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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129 불설돈진다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伅眞陁羅所問如來三昧經) 상권

by Kay/케이 202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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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돈진다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伅眞陁羅所問如來三昧經) 상권

 

불설돈진다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伅眞陀羅所問如來三昧經) 상권


후한(後漢) 월지(月氏) 삼장(三藏)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현성주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6만 비구와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 계셨다.
또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시방세계[十方佛刹]의 7만 3천 보살은 각 보살마다 대중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이다. 이 보살들은 다 다라니법(陀羅尼法)을 얻어서 걸림이 없는 변재(辯才)를 갖췄으나, 마음으로는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더욱 더 인욕(忍辱)을 닦았다. 이 인욕을 성취한 마음이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 마음을 단절(斷截)시킬 수가 없었다. 모든 불법(佛法)을 다 닦아서 남김없이 성취하려는 원력(願力)을 원만하게 갖췄으므로, 그 의지도 대단히 훌륭한 경지로 향하였다.
그들의 의지가 조금도 보살의 마음[菩薩心]을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보살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도와 주었다.
또 보시로 조화롭게 마음을 굴복시켜 어지럽지 않게 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아낌없이 베풀면서 청정한 계율로 몸과 입과 뜻을 장엄하였다. 여기에 그 인욕(忍辱)은 저절로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어 닦아나가는 힘이 되었다.
이것은 큰 서원을 세워 헤아릴 수 없는 겁[阿僧祗劫] 동안 백천억의 공덕을 닦고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 선정해탈삼매[禪惟務三昧三摩越]를 얻어서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뜻을 알고 스스로 기뻐해 왔기 때문이다.
그 지혜의 공덕으로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그 마음은 수미산(須彌山)처럼 장중하여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 마음은 흙, 물, 불, 바람처럼 평등하여 애착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慈]을 지녔으므로 그 몸의 광명은 걸림이 없었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哀:悲]으로 모든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였으며, 법의 평등한 마음[等:捨]으로 상대를 따라 기뻐하였다[樂: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여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았으니, 이로운 일ㆍ이롭지 못한 일ㆍ칭찬하는 일ㆍ비방하는 일ㆍ명예로운 일ㆍ명예롭지 못한 일ㆍ괴로운 일ㆍ즐거운 일의 온갖 세상 법을 뛰어넘었다.
일체의 온갖 모임에 차별을 두지 않으면서 모든 외도(外道)를 물리치고,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켰다.
그들은 만나기 어려운 우담발라(優曇跋羅)꽃처럼 귀하였으나, 모든 사람은 어느 때이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초청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교화하였기 때문에, 후덕(厚德)한 벗으로 알려졌다. 이 후덕한 벗들은 이미 열반에 이르러서, 더없이 큰 서원(誓願)으로 심오한 법에 들었으므로 사자처럼 용맹하였다.
여래의 법인(法印)으로 인가(印可)를 얻고 아무런 장애 없이 수기를 받아서, 진실한 법을 환하게 알고 말대로 실천하였기 때문에, 그 광명은 해와 달보다 더 밝게 빛나서 시방 어디에서도 그 이름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여기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불법(佛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하시니, 그들은 모두 그 심오한 법장(法藏)을 지키면서 삼보(三寶)를 끊지 않았다.
그 마음의 공덕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두루 다녔으나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하여 부처님이 계신 자리[其處]를 익숙하게 알았으므로, 모든 부처님의 처소를 잊지 않고 왕래하였다.
항상 모든 사람을 교화하고 인도하면서 이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교묘하고 훌륭한 방편[善巧方便:漚★拘舍羅]에 들어갔다. 이에 수행자[頭隨人:頭陀行者]의 마음에 좋아하는 일을 알고 그에 알맞은 법으로 가르쳐서 각기 알맞은 자리를 찾도록 하였고, 모든 사람의 모양과 소행을 알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에 따라 그 뜻을 잃지 않으면서, 의왕(醫王)의 덕을 일으켜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치료하였다.
이미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供養)한 공덕이 몸의 모양[相]에 나타나서 모든 종류의 상호(相好)를 갖추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법을 뛰어넘었다. 온갖 법이 존재하지 않음이 환술(幻術)과 같고, 아지랑이[野馬]와 같고, 꿈과 같고, 물 속의 그림자와 같고, 산 속의 메아리와 같음을 깨달았으며, 일체의 음성을 다 알고 온갖 법에 두루 들어가서 묻는 일마다 모두 답할 수 있었다.
또 이미 바라는 일을 성취하여 지니고 지혜로 도(道)의 일을 분명하게 알아서, 거의 세존(世尊)의 10력(力)과 가까운 경지에 들었고. 육안(肉眼)ㆍ혜안(慧眼)ㆍ도안(道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으로 온갖 어두운 번뇌를 멀리 벗어났으며, 모든 공덕행(功德行)에 다 들어가서 보살(菩薩)의 법장(法藏)을 환하게 알았다.

그리고 어떤 법을 들을지라도 더 이상 옮기거나 물러나지 않고, 곧바로 참모습 그대로 아는 삼매[相印三昧]ㆍ금강행의 삼매[金剛行三昧]ㆍ법을 마음대로 일으키는 삼매[其法在所作三昧]ㆍ보배처럼 밝고 맑음을 잃지 않는 삼매[寶明持三昧]ㆍ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삼매[不捨一切人三昧]ㆍ일체의 마음을 다 아는 삼매[悉知一切心三昧]를 얻었다.
이미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부처님과 같은 일을 하면서, 일체중생이 본래 원만하게 갖추고 있는 모든 상호(相好)를 성취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낙작(樂作)보살ㆍ낙등유(樂等有)보살ㆍ보수(寶手)보살ㆍ명화(明華)보살ㆍ보염(寶炎)보살ㆍ희견(喜見)보살ㆍ의희(意喜)보살ㆍ희이안견(喜以眼見)보살ㆍ지지(持地)보살ㆍ환희작(歡喜作)보살ㆍ대처폐(大處廢)보살ㆍ대리(大利)보살ㆍ벽마(辟魔)보살ㆍ의락향(意樂香)보살ㆍ인중지천(人中之天)보살ㆍ제원(諦願)보살ㆍ등시(等視)보살ㆍ진견등부등(盡見等不等)보살ㆍ집어(執御)보살ㆍ일체무천이작천지후(一切無倩而作倩之厚)보살ㆍ미륵(彌勒)보살ㆍ우음(雨音)보살ㆍ
양약산반(兩若山半)보살ㆍ양산정(兩山鼎)보살ㆍ자행(慈行)보살ㆍ광영(光英)보살ㆍ광성양(光聲陽)보살ㆍ
등명왕(鐙明王)보살ㆍ여당안소견(如當眼所見)보살ㆍ광등지(光等知)보살ㆍ존관(尊官)보살ㆍ천관(天官)보살ㆍ천안(天眼)보살ㆍ시처실길(視處悉吉)보살ㆍ쾌벽(快辟)보살ㆍ제의의(諦議意)보살ㆍ안처의(安處意)보살ㆍ안처도(安處度)보살ㆍ무소동이도(無所動而度)보살ㆍ금강행도(金剛行度)보살ㆍ삼세행도(三世行度)보살ㆍ제여사불이(諦如事不異)보살ㆍ지엄욕호(持嚴欲好)보살ㆍ부진욕(不盡欲)보살ㆍ불계유욕(不稽留欲)보살ㆍ의음(意音)보살ㆍ정음(淨音)보살ㆍ포만일체음(飽滿一切音)보살ㆍ문수시리(文殊尸利)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이 법회에 모인 7만 3천 보살들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刹土]의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으로서, 세상을 보호하는 분들이다.
이외에 모두가 하나같이 위덕(威德)이 훌륭한 하늘ㆍ용ㆍ열차(閱叉:夜叉)ㆍ건타라(揵陀羅:乾闥婆)ㆍ아수륜(阿須倫:阿修羅)ㆍ가류라(迦留羅:迦樓羅)ㆍ진타라(眞陀羅:緊那羅)ㆍ마후륵(摩睺勒:摩睺羅伽)ㆍ사람 모양으로 변한 신들[人非人]도 이 법회(法會)에 참석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설하시려는 경(經)을 듣고자 하였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르게 고치고, 두 손 모아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따를 수 없는 도(道)를 밝히시어 세상의 본보기가 되시고, 그들을 온갖 어두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건져주시는 분께 귀의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布施)와 총지(摠持:陀羅尼)와 열 가지의 힘[十種力]으로, 그 마음을 조화롭게 다스리시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시면서 일체중생을 다 건져주시니,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삼계(三界)에서 비길 자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상호(相好)로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베푸시면서 그 광명은 붉게 비춰 황금처럼 빛나고 그 음성은 고루 맞춰 들려주시니, 너무도 훌륭하신 그 상호는 비길 데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그 상호를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바라밀(波羅蜜)의 바른 법으로 제도하시면서 수많은 외도(外道)를 항복시키셨습니다. 그 훌륭하신 지혜(智慧)는 온갖 지식(知識)이 따를 수 없고, 그 누구도 흔들 수 없으며, 일체의 행을 다 아시는 그 공덕도 비길 데 없이 위대하시니, 저는 이제 더없이 훌륭한 대비[無極大哀]께 귀의합니다.
온갖 욕망[諸所欲]은 욕망에서 얻을 수 없으니, 온갖 마(魔)들이 찾을지라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 청정한 계율(戒律)을 일체의 모든 하늘에 다 세우시고 하늘 가운데서 으뜸이오나 조금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저는 이제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그 덕(德)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고, 보배 같은 형상(形像)을 보고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보시를 행하시어 이미 탐욕[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벗어나셨으니, 저는 이제 그 덕이 하늘처럼 덮지 않음이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네 가지 진리[四諦]로 네 가지의 세차게 흐르는 번뇌[四竇]를 초월하시고, 바른 안목이 없는 자들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끝없는 설법으로 삼세(三世)를 두루 행하시면서 일체중생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그 발에 법륜상(法輪相)을 두신 분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몸은 모든 하늘과 일체 인간이 받들어 섬기므로 남자거나 여자거나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음이 없고 마의 무리는 감당하지 못하니, 천상천하에서 가장 훌륭하십니다. 온갖 도리의 바른 법으로 일체중생을 보호하시면서
그 평등한 마음의 자비는 누구에게나 미치지 않음이 없으시고, 일체중생을 이끌어 주시니, 그 법은 어디에서나 평등하게 머뭅니다. 저는 이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덕을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 음성은 부드럽고 맑으셔서 듣는 이의 마음은 기쁘지 않음이 없고, 그 성향(聲響)은 범음(梵音)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 없으시니, 일체의 온갖 음성을 모두 다 갖추셨습니다. 저는 이제 훌륭한 진리를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이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경지도 뛰어넘으셨으니, 그 지혜는 너무도 심오하여 그 바닥을 알 수 없고, 이미 깨달아 들어가신 여러 해탈의 경지는 바로 공덕이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미 해탈의 경지를 얻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인연이 생기는 일마다 그에 따른 공덕이 있음을 다 아시고, 그 안도 없고 밖도 없이 평등한 작용을 보셨으므로, 그 말씀도 평등한 작용대로 분별하시고 설하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의 온갖 소견을 초월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온갖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이 다 해탈되어 마치 환술(幻術)이나 아지랑이와 같다고 보셨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법의 공덕을 바로 보신 분께 귀의합니다.
생기는 일이 있거나 생기는 일이 없을지라도 모두 생겨남이 없으시고, 비록 이미 멸했을지라도 사라질 때가 없으시니 법대로 머무시고 진리에서 오신 그대로[如怛薩] 들어가십니다. 진실한 말씀도 법대로 설하시면서 진리에서 오신 그대로 움직이거나 변함이 없으시니, 그 덕은 큰산처럼 움직이지 않으시며, 그 몸은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십니다. 저는 이제 큰산처럼 안온한 경지에 머무신 분께 귀의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이 조화롭고 평등하시며, 삼세(三世)에 고루 퍼진 그 이름은 듣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다 답할 수 있으시므로 번거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즐겁게 말씀해주시니, 이제 제가 묻고자 하옵니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은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말했다.
“만일 기쁜 마음으로 설해 주신다면 이 일을 묻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묻도록 하여라.”
“첫 번째, 보살이 자유자재한 설법으로 몸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
두 번째, 보살이 심오한 법을 결정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
세 번째, 보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
네 번째, 보살이 상대의 기쁜 일을 따라서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4]
다섯 번째, 보살이 사람들의 마음의 행을 따라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5]
여섯 번째, 보살이 인연의 변화작용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6]
일곱 번째, 보살이 보시[施與]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7]
여덟 번째, 보살이 지계(持戒)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8]
아홉 번째, 보살이 인욕(忍辱)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9]
열 번째, 보살이 정진(精進)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0]
열한 번째, 보살이 선정[一心]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1]
열두 번째, 보살이 지혜(智慧)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2]1)
열세 번째, 보살이 범천(梵天)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3]
열네 번째, 보살이 세간의 지혜가 매우 훌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4]
열다섯 번째, 보살이 언제나 훌륭한 경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5]
열여섯 번째, 보살이 여기에서 해탈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6]
열일곱 번째, 보살이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나 온갖 사람들에게 법을 시현(示現)하면서 그들을 그 속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7]
열여덟 번째, 보살이 생사(生死)를 벗어나서 열반(涅槃)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8]
열아홉 번째, 보살이 일체 인간의 세계가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9]
스무 번째, 보살이 본 바탕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본 바탕을 벗어나서 시현(示現)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0]
스물한 번째, 보살이 존귀한 자리를 얻고 그 복이 창고의 재화(財貨)처럼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1]
스무두 번째, 보살이 욕망의 세상을 따라서 도(道)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2]
스물세 번째, 보살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
스물네 번째, 보살이 하는 일에 항상 안전하게 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4]
스물다섯 번째, 보살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일에 물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5]
스물여섯 번째, 보살의 자유자재한 법이 단정하여 당할 자가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6]
스물일곱 번째, 보살이 언제나 부처님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7]
스물여덟 번째, 보살이 안전한 법을 세우고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8]
스물아홉 번째, 보살의 뜻이 법과 더불어 취하는 일도 없고 버리는 일도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9]
서른 번째, 보살이 일체중생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0]
서른한 번째, 보살이 법륜(法輪)을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1]
서른두 번째, 보살이 마침내 일생보처(一生補處:阿惟顔)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다. 제무리(提無離)여, 보살은 모두를 위하여 알맞은 질문을 하였으니, 이 법회(法會)의 대중은 미래의 중생을 다 인도하여 이 대승법[摩訶衍]을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리라.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 새겨 자세히 듣도록 하여라.”
모두 말했다.
“부디 말씀해 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듣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자유자재한 설법으로 몸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첫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자유자재하게 설법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광명을 모두에게 걸림 없이 두루 비추는 일이요, 둘째는 귀한 보배를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찾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일이며, 셋째는 만일 경을 밝혀 설하는 이가 있다면 중단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 권장하는 일이요, 넷째는 만일 설법을 청하는 이가 있다면 상대가 곤혹스럽게 여기지 않게 하고 여래[怛薩阿竭]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뜻을 받들어서,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설하는 가운데 보살의 일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법을 베푸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심오한 법을 결정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
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온갖 법에 깊이 들어가서 지혜를 닦고 그 공덕(功德)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12인연(因緣)을 바르게 아는 일이요, 둘째는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몸과 다름없이 아끼는 일이며, 셋째는 생사에 대하여 어디에서 온다거나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모든 법을 공(空)으로 관하여 공으로 보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
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온갖 사람의 마음을 보고 그 공덕(功德)의 증감(增減)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법신(法身)에 들어가서 더러움이 없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종류의 상호(相好)를 다 나타내는 일이며, 셋째는 네 가지 일[四事:註]로 관찰하는 일이요, 넷째는 그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곧바로 삼매(三昧)를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상대의 기쁨을 따라서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4]
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일체중생의 소행을 따라 교화(敎化)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지혜를 평등하게 지니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을 다 교화하는 일이며, 셋째는 모든 법을 살펴서 아는 일이요, 넷째는 먼저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서 온갖 사람들의 마음을 청정케 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사람들의 마음의 행을 따라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5]
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음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소행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세간의 지혜로 어디에든지 드나드는 일이요, 둘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일이며, 셋째는 그 마음에 두 갈래의 차별이 없는 일이요, 넷째는 자고 눕는 온갖 장애[睡臥諸盖]에 더 이상 붙들리지 않은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인연의 변화작용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6]
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인연 따라 짓는 죄(罪)와 복(福)을 잊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일체에 끊을 대상이 없는 일이요, 둘째는 역시 집착할 대상도 없는 일이며, 셋째는 그것이 인연(因緣)의 작용임을 알고 그 작용을 따라 시현(示現)하면서 법으로 법을 지니는 일이요, 넷째는 거기에 나란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란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이 가르침을 따라 도법(道法)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보시[施與]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7]
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보시(布施)를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상호(相好)를 장엄하는 일이요, 둘째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요, 셋째는 그 몸의 색(色)이 매우 훌륭하고 좋은 일이며, 넷째는 한없이 보시를 행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지계(持戒)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8]
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청정한 계율(戒律)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곧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지라도 보살의 마음을 잊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될지라도 보살의 마음으로 자신을 장엄하는 일이며, 셋째는 범천(梵天)이 될지라도 그 마음을 보살의 행으로 장엄하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악도(惡道)를 벗어나게 하고 단지 천상(天上)에 태어나거나 인간세상에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살의 마음으로 장엄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인욕(忍辱)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9]
아홉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인욕(忍辱)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범천(梵天)과 같은 음성을 내어 듣는 이들에게 각기 알맞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소리가 부드럽고 훌륭함이 마치 가릉빈가(迦陵頻伽)처럼 듣기 좋게 하는 일이며, 셋째는 그 소리를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은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이요, 넷째는 언제나 공덕(功德)이 견고한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정진(精進)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0]
열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정진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몸이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여 온갖 삿된 무리가 엿볼 틈이 없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모두에게 두터운 덕을 베푸는 일이며, 셋째는 해야할 일을 갖추고 마련하여 중간에 뉘우치거나 싫증내지 않고 끝까지 배우고 묻는 일이요, 넷째는 그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다 원만하게 갖추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선정[一心]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1]
열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스스로 선정(禪定)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하는 일이 겨루거나 부딪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희롱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나쁜 경계에 빠지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스스로 알고 선정의 뜻이 변함이 없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지혜(智慧)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2]
열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지혜를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스스로 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목숨의 길이를 생각하지도 않고, 목숨[命]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일이요, 둘째는 하는 바가 매우 훌륭한 일이며, 셋째는 일체의 존재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모든 법에 더 이상 두려움이 없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범천(梵天)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3]
열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지혜를 닦아 스스로 범천(梵天)에 이르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공(空)과 일치한 사랑[空慈]으로 모두를 생각하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을 교화하면서 대비(大悲)를 베푸는 일이며, 셋째는 온갖 법을 다 거둬들여 미리 보호하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여 부처님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세간의 지혜를 매우 훌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4]
열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세간의 지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4선정(禪定)에 머물면서 보살의 마음이 변하지 않은 일이요, 둘째는 4공정(空定)의 삼매(三昧)와 삼마월(三摩越)로, 방편선교(方便善巧:漚★拘舍羅)를 행하여 무색계(無色界) 가운데 태어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마음대로 설하면서 법을 떠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시방(十方) 곳곳에서 두루 모든 부처님을 다 친견(親見)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언제나 훌륭한 경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5]
열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자유자재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안에서도 저절로 없어지고, 밖에서도 저절로 없어지는 일이요, 둘째는 온갖 법이 환술(幻術)과 같음을 분명하게 깨치는 일이며, 셋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로 힘을 삼는 일이요, 넷째는 교만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여기에서 해탈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6]
열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출세간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욕망을 알고 욕망을 끊지 않으면서 중간[中道]에 깨달음을 취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생사(生死)를 알고 방편선교로 생사에 있는 일이며, 셋째는 바른 도와 바르지 못한 도를 다 아는 소견을 버리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무명[無黠]을 알고 12인연(因緣)과 친근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나 온갖 사람들에게 법을 시현(示現)하면서 그들을 그 속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7]
열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나한(羅漢)과 벽지불(辟支佛)과 모든 사람들에게 법으로
시현하여 그들의 경계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깨우쳐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온갖 삼매(三昧)를 환술(幻術)처럼 보고 아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법을 분명하게 알고 장엄하는 일이며, 셋째는 신통[旬]을 스스로 즐기면서 진실한 법을 짓는 일이요, 넷째는 그 스스로 마음을 환술과 같다고 아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생사(生死)를 벗어나서 열반(涅槃)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8]
열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생사를 떠나서 열반에 들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마음이 평등하게 대비[哀]를 행하는 일이며, 셋째는 방편선교(方便善巧:漚★拘舍羅)를 행하는 일이요, 넷째는 본래 발심(發心)한 서원(誓願)을 잊지 않은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일체 인간의 세계가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9]
열아홉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사람이 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일체의 사람은 자연이므로 모든 사람이 법신에 들어감도 자연 그대로 진실하다고 보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다고 아는 일이며, 셋째는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지혜도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의심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사람도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열반[泥洹]도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알고 법인(法忍)을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본 바탕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본 바탕을 벗어나서 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0]
스무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본 바탕을 떠나지 않고 본 바탕을 떠나서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보살이 존귀한 자리를 얻고 그 복이 창고의 재화(財貨)처럼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1]
스물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생각을 지키면서 생각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항상 열반(涅槃)을 생각하고 불법(佛法)을 원만하게 갖추려는 의지로 두루 아는 일이요, 둘째는 전륜성왕(轉輪聖王)ㆍ범천(梵天)ㆍ제석(帝釋)의 몸을 시현하고, 그 가운데 공덕(功德)을 나타내면서 모인 사람들을 이 법으로 이끄는 일이며, 셋째는 모자란 몸을 나타내어 모자란 이들이 공덕을 짓게 하는 일이요, 넷째는 자신의 몸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아낌없이 몸을 보시하기도 하고, 존귀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존귀한 부호(富豪)의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을 이끌어 교화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욕망의 세상을 따라서 도(道)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2]
스물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견해의 법을 떠나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무상(無常)한 생사(生死)에 있으면서 그 마음이 청정한 일이요, 둘째는 본래 이미 괴로운 세상에서 이제 출세간의 지혜를 얻는 일이며, 셋째는 일체의 온갖 법에 나의 존재가 없는 이치를 보는 일이요, 넷째는 열반(涅槃)의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스물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의심을 마음대로 결단해야 한다.
첫째는 청정한 일이요, 둘째는 지혜의 눈으로 못 보는 경계가 없는 일이며,
셋째는 불안(佛眼)이 뚜렷하게 앞에 나타나는 일이요, 넷째는 모든 법을 해탈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인가[印]를 받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하는 일에 항상 안전하게 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4]
스물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법에 머물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소원에 장애가 없는 일이요, 둘째는 온갖 진실한 지혜에 들어가는 일이며, 셋째는 이 지혜로 덮지 못할 것이 없는 일이며, 넷째는 온갖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일에 물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5]
스물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세속을 따라 익히면서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세상의 일을 빠짐없이 아는 일이요, 둘째는 곧바로 온갖 사람을 제도(濟度)할 수 있는 일이며, 셋째는 미움과 사랑에서 벗어나는 일이요, 넷째는 근본 바탕을 깨끗이 닦아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의 자유자재한 법이 단정하여 당할 자가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6]
스물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고요한 경지에서 모든 법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마음이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요, 둘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慧]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며, 셋째는 그 세간의 지혜[智]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요, 넷째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方便善巧]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언제나 부처님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7]
스물 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을 따라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여래[怛薩阿竭]를 떠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용모(容貌)를 찬탄하는 일이며, 셋째는 사람들을 발심시켜 보살(菩薩)이 되도록 교화하는 일이요, 넷째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안전하게 법을 세우고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8]
스물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스승이 되어 탐욕이 없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온갖 사람들에게 인연을 짓게 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마음이 질박하여 아첨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자신의 편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일이요, 넷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지 않고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의 뜻이 법과 더불어 취하는 일도 없고 버리는 일도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9]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도(道)로써 세속의 일을 다 아는 일이요, 둘째는 일체의 세간 지혜와 출세간 지혜[智慧]를 환하게 아는 일이며, 셋째는 무엇을 들을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법인(法忍)을 얻는 일이요, 넷째는 옳음과 옳지 않음[有是無是]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세속 사람들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일체중생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0]
서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일체중생을 보호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자신의 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일이요,
둘째는 온갖 즐거움을 다 버리고 법으로 즐거움을 삼는 일이며, 셋째는 들은 일을 지식[解]으로 여기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법으로 자신을 길러나가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법륜(法輪)을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1]
서른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땅히 법륜(法輪)을 굴려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를 체득하여 원하는 바가 마음대로 성취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요, 둘째는 도달한 경지가 사라지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스스로 그 마음에 들어가서 안으로 모든 법을 환하게 깨치는 일이요, 넷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아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보살이 마침내 일생보처(一生補處:阿惟顔)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2]”
서른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침내 일생보처에 이르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이미 생사를 벗어났더라도 보살행(菩薩行)을 떠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곧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므로 생사를 수용하여 법을 떠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이로써 물러남이 없는 법인(法印)을 얻는 일이요, 넷째는 이미 이제 불퇴전(不退轉:阿惟致)의 법인을 얻고 나서, 이제 여래의 인가를 얻으면 열 가지 도지(道地)에 이르며, 이로써 열 가지 도지에 이르면 열 가지 도지를 차례로 환하게 아는 일이니라.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보살사사경(菩薩四事經)을 설하시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그 광명은 밝게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든 하늘은 그 위로 날아와서, 억백천의 즐거운 음악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하늘 꽃을 뿌리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수 겁(無數劫) 동안 닦아오신 모든 법을 이제 다 들려주셨습니다. 여기 법회대중(法會大衆)이 이 법을 듣게 된 것은 본래부터 이미 그 공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듣고 나서 읊고 외어 지닐 뿐 아니라, 또 모든 사람에게 널리 설하면서 그 마음에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보살들이 해온 일도 부처님과 다르지 않사오니 저희들은 벌써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법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8만 4천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더없이 높고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일으켰고, 1만 2천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無所從生法樂忍)을 얻었다.
제무리보살(提無離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怛薩阿竭]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이 경(經)을 듣는 이가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받들어 섬긴다면, 마땅히 몇 가지 법공덕(法功德)을 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연히 여덟 가지 법의 공덕을 얻으리라. 첫째는 그 믿음이 보살과 다름없이 견고하게 머무는 일이요, 둘째는 그 몸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덕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을 더욱 이롭게 하였으니 그 마음에 원한이 없는 일이며, 셋째는 끝없는 대비(大悲)에 머물면서 모든 사람을 교화하는 일이요, 넷째는 바른 법을 배우고 묻는 일에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 마치 큰 바다가 온갖 크고 작은 냇물을 싫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섯째는 모든 법을 보호하려는 일이요, 여섯째는 법의 공덕으로 자신을 키우면서 비록 몸은 죽더라도 뒤에는 오히려 배로 좋아지는 일이며, 일곱째는 모든 복의 공덕에 들어가서 본래의 서원(誓願)을 원만하게 갖추고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일이요, 여덟째는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보살이여,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에도 마땅히 이 여덟 가지 일로 법의 공덕을 얻으리라.”
이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면서 그 땅은 온통 손바닥처럼 평평해졌다. 모든 산과 언덕과 비탈의 못과 골짜기의 냇물들도 모두 땅처럼 평평해졌으나, 물 속의 중생들은 다 본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백년 동안 마른 온갖 나무에서 여러 가지 새 잎들이 생기더니 가지를 기울여 부처님 쪽을 향하였으며, 그 외 다른 훌륭한 나무들도 역시 이와 같이 부처님을 향하였다. 땅에서는 수레바퀴만한 연꽃들이 피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색깔이 어우러진 가운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환하게 비췄다. 아래에서 위를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저 매우 아름다운 음악[妓樂]소리만 들려 왔다.
이때 빙산(氷山)의 향산(香山)으로부터 나온 향기가 곳곳에 두루 퍼졌으며, 이 산에서 나온 꽃들은 부처님 위를 비 오듯 뿌리더니,발의 복사뼈가 잠길 정도로 쌓였다. 또 부처님이 앉아 계신 나무에서도 꽃이 피면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하늘의 음악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부처님 위에는 바로 30만 리를 가릴 수 있는 보배 꽃 일산이 생겨서 부처님의 자리를 덮었다. 일산의 사이마다 주렁주렁 달린 진귀한 보배 방울들이 주변을 빙 둘러싼 가운데, 방울마다 다 구슬을 늘어뜨렸으며, 이 구슬에서 흘러나온 소리[音聲]는 삼천대천세계에 울려 퍼졌다.
사리불(舍利弗)이 앞으로 나와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누구의 본래 서원에서 나온 상서로운 감응[瑞應]이기에 이러한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돈진다라(伅眞陀羅)란 왕이 한량없는 수천의 모든 돈진다라(伅眞陁羅)와 한량없는 수천의 건타라(犍陀羅)와 한량없는 수천의 온갖 하늘들과 함께 향산(香山)으로부터 와서 이 상서로운 감응(感應)에 대하여 말해주리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돈진다라왕(伅眞陀羅王)이 8만 4천 악사(樂師)들과 함께 오는 모습이 보였다. 또 그 뒤를 이어 한량없는 사람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하늘 꽃 속에 오는 모습도 보였다.
돈진다라왕은 거느리고 온 이들과 함께 머리를 땅에 대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부처님의 주위를 세 번 돌고 나서 부처님 앞에 멈췄다.
돈진다라왕은 손에 유리 거문고를 잡고 있었다. 그 거문고를 들고 있는 까닭은 그의 본 서원(誓願)이기 때문이다.
8만 4천의 악사들은 각각 4만 2천명씩 나누어 두 방면으로 늘어섰다. 돈진다라왕이 그 한 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자, 그 소리는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들은 모든 욕계(欲界)의 천자(天子)들도 그들의 기악으로 즉시 연주해 보았으나, 그 소리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다 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욕계의 천자들과 온갖 색계(色界)의 천자(天子)들도 모두 다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왔다.
돈진다라왕이 이 음악을 연주할 때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나무들과 이름난 대산(大山)ㆍ빙산왕(氷山王)ㆍ마하목린(摩訶目鄰)산들이 마치 춤을 추는 듯 모두 다 덩실덩실 흔들거렸다. 모든 것이 다 구부렸다가 올렸다가 하면서 마치 사람이 예를 올리듯 다 부처님을 향하였다.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들, 또 그마다 훌륭한 비구들과 새로 발심한 보살들, 그리고 이 법회(法會)에 참석한 모든 하늘ㆍ용ㆍ귀신들도 모두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거렸고, 파아산(頗峨山)마저 그 몸을 일으켜서 춤을 추려고 하였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물었다.
“존경하는 성문들이여, 그대들은 이미 온갖 욕심의 번뇌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다 8해탈(解脫)의 선정(禪定)을 얻어 네 가지 도리[四諦]도 남김없이 보았으면서 무엇 때문에 여기에 들떠 춤을 추십니까?”
뛰어난 성문들은 모두 답하였다.
“저희들은 이 거문고 소리를 참을 수 없으므로, 앉은자리를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이 마음을 굳게 멈추려 하나 억제할 수도 없습니다.”
또 제무리보살은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도 들었고 만족할 줄도 아십니다. 스스로 계율을 법대로 지키면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춤을 추십니까?”
마하가섭이 말했다.
“회오리바람이 한 번 몰아치면 온갖 나무들 중에 아무리 이름난 큰 나무일지라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이 몸이 돈진다라왕의 거문고 소리를 감당하지 못함이 마치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때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자신을 억제할 수 없고서야 비로소 이제 훌륭한 분[上人]의 공덕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성문의 온갖 공덕은 이 거문고 소리에 눌려버린 것입니다.”
제무리보살은 또 마하가섭에게 말했다.
“저 물러남이 없는 보살들의 행의(行誼)를 보십시오. 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리를 듣고도 어찌 더없이 높고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모든 성문이 소유한 위신력(威神力)은 모두 다 거문고 소리에 눌려버렸지만, 그 소리는 대승보살들을 동요시킬 수 없습니다.”
돈진다라왕이 소유한 음악의 8만 4천 음성(音聲)은
모두 다 돈진다라가 본래 세운 서원(誓願)의 복으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들였다.
그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음악 소리는 다 함께 말했다.
“모든 법은 평등하면서 다 해탈하였으니, 위와 중간과 아래도 모두 청정하면서 공(空)하여 차별이 없습니다.[1]
일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본래 없으니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저 소리만 들을 뿐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법은 일체 인간의 소리도 그렇습니다.[2]
일체 세계는 평등합니다. 세계가 평등한 까닭은 세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존재가 없는 평등을 밝혀서 세계라고 칭할지라도 생기는 일도 없고, 또한 자라거나 커지지도 않습니다.[3]
그러므로 공(空)하여 식(識)이 없으면서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온갖 존재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자연 그대로 진실합니다. 바깥 작용도 얻을 수 없고, 안의 작용도 얻을 수 없습니다.[4], [5].
그 지혜는 본래 다른 법입니다. 그 문자의 법[字法]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이름[名]도 그렇습니다. 만일 명색(名色)이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면, 그 작용에 집착하지 않습니다.[6]
과거에 세운 법은 끝없이 많습니다.
이미 법을 들은 뿌리부터 다 무너졌으니, 나갈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습니다.[7]
그 헤아리는 일에 단지 문자가 있을 뿐이니 단지 문자가 사라짐을 알면, 문자의 법은 평등하여 헤아려 구별하지 않습니다.[8]
마음에 지닌 일을 평등하게 지니기 때문에 지니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구르고 변하여 서로 알지 못하니,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心所思]도 생기는 일이 없습니다.[9]
이 출세간의 지혜가 곧 법에 들어가는 것을 압니다. 그 뿌리마다 평등하게 끊어야만 앞뒤의 법이 고루 평등해집니다. 이렇게 삼세(三世)에 평등함을 안다면, 그 출세간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갑니다.[10]
세상의 범부들이 색(色)과 명(名)에 얽힘은 바로 범부 자신이 저지른 일입니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또 나서부터 늙을 때까지 아무것도 없으나, 그들은 이미 인연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음을 압니다.나도 있고 사람도 있다고 하니 본래의 바탕과 뒤바뀌었습니다.[11]
나의 머무는 일도 평등하여 머무는 일이 없고 모든 법도 머무는 일이 없으니, 만일 머물면서 머물지 않음을 안다면, 이것을 ‘기쁜 마음으로 듣고 믿는 법인(法忍)’이라고 합니다.[12]
비에 따른 번개가 위의 자연(自然)인 것처럼 일체의 온갖 법도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연이라고 합니다.
나와 사람은 자연 그대로 공(空)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바로 총지법인(摠持法印:陀隣尼印)에 들어갑니다.[13]
모든 해탈문(解脫門)을 다 알고 나면 모양[相]은 평등한 모양이므로 모양 법[相法]이 없고, 상(相)과 무상(無相)의 뒤섞임이 없으므로 바랄 일이 없습니다.[14]
문자를 쓰기 때문에 법과 차별되어 곧바로 상ㆍ중ㆍ하가 있으나, 문자 자체는 스스로 알지 못하고 별도의 작용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마음은 이미 본래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15]
그러나 문자와 마음[二本]이 서로 응하여 이어지므로, 이로써 모든 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이미 진실한 바탕[本際]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16]
이미 진실한 바탕을 끊고 일체중생을 위하여 행하면 이미 진실한 바탕이 평등함을 알게 되니, 이것을 자비[慈哀]라고 합니다.[17]
이미 자비에서 청정해지면 곧바로 괴로움과 즐거움에도 평등해져서,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上]이라고 합니다.[18]
이미 진실한 바탕[本]에 들어갔으므로 법을 닦는 사람은 고요하고 또 고요하니, 말을 하든지 말을 안 하든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고요하여 바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19]
공중(空中)의 소리는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듣기만 할 뿐 설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설하는 일과 듣는 일은 다 진실하지 못합니다.[20]”
이 소리를 들었을 때 8천 보살이 모두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樂忍]을 얻었다.
제무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찬탄하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왕에게 묻는다면 그대를 위하여 스스로 다 말해 주리라. 만일 설해준다면 잘 받들어 듣도록 하여라.”
제무리보살은 곧 돈진다라왕에게 물었다.
“이 찬탄하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돈진다라왕이 곧 답했다.
“모든 사람의 소리에서 나왔습니다.”
제무리보살이 다시 물었다.
“모든 사람의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돈진다라왕이 답했다.
“허공에서 나왔습니다.”

제무리보살이 말했다.
“돈진다라여, 모든 사람의 소리는 뜻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돈진다라는 제무리보살에게 되물었다.
“이 소리는 몸에서 나오겠습니까, 마음에서 나오겠습니까?”
제무리보살이 말했다.
“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 몸은 영원히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풀이 영원히 살지 못하고, 담장이 영원히 머물지 못하여 때가 오면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마음은 형상이 없으므로, 볼 수도 없고 들리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니 마치 환술(幻術)과 같습니다.”
돈진다라는 다시 제무리에게 물었다.
“만일 소리가 몸에서도 나오지 않고 마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제무리보살이 바로 답했다.
“일체는 생각을 따라 자연히 소리가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말하는 소리가 생각을 따라서 곧바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찬탄한 소리는 공(空)을 근거로 나왔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소리는 공(空)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진다라가 말했다.
“만일 당신이 소리를 알고자 한다면 소리는 공을 근거로 자연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소리만 들릴 뿐 볼 수가 없으며 곧 사라져버립니다. 그 사라짐도 공(空)이므로 자연이라고 합니다.
모든 법이 평등한 까닭은 공(空)과 같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일이 있거나 말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역시 평등합니다. 그 이유는 공(空)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일체 모든 법은 단지 듣기만 할 뿐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듣는 법도 소리만 들을 뿐 그 법을 보지 못합니다. 법을 소리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소리도 법에 나타나지 않으니, 모든 법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도 교묘한 방편으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고, 들리지 않은 소리도 교묘한 방편의 지혜로 아니, 곧바로 법에 바랄 일이 없는 것입니다.
바랄 일이 없는 경지는 바로 견고한 요의(要義)입니다. 이 견고한 힘은 다시 약해지지 않고 곧바로 굳고 강하니 끊을 수가 없습니다. 끊을 수 없는 것은 생겨남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것은 매이는 곳이 없으며,
매이는 곳이 없는 것은 곧 가볍고 편안한 경지입니다. 가볍고 편안한 경지는 곧 청정하고, 이미 청정한 것은 곧 번뇌의 더러움이 없으며, 이미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것은 지극히 밝습니다.
지극히 밝은 것은 마음의 바탕입니다. 마음의 바탕은 초월한 것[過]입니다. 그 초월이란 지식(知識)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뛰어넘으면 곧 생각[想]이 없습니다. 모든 생각을 뛰어넘으면 그 자리는 더욱 향상됩니다. 더욱 향상된 자리는 보살의 법인[菩薩忍]입니다. 이미 법인(法忍)을 얻은 이는 법의 도리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空)도 법의 도리로 알고 사람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공도 또한 사람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공하다고 하겠습니까? 사람이 공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는 경지[無想]도 법의 도리로 알고, 생각이 있는 경계[有想]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생각이란 자연 그대로 생각[想]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원이 없는 경지[無願]도 법의 도리로 알고 소원이 있는 경계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그 원하는 생각[願想]은 자연 그대로 원하는 바탕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과 열반[泥洹]도 법의 도리로 생사에서 압니다. 왜냐 하면 나고 죽음은 꿈과 같기 때문입니다.
법인(法忍)을 체득한 보살은 유(有)와 무(無)를 의심하지 않으면서, 단 한 번의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알아봅니다. 법인을 얻었으므로, 일체 모든 법이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음을 압니다. 모든 법이 다 머문 것을 알고 이미 법에 머문 사람은 모든 사람이 머무는 경계도 압니다.
이미 이 법에 들어가면 무생법인[無所從生法樂忍]이라고 하나, 단지 음성(音聲)만 있을 뿐입니다. 그 법인(法忍)도 역시 말할 경계가 없으니 말할 수 없으며, 그 바탕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훌륭하시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법으로 사람들을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제무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시원합니다. 돈진다라의 설법은 미묘합니다. 심오한 법을 환하게 깨달아 법인(法忍)을 얻었으므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대단히 훌륭하며, 지니고 들어간 법인도 매우 깊습니다.
부처님께 여쭙겠습니다. 이 왕이 이룩한 공덕은 과거에 몇 부처님을 섬겨 왔기에, 그 말하고 싶은 법을 마음대로 설할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무리보살이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래 한 알을 한 불토(佛土)로 삼아 항하(恒河)의 모래를 다 가지고 저 별들을 남김없이 채울지라도 셀 수 있지만, 돈진다라가 받들어 섬겨온 부처님들은 셀 수가 없느니라.”
제무리보살이 돈진다라에게 물었다.
“받들어 섬겨온 부처님이 이렇게 많으니, 그 공덕을 다 합한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높고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로 빨리 성불(成佛)하지 않았습니까?”
돈진다라가 말했다.
“보살의 열 가지 일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열 가지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여래를 받들어 섬기는 일이요, 둘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공덕을 쌓는 일이며, 셋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법을 배우면서 묻는 일이요, 넷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4선정(禪定)과 5신통(神通)을 아는 일이며, 다섯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법을 보는 일이요, 여섯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널리 법을 설하려는 일이며, 일곱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사람을 교화하려는 일이요, 여덟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언제나 법을 지키려는 일이며, 아홉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다 갖추려는 일이요, 열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상대를 감동시키면서 권장하고 돕고 교화하고 인도하려는 일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행하는 열 가지 일입니다.”
돈진다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위대한 보살[菩薩摩訶薩]들은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지닌다고 들었습니다. 이 삼매를 얻은 보살은 온갖 공덕의 보배를 다 갖추기 때문에 누가 어떤 법을 물을지라도 법을 자유자재하게 설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말을 자세히 들어라.”
돈진다라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어 듣고자 하오니, 말씀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을 끊임없이 받들면서 이 세 가지 일로 발심한다면, 곧바로 여든 가지 법보(法寶)가 있으리라.
여든 가지 법보(法寶)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그 마음이 일체종지(一切種智:薩芸若)를 잊지 않는 보배요, 두 번째는 그 마음이 믿음을 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세 번째는 그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모든 공덕을 닦는 보배요, 네 번째는 그 마음이 견고한 서원(誓願)을 세워서 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자기의 소유를 아낌없이 베풀어서
남을 더욱 이롭게 하는 보배이니라.
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단지 보살행(菩薩行)만을 생각하는 보배요, 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몸을 장엄하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일[身三事]을 범하지 않는 보배이며, 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깨끗하여 나쁜 말을 하지 않는 보배요, 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뜻을 장엄하여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는 보배이며, 열 번째는 그 마음이 미리 계법(戒法)으로 장엄하여 몸을 단속하면서 스스로 나쁜 일을 짓지 않고 남의 나쁜 점을 생각하지 않는 보배이니라.
열한 번째는 그 마음이 걸림 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보배요, 열두 번째는 그 마음이 인욕(忍辱)을 장엄하여 온갖 거슬리고 나쁜 경계를 참는 보배이며, 열세 번째는 그 마음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살행(菩薩行)을 닦는 보배요, 열네 번째는 그 마음이 미움과 사랑을 뛰어나서 흔들림이 없는 보배이며, 열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견고하게 정진(精進)하여 게으르지 않는 보배이니라.
열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하는 일을 다 성취하려는 보배요, 열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사유(思惟:念)한 뜻을 행하여 바르게 지은 공덕을 잊지 않고, 보살의 일을 원만하게 갖추려는 보배이며, 열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이미 일으킨 선삼매(禪三昧)의 삼마월(三摩越)에서 하는 일이 자유로운 보배요, 열 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구하여 모든 지혜와 합하려는 보배이며, 스무 번째는 그 마음이 들은 법을 익히고 외우면서 곧 정진으로 이어지는 보배이니라.
스물한 번째는 그 마음이 설법하는 일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갖 원하여 구하는 욕망을 벗어난 보배요, 스물두 번째는 그 마음이 법에 허식(虛飾)이 없는 보배이며, 스물세 번째는 그 마음이 정도(正道)를 사유하고 행한 바가 일과 다르지 않는 보배요, 스물네 번째는 그 마음이 듣고 닦은 일을 들은 대로 진실하게 이루는 보배이며, 스물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충분히 지혜를 갖추고 외도의 가르침에 빠져들지 않는
보배이니라.
스물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사랑[慈]을 베풀면서 자신을 지키는 보배요, 스물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대비[悲]를 행하여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보배이며, 스물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다른 사람과의 기쁨[護:喜]으로 법을 즐기는 보배요, 스물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평등[捨]으로 모든 법을 살펴보는 보배이며, 서른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를 괴롭게 여기지 않으면서 공덕을 짓는 보배이니라.
서른한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사람을 교화하기 위하여 남을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보배요, 서른두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의 법을 모자라지 않게 남에게 나눠줘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보배이며, 서른세 번째는 그 마음이 큰 지혜로 깨치지 못한 법이 없고 신통으로 감동시키지 못할 일이 없는 보배요, 서른네 번째는 그 마음이 선지식(善知識:迦羅密)을 친근하여 듣고 배우고 묻지 않음이 없는 보배이며, 서른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나쁜 스승을 멀리 벗어나서 공덕을 닦는 보배이니라.
서른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일체와 평등하여 두 마음이 없는 이치를 닦는 보배요, 서른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가 바로 병임을 알고 곧 모든 사람의 뜻에 들어가는 보배이며, 서른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약사(藥師)가 되고 온갖 병을 치료하는 보배요, 서른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지혜 없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법으로 상대를 존경하는 보배이며, 마흔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을 받들어 교만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참는 보배이니라.
마흔한 번째는 그 마음이 아첨하지 않는 보배요, 마흔두 번째는 그 마음이 들은 법을 잊지 않고 법에 머무는 보배이며, 마흔세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법을 다 지키면서 모든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는 보배요, 마흔네 번째는 그 마음이 은혜를 갚기 위하여 견고하고 두터운 정을 베푸는 보배이며,
마흔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을 해친 사람이 있을지라도 되갚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보배이니라.
마흔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산수(山水)를 즐기면서 법을 청정하게 지키려는 보배요, 마흔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집을 떠나서 사문(沙門)이 되어 바른 법에 이르려는 보배이며, 마흔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도를 스스로 지극히 만족하게 여기고 자제(自制)하면서 나쁜 행위를 단속하는 보배요, 마흔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만족을 알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보배이며, 쉰 번째는 그 마음이 세상일에 만족해야만 법에서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구할 수 있음을 아는 보배이니라.
쉰한 번째는 그 마음이 스스로 지키면서 온갖 시끄러운 일을 따르지 않는 보배요, 쉰두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공덕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닦으면서 몸의 모든 모양에 종호(種好)를 갖추는 보배이며, 쉰세 번째는 그 마음이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지혜를 닦아서 모든 사람의 의심을 결단(決斷)하려는 보배요, 쉰네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보배이며, 쉰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법을 생각하고 법을 설하여 법에서 떠나지 않는 보배이니라.
쉰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언제나 보살법(菩薩法:僧法)을 생각하면서 곧 물러남이 없는 보살의 법[阿惟越致僧]에 이르는 보배요, 쉰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계법을 생각하여 보살의 행에서 흔들리거나 떠나지 않는 보배이며, 쉰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보시를 생각하여 몸을 탐내지 않는 보배요, 쉰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천상(天上)을 생각하여 곧 일생보처(一生補處)에 들어가는 보배이며, 예순 번째는 그 마음이 본 바탕을 다 알고 온갖 소유(所有)를 밝혀내는 보배이니라.
예순한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알고 법신(法身)을 무너뜨리지 않는 보배요, 예순두 번째는 그 마음이 작용하여 앎이 일과 다르지 않아서 모든 사람의 말하는 일을 다 아는 보배이며, 예순세 번째는 그 마음이 자유자재하게 알면서 모든 사람에게 법을 만족하게 베풀어주는 보배요, 예순네 번째는 그 마음이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을 체득하여 들은 법을
잊어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예순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본래 진실한 법을 알고 온갖 존재가 자연 그대로 진실한 이치를 다 환하게 깨닫는 보배이니라.
예순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출세간의 지혜를 지키면서 그 식(識)이 환술(幻術)과 다르지 않다고 아는 보배요, 예순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진실한 법[審諦]을 배우고 진실한 법에서 해탈을 얻고 닦은 공덕을 무너뜨리지 않는 보배이며, 예순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지키면서 사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한 이치를 알려는 보배요, 예순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가 무상하고 괴롭다는 것을 알면서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는 보배이며, 일흔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법에 나의 실체가 없음을 보고 사람의 존재도 없음을 보는 보배이니라.
일흔한 번째는 그 마음이 열반(涅槃)에 들어가서 본래부터 고요하고 또 고요한 이치와 일치한 보배요, 일흔두 번째는 그 마음이 텅 빈 경지[空]와 모양이 없는 경지[無相]와 소원이 없는 경지[無願]를 이미 벗어나고 해탈하여 열반문(涅槃門)에 가까운 보배이며, 일흔세 번째는 그 마음이 본래 생기지 않으므로, 생겨나는 일도 없고 무너지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는 자리에서 그대로 해탈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보배요, 일흔네 번째는 그 마음이 온갖 존재를 환영(幻影)ㆍ꿈ㆍ아지랑이ㆍ산울림ㆍ물 그림자처럼 알면서 바랄 일이 없는 경지가 견고한 보배요, 일흔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기쁘게 12인연(因緣)을 알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보배이니라.
일흔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무엇을 보든지 다 환하게 알면서 구하지도 않고 두 갈래 차별에 떨어지지도 않는 보배요, 일흔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두 가지 일[二事]을 떠나서 한 일[一事]로 법을 다 아는 보배이며, 일흔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행을 원만하게 갖춰서 허망한 경계로 되돌아옴이 없이 온갖 모양과 이름[色名]에서 해탈하는 보배요, 일흔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점차 진실한 경지에 가깝도록 이미 법을 갖춘 보배이며, 여든 번째는 그 마음이 37품(品)을 모으고 합해서 모든 법을 해탈하는 보배이니라.”
부처님께서 돈진다라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든 가지 일을 닦고 원만하게 갖춘다면, 곧바로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느니라.
또 이미 이 삼매에 체득한 보살은 출세간의 보배[道寶]에도 머물지 않고 세간의 보배[欲寶]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세간의 보배[欲寶]는 무엇이며, 출세간의 보배[道寶]는 무엇인가?
세간의 보배는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의 보배이다.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와 제석(帝釋)ㆍ범천(梵天)ㆍ사천왕(四天王)ㆍ전륜성왕(轉輪聖王:遮迦越羅)과 존귀한 제후(諸侯)와 낱낱 세력가들은 천상(天上)과 천하(天下)에서 각기 존경을 받는 이들이다. 이들이 이 보배를 얻는다면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여기에서 기쁜 마음으로 보살이 되어 이것을 얻으려고 하므로, 이를 세간의 보배[欲寶]라고 한다.
출세간의 보배[道寶]는 법으로 세속을 해탈하는 보배이다. 어떤 법으로 세속을 벗어나야 하는가? 바로 출세간의 법[道法]이니라. 그 이유는 원해서 하는 일이 출세간의 지혜를 따르기 때문이다.
출세간의 지혜는 불도[象道]의 법이다. 비유하면 크고 작은 냇물이 돌아가는 큰 바다와 같다. 또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수미산(須彌山)과 수많은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달과 온갖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해와 온갖 짐승 가운데 용맹이 뛰어난 사자와 모든 사람에게 으뜸으로 군림하는 왕과 도리천(忉利天)의 존귀한 제석(帝釋)과 여러 범천 가운데 홀로 높은 범천왕(梵天王)과 같다. 이렇게 이 출세간의 지혜가 모든 법보다 훌륭하므로 지혜의 왕이라고 한다. 세속을 벗어나려면 이 출세간의 지혜로 해탈하여 조용하고 편안한 도[安穩道]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둠을 밝히는 횃불처럼 그 작용은 대단히 용맹하여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키는 것과 같다. 또 훌륭한 의사가 모든 약을 잘 조제하는 것과 같고, 뛰어난 스승이 온갖 일을 밝게 아는 것과 같다. 그리고 활을 가지고 목표물을 쏘면 그 화살이 명중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고, 역사(力士)가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할 곳을 공격하면 즉시 한 사람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이 지혜를 가지고 어두운 어리석음을 공격하면, 그 어리석음은 남김없이 다 사라지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이 없고 해칠 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원한을 맺는 일도 없느니라. 이는 해야 할 일을 최고의 경지[究竟]에 두었기 때문이며,
그 출세간의 지혜가 진실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루는 일과 하는 일의 능력이 지극히 진실하면 이를 고요한 마음의 경지[止意]라고 하며, 일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면 이를 인연을 끊었다고 하며, 신통[神足]이 온갖 공덕과 합하여 모이면 이를 뛰어난 작용[根]이라고 하느니라. 또 닦은 공덕이 뒤에 있으니 힘이라고 하며, 지혜가 없는 데서 지혜가 되니 깨달음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길을 보이니 도(道)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고요하고 또 고요하며 더욱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어두운 욕망을 밝혀서 어둠이 다 사라져 없어지면, 이를 밝음이라고 한다. 이는 밝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이다. 번뇌의 때가 없으므로 나머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욕망을 해탈하고 볼 수 없는 것은, 이미 모든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경계가 없고 안이 고요함은, 이미 온갖 공(空)을 뛰어넘어 공에서 공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미 온갖 소견(所見)에서 떠난 것을 생각이 없다[無想]고 하며, 구하는 일 없이 고요한 것을 바라는 생각이 없다[無願想]고 하느니라. 이미 삼계(三界)를 해탈하여 모양에 모양이 없는 것을 모양[相]이라고 하니, 그 모양이 공(空)과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원하여 구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시(布施)라고 하니 나의 소유와 나의 소유가 아닌 것을 벗어나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이것을 지계(持戒)라고 하니 나에 집착하여 머물지 않으며, 이것을 인욕(忍辱)이라고 하니 가질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이것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니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이것을 선정(禪定)이라고 하니 처소(處所)를 알 수 없으며, 이것을 지혜(智慧)라고 하니 들어가야 할 일체의 경계를 다 출세간의 지혜로 들어가서 교묘한 방편[善巧方便]과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를 비유하면 꿈과 같다. 이렇게 무아(無我)로 장엄하면 닦는 대로 다 공덕이 되어 이미 모두 벗어나서 머무는 일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돈진다라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출세간의 보배이니라. 보살이 이 보배를 원만하게 갖춘다면, 곧바로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으리라. 비유하면 큰 바다가 온갖 크고 작은 냇물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진귀한 보배가 그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이 삼매(三昧)를 얻고 곧 모든 사람을 받아들여서
모든 법을 다 합하여 모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보배의 삼매는 온갖 보배 가운데 가장 밝은 보배로서, 온갖 보배의 근본이니라. 그러므로 삼보(三寶)의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은 알 길이 없느니라.”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돈진다라왕은 이미 이 삼매(三昧)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에게 직접 물어 보라. 그러면 너에게 밝혀 주리라.”
제무리(提無離)는 돈진다라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삼매를 얻었습니까?”
돈진다라가 답했다.
“이 삼매는 머문다는 생각이 없으므로, 마땅히 내가 얻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얻은 것이 아니니, 이 삼매는 얻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이 삼매는 또한 색(色)이 없으니, 색으로도 알 수 없고, 감각[痛痒:受]ㆍ상상[思想:想]ㆍ옮김[生死:行]ㆍ의식[識]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삼매는 색으로도 볼 수 없고 소리로도 들을 수 없습니다. 생기는 모양도 없고, 사라지는 모양도 없으며, 존재하는 모양도 없으니, 마땅히 생기는 모양과 사라지는 모양과 존재하는 모양으로 관찰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만일 나는 볼 수도 있고, 나는 관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삼매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연상(因緣想)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인연상이 없고, 삼매는 모든 법과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법과 평등하니, 나 또한 이와 같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도 평등합니다.
왜냐 하면 일체와 평등하여 공하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공상(空相)으로서 모든 사람은 모양이 없으니, 모양이 없는 자체가 바로 삼매상(三昧相)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모양이 없으니, 바라는 모양이 없는 자체가 바로 삼매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청정하니, 다 청정한 자체가 바로 삼매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의 존재가 없으니, 나의 존재가 없는 것이 바로 삼매상입니다.
이 삼매상(三昧相)은 몸을 얻을 수도 없고, 접촉[細滑]할 수도 없으며, 마음을 쓸 수도 없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나는 법을 알고 법을 본다고 말할지라도 다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바라는 마음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돈진다라가 입은 옷과 따르는 여자들과 음악[伎樂]은 다 그 자신이 여색을 즐기는 방종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들어간 법이 얼마나 깊고 미묘하기에, 이렇게 법에 맞춰 마음대로 설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미 출세간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교묘한 방편을 환하게 알고 있으므로, 그 도의 경지[道地]에서는 이와 같이 못할 일이 없느니라. 돈진다라가 거문고를 타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70억의 긴나라[眞陁羅]와 30억의 건달바[揵陀羅]와 자기를 늘 따르는 8만 4천 부인들은 모두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보살은 출세간 지혜의 교묘한 방편으로, 이름과 아름다움을 성취하고 사람들의 높은 지위에 올라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근본이 되었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불을 지필 때 땔감[薪]을 더 넣지 않는다면 그 불은 오래지 않아 꺼져버린다는 것을 알리라. 이와 같이 혼자 사는 보살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사람들에게 이익을 베풀 수 있느니라. 큰불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마땅히 땔감을 더 넣어야 큰 광명을 밝힐 수 있는 것처럼 보살은 사람들을 땔감으로 삼아야만 비로소 큰 광명을 성취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러면 보살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지라도 사람들은 각각 보살행의 근본을 얻는 것이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돈진다라는 어떻게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伅眞陀羅)와 건달바[犍陀羅]는 다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각기 음악을 즐기면서 기뻐하느니라. 돈진다라는 그들의 환희에 벅찬 상태를 알고, 곧바로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승의 소리를 들려주느니라. 그러면 그들은 ‘오, 시원하구나, 장엄한 소리여, 더없이 훌륭한 공덕이여’라고 보살을 찬탄하면서, 마땅히 마음으로 일체종지(一切種智:薩芸若)를 익히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보시(布施)의 소리ㆍ지계(持戒)의 소리ㆍ인욕(忍辱)의 소리ㆍ정진(精進)의 소리ㆍ선정[一心]의 소리ㆍ지혜(智慧)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이어 그들은 다 대자[慈]의 소리ㆍ대비[哀]의 소리ㆍ수희(隨喜:喜)의 소리ㆍ평등[捨]의 소리ㆍ4념처(念處:4意止)의 소리ㆍ4정근(正勤:4意斷, 4正斷)의 소리ㆍ4신족(神足:4如意足)의 소리ㆍ5무루근(無漏根)의 소리ㆍ5력(力)의 소리ㆍ칠각지(覺支:7菩提分)의 소리ㆍ8정도(正道:8聖道)의 소리ㆍ정(定:向)의 소리ㆍ관(觀:智慧)의 소리ㆍ선정해탈삼매(禪定解脫三昧:禪惟務三昧三摩越致)의 소리를 듣는다.
또 그들은
무상(無常)의 소리ㆍ괴로움의 소리ㆍ무아(無我)의 소리ㆍ적정(寂靜)의 소리를 듣는다.
또한 그들은 공(空)의 소리ㆍ무상(無相:無想)의 소리ㆍ무원(無願)의 소리ㆍ무생(無生)의 소리ㆍ무소생(無所生:無起)의 소리ㆍ무생사(無生死:無行)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보살장(菩薩藏) 총지법문(摠持法門:陀隣尼)의 소리ㆍ금강행삼매(金剛行三昧)의 소리ㆍ정수제법왕인해인삼매(淨水諸法王印海印三昧)의 소리ㆍ입일체제법자자제법삼매(入一切諸法自恣諸法三昧)의 소리ㆍ장엄삼매(莊嚴三昧)의 소리ㆍ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의 소리ㆍ보자연삼매(寶自然三昧)의 소리ㆍ지선삼매(知禪三昧)의 소리ㆍ환희삼매(歡喜三昧)의 소리ㆍ영지실작연화삼매(令地悉作蓮華三昧)의 소리ㆍ연화존삼매(蓮華尊三昧)의 소리ㆍ무소불변입삼매(無所不遍入三昧)의 소리ㆍ법지삼매(法池三昧)의 소리ㆍ기의차특삼매(其意差特三昧)의 소리ㆍ대전명삼매(大電明三昧)의 소리ㆍ사자명삼매(師子明三昧)의 소리ㆍ일명삼매(日明三昧)의 소리ㆍ무앙수인삼매(無央數因三昧)의 소리ㆍ이입본삼매(已入本三昧)의 소리ㆍ금강서삼매(金剛署三昧)의 소리ㆍ금강당번삼매(金剛幢幡三昧)의 소리ㆍ약금강삼매(若金剛三昧)의 소리ㆍ금강제삼매(金剛濟三昧)의 소리를 듣는다.
여지삼매(如地三昧)의 소리ㆍ약수미삼매(若須彌三昧)의 소리ㆍ약수미주삼매(若須彌住三昧)의 소리ㆍ명화삼매(明華三昧)의 소리ㆍ기심자자삼매(其心自恣三昧)의 소리ㆍ지일체입삼매(知一切入三昧)의 소리ㆍ일체행기지인시삼매(一切行其地因是三昧)의 소리ㆍ심심전삼매(甚深全三昧)의 소리ㆍ무앙수설법삼매(無央數說法三昧)의 소리ㆍ개명삼매(開冥三昧)의 소리ㆍ지일체인심행삼매(知一切人心行三昧)의 소리ㆍ소락삼매(所樂三昧)의 소리ㆍ생순삼매(生旬三昧)의 소리ㆍ항복마삼매(降伏魔三昧)의 소리ㆍ현제색삼매(現諸色三昧)의 소리ㆍ각입기음삼매(各入其音三昧)의 소리ㆍ실지일체인신삼매(悉知一切人身三昧)의 소리ㆍ법행삼매(法行三昧)의 소리ㆍ혜지수삼매(慧地首三昧)의 소리ㆍ지수삼매(地首三昧)의 소리ㆍ견제소유삼매(見諦所有三昧)의 소리ㆍ해제박삼매(解諸縛三昧)의 소리ㆍ실입제인연삼매(悉入諸因緣三昧)의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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