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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935 불설화수경(佛說華手經) 8권

by Kay/케이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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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화수경(佛說華手經) 8

 

불설화수경 제8권

구마라집 한역
장용서 번역

27. 중잡품(衆雜品)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구제하는 법이 있으니, 무엇이 넷인가. 두려워하는 중생은 여래가 능히 구제하고, 삿된 길에 들어간 이는 성현의 도로써 능히 구제하고, 여러 악업을 지은 이는 염처(念處)로써 능히 구제하고, 여덟 가지 어려운 데 있는 이는 보살이 능히 구제하나니, 이것이 말하자면 넷이 되느니라.
사리불아, 네 가지 편안한 법이 있나니, 무엇이 넷인가. 태어나서 부처님을 만나니 이것이 크게 편안한 것이요, 어려움이 없는 곳을 얻었으니 이것이 크게 편안함이요, 부처님의 법을 능히 믿으니 이것이 크게 편안함이요, 성현의 바른 견해를 갖추었으니 이것이 크게 편안함이라. 이를 이름이 넷이 되느니라.사리불아,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어 사업(事業)을 능히 성취하니, 무엇을 일러 넷이라 하는가. 4대(大)가 조화하여 몸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하고, 바른 견해와 깨끗한 마음을 능히 내게 하고, 부처님을 뵙고 믿음을 얻어 뭇 즐거움의 인(因)을 만들고, 위없는 마음을 발하여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의 여러 가지 번뇌의 병을 능히 없애 주나니, 이것이 네 가지 법으로 능히 사업을 이루는 것이니라.또 사리불아, 세상에 네 가지 원하는 것이 있나니, 무엇을 일러서 넷이라 하는가. 여러 가지 병으로 야윈 이는 살아나고자 원하고, 주림과 목마름이 닥치면 음식을 얻고자 원하고, 고뇌가 절박하면 즐거움을 얻고자 원하고, 험한 길을 가는 이는 편안함을 얻고자 원하나니, 이것이 네 가지 원(願)이 되느니라.
또 사리불아, 세계에는 무릇 네 가지 탐착하는 것이 있어 그 때문에 마땅히 악한 세상에 떨어지나니, 무엇을 일러 넷이라 하는가. 첫째는 몸에 탐착하고, 둘째는 목숨에 탐착하고, 셋째는 재산에 탐착하고, 넷째는 애욕(愛欲)에 탐착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넷이라 하느니라.사리불아, 일곱 가지 갈무리 곳이 있나니, 이른바 바람 갈무리[風藏]ㆍ남 갈무리[生藏]ㆍ익은 갈무리[熱藏]ㆍ찬 갈무리[冷藏]ㆍ뜨거운 갈무리[熱藏]ㆍ보는 갈무리[見藏]ㆍ욕심 갈무리[欲藏]이니라.
사리불아, 이 여러 갈무리 가운데 욕심 갈무리가 가장 굳건하니라. 이 욕심 갈무리는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가. 콧물ㆍ침ㆍ가래ㆍ고름ㆍ피ㆍ힘줄ㆍ뼈ㆍ가죽ㆍ살덩이ㆍ심장ㆍ간ㆍ오장ㆍ배ㆍ똥집ㆍ똥ㆍ오줌에 의지하고 있느니라.”그때에 모임 가운데 한 거사(居士)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찬택(撰擇)이라 하였다. 거사에게 아내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묘색(妙色)이었다. 얼굴이 잘 생기었고 몸매가 특출하였으므로 찬택 거사가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내어서 번뇌가 치성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는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탐욕의 마음은 똥오줌에서 일어난다는 그런 말씀 마옵소서. 왜냐하면 제 아내는 단정하고 깨끗하여 냄새나 더러운 것이 없나이다.”부처님께서 거사가 더러운 데 탐착하는 정이 깊은 줄을 아시고, 즉시 한 부인의 모양을 변화시켜 단정하고 정결한 모습이 묘색과 똑같게 하여 얌전한 얼굴과 차림새로 대중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게 하셨다.
거사가 그를 보자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처가 무슨 까닭으로 이 회중에 들어올까?’
이 생각을 하자 곧 물었다.
“어째서 그대는 여기 왔느냐?”그러자 답하였다.
“부처님의 법문 설하시는 것을 듣고자 해서 왔습니다.”
거사는 곧 그를 끌어당겨 자기 옷 위에 앉혔다.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이 부인으로 하여금 그의 옷에 똥을 누게 하여 가사가 그 냄새를 참을 수 없게 하셨다. 그는 손으로 코를 막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가?”그때에 발난타(跋難陀)가 오른쪽에 앉아 있다가 거사에게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코를 막고 나를 돌아보는가?”
거사가 답하였다.
“여기서 냄새가 몹시 나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발난타와 여러 대중들로 하여금 부인이 똥을 누어 거사의 옷을 더럽힌 것을 보게 하셨다.때에 발난타가 거사에게 말하였다.
“자, 보란 말이오. 당신 아내가 저지른, 냄새나는 더러운 것이오.”
거사가 답하였다.
“난 의심치 않소. 내 아내는 깨끗하고 깔끔해서 몸에 더러운 것이라곤 없어요. 의심이 나거든 당신 스스로 보면 알거요.”
그는 또 발난타에게 말하였다.
“내 마음에는 당신이 꼭 이 더러운 짓을 한 것으로 생각되오.”그러나 발난타가 즉시 크게 화를 벌컥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거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부끄러움도 없구나. 누가 너를 거사라고 이름지어 주었느냐? 그대는 이제부터 꼭 똥거사라고 불러야겠다. 스스로 아내를 끌어당겨 옷 위에 앉히지 않았느냐? 네 아내가 앉을 때 이 똥을 쌌는데, 그대는 스스로 앉아서 똥을 발라 놓고도 부끄럼 없이 도리어 남을 비방하려 하는구나.”
회중이 크게 고함쳐 말하였다.
“이 똥거사를 대중 밖으로 내쫓아라.”문득 누군가 소리쳤다.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은 대중 가운데 있지 못한다.”
즉시 대중들은 그를 끌어당겨 밖으로 내쫓았다.
찬택은 마음이 어리둥절하여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를 끔찍이 여기어 옷 위에 앉게 하였는데 점잖은 사람이 어디 그럴 법이 있느냐?”
그의 아내는 즉시 대답하였다.
“그대가 똥주머니 가까이 있으니 자연 그럴 수밖에요.”
그러자 거사는 곧장 싫은 생각이 들어 옷의 똥을 씻어내고 더러운 몸을 다시 깨끗이 하고자 하여 발난타에게 말하였다.
“무슨 방편으로 이 더러움을 여읠 수 있겠는가?”발난타는 말하였다.
“그 더러운 똥은 네 몸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멸하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으리니, 이것이 네 모습이니라. 만일 이를 벗어나려거든 반드시 멀리 도망가거라. 네 아내의 똥 때문에 대중이 골치를 앓고 답답하고 어지럽게 하였느니라.”
거사는 답하였다.
“여러 석자(釋子)들은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이가 많은데, 너만 몹시 악하게 입을 놀리는구나.”
발난타가 말하였다.
“너 같은 것을 이제 무엇 때문에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어기고 거역하여 말하기를 ‘제 아내는 단정하고 깔끔하여 여러 가지 냄새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제 그대는 정결한지 않은지를 네 스스로 관하고 나를 비방하여라.”그 말을 듣고 거사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아내를 보내고 나서 그는 발난타에게 말하였다.
“여인이란 아첨하고 삐뚤어져 여러 가지 허물이 많고 부정한 것이 꽉 찬 것임을 이제야 밝히고 알았노라. 싫어져서 여읠 생각이 나니, 부처님 법에 출가하여 도를 닦으려 한다.”
발난타가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몸이 이렇게 냄새나고 더러우니, 몸에 향을 발라 단 1년이라도 지난 뒤라야 출가할 수 있으리라.”거사가 답하였다.
“내가 몸에 향을 발라 한 해를 지난다면, 혹 몸이 무상(無常)할 수도 있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실 수도 있어 출가하여 도를 구할 인연을 허물 것이다. 이제 만일 출가함을 들어주신다면, 다시는 도시나 시골로 가지 않고 절에 아란야(阿蘭若)를 짓고 비고 한가한 곳에서 빌어먹고 누더기 입고 있으면 누가 냄새를 맡으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그대는 내 법 가운데 출가하고자 하느냐?”즉시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그대는 사문이 되어 범행(梵行)을 닦아 행하려 하는구나.”
즉시 거사는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드니 마치 비구의 형상과 같았다.
부처님께서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법문을 설하시니, 4성제(聖諦)를 듣고 법의 눈이 깨끗해져서 수다원을 이루었다. 거듭 법문을 설하시어 교화하시니, 점차로 사다함과 아나함과를 얻었다.이 밤을 지내고 나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에 나아가 차례로 걸식을 하며 가다가, 마침내 제집에 이르러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때에 아내 묘색은 그의 남편이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보고 곧 말하였다.
“마땅히 법으로써 나를 버리고 사문이 되어야 하오.”
찬택이 답하였다.
“너는 어제 법으로서 마땅히 내 옷 위에 부정한 것을 버리어 내 몸을 더럽혔어야 했느냐?”
묘색이 답하였다.
“당신은 비구가 되더니 곧잘 사람을 비방하는구려. 나는 친정집에서 당신네 집에 온 뒤로 아직 바깥문을 보지도 못했거늘, 하물며 대숲 동산에 나아가 저 대중 모인 가운데 이르렀겠소.”그때에 비구가 묘색에게 말하였다.
“발난타가 내 옆에 있었는데 대중 가운데서 너를 내보내는 것을 보았다.”
때에 악마가 찬택을 따라다니다가 말하였다.
“네가 어제 본 이는 묘색이 아니라 그것은 변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네 마음을 현혹케 한 것이니, 지금 다시 돌아와 오욕을 스스로 즐기라. 사문 구담은 너를 속였느니라. 그대는 지금 허망한 것이다. 사실은 비구가 아니다. 구담 사문은 늘 마치 지금 너를 속인 것과 같이 이러한 술법으로 많은 사람을 속여 출가하게 한다.”찬택 비구는 참다운 법을 증득하였으므로 마군의 하는 수작인 줄 곧 깨닫고 악마에게 일러 말하였다.
“너도 변화요, 나도 변화요, 이 묘색 또한 다 변화로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은 모두 공(空)하여 환술과 같으니라.”
그때에 묘색은 이 법문을 듣고 곧 여러 법의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었다. 또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어 의심과 뉘우침을 털어버리고 남의 말을 따르지 않고 부처님 법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그는 찬택에게 일러 말하였다.
“하신 일, 매우 잘 하셨소. 능히 부처님 법에서 범행을 즐겨 닦으니 나도 또한 그 법에 출가하여 도를 위하리다.”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고 마음을 발하여 보리를 구하는 이는 네 가지 법을 꼭 여의어야 하나니, 무엇을 넷이라고 하는가. 나쁜 친구와 여러 악한 지식과 착하지 못한 행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이 첫째 법으로서 마땅히 여의어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어떤 사람이고 마음을 발하여 보리를 구하려는 이는 마땅히 여인의 모양에 탐착함을 여의어 세상 사람과 더불어 자리를 같이하여 같은 일을 하지 말지니, 이것이 제2의 법으로서 마땅히 여의어야 하느니라.또 사리불아, 어떤 사람이고 마음을 발하여 보리를 구하려는 이는 외도의 서론[外道書論], 말하자면 나형론(裸刑論)ㆍ노가야론(路伽耶論)ㆍ말가리론(末伽梨論)을 마땅히 여의어야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면 친근하거나 받아 읽거나 외우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이 제3의 법으로서 마땅히 여의어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혹 어떤 사람이고 마음을 발하여 보리를 구하려는 이는 삿된 소견, 나쁜 소견을 친근하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이 제4의 법으로서 마땅히 여의어야 할 것이니라.사리불아, 여래는 다른 나머지 법이 이 네 가지 법과 같은 것이 부처님의 도를 깊이 장애함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마땅히 이를 여의어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위없는 보리를 속히 얻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을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보살은 마땅히 선지식을 따라야 하나니, 선지식이란 이른바 여러 부처님께서시니라. 혹 성문(聲聞)의 사람이 능히 보살로 하여금 깊은 법의 갈무리와 여러 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면 이 또한 보살의 선지식이니, 마땅히 친근하고 공급하고 예경하여야 하느니라.또 사리불아, 보살은 반드시 출가를 친근히 하고, 또한 아란야 법을 마땅히 친근하여야 하나니, 여색을 여의려는 때문이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은 크게 공한 바른 소견[大空正見]을 친근하고 닦아 익혀야 하나니, 삿된 소견을 여의려는 때문이니라.
또 사리불아, 여러 보살이 위없는 보리를 빨리 얻고자 하거든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마땅히 친근히 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인의 일을 멀리 여의고
나쁜 지식도 여의어라
또한 외도의 논과
아울러 삿된 소견도 멀리하라.
만일 여인과
여러 나쁜 지식 친근하거나
외도의 논의를 받으면
삿된 소견만 더하리라.
삿된 소견만 늘고 자라므로
어려운 곳에 빨리 떨어지고
여덟 가지 어려움 여의기 어렵고
부처님 법 믿기 또한 어렵네.
어떤 사람 악을 짓고자 하여
악한 행을 불쑥 지으면
악행을 지은 이는
악한 세상에 떨어지리.
이런 까닭에 도를 구하는 이
여색에 가까이함을 익히지 말라.
항상 싫어하고 여읠 마음 내어
여인을 돼지같이 관하라.
나쁜 지식의 그른 법에
머무르게 하는 이를 가까이 말라.
그른 법 행하는 데 가까이하면
사람의 마음과 눈 잃게 하네.
만일 외도들의
이건(尼揵) 논의를 친근하면
말은 비록 엄하게 꾸며졌어도
여러 가지 허물을 내리.
이 여러 가지 일 전부 여의고
여러 삿된 소견 버리라.
내가 이제 네 가지 법이
생사의 근본임을 말하리.
낮고 못한 법 멀리 여의고
훌륭하고 묘한 행을 익히라.
내 본래 닦아 익힌 바는
이 같은 법 행함일세.
출가하여 범행 닦고
선지식을 친근하니
여러 부처님과 그 제자
나를 불도에 머물게 하시네.
나는 늘 공을 닦아 행하여
공과 큰 공을 공하게 하네.
비록 이 공법을 행하지만
공에 집착하지 않으리.
법과 얻는바 둘이
함께 공에 있지 않으면
이 이름 참된 공이니
세계가 헤아리지 못할 바일세.
내 본래 불도를 구했네.
닦아 행하는 여러 법
이 법은 매우 미묘해
범부의 지혜로는 미칠 수 없네.
내가 불도를 구할 때
여러 가지 들은 경법
속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말 따르지 않았네.
제 스스로 통달한 후에
다른 사람 위하여 설하라.
이 이름 바르고 참된 도이니
공하고 걸림 없이 적멸하리.
공 가운데는 남[生]도 없고
늙는 이도 또한 없고
공 가운데는 죽음 또한 없으니
이것이 늘 있는 모양이라네.
이것을 법의 실상이라고 이르니
도량에서 통달한 것일세.
여러 마군의 병사 부숴 깨뜨리고
위없는 보리 얻었네.
내 얻은 법을
사람들을 위해 설해 주어
위없는 경계[無上際]를 증득케 해서
옮긴 바의 상(相)이 없게 하리.
불도를 얻고자 하고
도량에 앉고자 하거나
마군의 무리 쳐부수고자 하면
이 공한 법 늘 닦으라.
어떤 사람이
위없는 묘한 법 바퀴 굴려
한량없는 중생 제도하고자 하면
이 공한 법 반드시 배우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에 머무르고
대중에 처해서 사자후 하고자 하면
이 공한 법 반드시 익히라.
큰 소문을 얻어서
시방에 널리 유포코자 하거든
마땅히 바른 마음으로 닦아 익혀
이 공한 법 통달하여라.
여러 보살 지혜 있는 이여,
나를 따라 공한 법 배우면
훌륭한 보리 능히 얻으리니
이를 훌륭한 지혜라 이름하네.
비구ㆍ비구니도
나의 행을 따라 배우면
또한 보리를 꼭 얻으리라.
내가 지금 얻은 것처럼.
다만 이 두 대중만이
이 공한 법 능히 행함이 아니다.
온갖 중생의 무리 또한
배워서 부처의 도 이루리.
나는 8직도(直道:8正道)로써
이 공한 법 닦아 행하여
여러 법상(法相)을 통달하여
위없는 정각(正覺)에 이르렀네.
나는 이 법을 닦아 익혀
걸림 없는 지혜 능히 얻었네.
이 여러 부처님의 참다운 도는
공한 법 늘 익힘을 이르느니라.
이 까닭에 여러 보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 법과 이른바
여러 법의 공함을 배우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태어날 때마다 몸을 옮기되 바른 생각을 잃지 않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능히 행하느니라. 여러 가지 법 가운데서 결정심(決定心)을 얻어 걸림 없는 변재, 이로운 변재, 깊은 변재와 같음이 없는 변재를 얻느니라. 여러 부처님도 아시고 이에 신통의 힘을 더해 주시어 후세에서 법성을 반드시 옹호하게 하시느니라. 무엇을 일러서 넷이라 하는가.출가하기를 늘 즐겨하여 태어나는 곳마다 이 출가의 법을 닦아 익히나니,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법을 구함에 싫증이 없고, 법을 설함에는 게으름이 없고, 의지함이 없는 정[無依定]을 익혀서 여러 법의 상(相)을 헐고,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늘 부지런히 닦아 익혀 모든 반연하는 것 가운데 다투는 상[諍相]이 없이 할지니, 이것의 이름이 첫째 법으로써 바른 생각을 잃지 않음이니라.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도를 스스로 구하며 겸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그 가운데 머무르게 하고 늘 즐겨서 여러 부처님의 신기한 덕을 칭찬하나니, 이것이 제2의 법으로써 바른 생각을 잃지 않음이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매우 깊은 무생법인을 능히 이루나니, 이것이 제3의 법으로써 바른 생각을 잃지 않음이니라.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산란치 않아서 여러 부처님과 매우 깊은 법을 늘 생각하여 깊은 지혜로써 바른 생각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넷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뜻을 밝히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언제나 법을 구하되
또한 법보시도 늘 행하라.
이 까닭에 여러 가지 법에서
바른 생각을 끝내 잃지 않네.
한량없는 중생 교화하여
부처님 도에 머무르게 하기 때문에
몸을 옮겨 다시 태어날 때
언제나 바른 생각 잃지 않네.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매우 깊고 공하며 고요한 법 익히라.
이런 까닭에 보살은
무생인을 빨리 얻네.
남이 없음[無生]에 나지 않고
남이 없으므로 남이 없다
이 깊은 지혜[忍]를 쓴 까닭에
바른 생각 언제나 잃지 않네.
이 보살의 지혜로운 이는
어지러운 마음으로 숨 거두지 않게
언제나 여러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의 깊은 법을 오로지 생각하네.
이 사람 숨 거둘 때
그 마음 물러나 사라지지 않고
이 까닭에 몸 옮겨 태어날 때마다
바른 생각 언제나 잃지 않네.
이 까닭에 어떤 사람
위없는 도 얻고자 하면
한마음으로 이와 같은 네 가지 법
마땅히 닦아 익혀야 한다.
이 법이 제일이라고
여러 부처님들 칭찬하시어
나도 이제 또한 칭찬하니
너희들은 꼭 배워 닦으라.
여래가 법을 설하심은
너희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니
부처님께서 이익되자고
너를 위해 억지로 설하심 아닐세.
네가 부처님 지혜 구하려면
이 도를 꼭 배워 닦으라.
이 법을 배워 닦기 때문에
이로부터 부처님 지혜 생기네.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물러나 사라질 생각 내면
부처님 도는 끝내 못 얻으리니
이 법은 꼭 멀리 여의라.
혹 어떤 사람이 있어
나라는 마음 내고 중생이란 생각 갖거나
여러 가지 법에 의지하면
부처님의 도 능히 증득 못하리.
이 여러 가지 마음 꼭 여의고
공한 상 늘 닦아 배워서
온갖 법 헐고 흩으면
매우 깊은 지혜 얻으리.
또한 의지하지도 말라.
의지하는 것 있으면 곧 움직이는 상[動相]
움직이는 법 즐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가운데 오가느니라.
28. 중묘품(衆妙品)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 네 가지 법이 있어 온갖 묘한 법을 이루나니, 무엇을 일러 넷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발하면, 법이 헐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더욱 행하고 정진하여 법을 구하여 게으르지 않느니라. 또 여래의 탑묘가 헐어진 것을 보면 부지런히 보수하고 고쳐 오래 머무르게 하며, 법을 즐겨하므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고통받는 중생을 보면 대비의 마음[大悲心]을 내어 더욱 정진의 행을 더하되 원력을 세우기를 ‘언젠가는 부처님의 도를 꼭 닦아 익혀 이 여러 고통을 끊어 주고 법을 설하겠노라’고 하였다.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법을 구함에 싫증이 없나니, 법을 구하기 때문에 크고 깊은 마음을 발하여 큰 욕심을 내느니라.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ㆍ신성한 덕ㆍ이기기 어렵고 교만을 허는 마음을 구하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언제든지 중생에게 자비의 마음을 즐거이 행하고 이로움을 구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지을 것이다.
‘이 여러 중생에겐 구원해 줄 사람이 없다. 오직 나 한 사람밖에…….’보살마하살은 화내고 한탄하는 일이 없나니, 대비(大悲)를 닦는 때문이며, 보살마하살은 질투함이 없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참다운 지혜의 기쁨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은 아끼는 마음이 없나니 언제나 법보시[法施]로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은 큰 보시를 하는 이니 깊은 마음으로써 부처님의 도를 능히 즐겨하기 때문이니라.보살마하살은 마음에 온갖 법을 집착하지 않으며, 보살마하살은 잘 설명하는 이다. 얼굴빛이 평화스럽고 기꺼우며, 말할 때에는 언제나 웃음을 머금고, 고통 받는 중생을 보고는 갑절이나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며,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법을 기뻐서 즐기며, 보살마하살은 두려운 바가 없으니,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은 놀라고 무서움이 없으며, 부처님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니라.보살마하살은 언제나 부지런히 정진을 행해야 하나니 선근(善根)을 익히기 때문이며, 보살마하살은 여러 나라의 경계의 도시나 시골에 얽매임이 없으며, 보살마하살은 시방세계의 온갖 중생을 언제나 부지런히 교화하며, 보살마하살은 총명하고 이근(利根)하여 여러 가지 법을 통달하며, 보살마하살은 진실한 뜻을 구하나니 여실히 온갖 법을 생각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불법 가운데서 진실한 뜻을 구하나니 위없는 보리를 스스로 얻고자 하는 까닭이며, 보살마하살은 깨달은 이가 되나니 때를 잘 능히 알아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라.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능히 외도의 논을 법으로써 허물어뜨리는 이며, 온갖 법에서 뜻을 결정하는 이며, 불법의 성품이 되며, 법보(法寶)의 밭이 되나니, 법보를 낳기 때문이며, 큰 바다와 같음이 되나니 온갖 법을 받아 싫증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철위산(鐵圍山)과 같나니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중생들의 번뇌의 바람을 능히 막아 주기 때문이며, 큰 바닷물과 같나니 법을 설함에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그 마음이 청정하고 묘하나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라.보살마하살은 다함이 없는 이니 허공과 평등하기 때문이며, 또 수미산과 같나니 선법(善法)을 쌓기 때문이며, 대지와 같음이니 미움이나 사랑스러움을 받는 때문이며, 좋은 밭과 같나니 여러 선근(善根)을 심어 잃지 않기 때문이며, 맹렬한 태양과 같나니 중생에게 법의 광명을 능히 주기 때문이며, 깨끗한 달과 같나니 여러 가지 어둠을 헐기 때문이니라.보살마하살은 비밀한 일산과 같나니 여러 중생의 음(婬)ㆍ노(怒)ㆍ치(癡) 등 번뇌의 뜨거움을 막아 주기 때문이며, 구름 그늘과 같나니 여러 중생을 위하여 편안히 쉬게 하기 때문이며, 큰 나무와 같나니 중생들이 돌아가 능히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세계의 제도하는 이, 귀의하게 하는 이, 의지하게 하는 이, 두려움 없음을 주는 이가 되기 때문이며, 또한 세계의 스승이 되나니 여러 가지 기예(技藝)를 모두 통달한 때문이며, 중생의 이익이 되나니 지금 세상과 뒷세상의 열반의 즐거움을 능히 주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에게는 온갖 중생이 마땅히 모두 예경하여야 하느니라.사리불아, 만일 여러 중생들이 보살을 위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게 하고 즐거움의 인연을 구하여 무거운 짐 만드는 것을 알 것 같으면, 내가 알기로는 중생들은 모두 정수리 위에 이거나 혹은 어깨에 메어, 처음 발심에서부터 부처를 이루기까지 이 중간의 온갖 세계의 여러 천상 인간은 갖은 즐길거리로 공급하고, 또한 언제나 정수리 위에 이고 다니어 땅에 있게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또 이 보살이 도량에 나아갈 때에는 자기의 훌륭한 옷으로 하늘옷과 묘한 뭇 연꽃으로써 높은 자리를 펴되 위로 유정천(有頂天)까지 이르게 하고, 하늘의 보배 옷으로 난간과 일산을 만들어 바람과 햇볕을 가리어 주어야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거든 여러 가지 꽃ㆍ향ㆍ당기ㆍ번기ㆍ풍악으로 또는 자기 몸으로 공양하고 모셔야 하느니라. 여러 중생들은 이와 같이 존경하고 공양하여도 보살의 은혜는 오히려 갚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에게 새어 버림이 없고 청정하고 묘한 위없는 도의 즐거움을 주어서 큰 장엄을 발하게 하느니라.사리불아, 세계의 욕락으로써 여기에 비교하면 백분, 천분, 백천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며, 더구나 비유에 이르러서는 능히 미칠 바가 못 되느니라. 왜냐하면 중생들이 보살에게 받들어 올린 즐길 거리는 모두 세계의 새는 것[有漏], 허망한 것, 무상(無常)한 것, 변하고 달라지는 것이지만 보살이 중생에게 베푸는 즐거움은 모두 세간에 뛰어나 새는 일이 없고[無漏], 진실하고, 뜨거움이 없고, 괴로움이 없고, 한량없고 한계가 없어 마침내는 언제나 즐거운 것[常樂]이니라. 이런 까닭에 사리불아, 꼭 알아 두라. 중생들은 온갖 즐길 거리로써 보살에게 공급하더라도 오히려 능히 갚을 수가 없느니라.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잠만 자는 이를 위해서는 그를 깨워 주며, 방일(放逸)하는 이를 위하여는 부지런히 정진케 하며, 미치고 혹한 이에게 있어서는 늘 바른 생각을 닦게 하며, 눈멀고 어두운 이에게는 늘 밝은 태양이 되며, 병들어 야윈 이에게는 큰 의원과 약이 되며, 삿된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그를 위해 바른 길을 보여 주며, 착한 법을 일으키지 못한 중생에게는 착한 법을 능히 일으키게 하는 이가 되며, 선한 법을 늘리지 못한 중생에게는 선한 법을 늘려 주는 이가 되느니라.
사리불아, 요점만 들어 말하자면 나머지 사람 가운데는 중생을 위하여 능히 귀의하게 하는 이나 구원하는 이, 필경의 도자(道者)가 능히 될 수 없고 다만 여러 부처님께서 계실 뿐이니라. 여러 부처님의 법, 여래의 법, 자연의 법은 다른 나머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갖 것이 모두 보살의 도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라.”
29. 역순품(逆順品)
그때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 보살도는 미묘하고 매우 깊어서 스스로 장엄하고 깨끗하며 또한 중생도 깨끗하게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도리천(忉利天) 위에 있는 파리질다구비라(波利質多拘毘羅)나무 꽃이 피면 스스로 단정하고 장엄하여지며, 아울러 도리의 여러 하늘을 또한 장엄하게 꾸미는 것과 같나이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법을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스스로 장엄 청정하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들의 돌아갈 바가 되나이다. 성문승을 이루면 유희(遊戱)ㆍ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ㆍ배사(背捨)를 모두 얻어서 스스로 즐기나이다. 또한 저 나무에 꽃이 피면 도리의 여러 하늘 사람들이 즐기는 것과 같나이다.부처님이시여, 지혜 있는 사람치고 누가 이 수레를 타지 않겠나이까. 다만 저희들은 본래 게을러서 남의 말만 따라 믿고, 들은 법에 안락한 마음을 내어 즐거움을 얻었다고 말하나이다. 이제는 스스로 힘이 없으므로 능히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도 가운데 머무르게 한다는 것을 이에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후로 법을 설하게 되면 이 보살승을 먼저 꼭 설하고 나서 후에 여러 성문의 법을 말하겠나이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하여서 혹시나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까 함이옵니다. 이른바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위없는 마음을 발하게 하여 정각에 빨리 이르게 함이옵니다.”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좋고 좋다. 그대는 이제 이와 같은 마음을 능히 발하여 큰 법을 설하여 보살을 교화하고자 하는구나. 왜냐하면 오는 세상에 이 대승의 법을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여기어 이와 같은 여러 경전을 사람들이 믿어 받들지 않으리라.
사리불아, 저 때 세상에서 혹 어느 선남자나 선여인이 선한 법을 구하려 하면 마땅히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여 뜻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여 대중 가운데 처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저 때의 회중은 도를 행하는 이가 아니니라. 내 성문 대중은 도를 행하는 이로서 보살을 가볍게 보거나 대승을 헐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매우 깊은 경법을 어기고 거역하랴. 혹 어기고 거역함을 내면 이 행자의 업이 아닌 까닭이니라. 행자의 업이 아니므로 이것은 범부의 업이며 지혜 있는 이의 업이 아니다.사리불아, 이런 까닭에 마땅히 배워서 지혜 있는 이의 업을 일으키고 범부의 행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어떤 비구가 나를 스승으로 삼으면 반드시 이 같이 행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장차 오는 세상 가운데서 불도를 구하는 이는 깊이 믿고 정진하여 한마음으로 부끄러워하며 선한 법을 기쁘게 구하여야 하느니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허는 바가 되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
‘이 게으른 이는 방편의 힘이 없어 현재의 세상에서 사문의 과보[沙門果]를 얻을 수 없다. 오욕을 받아 국왕이 되겠다. 현재 법문을 행하면 보살이라고 스스로 말하여 남의 공양과 칭찬을 받으리라. 이와 같은 대승의 경법은 부처님께서 이것을 이름 붙여 행자라고 설하지 않으신 것이다.’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이 적은 인연으로 나를 훼방하는 것을 보아라. 나는 이 사람을 참다운 행을 하는 이라고 하지만, 저는 아니라 하리라. 여래가 가장 훌륭한 행자요, 훌륭함을 얻은 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에 행자가 아니고, 아는 것을 얻은 이가 아니라고 하리라.
사리불아, 때에 백의(白衣)가 있어 저 사람의 제자가 되어 그의 말을 믿어 받았다 하자. 그는 여러 보살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와 같은 여러 경전을 읽고 외우고 믿어 익히는 것을 보면 원수나 도둑의 마음을 먹으리라.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을 보아라, 어찌 계를 가지랴. 내가 경 가운데서 말하였느니라. 만일 말뚝 나무가 사람의 모양과 같은 것을 보고 오히려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하물며 유식(有識)한 이가 이와 같은 악한 사람의 진뇌(瞋惱)에 대해서랴. 사리불아, 그대는 또 저 때 세상의 여러 가지 뒤바뀜을 보라. 법과 법 아닌 생각[法非法想]은 법 아닌 법의 생각[非法法想]이며, 선과 선 아닌 생각[善非善想]은 선 아닐 선의 생각[善不善想]이니라. 행하는 이 가운데서는 행 아닌 생각을 내고, 행하지 않는 이 가운데서는 행하는 생각을 내느니라.아는 것을 얻은 이에 있어서는 알지 못하는 생각을 내고, 아는 것을 얻지 못한 이는 아는 생각을 내느니라. 꼭 알아 두어라. 이 사람을 행하는 이라고도 이름하지 않고 아는 이라고도 이름하지 않느니라. 법도 모르고 선도 또한 모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대로 따라 순종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성내는 것에 가려 아끼고 탐내고 시기하고 교만함에 덮이었느니라. 자기 스스로 칭찬하여 높이고 자랑하면서 남은 헐어 내리며,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에 불타 여러 가지 악한 데에 들어가 선한 법[善法]을 여의었느니라.사리불아, 내가 이 사람의 허물을 두루 말하자면 죄업만 계속되고 더해져서 구제하고 낫게 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마땅히 여의기를 마치 악한 소를 피하듯 하여라.
사리불아, 여래는 부끄러워하는 이를 위해서는 스승이지만 부끄럼 없는 이에게는 아니며, 믿어 받는 이를 위하여는 스승이지만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아니며, 법을 순종하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법을 허무는 이에게는 아니며, 행해서 정진하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게으른 이에게는 아니며, 생각을 거둬 잡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생각이 어지러운 이에게는 아니며, 지혜 있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어리석은 이에게는 아니니라.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요, 나는 저의 스승이 아니니라. 그대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와 같은 불승(佛乘)은 여래의 바른 지혜로서 여래께서 오랜 옛적에 닦아 배우신 바이니라. 오래 닦아 배우고 나서 큰 지혜를 통달하여 위없는 보리를 이루시고, 곧 이 법으로써 보살을 위하여 설하시려는 생각을 하셨다. 만일 보살이 있으면, 이 법을 따라 배우게 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 익히게 하고 위없는 보리를 능히 얻게 하여 중생을 구제하여 나고 죽음을 벗어나 부처의 씨앗을 끊이지 않게 하리라.여래도 또한 이 법을 스스로 존경하시건만,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벼이 여기고 헐어 믿지 않아 몹시 선하지 못함을 하는 것이 가장 착하지 못한 것이니, 이런 까닭에 너희들은 마땅히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사람에겐 의지하지 말라. 마땅히 자기를 의지하고 남에겐 의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이 여래가 가르치신 법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인가. 마땅히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사리불아, 비구는 열반을 따라 여의고 순종하여 4념처(念處)를 닦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염처라 이르는가. 몸과 마음과 받는 데에서 버리지 않을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불아, 참되게 법을 보면 성(性)이 없느니라. 이 법 가운데서 바르게 생각하여 그르치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염처라 하느니라. 이것이 비구가 법에 의지하여 행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항상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라.사리불아, 능히 이와 같이 염처를 닦아 익히면 탐착을 모조리 끊으리니, 아라한(阿羅漢)이라 이름하고, 번뇌가 다한 이[漏盡者]라 이름하고, 번뇌가 없는 이라 이름하고, 세상의 복밭이라 이름하고, 자재한 이라 하며, 물들고 더러운 것이 없는 이라 이름하고, 지혜 있는 이가 되었다고 하며, 저 언덕에 이른 이라 이름하고, 도사(導師)와 바라문이 되었다고 이름하느니라.사리불아, 아라한은 온갖 악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어서 함이 있음[有爲]을 즐기지 않고 여러 가지 업을 멸해 없애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아라한으로서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왜냐하면 세 가지 구하는 것을 버린 때문이며, 아홉 가지 맺음[九結]을 변전(變轉)시킨 때문이니라. 온갖 법에 있어서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뛰어나 목마르고 사랑함이 없으며, 열(熱)이 없고 고뇌가 없어서 마음이 깨끗하기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을 아라한이라 이름하느니라.사리불아, 누진(漏盡)을 채웠다고 이름 붙이는 이는 온갖 법에서 누를 다하여 남김없이 마지막 다함에 이르러 여러 가지 번뇌가 없는 이니라. 아라한의 마음은 본래부터 언제나 공하여 때나 깨끗한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물들고 더러움이 없는 이란 6진(塵) 가운데서 좋거나 나쁘거나 헐거나 칭찬하거나 간에 마음에 다름이 없고 희론을 끊었기 때문이니라.
세상의 복밭이란 이는 여러 가지 열과 고뇌를 끊어서 제일 청정한 법의 보시를 능히 주기 때문이니라.자재라고 이름하는 이는 온갖 법을 보는데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며, 공한 법 가운데 저 언덕에 이르러서 허망한 논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자재 바라문이라고 이름함은 여러 악한 법을 막고 온갖 법을 떠나 물들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도사(導師)라 함은 능히 사람을 위하여 나고 죽음 없음을 설명하여 스승의 처소로 인도하기 때문이니라.
지혜 있는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사람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업(業)ㆍ연(緣)ㆍ과보를 모두 허망하게 분별하는 까닭에 일어나는 것을 능히 알아, 그 가운데서 해탈을 얻기 때문에 지혜 있는 이라 이름하느니라.저 언덕에 이르는 이란 뭇 마군과 온갖 번뇌를 능히 깨뜨리고 온갖 여러 가지 법의 저 언덕에 능히 이르러서, 벌써 갯바닥[游氾]에서 벗어나 육지에 편안히 머무르는 까닭에 이름하여 저 언덕에 이른 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여러 복덕을 따라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을 설명하셨다. 여러 아라한을 큰 복밭이라 하니, 더럽고 나쁜 것이 없으며, 싹이나 그루터기 및 여러 기와ㆍ조약돌도 또한 없느니라.사리불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사람이 훼방하면 생각을 내지는 않지만, 이 사람은 나를 꾸짖는구나 하고, 사람이 칭찬하면 생각을 내지는 않지만, 이 사람이 나를 칭찬하는구나 하나니, 분별하는 생각 없고 의심하는 일 없이 6근(根)을 잘 거둬 잡아 필정지(必定地)에 머무르고 법에 의하여 행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능히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느니라.이런 까닭에 사리불아, 이 같이 행하는 이는 끝내 여러 부처님의 보리를 어기거나 거역하지 않고 또한 행하지 않는 이의 업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하면 범행(梵行)을 닦는 이에게서 꾸짖음 당하는 일도 없고, 또한 여러 부처님의 보리를 깊이 옹호하여 오래도록 머무르게 할 수 있느니라.
사리불아, 아라한은 여러 법 가운데서 마음에 의심하는 바 없고, 지은 바는 스스로 판단하여 바른 도[正道] 가운데 머물러 있느니라.”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아라한은 불법에는 머무르지 않지만 마침내는 어기거나 거역하지 않나이까. 왜냐하면 만일 어기고 거역하면 범부가 하는 짓이요, 나한의 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법을 어기고 거역하는 것은 범부가 하는 짓이요, 지혜 있는 이의 업은 아니니라. 여래는 다만 장차 오는 세상만을 위하심이니라. 나이 지긋한 비구가 있어서 아는 것이 많아 마음에 잠깐 머무름을 얻었다. 대중을 떠나 혼자 살면서 여색을 보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에 자기가 잘났다[貢高]는 생각을 내었다.그때에 뭇 사람들이 믿는 이가 많아서 그를 아라한이라고 존경하고 공양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또한 명리(名利)를 탐내어 공양과 시봉함을 받으면서, ‘내게 아라한의 법이 있어 번뇌[結使]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분별없는 법은 알지 못하고 분별을 기쁘게 내었다. 번뇌가 조금 쉰 것으로써 도를 얻었다고 문득 말하였다.만일 사람 사는 데에 들어가게 되면 의법(儀法)을 가지는 체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스스로 즐겨 놓고 대중 처소에 있으면 또한 다르니라. 이 사람은 많은 제자의 무리를 즐겨 기르며 아는 사람이 많다. 국왕과 대신에게서 공양과 시봉함을 크게 받으며,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여 공경한다. 여러 가지 번뇌가 꽉 찼으나 자기는 번뇌가 없다고 말한다. 이같이 깊은 경전의 공상응(空相應) 법을 얻어 들으면, 그의 착한 제자들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어 뜻을 알려 하면서 구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법을 닦아 행하지만 이 어리석은 사람은 믿어 받기를 즐겨하지 않고 어기고 거역함을 품어, 이런 말을 지어낸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큰 스승의 가르치심이 아니다. 법도 아니요, 선(善)도 아니다.’이 사람은 법에서 법 아닌 생각을 내며, 법 아닌 가운데서 법의 생각을 내고, 선 아닌 법 가운데서 선의 생각을 내며, 선한 법 가운데서 선 아닌 생각을 내느니라.
사리불아, 이 여러 어리석은 사람들은 얻은 바 법에 따라 스스로 칭찬하고 얻지 못한 법은 헐고 뜯고 가볍게 보고 천하에 여기며, 스스로 자기는 크고 높다고 하면서 남은 헐고 얕잡아 보느니라.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다만 지계(持戒)만이 있어서 한 곳에 생각을 잡아 두지만, 차츰 악한 마음을 조복하여 널리 듣고 읽고 외우고, 제자를 많이 길러서 사람에게서 떠받드는 바 되어 칭찬하고 예경함을 받으면 마음에 오만하고 아만스럽고 상만(上慢)한 생각이 들어, 이와 같은 여러 깊고 묘한 경을 들으면 중한 업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이 어리석은 사람은 그에게 죄가 있어서, 오만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더욱 더하게 하여 이 경전을 어기고 거역한 일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중한 죄를 일으킨 뒤로는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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