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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88 불교(견정론 상권 9편 / 甄正論)

by Kay/케이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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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상권 9

 

현의(玄嶷) 지음

이한정 번역

 

소위 옥청의 경계라는 것도 망론에 불과하니, 대도군이라 호칭하더라도, ()는 허통(虛通)의 이치이고. 무물(無物)을 이르는 것인데, 태상도군(太上道君)에게 어찌 형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태청의 하늘도 세울 수 없으므로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노자가 수레를 몰고 서역으로 갔다가 종당에는 승천했다는 근거가 아무데도 없으니, 상청의 위()를 헛되이 표시하는 일 따위는 모두가 헛바람 치는 말이다. 두세 번을 거듭하면서 더우 허망해졌으므로 그 거짓된 자취가 바로 뚜렷해진다. 구선(九仙)이라 말하는 것도 경전의 말씀에 따르면, 신선에는 아홉 등급이 있어 등급의 차별에 따라 그 위를 표시한다는데, 천존이 만약 그 우두머리라면 이는 신선의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신선전(神仙傳)가운데 어째서 실려 있지 않은가? 설사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생사를 면하지 못하고 마침내 겁화(劫火)에 불태워져 성증(聖證)의 위()에 들지 못하기에 대체로 그 경위를 날조한 것이 바로 이 같은 유이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이 거침없이 말씀하시어 아무리 말솜씨가 혓바닥에 꽃 피듯 하고, 구변이 샘솟듯 끊이지 않고, 문장이 급류가 쓸 듯이 하여 말로 치는 것이 마치 따사로운 봄바람이 얼음을 녹이고, 매서운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 듯하여도 말은 한낱 말일 뿐입니다. 의심나는 것은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영보도인경(靈寶度人經)에 따르면 천존은 시청천(始靑天) 가운데 벽락(碧落)8)의 공가(空歌)인 대부려토(大浮黎土)에 머문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존이 거주한다는 근거가 되니, 설법하였다는 것도 의심할 바가 없어서 시청천도 분명해지고, 벽락의 궁()도 확실해지는 데다, 그 경계를 표시하여 공가(空歌)라 호칭하고 그 국토를 이름하여 부려(浮黎)라고 새겼으니, 어떠한 고론이라도 이 같은 일마저 거짓이라 배척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이 손바닥으로 입을 쓰다듬으면서 공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안회(顔回)는 공자에게 칭찬 들었고,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준다고 저공(狙公)은 장생(莊生)에게 분노를 느꼈는데, 내 예전에는 이를 괴이쩍게 여겼으나 지금은 이를 믿게 되었다. 시청(始淸)의 하늘과 대라가 어떻게 다른지, 벽락이란 이름이 상청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앞서 일러줬어도 다시 현혹되는구나. 소위 32천의 설에 따르면 하늘에는 시청이란 이름이 없다. 또 삼청의 위()에도, 그 위에 부려(浮黎)의 경지가 없는데, 이를 뒤섞어 놓았으니, 시종(始終)이 어그러졌다. 단지 여러 천상에는 모두 천인뿐이며, 욕계(欲界)의 천상에는 남녀가 섞여 있는 곳으로, 비록 욕사(欲事)의 가볍고 무거움이 같지 않더라도, 열 가지 업을 훌륭히 닦아야 그 경계에 태어나니, 인간이 영토를 나누고 들판에 내 것이라 표시하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또 색계(色界) 위로는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으니, 이는 사무량인(四無量因)을 닦아야 저 같은 과()를 감득(感得)하게 된다. 마침내 토지가 없는 실()에 감득하고 나면, 온갖 보배는 함께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금 말하는 대부려토(大浮黎土) 한 가지만 하더라도,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 거짓된 경위는 징험해 보면 알 수 있기에, 이는 그대 자신의 생각이 어두운 것이지, 내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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