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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379 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說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 17권

by Kay/케이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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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說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 17

 

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 제17권

시호 한역
이미령 번역

18. 공성품(空性品)
이때 존자 수보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드문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불퇴전보살마하살은 이내 능히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합니다. 또 세존께서는 능히 모든 보살마하살의 한량없고 가없는 불퇴전의 모습을 널리 잘 설하셨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왜냐하면 저 불퇴전보살마하살은 이미 가없는 지혜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 불퇴전보살마하살의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불퇴전의 모습은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고 깊으며 뛰어난 모습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깊고 깊은 모습이란 즉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수보리여, 바로 그러하다. 깊고 깊은 모습이란 곧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이다.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이란 바로 공(空)의 뜻이고 무상(無相)・무원(無願)・무생(無生)・무작(無作)・무성(無性)・무염(無染)・열반(涅槃)・적정(寂靜) 등의 뜻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깊고 깊은 모습이란 다만 공의 뜻과 나아가 열반적정 등의 뜻일 뿐, 모든 법의 뜻은 아닙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뜻 역시 깊고 깊은 모습이다. 왜냐하면 색이 깊고 깊으며 수・상・행・식이 깊고 깊기 때문이다. 무엇이 색이 깊고 깊은 것인가? 여여하게 깊고 깊기 때문에 색이 깊고 깊다. 무엇이 수・상・행・식의 깊고 깊음인가? 여여하게 깊고 깊기 때문에 수・상・행・식이 깊고 깊다. 수보리여, 만약 색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색의 깊고 깊음이다. 만약 수・상・행・식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수・상・행・식의 깊고 깊음이다.”수보리가 말하였다.
“드문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능히 미묘한 방편으로써 색을 가리고 열반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수・상・행・식을 가리고 열반을 나타내셨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에 대해서 반야바라밀다의 머묾과 같이 이와 같이 머물고, 반야바라밀다의 가르침과 같이 이와 같이 배우며, 반야바라밀다의 행과 같이 이와 같이 행한다고 하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능히 하루 중에 이와 같이 사유하고 이와 같이 관찰하며, 이와 같이 수행하고 익히며 이와 같이 상응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의 하루의 모든 공덕은 가히 생각할 수도 없고 일컫거나 헤아릴 수도 없다.수보리여, 비유하면 마치 세간의 욕심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애욕[欲覺] 또한 많다. 이 사람이 어느 때 고운 여인과 함께 만나기로 하였는데 이 여인이 다른 일이 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저 욕심 많은 사람은 마땅히 이때에 어떤 법과 상응하겠는가?”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오직 애욕의 삿된 생각에만 함께 상응하여 생각하기를, ‘내가 언제 마땅히 이 여인을 만나서 함께 즐기며 노닐 수 있을까?’라고 할 것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람이 하루 중에서 욕념을 일으키는 것은 많겠는가?”수보리가 아뢰었다.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 또한 이와 같다.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에 대하여 능히 하루 중에 이와 같이 사유하고 이와 같이 관찰하고 이와 같이 수행하고 익히며 이와 같이 상응한다면, 능히 약간의 겁수 동안 윤회의 고뇌를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퇴전하여 잃어버리는 일에서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이며, 끝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능히 하루 중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사유하며 수행하고 익히며 이 생각을 떠나지 않고 반야바라밀다와 상응한다면, 이 보살의 하루의 모든 가장 뛰어난 공덕은 다른 보살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 일체에게 널리 보시를 행한 공덕보다 많을 것이다.또다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고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 연각과 보살과 여래・응공・정등정각에게 보시하며 공양한다고 하여도 보살이 능히 하루 중에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사유하고 수행하고 익히며 설해진 대로 행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얻은 복덕은 한량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또다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고서 수다원과 나아가 여래・응공・정등정각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보시하고 공양하며, 나아가 또다시 지계의 행을 구족한다고 하더라도 보살이 능히 하루 중에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라서 이치대로 생각하고 사유하고 수행하고 익히며 이 법을 널리 설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얻은 복덕은 한량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또다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고서 수다원과 나아가 여래・응공・정등정각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보시하고 계를 지니며, 또다시 인욕・정진・선정 등의 법을 능히 수행하고 익힌다고 하더라도 보살이 능히 하루 중에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라서 법을 중생에게 베푸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얻은 복덕은 한량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또다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고서 수다원과 나아가 여래・응공・정등정각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 등의 이와 같은 법을 수행한 뒤에 또다시 37보리분법을 수행하고 익힌다고 하더라도 보살이 능히 하루 중에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라서 법을 베푼 공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얻은 복덕은 한량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또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하루 중에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르며 이 법을 베푼 공덕으로써 반야바라밀다의 모습과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 보살이 얻은 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
또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하루 중에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르며 이 법을 베푼 공덕으로써 반야바라밀다의 모습과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 뒤에 또다시 설해진 대로 행하고 수행하며 익히는 것이 상응한다면 이 보살이 얻은 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또한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하루 중에 반야바라밀다의 행을 잘 따르며 이 법을 베푼 공덕으로써 반야바라밀다의 모습과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 뒤에 설해진 대로 행하고 수행하며 익히고 나서, 또다시 능히 반야바라밀다를 보호하며 지니고 반야바라밀다를 잠시라도 멀리 떠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이 얻은 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으며 칭량하여 계산할 수 없다.”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일어나고 짓는 법은 바로 모습의 분별입니다.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모든 일어나거나 짓는 법은 바로 모습의 분별이어서 허망하고 참답지 않으며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환히 알아서 이 법 중에서 분별하는 바가 없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구해도 얻지 못함을 잘 알고, 이 보살이 모든 법을 구해도 얻지 못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곧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는다. 그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바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는 것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한량없다는 것은 모든 분량을 넘어섰다는 것이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헤아려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인연이 있어서 색이 한량없고 수・상・행・식 또한 한량없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색은 한량없고 수・상・행・식 또한 한량없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한량없다는 것은 바로 공의 뜻이고 무상의 뜻이고 무원의 뜻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는 것은 다만 이 공과 무상과 무원의 뜻이기만 하고 모든 법의 뜻은 아닙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대가 일찍이 부처님께서 모든 법은 공하다고 설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였는가?”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이 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공(空)은 즉 한량없음이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모든 법의 뜻은 분별하는 바가 없고 모든 짓는 바를 떠났다.
수보리여, 이와 같은 말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와 같이 설함은 곧 한량없음이고, 한량없음은 곧 헤아릴 수 없음이며, 헤아릴 수 없음은 곧 공이고, 공은 곧 무상(無相)이고, 무상은 곧 무원(無願)이며, 무원은 곧 무생(無生)이며, 무생은 곧 무멸(無滅)이며, 무멸은 곧 무작(無作)이며, 무작은 곧 무지(無知)이며, 무지는 곧 무성(無性)이며, 무성은 곧 무염(無染)이며, 무염은 곧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이와 같은 법문이 바로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 설하신 바이다. 이와 같이 설하시는 것은 바로 모든 법을 설하신 바가 없는 것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와 같다면 저 모든 법은 모두 말할 수 없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모든 법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공한 성품은 언설로써는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할 수 없다[不可說]는 뜻은 불어나거나 줄어듦이 있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여, 말할 수 없다는 뜻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말할 수 없다는 뜻이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면 곧 보시바라밀다・지계바라밀다・인욕바라밀다・정진바라밀다・선정바라밀다・지혜바라밀다 또한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바라밀다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불어남도 줄어듦도 없는 모든 반야바라밀다의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습니까? 만약 모든 바라밀다가 원만하지 못하다면 보살마하살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모든 바라밀다의 뜻은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능히 보시바라밀다를 행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시바라밀다를 행하는 데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보시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는 바이기 때문에 저 베푼다는 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如相]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또다시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능히 정계(淨戒)바라밀다를 행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정계바라밀다를 행하는 데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정계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기 때문에 저 계(戒)라는 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또다시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능히 인욕바라밀다를 행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인욕바라밀다를 행하는 데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인욕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는 바이기 때문에 저 참는다는 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또다시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능히 정진바라밀다를 행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정진바라밀다를 행하는 데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정진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는 바이기 때문에 저 있다는 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또다시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능히 선정바라밀다를 행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선정바라밀다를 행하는 데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선정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는 바이기 때문에 저 정(定)이라는 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또다시 수보리여, 선교방편을 갖춘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법에는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저 반야바라밀다는 다만 이름으로써 분별하는 바이기 때문에 저것을 가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보살이 이런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여한 모습으로써 회향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실한 회향이라고 한다.”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어떤 뜻입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은 곧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다. 여여란 불어나는 바도 없고 줄어드는 바도 없다. 보살마하살은 이 법 중에서 여실하게 머무르며, 이치대로 생각하고 수행하고 익히며 상응해야만 한다. 이 보살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며,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불어나거나 줄어드는 바가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라. 말할 수 없다는 뜻은 불어남이 없고 줄어듦이 없으며, 나아가 모든 법 또한 불어남이 없고 줄어듦이 없다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습을 알아서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고,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다.”
19. 심심의품(甚深義品) ①
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앞의 마음으로 얻습니까, 뒤의 마음으로 얻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앞의 마음으로 얻는다면 저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은 각각 갖추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뒤의 마음으로 얻는다면 뒤의 마음과 앞의 마음 역시 각각 갖추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능히 여러 선근을 증장시킬 수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비유하면 마치 세간의 등불 심지가 타오르는 것과 같으니 앞의 불꽃이 타는 것인가, 뒤의 불꽃이 타는 것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앞의 불꽃이 타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앞의 불꽃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뒤의 불꽃이 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뒤의 불꽃을 떠나지도 않습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심지가 실제로 타는 것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심지가 실제로 타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보살마하살이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 뜻 또한 바로 그렇다. 보살은 앞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또한 앞의 마음을 떠나지도 않는다. 뒤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뒤의 마음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얻지 않음도 아니니 이 가운데 또한 다시 선근이 무너지지 않는다.”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보살마하살이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앞의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앞의 마음을 떠나지도 않고, 뒤의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고 뒤의 마음을 떠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이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얻지 않음도 아니니 이 가운데 또한 다시 선근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연생법(緣生法)은 미묘하고 깊고 깊으며 가장 으뜸이며 깊고 깊습니다.”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마음이 멸한 뒤에 이 마음이 다시 생겨나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마음이 생하고 난 뒤에 이것은 멸하는 상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이것은 멸하는 상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멸하는 상의 법은 멸할 수 있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마음에는 생할 수 있고 멸할 수 있는 법이 있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에는 생할 수 있는 법도 없고 또한 멸할 수 있는 법도 없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곧 마음의 생하는 법과 마음의 멸하는 법 이 두 가지는 가히 멸할 수 있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자성은 멸할 수 있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여여하게 머무는 그대 또한 이와 같이 머무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여여하게 머무는 바 또한 이와 같이 머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여여하게 머무는 바 또한 이와 같이 머문다면 이것은 곧 항상한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진여는 깊고 깊은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진여는 곧 이 마음인가? 이 마음은 곧 진여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진여가 이 마음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진여에서 보는 바가 있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은 깊고 깊은 행인가?”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약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은 처소가 없는 행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행의 이와 같은 행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면 마땅히 어느 곳에서 행하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마땅히 제일의(第一義) 중에서 행합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보살마하살이 제일의 중에서 이러한 보살상(菩薩相)의 행을 행하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보살은 모든 상을 부수는가?”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모든 상을 부수지 않습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모든 상을 부수지 않는다고 하는가?”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나는 보살행을 닦아 모든 상을 끊었다’라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은 아직 모든 부처님의 법분(法分)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선교방편이 있어 마음에 머무는 상이 없다면 비록 이와 같은 여러 상을 환히 안다고 해도 보살은 모든 상을 넘어서며 상 없음[無相]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보살은 모든 상을 부수지 않는 것입니다.”이때 존자 사리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그 꿈속에서 공・무상・무원의 세 가지 해탈문을 수행한다면 이 선근으로써 능히 반야바라밀다를 증익함이 있습니까?”수보리가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라는 상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저 꿈속에서도 또한 증익함이 있습니다. 또 사리자여, 만약 낮 동안에 증익하면 꿈속에서도 또한 증익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낮이나 밤이나 꿈속이나 차이가 없이 동등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사리자가 말하였다.
“만약 어떤 남녀가 그 꿈속에서 선악의 업을 지었다고 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선악의 과보를 받습니까?”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모든 법은 꿈과 같아서 마땅히 과보가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다시 이 사람이 꿈에서 깨어난 뒤에 분별하는 상을 일으키면 저 선악의 과보는 마땅히 있는 것입니다. 사리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살생업을 지었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살생의 죄를 얻습니까?”사리자가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꿈에서 깨어난 뒤에 분별하는 상을 일으켜서 ‘내가 꿈속에서 살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꿈속에서 살생하였다고 해도 또한 살생죄를 얻습니다.”사리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나아가 모든 법에 대해 분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분별이 일어나면 곧 상이 생겨납니다. 상은 분별로부터 생겨나고 죄는 생각[想]을 따라서 마음에 나타납니다.”수보리가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만약 저 모든 분별을 끊는다면 그 때문에 마음은 곧 허공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연(緣)이 있으면 곧 업이 있고, 연이 있으면 곧 생각[思]이 생깁니다. 연이 없으면 곧 업이 없고, 연이 없으면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마음이 견문각지(見聞覺知)의 법에서 행할 때 어떤 마음은 티끌을 취하고 어떤 마음은 깨끗함을 취합니다. 즉 인연이 있어 업이 일어나는 것이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이 있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사리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법이 온갖 인식대상[所緣]을 떠난다면 어떻게 지금 인연이 있어서 생각이 일어나고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십니까?”수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는 짓는 상을 떠나기 때문에 인연이 있어서 생각이 일어나고,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리자여, 모든 연법(緣法)은 상(相)을 떠나며 이 상 또한 떠납니다. 이와 같이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고, 나아가 노사(老死) 등에 이르기까지 연하여 생깁니다. 모든 법을 인연하되 모두 다 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이 모든 인식대상을 떠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사리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저 꿈속에서 보시를 행하고서 이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것은 회향할 수 있겠습니까?”수보리가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자씨보살이 이 모임에 있는데 여래께서는 그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이와 같은 법을 증득하였나니, 그대는 지금 이와 같은 뜻으로 스스로 청하여 물으십시오.”이때 존자 사리자가 자씨보살에게 여쭈었다.
“제가 수보리에게 법을 물었더니 저 존자는 말하기를, ‘자씨보살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저를 보내어 묻게 하였습니다. 오직 원하니 보살께서는 저를 위하여 널리 설하여 주십시오.”그러자 자씨보살마하살이 존자 수보리에게 일렀다.
“저 사리자가 물었을 때 그대는 내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떤 법을 답하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보리여, 자씨라는 이름으로써 답을 해야 합니까? 색이 공하다는 말로써 답을 해야 합니까? 수・상・행・식이 공하다는 말로써 답을 해야 합니까?
수보리여, 저 색・수・상・행・식의 공(空) 중에는 답할 바가 전혀 없습니다. 수보리여, 나는 능히 답이라고 하는 법이나 능히 답을 말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답이 되는 법이나 답을 듣게 되는 자가 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나아가 쓸모 있는 답의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지 못하였고, 나아가 모든 법은 전부 볼 수 있는 바가 없습니다. 법을 볼 수 없는 까닭에 답할 바가 없습니다.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줄 수 있는 법 또한 없습니다.”이때 존자 사리자가 자씨보살마하살에게 여쭈었다.
“보살께서 설하신 바와 같다면 이 법을 증득하였습니까?”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사리자여, 나는 이 법을 증득하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법 중에서 증득할 만한 법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며, 몸으로써 얻지 못하고 마음으로써 얻지 못하였습니다. 언어의 분별이나 사유로써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뜻 가운데서 필경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모든 법은 성품이 없으니 법의 자성이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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