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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758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3권

by Kay/케이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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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3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3권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다시 선남자여, 모든 번뇌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떨쳐버리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탐욕의 불이 타오르고 진심(瞋心)의 불이 타오르며 우치(愚癡)의 불이 타오르거나 다른 번뇌의 불이 타오르고, 혹은 다른 모든 침해하는 불이 타오를 때, 만약 활활 타오르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탐욕에 대치되는 법을 일으키고, 탐욕이 일어나는 인연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탐욕에 대한 대치란 곧 맑고 깨끗하지 않다는 관찰이 탐욕의 대치이니라. 맑고 깨끗하지 않다는 관찰이란 자기 몸 안에서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 즉 털이나 손톱ㆍ이ㆍ침ㆍ눈물ㆍ콧물ㆍ가래ㆍ때ㆍ땀ㆍ대변ㆍ소변, 피부나 피ㆍ살ㆍ뼈ㆍ고름과 뇌ㆍ막ㆍ힘줄ㆍ맥ㆍ비장ㆍ신장ㆍ심장ㆍ폐장ㆍ간장 쓸개, 창자와 위장ㆍ뱃속 등 이런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관찰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마땅히 이러한 관찰을 일으키고 이러한 생각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세간의 저 모든 어리석은 자와 분명히 깨닫지 못한 자와 옳지 못한 업을 짓는 자들도 오히려 이 같은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보고는 탐심을 일으키지 않거늘 하물며 슬기로운 자이겠는가. ’이것이 곧 보살이 많은 깨끗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여 탐욕에 대치하는 법이니라.
이른바 탐욕이 일어나는 인연을 멀리하는 것은 모든 욕심에 물들어 엉기는 그 인연, 즉 여인의 단아하고 엄연하며 묘한 얼굴을 보고서 사랑스럽다는 마음을 일으켜 잡아당기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여인을 보고 관찰하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꿈의 경계는 진실이 없거늘 어떻게 슬기로운 자로서 이 꿈같은 경계 속에 탐심을 일으킬까 보냐’고 함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탐욕의 일어나는 인연을 멀리하는 법이니라.
또 이른바 보살이 진심에 대한 대치의 법을 일으키고 저 진심의 일어나는 인연을 멀리하는 것이란
보살이 모든 중생들에게 인자한 마음을 많이 일으킴으로써 인자한 마음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 미워하고 성내는 중생들의 마음을 다 거둬 다스리고, 저 진심이 일어나는 인연을 다 멀리할 수도 있으니, 이것이 곧 보살이 그 진심에 대한 대치의 법이고 저 신심이 일어나는 인연을 멀리 떨치는 것이니라. 이러한 관찰을 일으킬 때, 곧 우치의 법을 떨치고 우치를 떨침으로 말미암아 저 모든 하고 싶은 일과 모든 수용(受用)의 침해하는 불에 타버리지 않을 것이니라. 이러한 것을 일컬어 그 모든 번뇌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떨어내는 계행이라 하느니라.
다음 깊고 견고하지 못한 뜻을 가지는 것을 떨치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비록 홀로 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더라도 그 마음 가지기를, ‘나는 난잡한 소행을 하지 않아 고요히 머물러 있고, 나는 여래의 법률을 행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여러 사문과 바라문들은 모두 난잡한 소행을 하며 너무 시끄럽고 여래의 법률을 모조리 파괴하는구나’고 하지 않느니라. 만약 이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보살이 그 깊고 경고하지 못한 뜻을 가지는 것을 떨치는 계행이니라.
다음 보살이 옳은 법을 거둬 가지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비구는 마땅히 복 닦는 이를 존경하고, 계율 지키는 이를 존경하며, 지혜 닦는 이를 존경해야 하리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복 닦는 이를 존경하는 그 복이 바로 현재 사랑스러운 정광(精光)과 즐거운 뜻을 받는 과보이기 때문이고, 이렇게 믿는 자라야 모든 옳지 못한 업을 멀리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모든 옳은 법을 거둬 가지는 계행이니라.
다음 죄를 겁내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혹시 가는 티끌 같은 죄가 있더라도 이것을 보고는 다 겁을 내어 그 하는 일에 수순하지 않고, 아무리 작은 죄일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서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비구는
마치 사람이 적은 독(毒)에 중독되어도 그 목숨이 곧 끝나고, 많은 독에 중독되어도 그 목숨이 곧 끝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떤 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죄가 적든 많든 간에 다 나쁜 곳[惡趣]에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느니라. 만약 이렇게 생각할 때 보살이 그 죄에 대해 바로 겁을 낸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이 그 죄를 겁내는 계행이니라.
다음 취(取)하지 않아야 할 것에 겁내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혹시 저 신심을 두루 갖춘 사문이나 바라문, 또는 그 밖의 사람들이 보살을 믿기 때문에 금ㆍ은ㆍ마니ㆍ진주ㆍ산호ㆍ유리ㆍ소라ㆍ조개 등 값진 재보와 그 나머지 수용(受用)하는 도구를 위탁할 경우, 비록 간단한 것일지라도 보살이 탐착하는 마음을 내어 취하지 않으며, 또 탑이나 절에서 사용하는 물건과 대중 스님의 물건을 설사 어떤 사람이 맡아 가지기를 권하더라도 보살이 그러한 것을 취해 자기의 자양(資養)을 삼으려고 하지 않으니,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보살이 차라리 그 몸의 살을 베어 먹을지라도 끝내 남이 주지 않고 허락하지 않은 것은 마시고 먹거나, 그 밖의 물건을 취하려고 하지 않노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취하지 않아야 할 것에 겁내는 것이니라.
다음 견고한 뜻을 갖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혹시 마왕과 마군의 무리와 그 밖의 하늘들이 때로는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때로는 다른 인연으로 와서 마사(魔事)를 일으켜 호리고 괴롭히고 파괴하려 하더라도, 그럴 때 보살로서는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실수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견고한 뜻을 갖는 계행이니라.
다음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는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계행을 지킬 때 생각하기를, ‘내가 계행을 지키는 것은 하늘의 과보나 하늘의 그 나머지 과보를 구하기 때문이고, 국왕의 과보나 국왕의 그 나머지 과보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는 계행이니라.
다음 3륜(輪)이 맑고 깨끗한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 몸의 업이 맑고 깨끗하고, 입의 업이 맑고 깨끗하고, 뜻의 업이 맑고 깨끗한 것이라. 몸이 세 가지 옳지 못한 업을 아주 떨치는 것이니, 첫째 살생하고, 둘째 남의 것을 훔치며, 셋째 사염(邪染:사악한 일에 물듦)하는 것으로, 이러한 것을 일컬어 몸의 세 가지 좋지 못한 업이라 하느니라.
입의 업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은 입이 네 가지 옳지 못한 업을 아주 떨치는 것이니, 첫째 허망한 말을 하고, 둘째 이간질하는 말을 하며, 셋째 나쁜 말을 하고, 넷째 꾸미는 말을 하는 것으로, 이러한 것을 일컬어 입의 네 가지 깨끗하지 못한 업이라 하느니라. 뜻의 업이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뜻이 세 가지 옳지 못한 업을 아주 떨치는 것이니, 첫째 탐하는 욕심을 내고, 둘째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며, 셋째 사악한 소견을 갖는 것으로, 이러한 것을 뜻의 세 가지 좋지 못한 업이라 하노라.
모든 좋지 못한 업을 아주 떨침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곧 3륜의 맑고 깨끗함을 얻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의 3륜이 맑고 깨끗한 계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계행을 두루 갖출 수 있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인욕을 두루 갖출 수 있으리니, 그 열 가지가 무엇인가. 첫째 괴로움을 편히 받아들이는 인욕이고, 둘째 바깥소문을 참는 인욕이며, 셋째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욕이고, 넷째 부처님이 허가하시는 인욕이며, 다섯째 정해진 방향이 없는 인욕이고, 여섯째 차별함이 없는 인욕이며, 일곱째 어떤 일 때문이 아닌 인욕이고, 여덟째 원수의 침해를 견뎌내는 인욕이며, 아홉째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인욕이고, 열째 원력으로써 구하고 지키는 인욕이니라.
선남자여, 괴로움을 편히 받아들이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혹시 자신의 근심되고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수시로 일어나더라도 보살은 이 괴로움을 편히 받아들여 참고 진심(瞋心)을 내지 않으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괴로움을 편히 받아들이는 인욕이니라.
다음 바깥소문을 참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직접 다른 사람의 나쁜 말 내는 것을 듣거나 여기저기에서
그 부모와 스승, 친구에 대해 비방하는 말과 불ㆍ법ㆍ승에 대한 나쁜 말 하는 것을 전해 듣더라도 보살이 듣고 나서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다 편히 받아들여 참으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바깥소문을 참는 인욕이니라.
다음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가령 여래께서 말씀하신 가장 극진하고 매우 깊은 경전 가운데 어떤 법이 윤회의 종자를 끊을 수 있고 모든 얽매임을 벗어날 수 있으며 상속(相續)을 무너뜨릴 수 있어서, 이것이 바로 일체 법의 고요한 것이고 또 일체 법의 온갖 성질이 열반인 것임을 듣더라도, 보살은 이러한 법을 듣고 나서 놀라거나 겁내지 않고 생각하기를, ‘만약에 이 법을 환하게 알지 못하거나 이 법을 얻지 못한다면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응당 이러한 깊고 깊은 법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고 닦아 익히고 살펴보며, 또 수승한 깨달음을 내어야 하리라’고 하느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욕이니라.
다음 부처님이 허가하시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설사 성내고 미워하고 해치는 마음을 내고 나서라도 곧 스스로 사찰(伺察:엿보고 관찰함)하기를, ‘이 성내고 해치는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나 어디로 사라지며, 무엇 때문에 생겨나서는 또 무엇 때문에 머무는가’고 하느니, 이와 같이 관찰할 때 그 성내고 해치는 법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두 가지 법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거나 나는 대로 곧 사라지는 그 인(因)과 연(緣)을 얻을 수 없나니, 이 때문에 보살이 그 가운데 편히 참아 받아서 다시 내는 것이 없고 부처님도 이것을 허가하시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부처님이 허가하시는 인욕이니라.
다음 정해진 방향이 없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낮에는 인욕할 수 있어도 밤에는 인욕할 수 없고, 밤에는 인욕할 수 있어도 낮에는 인욕할 수 없다거나 자기 나라에서는 인욕할 수 있어도 남의 나라에서는 인욕할 수 없고, 남의 나라에서는 인욕할 수 있어도 자기 나라에서는 인욕할 수 없다거나, 친한 이에게는 인욕할 수 있어도 친하지 않는 이에게는
인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그 일체 나라에 일체 처소에 일체 시기에 일체 종류에 다 인욕할 수 있느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의 정해진 방향이 없는 인욕이니라.
다음 차별이 없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자기의 부모와 스승, 친구에만 인욕할 수 있고 그 밖의 다른 사람에는 인욕할 수 없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전타라(栴陀羅)의 권속들이 와서 침로하고 괴롭히더라도 다 참을 수 있기 때문이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의 차별이 없는 인욕이니라.
다음 무슨 일 때문이 아닌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인욕의 행을 일으키되 무슨 재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두려움을 느껴서가 아니며, 자양(資養)을 위해서가 아니고 부끄러움을 숨기거나 덮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언제나 인욕하는 마음을 수행하기 때문이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무슨 일 때문이 아닌 인욕이니라.
다음 원수의 침해를 견뎌내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에게 혹시 아무런 까닭 없는 자가 와서 포악하게 행동할 때, 보살이 그것으로 인하여 곧 인욕하지 못할 경우가 있는지라.
그러므로 혹시 원수가 칼과 몽둥이를 잡고 주먹을 뽐내고 성낸 마음으로 와서 두들기거나 억지로 이기기 위해 마구 욕설을 퍼부으면서 모욕하더라도, 보살로선 이러한 원수가 와서 두들기고 모욕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을 굳게 하여 깊이 스스로를 굽혀 참으면서 생각하기를, ‘이들 원수는 다 내 자신의 업 탓이다. 업이 성숙해짐으로부터 서로가 부닥쳐 괴롭히는 것일 뿐 진실로 부모나 권속과 친구들이 조작한 것이 아니고, 다 내 자신이 조작한 업이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바깥의 땅 경계가 물 경계와 불 경계와 바람 경계와 성숙된 것도 아니고, 안으로 네 가지 원소[四大]가 성숙된 것도 아니로다’고 하는지라. 보살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침해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 마음을 평등하게 죄다 참아 받을 수 있으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원수의 침해를 견뎌내는 인욕이니라.
다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설령 왕의 지위를 얻거나 대신이 되어 그 부귀가 자유롭고 위엄과 덕망이 아주 높다 할지라도 저 중생으로서 많은 고뇌에 허덕이는 자가 있어, 그러한 중생이 임금의 처소로 달려와 분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헐뜯고 꾸짖고 온갖 혼란을 일으킬 경우, 국왕으로선 그럴 때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고 자신의 존귀함을 빌미로 깔보지도 않으면서 곧 생각하기를, ‘이 중생들은 내가 교화해야하니 만큼 나는 마땅히 그들을 위해 구호를 일으키며, 이 때문에 나는 또 이제 왕의 위엄과 세력을 믿지 않고 다만 그들을 위해 호위(護衛)하는 자가 되어서 부서지지 않게 하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인연으로써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편안히 참고 받아들이느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인욕이니라.
다음 원력(願力)을 세워 구호하는 인욕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正等正覺)에게 사자의 부르짖음으로써 이 원을 내어 말하리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 나서 널리 일체 중생들을 구제해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함은 물론, 내가 일체 중생들을 부지런히 구제하되 그 상(相)을 갖지 않는 채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다스려서 사마타(奢摩他)1)에 머물게 하렵니다≻고 하리라’ 한다.
보살이 그때 만약 성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인욕하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안질(眼疾)을 잘 치료해 환자들의 어둡고 가려진 눈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안질 의사가 생각하기를, ‘나는 모든 안질 환자의 어둡고 가려진 것을 널리 제거하려 하노라’ 하고서, 의사가 홀연 자기의 눈을 잃어버린 것과 같음이라.

선남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의사로선 사실 안질을 치료할 수 없으리니,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의 눈으로써 일체 세간 중생들의 그 어리석은 어두움을 치료하되 만약 보살이 스스로 저 어리석은 어두움에 덮인다면 어찌 일체 중생들의 그 어리석은 어두움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이 때문에 보살은 어떠한 손실과 번뇌에도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원력을 세워 구호하는 인욕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인욕을 두루 갖출 수 있을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정진을 두루 갖출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갑옷을 입는 정진이고, 둘째 이길 이가 없는 정진이며, 셋째 두 가지 극단[二邊]을 여의는 정진이고, 넷째 이롭게 하고 안락케 하는 정진이며, 다섯째 수행을 더하는 정진이고, 여섯째 끊임없이 계속하는 정진이며, 일곱째 맑고 깨끗한 정진이고, 여덟째 함께하지 않는[不共] 정진이며, 아홉째 다른 가르침[敎]에 따르지 않는 정진이고, 열째 훌륭한 척하는 마음이 없는 정진이니라.
선남자여, 갑옷을 입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큰 정진을 일으켜서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해 열반하지 못한 자에겐 열반하게 하고, 득도(得度)하지 못한 자에겐 득도하게 하며, 해탈하지 못한 자에겐 해탈하게 하고, 안온하지 못한 자에겐 안온하게 하며, 정각(正覺)을 이룩하지 못한 자에겐 정각을 이룩하게 하되, 보살이 이러한 정진을 행할 때 어떤 마군이 와서 보살의 이 뛰어난 행을 파괴하기 위해 호리고 괴롭히면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이 정진을 중지할지어다.
왜냐하면 나도 일찍이 이러한 정진을 내어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해 열반하지 못한 자에게 열반하게 하고, 득도하지 못한 자에게 득도하게 하며, 해탈하지 못한 자에게 해탈하게 하고, 안온하지 못한 자에게 안온하게 하며, 정각을 이룩하지 못한 자에게 정각을 이룩하게 하려했지만 이러한 것은 다 진실이 아닌 허망한 법이었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논쟁하는 말이었다. 선남자여, 나는 일찍이 이러한 정진을 내는 사람으로서 한 중생에게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는 것을 못 보았고, 다만 무수한 중생들을 성문ㆍ연각의 열반에 빠지게 한 줄을 아노라.
선남자여, 이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기 마련이니,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대가 내는 정진은 한갓 번뇌를 더하고 그 공력을 소비하는 것이오’라고 하는 것이다. 마군이 이와 같이 말할 경우, 보살은 곧 스스로 생각하되, ‘이 악마가 기회를 노리고 와서 나를 호리고자 하는 구나’ 하고는 보살이 이 사실을 앎으로써 곧 마군에게 이렇게 말하느니, ‘그대는 이제 나를 괴롭히지 말고 세간을 걱정하지도 말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세간의 일체 사람들은 자기 업의 종자가 자라남을 따르기에 결국은 자기가 지은 그 업으로 돌아가노라.
이제 그대도 자기 업의 종자가 자라나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그 업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그대는 이제 빨리 본래의 길을 따라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갈 뿐 다시 나를 호리지 말라. 나를 호리는 것은 곧 그대가 기나긴 밤에 모든 중생을 괴롭히고 협박하여 풍성하고 이롭지 않은 일만을 저지르는 것이네’라고, 이렇게 말할 때 저 악마는 굴복하고 물러나 곧 그곳에 숨어서 나타나지 못하리라. 보살 역시 이 여러 악마 무리들과 마천(魔天)들이 와서 호리고 어지럽히더라도,
그때 보살의 마음은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겁약하지도 않으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갑옷을 입는 정진이니라.
다음 이길 이가 없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 모든 상(相)에 따라 정진을 일으키되 정진을 일으키는 그때와 같이하는 것을 최승(最勝)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최승이야말로 오래도록 도행을 닦은 보살이라 할지라도 이 보살의 정진하는 뛰어난 행에 비교한다면, 산수(算數)로서나 가장 적은 수로써 헤아릴 수 없는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성문ㆍ연각 따위들이 어찌 미칠 수 있으랴. 왜냐하면 보살이 한마음으로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따라 모든 뛰어남을 갖추는 그 힘으로써 곧 일체 불법을 널리 포섭하여 모든 악법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라.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이길 이가 없는 정진이니라.
다음 두 가지 극단을 떠나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정진을 일으키되 너무 급증하지도 않고 너무 침체하지도 않으니, 왜냐하면 급증할 경우엔 그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침체할 경우엔 곧 흔들리게 되므로, 이 두 가지를 여의어야만 비로소 보살의 정진을 뛰어나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두 가지 극단을 여의는 정진이니라.
다음 이롭고 안락케 하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이 정진을 일으키되 ‘바라건대 내 몸은 부처님 몸과 더불어 동등하고, 바라건대 나는 부처님의 그 볼 수 없는 정수리 모습과 부처님의 원만하신 광명과 두루 갖추신 상호와 누구도 이길 이가 없는 그 그지없는 지혜와 부처님의 큰 위덕과 부처님의 뛰어나신 자유를 얻으리라’고 하여 보살이 이러한 것을 위해 정진을 일으키나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이롭고 안락케 하는 정진이니라.
다음 수행을 더하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이 수행을 더하는 정진은 마치 사람이 마니(摩尼)2) 보배와 혹은 진금 따위를 갈고 닦고 다루어 모든 티와 때를 다 제거함으로써 그 보배로 하여금 맑고 깨끗한 광명과 정결한 빛깔을 나타내게 하고, 또 그때 가서 바야흐로 마니와 진금이 특이하게 환한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보살도 그와 같이 모든 정진을 하는 동안에 수행을 더하여 갈고 닦음으로써 그 더러운 때가 제거되고 잘못된 허물을 털어내느니라.
정진에 있어서의 더러운 때란 이른바 게으름이 곧 정진의 때이고, 침체가 곧 정진의 때이며, 음식을 조절할 줄 모르는 것이 곧 정진의 때이고, 그릇되게 고집을 피우는 것이 곧 정진의 때이며, 바른 법에 귀의하지 않는 것이 곧 정진의 때이고, 깊고도 굳은 뜻을 갖지 않는 것이 곧 정진의 때이며, 모든 정진 가운데 이 같은 더러운 때가 있는 것이 또한 잘못된 허물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만약 이러한 것을 털어낸다면, 곧 결백함과 맑고 깨끗함을 얻어 제 성질이 명랑해질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수행을 더하는 정진이니라.
다음 끊임없이 계속하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모든 위의를 갖추는 도에 있어서 정진을 일으키되 정진을 일으킬 때마다 몸과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하느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끊임없이 계속하는 정진이니라.
다음 맑고 깨끗한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저 끊임없이 계속하는 정진을 일으켜 진행하는 동안에 모든 옳지 못한 법과 보리의 도법에 장애되는 것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항상 제거하고, 그 반면에 모든 좋은 법인 이른바 열반에 수순하는 법과 바른 도에 수순하는 행과 보리 및 보리의 법에 나아가는 이 모든 좋은 법을 다 넓히고 키우고 다시 늘어내어서 한 찰나 사이에 지극히 적은 옳지 못한 업일지라도 일으키지 않거늘, 하물며 거칠고 무거운 모든 과실(過失)이겠느냐.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맑고 깨끗한 정진이니라.
다음 함께하지 않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가령 시방에 두루 있는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세계에 큰 아비(阿鼻)지옥으로부터 큰 불 덩어리가 나와 이러한 세계에 가득 차서 이것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이 세계의 밖에 있는
어떤 중생이 지극한 고뇌를 받되 주재하는 이가 없고 구호 받을 데도 없고 귀의할 곳이 없다면, 내가 차라리 그 고뇌를 참아 받고 이러한 세계를 밟으면서라도 불덩어리를 넘어 저 중생의 처소에 이르러 구호해 주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조그마한 고뇌를 어찌 차마 받지 못하랴’고 하는지라. 보살이 이와 같은 정진을 내는 것은 일체 성문ㆍ연각과 사악한 외도의 무리들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함께하지 않는 정진이니라.
다음 다른 가르침[敎]에 따르지 않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은 성문의 사람들처럼 마음을 내기를, ‘범부의 지위에서 부처님의 보리를 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나의 정진은 매우 미약하고 게으르고 용렬하거늘, 내가 만약 보리를 구하려면 가령 이마 위에 불을 켜서 백천 구지(俱胝)3)의 겁을 지나도록 이렇게 부지런히 수행해도 이루지 못하리니, 이 때문에 나는 그 고통을 차마 받을 수 없고 그러한 무거운 짐을 질 수도 없노라’고 하지 않으며, 그 반면 보살이 마음을 내기를, ‘모든 과거세 부처님으로서 이미 정각을 이룩하신 이나, 현재세(現在世) 모든 부처님으로서 현재 정각을 이룩하시는 이나, 미래세 모든 부처님으로서 장차 정각을 이룩하실 이들이 다 불ㆍ세존으로서 보리를 구하기 때문에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라.
저 여래들이 이 모든 뛰어난 행을 닦음이 여래로서 자기만을 위하여 정각을 구해 이룩하는 것이 아니니 만큼, 나 또한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여 모든 뛰어난 행을 이룩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모든 선근(善根)을 중생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며, 중생들을 위해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 만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구해 이룩하려는 것도 널리 일체 중생들을 이롭고 안락케 하기 위해서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반을 취증(取證)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들을 위해선 내가 차라리 큰 지옥 속에 항상 놓여 있더라도
이것이 곧 최승이고 최상이리라’고 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다른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정진이니라.
다음 훌륭한 척하는 마음이 없는 정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정진을 일으킬 때, 그 정진 속에 집착하는 맛을 내지 않아 남을 비방하지도 않고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으면서 보살이 곧 생각하기를, ‘만약에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행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깨우치거나 채찍질하려 한다면 어찌 슬기로운 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그 훌륭한 척하는 마음이 없는 정진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정진을 두루 갖출 수 있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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