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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078 불교(광홍명집 29권/ 廣弘明集)

by Kay/케이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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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29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10. 통귀편(統歸篇)

 

- 서문

광홍명(廣弘明)’이란 정법의 그물로 널리 보살펴서 유식(有識)을 밝게 열어 준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아홉 편은 시절에 따라 펼치고 드러내어 이치의 길을 살핀 것으로 그 연()을 대체로 다하였다 하겠다. 그러나 목적하던 바를 상세히 갖춰서 개진하지 못하였으니, 칭송하는 소리를 어디에 의탁하겠는가?

그래서 차례대로 편집하여 가깝고 먼 곳을 은근히 비춘다. 법왕(法王)이 우내(寓內)를 다스리면서 그 시원을 노래할 때 범왕(梵王)과 천주(天主)와 성문(聲聞)과 보살(菩薩)을 모두 게송으로 찬탄하여 그윽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경전 가운데 보고 듣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다. 동하(東夏)의 국왕과 대신들이 이러한 갈래에 미혹되지 않고 법을 본받고, 황제는 덕망이 있고 나라는 풍요로워 이를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 성정(性情)을 기술하여 보내고자 통귀편(統歸篇)으로 어지러움을 모두 거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진()나라와 송()나라 이래로 수백여 가()를 모두 모으되, 불문(佛門)에 미더움이 중한 것은 대략적인 덕음으로 진술하였다. 널리 수집하려 했으나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으나, 이에 몇 가지 조항이라도 나열하고 티끌을 가지고서 널리 보이고자 한다.

 

- 홍명집』 「통귀편(統歸篇)의 목록

석승우(釋僧祐) 홍명론(弘明論)

석지정(釋智靜) 격마문(檄魔文)

석보림(釋寶林) 파마로포(破魔露布)

 

- 광홍명집』 「통귀편의 목록

() 고조(高祖) 정업부(淨業賦)

양 고조 효사부(孝思賦)

양 선제(宣帝) 유칠산사부(遊七山寺賦)

양 왕석(王錫) 숙산사부(宿山寺賦)

() 고윤(高允) 녹원부(鹿苑賦)

위 이우(李顒) 대승부(大乘賦)

양 선성(仙城) 석혜명상현부(釋慧命詳玄賦)

 

양 소자운(蕭子雲) 현포원강부(玄圃苑講賦)

석진관(釋眞觀) 몽부(夢賦)

양 강엄(江淹) 상약자부(傷弱子賦), 무위론(無爲論), 벌마조병서격문(伐魔詔幷書檄文)과 마답(魔答)

당 행우(行友) 주평심로포(奏平心露布)1)

() 지도림(支道林) 찬불시(讚佛詩)8

진 지둔(支遁) 영회대덕선사산거시(詠懷大德禪思山居詩)10

진 석혜원(釋慧遠) 염불삼매시서(念佛三昧詩序)불보살찬(佛菩薩讚)

진 왕제지(王齊之) 염불삼매시(念佛三昧時)

() 왕원장(王元長) 법락사(法樂辭)12

양 무제(武帝) 삼교시(三敎詩)

양 소명 태자(昭明太子) 개선사법회시(開善寺法會詩)

양 간문제(簡文帝) 망동태사부도시(望同泰寺浮圖詩)와 화답시 5

간문제(簡文帝) 영오음식문(詠五陰識文)

양효도(梁孝綽) 백론사죄복시(百論捨罪福詩)

() 간문제(簡文帝) 몽화림원계시(夢華林園戒詩)

양 소명 태자 강걸부삼십운시(講訖賦三十韻詩)

양 간문제 예참직소시(預懺直疏詩)

양 간문제 출흥업사강시(出興業寺講詩)

양 원제(元帝) 화오명집시(和五明集詩)

양 소명 태자 종산해강제인화시(鐘山解講諸人和詩)

양 황태자 팔관야술유사성문시(八關夜述遊四城門詩)와 화답시

양 간문제 유광택사시(遊光宅寺詩)

양 간문제 피유술지시(被幽述志詩)4

양 심은후(沈隱侯) 임종유상표(臨終遺上表)

() 사령운(謝靈運) 임종시(臨終詩)

() 사문 석지개(釋智愷) 임종시(臨終詩)

진 하처사(何處士) 유산사병잡시(遊山寺幷雜詩)4

진 요찰(姚察) 유명경사(遊明慶寺) 창연회고(悵然懷古)

진 강총(江總) 유섭산사시(遊攝山寺詩)서문과 시 10

진 강영(江令) 유무굴산사시(遺武窟山寺詩)

북제(北齊) 노사도(盧思道) 종가대자조사시(從駕大慈照寺時)와 서문

진 장군조(張君祖) 잡시(雜詩), ()

() 석망명(釋亡名) 오고시(五苦詩)6

() 양제(煬帝) 유방산영암사시(遊方山靈巖寺詩)

수 양제 승루망춘등시(升樓望春燈詩)

수 왕주(王冑) 술정명시(述淨名詩)

수 설도형(薛道衡) 입봉림사시(入鳳林寺詩)

() 문제(文帝) 모동과사(暮冬過寺)

당 선 법사(宣法師) 유동산심수담이법사(遊東山尋殊曇二法師)

 

1) 정업부(淨業賦)와 서문 양무제(梁武帝)

어려서 산수(山水)를 사랑하고 구학(丘壑:속세를 떠난 곳)을 즐겼으나, 몸이 속세의 기반[俗羈]에 매여서 평소의 뜻을 펴지 못하였는지라, 행동은 홀로 가는 것과 달랐고 마음은 멋대로 맡겨 두는 것과 달랐다. 보위(寶位)에 올라서 재주 없이 왕업(王業)에 종사하나, 당면한 시대에 변고가 많아서 세상 일이 매우 어려웠다.

이융(夷戎)을 정벌하느라 태평한 세월이 조금도 없었기에, 위로는 정치가 어지럽고 사나웠으며 아래로는 간악함과 혼란이 일어났다. 군자의 도는 사라지고 소인의 도만 길러지니, 임금의 칼로 매충아(梅虫兒)ㆍ여법진(茹法珍)2)ㆍ유영운(兪靈韻)ㆍ풍용지(豊勇之)를 처단하였으니, 이 같은 많은 무리들은 바로 지공(誌公)이 말씀하신 난리만 피우는 자들이리라.

지공은 바로 사문 보지(寶誌:保誌) 스님이신데, 형색이 정처 없어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일정한 장소가 없었다. 이때에 소소한 무리들이 그 신비한 이적을 의심하여 화림(華林)의 외합(外閤)에 가두어 놓자, 스님이 책망하시며 난리만 피우는 자들이라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은 제각기 권세를 잡고서 사람마다 호령하였는데, 위엄과 복덕을 마음대로 하고 죽이고 살리는 일을 말 한마디로 결정하였다.

충신은 머리를 잘리는 피해를 입고 공신(功臣)은 무고한 주살(誅殺)만 당하였다. 복색은 같은데 생각은 달라 사방으로 치달리며 모두 황제주군으로 일컬으니, 사람들이 존극(尊極)’이라 말하였다. 괴이한 거짓으로 중인(衆人)의 마음을 어지럽혔는데, 출입하여 멋대로 노니는 것[盤遊]3)을 아침저녁으로 잊지 않았으니, 경읍(京邑)을 약탈하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무명옷을 입은 이는 길가에 쓰러져 숨이 다하고, 아이는 울음조차 울 틈이 없었으며, 달이 찬 임산부는 길가에서 해산하는데 어미가 아이를 안아주지도 못하였으니, 백성이 두려움에 떠는 것이 마치 산 뿌리가 무너지듯 하였다.

장사(長沙)의 선무왕(宣武王)4)이 나라에 큰 공이 있었으나, 예의상의 보답은 없고

 

재앙만 엄습하였다. 조카들조차도 환난을 당하게 되자, 마침내 환신(桓神)과 두백부(杜伯符) 등의 예닐곱 관리를 옹주로 파견하였다. 이에 여러 군사들이 해치고자 하는 생각을 드러냈으나, 일반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아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유산양(劉山陽)을 파견하였으나 확실히 잡혀버렸다. 여기서 장사(莊士)가 호랑이 밥이 되고, 갑옷과 창이 날카로우며 임금과 아비조차도 헤아림이 없는 것을 분명히 보고서는 몸을 묶고서 죽이고자 하였다.

이 같은 횡포가 몇몇 소소한 무리로부터 자행되었으나 두려운 억압에 세 번이나 빠져도 위로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간사한 일이 일어남에 있어서랴! 만약 잠자코 죽음만을 기다린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리라.

이윽고 산양은 형주(荊州)에 이르러 소영(蕭穎)이 장악하게 되었는데, 바로 역마를 보내어 옹주(雍州)까지 길을 터놓았다. 이에 혁연씨(赫然氏)가 군령으로 단아한 깃발을 곧게 세우니, 사방이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메아리 울리듯 하였다.

() 나라 영원(永元) 2(500) 정월에 양양(襄陽)에서 발행(發行)하자, 의용군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뱃전마다 장정들로 가득하였다. 경릉태수(竟陵太守) 조종(曹宗)과 마군(馬軍) 주은창(主殷昌)들이 각각 기병과 보병(步兵)을 거느리고 언덕을 끼고서 장군을 맞이하였는데, 파도가 근 40여 리나 역류하면서 짐()이 타고 있는 방주에 이르러 그쳤다. 한 쌍의 백어(白魚)가 탑전으로 뛰어올랐으니, 의로움이 맹진(孟津)5)과 같고 일이 명부(冥符)의 감응에 부합하였다.

구름이 하늘을 요동시키며 움직이고 우레와 벽력이 바람을 휘몰아치듯이 영성(郢城)을 평정하고 강주(江州)를 항복받았다. 잠시 어떤 군사라도 그 기세를 바라보면 바로 물러나 달아났으니, 신정(新亭)의 이거사(李居士)도 머리를 조아리고 투항하였다. 독부(獨夫)6)가 제거되고 나니, 만백성이 소생하여 숨을 돌리게 되어 바로 그 뜻을 원림(園林)으로 돌이키고 마음을 초목과 연못에 두었다. 아래로 민심을 가까이하고 위로 천명을 두려워하니, 일을 그만둘 수 없었지만 마침내 대보(大寶)를 간직하게 되었다.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장을 밟듯이 하면서,7) 보위(寶位)를 피하여 유능한 이를 기다리고 싶었으나 계속 사양하면 반드시 다시 고기가 썩게 될 것이니, 그 몸이 죽어서 이름만 더럽힐 뿐만 아니라 유계(幽界)와 현계(顯界)에 누만 될 것이다. 이에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밤낮으로 하염없이 궁리하는데도

 

돌고 도는 운수 이미 다하였네.

이를 다하면 속세를 여의려나

이를 떠나도 분명 끝나지 않으리니

 

병풍을 등지고 조정에 임하고서

면류관 쓴 채로 사해(四海)를 거느리니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힘써서

저녁까지 두렵게 조심하네.

썩은 밧줄로 6()를 몰아가도

이것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세간에서 평론하는 이는 짐이 그것을 탕()왕과 무()왕을 견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짐은 탕왕과 무왕에 비길 수 없으며, 탕왕과 무왕도 짐에 비길 수 없다. 탕왕과 무왕은 성인이시고 짐은 한낱 범부일 뿐이니, 이로써 탕왕과 무왕을 비길 수 없다.

참으로 탕왕과 무왕은 군신(君臣)의 의리를 끊지 않고도 남소(南巢)와 백기의 일을 행하였다.8) 그러나 짐은 군신의 의리를 끊고서 나중에 독부를 평정하여 천하를 위해 화근을 없앴습니다. 이것은 방법이 다르므로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짐이 포의(布衣:庶人)였던 시절에 오로지 예의(禮義)만 알고 신의(信義)를 알지 못했다. 중생을 삶아서 손님을 대접하며 매사에 육식만 즐겨서 채소 맛을 알지 못하면서 임금의 지위에 이르러 천하를 크게 소유하였다. 먼 곳의 진미(珍味)를 조공하는 일이 그치지 않았으니, 해내(海內)의 진기한 먹거리조차 이르지 않은 것이 없어서 방장의 성찬이 눈앞에 가득하고 백미(百味)가 도마에 올려졌으니, 이에 음식을 먹으려 할 때 몸을 사양하면서 밥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여름에 시원케 하고 겨울에 따스하게 하며 아침저녁으로 보양하는 일조차 제대로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니, 무슨 마음으로 홀로 이 같은 좋은 음식을 맛보겠는가? 이로써 채식만 하고 어육(魚肉)을 입에 대지 않았으니, 비록 안으로는 그렇게 하더라도 밖에서 알지 못하게 하느라, 군신(君臣)을 접대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맛난 음식을 차려 놓았다. 채식이 습관이 되지 못하여 몸이 마르고 누렇게 되어서, 조정 대신 가운데 점차로 이 같은 일을 아는 이가 늘어났다.

사비(謝朏)9)와 공언영(孔彦穎) 등이 소찬을 풀라고 누차 권유하여 충간을 지극히 하였으나 짐의 뜻을 헤아리지는 못하였다. 이에 짐이 다시 생각하기를, 천하의 근본이 예전의 뜻에 있지 않다고 여겼다.

두서(杜恕)10)가슴을 도려내어 땅에 내치더라도 단지 몇 조각 살점을 뿐이다고 말하였으니, 의지할 것은 군자들을 밝게 통달하여 그 본심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니, 누가 천하를 탐하지 않고 있음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오직 다른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것을 마땅히 행하는 사람만이 세상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다시 첩실(妾室)마저 끊고 비빈(妃嬪)과 시녀들과 같이 살지 않은지가 40여 년째이다. 요즈음 사지가 약간 불편하여, 상서성의 스승 유징지(劉澄之)에게 요보리(姚菩提)의 병세를 물었다. 그래서 유징지가 내가 이 음식이 너무도 지나치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유징지에게 내가 포의로써 기름진 것으로 입맛을 충족하였다고 답하고자 한다.

유징지가 말하기를, “속관이 예전에 매일 먹던 것을 어찌 요즘에도 매일 먹습니까?”라고 말하자, 요보리가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오로지 보리(菩提)만 관급(官給)의 첩실이 지나치게 많아 그렇게 되었음을 압니다. 지금까지 어육을 입에 대지 않은 지 오래된 데다, 다시 첩실마저 끊은 것도 지혜로써 잠시도 늦출 수가 없어서이지, 그 쓰임새를 치우쳐서 화려하게 하려는 바가 아니다고 말하였다. 유징지가 잠자코 있으면서 다시 캐묻지 않는 것이 얼마간 납득한 듯싶었다.

유징지는 술을 입에 대고 요보리는 약을 대놓고 먹는데 먹을수록 병이 더 심해졌으니, 이로써 그 효험 없음을 알고는 다시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병이 있어도 항상 스스로 처방을 하면서 다시는 의약을 복용치 않은 것이 이미 40여 년째이다.

본디 정진하지는 못하였으나 중생의 살점을 입에 대지 않고서 살생을 피하였는지라, 업장이 다하여 내신(內身)을 다스리지 못했으나 악업의 업장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이 같은 두 가지 장애를 없애고서야 의식이 다소나마 밝아져서 내외의 경서를 읽으면 바로 이해하여 깨달았다.

이때 이후로 비로소 귀의할 바를 알게 되었다. 예기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은 하늘의 본성이고,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은 성으로부터 나온 욕()이다”11)라고 하였다. 움직이게 되면 마음은 더러워지고, 고요하면 마음이 깨끗하다. 내부의 움직임이 멈추면 내부의 마음 또한 밝아서 비로소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근심과 얽매임이 생겨날 까닭이 없다. 이에 정업부(淨業賦)를 지어 말할 뿐이다.

 

사람이 타고난 천성을 보건대

오묘한 기운 싸고서 맑고 고요하다.

외물(外物)에 감하여 욕심 동하니

마음이 이끌려 허물을 이룬다.

 

허물은 늘 바깥의 먼지에서 나오고

얽매임은 눈앞의 대상에 말미암는다.

빈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도 같고

 

형체 따라 생기는 그림자와도 같다.

탐내는 마음 품어 그칠 줄 모르니

속마음 따라서 멋대로 달리고

눈은 색깔에 따라 바뀌고

눈길이 모양 따라 옮겨진다.

 

오색 빛깔의 누렇고 검은 것을 보고자

7()12)를 쥐고 펴면서 감상하는데

깊숙한 화려함을 드러내고

어여쁜 용모에 취한다.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버리지 못하고

밤낮으로 감상하느라 피곤한 줄도 모르니

꽃술 따다가 누룩 담듯이 하고

준마에 재갈 물리듯 한다.

 

밝은 태양이 하늘에 빛나듯이

세월 지나도 이지러지지 않는다.

귀가 소리 즐기는 것을 보니

이 또한 나는 새 둥지에 깃들듯 한다.

 

사죽(絲竹)의 악기를 가지고 노니니

번성한 것이 다섯 가지 소리로 모이고

주야를 이어서 끊어지지 않고

네 계절을 거쳐 이어진다.

 

어지러운 감정과 미혹된 생각이 있어도

귀를 태워서 마음을 연기로 감싸고

향기가 피어오르게 되면

코에 닿아 감각을 발하리라.

늦은 밤 그 내음 따르니

향기가 다함이 없고

난초 꽃 분 내음이 날아드는데

새의 두 날개와 같다.

 

갈증은 독이라도 마실 정도이고,

가시로 찌르는 듯이 추우니

세 치 혓바닥으로 맛을 알고

온갖 진구(塵垢)도 보존하지 못하네.

 

쓰고 짜고 신 것이

입에 달지 않은 것이 없으니

중생을 잡아먹어 학대하는 것이

달리거나 나는 데까지 이른다.

 

대낮도 부족하다고

긴 밤새우며 술 마시니

밝은 행실 거스르고 어지럽혀도

허물 깊은 줄 모른다.

 

몸뚱이 촉감 좋은 것

스스로 편안히 기뻐하고

예쁜 눈을 맑게 드러내고

애교 있게 미소짓네.

 

가는 허리 섬섬옥수에

가냘픈 몸매에 풍만한 살결

몸을 향기롭고 깨끗이 하니

촉감이 백옥처럼 보드랍네.

 

미친 마음에 미혹되어

뒤집힌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니

의식(意識)에 반연해서

혼란스러운 생각은 가없구나.

 

착한 생각은 품지도 못하니

모두가 죄악만 일으키는 올가미이네.

이러한 6()

모두 같이 선도(善道)를 방해한다.

 

자주색이 붉은색 빼앗는 일13)

바람에 풀잎 눕듯이 하고

미혹만 싸안고 태어나

그와 함께 늙어간다.

 

무명을 쫓아 따르자니

번뇌 아닌 것 없는데

화택(火宅)을 윤회하면서

고해(苦海)로 빠져든다.

 

긴긴밤 집착[執固]에만 매여서

끝내 고칠 수가 없으니,

둔괘(屯卦)와 비괘(否卦)14)가 연잇고

 

재앙이 번갈아 잇따른다.

 

안으로 잘못된 믿음만 품고

밖으로는 잘못된 귀신만 섬기니

헛되게 다니다 목숨만 잃고

실다움 내치다 횡액으로 죽는다.

 

허망하게 살면서도 천우신조로

커다란 복 받으니

앞바퀴는 굴대가 부러지고

뒷 수레는 길에서 전복되네.

 

재앙이 국가에 미쳐서

몸은 망치고 사직(社稷)은 끊어지니

처음부터 스스로 반성하여

자기를 문책하지 못한다.

 

황천(皇天)은 특별히 가까이하는 사람 없이

착한 이만 도우니15)

밖으로는 눈앞의 대상을 맑게 하고

안으로는 마음의 때를 깨끗이 하네.

 

물듦도 취함도

애착도 노여움도 없어져서

옥처럼 윤택하고

대나무처럼 고르다.

 

부용꽃 연못에 피듯이 하며

난초가 새봄에 피어나듯 하니

진흙도 그 바탕 더럽히지 못하고

어둠도 그 참다움 가리지 못한다.

 

안개가 모여 구슬같이 흐르고

빛나는 바람 불어와 향기 퍼지니

선업(善業)을 쌓으며 세월 보내고

행동을 밝히는 것이 날로 새롭다.

 

늘 유덕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늘 도있는 사람과 이웃이 되니

청정한 업에 따른 좋은 결과를 보면

불살생(不殺生)이 원인이 되네.

 

악욕(惡慾)을 여의고 스스로를 닦으니

정신에 아무런 장애 없고

환루(患累)가 없어지니

업장 또한 깨끗하다.

 

오랫동안 물을 맑히고

거울을 새로 닦은 것 같아서

밖으로는 만상을 비추고

안으로는 온갖 병통을 살핀다.

 

객진(客塵)의 번뇌 없애고

자성(自性)을 돌이키니

3()를 길이 벗어나고

8()을 영원히 소멸한다.

 

지선(至善)을 닦아 머물러서16)

선행에 티가 없으니

청정한 하나의 도리에

다른 갈래가 없어라.

오직 철인만이

흉금을 펼쳐 보일지니

돌을 물에 던지듯이

마음에 거슬림 없구나.

 

마음 정갈하기가 얼음같이 맑고

뜻은 고결하기가 백설같이 흰데

누업(累業)에 매인 것 제거하고 나니

근심과 두려움 함께 없어진다.

 

애착을 길이 벗어나고

생사를 돌아다보며 이별하며

지금 빼어난 이 적음을 보고

후세의 뛰어난 아이를 상상한다.

 

형옥(荊玉:荊山의 박옥)을 품어 쪼개지 않고

신령한 기틀 그 몸에 숨기며

성행(聖行)을 닦아서 그치지 않으니

진실한 선을 쌓음이 무궁하구나.

 

영겁에 아름다운 이름 드러내고

 

만대에 시원한 교화를 퍼뜨릴진대

어찌 강자를 누른다고 용기 있다 하리오

도가 뛰어나야 영웅이 된다네.

 

2) 효사부(孝思賦)[태상경(太常卿) 유지린(劉之遴)의 주석이 있으나 분량이 많아 싣지 않는다] 양 고조(高祖)

생각은 마음 따라 생겨나고 마음은 생각을 계기로 일어난다. 만물은 서로 감응하여 그렇게 된다. 매번 효자전(孝子傳)을 읽어 보는데, 미처 한 권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비탄의 마음에 눈물만 흘리며, 어릴 적에 어머니 여의어 안으로 의지할 곳을 잃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놀면서 할머니 곁에서 자라났는데, 나이가 차서 약관(弱冠)이 되자 바로 아버지 여의어 의지할 곳을 잃었다.

형만(荊蠻)의 관직에 매여 아침저녁으로 봉양도 못해드렸고, 물 건너는 먼 길에 편지조차 못 냈으니, 다니는 길마다 떠나가신 아버지 편안케 해드리지 못한 일이 눈에 선하여 낮에는 식음을 철폐하고 밤에는 눈을 감지 못했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라, 반열(班列)의 직분도 마다하고 고향 길에 올랐다.

저 시절에 제()나라 수군(隨郡)의 왕자(王者) ()이 섬서(陝西)를 진무(鎭撫)하라 기별 보냈기에, 하룻밤을 겨우 묵고서 다음날 아침 나룻터에서 이별하였다. 마음이 초조하여 군령(軍令)조차 제대로 받들지 못했는데, 조각배를 멈추고서 고향 길 별빛만 쳐다보곤 하였다.

한밤중에 파도를 무릅써 편안히 머물 틈도 없이 험한 뱃길을 저어 갔으나, 정릉(定陵)에 이르러 배가 파손되었다. 이 무렵 집안의 손님이었던 주중련(周仲連)이 마침 작두술주(鵲頭戌主)의 소임을 보았기에 급히 배 한척을 빌려 파도를 헤치며 나아갔는데, 갖은 고생을 다하고서야 간신히 제나라에 닿았다.

어그러진 일이 그칠 때에는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고 간장이 끊어지는지라, 바로 산소로 가서 삼년상을 살고자 하여 큰형에게 애원해도 홀로 가는 일을 허락지 않았다.

다시 북문(北門)에 오랑캐가 창궐하자, 조정에서 선군(先君)을 보내어 백성을 보살피도록 하였다. 그러나 생각은 옛일에 있는지라 예전의 부곡(部曲)이 무려 수천이나 되었다. 이에 무경종(武慶宗) 등의 장령(將領)이 남아 방비케 하였는데, 저 이가 진수(鎭守)하는 때에 바로 교지(敎旨)가 내렸다. 수춘(壽春)17)을 막게 하여 왕사(王事)에 어긋남이 없게 하고자 하였으나,

 

사양함을 피할 수 없었다.

자사(刺史) 최혜경(崔慧景)18)이 반역하려는 뜻을 품고서 병역에서 도망친 이들을 불러 모으자, 간악한 무리가 많이들 모여들었다. 마침내 몹시 흉악한 자들이 운집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팽분(彭盆)과 한원손(韓元孫) 등과 같은 자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에 군대를 출동시켜 길을 따라 신속하게 기습하여 회비(淮淝)까지 이르자, 마침내 흉도들이 놀라서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졌다.

대군주(臺軍主) 서현경(徐玄慶)과 방백옥(房伯玉) 등이 습격하여 최혜경(崔慧景)을 구속하면서 포위하자, 마침내 반란이 그치게 되었다. 그해 제명(齊明)19)이 재상을 맡았는데 논의를 정하지 못하였다. 비밀리에 소장을 올려 최혜경을 징계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전갈을 보내어[折簡]20) 석방하여 돌아가게 한다면 반드시 거부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신을 보내어 그 마음을 안심시키자고 하였다.

간특한 무리를 색출하여 연수(沿水) 인근이 편안해졌는데, 순삭(旬朔)이 지나서 최혜경이 진수(鎭守)를 거두자, 바로 갑옷을 벗고 경사로 귀환하였다. 이처럼 군무에 종사하느라 쉬지를 못하였는데, 마침내 수()가 백육(百六)21)으로 모일 때 운뢰(雲雷)가 모여 혼란을 없애고 반정(反政)을 일으키자, 사해를 모두 복종시켰다.

자로(子路)가 공자를 보고 양친을 모시는 때에 늘 나물밥만을 먹으면서도 어버이를 위해서는 백 리 바깥이라도 쌀을 져다 드렸습니다. 어버이가 안 계시게 되자, 남쪽으로 초나라를 다니며 백 승()의 수레에 곡식을 만종(萬鍾)이나 쌓아 놓고서, 자리 깔고 솥을 늘어놓고 밥을 먹는데, 차라리 나물밥을 먹으면서 어버이를 위해 쌀을 져드리고 싶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22)라고 말하였는데, 짐이 매번 이 같은 말에 감격하였으니, 부모가 계시건 안 계시건 부모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그 자애로움이 바다와 같으나, 효도는 물 한 방울 보태는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천하의 주인이 되고서도 봉양하지 못하니, 비유하면 흉년 든 해에 7보가 있더라도, 굶주려도 먹지를 못하고 추워도 입지를 못하는 것과 같으니, 길이 추모하며 통곡할지라도 어찌 슬픔을 달래겠는가?

이에 종산(鍾山) 기슭에 대애경사(大愛敬寺)를 짓고, 청계(靑溪) 기슭에 대지도사(大智度寺)를 이룩하여 망극(罔極)한 정을 표하고자 한다.

추모하는 마음을 지극히 하더라도 육아(蓼莪)23)

 

슬픔을 달랠 길 없다. 이에 다시 궁내에 지경전(至敬殿)을 이룩하되, 목수의 기예를 다하고 세속의 기이함을 다하니, 수석 사이로 물이 흐르게 하고 향목과 향초를 심을지나, 국사에 매여서 조석으로 시중들지 못하고 오직 삭망(朔望)에 손수 제사 지낼 뿐이다.

비록 다시 진수성찬을 차려 올리더라도 실로 우러러볼 바가 없기에, 속만 태우는 것이 불에 덴 듯이 하고 불에 지진 듯하므로, 애끓는 마음이 일에서 말로 드러나니 그 모시는 일을 말로써 다하고자 이에 효사부(孝思賦)를 지어 이렇게 읊는다.

 

네 계절 기운의 변화에 감응하여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하늘의 조화를 받아 성명을 달리하고

땅의 덕을 품수 받아 모두 번성한다.

 

사마귀[蟭螟]24)는 모기를 먹고 사는데

봉황은 북명(北溟)25)에 깃들어 사는지라

저 지각을 가진 것들은 달리 드러나고

색신(色身)이 같아도 모양이 틀리다.

 

만물의 종류가 많다 하여도

사람만이 그 중에 영장(靈長)이 되어

짐승이나 새와 달리 예의를 알고

말 또한 앵무와 서로 틀리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는 것[過隙]26)을 생각하니

무심히 흐르는 냇물만 보고 비탄에 젖네.27)

맨발로 서리를 밟는 게 처연하고

수곡(燧穀)28)을 품고서 눈물 흘린다.

 

이 슬픔 덮어서 버리지 못하니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없으며

중유(仲由)가 고어(枯魚)를 그리며 사모하듯 하는데

구오(丘吾)29)는 바람 부는 나뭇가지 애달피 여기네.

 

한 번 태어났다가 삶을 버린다고 해도

양친 봉양을 어찌 기약할 수 있겠는가?

생각은 마음에서 생기고 마음은 생각으로 일어나니

마음의 근원 이끌어 끝없이 흐른다.

 

그리워하는 마음 그치지 않아서

근심만 싸안고 생을 마치니

함휼(銜恤)에서 몰치(沒齒)까지

늘 한가하게 살면서 모실 것만 생각하였노라.

 

어루만지고 안아주던 일 생각마다 마음 상하니

산봉우리[] 높이 올라도 우러르지 못하는데30)

헛되이 민둥산 올라 무엇을 기리리.

눈물만 쏟아져 앞을 가린다.

 

더운 피가 솟구쳐 옷을 적시고

땅의 이치를 보고 스스로를 탓하니

성품이 없어져 이승을 달리하는 게 두려워

태극을 우러러 장탄식한다.

 

푸른 하늘에 간절히 슬픔 알려서

황천(皇天)의 감응이 있다손 하여도

 

넓고 넓은 은혜 어찌 갚으리

새벽 위궐(魏闕:궁문 밖에 법규를 걸어 놓던 장소)에 사지가 부스러진다.

 

밤마다 애간장이 찢어지는데

마음에 마음을 이어나가

그리움에 그리움을 더하여도 끝이 없어서

새벽녘 외로이 앉아 있어도 근심만 쌓인다.

 

저녁나절 홀로 있어도 서성이니

()가 끊어져 슬픔만 북받치고

그리움만 쌓여 미칠 지경이니

세시에 따뜻한 기운이 발하고 봄날이 양기를 싣는다.

 

가지마다 꽃망울 흐드러지고 풀냄새 싱그러워도

즐거운 때를 맞아도 기쁜 것 없이 허전하니

눈길 가는 대로 모두 서글픔뿐이며

주명(朱明)31)이 절기를 알리고 백일(白日)이 아침을 비춘다.

 

맛난 열매 맺으며 시원한 그늘 드리우나

답답한 가슴 속 기쁜 줄도 모르고

마음만 끝없이 얽히니

푸르른 갈대[蒹葭]32) 잎에 내린 이슬이 서리되네.

 

찬바람은 옷깃 사이로 스며들고

매서운 바람에 옷깃만 나부끼는데

이 마음 절박하게 헤매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외로이 슬퍼한다.

 

찬 얼음 맺혀지고 서릿발 끊어지듯이

푸른 잎 변하여 낙엽지는데 산등성이 흰 눈만 쌓여 간다.

기러기 길 떠나며 구슬피 우는데

삭풍의 바람소리 매섭기만 하여라.

 

눈길 가는 일마다 가슴 찢어지니

마음의 감흥마저 끊어졌구나.

한순간도 편안치 못하니

사시사철 탄식뿐이라.

 

세월은 무심히 흘러 돌아오지 않고

가는 세월은 번개처럼 순간이라네.

옛적 자애로운 얼굴 그리워하여

애통해도 다시 뵙지 못하리.

길러 주신 은혜를 애통하게도 갚지 못하니

보답코자 하여도 도리 없어

슬픔과 한스러움 함께 일지니

피눈물만 흩뿌린다.

 

참새는 봄철의 연못에 노닐고

기러기는 늦가을 하늘을 날며

오고 가는 때마다 절기를 맞추고

지저귀며 날면서도 음양을 가린다.

 

나는 어이해 이렇지 못한가.

2()를 잘못 베풀었으니

늘 허물만 기르며 윤회하면서

낮밤을 거쳐도 잊지 못한다.

 

붉은 꽃 보고나자 어느덧 녹음이 우거지고

흰 꽃 보았는데 어느덧 꽃잎 지는구나.

성정(性情)이 흔들려 뒤집어지니

생각을 골몰할수록 아득해진다.

 

명학(鳴鶴) 소리 듣자니 영혼이 끊어지고

외로운 메추리 소리에 마음은 사색(死色)인데

 

하늘이 다하도록 통곡하여도 믿을 곳 없고

세상 다하도록 울부짖어도 의지할 곳 없네.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일제(日磾)를 보아도33)

부처님 가르침에 어찌 미치겠는가?

감천궁(甘泉宮)에 탱화 모시고서

날마다 절하며 눈물 흘린다.

마음이 울적하여 편안치 않은데

방 안에 모시고 위안 삼으나

하라(何羅)의 난리를 일으키니

몸가짐을 다져서 거문고마저 버렸다.

 

왕이니 신하니 하는 명칭 넘어서서

그 정성에 상응할 만한 자 없으리라.

곳곳마다 몸소 다니시며

다른 것에 의지하여 권능을 가진 것을 본다.

 

그 몸은 비록 죽었어도 이름 남기셨으니

부처님이시야 충효를 온전히 하셨네.

정란(丁蘭)34)이 어떤 이인가 궁금한데

그 집안 하내(河內)의 야왕(野王)이었다.

 

당시 무상(舞象)35)이 바야흐로 미쳤는데

어린아이가 되자 부모가 돌아가시니

목모(木母)를 새겨 봉양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시중들었다.

 

유진(劉鎭)은 봉양할 여가 없어서

늘 멀리서 급급해 하면서도 힘이 닿지 못하네.

이 절개 영령을 감동시키니

예천(醴泉)이 조하(竈下:부뚜막 아래)에서 솟구치리라.

 

장사(長沙)의 임수(臨水)와 상수(湘水)를 돌아보건대

고초(古初)36)의 도가 시작된 곳이니

아비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마침내 화재가 발생하게 되었다.

 

관에 엎드려 길게 곡을 하자

비가 폭우처럼 내려 불이 꺼졌다.

하기(何琦)37) 또한 그렇게 하였으니

사당을 지어 놓고 온전히 모셨네.

 

왕상(王祥)38)은 노란 참새 휘장 속으로 들어가고

외통(隗通)39)에게는 횡석(橫石)이 땅 속에서 솟구쳐 드러났네.

성언(盛彦)40)이 어미의 눈을 뜨게 하고

형거(邢渠)가 아비의 이를 다시 나게 했었다.41)

 

이와 같이 많기도 한 것을 보자니

실로 적어 두기도 어렵구나.

신령한 뱀이 구슬 물고 덕을 갚으며42)

까마귀 거둬 먹이며 부모 은혜 갚았다.

 

미천한 짐승도 오히려 이럴진대

3()에 자리한 아름다운 사람은 어떻겠는가.

근본을 다스려 3()43)로 돌리니

생민(生民)5()44)를 다한다.

 

천지를 바로 하여 그 덕을 담으니

천하를 가로질러도 꺾이지 않고

이 같은 도리 밟아서 행하지 않으니

공문(孔門)의 가르침 무슨 소용 있으리.

 

3) 유칠산사부(遊七山寺賦) 양 선제(宣帝)

 

아득히 드넓은 산천이여

드높은 하늘과 고요한 기운이여

길마다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땅이 그윽하니 솟구쳐 올랐구나.

 

기수(浙水)의 왼쪽으로 꺼져 있으니

참으로 우내(寓內)의 승지(勝地)이어라.

첩첩이 솟구친 산봉우리 연이었는데

그저 배회하는 듯하면서 융기하였다.

 

올라가 바라보는 흥취를 다하였는데

정겹게도 나란히 에워싸고 있구나.

네 마리 용 고삐 물고 방주를 끄는 듯하고

만 마리 말 늘어서고 천 개의 노 휘젓는 듯하다.

모두 동남쪽의 절경이니

하후씨(夏禹氏) 혈거(穴居)45)의 옥경(玉磬)이라.

차지(差地)에 모여들어 서로 이웃하니

거리마다 인마가 끊겼고 길마다 끌채가 모자랐다.

 

()나라 문장(文章)을 모두 살피면서

흥겨움을 다하여 노닐지라.

숲 한 쪽 비켜난 거룻배 가벼이 기수(沂水) 오르니

진왕(秦王)의 옛 도읍터 돌아본다.

 

월지(越池)의 옛길도 지나치고서

도산(塗山)이 비스듬히 에워싼 산세를 바라보며

남호(南湖)로 나아가 기슭에 오르니

천태(天台)의 화령(華嶺)을 이었구나.

 

약야(若耶)46)를 끌어다 범수(汎水) 보태니

출렁이는 큰물 보게 될지라

저 산봉우리 한 번 치켜보고서

이에 낙림(樂林)을 지나 남쪽 기슭 타노라.

 

법화봉(法華峯) 올라 서쪽 바라보고

골짜기 구비진 물길 굽어보니

장계(長溪)가 첩첩이 굽이졌는데

물은 거울같이 맑고 맑구나.

 

물 밑에는 흙탕조차 없으며

산길이 험한 봉우리에 가로막히니

사다리 타듯 길 올라야 하는데

등나무를 붙잡고 칡넝쿨 휘어잡는다.

 

일행끼리 서로 손잡아 끌어주면서

굽이굽이 돌아나가

마령(馬嶺)의 높고 낮은 구릉을 타넘었으니

구름이 깔려서 아스라하다.

 

서늘한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데

홍천을 띠처럼 바라보고

큰 바다 옥같이 바라다보니

옥색 비단을 이 땅에서 잡는다.

 

제후(諸侯)를 모아 인사하듯 하고

소하(疏河)의 무성한 가지를 생각하며

대골(大骨)의 아득함 돌이켜보니

이 산악에 그 아름다움 전해진다.

 

맹려(氓黎)에게 유범(遺範)을 내렸던

이에 옛 현자의 오랜 자취 더듬어 본다.

 

고상한 유풍(遺風)이 아름다울지니

풀숲에 발자국 잠기도록 걸어도 본다.

 

우거진 잡초는 헤칠수록 더욱 깊은데

명산(名山)은 우뚝하니 솟구쳐 있구나.

깎아지른 골짜기는 아득하니 비어 있는데

봄철의 산색은 벽옥 같구나.

 

가을 녘 맑은 연못은 하늘처럼 파란데

그 빛깔 서로 이어져 연결되었다.

수레 자취 파묻혀 끝도 없으니

실로 빼어난 인재가 머물 곳이다.

 

대붕(大鵬)이 모여 기리던 곳이라

높은 산자락에 사찰 세우고

언덕에 도궁(都宮) 이루니

돌아볼수록 더욱 신령스럽기만 하구나.

 

선성(仙聖)이 교통하던 곳으로

바위자락 비바람에 안개 서리고

나뭇가지에 낙수 떨어져 싹 틔우니

좋은 화초가 앞뒤로 피어 있다.

 

동서로는 고운 꽃이 자라는데

붉은 산문(山門)이 선명히 드러나며

영롱하게 빛나는 대웅전 바라보고

대림(大林)의 정사가 늘어 서 있다.

 

중각(重閣)의 강당이 연이어 서 있어

참으로 고상한 선찰(禪刹)일지라.

널직한 화방(華房)이려니

굽이진 냇물을 끼고 방을 만든다.

 

산모롱이에 담장 세웠는데

저녁 구름에 노을은 창가에 피어오르고

아침 햇살은 추녀 끝에 비치니

참으로 굽이진 곳마다 수려할지라.

 

수려한 경관 덮어도 빛나니

맑은 종소리 은은하게 흐르고

경쇠 소리가 쟁쟁하게 울리며

배치가 세밀하여 가릴 것 없이 화려하다.

맑은 물결이 사방을 에워싸고 여울져 흐르고

비스듬한 궐문에 계단이 높다란데

물레방아가 금곡(金谷)에 맞닿았고

솟을 누각은 건장(建章)에 흡사하구나.

 

많은 대중 날마다 머무르며 현인도 성인도 있나니

뜻을 두타(頭陀)에 두고

고된 수행에 마음 열중하고

선잠을 다투며 경을 배운다.

 

모두 일찍 일어나 경건하고

()가 공하다는 빠른 흐름을 알며

조음(朝陰)의 신속함도 애석해 하니

토굴에 깊이 묻혀 3()에 통하였다.

 

숲 속에 숨어서 정도(正道) 닦을지니

소신공양으로 공을 이루거나

몸을 버리고 멸진정(滅盡定)47)에 들어가니

명향(名香)의 향기 짙기만 하다.

 

석장을 날려 서로 비추고

때로는 주미를 던져 고상하게도 말하며

 

때로는 한가하게 있으면서 앉아서 들으니

선방 대중이 칠통(漆桶)을 의심한다.

 

지혜로운 출가 선비 드리운 거울과 같고

석가불의 가르침 일어나 꽃을 피우니

법륜은 나날이 흥성해지고

절이 산속에 깃들이어 이룩됐는데.

산이름 따서 칠산(七山)이라 부르고

상서로운 구름 밀려들어

빼어난 선비가 배출되었으니

유계의 용검(龍劍)48)을 생산한다.

 

녹궤(鹿机)의 여술(餘術)에 노닐면서

봉황도 마다 않고 거두어들이니

정풍(鄭風)도 도리어 수그러지며

맑은 시냇물 졸졸 흐른다.

 

떨어지는 물줄기 넘쳐흐르는데

기묘한 나무들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진귀한 열매와 꽃들이 한둘이 아니니

산해(山海)에 석류나무 한 쌍 심는다.

 

단로(丹盧:丹橘盧橘)의 귤나무 한 쌍도 곁들이어 심으며

매화의 흰빛은 서리 맞은 듯한데

누른 감은 해처럼 빛나네.

햇살 따가운 여름에 꽃피고 매서운 겨울에 열매 맺으리.

 

산속에 본래 보배 많을지고

땅 속에 옥돌이 서려 있다네.

금옥(金玉)은 양()을 낳고

옥석[玞石]은 음()을 낳는다.

 

신명의 흙[神簣]49)을 보태어 홀로 서 있고

신선이 눌러 앉아 홀로 임하니

누가 한 해의 풍년과 흉년을 알겠는가?

현백(玄白)을 보아하면 모두 참되다.

 

돌에다 영덕(羸德)을 새겨놓으며

도상을 펼쳐 우()임금의 마음 깨달으니

수백 장 낭떠러지 천 길도 넘는데

드높은 산세가 아득하다.

 

펼쳐진 산자락 험하기도 하고

나무는 죽죽 벋어 있고 절벽은 깎아지른 듯한데

솟구쳐 흐르는 샘물 깊기만 하며

우러러볼수록 더욱더 가리워지고, 굽어볼수록 깊기만 하네.

 

끝없이 묘연한지라

가없이 아득하다네.

먼 산이 드문드문 솟아 있는데

가까이 우뚝한 나무들은 서로 연이었네.

 

큰 바위 떨어질 듯 매달려 있고

봉우리는 용한(龍漢)에 매여 있으며

연이어서[蟬聯]50) 해를 가리는 것 바라보니

볼수록 황홀하게 하늘에 이어져 있네.

 

거룻배 같은 괴이하게 생긴 돌은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물과 같다.

절벽을 만날 때마다 안개 서리니

돌과 맞닿아 연기처럼 피어난다.

 

울쑥불쑥 그늘지는데

치솟은 산등성이 수풀만 무성하니

 

멀리로는 강해(江海)와 맞닿아 있고

가까이로는 마을의 밭과 닿아 있다.

 

고을을 돌아보니 옆으로 저잣거리도 보이고

신주(神州)의 진령(鎭嶺)에 걸맞으니

실로 천하의 이름난 물이며

봉래산에서 성인의 자취와 같이 노닌다.

 

무축(巫岫)은 신선으로 드러내고

형양(衡陽)51)은 하공(夏貢)에 소문이 났으며

숭악(嵩岳)52)이 주편(周篇)에 귀중하니

어떤 산이 이보다 아름답다 하겠는가.

 

다시 신정(神井)에 기묘함을 드러내는데

만 년이 지나도록 맑게 흐르되

길어내어도 마르지 않고

더해도 가득 차지 않는다.

 

자주 퍼내어도 흐려지지 않고

손으로 휘저어도 결국은 맑아지네.

한겨울 추위에도 따뜻하고

무더위 올 적에도 시원하다.

 

성도(成都)의 비화(飛火)53)와도 다를지니

참으로 소륵(疎勒)54)의 드러난 정성이려니

예천(醴泉)의 깨끗함을 구하는 병[蠲疾]55)과도 필적하며

치수(淄水)의 감형(鑒形)56)과도 같을지라.

 

고담 도사(孤潭道士)와 초리 부인(焦里夫人)57) 여기 사는데

외따로 도를 음미하면서 친구와 손님의 왕래를 끊었다.

하루종일 선하(仙霞)를 마시며 천 년간 정좌(靜坐)하였는데

길에는 다닌 자취 없어서 가시가 자랐다.

 

부지런히 도를 향하며

소탈하게 속진을 잊었는데

소요하며 노래하기도 하고

팔베개 하고 길게 읊조리기도 한다.

 

동생(董生)이 내린 비결58)과 같이하고

양자(梁子)의 명잠(明箴)59)을 배우며

송교(松喬)60)와 벗이 되고

엄위(嚴衛)61)와 지기가 된다.

 

숲 속은 울창하여 날짐승이 깃드는데

원숭이는 손을 잡고 내려와 물을 마신다.

새떼가 날아올라 떼 지어 나는데

고니는 모여들어 함께 있구나.

 

흰 소리개 흰 깃털 윤기 흐르니

상모(霜毛)를 펼칠 적마다 빛이 나고

흰 깃촉 울릴 적마다 펄럭거린다.

기이한 짐승과 맹수 있다.

 

기슭에 드러누워 쉬는데

호랑이는 어질어서 해치지 않고

곰은 나무 뒤에 숨어서 새끼 낳으며

큰 코끼리 몇 장이나 나가고 큰 뱀은 몇 발이나 된다.

 

고라니와 사슴도 다가오고 산토끼조차 낯익어 하고

거문고 소리 나던 팽조(彭鏗)62) 때와 같은 신선 사는 곳일진대

해조(海鳥)의 지기(知機)와는 유다른데

약초가 자라나 늙은 말의 병을 풀어 준다.

 

땅에는 장령(長齡)이 돋아나 무덤마다 선종한 이뿐이다.

 

남산의 계곡과도 같고 우물 속에 감춰둔 보배와 같을세라.63)

마중 나온 유씨(劉氏)네 다섯 노인

상산(商山)4()64)와 무엇이 다르리.

 

우슬(牛膝)65)ㆍ계장(雞脹)ㆍ작두(雀頭)ㆍ연초(燕草)66)ㆍ감국(甘菊)ㆍ신이(辛夷)67)ㆍ고삼(苦參)ㆍ산조(酸棗)68)ㆍ자원(紫苑)ㆍ적전(赤箭)69)ㆍ황정(黃精)70)ㆍ백호(白豪)71)ㆍ천문(天門)ㆍ지골(地骨)ㆍ육지(肉芝)ㆍ석뇌(石腦)는 신농씨(神農氏)가 맛보고 선경(仙經)을 지은 것이라.

 

백토(白兎)를 먹으면 신령에 통하고

녹피(鹿皮)를 먹으면 도를 통한다네.

열매에는 목과(木瓜)ㆍ목조(木棗)

양도(楊桃)ㆍ양매(楊梅)가 있다.

 

주귤(朱橘)은 겨울철에 열매 여는데

황복(黃示葍)은 가을에 결실 맺는다.

차리(楂梨)도 큼직하고 고염도 튼실하니

지구(枳椇)가 줄지어 자라나 덤불 이뤘다.

 

낫으로 풀을 쳐내며 다니는데

능금은 부초(浮草)의 열매 같고

감당(甘棠)은 제대(帝臺)72)와도 같은데

홍매(紅苺)ㆍ앵도(蘡薁)ㆍ차리(車李)ㆍ호퇴(胡頹)가 있다.

 

녹탐(綠探)은 겨울철에 먹고

자우(紫芋)는 가을에 맺어지는데

반하(半夏)가 밭을 이루니

봄이 되면 한꺼번에 피어난다.

 

비파(枇杷)ㆍ이두(梨豆)ㆍ추율(椎栗)ㆍ겸해(兼該)

혹은 주렁주렁 열려 붉게 익어가고

산뜻한 푸른빛을 띠기도 하니

세찬 바람에 더욱 고와지고

 

된서리 내려도 꺾이지 않고

오동나무가 무성한 데다

긴 대나무마저 어울려 있고

조전(蓧箭)은 피어난 모습 어지럽다.

 

계수는 품종이 다른 듯하다.

추녀와 싸리문에 그림자 어릴 때

집안을 둘러싸고 울창하게 자라나니

나뭇잎 그늘이 옹달샘에 어린다.

 

깊은 골짜기 뿌리가 엉켰는데

영목(靈木)이 저절로 자라나고

길조(吉鳥)가 찾아와 깃들이니

실로 감탄할 만치 좋은 곳이다.

 

마음이 열리고 눈도 떠지니

구월의 가을이 되면 백화가 시들어 가는데

기운은 서늘하더라도 힘이 넘치고

바람이 쌀쌀하더라도 생기에 차다.

 

가을 녘 매미는 남쪽 등성이 찾아 드는데

겨울새는 북쪽 뜰에서 노래하고

저 멀리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애절하게 들리며

외로운 짐승은 피리 불듯이 운다.

 

겨울의 기러기 밤마다 옹옹거리고

조계는 구슬피 지저귀지만

 

일민(逸民)의 한가로움만 더하여

떠도는 나그네의 묵은 정을 깨운다.

 

모두 홀로 가려는 뜻을 품는데

탁영(濯纓)73)에 마음을 두니

달관한 사람을 여기에서 만나서

가히 마음을 펴고 노닐 만하다.

 

효선(孝先)74)은 떠나가 참다움 이루고

경서(慶緖)75)는 경을 가지고 세속을 떠나니

괴석(怪石)을 베개 삼고

창랑(滄浪)에 발을 씻는다.

 

예전의 현지가 이러했고

선유(先儒)의 고학(高學)도 이러했으리라.

내가 예전부터 마음속에 기대하던 것은

늘 아득한 길 그렸다.

 

논둑을 거닐면서

이름난 산에 살리라.

나라의 큰 은혜 생각하고

독왕(獨往)의 갈 길 늦춘다.

 

비녀를 뽑으려다

멈추곤 하였는데

한가로이 이 산 경개를

노랫가락에 싣노라.

 

4) 숙산사부(宿山寺賦) 양 왕석(王錫)76)

 

좋은 수레 살찐 말

말년에 와서 노니니

도로 들어가는 경계는 멀고도 밝으니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한시름 놓는다.

 

산사가 자리한 터는

실로 널찍하고도 드높기만 한데

층층으로 조각한 누각이 이어지고

거미줄 마냥 얽혀 있다.

 

벽공을 처마에 올려놓고서

모서리마다 기둥이 받치고 있다.

날아갈 듯이 우뚝하게 층을 이루고

올라가는 걸음 용마루로 향하고 우람하기만 하다.

 

지붕이 중천에 올랐다 내렸다 하니

지나가는 구름도 타오른다.

경내 집들은 깊숙하고도 텅 비었는데

계단마다 정적이 서려 있다.

 

범종의 묘한 소리 울려 퍼지면

밝혀진 연등마다 그림자 지는데

창문을 활짝 열면 가지 끝에 손이 닿아

산자락은 위로 솟구친다.

 

맑은 달빛을 머금고

아득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담으니

눈부시도록 밝기만 하고

주변도 환히 내다보인다.

 

벌판도 끝없이 펼쳐져 있고

연이은 산봉우리도 끝이 없다.

산자락에 서리는 안개 헤아려 보고

바위자락 자리잡은 나무 쳐다보고 있다.

 

커다란 나무 기세도 늠름하고

안개가 멀리 허공을 맴도는데

마음도 따라서 벌판을 넘겨 보니

 

마음을 새장 속에서 벗어낸다.

 

밤이 길고 기니 언제나 기약하려나

서리 내려 잎새 지는데

흩날리는 낙엽은 반딧불 같고

구야(九野)의 청학 소리도 영롱하다.

 

샘물에 세수하고 싱그러운 팥배나무에 깃들이고

골짜기에 난초꽃 흐드러지는데

번뇌도 어느덧 사그라지니

홀로 떠나서 멋대로 다니다.

 

나무 아래에 쉬기 쉬우니

어찌 만물이 간섭할 수 있으리.

얇은 이불보에 잠을 청하며

별빛을 베개 삼아도 편하기만 하다.

 

5) 녹원부(鹿苑賦)77) () 고윤(高允)78)

 

삭토(朔土:북방)에 큰 기틀 다시 열어 내니

헌원(軒轅)의 후예79)가 아니런가.

굳세기가 하늘을 이어 임금 되시고

빛나기가 대명(大明)을 이어 세상 다스린다.

 

신령한 금액(金液)으로 씻어서 흘려 보내고

어진 바람[仁風] 부쳐서 멀리 보낸다.

희문(姬文)80)을 이어서 원림(苑林) 세우니

산택(山澤)을 싸안고 개창하였다.

 

군물(群物)을 길러서 충실히 하고

사민(四民)의 세금을 감면해 주니

우리 황제가 대통(大統) 이어서81)

천종(天縱)의 밝은 지혜 내었다.

 

녹원(鹿園)을 돌이켜 지금에 두고

3()82)의 높은 이치 부흥시키니

그윽한 이치 떨쳐서 영구히 하고

천 년을 넘어 의지한 것이 있다.

 

장인(匠人) 고르고 공장(工匠) 뽑아서

서쪽 봉우리83) 깎아 내렸으니

온갖 성의를 다하여

거룩하신 모습을 새겨 넣었다.

 

참으로 참모습과 흡사한지라

금색신(金色身)이 밝게 빛나는데

깎아지른 절벽에다 운대(雲臺) 지으니

백심(百尋)의 깊이로 솟구쳐 있구나.

 

기둥 세우고 서까래 이었으니

천정에도 단청을 그려 넣었다.

만형(萬形)을 그리고

상감(象嵌)을 넣어 길이 빛나게 하였다.

 

가만히 기원(祇洹)을 응시하여 보듯이 하나

누가 저 도량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 신묘한 공으로 이룩한 것이

종고시대(終古時代)를 뛰어넘어 우뚝하도다.

 

참으로 신령마저 찬탄하니

잘 기려서 길상(吉象)을 보하리라.

선굴(仙窟)을 파서 선방 만들고

계단을 파서 통하게 하였다.

 

높은 추녀에 맑은 기운 서리게 하고

향 내음을 왕실까지 이르게 한다.

 

나무마다 무성하게 꽃을 피우고

예천(醴泉)이 샘솟듯 흘러넘친다.

 

용궁에 기우제 지내고

필성(畢星)84)에서 기름 취하니

구도의 질서와 같이 업을 닦는 것이 곧고

공덕을 그리고 풍화를 품고서 갈 길을 재촉한다.

 

응진(應眞)85)의 금계(禁戒) 굳게 지켜서

3()의 보전(寶典) 음미하면서

숲 속을 산보하면서 경행(經行)86)하거나

가부좌 결하여 편안히 좌선하노라.

 

온갖 선업(善業)이 모여서 함께 이르러

5()을 막아 함께 내치니

도는 숨길수록 더욱 드러나고

이름은 비방할수록 더욱 커진다.

 

저 황제가 여기로 행차하여

매번 꽃동산에서 마음 다스리니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여기서 넓혀지고

터를 닦아서 이궁(離宮)을 짓는다.

 

높은 누각에 의지하여 편히 머물며

평지를 일궈서 동산 만드니

어질고 슬기로움을 욕심없이 품고서

산수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뜬다.

 

숲 속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며

새매의 사냥도 그만두고

늙은이 보살펴 덕을 넓히니

생생(生生)이 이로써 복을 늘린다.

 

은혜가 안으로 충만하고

금성(金聲)을 밖으로 발하니

공을 온 천하에 이루고

선행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어진 이 찾아가 도를 묻고

추요(蒭蕘:꼴꾼과 나무꾼)에게 물어서 고쳐 나가며

영사(靈寺)에 공경 다하여

아침저녁으로 예불 올린다.

깨끗한 계율을 받들어 하루를 마치고

여섯 때[六時]87) 정진하느라 해가 저문다.

정성이 이처럼 지극할진대

9()도 단숨에 지나치리라.

 

성왕(聖王)의 원대한 도략(圖略)에 바탕을 두니

어찌 성명(聖明)한 교화 펴지 못하겠는가.

저녁 노을 드물게 피어오르는데

정생(頂生)88)의 높은 경지 흠모할지라.

 

진구(塵垢) 여의고 세속에 임하였노라.

현문(玄門)의 그윽한 곳으로 나아가며

태자[儲宮]89)에게 보위를 양위하실 제

태상(太上)의 존호 얻었다.

 

자리에 있건 없건 군유(群有) 다스리며

고요함 잡고서 번잡함 누른다.

천규(天規)를 지금 다시 볼지니

옛 철인이 남긴 가르침 따른다.

 

2()의 중복된 음덕을 깨닫고

살펴봄은 명리(明離)와 더불어 밝을지니

아래로 백성을 편안히 구제하며

위로는 7()에 영광 더한다.

 

 

만국도 하나같이 풍화에 순응할진대

군생을 거두어 길을 가리킨다.

남면(南面)하여 무위하고 있으니

마음을 영원히 신묘함에 둔다.

 

도화(道化)는 본시 고대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이 몸으로 법을 만났으니

부상(扶桑)이 처음 열리는 것을 만나

긴 밤에 서광 비추듯 한다.

 

나이 들수록90)

마음만 상하는데

욕됨을 무릅쓰고라도 두려워하면서

마음속 성의를 펼쳐 보이니

비루한 말을 드러내어 이같이 지었다.

 

6) 대승부(大乘賦)와 서문 위() 이옹(李顒)

대승(大乘)이란 여래의 도량이다. 그래서 연각(緣覺)과 성문(聲聞)을 소승(小乘)이라 이르니, 법의 수레가 두루 굴러가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마치 수레나 거룻배를 타고서야 멀리 가는 것과 같다.

합포(合抱)의 성전(聖殿)은 호리 끝에서 일어나고 9층의 보탑은 땅 위에서 지어진다. 미약한 것에서 장대해지니, 신묘한 이치는 현상으로 있지 않는 것에 달려 있으며, 거친 자취는 무가 아닌 것에 말미암는다.

있는 것을 들어서 없음을 바란다면 없음이 없는 것으로 통하게 되고, 없음도 잊어야 있음을 거느리게 되니, 바로 있음을 있게 하여야 형통하게 된다. 없음도 없게 해서 통하게 되면, 타는 것이 적어진다. 있음을 있게 하는 것으로 형통하게 되면, 타는 것이 커진다.

복덕을 거두어 회통하는 데는 법신(法身)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일체지(一切知)를 펴는 데는 여래보다 귀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신품(神禀)을 신령스럽게 비추어 3()의 권도(權道)를 관찰하되, 사유를 깊고도 널리 해서 4()의 문으로 들어가야만 색()이 공()하므로 임하여도 어그러지지 않고 일어남과 없어짐도 끝이 없으며, 처음과 끝이 한계가 없음을 깨닫고서 우주의 가운데에 처하며, 마음으로 2()의 바깥을 싸안게 된다.

눈으로는 겨자씨보다 작은 것도 살펴보고, 식으로는 수미산보다 큰 것도 가리게 되는데, 참으로 그윽하고도 깊은지라 근원을 실로 헤아리지 못하므로, 한탄하는 것도 부족하여 한탄만 하면서 이렇게 사부를 짓는다.

 

대승의 거룩한 수레 타고서

법고(法鼓)의 우레 소리 크게 울리며

5()의 의심을 없애니

미묘법 맛보며 기뻐하노라.

 

 

충만한 각의(覺意) 바다 같을새

반야(般若)의 깊은 이치 연출될지니

8정도의 평탄한 도량을 고루하면서

총지(總持)의 원림에서 노닌다.

 

선정의 삼매에 깃들어

5()의 색()과 상() 없애니

저라(抵羅)91)의 화살 잡고서

여의(如意)의 거문고 연주하노라.92)

 

온갖 그물을 찢어내고

탐하는 더러움을 끊고 음란함을 끊으니,

맺어진 것도 잠깐 사이 한낱 물거품 같고,

어찌 교태로운 바람에 발을 적시리.

 

명행(明行)을 이루어 선서(善逝)하리라.

공덕을 쌓아서 지금에 이르렀으니

살운(薩雲)이 공()의 뜻을 수렴하였고

10()93)을 운용하여 마군을 꺾었다.

 

지관(止觀)의 광명 열어 내니

사특한 생각에 잠겨 읊조리는 것을 해소하노라.

계율의 담장 쳐서 가로막으니

그림자와 메아리 찾기 힘든 것과 같네.

 

7) 상현부(詳玄賦) 석혜명(釋慧命)

 

한결같은 실상(實相)의 그윽함이여

만상(萬相)의 번잡함 한탄하노라.

진도(眞道)와 세속이 다를지나 한바탕이듯

범부와 성인은 나뉘어도 도는 하나이다.

 

스승의 가르침 이어받고

경전에서 나오는 향기에 의지하여

비루한 소견을 다하고

대방(大方)의 크신 말씀 청한다.

 

어떻게 군류(群類)와 얽혀서 살아갈 건가

드넓은 법계(法界)에 머물리라.

성품은 그윽할수록 깨달음 밝아지고

이치는 적멸할수록 더욱 빛나네.

()도 아니고 유()도 아니니

있는 듯 없는 듯하여라.

자씨보살(慈氏菩薩)에게 비밀장(秘密藏) 전하셨는데

그윽한 즐거움 백양(伯陽)94)에게서 탄식한다.

 

고요한 허공은 극진함을 이루고,

그물 드리워 만유(萬有) 거두나

일에 임하여 미혹되기 쉽지만

가까이 가도 알기 힘드네.

 

말로써 드러낼 것이 아니니

어찌 감정과 지혜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말하고자 해도 할 말을 잃으니

인연 따른 마음으로 생각을 쉬네.

 

비록 일음(一音)95)으로 두루 고하고

법륜을 세 번 굴려 미묘한 힘을 다하셨으니

고요한 문에서 8정도(正道)에 머물지 않은 적이 없으며

 

무욕의 경지에서 사변을 그치게 한다.

 

그 끝을 찾아보면

광활하여 끝이 없고

아득하여 다함없으며

근원을 거슬러도 시초가 없고

지극히 하여도 끝도 없다.

미혹을 풀어내어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리라.

 

()과 정()이 여기에서 모두 녹아

공과 유를 아울러도 적막할진대

우주를 싸고서 두루 같다.

쓰임새를 논해 보면

하나이면서 여럿 되고

고요하면서도 어지러울 수 있다.

 

만류가 다른 형태를 뽑아내고

군정(群情)의 달리 봄[別觀]을 이루네.

5()96)의 뿌리 맺으며

10()의 결박 이루니

 

밝고 어두움 따라 막히고 통하며

알고 모르는 대로 모이고 흩어진다.

4()가 이로써 떠돌게 되고

6()가 이로써 장구하리라.

 

3()10()97)이 이어서 애달파 하고

2()5()98)이 빛을 드리운다.

오르고 내림에 다 같이 구덩이로 빠져드니

따르고 거스름에 갈래가 나뉘는데

 

바탕에 그름도 없고 옳음도 없으며

쓰임새 모양도 없고 함도 없다.

순금은 귀고리에 막히지 않고

깊은 못은 작은 물보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름 써야 하나

복잡한 것이 어지럽게 일어난다.

매사가 천 갈래 만 갈래이고

이치는 천 개의 수레도 한 갈래이다.

 

연기로부터 무애의 경지를 살펴보니

사물의 본성에서 생각하기 실로 어렵다.

보전(寶殿)의 구슬 장막 같으며

요대(瑤臺)의 현경(懸鏡) 같은지라.

 

서로 다르면서 서로 침투해 있고

빨강과 자주로 나뉘어서도 서로를 비춘다.

마음 경계에 일정한 법이 없으니

사람이 어찌 범부와 성인이 다르겠는가.

 

물상(物象)은 나와 남에 막힘이 없고

매사에 옳고 그름 가리지 않는다.

크고 작음이 다를 게 무엇인가

서로 섞이면서도 스스로를 유지한다.

 

인허(隣虛)99)는 대천세계를 담고

찰나는 3()를 포함한다.

이 도리를 믿지 못함이 걱정스러운데

제망(帝網)100)을 빌어서 의심을 없앤다.

 

대개 보안(普眼)101)으로 살필 수 있으니

미혹한 소견으로야 어찌 알겠는가.

9()102)로 모인 현문(玄文) 바라보고

만성(萬聖)이 내린 준칙 본다.

상제(常啼)103)를 동쪽 저잣거리에서 돌아보고

남국의 선재(善財)104)를 부러워한다.

 

많은 성[多城]105)을 거치면서 깨달음을 이루고

온갖 스승 찾아가 미혹 떨친다.

 

처음엔 문수보살 말씀 받들고

끝내는 묘덕(妙德:문수)에게 근본을 돌리네.

형체를 나투어 법계 다니며

기원(祇園)106)에서 발을 떼지 않았네.

 

일왕(一王)의 학정107)과 비슷함을 탄식하니

번잡한 5()이 더욱 싫구나.

손을 모으고 화수(和修)의 집108)에 들어가

손가락 튀겨서 아일(阿逸)109)의 문을 열었다.

 

도리의 참된 말씀 받들고

상주하시는 성인의 거룩한 모습 엿보노라.

삼구(三九)110)는 여기에서 소리가 끊기고

이칠(二七)111)도 여기에서부터 혼이 망한다.

 

참으로 깊은 경계일진대

어찌 쉽게 상론할 수 있겠는가.

혼미한 함식(含識)이 가련한데

슬기 없는 군생(群生)이 불쌍하구나.

 

같거나 다른 네 가지 사견(邪見)112)을 가지고

단멸(斷滅)과 상주(常住)의 두 가지 계책을 일으킨다.

긴 잠에서 꿈속의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병든 눈에 어리는 아지랑이만 탐닉하노라.

 

매이고 묶인 것에 얽매여 풀지도 못했는데

물결에 내맡겨서 정처 없이 떠도네.

7()을 등지고 미혹으로 빠져들고

6()에 물들어 막히기만 하는구나.

 

어떻게 이치는 통하면서도 뜻은 막히고

법은 옳은데 정은 그릇되는가.

시종도 없이 홀로 떠나가니

오랫동안 떠돌면서 돌아갈 줄 모른다.

 

가난한 집에 보물을 묻고113)

헤진 옷자락에 명주(明珠)를 숨긴다.

진여(眞如)를 싸안고도 알지 못하고,

만 가지 번뇌 매여서 한숨만 내쉰다.

 

내가 비록 말대에 태어났으나

미혹에 얽매여 명()만 재촉한다.

5()114)에서 흐르는 빛에 의지하여

4()115)의 가르침을 배웠다.

 

강원에 들어가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선림에 의탁하여 욕심 버리네.

원숭이 쇠사슬 채워 조용히 하고

뱀을 통에 넣어 굽은 것 펴도다.

 

넓은 바다는 계율의 거룻배로 건너고

깜깜한 밤을 지혜의 촛불로 밝힌다.

구구한 이론을 끊고 생각조차 봉했고

거짓된 감정에서 시비를 멈추었다.

 

깨달음에서 인연을 처음 모으고

사려를 무생에서 끝내 고요하게 하네.

참다운 근본의 실상 드러내고

세상살이 헛된 이름 통달한다.

 

()는 처음 가는 길에서 남겨둠이 없고

어두움은 처음 밝아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여섯 도적을 나란히 내몰고서

 

10()의 군대 평정하길 기대한다.

 

시 한 수 읊으니

먹구름 몰렸다가도 흩어진다.

마음의 탁수(濁水)는 언제나 맑아지려나

자성(自性)의 바다는 증감(增減)이 없으나

중천의 밝은 달은 차고 기우네.

 

토끼발이 짧은가 의심스럽고

기러기 터럭 가벼운지 걱정되는데

한 삼태기 흙 보태어 산이 될지니

곤륜산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네.

 

8) 현포원강부(玄圃園講賦)116) 소자운(蕭子雲)117)

 

천감(天監)의 열일곱 번째 햇수118)

공덕이 바야흐로 펼쳐지니

옥백(玉帛)에 윤기 흐르니

실로 창생하는 징조가 여기에 있구나.

 

위로는 하늘이 비치고

아래로 샘이 솟는데

구불구불한 기운을 토하니

해와 달 그림자 둥글기만 하구나.

 

거룩한 무덕(武德)이 용처럼 날아오르는데

천하를 실어서 한집안 이루네.

경수(景數:하늘의 운행)로부터 규범 이으려 생각하고

밝은 사직 오래도록 가꿔가리.

 

()나라의 광휘를 거듭한다면

하나라의 영화를 되돌리는 것과 같다.

전대(前代)의 성좌가 빛을 드리우고

커다란 종[洪鍾]소리가 윤아(胤雅:皇胤 太子)에 퍼진다.

 

영복(永福)119)을 떠나 동조(東朝:東宮)로 나아가자마자

문물을 기초지우고 성명(聲明)을 밝히니

현장(玄章)을 그림으로 드러내고

물총새 깃으로 푸르른 갓끈을 화려하게 한다.

 

무늬 넣은 방울고리 걸치고

갈대 피리 불어서 숙정(蕭靜)케 한다.

그 빛을 내려 주니

아름다운 이름을 사방에 떨쳤다.

 

장막 치고 민심 살피며

학교 지어 백성 가르쳤다네.

성품과 천도(天道)는 고루한 데다

말씀마다 규범이 된다.

 

시사(詩史)에 박식하고 예역(禮易)에 능통할지니

이치는 낙수(洛水)에서 피어나며

문장은 청담(靑潭)에서 화려하고

예전의 7각지(覺支:7覺分)로 꽃을 토한다.

 

하늘과 사람보다 장구하고

대도가 서방에 펼쳐져 나날이 쓰여졌으나

정법이 동녘으로 흘러도 밝지 못하고

문왕에게 신명함을 주었다.

 

보주(寶珠)를 명양(明兩)120)에 의지하게 하였으니

이야기는 예전과 달랐으나 세상은 같았다.

천 년이나 메아리와 그림자로 남으니

정법(正法)의 우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서로운 지혜 구름 처음 보이고

진여(眞如)의 자취를 이어 나가며

발휘된 공적 이루고

금물을 개어 옥첩(玉牒) 펴냈다.

 

 

증율(蒸栗:삶은 밤색깔)의 간독(簡牘)을 털어내며

암라(菴羅:菴摩勒)의 나뭇잎을 채취하고

영편(靈篇)을 석실(石室)121)

경협(經篋)을 남궁(南宮)122)에 모셨다.

 

이로써 일음이 끊이지 않았고

규범을 잇고 짧은 것을 쌓게 되었다.

지극한 사람이 도를 말하는 것은

반드시 산림의 광활함 같았다.

 

내원(奈園)은 행단(杏壇)123)과 함께 깊어지고

정명(淨名)은 소왕(素王:공자)과 함께 법도가 되며

맑은 물을 널리 흐르게 하는지라

현자의 융성함을 본받아 즐기게 하였다.

 

슬기로운 지혜로 그윽하게 장막 폈으니

현포원(玄圃菀)’을 고원하게 이야기하고

복락(福樂)을 펴고 대도(大道)를 베푸는 위에서

영포(靈圃)와 묘리를 살핀다.

 

금림(禁林)을 무성하게 길렀고

도를 실어 나르는 삼성(三星)124)의 기운을 받아

육요(六曜)의 이궁(離宮)에서 행도했으니

바닷물 연못에 대고 화산(華山)에 견주어 높이 지었다.

 

동산은 크고 작고 험하고 순한데

비탈길 가팔라서 여름에도 서리가 엉긴다.

아래로 냇물이 흘러서 다리 놓았는데

위로는 푸른 운기 붉은 노을 안개처럼 어린다.

 

꽃과 수풀에 등불과 옥돌에다

눈부신 옥조(玉藻)가 단적칠흑(丹赤漆黑)이라네.

사방에 꽃나무 심어 물 주어 기르고

계수나무 가을 단풍이 향기롭다.

 

골짜기 사람 모이고 복숭아 가지 벌레 깃들이네.

풀잎 나부끼며 신령한 열매가 늘어졌다.

장경(長卿)125)은 추위에 비취빛 내고

간자(簡子)126) 덩굴은 가을에 다홍색을 띤다.

 

구름이 절벽에 걸려 비를 토하니

가지가 나부끼며 바람소리 일어난다.

가운데 못가에 난초가 자라고

잔잔한 푸른 물은 급류 따라 흐른다.

 

깊은 물 속을 바라볼수록

우뚝 솟은 누각이 거꾸로 서 있고

조대(釣臺)는 물에 뜬 채로 찰랑거리는데

커다란 배에는 비취색 휘장을 펼친다.

 

조그만 쪽배에는 날개를 드리우고

새 중에 삼나무 닭[杉鷄]127)은 바탕이 화려하며

목객(木客)128)은 무늬가 빛나니

대승(戴勝)129)은 입에서 풀을 토한다.

척령(鶺鴒:할미새)은 향기를 쫓아다니고

옥색의 거북이와 자주색 자라,

해오라기와 원앙새는

날마다 바람 소리 새기며 물에서 어울린다.

 

숲에는 노랑연꽃과 마름 풀, 부용이 피어 가볍게 산들거린다.

낭떠러지에 큰 돌이 걸려 있는데

무너진 구덩이에 모래가 가득하고

물고기 뛰는 모양 눈에 선하다.

 

주름진 붉은 새우에다

 

도롱이의 끊어진 청사 흔들리고

물 위에 낭자하게 흐트러져 있다.

구리 거북은 물을 뿜어낸다.

 

돌고래에서 쏟아지는 물에 파도가 일고

금원(禁園)의 장대한 경치 장관인 것이

비야리(毘耶)130)과 흡사한데

청궁(淸宮)의 널찍한 뜰에다 장막 펼친다.

 

등불은 빛나고 타는 나무는 빛을 깜박이고

여섯 자 섬광을 모아 풀숲에 비추니 아홉 빛깔 현란하며

아름답기는 쇠금이 모래에서 나듯 하고

찬란하기는 뭇 별이 하늘을 도는 것과 같다.

 

아침 햇살 빛날 때까지 밤새워 반짝이는데

뭉게구름이 밀려와 감긴다.

서원(西園)으로 수레 가볍게 몰아

()나라 궁은 북쪽 정원이라네.

 

위사(衛司)가 도열해 있고

스님들이 엄숙히 서 있다.

법고를 울려서 소리를 떨치면,

온갖 향내음 진동할지라.

 

백수(百獸)도 멀리서 우러러본다.

구층의 운거(雲車)와 네 마리 사슴의 지가(芝駕)에다

오나라 미희와 초나라 미녀가

호가(胡笳)와 연축(燕筑)에 장단 맞춰 노래하노라.

 

말 타고 축국(蹴鞠)하며 소양(少陽)131) 건너고

자주 빛 관복을 입은 고관에 현자는 녹을 받는데

흩어지는 꽃들이 바람에 날리며

숲 속에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등왕(燈王)132)이 귀의하여 자리 바치고

향적(香積:중향세계의 부처)이 찾아와 숙소(熟素) 올린다.

중성(衆聖)이 공법(空法)에 타듯 하려니

능인(能仁:석가불)의 모습 눈에 어린다.

 

솟구친 추녀 끝에 모습 선하여

법회를 베풀어 범부에게 설법하시는 듯하다.

높은 전각 엄숙하고도 장엄한지라

미언(微言)을 기뻐하며 이치 말한다.

 

복된 말씀이 단청보다 빛나며

손수 음지(音旨)를 받들어서

지혜를 만물에 두루 펴는 것에 마음 기울이니

진정으로 탐구하여 진리를 다한다.

 

드높으신 말씀 만상(萬象)을 넘어섰고

이치가 첩첩이 쌓여 계류(繫類)133)를 초월하니

오량(吳兩)의 흥겨운 말조차 충분치 않은데

진가(眞假)의 이치에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사관은 붓을 쥐고 기록에 힘쓰고 직분 다하기를 바라며

금상(金相)을 읊조리고 옥식(玉式)을 노래한다.

세상에 감로 법문 전하였으니

백성이 인수(仁壽)의 땅에 올랐어라.

 

요궁(瑤宮)의 수레를 받들어

운루(雲樓)의 수레 따르자니

 

양양한 복덕이 남산 같을새

길이 남겨서 다함없으리.

 

9) 몽부(夢賦) () 석진관(釋眞觀)

 

지난밤 잠자다 의식이 형통하니

장생(莊生)이 나비 만난 듯

공자가 주공 만난 듯134)

꿈속 일 헛것일지나

 

마음속 일이란 그윽이 같도다.

어떤 기이한 손님 봤는데

기슭에서 사람 놀래키니

이름도 성도 모른다.

귀신인지 도깨비인지

모습이 단정하며 옷차림도 빛나고 새로운데

문 열고 들어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이르러 큰소리친다.

 

내가 보다 못해 몇 마디 물었는데

사도(邪道)는 정도(正道)를 간섭하지 못하고

나쁜 것은 착한 것 어지럽히지 못하는데

맑고 흐름이 다르다.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다른데

내 몸에 법의 갑옷 두르고

마음이 묘전(妙典)에 노니는데

여섯 도적도 항복시킨다.

 

네 마리 뱀도 물리치는데

큰 수레를 부려서 작은 마군을 잘라 내리라.

그대는 누구이런가.

와서 무엇을 논변하려는가?

 

손님이 대꾸하기를

오랫동안 명성 들었으나 공경스런 인사 못했었는데

늘 사모하며 속으로만 되뇌인다

이제야 빛나는 풍채를 뵈오니

참으로 경사입니다.

 

말씀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높으신 가르침 내리어

대체로 사람살이 한평생 빌어온 듯 버린 듯하고

붉은 번개 하늘 놀래키듯 한 것이

백마가 작은 틈을 지나치듯 빠르네.

어찌 좋은 시절 따르지 않을런가.

인생의 환락을 취하여

밭두둑 길로 준마를 달리며

넓은 들판에서 수레를 맨다.

 

서원(西園)에 앉아서 친구나 부르고

남재(南齋)에서 손님과 마주하며

들판에 나가서는 사냥하고 사슴 잡으며

규방에 들어가면 석금(石琴) 탄다.

 

간혹 술독을 끼고 마주앉아서

잔을 비우며 기염 토하니

흥겨운 가락으로 그것을 거듭하며

맛있는 고기로 그것을 편다.

 

학문 창성하고 집안 번창할새

덕이 날로 중해져 세상에 이름 내며

강동(江東)의 독보가 되니 천하에 짝 없으며

마음은 의리(義理)의 움집이고 몸은 지혜 주머니이니

 

금관자로 한()나라 거닐고 패옥으로 양()나라 노니니

높은 수레 날쌘 말에다 향기 어린 거처에

 

()나라 미희 줄지어 시중들고

()나라 미녀 방 안 채운다.

 

가야금 퉁소 소리 고즈넉이 듣고

사죽(絲竹)이 쟁쟁대는 소리 듣는데

이 어찌 한 생의 쾌락만이겠는가?

천재(千載)에 길이 향기롭구나.

 

어찌 웃음소리도 없이 쓸쓸이 혼자 살면서

삭발하고 수염 자르며

부모를 거스르고 임금을 저버리면서

형색이 초췌하고 옷은 남루한가?

 

양잠을 피하고 장사조차 하지 않으니

조각 천을 모아다 기워 입은 게

곳곳이 뜯어져 셀 수 없이 꿰매고

주린 배에 아침 이슬 마신다.

 

바람 찬 야반에 추위에 떨면서

늙어서 구부정하니 길을 다니고

나이 먹는 것도 잊고 방문 잠그고

텅 빈 침상에 냉기만 돈다.

 

홑이불 자락에 잠을 청하며

자손도 없이 후사마저 끊었으니

붕우가 찾아오는 즐거움도 마다하고

이같이 하여 도를 구한다.

 

어찌 도를 어렵게만 생각하여

내가 어이없어 웃으며

심요(心要)를 대략이나마 말해 주고자

뜸을 들인 연후에 대답하였다.

 

찾아와 대뜸 하는 말 과장된 게

필시 삿된 길로 꼬이고자 함이라.

우물 안 개구리가 고래와 크기를 쟁론하고

반딧불이 일월과 밝기 다투는 꼴이다.

 

사마귀가 대붕의 날개 꺾으려 들고

언덕배기가 곤륜산에 맞서는 짓거리와 다름없노라.

잠에 취해 생사에 어두우니

현황(玄黃)에 물들어 분별조차 못한다.

 

아는 게 술 마시고 방탕하며 고대광실 사는 건대

어찌 재물의 해독을 알 것인가.

화씨 벽을 품고서도 재앙만 닥쳤고

단 것은 입을 상하게 한다.

 

좋은 음식을 뱃속에 썩이며

여색만 밝혀서 화근 부르고

목 타는 애욕에 미쳐 버리니

사람살이 쉬이 다한다.

 

만물의 이치 무상할진대

아침에 노래 부르다 저녁에 통곡할지라

망하는 길로만 치달으니

쾌락도 잠시 슬픔만 늘어 가노라.

 

분분한 세간에 즐길 게 없으니

만 갈래 고초가 다투어 찾아오고

수많은 근심이 다투어 가버리며

처자식 도리어 질곡 될지라.

 

사랑도 다시 그물 같아서

내 집안 힘겨움에 메산 같은데

국사에 애쓰느라 번거로우니

영화도 한순간의 물거품이라.

 

 

부귀도 산속의 메아리 같은데

거꾸로 미혹에 깊이 빠져서

늘 처참하기만 하며

자식은 불효하고 아비는 자애롭지 못하구나.

 

도덕조차 돌아보지 않으니

가슴에 역심(逆心)만 채우고

마음에 도적만 기르며

과대망상에 사치하느라

 

마음만 괴로운데

인의(仁義)조차 행하지 못하면서

누구와 전칙(典則)을 논하며

어긋나게 살생만 저지르는가?

 

이유 없이 탐욕만 부리면서

이로움만 보이면 다투어 빼앗고

재물만 비루하게 구걸하다가

자리도 이름도 잃는다.

 

집안도 나라도 망치고

명줄이 끊어지면 몸뚱이도 거꾸러지려니

업장에 머리가 뽑히고

귀신은 힘줄을 베어내려 한다.

 

얼음 못에 던져지고 불덩어리 덮어쓰니

아픔을 견딜 것 스스로 알아도

슬픔을 누르는 것 누가 헤아리겠는가?

칼날이 수풀처럼 돋아나 있다.

 

창끝이 산처럼 솟구쳐 있는데

풍로의 불길만 매서워지고

끓는 물은 튀어 올라 혼비백산할진대

겹겹이 쇠 그물에 둘러싸여 있다.

불타는 강물이 넘실대는데

모든 고통 순서대로 지나치되

머리는 톱으로 썰어내고

뼈마디는 절구로 찧는다.

 

몸 조각을 집어다 잔별처럼 흩뿌리고

몸뚱이의 핏자국 시내 이룬다.

하루아침 목숨 다하면

만 가지 한스러움 어찌하련가.

 

정법이 깊고도 넓어서

묘한 이치 다하기 어려운데

()도 멸()도 아니고 색()도 심()도 아니니

기연 따라 가서 이르고 인연 따라 임한다.

 

안으로 만덕(萬德) 펼치고

밖으로 8() 열어젖힌다.

술 취한 코끼리 항복 받고서

놀랜 날짐승 그림자에 숨긴다.

 

모습은 둥근 달과 같고

형체는 금을 녹인 듯하여라.

마침내 니건(尼揵:Nigrantha)이 신을 벗고

범지(梵志)가 비녀를 뽑게 하였네.

 

그러나 출가(出家)의 도라는 것은

한가로이 살아가며 욕심도 구함도 없으니

천자를 섬기지 않고 왕후도 공경하지 않노라.

티 없는 옥 같을진대 결박 끊은 방주이리라.

 

노랫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며

갓조차 남기지 않으니

함도 없고 바람도 없는데

두려워하고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 함께 거두고

선정과 지혜 겸수(兼修)하고자

천인(天人)을 스승으로 모범 삼고

호걸과 서민들 그것에 의지한다.

 

학문은 나날이 더해가고

도를 행하는 것은 날마다 줄이니135)

덜어낼수록 도업(道業)은 높아지고

보탤수록 배운 공은 늘어난다.

 

속인 모습 길이 끊고서

 

마음을 세속의 마음과 달리할지니

입느니 삼베옷이고

먹느니 식은 밥이다.

 

큰 스승 천 리를 찾아가 명을 받들고

정법을 흠모하여 여섯 때 근수하며

8()의 연못에서 생각을 씻어내고

7()의 뜰에서 마음 노닌다.

 

도안(道安)ㆍ도립(道立)ㆍ혜원(慧遠)ㆍ혜지(慧持) 스님과

적자(赤髭)의 법주(法主), 청안(靑眼)의 율사(律師)

여러 경전을 변론하면서

()을 강론하고136) ()를 토론하였다.

마음을 열어 귀를 즐겁게 하고

막힌 것 풀어내 의심 지우니

후대에 이름 떨치며

당대에 독보적 존재였다.

 

()나라 임금과 한 수레 타고137)

()나라 황제와 자리를 같이했는데138)

환현(桓玄)이 두 번 절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치초(郗超)가 천 곡()을 바쳐도 오히려 한마디도 안 했다.139)

 

수행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하니

후대에 경사가 남게 되리니

사천왕과 범천(梵天)이 다투어 모시고

6()이 저마다 시중든다.

 

기읍(畿邑)을 봉하여 현달하며 국토를 청정케 할지라

보배나무 옥가지와 금쪽 연화 옥구슬이

바람결에 맑게 울린다. 시냇물 아름다운 소리 내며 흐르니

연못마다 은감 같고 땅바닥 거울 같도다.

 

좋은 향기 흩날리며

이름난 꽃 피울진대

가까이는 신명이 즐겁고

멀리는 목숨을 돌이킬세라.

 

6()를 닦아서 10()가 원만한데

영지(靈智)는 깊어지고 종각(鍾覺)이 가득할새

적막하고 텅빈 마음자리 맑혀서 정갈하구나.

바탕은 장애가 되는 바탕이 아니다.

 

이름은 현상으로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고

물과 불이 하늘을 찔러도 겁내지 않고

번개가 땅을 치더라도 놀라지 않으니

천하의 지극함도 예서 다할지라.

 

누가 감히 그와 대항하겠는가?

찾아온 선비가 이 말 듣고 두 손 모아 허리 굽히며

저도 모르게 눈썹도 오그리고 손가락도 거머쥘진대

혼비백산한 것이 넋 나간 듯하였다.

 

낯이 뜨거워 뒷걸음질 치면서 놀라며 말하기를

제 자신 비루함을 알지 못하고

넋두리만 늘어나 부끄럽기 짝이 없으니

오늘날의 가르침 받들어 새겨듣겠나이다.

 

10) 상애자부(傷愛子賦)140)와 서문 강엄(江淹)

 

강구(江艽)는 자()가 윤경(胤卿)인데, 내 둘째 아들이다. 나면서 신통하여 필시 대기(大器)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애석하게도 우환으로 해를 넘기다 죽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여, 이 글을 짓는다.

 

가을빛도 완연해지는데

가슴에 맺히느니 슬픔뿐이네.

불쌍한 것 마음만 시리다.

구슬 같던 사랑하는 아들 애통하다.

 

수심 어린 모습 겉으로 드러나고

걱정 어린 마음 속으로 찢어지는데

일월도 녹일 수 있으나 슬픔 지우지 못하고

금석도 닳을지나 그리움 어찌 다하리.

 

멀리 우리 조상 혁희씨(赫羲氏) 이어서

고양(高陽)의 핏줄 이었을진대

우리 종씨(宗氏) 덧없음이 애석하니

아마도 내가 거두지 못했도다.

 

3(:일월성)이 복 주시기만 우러르는데

우두커니 어린 자식 장성하기만 기다리니

윤경이의 명이 어이 이리 참혹한가?

하늘에 빌어도 보우하심 없구나.

 

청춘(靑春)에 아이가 태어났으니

섭제격(攝提格)141)이 정월달이었네.

잘생기기가 비할 데 없었기에

옛사람보다 뛰어나기만 바랐다.

 

아름다운 자취에다 티 없는 행실 더하였고

맑은 일에 성대한 공 보탰는데

흰 서리 풀잎에 내리자

오동나무 가래나무와 함께 시드네.

 

함께했던 여름철[朱明] 되새기면서

어릴 적 영특했던 일 생각하고

흔쾌히 따르던 모습 그려볼진대

드나들던 문짝을 쳐다볼수록 울적해진다.

어이해 지금 이리도 적막하련가.

잃어버린 그 모습 그 목소리 아직도 생생한데

누이는 대낮에도 흐느껴 울며

막내가 한스러운 맏이는 눈물만 삼키네.

 

목석(木石)도 감동하여 슬퍼하는데

눈물은 고였다 떨어지고

가슴 속 깊은 사랑 잃었으니

어미 되는 여인(麗人)은 피눈물로 땅만 적시누나.

 

하늘을 우러르며 눈물짓고

가슴치며 떠나간 아이만 그려본다.

아이 다니던 곳 디딜 때마다 가슴 쓰라린데

아무리 애도한들 누가 듣겠나.

 

오고 가는 운명을 어찌 말할 수 있으리.

내 예전에 행복했는데

강심(江潯)에 벼슬 살면서

늘그막에 서러움만 느는구나.

 

그리움 황혼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데

달빛만 해를 이어 교교하다.

 

노을 진 구름이 그늘 이루니

안개 자욱이 나무를 휘감네.

 

밝은 달빛 숲 속 비치니

어이할꼬! 내 아들

내 갖은 고생에 이 꼴 볼지니

긴긴밤에 섬대(纖帶)를 점쳐본다.

 

이른 아침에 보빈(葆鬢)을 살펴보아도

세상의 사람살이 기쁨은 적은데 근심만 가없구나.

10()도 헛된 이름뿐인데

어찌 백령(百齡)의 햇수 바라겠는가.

 

달빛이 밤하늘에 교교한데

흰 이슬 아침결에 맺히니

손가락질 가리켜도 알지 못하고

이 도리에 어긋나서 스스로만 망치네.

 

살아서 부모 사랑하고 집안에서 정을 길이 하는 것인데

자식이 먼저 황천으로 영원히 가버렸으니

내가 창기(蒼祇:천지 또는 창천의 신기)에 죄지은 게 없다고

후토(厚土)를 원망한들 무엇하리.

 

부처님의 거룩하신 과보만 믿고서

3세의 먼 길을 돌이킬지니

깨끗한 안식처에 함께 오르길 바래서

속진(俗塵)의 습기조차 길이 버리리라.

 

11) 무위론(無爲論)과 서문

내 일찍이 정각(正覺)에 회향하여 복전(福田)에 귀의하면서, 친구가 나에게 벼슬살이 권해도 내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에 무위론을 짓는 바이다.

누대에 공자(公子)가 있었는데 연이어 관모(冠毛)를 쓰고 흰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관복을 입었다. 등에 진 장검은 밝게 빛나고, 옆에 찬 패옥은 연이어 울렸다. 이때 직하(稷下)142)에 노닐거나 양()나라를 찾아다니다, 영웅에게 듣고도 한 번 표변(豹變)하며 이롭게도 해롭게도 하는 것을 듣고는 마치 용이 치솟듯 한다.

이에 붉은 가죽신을 부리고 보마를 치달리며 옥 재갈을 번쩍이도록 휘둘러서 마침내 무위(無爲) 선생의 집 앞에 당도해서, 대뜸 이같이 말했다.

선생은 지혜와 공덕이 빛나고 무르익은 데다 거룩함도 견줄 만한 짝이 없습니다. 맑고 원대한 도의(道義)는 큰 바다로도 비유하기에 부족하고, 이루지 못한 공부가 없으며, 통달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차림새가 그윽하며 말소리도 온화하시니, 석가(釋迦) 삼장(三藏)의 경전이나

 

이군(李君)도덕경이나 선니(宣尼:공자) 육예(六藝)의 글이나 백가(百家) 겸해(兼該)의 술법에 이르기까지, 그 요점을 추려서 충현(沖玄)을 얻지 못한 바가 없습니다. 빛나기가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고, 환하기가 마치 손바닥의 구슬을 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듣자니 천지의 큰 덕을 ()’이라 한다143)는데, 어째서 사람이 모으는 것은 재물이라 합니까? 이로써 노담이 주하사(柱下史)가 되고, 장주(莊周)가 원리(園吏)144)가 되었으니, 동방삭(東方朔)145)은 지극(持戟)의 관직도 피곤타 하지 않았으며, 중니도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만고의 모범이며 한 시절의 스승일진대, 선생이 은둔하여 경서를 살피고 덕을 기르느라 벼슬 살지 않았으니, 이는 한낱 열자(列子)의 술법으로 천하의 지극한 이치에 통하는 바가 아닙니다. 천하를 얻는 것을 영예로 삼는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진신(縉紳)이 모두들 비루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이같이 대답하였다.

부귀를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단지 운수에 통하지 않았을 뿐이로다. 충성과 효도는 나라의 급한 일이겠으나, 신생(申生)146)과 오원(伍員)은 뜻을 펴지 못하였다. 도를 기리고 덕을 싸안는 것은 도가철학이 기리는 바이니, 양웅(楊雄)147)과 동방삭(東方朔)도 그 직분이 높지 못했다.

커다란 학문이라야 단지 유가와 묵가인데, 이 또한 지리멸렬하여 대부분 뜻을 펴지 못했다. 그대가 끌어대는 선비들은 마음은 바랬으나 뜻을 펴지 못한 이들이다. 근심과 기쁨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도를 행할 수 있는데, 이들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가 듣자니, 대인(大人)이 자취를 내리시어 자비를 널리 펴시는데, 생사의 굴레를 깨트리고 열반의 피안에 이르러, 3승을 열어 만물을 인도하시되, 하나의 상()을 내치고 진도(眞道)로 돌이키는지라, 지혜로운 이도 그 오고감을 보지 못하며, 뜻 있는 이도 시초와 끝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윽하게 상주하시어 다른 길을 영원히 끊었으며, 변화도 천화(遷化)도 없어서 백려(百慮)를 길이 끊고 욕심없이 신명(神明)을 기르는데, 뜻을 편안히 하는 것으로 업을 삼아서

 

하늘마저 보우하기에, 그 길상(吉祥)에 이로움 아닌 게 없다.

펴고 마는 것을 대에 따라 취하고 나아가고 물러섬이 자연 그대로인지라, 세상을 피하여도 번민이 없으며, 숨어살더라도 길이 곧은데, 대체 무엇을 영화롭게 여기며, 무엇을 비루하게 여기겠는가? 그대가 이 도리를 얻는다고 내가 무엇을 잃겠는가? 속진(俗塵)과 방외(方外)가 이같이 뚜렷한 것이다.”

공자가 그만 아연하여 부끄러워하면서,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12) 벌마조(伐魔詔)와 서문 원위(元魏) () 법사

삼계(三界)에 살면서 늘 네 가지 마군[]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생사에 빠져서 6()를 두루 다닌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사람 몸을 얻어 경법(經法)을 듣는다면, 마치 우담꽃148)을 보고, 부공(浮孔)149)을 만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거룩한 가르침으로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을 미루어 보면, 아름다운 내 몸 하류(下流)에 처하여 저 피안을 꺼렸던지라, 그 태어남에 기인해서 이 같은 유루(有漏)의 악신(惡身)을 얻게 되었다. 마음을 낮추고 뜻을 공손히 하여도 메울 길이 없으니, 이제는 어리석음에 기인하여 네 가지 마군150)을 소탕하기로 한다. 예전에 어릴 적에는 일찍이 파마로포(波魔露布)’를 지었는데, 글이 비루한데도 호사가들 사이에서 전해져 왔다.

천도 이후에 낙양에 머물렀는데, 우연히 고탑 내에서 이 글을 다시 찾았으니, 마침 국도(國都) 법사가 금강반야사(金剛波若寺)에서 승만경(勝鬘經)을 강의하던 때였다. 내가 글을 보여드리자, 법사께서는 내외의 학에 정통하신 데다 문채가 훌륭하셨는지라, 바로 경전을 펼쳐서 마군의 일을 보여 주셨으니, 참으로 길조이다.

이때에 석도안(釋道安) 스님의 격마문(檄魔文)을 함께 읽었다. 또한 내가 어리석은 데도 불구하고 옛 글을 고쳐서 평마사(平魔赦)를 짓고서 법사님에게 다시 보여드렸는데, 다시 의혹된 곳이 없었다.

 

도안 스님의 격문(檄文)은 천마를 바로 내치려는 것이다.

대체로 세상의 화근이 되는 것을 열거하면 네 가지가 있는데, 모두 천마가 임기로 변화하는 것은 비루한 마음으로 헤아리기란 실로 어렵다. 번뇌의 음()이 죽는 것이 우환 가운데 가장 심하니, 벌마조위로문(慰勞文)을 지어 글의 모두(冒頭)에 두었는데, 이로써 예전 글과 달라지고 글이 번잡하게 되었으나, 신심 있는 군자의 행도가 일거양득하기만 바란다.

도안 스님의 격마문을 함께 철해서 1권으로 하였다.

 

(1) 벌마조(伐魔詔)

문하(門下)

광겁(曠劫)에 걸쳐진 거짓된 마군을 잡아다 처형하라. 새매를 4()에 풀어 놓은 듯 이리가 5()를 굽어보는 듯, 그 마음이 완고하고 독하여 늘 깨무는 일만 생각하면서, 한 모퉁이를 굳게 지키며 늘 성교(聲敎)를 방해한다.

대통 이래로 현겁(賢劫)에 다다르도록 백왕(百王)이 자취를 잇고, 천성(千聖)이 서로 전하였는데, 그 임하는 위세가 백 갈래 길이고, 그 인도하는 교화가 천 가지 계책이었다. 그럼에도 저 마군의 삿된 마음을 막아서 이 같은 이단의 소견을 막지 못하였으니, 저 마군이 탐심(貪心)만 늘리고 진심(瞋心)과 치심(癡心)이 서로 마주하게 하여, 4()을 맺어 6()에 머물게 한다. 꾀어내는 말로 이 같은 병근(病根)만 이루니,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요원(燎原)의 불길이 가까이 다가오고 큰물에 점차로 잠겨가는지라, 내 스스로도 이를 용납하여 전도되게 함이 없어야 한다. 군대를 연마하여 기연 따라 건져줄지니, 창생(蒼生)이 다시 윤회하는 한탄을 품도록 놓아 두지 못하겠다. 주무 관부에 명하나니, 속히 시행하도록 하라.

 

신 신상(信相) 등이 아룁니다. 봉피(奉被)

조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이 보건대, 근기를 드러내는 사람은 풍화(風化)를 받들어 귀순하는데, 미혹에 빠진 이는 위엄을 드리운 연후에야 항복합니다. 이로써 순()임금이 무기로 춤을 추어 다스림에 묘족(苗族)이 왕정(王庭)에 나와 스스로 결박하였으며,151) 목련(目連)이 활을 드리우자 금지(金地)에서 원()을 볼 수 있는 때가 되었고,152) 마침내 심왕(心王)을 참수하고 변방을 평정하여 고루(高樓)에서 굽어보게 되었습니다.

몸에는 인욕의 갑옷[忍鎧:袈裟]을 입고 손에는 물장구를 들고서, 아끼던 재물마저 내던지고,

 

선열(禪悅)의 좋은 먹거리를 차려 내어 저와 같은 장수들을 대접하니, 마침내 이와 같은 용장들이 모였습니다. 뜻은 천규(天規)에 두고 꺾어 내지 못함이 없었으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복하지 아니하는 뜻이 없는지라, 네 가지 마군이 구구하더라도 어찌 염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지금 저들이 한데 모여 흩어지지 않았으니, 매사에 반드시 소탕해서 분부하신 대로 처단하겠습니다. 말을 펴고 수레를 머무르게 하여 삼가 아뢰오니, 해외에도 이같이 시행하시기를 청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2) 위로마서(慰勞魔書)

삼계(三界)5()의 지각을 가진 군생(群生)에 고하노라.

희화(羲和)가 번갈아 수레를 몰더라도 소경은 여전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벼락이 울리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한다. 비추는 이치가 균등하다고 해도 품수(禀受)받은 도는 서로 다르므로 아름다운 법음은 다른 소리에 막히고, 자비의 광명은 이견에 덮인다. 혼미함만 이어져 무명의 긴긴밤에 어두워지는데, 비록 겁석(劫石)이 닳더라도 이 같은 연을 다하지 못한다.

우리 고조(高祖)께서 이렇게 어지러운 흐름을 불쌍히 여기시어 구제할 마음을 가지시고, 몸으로는 특별한 광명을 간직하시고 입으로는 이채로운 말씀을 발하시어, 공전(空前)의 굉기(宏基)를 여시어 현각(玄覺)을 처음 넓히셨다. 그래서 한번 커다란 지혜를 펼치시므로 큰 소[巨犜]153)가 경쟁적으로 달리듯 하였으며, 다시 도교를 선택하니 양과 사슴이 따랐다.

가슴에 무생(無生)을 증득하고 흉중에 적멸(寂滅)을 거두었으니, 해마다 덕은 변하더라도 마음은 정()에 머무셨는데, 황저(皇儲:황태자)에 명하여 대업(大業)을 일으키도록 하셨다. 선제(先帝)가 이러한 거대한 바탕에 의거하여 나에게 전대(前代)의 대서(大緖)를 내렸으니, 3대겁(大劫) 동안 덕을 쌓고 진겁(塵劫)토록 공을 이루고, 그윽한 기틀에 마음 바꾸고 정신을 속세에 노닐어 나아가 합치시켰다.

몸 그대로 주랑(舟囊)인지라 큰 파도도 이겨내며 마음대로 물속을 나오고 들어가며, 권도(權道)의 이치에 자재하시므로 저 9겁을 넘어서 이 곳의 4()에 임하셨으니, 한 곳에 자리하시어 만국을 호령하시면서도 80여 년간 형벌을 쓰지 않았다. 단지 상황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상(聖上)께서 돌아가시자, 가르침의 자취도 달라지게 되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품었다.

경들은

 

해와 같은 종자이므로 전륜왕의 치세에 4()을 디뎌 밝기도 하고, 또 월성(月性)이 높은지라 충정을 변치 않으면서 삼계의 명신(名臣)이 되기도 하면서 한 시절의 영화와 봉록을 지켰다.

단지 관작의 운명을 항상하기 힘들므로 어려운 때와 형통한 때가 있었으니, 때로는 교만하여 집안을 망치고 때로는 욕심으로 나라를 잃으며 후손들로 하여금 파도에 휩쓸려도 돌아올 줄 모르고, 저러한 삿된 근원만 따르고 이러한 애욕의 바다만 떠돈다. 바로 천마(天魔)가 저 위에서 틈을 타고 근심을 지으니, 번뇌가 이로써 자라나 하국(下國)을 침범하곤 하는데, 때로는 중음(中陰)154)을 생겨나기 전에 두르고, 때로는 5()155)를 내달아 늙어버린다.

오르고 내리느라 끝내 피곤하기만 한데, 오랫동안 열심히 하다가도 가서 사라지게 된다. 막부(幕府)가 기회를 보아 호걸을 일으키니 그 뛰어난 지략이 발군인지라, 문무를 겸비하여 진도(眞道)를 체득하고 세속을 단련하였다. 백왕의 홍규(洪規)를 이어받고 만대의 유훈을 이었으니, 도를 행하며 용상(龍象)에 머물면서 이 같은 나루터의 문호를 두드렸다.

바야흐로 광채가 위아래로 뻗치고 기마(騎馬)가 팔방(八方)을 에워쌓으니, 삿된 무리를 총괄하여 만유(萬有)를 보살핀다. 삼계를 한 몸에 가두어 두고 바깥이 없는 곳에 백강을 들어 올려서 수미산을 뽑아다 큰 바다의 파도를 다스렸다.

우주를 거꾸로 하고 해와 달도 가는 바를 돌렸으며, 인도(人道)와 천상(天上)을 거꾸로 매달아 물과 육지도 끓어오르게 하였다. 마침내 유아(唯我)의 마음을 막고서 선래(善來)의 길을 열었으며, 도탄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 주었으며, 동일한 사랑을 무간지옥에서 펼쳐서 3()를 평탄히 하고 4()를 거두었다. 위엄으로써 감동시키고 복으로 편안케 했는데, 어찌 작은 귀신이 말할 만하겠는가? 경들이 이미 그릇되게 행하여 미혹에 빠진 것이 오래되었으니, 의당 이 상황의 기회에 따라서 하루 빨리 좋은 계획을 이루어야 하리라.

기회는 얻기는 힘들고 잃기는 쉬우니, 기연을 한 번 놓치면 후회막급이리라. 이 기회를 얻으면 복록(福祿)이 다투어 이르게 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툼만 곧바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두융(竇融)156)이 복록을 누린 것도 매사에 선각(先覺)에게 귀의하였기 때문이며,

 

공손(公孫)157)이 죽음을 당한 것도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두 과거의 훌륭한 귀감이 되고 지금의 법도가 되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편안함을 꾀하는 것으로 위험에 대처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다된 일도 망치게 된다.

성공과 실패나, 편안과 위험은 상황과 기회에 달려 있는 것으로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 3()의 수레를 대어 놓고 보배 창고를 처음 열고, 높은 작위를 걸어 놓고 공을 기다린다. 천관(天官)을 두어서 철인(哲人)에게 명하는 것은 바로 대사(大士)가 종횡하는 계기이며, 지혜와 용맹으로 공을 세우는 상황이다.

경들과 함께 드넓은 벌판으로 출동하고자 하니, 곁가지로 흐르는 다른 땅에서는 옛날만을 회고하면서, 혹 돕는다 하나 속으로는 네 가지 마군을 그리워하며, 자기도 모르게 칼을 어루만진다. 그러므로 먼저 백서(白書)를 내려서 그 성패를 대략 진술하니, 미혹의 무리들은 속히 개전하여 광명을 되찾고서 명에 부응하고 말 재갈을 도량으로 나란히 몰아서 수레에다 어깨를 같이하거라.

 

()

일찍이 듣지 못했던 가르침을 받자와 품의하나이다.

군자가 친구와 우호적으로 화합하는 것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한 취향에 지나치게 편안하고 머뭇거리며 안일하게 놀아서는 안 될 것이니, 이러한 생멸(生滅)이 서로 이어지고 유와 무가 이어서 지어질까 두렵습니다. 3()이 한 번 치달리면 의리상의 원수나 친한 사람도 구별이 없을 것이고, 4()이 한 번 출몰하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베어질 것이니, 목숨을 보존코자 하여도 어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업(善業)의 몸이 이뤄졌으니, 6()이 길을 열어 화택(火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굴복하지 않는 자는 찾아서 토벌하고 참수하는 것은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시행합니다. 다행히도 지나간 이치를 체득하여 상황에 따라 계책을 내놓으니, 주저함이 없이 이 같은 화근을 도려내어야 합니다.

길 떠남에 임하여 상주합니다. 말씀드릴 것이 많으나 다하지 못합니다.

 

 

(3) 격마문(檄魔文) () 석도안(釋道安)

미천(彌天) 석도안(釋道安)이 머리를 숙입니다.

마군의 장군을 수레바퀴로 짓밟고 함께 수복하려니, 현문(玄門)의 대중이 나루를 달리하지만 인도(人道)와 천상(天上)을 하나로 통일한다. 종사(宗師)께서 비록 삼계와 더불어 대동(大同)을 이루시어, 매번 성제자(聖弟子)를 모아서 전하셨으나, 그 표방하는 것이 펴지지 못하여 단절이 생기곤 하였다.

지금 법왕이 세상을 다스리시니, 온 천하[九服]

 

순종하고 신령한 그물이 펼쳐지면서 커다란 벼리가 널리 퍼졌다. 대통(大通)의 목표를 가지니, 성대한 연회가 가까이에 있다. 큰 소임을 맡지 않았어도 제각기 뜻을 펴서 참여하거라.

석도안이 머리 숙입니다.

상황에는 막히고 통하는 바가 있으니, 곤궁함이 다하면 형통해진다.

1천의 성인이 서로를 잇고 1만의 스승이 서로를 대신하였다. 예전에 우리의 고조(高祖)이신 본원천주(本元天主)께서 몸을 바꾸시어 상서(祥瑞)에 응하셨으니, 신룡(神龍)처럼 처음으로 이 구역에 날아 올랐다.

권형(權衡)에 의지하여 만방(萬邦)을 가르시고 지혜의 도끼를 떨쳐 6()을 굴복시키셨으니, 4()를 소탕하시고 3()를 숙청하셨다. 여덟 구역에 커다란 벼리를 들어 올릴 때, 우주에 신령한 그물을 매달아 놓으면서 7()을 다스려서 9(:9)를 일가(一家)로 만드셨다.

단지 그윽한 이치는 위무하지 않고 진용(眞容)만 고요히 하셨으니, 일월이 그 빛을 거두고 빈 배가 풍랑에 전복되었다. 이때서야 독사 같은 번뇌가 일어나고 올빼미 같은 무리가 경쟁적으로 일어났는데, 5()가 거룩한 제자들을 물들이고 진구(塵垢)가 청정한 대중을 더럽혔다. 창생(蒼生)을 학대하며 독이 만겁토록 흘렀으니, 청정하게 도를 구하는 이들이 삿된 소견에 함께 분노하였다.

우리 법왕께서 운수에 바탕을 두고 기회를 타서 만물을 다스리시면서 위로는 고귀한 법에 의지하고 아래로는 군유(群有)의 마음을 거두셨는데, 현기(玄機:신묘한 계책)를 잡고 삼천대천세계를 장악하시고, 성 제자를 거느리고 대업을 크게 이룩하셨다.

구름이 일어나 4()을 뒤덮고 난새는 천축국으로 날았으니, 가이성(迦夷城)에 신명을 드리워 정법의 간성이 되셨다. 여원(黎元)을 보살피며 경사(卿士)를 선도하고 평안케 하였으니, 어진 대중을 인도하시며 병을 위로하고 돌보셨다. 가슴에 지혜 도끼를 엄숙히 하시고, 몸에 신묘한 갑옷을 두르시고서, 18불공법(佛共法)에 짝하지 못하는 이를 염려하시며 3()158)의 길이 끊어짐을 불쌍히 여기셨다.

대업을 바르게 하는 데 뜻을 두고 환란을 평정하는 데 마음을 두니, 백역(百域)과 천방(千邦)이 모두 그 풍화에 굴복하였다. 그대 오랫동안 미혹된 마음을 안고서 거듭된 미혹이 저절로 덮여진 것을 이어서, 어리석은 마음에 깊이 집착하고 사견만 간직하였다. 이리가 욕계천(欲界天)에 머물며 올빼미가 천당에 둥지 틀었으니, 그만 복전이 변하여 황야가 되었다. 신령하신 절개에 항거하여 천위(天位)에 오를 수 있고 홍규(洪規)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이 같은 두세 가지를 살펴보면 그 아득히 먼 것이

 

개탄스럽다.

대통(大通)의 통일세계란 무엇인가 하면, 만방(萬方)이 모두 그림자처럼 따르며, 저 어리석은 천마로 하여금 바른 절개를 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인이 듣는 것을 방해하고 진구가 신령한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마졸(魔卒)이 허공을 메우고 기이한 형태가 천변만화 일으키게 하니, 기름 먹인 계율의 갑옷이 번쩍거리며 서리 같은 지혜의 창날로 해를 겨누고, 신령한 법고(法鼓)를 울리면서 방외(方外)로 보무도 당당하게 진군해야 한다. 스스로 강하고 위세 있음을 말하면서도, 왕의 군대가 한번 떨쳐서 모든 사특함을 없애 버리니, 여러 마군이 마음을 고치고 바라는 교화는 안으로 붙이니, 너희들과 같은 일개 필부가 어찌하겠는가?

저 천마가 땅을 가려서 찾지 않고 대중이 법의 반려가 되지 않지만, 이치에 어긋나고 상도를 저버리게 하고자 왕릉과 경읍에서 신령한 대권을 찬탈하니, 승리로써 믿음을 빼앗고 거짓으로 참다움을 덧칠한다고 어찌 잘못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석가 황제의 치세에 겁초(劫初)처럼 다시 도가 융성해졌으며, 묘한 교화가 당당한 데다 신묘한 법의 그물이 멀리 드리워졌다. 지사(智士)는 슬기로운지라 신묘한 자비의 계책이 세상을 뒤덮고, 장수는 신룡(神龍)처럼 뛰어난지라 군대를 잘 거느리는데, 짜내는 계략마다 참다움에 응하고 기이한 전술마다 훌륭하기만 하다.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전봉대장군(前鋒大將軍) 염부도독(閻浮都督) 귀의후(歸義侯) 살타파륜(薩陀波崙)에게 부절(符節)을 내주노라.

유독 하늘이 낸 재능을 받고 의로움은 현각(玄覺)에 베풀며, 신명(神明)이 수미산처럼 높고 용기는 세상을 뒤덮는데, 문무에 능통하며 황궐(皇闕)에 충성 다할지니, 이에 40만 억의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앞장서도록 하라. 유사에게 명하여 위원대장군(威遠大將軍) 사천도독(四天都督) 도리공(忉利公) 도사(導師) 담무갈(曇無竭)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무공은 일품으로 뛰어나며 문장은 화하(華夏)를 넘어서는데, 커다란 전략은 속진[]을 격해 있으며 마음을 꿈속 경계 바깥에 쉬면서 매번 몸을 잊고 세상을 근심하며 세상을 바로잡을 뜻을 기릴지니, 이에 백억의 대군을 거느리고 수미산을 공략하도록 하라. 유사에게 명하여 정마대장군(征魔大將軍) 육천도독(六天都督) 도솔왕(兜率王) 해탈월(解脫月)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묘한 사유가 아득한 데다 높은 기개는 진세(塵世)에 으뜸이며, 도략(道略)이 동진 보살(童眞菩薩)과 함께하며 공은 9()와 짝한다. 3()를 불쌍히 여기면서 그대들이 악업만 자행하는 것에 진노하여, 이제 지혜의 칼을 쥐고 비분강개할지라 신룡처럼

 

돌이켜 분전할지니, 이에 5백만 억 군대를 거느리고 말방울을 천도(天道)에 휘날리도록 하라. 유사에게 명하여 통미장군(通微將軍) 칠천도독(七天都督) 사선왕(四禪王) 금강장(金剛藏)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밝은 뜻은 아득한 데다 금안(金顔)으로 멀리 굽어보니, 그 은총이 9()159)에 각별하고 힘이 산해(山海)를 뒤집는다. 왼쪽으로는 물보라 흩날리는 것을 굽어보고 오른쪽으로는 부상(扶桑)에 해가 지는 것을 쏘아보니, 그 덕에 베풀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그 위엄에 굴복시키지 못하는 적이 없는지라, 이에 7백만 억 군대를 거느리고 천문(天門)을 구름처럼 에워싸도록 하라. 유사에게 명하여 진성장군(鎭城將軍) 구천도독(九天都督) 십지대왕(十地大王) 유마힐(維摩詰)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기묘한 헤아림이 부사의하여 정법의 도끼로 천하를 떨게 하며, 육체에는 신묘한 자태 어리고 선권(善權)이 만 가지로 변화를 본떴다. 숨길마다 온 천하가 부복하고 구름이 무너지듯 추종하며, 호령마다 시방이 풀잎처럼 누우니, 위엄으로 어리석은 이를 교화하고 고초 받는 이를 풀어주는지라, 이에 9백 억 군대를 거느리고 신령한 기슭에서 물을 먹이도록 하라. 유사에게 명하여 감복대장군(鑒復大將軍) 십구천도독(十九天都督) 십주대왕(十住大王)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갑옷 입은 모습이 일품이며 형상이 3(耀)보다 빛나는지라, 그 몸이 금강(金剛)이며 신명은 드높고 육체는 거대하다. 천 갈래 길에 임하여 현묘한 헤아림에 도략(途略)1만을 넘는지라, 한 몸으로 군유(群有)를 감화시키고 일념으로 만 가지 생각을 쉬게 한다. 자비심이 깊은 데다 4()마저 겸하였으니, 군대를 미진수(微塵數)처럼 거느리고 이 땅에 드높이 오르도록 하라. 유사에 명을 내려서 광교대장군(匡敎大將軍) 십구천도독(十九天都督) 녹마제군사(錄魔諸軍事) 군사교위(群邪校尉) 중천왕(中千王) 관세음(觀世音)에게 부절을 내주노라.

지략(智略)이 깊디깊고 지혜의 벼리가 그물 같은데, 6()에 밝게 통하였고 3()를 밝게 비추며, 예봉이 번뜩이는 온갖 사도(邪道)에 자취를 의탁하고, 혹 열여덟 가지 몸으로 선권방편(善權方便) 이루어 도탄(塗炭)을 쉬게 한다. 손을 휘두르면 철위산(鐵圍山)이 무너지고 숨을 내쉬어 구름조차 흩트리는데, 시방세계에 청하지 않는 이익을 지으니, 이에 부사의한 대중을 거느리고 바람 소리 세차게 호랑이 포효하듯이 한다. 유사에게 명을 내려서

 

무화대장군(撫化大將軍) 시방 삼계 대도독 보처왕(補處王) 대자씨(大慈氏)에게 부절을 내려 주노라.

묘한 바탕이 자연스럽고 천자(天姿)가 뚜렷하니, 그 바탕이 금강에 비견되고 마음은 속진을 벗어났으며, 용맹한 뜻은 하늘을 뚫었고 지혜의 가지는 멀리 떨쳤는데, 무생이 가슴 속에서 구르고 권도(權道)의 지혜가 방외(方外)에서 호응하니, 규제하는 뜻을 가지고 어디를 가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위엄과 은총을 다 같이 행하며, 진도와 세속을 고루 기쁘게 하는지라, 8백만 억 군대를 거느리고 대가(大駕)를 호위하며 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용맹스러운 성제자가 대천세계에 가득하고 금강 같은 선비가 8()에 충만하다. 모두들 정벌을 도와 6()을 석권하고자 하니, 여러 갈래 보배 가마 타고서 8정도의 길을 지켜 닦으며, 6신통의 좋은 말을 타고서 허종(虛宗)의 신묘한 방울을 울리며, 4()160)의 활을 당겨서 선권(善權) 지혜의 날랜 화살을 쏘아댄다. 준마가 크게 부르짖으며 나아가는 걸음도 가볍기에 지혜의 검을 휘두르고 선정의 창을 날리며, 크게 부르짖으며 적을 무찌른다.

저 장군들이 3세를 거듭하여 영광을 거듭하고 보태면서 제업(帝業)을 널리 이루며 대대로 성정(聖庭)에 봉직해 왔으되, 일찍이 빠뜨린 것이 없었으니, 고귀하기가 도사(道師)인지라 자손이 5백이나 되어 천명을 그윽이 살피면서 왕법의 교화를 지켜간다.

성상(聖上)이 소매를 열어서 모두에게 작위와 봉록을 하사하니, 즐비한 선비들의 공적이 구관(舊官)에 필적하고 명성이 만방을 덮는다. 이러한 데도 그대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다른 소견을 내고자 하는가?

변방에 넘어지고 절뚝거리면서도 완고하게 상주법(常住法)만 고집하기에 그 해독이 창생에 드리우고 재해가 영겁에 걸쳐 흐를지니,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못이 아닐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예전에 시절이 거칠던 때에 사물에 미혹하여 마음이 미치게 되었는지라, 그대들이 헛되이 바깥으로 치달으나 백 가지 행 가운데 한 가지만 그릇되더라도 현달하였던 적이 없었다.

너희들에게 이르나니, 지혜를 길러서 어리석음을 돌이키며, 상궐(象闕)161)에서 허물을 벗고, 몸을 단속하여 비녀를 뽑아내어 여러 준재들과 함께하여 도를 스스로 즐겨 영예로운 이름을 남기도록 하라.

어리석음에 막혀서 미혹된 소견만 고집하며 삿된 자리만 훔쳐서 안주하니, 태산 같은 치심(癡心)에 의탁하여 스스로를 높이며, 무성한 소견으로 헛된 생각에만 맴돌고,

 

6()의 진구(塵垢)만 탐하며, 바르지 못하고 미혹된 것으로 본성을 즐기며 교만의 깃대를 높이 쳐들고 무명의 흉진(凶陣)만 펼친다.

3악도를 활보하는 주제에 도리어 신기(神器)를 가벼이 희롱하면서 천궁(天宮)을 훔치고 일월에 대항하려 하니, 꼴이 마치 손을 들어 3()162)을 막으려는 것과 같으며, 흙을 퍼다가 사해를 메우려는 짓과도 같으며, 북을 두드려 우레와 소리를 다투려 하는 것과도 같으며, 횃불로 번개와 빛을 다투려 하는 것과도 같다. 헛된 것에 마음 쓰더라도 그 같은 일을 이루기 힘들다.

그러나 장군이 덕을 현진(玄津)의 기슭에 심고 원대하게 길러 나갈지니, 탐스런 꽃송이가 만발하여 중생이 모두 눈을 떼지 못한다. 너희들이 귀한 자리를 기어오르기는 쉽지만, 그 연유하는 공은 아낄 만하다.

지난 일을 고치고 앞일을 닦아가며, 돌이켜 귀순하여 주문(朱門:붉은 칠을 한 귀족 호걸의 집)에 허물을 빌고 대도와 더불어 함께한다면, 나라와 집안이 아울러 보존되고 군신이 모두 현달할진대, 이로써 이름 얻고 태평을 누리며 눈을 떠서 달관하게 되리니, 그 권속조차 편안한 것이 어찌 이름답지 않겠는가?

대사(大師)께서 한 번 거수하시면 만방에 번개 친 듯한데, 손에는 법이(法蠃)를 들고서 지혜의 칼을 벼리니, 대도의 도끼가 전방에서 빛나고 신령한 법고 소리가 후방까지 울린다. 신종(神鍾)을 한 번 울리면 시방세계가 모두 귀 기울이고, 바다에 파도 일면 물보라가 튄다. 그러한 때에는 육지의 벌판마저 끓어오르는 때가 되면, 수미산도 먼지로 화하고 천지도 좁쌀만해질 터이나 왼쪽 소매를 미동도 안하면서 오른손으로 묘한 곡조 탄주할지니, 그 신묘한 권능이 이러할진대 무엇으로 감당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법왕께서는 바탕이 인자하시므로 기습하시지 않으시니, 잠시 여러 군대를 멈추게 하시어 말방울 소리를 그치게 하신다. 출동에 임하여 조서를 내리어 미혹의 수레를 거두게 하시니, 그대들 천마는 하루 속히 좋은 방도를 결정하도록 하거라. 고개를 수그리고 궐정[]에 항복하여 왕정에서 하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한가로운 경계에 노닐면서 상방(上方)에서 주재하는 것을 그대가 아니면 누가 담임하련가?

성인은 상지(上智)로 기연을 헤아리시니, 책벌로 밝혀 주시며 화를 면하게 하신다. 곤궁하면 돌이킬 바를 아는 것은 군자가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이것이 바로 복으로 돌이키는 고상한 가을이요, 공을 취하는 좋은 계절이다.

예전에 하나라의 걸임금이 무도하였기에 은나라 왕실이

 

정벌하였으며, 상나라의 주임금이 난폭하자 주나라 무왕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이야말로 고금의 상도이고 장군의 명계(明誡)이다.

더불어 모습을 회복하였으나 당년에 서로 어긋나니, 도를 맛보는 것으로 교화가 흘러서 인간과 천상이 어긋날지라도 어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흔쾌히 항서를 보내어 투항하기 바라니, 이로써 그 말씨를 구구절절이 간절케 하는 것이다. 오래 지난 사람이 향기로운 난초가 여름철에 피어난 것을 도끼로 꺾거나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노라.

깊은 생각과 지극한 말로 좋은 계획을 잘 따라 너희들의 몸으로 하여금 3()를 지키게 하지 말며, 6욕천에 화초만 자라게 하지 말지어다. 속히 부복하여 그 마음을 안도케 할지니, 종이에 할 말 많으나 다 쓰지 못한다.

석도안이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4) 마주보격(魔主報檄)

대몽국(大夢國) 장야군(長夜郡) 미각현(未覺縣) 예어리(寱語里)에 사는 육자재주(六自在主) 타화황제(他化皇帝) 고좌대장군(高座大將軍) 남염부제도(南閻浮提道) 수무대사(綏撫大使) 불상서(佛尙書) 도안(道安) 스님 절하(節下)에 삼가 말씀 올립니다.

말씀을 멀리서 보내 주시어 제가 기쁘게 받아 보았습니다. 구구절절이 음미할수록 진실로 기쁘기만 합니다. 이제야 대국의 신하되는 예의가 드높음을 보았습니다.

장군께서 허심(虛心)에 통하시어 밀행(密行)이 그윽하심을 이어서, 소맷자락에 산하를 두르고 우주를 거머쥐시며 종묘를 걱정하시고 생민(生民)을 염려하시니, 뛰어나신 기풍이 천 심()이나 되고 참되신 마음이 만 인()이나 되십니다. 참으로 매서운 바람에 굳건한 풀이며, 난세의 충신이십니다. 도를 구하며 서로 이웃으로 만났으니 피차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엎드려 인사 올리며 이 같은 답장을 보내 드립니다.

예전에 주나라 왕실이 쇠퇴하자 6()9()의 물을 끓어 넘치게 하였으며, 한나라 조정이 망하자 천하가 삼분 되었습니다. 혹 변방의 오랑캐가 침범하여 중원에 피해를 입혔으며, 혹 안에서는 난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그 재앙이 양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대기(大期)에 이르면 때까치가 날아오고, 시절이 무르익으면 군자가 표변하였던 일은, 예부터 그리 해온 것으로

 

어찌 오늘날만 이렇겠습니까? 실로 창생의 죄가 쌓이면 상천(上天)이 화()를 내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석가 황제께서 홀연히 먼 길 가시니, 신하들은 슬픔에 쌓이고 솔토(率土)에 비탄만 가득합니다. 황태자 미륵님께서 심궁(心宮)에서 덕을 기르시는데, 만월(滿月)도 산에 숨은 듯하고, 깊은 수풀에 작약이 숨어 있듯 합니다.

106()의 말세에 이르러서, 구오(九五)의 인군(人君)이 결하자 제후가 간교해져서 서로를 시기하는지라, 18부교(部敎)가 교설이 서로 다르며 96()가 준조(罇俎)163)를 서로 피하니, 이리는 해표를 물어뜯고 올빼미는 산자락마다 울어대는데, 왼쪽에도 그 같은 말을 다하지 못하며 오른쪽에도 그 같은 일을 다 적지 못합니다.

국헌(國憲)과 조장(朝章)은 서리 맞은 듯 영락하고, 황제의 천새옥벽(天璽玉璧)은 얼음 녹듯이 흩어져 버리니, 신하는 원망하고 백성은 분노하며 무리 지어 난리를 일으키고 부모마저 멀리합니다. 서로들 달아나 귀순하지 않으며 외로이 멀리 떠나가기만 합니다.

헛되이 운수가 태평하고 조화(朝化)에 목욕한다 이르나 시절마다 난리를 만나 간과(干戈)를 물리치기 어려우니, 대체로 사람을 형통시키려는 권도(權道)의 변통이라 하겠습니다. 의병을 통솔하여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아울러 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고 물에 들어가 용을 벱니다.

문무를 겸하여 몸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기기에 사직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닐지니, 실로 천위(天位)는 운수가 기운다고 감히 엿볼 바가 아닙니다. 마음의 성을 굳게 지킨다 하나 임금을 무시하고 삿되게 진로(塵勞)만 희롱하는지라, 급기야 물이 넘쳐 욕심만 흐르게 합니다. 장차 마음의 근원은 점차로 멀리하면서 큰 꿈에만 홀리니, 긴 밤이 깊어져만 갑니다. 본인(本因)을 돌려서 헛된 것에서 깨어나니, 이제 백성을 위로하고 그 죄를 벌하고자 합니다.

먼저 취말대장군(聚沫大將軍) 황현후(黃玄侯)에게 명하여 공화(空華)의 병졸을 거느리고 양염(陽炎)의 말을 채찍질하며 건성(乾城)의 모퉁이에다 부운(浮雲)의 진()을 치니, 창과 갑옷이 번쩍이고 활과 이지창(二支槍)이 엇갈렸습니다. 예리한 칼날이 서로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저들 병사가 먼저 패망하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간향대장군(磵響大將軍) 사죽공(絲竹公)에게 명하여 궁()ㆍ상()ㆍ각()ㆍ치()ㆍ우()의 병졸을 이끌고 전성(傳聲)의 계곡에 주둔하였으나, 소리마다 모두 끊어졌습니다.

다음에 다시 백화대장군(百和大將軍) 난야백(蘭麝伯)에게 명하여 향기로운 군대를 이끌고

 

바람 타고 진을 펼쳤으나, 천 리 이내에 바람 한 점 불기는 커녕 구름조차 없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육미대장군(六味大將軍)에게 명하여 진미(珍味)의 병사를 이끌고 면문도독(面門都督)이 되어 창명(滄溟)의 입을 지켰으나, 물어뜯을지라도 입 속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칠촉대장군(七觸大將軍)에게 명하여 매끄러움과 부드러운 군사를 이끌고 전고(戰鼓)를 치자마자 그 신성(身城)이 무너집니다.

이 같은 다섯 군대는 예전에 토벌 나가면 물경 백 번을 싸워 모두 백 번의 대첩(大捷)을 거두면서, 하늘이 보호하여 지극히 마땅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짐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연유를 알지 못하였으며, 급기야 몸소 죄를 문책당하고 오랑캐의 옷을 바로 입고 공()의 움집으로 나가서 샘물 같은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이에 산악조차 움직이는 위세로 망상(妄想)의 병사를 거느리니, 그 수효가 억조를 헤아렸는데도 신명을 의식의 바다에 잠기게 하고 심산(心山)에 그림자를 숨겼습니다.

원수(元帥) 안검성려(案劍城旅)에 명하여 병사를 징집하여 칼을 치켜들고 진을 쳤는데 허공을 가득 메우도록 연기처럼 모였으니, 사기가 충천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진제(眞際)에다 망상의 구름을 토하며 거센 바람으로 땅을 놀래키고, 본성의 바다에서 속진의 풍랑에 놀라게 하며 도품(道品)의 관군(官軍)을 무찔렀습니다.

밤마다 서리로 적시면서 일심(一心)을 묻어 본원(本源)으로 돌이키는 일을 아득하게 꾸몄습니다. 6()가 이미 그러한데, 화택(火宅)을 날로 치성케 하여 종횡으로 약탈하면서 앞뒤로 거침없이 토벌하였습니다.

실로 6()3()을 흉금에 모았는지라, 백 보 나아감에 천 갈래의 계책을 이루니, 본래 군진(軍陣)에 추호의 어긋남도 없었으므로 마침내 자비의 구름을 없애고 정법의 안개를 거두었으니, 나의 도()가 여기에서 흥성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관직을 나누어 설치하여 나의 풍화(風化)를 행하였습니다.

무렴표기(無廉驃騎)에 조칙을 내려 탐산(貪山)에 웅거하게 하고, 성삽장군(性澁將軍)을 간해(慳海)에 용처럼 서려 있게 한다면 구휼하는 사졸들은 육지와 바다에 의지할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다시 계지랑장(繫地郞將)에 조칙을 내려 음양의 부서를 설치하고 정진부마(情塵駙馬)로 하여금 대적하는 병사들을 살펴보게 한다면, 애욕의 물이 잠시 흐르면서 신성(身城)은 궤멸될 것이고 욕망의 불이 타자마자 천묘(天廟)가 불타게 될 것이니, 선성장군(繕性將軍)도 불타거나 익사하고 말 것입니다.

다시 포발교위(咆勃校尉)에게 조칙을 내려 활과 칼을 몸에 지니게 한다면, 짐새의 독이 매처럼 날아오르고 창이 손에 있게 되어 엄숙하고 강건한

 

사졸들은 회성(賄城)을 굳건히 하고, 평분장군(平忿將軍)으로 하여금 명성을 녹이고 자취를 깎아 내게 합니다. 다시 정근어사(正勤御史)에게 조칙을 내려 또한 감찰수면무후(監察隨眠武侯)를 멈추게 하고, 조정의 꾀를 편안히 위무하게 한다면 무명(無明)으로 방탕하고 멋대로 하는 것에 기대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정진하는 한필의 말로 하여금 4()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가유(加留)의 두 개의 지혜의 화살을 가지고 3()의 문()을 쏘지 않게 하면, 용맹장군(勇猛將軍)도 바람에 연기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각관대사마(覺觀大司馬)에게 조칙을 내려 관청을 초선(初禪)에 두면 사사유도위(邪思惟都尉)는 군진(軍陣)3()에 배치할 것이고, 마음의 근원이 아직 고요해지지 않으면 자못 풍파를 입을 것이니, 선지(禪枝)를 무성하게 하려고 해도 다시 서리와 한설을 만날 것이니, 안정장군(安靜將軍)은 몸을 어지러운 지경에 빠뜨릴 것입니다.

아견행(我見行)에게 조칙을 내려 높은 타나(陀那)의 봉우리를 누르게 한다면 혹산만인(惑山萬刃)과 의술백중(疑戌百重)은 토벌에서 돌아오다가 도리어 미혹될 것이나 천로(天路)의 진()을 물을 것이니, 몸을 바라보는 실상(實相)은 마치 양의 뿔과 같이 펼 것입니다. 인연은 망령된 행위로 실체가 없으나, 그 조밀함은 고기비늘과 같습니다. 그래서 독은 광자(狂子)를 감동시키고 술은 취객을 깨우니, 순금이 들어 있는 장을 엎어버리고, 비니(肥膩)의 풀을 숨겨서 박통 장군(博通將軍)은 몽롱하게 취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의 빈객들이 모두 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기충천하는 10()의 사졸들과 5()의 영웅들이 기회를 타고 발동하여 나라의 종묘를 세우고 지킵니다.

짐이 사해가 머리를 숙이고 우러러 받들어 즉위하였으니, 헌가(軒駕)에 임하여 우내(宇內)를 부리며 왕업을 이어왔습니다. 부도(浮圖)를 손에 쥐고 천명을 받았으니, 곤약(困弱)의 수레바퀴는 다함이 없는 데다 발에는 금륜(金輪)을 두른 듯하니, 마음이 준마와 더불어도 남음이 있습니다.

검은 말을 뽑아서 군역(軍役)에 충당하면서 의관(衣冠)에 두 가지가 없게 하니, 수레에 담긴 책도 한 가지일 뿐입니다. 삼계(三界)의 불난 집에 장풍으로 부채질하며 문 바깥에 높은 수레를 장식하고, 인욕의 갑옷을 벗겨서 내 백성으로 다시 만들었으니, 장군과 병사가 함께 망하게 하고 지혜와 힘도 같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제야 갈 길이 막히고 화살도 다하는지라, 말을 버리고 배를 불태우며 사마귀처럼 팔을 들어 항복하는 것이 참으로 민망합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도척(盜跖)이 병졸을 이끌고 제후를 약탈하다가 공구(孔丘)가 쳐 놓은 군진(軍陣)에 걸려 땀을 흘리며 집으로 도망가는 것은 바로

 

장군의 밝으신 훈계이십니다.

황태자 미륵님께서 잠저(潛邸)에 계시다 용비재천(龍飛在天)하실 적에는, 짐도 말이 비 오듯 땀 흘리도록 달려가 조정에 귀순하여 정궐(庭闕)에 꿇어앉아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비록 장군께 부름을 받더라도 지금은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드릴 말씀은 많으나 이만 붓이 짧아서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덕 높으신 군자에 귀순하여 언외(言外)에서 만나 뵈일 날만 기약하겠습니다.

파순(波旬)이 머리 숙여 벌을 주실 것을 청합니다.

 

 

(5) 파마로포문(破魔露布文)164)

광연장군(廣緣將軍) 유탕교위(流蕩校尉) 도독(都督) 육근제군사(六根諸軍事) 신제악(新除惡) 건선왕(建善王) () ()

진혜장군(賑惠將軍) 선산자(善散子) 도독 광제제군사(廣濟諸軍事) 감군(監軍) () ()

선성장군(繕性將軍) 극욕계(剋欲界) 도둑 섭지제군사(攝志諸軍事) 사마(司馬) 신 계()

평분장군(平忿將軍) 탕에후(蕩恚侯) 도독 홍유제군사(洪裕諸軍事) 사공공(司空公) 신 인()

용맹장군(勇猛將軍) 근습백(勤習伯) 도독 육도제군사(六度諸軍事) 행대(行臺) 신 진()

안정장군(安靜將軍) 지념도위(志念都尉) 도독 관루제군사(觀累諸軍事) 섭산후(攝散侯) 신 선()

박통장군(博通將軍) 주물대(周物大) 부도독(夫都督) 조달제군사(調達諸軍事) 감조왕(監照王) 신 지()

행언(行言) 근안(謹案) 신 문()

 

난리를 평정하여 태평케 하였습니다.

흉도가 어느 때라도 일어나면 청정한 교화로 제거해야만, 반역의 무리가 그에 따라 일어납니다. 이로써 문명(文命)165)9(:9)에서 군대를 조련하다가 도산(塗山)에서 사마(死魔)를 만났으며,166) 정생(頂生)이 육합에서 수레를 수미산 위로 굴리다가 도리천에 도둑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망하게 하여 그 위엄을 알게 하여야 하는데, 혼비백산하여 민월(閩越)의 땅으로 흩어져 타향에서 고생하며 존귀한 자리마저 잃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안으로 간사한 무리를 끼고서 바깥으로 속진의 궤범을 수립한다면, 상도 공적에 어긋나고 벌도 신의 악행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세간의 종사(宗師)이신

 

석가문 황제께서 저녁 무렵에 대가를 숲 속에 멈추신지 천 년이 넘었습니다.

태자 자씨(慈氏:미륵보살) 아일다(阿逸多)께서는 도솔천에 머무시느라 대업을 계승하시지 못했으니, ()의 성()이 잠시 비워지고 범륜(梵輪)에 주인이 없습니다. 이에 진역(塵域)의 바깥에서 반역이 일어나 사주불공(沙州弗貢)이 삼계를 놀라게 하고 6()이 봉기하게 하였습니다.

삿된 무리가 거짓으로 꾀어내서 세속과 달리 이룬 것을 뒤집으려 하니, 간사한 자재천주(自在天主) 적왕(賊王) 파순(波旬)은 몸을 받은 바탕이 어리석어 삿된 기운만 가득한지라, 마음에 아만을 내고 생각마다 애욕이 가득 맺어집니다. 지혜의 운명을 빼앗고자 신기(神器)를 농간하며, 욕계를 방종케 하면서 황제의 경계[皇境]마저 넘보고 있습니다.

정교(正敎)가 쇠퇴하고 내외(內外)가 서로 어긋나니, 자매가 함께 간사하며 천 명의 자식도 변심을 하고, 세 여자가 사특하고 방탕하여 우리의 상궁(上宮)을 어지럽히려 하였으나 아름다운 자태가 펼쳐지기도 전에 일흔 살 먹은 노파로 변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저 파순이 소도(小道)를 좋아하여 변재가 상당하기에, 그른 말을 꾸미는 데 능하고 곧잘 멀쩡한 사람마저 성나게도 만듭니다. 효순한 말을 쓰지 않고 오로지 간신의 계책만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기회를 틈타 침범하곤 합니다.

위결사대장(僞結使大將) 제번뇌(諸煩惱) 등이 성도(聖道)의 운수가 다한 것을 계기로, 8백의 광음(光音)이 연달아 일어나는지라 10()이 여기서 일어나게 됩니다. 애욕의 바다에 욕심 많은 병사를 풀어 놓고 고원(高原)에다 의심의 준마를 치달리게 합니다.

재갈을 물려서 2()의 구역으로 몰아 들어가고, 무명의 경계로 치닫게 하다가 성인을 만나게 되면 종적을 감추고 하늘로 숨어 버리고, 악인을 만나게 되면 그 가운데에 악행을 쏟아 부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관문을 겹쳐서 때를 보아 가며 일을 저지르는데, 때로는 영리만을 구하는데 뜻을 두어 헛되이 권문(權門)을 감시하거나, 혹은 분노를 머금고 대중을 위협해서 전적으로 해독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충천하는 의기로 방등(方等)만을 고수하는지라 한쪽 모퉁이로 교만(憍慢)하여 정삭(正朔)을 가리지 못합니다. 바야흐로 헛되이 7(使)의 전거(傳車:고대 역참 전용의 수레)를 빌려서 임시로 세 가지 장애로 여섯 조목을 거짓되게 말하여 괴상한 풍속을 이루는데, 어리석은 이는 그것도 가르침이라 여기고 갓끈을 새로이 씻어 내며, 지혜로운 이는 이를 버리고 골짜기에서 물을 마십니다.

마졸(魔卒)을 길러 선봉을 삼고 봉화를 띄워

 

진군하게 하는데, 위사천(僞四天) 대도독(大都督) 오음마(五陰魔) 등이 무시(無始)의 평원에 거점을 두고 유형(有形)의 속에 깃들어 살면서 고해 속을 떠다니며, 화택의 기슭에서 게으르게 놉니다.

실로 이 몸뚱이를 호령하며 헛되이 6()를 설치하는데, 순식간에 영예로움을 훔치고 편안할 때 쾌락에만 탐닉하게 합니다. 그 원수(元首)에 조짐조차 없는지라 헛된 고달픔이 셀 수도 없어서, 목마른 병사와 질투하는 사졸이 냇가에 가득하고 벌판에 널려 있으며, 두려움에 떠는 선비와 근심 많은 사람이 산을 에우고 골짜기에 가득할지니, 악행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한 곳에 모여 떼를 이루는데, 이도(異道)의 부류가 무리를 지어 삼계를 군대로 가로막습니다.

위서행대(僞署行臺) 유생사(有生死)와 적왕관병(賊王觀兵) 오도(五道)3악도에 마졸을 배치하고, 산 것의 명을 재촉하고자 빨리 늙어가도록 장난칩니다. 5()는 떠날 때를 기약하고 4()3세에 응하는데, 흐르는 샘을 메워 놓고 타는 불길을 막아 놓습니다.

업력(業力)이 으르렁대는지라 위취(危脆)만 부둥켜 안고 앞으로 치달리며, 3독에 떠밀려 군유(群有)를 끼고서 오래도록 가니, 사고무친(四顧無親)하고 화가 9()에 이어지는 것을 어찌 차마 견디겠습니까?

위엄과 노여움이 교차하고 살육이 충효한 사람에게 미치니, 바야흐로 성인을 무시하고 현자를 멸시하며 참다움을 업신여기고 바른 것을 그르다 합니다. 일반 백성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범서(凡庶)를 그물로 엮으니, ()와 공()의 이치를 망령되이 따져서 자아(自我)가 있다고 하며, 그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기세를 도리어 금석같이 견고하다고 말합니다.

정월 그믐 해 질녘에 성씨가 선()이고 자를 지식(知識)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도량(道場)으로 찾아와 이르기를, 도적의 무리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시급히 베어야 하니, 그렇지 못하면 큰 화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같은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았으나, 홀로 양 수레를 부리면서 군대를 화성(化城)에 배치하고 참호를 깊이 파놓고 스스로 방비하였습니다. 이때 적당이 후야(後夜)에 사자 한 사람을 보내어 진기한 공물을 바치면서 우호를 맺기를 요구하였습니다만, 신이 이들 적당의 세력이 물거품 같아서 지모(智謀)가 없는 데다 성품조차 악독하여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는 더불어 말상대를 하지 않자, 저들이 원한을 품고서 되돌아갔습니다.

바야흐로 온갖

 

계책을 써서 침범하였는데, 바로 같은 달 이레 째 되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에 방편문(方便門)을 나와 해탈처(解脫處)에 머무르며 신속히 신우(信郵)를 파견하고서 적진으로 깊숙이 들어가 군미(群迷)를 불어서 고해를 벗어나도록 조치하고서 삼매(三昧)를 모아 일거에 소탕했습니다. 5()을 숙청하여 제유(諸有)를 법으로 청정하게 하기를 바랬으나, 적이 견고함을 믿고서 강변에서 황상(皇上)의 위엄에 대항하였습니다.

강물이 넘쳐흘러 넓고 깊어서 끝이 안 보이는 데다,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며 우박이 퍼붓듯이 쏟아지고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서 해신이 일곱 가지 잡류(雜類)를 다투어 쏟아내므로 혹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하고, 혹 바람에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야차(夜叉)167)가 길목을 막아서고 나찰이 기슭을 점거하였는데, 그만 눈이 멀기도 하고 귀가 먹기도 하여 선재(善財)를 다소 잃기도 하였으나, 저 애욕의 큰 물결에 끝내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다시 경기(京幾) 땅 부근에 도랑을 파고 성채를 크게 쌓았는데, 성벽을 높이 올리고 합문(閤門:고대 궁실의 옆문)을 모두 막으면서 오직 하나의 문만 남겨 두었습니다. 사방이 험준한 골짜기인지라 한 사람이 창을 쥐면 만 명의 군사도 주저하는 곳이었습니다. 4()도 겁내고, 벽지(辟支)도 두려워 떨면서 마침내 여러 군사들을 모아서 규칙을 알아 전진하기를 바랬습니다.

격취도능(擊驟度能)이 자문하기를, “혹 군사를 이끌고 물을 건널 수도 있으니, 여러 나무를 구해다 엮어서 뗏목을 만들고서 이를 얼싸안고 발장구를 치면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갈 수도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들이 손에 부낭(浮囊)을 잡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되, 단단히 보호하여 피안에 오르지 못한 이가 없었습니다. 일부 병사는 병거(兵車)를 수리하고 마음을 합치고 힘을 다해서 앞으로 돌격했습니다.

즉시 안정 장군(安靜將軍)을 보내 관루(觀累)의 병졸을 이끌고 산란(散亂)의 고원을 점령했으며, 다시 평분 장군(平忿將軍)을 시켜 홍유(洪裕)의 병사를 인솔하고 노곡구(怒谷口)를 막았으며, 다시 진혜 장군(賑惠將軍)으로 하여금 광제(廣濟)의 군대를 이끌고 간탐(慳貪)의 길목을 끊었고, 다시 박통 장군(博通將軍)을 시켜서 통달(洞達)의 군사를 지휘하여 광치(狂癡)의 길을 막고서 독사(督師) 나장(羅張)이 사면에서 협공하였는데, 전투마다 대승을 거둔 것이 한 달이 못되어 세 번이나 되었습니다.

행대(行臺) 공중(恐衆)이 게을러 다투어 진격하지 못하고

 

최매(催厲)6()을 아유월지(阿惟越地)의 땅에다 주둔시켰는데, 이 때문에 남은 불씨와 떠돌던 혼령들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의탁하여 견양(犬羊)의 무리를 이끌고 다시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거짓 호시(虎兕)로 위세를 드러내고 웅비(熊羆)를 불러다 호위하게 하였는데, 얼굴이 이상한 무리들이 불 바람을 뿜으며 출군을 대기하였고, 산을 이고 나무를 뽑는 역사의 무리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어 진용을 가지런히 하였습니다. 황가(皇家)의 부절(符節)에 응하여 하명에 따라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겁(塵劫)의 땅을 열어 성스러움이 거듭 빛나고 국조(國祚)가 무궁할지니, 선대의 제왕께서 9()에 물을 담던 날에 내리신 고명이 은근하시어 오로지 문덕을 아름답게 하신 이래 전쟁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리하여 막부에서 처음 조칙을 받던 때부터 칙명에 따라 행하면서 대략 설치했던 6()의 약법(略法)마저 끊었습니다.

단지 미쳐서 거짓된 것을 세우면서도 오히려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절의(節義)를 거스르면, 패다(貝多)를 보내어 일깨워 주었으나 개전하는 마음이 일체 없어서, 장명(將命)을 호령하는 대권(大權)으로 병사 십만을 징집하여 강토의 오염을 막아 정토(淨土)를 크게 넓혔습니다.

무외(無畏)에 의지하여 몸을 엄숙히 하시니, 온갖 오묘함을 겸하여 다하였는데 용반(龍蟠)과 도수(道樹)를 뽑아 사바(娑婆)를 노려보시니, 열 가지 명호가 한번 퍼지자 32()이 기대에 응하게 되었고, 가르침의 말씀을 펴시자 18불공법(不共法)에 구름같이 모여들었습니다. 바로 법고를 울려서 3()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자비의 당번(幢幡)을 세워서 8()을 막았으며, 대천세계에 무공을 강론하고 빛나는 위엄을 만역(萬域)에 드리웠습니다. 신령한 창을 쥐시기만 하여도 천마의 무리가 간담이 서늘하였고, 지혜의 칼을 한 번 휘두르기만 하여도 사도(邪道)의 무리가 멸망했습니다. 도신(道身)을 나투어 사마(死魔)를 참하시며 반야(般若)로써 번뇌를 자르셨으니, 파순을 부동(不動)의 숲 속에서 꺾으셨고 5()을 성품을 가려보는 경계에서 없애셨습니다. 그런 연후에 소굴을 보호하고 굴을 막았을진대 참으로 이르지 못하신 곳에 이르렀으니, 엎드려 숨은 것이 어찌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먼 곳의 눈 뜬 소경은 날랜 힘으로써 다스릴 바가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적멸(寂滅)의 초원에서 생사를 숨기고, 상락(常樂)의 경계에 처하여 병들고 늙는 것을 흘려보낸다.

 

6()의 대로에서 3()을 떨치고, 살바(薩婆)의 구역에서 7(使)를 던지니, 그 원흉이 효수(梟首)되고 도당들은 주살되었으니, 여타의 따르던 이들은 달리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제유(諸有) 가운데 지극한 마음으로 뉘우치는 이는 모두 갑옷을 벗고 창을 버리게 하고서 민호(民戶)로 편입시키고, 원호(遠號)를 내려 낙토(樂土)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 몸에 박힌 다섯 개의 화살을 뽑고자 좋은 의사를 데려다 진구(塵垢)의 병을 치료하면서 은혜로운 탕약을 베풀었습니다. 이때서야 업풍(業風)6()이 불던 것이 그쳤으니, 상서로운 구름이 사방에 드리워지고 신령한 금수가 날개를 드리웠습니다.

8()를 이끌면서도 스스로 잘못하고, 28수를 엄숙히 하여 보호하시고 당에서 한가하게 아무 하는 일 없이 무위할 뿐이었습니다. 대각천왕(大覺天王) 등이 석가문 황제의 풍화와 법륜을 흠모하여 발탁하는 것에 뜻을 두어, 예전의 전모(典謨)를 이끌어서 은근하게 간언하면서 사면을 얻지 못한 이들을 적어 올리자, 말없이 상주한 일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로써 감로문(甘露門)을 열고 8정도(正道)로 나아갔는데, 천 겹의 구름이 몰려 와서 녹야원(鹿野園)에서 의식을 갖추자, 사천왕이 두 손을 높이 쳐들어 발우를 올렸는데, 두 장자가 공양을 마련하여 처음으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덕행에 의거하여 공훈을 기록하니, 진제(眞諦)가 상을 내리자 야사(耶舍)가 공손히 받았습니다. 베푼 것이 선봉과 같고 혹 친구 간에 영예를 입기도 하였고, 혹 형제간에 은택이 드리우기도 하였는데, 식읍(食邑)이 초과(初果)와 같지 않았으나 표창은 10()보다 유덕하였습니다.

고례(古禮)에 따라 각 성()을 순행하고 5()으로 나아갔는데, 군려(群旅)6()에서 조련하고 병마(兵馬)8()에서 다스렸습니다. 3()의 위에서 원만을 다스리고 9()의 아래에서 죄를 문책하였습니다. 시방의 영웅을 초빙하고 영취산에서 만국(萬國)을 회견했는데, 하화와 이융이 밀어닥치고 훌륭한 선비가 다투어 나왔습니다.

이에 보배창고를 열어 곤궁한 이를 구휼하고 3()를 내어 여러 선비에게 공급하였습니다. 일반 백성들을 위무하여 영도(寧堵)의 업을 다시 이루게 하셨으니, 저들의 그 몸은 1()에 편안하고 마음은 반석보다 굳어졌습니다. 수풀 속에 흐르는 물을 돌아보며 황택(皇澤)을 선양했으니, 항심에 의지하여 설법하시어 미처 빈객이 되지 못한 이들을 소집하셨습니다.

어진 교화가 우내(宇內)에 가득하고 도의 광채가 멀리 비추니, 사방이 빛에

 

통하고 교화하는 흐름마다 차별이 없었습니다. 중로(中路)의 구역에서 송사를 들으시고 보산(寶山)의 처소에서 판결하셨으니, 한량없는 위세가 저 멀리 성곽까지 떨쳤습니다. 걸림 없는 지혜로 산하를 뚫어보시니, 그 나라에 대통(大統)이 둘이 없으며 한 수레와 책도 법도를 한가지로 하였습니다.

해와 달이 빛을 더하니 천지가 밝아져서 6만의 대중이 오랜 굴레를 벗고 정도에 따랐으며, 10()의 무리가 대하(大河)를 버리고 질례(秩禮)에 따랐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현자는 천리도 멀다 하지 않았으며 마음으로 기뻐하는 철인(哲人)은 서응에 감통하여 이르렀습니다. 공인(工人)이 한 표주박의 음식을 시성(尸城)에 두었으며, 민첩한 짐승은 장원에서 항아리를 받들고 미음을 마시며 근본을 길렀습니다.

안과 밖이 청정하고 겉과 속이 편안한 것도, 실로 도음(道音)이 사방에 퍼져서 남은 물결이 동방을 가르친 것에 말미암습니다. 참으로 주상의 지극하신 마음을 뭇 신하들이 깊이 공경하면서, 신묘한 천규(天規)를 이어받아 이 같은 흉물을 제거하였으니, 어찌 신()의 지혜와 힘으로 저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이 같은 한 가지 공훈(功勳)에 의지하여 점차로 개선되기를 바라오니, 바야흐로 이전의 계책을 일삼아도 돌아오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삼가 노포(露布)의 글을 올립니다.

신들의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6) 평마사문(平魔赦文)

문하(門下)

첫머리는 근원이 같지만 흐름에 따라서 실마리가 달라진다. 융성함이 대대로 일어났으며, 믿음이 어긋나 갈래가 1천이나 되었는데, 지승(智勝)168)이 종을 드러내면, 진겁(塵劫)에 걸치도록 3()를 기릴 것이나 등명(燈明)169)

은 법을 열더라도 9() 가운데 일방(一方)도 다하지 못했을진대, 하물며 사도(邪徒)의 거짓된 소견으로 자연(自然)의 고원에서 살생하는 것을 기리며, 적당(賊黨)의 망근(妄根)만 맺고 전도(顚倒)의 경계에서 형색을 부리는 것이겠는가? 이로써 스승을 어기며 중도(中道)에 대항하는 것일지니, 그대들에게 권고하여 말하니 진실로 위로하고자 한다.

선제(先帝)가 승하하신 이래로 보위(寶位)가 비어 있었으니, 순일한 기풍이 점차로 이지러지고 신령한 가르침이 취지를 달리하였다. 거짓된 마군이 틈을 타 신읍(神邑)을 횡행하는데, 헛되이 진용(眞容)은 바꾸어 공()과 유()를 함부로 말하고 4()에 매이고 6()로 두루 순환하였다.

욕망의 하늘[慾天]을 퍼뜨리고 애욕의 땅[愛地]을 어지럽히니, 그 해독이 변방에 이르고 학정이 화하(華夏)로 흘러들어, 험윤(獫狁)이 종실(宗室) 주나라를 침범하고, 흉노가

 

염제(炎帝)의 한나라를 능멸한다고 해도 깨닫지 못한다.

짐은 어두운 정신으로 주로 어릴 때부터 현도(玄道)를 공부하였는데, 약관에 정사를 맡아 대통(大通)의 해에 이름을 반포하였으며, 현겁(賢劫)의 말대에 치달리며 백억의 대천 세계를 돌보는 중임을 짊어졌다. 삼계의 존엄을 더하면서, 인도(人道)와 천상(天上)의 즐거움을 미루어 사양한 적이 없었다.

영단(靈壇)에 올라가 이러한 봉선(封禪)을 받았으나, 그 부족함을 돌이켜보건대 서정(庶政)에 부끄러운 점이 있다. 명덕(明德)을 열심히 발휘하느라 계발할 곳을 돌볼 틈도 없었으니 봉토(封土) 내의 경계가 맑지 못해서 정교(正敎)가 한결같지 않고, 군생(群生)을 마군의 경계로 빠뜨리는 것을 늘 유감으로 여겼다.

매번 돌아볼 때마다 침식조차 폐하는데, 마침내 장령(將領)에 명을 내려서 병사를 징집하여 시대의 환란을 깨끗이 하고자 하였다. 위로는 삼매(三昧)의 선비를 계기로 하고 아래로는 6()의 스승에게 의지하여 화하(華夏)를 맑게 거두되 크게 승리하였는지라 8()이 항복할지니, 이로써 6()의 우레를 움직여 3()170)

의 구름을 없애고자 한다.

자비로운 보시는 번개보다 빠른지라, 4()이 면박(面縛)하여 항복하는 것이 마치 옷에 먼지 묻듯이 하니, 산 채로 잡고자 계책을 다하였다.

오로지 저 파순 한 사람이 필기단마(匹騎單馬)로 달아나며 백 갈래 길의 그물마저 찢었으나 오래지 않아 잡혔다. 이에 5()가 청정해져서 환외(寰外)를 하나로 돌이킬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천하와 같이하여 다 함께 복락을 누리고자 할지니, 이제 천하에 대사면을 내려 다함께 다시 시작하고자 하노라.

상교(像敎)의 호칭을 고쳐서 즉진(卽眞)의 세월로 삼으니, 28일 먼동이 트기 전에 망견(罔見)에 얽매인 무리들을 모두 원래대로 방면한다. 4()에게 빙의되어 삼계를 떠돌며 10()5()의 중죄를 범하였더라도, 허물을 뉘우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자는 지나간 죄를 묻지 않겠다. 혹 욕산(慾山)에 명()을 묻고서 간사한 기틀을 여전히 끼고 있으면서 백 겁이 지나도록 자수하지 않는 자는 그 죄를 처음대로 묻겠다.

아비를 죽이고 임금을 해치며 형제를 상하게 하고 어미를 범한 자는 즉시 투옥하여 재범을 예방하겠노라. 그 같은 한 부류의 천제(闡提)는 사면하지 않으면서 죄를 묻되 엄히 책벌할 터이니, 신속히 이번 기회를 타도록 하거라. 의역(意驛)이 시방에 고하면, 주무 관헌은 바로 시행하도록 하라.

즉진(卽眞) 원년 28일 중서령(中書令) 보처왕(補處王) () 일다(逸多)가 선포한다.

 

신 문수(文殊) 등이 아룁니다.

조서를 상기와 같이 받들었습니다.

신들이 듣자 하니 충성을 어기고 선업(善業)을 방해한다 하는데, 비록 천 년을 거쳤어도 일찍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삿된 신하와 반역하는 무리는 백 대()를 거치면서 늘 있었습니다. 이로써 3()이 유언비어를 퍼트리다가 밝은 시절에 치죄당했으며, 5백의 무리가 도에 거스르다가 성군(聖君)의 치세에 주살당했습니다. 이로써 왕의 위세가 반드시 떨쳐졌으니, 경사가 주나라 방토(邦土)에 가득하였습니다. 정교(政敎)로 보태주기만 하면 복이 서리 맺히듯이 되돌아올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자비가 백왕(百王)을 겸하셨으며 지혜가 천성(千聖)과 같이 하시는지라, 신령한 기슭을 거머쥐고 현화(玄化)를 도모하십니다. 나오고 가심에 대천세계를 움직이며, 다니시며 군유(群有)에 응하시니, 미형(微形)을 조복하여 어리석은 이를 인도하십니다. 법음(法音)을 펼쳐서 귀먹은 세속을 깨우시며, 삭발하고 도에 뜻을 두면서 흔들림 없이 이치를 구하시니, 금수의 몸을 나투어 축생조차 조복받으십니다.

진겁의 위구(危軀)를 버리시고 한 생의 묘한 바탕을 거두시고자, 4()을 잠저로 삼으시며 염부제를 이롭게 하십니다. 7보조차 가벼이 여기고 1승만을 중히 여기시니, 깊은 천궁에서 오락도 없애시고 기슭에서 산해진미도 줄이십니다. 보관(寶冠)도 버리고 거친 숲 속에 처하며 사냥꾼과 옷을 서로 바꾸니, 대가를 4()으로 부리시어 6()를 타십니다.

마군을 굴복시키는 일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하시는지라, 삼계에 불꽃이 피어나는 놀람을 없애시고, 4()이 미혹에 빠지는 근심을 끊게 하시니, 마음을 거두어 3()의 그물을 벗겨주시고 생각을 기려서 죄를 사하십니다. 18불공법(不共法)을 다시 이루시니 만국의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삼가 다시 아뢰오니, 대외로 시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아룁니다.

즉진 원년 28

시중(侍中) 신 문수사리(文殊師利)

시중 신 살타파륜(薩陀波崙)

황문(黃門) 신 사자후(師子吼)

황문 신 사리불(舍利弗)

황문 신 수보리(須菩提)

 

13) 평심로포문(平心露布文)

의유식도행군부(擬唯識道行軍府)가 평심로포(平心露布)의 일을 삼가 상주합니다.

의사지절(擬使持節) 동삼사령(同三司領) 십이주대장군(十二住大將軍) 유식도행군(唯識道行軍) 원수(元帥) 상주국(上柱國) 진국공(晋國公) 신 반야(般若) 등이 아뢰고자 합니다.

신이 듣자오니 4()가 명을 내려서 누대에 걸쳐 가시가 되고, 5()가 혼을 날려서 함식(含識)에게 우환이 미친다 합니다.

 

이에 3()ㆍ성지(聖智)10()의 웅존(雄尊)께서 누차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폐하께서는 대자비를 타시고 운을 여셨으니, 명감(冥感)에 응하여 괘기(卦期)에 임하셨습니다. 신주(神州)의 구역에 드리우셔서 법해에 광명을 놓으시며, 전왕(前王)의 영전(令典)을 조술(祖述)하시고 중묘(衆妙)의 원음(圓音)을 연출하셨습니다.

열성(列聖)의 그윽한 지모를 살펴보건대, 군생(群生)을 정국(淨國)으로 모으고 삼천 세계 찰토마다 위령(威靈)을 드리우셨으니, 백억의 주()마다 성교(聖敎)에 다 같이 따릅니다. 오직 유위심주(有僞心主) 아려야식(阿黎耶識)이 헛되이 명기(名器)를 내세워 생민을 도탄에 빠트리니, 건성(乾城:乾闥婆城의 약칭)을 차지하고 연사(年祀)를 늘렸습니다.

궁미(窮迷)를 꿈속 경계로 몰아넣어 무명의 긴긴 밤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고자, 공화(空花)로 어지럽혀서 1년 내내 술 취한 듯 만듭니다. 추반연(推攀緣)에게 번병(藩屛)의 임무를 내리고, 희론(戲論)을 데려다 유악(帷幄)의 신하로 삼으니, 여원(黎元)을 함정에 빠트리고자 칼과 활촉을 갑니다. 폐하께서 진제(眞諦)에 응하시어 만물을 다스리고 세속을 부려서 백성을 이끄십니다.

이 같은 화근을 염려하시고 이 같은 도탄을 불쌍히 보시고, 신들에게 조칙을 내리시어 색야(色野)에서 정기(旌旗)를 휘날리고 심정(心庭)에서 죄를 물으라 하셨습니다. 지난 416일 군대를 심경(心境)으로 파견하였는데, 바로 그날 밤 초경에 적군을 발견하였습니다. 신들이 기회를 타고 조용히 군사를 모았으니, 그윽한 밀지를 비밀리에 보내어 6()의 기슭에 전함을 모으고 융거(戎車)1승의 자취로 모으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석 달간 주둔하면서 청범(淸梵)을 고양하여 위세를 늘리고, 90일간 진을 치면서 종을 울려 사기를 높였습니다. 아려야식이 우매하여 깨닫지 못하고 계책만 궁리하며 회개하지 않았으니,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대들듯이 땅벌이 독을 품듯이 하였습니다.

이에 위항행대장군(僞恒行大將軍) 아다나식(阿陀那識)을 보내어 무명의 자식들을 이끌게 하면서

 

가슴 속에 가망 없는 일만 꿈꾸며, 건성을 지키면서 신과 대적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시 위자성대장군(僞自性大將軍) 가비라선(迦毘羅仙:外道의 이름으로 數論派의 비조)과 위집차대장군(僞執此大將軍) 가전연자(迦旃延子:阿毘曇論師)가 오합지졸을 개미떼처럼 이끌고 근처를 어지럽히며 성세를 드높였습니다.

신이 이에 여러 장수에게 계책을 내렸으니, 의사지절(擬使持節) 발진대장군(拔塵大將軍) 영사념처(領四念處)와 제군사(諸軍事) 솔도품현(率道品縣) 개국공(開國公) 신 구지(求知) 및 의사지절 영경대장군(寧境大將軍) 영팔정도(領八正道)와 제군사 통진현(通眞縣) 개국공신 여실지(如實知)를 보내어 기병을 거느리고 유성이 흐르듯 번개가 내려치듯 방편의 여러 길을 따라 경계의 변방을 숙정케 하였습니다.

신 구지(求知)들이 명자(名子)를 수색하여 이치를 벌하였으니, 그림자와 발자취를 따라 추격하면서 밀궁(蜜宮)의 넓은 뜰을 가로지르기도 하였고, 혹 인허(隣虛)의 좁은 틈에서 전투를 되풀이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을 다하고 이치를 끊어서 구역 내를 소탕하였으니, 어두운 줄기가 이로써 얼음이 녹듯 스러졌습니다. 수론(數論)이 이로써 기와가 부스러지듯이 하였습니다.

가비라 등이 대승(大乘)의 소재를 터득하고 현통(玄統)으로 돌이킬 바를 깨닫고서, 각기 이졸(羸卒) 수천 명을 이끌고 찾아와 명을 받기를 청하였습니다.

신이 늦게나마 깨달은 바를 애처로이 여겨 스스로 갱신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자비관(慈悲觀)의 도사(道士) 필무연(畢無緣)도 함께 안양(安養)에 따랐으며 위간의대부(僞諫議大夫) 질체(郅諦)가 무리를 떠나고자 하는 생각을 내고 출세의 희유법(稀有法)을 자청하여 짊어졌으니, 전국의 충효로운 이들이 위신(危身)을 돌이켜 신하되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 달 보름 야반에 중군의 기세를 돋우며 외적의 사지가 흩트러지는 기회를 타고, 손에 창칼을 쥐고서 앞장서서 병사를 이끌었습니다.

완명의사지절 도솔대장군 사바(娑婆)ㆍ도초위대사(道招尉大使) 상주국 시두말(翅頭末)ㆍ개국공신 아일다(阿逸多)ㆍ의사지절

 

염부대장군(閻浮大將軍) 천축대도독(天竺大都督) 천축제군사(天竺諸軍事) 상주국 부루사(富婁沙)ㆍ개국공신 바수반두(婆藪槃豆)171)가 나란히 길을 3()으로 재촉하고 신명을 4무애변(無礙辯)으로 치달려서 승패를 가르고 시비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다시 의사지절 평등대장군(平等大將軍) () 행군장사(行軍長史) 상주

국 청량현(淸凉縣) 개국공신 정념(正念)과 의사지절 편만대장군(遍滿大將軍) 겸행군사마 상주국 상락현(常樂縣) 개국공신 진여(眞如)가 신과 앞뒤를 같이하고 서로 끌어 주었습니다.

이때에 변방에 가을 기운 서늘하고 보루(寶婁)에 달빛마저 차가웠는데, 정기(旌旗)가 운한(雲漢)처럼 드높았습니다. 칼날이 상천(霜天)과 더불어 빛났으니, 홍서(弘誓)를 드리우며 원통(圓通)으로 수레를 몰아 양관(兩觀)을 넘어서서 앞으로 진격했습니다. 천 개의 관문을 깨트리고 돌격했으니, 생사가 비록 가없더라도 한 생각에 그 끝을 보았으며, 진로(塵勞)가 견고하더라도 잠깐 사이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위승상(僞丞相) 진현(陳顯) 위복야(僞僕射) 여사무계(慮思無計)가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며 합문(闔門)에서 목을 맸으며, 위사공(僞司空) 사자개(師子鎧:成實論師)와 위사예(僞司隸) 달마다라(達磨多羅:法救尊者)가 각기 남은 군사를 이끌고 구덩이로 투신했습니다.

여우 같은 의심만 치성한지라, 전도(顚倒)의 위험조차 참아내면서 도리어 정법(正法)의 부촉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망치는지라 제도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다나(阿陀那)가 그 거짓 임금과 함께하였으나, 밖으로는 굳세지 못하고 안으로는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없는지라, 군사가 곤궁해지는 데다 성채에 서리마저 내리자 임금과 신하가 모두 실색하였으니, 실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마침내 벽()을 물고172) 머리를 조아리며 가마에 부복한 채로 죄를 기다렸습니다.

신이 이에 아다나를 효수하고 질제(郅諦)를 구금하고서, 저와 같은 혼왕(昏王)을 폐하고 현사(賢嗣)를 잇게 하였는데, 종연(宗煙)을 끊지 않고 길이 모토(茅土)의 군주가 되어 세덕(世德)을 이어가며 늘 직공(職貢)의 예()를 다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악한 기운을 소탕하자 화기(和氣)가 봄철의 얼음에 어리듯 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을 섬멸하자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부들풀에 휘감기듯 하였습니다.

6()을 끊어내니 장애를 만나는 근심을 덜었으며, 삼계(三界)가 적연하니 풍진(風塵)이 불어오는 놀람이 없어졌습니다. 이로써 위엄과 광명이 널리 비치어 백성이 합심하게 되었으니, 어찌 신의 용렬함으로 이같이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망극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후하신 덕을 막부 각각의 장령에게 내려 주심이 습기[]의 땅보다 중한지라, 이에 노포문(露布文)을 받들어 올립니다.

역마를 보내어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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