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8권
불설보우경 제8권
달마류지 한역
장용서 번역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아란야를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을 한다.
‘다툼이 없는 행에 머물고 고요한 행에 머무르면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 등이 남의 마음을 아는 신통[他心神通]으로 나의 마음[心]과 심소유법(心所有法)을 능히 알겠구나. 이런 까닭에 나는 응당 이치와 같게 뜻을 짓고 이치와 같지 않게 뜻을 지음을 멀리 여의어야겠다.’
이치와 같은 법 가운데서 더욱 널리 닦아 익혀야 하니, 이것이 보살이 아란야를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촌ㆍ읍ㆍ마을ㆍ국토와 왕의 도읍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만일 법답지 못한 곳이면 마땅히 버려 떠나야 하니, 이른바 술집과 음란한 마을과 왕의 집과 장기나 바둑에 취한 무리들이 모여 희롱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곳이니, 이것을 출가한 사람이 갈 곳이 아니므로 모두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인간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이익과 받들어 섬김과 존중과 찬탄 받는 것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능히 이익 등에서 이와 같은 마음을 내느니라.
‘여러 베푼 이를 위하여 복밭을 만들기 위함이며, 나누어 흩어서 베풀기 위함이며, 끝내 탐내거나 집착하여 애욕에 물들지 않으며, 또한 자신을 위하여 나와 나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받은 물건을 모든 중생과 더불어 같이하며, 온갖 고통 받거나 서글픈 이에게 돌려주는 것이니라.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이 얻는 이익 등의 일로 끝내 의지하고 믿어서 아만하거나 공고한 마음을 내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얻는 소문과 이익 등의 일은 체성이 비고 고요하여 도무지 얻을 수 없고, 마침내는 마땅히 마멸하고 흩어져 없어지는 법으로 믿을 수 없다. 누가 지혜 있는 이가 무상한 법 가운데서 애착함을 내며, 다시 아만하거나 공고한 마음을 일으키랴.⧽’
이 이름이 보살이 이익 등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래께서 베푸신 학처를 생각하는 곳에서 행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을 짓느니라.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학처를 익혀서 벌써 능히 닦아 이미 등각을 나타내시어 열반에 드셨고, 오는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이 닦아 익혀 장차 등각을 나타내시고 열반에 드실 것이며, 지금의 모든 부처님도 벌써 닦아 익히고 나서 지금 등각을 나타내어 열반에 드신다.’보살마하살도 능히 이런 배움의 곳에서 신심을 발하여 일으켜서 존중하고 용맹하게 의지하여 닦아 익히니, 이것이 보살이 여래께서 베푸신 학처를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모든 번뇌와 번뇌를 따르는 난잡하고 물드는 것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번뇌와 번뇌를 따르는 난잡하고 물드는 법 가운데서 잘 생각하기를 ‘무슨 일을 따라서 일어났으며, 어떤 연으로 난 것인가’고 한다. 어떤 인으로 일어났거나, 어떤 연으로 생겼거나 모조리 다 버리나니, 이 이름이 보살이 번뇌를 따르는 것을 생각하는 곳에서 잘 행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삼마사다의 마음을 항상 증득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분소의(糞掃衣)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서원(誓願)이 굳건하고, 둘째는 겸손하여 스스로 낮추고, 셋째는 싫어하여 버림이 없고, 넷째는 집착한 바 없고, 다섯째는 허물과 근심을 여의고, 여섯째는 공덕을 보고, 일곱째는 스스로 찬탄하지 않고, 여덟째는 남을 헐지 않고, 아홉째는 계를 갖추고, 열째는 여러 하늘에 친근하느니라.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의 서원이 굳건하고, 또한 여러 하늘을 친근히 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이 신심과 의요(意樂)를 갖추면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믿는 마음을 깊이 일으키니, 설사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서원을 헐지 않으며 또한 옮겨 움직임이 없느니라. 서원이 굳건한 데 말미암는 까닭으로 겸손하고 낮추는 마음을 얻으며, 마음이 겸손하고 낮춰졌으므로 아만이 없게 되며,사람들이 버린 누더기의 옷을 모두 다 거두어 세탁하여 바늘로 꿰매되 피로함이 없고, 또한 버리지 않느니라. 이 뜻에 말미암은 까닭에 집착하는 바 없으며, 그리고 비록 말하기를 ‘이 옷은 더럽고 헤지고 헐어지고 다시 더러운 때가 생기고 여러 벼룩과 이가 많다’고 하지만 근심하지 않으며, 그 공덕을 보기를 ‘분소의는 선인(仙人)이 입는 옷’이라 한다.여래께서 찬탄하신 바요, 부처님께서 길상이라고 설하셨으므로 간탐을 멀리 여의고 성종(聖種)을 수순하며, 이 인연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으며 또한 남을 헐뜯지 않고 계를 갖추었으며, 계를 갖춘 까닭에 여러 하늘이 내려와서 친근히 한다. 여러 부처님에게 항상 칭찬받으며, 여러 큰 보살들이 가르쳐주며, 다시 사람인 듯 아닌 듯한 무리들[人非人]에게 옹호를 받으며 또 마을과 성읍의 찰제리나 바라문에게 정중히 존중 받으며, 같은 범행을 닦는 이에게 늘 찬탄 받는 바가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분소의 가사를 받느니라.”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여러 보살들은 그 마음이 넓고 크거늘 무슨 인연으로 낮고 용렬한 행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러 보살들은 큰 세력이 있으므로 바야흐로 이 낮고 용렬한 행을 능히 행하지만, 세력이 없는 이는 능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큰 힘센 보살은 세간을 옹호하고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게 능히 대치하기 위함이요, 힘이 없는 이로써 낮고 용렬함을 행하는 것이 아니리라.
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의 행(行)과 해(解)는 넓고 큰 것인가, 낮고 용렬한 것인가?”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지금 여기에 대해 감당하여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증득하신 바가 없고 행과 해가 없으며 법을 보지 않으시는 까닭에 가히 측량할 수 없는데, 제가 지금 어떻게 여래의 행하신 바의 우열을 능히 말씀하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께서 온 세상 가운데의 온갖 중생ㆍ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 등에게서 이와 같은 하열한 행을 나타내 보이며, 다시 이와 같은 중생들에게서 두다(杜多:頭陀)의 공덕을 찬탄 받으셨는가?”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여래께서는 처음으로 대승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조복 받고, 온갖 중생이 아직 번뇌를 일으키지 않은 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하열한 고행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러하니라. 큰 세력이 있는 여러 보살들은 여러 중생들을 조복 받기 위한 까닭에 누더기를 입었으며, 하열함이 없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보살이 분소의를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여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세 옷[三衣]을 받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만족한 줄 알고, 둘째는 욕심이 적고, 셋째는 희구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넷째는 쌓아 모으는 일이 없고, 다섯째는 손실을 여의고, 여섯째는 손실의 고통을 쌓아 모음을 여의고, 일곱째는 근심과 고달픔을 여의고, 여덟째는 수심과 한탄을 여의고, 아홉째는 취하는 것이 없고, 열째는 부지런히 닦아 익히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졌느니라.선남자야, 보살은 하열한 옷에서 만족함을 알고, 만족한 줄 아는 까닭에 능히 욕심이 적고, 욕심이 적음으로 희구하는 것이 없고, 희구하지 않기 때문에 일찍부터 쌓아 모으는 일이 없고, 모으는 일이 없으므로 손실함이 없고, 손실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근심과 고달픔이 없고, 근심과 고달픈 일이 없으므로 수심과 한탄할 것이 없느니라. 수심과 한탄할 일이 없기 때문에 또한 받는 바가 없고 받는 것이 없는 까닭에 능히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모든 번뇌를 다 끊었느니라.
선남자야, 이 이름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세 옷을 받았다 하느니라.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남을 따라 행하지 않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탐내거나 애착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둘째는 화내거나 노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셋째는 어리석고 미련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넷째는 손해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다섯째는 인색하거나 질투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여섯째는 아만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일곱째는 남으로 하여금 이름을 알게 하려고 행하지 않고, 여덟째는 이익만 소중히 여김을 따라 행하지 않고, 아홉째는 하늘 마군을 공경함을 따라 행하지 않고, 열째는 교만하게 자기만 높임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 때문에 남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걸식이라고 이름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거두어 주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둘째는 차례를 위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셋째는 지치거나 싫지 않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넷째는 만족한 줄 알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다섯째는 나누어 펴기 위하는 까닭에 걸식을 행하고, 여섯째는 탐하거나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일곱째는 양을 알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여덟째는 좋은 음식을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고, 아홉째는 선근을 원만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걸식을 행하고, 열째는 나를 집착하는 생각을 여의기 위한 때문에 걸식을 행하느니라.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중생을 거두어 주고 나아가 나를 집착하는 생각을 여의기까지를 위함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온갖 중생이 여러 가지 고통 받는 것과, 비록 다시 적은 선근을 심었으나 이 선근도 잠시 오래지 않을 것을 보고 이 같은 중생을 거두어 주기 위한 까닭에 걸식을 행하느니라.
보살이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바른 생각에 머물러 위의를 갖추고, 여러 근이 고요하고 또한 교만하지도 않고 방일케 하지도 않고 차례를 얻어야 하니, 끝내 저 가난하고 궁핍한 집은 버려두고 부귀한 집에만 들어가는 일이 없어야 하느니라.이른바 바라문이나 혹 찰제리ㆍ거사대가(居士大家)를 차례로 빌 때에 한 집에서 한 집으로 나아가되, 드디어 걸식의 일이 끝나기까지 끝내 어기거나 월권하는 일이 없어야 하느니라. 오직 나쁜 곳으로서 마땅히 걸식 못할 곳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사나운 개가 있는 집, 새로 송아지 낳은 집, 나쁜 종류의 집과 혹 남자나 혹 여인이나 혹 동남(童男)과 동녀(童女)가 번뇌를 일으킨 집과 꾸짖거나 혐의하는 곳과 여러 외도의 집은 모두 마땅히 버려두어야 하느니라.보살은 차례로 걸식할 때에 싫증을 내지 말고 또한 피로해 하거나 게으르지 말아야 하느니라. 저 중생들은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만족한 생각을 내며, 좋거나 나쁘거나 응함에 따라 받아야 하느니라.
만일 밥을 얻고 나서 사는 처소에 이르거든 발우와 의복을 거두어 놓고, 부처님 등상 앞이나 혹 제다(制多) 앞이나 스투파 앞에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야 하느니라.얻은 밥은 네 등분으로 갈라서 한 몫은 같이 범행하는 이에게 주고, 한 몫은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에게 주고, 한 몫은 나쁜 갈래[惡趣]의 중생에게 주고, 한 몫은 자기가 먹어야 하느니라.
보살은 비록 밥을 먹기는 하지만 식사에 탐냄도 없고 물듦도 없고 또한 사랑하여 탐착함도 없으니, 오직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밥을 받지만 몸으로 하여금 여위게 하지 않고 또한 살찌게도 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몸이 만일 몹시 여위면 선품(善品)을 닦을 수 없고, 몸이 만일 몹시 무거우면 잠만 느는 까닭이니라.보살은 밥을 먹고 나서는 능히 선품이 늘고 자라서 앞에 나타나게 해야 하니, 부지런히 닦음으로 말미암아 게으름이 없고 또한 나른함이 없어야 원만한 보리의 양식을 얻느니라. 저의 선이 보리의 분법(分法)을 능히 성숙시켜 나의 집착을 멀리 여의고, 내[我]가 없음을 얻었기 때문에 몸을 능히 버리어 중생에게 보시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걸식을 능히 행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한 앉음[一坐]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보리도량에 앉으니 여러 마군(魔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둘째는 출세간의 정려(靜慮)를 증득하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셋째는 출세간의 반야를 얻으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넷째는 출세간의 지혜를 얻으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다섯째는 공의 성품을 증득하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여섯째는 여러 법의 여실함을 얻으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곱째는 정각의 길을 증득하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여덟째는 실제(實際)에서 증득하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아홉째는 진여를 증득하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열째는 온갖 지혜를 얻으니, 여러 마군이 놀라고 무서워함에도 혼자서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한 번 앉는다고 말함은 이른바 온갖 지혜의 앉음이요, 또한 그 이름이 법의 자리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얻으면 한 앉음을 능히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한 끼 먹기[一食]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마음대로 탐내어 먹지 않고, 둘째는 음식에 물들어 탐착함이 없을지니, 말하자면 밥을 얻고 나서는 때이거나 때 아니거나 간에 마땅히 다시는 소유(蘇油)나 꿀 등 갖가지 맛있는 것을 받지 말아야 하며, 셋째는 만일 다른 사람이 소유 등을 얻은 것을 보더라도 화내지 말며, 넷째는 만일 내가 소유 등을 받는 것을 사람이 볼 때에도 시기질투를 내지 말며,다섯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만일 중한 병을 만났거든 소유 등을 마땅히 받아야 하며, 여섯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반드시 생명의 어려움이 있거든 마땅히 먹어야 할 소유 등은 받아야 하며, 일곱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만일 좋은 법을 닦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거든 반드시 먹어야 할 소유 등을 받아야 하며,여덟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만일 위와 같은 세 가지 어려움이 있거든 먹어야 할 소유를 먹고 나서 후회하지 말며, 아홉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만일 세 가지 어려움이 있거든 응당 먹어야 할 소유 등에 의혹하지 말며, 열째는 보살이 한 끼 먹기를 행할 때에 만일 세 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소유 등을 먹으면 마땅히 약이라 생각을 하여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한 까닭으로 한 끼 먹기를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아란야(阿蘭若)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범행에 오래 머무름이요, 둘째는 비나야(毘奈耶:계)에서 선교를 얻고, 셋째는 여러 근이 원만하고, 넷째는 많이 들음이 구족하고, 다섯째는 법요를 잘 설하고, 여섯째는 나에 집착한 바를 여의고, 일곱째는 마치 들 짐승과 같고, 여덟째는 몸이 먼 데에 머무름을 얻고, 아홉째는 고요한 데서 살고, 열째는 덮개를 덮지 않은 곳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느니라.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범행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며, 나아가 아란야를 떠나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비나야 가운데서 3업(業)이 청정하고 시라(尸羅:계)를 갖추고, 성품이 선교가 많아서 위의를 즐겨 익힌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긴 환법(幻法) 가운데서 다른 연(緣)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능히 알아서 깨치며, 교의에서 선교를 능히 얻는다.또 능히 지키거나 범하는 곳을 깨달아 알아서, 계 지니는 이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을 능히 내고, 계를 훼손하는 이를 보면 문득 바로 이를 버린다. 또다시 많은 시간 동안 자주 자주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며, 지은 죄의 나쁜 지음 따라 뉘우쳐 끝내 덮어 감추지 않는다. 또 범한 죄의 상ㆍ중ㆍ하가 있음을 능히 깨달아 알고, 또한 지은 악업이 이숙과(異熟果)를 불러올 시분(時分)의 길고 짧음을 능히 깨달아 아느니라.보살이 닦아 행하는 것이 청정한 까닭에 모든 근이 원만함을 얻으니, 안근(眼根)이 쇄하지 않고, 이근(耳根)이 이지러진 데가 없으며, 신분(身分)이 갖추어서 바야흐로 저 아란야에 머무르기를 감당할 수 있다. 혼자 고요하게 있어 사람이 없어 혼란스럽지 않으며, 걸식을 얻기 쉬워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모든 나무와 숲의 꽃과 열매와 가지가 모두 다 무성하며, 깨끗하고 질 좋은 물을 얻기에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감실(龕室)은 편안하여 악한 짐승이 없으며, 산길은 그윽하고 고요하여 가거나 머무르기에 어려움이 없으니, 이러한 곳에 의지하여야 하느니라.보살이 다문(多聞)을 갖추어 이와 같은 곳에 의지하고 나서, 먼저 외우던 것과 들은 바에 따라서 낮이나 밤이나 3시(時)로 늘 닦아 익혀 경을 외우는 소리가 크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게 모든 근을 잘 거두어서 변하거나 달라지게 하지 않는다. 받아 쓰는 물건은 모두 청정하며, 여러 법의 차별상(差別相)을 깨달아 알고서 혼침함을 버리고 교리를 생각하여 그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고 또한 외부에 반연하지도 않느니라.만일 왕이나 왕자나 찰제리나 바라문 등이 보살의 처소에 이르면 보살이 보고서 공경하고 문안하고 찬탄해 말하기를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저기 펴놓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느니라. 왕이 만일 앉으면 보살도 또한 앉고, 왕이 만일 앉지 않으면 보살도 또한 서서, 왕 등의 여러 근이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보고는 보살은 곧 찬하여 말하기를 ‘대왕은 왕의 나라 안을 잘 이익하게 하므로 계를 지키며 들은 것이 많고 복덕이 있고 지혜로운 사문이 많으며, 바라문이 사는 집에도 도둑이 없고, 관인(官人)들이 침노하여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한다.다시 왕 등의 여러 근이 고요하여 편안하게 조복된 것을 보고서, 보살은 그때에 갖가지 여러 법을 마땅히 연설하느니라. 왕이 만일 갖가지 법을 설함을 즐겨하지 않으면, 보살은 곧 마땅히 수순하여 싫증나서 여의는 법[厭離法]을 설하느니라. 왕이 만일 싫증나 여의는 법을 듣기를 즐기지 않으면 곧 응하여 여래의 몹시 깊고 넓고 큰 법과 큰 위덕을 설하느니라. 이와 같이 나머지 사람들, 마을의 바라문, 찰제리 등 온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기를 그와 같이 하느니라.보살은 많이 들었음으로써, 곧 능히 법을 설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모두 환희하게 하며, 보살에게 깨끗한 심신을 내게 하고, 능히 설법으로 선품(善品)을 닦아 익혀 번뇌를 덜게 하느니라. 또한 많이 들은 힘으로 아집을 여의게 하고, 다시 능히 아집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멀리 여읜 까닭에 아란야의 처소에서 놀라지 않고 두렵지 않아 무섭지 않게 되느니라.보살은 아란야의 처소에 있으면서 현전(現前)을 관찰하여 사는 것에 집착한 바 없음은 들짐승이 관찰할 바 없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보살이 아란야의 처소에 있지만 두렵고 무서움이 없고 허물과 근심이 없는 것은 들짐승이 상해를 받을까 늘 무서워하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보살이 아란야에 처소에 있음은 마을 가운데의 남자나 여인이나 동남(童男)이나 동녀(童女)들은 마음이 산란함을 흩어버리기 때문에, 바른 법을 거두어 받기 위하기 때문에, 사는 데 집착한 바 없게 하기 위한 때문에, 들짐승이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멀리 피하는 것이니라.보살은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현전의 고요함을 얻고, 아란야에 큰 공덕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고요하여서 싫어 떠나려는 일도 없고, 덮개를 덮는 일도 없음을 보아서, 여러 가지 법을 닦아 익혀 아란야에 머무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범행에 오래 머물며 나아가 덮개를 덮지 않은 곳을 싫어하여 떠나려 하지 않는 것까지를 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아란야의 처소에 머묾을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나무 아래에 앉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마을이 극히 가까운 나무 아래에 의지하여 앉지 않고, 둘째는 마을이 극히 먼 나무 아래에도 의지하여 앉지 않고, 셋째는 가시가 있고 빽빽한 숲속 나무 아래도 의지하여 앉지 않고, 넷째는 칡덩굴, 빽빽한 넝굴 및 잔나비가 사는 곳의 나무 아래엔 의지하여 앉지 않고, 다섯째는 잎이 말라빠진 나무 아래에는 의지하여 앉지 않고,여섯째는 원숭이가 모여 사는 나무 아래에 의지하여 앉지 않고, 일곱째는 새가 많이 모여 사는 나무 아래에 의지하여 앉지 않고, 여덟째는 나쁜 짐승이 살고 있는 나무 아래에 의지하여 앉지 않고, 아홉째는 도로가 가까운데 서 있는 나무 아래엔 의지하여 앉지 않고, 열째는 더럽고 악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의 나무 아래에는 의지하여 앉지 않느니라.
보살은 응당 아무 막힘과 어려움이 없는 곳의 나무 아래에 의지하여 앉아야 몸이 가볍고 편안하고 마음이 늘 기쁘고 즐거우리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나무 밑에 앉음을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능히 맨땅에 앉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엔 마땅히 담벼락에 의지하여 앉지 말 것이며, 둘째는 마땅히 숲나무 밑에 의지하여 앉지 말지 말며, 셋째는 볏짚이나 보리 짚이나 풀을 쌓아 놓은 곳에 의지하여 앉지 말며, 넷째는 산 복판 바위 구덩이에 의지하여 앉지 말며, 다섯째는 강 언덕 구덩이 가운데 의지하여 앉지 말며, 여섯째는 물건으로 추운 것을 가리고 앉지 말며, 일곱째는 물건으로써 바람을 막고 앉지 말며, 여덟째는 물건으로써 비를 가리고 앉지 말며, 아홉째는 물건으로써 뜨거운 것을 막고 앉지 말며, 열째는 물건으로써 이슬이 젖는데 앉지 말아야 하느니라.만일 여러 보살이 맨 땅에 앉아 있으면 몸에 여러 가지 병이 들어 다시 힘이 없으니, 마땅히 절 가운데 들어가서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여래께서 번뇌를 덜어 없애기 위하여 곳곳에서 두타의 공덕을 널리 설하셨으니, 나는 지금 비록 다시 절 가운데 있으나 마음이 애락하지도 않고 또 여기에 탐착하지도 않는다. 바른 법을 부지런히 닦아서 번뇌를 없애야 한다.’또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절 가운데 있음은 다만 여러 시주의 물건만 거두어 받음이요, 내 자신의 장양(長養)함을 위함은 아니므로 맨땅이 생각만 난다.’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맨땅에 앉음을 얻느니라.다시 이르니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무덤 사이에 앉음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말하자면 모든 보살들은 좋은 주처(住處)를 극히 싫어 떠나고, 둘째는 모든 보살들은 온갖 시간에 죽는 생각을 늘 일으키고, 셋째는 모든 보살들은 능히 남긴[餘殘] 생각을 일으키고, 넷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신분(身分)을 보아 붉은 생각을 일으키고, 다섯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신분을 보아 푸른 생각을 일으키고,여섯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몸을 보아 고름 생각을 일으키고, 일곱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몸을 보아 부은 생각을 일으키고, 여덟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몸을 보아 말라서 탈 생각을 일으키고, 아홉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몸을 보아 흩어지는 생각을 일으키고, 열째는 모든 보살들은 늘 몸을 보아 뼈가 이어진 생각을 일으키느니라.선남자야, 보살이 무덤 사이에 앉음은 여러 중생을 이익되고 어여삐 여기기 위함으로 자비스런 마음에 머물게 된다. 또한 청정한 계를 가지기 위한 까닭이며, 궤칙(軌則:법칙)을 성취하기 위하는 까닭에 고기를 먹고픈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무덤 사이 주변에는 많은 사람 아닌 것들이 의지하여 사는 데이므로 만일 보살이 고기 먹는 것을 보면 깨끗지 못한 믿음을 내어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이로 까닭으로 보살은 마땅히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선남자야, 보살이 무덤 사이에 살다가 만일 가람에 들어가거든 먼저 마땅히 여래 제다에 예배하고, 다음에 마땅히 장로비구에게 예배하고 뒤에, 다시 젊은 비구에게 문안하고, 절집의 평상이나 자리 등 물건엔 앉지 말고 공경스럽게 서 있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보살은 세간을 수순하고자 하여 중생을 장차 보호하기 위하기 때문에, 절집의 평상이나 자리 등 물건에는 앉지 않느니라.무덤 사이의 보살은 성자에 수순하는 까닭이니, 만일 세간에 어겨 거슬리면 성자가 아닌 것이니라. 만일 한 비구가 자기의 물건을 가지고 와서 보살에게 앉기를 청하거든 무덤 사이의 보살은 마땅히 살펴서, 저 비구의 뜻에 뒤에 뉘우침이 없을 것과 또 나머지 여러 스님들이 화를 내거나 싫어하지 않나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그러나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마땅히 일으키되 마치 전다라(旃多羅)의 동자와 같이 하고서 바야흐로 이 자리에 앉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무덤 사이에 앉음을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늘 앉음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늘 앉음은 몸을 고달프게 하지 않기 위한 때문이요, 둘째는 늘 앉음은 마음을 고달프게 하지 않기 위한 때문이요, 셋째는 늘 앉음은 잠을 자지 않기 위한 때문이요, 넷째는 늘 앉음은 피곤하거나 싫증나지 않게 하기 위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늘 앉음은 보리의 양식을 원만하게 하고자 하기 위하는 까닭이요, 여섯째는 늘 앉음은 마음의 일경성(一境性)을 위한 때문이요,일곱째는 늘 앉음은 현전에 도를 증득하기 위하는 까닭이요, 여덟째는 늘 앉음은 보리도량에 나아가기 위한 까닭이요, 아홉째는 늘 앉음은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하는 까닭이요, 열째는 늘 앉음은 모든 번뇌를 영영 끊기 위하는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늘 앉음을 능히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따라 자리를 깔고 앉음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그 앉는 도구에 탐착하거나 좋아함이 없고, 둘째는 끝내 자기 스스로가 앉을 도구를 깔지 않고, 셋째는 남을 보내지 않을 도구를 깔게 하지 않고, 넷째는 상을 나타내지 않고 남으로 하여금 앉을 도구를 깔게 하고, 다섯째는 여기에 있는 대로 따라서 혹 풀이거나 혹 나뭇잎이거나 바로 응하여 앉고, 여섯째는 모든 지방 처소에 만일 독사나 모기나 등에의 구멍이 많으면 곧 응당 버리고 마땅히 앉지 않고,일곱째는 보살이 몸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발을 포개서 눕고자 하거든 법의(法衣)로써 몸을 덮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아서 밝게 깨달은 생각을 일으키고, 여덟째는 오른쪽 겨드랑이로 누어선 잠에 취하지 말고, 아홉째는 다만 여러 큰 종자를 기르기 위한 때문이며, 목숨을 살리기 위한 까닭이요, 열째는 보살은 항상 어느 때나 또 언제나 늘 선품(善品)이 하여금 앞에 나타나게 함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따라 자리를 깔고 앉음을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유가(瑜伽)를 닦아 익힘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깨끗하지 못함을 능히 늘 닦으며, 둘째는 자비를 능히 늘 닦고, 셋째는 연기(緣起)를 능히 늘 닦고, 넷째는 여러 가지 허물과 근심에서 선교를 늘 닦고, 다섯째는 공의 성품을 능히 늘 닦고, 여섯째는 무상(無相)을 능히 늘 닦고, 일곱째는 유가를 능히 늘 닦고, 여덟째는 능히 늘 부지런히 닦고, 아홉째는 뉘우치지 않음을 얻고, 열째는 계를 능히 갖추어 갖는 것이니라.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깨끗지 못함을 능히 닦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살은 홀로 있는 곳에서 연좌(宴坐:좌선)하는데 몸을 단정히하고 천천히 가부좌(跏趺坐)하여, 현전에서 마음에 극히 싫어 여읜 것을 관찰하여 바른 생각에 편히 머물러 마음이 밖으로 방해받지 않아야 하느니라.그리고 이런 생각을 지어야 하느니라.
‘사람 몸속에 있는 온갖 음식은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맛이 있거나 맛이 없거나, 만일 먹고 나서 몸의 불이 닿으면 모두 깨끗지 못한 것이 되어서 익고 헐어져서 가히 더럽건만, 온갖 세간 것에 수순하지 않는 모든 우매한 사람들은 탐하여 즐겨하고 물들어 집착한다. 그러나 우리 성자들은 비나야의 법에 의지하여 능히 바른 지혜로써 자기 몸을 관찰하여 물들어 집착함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탐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는 나의 마음에는 또한 싫어서 여읨을 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보살이 깨끗지 못함을 능히 닦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자비를 능히 닦는 것인가?
선남자야, 말하자면 여러 보살들은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 홀로 연좌하는데 몸을 단정히 하여 천천히 가부좌를 하여, 현전에서 마음에 극히 싫어 여읜 것을 관찰하여 바른 생각에 편히 머물러 마음이 밖으로 방해받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런 생각을 짓느니라.
‘여러 중생 무리들은 성내거나 해로움을 많이 일으켜 좋지 못한 업을 지으며, 다시 좋지 못한 사람들을 늘 가까이하여 형상이 없지만 나에게 원수의 생각을 일으킨다. 혹은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이와 같은 업을 일으키니, 나의 뜻은 저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일으킨바 성내거나 해롭게 하는 것을 모조리 끊어 없애게 하여 저들로 하여금 보리도량에 앉게 하리라.’이와 같은 일은 오직 말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이 보살의 몹시 깊은 뜻으로서 수순하여 생각하는 것이니, 이 이름이 보살이 자비를 능히 닦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연기를 능히 닦는 것인가?
말하자면 여러 보살이 만일 탐내고 애착함과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이렇게 생각을 짓느니라.
‘나로 말미암아 탐내거나 화내는 것 등의 법을 일으켰으니, 능히 일으킨 나가 이미 인연을 좇아서 일어났고, 일어난 바의 탐냄과 화냄과 탐내는 경계들도 또한 인연을 좇아 일어났으니, 지혜 있는 이라면 그 누가 뭇 인연이 일어난 허망한 법 가운데 나의 집착을 일으키리오.’
이 이름이 보살이 연기를 능히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러 가지 허물과 근심에서 선교를 능히 닦는 것인가?
모든 보살들이 자기의 허물과 근심을 끊기 위하여 늘 닦아 익히는 것을 말함이니, 만일 남에게 서로 이어서 여러 허물과 근심이 있으면 설하는 사람을 위하여 저로 하여금 끊어 버리게 하는 것을 감당하게 하고, 감당 못할 이는 보살이 곧 버리고 가느니라.어떤 것이 허물과 근심인가? 부처님ㆍ법문ㆍ승가ㆍ계율ㆍ성현ㆍ범행하는 이와 세간의 높은 이ㆍ낮은 이ㆍ어른ㆍ어린이들에게 공경하지 않는 것을 말함이니, 이것이 허물이요 근심이니라.
자기의 몸을 스스로 믿고 아만을 늘 일으키며, 남을 가볍고 천하게 여기며, 눈앞의 갖가지 경계에 물들고 집착한다. 열반에 등져서 나라는 소견, 중생이란 소견, 목숨이란 소견, 사람이란 소견, 허망하다는 소견, 공하다는 소견을 일으킨다. 상(常)과 무상(無常)에 집착하여 일체 성자를 받들어 섬기지 않는다.어리석은 이에게 친근하며 계 갖는 이를 멀리하고, 파계한 이를 공경하며, 좋은 장부를 버리고, 좋지 못한 장부를 가까이한다. 매우 깊은 경전을 비방하며, 이 장경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을 늘 품느니라.
게으르고 게을러서 자기 몸을 가볍고 천하게 여기고, 성품이 변재가 없고 위엄의 광명이 하열하다. 응당 뉘우치지 않을 데에는 뉘우치고 응당 뉘우쳐야 할 데엔 뉘우치지 않고, 모든 번뇌에 늘 얽매인 바가 되고, 환영과 미혹함과 속이고 아첨함에 따라 다니는 바가 되며, 혼침한 잠에 가린 바가 되었느니라.성품이 공경과 이익을 늘 즐겨하여 종성(種姓)에 탐하여 집착하고 권속을 사랑하며, 국토와 대중의 모임을 즐겨하고, 받아 지니는 법성(法性)의 기쁨을 버리고 세간에 순응하는 주문을 친근히 하고 출세간의 바른 법을 버리느니라.
선하지 못함을 익히고 모든 선을 닦지 않으며, 출가한 이의 잘못을 칭찬하고, 여인이나 여러 남자와 동남동녀와 여러 외도들을 모조리 찬탄하며, 아란야의 처소에 살지 않고, 먹되 분량을 알지 못하며, 그 높은 이에게 친근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외워 익힐 때에는 스스로 분한(分限)을 삼고, 갔던 곳이 아니면 허물과 악함을 보지 못하느니라.성품이 적은 계율이라도 공경하지 않고, 적은 죄 가운데서는 마음에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이의 여러 근이 암매(暗昧)함을 보고는 고요하다고 찬탄하고, 지혜 있는 이의 여러 근이 밝고 날카로움을 보고는 시끄럽다고 반발하며, 거만하고 오만함을 행하여 뒤바꿔 집착하느니라.
성품이 거친 말을 즐겨하며,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모든 빛 가운데 수순하여 집착하며, 화내는 사람을 보고는 너그러운 마음을 내지 않고, 고통 받는 이를 보고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병 있는 이를 보고는 싫어서 여읠 마음이 없고, 저 죽는 이를 보고는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으며, 불타는 곳에서 벗어남을 구하지 않느니라.몸을 관찰하지 않고, 계를 관찰하지 않고, 벌써 지었거나 장차 지을 것이나 현재 지은 법의 성품을 관찰하지 않으며, 응당 생각하지 않을 것에 생각을 일으키며, 응당 헤아리지 않을 것에 헤아리며, 응당 희구하지 않을 것에 희구하며, 벗어날 데가 아닌 데 벗어날 생각을 하며, 저 도가 아닌 데에 도의 생각을 지으며,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말하고, 응당 지을 것을 짓지 않으며, 악한 법을 탐착하고, 선품(善品)을 버리느니라.대승을 나쁘다 말하고 소승을 찬탄하며, 대승을 깊이 믿는 보특가라를 헐어 비방하고, 소승을 깊이 믿는 보특가라를 찬탄하며, 늘 논쟁을 하여 싸워 송사함을 언제나 일으키며, 성품이 거칠고 사나워서 악한 말하기를 좋아하며, 거만하고 말이 많아 몹시 포악하고, 탐내고 속여서 성품이 매우 허망하고, 말이 순서가 없어 희론을 즐기니, 이것이 허물이요 근심이니라.보살은 능히 이런 허물과 근심에서 선교를 얻고 공의 성품을 부지런히 닦으니, 모든 희론을 버리기 위한 때문이니라. 보살이 공의 성품을 부지런히 닦지만 마음이 흐리고 흩어져서 저 곳에서 마음을 즐겁게 머무니, 보살이 저 경계에서 두루 구하여도 자성이 모두 공하여 구해도 얻을 수 없으며, 취하는 바의 경계의 체[境體]도 벌써 공하고, 능히 취하는 마음의 성품도 또한 있지 않느니라. 보는 바의 마음의 경계를 이 공한 것이라고 깨달아 알되, 능히 관찰하는 지혜의 체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보살은 공의 성품을 관찰할 때에 상 없는 성품을 닦으니, 보살이 비록 다시 상 없는 성품을 부지런히 닦지만 오히려 저 여러 가지 상이 앞에 나타나느니라.
보살이 또 앞에 나타난 여러 가지 상의 체성이 모두 공하여서 이와 같은 여러 상을 이미 얻을 수 없음을 관하고, 안으로 몸의 상도 또한 얻을 수 없고 몸의 염주(念住:염처)도 얻을 수 없으며, 마음이 밖의 여러 상 가운데에 집착치 않으므로 염주의 체성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관하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은 모든 상을 버리고, 닦아 익힐 의요(意樂)를 항상 능히 발하여 일으키느니라.보살이 모든 삼마지를 닦아 익혀 그 경계에 간단없이 머물러 있으니, 이른바 마음의 한 경계의 성품이 이 사마타요, 실제대로 관찰하는 것은 이 비발사나(毘鉢舍那)니라. 보살은 삼마사다를 닦아 익혀 마음에 뉘우침이 없고 또한 다시 기쁘기만 하느니라. 왜냐하면 계가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여러 보살의 계가 청정하므로 유가를 얻으니, 계를 갖춘 이는 유가를 늘려 기르며 유가를 닦아 익히느니라. 이런 까닭에 이것을 유가를 얻은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업을 성취하면 유가를 능히 닦아 익히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경장(經藏)을 능히 가지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바른 법을 수호하기 위함이지 재물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수호하고 주지함을 위함이지 이익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삼보의 씨가 끊기지 않음을 위함이지 공양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넷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바르게 거두어 모든 중생을 대승에게로 일어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지 소문이나 찬탄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며,다섯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의지가 없고 기댈 데가 없는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며, 여섯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고통 받는 여러 중생을 안락케 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지혜의 눈이 없는 모든 중생들에게 지혜의 눈을 얻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여덟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성문승에로 일어 나아가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성문승의 도를 연설하는 까닭이며, 아홉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대승의 길로 일어 나아가는 이를 위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들어서 받아 지님은 자신이 위없는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까닭이요, 낮은 승(乘)을 희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경장을 능히 가지게 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비나야를 능히 지니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비나야를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둘째는 비나야의 뜻을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셋째는 비나야의 몹시 깊은 이취(理趣)를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넷째는 비나야의 적고 가는 것을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마땅히 지을 것과 응당 짓지 않을 것을 능히 아는 것이요,여섯째는 자성의 어기고 범함을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일곱째는 시설(施設)의 어기고 범함을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배운 파라제목차(波羅提木叉:戒本)의 연기를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아홉째는 성문의 비나야를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열째는 보살의 비나야를 능히 깨달아 아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비나야를 능히 지니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능히 궤칙(軌則)을 잘 지켜 행하는 바 경계에서 위의를 갖추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성문의 모든 학처(學處)를 잘 배우고, 둘째는 연각의 모든 학처를 잘 배우고, 셋째는 보살의 모든 학처를 잘 배우고, 넷째는 모든 학처에서 잘 배우고 나서 궤칙을 잘 지켜 행한 바를 갖추고, 다섯째는 궤칙의 행한 바를 모두 갖추고 나서, 사문의 행이 아니면 바로 버리는 것이요,여섯째는 이 인연으로써 보살은 적당하지 않은 장소와 때 아닌 때에는 행하지 않고, 일곱째는 보살이 사문의 행하는 바 위의와 궤칙을 능히 모두 갖추고 나면, 사문이나 혹은 바라문들은 모두 능히 이치 아닌 꾸짖음과 비방하는 짓을 하지 못하고,여덟째는 이로 말미암아 보살도 또한 능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모든 학처를 잘 배우게 하고, 아홉째는 보살이 행한 바 궤칙을 원만히 하고 나서 단엄하고 고요한 위의를 갖추고, 열째는 위의를 성취하여 거짓이고 속임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능히 궤칙을 잘 지켜 행하는 바 경계에서 위의를 갖추느니라.”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5294 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10권 (0) | 2024.12.20 |
---|---|
[적어보자] #5293 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9권 (0) | 2024.12.20 |
[적어보자] #5291 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7권 (0) | 2024.12.20 |
[적어보자] #5290 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6권 (3) | 2024.12.19 |
[적어보자] #5289 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5권 (3) | 2024.1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