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룡왕경(佛說海龍王經) 2권
불설해룡왕경 제2권
서진 월지국 축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5. 총지품(總持品)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법의 다함없는 가르침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가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분별이 다함없음과 지혜[慧]가 다함없음과 밝은 지혜[智]가 다함없음과 총지의 말 재주가 다함없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거두기 어려움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그 성품을 거두기 어려움과 도의 마음을 거두기 어려움과 법에 들어가기를 거두기 어려움과 중생의 행에 들어가기를 거두기 어려움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굳건하고 요긴함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원하는 바의 굳건함과 받들어 행함이 굳건함과 인(忍)을 세움이 굳건함과 지은 바의 인연을 제도함이 굳건한 것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말하는 바가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지극한 정성을 강설함과 모든 연기(緣起)를 강설함과 중생의 행을 강설함과 모든 승(乘)은 본래 지혜가 없음을 강설하는 것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광명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법계(法界)를 비춤과 지혜를 비춤과 혜안(慧眼)을 비춤과 마음대로 말하는 법을 비춤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최상의 밝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정진이 최상이 됨과 계율 지키기를 부지런히 하여 최상이 됨과 공덕 쌓기를 구하여 최상이 됨과 지혜 모으기를 구하여 최상이 됨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무궁(無窮)함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바라밀을 구하여 끝이 없음과 생사를 싫증내지 않아서
끝이 없음과 사람을 열어 교화하여 제도함이 끝이 없음과 모든 신통한 지혜를 구하여 끝이 없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싫증내지 않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부처님 앞에서 경을 듣되 싫증내지 않음과 다른 사람을 위해 경을 말하되 싫증내지 않음과 모든 덕의 근본을 구하되 싫증내지 않음과 여래를 공양하되 싫증내지 않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능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일체의 번뇌도 능히 이길 수 없음과 일체의 모든 마군도 능히 이기지 못함과 모든 외도도 능히 이기지 못함과 일체의 원적(怨敵)도 능히 이기지 못함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익히지[習] 않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성문승과 연각승을 익히지 않음과 일체의 공양의 이로움을 익히지 않음과 일체의 모든 집착하여 구하는 바를 익히지 않음과 일체의 모든 범부 행(行)을 익히지 않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매달리지[得] 않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날[生] 곳에 매달리지 않음과 계를 싫어하는 이를 열어 교화하는 데 매달리지 않음과 경을 설하여 유위(有爲)에 있으면서 대승(大乘)에 오르려고 하는 데 매달리지 않음과 물건을 빌어 구하는 데 매달리지 않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힘[力]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인욕의 힘으로 일체의 지은 바 모든 악(惡)을 견디는 것과 지혜의 힘으로 일체 중생들의 의혹을 제거하는 것과 신통의 힘으로 일체 중생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는 것과 훌륭한 방편의 힘으로 일체의 사람들을 위하여 마음대로 법을 말하여 주는 것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훌륭한 장(藏)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스스로를 침해하고 속여서 삼보(三寶)를 끊지 않음이 바로 훌륭한 장(藏)이며, 한량없는 법에 들어감이 바로 훌륭한 장이며,
일체의 마음을 얻어 그 뜻한 바를 따름이 바로 훌륭한 장이며, 지혜가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음이 바로 훌륭한 장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끝이 없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널리 들음이 끝이 없음과 지혜가 끝이 없음과 바라는 바가 끝이 없음과 중생을 따라 법을 말함이 끝이 없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보살은 다시 네 가지 스스로 침해함에 이르지 않음이 있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법을 말하여 스스로 침해하지 않음과 지극한 정성을 말하여 스스로 침해하지 않음과 법을 따라 행하여 스스로 침해하지 않음과 도의 극치(極致)에 이르러 스스로 침해하지 않음이 바로 네 가지니라.
다시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어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나쁜 길[惡趣]을 두려워하지 않음과 대중들이 모임을 두려워하지 않음과 의심을 결단함을 두려워하지 않음과 불도(佛道)를 잃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바로 네 가지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은 공덕이 한량없음을 설하여 끝없는 지혜에 들어가 보살의 행을 모으며, 지혜의 광명으로 말미암아 보살이 구하는 바와 보살의 재보(財寶)와 보살이 들어간 바의 법장을 장엄하느니라.
총지문에 들어가 언교(言敎)를 분별하며, 몸과 입과 뜻을 엄정(嚴淨)히 하여 모든 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자재함을 얻어 바른 도를 보호하며, 중생에 들어가 지혜를 펼쳐 교화하여 인도하며, 바른 법의 힘으로 정진하여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며, 도량을 엄정히 하여 모든 부처님 법에 이르니, 이를 일러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라 하느니라.
그 문자 및 명호의 수(數)와 법의 모든 수도 바른 법에 노닐어 모두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에 돌아오며, 보살은 이 모든 문자에 들되[入] 분별하는 바가 없으니, 모든 법이 청정하여 본래 청정함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체의 법을 좋아하여 법을 좋아함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구경(究竟)의 모든 법과 뜻한 바의 모든 법이 또한 침해하거나 속임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눈[眼]의 법이 모든 법의 밝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이름을 빌려 법을 모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이름으로써 정진을 행함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고르고 결정하여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을 설명하되 빛[光曜]을 침해함이 없으며 모든 법을 불태우되 일어남이 없는 법을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一切法)을 믿되 좋아하는 법에 대해서도 또한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을 설명하되 모든 언교에 대해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본래 없다는 것은 갈래[趣]가 없는 법에 대해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자세함은 3세(世)의 법과 평등하여 또한 침해함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언제나 머물러 있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법에 대해 또한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은 자비하여 본래 좋아하는 바를 따르니 법을 나타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은 다 평등하여 설함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자취를 구하여 모든 법을 나타내 보여서 평등함에 이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이른 바를 나타내 보여서 깊은 도의 문(門)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지극한 힘으로 모든 최상의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어리석고 어두워서 지혜의 밝음을 나타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을 생각하여 모든 법을 나타내 보여서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을 다 지녀서 모든 법을 나타내 보임은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적연(寂然)하여 청정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허공과 같으므로 법의 넓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밝음이 없으므로 어리석음의 근본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다 머물러 있어서 그 서 있는 곳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지혜에 들어가 어리석은 법을 여읨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들어가는 것은 모든 법을 분별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니라.
모든 법이 있음[有]을 여의었으므로 소유법(所有法)을 여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모든 법의 흠과 더러움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항상 기억하여 전생의 일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은 인연이 있으므로 모든 법을 나타내 보여서 침해함이 있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뜻[志]에 들어가서 모든 어지러움을 고요하게 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이 매우 장중(莊重)하여 움직일 법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이 머무는 곳에서 뭇 법계처(法界處)를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니라.
모든 법이 도사(導師)여서 자세하게 살핀 법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이 과(果)를 이루어서 뜻[志]에 생각하는 바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은 오직 쌓임[陰]이므로 5음(陰)과 모든 법의 걱정 근심을 덜어 버림을 나타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은 나고 죽으므로 모든 법에 번뇌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 때문이며, 모든 법은 텅 비어 고요해서 모든 법이 의지한 바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견고한 것 같아서 모든 법이 뭇 견고함을 끊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적멸(寂滅)하여 모든 법이 인연을 끊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이를 이름하여 문자를 인연해 모인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 일체의 문자가 일으킨 바를 분별함을 얻으니, 비유하자면 문자를 다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법이 말한 바도 다할 수 없음이 또한 이와 같으며, 문자는 몸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도 않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이 그곳을 알 수 없어서 몸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마음에도 머물러 있지 않으며, 문자는 의지하는 바가 없으므로 아무리 번뇌를 풀어 말할지라도 또한 청정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은 이미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얻었으므로 비록 번뇌를 말하더라도 번뇌에 집착하지 않아 결국에는 본래 청정하니, 비유하자면 문자는 몸에 붙어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풀어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그 일으키는 바에 있어서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며, 문자는 말할 것이 있을 때는 지극히 상소[奏]하는 바가 없고 말할 것이 없을 때는 안[內]에 있지 않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설령 말할 때라도 이르는 바가 없고 말하지 않을 때라도 안에 쌓여있지 않으며, 문자는 빛이 없고 소견이 없어도
밖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모든 색도 이와 같아서 빛이 없고 소견이 없어도 마음의 인연을 따라 물러나 전전함이 있느니라.
문자는 허공과 같아서 자재하고 고요하며 모두 황홀하여 글자를 만듦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공허(空虛)하고 적막하여 조작함이 없으며, 문자는 물듦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을 내지는 않지만 또한 문자로 인하여 소리로 가르침이 생기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탐ㆍ진ㆍ치 등을 내지는 않지만 생각으로 말미암아 음(婬)ㆍ노(怒)ㆍ치(癡) 등을 일으키며, 문자는 모든 탐욕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과보를 얻음을 말하지만 문자는 얻음도 없고 또한 깨달음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그 상대를 따라 과보를 얻음을 말하지만 본래의 법에서 따져보면 과보도 없고 깨달음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모든 법이 문자를 인연하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모든 행도 이와 같아서 소유한 모든 법이 모두 부처님 도를 말미암느니라.”
6. 총지신품(總持身品)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미 다함없는 법장에 머물러 문자로써 부처님 도를 구하니, 문자를 묶어 가지는 것은 힘이요, 문자로 돌아가는 것은 몸이요, 모양을 소멸하여 다하는 것은 색(色)이요, 법문에 드는 것은 정수리[頂]요, 관찰하는 것은 이마요, 혜안(慧眼)은 눈이요, 천이(天耳)는 귀요, 이름을 설명하는 것은 코요, 어지러운 뜻을 제어하는 것은 두 눈썹사이의 궐정(闕廷)이요, 일체의 마음을 거둬들이는 것은 낯[面]이요,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알아 깨우치는 것은 혀뿌리[舌根]요, 그 마음을 조정(調定)하는 것은 이[齒]요, 사자분신(獅子奮迅) 삼매에 드는 것은 구레나룻[髭]이요, 공법(空法)을 갈무리한 것은 입술이요, 일체 법을 관찰하는 것은 목구멍이요, 중생을 권유하여 기쁘게 하는 것은 어깨니라.
문자로 이른 바를 단정히 하는 것은 지라[脾]요,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은 배[腹]요, 깊은 법문에 드는 것은 배꼽이요, 좌우(左右)의 길에 드는 것은 손바닥이요, 모든 법을 합쳐 모으는 것은 팔뚝이요, 열 가지 선(善)한 법구(法句)로 잘 보호하는 것은
손가락이요, 청정한 법을 얻는 것은 손톱이요, 공허(空虛)한 생각을 이루는 것은 갈비요, 차례대로 법을 강의하는 것은 척추요, 법을 말하되 때를 어기지 않아 무위법을 제도하는 것은 꽁무니요, 적정한 관법을 구족하는 것은 종지뼈요, 진리의 법에 나아가는 것은 무릎이요, 일체를 깨우쳐 아는 것은 발꿈치요, 마음과 뜻이 적정한 것은 발등[足跗]이요, 시방에 이르러 노니는 것은 발바닥이요, 차례대로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발걸음[步]이니라.
문자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옷[衣]이요, 법의 가발[法鬘]로 장엄한 것은 치장[傳飾]이요, 갖가지 법락을 얻은 것은 침구[臥具]요, 갖가지 법을 설하는 것은 베개요, 성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 것은 도향(塗香)이요, 행하는 바가 자재하여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은 잡향(雜香)이요, 깊은 계율에 드는 것은 설향(說香)이요, 모든 법에 자재한 것은 권속(眷屬)이요, 깨끗한 행을 찬탄하는 것은 친우(親友)요, 편안함을 얻는 것은 많은 지식(知識)이요, 모든 속박을 끊고 뭇 사람들을 열어 교화하는 것은 친한 사람[親暱]들이요, 모든 일을 환히 깨우치는 것은 가솔(家率)이요, 그 마음이 청정한 것은 어머니요, 일체의 공교로운 방편으로 의지한 바 없이 지혜를 믿는 것은 아버지이니라.
문자로 모든 신통한 지혜를 얻는 것은 심복(心腹)하는 사람이요, 보시바라밀은 음식이요, 계바라밀은 편안함이요, 인욕바라밀은 장엄(莊嚴)이요, 정진바라밀은 선(善)을 지음을 다 마치는 것이요, 선바라밀은 배불리 먹음이요, 지혜바라밀은 때를 따라 순응(順應)하는 것이요, 훌륭한 방편 바라밀은 양쪽을 화합하는 이치요, 도품(道品)의 강령과 조목은 족당(族黨)이니, 강설(講說)함이 지극히 정성스러워 일찍이 침해하거나 속이지 않았으며, 일체 세간의 호존(豪尊)으로 자신을 말미암아 법에 대해 자자(自恣)하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며 색상(色像)이 없는 몸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총지문에서 법을 좋아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마치 궁중에 의젓이 앉아있는 국왕과도 같고,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면서 거룩한 위신력을 지닌 제석천과도 같으며,
존귀하고 호방하며 자재로운 범천과도 같으며, 제어하기 어려운 아수라와도 같으며, 수승한 공덕이 그지없는 바다와 같으며, 보배로 이루어진 큰 산을 하늘이 오락(娛樂)하는 것과도 같으며, 다만 아들 하나를 두어 귀여워함이 끝이 없는 부모와도 같으며, 마치 보름달이 뭇 별들 가운데 홀로 밝아 머리 굽히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세존께서 하늘과 인간을 위하여 큰 광명을 떨치는 것과 같고, 해가 막 솟아 광명이 부드럽고 온화한 것과 같으며, 공작이 숲속에 있으면서 오묘한 음성을 내는 것과도 같고, 사자가 바위굴 속에 있으면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으며, 용이 마음과 뜻이 조화(調和)를 이루어 때맞춰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전륜왕이 훌륭한 법으로 나라를 교화하는 것과 같으며, 여러 용들이 춤추면서 우뢰와 번개를 일으키는 것과 같고, 용왕이 이미 자재함을 얻어 큰 법의 비를 내리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제석천이 일체의 모든 외도들을 어루만져 교화하는 것과 같고, 용맹한 장수가 강한 적을 꺾어 굴복시키는 것과 같으며,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여러 마군을 항복하기를 마치 물로 불을 끄고 바람으로 풀을 휩쓸 듯 하며, 땅과 같은 마음으로 영리한 이를 열어 교화하고 중생을 따라 교화하기를 마치 불로 풀을 태우듯 하며, 괴롭고 즐거움을 모두 참기를 마치 유모(乳母)가 장자(長者)의 아들을 기르듯 하며, 온갖 병을 치료하고 마음가짐이 굳건하여 여러 사람의 원을 구족케 하기를 마치 여의주왕(如意珠王)이 모든 보배를 다 가지듯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보살이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에 머무른다면 부처님의 도량에 들었다고 할 수 있으니, 마치 큰 바다가 수없이 많은 보배들을 받아 함유하고 있듯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도 이와 같아서 모든 법보의 꾸러미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향 상자를 한량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가지게 하는 것과 같으며, 보살로서 이미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에 머무른 이는 진실하고 미묘한 말로써 일체를 열어 교화하여 각기 제자리를 얻게 하느니라.
이 총지는 일체의 음성에 들어가니, 이 국토에서 ‘도심(道心)’이라 이르는 것을 저 무진(無盡)세계의
일보개(一寶蓋)여래 불국토에서는 ‘안전(目前)’이라 하고, 여기서 ‘통혜(通慧)’라고 하는 것을 저 초득도(超得度)세계의 도룡(道龍)여래 불국토에서는 ‘보달(普達)’이라 하며, 여기서 ‘보시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적정(寂定)세계의 길상(吉祥)여래 불국토에서는 ‘정기(精氣)’라고 하며, 여기서 ‘계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무우(無憂)세계의 이우(離憂)여래 불국토에서는 ‘다안(多安)’이라 하느니라. 여기서 ‘인욕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무구(無垢)세계의 이구(離垢)여래 불국토에서는 ‘무진구(無盡句)’라 하고, 여기서 ‘정진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보명(普明)세계의 무구광(無垢光)여래 불국토에서는 ‘상도(上度)’라 하며, 여기서 ‘선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도어(導御)세계의 견요(堅要)여래 불국토에서는 ‘적행(寂行)’이라 하고, 여기서 ‘지혜바라밀’이라 이르는 것을 저 음우(陰雨)세계의 우왕(雨王)여래 불국토에서는 ‘청정(淸淨)’이라 하며, 여기서 ‘훌륭한 권도(權道)의 방편’이라 이르는 것을 저 존조(尊調)세계의 이구비(離垢臂)여래 불국토에서는 ‘습속(習俗)의 편의(便宜)를 따른다’고 하느니라.
여기서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라 이르는 것을 저 풍성(豊盛) 세계의 길상의(吉祥義)여래 불국토에서는 ‘불쌍하고 어여삐 여겨 인(仁)으로 거두어서 저와 내가 둘 다 적멸하다’고 하고, 여기서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라 이르는 것을 저 무열(無悅)세계의 수적(首寂)여래 불국토에서는 ‘본원(本原)은 6근(根)을 말미암고 6근이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여기서 ‘4의지(意止)’라 이르는 것을 다른 세계에서는 ‘무지(無止)’라 하고, 여기서 ‘4의단(意斷)’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상승(上勝)’이라 하느니라.
여기서 ‘신족(神足)’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초보(超步)’라 하고, 여기서 ‘5근(根)’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열원(悅原)’이라 하며, 여기서 ‘5력(力)’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견강(堅强)’이라 하고, 여기서 ‘각의(覺意)’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무명(無冥)’이라 하며, 여기서 ‘8유(由)’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소탁(所度)’이라 하고, 여기서 ‘분별(分別)’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눈으로 본다[目見]’고 하며, 여기서 ‘호위하여 우러른다[護仰]’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따른다[隨順]’고 하고, 여기서 ‘법으로 보시한다[法施]’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선함으로 거둔다[善攝]’고 하느니라.
여기서 ‘고요히 관한다[寂觀]’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머물러 살핀다[定察]’고 하며, 여기서 ‘해탈문’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어리석음을 여읜다’고 하고, 여기서 ‘공덕(功德)’이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엄정한 변재[嚴辯’]라고 하며, 여기서 ‘지혜’라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방편을 안다’고 하고, 여기서 ‘집을 버린다[棄家]’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수행(修行)’이라 하며, 여기서 ‘계율을 구족한다[具戒]’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범함이 없다[無犯]’고 하고, 여기서 ‘편안하여 일삼음이 없다[無爲]’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적멸로 건너간다[寂滅度]’고 하며, 여기서 ‘부처님의 한량없음을 찬탄한다’고 이르는 것을 저곳에서는 ‘부처님의 눈에서 광명을 놓았다[佛眼放光]’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불국토의 음성과 말의 뜻[言訓]과 갖가지 종류의 교법을 헤아리건대, 보살이 만약 다함없는 법장에 이른다면 일체 모든 불국토에서 말한 음성과 문자로 가르친 것을 모두 알 것이요, 부처님도 만일 한 겁(劫)에서 겨우 한 겁을 지나 유위(有爲)의 언설과 장구(章句)의 가르침과 시방에서 나온 바를 찬탄한다면 모든 불국토의 음성의 뜻을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말씀하실 때 6만의 보살들이 모두 총지를 얻었고, 8천의 보살들은 생멸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사람들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다.
7. 총지문품(總持門品)
이때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로써 모든 어둠의 길을 여의고 신통한 지혜에 나아가느니라.
옛날 이루 헤일 수 없는 무앙수(無央數) 겁(劫)의 불가사의한 그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은 범수천왕(梵首天王)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 불세존이었며, 세계는 집이덕(集異德)이라 하였고, 겁의 이름은 정제(凈除)였느니라.
그때 집이덕세계에는 오곡(五穀)이 저절로 풍성하여 편안하고 쾌락이 끝이 없었으며 제천(諸天)과 사람들이 번성하였느니라. 나의 불국토는 백억 쯤 되는 네 성(城)을 합하여
한 국토가 되었지만 저 국토에서는 하나의 큰 네 성이 될 뿐이요, 이렇게 비교한다면 백억의 수미산이 되니, 이 범수천왕여래 집이덕세계의 광대하고 그지없음이 이와 같았느니라.
그 세계는 마치 금강(金剛) 광명과 마니보(摩尼寶)와 같아서 언제나 저절로 널리 밝아 있으며, 보석을 얽어 짜서 두른 일산을 덮었고, 당번(幢幡)에는 비단을 달았으며, 백천 가지 기악(伎樂)은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허공에서 울려 그 기악 소리가 널리 불국토에 들리되, 그 기악 소리는 음(婬)ㆍ노(怒)ㆍ치(癡) 삼독(三毒)의 소리를 내지 않았고 다만 적정하고 맑은 법락(法樂)의 기뻐하는 소리만 연주하였으므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곧 마음이 적정하고 편안해져서 번뇌의 박해를 받지 않게 되었느니라.
그 땅은 평평하였고 마치 보드라운 옷과 같았으며, 악도(惡道)와 잡된 소리가 없으므로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청정하고 미묘함을 알아서 대승에 뜻을 두었고 성문과 연각승을 구하는 이가 적었으며, 마음으로 의식주에 대해 생각하면 얻고자 하는 것이 모두 생각대로 저절로 나왔으므로 하늘과 사람이 한가지로 평등하여 곤궁하고 빈한한 이가 없었으며, 의복과 음식이 마치 도솔천의 그것과 같아서 그 국토에 있는 것도 평등하여 차별이 없었느니라.
그 여래의 수명은 67만 2천 살이요, 그 국토의 사람들의 수명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간에 일찍 죽는 이가 없었으며, 그 국토의 보살들은 72나술(那術:나유타)이었고, 성문은 매우 적었느니라.
그때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무진복(無盡福)이었으며, 열여섯 개의 사천하를 다스렸느니라. 그 무진복왕에게는 84나술이나 되는 부인(夫人)이 있었는데 하늘의 옥녀(玉女)와 같았으며, 네 명의 태후(太后)가 있었으니 첫째는 이름이 이구(離垢)요, 둘째는 무구광(無垢光)이라 하였으며, 셋째는 청정(淸淨)이라 하였고, 넷째는 정구자(淨句子)라 하였느니라. 또한
8만 4천의 궁녀가 있어 매우 용맹스러웠고, 신상(身相)에 여덟 가지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모두 대승에 뜻을 두었느니라.
그때 무진복왕은 큰 성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그 성의 이름은 구락(具樂)이었고, 그 성의 동쪽과 서쪽의 길이는 2천440리요 남쪽과 북쪽도 또한 그러하였느니라.
범수천왕여래께서 그 나라에 출현하시자 무진복왕은 정사(精舍)를 짓고 많은 나무를 심었으며, 이름을 상향광원(上香光園)이라 하여 부처님께서 머무르실 곳을 마련하였느니라.
성의 중앙에는 왕궁을 짓되 칠보를 모아 만들었고, 성의 가운데는 8만 4천의 거리[街巷]와 8만 4천의 난간[欄楯]이 있었는데 각각의 거리마다 8만 4천의 집이 있었으며, 그 큰 성의 벽(壁)은 일곱 겹이었는데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가로수와 일곱 겹의 교로장(交露帳)이 있었으며, 성을 둘러 갖가지 유원지[遊觀園]가 있었으며, 그 해자[塹]는 일곱 겹이었는데 여덟 가지 맛의 물이 가득하였고, 청련(靑連)ㆍ홍련ㆍ황련ㆍ백련이 자라서 모두 아름다운 향기가 났으며, 원앙새와 오리들이 서로 따라 울기도 하였느니라.
그 성의 명물들이 이렇듯 한량없이 불가사의하였다.
왕이 부처님을 공양하여 편안히 여기실 바를 받들어 올리니 여러 가지가 구족되어 모자람이 없어서 백천 년 동안 칭하여도 한계를 지을 수 없었느니라.
왕은 그 중궁(中宮)과 자손과 친족 그리고 벗들[友黨]과 권속과 나라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상향광원 총림(叢林)으로 나아가 범수천왕여래를 뵈옵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다음 한쪽으로 물러나 머물렀느니라.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네 가지 일이 있어 큰 나라 왕이며 거룩한 임금이 되고도 오히려 자재를 얻음이 중생과 같지 않아서 선법(善法)을 늘리고 더합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독실한 신심을 세워 현성(賢聖)들을 자주 뵙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덕을 구하고 진리를 사모하며, 법으로 스스로 즐거워하여 항상 덧없고 괴롭고 텅 빈 몸이 아닌 법을 관찰하고 세간에 있는 바 유위(有爲)의 번뇌를 관찰하여 모두 여의며, 스스로 그 마음을 거두어
방탕함이 없고 5욕락(欲樂)에 부러워할 것 없음을 깨달으며, 전생에 지은 복덕을 헐지 않고 도의 마음을 폐하지 않아 묘한 지혜에 뜻하기를 힘쓰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일로 큰 나라의 거룩한 임금이 오히려 자재를 얻어 중생과 같지 않은 것입니다.’
무진복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보살은 몇 가지 법이 있어 자재함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고하셨느니라.
‘보살은 여덟 가지 법이 있어 자재함을 얻습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스스로 즐거워하여 일찍이 물러남이 있지 않았고 걸리는 것도 없었으며 아울러 성냄을 제거하여 침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거룩한 지혜를 통달하고 구족하여 도의 밝음에 거둬들이며 할 일을 이미 갖추어 지혜에 통달함을 얻으며, 신족(神足)을 진실히 믿어 모든 가진 것을 뽑아 버리고 밝은 지혜로 일체의 삿된 소견과 번뇌를 여의며, 4해행(解行)의 밝음을 얻어 부처님께서 세우신 법에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으며, 5력(力)을 구족하여 다함없는 복인 해인(海印)삼매를 얻고 능히 중생을 기쁘게 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두어 들여 총지를 이루며, 그 마음이 청정하여 들은 것을 잊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따라 법을 말하며, 일미(一味)인 이치를 깨달아 본제(本際)에 머무르며, ‘나’라는 것을 계교하지 않아 생멸이 없는 법인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덟 가지 일이니, 이로써 보살이 자재함을 얻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또한 총지가 있으니 이름이 보사(寶事)인데, 보살이 이 총지를 얻는다면 법에 자재할 것입니다.’
그때에 부처님은 왕을 위하여 보사총지의 지혜는 백천 년이 다하도록 널리 이치를 분별함을 말씀하였느니라.
‘왕이 나라의 일과 일체의 여러 인연을 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진하여 권속들과 더불어 도의 감화를 받아서 백천 년 동안 일찍이 애욕을 생각하지 않으며 성내는 마음도 없고 해치려는 생각도 두지 않으며, 처자와 국토와 권속을 돌아보지 않고 일체의 소유를 영원히 계교하지 않아서 오직 법의 즐거움만을 원하고 불도에 뜻을 세우며,
크게 자비롭고 청정하여 일체를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여 큰 자비를 행하며, 대덕(大德)의 갑옷을 입고 법을 받아 들여서 이 같은 비량(比量)으로 백천 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면, 이 보사총지의 지혜로 인하여 할 일을 다 마치고 7백만 겁을 지내면 생사의 고난을 초월하며, 10만 겁을 지내면 모든 죄와 재앙을 제거하여 백천 억의 부처님을 뵙고 덕의 근본을 따라 받으며, 항하(恒河)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겁을 지내면 제석천이나 범천이나 전윤성왕이 되어 공을 쌓고 덕을 쌓아 청정한 마음과 뜻으로 모든 법을 제어해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니, 백천의 부처님께 법을 받아 들어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왕과 모든 아들들은 죄다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고, 왕비와 채녀(婇女) 8만 4천은 도의 뜻을 널리 일으켜 보살의 도를 배웠으며, 8만 4천의 사람들은 법인을 얻었고, 90나술(那術)의 모든 하늘 사람들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으며, 36나술은 성문승을 배워 법안(法眼)이 청정함을 얻었고, 1만 6천의 비구는 번뇌[漏]가 다하고 뜻이 풀리었느니라.
무진복왕은 나라를 버리고 왕의 자리를 내놓았으며, 하늘이나 인간의 모든 즐거움을 사모하지 않고 오직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뜻을 두었으며, 신심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이 되었으며, 모든 아들들도 또한 모두 사문이 되었느니라.
그때 나라의 백성들이 왕이 나라를 버리는 것을 보고서 6만의 사람들이 모두 사문이 되었으며, 왕비와 채녀와 네 명의 대부인(大夫人)도 또한 사문이 되어, 불교의 청정하고 적정하한 편안함을 얻어 모든 덕의 근본을 심고 뭇 행을 구족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용왕이여, 그때의 무진복 전륜성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대 자신이고, 그때의 전륜성왕의 여러 아들들은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모든 보살 대사(大士)들이며, 그때 저 범수천왕여래가
무진복왕을 위하여 말씀하신 보사총지(寶事總持)가 바로 지금 내가 말한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여래가 집착함이 없는 지혜로 사람의 근본을 관찰하여 법을 말하는 것은 무앙수(無央數) 백천억 나술의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들었으며, 이것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니, 이제 이렇듯 뜻이 굳건하고 홀로 빼어나 걸림 없는 변재(辯才)와 미치기 어려운 뜻으로 지혜를 품었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의 이름과 그 말씀을 듣는다면, 모두 마땅히 집착함이 없는 변재를 얻을 것이니, 왜 그런가? 이 총지로 말미암기 때문이니라. 미래세에 이르러 번뇌를 여읨도 이 총지가 유포(流布)된 곳이며, 여래가 건립한 8만 4천의 법장도 이 총지문이 으뜸이며, 8만 4천의 행도 모두 이 총지로 귀착(歸着)되며, 8만 4천 삼매도 모두 이 총지를 따르며, 8만 4천의 총지도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를 근본으로 삼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4해행(解行)의 이치에 머무르거나 집착함이 없다면 큰 법우(法雨)를 내려서 모두 이 다함없는 법장에 와서 의지하리니,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에 들어가는 바른 법구(法句)는 차례대로 장(章)을 따라 모든 천룡신(天龍神)ㆍ향음신(香音神)ㆍ무선신(無善神)ㆍ봉황신(鳳凰神)ㆍ첨유신(甛柔神)들이 모두 함께 영위하여 보호하느니라.
즉, 연응의(緣應意)ㆍ수순의(隨順意)ㆍ흔락적(欣樂跡)ㆍ직의(直意)ㆍ월도(越度)ㆍ무진구(無盡句)ㆍ차제(次第)ㆍ요면(曜面)ㆍ광목(光目)ㆍ광영(光英)ㆍ지조(志造)ㆍ정의(淨意)ㆍ행보입(行步入)ㆍ용력(勇力)ㆍ제명(濟冥)
ㆍ소지(所持)ㆍ위상적문(爲上寂門)ㆍ입적(入寂)ㆍ멸진(滅盡)ㆍ이거(離居)ㆍ거선(居善)ㆍ수순(隨順)ㆍ이차(離次)ㆍ무소지(無所至)ㆍ소주(所住)ㆍ무소주(無所住)ㆍ지처(至處)ㆍ무지처(無至處)ㆍ요어(要御)ㆍ속혜(速慧)ㆍ지근(智根)ㆍ전본근(轉本根)ㆍ월광(月光)ㆍ일전염(日轉焰)ㆍ광선이구(光善離垢)ㆍ무구(無垢)ㆍ정제구(淨諸垢)ㆍ각소건립(覺所建立)ㆍ제천우(諸天祐)ㆍ호제매(護諸魅)ㆍ고승(告乘)ㆍ범지화(梵知化)ㆍ석자차(釋諮嗟)ㆍ사천호(四天護)ㆍ중성애(衆聖愛)ㆍ선인귀(仙人歸)ㆍ제성수행(諸姓修行)ㆍ해뢰옥박(解牢獄縛)ㆍ천인소섭(天人所攝)ㆍ사제진노(捨諸盡勞)ㆍ파괴중마(破壞衆魔)ㆍ항복외도(降伏外道)ㆍ섭욕명지(攝欲明智)ㆍ개화자대(開化自大)ㆍ불범사법(不犯師法)ㆍ불란중회(不亂衆會)ㆍ열가락법(悅可樂法)ㆍ호어법음(護於法音)ㆍ부단삼보(不斷三寶)ㆍ자민중생(慈愍衆生)ㆍ찬모덕의(讚慕德義)62가지 일이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법구(法句)는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만일 어떤 법사(法師)가 이 장구의 62가지 일을 받아서 소리 높여 읽고 외운다면 32가지의 두려워할 바가 없음[無所畏]을 얻느니라.
무엇이 32가지인가? 널리 들어 두려움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을 찬탄하여 처하는 곳마다 두려움이 없으며, 말에 흠결(欠缺)이 없어서 자재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점잖고 묵직함을 버려서 두려워할 바가 없으며, 소리를 따라 들어가 변재(辯才)에 두려움이 없으며, 걸릴 바가 없어서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도의 마음을 받들어 받아 그 뜻[志]에 두려움이 없으며,
뭇 사람들을 기뻐해서 걸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여우 같은 의심을 재빨리 결단하여 뜻[意]을 깨달아 두려움이 없느니라.
뭇 사람들을 관찰하되 빠뜨림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으며, 말과 행동이 서로 맞아 모자람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으며, 계율이 청정하여 마음과 얼굴에 두려움이 없으며, 인욕(忍辱)으로 청정하고 굳건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진리에 원을 세우고 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아 처하는 바에 두려움이 없으며,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 변재의 지혜에 두려움이 없으며, 모인 무리들을 능히 기쁘게 하여 지혜에 두려움이 없으며, 심묘한 법을 알아 항복하고 교화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희롱을 여읜 사자(獅子)와 같아 두려움이 없느니라.
모든 외도를 항복하여 받아들임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으며, 의식(衣食)이 없어도 기뻐하여 허물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으며, 뭇 원적(怨賊)들을 항복시켜 바른 소견에 머물러 허물이 없게 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지혜로운 이는 허물지 않고 이끌어 제어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뭇 경(經)들을 어지럽히지 않고 평등함을 말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때에 맞게 가르치되 아첨함이 없어 두려움이 없으며, 말과 행동이 서로 맞아 아만(我慢)을 여의어 두려움이 없으며, 일체의 사람들을 만나되 겸손하여 두려움이 없느니라.
다함없는 법구(法句)로 선(善)을 수행하여 질문에 답해주어 두려움이 없으며, 일체를 열어 교화하여 한량없는 법교(法敎)로 중생을 따라서 두려움이 없으며, 자기 몸이 청정하기 때문에 마군을 항복시켜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크게 자비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침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아서 크게 인자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중생의 지혜를 보호하여 두려움이 없으므로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듣고 기뻐하여 믿는다면, 곧 32가지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얻을 것이니, 만약 이 32가지 두려움이 없음을 끊지 않는다면, 점차로 여래의 네 가지 두려워할 바가 없음[四無所畏]과 부처님께서 소유하신 두려워할 바가 없음[無所畏]을 이루어, 모든 하늘과 사람들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내어 일체의 묻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들려줄지라도 아무도 능히 여래의 지혜를 다할 수도 없고 또한 감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끊지도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이 두려워할 바가 없음을 이루려고 한다면, 마땅히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배워야하느니라. 무엇이 이 총지에서 배우는 바의 행인가? 눈[眼]이 없는 행이며, 색(色)이 없는 행이며, 눈과 색의 앎[識]이 없는 행이며, 귀가 없는 행이며, 소리가 없는 행이며, 귀와 소리의 앎이 없는 행이며, 코가 없는 행이며, 냄새가 없는 행이며, 코와 냄새의 앎이 없는 행이며, 혀가 없는 행이며, 맛이 없는 행이며, 혀와 맛의 앎이 없는 행이며, 몸이 없는 행이며, 매끄러움이 없는 행이며, 몸과 매끄러움의 앎이 없는 행이며, 마음이 없는 행이며, 법이 없는 행이며, 마음과 법의 앎이 없는 행이며, 색이 없는 행이며, 색이 생겨남도 없는 행이며, 색이 소멸함도 없는 행이며, 색의 머무름도 없는 행이며, 아프다는 생각이 없는 행이며, 앎[識]의 행이며, 앎이 생겨남이 없는 행이며, 앎이 소멸함도 없는 행이며, 앎이 머무름도 없는 행이며, 일체가 없음[無]인 행이니, 이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또한 용왕이여, 그 행의 색(色)은 공하되 마음은 공하지 않은 색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아프다는 생각과 행(行)을 인식함[識]도 그 행의 식은 공하되 마음은 공하지 않는 식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또한 그 색의 행을 생각함이 없되 색의 행을 생각함이 없음도 기억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아프다는 생각과 행을 인식함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행을 인식함을 생각함이 없되 행을 인식함을 생각함이 없음도 기억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또한 그 색의 행을 끊지 않되 색의 행을 행함이 없고, 색이 생기는 행도 아니며, 색이 일어나는 행도 아니고, 색이 멸하는 행도 아니며, 색의 진리와 같은 행과 색의 본래 청정함과 같은 행이며, 또한 색의 진리와 같은 행과 색의 본래 청정함과 같은 행을 기억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아프다는 생각과 행을 인식함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인식의 행을 끊지 않되 인식의 행을 행함이 없으며, 인식이 생기는 행도 아니고, 인식이 일어나는 행도 아니며, 인식이 멸한 행도 아니며, 인식이 진리와 같은 행과 인식이 본래 청정함과 같은 행이며, 또한 인식이 진리와 같음과 본래 청정함과 같은 행을 기억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또한 법계의 행을 말미암되 법계의 행을 기억하지 않으며, 법계의 모든 들어감[入]이 본래 청정하고 공(空)한 행임을 생각하지 않고, 본래
청정하고 공함을 생각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만약 일체의 법이 연기(緣記)의 행임을 알고 연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모든 법의 행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행에도 의지하지 않음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모든 법은 본래 행함이 없되 모든 법이 본래 행함이 없음을 무너뜨리지도 않으며, 만약 모든 법의 본제(本際)의 행에 머무르면서 모든 법의 행에 머무르는 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또한 탐욕의 행을 알아 법계에서 탐욕의 행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진에(瞋恚)의 행을 알아 법계에서 진에의 행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우치(愚癡)한 행을 알아 법계에서 우치한 행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며, 그 똑같이 나누는 행이 똑같이 나누는 행이 아니어서 법계에서 파괴하는 바의 행도 있으니, 만약 8만 4천의 모든 수행한 바에서 법계에 들어가 약간의 행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총지에 응하는 행이니라.
만약 행(行)하거나 행과 합치된다면, 행하거나 행과 합치됨에 대하여 행할 바도 없고 또한 행하지 않음도 없으니, 왜 그런가? 그 행이 한량없으며, 또한 헤아릴 바가 없고, 또한 생각할 바도 없으니, 그러므로 그 행이 평등한 행이 되느니라. 평등한 행에 대하여 훼손할 것도 없고, 또한 일삼음이 있지 않으며, 또한 일삼음이 없지도 않으며, 또한 받지도 않고, 받지 않음도 없으며, 또한 의지할 곳도 없고 머무름도 없는 까닭에 평등한 행이라 하니, 보살이 이 같이 행한다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얻느니라.”
이에 세존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마음과 뜻이 청정하여
경법과 바라밀을 널리 깨닫고
뭇 사람들의 음성을 다 아나니
총지를 얻을 때는 이와 같다네.
모든 중생들이 마음으로 행한 바의
착하고 악한 생각과 그 중도를 관찰하여 알고
본래 성품이 일으키는 바를 분별하여
응하는 바에 따라 법을 말해 주며
인연의 보응(報應)을 다 알아서
항상하고 항상하지 않음을 보지 않게 해서
모두 버리고 변제정(邊際定)에 들어
총지를 분별하여 이로써 교화하며
문자의 방편 밝게 알고
무앙수(無央數)의 소리를 알며
미묘한 법의 이치 환히 깨달으니
총지를 얻은 이는 이와 같다네.
천안통을 얻어 더러움이 없고
천이통이 청정하여 또한 그러하며
한량없는 지혜로 중생들의 행을 알고
억천 겁의 오고 가는 일 다 기억하며
4신족(神足)을 얻음도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국토도 잠깐 사이에 이르며
무수억의 모든 도사(導師)들을 공양하여
강의하는 법문 들어 총지를 얻으며
수많은 백천억의 마군들이
능히 그 경계의 행(行)을 알 수 없고
청정한 사람은 번뇌가 없어서
수없는 백천의 경법(經法) 강의하며
마치 연꽃이 물들지 않듯이
세간법에 의지하지 않음도 이와 같고
항상 모든 유(有)와 무(無)를 벗어나
일체에 평등한 마음 허공과 같으며
수승한 색상(色相)과 용맹을 지녀서
뭇 사람들 우러러 보아 싫증냄이 없으며
나아가고 그침이 차분하여 모자람이 없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세간에 노닐며
제석과 범천과 호세(護世)들이
모두 공경하여 머리를 조아리되
그 마음 조금도 교만하지 않으니
총지를 얻을 때는 이와 같다네.
그 말이 유연(柔軟)하고 범음(梵音)과 같아
대중 위해 그 마음 즐겁게 하며
화평하고 유창한 말 아주 적절하여
교화할 수 있는 바를 저버리는 법이 없으며
대중 가운데 있어도 두려움이 없어
사자후의 묘한 소리 막힘이 없고
일체의 악한 사람들을 항복시키니
청정한 총지를 얻으면 이와 같다네.
아첨하는 사람은 조어(調御)하기 어려워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 큰 체하지만
저 거룩하고 밝은 설법 들으면
공고(貢高)함을 버리고 머리 조아리리.
본래 청정하고 고요한 법계에 들어가
이치에 통달하여 모든 법을 이해하니
그러므로 말한 바가 끝이 없어서
문자를 분별하고 경과 율을 알며
사람의 본성과 법계도 깨끗하고
중생도 또한 깨끗함을 깨우치되
본성도 없고 중생도 본래 없음을 알아
경법을 말하는 데 걸림이 없으며
다할 바와 다함없음을 알 수 없고
다함없는 일 능히 다 할 수 없으니
이 갈래의 적막(寂寞)함을 분명히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억만의 경(經)을 설하며
이 모든 문자에 몸이 머무르지 않고
또한 마음에도 뜻에도 머물러 있지 않아서
문자의 본래 성질 텅 비고 고요하여
마치 산속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으며
총지는 문자에도 집착하지 않고
소리도 말도 말하는 소리도 없으니
문자가 귀착하는 그것을 안다면
설령 법을 말한 데도 걸림이 없으며
뜻도 생각도 마음도 없으므로
설령 법을 말한 데도 기억할 바 없고
또한 법의 지혜를 이해해 앎으로
응하는 바를 따라 경을 강설하며
네 구(句)의 이치에 들어가 분별하여
의리(義理)를 환히 깨우치고 법을 분명히 알고
음성을 끝까지 통달하여 들어줄 바를 따르니
강설함에 집착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본원(本原)을 탐구하고 그 지혜를 계승하여
깊고 요긴한 몇 가지 법을 말하고
해탈한 지혜로써 순(順)과 역(逆)을 알아서
정법(頂法)과 바라밀에 나아가며
방편으로 모든 겁 많고 나약한 이들과
급하고 포악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하는 일을 환히 알아 말해주니
총지를 얻은 이는 이와 같다네.
몸과 입과 뜻이 모두 이미 적정하여
모든 지혜 분별하되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말한 바를 싫증냄이 없어 성냄을 제거하니
총지를 얻으면 용맹스러워지며
마음으로 총지를 붙잡아 다루어
뜻이 들어간 바의 법의 지혜에 머무르고
들은 이는 일찍이 잊어버리지 않으며
들은 것과 같이 따르길 경전과 같이 하니
총지란 이치와 법이 어지럽지 않아
법을 따져 행하되 들어가는 곳이 없어서
법과 평등한 까닭에 평등하다 하나니
평등에 응한다면 청정함을 따르리라.
8.분별명품(分別名品)
부처님께서 이 장구의 게송을 말씀하실 때, 해룡왕의 권속인 1만 삼천의 용(龍)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다.
다시 여쭈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옵소서.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또한 마땅히 이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에 이르러서 일체의 중생의 무리를 위하여 경법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때 현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전에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용들로 하여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셨는데, 사람은 도리어 능히 큰 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들 1만 삼천의 용은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모두 사문이 되어 가섭여래를 따라 한번 보살행을 듣고 동시에 기뻐하여 찬탄하기를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말씀하신 대승의 일은 불가사의 합니다’라고 하고는, 피붙이[族堂]나 친구[親友]와 함께 다니며 걸식[分衛]할 적에 이익을 탐하여 삼가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았느니라. 이런 까닭에 목숨을 마친 뒤 용의 무리에 떨어졌으나, 그때에 가섭 부처님으로부터 대승의 가르침을 듣고 가섭 부처님을 찬탄하였던 보응(報應)으로 말미암아 덕본(德本)의 인연으로 지금 나의 말을 듣고 대승을 찬탄하며 다함없는 법장의 총지문을 찬탄하여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느니라.
사리불이여, 이 지극한 마음의 기특함을 관찰하여 지금 내가 수기를 주니,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겁을 지내면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도품(道品)을 쌓는다면, 저절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혜상(慧上)ㆍ지상(智上)ㆍ법상(法上)ㆍ범상(梵上)이라 부르며, 이 네 가지 일로써 부처를 이루되 세계를 무구장(無垢莊)이라 부르고 겁을 대흔(大欣)이라 이름하리라.
모두 똑같은 겁 가운데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마땅히 현겁(賢劫)과 마찬가지로 천 분의 부처님이 나올 것이니라.”
9. 수결품(授決品)
이에 해룡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첫 겁부터 큰 바다에 머물러 있었으니, 구류진(拘留秦)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신 뒤에는 바다 속에 모든 용과 처자 권속들이 매우 적었는데, 지금 바다에는 용의 무리와 처자 권속들이 번성하고 많아서 설령 헤아리고 싶어도 이루 다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 때문이며, 무슨 변괴라도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불법에 임하여 집을 떠나 계행을 받들었으나 계성취(戒成就)를 구족하지 못하여 계율을 어기고 범하였지만 바른 소견을 버리지 않아서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무리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모두 용(龍) 가운데 태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구류진부처님 때 98억의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그 계율을 어겨서 모두 용 가운데 태어났으며,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부처님 때 80억의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계율을 훼손하고 마음을 함부로 하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 모두 용 가운데 태어났으며, 가섭부처님 때 64억의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계율을 범하였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 모두 용 가운데 태어났으며, 나의 세상에서는 990억의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약간 다투기도 하고 약간 수행도 하였지만 경법과 계율을 비방하였으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 모두 용 가운데 나는 것이니, 지금 태어나는 이도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그대가 있는 바다 가운데 모든 용과 처자 권속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내가 열반에 든 뒤에 악한 비구와 악한 우바새가 많이 있어서 계율을 어긴다면 마땅히 용 가운데 태어나며, 혹은 지옥에도 떨어질 것이니라.”
해룡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집을 버리고 도를 닦다가 계율을 범한 비구로서 용 가운데 떨어진 이는 무슨 특별히 다른 점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집을 버리고 행을 배우다가 지금 계율을 범한 비구로서 용 가운데 떨어진
이는 방편을 행함에 능히 청정하지 못하였으나 또한 지극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었으니, 지극한 마음의 힘으로 용 가운데서 목숨을 마치면 하늘이나 인간에 태어나서 마땅히 현겁 가운데 출현하시는 모든 부처님을 뵈올 것이요, 가서 부처님을 뵈었어도 해탈을 얻지 못한 이는 현겁에서 열반한 뒤 대승의 뜻을 버릴 것이니라.
용왕이여, 또한 불법의 광대함을 보고 집을 떠난 인연의 기특함으로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다른 종류[異類]에서 벗어날 것이니라.”
그때 용왕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위수(威首)였는데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전에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용이 여래를 가깝게 여기나 뵙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려우므로 비록 계행을 훼손하고 많은 죄를 지었지만 한번 착한 뜻을 일으켜 부처님 법을 마음에 두어 끝내 덕을 잃지 않는다면, 이 행을 인연하여 멸도(滅度)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키길 원하였지만 불세존을 뵙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려웠으니, 이제 보살행을 닦아 어기거나 이지러짐이 없게 하여 도량에 이르러 마음 가운데 덕(德)의 근본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대자(大慈)ㆍ대애(大哀)ㆍ대희(大喜)ㆍ대호(大護)가 생겨나는 곳에서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경법을 들으며 뭇 스님들을 공양하고 중생을 열어 교화하겠습니다.”
때에 세존께서 위수 용왕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의 물음이여! 이에 일체를 구제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일으켰구나. 지금 그대는 지극한 마음으로 끝이 없는 자비를 일으켜 도의 뜻을 일으켰으니, 그 덕의 근본을 인연하여 여래를 찬탄하기를 7일이나 7개월, 1년에 이른다면 그 공덕과 복을 이루 다할 수 없을 것이며, 심은 바의 선행(善行)도 이와 같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위수 용왕자가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바를 보시고, 즉시 기뻐서 미소 지으셨으니, 모든 부처님들의 웃는 법은, 수없는 빛이 빛마다 각기 다르며, 광명이 입으로부터 나와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를 비추고, 몸을 세 번 돌고는 다시 정수리[頂]로
들어간다.
이때 현자 아난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백 가지 복과 공덕으로 몸을 장엄하시고
몸에는 32상호(相好)를 구족하시어
청정하고 때[垢] 없음이 달빛과 같으시니
지금 웃으심은 무엇을 기뻐하신 것입니까.
깨끗하고 티끌 없어 3독(毒)을 여의고
백엽화(百葉華)1)처럼 수행에 게으름이 없으시어
하늘과 사람과 용과 귀신들도 받들어 공경하니
지금에 편안히 머물러 무엇을 인하여 미소 지으십니까.
훌륭하고 평등하여 이[齒]도 모두 깨끗하며
10력(力)의 위신 밝아 얼굴도 깨끗하시니
생사의 근원(根原)을 제거하시어
지금 세존 웃으심은 무엇을 느껴서 입니까.
마음은 허공 같아 티가 없으시고
뜻에는 친한 이와 원수를 평등하게 여기시어
땅과 같은 뜻을 지녀 미움과 사랑 없으시니
오직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무엇을 기뻐하여 웃으셨나이까.
강설하시는 음성 범천을 넘고
우뢰나 난조(鸞鳥)의 미묘한 소리 같으며
말씀이 유연(柔軟)하여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니
오직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인연을 찬탄합니다.
마음은 성스런 지혜를 집착한 바 없지만
3세(世) 사람들의 뜻과 행을 아시고
중생 근기 이해하여 희열(喜悅)을 얻으니
도사(導師)께서 지금 웃으심은 무엇을 느껴서 입니까.
이미 의왕(醫王)이 되시어
중생들의 병을 고치시고
구경(究竟)의 편안함을 주시니
세존께서 웃으심은 무엇을 인연해서 입니까.
덕을 호지(護持)하여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니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들으면
다 마음에 품고 기뻐하여 뛰면서
곧바로 모든 신통과 지혜에 뜻을 두리라.
부처님께서 현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위수 용왕자가 부처님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킴을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위수 용왕자는 8백여의 헤아려 알 수 없는 무앙수(無央數)의 겁을 지나면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혜견(慧見)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라 부를 것이며, 세계의 이름은 정주(淨住)이고, 겁의 이름은 명찰(明察)이니라. 이 용왕자는 보살도(菩薩道)를 지성으로 받들어 행하여 무앙수의 모든 여래를 뵙고 공양하여 받들어
섬기며, 항상 범행(梵行)을 닦아 한량없는 중생들을 열어 교화하고 제도하여 3승(乘)에 서게 하리라.
혜견여래의 정주세계는 풍성하고 편안하며 오곡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쾌락을 헤아리기 어려워 하늘과 사람에 가득하여 마치 염천(炎天)과 같이 옷 입고 먹으니, 그 부처님의 수명은 백만 살이요 현성(賢聖)과 스님들과 성문은 60억이요 보살은 120만억이니라.
혜견여래를 만난 이는 모두 자행(慈行)삼매를 얻으며, 혜견여래가 경법을 말할 때 성문승을 행하는 이가 만약 부처님을 처음 뵙는다면 도의 자취를 얻을 것이요, 다시 뵙는다면 왕래과(往來果)를 얻을 것이요, 세 번 뵙는다면 불환과(不還果)를 얻을 것이요, 네 번 뵙는다면 집착이 없음을 얻을 것이니라.
보살승에 뜻을 둔 이가 마침 혜견여래를 만난다면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을 것이요, 다시 뵙는다면 신통을 얻을 것이요, 세 번 뵙는다면 총지와 변재를 얻을 것이요, 네 번 뵙는다면 생멸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을 얻을 것이니라.
정주세계에서 계율을 훼손하지 않은 이는 뜻이 청정하고 삿됨이 없어 모두 바른 소견에 머무르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악취(惡趣)가 남아 있지 않아서 모두 하늘 위 청정한 불국토에 태어나느니라.”
때에 위수 용왕자는 부처님께서 수결(授決)2)하심을 듣고 기뻐 뛰면서 착한 마음을 내었고, 백천의 구슬과 영락(瓔珞)을 받들어 부처님 위에 흩어 뿌린 다음 열 손가락을 깍지 끼고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때[垢] 없는 달빛과 같으신 부처님[人尊]
위신력 한량없어 중생들이 받들며
그 힘 끝이 없어 세간을 총지하시니
부처님[無邊慧]께 머리 조아리길 원합니다.
거룩하신 자비는 한계 지을 수 없고
흠 없는 지혜는 의논(議論)할 수 없으며
계율이 광대하고 선정에 머무시니
허공 같으신 부처님께 머리 조아립니다.
한량없고 한계 없는 억만 겁에
끝까지[究竟] 수행하여 깨닫지 않음이 없으시고
이런 까닭에 뭇 중생들의 심성(心性)의 귀착지와
모든 근본(根本) 훤히 아시네.
누구나 한번 거룩하신 얼굴 뵙는다면
한마음으로 우러러 만족할 줄 모르고
번뇌에 미혹되지 않아서
애욕의 더러움 모두 다 없어지리라.
난조(鸞鳥)나 구이(拘夷) 등 모든 귀신과
범천의 소리도 또한 이와 같아서
시방에 울려 매우 미묘하지만
여래의 원음(圓音)은 그보다 뛰어나며
만약 해가 땅에 떨어지고
바닷물이 마르며 수미산이 무너지고
허공이 찢어지고 땅이 뒤집혀도
세존의 말씀은 끝내 다름없으시며
세존께서 지성으로 진리를 말씀하시어
나에게 부처[大聖慧]가 되리라고 기별하여 주시니
나는 여우 같은 의심 없이 번뇌[結網]를 없애고
부처의 자재함을 얻어 중우(衆祐)가 되리라.
시방에 한량없는 억만의 국토와
그 안에 가득한 보배를 도사께 공양할지라도
만일 어떤 이가 도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앞에서 심은 공덕이 이에 미치지 못하며
공덕이 으뜸이신 정각(正覺)을 공양할지라도
누가 만일 뜻을 일으켜 불도(佛道)를 높인다면
이것이 시방의 부처님께 은혜 갚는 것이며
이 도사의 명(命)을 끊지 않는 것이네.
용왕자가 이 게송을 말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니, 10천의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켜서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혜견여래께서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얻으실 때, 저희들도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정주세계에 태어나서 저 여래의 바른 법의 가르침을 받들고 또 공양하다가,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는 그 자리를 보충하여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얻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두 수기하시고 다 정주세계에 태어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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