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광찬경(光讚經) 10권
축법호 한역
김두재 번역
25. 마하반야바라밀문품(摩訶般若波羅蜜問品)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여러 사천왕(四天王)ㆍ염천(焰天)ㆍ도술천(兜術天)과 니마라천(尼摩羅天)ㆍ바라니밀천(波羅尼蜜天)과 여러 범천(梵天)ㆍ범가이천(梵迦夷天)ㆍ수타위천(首陀衛天)의 각각 무앙수(無央數) 억백천(億百千)의 천인들이 모두 이 회중에 모였다.
모든 천인(天人)들은 숙명(宿命)으로 받은 몸에서 나오는 덕 있는 광명이 당당하고 우뚝하였지만 달살아갈(怛薩阿竭)의 광명에 비하면 백억ㆍ천억만 배의 일, 또는 거억만 배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높고 존경스럽기도 짝이 되지 못했으며, 세존의 광명은 매우 뛰어나 짝할 만한 것이 없으며 또한 통달하지 못한 것도 없었다.
그때 석제환인이 현자(賢者) 수보리에게 말했다.
“지금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사천왕과 수타위천의 여러 천인 등이 빠짐없이 이 대회에 와서 수보리가 설하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法)을 들으려고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하며, 마땅히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만 합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여러 천자들이여, 즐겁게 들으십시오. 내 마땅히 말해드리겠습니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고 부처님의 은혜와 도움을 입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겠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머물고 반야바라밀을 행하기를 이와 같이 해야만 합니다.
어느 곳에 있는 천자들이건 아직까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한 이는 지금 마땅히 이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들이 만약 바른 견해에 들어간 이라면 큰 도를 일으키려는 마음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나고 죽는 도에 막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보살도(菩薩道)를 수행한다면 나도 그들을 대신하여 기뻐할 것이요 또한 그들을 권유하고
도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겠습니다. 나는 마침내 공덕을 끊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들로 하여금 중도의 바르고 훌륭한 법을 취하도록 할 것이요 또한 바로 그들로 하여금 최상의 법인 부처님의 무극(無極)의 도에 이르게 하겠습니다.”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묻기를 ‘어떤 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만, 보살마하살은 살운야(薩芸若)의 마음을 일으켜 물질에 대하여 항상한 것이라거나 항상한 것이 아니라거나, 또는 괴로운 것이라거나 즐거운 것이라거나, 내가 있다거나, 내가 없다거나라고 헤아리지 않으며 질병과 근심ㆍ고뇌의 걱정이라느니, 해가 있고 없느니, 속박이 있느니 없느니, 해탈할 수 있느니 없느니, 파괴되는 것으로서 두려움이라는 따위의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으며, 부지런히 익히고 배워서 이 물질인 몸은 공(空)하여 아무것도 존재함이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고 또한 믿을 것도 없고 다툴 것도 없는 것임을 알아서 이를 기억하지도 않고 여기에 전도(轉倒)되지도 않습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대해서도 역시 이와 같이 알며,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땅의 요소ㆍ물의 요소ㆍ불의 요소ㆍ바람의 요소ㆍ허공의 요소와 여러 가지 의식의 경계〔識界〕에 대해서도 항상한 것이라거나 항상한 것이 아니라거나 내가 있다거나 내가 없다거나, 그것은 괴로운 것이라거나 즐거운 것이라거나 질병과 같다거나 근심ㆍ고뇌의 걱정거리라고 보지 않으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을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고 또한 거기에 전도됨도 없습니다.
다섯 가지 쌓임〔陰〕, 여섯 가지 감관〔衰:根〕과 인식작용의 여러 가지 요소는 모두가 적연(寂然)하고 황홀(恍惚)한 것이니, 모든 상념(想念)을 부처님의 법에서 관찰하는 것은 다 뒤바뀐 생각일 뿐입니다.
또한 구익(拘翼)이여, 보살마하살은 살운야의 마음에 응합(應合)하고자 하여 단(檀:布施)바라밀을 행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며, 시(尸:持戒)ㆍ찬(羼:忍辱)ㆍ유체(惟逮:精進)ㆍ선(禪:禪定)바라밀을 행하지만 여기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을 관찰하여 모든 법을 뚜렷이 깨달아 알고, 이 법은 모든 것과 서로 인연이 되어 반복하여 서로 성취하게 하며 그로 인하여 원만히 성취하게 되고 반복하여 서로 성취하게 한다는 모든 법의 실상을 밝게 깨달아 알지만, 이 가운데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몸이란 것도 없다는 것까지도 분명히 깨달아 압니다.
보살은 도의 마음을 권유하고 돕지만 그 도의 마음에도 또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구익(拘翼)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권유하는 도의 마음에 아무런 존재가 없음을 안다면 도의 마음엔 아무런 존재가 없어서 얻을 것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설사 보살이 도의 마음을 권유하고 돕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얻을 수가 없을 뿐이니, 구익이여,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일체의 법을 관찰하지만 모든 법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석제환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권유하고 돕는 도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없고, 무슨 까닭에 권유하고 돕는 도의 마음에서 얻을 수가 없으며, 무슨 까닭에 권유하고 돕는 도의 마음엔 아무런 존재함이 없어서 얻을 수가 없습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구익이여, 권유하고 돕는 마음과 마음의 근본인 도의 마음은 이와 같이 다른 마음이 없으니, 마음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없는 마음으로써 권유하고 도와야 하며, 기억함도 없으니 기억함이 없는 것으로써 권유하거나 도울 수도 없습니다. 만약 마음은 없는 것이므로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기억함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함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너는 능히 보살마하살을 권유하고 돕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곧 이와 같이 설하여 주었구나.”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저의 이 몸은 마땅히 부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이 일을 반복해서 행해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과거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처님 때에 모든 보살을 권유하고 돕기 위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을 강설하여 찬탄 서술하고, 인도하여 나아갔으며 교화하여 이 도품(道品)을 건립하게 하였는데, 그때 세존께서도 본래 여러 보살과 함께 여섯 가지 바라밀을 일으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증득하셨고, 아유삼불(阿惟三佛)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이와 같으니 천중천이시여, 지금 저희들도 또한 마땅히 여러
보살마하살들을 권유하고 도와서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여섯 가지 바라밀을 받아서 인도하고 교화하여 이 부처님의 도를 건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다 받고 나서 모두에게 권유하고 즐겁게 해주고 은근히 권유하고 건립하여 마땅히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하루속히 아뇩다라아유삼불을 성취하게 하겠습니다.”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또 들으시오. 구익이여, 그대가 지난날 ‘보살은 마땅히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지만, 어찌하여 그 또한 머무는 곳이 없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구익이여, 이른바 물질이란 그 물질은 공한 것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공한 것이며, 이른바 보살이라고 말한 그 보살마저도 공한 것이니, 물질이 공하기 때문에 보살까지도 공할 뿐, 이들은 다 두 가지 법이 아니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공한 것이기 때문에 보살까지도 공하나니, 이 모두는 법이 아니요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또 구익이여, 이른바 눈이라고 말하는 그 눈도 공한 것이요,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으며, 이른바 보살이라고 말하는 저 보살까지도 공한 것입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공하기 때문에 보살까지도 공하며 두 가지 법이 없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으며,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요소가 모두 공한 것이니, 그런 까닭에 보살까지도 공합니다. 몸 속에 여섯 가지 일이 다 존재함이 없어서 그 본말(本末)이 모두 공하므로 두 가지 법이 없고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이와 같이 머물러야합니다.
또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영리하고 어리석음이 공한 것임을 알고 물질ㆍ육입(六入)ㆍ갱락(更樂:觸)ㆍ느낌〔痛:受〕ㆍ애욕〔愛〕ㆍ취함〔受:取〕ㆍ존재〔有〕ㆍ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까지도 모두 공함을 알아야 합니다. 열두 가지 인연이 멸하여 다하기 때문에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열두 가지 인연이 공한 까닭에 보살까지도 공합니다.
열두 가지 인연이 공하고 보살까지도 공하여 이 모두는 두 가지 법이 없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구익이여, 단바라밀이 공한 까닭에 보살도 공하고, 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바라밀의 공함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여섯 가지 바라밀이 공한 까닭에 보살까지도 공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구익이여, 안〔內:六根〕도 공하고 밖〔外:六境〕도 공하며, 가까운 것도 공하고 먼 것도 공하며, 진실도 공하고 소유(所有)도 공하며, 무소유(無所有)도 공한 까닭에 보살까지도 공합니다.
네 가지 의지(意止)ㆍ네 가지 의단(意斷)ㆍ네 가지 신족(神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일곱 가지 각의(覺意)ㆍ여덟 가지 도행(道行)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과 일체의 삼매문 ㆍ 다라니문이 공한 까닭에 보살까지도 공합니다.
여섯 가지 바라밀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이 공하고 일곱 가지 공도 공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도 공하고 여러 가지 삼매와 다라니도 공하여 이 모두는 두 가지 법이 없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구익이여,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보리가 공한 까닭에 보살도 공하며, 네 가지 공과 성문ㆍ벽지불도 공하고 달살아갈도 공하며 보살도 공한 것이어서 이 모두는 두 가지 법이 없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구익이여, 살운야(薩芸若)도 공하고 살운야를 쓰는 것도 공한 까닭에 보살까지도 모두 공합니다. 살운야가 공하고 보살이 공한 것이어서 이 모두는 두 가지 법이 없고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그때 석제환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물질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며, 마땅히 눈과 물질의 접촉으로 생기는 인식작용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나니, 이러한 것들도 모두 접촉하는 바가 없으므로 이러한 모든 것에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요소들도 그 훈습〔習〕하는 바가 없으니 그것에도 또한 머물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ㆍ여덟 가지 유행(由行)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마땅히 살운야 지혜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또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과 부처님의 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마땅히 물질이 항상한 것이라거나 항상한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항상한 것이라거나 항상한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물질은 괴로움이라거나 즐거움이라거나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물질은 깨끗한 것이라거나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거나 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물질은 내 것이라거나 내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은 공(空)한 것이라거나 공한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고요하다거나 고요한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황홀(恍惚)한 것이라거나 황홀한 것이 아니라거나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수다원이 있다거나 수다원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사다함이 있다거나 사다함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아나함이 있다거나 아나함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라한이 있다거나 아라한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벽지불이 있다거나 벽지불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부처가 있다거나 부처가 없다거나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네 가지 도의 중우(衆祐)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벽지불ㆍ부처님의 중우에도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또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첫 번째ㆍ두 번째ㆍ세 번째ㆍ네 번째ㆍ다섯 번째ㆍ여섯 번째ㆍ
일곱 번째ㆍ여덟 번째ㆍ아홉 번째ㆍ열 번째 보살지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보살은 처음 발심한 때로부터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보살은 마땅히 단바라밀을 구족(具足)한다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바라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또한 보살은 마땅히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나는 마땅히 보살법에 들어갔다’는 말을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나는 불퇴전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하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다섯 가지 신통〔五旬:五神通〕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또한 보살의 다섯 가지 신통〔菩薩五旬〕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은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다음에 무앙수(無央數) 아승기 수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천중천(天中天)을 뵙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설하시는 법을 들으며 이렇게 법을 들은 다음 받은 법대로 대중들을 위하여 모임 가운데에서 설해야 한다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저 부처님 천중천께서 나타나시는 여러 국토에서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세계에 화현(化現)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보살마하살은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한다’고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 보살은 ‘나는 마땅히 무수히 많은 아승기의 모든 세계에 머물러서 여러 달살아갈(怛薩阿竭)을 뵙고 꽃ㆍ향ㆍ가루향ㆍ잡향(雜香)ㆍ비단 일산ㆍ당기〔幢〕ㆍ번기〔幡〕 등을 공양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또 ‘나는 마땅히 무앙수 아승기 수의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야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해서도 안 됩니다.
보살마하살은 ‘나는 마땅히 다섯 가지 눈을 성취하여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되나니, 그 무엇이 다섯 가지 눈인가 하면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이 그것입니다.
보살은 ‘나는 마땅히 일체의 평등한 마음을 일으켜 세워서 곧 여러 삼매의 문을 성취하여 스스로 즐겨야 하겠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또한 마땅히 스스로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여래의 열 가지 지혜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네 가지 일의 보호하지 못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을 생각해서도 안 되며, ‘나는 마땅히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구족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보살은 마땅히 서른두 가지 상호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장엄한 몸의 여든 가지 잘 생긴 모습에 머물러서도 안 되며, 마땅히 여덟 가지 평등한 경지ㆍ독실한 믿음ㆍ법을 지닌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고,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수다원의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살아나서 해탈하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박기(縛紙)ㆍ일종등수(一種等首)ㆍ진인(眞人)으로서 모든 번뇌가 다하리라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 가운데 반니원(般泥洹)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사다함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한 번 갔다가 세간에 다시 돌아오면 괴로움은 다 없어지고 멸도(滅度)하기 때문입니다. 아나함과의 증득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아나함을 성취하면 이미 천상에서 반니원에 들기 때문입니다. 아라한과의 증득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아라한도를 성취하고 나면 문득 이 세간에서 무여니원계(無餘泥洹界:無餘涅槃) 가운데 머물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반니원이라고도 알아서는 안 되나니 이런 까닭에 마땅히 벽지불에도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벽지불도는 성문의 경지는 지나갔으나 불도(佛道) 반니원(般泥洹)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이런 까닭에 벽지불도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도사(道事:道種智)에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도의 지혜〔道慧〕에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살운야(薩芸若) 지혜에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살운야 지혜는 일체의 법을 깨달아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걸림과 번뇌의 결박을 끊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달살아갈은 아유삼불의 경지를 성취하고 문득 법륜을 굴려 부처님의 일을 지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승기 수효의 사람들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반니원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부처도 그 가운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네 가지 신족(神足)에 머물러서 이 색상삼매(色相三昧)로써 삼매를 뛰어넘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앙수(無央數)의 오랜 수명(壽命)에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서른ㄷ 가지 상호의 낱낱 상호마다 온갖 복과 공덕이 있어 성취할 수 있다는 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동ㆍ서ㆍ남ㆍ북과 위ㆍ아래와 네 간방〔四維:동북ㆍ동남ㆍ서북ㆍ서남〕과 한 부처님의 국토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만 합니다.
시방 부처님의 세계가 한 국토가 된다는 데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보리수의 아래에 앉으면 그 나무에서 향기를 내나니, 그때에 이와 같은 물질의 형상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향 냄새를 맡게 하여 음욕과 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에 얽매이지 않게 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에 대하여 마음을 내지 않게 하여 그들 모두가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마음을 가지게 하며, 그 중생들이 이 향기를 맡고 나서는 그들의 몸과 입과 마음에 일체의 괴로움이 없어지게 한다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부처님 국토에 머물지 않으면 물질과 소리도 없을 것이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라는 이름이 없을 것이라는 데에도 마땅히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단(檀:布施)ㆍ시(尸:持戒)ㆍ찬(羼:忍辱)ㆍ유체(惟逮:精進)ㆍ선(禪:禪定)ㆍ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네 가지 의단(意斷)ㆍ네 가지 신족(神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일곱 가지 각의(覺意)ㆍ여덟 가지 도행(道行)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이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반니원이라는 이름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고, 달살아가아라하삼야삼보(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菩)라는 이름에도 당연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유삼불 모든 법을 성취한다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이러한 것들에 머물면서 그 이름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 현자 사리불이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보리는 사리불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문득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달살아갈은 어떤 곳에 머물러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달살아갈은
머무시는 곳도 없고 또한 머무는 곳이 없지도 않습니다. 부처님은 아무 마음도 없고 또한 모습도 없으므로 모습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머물지 않으며, 작용이 있는 세계에 머물지도 않고, 작용이 없는 세계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과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뛰어난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無畏〕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도 머물지 않고, 살운야(薩芸若) 지혜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합니다.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 머무는 것처럼 또한 머무는 곳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서 머무는 곳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때 그 모임에 있던 여러 하늘들은 각각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열차(悅叉:夜叉)의 무리들이 말하고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음성이나 아뢰는 글을 모두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수보리가 하는 말은 도저히 분명하게 알 수 없구나.’
수보리는 여러 천자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여러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내 말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여러 천자들이 대답하였다.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때 수보리가 여러 천자들을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말하였다.
“나는 한 글자도 말한 것이 없으므로 분별한 것도 없고 또한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에는 그 어떤 문자나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들은 사람도 없나니, 왜냐 하면 달살아갈에는 아무런 문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비유하여 말하자면 마치 달살아갈이 변화로써 변화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변화로 된 사람이 사부 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변화로 만들어서 변화로 만들어진 사부 대중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 가운데 설하는 이가 있고 깨달아 아는 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천자들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모든 법은 변화로 된 것과 같아서 설법하는 이도 없고 또한
듣는 이도 없나니, 비유하면 마치 꿈 속에서 부처님께서 경전설하시는 것을 들은 것과 같습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가운데설법하는 이가 있고 들어 이해하는 이가 있겠습니까?”
여러 천자들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수보리가 여러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다 꿈과 같아서 설법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천자 두 사람이 지옥문(地獄門) 앞에 머물며 있으면서 불(佛)ㆍ법(法)ㆍ승(僧)을 찬탄하면 두 사람의 소리가 한꺼번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두 사람의 소리가 따로따로 두 가지 소리로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요술장이가 네거리 큰 길 가운데에서 변화로 여래를 만들어놓고 사부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가운데 법을 설하는 이가 있고, 법을 듣는 이가 있으며 이해하는 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 천자들은 마음속으로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수보리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매우 심오하고 너무 심오하여 마침내 미묘한 경지에 이르렀구나.’
수보리는 여러 천자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물질은 매우 심오하지도 않고 미묘하지도 않습니까?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매우 심오하지도 않고 미묘한 것도 아닙니까? 물질은 자연 그대로의 심오하고 미묘한 것이 아닙니까?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자연 그대로의 심오하고 미묘한 것이 아닙니까?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으며, 단ㆍ시ㆍ찬ㆍ유체ㆍ반야바라밀의 지혜도 자연 그대로의 심오하고 미묘한 것이 아닙니까? 안의 공〔內空:六根空〕ㆍ 밖의 공〔外空:六境空〕ㆍ근공(近空) ㆍ 원공(遠空) ㆍ 진공(眞空) ㆍ 소유공(所有空) ㆍ 무소유공(無所有空)과 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과 일체의 삼매문 ㆍ 여러 다라니문 ㆍ 살운야 지혜는 자연 그대로의 미묘함이 아닙니까?”
그때 여러 천자들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설한 법 가운데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결정지어 말하지 않았고, 여섯 가지 바라밀ㆍ일곱 가지 공(空)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을 결정하여 말하지 않았구나.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을 결정지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의 지혜와 다함이 없는 지혜를 결정지어 말하지 않았구나.’
수보리는 여러 천자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부처님의 도는 얻을 수 없으므로 여래께서도 법을 설하시지 않았고, 또한 그 법을 듣는 이도 없으며, 그 법을 이해하여 안 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수다원과를 얻고 수다원과를 증명하며,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과를 증득하고자 하면 생멸이 없는 법인〔無生法忍〕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벽지불도(辟支佛道)에 대해서도 이와 같고, 부처님의 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멸이 없는 법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아서 여러 천자들이여,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아무런 언설(言說)이 없었으므로 또한 들은 이도 없습니다.”
26. 마하반야바라밀법사여환품(摩訶般若波羅蜜法師如幻品)
그때 여러 천자들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수보리께서 설하는 법이 저러하니 마땅히 어떻게 들어야 하겠는가?’
수보리는 모든 천자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고는 여러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법사(法師)는 요술장이와 같고 듣는 이 변화로 된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무리들이 듣는 것도 또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 천자들은 마음 속으로 다시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어째서 수보리는 사람들이 요술장이와 같고 법사도 요술장이와 같으며, 사람들은 변화로 된 것과 같고 듣는 이들도 변화로 된 것과 같다고 할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 천자들이여, 사람들은 정말 요술장이와 같고 법사도 요술장이와 같으며, 사람들은 변화로 된 것과 같고 법사도 변화로 된 것과 같습니다. 나니, 우리니〔吾我〕 하는 것은 꿈과 같은 것이요, 물질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 또한 꿈과 같은 것이요,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이와 같습니다. 익혀진 모든 것에 대한 느낌〔習更〕도 또한 꿈과 같은 것이요, 안이 공함〔內空:六根空〕ㆍ밖이 공함〔外空:六境空〕ㆍ근공(近空)ㆍ원공(遠空)ㆍ
진공(眞空)ㆍ소유공(所有空)ㆍ무소유공(無所有空)도 모두 꿈과 같은 것이며,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네 가지 분별 있는 말솜씨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또한 꿈과 같고 요술장이와 같으며 변화로 된 것과 같습니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과(果)도 마치 환몽(幻夢)과 같은 것이요, 벽지불에서부터 위로 삼야삼불(三耶三佛)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환몽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 천자들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마침내 부처님의 도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환몽과 같은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니원(泥洹:涅槃)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환몽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 천자들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정말로 니원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환몽과 같다면 니원 그 자체도 꿈과 같은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니원본말법(泥洹本末法)은 가장 존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그것도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허깨비나 꿈, 그리고 니원은 두 가지 법이 아니며, 또한 약간의 그 무엇도 없으며 모두 공하여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현자 사리불과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ㆍ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 ㆍ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ㆍ 분뇩문타불(邠耨文陀弗) ㆍ 마하가섭(摩訶迦葉)과 무앙수의 많은 보살들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 반야바라밀은 매우 심오하여 밝게 알기가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적연(寂然)하고 미묘합니다. 어떻게 이와 같이 심오하고 미묘하여 이르기 어려운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여러 제자들과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퇴전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렇게 심오하고 기억할 수 없고 사의(思議)할 수조차 없는 깊고 먼〔玄遠〕데서 나온, 이르기 어렵고 깨달아 알기 어려우며 적연히 높고 당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현성(賢聖)의 경지에 머물러 있어서 지혜롭고 밝은 사람은, 곧 이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아라한이 된 이와, 지극한 소원을 원만히 갖추었고 과거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미 수행을 하였고
수없이 많은 백천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했으며, 많은 덕의 근본을 심어 선지식(善知識)을 받들어서 장차 보호를 받을 만한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곧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받아서 물질은 공한 것이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물질은 공(空)한 것임을 알아 생각하지 않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공한 것임을 알아 생각하지 않고, 신식(神識)도 공한 것이어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질에 집착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없는 것임을 기억하여 모양이 없는 오음(五陰)을 생각하고 집착하지 않으며, 모양이 없는 신식을 기억하지 않고, 원(願)할 것이 없는 인식작용을 생각하지 않으며, 원할 것이 없는 물질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는 오음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할 것이 없는 것조차도 없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생겨남도 없는 물질을 기억하지 않고 소멸함도 없는 물질을 기억하지 않으며, 적연 황홀(寂然恍惚)한 것도 기억하지 않나니,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생겨남도 소멸함도 없는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기억하지 않고 적연 황홀함도 기억하지 않으며, 모든 것의 접촉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느낌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않고 단ㆍ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바라밀도 기억하지 않으며, 생겨나는 것과 소멸함이 없는 것, 그리고 적연 황홀한 것도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 일곱가지 공함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과 일체의 삼매문ㆍ다라니문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생겨나는 것과 또한 소멸함이 없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며,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과(果)와 벽지불ㆍ살운야 지혜는 모두가 공한 것임을 깨달아 알았지만 이러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 이모든 것은 공한 것이라고 기억하지 않습니다.
살운야 지혜는 원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살운야 지혜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으로 공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공한 것으로 또한 물질을 생각하지 않으며, 원할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작용이 없는 세계로써
공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공한 것으로써 작용이 없는 세계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할 것도 없는 것과 원할 것도 없는 것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생겨남이 없는 것도 없고 소멸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또한 적연(寂然)한 것도 없고 황홀함도 없으므로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여러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매우 심오하고 미묘한 반야바라밀은 어질고 거룩한 밝은 지혜를 지닌 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법이란 받아들일 것도 없고 또한 들을 것도 없으며, 나타내 말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들은 것도 없고 법을 설하는 이도 없다면 이로 말미암아 받아들일 사람도 없고 받아들일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반야바라밀에서 아라한ㆍ벽지불ㆍ삼야삼불승(三耶三佛乘)의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장차 보살마하살의 행(行)을 보호하는 이로서 처음 발심하였을 때로부터 십주(十住) 보살도(菩薩道)에 이르기까지와 여섯 가지 바라밀 ㆍ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 ㆍ 열 가지 지혜의 힘 ㆍ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 ㆍ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을 설해야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생긴 신통(神通)을 잃어버리지 않고 법을 순종하여 이와 같이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찰토(刹土)에 이르기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덕의 근본을 이룩하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며 그 뜻한 대로 모두 얻습니다. 이렇게 공양하는 일을 이미 마치고는 모든 부처님을 따라서 설하는 경법(經法)을 들어 받아서 일찍이 잃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살운야 지혜를 성취하게 되어 언제나 삼매의 선정에 들어가 마음이 혼란하지 않고, 일찍이 항상 생각하고 기억하지 않아서 말에 걸림이 없으며, 도(道)를 설함에 중단함이 없고, 훌륭한 말솜씨로 이치에 맞게 설하고 존귀하고 오묘함에 나아가며, 일체 세간의 밝음을 초월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현자께서 말한 것처럼 반야바라밀에서는 삼승(三乘)에 대하여 해설하였으니, 보살마하살의 뛰어나고 지혜로운 말솜씨는 이 세간을 뛰어넘었으므로 아무리 높은 이도
그에 미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집착함이 없어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하여 밝게 깨달아 뒤바뀜〔顚倒〕이 없고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여섯 가지 바라밀에 집착하지 않으며, 일곱가지 공(空)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에 집착하지 않고 살운야의 지혜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반야바라밀에서는 무슨 까닭에 삼승에 대하여 자세히 설하였고, 또한 보살마하살은 보사의 말솜씨를 획득하였으며, 일체 세간을 초월하였는데도 집착하는 것이 없어야만 합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안과 밖이 공한 것이기 때문에 삼승(三乘)을 자세히 설하였고 일곱 가지 공한 것도 또한 그러하여 이 모두가 존재하는 것이 없는 까닭에 삼승을 설하였습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것은 공한 것임을 다 깨달아 알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설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의 세간을 초월하였으며 말재주가 가장 높으면서도 집착하는 것이 없습니다.”
27. 마하반야바라밀우법보품(摩訶般若波羅蜜雨法寶品)
그때 석제환인은 마음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존자 수보리가 지금 저렇게 설법하신 것은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사천왕에서부터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하늘에 법보(法寶)를 내리 것이다.
이제 수보리께서 법을 설하여 법보를 내렸으니, 우리들은 변화로 꽃을 만들어 부처님과 보살과 여러 성중들과 수보리의 위에 꽃비를 내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석제환인과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하늘의 무리들이 각각 변화로 꽃을 만들어서 세존과 여러 보살마하살과 비구성중(比丘聖衆)과 수보리의 위에 뿌리고 공양하면서 스스로 반야바라밀에 귀의하였다.
이때 꽃을 뿌려 마치자 그 꽃이 이천이나 되는 부처님 국토에 두루 퍼졌고, 위로 허공에서는 그 꽃이 변화하여 이층 누각이 되어 우뚝 솟으니, 그 모습이 너무도 높아
상쾌한 마음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존자 수보리가 스스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옛날에 내가 이찍이 여러 천궁(天宮)을 두루 다닐 적에도 이러한 꽃들로 여러 하늘이 있는 곳을 향해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꽃들은 아마도 변화로 만들어진 것이요, 나무에서 핀 꽃이 아닐 것이다. 여러 천자가 있는 곳을 향해 뿌려진 저 꽃은 마음의 나무에서 생긴 것이지 평범한 나무에서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꽃은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고 마음의 나무에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拘翼)이여, 당신의 말과 같이 그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도 없고 마음의 나무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라고 말했으니, 그렇다면 구익이여, 가령 저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온 곳도 없다면 그것은 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꽃만이 실제로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물질도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이여, 이 꽃만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은 모두 생겨난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곳이 없으므로 물질은 없는 것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으니, 그것들이 생겨난 곳이 없으므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은 없는 것입니다.
눈도 생겨난 곳이 없으니 그것이 생겨난 곳이 없으므로 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단(檀)바라밀도 생겨난 곳이 없으니 그것이 생겨난 곳이 없으므로 단바라밀이라고 이름할 것도 없고, 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바라밀도 생겨난 곳이 없으니, 그것이 생겨난 곳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의 이 모든 이름은 없는 것입니다. 구익이여, 일곱 가지 공함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도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남이 없으니, 그것이 어느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면 일곱 가지 공함이라거나 서른일곱 가지 조도품이라거나 하는 이름도 없습니다.
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과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부처님만이 지닌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의 이름들은 없는 것이며,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부처님ㆍ살운야의 지혜도 생겨나는 곳이 없으니, 그것들이 생겨나는 곳이 없으므로 이와 같은
살운야의 지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마음 속으로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존자 수보리가 들어 있는〔入〕 지혜는 매우 깊어서 그가 설법하는 것은 모두 서로 다툼이 없으며, 또한 착란(錯亂)함이 없구나.’
그때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그렇다. 구익이여, 수보리가 들어 있는 지혜는 매우 깊어서 그가 들어 있는 지혜로 경법(經法)을 설하면 모두 다툼이 없고 또한 착란 되지도 않느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 수보리는 어떻게 깊은 지혜에 들어갔으며 그가 들어 있는 지혜로써 경법(經法)을 설하면 다툼도 전혀 없고 또한 착란하지도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에 들었을 때에는 그 물질에 들어 있는 대로 설법을 하지만 모두 서로 다툼이 없고 또한 착란 되지도 않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들도 모두 이와 마찬가지이니라. 왜냐 하면 이 모든 법들은 서로 화합됨도 없고 서로 다툼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설한 것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동화(同和)하지도 않고 착란하지도 않느니라.
여섯 가지 바라밀도 이와 같으며, 일곱 가지 공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들도 동화하거나 착란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부처님ㆍ살운야 지혜도 모두 이와 같아서 동화하거나 착란을 일으키지 않나니, 왜냐 하면 수보리가 설한 법은 서로 화합하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그것들이 서로 화합하거나 다툼이 없다면 다툴 대상도 없나니, 이와 같이 구익이여, 수보리가 깊은 지혜에 들어가 그가 설하는 법이 미묘하고 높고 당당함도 이와 같느니라.”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설하는 모든 법에 대하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음을 밝게 깨달아 일체의 법을 알아야 하고,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우되 물질〔色〕ㆍ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識〕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물질은 볼 수 없기 때문이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대하여 배워야 할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단ㆍ시ㆍ찬ㆍ유체ㆍ선ㆍ반야바라밀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바라밀은 배워야 할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곱 가지 공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도 배워서는 안 되나니, 왜냐 하면 일곱 가지 공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며, 열 가지 지혜의 힘ㆍ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ㆍ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도 배우지 않아야 하고,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부처님ㆍ보살ㆍ살운야 지혜도 배우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들은 배워야 할 대상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석제환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수보리여, 무슨 까닭에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과 일곱 가지 공(空)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성문ㆍ벽지불ㆍ부처님ㆍ살운야 지혜를 보지 않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물질은 공한 것이기 때문이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공하기 때문이며, 위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구익이여, 물질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공한 물질은 배우지 않아야 하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공한 것을 배우지 않아야 하며, 위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한 살운야 지혜까지의 모든 공한 것을 배우지 않아야 합니다.
구익이여, 만약 모든 것은 공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공에서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공을 배우는 것이 하나의 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두 가지 법이 됩니다. 만약 물질을 배운다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위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든 것을 만약 배운다면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구익이여,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 법이 없고, 위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다 공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 법이 없습니다.
여섯 가지 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아서
두 가지 법이 없으며, 일곱 가지 공(空)ㆍ서른일곱 가지 조도품ㆍ열 가지 지혜의 힘ㆍ두려움 없는 자신감ㆍ모든 부처님만이 지닌 법과ㆍ성문ㆍ벽지불과 위로 삼야삼불(三耶三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도 다 두 가지 법이 없고, 살운야 지혜도 두 가지 법이 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의 살운야 지혜를 배운다면 이는 곧 이루 헤아려 계산할 수 없을 저도의 아승기 법을 모두 배우는 것이니, 그렇게 이미 숫자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승기의 불법(佛法)을 배울 수만 있으면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될 물질을 배우지 않을 것이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위로 살운야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다섯 가지 쌓임을 배워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면 곧 능히 살운야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 살운야의 지혜를 배워서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게 되면 물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 않고 잃지 않을 것이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 않고 또한 잃어버림이 없을 것이요, 성문ㆍ벽지불과 위로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 않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우나니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 않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우나니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도 않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으며, 살운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배우지도 않고 잃어버리는 것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 쌓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으며, 살운야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도 않고 잃어버리는 것도 없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받아 지닐 수도 없고 물질을 받아들임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ㆍ살운야 지혜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 지닐 수도 없고 이와 같은 살운야 지혜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임도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일체의 법에 대하여 모두 받아들임이 없기 때문에 살운야를 성취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배우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운야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운야 지혜를 내기 위한 것이니, 일체법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워서 모든 법에 대하여 받아들이기 위해 배우는 것도 아니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다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워서 살운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에 대해 생겨남이 있다고 보지 않고 소멸함이 없다고 보지도 않으며, 받아들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지니지도 않고 다툼도 없으며, 더하지도 않고 덜어버리지도 않나니, 왜냐 하면 사리불이여, 물질은 자연(自然)이기 때문에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 대하여 생겨나는 것이라고 보지도 않고 또한 소멸함이 없다고 보지도 않으며, 받아들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번뇌도 없고 한스러움도 없으며, 놓아버림도 없고 놓아버리지도 않음도 없으며,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고 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살운야 지혜는 자연 그대로여서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대하여 생겨남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으며, 받아들일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티끌도 없고 한스러워할 것도 없으며, 놓아버릴 것도 없고 놓아버리지 않을 것도 없으며, 더하는 것도 없고 덜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이미 살운야에 도달하였으니, 곧 배울 것도 없고 생겨나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디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해야만 합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구익(拘翼)이여, 마땅히 존자 수보리로부터 구해야 합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현명한 그대의 위신력으로 그대가 건립(建立)하여 사리불로 하여금 ‘수보리가 설한 반야바라밀을 좇아서 마땅히 구해야 한다’고 말하게 한 것입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위신력으로 건립한 것이 아닙니다.”
또 물었다.
“그러면 누구의 위신력 덕택에 건립된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구익이여, 그것은 달살아갈(怛薩阿竭:佛)의 위신력에 힘입어 건립된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일체의 여러 가지 법은 다 건립한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달살아갈의 위신력으로 건립된 것이라고 말합니까?
다른 곳에서도 건립된 것이 없으면 모든 법에 대해 헤아려 보아도 여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나, 다른 곳이 없다며 또한 여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존자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구익이여, 달살아갈은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마땅히 머물 만한 다른 처소도 없으나, 여래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얻을 것이 있으니 역시 머무름을 여의지 않아야 합니다.
달살아갈은 역시 머무는 곳이 없으나 일체법에 대해서도 머무름을 여의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인 달살아갈로써 여래가 될 수 없고, 근본이 없는 것으로써 달살아갈이 될 수도 없으며, 근본이 없는 물질로써 다랄아갈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달살아갈과 근본이 없는 물질로써 근본이 없는 색법(色法)이 될 수도, 달살아갈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달살아갈로써 근본이 없는 법이 될 수도 없으니, 모든 법은 근본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물질도 근본이 없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이 근본이 없기 때문에 달살아갈도 근본이 없습니다.
달살아갈(怛薩阿竭)로써 근본이 없는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을 얻을 수 없고, 이러한 인식작용에 이르는 모든 것으로써 근본이 없는 달살아갈의 법을 얻을 수도 없으며, 달살아갈의 법으로써 식법(識法)이 되게 할 수도 없고, 성문ㆍ벽지불로부터 위로 살운야와 근본이 없는 달살아갈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달살아갈의 근본 없음으로써 살운야의 근본 없음을 얻을 수 없고, 살운야법으로써 달살아갈법을 얻을 수도 없으며, 달살아갈법으로써 살운야법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또 구익이여, 달살아갈은 모든 물질의 법〔色法〕에서 모여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서도 모여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달라지는 오음(五陰)에서도 모여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달살아갈에서도 모여지거나 흩어지는 것이 없고, 살운야의 법에서도 모여지거나 흩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살운야 달살아갈에서도 모여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살운야의 법에서도 모여지거나 흩어지는 것이 없으며, 변화하는 살운야 달살아갈에서도 모여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또 구익이여, 이 모든 법에 있어서도 모여지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니, 이것은 위신력으로 건립한 것으로써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구익께서 묻기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느 곳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하느냐?’고 하였는데 물질에서도 구하지도 않고 물질과 다른 것에서도 구하지 않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에서 구하지도 않고 이러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이 아닌 데에서도 구하지 않습니다.
반야바라밀은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과 일체의 온갖 법에서 합해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빛깔도 없고 보는 것도 없으며 받아 지닐 수도 없는 한 모양이어서 아무런 모양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구익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서도 다 구하는 바가 없으며 다른 곳에서도 살운야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과 살운야를 구함에 있어서 모든 법에서 모여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빛깔도 없고 보는 것도 없으며 받아 지닐 수도 없는 한 모양이어서 아무런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익이여,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물질도 없고
물질과 다른 것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없고, 이러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과 다른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은 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고 또한 살운야와도 다름이 없으며,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와 다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반야바라밀과 달살아갈의 반야바라밀은 물질도 없고 또한 물질과 다른 것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과 다른 것도 없습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인식작용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과 다른 것도 없고, 살운야가 반야바라밀도 아니며,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와 다른 것도 아닙니다.
달살아갈의 반야바라밀은 물질도 아니요 또한 물질과 다른 것도 아니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인식작용과 다름도 없고 또한 근본이 없음도 아닙니다.
반야바라밀은 물질의 법〔色法〕도 없고 또한 물질의 법과 다른 것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반야바라밀은 물질도 없고 근본도 없으며, 또한 물질과 근본과 다른 것도 없습니다.
반야바라밀은 물질의 법〔色法〕도 없고 또한 물질의 법과 다른 것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역시 이와 같고, 성문ㆍ벽지불로부터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아서 살운야와 물질의 법도 없고 또한 살운야와 물질의 법과 다른 것도 없습니다.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의 근본 없음도 없고 살운야의 근본 없음과 다른 것도 없으며,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의 근본 없음이라는 것도 아니고 살운야의 근본 없음과 다르다는 것도 아닙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모든 보살마하살의 마하반야바라밀과 다름이 없고 이 바라밀은 한정이 없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은 배워야 합니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부처님도
마땅히 이것을 배워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이 법을 배워 모든 중생들을 열어 교화하고 부처니의 국토를 엄숙하고 맑게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를 얻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이와 같이 구익이여, 이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마하반야바라밀이요, 다름이 없는 바라밀이요, 한계가 없는 바라밀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삼승이 모두 이것을 말미암아 생기기 때문이요,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이룩하고 마침내는 아유삼불(阿惟三佛)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질은 그 끝이 없으니, 이것이 곧 모든 보살마하살의 끝이 없는 바라밀입니다. 왜냐 하면 과거의 물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또한 중간(현재)의 물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역시 미래의 물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문ㆍ벽지불로부터 위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다함없고 끝없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까닭에 구익이여, 이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다함없는 바라밀입니다.
물질은 한량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도 한량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물질은 한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니, 구익이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끝도 없고 한계를 지을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질을 헤아릴 수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허공을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물질도 한정지을 수 없고, 물질을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한정지을 수 없으며, 위로 살운야(薩芸若)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한정지을 수 없으니, 이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수행입니다.
왜냐 하면 구익이여, 살운야 지혜는 끝도 없고 한정지을 수도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살운야의 지혜도 역시 이와 같으니, 허공을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살운야도 또한 무한하며, 살운야 지혜가 무한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무한합니다.
이런 까닭에 구익이여, 반야바라밀은 무한하니, 이것이 곧 모든 보살마하살의 허공처럼 끝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구익이여, 물질은 변제(邊際)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아프고 가려운 느낌ㆍ고정관념ㆍ나고 죽는 행업ㆍ인식작용도 또한 변제도 없고 중간도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변제가 없고 끝과 밑바닥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신식(神識)의 밑바닥을 얻을 수도 없고 중간도 없으며,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으니, 이것은 곧 모든 보살마하살의 수행입니다.
왜냐 하면 구익이여, 살운야는 밑바닥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기 때문에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의 물질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살운야도 밑바닥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구익이여, 일이 끝도 밑바닥도 없는 까닭에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으니 이러한 것을 잘 깨달아 알면 보살마하살이 됩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일이 끝도 없고 밑도 없으므로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다고 하십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이여, 살운야의 일이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습니다.
또 구익이여, 법은 끝이 없고 밑바닥도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습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법이 끝도 없고 밑바닥도 없으므로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다고 하십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법계(法界)가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습니다. 또한 구익이여, 근본이 없는 일은 다 끝도 밑바닥도 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는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근본이 없는 일이 다 끝도 없고 밑바닥도 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다고 하십니까?”
“구익이여, 근본이 없고 밑바닥도 없으니, 이런 까닭에 밑바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이 끝이 없는 까닭에 근본도 없고 밑바닥도 없다고 말하고, 근본도 없고 밑바닥도 없기 때문에 일이 밑바닥이 없다고 말하며, 일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도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습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바라밀도 밑바닥이 없다고 하십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법 가운데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보살마하살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합니까?”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대답하였다.
“여기에는 법으로 가르친 것도 없고 법 아닌 것으로 가르친 것도 없습니다. 이 이름은 인연을 좇아서 온 것이라서 모든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요 근본도 형상도 없으며, 다만 거짓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중생이라고 말하지만 그 중생이란 아무 인연도 없고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구익이여, 그대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이 반야바라밀이 어찌 중생을 설한 곳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이여, 가령 중생을 설한 곳이 없다면 어찌 밑바닥이 없습니까? 구익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怛薩阿竭阿羅訶三耶三佛)께서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을 살면서 중생에 대하여 설하셨지만, 그것이 어찌 중생이라는 것이 있어서 생겨나고 소멸함이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수보리여,
왜냐 하면 중생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익이여, 중생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밑바닥이 없으니,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서 깨달아야 할 것이요, 또한 반야바라밀의 법도 이와 같이 배워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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