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說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 9권
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 제9권
시호 한역
이미령 번역
8. 청정품 ②
이때 제석천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받아서 지닌다면 저는 마땅히 그 사람과 법문을 수호하겠습니다.”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교시가여, 그대는 수호할 법이 있다고 봅니까?”제석천주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수보리여.”수보리가 말하였다.
“천주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설한 바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이치대로 행하고 수순하고 상응한다면 이것을 곧 진실로 수호한다고 이름합니다. 만일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면 어느 곳에서라도 곧 인비인(人非人)의 부림을 받게 됩니다.
다시 교시가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허공을 수호하듯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교시가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저 부르는 소리나 메아리를 수호할 수 있습니까?”제석천주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저 부르는 소리나 메아리는 수호할 수 없습니다.”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교시가여, 모든 법은 소리나 메아리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안다면 곧 모든 법에 대해 관할 바가 없고 보일 바가 없으며, 생겨나는 바가 없고 멸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이때 삼천대천세계의 하나하나 세계 중에서 사대왕천으로부터 나아가 대범천왕에 이르기까지 저들 모든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과 제석천주와 나머지 천자들이 부처님의 위엄과 신통과 가지력으로 그 즉시 각기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와서 머리를 땅에 대고 부처님 발에 절을 한 뒤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한 곳으로 물러났다.이때 세존께서 위신력으로 저 모든 범왕과 제석 및 모든 범(梵)의 무리와 나머지 사천왕천의 모든 천자들로 하여금 각각 천 명의 부처님 세존을 볼 수 있게 하셨다. 그 부처님들께서는 한결같이 모든 장소에서 각기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이와 같은 이름과 구절과 글로 널리 말씀하시되, 모두가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모양이었으며 모든 반야바라밀다의 법문과 품류와 장구(章句)가 모두 다르지 않았다. 저 법을 받는 자의 이름은 모두 수보리였고 질문을 하는 자도 역시 제석천주였다.그러자 부처님께서 저 모든 범왕과 제석천주 등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지방에서 지금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하시며, 모든 자씨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성취한 뒤에 이 지방에서 또다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널리 설하는 것을 보아라.”
9. 탄승품(歎勝品)
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는 깊고 깊으며 미묘하나니 저 이름 중에서는 끝내 얻을 수가 없으며 저것은 언어로 능히 널리 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반야바라밀다의 이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법 또한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과 법은 둘이라는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생한 곳이 없고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자씨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성취한 뒤에 이 지방에서 또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한다면 이 법의 깊고 깊음을 그가 어떻게 설합니까?”이때 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자씨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이루어 이 지방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설할 때에 색이 항상하거나 무상하거나 풀려 있거나 묶여 있거나 설하지 않을 것이며, 수・상・행・식이 항상하거나 무상하거나 풀려 있거나 묶여 있거나 설하지 않을 것이다. 색・수・상・행・식은 끝내 청정하다고 설할 것이다. 수보리여, 저 보살은 이와 같이 이름과 구절과 문장을 가지고 참답게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하는 것이다.”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합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색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고, 수・상・행・식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다. 색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았으며, 번뇌에 집착하지도 않고 세간을 벗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청정하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이와 같이 청정하다. 수・상・행・식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았으며, 번뇌에 집착하지도 않고 세간을 벗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청정하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이와 같이 청정하다.
색이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다. 수・상・행・식이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다. 모든 법이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다. 허공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는 청정하다. 모든 법이 허공과 같고 소리와 같고 메아리와 같기 때문에 청정하며, 반야바라밀다 또한 이와 같이 청정하다.”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에 대해서 청정한 마음을 내어서 듣고 지니며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설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크고 좋은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의 감각기관이 청정하며, 온갖 병고를 떠났고, 모든 악과 독이 그 사람을 능히 해치지 못할 것이며, 수명이 늘어나서 요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천 명이나 되는 하늘의 무리들을 거느리게 되며, 어떤 때는 그들이 앞에서 인도하고 어떤 때는 뒤에서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지 수호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지닌 모든 사람으로서 선남자이거나 선여인이거나 마땅히 백월(白月) 팔 일과 십사 일과 십오 일에 몸과 말과 마음의 업을 청정히 하여 온갖 방위와 처소에서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독송하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뜻을 해설한다면,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복은 참으로 많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그렇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온갖 곳에서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해설할 때에는 언제나 천 명이나 되는 하늘의 무리들이 저 법을 지닌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바른 법의 큰 이익을 듣고 지니고자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비밀스럽게 보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은 천상과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보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선남자・선여인으로서 능히 수지하는 자가 얻는 복은 참으로 많은 것이다.또다시 수보리여, 만약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는 자가 있다면 현세에서 아주 크고 좋은 이익을 얻으며, 가장 뛰어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며 천상과 인간이 모두 존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은 능히 중생에게 큰 이익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저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거나 깨끗하지도 않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있는 바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거나 깨끗하지도 않다.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얻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색이 물들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물들지 않으며, 수・상・행・식이 물들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물들지 않았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에서 분별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는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나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보여지는 법도 아니고 볼 수 있는 법도 아니다.”이때 삼천대천세계에서 이 모임에 몰려온 모든 범왕과 제석과 모든 천자들이 제각기 뛸 듯이 환희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오늘 염부제에서 세존께서 두 번째로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륜을 굴리신 것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저 다음에 오게 될 세상에서 자씨(慈氏)보살이 바른 깨달음을 이룬 뒤 이 법륜을 굴릴 때에 나도 또한 이 법을 듣게 될지어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법륜을 최초로 굴린 것도 없고 두 번째로 굴린 것도 없다. 마땅히 알아라. 모든 법은 끝내 있는 바가 없으니, 가히 굴릴 것도 없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우고 익히는 것 또한 이와 같다.”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큰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입니다. 왜냐하면 저 모든 법은 온갖 집착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수행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증득하지만 또한 증득할 만한 법이 없습니다. 비록 법륜을 굴린다고 할지라도 또한 나타나는 법이 없고 얻을 법도 없습니다. 증득함도 없고 나타냄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은 공하여 끝내 집착을 떠나 있습니다. 집착을 떠났기 때문에 즉 모든 법은 돌아옴도 없고 굴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성품을 떠났으니 이런 까닭에 돌아옴도 없고 굴림도 없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 수보리여, 저 공해탈문(空解脫門)은 돌아옴도 없고 굴림도 없다.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 또한 돌아옴도 없고 굴림도 없다.
수보리여, 비록 모든 법에 대해 이와 같이 널리 설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법의 성품은 끝내 고요하다. 설함도 없고 나타냄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얻음도 없고, 증득할 만한 법도 없다. 증득할 바가 없기 때문에 또한 증득하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멸함도 없고 멸하지 않음도 없다.”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허공은 가없기 때문입니다. 동등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떠남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끝내 공하기 때문입니다.
부술 수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절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옴이 없기 때문입니다.말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옴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온(蘊)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옴이 없기 때문입니다.
쌓임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다함의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지음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짓는 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는 자가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주재(主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르는 곳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물러가거나 사라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멸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전제・후제・중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꿈이나 환상이나 그림자나 메아리나 아지랑이 등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생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번뇌가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세간을 벗어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의지할 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듦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허공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희론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없는[無念]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기억은 생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성품은 항상 머물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떠난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성품은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모양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허물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중생의 끝[際]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끊어짐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일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극단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집착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다름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화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착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성문과 연각의 지위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별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분별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헤아림이 없는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헤아리는 법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허공과 같은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무상(無常)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유위이기 때문입니다. 고(苦)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허공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공(空)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아(無我)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상(無相)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은 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성(空性)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끝내 가없기 때문입니다.염처(念處)・정근(正勤)・신족(神足)・근(根)・역(力)・각도(覺道)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37보리분법(菩提分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무상・무원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세 가지 해탈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에 색이 있어서 밖의 색을 관찰하는 등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8해탈(解脫)41)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선정(初禪定) 등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9선행법(先行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苦)・집(集)・멸(滅)・도(道)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4성제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시 등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10바라밀다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력(力)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파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무소외(無所畏)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겁내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서거나 사라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박을 떠난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일체지지(一切智智)는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기 때문입니다.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의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수법(數法)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진여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진여는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지(自然智)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자성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일체지지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니, 모든 법의 성품과 모든 법의 모양은 얻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10. 찬지품(讚持品) ①
이때 제석천주가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모든 선남자・선여인이 만약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잠시 듣는다면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미 선근을 심은 사람이리니, 어찌 하물며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능히 수지 독송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고 설한 바대로 배우고 설한 바대로 행하며 이치에 상응하는 사람이겠는가? 이 사람은 이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세존의 처소에서 공경하고 공양하며 선근을 심은 사람이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서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오랫동안 과거의 여래・응공・정등정각의 처소에서 일찍이 이 깊고 깊은 법을 듣고 지녀서 그 뜻을 물었으며, 이 법 중에서 이치대로 수행하고 익힌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듣고도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으며 설한 바대로 배우고 설한 바대로 행하며 이치에 상응하는 것이다.’이때 존자 사리자가 제석천주의 생각을 알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존중하고 공경하며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해서 설하고 설해진 대로 배우고 설해진 대로 행하고 이치에 상응한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불퇴전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같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적은 선근으로써는 능히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먼저 세상에 부처님의 처소에서 일찍이 수행을 하거나 익히지 않았다면, 이런 까닭에 오늘날에 곧 깨끗한 믿음과 이해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또다시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듣고서 어긋나고 거스르며 훼방하고 비방하려는 마음을 낸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과거 세상의 부처님 처소에서 일찍이 이 법을 들었는데, 그때 이미 어긋나고 거스르며 훼방하고 비방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비록 다시 적은 선근으로써 먼저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게으름에 덮여 정진을 일으키지 않고 믿음도 없고 참음도 없으며 깊고 깊은 법에 대해서 사랑하거나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이해하거나 환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환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거듭 모든 부처님이나 불제자에게 법을 청하여 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법을 듣고 어긋나거나 거스르는 자는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어긋나고 거슬렀던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자 제석천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다에 공경하게 예를 드린다면,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지에 공경하게 예를 드리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 제석천주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교시가여,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다에 공경하게 예를 드린다면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지에 공경하게 예를 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지지로부터 반야바라밀다가 생겨나고 반야바라밀다는 다시 일체지지를 낳기 때문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러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익혀야 한다.”이때 제석천주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어떤 것을 이와 같이 머무르고 이와 같이 익힌다고 이름하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제석천주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교시가여, 그대는 지금 여래・응공・정등정각에게 이 깊고 깊은 뜻을 잘 물었다. 그러나 그대가 능히 묻는 것은 바로 여래의 위신력이 호념하는 바인 것이다.
교시가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색에 머물지 않고 색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색에 머물지 않고 색의 모습에 머물지 않으면 이것이 색을 익히는 것이 된다. 수・상・행・식에 머물지 않고 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보살이 만약 식에 머물지 않고 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이 식을 익히는 것이 된다.
교시가여, 보살이 만약 색을 익히지 않고 색의 모습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색에 머물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수・상・행・식을 익히지 않고 식의 모습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식에 머물지 않는 것이 된다.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익힌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지극하며 깊고 깊습니다. 반야바라밀다는 광대하고 한량없습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바로 그러하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색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고, 색의 모습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색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고, 색의 모습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색의 깊고 깊음을 익히는 것이 된다.
수・상・행・식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고, 식의 모습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다. 보살이 만약 식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고, 식의 모습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식의 깊고 깊음을 익히는 것이 된다.
사리자여, 보살이 만약 색의 깊고 깊음을 익히지 않고 색의 모습의 깊고 깊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색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수・상・행・식의 깊고 깊음을 익히지 않고 식의 모습의 깊고 깊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식의 깊고 깊음에 머물지 않는 것이 된다.”이때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은 마땅히 불퇴전에 머물러 이미 기별을 얻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해 이치대로 널리 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모든 보살은 설한 바를 들어도 의심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모든 장애를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제석천주가 곧 존자 사리자에게 여쭈었다.
“존자께서 설한 바와 같으니 그 일이 이와 같습니다. 설령 다시 아직 기별을 받지 못한 보살을 위하여 설한다면 마땅히 어떤 허물이 있겠습니까?”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교시가여, 만약 아직 기별을 받지 못한 보살을 위하여 설한다면 이 또한 허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 보살이 비록 아직 기별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만일 이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듣고서 기뻐하며 믿고 받아서 우러러 예를 올리고 공경하며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은 이미 오래전에 대승법에 안주하여 선근이 성숙한 자로서 오래지 않아 한 분이나 두 분이나 세 분의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 계시는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교시가여, 저 보살이 비록 현재의 부처님 세존의 처소에서 기별을 아직 받지 못하였더라도 미래세에는 결정코 모든 부처님 여래・응공・정등정각을 뵙고 우러러 예를 올리고 공양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받아 모든 선한 법을 닦을 것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증득할 것입니다.”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잠깐이라도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게 되어 우러러 예를 올리고 믿고 받아 지닌다면 이 보살은 오래전에 이미 대승법에 안주하여 선근이 성숙하였다고 말할 수 있거늘, 어찌 하물며 능히 이 법문을 독송하고 사유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고 이치대로 수행하는 자이겠습니까? 그 일은 어떠합니까?”이때 부처님께서 존자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으니 만일 보살이 잠깐이라도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서 우러러 예를 올리고 믿고 받아 지닌다면 나는 이 보살이 이미 오래전에 대승법에 안주하여 선근이 성숙하였다고 말할 수 있거늘, 어찌 하물며 능히 이 법문을 독송하고 사유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고 이치대로 수행하는 자이겠는가? 이들은 결정코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이때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즐거이 비유를 말하여 그 뜻을 밝히고자 합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그대의 뜻대로 말하여라.”사리자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보살승(菩薩乘)에 머무는 자가 부지런히 깨달음[菩提]을 구하면, 어느 때 꿈에서 이미 보리좌(菩提座)에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보살이 이 꿈을 꾸고 난 뒤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에 점점 가까워짐을 아는 것처럼 모든 보리를 구하는 자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만약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서 기뻐하여 믿고 받아 지닌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대승법에 안주하여 선근이 성숙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보리의 기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능히 독송하고 사유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고 이치대로 수행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증득할 것입니다.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들은 업의 장애로 말미암아 여실지(如實智)를 거스릅니다.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멀리 떠나고 깨끗한 믿음과 이해를 능히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능히 선근을 성숙케 하지 못합니다.
어떤 중생들은 오래전에 이 법을 듣고 지니며 믿고 이해하여 참다운 경계에 안주하여 선근을 성숙시켰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여실제(如實際)에 머물러 다시는 퇴전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에 점점 가까워집니다.세존이시여, 또 어떤 사람이 백 유순이나 나아가 5백 유순에 이르는 광야의 거친 길을 지나고자 할 때, 그 도중에서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데에 두려워하고 의혹을 품습니다. 이 사람이 점차 나아가 험한 길을 빠져 나가고자 할 때 홀연히 소나 양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곧 이 사람은 성읍이 멀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이 마음에 안온함을 얻고서 다시는 도적 등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소나 양치는 사람을 보았다면 이것은 바로 성읍이나 부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리를 구하는 자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만일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는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에 점점 가까워져서 오래지 않아 대보리의 기별을 받게 되며, 다시는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 우러러 예를 올리고 믿고 받아 지니는 것은 앞의 모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존중하고 공경하여 이치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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