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보우경(佛說寶雨經) 9권
불설보우경 제9권
달마류지 한역
장용서 번역
“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인색하고 질투함을 여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자기 스스로가 시주하는 사람이 되고, 둘째는 능히 다른 사람을 권하여 보시하게 하고, 셋째는 보시함을 능히 찬탄하고, 넷째는 다른 사람의 보시를 경축하고 위로하고, 다섯째는 나머지 시주자들을 칭찬하여 그들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고, 여섯째는 다른 이에게 보시하는 것을 볼 때에는 ‘다만 나에게만 보시하고 나머지 사람에겐 보시하지 말라. 이와 같은 물건은 오직 나만이 마땅히 가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끝내 일으키지 말고,일곱째는 보살은 발심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이익을 얻게 하니, 이른바 능히 저들을 제도하여 목숨을 살리는 도구이며, 여덟째는 보살은 발심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함을 모두 얻게 하니, 이른바 세간ㆍ출세간의 있는 바 안락함을 성취하고, 아홉째는 나는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열째는 나는 응당 탐내고 인색하고 질투하는 것을 버리는 마음을 발하여 일으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바로 능히 인색하고 질투함을 영영 여의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능히 온갖 중생에게서 평등한 마음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서 평등한 방편을 얻고, 둘째는 모든 중생에게서 마음에 장애가 없음을 얻고, 셋째는 온갖 중생에게서 고달프거나 허물어지지 않는 마음을 얻고, 넷째는 보시를 닦아 행하고, 다섯째는 지계(持戒)를 닦아 익히고, 여섯째는 편안히 참음을 닦아 익히고,일곱째는 정근(正勤)을 닦아 익히고, 여덟째는 고요히 생각함[靜慮]을 닦아 익히고, 아홉째는 반야를 닦아 익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함이고, 열째는 모든 지혜의 인(因)을 쌓아 모으는 것이니라.
보살이 쌓아 모으되 끝내 두 가지 마음에 의지하지 않으니, 평등하게 널리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쌓아 모으는 까닭이니라.
보살이 만일 능히 이와 같이 쌓아 모으면 법의 성품을 빨리 증득하여 온갖 나고 죽는 뜨거운 고통에서 능히 벗어날 것이며, 또한 능히 남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데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보살은 평등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에 탐내고 애착함이 없으며, 또한 미워하고 시기함도 없느니라.선남자야, 비유해 말하자면 마치 어떤 장자(長子)가 여섯 아들을 둔 이야기와 같으니라. 아들들은 모조리 단정하고 장엄하여 아버지의 뜻에 꼭 들었다. 장자는 어여삐 여겨 마음에 치우쳐 생각함이 없이 평등하게 양육하였다. 그러나 저 여러 자식들은 어리고 어리석어서 선교가 없었다. 장자의 집에 홀연히 불이 일어났는데, 이때에 여러 아들들은 각각 다른 곳에 있었느니라.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 장자는 자못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
‘나는 여러 아들로 하여금 앞세우거니 뒤세우거니 하여 내보낼까, 그러지 말까?’ ”
지개보살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왜냐하면 저 장자의 마음이 평등한 까닭으로 그 여러 아들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보살도 또한 이러하여 모든 중생들이 나고 죽는 열뇌(熱惱)의 집 가운데 있어 어리석어 지혜가 없고 다시 선교가 없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6도(道) 가운데 각각 따로 살고 있으므로, 보살은 방편으로써 모조리 벗어나게 하고, 다시 고요한 세계에 능히 옮겨 두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얻느니라.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능히 모든 부처님에게 선교 공양함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법으로써 공양하여 곧 온갖 부처님에게 공양함이니, 재물공양은 아니요, 둘째는 말씀대로 닦아 행하는 것이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며, 셋째는 모든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 안락하게 하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고, 넷째는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다섯째는 짓는 일을 따라 모두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 여섯째는 서원을 버리지 않는 것이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 일곱째는 보살이 지은 사업을 버리지 않음이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 여덟째는 이치와 같이 생각하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 아홉째는 마음에 싫거나 게으름이 없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요, 열째는 보리의 마음을 버려 여의지 않는 까닭에 곧 온갖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니 재물공양이 아니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법공양인가?
선남자야, 법신이 곧 이 모든 부처님인 까닭에, 법으로 공양함이 곧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어떤 것이 말씀과 같이 닦아 행하는 것인가?
말씀하신 대로 닦아 행하여 부처가 됨을 말함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인가?
여래께서 출현하시어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해 주시는 것을 말함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것인가?
여래께서 출현하시어 온갖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되는가?
지은 사업(事業)으로써 모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서원을 버리지 않는 것인가?
서원을 버려 여의면 모든 중생들을 능히 이익하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지은 바 업을 버리지 않는 것인가?
만일 보살이 지은 사업을 위배하면 곧 능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 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이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인가?
이치와 같지 않은 생각을 하면 능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못하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이 지치거나 싫지 않은 것인가?
마음이 만일 지치거나 싫증이 있으면 곧 능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못하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인가?
보리의 마음을 버리면 곧 능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왜냐하면 모든 보살들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땅히 얻는데, 만일 중생이 없으면 여러 보살들은 등각을 나타내지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법으로써 공양하는 것이 곧 온갖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니, 재물공양은 아니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곧 선교를 얻어 온갖 부처님에게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아만을 능히 항복받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있는 친척을 모두 버리고 자기는 죽은 송장같이 여기니, 이 인연으로써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 둘째는 자기의 형상을 헐고 색이 헐어진 옷을 입어서 몸의 모양이 세속과 다르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 셋째는 자기의 머리털과 수염을 빡빡 깎고, 손에 발우[應器]를 들고 집집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비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넷째는 집집을 돌면서 음식을 빌되 전다라의 아들처럼 낮추는 마음을 일으키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받고, 다섯째는 남에게서 음식을 비니 자신의 목숨은 남에게 달렸다고 마땅히 생각하여, 자기의 몸은 비렁뱅이 같구나 하고 여기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 여섯째는 자기 얻은 음식이 비록 다른 사람이 가볍고 천하게 여기는 바이지만, 빌어먹기를 싫어하거나 게으르지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일곱째는 존자(尊者) 아차리야(何遮利耶)에게 공양하여 복밭[福田]의 생각을 지으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 여덟째는 자기의 위의와 궤칙의 행하는 바를 갖추어서 함께 범행을 닦는 다른 이로 하여금 모두 환희케 하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아홉째는 아직 얻지 못한 불법을 원하여서 자기가 마땅히 얻어야 하니, 이로 말미암아 아만을 능히 항복 받고, 열째는 나는 저들에게서 분노하고 손해를 보았지만, 모든 중생들 가운데서 인욕심을 늘 일으키니, 이런 까닭으로써 아만을 능히 항복 받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아만을 능히 항복받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깨끗한 믿음을 능히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숙세부터 심은 선근으로 인연을 갖추었으므로 복덕을 내고, 둘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도 정견(正見)을 얻고, 셋째는 허망하고 속이고 아첨하고 비꼬인 행을 버리고 뜻의 즐거움[意樂]을 얻고, 넷째는 삿되고 비꼬인 성품이 없으므로 곧은 마음을 얻고, 다섯째는 이근(利根)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지혜를 갖추고,여섯째는 청정한 마음이 항상 흘러넘치므로 잠이 오는 장애를 능히 버리고, 일곱째는 악지식을 버려 여의고 선지식을 의지하며, 여덟째는 선법을 희구하므로 아만을 일으키지 않고, 아홉째는 바른 법을 연설하여 그르치는 일이 없고, 열째는 넓고 큰 믿음으로써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능히 아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깨끗한 신심을 얻느니라.”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여래의 넓고 큰 위덕에서 적은 부분의 뜻이라도 듣고자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살펴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나는 이제 그대를 위하여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의 적은 부분의 뜻을 설명하리라.”
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좋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즐겨 듣고자 원하옵나이다.”“선남자야, 여래께서 대자(大慈)를 성취하심이 평등하여, 모든 중생들을 널리 위하시니, 여래가 한 중생에게 대자를 일으키심은 모든 중생들에게 베푸심과 다름이 없느니라.
여래의 대자가 중생계에 두루하고 허공계를 다하지만 큰 사랑의 끝은 실로 알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대비(大悲)를 성취하신 것은 온갖 성문ㆍ연각, 모든 보살과는 같지 않으니, 여래께서 한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실 때에는 온갖 중생들에게 베푸심과 다름이 없느니라.선남자야, 여래께서는 법 설함의 다함없음을 성취하셨다. 한량없는 겁ㆍ한량없는 아승기 동안에 이름과 말이 각각 다르고 도리가 같지 않지만, 온갖 중생들을 위해서는 순식간에 연설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이 설하시는 법은 다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한량없는 물음과 논란함을 성취하였나니 능히 답하시고 능히 풀어 주시느니라. 선남자야, 가령 온갖 중생이나 중생의 수에 들어간 이들이 동시에 부처님께 묻는데, 이름과 말과 몸의 종류가 각각 다르지만, 여래께서는 한 찰나, 혹은 한 납박(臘縛), 한 모호율다(牟呼栗多) 동안에 능히 답하시고 능히 풀이하시어 다함이 없느니라.선남자야, 여래께서는 정려를 성취하시어, 행하시는바 경계에 걸리고 막힘없음을 얻으셨느니라. 선남자야, 가령 온갖 중생이 다 십지(十地) 보살의 위(位)에 모두 머물러 있다 하자. 이와 같은 보살들이 다 한 때에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삼마자에 함께 들어갔다 하면, 이와 같이 들어갈 때에 한량없는 백천 겁을 지나고, 들어간 정려도 각각 같지 않으며, 부처님의 삼마지와 행한 바 경계도 그 한계는 얻지만 실로 능히 알 수는 없느니라.선남자야, 여래께서 한량없는 색신(色身)을 성취하셨으니, 만일 여러 중생이 마땅히 여래의 색신으로써 교화 받으려는 이가 있으면, 여래께서는 곧 능히 한 찰나 또는 한 납박, 모호율다에 각각 저 중생의 처소에서 여래의 색신상을 나타내 보이시느니라. 만일 중생이 마땅히 갖가지 다른 종류의 중생의 색신상을 보겠다는 이가 있으면, 여래는 곧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사이에 각각 중생 앞에서 능히 다른 종류의 중생의 색신상을 나타내 보이시느니라.선남자야, 여래께서는 눈으로 취하는 바 경계가 한량없는 종류가 있는데, 모든 중생들로써 천안(天眼)으로 보거나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이와 같은 종류의 중생은 산수(算數)나 사량(思量)을 뛰어넘어 지나간 세계 가운데 가득 찼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여실히 보시기를 마치 손바닥 가운데의 아마라과(阿摩羅果)와 같이 보시느니라.선남자야, 여래께서 귀로 취하시는바 경계도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그 한량없고 끝없는 여러 세계 가운데 중생이 가득차 있느니라. 그러나 저 세계의 온갖 중생들은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동안에 동시에 소리가 난다. 그런데 저 여러 소리는 음운(音韻)의 굴곡과 언사(言詞)의 크고 적음과 설(說)하는 것이 다르지만, 여래께서는 그 음성을 듣고 각각 다른 것을 모두 능히 판별하여 아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성현의 지혜를 성취하시어 다함이 없고 한량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선남자야, 중생계가 다 하도록 그곳에 있는 중생들이 각기 행동을 하고 따로따로 생각하고 갖가지 업을 짓지만, 여래께서는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동안에 이 모든 중생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업을 지어 이와 같은 과(果)를 받았는지 모조리 깨달아 아시고, 여래께서는 걸림 없는 지혜로써 저 모든 중생들의 3세의 업과를 모조리 능히 깨달아 아시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삼마사다에 늘 계시기 때문이니라.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생각을 잃지 않으신 까닭이며, 온갖 근(根)이 흩어지지 않으신 까닭이며, 마음이 급하게 흐르지 않으시는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조용하고 고요한 데 머무신 까닭이며, 매우 조용하고 고요하며, 가장 조용하고 고요한 까닭에 온갖 여러 번뇌를 능히 끊으셨기 때문이니라.선남자야, 만일 저 중생이 여러 가지 번뇌가 어떤 마음이 달리고 흩어져서 여러 가지 삼마지를 능히 얻을 수 없으면, 여래께서는 저들의 번뇌와 티끌과 때를 없애주고, 새어나오는 것이 없는 지혜를 일으키게 하고, 온갖 모든 법의 자성이 평등한 이치의 성품을 증득하게 하여, 온갖 모든 삼마지와 삼마발저의 행하는 경계를 통달하게 하느니라.선남자야, 여래의 지니신 네 가지 위의는 낱낱이 삼마지에 머물며, 나아가 여래께서 열반 드시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을 지나도록 삼마지에 머물러 계시거늘, 어찌 하물며 적은 시간이라도 정(定)에 아니 계실 때가 있겠는가.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으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여래께서는 삼마사다에 늘 머물러 계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측량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여래께서는 3아승기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으시어 증득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아서 여래의 생각할 수 없는 경계를 증득한 것이지, 오직 저 3아승기겁에서 증득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보살은 평등한 여러 법의 성품을 깨쳐 알고 나서 바야흐로 저 3아승기 수에 들어가는 것이요, 처음 발심한 것은 아니니라.”지개보살이 아뢰었다.
“만일 여러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얻어들은 이는 깨끗한 믿음을 능히 일으켜 환희하고 즐겨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저 모든 중생들은 곧 이 복덕이 있는 사람이며, 여러 선을 지은 사람이며, 업장을 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압니다.
만일 믿고 아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보리에 친근하거늘, 어찌 하물며 듣고 나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마침내 통달하여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해줌이오리까.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은 중생은 머지않아 여래의 위덕을 이루기에 합당합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이 모든 중생은 마땅히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께서 거두어 주심이 될 것이며, 마땅히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어, 여러 가지 선근을 심을 것이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얻어 듣고 끝내 의심을 일으키지 않아서 여래의 위덕에서 능히 뜻으로 즐거워하고 생각하여 마음이 깨끗하고 훌륭하게 이해한다. 그리고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여법하게 공양하되 능히 7일 낮과 7일 밤에 생각을 전념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7일 낮과 7일 밤을 채우고 나면 곧 그 밤 안으로 여래를 뵙게 되리라. 만일 이러한 작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목숨이 다할 때가 되어서야 마음이 산란치 않으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 머무시리라.”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여러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들을 때에 믿지 않음을 냅니까, 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설함을 들을 때에 의요(意樂)가 맹렬하거나 추악하고 표독하여 마음을 상하여 설하는 법사에게 악지식의 생각을 일으키는 이가 있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허물어진 뒤에 나락가(捺洛迦:지옥)에 태어나느니라.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들어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거나, 설하는 법사에게 선지식의 생각과 인도하는 스승의 생각을 일으키면, 선남자야, 결정코 꼭 알라. 이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는 곳마다 일찍부터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거나 혹은 모든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나는 응당 오랜 옛적 여러 부처님 회중에서 이 법문을 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이제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고 깨끗한 믿음을 낸 이는 옛적에 일찍이 들은 까닭이다’라고 하리라.”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설상(舌相)을 나타내시어 얼굴[面輪]을 덮으시고, 다음에 몸과 사자좌(獅子座)와 아울러 여러 보살, 성문의 무리와 제석ㆍ범천ㆍ호세(護世)를 덮으시고 내지는 온갖 큰 모임을 덮으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설상을 도로 거두어들이시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설상은 여래께서 거짓말을 아니 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너희들은 응당 깨끗한 믿음을 깊이 내어서 능히 긴 밤 동안에 이익하고 안락하여라.”이 법문을 설하실 때에 팔만사천 보살들이 생사가 없는 법인(法忍)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해졌으며, 그 나머지 한량없는 중생들 가운데 일찍이 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못했던 이들은 모두 발심하였다.그때에 부처님께서 지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세속 가운데서 선교(善巧)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세속제(世俗諦)에서 물질[色]이 있다고 시설(施設)하지만 승의제(勝義諦) 가운데는 물질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으며, 세속 가운데서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나아가 의식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도 없으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둘째는 세속 가운데서는 땅의 경계를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땅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으며, 비록 세속에서는 물ㆍ불ㆍ바람의 경계와 공식(空識)의 경계를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나아가 식계(識界)에 이르기까지 함께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셋째는 비록 세속에서는 안처(眼處)를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안처를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으며, 비록 세속에서는 이처(耳處)에서 나아가 의처(意處)에 이르기까지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의처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넷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나가 있다고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나를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다섯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중생을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중생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여섯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목숨을 양육하고 의생(意生)하는 보특가라(補特迦羅)와 마납박가(摩納縛迦:소년) 등을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모두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일곱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세간을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세간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여덟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세간법이 있다고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세간법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아홉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불법을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불법을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열째는 세속에서는 비록 보리를 시설하지만, 승의제 가운데서는 증득한 바 보리와 능히 깨닫는 이도 다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야, 생각으로 인하여 시설하는 말씀, 이 이름이 세속이니, 비록 승의제 가운데서라도 세속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세속을 떠나면 승의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세속 가운데서 선교를 능히 얻으면 승의제가 아니니, 이런 까닭에 세속의 선교라고 이름하느니라.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세속의 선교를 얻느니라.
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승의의 선교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남이 없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둘째는 멸하지 않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셋째는 허물어지지 않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넷째는 들어가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다섯째는 말을 뛰어넘어서 행하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여섯째는 말이 없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일곱째는 희론을 여읜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여덟째는 말로 할 수 없는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아홉째는 조용하고 고요한 법의 성품을 증득하고, 열째는 성자의 법의 성품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왜냐하면 승의제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허물어지지도 않으며, 들어옴도 없고 나감도 없고 말의 길을 뛰어넘었으며, 문자로 취하지 않는 까닭이며, 희론으로 증득하지 않는 까닭이며, 가히 말로 할 수 없어서 맑고 고요하며, 여러 성자가 안으로 증득한 바이니라.선남자야, 여러 부처님께서 혹 출현하시거나 혹 출현하지 않으시거나 그 승의는 항상 머물러 허물어지지 않느니라. 이 뜻을 위하는 까닭에 보살은 수염과 머리를 박박 깎고 몸에 가사를 입고 마음에 바른 믿음을 내어서 집을 멀리 떠나 집 아닌 곳으로 나아가니, 이 이름이 출가니라.출가하고 나서는 힘써 일하고 닦아 익히되, 마치 머리에 붙들어 맨 비단 올이 불에 타는 것과 같이 불을 끌 여가도 없이 오로지 승의만 구해야 하니, 만일 승의가 없으면 범행도 없어질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의 출세도 또한 좋은 뜻이 없느니라.
승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보살들이 이 법 가운데서 선교를 능히 얻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승의의 선교를 얻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연기의 선교를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공의 성품을 능히 알고, 둘째는 있는 바 없는 성품을 능히 알고, 셋째는 굳건하지 못한 성품을 능히 알고, 넷째는 그림자와 같은 성품을 능히 알고, 다섯째는 형상과 같은 성품을 능히 알고, 여섯째는 메아리 같은 성품을 능히 알고, 일곱째는 환영과 같은 성품을 능히 알고, 여덟째는 머묾이 없는 성품을 능히 알고, 아홉째는 요동하는 성품을 능히 알고, 열째는 연기의 성품을 능히 아느니라.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갖는다.
‘여러 법이 이와 같이 공하고, 이와 같이 있는 바 없고, 이와 같이 굳건하지 않고, 이와 같이 그림자에 비유되고, 이와 같이 형상에 비유되고, 이와 같이 메아리에 비유되고, 이와 같이 환영에 비유되고, 이와 같이 머묾이 없고, 이와 같이 요동하고, 이와 같이 반연하여 일어났구나.’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한다.
‘이 여러 법에서 남을 능히 깨달아 알았고, 멸함을 능히 깨달아 알았다.’보살은 또다시 생각한다.
‘온갖 모든 법은 무슨 인으로 생겨나며 무슨 인으로 멸하는가? 무명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능히 생기게 하니, 무명이 머리가 되고, 무명이 의지가 된다.’
무명을 의지하면 모든 행(行)이 생겨나고, 모든 행을 의지하면 모든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이 생겨남을 의지하면 명색(名色)이 생겨나고, 명색을 의지하면 6처(處)가 생겨나고, 육처를 의지하면 모든 촉(觸)이 생겨나고,모든 촉이 생겨나면 수(受)를 시설하고, 수가 있음으로써 애(愛)를 시설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애에 핍박됨으로 취(取)를 시설했으니, 취는 말하자면 받아서 가짐이니라. 취가 생김으로써 유가 서로 계속하여 유를 의지하는 까닭에 생겨나고, 생겨남을 의지하는 까닭에 늙음이 있고 늙음이 있음으로써 보특가라는 모두 그 죽음이 있다. 죽음이 있음으로써 곧 능히 근심ㆍ슬픔ㆍ고통ㆍ고달픔이 나는 것이니, 이 모든 법이 쌓이고 모여서 큰 고통의 덩어리가 되느니라.이런 까닭에 지혜 있는 이는 응당 정근하여 무명을 허물어 없애어 그 뿌리를 빼어야 할 것이니,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여러 법이 멸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마치 목숨의 뿌리가 멸해지면 나머지 근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무명이 멸하는 까닭으로 곧 의지가 없어지니 의지가 없음으로써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며, 나고 죽는 인이 멸하는 까닭에, 모든 갈래의 과[趣果]가 멸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보살은 열반을 능히 얻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연기의 선교를 얻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는 까닭에 능히 스스로 깨달아 아니 어떤 것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보살은 자기 자신이 이 누구의 종성(種姓)인가를 관찰해야 하니, ‘바라문ㆍ찰제리의 종족이거나 혹은 거사의 집안으로 부귀하거나 가난하거나 천한 모든 종속 가운데 어느 종성에 태어났었는가’이다. 보살이 비록 여러 부귀한 종성 가운데 태어났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것을 믿고 교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만일 가난하고 천한 종성 가운데에 태어났거든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니 ‘나는 옛적에 여러 가지 잡스런 업을 일찍 지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나로 하여금 이 종성에 태어나게 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인연으로써 여러 세계를 싫어하고 여의려 하고, 싫어하여 여의려 함으로써 출가를 구하느니라.둘째는 출가를 하고 나서는, 생각을 응당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무슨 뜻을 위하여 출가하였나?’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을 하여야 한다.
‘내가 이제 출가함은 나도 제도하고, 남으로 하여금 제도를 얻게 함이며, 나도 해탈을 얻고, 남들도 해탈하게 하고자 함을 위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언제나 게으름을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셋째는 보살은 응당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내가 이제 출가함은 모든 죄장(罪障)과 좋지 못한 법을 모두 덜어 없애고자 함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죄를 이미 능히 끊어 없앴으면 마땅히 스스로 마음에 환희하고 즐거움이 날 것이지만, 만일 끊지 못했으면 끊게 하기 위하여 응당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넷째는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여야 한다.
‘나는 벌써 출가하였으니 온갖 좋은 법을 모두 늘리고 자라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 좋은 법을 이미 늘리고 자라게 함을 얻었으면 마음에 기쁘고 즐거움이 일어날 것이지만, 만일 아직 늘고 자라지 못했으면 그로 하여금 늘리고 자라게 하기 위하여 은근히 닦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다섯째는 보살은 또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여야 한다.
‘만일 좋은 법을 늘리고 자라게 하여 죄장을 덜어 없앴으면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높은 이에게 의지해야 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응당 오파다야(鄔波馱耶:親敎師)를 따라야 하느니라. 그가 계를 지녔거나 계를 범하거나 들은 것이 적거나 들은 것이 많거나, 혹 소문이 났거나 혹 소문이 없거나 간에, 인도하는 스승으로 생각하기를 마치 부처님과 같이 여겨, 깨끗한 믿음을 내어 환희하고 즐겨하여야 하느니라.여섯째는 보살은 마땅히 아차리야(阿遮利耶:依支師)를 늘 소중히 여기며 공경하고 공양하되, 이런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이제 아차리야에게 의지하고 있으므로 보리분법(菩提分法)에서 원만치 못한 것은 원만하게 하기를 원하며, 번뇌법에서 아직 끊지 못한 것은 덜어 끊기를 원한다.’
보살은 아차리야를 받들어 섬기기를 오파다야와 같이 생각하여, 만일 좋은 법이 있으면 수순하여 거두어 지니고, 만일 좋지 못한 법이 있거든 짓지 않을 줄 깨달아 알아,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환희와 즐거움을 내어야 하느니라.일곱째는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누가 나의 스승이신가?’
다시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온갖 지혜 있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되시니, 어떤 이가 온갖 지혜를 가지신 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을 깨달아 알고 세간을 불쌍히 여기어 능히 대비를 일으켜서 큰 복밭이 되시고, 온갖 세간 천ㆍ인ㆍ아수라 등과 더불어 큰 궤범(軌範)이 되신 이가 이 나를 이끄는 스승이시다.’보살은 이로 말미암아 환희하고 즐거워하여 큰 이익을 얻느니라.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나의 스승이시니, 부처님께서 연설하신 성도(聖道)의 학처(學處)는 내가 마땅히 닦아 익혀야 하고, 목숨이 마칠 때까지 어기고 범하는 일이 없으리라. 나는 응당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을 존경하고 공양하여 마음에 항상 따라 순종하리라.’여덟째는 보살은 생각을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누구를 좇아 밥을 빌어 얻을까?’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저 도시나 시골의 모든 바라문, 찰제리 등에게서 밥을 빌어 얻으니,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밥을 보시한 까닭으로 큰 과보를 얻어 큰 이익과 큰 위덕을 얻게 하기 위하여 밥을 비는 것이다.’아홉째는 보살은 이렇게 생각을 하여야 한다.
‘도시나 시골의 모든 바라문이나 찰제리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나에게 밥을 줄까?’
보살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틀림없이 나를 사문(沙門)이라 생각하고, 비구라 생각하고, 복밭[福田]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밥을 주리라.’
그리고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
‘나는 다만 사문이며 복밭의 사람이므로 모두 닦아 익혀야 한다.’열째는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시작함이 없는 나고 죽음을 나는 이제 벗어났다. 어떤 것이 벗어난 것인가?’
보살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출가하여 비구의 법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첫째로 벗어난 것이요, 나는 이제 사문의 공덕을 성취하였으니 이것이 둘째의 벗어난 것이요, 나는 항상 정진하여 게으름을 여의고 법의 성품을 증득한 까닭에 시작함이 없는 생사에서 능히 벗어났으니 이것이 셋째의 벗어남이요,나는 꼭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등각(等覺)을 나타낼 것이니 이것이 넷째의 벗어남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여 능히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을 얻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세상을 능히 아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거만한 이는 능히 스스로 낮추어야 하고, 둘째는 교만한 이는 교만함을 능히 여의어야 하고, 셋째는 삿되고 왜곡된 이는 능히 순진하고 곧아야 하고, 넷째는 허망하고 속이는 이는 능히 진실하게 말해야 하고, 다섯째는 나쁜 말 하는 이는 능히 사랑스러운 말을 해야 하고,여섯째는 굳센 이는 능히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하고, 일곱째는 포악한 이는 늘 능히 욕됨을 참아야 하고, 여덟째는 화내고 노하는 이는 사랑함을 능히 닦아야 하고, 아홉째는 고통스러운 이는 불쌍히 여김을 능히 닦아야 하고, 열째는 인색한 이는 보시함을 능히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세상을 능히 아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청정한 불국토[佛刹]에 태어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계의 이지러짐이 없고, 잡됨이 없음을 성취해야 하니, 계에 더러운 점이 없으면 계의 청정을 얻은 것이고, 둘째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마음에 평등함을 얻고, 셋째는 넓고 큰 선근을 능히 성취하고, 넷째는 이익과 명칭과 공경과 찬탄을 마음에서 버려 여의어서 늘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고,다섯째는 청정한 믿음을 얻어 마음에 의심함이 없고, 여섯째는 늘 닦아 정진하여 게으른 마음을 멀리 여의고, 일곱째는 고요한 정에 능히 들어가 산란한 마음이 없고, 여덟째는 능히 많이 들어 악한 지혜가 없고, 아홉째는 예리한 지혜를 성취하여 둔한 근성이 아니고, 열째는 자비의 성품이 있고, 손해 하는 마음이 없느니라.”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열 가지 법이 구족하게 되어서 바야흐로 태어나게 될 것인데, 만일 빠트리는 것이 있으면 능히 태어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한 법이라도 성취하여 빠트림이 없고, 조금도 어기어 범함도 없이 곱고 희고 청정함을 얻으면, 저 보살은 곧 열 가지 법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청정한 불국토에 태어나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태장(胎藏)에 처하되 티끌과 때에 물들지 않게 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여래의 형상을 만들고, 둘째는 파괴된 모든 부처님의 제다(制多)를 수리하고, 셋째는 여러 가지 묘한 향으로써 부처님 제다에 발라 공양하고, 넷째는 여러 가지 향수로써 부처님의 형상을 씻어드려 공양하고, 다섯째는 부처님 제다 가운데에서 소제하고 물 뿌리고 땅에 발라서 공양하고,여섯째는 친히 부모님을 능히 받들어 공양하고, 일곱째는 친히 아차리야와 오파다야에게 능히 공양하고, 여덟째는 친히 범행을 닦는 사람들을 공양하되, 보리의 마음에 원함이 없고, 아홉째는 보살은 선근으로써 중생에게 돌려 보시함이니, 자기의 선근으로 말미암아 하여금 태(胎)의 때에 염착하지 않고 태어나게 하고, 열째는 보살이 회향함이니, 즉 의요(意樂)가 은근하고 진중하여 맹렬하고 날카롭고 몹시 깊으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태장에 처하되 티끌과 때에 물들지 않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집을 버리고 출가함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취하는 것이 없고, 둘째는 잡되거나 어지럽게 살지 않고, 셋째는 경계를 싫어하여 등지고, 넷째는 경계를 애착함을 여의고, 다섯째는 경계의 허물과 근심에 애착함을 멀리 여의고, 여섯째는 부처님이 시설하신 학처(學處)에서 공경하고 존중하여 능히 잘 닦아 익혀 용맹정진하고,일곱째는 음식이나 의복이나 이부자리나 의약 등 물건을 받는 데 따라 마음으로 늘 만족할 줄 알고, 여덟째는 발우와 가사ㆍ이부자리에서 온갖 것을 쌓아 모으는 것을 능히 버리고, 아홉째는 경계 가운데에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싫어서 여읠 생각을 일으키고, 열째는 늘 부지런히 닦아 익혀 능히 현전에서 고요하게 사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집을 버리고 출가함을 얻느니라.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깨끗한 목숨을 능히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이양(利養)을 위하여 거짓과 속이고 아첨하고 왜곡함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 둘째는 이양을 위하여 그 모양을 나타냄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 셋째는 이양을 위하여 헛된 말을 하고 고동침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넷째는 악하게 이양을 구함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 다섯째는 법 아니게 이양함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 여섯째는 깨끗하지 못한 이양을 능히 잘 버려 여의고, 일곱째는 이양에 탐하여 집착하지 않고, 여덟째는 물들어 집착하지 않은 이양을 얻고, 아홉째는 성품이 뜨겁고 고달프지 않고, 열째는 법대로 이양하여 잘 능히 만족할 줄 아느니라.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이양을 위하여 거짓과 속이고 아첨하고 왜곡하는 것을 능히 잘 버려 여의는 것인가?
말하자면 보살은 이양의 인연을 위하여 몸ㆍ말ㆍ마음의 업으로 거짓과 속이는 짓을 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몸으로 거짓과 속이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인가?
말하자면 보살은 시주하는 사람이나 보시를 돕는 사람을 보아도 위의를 나타내지 않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위의를 안 나타내는 것인가?
말하자면 보살은 만일 발을 옮길 때면 속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며, 발을 내려놓을 때에도 앞으로 여덟자[八尺:一尋]만 보고, 생각하는 모양을 하지 않으며, 또한 속여 거짓의 짓도 하지 않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곧게만 보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말로 거짓과 속이지 않는 것인가?
말하자면 보살은 이양을 위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천천히 말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말하며, 따라 순응하는 말을 하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으로 거짓하거나 속이지 않는 것인가?
만일 시주자나 보시를 도운 사람이 청하여 불렀을 적에, 보살은 이양을 위하지 않아 말로는 욕심이 적은 것으로 나타내고, 마음으로는 널리 탐해 구하거나 속으로 대단히 고달픔을 품지 않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이양을 위하지 않아 거짓과 속이고 아첨하거나 왜곡된 짓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이양을 위해서 그 모양을 나타냄을 능히 잘 버려 여의는 것인가?
보살이 만일 시주자나 보시를 도운 이를 보면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옷과 발우, 병의 연분인 의약은 저 시주자나 보시를 도운 사람의 것이다’라 하고, 비록 보시를 하지 않더라도 보살은 끝내 저들을 쫓아가서 빌지 않느니라. 이것을 일러 보살이 이양을 위하여 그 모습을 나타냄을 능히 버려 여읨이라 하느니라.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이양을 위하여 빈말[虛言]을 하여 떠드는 것을 잘 능히 버려 여의는 것인가?
보살이 만일 시주자와 보시를 도운 이를 보면 끝내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니, ‘아무개네 시주가 무슨 일이나 물건을 나에게 시주했으므로, 나는 무슨 물건으로써 저 사람의 은혜를 갚았다’고 말하며, 또 ‘아무개는 내가 계를 지니고, 들은 것이 많고 욕심이 적다 하여 저런 물건을 나에게 시주하였으므로 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거두어 받았노라’고 말하느니라. 이 이름이 보살이 이양을 위하여 빈말을 하여 떠드는 것을 잘 능히 버려 여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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