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목련문계율중오백경중사(佛說目連問戒律中五百輕重事)
불설목련문계율중오백경중사(佛說目連問戒律中五百輕重事)
실역(失譯)
주호찬 번역
1. 오편사품(五篇事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한 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이때 목련(目連)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여쭙고자 하니,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자세히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네가 묻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크게 이롭게 할 수 있으니, 네 마음대로 묻도록 하여라.”
목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세의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업신여겨서 중학계(衆學戒)1)를 범하고 삼보(三寶)의 물건을 함부로 쓰면, 마땅히 어느 곳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주의하여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만약 비구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 부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업신여겨서 중학계를 범한다면, 사천왕(四天王)의 수명으로 5백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 세계의 햇수로는 9백천 년[九百千年] 동안이니라.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2)를 범한다면,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수명으로 천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 세계의 햇수로는 3억 60천 년이니라.
바야제(波夜提)3)를 범한다면 야마천(夜摩天)의 수명으로 2천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세계의 햇수로는 20억천 년이니라.
투란차(偸蘭遮)4)를 범한다면 도솔천(兜率天)의 수명으로 4천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 세계의 햇수로는 50억 60천 년이니라.
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5)를 범한다면 불교락천(不憍樂天)의 수명으로 8천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 세계의 햇수로는 230억 40천 년이니라.
바라이(波羅夷)6)를 범한다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수명으로
16천 년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니, 인간 세계의 햇수로는 921억 60천 년이니라.”
2. 문불사품(問佛事品)
“불물(佛物)7)로서 먼저 한 곳에 있던 것을 어느 비구가 팔아서 다른 곳에서 불사(佛事)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범하는 것입니까?”
“바라이[棄]를 범한 것이니라. 일체의 불물(佛物)은 옮겨서는 안 되니, 만약에 어떤 재난이 생겨서 승가 대중이 모두 떠나가게 되는 경우에는 마땅히 승가 대중에게 알려야 하며, 만약 승가 대중이 허락한다면, 그것을 팔아서 다른 곳으로 가져가더라도 죄가 되지 않느니라.”
“불물(佛物)로 공양구(供養具)를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살 수 있느니라.”
“불물로 지은 집을 곧바로 돈을 받고 빌려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일체의 불물은 살 수는 있으나 돈을 받고 빌려 줄 수는 없느니라.”
“비구가 불사(佛事)를 할 때, 불물인 불노(佛奴)8)나 소, 당나귀나 말을 빌려다가 부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그것이 처음부터 불물인 줄을 알았다면 빌려다 부릴 수 없으나 알지 못하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으니, 법답게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절의 땅에다가 탑을 세우고서 불물로 울타리를 쳐서 막아놓았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머물러도 됩니까, 안됩니까?”
“만약에 알면서도 일부러 들어간다면 바일제[墮]를 범하는 것이나 알지 못했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에 알면서도 짐짓 머물러서 세 번을 충고하도록 나오지 않는다면 승잔[決斷]을 범하는 것이며, 네 번을 충고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전에 있던 불당(佛堂)이 무너져서 주인이 다시 개인적인 재산을 내어 불당을 짓느라고 승가에 재물을 보시하는 경우에 승가에서는 그것을 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취할 수 없느니라.”
“절의 땅에 불물을 써서 울타리를 쳤다면, 그 안에 전부터 있던 우물과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먹을 수 없느니라. 만약에 그것이 시주하는 사람의 물건으로서 불사(佛事)를 하는데 먼저 꼭 과일과 우물과 채소로써 승가에 보시한 것이라면 먹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느니라. 그것을 다섯 배의 값을 주고 사거나, 돈을 주고 사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먹는다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모두 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탑을 청소하여 생긴 흙을 버리는 것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버릴 수 있으니, 다른 곳에 써서는 아니 되느니라.”
“오랫동안 불물(佛物)에 대하여 빚을 졌으면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곧바로 본래의 물건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니, 불물은 들고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더 보태어서 갚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옛날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한 비구가 정진을 열심히 하여 매우 총명하였다. 어느 한 바라문이 비구가 정진을 열심히 하고 매우 총명한 것을 알고는 자신의 딸을 데려다가 비구에게 보시하여 비구니를 만들었다. 비구는 곧 그녀를 받아들였는데, 그녀의 단정한 용모에 마음이 흔들려서 나중에 청정하지 못한 생각을 내어 곧 함께 살면서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의 물건 각각 십만 전(錢)씩을 먹고 입는 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비구는 지극히 총명하여 능히 설법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네 가지의 도과(道果)를 얻게 할 수 있었으므로, 스스로 사유하여 자신의 죄가 매우 크고 무거움을 알고는 곧 삼보의 물건을 갚으려고 하였다. 그는 곧 사거국[沙國]으로 가서 구걸하여 돈과 물건을 얻어서 되돌아와 그것을 갚으려고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산 속에서 칠보사(七步蛇)9)에게 물렸다.
비구는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걷고 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알았으므로 여섯 걸음 안에 제자의 처소로 가서 갚을 물건을 나누어 주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면서 말하기를 ‘물건을 갚고 나면 너는 이곳으로 돌아오너라.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하였다.
제자가 물건을 갚고서 되돌아와 스승에게 알리니, 비구는 곧 일곱 번째의 걸음을 딛고 죽었다.
비구는 죽어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졌는데, 처음 지옥에 들어가자 따뜻하기만 하고 뜨거운 고통이 이르지 않으므로 비구는 그곳을 따뜻한 방이라고 생각하고는 곧 큰소리로 경문(經文)을 노래와 주문으로 읊으면서 축원을 하니, 지옥에 있던 죄인들과 귀신들이 경 읽는 소리를 듣고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벗어났다. 옥졸(獄卒)이 크게 성을 내어 쇠로 된 몽둥이로 때리니, 그 비구는 죽어서 삼십삼천(三十三天)에 태어났다.
이것으로 증험하여 보더라도 불물(佛物)과 법물(法物)과 승물(僧物)에 대하여 빚을 지고서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알겠거니와, 비록 다시 죄를 받더라도 때를 얻게 되면 벗어나는 것이니라.”
“불물을 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어 이자를 받고서 받은 이자를 자신이 쓴다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자는 불물과 한 몸이니, 모두가 중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이자와 불물을 합하는 것은 오히려 복이 되지 않으니,
법신(法身)을 부수어서 형상으로 삼기 때문이니라.”
“불도(佛圖)10)의 주인이 불노(佛奴)인 어린 아이를 보내어 비구에게 주었다면 비구는 그 아이를 부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릴 수 없으니, 이 아이는 불물이기 때문이니라.”
“비구가 절에 소속된 고용인과 함께 불물인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먹을 수 없느니라. 비구는 원래 남의 고용인이 되지 않는 법이거늘 하물며 불물인 의복과 음식을 가져다가 쓰는 것이겠느냐?”
“재가인[白衣]과 절에 소속된 고용인이 불물을 얻어서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승가에게 공양하기를 청한다면 승가는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먹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불사(佛事)와 법사(法事)를 하는 데 있어서 금과 은과 돈에 손을 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손대서는 안 되니, 손대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이 부처님께 소와 당나귀와 말과 노비를 보시하여 불사나 법사를 하게 한다면 그것을 받아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받아서 써도 되느니라. 그러나 활이나 칼 같은 병장기를 팔아서 마련한 것이라면 하나라도 받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다른 사람이 부처님께 밝게 빛나는 집[光明室宅]으로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을 보시한다면 그곳에 머물러도 됩니까, 안 됩니까?”
“머물러서는 안 되니, 그것은 바로 불물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광명을 이어받았다가 낮에 소멸시켜도 됩니까, 안 됩니까?”
“소멸시켜서는 아니 되느니라. 만약에 소멸시킨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밝음과 어둠이 없으시지만 광명을 보시한 자는 복덕을 얻기 때문에 광명을 소멸시키는 것은 죄가 되느니라.”
“불당(佛堂)은 아니지만 불상(佛像)이 모셔져 있는 곳에서 밥을 먹거나 누워도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되느니라.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신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앞에서 식사를 하거나 누울 수 있거늘, 하물며 불상 앞에서야 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누울 때에는 반드시 가려야 한다.
만약 등불이 켜져 있는 경우에는 불빛이 지나는 것을 따라서 누워서는 안 되며, 만약에 스스로 등불을 켰을 때에는 누워도 되느니라.”
“불도(佛圖)나 불탑(佛塔)이나 불장(佛牆)의 위를 타넘고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알지 못하고서 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에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서 꼭 그렇게 해야 되는 경우라면 그 위를 타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알면서도 함부로 하여 타넘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세 번을 충고하였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며, 네 번을 충고하였는데도
일부러 올라가서 타넘는 것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어느 물건을 지정하여 그것으로 부처님을 조성하려고 하였다가, 시간이 경과한 뒤에 다시 다른 물건으로 쓰고 전에 지정하였던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 이미 그렇게 하기로 허락하였기 때문이니라.”
“불상의 모양이 좋고 나쁨을 말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일체의 불상은 그 좋고 나쁨을 묻지 않는 것이니 모양을 말로 나타내서는 안 되며, 그 죄가 매우 무거우니라.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불상 위에 비단으로 만든 옷을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서는 안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불상을 만들다가 코에 콧구멍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콧구멍을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안 되느니라.”
“불장(佛牆)에다가 어떤 물건을 기대어 둘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대놓아서는 안 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옛날에 어떤 비구가 절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하였는데, 관상을 볼 줄 아는 한 바라문이 있다가 비구의 상(相)을 보고서 비구가 천자(天子)가 될 상임을 알고는 곧 비구에게 말하기를 ‘저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당신에게 시집을 보내겠습니다’라고 하니, 비구가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비구는 곧 가지고 있던 주장자[錫杖]를 절의 담장에 기대어 놓고는 절에 들어가서 불탑(佛塔)에 예배를 드리고 나오니, 바라문은 더 이상 비구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
비구가 묻기를 ‘나에게 딸을 주시겠습니까, 주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바라문이 말하기를 ‘주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비구가 ‘조금 전에는 주겠다고 하더니 무슨 까닭에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바라문이 말하기를 ‘조금 전에는 비구께서 크게 귀하게 될 상(相)이 있음을 보았던 까닭에 준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상이 없으니, 그러므로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공덕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탑과 절의 담장이나 벽에는 물건을 기대어 놓아서는 안 되느니라. 이미 계율을 범한 데다가 또한 한량없는 공덕을 소멸시키는 것이니라.”
“불물(佛物)을 가지고서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이나 축생의 형상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의 곁에서라면 만들어도 되느니라.”
“비구가 어떤 사람을 득도(得度)시키는데 그 사람의 근본[本末]을 물어보지 않고 시켰다가 나중에 그가 불노(佛奴)였음을 알고서도 급히 보내지 않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불노인 줄을 알면서 득도(得度)를 시켰다면 중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면 알게 된 즉시 재촉하여 급히 보내야 되니, 급히 보내지 않는다면 또한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그 사람이 대도인(大道人)이라면 어떻습니까?”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니라.”
“사사로운 재산으로 비구를 고용하여 불상(佛像)을 만들었다면 불상을 만든 자는 물건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져서는 안 되느니라.”
“전에 불번(佛幡) 위에 걸려 있던 것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불사(佛事)를 해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불사에는 쓸 수 있지만, 만약에 보시를 한 시주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과거 일곱 부처님[七佛]께 모두 예배를 드려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도 되니, 일곱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법신(法身)으로서 동일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세 번의 법회를 열겠다고 하였다가 나중에 한 번만 열거나, 세 번에 걸쳐서 향을 나누어 드리겠다고 하였다가 나중에 한 번만 나누어 드리거나, 세 번을 보시하기로 하였다가 한 번만 보시한다면 그렇게 하여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 스스로 말을 어기는 것은 죄를 얻는 것이니라.”
“비구가 승잔(僧殘)을 범하고서 불지(佛地) 중에서 참회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느니라.”
“절이 없어진 지 오래되어 아무런 담장이나 경계가 없어서 절의 땅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 경작을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그 땅의 경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모르겠거든 마땅히 생각으로 두둑을 지어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이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죄가 없느니라.”
“불물(佛物)을 가지고서 귀자모(鬼子母)11)의 집과 그의 형상을 만든다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가 되니, 그 죄는 불물(佛物)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과 같으니라.”
“비구가 자기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쓰러뜨려 그것으로 절이나 불탑(佛塔)을 만들거나 형상을 조성한다면 복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오히려 지옥에 떨어져서 큰 죄업의 고통을 받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무슨 복이 있겠느냐? 그것은 일부러 계율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불탑 앞에서 비구에게 예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 그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불상(佛像)을 팔아버린다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그 죄가 부모를 팔아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3. 문법사품(問法事品)
“사람들 앞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설법을 하는데, 속인의 옷을 입고서 설법을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법문을 듣는 자와 설법을 하는 자 모두가 중학계법(衆學戒法)을 범하는 것이니라. 세 번을 충고하였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돌길라(突吉羅)12)를 범하는 것이며, 다시 세 번을 더 충고하였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며, 다시 세 번을 더 충고하였는데도 고치지 아니하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충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서 세 번을 설한다면 계(戒)가 더욱 늘어나느니라.”
“설법을 하는 사람은 법답게 하는데 설법을 듣는 자가 법을 법답게 듣지 않는다면 설법을 해도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위와 같으니라.”
“스님들이 앉을 때 이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곳에 나중에 그 위에 앉는다면 그것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앉는 곳이라면 되지 않으나, 이전에 스님들이 앉던 곳이라면 되느니라.”
“다른 사람에게 설법을 해주도록 부탁했을 때 먼저 높은 자리에 앉는 것과 불물로 공양한 장막 아래에 앉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까, 아닙니까?”
“두 가지 경우 모두 모르고서 하였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나 알고서 하였다면 안 되느니라.”
“만약에 어떤 사람이 비구에게 독경을 하거나 설법을 해주도록 청하고서 물건을 보시한다면 그것을 받아도 됩니까, 안 됩니까?”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것을 받는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나, 탐심이 없이 받는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에 가사와 발우가 없어서 받는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스님들 가운데서 설법을 하는데 높은 자리 위에 올라가 책상에 기대어 진미(塵尾)를 잡는다면 됩니까, 안 됩니까?”
“병이 나지 않았는데도 책상에 기대어 진미(塵尾)를 잡는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동물의 꼬리나 깃털로 만든 것이 아니라면 모두 괜찮으니라.”
“경전과 계율을 숨기는 것은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스승이 속가의 옷을 입고 있다면 스승을 마주하고 예의를 갖추어 설법을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예의를 갖추어야 하니, 병이 나지 않았으면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할 수 없느니라.”
“재가인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다면 그에게 설법을 해야 됩니까, 하지 말아야 됩니까?”
“병이 나서 반드시 머리를 덮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자에게 설법을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경전 위에 먼지나 흙이나 풀이나 더러운 것이 있는 경우에 입으로 불어서 날려버려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비구가 경전을 베껴주고서 물건을 받아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경전을 써주고서 물건을 받는 것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경전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에 함부로 하는 생각이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한다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나, 함부로 하는 생각이 없이 그렇게 한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계율[律典]이 쓰이지 않아 영락한 경우에 그것을 불태워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알지 못하고서 그렇게 하더라도 죄가 되니, 계율을 불태우는 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며, 알면서 불태우는 것도 죄가 되니 일부러 불태우는 것은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방편으로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과 같고, 또한 부모를 불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4. 문결계법품(問結界法品)
“결계(結界)13)를 하는 법은 어떻습니까?”
“결계를 하는 법은 산이나 연못 같이 속인이 없는 곳인 경우에는 그 멀고 가까움을 마음대로 정하되, 성읍이나 마을에 있는 경우에는 구역을 멀게 정해서는 안 되며, 또한 밤에 결계를 해서도 안 되느니라.
결계를 할 때에는 반드시 비구가 네 모서리의 끝에 서서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되니, 만약 외부인이 들어오게 되면 결계가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전에 결계를 했던 장소는 승가 대중과 재가 신도와 절에 있는 노비들이 모두 계장(戒場) 위에 도착한 뒤에 사방을 바로잡아 측량해야 하느니라.
결계를 할 때 네 가지 장소는 제외하니, 첫째는 마을이며, 둘째는 마을 밖에 있는 속인들의 경작지로서 속인들이 늘 경작하고 있는 곳이며, 셋째는 아란야(阿蘭若)와 같이 산택(山澤)에서 홀로 거처하는 곳으로서 계(戒)를 설하는 작법(作法:羯磨)을 행할 때에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이 생기기 쉽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대중에게 알리고 별도로 작은 구역을 구하여 만약 대중이 허락한다면 할 수 있다. 그곳에 대중이 다섯 명이 안 된다면 승가로 하여금 마땅히 별도의 결계를 하도록 해야 되는데, 이것을 일러 아란야좌처(阿蘭若坐處)라고 하느니라. 넷째는 계(戒)를 주는 곳이니라. 먼저 결계를 함에 있어서 장소가 고르지 않으면 결계장소를 깨끗이 해야 하는데, 결계장소를 깨끗이 하는 일에 힘쓰거나 혹은 먼저 대계(大界)를 구획하고 나중에 계를 받는 장소를 구획하여 그 안에서 계를 받느니라.
비공(卑公)이 말한 것과 같이 ‘얻는 것이 없을까 걱정이 되지마는 어찌 힘입는 바를 제정하지 않는 것과 같음을 모르겠습니까?
이 길에는 요행이 있을 만합니다’14)라고 하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에 병이 있는 비구라면 승가에 갈 수가 없으니 별도로 한 집을 구하여 그 안에서 결계(結界)를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면, 승가에서는 또한 마땅히 들어주어야 되니, 먼저 대계(大界)를 풀고 별도로 결계를 하여 별도의 결계를 마친 뒤에, 다시 대계를 구획하느니라. 결계를 하고 나면 일체의 비구는 밤에 가사를 수(受)할 수 없으며, 결계 안에 있는 어느 한 주처(住處)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한 비구라도 또한 건치(腱稚)15)를 치고 자세히 계(戒)를 설할 수 있으니, 먼저 사방의 승가를 향하여 참회 한 뒤에 설하되, 또한 세 번을 말할 수 있느니라. 세 번 말한다는 것은 세 번 설하는 것이니라.”
“결계를 하는 것은 불보(佛寶)에 소속된 모든 땅에서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없느니라. 그 속에서 계를 받는데, 만약에 먼저 법을 알지 못하고서 받았다면 계를 얻을 수 있겠으나, 계사(戒師)인 비구가 알면서도 일부러 어겼다면 죄가 있느니라.”
“떠가는 배[舟船] 위에서도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사미나 재가인(在家人)이 배를 저어 강둑에 배를 댄 뒤에 결계를 하거나, 배를 저어 나가지 못하고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는 어느 한 곳에 배를 댄 뒤에 결계를 하느니라. 결계를 한 뒤에 비구는 밤에 가사를 수할 수 없으며, 물속에 들어가서도 안 되느니라.”
“승가 대중이 모두 떠나갔는데 오직 사미(沙彌)만이 결계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직 한 사람의 청신사(淸信士)만 있더라도 결계는 무너지지 않거늘 하물며 사미이겠느냐?
모두 떠나가고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면 계(界)는 무너지니, 만약에 승가 대중이 모두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또한 풀[解] 필요가 없느니라.”
“도적들이 와서 결계(結界) 안의 비구를 죽이면 결계는 무너지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무너지지 않는 것이니라.”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재가인(在家人)의 집에서 결계를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다섯 사람 이상이라야 결계를 할 수 있느니라.”
“결계를 하는 데 있어서 모든 흐르는 물과 못의 물에서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여 있는 모든 물에서는 결계를 할 수 있으나 나뉘어 흐르는 물에서는 할 수 없으니, 그 경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니라.”
“결계를 한 뒤에 건치를 치지 않는다면 결계는 무너지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니라.”
“왕의 모든 길에서도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결계를 할 당시에 사람을 시켜서 길의 양 끝에서 행인들이 다니지 못하게 한 뒤에 결계를 하면 되느니라.”
“주인이 없는 땅에서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으니, 울단월(鬱單越)16)의 법과 같으니라.”
“먼저 결계를 하였는데 나중에 큰 홍수가 나거나, 혹은 길이가 열다섯 걸음이나 되는 구덩이를 파거나, 혹은 다시 그 속에서 탐욕을 행한다면 그 결계는 무너지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 모든 경우에도 결계는 무너지지 않느니라. 그 사람이 설사 큰 구덩이를 파서 깊이와 폭이 1유순(由旬)이 되게 한다고 말하더라도 결계는 오히려 무너지지 않거늘 하물며 자잘한 구덩이쯤이겠느냐?
“비구가 비구니와 함께 결계 안에서 묵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묵을 수는 있지만, 또한 가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그 방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될 따름이니라.”
“승가에서 결계를 마친 뒤에 온 스님이 함께 머물면서 가사를 수하지 않는다면 가사를 잃는 것입니까, 잃지 않는 것입니까?”
“잃는 것이 아니니, 결계를 할 당시에 삼세(三世)의 승가와 함께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승가 대중이 모두 모이지 않았다면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서 대신 오는 자에게 부탁을 하였다면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느니라.”
“한 번 결계를 하게 되면 얼마큼의 시간을 지낼 수 있습니까?”
“연수(年數)의 제한을 두지 않으니, 만약에 시주(施主)가 그 땅을 더욱 늘려준다면 그 때서야 다시 결계를 할 따름이니라.”
“먼저 머물던 스님이 결계를 풀지 않고서 떠나갔다면 나중에 온 스님이 그 안에서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없느니라.”
“수계하는 장소에 결계(結界)할 때에는 반드시 모든 승가가 모여야 됩니까, 아니면 다소 조절할 수 있습니까?”
“다섯 사람 이상이면 되니, 대계(大界)가 없기 때문에 대중이 모이지 않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수계(受戒)하는 장소에 결계할 때에는 반드시 그 장소에 가야만 됩니까, 아니면 멀리서도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수계하는 장소에 가야만 결계를 할 수 있느니라.”
“두 무리가 결계하되 서로 배척하여 엇갈려 맺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서로 엇갈려서는 안 되니, 함께 결계해야 하느니라.”
“하나의 결계 안에서 두 개의 건치를 쳐서 울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두 개의 장소에서 계(戒)를 설하는 경우와 갖가지 승가의 일에 대해서 갈마(羯磨)를 하는 경우에는 안 되느니라. 오직 향을 사르고 음식을 먹을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니라.”
“승가 대중이 비구니와 함께 결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5. 문세좌사품(問歲坐事品)
“여름 안거(安居)는 어느 날에 결제(結制)할 수 있습니까?”
“4월 16일부터 5월 15일까지는 매일같이 결제할 수 있으니, 이것을 일러 좌초(坐初)라고 하느니라.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결제를 하지는 못하였지마는 5일이나 4일이나 3일 내지 30일 동안 전좌(前坐)를 잃지 않았다면, 이것을 일러서 ‘30일 동안 결제를 하고 하루 동안 안거를 마치고 법랍(法臘)을 더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앉는 사람은 오직 하루 동안 결제를 할 수 있으며, 7월 15일이 지나 안거를 완료하였는데 부득이한 일이 있는 경우에는 8월 15일까지는 매일같이 법랍을 더할 수 있으니, 이것을 일러서 ‘하루 동안 결제를 하고 30일 만에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더하는 것[受歲]17)’이라고 하느니라.”
“비구가 안거중에 부득이하게 외출을 할 일이 있어서 하게 되는 수일(受日)18)의 법은 안거를 시작할 때에 하는 것입니까, 외출을 할 때에 하는 것입니까?”
“안거를 시작할 때인 좌초(坐初)에 한다면 좋겠지만 외출을 하게 되었을 때 외출하는 날짜를 받는 것도 좋으니라. 수일(受日)을 하는 법은 외출을 하여 7일을 넘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그 이상의 날짜가 걸리게 되면 되돌아왔다가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하며, 그 경우에는 다시 7일 이내의 범위에서라야 다시 허가를 받을 수 있느니라. 만약 잊어버릴까 염려되는 경우라면 또한 그날 수일(受日)을 해도 되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기거하고 쓸 평상(平床)과 좌구(座具)와 방사(房舍)의 12물(物)을 받지 않고도 앉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필요가 없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삼보(三寶)에 관한 일이나 질병과 같은 갖가지의 부득이한 일로
결제한 장소를 옮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옮길 수 있느니라. 안거를 시작할 때에 마땅히 대중에게 알리고 대중들이 39일 동안의 말미를 허락하였는데 39일이 차고 다시 어떤 일이 있어서 또 나가게 된다면 39일을 외출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 39일 이내에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돌아올 수 없다면 또한 그 장소에서 안거를 마치고 법랍(法臘)을 더하더라도 범하는 것이 없느니라.
만약에 안거를 시작할 때에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외출을 하게 되었을 때에 말미를 받더라도 또한 되느니라.
만약에 안거를 한 지 39일이 지난 사람이 일이 있어서 다시 외출을 하는 경우에는 거듭해서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일이 끝나지 아니하여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또한 그 곳에서 안거를 마쳐도 되느니라.”
“안거를 하기는 하였으나 앉지는 않았다면 법랍을 더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먼저 결제하는 법도를 알지 못하였다면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더할 수 있지만, 알면서 일부러 어겼다면 안 되느니라.”
“결제도 하지 않고 앉지도 않고서 안거 후에 법랍을 더한다면 되겠습니까, 되지 않겠습니까?”
“먼저 결제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고 앉는 법도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면 법랍을 올리는 것은 되겠지만, 알자마자 곧바로 마땅히 승가 대중에게 참회를 해야 되느니라.
만약에 먼저 법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어겼다면 그것은 아니 되느니라.”
“결제를 하지 않고 앉았다면 법랍을 더하여 올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위에서의 경우와 같으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흐르는 물이나 못에 고여 있는 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결계(結界) 안에서라면 모두 해도 되며, 허락을 받아서 7일 동안 외출을 하는 경우에도 또한 물에 들어가도 되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승잔(僧殘)을 범하고서 뉘우치지 않았다면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비록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릴 수 있으니, 그 이유는 그가 비구이기 때문이니라.”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린 사람이 승단을 화합시키지 못한다면 법랍을 올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먼저 참회를 한 후에 법랍을 올려야 되느니라.
만약에 그 사람이 뉘우치지 않는다면 추방하고 법랍을 올릴 수가 있지만, 만약 기꺼이 추방을 당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대중은 마땅히 세 번을 충고하되 세 번을 충고하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며, 네 번을 충고하여도 듣지 않는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이런 경우에 힘으로 그를 결계(結界) 밖으로 추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가 나가지 않는다면 마땅히 한 방 안에 가두어 둔 뒤에 법랍을 올려야 괴로움이 없을 것이니, 그는 더 이상 비구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만약 나쁜 사람이 더 많아서
추방할 수 없다면 마땅히 결계 밖으로 피해야 할 것이니 그들과 함께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린다면 그것은 안 되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부채를 쥐고 부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털이나 깃털로 만든 일체의 부채를 손에 쥐어서는 안 되지만, 갈대나 대나무로 만든 부채는 손에 쥘 수 있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먼저 돌아가신 스승을 위하여 복을 지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있느니라. 다만 자신이 직접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되느니라.”
“나중에 앉은 사람이 7월 15일에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리고서 일어나 떠나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되느니라. 만약 먼저 알지 못해서 법랍을 올렸다면 되겠지만, 법도를 알면서 일부러 어기는 것은 안 되느니라.
만약 이미 화합하였다면 승가는 나아가 산가지[籌]를 받을 뿐이고, 만약 나중에 앉은 사람이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올렸다면 먼저 앉은 사람도 또한 그렇게 하느니라.”
“두 사람의 법랍(法臘)이 같은 경우에 법랍이 적은 사람이 앞에 앉고 많은 사람은 뒤에 앉는데, 앞에 앉은 사람은 이미 안거를 마치고서 일법랍(一法臘)을 더하였고 뒤에 앉은 사람은 더하지 않았다면, 한 달 동안에 누가 마땅히 법랍이 많은 것입니까?”
“먼저 법랍이 많은 사람이 많으니, 원래의 법랍[本日]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대중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결계(結界) 밖으로 잠깐 동안 외출을 하였다면 앉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참회를 한다면 앉을 수 있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똑같은 사유로 해서 세 번 외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앉지 않았던 열 명이나 다섯 사람이 와서 함께 같이 기거하면서 안거를 마치고서 법랍을 더하려고 한다면, 함께 살 수 있으며 함께 안거를 마치고 법랍을 더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나중에 앉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결제를 해야 하지만, 나중에 앉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느니라. 이 사람들이 전부 결제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다면 용납될 수 있지만, 알면서도 일부러 어긴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느니라.”
“결제를 하지 않았거나 안거 중에 외출을 허락받지 않았는데 이미 법랍을 받았다면 여름 안거를 지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법도를 알지 못하고서 이미 받았다면 법랍을 얻을 수는 있지만 여름 안거를 지낼 수는 없느니라. 만약에 이미 여름 안거에 들어갔다면 승가 대중이 한 번 충고를 하고 다시 받아들인다면 좋겠지만, 세 번을 충고하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참회한다면 다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받아들일 때에는 대중에게 알리고 대중이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해도 되느니라.”
“비구가 안거를 마치고서 법랍(法臘)을 올리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에 어느 비구가 안거를 마치고서 법랍을 올리지 않는다면 대중이 충고하여 법랍을 올리게 해야 할 것이니,
충고를 하는 것이 한 번이나 세 번에 이르러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세 번을 충고해도 법랍을 올리지 않는다면 승잔을 범하는 것이며, 네 번을 충고하여도 법랍을 올리지 않는다면 그는 사문이 아니니 이는 기꺼이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여름 안거에 새로 계(戒)를 받은 사람이 정오가 지나서 결제를 하였다면 법랍을 올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올릴 수 있으나, 다만 밤[後夜]에는 안 되느니라.”
“여름 안거 동안에 깜빡 잊고 대중에게 7일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 한 번 외출을 하였다면 앉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억을 하고서 곧바로 뉘우친다면 한 번은 앉을 수 있으나, 세 번 이상을 뉘우칠 수는 없느니라. 세 번 이상을 뉘우친다면 법랍을 올릴 수 없느니라.”
“안거가 끝나고 법랍을 올릴 때 비가 온다면 지붕 아래에서 수세(受歲)19)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어느 결제한 곳에 가서 적절하지 못할 경우 더 나아가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결제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되느니라. 그 결제를 한 곳에 이른 뒤에 앉을 수 있으니, 만약에 길에 승가가 머무는 곳이 있으면 마땅히 그곳에서 결제하여 이틀이나 사흘 동안 방사(房舍)를 다스린 뒤에 39일 동안의 외출 허가를 받으면 떠나갈 수 있으나, 만약에 승가가 머무는 곳이 없다면 다섯 사람 이상이 함께 결계(結界)를 하고서 앉아 있다가 한 두 사람을 머무르게 하여 결계를 지키게 하고 39일을 채운 뒤에야 떠나갈 수 있느니라. 만약에 뒤에 남아 있던 사람이 39일을 채우지 않고서 떠나간 경우에, 먼저 떠나간 사람이 그것을 몰랐다면 그 사람은 결제를 못한 것이 아니지만 뒤에 남았던 사람은 결제하지 못한 것이니라.”
“한 사람부터 네 사람까지의 비구가 속인의 집에서 결제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없느니라. 다섯 사람 이상이라야 결제를 할 수 있느니라.”
“한 사람의 비구가 고요한 처소에서 결제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먼저 결계(結界)를 하였던 곳이라면 두 사람 이상이 결제를 하는 것은 할 수 있으나, 한 사람이 결제를 하는 것은 안 되니, 함께 앉아서 결제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라. 결계를 했던 곳이 아니라면 앞의 두 가지 경우도 모두 안 되느니라.
만약에 별도로 앉아서 결제를 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승가에 청하여 결계를 한 뒤에야 할 수 있느니라.”
“비구가 여름 안거를 하는 동안에 남으로부터 청정한 보시를 받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물건을 기부 받되,
혹은 10일에서 석 달이 지나도록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탐내는 마음을 짓지 않는다면 받는 것은 때의 제한을 두지 않느니라.”
“여름 안거를 하는 동안에 결계한 지역 내에서 일이 있게 된 경우에는 마땅히 앉아 있어야 합니까, 앉아 있지 말아야 합니까?”
“복을 짓는 일이라면 지시하여 가르쳐 줄 수 있으나, 다른 일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안거 도중에 방사(房舍)가 부서져 마땅히 보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앉기 시작했더라도 그만두어야 합니까?”
“석 달의 안거 동안에 방사가 부서지면 그때에 바로 보수를 해야 하느니라.”
“안거를 마치고서 법랍(法臘)을 올릴 때에 비구니가 결계한 구역 안에 와서 수세(受歲)하기를 청한다면 마땅히 비구니와 함께 수세를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두 사람 이상의 비구니라면 되지만, 한 사람이라면 안 되느니라. 그 이유는 비구니가 혼자서 결계를 벗어났으니, 중죄(重罪)를 범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6. 문도인사품(問度人事品)
“한 사람의 비구가 사미(沙彌)를 득도(得度)20)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두 사람이라야 되느니라.”
“사미를 득도시키는 데 멀리서 화상(和尙)21)을 청해야 됩니까, 청하지 말아야 합니까?”
“청하지 말아야 되느니라.”
“법랍(法臘)이 5년이 채 되지 않은 사람이 득도시키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이며, 그의 제자는 계(戒)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법에 맞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득도를 시켰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며, 세 번을 충고하여도 그치지 않는다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그 제자가 그것이 법에 맞지 않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면 계를 얻을 수 있으나, 만약에 알았다면 얻을 수 없느니라.”
“비구가 전혀 계를 외우지도 않고 또한 갖가지 승가의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번 득도를 시키거나, 혹은 삼사(三師)22)가 된다면,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사람은 오히려 신심이 있는 사람이 보시하는 음식도 마땅히 먹어서는 안 될 것인데, 하물며 남을 득도시키는 것이겠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부모의 뜻이나 왕법(王法)을 따르지 않고 비구가 몰래 그 사람을 데려다가 득도를 시킨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중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관리가 노비를 달아나게 하여 비구에게 맡기고 도를 닦게 한 경우에 비구가 그것을 알고서 편히 머무르게만 하고 득도는 시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중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어느 집의 아이가 먼저 출가를 하였는데 부모가 나중에 출가하면서 먼저 출가하였던 자식에게 와서 맡긴다면,
그 아이는 부모를 득도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계율을 범한 비구가 다른 사람을 득도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죄를 범한 자는 다른 사람을 득도시킬 수 없느니라.
승잔(僧殘)을 범한 경우에도 위에서와 같으니라.
법랍이 5년 미만인 자가 여타의 경죄(輕罪)를 범하였다면 반드시 참회를 한 뒤에야 득도를 시킬 수 있느니라.”
“재가인(在家人)이 어느 한 비구에게 의지하여 출가를 하고자 하여 비구가 곧 그를 받아들이고 나서, 다시 그를 위하여 화상(和尙)에게 부탁하여 계사(戒師)로 삼았다면, 본래 의지했던 비구는 스승이 되는 것입니까, 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승이 아니니라. 나중에 따라서 법을 준 사람은 법사(法師)가 될 수 있으며, 처음 의지하여 따랐던 사람은 의지사(依止師)23)가 될 수 있느니라.”
“비구가 여러 번 제자를 득도시키거나, 혹 삼사(三師)가 되고서도 전혀 계율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옛날 가섭불(迦葉佛) 시대에 어느 한 비구가 제자를 득도시키고서 계율을 가르치지도 않고 훈계하지도 않았으므로 제자가 여러 가지로 법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다가 죽어서 용의 무리 가운데에 태어났느니라.
용법(龍法)에서는 7일에 한 번씩 마주 대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때에 불이 그의 몸을 태우고 뼈를 다 태우고서 조금 있다가 다시 태우고 반복하여 계속 몸을 태우니, 그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었느니라.
용이 곧 스스로 사유하기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고통이 이 지경에 이르는가?’라고 하고, 곧 숙명(宿命)을 관하니, 자신은 본래 사문이었는데 금계(禁戒)를 지키지 아니하였고, 스승도 또한 자기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곧 독한 마음을 내어 그 스승에게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서 스승을 해치고자 하였느니라.
나중에 그 스승이 5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게 되었는데 용이 물에서 나와 배를 잡으니, 사람들이 곧 묻기를 “너는 누구냐?”라고 하니 “나는 용이다”라고 하거늘, 사람들이 묻기를 “너는 무엇 때문에 배를 잡았는가?”라고 하니, 용이 대답하기를 “당신들이 이 비구를 배에서 내려준다면 당신들을 놓아주고 떠나가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묻기를 “이 비구가 당신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다른 사람은 전혀 찾지 않고 유독 이 비구를 찾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니, 용이 말하기를 “이 비구는 본래 나의 스승이었는데 나를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아서 나에게 지금 이와 같은 고통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그를 찾는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인 줄을 알고서 그 비구를 잡아서 물에 내려놓으려고 하니, 비구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물에 들어갈 것이니 나를 잡지 마시오”라고 하고는 곧 물에 뛰어들어 죽어서 많은 고통이 있는 곳에 태어나 헤아릴 수 없는 죄를 받았느니라.
이로써 증험하여 보건대 다른 사람을 득도시키는 일은 큰일이니,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7. 문수계사품(問受戒事品)
“사미가 10계(戒)를 범하거나, 계율을 하나나 둘이나 셋을 범하고서 뉘우치지 않았다면 대계(大戒)24)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참회하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지만,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법도를 몰랐다면 받을 수 있느니라.
수계법사(受戒法師)는 마땅히 사미에게 ‘네가 계를 범하였느냐, 범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어야 되며, 만약 사미가 계를 범하였다고 말한다면 곧바로 참회를 하게 해야 하느니라.
만약 본사(本師)가 묻지 않았다면 단상(壇上)에 있는 스승이 물어야 하며, 둘 다 모두 묻지 않는다면 스승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느니라.”
“이미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나서 사미 시절에 계율을 범한 것을 뉘우쳐도 됩니까, 안 됩니까?”
“뉘우쳐도 되니, 뉘우치는 법은 사미 시절에 뉘우치는 법과 같으니라.”
“사미가 단상(壇上)에서 구족계를 받으려고 하는데 속인의 옷을 입고 속인의 신발을 신었거나, 가사와 발우를 갖추지 못하여 빌렸다면, 그때에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속인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스승이 묻지 않았을 경우에만 구족계를 받을 수 없고 그 나머지의 경우에는 모두 받을 수 있으니, 스승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어느 비구가 계를 버리지 않고서, 혹 사미가 되거나, 혹 자신이 이미 대도인(大道人)이면서 다시 계를 받는다면,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를 받을 수 없느니라.”
“계를 받지 않았다면 전에 받았던 계는 여전히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있느니라.”
“나중에 받은 스승을 스승으로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느니라.”
“여러 사람이 계를 받으면서 한 사람에게 스승이 되어 줄 것을 다 함께 청한다면 10인이나 5인이 한꺼번에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사미가 대계(大戒)를 받는 데 있어서 한 비구에게 대계사(大戒師)가 되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 비구가 작법(作法)을 알지도 못하고 수계법(受戒法)을 알지도 못하여 다시
다른 한 비구에게 청하여 계를 주었다면 마땅히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됩니까?”
“수계(受戒)를 하여준 사람이 스승이고, 계법(戒法)을 주지 않은 사람은 스승이 아니니라.”
“단상사(壇上師)인 스님이 속인의 옷을 입고 있거나 계율을 범하였다면 계를 받는 사람은 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계를 받는 사람이 그것이 법에 맞지 않는 줄 알았다면 계를 얻을 수 없지만, 그런 줄 몰랐다면 계를 얻을 수 있느니라.”
“계를 받을 때에 승가 대중이 화합하지 못하거나 서로 때리고 욕을 한다면 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단상(壇上)에 있는 대중이 화합하였다면 계를 얻을 수 있지만, 화합하지 못하였다면 계를 얻을 수 없느니라.”
“계를 받는 데 적절한 시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후야(後夜:늦은 밤)에는 안 되고 초야(初夜)와 중야(中夜)에도 등이나 촛불이 없으면 안 되니, 반드시 서로의 형색(形色)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되느니라.”
“수계(受戒)를 할 때에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계장(戒場)을 옮겨서 집[家屋] 안에서 수계를 한다면 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를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에 계장을 옮기려고 한다면 마땅히 먼저 대계(大界)를 풀고서 다시 수계하는 장소를 결계(結界)해야만 수계를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계를 얻을 수 없느니라.”
“수계를 할 때에 어떤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끝마치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대비구(大比丘)의 잘못입니까?”
“세 번의 갈마(羯磨)를 마친 경우에만 그러하니라.”
“수계를 하는 데 열세 가지의 일을 모두 마치고서 뒤에 모든 계화상(戒和尙)들이 계속해서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았다면 계를 갖춘 것입니까, 아닙니까?”
“만약에 스승이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은 채로 15일이 지났다면, 계를 설할 때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 듣고 받아들인다면 곧바로 구족할 수 있느니라.”
“수계를 할 때에 3의(衣)25)를 다 갖추지 않고 의첩(衣氎)만 가지고 있거나, 혹 물들이지 않아야 할 것을 물들였거나, 혹 재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재단하였다면 마땅한 가사가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안 되느니라.”
“수계를 할 때에 승가 대중을 모이게 하기 어렵다면 몇 사람의 승려가 있어야만 구족계를 줄 수 있습니까?”
“삼사(三師)를 제외하고 다섯 사람 이상이면 되느니라.”
“사미가 일찍이 자신을 대도인(大道人)이라고 사칭하고 대비구(大比丘)의 예경을 받은 일이 있다면
나중에 구족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사미가 스승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났다가 부득이한 일로 돌아오지 못하고서 그곳에서 의지사(依止師)에게 청하여 계를 받는다면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를 받을 수 있느니라.”
“만약 비구가 다른 사미를 꾀어 그를 데리고 다른 대중에게 가서 구족계를 받게 한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이며, 대중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마땅히 들어주어야 합니까, 들어주지 말아야 합니까?”
“만약에 그 사미의 스승에게 법답지 못한 일이 있어서 사미를 다른 곳으로 데려 간 것이라면 죄가 없으나, 스승에게 법답지 못한 일이 없는데도 데리고 간 것이라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며, 단상사(壇上師)인 스님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옛날에 어느 나이 많은 비구에게 단 한 사람의 사미가 시중들고 있었는데, 다른 비구가 제멋대로 그 사미를 꾀어 다른 곳으로 데려 가니, 그 나이 많은 비구는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래지 않아 죽었느니라. 이 일로 인하여 계율을 제정하여 다른 사미를 유혹하지 못하게 한 것이니, 다른 사미를 꾀는 것은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어느 비구가 늙고 병든 사람을 시중들고 있는 다른 사미를 보고 그에게 떠나가도록 한다면 그 비구도 또한 중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8. 문수시사품(問受施事品)
“단월(檀越)26)이 사사(四事)27)를 공양하기를 청하여 비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받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해도 됩니까, 되지 않습니까?”
“되느니라.”
“오랫동안 공양드리기를 청한 사사를 받아들이고 나서, 소소한 인연으로 밖에 나가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음식을 먹거나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약을 복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시주가 허락한다면 그럴 수 있느니라.”
“다른 사람이 비구에게 물건을 보시하고자 하여 먼저 비구에게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는데, 비구가 실제로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내는 마음으로 그를 속여서 없다고 말하여, 그 시주가 비구에게 물건을 보시하였다면 이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탐을 내어 물건을 갖는 것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승가 대중의 음식을 상좌(上座)에게 과다하게 주는 경우에 상좌는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상좌가 탐심을 내는 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병이 나지 않았는데도 병이 났다고 하면서 좋은 음식을 찾고, 그것을 이미 먹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3의(衣)를 입지 않고서 음식을 받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시주가 두세 사람에게만 공양을 청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대중이 창(唱)을 해야 합니까?”
“반드시 창(唱)을 해야 하느니라.”
“대비구(大比丘)가 갈마(羯磨)를 하여 물건을 나누어 줄 때에 비구니가 계(界) 안에 와 있다면 비구니도 마땅히 물건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땅히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사람이 물건을 맡겨서 어느 한 곳에 있는 대중에게 보시하였는데, 물건이 그곳에 도착한 뒤에 다시 한 비구가 그곳에 와서 물건을 나눌 때에 자리에 있었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몫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건치를 쳤다면 마땅히 받을 수 있지만, 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느니라.”
“비구가 길을 가는 도중에 아낙네가 물건을 보시한다면 받아도 됩니까, 받지 않아야 됩니까?”
“그녀가 친척으로서 서로 아는 사이라면 받아도 되느니라.”
“비구가 길을 가는 도중에 비구니가 물건을 보시한다면 받아도 됩니까, 받지 않아야 됩니까?”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라면 받아도 되지만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서는 안 되니,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스님에게 재미(齋米)28)를 공양하였는데 그 스님이 떠난 뒤 재주(齋主)29)가 그것을 나중에 온 스님에게 공양하였다면 나중에 온 스님은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건치를 쳤다면 먹을 수 있지만, 건치를 치지 않았다면 한 번을 먹더라도 바라이[棄]를 범하는 것이니라.”“4월 8일의 친물(嚫物)30)을 7월 15일31)에 본래의 스님이 떠나간 뒤에, 사주(寺主)가 그것을 가져다가 나중에 온 스님에게 주어 나중에 온 스님이 나누어 받았다면, 그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에 건치를 치고서 현재 남아 있는 스님이 함께 나누어 갖았다면 죄가 되지 않으나, 건치를 치지 않고서 나누어 갖았다면 도둑질을 범하는 것이니라.”
“남아 있는 친물을 본래의 도인(道人)이 떠나간 뒤에 재가인(在家人)이 나중에 온 스님에게 준다면 나중에 온 스님은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땅히 주인에게 본래의 스님이 올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축원을 하고서 가질 것이니, 만약에 혹시 그가 올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면 가져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가 살아 있는데 그것을 갖는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며, 그가 죽었음을 알고서 갖는다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
그것은 승물(僧物)32)이기 때문이니라.”
“비구가 생활의 방도를 세워 물건을 얻어서 다른 비구에게 옷과 음식을 보시한다면 그것을 입고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옷을 받는 것은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곤궁하여 먹을 것이 없는 곳이라면 그는 재가인에게 도를 닦는 사람들의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하게 하고 대중에게 알리기를,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재가인의 물건입니다’라고 한다면 먹어도 되지만, 만약 주인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서 먹는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두세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알릴 수 있으니, 만약에 수행자가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여 심부름하는 사람이 ‘그것은 나의 물건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먹을 수 있느니라.”
“비구가 물건을 밖으로 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니,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백일(百日) 동안 계속해서 공양을 받기로 하였다가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서 한 번이나 두 번의 음식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시주가 그것을 허락하는 경우라면 받을 수 있지만, 허락하지 않는 경우라면 안 되느니라.”
“구걸한 음식을 늘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먼저 탐내는 마음이 없이 가져온 것이라면 늘 중생에게 보시할 수 있느니라.
만약에 중생이 없어서 나무 끝에 걸어 둔 것을 어떤 중생이 먹는다면 좋겠지만, 만약 먹은 중생이 없다면 이튿날 되돌아왔을 때 스스로 물을 받고 음식을 취하여 그것을 버려서는 안 되니, 신심으로 보시한 것은 지중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되돌아와서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이유는 다시 주인이 없기 때문이니, 울단월(鬱單越)에게서 음식을 취하는 법과 같으니라.”
“비구가 음식을 먹는데 한 입의 밥을 뱉어서 하나를 취하고 밥을 헤아려서버리는 것은 범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주인이 은근하게 오랫동안 공양을 드리기를 청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까?”
“그 장소가 도를 행할 만하고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과 핍박하는 일이 없으면 가도 되느니라.”
“주인이 음식을 드리기를 청하는 경우에 다른 사람을 보내어 대신하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인의 뜻이 대신 받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되거니와, 만약 주인이 대신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라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귀자모(鬼子母)33)의 음식을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축원을 하고 난 뒤에는 먹어도 되느니라.”
“시주가 비구에게 소나 말이나 노비를 보시하고 음식을 공양한다면 곧바로 받아도 됩니까, 안 됩니까?”
“받아서 쓰는 것은 되지만 팔아서는 안 되느니라. 일체의 흉기나 병장기는 받아서는 안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물건을 내어 재(齋)를 올렸는데 재가 끝나고 남은 음식을 재가 끝난 뒤에 온 스님이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건치를 쳤다면 먹을 수 있으나 건치를 치지 않았다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함께 행각(行脚)을 하다가 다른 사람의 몫을 먹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물어보고 허락을 받고서 먹는다면 죄가 없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서 먹는 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묻지 않는 것도 또한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다. 투도(偸盜)를 범하는 것이 아닌 이유는 함께 손을 우러러 받았던 것이기 때문이니라.”
“비구가 걸식을 하는데 앞에 있는 사람이 묻기를, ‘당신은 좋은 비구입니까, 아닙니까?’라고 물었는데, 비구가 ‘좋은 비구입니다’라고 대답을 하고서 음식을 얻는다면 이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실제로 좋은 비구이면서 좋은 비구라고 말하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좋은 비구가 못되는데도 좋은 비구라고 말하는 것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일체의 장물(長物)34)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나중에 반드시 돌아와서 다시 가지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되는 일입니까, 안 되는 일입니까?”
“믿을 만한 사람에게 주고 난 뒤에 다시 다른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의 물건을 아무개 비구에게 주었으니 다시 그것을 되돌려 받게 되거든 이 말을 해주시오’라고 하고서 그렇게 하는 것은 괜찮지만, 돌아온 뒤에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되느니라.”
9. 문질병사품(問疾病事品)
“비구가 병이 났을 때에는 발우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병인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지만 소소하고 가벼운 병인 경우에는 모두 그래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가 질병으로 앓고 있을 때 3의(衣)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여섯 가지의 괴로움으로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괜찮으나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안 되느니라.”
“간병(看病)을 하는 사람이 환자에게 말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돈을 써서 다른 환자에게 의복과 음식과 탕약(湯藥)을 지어주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에 5전(錢)의 돈을 썼다면 바라이[棄]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나중에 환자에게 말을 하여 환자가 기뻐한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지만, 환자가 성을 내고 싫어하는데도 되돌려 주지 않는다면 또한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니라.”
“환자를 위하여 시주가 매일같이 백전(百錢)의 돈을 공양하였는데 50전이면 충분할 경우,
그 나머지의 돈을 다른 환자에게 주어 음식과 약을 먹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환자가 스스로 주는 것이라면 괜찮으니라.”
“비구가 병이 났는데 그를 간병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 비구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산중(山中)의 아무도 없는 곳, 하루 만에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면 만들어 줄 수 있으니, 7일의 휴가를 받아 먼저 땔나무와 쌀을 청정하게 하고 받아서 그것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은 괜찮으니라.”
“병이 난 비구에게 한두 되의 술이 약으로 꼭 필요하다면 술을 비구에게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스승이 필요하다고 하여 허락한 경우에는 약과 함께 먹을 수 있으나 빈속에는 안 되느니라.”
“비구가 병이 난 경우에 기(氣)를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니, 외도(外道)와 같기 때문이니라.”
“비구가 종기를 앓고 있는 경우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빨아내게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비구가 병으로 곤란에 처해있을 때, 의발(衣鉢) 가운데에서 몇 가지를 줄여서 대중에게 주거나 그것을 팔아서 복을 짓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해진 옷이라면 받아도 되나, 그렇지 않다면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10. 문비구사망사품(問比丘死亡事品)
“사망한 비구의 물건을 모두 건치도 치지 않고 갈마를 하지도 않고서 나누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계내(界內)의 열 사람 이상이 건치도 치고 갈마도 하였다면 괜찮지만, 건치를 치지 않고서 갈마만 하였거나 건치는 쳤지만 갈마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모두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그 이유는 사망한 비구의 모든 물건은 모두가 사방승물(四方僧物)35)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누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계외(界外)에서 다섯 사람 이상의 비구가 갈마를 하고 나눌 때에는 반드시 건치를 치지 않아도 되니, 계(界)가 없기 때문이니라. 네 사람 이하인 경우에는 갈마를 해도 나누어 가질 수가 없으며, 만약 나누어 갖는다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 이 경우에는 마땅히 그것을 팔아서 승가에 주어야 하느니라.
만약에 스스로 취하여 팔아서 다른 승가 대중에게 간다면, 처음 계내(界內)에 들어가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나 나오면 바로 바라이[棄]를 범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다시 다른 대중처소로 가서 한 번 계내를 나오면 한 번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니라.
제자가 스승의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비구가 사망하였는데 제자가 스승의 물건을 가지지 않고 대중에게 주거나 제멋대로 처분하여 승가에 공양하였다면 승가에서는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제자가 먼저 법을 알고 있었다면 죄가 되며, 승가에서 건치를 치지도 않고 갈마를 하지도 않고서 음식을 먹는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스승이 사망하여 승가에서 갈마를 하고 스승의 물건을 나누어 주었다면, 제자는 마땅히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땅히 나누어 받아야 되니, 그도 승가의 일원이기 때문이니라.”
“만약에 스승이 사망하였는데 다른 스님은 없고 오직 다섯이나 열 명의 제자만 있다면 갈마를 하고서 물건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누어 가질 수 있으니, 그들도 승가의 일원이기 때문이니라. 나누어 가질 때에는 반드시 건치를 치고 갈마를 해야 되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누어 가질 수 없느니라.”
“환자가 거의 죽게 된 경우에 환자에게 주었던 남은 물건들을 다른 환자에게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은 승가의 공유물이므로 멋대로 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것의 값이 5전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니라.”
“스승이나 도반[徒], 부모형제가 사망한 경우에 소리를 내어 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소리를 내어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한 번 소리를 내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 다만 작은 소리로 울 수 있을 따름이니라.”
“비구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그 자리에 있다가 갈마를 할 때에는 참석하지 않았거나, 비구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그 자리에 없다가 갈마를 할 때에는 참석하였다면, 각각의 경우에 마땅히 물건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갈마에 참석한 경우에는 모두 나누어 가질 수 있으나, 사망할 때에는 있었지만 갈마를 할 때에는 참여하지 않은 경우에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느니라.”
“비구가 사망한 뒤에 사람들이 사준 관목(棺木)과 의복을 함께 매장하였는데,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승가에 알려서 승가에서 준 열반승(涅槃僧)36)과 승기지(僧祇支)37)와 자기가 덮던 것과 나머지 모든 것들이 모두 승가의 공유물이면 일체를 묻어서는 안 되느니라. 매장한 것이 5전이 되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제자의 사사로운 물건이라면 괜찮으며, 만약에 죽은 사람이 법을 알지 못하고서 스스로 분배 처분하여 준 것이라면 죄가 없느니라.”
“부모나 친척들이 사망하였을 때 비구가 함께 의복과 관목을 준비하여 매장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느 경우에도 안 되느니라.
만약에 부모가 죽었거나 환자에게 공양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걸식한 것의 반을 줄 수 있지만. 만약 그 스스로 약간의 실이라도 짜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준다면 바일제를 범하고, 의복을 준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 하물며 관목을 마련하여 매장하는 일이겠느냐?”
“환자가 중병(重病)으로 거의 죽게 되어서 가사와 발우를 간병(看病)하던 스님에게 먼저 주면서 끝내 갈마를 하지 않았는데, 간병하던 스님이 그것을 팔아서 스님들께 재식(齋食)으로 공양하였다면 스님들은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중이 아직 갈마를 하지 않았는데 음식을 먹는다면 대중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간병을 하던 스님이 법도를 알지 못하고 이미 갈마를 하였다면 먹어도 되지만, 아직 갈마를 하지 않았다면 대중은 마땅히 법을 말해주어야 하느니라.”
“비구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렸는데 그가 죽었다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여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느 것이라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으며, 자기가 갖는다면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대중에게 알려서 대중이 허락하면 자기가 가질 수 있지만, 대중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갖는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돌아가신 스승을 위하여 탑을 세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자가 자신의 물건으로 탑을 세우는 것은 괜찮지만 스승의 물건으로 탑을 세우는 것은 안 되느니라.”
“비구가 스승의 무덤을 향하여 예를 올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를 올려도 되느니라.”
“살아서는 저의 스승이었으나 이미 죽어서 오히려 비구도 아니며 다만 말라빠진 뼈이거늘 무슨 까닭에 예를 올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마땅히 공양을 드리며 공경해야 하겠지만 열반에 드신 뒤에는 마찬가지로 마른 뼈일 따름인데 무슨 까닭에 공양을 올리겠느냐? 스승이 살아서는 법으로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였으니, 돌아가신 뒤에 공경하고 예를 올리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느냐?”
“물건을 분배할 때 갈마가 이미 끝났는데 어느 스님이 왔다면 그 스님에게도 마땅히 물건을 주어야 됩니까, 주지 말아야 됩니까?”
“만약에 세 번의 갈마가 모두 끝난 뒤라면 주지 않아도 허물이 없거니와, 아직 한 번의 갈마가 남아 있는 경우라면 주어야 하느니라.”
11. 차문삼의사품(次問三衣事品)
“3의(衣)를 빨게 되면 반드시 남에게 주어야만 됩니까, 아닙니까?”
“반드시 남에게 주어야만 되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마땅히 남에게 주고, 그가 되돌려 주면 다시 받을 수 있느니라.”
“3의는 모두 천천히 만들어야 됩니까, 아닙니까?”
“대의(大衣)는 그래도 되지만 중의(中衣)와 소의(小衣)는 그래서는 안 되느니라.”
“소의를 입고서 향을 사루고 강당(講堂)에 올라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의가 없는 경우에는 그래도 괜찮으니라.
만약 중의가 가까이에 없거나 몸이 정결한 경우에도 괜찮으니라.”
“옷을 빠는데 명주가 나오면 미치를 써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3의는 마땅히 안에서 보시하여야 합니까, 아닙니까?”
“안에서 보시하거나 보시하지 않거나 모두 괜찮으니라.”
“대의를 입고서 강당에 오르거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의(中衣)가 없을 때에는 괜찮으니라.”
“3의를 명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명주옷이든 몸을 가리려고 입는 경우에는 입어도 되느니라.”
“비구가 성을 내어 스스로 의발(衣鉢)과 석장(錫杖)을 부수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성을 내어 스스로 3의(衣)를 찢고 발우를 깨뜨리는 것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며, 석장을 부러뜨리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다른 물건을 부수는 것은 그 물건의 값어치를 계산하여 그만큼에 해당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3의를 남에게 빌려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결계(結界) 밖을 나가서 하룻밤을 지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에 동일한 결계 안에서라면 빌려주는 날짜의 제한은 없느니라.”
“마을 안에 들어가서 대의를 입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어깨 위에 걸쳤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에 승가에서 시켰거나, 환자를 위하여 가지고 가지 않은 경우라면 모두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3의가 해져서 수선해야 할 것을 받았을 때 반드시 또 다른 사람에게 보시해야만 합니까?”
“고양이 발이 들어갈 만큼만 해졌으면 마땅히 남에게 보시하고 그가 다시 되돌려주어야만 수선할 수 있느니라. 만약에 먼저 수선을 하고 나중에 남에게 보시하더라도 또한 괜찮으니라.”
12. 문발사품(問鉢事品)
“발우는 어느 경우에 잃게 되는 것입니까?”
“연(緣)이 결여되었거나, 구멍이 뚫렸거나, 깨졌거나,
기름을 내버리지 않은 경우에는 모두 잃게 되느니라. 연이 결여되었거나 구멍이 뚫린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가질 수 없으며, 깨진 경우에는 그것을 꿰매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가 그가 되돌려주면 다시 받으면 되고, 기름을 내버리지 않은 경우에도 또한 그렇게 하면 되느니라.
발우를 버리고 결계(結界) 밖으로 나가서 하룻밤을 묵는 경우에도 잃지 않느니라.”
“발우를 벽 위에다 엎어놓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건 안쪽의 깨끗한 곳이나 주머니 안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는 것은 좋으나 벽 위에 바로 엎어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육군비구(六群比丘)가 벽 위에 발우를 엎어놓았다가 땅에 떨어져서 깨지자 부처님께서 그 일로 인하여 계를 제정하시되, ‘지금부터는 발우를 벽 위에 엎어놓아서는 안 되니, 발우를 벽 위에 엎어놓으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며, 땅에 떨어뜨려서 깨뜨린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느니라.”
“일찍 일어나 음식을 먹을 때 발우를 쓰지 않는다면 무슨 허물이 있는 것입니까?”
“모든 음식은 마땅히 발우를 써서 먹어야 할 것이니, 만약에 하루라도 발우를 쓰지 않는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공양 중에 공양이 다 끝나가려고 할 때에 곁에 있는 발우에서 밥을 덜어내어 취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그래도 되느니라.”
“공양이 이미 끝났는데 다시 나머지 과일을 먹느라고 손이 발우에서 떨어져도 됩니까, 안 됩니까?”
“되느니라. 만약에 공양이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도 잠깐 동안은 떠나도 되느니라.”
“비구가 발우에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높이 들어 올려야 하며, 또는 땅에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까?”
“반드시 높이 들어 올려야 하니, 꼭 필요한 일이 있는 경우에는 땅에 내려놓더라도 범하는 것은 없느니라.”
“비구가 그릇에 밥을 담아서 발우 안에 넣어두었다가 공양이 끝난 후에 발우로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발우를 남에게 빌려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신이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빌려주어도 되느니라.”
“발우에 불을 때어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되느니라. 발우를 태우는 것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13. 문잡사품(問雜事品)
“비구가 도둑을 맞았는데 그 물건이 아직 결계(結界)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주인이 그 물건을 보았으나 누가 훔쳤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물건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져도 되니, 곧 90사(事) 가운데에서 보배가 서로 비슷한 경우와 같으니라. 마땅히 먼저 생각하되 만약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가져서는 안 되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대중에게 알리고서 가지면 되느니라.
만약에 대중이 없다면, 결계를 한 구역 안의 물건을 갖는 것이니 자기의 물건으로 여기지 않는 까닭에 가지는 것이니라.”
“승가 대중이 건치를 치고서 식사를 하는데, 밖에서 온 사람을 제한하고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그것은 이익을 잃는 것이니,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먼젓번의 비구가 교화를 위해 백 명에게 재식(齋食)을 만들었는데, 한 사람 내지 열 사람이 더 와서 받되 교화를 하지 않았다면, 비구는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건치를 쳤다면 음식은 마땅히 받아야 되므로 교화를 한 사람은 범하는 것이 없으니, 왜 그런가 하면 건치를 쳐서 승가를 청하였는데 스님들이 많이 온 것이 무슨 허물이겠는가? 무릇 건치를 치는 법의 요점은 생각을 내어 사방의 승가를 청하는 것이니, 스님들이 많이 왔거나 적게 왔거나 간에 일체의 재물과 음식을 분배하는 것은 허물이 없는 것이니라.”
“비구가 교화를 하고 재가인(在家人)이 승가 대중을 공양하는데 만약 결계 밖에서 온 사람이 공양을 얻으려고 한다면 한 되에서 다섯 되까지를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줄 수 없느니라.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법에 맞지 않는 것인 줄을 알면서도 일부러 5전까지의 돈을 개인적으로 준다면 그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대중에게 알려서 대중이 허락한다면 괜찮으니라.”
“시주가 스님께 공양하기를 하루에 백전(百錢)의 돈을 더 드리기를 청하였는데, 50전의 돈은 스스로가 쓰고 나머지의 돈은 다른 일에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건치를 치고서 그렇게 하는 것은 괜찮으니라. 만약에 가사와 발우가 없는 경우라면 건치를 치지 않고서 대중이 화합하여 쓰는 것을 줄일 수 있느니라. 만약 스스로 쓸 것을 줄여서 객승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라.”
“시주가 비구에게 열흘 동안 공양드리기를 청하였는데, 열흘 동안을 먹고 난 나머지로 5일이나 3일치의 좋은 음식을 만들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다시 구해서는 안 되니, 구한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 10일을 채우지 않고서 떠나간다면 또한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시주가 비구에게 10일 동안 음식을 공양드리기로 청하여 놓고서 스스로 결정하여 1개월의 음식을 만드는 것은 됩니까, 안 됩니까?”
“건치를 치고서 그렇게 하는 것은 괜찮으니라.
만약 건치를 치지 않고서 그렇게 하였는데
스님 가운데에 밖에 나간 사람이 있거나, 나중 사람에게 음식을 보시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온 사람이 자기의 몫을 먹고 다른 사람의 몫까지도 배불리 다 먹었다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며, 배부르지 않게 먹었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부모형제가 기물(器物)을 부순 경우에 비구가 탁발하여 그것을 물어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어줄 수 있느니라. 그러나 스스로 물어주겠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부모형제를 위하여 물어주는 것이라고 해야만 할 수 있느니라.
만약 다 물어주고 난 다음에는 스스로 그 물어준 사람에게 구속되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스스로 물어주었는데 친척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사타를 범하는 것이며, 싫어하여 갚아주지 않는다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니라.”
“술을 파는 집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거나 재물을 구걸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 일도 없이 빈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술을 파는 집의 문에는 어느 경우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니, 들어간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느니라.
만약에 다른 문이 있다면 들어갈 수 있으며, 비구를 청해서 들어가는 경우에도 들어갈 수 있느니라.”
“일일계(一日戒)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를 받겠다고 말을 한다면 그 집에 갈 수 있느니라. 만약에 계를 받을 수 없다면 다만 하루 동안이라도 술을 팔지 않을 수 있다면 갈 수 있느니라.
백정의 집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다른 사람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억지로 권했다면 마시지 않았더라도 돌길라(突吉羅)를 범한 것이며, 술을 마셨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재가인에게 물건을 맡겼는데 그 사람이 기일이 지나도 비구에게 돌려주지 않았다면 다른 비구가 그것을 가져도 됩니까, 안됩니까?”
“가져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에 물건을 맡겼던 비구가 살아 있는 경우라면 그것은 주인이 있는 물건이며, 비구가 죽은 경우라면 그것은 승가의 공유물이니라.”
“비구가 밤에 불을 손에 쥐고서 길을 가도 됩니까, 안 됩니까?”
“겨울에는 괜찮으며, 여름에도 등불이나 촛불인 경우에는 또한 괜찮으나 만약 불을 손에 쥔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본래는 그 값이 일필(一疋)인 것을 다른 지방에 가서 5필이나 3필에 팔았다면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질 수 없으니,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놀이삼아서 물건을 갖거나 주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모두가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주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맛을 본 음식을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알고서 먹었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먼저 음식을 맛본 사람도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 만약에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죄를 참회하지 않는다면 죄가 나날이 늘어나느니라.
옛날에 어느 비구가 절에서 소임을 맡아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승가의 음식을 관장하였는데 언제나 손가락으로 그릇을 괴고서 말하기를 ‘이것을 가져가고 이것을 써야겠다’고 하곤 하였다. 매일같이 그렇게 하면서도 참회를 하지 않다가 죽은 뒤에는 아귀(餓鬼) 가운데에 떨어졌다. 무착(無着)이라는 스님이 밤에 변소에 갔다가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아귀입니다.’
‘본래 무슨 짓을 하였기에 죽어서 아귀 가운데에 떨어졌는가?’
‘이 절 안에서 스님이 되어 소임을 맡아보았습니다.’
‘당신은 본래 정진(精進)을 하였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아귀 가운데에 떨어졌는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을 가져다가 승가 대중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청정하지 못한 것인가?’
‘스님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기물(器物)이 있는 법인데 나는 그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릇을 괴고서 이것을 가져다가 쓰게 하였으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였으며, 나에게 세 번의 계를 설해주었는데도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더 거듭 그렇게 하였으니, 그 때문에 아귀 가운데에 떨어져 두 손으로 가슴을 쪼개고 살갗과 살을 찢으며 애절하게 신음하며 물을 뿜고 있는 것입니다.’
‘왜 가슴을 쪼개는가?’
‘벌레가 몸을 갉아 먹는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애절하게 소리 내어 신음하며 물을 내뿜는가?’
‘입 안에 벌레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신음을 하는가?’
‘배고픔이 극에 달하여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으려고 하는가?’
‘똥을 먹으려고 하지만 먹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까닭에 먹지 못하는가?’
‘많은 아귀들이 보고서 서로 밀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착 비구가 말했다.
‘내가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아귀가 말했다.
‘승가 대중께서 저를 위하여 축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무착 비구는 곧 돌아와서 대중에게 아귀에 떨어진 사람에 대해 말했다.
대중들이 물었다.
‘본래 정진을 하였거늘 무슨 까닭에 아귀 가운데에 떨어졌을까요?’
‘전생에 청정하지 못한 음식을 승가 대중에게 주면서도 참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승가 대중께서 그를 위하여 축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축원을 해주면 똥을 먹을 수 있게 되어 다시는 배가 고파 신음하는 소리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증험하여 보건대 대비구(大比丘)가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져서는 안 되며, 또한 승가의 기물(器物)을 괴거나 닿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느니라.
승가의 그릇이 아니거나 얻을 것을 받아서 승가에 나누어주는 경우라면 범하는 것이 없느니라.”
“스승이 제자에게 명하여 장사를 하게 하며 여러 가지 법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하면 제자는 스승을 멀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스승을 버리고 떠나가도 되느니라.
제자는 네 가지의 인연이 있으면 마땅히 스승의 곁에 머물러야 하니, 하나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과 음식을 준다면 의발(衣鉢)을 주지 않더라도 마땅히 머물러야 하며, 둘은 법과 의발을 준다면 음식을 주지 않더라도 마땅히 머물러야 하며, 셋은 법과 의발과 음식을 주었다면 마땅히 머물러야 하며, 넷은 법을 준다면 의발과 음식을 주지 않더라도 마땅히 머물러야 하느니라.
만약에 스승이 법도 주지 않고 의발도 주지 않으며 음식도 주지 않는다면 마땅히 떠나가야 하느니라.”
“청정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청정하게 해야 하는 것이며, 청정하게 하는 것에는 몇 가지의 일이 있습니까?”
“과일과 야채는 반드시 칼이나 손이나 불을 써서 청정하게 하며, 곡식은 반드시 불에 익혀서 청정하게 해야 하느니라. 청정하게 하여 먹으면 고통이 없느니라.”
“예배를 드릴 때에 신발을 신은 채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신발이 깨끗하다면 괜찮으니라.”
“비구가 노비를 두며 소와 말과 당나귀를 기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 그러고도 뉘우치지 않으면 더욱 죄가 늘어나는 것은 위에서와 같으니라.”
“비구가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장사를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번화(幡華)를 그려 팔아서 물건을 사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재가인이 비구에게 귀의하여 도를 닦는데 아직 득도(得度)를 하지는 않았다면 승가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승가에 알렸다면 괜찮지만 알리지 않았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승가를 위하여 걸식을 하였는데 절에 돌아가기 전에 길에서 자기가 혼자 대중의 음식을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절에서 떠날 때 먼저 승가에게 알렸고 승가에서 허락하였다면 괜찮으며, 떠날 때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돌아와서 승가에게 알리고 승가에서 허락하였다면 또한 괜찮으니라. 만약에 허락하지 않았는데 길에서 먹고 돌아와서 갚거나, 돌아와서도 갚지 않는다면 그 값을 헤아려서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다른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가 모두 집 안에 맡겨두고 하룻밤을 지내는 것은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범하는 것이 없느니라.”
“등불을 켜는 기름 한 되나 두 되를 계속해서 자기의 방 안에 둘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 수 있느니라.”
“약으로 쓰는 기름을 자신의 방 안에 두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병이 난 경우에는 7일 동안 방 안에 둘 수 있느니라.”
“전혀 양지(楊枝)38)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범하는 것입니까, 범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 양지를 써서 이빨을 닦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별이 나온 뒤에야 할 수 있으니,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점심을 먹은 뒤에 양지로 양치를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느니라. 만약에 고운 재나 쥐엄나무[莢]를 쓰지 않거나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면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정오가 지나서 쓰는 것도 또한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정오가 지나면 약으로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맛을 지니고 있는 일체의 초목(草木)은 입에 넣어서는 안 되니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양지(楊枝)가 없는 경우라면 일체의 다른 나무를 써도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모두 괜찮으니라.”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다면 저잣거리에 들어가서 구걸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오가 되기 전이라면 괜찮으나 정오가 지나서는 안 되느니라.
또한 돈을 구걸해서는 안 되니, 만약에 돈을 구걸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한 명의 재가인(在家人)이나 사미를 데리고 가야 하느니라.”
“다른 사람이 비구를 잡아다가 팔았다면 달아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처음에는 도망을 할 수 있으나 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가 장난삼아서 어떤 물건으로 음식을 만들어 놓고 비구를 청하였다면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먹어서는 안 되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니가 정진(精進)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수행하기를 그만두라고 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좋은 약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였는데 그 약을 받은 사람이 적절하게 맞추는 것을 알지 못하여 약을 먹은 사람이 죽었다면 범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좋은 뜻으로 주었다면 범하는 것이 없지만, 나쁜 뜻으로 주었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의 법랍(法臘)이 10년이나 5년이 되었는데도 계를 외우지 못한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계를 외우지 못하면서 신심이 있는 사람이 보시하는 음식을 먹는다면 매일같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니라. 이전부터 알지 못하였다면 오히려 괜찮으나, 참회를 해야 하느니라.”
“귀신을 모신 집에서 기숙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길을 가는 중이라면 묵을 수 있느니라. 그러나 시끄럽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머무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산고기[生肉]를 먹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두 사람의 비구가 음행을 하려고 하다가 끝내지 못하였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두 사람의 비구가 입으로 음행을 하려고 하다가 곧 그만두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음행을 하였다면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이 평상이나 좌석 위에서 음행을 행하였다면 그곳에 머물러도 됩니까, 안 됩니까?”
“그곳을 살펴보아 깨끗하면 머물러도 좋으니라.”
“이미 큰 소리로 승발(僧跋)39)을 하였지만 법랍이 위인 스님이 아직 공양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법랍이 아래인 스님이 먼저 먹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소리 내어 승발하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먹었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가 비구로서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의 물건40)을 갖추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여섯 가지 물건을 갖추지 않고 걸식하였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나, 구걸을 하였어도 얻은 것이 없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가 몹시 추운 때에 온몸이 다 들어가는 옷을 입고 누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옷을 입고서라면 괜찮으니라.”
“비구가 스스로를 칭찬하여 귀족이라고 하거나 계를 지녔다고 하거나 힘이 세다고 하면서 걸식을 한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자매에게 종기가 생겼거나 아픈 곳이 있는 경우에 비구가 그 아픈 곳을 손으로 쓰다듬어서 고쳤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에 다른 마음을 일으켰다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며,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자매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비구에게 말하기를 ‘저에게 방책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하였는데 비구가 곧 방책을 가르쳐주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에게 물건을 맡기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는데 끝내 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스스로 가졌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며, 일부러 깨뜨려서 돌려주었다면 그 값에 따라 죄의 무겁고 가벼움이 정해지느니라.”
“마을에서 전혀 가사를 입지 않았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마을 사람들 속에서 한 번 떠드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세 번을 충고하여도 그치지 않는 것은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마을에서 활이나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여주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먼저 법도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하였다면 범하는 것이 없지마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였다면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말에 올라타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수컷을 한 번 타는 것은 허물을 범하는 것이며, 세 번을 충고해도 그치지 않는 것은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암컷인 경우에는 한 번을 타기만 하여도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마을에서 속인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비구가 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잠깐 동안 바둑을 두면서 희롱하여 노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마을에서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를 껴안고 소리 나게 입을 맞추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마을에서 속인처럼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마을에서 속인들이 축생과 같은 짓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법에 맞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일부러 보는 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나, 알지 못하였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속으로는 음심(婬心)을 일으키고, 입으로는 더러운 말을 한다면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음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 아직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은 자에게 부탁을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되느니라. 다만 바라문에게만은 부탁할 수 없느니라.”
“산중이나 광야에서 주인이 없는 기물(器物)을 보았다면 그것을 가져다가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쓸 수는 있으나 반드시 관가에 말을 해야 하느니라. 만약에 관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다면 쓸 수는 있으나 가지고 가서는 안 되니,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수행하는 사람이 의사 노릇을 하고서 물건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비로운 마음으로 고쳐주었다면 괜찮으나 나쁜 마음으로 고쳐주었다면 안 되느니라.
의발(衣鉢)이 없는데 그 사람이 준다면 받을 수 있으며, 의발이 있는데도 그가 억지로 주면서 복을 지으려고 한다면 받아도 되느니라. 만약에 남이 주지 않는 경우에는 또한 받을 수 없으며, 복을 지으라고 구걸하는 것은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공양에 쓰는 수건을 혹 적거나 많거나 간에 나물이나 밥을 집으려다가 그 위에 떨어뜨리면 반드시 빨아야 합니까, 빨지 않아도 됩니까?”
“더럽혀지지 않았더라도 또한 반드시 빨라고 말을 해야 하느니라. 만약에 사미나 재가인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되는 대로 받겠다’고 하더라도 범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부탁하여 방 안에 걸어 두었더라도 범하는 것은 없느니라. 만약에 부탁하지도 않고, 또 빨지도 않는다면,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개인의 방이 아주 작아 문을 닫지 않는 것은 범하는 것입니까, 범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개인의 방 안에서 박수를 치며 웃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사타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작은 도랑이나 작은 구덩이를 뛰어서 건널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옛날에 한 우바새가 한 비구를 청하여 한 벌의 좋은 옷을 지어주려고 하였다. 비구는 곧 그 청을 받아들여서 그곳으로 갔는데 도중에 작은 도랑이 하나 있었다. 비구가 곧 펄쩍 뛰어 그것을 건너자 그 우바새는 곧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 비구를 훌륭한 비구라고 여겨서 좋은 옷을 한 벌 만들어 드리려고 하였는데 봇도랑과 구덩이를 뛰어넘는구나. 나는 돌아가서 마땅히 반 벌의 옷을 주어야겠다.’
그 비구는
집착이 없는 사람이었던지라 곧 그 우바새의 생각을 알아채었고, 길을 가다가 다시 물을 만나자 일부러 그것을 건너뛰었다.
우바새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돌아가서 마땅히 거친 모직물 한 장만을 주어야겠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물을 만나자 비구는 다시 펄쩍 뛰어서 물을 건넜다.
그 우바새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돌아가서 마땅히 한 끼니의 식사만을 주고 말아야겠다.’
비구는 다시 그의 속마음을 알았고, 길을 가다가 다시 물을 만나자 이번에는 곧 옷을 걷어 올리고서 도랑을 건너갔다.
그 우바새가 물었다.
‘비구께서는 무슨 까닭에 뛰어서 건너지 않으십니까?’
비구가 말했다.
‘당신은 먼저 나에게 좋은 옷을 주려고 하였다가 내가 한 번 물을 뛰어서 건너자 반 벌의 옷을 주기로 마음먹었고, 다시 한 번 뛰어서 건너자 한 장의 거친 모직물만을 주려고 마음먹었으며, 다시 한 번을 뛰어서 건너자 다만 한 끼니의 식사만을 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지금 뛰어서 건너지 않은 것은 그나마 한 끼니의 식사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우바새는 비로소 그가 도를 얻은 사람인 줄을 알고 곧 그에게 참회를 하고서 집으로 모시고 돌아가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이것으로써 증험해보건대 비구가 도랑이나 구덩이를 뛰어서 건너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비구가 빨리 달리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지만 긴급한 일이 있는 경우에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출가를 한 뒤에 다시 돌아와서 본가(本家)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니라. 그 까닭은 처음에 출가를 할 때에 모든 물건을 이미 버렸으므로 본가의 물건은 자기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비구가 속가에 있을 적에 부모형제와 함께 물건을 감추어 두었었는데 출가를 한 뒤에 집안사람이 모두 죽어서 비구가 돌아가 스스로 물건을 갖는다면 그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만약 스스로 물건을 갖는다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재가인(在家人)인 친척이 있다면 그에게 말하여 그로 하여금 그것을 가져다가 복을 짓게 하는 것은 괜찮으나 그 경우에는 마땅히 반을 나누어 관가에 주어야 하니, 그 이유는 그 물건은 주인이 없으므로 마땅히 관가에 소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그런데 금(金)은 가져서는 안 되니, 금을 갖는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스승이 다시 계(戒)를 받아서 제자보다 법랍(法臘)이 어려지게 된다면 제자는 법랍을 낮추고 계를 낮추며
아래에서 걸어야 합니까, 아닙니까? 만약에 낮추지 않는다면 그러고서도 예를 갖출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다른 사람의 밭에 곡식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비구가 다른 사람의 밭에 가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곡식이 있는 경우에는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나 긴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곡식이 없는 경우에는 모두 괜찮으니라.”
“크게 참회해야 할 사람이 이미 자신의 죄를 드러내어 고백하였는데 혹 15일이 지났거나 혹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승가 대중이 흩어졌다면 죄를 결정해야 됩니까, 아닙니까?”
“다시 대중을 찾아서 결정해야 하느니라.”
“임금이 비구에게 일의 길흉에 관하여 묻고 비구가 그를 위하여 말을 해주고 나서 공양을 받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음식을 얻었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며, 의복을 얻었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며, 정벌하는 일에 관하여 말을 해주고 공양을 받는다면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인연이 있어서 속인의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까?”
“괜찮으니라.”
“비구의 법랍이 5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의지(依止)41)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스승에게 의지하지 않고서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것은 매일같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먼저 법도를 알지 못하였다면 오히려 괜찮으나 참회를 해야 하느니라.”
“만약에 비구가 법랍이 10년이 되었는데도 계율을 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의지하지 않는 경우와 같으니라.”
“비구가 시장에서 자기의 물건을 스스로 자랑하고, 신심이 있고 귀한 사람에게 실제보다 비싼 값으로 파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것입니까?”
“도둑질을 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먼 길을 가는데 음식은 있으나 사람이 없을 경우 취하려면 어떻게 음식을 얻어야 합니까?”
“바로 한 손을 펼쳐서 늘어뜨리고 한 번 음식을 잡으면 곧 그쳐야 하니, 한 번을 넘어서면 바일제를 범하느니라.”
“비구가 배를 타고 가는데 강이 너무 커서 배에서 내릴 수가 없다면 강 가운데에서 용변을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볼 수 있느니라.”
“비구가 대나무나 나무판 위에 경전을 옮겨 썼다가 그 글을 다 외우고 난 뒤에 그것을 닦아서 지우는 것은 범하는 일입니까, 아닙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법랍이 5년이 채 되지 않은 자가 율(律)을 외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 거칠게 배우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외운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 대계(大戒)를 버리고 사미계(沙彌戒)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은 사미의 잘못 입니까?”
“사미의 잘못이니라.”
“비구가 낮잠을 자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방문을 열어 놓고 낮잠을 자서는 안 되니,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한쪽으로 기울어서 기대고 있거나 땅에 엎드려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개인의 집에서는 괜찮으나 대중 가운데서는 안 되니,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집 안에서 전혀 3의(衣)를 입지 않은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좌선(坐禪)을 하거나 경을 외우면서 삼의를 입지 않는 것은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길을 가면서 입고 있던 열반승(涅槃僧)을 다리에 묶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매우 추운 경우에는 괜찮으니라.”
“비구가 칠기(漆器)를 쌓아 두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옻칠을 한 나무 그릇은 모두 사용할 수 없으니, 사용하게 되면 바일제를 범하느니라.”
“비구가 이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손이 음식물에 부딪치거나 하여 더럽혔더라도 음식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있느니라.”
“비구가 윗방에 들어가서 가운데 앉지 않고 마음대로 앉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탑을 도는데 비구니나 우바이의 뒤를 따라 돈다면 범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다른 우바새가 함께 있다면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비구가 채소를 키워서 깨끗하게 씻었다면 뿌리가 있는 것을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되느니라.”
“제자가 먼 길을 떠나면서 스승에게 물건을 맡겼거나 스승이 제자에게 맡겼는데,
기한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거나 해가 바뀌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길을 떠나갈 때에 아무 말이 없었다면 써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에 있는 곳을 안다면 그것은 주인이 있는 물건이며, 그가 죽었다면 그것은 승가의 공유물이니라.”
“비구가 재가인에게 일체의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지 않도록 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 일입니까, 아닙니까?”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설령 부모가 음식을 드시지는 않는다 해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공양해드리는 것이 또한 그 복을 얻는 것이니라.”
“대중 가운데에서 스승과 함께 나란히 앉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서로 이어서 붙어 앉지 않는다면 식탁을 함께 하여 식사를 해도 되느니라.”
“비구가 춥지 않은 날씨에 삼의(三衣)를 끼어 입고 예불을 드리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중학계법(衆學戒法)과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손수 약을 지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청정한 풀로 지은 것이라면 괜찮으니라.”
“비구가 수행하기를 그만두고 나서 속인의 옷을 입고 얼마를 지내다가 그가 존경하는 이에게 예배드리는 예를 갖추고 나서 다시 되돌아와 대중에게 의탁하고 일정한 지위를 요구한다면 마땅히 들어주어야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만약 계(戒)를 버리지 않았다면 마땅히 들어주어야 하느니라.”
“비구가 자신의 부모형제가 집안이 망하여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된 것을 알면서도 금품을 내고 풀어주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도를 닦기 위하여 속바치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승가를 칭하기를 성중(聖衆)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와서 승가에 보시하면서 말하기를, ‘성중께 보시 합니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받아야 합니까, 받지 말아야 합니까?”
“말을 하지 않았다면 분배를 해도 되고 가져도 되니, 대중 속에는 속인이다 포함되기 때문이니라.”
“길을 가다가 물을 건너는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자신을 업어 건너게 한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늙지도 않았고 병이 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한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승가 대중에게 속해 있는 노비의 자잘한 청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잘한 것이라면 들어줄 수 있지만 큰일은 들어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가 손톱을 길게 기르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상좌(上座)인 비구가 아직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 하좌(下座)인 비구가 먼저 목욕을 하는 것은 범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의 그릇 안에 다른 물건이 들어있거나 다 못 쓰게 되어 누구의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 그것을 가져다 쓰거나 그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승가에게 줄 것이니 사사로이 써서는 아니 되느니라.”
“많은 스님네들이 오고가는 주처(住處)에 주인을 잃은 물건이 있는데 그것이 새 것이거나 헌 것이거나 간에 끝내 갖다 쓰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승가에 줄 것이므로 승가 대중이 한 달이나 1년 동안을 놓아둔 후에 쓸 수 있느니라. 만약에 나중에 주인이 오면 승가의 공유물로 보상을 할 것이며, 그것이 귀한 것이어서 나중에 보상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쓰지 말아야 하느니라.”
“비구의 친구인 재가인(在家人)이 왔다면 상좌인 유나(維那)42)에게 말을 하고 승가의 음식을 가져다가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승가에서 먼저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면 괜찮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안 되느니라.”
“비구가 도(道)를 버리고 환속(還俗)하였다가 나중에 다시 출가를 하였다면 전의 스승은 전에 스승이었기 때문에 다시 스승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아니니라.”
“수계(受戒)를 하는 계단(戒壇)에 왔던 여러 스승들을 스승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쫓아서 법을 받은 자가 아니면 모두 스승이 될 수 없느니라.”
“모든 스승을 화상(和尙)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은 세속의 그것과 같으니라.”
14. 문삼자귀사품(問三自歸事品)
“3자귀(自歸)43)를 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가 3귀의(歸依)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5역죄(逆罪)44)를 제외하고는 괜찮으니라.”
“3귀의란 무엇을 행하는 일입니까?”
“몸과 입과 뜻으로써 삿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삿된 견해를 가진 스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3귀의를 범하는 것입니까?”
“삿된 견해를 좋아하여 외도(外道)의 스승을 따르는 것이니라.”
“만약 3귀의를 범하였다면 어떻게 참회해야 합니까?”
“본사(本師)45)에게 참회를 하는 것이니, 본사(本師)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비구에게 참회를 하더라도 또한 괜찮으니라.”
“만약 3귀의를 지킬 수 없는 경우에는 되돌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되돌릴 수 있느니라.”
“만약 되돌린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사에게 가거나 한 비구에게 가서 말하기를 ‘저는 오늘부터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세 번 말하면 되느니라. 만약 세 번을 채우지 않으면, 그 때문에 3귀의(歸依)를 성취하는 것이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3귀의를 받고서 전생의 못된 일을 뉘우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입니까, 아닙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어느 한 사람에게서 3귀의를 받고 다시 세 사람에게서 각각 하나씩의 귀의(歸依)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되느니라.”
“3귀의를 받으면 종신토록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1년이나 반년이나 10일이나 5일 동안만 지켜도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마음대로 많거나 적게 할 수 있느니라.”
“만약 스승을 따라서 1년이나 반년(半年)의 3귀의를 받았다면, 그 기한이 지난 뒤에도 전에 3귀의를 준 스승은 여전히 스승입니까, 아닙니까?”
“한 번 스승에게서 법을 받으면 그 스승은 종신토록 스승이니라.”
“3귀의를 받는데 다만 한 가지나 두 가지의 귀의만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느니라.”
“3귀의를 받는데 그 당시에 스승이 없는 경우에는 글에 의지해서 받아도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느니라.”
“먼저 3귀의를 받았다가 범하고서 그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3귀의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느니라. 반드시 뉘우쳐야 할 것이니, 만약에 3귀의를 받고자 한다면 마땅히 전에 받았던 것을 버려야 할 것이며, 만약에 버리지 않고서 다시 받는다면 안 되느니라.”
15. 문오계사품(問五戒事品)
“3귀의(歸依)를 받지 아니하고 5계(戒)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만약에 3귀의를 받았다가 범하고서 뉘우치지 않았다면 5계(戒)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5계를 받되, 다만 5일이나 10일이나 1년이나 2년 동안 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음대로 많거나 적게 할 수 있느니라.”
“5계를 범하고서 참회하지 않았다면 다시 5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버리지 않고서는 다시 받을 수가 없으니, 참회하지 않는다면 또한 버릴 수 없느니라.”
“5계를 모두 참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을 죽이거나, 존경받는 사람이나 비구니와 음행을 하거나, 삼보(三寶)의 재물을 훔치는 경우는 모두 참회할 수 없으나, 나머지의 경우에는 참회할 수 있느니라.”
“5계를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중간에 되돌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되돌릴 수 있느니라. 만약에 5계를 모두 되돌리고자 한다면 3귀의(歸依)를 되돌리고서 말하기를 ‘오늘부터 부처님은 제가 존중하는 분이 아니며, 저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세 번을 하고 법(法)과 승(僧)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하느니라.
만약에 5계 가운데서 하나나 둘이나 셋이나 넷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말하기를 ‘저는 오늘부터 아무 계(戒)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라고만 하되 세 번을 하느니라. 만약에 세 번을 채우지 아니한다면 계는 여전히 성취된 것이니라.”
“5계를 받되 다섯 분의 스승에게서 각각 하나씩의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있느니라.”
“이미 5계를 받고 난 뒤에 중요한 것에 치우쳐서 하나나 둘만을 나누어서 되돌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있느니라.”
“5계 가운데에서 다만 하나나 둘이나 셋의 계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있느니라. 마음대로 많게 하거나 적게 하여 받을 수 있느니라.”
“비구가 중계(重戒)를 범하거나 불음주계(不飮酒戒)를 범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범할 수 있느니라.”
“재가인(在家人)이 8계(戒)를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질 수 없느니라. 다만 8관재(關齋)46)를 할 수 있을 뿐이니라.”
16. 문십계사품(問十戒事品)
“5계를 받지 않고서 10계(戒)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먼저 3귀의(歸依)를 받았다면 받을 수 있느니라. 10계 가운데 5계가 있으니 거듭해서 받지 않는 것이니라.”
“5계를 범하고서 참회하지 않았다면 10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만약에 먼저 참회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받았더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만약에 스승이 중계(重戒)를 범하였다면 그 스승에게서 10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만약에 중계를 범하였다면 10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을 수 없느니라.”
“사미가 10계를 범하고서 모두 뉘우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위의 5계에서와 같으니라.”
17. 문사미품(問沙彌品)
“참회를 할 때에는 반드시 승가 대중이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까?”
“반드시 대중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라. 다만 본사(本師)에게만 참회하면 되니, 만약에 당시에 스승이 없으면 다른 한 비구에게 참회를 하면 되느니라.”
“사미는 보름마다 한 번씩 계를 설합니까, 아닙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그 이유는 사미계(沙彌戒)는 속인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마치고 나서 계를 설해도 되게 되면 반드시 15일에 한 번은 모여야 되느니라.”
“사미가 계를 범하고서 사미에게 뉘우침을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
“사미가 속인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입을 수 없느니라.”
“스승이 여러 가지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되면 사미가 스승을 버리고 다시 다른 스승을 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있느니라.”
“사미가 스승을 배반하고서 속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법을 익히되 끝내 계를 버리지는 않았다가, 혹은 몇 년이나 몇 달이 지난 뒤에 돌아와 스승을 모신다면 본래 사미였던 그 사람은 다만 잘못을 뉘우칠 뿐 다시 계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본래 사미였던 사람은 다만 스승에게 참회를 하면 되며, 본래 계를 버리지 않았으면 다시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니, 받더라도 또한 계를 얻을 수는 없느니라.”
“사미가 도둑에게 잡혀서 몇 년이나 몇 달이 지났거나, 혹은 주인이 바뀐 경우에 도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인이 바뀌면 안 되느니라.”
“사미가 금계(禁戒)를 범하여 스승이 이미 쫓아냈는데 사죄를 하면 다시 쫓아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계를 버리지 않았다면 본래 사미였던 사람은 참회를 하기만 하면 되느니라.”
“재가인(在家人)으로 있을 때 사미로부터 5계(戒)를 받은 연후에 출가를 하여 본사에게서 대계(大戒)를 받았다면, 5계를 주었던 본래의 사미를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느니라. 그러나 예를 갖추어서는 안 되니, 사미가 마땅히 예를 갖추어야 하느니라.
속인으로 있을 때에 비구니로부터 5계(戒)를 받은 연후에 출가를 한 경우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비구가 물건을 탐내는 것은 그 죄가 어떠합니까?”
“심히 무거우니라.
옛날에 어느 비구가 동(銅)으로 만든 징[鐃]을 탐하여 집착하였는데 죽어서 아귀가 되었다. 그 아귀는 대중들이 물건을 분배하기를 마치자 곧 나타났는데 그 몸은 지극히 크고 어두워서 마치 새까만 구름과도 같았다. 모든 비구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 말했다.
‘이게 무엇인가?’
대중 가운데에 도를 얻은 자가 있어서 말했다.
‘이것은 죽은 비구인데 살아 있을 때 징을 탐하여 집착하였던 까닭에 죽어서 아귀 가운데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탐하여 아끼던 것 때문에 와서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구들이 곧 징을 가져다주니,
아귀는 징을 얻자 혀로 그것을 핥고는 땅에 내려놓고 떠나갔다. 비구들이 다시 징을 가져왔는데 냄새가 매우 심하여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다시 사람을 시켜서 그것을 녹여 그릇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냄새가 나서 쓸 수가 없었다.
이것으로써 증험하여 보건대 탐내는 것이 큰 환난임을 알 수 있느니라.
비구가 의복에 탐착하면 마침내 스스로를 태울 정도로 괴로운 것이니라.
옛날에 어느 비구가 가사 만들기를 좋아하여 밤낮으로 옷 만드는 일에 집착하다가 병을 얻었다. 그 비구는 자신이 죽게 될 것임을 스스로 알자 곧 머리를 들어 옷을 쳐다보고는 속으로 독한 생각을 일으켜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누가 감히 내 옷을 입기만 해봐라.’
그리고는 오래지 않아 곧 죽었는데 다시 몸을 받아 뱀으로 태어나서 돌아와 옷을 얽어매었다. 대중들이 죽은 비구를 마주 들고 나가서 화장(火葬)을 마치고 사람을 보내어 죽은 비구의 옷가지를 가져오게 하였다. 옷을 가지러 간 사람이 뱀이 죽은 비구의 옷을 얽어매고 입으로 독을 토해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감히 가까이 가지를 못하고 곧 되돌아가서 자신이 본 바를 대중에게 모두 말했다. 여러 비구들이 곧 함께 가서 그것을 보았으나 아무도 가까이 가지를 못하였다.
대중 가운데 도를 얻은 한 비구가 있었는데 그가 곧 사등관(四等觀)에 들어가서 뱀의 독이 먹혀들지 않게 되자 뱀에게 가까이 가서 말했다.
‘이것은 본래 네 옷이었으나 이제는 네가 존재하지 않는데 왜 이 옷을 지키려하느냐?’
뱀이 그 말을 듣자 곧 옷을 버리고 떠나가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풀에 들어가니, 독의 불길이 일어나 풀을 태우고 다시 스스로의 몸을 태웠다. 뱀은 죽어서 곧 지옥에 떨어졌는데 하루 동안 세 번 이상을 불길에 태워졌다.
이 모든 것이 탐착으로 말미암은 해독이니라.”
18. 세좌경참회문(歲坐竟懺悔文)
만약 승가에서 여래(如來)께서 주신 안거(安居)를 허락한다면 비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저는 안거가 시작된 이후 이제 안거가 끝날 때까지 여섯 달 동안에 잘못을 범한 것이 많습니다. 잘못을 범한 것은 계(戒)에 관한 일로서 두 가지의 율(律)에 관한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외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세존께서 승단의 화합을 가르치시려고 모으시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제 제가 이것을 생각하여 여러분과 함께 잘못을 범한 것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말씀드리겠으니, 여러분께서는 각자 참아주시고 저를 받아들여 주십시오.
90일 동안에 저는 세존께서 가지신 선정(禪定)이 없었으며, 세존께서 가지신 지혜(智慧)가 없었으며, 세존께서 가지신 계가 없었던 까닭에 잘못을 범한 것이 많았습니다. 세존께서 가지신 지혜와 세존께서 가지신 계가 없었던 까닭에 범하였으니, 세존께서 가지신 계가 없었던 까닭에 범하였으며 세존께서 가지신 지혜가 없었던 까닭에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존께서 가지신 선정이 없었던 까닭에 뜻을 어지럽히는 일을 범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혹은 음행을 금하는 법을 생각하여 음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살생을 금하는 법을 생각하여 살생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남을 속이는 것을 금하는 법을 생각하여 남을 속이지 않았으며, 승가바시사법(僧伽婆尸沙法)을 생각하여 승가바시사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90일 동안에 범한 바의 모든 위의(威儀)입니다.
“재가인(在家人)이 출가를 하고자 하여 비구가 곧 받아들였는데, 또 스승이 되어주기를 청한다면 그 비구는 스승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스승이 될 수 없느니라. 쫓아서 법을 받은 자라야 스승이 될 수 있으니, 의지하여 따르는 자는 의지사(依止師)가 될 수 있느니라.”
“어떤 비구가 사미의 작법(作法)을 버리지 않았다면 대도인(大道人)으로서 다시 계를 받아서 스님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될 수 있느니라.”
“만약에 계를 얻지 못하였다면 전에 받은 계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로 있느니라.”
“나중에 스승으로 삼는 것은 옳습니까, 그릅니까?”
“그르니라.”
“여러 사람이 계를 받고 한 사람에게 스승이 되어 줄 것을 함께 청하는 것이 괜찮다면, 열 사람이나 다섯 사람이 동시에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사미가 대계(大戒)를 받고 어느 한 비구에게 대계사(大戒師)가 되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 비구가 작법(作法)과 수계법(受戒法)을 알지 못하여, 다시 다른 한 비구에게 대계사가 되어 주도록 청하였다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계를 준 사람이 스승이 되니, 법이 없으면 스승이 아니니라.
5계를 주는 것은 비구만이 오직 줄 수 있으니, 바라문이 다른 비구에게 주거나 비구니가 비구에게 줄 수는 없느니라.
중간의 일을 묻는다면 물은 자는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모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왕에게 전부 보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왕이 싫어하지 않는다면 괜찮으니라.”
“다른 사람이 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꾸짖지 않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앞에 있는 사람을 충고할 수 있는 데도 충고하지 않는 것은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충고를 할 수 없다면 한 비구에게 숨기지 않고 그대로 잘 말하면 되느니라.”
“비구가 전에 잘못을 범하고서 다시 계를 받았으면 함께 머무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죄(重罪)를 범하였으면 다시 계를 받을 수 없으며, 승잔(僧殘)을 범한 경우에는 잘못을 뉘우치면 다시 받을 수 있지만, 뉘우치지 않으면 또한 다시 받을 수 없거늘, 하물며 함께 머무를 수 있겠느냐?”
“긴급한 일이 있는 경우에 비구가 활이나 화살이나 칼이나 배를 가지고서 따라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신이 주장하여 그렇게 하는 것은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며, 남에게 맡겨서 그렇게 하는 것은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관가에 핍박을 당하여 법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두 명의 남자가 함께 희롱하다가 곧 그만두었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승잔(僧殘)을 범하는 것이니라.”
“두 명의 남자가 음행을 하는 것을 비구가 몰래 듣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음욕심이 없이 들었다면 바일제(波逸提)를 범하는 것이며, 음욕심을 갖고서 들었는데 몸은 잃지 않았다면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병이 나서 걸을 수가 없다면 수레나 말을 타도됩니까, 안 됩니까?”
“수컷인 말이 끄는 수레나 수컷인 말의 경우에는 모두 탈 수 있지만, 암컷인 경우에는 암컷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며, 암컷이라는 생각을 하였다면 승잔을 범하는 것이니라. 그것이 암컷인 줄 몰랐다면 죄는 없느니라.”
“비구가 경전을 좋은 것이 아니라고 싫어하여서 그것을 팔아버리고 다시 좋은 것을 만든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경전을 파는 것은 부모를 파는 죄와 같으니라.”
“
두 남자가 힘으로 실력을 다투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축생이 음행을 하고 있는데 비구가 시험 삼아서 떨어뜨려 놓는 것은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바일제를 범하는 것이니라.”
“대의(大衣)는 놔두고 소의(小衣)를 입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괜찮으니라.”
“비구가 안거 동안에 승가의 공유물을 받아도 됩니까, 안 됩니까?”
“만약에 승가의 공유물을 보시 받았다면 마땅히 그 자리에서 분배해야 할 것이며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에게 잘 아는 집이 있어서 일을 그에게 맡겼는데, 다시 다른 비구가 그에게 구걸하여 물건을 얻는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주인의 생각을 관하여 주인의 뜻이 나쁘다면 물건을 얻어서는 안 되니, 물건을 얻는다면 사타(捨墮)를 범하는 것이니라. 주인의 뜻이 좋은 것을 알았다면 물건을 얻어도 괜찮으니라.”
“비둘기와 참새가 사람의 집 안에 둥지를 틀었는데 비구가 둥지를 부수거나 혹 쥐구멍을 막아버린다면 무엇을 범하는 일입니까?”
“비둘기나 참새에게 아직 새끼가 없다면 제거해도 괜찮으나 새끼가 있다면 제거해서는 안 되느니라. 쥐구멍에 드나드는 구멍이 한 개밖에 없는 경우라면 구멍을 막아서는 안 되며, 만약에 안팎에 구멍이 있는 경우라면 안쪽의 구멍은 막아도 되느니라.”
“비구가 스승이나 도반에게 편지를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른 지방에 있는 경우라면 뜻을 통할 수 있으나, 다른 나라에 있는 경우라면 안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출가하는 것을 국법(國法)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는 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출가할 수 없느니라.”
그때에 목련(目連)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계율(戒律)을 이렇듯 명쾌하게 말씀하셨으나,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나면 누가 능히 이와 같은 계율을 받아 지닐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계율을 배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능히 이와 같은 계율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만약 어떤 비구나 비구니가 이와 같은 계율을 비방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마군이며 그의 무리들은 나의 제자가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하느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은 세세생생토록 도를 배우더라도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삼계(三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내가 이제 그 여러 중생의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느니라.”
이때 목련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불설목련문계율중오백경중사(佛說目連問戒律中五百輕重事)
문장을 살펴보면 국본(國本)에는 367개의 질문이 있고, 거란 판본[丹本]은 국본과 같으며, 송본(宋本)에는 다만 220개의 질문만 있으니, 빠진 것이 심하다. 이제 두 판본을 취하여 보충하였으나, 또한 500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역본(譯本)에서 부족한 이유를 생각해보건대 혹 제목에 큰 수를 들어 300이라고 표한 것을 베껴 쓰는 이들이 삼(三)을 오(五)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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