리며
옥호(玉壺)로 삼경(三更)에 쉴지니
궁괴(宮槐)37)는 새벽 회합을 위해 남겨두었고
성문 위 금까마귀 새벽 알린다.
서리는 가지 위로 빛을 어리는데
노을은 물 속에 그림자 드리우네.
이제 깨닫노니 매사가 헛될진대
우두커니 법성(法城)만 그리노라.
29) 봉화소명태자종산해강(奉和昭明太子鍾山解講:소명 태자가 종산에 서 강을 마친 것에 대한 화답시)과 화답시 3수 육수화(陸倕和)
종남산(終南山)38) 한나라 조정 이웃하는데
높은 산줄기 주나라 경사(京師:주나라 수도 鎬京) 타넘네.
산봉우리 하늘도 이지러지는데
황제의 도성에 둥글게 임하노라.
큰길 치달려 주관(珠館)에 이르러
밑을 보자니 산자락 가로놓였고
남쪽 보자니 회수(淮水)와 서수(漵水) 흐른다.
북쪽 보건대 창명이 아득하다.
보담(步檐)은 시절 따라 머물고
비계(飛階)는 상천(上天) 찌른다.
그물 문 운기(雲氣) 어리고
감실에 선령(仙靈) 계신다.
님께서 세속의 그물 불쌍히 보시고
널리 명하여 사람 모았다.
마지막 대도(大道)의 법회 설법 끝나니
옥재갈 물리고 교외로 나선다.
구름 자욱한 봉우리 메아리처럼 울리는데
소나무 숲에 부는 바람 정기(旌旗)에 어린다.
지혜의 심지 감당 같은데
신령한 거동 숲 속에 푸르구나.
선각자에 인사 올리고
공(空)을 전하여 나중 수레에 영화 누리리.
(1) 봉화(奉和:화답시) 소자현(蕭子顯)
숭악산(嵩岳山) 옛터 의구한데
반령(盤嶺)은 남경(南京)에 이르네.
지혜 심지 선방(禪房)이 중한데
가마 타고 거듭 도성에 이르네.
금빛 바퀴 천천히 구르고
용마는 뛰면서 울진대
갈래 길 뒤쪽에 먼지 자욱하고
앞쪽 갈래엔 풀피리 소리 청아하구나.
솟을대문 바람도 멈추니
기세가 하늘 찌른다.
기운 다하니 소나무도 멀어지고
구름 날린 가을 벌판 태평할지라.
서성이며 정읍(井邑)만 굽어본다.
펼쳐진 가운데 회수에 물 넘치니
과보(果報) 기리고 상주(常住) 우러를지라
무생(無生)에 머물자 지혜 구하네.
돌산의 자취에 잠시 깃드니
막힌 마음 열고자 함이라.
허리 굽혀 은총(恩寵)을 받자오니
도를 기리는 송성(頌聲) 듣는다.
(2) 봉화(奉和:화답시) 유효작(劉孝綽)
청학 날려 이수(伊水)가 맴도는데
말 달려 왕전(王田)을 벗어난다.
우리 황제 기원(祇園)을 다니시며
예전 광명 다시 하도다.
옥색 보개(寶蓋)에 아침 햇살 어리고
구슬 정기(旌旗)에 빛무리 어린다.
누각의 휘장 골짜기에 드리우고
붉은 비단 숲 사이로 비친다.
이 땅에 임하셨으니
가을바람 시원한 햇수 다시 하노라.
고목도 여름철 푸르러지고
그윽한 계곡에 시원한 샘물 깨끗한데
말 세우고 보좌(寶坐)에 마주한다.
말씀마다 인도(人道)와 천상 모두 즐기니
티끌 씻고자 바닷물 보태고
어둠 밝히려 연등 지피며
정법의 도반 흩어져 간다.
파리와 장검도 엄숙히 뒤를 따르는데
건너편 기슭에서 만나자 약조하면서
짝지어 가마 오르는 현자들이여.
한 수 지으라고 명령하실 제
시 한 수 못 다함이 한탄스럽네.
(3) 봉화(奉和:화답시) 유효의(劉孝儀)
순 임금 음악 소리 동서(東序)에 임하니
가마를 옮겨 서원(西園) 찾는다.
예배드리고 순례하여도
끝내 세속에 섞여 살리라.
어떻게 7각지(覺支) 넓힐런가.
옥방울 울리며 사대문(四大門) 나서니
밤기운 시원하니 피리 소리 울리고
군진에 날 밝아 벌판이 환해지는구나.
산바람에 흐린 눈이 어지럽고
처음 경치가 문원(文轅)보다 빼어날지니
숲 사이로 말 달려 보니
굽은 골짜기 우모(羽旄) 깃든다.
옥색 연기 푸른빛만 감돌고
돌 사이로 물 흘러 물보라 날리는데
중각당(重閣堂) 아래 가마 대놓고
대도에 투항하여 참된 근원 찾는다.
공(空)의 말씀이 샘물처럼 솟는데
거동 바르게 비파 소리 찾는다.
사람살이 가벼이 보다 허물 만나니
가마에다 용원(龍鵷)을 그려 놓는다.
스스로를 되새겨 읊조리려나
녹 먹는 몸으로 무얼 하려나.
30) 팔관재야부사성문시(八關齋夜賦四城門詩:팔관재 밤에 사성문에 대해 짓는 시)[전하(殿下)라는 것은 간문제이다. 당시 황태자가 되었다. 중서부군(中庶府君)이란 견오(肩吾)를 말하며 태자 가운데의 서자이 다]39) 양 유견오(庾肩吾) 등
(1) 첫 번째 부운(賦韻)
- 동성문병(東城門病)
베개 베고 누우니 애욕의 빛 다하고
병치레에 쉽게 꺾이는 삶
설산(雪山)의 약초 얻지 못하니
생각하니 북망산 구덩이일세. [제방(徐防)]
오장육부 타오르는데
뼈마디가 부스러지노라.
어찌 목숨 이리 재촉하는가.
근심 걱정 다할 날 없네. [공도(孔燾)]
- 남성문로(南城門老)
가냘픈 생마는 끊어지기 쉬운데
등 넝쿨도 위험한데 쥐마저 쏘는구나.
한 그루 그루터기 미약한지라
때가 되면 떠나야 하리. [제갈개(諸葛豈)]
백마가 치달리듯 하는데
다시 홍화열(紅花熱)에 짝하는구나.
고운 맵시 한 번 끝나면
외로운 등잔불 스스로 켜야 하리.
- 서성문사(西城門死)
마음 달리 먹었으니
시드는 경개 따진들 무엇하리.
업풍(業風) 한 번 다하면
끝내는 허망하게 변하리. [왕대경(王臺卿)]
5음(陰)도 실로 헛것일진대
6취(趣)를 어찌 다스리리.
무너지면 다 같이 돌아갈진대
근심만 헛되이 일어난다. [이경원(李鏡遠)]
- 북성문사문(北城門沙門)
세속은 아지랑이 산다는 게 헛되구나.
근심 얽힌 마음에 눈물만 흘리는데
네 가지 얽매임 물리치고서
3승(乘)의 열반 구하리. [전하(殿下)]
하학(下學)이 마음 흐름 거스릴새
그윽한 명계(冥界)도 가려지네.
슬퍼하니 상(相)과 경(境) 헛될지라
물거품 다시 사라지네. [중서부군(中庶府君)]
(2) 두 번째 부운
- 동성문병(東城門病)
공(空)의 뾰루지 쉽게 나으나
유(有)의 병치레 낫기 힘드네.
헛되이 오색(五色) 마시니
종당에 황천길이 슬플지라. [왕대경]
운산(雲山)40)의 약초 원래 없는데
병치레 뉘라서 동정하리.
고해(苦海)에 빠지는 게 슬플지니
어이해 정거천(淨居天)에 보응하려나. [제갈개]
- 남성문로(南城門老)
예전에 홍련화 벗삼았으니
물가에 노닐며 흥겨워했다.
이제야 시든 꽃나무 흡사할진대
거울 속 들여다보며 슬퍼하리. [전하]
튼튼하다던 기개 어디로 갔나.
남은 해 서산에 지는데
술잔 들던 즐거움 다시 못하니
흰 수염 누가 이쁘다 하리. [제방]
- 서성문사(西城門死)
고루거각 안 떠난다 생각하지만
무너지는 업의 이치 늘 한지라
옥갑(玉匣)에 한 번 누우면
금대(金臺)에 다시 못 서리. [중서부군]
상여 소리 아득히 들려오는데
넝쿨 그림자 소나무에 드렸구나.
뉘라서 10념(念)을 남길런가.
네 가지 연(緣) 따라 정처없이 흐르리. [군]
- 북성문사문(北城門沙門)
수풀가 거닐면서
구도(求道)의 뜻 굳어진다.
신통력 이미 있으니
석장 떨치며 저 멀리 구름 한 번 타 볼까나. [이경원]
단숨에 사홍서원(四弘誓願) 이루려니
지극한 도 뉘라서 앞장서려나.
광겁(曠劫)의 수명 탐하지 않고
오래 살건 적게 살건 상관없다네. [공도]
(3) 세 번째 부운
- 동성문병(東城門病)
한 백 년 세상살이 잔병치레라
오복(五福)이란 원래 없어서
문갑 속 뱀 기르는 꼴이라
선인의 백록(白鹿)을 어이 만날꼬. [전하]
습관 되어 그림 속 약병 구하고
누웠다 일어났다 자리 찾는데
이부자리 지리면서 즐거울 게 어디 있나
사경을 헤매느라 목석 같은데. [중서부군(中庶府君)]
- 남성문로(南城門老)
젊은 때 귀엽기가 능라비단 저리 가라.
늙어지면 왕겨보다 못하니
헛되이 문물이 성대하던 시절 애달프구나.
시를 짓는들 어이 기쁘리. [왕대경]
백발에 갓 쓴들 무엇 하리.
검버섯 늙은이 삶은 나물 같을진대
소나무 잣나무 더불고자 했는데
즐겁던 시절 언제이런가. [이경원]
- 서성문사(西城門死)
한평생 한 시절 생각하려니
원림(原林)만 흥겨이 돌아쳤으니
소나무 잣나무 그 아래 묻히려는데
춘광(春光)이 빛난다 헛되기만 하구나. [공도]
뿌리 맺어도 헛되려니
잎사귀 뼈마디 연하듯이
개미가 내 몸 뜯을진대
이제야 칼바람 맞는구나. [제갈개]
- 북성문사문(北城門沙門)
속세의 괴로움 이어가기 싫을지니
복전에 양곡 거두듯
인욕의 갑옷 걸쳐 입고
명주 비단 좋은 옷 버리노라. [제방]
원컨대 삼계 중생 이끄소서.
열 가지 결사 굴복시키소서.
구슬 같은 달무리에 머리 숙이니
금패(金佩)조차 눈에 안차노라. [군]
(4) 네 번째 부운
- 동성문병(東城門病)
벼슬자리 못 얻어
물가만 헛되이 오고가는데
한 번 앉은뱅이 병 걸리면
분육(賁育)41)도 달리는 것 그만둘 것이리. [이경원]
구전음양술(九轉陰陽術)42) 원래 없는데
금단(金丹)이란 게 거짓이니
송장 같은 몸뚱이 차마 못 보겠구나.
꿈꾸느니 극락의 연화지(蓮花池)라네. [군]
- 남성문로(南城門老)
장년(長年)에 해와 더불어 노래하다가
구부정한 발걸음 모습 처량하구나.
하루아침에 늙어 버리니
백발만 성성하다. [공도]
만사(萬事)가 이미 다했는데
9문(門)의 가지 아직도 그리려나.
가마 타던 기개는 어디 갔는고?
홀로 거울 보니 이런 꼴이네. [중서부군]
- 서성문사(西城門死)
숨 거두니 이제야 끝났구나.
한평생 그리던 바 무엇이길래
천장지구(天長地久) 서리 지는데
천 살 산다고 누가 그러나. [전하]
좋은 저택 한 번 등지니
소나무 그린 휘장도 보기 어렵고
만사(萬祀)도 감춘 구슬 같은데
천 년 옥 재갈도 멈추는구나. [제방]
- 북성문사문(北城門沙門)
깊은 마음 물들지 아니하고
정도(正道)의 바른 길 쉬기 어려우니
오욕(五欲)의 누를 없애고
세 가지 가시를 길이 빼내네. [왕소경]
비었으되 생각 쉬기 어려우니
선법(善法) 익히는 그 갈래 멀기만 하다.
이 한 몸 다하면 다시 나지 않으니
단우(單盂)의 그물을 누가 대신하려나. [제갈개]
32) 정월팔일연등시(正月八日然燈詩) 응령(應令) 간문제
연뿌리 얽히듯 주고받음 끝이 없으니
깃털처럼 가벼운 옷 몇 돈이려나.
대나무 엮어서 모양 이루고
갈잎 묶어서 용을 만든다.
잿물로 꽃술 그리고
붓끝 적셔서 그림 그리니
천상이 이에 있구나.
원컨대 등왕불(燈王佛) 만나리다.
33) 유광택사시(遊光宅寺詩) 응령(應令)
사람 거느리고 옛집에 가보니
운기(雲氣)는 대파처럼 파란데
길거리 수양버들 늘어지고
솔바람 홰나무에 분다.
8천(泉)에 기화요초(綺花瑤草) 빛나며
사방의 기둥 허공에 임한다.
푸른 빛 그물 문 아스라이 푸른데
붉은 꽃 홍일(紅日)과도 같구나.
큰 구름 단비 내리니 기쁨 가득한데
자비의 파도에 실려 정궁(淨宮) 가는구나.
34) 피유술지시(被幽述志詩)와 연주(連朱) 3수
양나라 간문제가 감금당할 적에 붓을 당겨 서(序)하기를, 양나라 곧은 선비 입신(立身)하여 뜻 펴는데 시종일관 변치 않았으니 비바람도 어둡고 장닭도 울지 않으니 3광(光)이 어이 빛나리. 운수가 이에 이른 명은 또 어찌 되려나.
연주(連珠) 세 수를 지었다.
[1]
내 일찍이 듣자니
예전에 넉넉하다 지금은 가난하다는데
많더라도 베푸는 게 적었으리라.
이로써 누각 아래 묶여서 쓸쓸이 신명지려니
교남(橋南)에 소나무, 잣나무
공연히 백사(白社)43)를 남기는구나.
[2]
내 일찍이 듣자니
말은 행해야 한다는데
어짊으로 만물 기르니
이로써 죽음도 마다 않는데
덕이 있으면 창성하려니
병마(兵馬)를 의롭게 쓴다면
수그리지 않는 이 없으리.
[3]
내 일찍이 듣자니
도를 행하면 오복에 태평하다는데
운수 갈리니 6극(極)44)도 끝나는구나.
이로써 기린(麒麟)이 나와도45) 슬퍼한 사람
어이 공자뿐이런가.
길이 다하여 통곡하려니
종사(宗嗣)가 여기서 멈춘다.
다시 시를 지었는데 이러하다.
있는 듯 없는 듯 안개 흩어지니
소나무, 잣나무 그늘에 회오리 일리라
먼 산의 수양버들 시든 지 오래이고
들판의 누런 먼지 아득하여라.
백 년의 명수(命數)도 다하지 못하니
어찌 9단(丹)의 금액(金液) 소용 있으리.
궐리(闕里)에 길이 묻혀도
창천(蒼天)의 허공 내 마음 비추리.
마침내 시월에 영복성(永福省)에서 시해(弑害)당했으니, 나이 마흔아홉 살에 붕어(崩御)하였다. 붕어한 때가 바로 태청(太淸) 5년이다.
35) 임종시(臨終詩) 사령운(謝靈運)
정법(正法)을 익혀야 다음 생 없으리니
마지막 업이 여기서 다한다.
혜강(嵇康)46) 늙은이 큰소리치다 궁색해졌고
곽(霍) 선생 명도 끝내 다했다.
추위가 오고 나서 잣나무에 서리 내리고
몰아치는 거센 바람 하루살이 밀어낸다.
오순도순 살다가 때 되면 헤어져야 할진대
오래 살건 적게 살건 마찬가지이리.
내가 세속 군자 뜻 세운 게 억울할지니
바위틈에 깃들지 못하였구나.
이제야 정각(正覺) 앞에 마음 수그리나
이 같은 괴로움 많이도 참았네.
원컨대 오는 세상
원수거나 친한 이나 한마음 이루소서.
36) 임종표(臨終表) 심약(沈約)
신이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립니다.
신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이제 떠나게 되었사오니, 형체와 신명이 여위려고 하는 지가 이미 수십 달이 지났습니다.
고초 지극하기가 무어라 말할 수도 없는데, 평소 건강하던 시절에 이 같을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차라리 칼에 꿰이고 검에 앉는 것이 이보다 낫겠습니다.
우러러 생각하자니, 법문(法門)에 깊이 들어가 고행에 힘쓰면서 안으로는 자비를 기르고 바깥으로는 인욕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인정(人情)의 근본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심(聖心)을 더욱 멀리 베푸신다면 불초한 신이 저승길에 임하여 한이 없겠습니다.
죽을 때는 착해진다 하기에, 이같이 새처럼 구슬피 애원하나이다.
삼가 올립니다.
37) 임종시 진(陳) 석지개(釋智愷)
한 백 년 세상살이 채우기가 어렵고
3시(時)의 인생살이 쓰러지기 쉽도다.
부싯돌 튀는 불꽃 오래가기 힘들고
번갯불 거센 불빛 잠깐에 그친다.
글이나 매만져 헛되이 상자나 채우면서
그렁저렁 살다가 내생에 얽매이니
황천길 목메어 몸도 못 가누고
쓸쓸한 언덕배기 울며 넘어간다.
아침 서리 잠깐 사이 지려니
들리느니 야반의 소나무 소리라.
38) 입섭산서화사시(入攝山栖霞寺詩)와 서문 진(陳) 강총(江總)47)
임인년(581년) 시월 열여드레에 섭산 서하사를 참배하였다. 높다란 고개를 넘자니 쌓인 회포가 절로 풀어진다.
지덕(至德) 원년 계묘(癸卯) 시월 스무엿새에 다시 서하사를 참배하였는데, 혜포(慧布) 법사님께 보살계를 수여받았다.
갑진년 시월 스무닷새에 금동 불상 1구를 봉송하고서 세속 일에 제약받아 산을 내려왔으니,
한 번도 마음껏 머물지 못했다.
을사년 11월 열엿새에 다시 예배드리게 되었는데, 이때서야 느긋이 산에 머물게 되었다.
밤은 깊어만 가는데 마음 기울여 귀 기울이나, 쉬지 않고 속세에 거듭 태어나기에 장작불 잠깐 사이 시든다.
가만히 시 한 수 지어 이목에 전할지니, 후세에 이를 감상하는 이는 나의 이 같은 뜻을 알아주기 바란다.
마음 고요히 빙설 머금고
세모의 햇빛이 뽕나무, 가래나무[桑楡]에 비치니
물살 지며 흐르는 시냇물 한숨지으며
사람살이 구차하다 한탄하노라.
세시(歲時)의 고운 꽃 피어났다가
엄동설한 늦추위 시들어가네.
물속에 발 담그고 8수(水)를 건널지니
흉금을 열고 네 거리로 접어든다.
신기하게도 이 산이 반갑게 맞이하니
천지와 더불어 함께하리라.
돌바닥 고인 물 깊고도 얕을진대
절벽에 서린 안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비석조차 없어진 오랜 무덤가 지나치니
먼 길 떠나며 나무때기 고이고 드러누웠구나.
가고 가면서 세상사 다하고
걸음마다 굽이진 길 디딘다.
덕 높으신 스님들 자취 아득하여도
훌륭한 경지 마음에 마주하노라.
숨어 사는 나무꾼도 얻는 바가 있으려니
단청 고즈넉이 눈부시지 않네.
남기신 기풍 계수나무 어리고
덕을 견주어도 추구에 불과한데
먼 길 떠나는 손에게 안부 전하시니
필부의 마음이야 더욱 상하노라.
(1) 지덕이년십일월십이일승덕시산재삼숙결정죄복참회시(至德二年十一月十二日升德施山齋三宿決定罪福懺悔詩:584년 11월 12일 덕시산에 올라 재를 열고 사흘간 머물러 죄복을 결정하고 참회하는 시)
네 가지 지혜로 교만한 마음 없애고
세 가지 보시로 어두운 마음 열어 준다.
성정(性情)이 소탈하여 사람 피하고
산림으로 돌아가 편안히 쉰다.
구불구불한 골짜기 물소리만 요란한데
엇갈린 가지마다 그늘지고
연못에는 눈만 쌓이니
싸리가지 문 밖에는 금수가 찾아온다.
돌에 낀 이끼는 변함없는데
산봉우리 모습은 고금에 하나이나
큰 수레 어이해 보이지 않고
달리는 말처럼 신속하도다.
어떻게 6념(念)을 닦겠는가?
경건함과 정성은 일음(一音)에 달려 있다.
자비의 거룻배 멀리 띄우지도 못하고
헛되이 공덕 바다 깊어지기만 바라누나.
(2) 섭산서하사산방야좌간서좨주주상서병동유군언(攝山栖霞寺山房夜坐簡徐祭酒周尙書幷同遊群彦:섭산 서하사의 산방에서 서좨주와 주상서가 군언과 밤늦게 즐기며 지은 시) 강령공(江令公)
재계하고 계율 지키려니
금단(金丹) 배우려는 게 아니리.
만월 뜨는 때 가로눕고
구름 낀 벼랑에 말안장 풀지라.
법당에서 마음 가다듬기는 쉬운데
선방 앉아 숨 고르기 어렵구나.
석간수도 얼어서 물소리 조용한데
산창(山窓)의 잎사귀 추위에 떨어지네.
너는 북궐(北闕)의 가마 그립고
나는 동도(東都)의 의관 애석할진대
이 밤도 다하면 근심되리니
동지여, 방황하지 말지라.
(3) 앙동령군섭산서하사산방야좌육운(仰同令君攝山栖霞寺山房夜坐六 韻:우러러 영군이 섭산 서하사의 산방에서 밤에 머물며 육운을 지은 것과 같이함) 서효극(徐孝克)
계단(戒檀)에 이어지는 푸른 돌길
신령한 모습이 자금색 봉우리 같을 제
그림자 속으로 비둘기 피하였다.
공양 받을새 신룡(神龍) 보살피셨다.
이른 아침마다 보배로운 게송 펴시니
추운 저녁나절 종소리 띄엄띄엄 울렸다.
난초 꽃 손에 받치고서
어짊과 지혜 홀로 따르노라.
5선(禪)에 맑은 생각 드러내고
7각(覺)에 방탕한 마음 봉하니
원하건대 극락(極樂)에서
두 손 잡고 마주할 날 약조하네.
(4) 동강복야유섭사서하사(同江僕射遊攝山栖霞寺:강복야와 함께 섭산 서하사에서 노님)
계절마다 반계(磻溪)48)의 마음을 다스리고
죽림(竹林)에 노니는 일 상관할 바 아니되
영취산(靈鷲山) 청송(靑松)에 동녘 밝아온다.
계족산(鷄足山) 백일(白日) 서산에 저물고
하늘 멀리 뜬구름 무늬 지는데
텅빈 산에는 밝은 달 깊숙하며
고목나무 그림자 스러진다.
등넝쿨 그늘 점점이 지는데
서리 내린 마을에 밤 까마귀 지나가고
바람결 추위에 원숭이 지절대네.
탈속한 길목 찾아갈진대
누가 비녀를 뽑으려 하는가?
38) 유섭산서하사시(遊攝山栖霞寺詩)와 서문 강령공
정명(禎明) 원년(587년) 태세 정미 사월 열아흐레 계해일, 섭산을 찾아가 혜포(慧布) 법사를 친견하였다. 사령운(謝靈運)이 머물던 곳 기억 더듬으며, 옛 산자락 누비다가 석벽 가운데에서 담륭(曇隆) 도인의
열한 가지 운으로 된 시 한 수를 찾았다. 지금 이에 강락체(康樂體)49)를 빌려 졸작이나마 시를 지어 본다.
가랑비 내리다 날 개이니
화창한 한여름 시작하누나.
푸른 벌판에 유숙하려니
잠깐 사이 붉은 노을 스쳐가네.
뜻을 높여 상인(上人)의 덕 기려서
홍진(紅塵)의 밖을 다스리니
3공(空)을 홀연히 깨우쳐
만유(萬有)가 하나같이 얼마나 작은가?
시종일관 정 붙여 살려니
그윽한 목표가 진실로 적지 않네
베옷 입고 숲 사이 거닐자니
보리밭 내음 맡다가 저무는 날 깨닫네.
찬바람에 얼굴 차가우나
달빛 교교하기만 기다리니
안개도 바위에 쉬어 가고
구름이 배회하며 새를 쫓는다.
오솔길 숲 속으로 이어지고
가냘픈 유자나무 넝쿨진 게 안타깝구나.
한평생 시비를 잊고 사니
시드는 것을 어찌 자랑하겠는가?
다섯 가지 청정을 이로부터 건너니
티끌이 일곱이라도 근심이 없으리.
(1) 정와서하사방망서좨주(靜臥栖霞寺房望徐祭酒:조용히 서하사 방에서 서좨주를 바라보며)
세속 끊어 속세에 반려 없을새
마음 닦아 마음 절로 삼가지네.
연달은 절벽에 노을 기운 서리는데
허공에 가득 구름 꼬이노라.
가로누운 칡넝쿨 문짝에 기대는데
비스듬한 돌 오래되어 계단이 되고
나뭇가지 소리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금수는 즐기며 생각 없는 듯하네.
옛사람 저잣거리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숲과 계곡 거스르길 바라네.
싱그러운 팥배나무 마주했으니
우리 함께 도반 될까나.
(2) 앙화령군(仰和令君:우러러 강령군에게 화답함) 서효극
상천(上天)이 주재하사 사방 하늘 밝히는데
수레를 팔도(八道)로 되돌리노라.
시원한 구덩이 보리 향기 스미고
바위 자락 광채는 월궁(月宮)에 벗한다.
향내 퍼져오니 누가 불을 사루나?
꽃잎 날려도 바람에 쓸리지 않고
시냇가 소나무는 소리 내지 않으며
월계수 떨기를 둘로 나눈다.
허박(虛薄)함이 실로 누가 될지니
무슨 인으로 서로 만났을꼬.
잠시 북쪽 자락 떠나서
동녘 담장 향하노라.
(3) 영열반참(營涅槃懺)과 서문
정명 2년 한겨울에 섭산 서하사 혜포 법사가
모월 모일에 열반하셨다. 내가 이 달 17일 섭산을 찾아서 유숙하며 스님을 위해 우러러 열반참(涅槃懺)을 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작품을 지었다.
하나로 일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고 죽음도 한 갈래일진대
하물며 이처럼 멸진(滅盡)하시니
어찌 속세를 구하겠는고.
사람의 도리에 여러 슬픔 떠나고
그윽이 출세(出世)를 멀리 기약할진대
골짜기 시냇물에 앉아보고
지난 밤 바위길을 걸었다.
돌 사이 엉킨 얼음 절로 녹는데
소나무에 어린 서리 해에 녹는다.
벼랑 끝 구름이 하늘에 가득한데
골짜기 나서니 안개 자욱하여라.
대은(大隱)이 없다 말하지 말라.
돌아가는 곳이 바로 저잣거리이노라.
(4) 경인년이월십이일유호구산정사(庚寅年二月十二日遊虎丘山精舍: 594년 2월 12일 호구산의 정사를 참배함) 강총(江總)
노 저어 굽은 계곡 접어드니
산자락 뚜렷이 보인다.
매번 향기로운 팥배나무 성품 따르자니
모름지기 세속 사람들과 구별되네.
물살 속으로 조개 탑이 보이고
연화대 도꼬마리 엉키고
추녀 끝 삼태기 걸렸는데
창가에 구름 흩어지노라.
그윽한 정 어찌 만물을 따르리.
커다란 뜻에 군생(群生) 쉽게 놀래니
새와 물고기 어이 함부로 하리.
세간 영화에 숙이지 않기 바라노라.
『강령공집』에는,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법사는 출가하시기 전에 활을 잘 쏘았는데, 학의 둥지에다 화살을 쏘아 어린 학을 잡았다. 나중에 다시 어미 학을 발견하고 쏘려 함에 학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이미 둥지에 죽어 있었다. 새끼를 염려하는 마음에 죽게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여 살펴보니, 심장이 모두 조각이 나 있었다. 이에 법사가 활을 집어던지고 보리심(菩提心)을 내었다.
송나라 초엽에 법경(法瓊)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있었는데, 남방 사람으로 출가한 인연을 알지 못한다. 곡식을 피하여 대추와 밤만 먹으면서, 비단옷을 걸치지 않았다. 계덕(戒德)이 몹시도 존엄한 데다 선정에도 형통한 바가 많았다. 회계(會稽)의 공자장(恭子張) 사군(使君)이 광주(廣州)에 부임하였을 때 스님을 공양하였으므로 사군이 오(吳)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시 서쪽으로 출행하면서 죽을 때가 되자, 죽은 연후에 장례를 치르지 말고
새가 먹도록 산자락에 버리라고 당부하였다. 기약한 날에 죽었는데, 사군이 그 뜻대로 숲 속에 버렸는데 이레 낮 이레 밤을 놓아두어도 새가 감히 범하지를 못하였다. 이에 시신을 거두어 묻었다.
망조(亡祖)는 사군(使君)의 넷째 딸인데, 법경 스님에게 수계받았다.
이에 내가 기록해 둔다.
39) 왕호굴산사시(往虎屈山寺詩)와 화답시 5수[시기(詩紀)에서 예문(藝文)을 살펴보면 이 시는 간문제가 지은 것으로 수록되어 있는 옥문 제신의 화답시는 이 시집이 강령이 지은 시임을 증언하고 있다. 대개 글자가 탈락하여 문장이 어지러워졌을 뿐이다.] 진(陳) 강령(江令)
홍진(紅塵) 속에 번잡한 생각만 쌓지만
물외(物外)에서는 많은 감정을 버린다.
이 땅에 믿음이 드높으니
빈 무덤만 밭가에 늘어섰구나.
먼지 자욱이 수레만 헛되이 굴러가는데
나부끼는 정기(旌旗)만 드높이 걸려 있네.
어린 소나무 비스듬히 오솔길 따라 둘러쳐져 있고
험준한 봉우리 하늘을 반쯤 가렸네.
고목에 잎사귀 하나 없이
황량한 교외(郊外)에 연기가 깔리노라.
꽃잎 피며 황조가 나오니
돌 아래 샘물 새로이 흐르네.
쌍으로 자라는 나무가 모두 울창한데
그윽하기가 8선(禪)에 비기네.
자대(紫臺) 위에 성령(聖靈)이 쉬고
마음의 정취는 흰 구름가에서 노닌다.
헛되이 소도(小道)로 약 삼았으니
무엇으로 대년(大年)을 고르게 하겠는가?
(1) 봉화(奉和:화답시) 왕경(王冏)
아름다운 경개에는 훌륭한 자취 많으니
도량이 실로 이 땅이구나.
조화의 근본은 신령하고 기이하여
사람 힘 더하여 이루었구나.
요사채 낭하가 마주보는데
문마다 서로 다르구나.
성명(聖明)에 지혜를 남기니
고요히 사유(思惟)를 기른다.
즐거이 봉우리 오르니
꽃피는 봄이 예 있구나.
야생화 눈길 빼앗으니
산새들 어지러이 기뻐하네.
풍경이 곱고도 뚜렷하니
물과 돌이 서로 비추고
상법(像法)은 세속의 티끌에 물들지 않으니
참다운 스님들은 명리(名利) 끊었다.
모시고 다닐수록 마음 숙여지는데
한 말씀 받자와 마음에 새긴다.
(2) 봉화(奉和:화답시) 육조(陸罩)
장닭이 우니 눈 비비고 가마 부리며
내원(㮈菀)을 졸린 눈에 다니노라.
붉은 재갈 물려서 9달(達)로 치달으니
청기와 층층이 널려 있다.
시절 만난 백화 사방에 가득하고
무지개 봄나들이 구주에 덮히고
풀잎 뉘이며 바람 멀리 불어오니
정기(旌旗)에 빛살 드리운다.
교목가지 긴 오솔길에 숨어 있고
구불구불 시냇물은 경쾌한 물살 이룬다.
이리저리 화초에 물 대주니
맑은 시냇물에 새소리 낭자하다.
쟁반에 옥구슬처럼 시원히 울리는데
솟구친 탑에 용마루 울리니
지혜 구름 피어오르고
법의 물결 유유히 흐른다.
귀의해 놓고 가르침만 헛되이 하니
지극한 깨달음 부끄럽게도 응하기 어렵다.
(3) 봉화(奉和:화답시) 공도(孔燾)
성정(聖情)은 속세 밖을 생각하시고
가마 돌려 서남쪽 이르니
먼저간 이 봉황새 소리 듣고
나중 오는 수레 용이 뛰듯 하노라.
성지순례란 한가로이 노니는 게 아니라
골짜기 깊숙이 영감(靈龕)50) 모셨네.
마음을 쉬는 이 함께 보니
가부좌 틀고는 맑은 못에 임한다.
선미(禪米)를 어떻게 심어야 할까?
구름 같은 옷자락은 양잠이 필요 없다.
골짜기 개울 네가래풀 푸르고
넝쿨은 소나무 남나무[楠] 휘감는다.
산새는 숲을 돌며 우는데
봄 개구리 비취 물은 듯 파랗다.
미혹한 마음에도 가르침 내리시니
법미(法味)에다 은택마저 입는다.
8해탈의 힘에 의지하길 바라노니
길이 6진(塵)의 탐착 없애리라.
(4) 봉화(奉和:화답시) 왕대경(王臺卿)
우리 임금 대도(大道)를 근본삼아
가마 가는 곳을 따르라 하시네.
붉은 수레바퀴 구르고
말갈기 실타래처럼 튀어오르네.
맑은 개울 높은 덮개에 어리고
나무 사이로 깃발 스친다.
사람들 논둑길 밟으면서
경치도 함께 따라 움직인다.
돌다리 넘어 물길 건너니
성전(聖殿)이 산자락에 이어지네.
이름 모를 꽃 길가에 피었는데
나뉘어진 물길 굽은 언덕을 휘감네.
누가 경치 좋지 않다고 말하는가?
구름과 산이 호젓하기만 하다.
때 묻은 마음 절로 없애기 쉽지만
도의 성품 물들이기 어렵구나.
이제야 가르침의 은택 받으니
내 이제 잘 받아 간직하리라.
(5) 봉화(奉和:화답시) 포지(鮑至)
신묘한 마음에서 만물 피어나니
길 찾아 티끌 끊는다.
드문드문 숲 사이로 가마 그림자 어리니
바람 스친 피리 소리 멀리 울린다.
좋은 경개 따라 마음 식히니
가마를 산초(山椒:산정상)에 대어 놓노라.
세시(歲時)가 다시 돌아 늦봄이려니
벌판에 푸른 기운 완연하구나.
고목에서 잎사귀 틔우는데
꽃봉오리 듬성듬성 어린 가지에 열리네.
먼 봉우리에 구름 숨어드니
연기처럼 가랑비 내리노라.
다시 이를 받들어 행하자니
이름 적어 측간에 못 거누나.
원컨대 니련선하(尼連禪河) 물줄기 타고
지혜 등불에 그림자 져서
옷 속의 보배 한번 깨달을지니
자비로 이 땅 풍요롭구나.
40) 춘일종장군유산사(春日從將軍遊山寺:봄에 장군을 따라 산사를 참배하며 지은 시) 진종사(陳從事)
난초 자라는 뜰 속세의 기운 싫증내니
능금나무 꽃밭에 해마다 꽃망울 지네.
향산(香山)으로 가는 길 처음 나섰는데
화택(火宅)을 벗어나는 수레 만났고나.
대자비에 들어가는 문간에 잎사귀 드문드문
대도의 나무숲을 이뤄 꽃 피우누나.
등 넝쿨 갉아먹는 쥐새끼 위험도 한데
끝내 독사에 물리는 게 가련키만 하구나.
41) 별재법사어상환영북(別才法師於湘還郢北:재 법사와 상에서 이별하고 영북으로 돌아옴) 3수
쪽배 타는 일 멀기만 한데
바지 거둬 올려도 디딜 데 없네.
남쪽 초나라 장사협(長沙狹)
서쪽으로 영북 가는 길 아득하네.
이정(離亭)의 꽃 이미 흩어지고
별술(別戌)의 새 교태 새롭네.
내일이면 천 리 멀리 헤어지니
한가지 아닌 것을 서로 그리워하네.
(8) 경수해법사소증(敬詶解法師所贈:삼가 해 법사에게 보낸 것에 대해 답함)
도림(道林)51)은 세속의 겉에 있었고
혜원(慧遠)은 여산(廬山)의 모퉁이에 있었다.
산에 살아 속세로부터 떨어져 살았고
쪽배[杯]52) 타고 강물 건너리.
법우(法雨)는 간간이 내리고
향운(香雲)은 점점이 떠 있다.
우화(羽化)하는 듯이
속진(俗塵)의 그물에서 건네주리라.
(9) 통사인편(通士人篇)
용궁(龍宮)의 대도(大道)에 들어가니
봉궐(鳳闕) 또한 화려하구나.
선방에 8상(想)이 맑고
의굴(義窟)에 4진(塵) 털지라.
향로에 정법 구름이 일며
등잔에 지혜 불꽃 밝다.
저절로 유(有)의 집착 잊으니
무생(無生)을 깨닫는 데 그치랴.
(10) 종유천중천사(從遊天中天寺:쫓아서 천중천사에서 노님) 응령(應令) 진심형(陳沈炯)
복스런 땅 풀자리 새로 돋는데
덕 높은 스님네 자리에 앉아 있다.
수양버들이 나무에 늘어지고
석장(錫杖)을 비천(飛泉)으로 날린다.53)
돌 의자에 앉아 아침마다 법문하고
산자락 깃들어 밤마다 참선한다.
사위국(舍衛國) 아니라도
땅을 팔아 금을 취하네.
(11) 동유중서견오주처사홍양유명경사(同庾中庶肩吾周處士弘讓遊明慶寺:유중서 견오가 주의 처사 홍호와 함께 명경사에서 노님)
영취봉 삼층탑
암라원 대강당
까마귀는 밥상 사이 다가오고
승냥이는 선상(禪床:스님이 설법시 앉는 법상) 사이 맴돈다.
국화 꽃 담근 술 산에 없으나
소나무 향내 밤마다 그윽하다.
거룩한 스님들 마주하니 행복하고
심왕(心王)이 이로써 밝아지리.
42) 종가경대자조사시(從駕經大慈照寺詩:어가를 따라 대자조사를 지나가는 시)와 서문 북제(北齊) 노사도(盧思道)
황제는 최상의 지혜로 하늘을 통치하고 대명(大明)을 지극하게 거두어, 구대(九代)를 누르고 백왕(百王)을 몰아간다. 지극한 덕이 상천(上天)에 형통하고 그윽한 어짊은 하계(下界)로 흐르는데, 위엄은 서쪽에 미치고 성교(聖敎)는 동쪽을 적신다. 정사(政事)를 합궁(合宮)54)에서 펼치고, 의례를 태실(太室)55)에서 살피며, 악(樂)이 넓은 향리에까지 이르고, 계책이 깊은 산림에까지 미친다.
천성이 보배를 즐기지 아니하고, 신품(神品)이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기에, 날짐승과 들짐승이 이적(異蹟)을 효험하고 산과 늪이 지기[祉社]를 올린다. 화하(華夏)의 후예를 모두 거느리니 유계(幽界)와 명계(冥界)가 다 함께 가지런하고, 8정(政)에 차서(次序)가 있으며 6부(符)가 고르게 된다. 게다가 뜻을 명보(冥報)에 두고 마음을 공적(空寂)에 새긴다.
구역(區域)을 몸소 굽어보고 유형(遺形)을 친히 돌보니, 고해의 그릇에서 선량한 백성을 구하고, 위태로운 성곽에서 욕계(慾界)를 건진다. 몸과 마음이 청정한 극락의 경계로 오르니, 생령(生靈)은 그 다스리는 힘을 우러르며, 중궁(中宮)이 후덕하여 만물을 실으며 자리를 바로 함이 하늘보다 빼어나다.
도는 소릉(邵陵)에 으뜸이고 업은 신사(莘姒)를 뛰어넘는데, 지혜의 구름이 아침에 이는지라, 4생(生)이 촌합(寸合)을 기다린다. 자비의 등불을 밤에도 지펴서 9복(服)에 남은 빛을 비춘다.
대허(大墟)를 돌아보니 실로 당구(唐舊)56) 그대로이니, 산천을 두루 지켜서 교외에서 옷깃을 바로잡았다. 동쪽 교외의 승지(勝地)에 보방(寶坊)을 이룩하니, 엄하기가 화성(化成) 같고 눈부시기가 다보탑 솟듯이 한다. 이미 그 경개가 서방(西方)을 에워싸고 기세가 남려(南呂)57)에 맞는다.
때맞은 바람이 들판에 떨치고
흰 서리는 위엄이 늠름한데, 성주(聖主)가 가마를 타고 순례하여, 절에 따라 만물을 기른다. 여섯용이 가마를 끌고 일곱 성현이 수레바퀴 같이하니, 옥색 화려한 정기(旌旗)를 드리우고 무늬 새긴 수레바퀴 서서히 구른다. 노인네에게 길을 물어 가마 멈추고, 만령(萬靈)에게 조배(朝拜)하여 부절(符節) 세운다.
웅거(熊渠)와 차비(佽飛)의 부류가 중루(中壘)에 들어오고 호전(虎殿)과 금문(金門)의 무리는 수레를 바라보는데, 모두들 이 청정한 구역을 만나서 영취산의 경관을 기뻐한다. 다 함께 즐거이 용궁(龍宮)에 참배하니, 발 디디는 대로 마음 씻으며 공경스럽게 예배드린다.
허무(虛無)를 익혀서 적멸(寂滅)을 이끌며 노래할지니, 이 같은 일이 헌원(軒轅)을 내치더라도 이치는 똑같이 구각(口角)을 두드린다. 그 열렬함을 포용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탄할진대, 어찌 고삭(皐朔)58)의 글월이나 보진(甫陳)의 남축(南祝) 및 왕곡(王谷)의 충전(蟲篆)을 베 짜는 여인네같이 자아내지 않겠는가?
지은 이가 모두 스물여섯 사람인데, 그 사부(詞賦)는 이와 같다.
현풍(玄風)은 동방에 으뜸이고
내범(內範)은 서릉(西陵)을 능가한다.
큰 하천에 보배 상자 열어내고
복스런 땅에 금실 두른다.
무늬 새긴 서까래 드높이 비추고
그림 그린 박공은 첩첩이 쌓여 있다.
어렵지 않게 해를 부리고
구름 다스리는 것은 의지하기 쉽구나.
양실(陽室)에 횃불 어린 듯하고
음헌(陰軒)에 얼음 맺힌 듯하다.
현판에 별빛 묻히고
차양에 서리 엉긴다.
정문(旌門)에 서광 감돌고
가마 다니는 길에는 저녁노을 타오른다.
산신(山神)은 영물(靈物)로 기리고
수신(水神)은 아름다운 징조를 보인다.
천박한 운명은 은혜로운 기틀을 잘라내니
서로 앞다퉈 몸을 스스로 힘쓰지 않아도
여유있게 그저 믿을 만하니
주래(周賚)59)는 길이 이기기 어렵다.
43) 오고시(五苦詩) 주(周) 사문 석망명(釋亡名)
(1) 생고(生苦)
내 몸 걱정하는 것이 바로 걱정일진대
살아도 걱정 끼고 살지라
마음이 늘 괴로울진대
총애(寵愛)와 수욕(受辱)이 어긋나 사람 놀라네.
아침 햇살 오래 비추는 것 아니고
야반의 촛불도 오래가지 못하니
끝내 한줌 흙이 되려나.
천 년 헛이름 구하네.
(2) 노고(老苦)
어렸을 적 나날이 자란다 좋아했는데
늙어지니 나이 먹는 것이 괴롭다.
홍안(紅顔)의 젊은 시절 이미 다하여
백발에 신음 소리 길기만 하다.
뜰의 계단도 지팡이 잡아야 하고
조정에 나가도 비녀 무게 못 이기니
맛난 것 살찌는 것과 아름다운 여자들도
젊은 시절 마음만 헛되이 남았네.
(3) 병고(病苦)
장검 뽑아 사해(四海)를 평정하고
긴 창 옆에 끼고 일당백(一當百)으로 물리치네.
하루아침 이부자리 드러누워
움직이려도 사람 부축 받으리.
늠름한 기색 간데없이
신음과 고통이 함께하네.
비단조각 입 막아도
이맛살 찡그리고 홀로 되돌아 눕네.
(4) 사고(死苦)
구름도 내치던 기세 애석하구나.
아침이슬 삽시간에 다할진대
대낮의 태양도 길이 하직하고서
홀로 황천길로 접어드네.
지대에 이미 묻히고
무덤도 텅 비려 하는데
소나무, 잣나무 비긴다 누가 그랬나.
천 년 내내 바람 부는 걸.
(5) 애리고(愛離苦)
누가 마음속 사랑을 모질게 하겠나.
헤어지고 나면 후회뿐인데.
언제나 서로 손잡으려나
눈물이 앞가려 인사도 못하네.
만리(萬里) 떨어진다 말이 그렇지
다시 만날 기약 있을까.
구천(九泉) 아래 묻히면
다시 볼 날 없으리.
(6) 오성음부(五盛陰附)
먼저 떠나도 오래 이별하는 것 아니고
나중 와도 오래 사귀는 것 아니리.
무덤만 총총히 늘어나는데
그 가지런한 모양이 고기 비늘같다.
무릉(茂陵:한무제의 무덤)에서 누가 한나라를 알아차리고
여산(驪山:진시황이 묻힌 곳)에서 어찌 진나라를 알겠는가?
천 년이 어제 같아도
한결같이 먼지 되리라.
지금 세상 알고 보면
예전 사람 그대로라
어찌 다른 뼈를 가져다가
나 대신 묻을 수 있을까.
44) 유명경사시(遊明慶寺詩:명경사에서 노닌 시)[진(陳)나라 요찰(姚察)이 소좨주(蕭祭酒)가 명경사 선방에 시를 쓰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보아하니 이 절에 대한 추억을 쓴 것으로 소자(蕭字) 운(韻)을 써서 감회를 새긴 것이다]
땅의 영기는 5정(淨)에 머물고
그윽한 산은 4선(禪)으로 고요하다.
월궁(月宮)이 돌 자락에 비추니
고운 빛깔 연꽃에 감돈다.
당번 그림자 사이로 노을 지는데
구름 기운은 연기와 합친다.
높다란 소나무 언덕가에 서 있고
폭포수는 물줄기 가늘게 나뉘네.
온갖 소리는 바람타고 울리는데
이슬 맺힌 꽃 곱기도 하여라.
전생에 참다운 이치 찾아서
지금에 도반되었다.
풀잎 스치며 산기슭 거닐고
물가에 발 적시니 잔물결이노라.
이런 일에 따라 훈습(薰習)60)을 일삼으니
얽매인 인연 쉴 수 있으리.
어찌 비구름 이룬다 하겠는가?
이런 유감스러움 오래도록 품으니
그저 남쪽 언덕에 올라 바라보며
동편에 흐르는 물길을 쫓는다.
45) 진 장군조(張君祖)의 잡시(雜詩)와 찬송시ㆍ화답시
(1) 영회시(詠懷詩) 3수 장군조(張君祖)
[1]
형기(形氣) 타는 일은 표지 다르지 않고
조촐한 마음에 담백하게 욕심 없도다.
앉은 채로 임금 만나고
문전에 금수레 돌려보내리.
시원한 바람 불어 소리가 더욱 맑고
고기 모이는 연못 흐리지 않으리.
현도(玄道)에 깃드는 이여,
이렇게 숨어 살면 족하리.
하필 그윽함을 탐하겠는가?
검은 소매 세속 여읜 증표이려니
백 년도 실로 오래다 못하겠지만
하룻밤도 적다 못하리.
햇빛 내려 멀리 비추니
예나 지금이나 횃불 바꾸면서
한세상 모두 나그네가 되니
어찌 번개보다 빠른 세월 애달파 하리.
외로이 무리짓지 않지만
옥과 자갈 섞는 것 함께 잊으니
더러운 덤불의 괴력난신(怪力難神) 아니라
바라나니 굽은 마음 펴는 것이라.
[2]
신령한 바람에 감정이 파도처럼 이는데
뜬구름도 역린(逆鱗)으로 솟구치네.
남양(南陽)의 싹처럼 잡초 베어 내려니
모이느니 3조(造)61)의 객이로다.
적막한 밤중 그리움 맺히고
해조를 맛보며 밤새도록 읊조린다.
가깝기 기다리나 만나는 때 없으니
누가 티끌 모두 털어 내려나.
마음 한쪽 엿보며 시력을 다하고
고즈넉이 신명에 홀로 노닐면서
동해 바다 서로 잊을진대
어이 서쪽 나루터 찾겠는가.
내가 도를 기려 폐한 적 없으니
늘 의로운 사람 노래하며 그리워한다.
[3]
객지로 다니다가 형형(荊衡) 땅에 자리잡고
지팡이 종종걸음 남영(南郢) 땅에서 쉰다.
마음 움직이면 떨어지니 물살 속이고
마음 고요하면 성품 편해지리라.
거룻배 띄우고 노담(老聃)의 말 따르고
낚싯줄 내려서 장자(莊子)와 함께 노래한다.
눈 크게 뜨고 한 생각 이어나가니
신명 맑혀서 티끌 내친다.
시절마다 즐길 게 없으니
소리 없는 가락 누가 들으려나.
익히고 익혀서 향기로운 표지 무성하게 하고
아름다운 미음(微音)이 기쁘다.
이삭 여물자 서리에 밟히고
화초마다 화려한 봄에 빛나니
깃촉 씻으며 하늘 날기 바라는데
어찌 함께 늙기를 다투겠는가.
내가 재능 없는 자질에 섞여서
마음 지우고 모양 잊으니
역산(嶧山)62)의 유자나무 아니지만
그저 사수의 경쇠[泗磬]63) 두드리겠는가.
(2) 증사문축법군(贈沙門竺法頵) 3수와 서문
사문 축법군 스님 멀리 서산으로 돌아가시기에 시를 지어 올린다. 때까치 지저귀듯 한지라 두 갈래를 생략하고 단지 기리기만 한다.
화양(華陽)의 높은 메 높이 솟아 있는데
높이 떠 있는 구름조차 봉우리 베개 삼는다.
깎아지른 절벽마다 영천(靈泉) 솟아나니
봉우리마다 소나무 울창하다.
치솟은 암벽은 등성이마다 가파른데
그윽한 골짜기 고즈넉이 에워싸였구나.
절벽은 기묘하게 깃들어 쉬는데
암자에서 참선하여 6신통 얻는다.
고요히 신기(神氣) 맑혀서
묘한 자취 한결같이 바르게 하며
무는 없다는 집착을 지관(止觀)하고
공(空)이 공(空)하다는 막힘을 다시 맑게 하노라.
만물을 대하되 어찌 자비 아닐까.
홀로 가서 심오하게 같은 것이 아니니
이치 모르는 사리불(舍利佛)64)을 친견하지 못하고
유마거사(維摩居士)에 굴복한다.
지인(至人)은 그림자 메아리같고
신령한 지혜 시방세계 빚어내니
방편에 응하여 권화를 넓히니
억조창생(億兆蒼生) 자비의 기쁨을 입는다.
아득히 홍진(紅塵)의 잠을 깨닫게 할진대
토굴 속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으나
밝게 통하지 않는 지혜 버리고
소멸하지 않는 형체를 버리네.
밝구나. 여래의 강림이여,
넓구나. 구덩이 열어 주심이여,
유계(幽界)의 신령(神靈)도 썩어갈진대
누가 아유(阿維)65)만큼 살필 수 있겠는가.
멀리 현도(玄道) 그려 보나
어떻게 스스로 맑힐까.
드높구나, 법성(法城)의 깃대여.
웅장하구나, 구름 낀 봉우리여.
준령 열두 봉우리
염부제(閻浮提) 경계 홀로 뛰어나도다.
맑은 물결 산자락 휘돌고
옥당(玉堂)은 산등성이 자리하네.
산골짜기 시냇물 감천(甘泉) 그대로인데
절벽마다 영지(靈芝) 가득하구나.
인륜(人倫)의 교화 고고할진대
바위산 곧기도 하여라.
두 손 모으고 묘각(妙覺) 우러를진대
들숨 날숨에 명이 장구하리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쉬어도 편안치 않은 게 없으리.
만물 사이로 소요할 수 있으면
어찌 반드시 이 몸에서 쉬겠는가?
대승(大乘)의 자취 따라
정신을 단련하여 무섭게 정진하리라.
(3) 도수경찬(道樹經讚)
왕사성(王舍城)66) 우뚝하구나.
영죽원(靈竹園) 울창하구나.
여기 신묘한 교화의 우두머리 있고
공관(空觀)으로 선권방편(善權方便) 이뤘노라.
내가 그 모습 쳐다본다 하여도
참다운 자취 어이 알겠나.
위대한 도 밟고도 그윽할진대
이치 트이면 신명이 기쁠 것이다.
바람 쓸려 텅 비면
지혜 이루기 어렵다 말하지 않겠는가?
(4) 삼매경찬(三昧經讚)
그 자취 열두 연기를 태워 벗어나고
계율은 삼매로부터 이루어지네.
어진 행실은 신묘함을 다하는 곳에 머물고
9도(道)의 뜻 지혜로 밝힌다.
아홉 근본 흔들리게 되니
4선(禪)조차 그윽하지 못하네.
깊구나, 생멸하지 않음이여.
처음부터 생을 따름이 없구나.
잠깐 사이 기운을 가지런히 이끄니
열반의 신령함 어이 알런가.
(5) 시서(詩序)
법군 스님에게 시를 증정한 것을 돌아보면, 스님은 통하신 바가 오묘하고 고원하여 갈매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기 때문이다. 비록 “말이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또한 거의 그에 가깝다. 대개 시는 뜻이 지향하는 것이고, 마음의 자취가 깃드는 곳이다. 신묘한 뜻이 그윽히 해명된다면, 정신은 펴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윽하고 심원하여 통달할 수 없는 자라 하더라도 어떻게 ‘우러르고 뚫는다’고 하는 감탄을 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훌륭한 덕을 묘사하고자 하였기에, 비록 갈래길로 접어들었다 하더라도 현동(玄同)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니, 이것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하였으나, 모두가 그 뜻을 드러낸 것이라 하리라.그 말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6) 유승연(庾僧淵)의 회답시
참되고 소박한 운명이 이미 나뉘었으니
삼라만상이 형태 지었다.
정령(精靈)도 그윽히 감응할지니
변화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 없으리라.
생사의 물결에 빠진 무리들
갈수록 더하나 원래 이름도 없었느니라.
근본 버리고 말단 따르니
후회와 인색함이 감정을 낳는다.
어찌 욕심 끊지 못하고
근본을 돌이켜 무생으로 돌아가겠는가?
유(有)와 무(無) 모두 고르게 보아야
매미 껍질 벗듯이 밝아지리라.
오묘한 피안의 나루에 노닐면서
현명(玄冥)에 깃들지라
큰 자비로 변통에 따르니
기르고 보살핌 어찌 쉬려나.
한가로움은 저절로 있는 것이니
어찌 보살과 함께하겠는가?
유마거사 그윽이 가르치니
권도(權道) 이룸이 많기도 하여라.
천하에 유유히 가득하니
가을 이슬에 의지한 마음 누가 알리오.
(7) 장군조(張君祖)의 시
망망하구나, 혼돈(混沌) 이뤄짐이.
분명하구나, 4천(天)67)의 밝음이.
3진(辰)이 수미산 에워싸니
백억 세계 모두 한 모양이다.
신명 모아서 빚어내니
묘하게 합해져 신묘하게 자라난다.
큰 자비로 중생 건질 제
그림자 메아리처럼 그윽히 감응한다.
사미(沙彌)가 수많은 대중이 되니
만중생 우러러본다.
누가 대승을 기뻐하지 않겠는가?
이 땅에 조짐 내린다.
세 가지 법[三法]68)이 숲을 이루는데도
거사도 한 무리 지을진대
뿔 없는 용 못 보았으니
정갈하기가 하늘도 누를세라.
멀리 큰 세간에 의탁하니
가슴속 홀로감을 그리노라.
묘한 법 모두가 바라나
유마거사는 내가 바라는 바라네.
선권방편 못 이뤄도
그대와 길을 같이할지니
유유히 세상에 가득할세라
없앤다는 생각조차 지우노라.
(8) 유승연의 회답시
화양산(華陽山) 봉우리 멀리 바라보니
푸른 하늘 3진을 둘러쌌네.
푸르른 절벽 마디 토굴 있으니
맑은 물 흘러 피안 적시네.
붉은 골짜기 굽은 나무 서 있어
마지막 열매 싹을 틔운다.
천뢰(天籟)가 바람소리와 함께 들리는데
그윽한 메아리 서로 어우러진다.
난새와 봉황도 날아오고
교룡(虯龍)도 물 속에서 비늘 세우네.
마음 비운 선비 있으니
도에 침잠하며 신묘한 섭리를 음미한다.
현적(玄寂)에 드높이 임하니
만물이 저절로 손님 되리라.
고갯마루 머물며 방외(方外)에서 노니니
세속을 벗어나고 홍진 버렸다.
날개 펼쳐 묘한 자취 엿보니
서성이는 걸음걸이 사람 찾듯 하다가
휘파람 불며 버리고 떠나가노라.
영화 무엇이 보배로운가?
여덟 가지 해탈의 못에서 마음을 씻고
그윽이 정신을 밝고 쾌활하게 하고
마음을 닦아 신묘한 경지에 통하며
깨우침 내던지고 이 몸조차 잊는다.
거사가 무리 이루어
엿본들 가까이 못 하리라.
물어보고 지켜도 헛되기만 할지니
어떻게 진리를 돌이킬 줄 알겠는가?
46) 유방산영암사시(遊方山靈巖寺詩:방산69)의 영암사를 유람한 시) 수(隋) 양제(煬帝)
범궁(梵宮) 이미 숨어 버리고
영수(靈岫)70) 이미 희미해지는데
평교(平郊)에서 지는 해 보내니
높은 메 그림자만 길게 드리우네.
깃발 휘둘러 서령(曙嶺)에 날리니
종소리 은은히 대낮 숲 속에 울린다.
매미소리에 가을 기운 가까운데
흘러가는 석계는 깊기도 하다.
선정의 가지 드리운 땅에서 자취 드러내려니
보리 마음 절로 나누나.
- 봉화방산영암사응교(奉和方山靈巖寺應敎:방산 영암사의 응교에 화 답함) 제갈영(諸葛穎)
명산은 강해(江海)를 누르고
산사는 구름 속에 묻혀 있구나.
추녀는 솔가지 위로 드리웠는데
산문(山門)은 연화봉 마주보누나.
섬돌 사이로 뇌성이 울려오는데
구름은 대들보 앞을 돌아가네.
신령한 광명 낮밤으로 비추는데
몇 겁의 공덕 있어야 용포(龍袍)를 입을진대
이제 향 사르고 공양하오니
길이 복전으로 쓰리라.
47) 승루망춘등시(昇樓望春燈詩)
(1) 정월십오일어통구건등야승남루(正月十五日於通衢建燈夜升南樓: 정월 보름 네거리에 연등을 달고 누각에 오름) 수(隋) 양제(煬帝)
법륜(法輪)이 하늘 위에 굴려졌으니
거룩한 말씀 하늘에서 내리노라.
연등 단 나무에서 수천의 빛 내 비추니
불빛마다 7각지(覺支) 열리어라.
달 그림자 흐르는 물에 서리고
봄바람 불어와 밤매화꽃 휘감는다.
황금지(黃金地)에서는 깃발 휘날리는데
유리대(琉璃臺)에서는 범종 소리 울려퍼지네.
(2) 봉화통구건등응교(奉和通衢建燈應敎:통구에 등을 다는 응교에 대 한 화답시) 제갈영(諸葛穎)
향기 피어나는 네거리의 밤풍경
정법의 등불 들쭉날쭉 휘황찬란하네.
전법륜(轉法輪)에 때맞춰 빛을 발하니
복숭아꽃 잔가지마다 피어나누나.
아스라한 안개 법당에 감싸고
오색의 불빛은 연못에 비추네.
누각에 거듭 올라 굽어보려니
멀리서 노랫가락 아련히 들린다.
(3) 사주등륙시혜일도량옥청현단덕중(捨舟登陸示慧日道場玉淸玄壇德 衆:배를 버리고 뭍에 올라 혜일도량과 옥청현단의 대중들에게 보임) 수 양제
맑은 하늘에 머물러 있는 구름 말리고
아침해 장천(長川)에 떠오른다.
바람에 씻겨 수풀의 꽃잎 떨어지는데
바람결 버들가지 산들거린다.
외로운 청학 무리 찾아 떠나고
꾀꼬리 멀리서 마주보고 지저귀누나.
물 위에 연꽃은 가득 피었는데
붉은 해 중천에 떠 있다.
강수(江水)와 산수(滻水) 물결마다 반짝일지니
동서로 이어져 흐르는구나.
선정(禪定)의 지혜 그 힘 빌리고
다시 금단(金丹)에 의지하노라.
3천(川)71)에 노는 것과 다르니
어찌 그 옛날 사문유관(四門遊觀) 아니런가.
여기 묘한 도리 따라
초연히 피안(彼岸)에 오를지어다.
48) 와질민월술정명의(臥疾閩越述淨名意:병으로 민월에 누워 정명의 뜻을 서술함)와 서문 민왕주(閩王冑)
내가 민(閩) 지방에 앓아 누운 지 이미 달포째인데, 선지식 옹(顒) 스님께서 나에게 정명의 보전(寶典)으로 신심을 다스리라 권유하셨다. 병중에도 대강 그 뜻을 말씀해 주셨는데, 경간(敬簡)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 리 땅을 다녀 보아도
창해의 끝 아득할진대
5령(嶺)72)은 언제나 푸르고
백월(百越)이 메산에 가로막혔네.
덧없이 몸과 마음만 피곤할지니
끝내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다.
동뢰(桐雷)73)는 아득히 멀기만 하고
폄석(砭石)74)은 찾기도 어렵네.
그림자 싸안은 내가 처량도 하니
눈물로 옷깃 적시며 홀로 슬퍼하네.
비야성(毘耶城)의 장자(長者)
평생의 덕화(德化) 기려야 한다.
큰 인연에 의지하여서
부지런히 회향하여라.
마음의 행로 스스로를 눌러야 하니
이로써 실상(實相)을 생각하거라.
물거품 본래 쥐어보기 어렵고
신기루 찾아가기 힘드니
산다는 게 참다운 도리 아니고
나라는 게 모두 허망할지라.
구해도 얻지 못하는데
업보를 받는 이 누구이런가.
대의왕(大醫王)을 진실로 믿을지니
그 세력 참으로 무량하시다.
49) 전경상봉림사시(展敬上鳳林寺詩) 수 설도형(薛道衡)
정토는 깊은 골짜기에 이어져 있고
보탑은 높은 봉우리 마주보누나.
숲에는 봉황의 둥지 있으며
땅에는 가까이 흰 모래에 청룡(靑龍) 있구나.
바위는 층층이 솟구쳐 있는데
법당이 연이어 겹쳐 있구나.
골짜기 들어서니 아침 안개 자욱한데
구름이 자욱이 깔리어 돌도 축축하다.
높은 가지마다 구름 덮였는데
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려 종소리 내누나.
추녀 끝 그늘마다 잔 버들 잎 나부끼는데
낙락장송은 물가에 그림자 지우누나.
기둥 위로 밝은 달 떠오르고
연화좌마다 부용꽃 피었구나.
숨어 산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자취 따르지 못하리.
50) 봉화무제삼교시(奉和武帝三敎詩:무제 삼교시에 화답함) 양(梁) 석지장(釋智藏)
마음의 근본 둘이 아니나
이치를 배워야 참다워지리.
4집(執)에 약 모으는 것 어지럽고
6미(味)는 괴로움만 늘리누나.
좋은 인연 만났으나 성품이 비루한지라
습관이 따르지 못하네.
지각(至覺)이 만물을 교화하실 제
1승(乘)의 도리로 여러 갈래 나투었도다.
대사가 권도(權道)로 제도하실 제
이르시는 말씀 별빛처럼 펼쳐졌다.
주공과 공자는 충효를 높였고
덕행을 이루어 임금과 부모에 보답하였다.
노자는 무욕(無慾)이 좋다 하여
육신을 버리고 오래 살자 했으니
좋은 말씀에 사방 천리 어질어지니
향기롭기가 가히 온 세상의 보배일지라
공한 이치 알지 못했고
3명(明)에 이르지도 못했다.
짧은 소견으로 갈림길 막아 놓고
주미를 나누고서 유계(幽界)를 의심했도다.
어찌 기쁘게 점수(漸修)라 이르겠는가.
궁극은 원래 같은 것이니
우리 황각(皇覺)께서 이를 체득하고서
묘하게 비추어 신묘한 기틀 내셨다.
말씀마다 모두 세상의 목탁일지니
회광반조(廻光返照)75)하여 생민(生民)을 이끄셨다.
참으로 내가 숙세에 인연 심어서
좋은 시절 만났으리라.
명해(明解)를 얻고자 원하여
늘그막에 인(因)을 심노라.
51) 유병주대흥국사시(遊幷州大興國寺詩:병주 대흥국사를 유람한 시)
수레를 돌려 복스런 땅을 참배하노니
눈부신 아침 햇살 한껏 즐기노라.
범종 소리 메아리와 어울리니
법일(法日)은 쌍륜(雙輪)을 굴린다.
보찰(寶刹)에 이슬 맺히는데
아지랑이 봄을 재촉하누나.
피지 않은 풍란은 움추려 있는데
앙상한 버들가지 물이 돋누나.
달무리는 월전(月殿)에 드리우고
바람결에 대죽 그림자 어지럽구나.
마주할수록 생각 달라져
초연히 세속을 떠나고 싶다.
- 영흥국사불전번(詠興國寺佛前幡:흥국사 부처님 앞의 당번76)을 읊음
자욱한 안개 개는 것도 빠르니
하늘에 무지개 서리는구나.
안개 속에 펄럭이는데
흰 구름 사이로 날리네.
어지러이 감겼다 펼쳐지며
바람에 길게 나부끼네.
재질이 가볍고 얇은 것 생각하고
날개 없어도 허공을 휘젓는구나.
52) 봉화두사군동공법사영고승(奉和竇使君同恭法師詠高僧:두사군과 공법사가 고승을 읊은 것에 대해 화답함) 2수 당(唐) 석승선(釋僧宣)
(1) 천축의 불도징(佛圖澄)
큰 서원으로 도탄에 빠진 세상 가엾게 여겨77)
기연(機緣) 타시고 생사에 드셨다.
정법이 중원에 펼쳐지자
갈피(葛陂)78)의 포학함도 그치게 되었다.
젖 옆의 구멍(乳孔)79)이 온 방을 환히 비추었으며
손바닥 거울[掌鏡]80)로 사방 천리를 꿰뚫었다.
대도를 일으켜 연화세계(蓮花世界)를 축원하시니
재앙이 일자 형극(荊棘)을 한탄하셨다.
석관(石棺)에 묻어 인연 다한다고 해도
유사(流砂)에서 교화를 시작하셨다.
(2) 석승조(釋僧肇)81)
반야는 비추임을 끊었고
열반은 처음부터 이름이 없다.82)
옛 성현도 깨치지 못했는데
스님이 드문 소리를 내셨다.
진왕(秦王)도 찾아가 도리를 물었다.
아이나 늙은이도 고결한 말씀에 고개 숙이니
훌륭한 음지(音旨)가 여산(廬山)에서 들리니
고절한 수행은 서울의 선비들을 감동시켰다.
그려볼수록 옷깃 여미니
저와 같은 성인 언제 다시 오려나.
53) 추일유동산사심수담이법사(秋日遊東山寺尋殊曇二法師:가을 날에 동산사에 노닐며 수ㆍ담 두 법사를 찾음)
나뭇잎 떨어져 숲은 더욱 스산하고
맑은 물에 물살조차 고요하다.
가을이 되자 날씨가 서늘해지는데
다시금 길 떠나자니 쓸쓸하구나.
어이해 번뇌를 없애겠나.
산천(山泉)을 마음대로 다녀보누나.
만 장(丈) 낭떠러지 아득한 골짜기 굽어보고
천 길 솟구친 절벽을 쳐다보노라.
옆 고개 대나무 울창하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칡덩굴 무성하다.
갈수록 깊기만 하고
갈수록 고즈넉하구나.
성과(聖果)를 이룬 식심(息心)의 반려자
굽은 가지 지팡이 삼네.
사방은 전단나무로 둘러쌓여 있고
자갈 같은 무리 없어라.
묘한 법이 비길 데 없어서
깊은 대도(大道) 원망과 적개심 풀어주네
기쁜 마음에 예배드리니
그윽한 도가 눈에 선하네.
지혜의 칼을 만났기에
의심의 그물 여기에서 끊으리라.
어찌 번뇌만 없앨건가.
고해에 빠진 중생 건질 것이네.
54) 유대자은사시(遊大慈恩寺詩)와 화답시 당 태종
일궁(日宮)은 아스라이 떠 있고
월전(月殿)은 고즈넉이 떠 있다.
화개(華蓋)의 그림자 둥글게 비추는데
당번(幢幡)은 붉게 굽은 그림자 끄는구나.
수놓은 장막 멀리 보이고
구슬 주렴 세밀도 하여라.
인간세 구름 위로 거죽 벗어났으니
물외(物外)의 마음 초연하구나.
대자은사 사문(沙門)의 화답시
황제의 기풍 기원(祈園)83)에 불어오니
지극한 덕에 선림(禪林)이 융성하구나.
선화(仙花)는 햇빛에 반짝이는데
신번(神幡)의 그림자 멀리 비치네.
구중궁궐에다 무지개 그림자 가두고
대전(大殿)에서 구름 같은 마음 내었구나.
민초(民草)는 선정(善政)만 바랄진대
아무쪼록 은혜가 더욱 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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