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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84 불교(견정론 상권 5편 / 甄正論)

by Kay/케이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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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상권 5

 

현의(玄嶷) 지음

이한정 번역

 

() 무제(武帝)가 오나라를 평정한 이후에 장도릉의 경법(經法)이 처음으로 강좌(江左)에 유포되었다. 송문명 등이 장도릉이 날조한 경전에다 의소(義疏)를 창작하여 이를 풀이하자, 이로 인해 다시 위경(僞經)이 급증하여 그 수가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삼통이 날조된 경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옥자금서는 천존이 옥경(玉京)의 현도(玄都)에서 경전을 설하자, 여러 천상의 진인(眞人)들이 편집하여 ()’이라 제자(題字)하고 그 경문을 베낀 것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옥자란 여러 천서(天書)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금서는 금()에 새긴 것을 제자한 것이니, 지금의 도사들에게 수여되는 진문(眞文) 및 상청(上淸)의 어휘들은 모두 옥자로서 글을 삼는데, 그 글자가 소전(小篆)과 비슷하면서도 소전이 아니다. 도가는 진행도(眞行道)를 밝혀서 5방에 단()을 세우고 각자 하나의 진문(眞文)을 펼치는데, 그와 같은 글과 글자를 옥자로 쓴다. 송문명 등이 예서(隷書)를 지어 이를 번역하였다는데, 송문명에 따랐다는 이 같은 경위를 징험해 보면 글자를 위조한 것임이 더욱 뚜렷해진다. 만약 옥자가 원래 여러 천상의 진인이 쓰던 것이라면 송문명은 근대의 도사인지라 설법하는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 경을 편집한 진인과 서로 접촉하지도 않았을텐데, 어떻게 송문명이 옥자를 알아 예서로 바꾸었겠는가? 이는 옥자는 송문명이 지은 것인데, 전서체로 고치고서 옥자란 이름을 허위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예서로써 그 날조된 글자를 다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니, 이같이 증험해 보면 환히 알 수 있다. 은함요격이라는 것도, ()은 경전을 담는 상자이고, ()은 경전을 저장하는 창고이다. 이는 천존이 설한 경전은 하늘과 사람에게 공경 받는 것이라 은함에 담고 옥장에 모신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은과 옥이 귀하기 때문에 경전을 제본하는 데 쓰인다고 하나, 이 같은 것은 헛된 말로 전부가 속이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선궁(仙宮)은 인간보다 존귀하여 매사가 다를 텐데, 만약 인간의 은과 옥으로 천궁의 보물을 삼는다면 인간의 소리와 색도 천궁에서 귀중한 것이 될 수 있겠다. 소리와 색으로 경전의 말씀을 위조하는 것도 망령된 것인데 은과 옥이 어찌 진재(眞材)가 되겠는가. 색의 대경(對境)이 동일한데도, 서로 간에 어떠한 차별이 있기에 진재로 옹립하면서 색을 부정하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자필(紫筆)’주도(朱韜)’라 하는 것은 한층 더 거짓되며, 단지 붓이 생겨난 것은 여섯 나라[六國]에서 비롯된다고 전하는데, 진나라 사람 몽염(蒙恬)이 최초로 붓을 만들었다. 진나라 이전에는 모두 나무를 깎아 글을 쓰면서 이것을 참()이라 부르거나 또는 찰()이라 부르거나 또는 고()라 불렀기에 원래 붓이라는 이름조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천존이 이를 붓이라 불렀겠는가? 하물며 5()도 실답지 못하고 6()도 모두 헛된 것인데, 미혹된 마음이 집착에 매여 망령되게 색이라 하는 것으로 성현에게는 본래 이 같은 소견이 없다. 이는 송문명 등이 세속에서 귀히 여기는 주자(朱紫)로서 도참(圖讖)을 색칠하는 데 쓰면서 이같이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또 도()라는 것은 육토(六韜)를 본떠서 허망하게 태공(太公)의 병서(兵書) 이름을 표절했으며, 바로 세속의 책을 가지고 이름을 달리하였다 하나, 병지(兵誌)를 따서 목차를 정했기에, 참으로 진로(塵勞)의 경계를 여의지 못하고 바야흐로 생사의 흐름에 묻힌 것이라 하겠다. 말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여겼으나 이치를 궁리해 보면 전부가 헛된 자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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