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정법문경(佛說大淨法門經)
불설대정법문경(佛說大淨法門經)
서진(西晋) 축법호(竺法護)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영취산(靈鷲山)에 노니시면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으니, 비구는 5백이고 보살은 8천이었다. 그들 모두는 큰 성인들로서 다들 총지(總持)를 얻고 변재가 한량이 없으며, 그들이 건립한 거룩한 지혜로 3탈문(脫門:解脫門)을 이해하고, 3세(世)에서 그 지혜가 거리끼는 바가 없으며, 삼매정(三昧定)을 얻어 움직일 수 없고, 10력(力)과 무외(無畏)를 모두 완전히 갖춘 자들이었다.
그때 큰 왕사성에 일여인(逸女人)1)이 있었으니, 이름은 상금광수(上金光首)였다. 단정하고 빼어나게 아리따워서 보는 이마다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모습이 깨끗하고 맑으며 위의가 꽃처럼 빛났으니, 전세에 덕의 근본을 닦은 과보였다. 온몸이 천연의 자마금(紫磨金) 빛이었고, 노닐거나 살며 눕고 잠자고 머무르고 서고 앉고 일어나며 거니는 곳은 그 땅도 몸의 빛처럼 변하였고, 만일 비단 옷을 입으면 그 옷도 저절로 금빛으로 바뀌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경하며 모두 소중히 여겼고, 이 여인을 보는 자들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내는 법이 없었으며, 말씨는 거칠지 않아 부드럽고 화려했으며, 얼굴에서는 광택이 나고 초췌하지 않았다. 큰 왕사성의 국왕ㆍ태자ㆍ대신ㆍ장자ㆍ거사와 그 모든 아들들이 그 여인을 탐내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만나보고 싶어서 그녀가 노니는 곳을 따라 동산ㆍ누각ㆍ냇가ㆍ마을ㆍ숲으로 달려가 따라다녔으며, 남녀 대소 할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뒤를 쫓으며 그녀를 보려고 하였다.
그때 상금광수는 어느 날 외간(畏間) 장자의 아들과 함께 저자에서 좋은 물건을 사서 서로 선물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유관원(遊觀園)으로 나아갔다.
당기와 일산이며 값진 보배와 명월의 구슬과 자마금으로 장식한 사마(駟馬)의 수레를 타고 좋은 방석을 깔았으며, 여러 향과 사이(思夷)의 꽃을 지니고 여러 기생이 뒤따르며 유관원으로 가서 서로 재미있게 즐겼다. 음악을 연주하며 북ㆍ장구가 앞에서 인도하고 공양거리를 싣고서 그 뒤를 따랐으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쫓아오면서 구경하였다.
문수사리(文殊師利)진(晉)나라 말로 부수동진(溥首童眞)이다는 그때 좌선하던 방에서 나와 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중생을 불쌍히 여기며 근심하고 있었다.
‘권유하고 교화하여 대승을 일으키게 하고, 3품의 법으로써 도혜(道慧)의 신족 변화를 융성하게 일으키며, 변화를 설법하고 변화를 가르쳐 주어 이익으로 인도하고 계율에 들게 할 사람이 어느 곳에 있을까?’
그때 문수사리는 상금광수와 외간 장자의 아들이 함께 짝을 지어 같이 수레를 타고 유관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그녀가 과거에 근본을 행하고 전생에 덕을 지녔던 것을 알았다. ‘내가 형체를 변화하여 그를 위하여 설법해 반드시 해탈시키고 통달케 하리라.’ 하고, 문수사리는 곧 몸을 변화하여 단정하며 뛰어난 아름다운 소년이 되었다. 얼굴 모습은 하늘보다 뛰어났으므로 보는 이는 모두 기뻐하며 떠받들었고, 몸매와 위의는 빛나 해와 달의 빛을 가렸으며, 피복의 형상과 종류는 인간의 것으로 나타내서 입었는데, 40리를 환히 비추었으니, 스스로가 그 몸을 드러내 보아도 훌륭한 것 같았다.
문수사리는 옷 입기를 마치고는 그 일녀(逸女)가 놀러 가는 길을 자세히 살피고는 곧 그 길에 나타나 앞에 섰다. 앞에 서자마자 그 장자의 아들이 타고 있던 수레와 상금광수의 수레ㆍ말ㆍ피복은 곧 덮이고 가려져 다시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빛나던 광명도 완전히 사라져 마치 먹 덩어리가 밝은 구슬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상금광수 유일녀(遊逸女)가 그때 문수사리를 보았는데, 얼굴은 꽃처럼 아리따운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몸처럼
밝아 휘황찬란한 불빛도 미치기 어려웠고, 살색이 곱고 윤택하며, 피복이 기이하고, 번쩍거리는 광채가 그 몸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나서 곧 스스로 제 몸을 살펴보니 특별하게 여겨지지가 않았다. 그 피복을 탐내며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제 이 장자의 아들을 버리고 수레에서 내려 버려두고 이 사람과 함께 서로 즐기며 놀고 싶구나. 나도 저런 의복을 입고 모습이 빛났으면.’
이 생각을 하자마자 문수사리가 위엄과 신력을 세워서는 식의천왕(息意天王)을 남자로 변화시켜 그 여인에게 말하게 하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즐기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내다니요. 왜냐하면 이런 분은 색욕(色欲)에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왜 그렇습니까?”
식의천왕은 대답하였다.
“이분의 이름은 문수사리보살이십니다.”
여인이 다시 물었다.
“어떤 연유로 이름을 짓고 보살이라고 부릅니까? 그는 천자(天子)입니까? 용(龍)ㆍ귀신(鬼神)ㆍ건답화(犍沓和:건달바)ㆍ가류라(迦留羅:가루라)ㆍ진타라(眞陀羅:긴나라)ㆍ마휴륵(摩休勒:마후라가)입니까? 제석ㆍ범왕ㆍ사천왕입니까?”
식의가 대답하였다.
“여인이여 그걸 알고 싶습니까? 하늘ㆍ용ㆍ귀신도 아니며, 제석ㆍ범왕도 아닙니다. 이런 분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충족시킬 수 있고, 중생들이 마음으로 구하고 찾는 것을 보아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합니다.”
여인은 마음속으로 ‘지금 들은 대로라면 반드시 나에게 아름답고 좋은 옷을 보시하리라.’고 생각하고는 곧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인자(仁者)여, 원컨대 그 옷을 베풀어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누이여, 만일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신다면 제가 그때 옷을 드리겠습니다.”
여인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무엇을 도라고 합니까?”
“알고 싶습니까? 당신이 곧 도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문수사리여. 만일 이치를 자세히 말씀해 분별해 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왜 저의 몸이 곧 도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때 상금광수가 곧 게송을 읊었다.
연수(軟首)2)여 원하오니
의복을 보시하소서.
그래야 알리라, 그대가
불도를 홍포하려고 뜻을 세웠단 걸.
마치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고
오래되면 가뭄이 들듯이
만약 탐내며 아끼신다면
참다운 보살이라 하지 못하리라.
그때 문수사리도 게송을 읊었다.
만일 부인께서
도의 뜻을 일으키신다면
그러면 제가 당연히
옷을 아낌없이 드리겠습니다.
만일 견고한 마음으로
도의 뜻에 머무신다면
천상과 세간이
모두 예배하리라.
상금광수가 게송으로 다시 물었다.
말씀하신 도란
그 말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한 자는 누구며
누가 도라는 것 얻었습니까?
경업(經業)으로 나아가려고 뜻을 세우고
무엇을 익혀야만
불도를 이루게 되며
깨닫지 못한 자들 교화하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누이여, 알고 싶습니까?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계시니, 이름은 석가문(釋迦文)이십니다.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니, 몸의 평등함을 평등하게 받들어 행하는 도를 연설하십니다. 누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찌 자기로부터 5음(陰)과 6입(入)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이 말을 듣고서 전생의 덕의 근본과 쌓은 선행에 힘입어 법의 광명에 이르렀으므로 곧 이렇게 말하였다.
“그와 같고 그와 같습니다. 진실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나의 몸으로 인하여 종자인 음과 여러 입이 있게 된 것입니다.”
“누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색이 생각하는 것이 있고, 아는 것이 있습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다시 말하였다.
“누이여, 도 역시 생각하는 것이 없고 분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때문에 색은 곧 평등하며 도도 평등합니다. 저는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생각하는 것이 있고 분별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도 역시 생각하는 것이 없고 또 분별하는 것이 없으며, 통ㆍ상ㆍ행ㆍ식도 평등하고 도 역시 평등합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색(色)이 안이나 밖이나 중간에 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청(靑)ㆍ적(赤)ㆍ황(黃)ㆍ백(白)ㆍ흑(黑)ㆍ자(紫)ㆍ홍(紅)이 어느 곳 어느 방면(方面)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도 역시 보는 것이 없고 안이 없고 밖이 없고 중간도 없으며, 자ㆍ홍 등의 모양 역시 어느 곳과 어느 방면이라 할 땅이 없습니다. 색이 이미 평등하므로 도도 곧 평등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통ㆍ상ㆍ행ㆍ식이 안이나 밖이나 중간에 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오색의 모양이 어느 방면에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도도 그와 같아서 안이나 밖이나 중간이나 오색에 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방면 또한 없는 것입니다. 통ㆍ상ㆍ행ㆍ식도 평등하며 도도 평등합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5음은 환과 같으니 허망과 거짓과 뒤바뀜을 말미암아 이것들이 생기는 것이며, 도 역시 환과 같아서 음성을 빌었을 뿐입니다. 환도 평등하고 5음도 평등하니, 환이 이미 평등하므로 도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5음은 꿈과 같아서 본말(本末)이 없으며, 도 또한 꿈과 같아서 처소(處所)가 없습니다. 꿈이 평등하므로 도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5음을 헤아리는 것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니, 미혹(迷惑)의 업은 허망과 거짓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도도 아지랑이와 같으며 자연의 이치이므로 또한 지음도 없고
응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지랑이와 5음은 평등한 것이며, 아지랑이가 이미 평등하므로 도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5음은 거울속의 형상이니 형상에는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도 역시 거울 속 형상과 같아서 또한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울 속의 형상과 5음은 평등하며, 거울 속 형상이 평등하므로 도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5음은 이름을 빌려 행하게 되었을 뿐이며, 도 또한 이름을 빌려 도라 할 뿐입니다. 5음이 평등하므로 도 또한 평등한 것이니, 따라서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또 들어보십시오. 5음은 지음이 없고 도 또한 지음이 없으며, 5음은 자연이 없고 도 또한 자연이 없습니다. 5음은 존재하는 것이 없고 도는 생기는 것이 없다는 것이며, 5음은 무상하고 도는 무상을 깨닫는 것이며, 5음에는 편안함이 없고 도는 괴로움의 이치인 줄 아는 것이며, 5음은 공하고 없는 것이며 도는 공임을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5음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무아(無我)의 이치를 분명히 아는 것이 곧 도가 됩니다.
모든 음은 고요하니, 담박한 것인 줄 환히 아는 것이 곧 도가 됩니다. 모든 음은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니, 받아들이는 것이 없다는 이치가 곧 도가 됩니다. 모든 음은 머무름이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니, 머무름 없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곧 도가 됩니다. 모든 음은 오는 것이 없고 가는 것도 없으니,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5음을 가진 자들은 성인의 법을 헤아리고서 음성을 빌어 성현(聖賢)이라 말하고 도법에 있어서 벗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해진 언사(言辭)는 언사가 없는 것이니, 5음은 모두 없는 것으로서 근본은 모두 청정합니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본래 청정함을 모두 깨달으시고 정각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름을 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5음은 본래 깨끗하며 도 또한 깨끗한 것이며, 도가 깨끗하기 때문에 모든 법도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지금 누이의 모든 음이 본래 깨끗하듯이 모든 부처님 세존의
도 역시 본래 깨끗하며, 일체는 본래 깨끗하고 자연 그대로이며 중생의 5음이 본래 깨끗한 것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미 5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곧 도를 이해한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도가 됩니다. 또 모든 부처님은 5음을 여의지 않고서 부처님의 도를 이룬 것입니다. 도가 5음을 여의지 않으므로 5음을 분명히 깨달으면 그 명호를 부처님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누이여,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일체의 중생은 모두 도에 처해 있고 도 역시 일체 중생에게 처해 있으며, 도는 언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나[吾我]라고 하는 것에서 네 가지 종(種)이 생기니, 네 가지란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입니다. 그 지종이란 나[我]도 없고, 사람[人]도 없고, 수(壽)도 없고, 명(命)도 없는 것입니다. 지종에 평등하면 도가 곧 평등한 것이니, 본래 받아들이는 것이 없는 까닭에 평등(平等)이라고 합니다. 수종 또한 평등하며 도 또한 필경까지 본말이 자연 그대로입니다. 화종은 평등하며 도는 필경까지 본말에 흠이 없습니다. 풍종은 평등하며 도의 본말에는 볼 것이 없습니다.
누이여, 지종과 같은 것을 알고 싶습니까? 곧 이 종으로 여래께서는 도를 이루셨던 것이며, 수종ㆍ화종ㆍ풍종이 여래의 종인 것 또한 그와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도를 얻어 지종ㆍ수종ㆍ화종ㆍ풍종을 환히 깨달으면 부처를 이루게 됩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이치를 말한 것입니다.
지ㆍ수ㆍ화ㆍ풍의 모든 종(種)은 생각이 없으며, 이 4대에 대해 생각이 없을 수 있으므로 도라고 말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가 바로 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들은 나[吾我]라고 하는 것으로 인하여 곧 눈이 있는 것이니, 귀ㆍ코ㆍ입ㆍ몸ㆍ뜻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 눈은 곧 공(空)이니, 눈이 자연 그대로임을 깨달아 공인 줄 분별하면 곧 도가 됩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그와 같습니다. 뜻이 곧 공이니, 자연이고 공인 줄 이해하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은 공한 것으로써
색을 구할 줄 모르는 것이니, 색이 자연이고 공이면 곧 도가 됩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그와 같습니다. 뜻이 공한 것이라면 곧 분별하여 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에 집착이 없고 법이 자연이며 공이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은 색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눈은 색이 없는 것이고 6정(情:入) 역시 그러하여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없습니다. 또 도란 것을 헤아려 보면 곧 마음도 법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누이여, 그 안식계(眼識界) 그것은 색계(色界)에 곧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안식계ㆍ색계에 도는 머무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식계(耳識界)ㆍ비식계(鼻識界)ㆍ설식계(舌識界)ㆍ신식계(身識界)도 그와 같습니다. 의식계(意識界)는 법계(法界)에 머무르지 않고 도(道) 또한 머무르지 않으며, 마음[心]ㆍ법(法)ㆍ식(識)의 경계를 도는 받아들이는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도와 안식계(眼識界)는 둘이 없으며, 이식계ㆍ비식계ㆍ설식계ㆍ신식계ㆍ의식계도 마찬가지니, 도와 의식계에 두 가지 경계란 없습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또 누이여, 눈을 분별하여 환히 알면 곧 도가 됩니다. 눈은 본래 공하여 깨끗한 것이니, 만일 자연(自然)이며 공(空)인 줄 환히 알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그와 같아서 본래 자연이며 공이니, 본래 깨끗하고 자연이고 공인 줄 분별하여 환히 깨달으며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이 자연이고 공이면 곧 물드는 것도 없고 맺힌 한도 없습니다. 침범하거나 속이는 것을 보지 않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없애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그와 같습니다. 뜻은 곧 자연이며, 그 자연은 곧 물드는 것도 없고 또한 맺힌 한도 없습니다. 침범하거나 속이는 것을 보지 않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없애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은 곧 주인[主]이 없으므로 곧 나[吾我]가 없고 또한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도 역시 주인이 없으므로 곧
나가 없고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그와 같아서 곧 주인도 없고 나도 없고 또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도 역시 주인이 없으므로 곧 나가 없고 또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또 눈을 헤아려 보면 남자의 법도 없고 여자의 법도 없습니다. 이런 도를 환히 알아 남녀의 법이 없고 남자도 여자도 없으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에도 역시 남자의 법이 없고 여자의 법도 없으며, 도도 그와 같아서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눈과 색(色)에 근본이 없음을 깨달으셨으니, 근본이 없는 줄 환히 알면 곧 도가 됩니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여래께서는 뜻이 곧 근본이 없는 것임을 깨달으셨으니, 이와 같이 깨달아 알면 곧 도가 됩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또 누이여, 자기의 몸이라는 그것에 곧 나란 없으며, 나[我]가 없고 , 사람[人]이 없고, 수(壽)가 없고, 명(命)이 없고, 모습[形]이 없고, 뜻[意]이 없고, 지음[作]이 없고, 받음[受]이 없고, 봄[見]이 없고, 들음[聞]이 없고, 취함[取]이 없고, 놓음[放]이 없고, 얻음[得]이 없고, 앎[知]이 없습니다. 도 역시 나가 없고, 사람이 없고, 수가 없고, 명이 없고, 남자가 없고, 여자가 없고, 몸이 없고, 지음이 없고, 또한 보는 것도 없습니다. 또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觸)의 식(識)이 없으며 일체의 법을 금하는 것이 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누이의 몸이란 어리석고 철없으며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몸이 현재 있다고 하지만 마치 초목이나 담장, 기와나 돌과 같은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지종(地種)과 밖에 있는 지종을 여래는 곧 거룩하고 통달한 지혜로서 이 지종을 환히 알아 정각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대가 곧 도라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또 누이여, 그 심(心)ㆍ의(意)ㆍ식(識)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마음이 의(意)를 부려 이 법(法)이 있는 것이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이르러야 할 몸도 없고 도달해야 할 가르침도 없습니다. 진액도 없고 근육과 맥도 없으며, 뼈마디와 털도 없습니다. 또한 뇌에 머무르지도 않고 골수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안에 머무르지도 않고 밖에 머무르지도 않고 중간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안과 밖도 없습니다.
눈도 머무르지 않고,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또한 머무르는 곳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건립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으며, 처소(處所)도 없고 토지(土地)도 없고 방면(方面)도 없습니다. 색이 없고 보는 것이 없으며, 주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습니다. 시키는 것이 없고 가르치는 것이 없으며, 나머지도 없고 집착도 없습니다. 맑고 깨끗하여 조촐하면 곧 빛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심ㆍ의ㆍ식 역시 욕심과 집착이 없고 청정하다는 것도 없으며, 번뇌와 의지함이 없고 본제(本際)는 청정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또한 욕심과 집착이 없고 청정하다는 것도 없으면 곧 빛이 드러나게 되고 곧 몸이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또한 욕심과 집착이 없고 청정하다는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누이여, 음(陰:蘊)과 종(種:大)과 모든 입(入:處)이 그대로 자연이며 도가 되는 것이며, 도 또한 자연이니 음과 종과 모든 입을 환히 깨달아 분별하고, 만일 자기 몸에서 음과 종과 모든 입을 제거할 수 있으면 곧 도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는 근심과 걱정이 없고 위험과 해침이 없으니 마음이 이것을 알면 곧 그것이 도이며, 모든 법 일체가 평등인 줄 깨달아 분명히 알면 곧 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유관원(遊觀園)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 허공에 있던 5백의 천자가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고, 상금광수를 뒤쫓던 남녀 대소의 대중 가운데 2백 명도 큰 도의 뜻을 내었으며, 60명의 하늘과 인간이 번뇌를 멀리 벗어나 모든 법의 눈이 깨끗해졌다.
그때 상금광수는 기쁨에 들떠 온몸을 땅에 던져 문수사리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에게 귀명하였고, 범행을 깨끗이 닦으며 5계(戒)를 받들어 지닐 것을 맹세하였다. 그 마음은 순박하고 정직했기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고, 입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문수사리께서는 일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고 근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지 않으십니다. 누군가 큰 도의 뜻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니, 도로 건립한 법을 일으키고 시설하고 베풀어 모든 중생들을 일깨우고 교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 경법(經法)을 강설하여 악하고 더러운 죄업을 씻어내 청정을 얻게 해야 합니다. 일체 모든 법이 그래야 고요해질 수 있어 모두 담박해지고, 사유를 따르더라도 본래 모두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탐욕스런 몸에 의지하여 전도된 일을 저지르고, 평등을 깨닫지 못해 음색(婬色)을 익혔습니다. 욕심은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중생은 욕심으로 인하여 곧 번뇌가 있게 됩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지금처럼 모든 법은 법이 아니고 일체가 본래 깨끗하거늘 미혹이 인연으로 화합한 것에 탐욕이 있게 하였습니다. 저는 곧 모든 법을 이루고 합하여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세우겠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번뇌와 탐욕은 그 생각으로부터 허위로 인하여 일어났으며, 이미 허위란 것을 환히 깨달을 수 있으면 허위의 일을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문수사리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듣고 향하던 번뇌와 욕심에 관한 일을 분별해 보니, 마치 구름이나 안개와 같아 자연이고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욕심은 번쩍이는 번개와 같아 곧 찾아보면 꺼져버리고, 욕심이란 바람과 같아 처음과 나중을 살펴보아도 의지하는 곳이 없습니다. 욕심은 허공과 같아 일체의 경계를 넘으며, 욕심은 물거품과 같아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욕심은 귀신의 변화와 같아 그 사이에 있는 건 바르지 못한 생각입니다. 욕심은 열병과 같아 정신을 아찔하게 하고 말을 잊게 하며, 욕심이라지만 실체가 없이 인연 따라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욕심은 결박과 같으니 나[吾我]라고 헤아리기 때문이며, 욕심은 형상이 없으니 몸이라고 헤아리며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나그네가 찾아오는 것과 같아 근본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욕심내며 자랑하는 것은 생각이 원인이니 여러 생각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효관(曉觀)과 같으니 여러 가지 종(種)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생기는 곳이 없으나 탐냄과 부러움에서 생기며, 욕심은 알 것이 없으나 그와 나에게서 생기는 것이니, 욕심이 생기는 것은 여러 음을 인연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의 세계는 단(鍛)과 같아 뜻의 경계로 인하여 일어나며, 욕심은 모든 음이 모든 입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그림자와 같아 이름과 색을 빌렸을 뿐이며, 욕심은 환히 깨닫지 못한 것이니 바른 생각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또 문수사리여, 욕심에 대해 헤아려서 만일 피로하여 게으른 구절인 줄 환히 깨달아 알 수 있다면 곧 도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는 중생의 번뇌를 움직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파괴와 같으니 도를 분별하기 때문이며, 욕심이란 마음이니 마음이 깨달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욕심은 금슬(琴瑟)과 같으니 환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도의 이치를 가지고 있으면 욕심과 번뇌를 무너뜨리지 않고, 무너뜨리지 않음으로써 곧 도를 수순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란 것을 본다면 곧 도가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욕심은 모든 세계에 들어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불승(佛乘)이라 해도 존재하는 것이 없고 형상도 없습니다. 번뇌의 욕심 역시 그와 같아서 이는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욕심은 모든 존재에서 존재하는 것이 없고, 머무르지만 머무르는 곳이 없으며, 일어나자마자 곧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자연이며 번뇌 또한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관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마음을 결박해 물들이고 어리석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까? 가령 그 마음이 볼 수 없는 것이라면 번뇌와 욕심도 그와 같아 볼 수 없으며, 쌓이고 모인 곳도 없고 방면도 없습니다. 보살대사가 만일 번뇌의 법을 환히 깨달을 수 있다면 탐욕스런 사람을 위하여 일깨워 교화하며 설법하기를 싫증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어리석고 성내는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르친다면 달래고 이끌며 설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령 문수사리여, 저의 욕심처럼 모든 탐욕도 그와 같으며, 저의 성냄과 어리석음처럼 일체의 성냄과 어리석음들도 그와 같으며, 저의 번뇌처럼 중생의 번뇌 역시 그와 같습니다.
마치 큰 불이 초목을 모조리 태우는 것처럼
성현의 지혜의 불길은 번뇌를 태워 없애며, 마치 햇빛이 온갖 어둠을 밝히며 어둠과 섞이지 않는 것처럼 성인의 지혜도 그와 같아 번뇌를 없애버리고 함께 합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람이 어떤 산과 나무에도 집착하지 않고 가는 것처럼, 지혜를 행하는 보살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의 욕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마치 겁이 다할 때 모든 형상 있는 것을 태워버리나 허공은 태우지 않는 것처럼, 지혜를 행하는 보살도 그와 같아 모든 애욕을 불사르면서 일체의 번뇌와 함께 합하지 않습니다. 마치 맑은 물이 더러운 것과 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번뇌와 함께하지 않으며, 마치 허공이 땅을 수용하고 유지하는 것처럼 지혜도 그와 같아서 욕심과 섞이지 않습니다. 마치 큰 바람이 철위산(鐵圍山)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일로써 모든 욕심을 불어 날려버립니다.
마치 구염기(究焰氣)라는 이름의 코끼리가 젖과 물을 합쳐서 하나의 종류로 만드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거룩한 지혜로 번뇌를 흩어 없애고 명철한 것으로 변화시켜 하나의 지혜로 화합시킵니다. 마치 수미의 북쪽 천하와 모든 가까운 마을에서는 방일하지 않으며 나무 아래에서 스스로 분별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밝음으로 여러 사람의 근기를 보고 분별합니다.
문수사리여, 저의 몸은 지금 욕심과 번뇌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어려워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욕심과 번뇌가 본래 모두 청정하다는 것을 환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 대덕의 갑옷을 입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며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유컨대 구원해 줄 사람을 찾는 겁쟁이와 같은 이런 무리는 용맹한 이가 되지 못한 것처럼, 개사(開士) 대사(大士)도 그와 같아서 욕심을 벗어나는 자는 보살이 되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도적에게 무너지는 이는 용맹스런 장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개사 대사도 그와 같아서 애욕에 무너지는 이는 보살이 되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사람이 물을 맑히는 명주(明珠)를 흐린 냇물 속에 넣으면 곧 맑아져 더러움과 탁함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애욕과 번뇌 속에 있으면서 흠과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때 상금광수는 이렇게 찬탄하고 나서 다시 문수사리께 물었다.
“왜 보살에겐 번뇌와 고난이 없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보살이 뜻을 일으키는 것을 보거나 뜻을 없애는 것을 본다면 그를 보살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비유컨대 총지(摠持)를 봄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자를 한량없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아서 보살이 만일 번뇌와 고난을 보고 뜻에 일어남과 사라짐이 있다면 이는 번뇌가 없다고 일컫는 보살이 아닙니다. 번뇌와 욕심이 없는 자는 번뇌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맺힌 한을 보지 못하며, 보고 보지 않는 것도 없어 생각을 멀리 벗어납니다. 이래야 번뇌가 없다고 합니다.
가령 행하는 이가 그 심ㆍ의ㆍ식이 자재함을 얻는다면 일체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 니원(泥洹:열반)이란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욕심과 번뇌란 생각의 인연이 없으면 곧 자재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과 악에 대해서도 그와 같으며, 행하는 일과 행하는 일이 없는 것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와 형상 있거나 형상 없는 것 일체를 압니다.
생사의 번뇌와 고난, 남은 때들을 눈으로 그 빛깔을 살피고, 귀로 음성을 들으며, 코로 냄새를, 혀로 맛을, 몸으로 촉감을, 마음으로 법을 살피지만, 만일 정의(定意)를 얻어서 뜻이 담박한 데에 있으면 애욕과 번뇌에서 곧 때와 더러움이 없습니다. 그래야 그것을 ‘방일함이 없음[無放逸]’이라 이름하고 ‘업이 없음[無業]’이라 부르는 것이니, 익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번뇌와 고난이 없다는 것은 유위와 무위를 떠나는 것이며, 그리하여 흠집이 없는 것입니다.
또 누이여, 가령 보살이 몸에 번뇌가 없다면 다른 이의 욕심과 때를 제도해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래는 이것을 두고 번뇌와 고난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의 번뇌의 욕심을 구제하는 것을 쫓고 닦는 보살이라야
비로소 정진이 되는 것입니다.”
여인이 또 물었다.
“보살은 현재 눈앞에서 정진하는 자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공(空)하여 없음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의 소견이 삿되면 곧 크게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형상이 없음[無相]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형상이 있다고 보면 곧 불쌍히 여겨 구제하며, 원할 것이 없음[無願]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소원을 탐하면 곧 불쌍히 여겨 구제합니다. 행할 것이 없음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행에 집착하면 곧 불쌍히 여겨 구제하며, 생기는 것이 없음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나고 죽으면 곧 불쌍히 여겨 구제하며, 일어나는 것이 없음을 관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일어나고 없어지면 곧 불쌍히 여겨 구제합니다.
성문승(聲聞乘)을 관하여 성문의 과위를 얻어 물러나지 않게 하며, 연각승(緣覺乘)을 관하여 연각의 과위를 얻어 물러나지 않게 하며, 보살승(菩薩乘)을 관하여 곧 이로써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깁니다. 이것이 보살로서 평등을 익히며 정진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대장부가 큰 바다에 들어가 아주 먼 곳까지 나아가서 비로소 많은 보배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아서 누이여, 바른 진리로 공ㆍ형상 없음ㆍ원함 없음ㆍ행하는 일 없음ㆍ생기지 않음ㆍ일어나지 않음ㆍ성문의 법ㆍ연각의 법을 관찰하여 나아가기 어려운 자를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이르게 하고, 이에 인연을 벗어나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큰 전쟁터에 들어가서 진군하지 않으려는 자를 용기를 불어넣고 보호해 다치는 일 없이 물리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아서 누이여, 3해탈문(解脫門)을 자세히 관찰하는 이는 좋은 방편을 잃지 않으며, 그 물리침도 그러한 것입니다.”
여인이 다시 물었다.
“보살이 사용하는 권방편(權方便)이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권방편이란 그 시절(時節)을 잘 맞춰서 두려워하는 생사의 부류들과 니원의 무리들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권방편이란
두려워하는 문[恐懼門]을 보이는 것이니, 이른바 생사의 문[生死門]ㆍ니원의 문[涅槃門]ㆍ공하여 없는 문[空無之門]ㆍ소견의 문[所見之門]ㆍ형상이 없는 문[無相之門]ㆍ원함이 없는 문[無願之門]ㆍ저것은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문[彼所想門]ㆍ행하는 일이 없는 문[無所行門]ㆍ근본의 덕을 정진하여 행을 따르는 문[精進本德遵行之門]ㆍ나갈 곳이 없는 문[無所出門]ㆍ현세의 문[現世之門]ㆍ세우는 것이 없는 문[無所立門]ㆍ음과 종과 모든 입은 일어나는 곳이 없다는 문[陰種諸入無所起門]ㆍ없앨 것이 없다는 문[無所滅門]ㆍ전적에 따라 행하는 문[典所行門]ㆍ담박한 문[澹泊之門]ㆍ중생을 일깨우고 교화하여 인도하고 보여주는 문[開化衆生導示之門]ㆍ법계의 문[法界之門]ㆍ바른 법을 지키는 문[護正法門]ㆍ성문의 문[聲聞之門]ㆍ연각의 문[緣覺之門]ㆍ부처님 도를 말하는 문[說佛道門]ㆍ부처님 도를 건너는 문[度佛道門]을 말합니다.
만일 보살로 하여금 두려워하는 문을 보게 하는 자라면 일체의 문에 집착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곧 좋은 선권방편(善權方便:선교방편)이라 합니다.
요점을 취해 말해보겠습니다. 탐욕의 문이면 모든 애욕에 관한 일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성냄의 문이면 맺힌 한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어리석음의 문이면 밝지 못한 것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번뇌의 문이면 더러움과 흐림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여러 취(趣:세계)의 문이면 오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선권방편입니다. 일체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문과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연각(緣覺)ㆍ보살(菩薩)ㆍ여래(如來)의 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문을 환히 알 수 있으면, 이를 곧 선권방편이라고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면서 샘가를 노닐며 경행하고 계셨는데, 현자 아난이 모시고 따르며 함께 있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곧 멀리서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문수사리여, 그것이 바로 보살이 평등을 받들어 익히며 현재 눈앞에서 선권방편으로 정진하는 행이다. 그대의 한 말과 똑같아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때 ‘훌륭하구나.’하는 이 음성은 곧 삼천세계에 두루 퍼졌고, 그 음성이 모두 두루하여 여섯 차례 진동하였다. 곧 수없이 많은 하늘ㆍ
용ㆍ귀신ㆍ건답화(犍沓和:건달바)ㆍ아수륜(阿須倫:아수라)ㆍ가류라(迦留羅:가루라)ㆍ진타라(眞陀羅:긴나라)ㆍ마휴륵(摩休勒:마후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자들과 제석ㆍ범왕ㆍ사천왕이 ‘훌륭하구나.’하는 음성을 듣고는 모두 분부를 받들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발아래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저마다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조금 전 큰 성인께서 무엇을 칭찬하셨기에 이에 삼천세계에 알려 모두 분부를 받게 하시고, 대천세계를 여섯 차례 진동하게 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자들이여, 알고 싶은가? 문수사리가 권유하여 교화한 것을 칭찬하였다.”
또 여쭈었다.
“지금 어디서 노닐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사성 동쪽 문아래 길거리에서 상금광수를 위해 널리 경법을 강설하며, 향하는 바 이치를 담론하고 있다. 천자들이여, 그대들도 가서 법의 이치를 구하도록 하라.”
이때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ㆍ사람과 사람 아닌 자들과 제석ㆍ범왕ㆍ사천왕 등 일체는 모두 함께 문수사리가 말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스스로 몸의 반을 나타내고 온 왕사성에 두루 하늘의 꽃을 뿌렸다. 그 세간에서 이때 여러 하늘들은 인간을 보았고 인간들도 여러 하늘을 보았으며, 각자 안온하여 다투는 이가 없었다.
또 왕사성 사람 수천 명이 저마다 여러 하늘들이 뿌린 꽃을 집어 들고서 문수사리에게 나아갔다. 이때 아사세(阿闍世)왕은 4부(部)의 군대ㆍ후궁ㆍ채녀ㆍ대신ㆍ백관과 그를 따르는 여러 작은 왕들과 더불어 문수사리에게 함께 나아갔다.
또 여러 존자(尊者)와 장자의 아들들, 태자와 여러 신하들도 상금광수의 위의가 빛나고 모든 감관이 담박하며, 번뇌를 파괴하고 뒤바뀜을 벗어나 빼어나고 미묘한 덕으로 스스로 장엄한 것을 보았고, 이와 같음을 보고 나서 다시는 탐욕스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때 문수사리가 상금광수에게 말하였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널리 찾아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떤 이유들 때문에 다시는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게 되었습니까? 앞서 있던 욕심과 번뇌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인이 문수에게 아뢰었다.
“일체 중생의 번뇌인 욕심은 곧 뜻을 세워서 지혜로 본제(本際)를 해탈하고, 근본이 없는 법계에 머무릅니다. 근본이 없는 것이 그와 같아서 별다를 것이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습니다. 또 그 번뇌와 욕심은 곧 본래 깨끗한 것이며, 분별도 평등합니다.”
또 여인에게 물었다.
“왜 번뇌와 욕심이 본래 깨끗하다고 말씀하십니까?”
대답하였다.
“생각함도 생각하지 않음도 없고, 응함도 응하지 않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뇌와 욕심은 곧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번뇌를 따라서 행하더라도 일어나는 것이 없으니, 곧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번뇌의 욕심은 나그네를 따라서 놀러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空)의 지혜를 환히 깨달아 도와 함께 살며, 무상(無相)의 지혜ㆍ무원(無願)의 지혜ㆍ본래 깨끗한 밝음을 깨달아 함께 살면서 이 일체를 살펴보면 전혀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뱀이 독을 품고 사람을 헤쳤을 때, 만일 어떤 사람이 좋은 약을 지니고 오면 성난 독을 없앨 수 있고, 뱀이 그 약을 보면 독이 곧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독이 모두 없어진 줄 알고서 모두 함께 무릎 위에 올려놓고 희롱하지만 피해를 입는 일도 없고 또 사람을 물지도 않습니다.
그와 같아서 사람이 과거에 법률(法律)을 들은 적이 없을 때에는 불순함을 생각하고 소견이 뒤바뀌어서 번뇌와 욕심에 처하여 그것에 태워지면서 자기 몸을 탐하고 욕심내며 스스로 얼굴빛을 집착합니다. 그러나 색이 거품 무더기와 같다는 것을 이미 관찰했다면, 곧 몸의 법은 마치 허깨비와 같다는 것을 알고, 희롱하며 즐기는 것은 꿈과 같다고 분별할 것입니다.
이미 애욕은 물거품과 같음을 이해하였다면 목숨은 아침 이슬과 같고 만물은 무상한 것입니다. 모든 음을 환히 깨달으면 모두 하나같이 고뇌와 재앙이며, 몸은 깨끗하지 못하고 모두 공하고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체의 법을 관찰해보면
모두 나[吾我]가 없는 것이며, 바르고 자세하게 사유해보면 본말은 모두 허망한 것입니다. 다른 이를 헐뜯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결박하지도 않고 다른 이를 결박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에게서 설법을 듣고 곧 믿고 즐거워하며, 곧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아도 물들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씀을 살피며 그 짓는 바에 따라 번뇌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번뇌를 헤아리며 또한 욕심과 더러움도 없는데, 누가 보는 자이겠습니까?”
그때 상금광수가 문수사리에게 말씀드렸다.
“일체 큰 모임의 여러 하늘들과 인민들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위해 분별하고 알맞게 설법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 하늘들이 번뇌와 욕심은 본래 모두 청정한 것인 줄 환히 깨닫게 하며, 일체를 가엾이 여겨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게 해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욕심과 번뇌가 본래 깨끗하다는 것을 믿고 즐거워하는 이는 드뭅니다. 왜냐하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 번뇌가 청정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도를 이룹니다.
비유하자면 생기지 않은 불로는 사람을 태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생각이 없는 염(念)은 나[吾我]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어난 불길이 도리어 자신을 태우는 것처럼, 그와 같이 생각한 염(念)과 번뇌와 욕심이 태어나고 죽는 몸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에서 불이 생겨 그 불꽃이 마침내 왕성해지는 것처럼, 그와 같이 삿된 소견과 뒤바뀜이 번뇌를 일으켜 삼계를 태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이 꺼진 뒤에는 다시는 불꽃과 불빛이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뒤바뀐 소견이 그치고 나면 번뇌는 곧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백년 천년 불이 꺼져 타지 않으면 사람은 차가운 재를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록 여러 겁에 욕심과 번뇌를 익혔더라도 이미 이해하고 관찰했다면 쌓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이 꺼져 없어지면 쓸 수가 없는 것처럼, 지혜가 밝고 담박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속의 불인
따뜻한 열기가 아무리 왕성하더라도 태우는 것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헤아리면 그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빛나는 광명이 드러날 것이며, 나그네 같은 번뇌가 일어나려고 해도 끝내 마음의 근원은 더럽히지 못합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그 여인에게 물었다.
“또 어떻게 육신을 관해야 합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마치 물속의 달그림자와 같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5음(陰)의 본체를 관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변화가 없는 것이 여래의 변화와 같습니다.”
또 물었다.
“여러 종(種:大)은 어떻게 관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물과 불의 두 경계와 같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모든 입(入)을 관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베푸는 인연과 죄와 복의 행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이 모든 모임[會]을 관합니까?”
대답하였다.
“모인 사람들의 심성을 모두 비춥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도리어 그대의 몸을 관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나의 부모는 평등한 정(定)과 같아서 둘이 없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나의 몸을 관합니까?”
대답하였다.
“마치 청맹과니가 모든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이 법을 들었습니까?”
대답하였다.
“이 법을 들었지만 요술사가 만든 변화한 사람이 들은 것과 같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대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켰습니까?”
대답하였다.
“저는 곧 이 도에 바라고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또 물었다.
“무엇이 시도무극(施度無極:보시바라밀)을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일체의 도(度)를 닦으며 모든 번뇌를 버리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계도무극(戒度無極:지계바라밀)을 구족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구족해야 할 것은 허공처럼 두루 가득한 것입니다.”
또 물었다.
“인욕을 받들어 행합니까?”
대답하였다.
“쫓으며 닦아야 할 일체 모든 법은 일어남도 없고 생김도 없습니다.”
또 물었다.
“은근히 정진을 행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을 닦고 행하지만 나아가 도달하는 곳이 없습니다.”
또 물었다.
“그것이
적도무극(寂度無極:선정바라밀)을 세우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법계를 세우지만 머물러도 머무르는 곳이 없습니다.”
또 물었다.
“이미 지도무극(智度無極:지혜바라밀)을 구족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뜻에 교만함이 없고 마음으로 스스로를 대단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또 물었다.
“자애로움[慈]을 행합니까?”
대답하였다.
“그것은 일체 중생들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환히 깨닫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어디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보살을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의 번뇌 가운데서 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크게 가엾이 여기는 보살은 중생들의 번뇌를 바로잡고자 곧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기쁨[喜]을 행하는 보살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자기의 마음은 진실하며 뜻의 성품은 청정한 것이니, 모든 근심ㆍ걱정을 변화시키면 바로 보살의 기쁨입니다.”
또 물었다.
“보살행의 수호는 어떻게 구족합니까?”
대답하였다.
“중생들이 다투는 변고와 싸움을 빠짐없이 교화하여 안온함과 화합에 이르게 합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다투는 것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실체가 없고 거짓된 번뇌를 없애고 부처님 도를 세우려고 뜻하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누구와 다툽니까?”
대답하였다.
“밖의 여러 삿된 이학(異學)들처럼 마음이 같지 않은 자들입니다.”
또 물었다.
“여러 삿된 이학들은 무엇을 옳다 여깁니까?”
대답하였다.
“남들이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인욕하지 못하고 스스로 따르는 자들입니다.”
또 물었다.
“보살의 인욕은 어디에 뜻을 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중생을 일깨우고 교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일깨워 인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인욕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자라고 말하겠습니까? 성내거나 맺힌 한이 없으며 또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이 곧 인욕입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위험과 해독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덕의 근본을 많이 쌓으면 근심스럽고 괴로운 일이 되니, 이것을 위험과 해독이라 합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해독이 없는 것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경계에 근심하지 않으면 곧 인(仁)을 지키는 것이니, 이것을 해독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또 물었다.
“보살이 전투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을 선택하여 획득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보살은 여러 악마를 항복받습니까?”
대답하였다.
“집착하는 것이 없으므로 번뇌를 없애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5음을 항복시켜 번뇌와 함께하지 않으므로 이로써 악마에 이깁니다. 보살은 번뇌를 항복시켜 본래의 깨끗함을 더럽히지 않으며, 구경의 처음과 끝까지 모든 법을 환히 깨달으며, 중생들을 일깨우고 교화해 늙고 죽는 재앙을 없애줍니다.”
여러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보살께서는 이미 일체의 지혜와 모든 통달한 지혜로운 생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또 여인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교화합니까?”
대답하였다.
“오로지 선권방편을 잡고서 지혜를 닦고 행합니다.”
또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건립합니까?”
대답하였다.
“자기 마음의 지혜를 건립하여 거룩하게 통달한 보살이라야 비로소 일체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지금 그대가 설한 법을 이 모임에 참석한 대중들은 다들 잘 듣고 받아들였습니까?”
대답하였다.
“이것은 잘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과 나라는 생각이 있어서 도리어 권유했을 뿐이며, 의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법을 들어야 잘 듣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자신은 꿈과 같고 그 강설하는 경법도 요술사의 변화와 같다는 것을 믿으며, 거짓된 음성을 듣는 것임을 깨닫고 그 음성에 집착하지 않고 해탈도 짓지 않는 이 두 가지 일이 있으면, 이것을 법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합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법의 이치를 듣고 이어받습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는 법에 귀명하신 분입니다.”
그때 상금광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진(童眞)께서 건립한 위신을 이어받고, 또한 이미 본래의 덕으로 닦았던 지혜로써 대중의 모임에서 알맞게 법을 설하였으므로, 1만 2천 명의 사람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고,
전세에 덕의 근본을 심고 보살승에 뜻을 두었던 5백의 천자는 불기법인(不起法忍:무생법인)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하늘과 사람이 번뇌를 여의고 모든 법에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여인은 설법하고 나서 마음에 기쁨이 가득해 스스로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으며, 곧 몸을 문수사리의 발아래 던지며 스스로 귀의하였다.
“원컨대 지극한 성인이시여, 제가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더욱 가엾이 여겨 유순하지 못한 생각을 제도하고 해탈시켜 주십시오. 중생들이 행하는 일은 모두 현명한 관(觀)이 아닙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살은 자신의 머리를 깎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욕심과 번뇌를 끊어 없애고 정진을 닦게 하면 그것이 바로 보살의 출가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스스로 가사를 입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가사라는 이름은 진(晉)나라 말로 ‘더러움을 제거한다[去穢]’는 뜻입니다. 마땅히 중생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때를 제거하여 흠이 없게 하며, 항상 정진을 행해야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스스로 금계(禁戒)를 받드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중생을 힘써 교화하여 지키고 조심하게 하면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스스로 조용한 곳에 사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가령 5취(趣)에서 여러 무리들을 따르며 어디에서나 그것을 건립하고 지혜를 세워 한가하게 산다면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얼굴 모습ㆍ형용ㆍ위의ㆍ예절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 중생들을 교화하며, 인자한 생각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권유하고 이룩하면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기의 공덕을 일으키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을 윤택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을 권유하고 드러내며 덕의 근본을 심는 것,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기를 제도하고 멸도에 뜻을 두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의 심성을 해탈하여 멸도에 이르게 하면 이것이 보살이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신의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의 번뇌를 없애버리면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기 몸만 보호하고 홀로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일체 어리석은 중생들의 마음과 뜻을 보호해야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기만 해탈하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생사를 왕래하는 일체 어리석은 중생들을 해탈시켜야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자신만의 생사의 환난을 제도하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일체 생사의 환난을 제도하고 해탈해야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보살은 니원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을 출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일체의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춰야 이것이 보살의 출가입니다.
게다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며, 다른 이의 단점을 보지 않고 그의 결점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이들의 돈독한 믿음의 덕을 칭찬하고 믿음과 행을 열어 보여 모두에게 베푸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저 출가했다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의지하지만 보살이라는 자들은 의지하는 바가 없습니다.”
여인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왜 출가자들이 다른 사람을 의지한다고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저 출가했다는 사람들은 금계(禁戒)를 의지하지만 계율을 반연한다고 출가라 하지는 않습니다. 여인이여, 알고 싶습니까? 선정에 뜻을 두고 마음이 방일하지 않게 하십시오. 출가란 지혜에 의지하여 나쁜 벗을 따르지 않고 해탈의 문을 받들어 닦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다면 출가라 하지 못합니다.”
또 물었다.
“왜 보살은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곧 의지함이 없습니다. 또한
무슨 지혜가 있기에 그로부터 저런 현명함을 가지게 되었으며, 저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덕이 있기에 그로부터 모든 통달한 큰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일까 하고 그들의 얼굴빛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지도 않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이 출가품(出家品)을 설했을 때, 5백의 보살들이 각기 몸에 걸친 옷과 값진 보배와 영락을 벗어 모두 함께 문수사리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들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께서 말씀하신 출가의 좋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이 바른 이치에 따라 곧 이와 같은 행을 두루 갖추어 출가하겠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상금광수에게 말하였다.
“만일 다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 외간(畏間) 장자의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설하여 교화한다면 그것이 그대의 출가의 행입니다.”
그때 대중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어떻게 욕망을 벗어난 자가 욕망이 있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할까?’라고 생각하였다. 여인은 곧 대중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곧 대중들에게 답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욕망을 벗어난 보살이 욕망이 있는 중생의 부류와 함께 태어나는 것은 깨우치고 교화해 맑고 깨끗하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알고 싶습니까? 보살이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 곧 성내고 어리석은 여러 중생과 함께 노닐고 태어나는 것은, 깨우치고 교화하고 싶어서 자비와 밝음을 베푸는 것입니다. 설령 보살은 이미 번뇌를 벗어났더라도 곧 탐욕스런 여러 중생들과 함께 태어나 놀기 좋아하고 나태한 모든 부류를 깨우치고 교화합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란, 어머니와 아들은 자리를 함께해도 오염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그와 같아 항상 일체 중생과 함께 자리하지만 오염되는 것이 없습니다. 비유컨대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과 신비로운 주문을 읊는 사람은 비록 원하는 바를 익히긴 하지만 욕심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그와 같아 삼계와 갖가지 생각들에 처하지만
신비로운 주술과 같아서 물드는 것이 없습니다.”
이때 상금광수는 시절이 이르러 법의 이치를 획득하였고, 광명에 이르러 모든 깊은 어둠을 벗어났으며, 번뇌를 보고 진제(眞諦)를 열어 보였다. 그녀는 곧 앞으로 나아가 문수사리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세 바퀴를 돈 뒤, 돌아가 다시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곧 게송을 읊었다.
본래의 성품이 청정하니
탐욕이 더럽힐 수 없어라.
곧 어떤 성냄도 없이
자비로운 마음 항상 따르고 닦네.
또한 어리석음도 없어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며
이와 같이 덕에 이르고
그런 뒤에 수레에 올랐네.
이전엔 외간(畏間)의 아들을 따라
나태함을 익혔지만
나의 과거 탐욕의 마음을
지금은 모두 쏟아버렸네.
모든 공포와 재난
재물과 이익에 대한 탐욕
수레에 오르며 그런 것 벗어났기에
따라서 큰 소리로 노래한다네.
비유컨대 두꺼운 구름
비를 내려 대지를 적시면
곧 해님의 궁전을 가려
사람들 눈으로 보지 못한다네.
그 빛남 어두워지지 않았고
밝음을 훔치는 자도 없건만
뜬 구름이 하는 짓이라
그 광명 드러나지 못하게 하네.
어리석은 자의 마음도 본래 깨끗하고
나그네 같은 번뇌도 그와 같건만
생각이 분명히 깨닫지 못해
지혜의 광명을 가리는 것이라네.
그것을 살피는 밝게 통달한 사람
처소가 있다고 하지 않으며
번뇌를 이미 없애버렸나니
그것을 곧 지혜라 한다네.
지혜로 교만하지 않고
마음의 깨끗함 줄어드는 일 없나니
그것을 따져보면 오는 곳 없고
간다 해도 또 도달할 곳 없어라.
생각이 바르지 못함으로부터
곧 번뇌와 욕심이 있게 되니
이미 법다운 생각에 상응했다면
곧 다다를 곳 없음으로 나아가리라.
이름이란 처소가 없고
받는 자도 없으니
생겨나는 것도 없고
또한 사라지는 것도 없어라.
베풀지도 않고 끊을 것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 의지하지도 않나니
통쾌하구나, 이 바른 법이여
미묘하고 너무나 청정하여라.
비유컨대 기름 등불이
모든 어둠을 비추건만
저 어둡고 우매한 자들 살펴보니
어디로 돌아갈지 모르는구나.
지혜 또한 그와 같아
중생들의 어리석은 어둠을 없애건만
번뇌가 있는 곳 보지 못하고
생각을 따라 어디선가 왔다고 하는구나.
마치 훌륭한 의사가 있어
온갖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나니
그 몸에 늘고 주는 것 없고
또한 잃어버리는 것도 없어라.
병이란 곧 떠도는 나그네
그 질병 이미 없애버렸네.
또한 다른 것 익히는 일도 없나니
그 병이 간 곳도 모르겠노라.
부수(溥首:濡首) 또한 이와 같아
너무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중생들의 액난과 질병 살피고
갖가지 방법으로 치료하시네.
때를 없애 깨끗하게 하고
지혜의 문으로 나아가게 하시니
지으시는 온갖 변화에서
법이 아니면 논하지 않으시네.
이제 이 5음과
더불어 모든 대종(大種)
쇠입(衰入)을 이미 드러냈나니
본래 어떤 차별도 없던 것이네.
이 사람들 조금 전까진
독한 분노를 품고 있더니
이제는 헤치려는 마음 없고
갖가지 변괴도 또한 없어라.
그때 상금광수는 수레에 올라 장자의 아들 외간과 함께하였다. 이렇게 모습을 나란히 하여 깨끗하고 맑은 유관원으로 나아갔다.
문수사리가 경전을 강설하자 모임에 참석한 모든 대중들은 기쁨에 들떴으며, 그 마음이 열리고 풀려 훤히 밝게 통달하였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모두 함께 여래를 찾아뵙고 설법을 들읍시다.’ 하고는 유관원이 아닌 부처님 정사로 나아갔다.
그때 상금광수는 장자의 아들 외간과 함께 유관원에서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며 보배 일산으로 장엄하고서 음식을 갖춰 놓고 음악을 연주하며 함께 즐겁게 놀았으며 온갖 것을 잘 섞은 향을 자신에게 발라 향기를 풍겼다.
그때 그 여인은 장자의 아들과 그 찾아와 모인 사람들이 마음으로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신통의 힘으로 스스로 그 몸을 변화시켰다. 그러자 곧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빛처럼 추악하게 변했다. 마치 시체처럼 눈ㆍ귀ㆍ코ㆍ입에서는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고, 몸은 문드러져 차마 다시 볼 수 없었으며, 입에서 악취가 풍기로 더러운 비린내가 지독하였다. 모든 털구멍에서 더러운 오물이 흘러나오고,
그 배가 터져 창자와 위ㆍ간ㆍ폐ㆍ지라ㆍ콩팥의 5장과 똥ㆍ오줌ㆍ골수가 모조리 흘러 넘쳤고, 파리가 날아들어 빽빽이 에워싸 함께 빨아먹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이 여인의 몸이 변해 형상이 그런 것을 보고는 무섭고 불안하여 자기는 돌아가 이 환난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제 이런 재난과 끝없는 두려움에 봉착했으니 어디에서 이 큰 근심거리를 면해야 할까 하면서 각각 두 가지 근심을 품었다.
‘범부들이 여러 가지 잘못과 더러움을 보았으니 나의 허물이 장차 임금에게 책을 받지 않을까? 아사세가 알면 나의 목숨을 해치리라.’
일체의 권속과 모인 여러 사람들도 모두 놀라고 두려워 속으로 벌벌 떨면서 저마다 떠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ㆍ용ㆍ귀신이나 건답화나 사문ㆍ범지면 이 큰 재앙에서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저 장자의 아들은 덕의 근본이 불순하여, 이미 문수사리께서 강설하신 경을 듣고도 마땅히 시행해야 할 바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때 문수사리 동진은 위엄과 신력을 세워 동산의 수목으로 하여금 저절로 음성을 내게 하여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지금 젊은이가 보는 것처럼
모든 법은 자연의 이치이거니
삼계는 텅 비어 실체가 없는 것이
마술사가 변화를 부리는 것과 같다네.
어리석고 미련한 이들이 미혹하는 것
그건 썩은 고기를 얇게 덮은 것
그 허망하고 거짓된 것을 그리워하며
어리석은 이들 더러운 번뇌를 일으키네.
비유하자면 그건 마치 꽃병에
더러운 것 그 속에 가득한 것과 같나니
사람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서
그걸 머리 위에 이고 가는구나.
그 속에 있는 것 알고 나서
깨뜨리면 모조리 드러나나니
더러운 것 저절로 흘러나오면
대단할 것 없다며 도망을 치네.
지혜가 없는 자 또한 이와 같아
그 마음 여색에 집착하고 물드나니
몸매와 얼굴의 겉만 보고서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더럽히는구나.
젊은이여 이제 마땅히 관찰하고
자연의 몸을 깨우치고 교화하라
현명한 자 어찌 여기에 집착할까
허물 많고 더러우며 악취 나는 것에.
젊은이여 두려워마라.
허망한 거짓은 두려워 할 것 없나니
그대 앞에 모여 있는 것
모든 법은 자연히 이러하다네.
세존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공포와 두려움 없게 하시니
그 이름 석가족의 사자
훌륭하고 미묘한 법 강설하시네.
애욕은 영원하지도 오래가지도 않는 것
잠깐 나타나는 번갯불과 같나니
본다 해도 실체가 없기에
지혜로운 자 집착하는 것이 없다네.
비유컨대 흐르는 강가에서
물위에 엉긴 거품을 잡으려는 것과 같나니
그것을 만든 자는 없고
또한 과보를 이루지도 못한다네.
이름과 물질도 그와 같아서
그것을 만드는 일이 없지만
죄와 복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인과응보가 곧 생하느니라.
젊은이여 이제 스스로 보라
그 여인의 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그 더러운 것들 어디서 와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까.
이 법은 처소가 없고
간다지만 또한 가는 곳이 없나니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이
저절로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니라.
저것을 만든 자도 없고
또한 받는 자도 없나니
법을 만들어도 받아들일 것 없는 것
허깨비에게 몸이 없는 것과 같다네.
다른 이의 몸뚱이와 나태한 짓 하다가
젊은이 그 때문에 두려움 내는구나.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해야 하나니
또한 그것도 이와 같은 부류니라.
마치 꿈속의 유희에서
기뻐하며 날뛰는 것과 같나니
즐거워하던 일체 모든 것
꿈과 같고 나면 곧 깨달으리라.
젊은이여, 곧장 찾아가라
석가족 사자께서 계신 곳으로
세존은 거룩한 성인이시니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주시리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해 보고
친족과 잘 아는 벗을 생각해 봐도
그대를 위해 하지 못하리라
이 재난을 없애주는 일.
오직 세존만이
두려움 없음을 베푸실 수 있나니
마땅히 찾아가 부처님께 귀명하라
법과 성스러운 대중에게도.
모든 하늘과 건답화
사람들 누구나 머리 조아리면
일체 재난을 벗어나
곧 큰 이익과 안락을 얻으리라.
그때 장자의 아들은 이 게송을 듣고 크게 기뻐 뛰면서 좋은 마음이 생겼고, 곧 옷자락으로 여인의 주검을 감싸 우거진 숲속에 버리고 떠났다. 그때 세존께서 그 장자의 아들을 교화하시려고 몸에서 빛을 놓으시자, 그 광명이 온 마갈국(摩竭國)을 두루 비쳤다.
그때 젊은이는
비구 대중들에게 에워싸여 설법하시는 여래를 멀리서 보았는데, 해가 돋을 때 도로에서 저절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듯 미묘하고 드높았으며, 보배로 된 난간에 많은 꽃들이 뿌려져 있었다.
제석천이 곧 앞에 서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젊은이는 좋은 이익으로 복과 경사를 얻게 되었기에 이렇게 발심하고 기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몸을 두루 갖춘 여래를 뵙고 싶다면 그와 같은 무리들은 참된 이치의 길에 귀의하라. 여래의 빛나는 얼굴을 뵙고 싶은가? 이제 길을 떠나라.”
이때 그 젊은이는 이 권고와 칭찬을 듣고 제석천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다. 제석천은 다시 큰마음으로 만들어낸 꽃을 젊은이에게 주며 ‘이 꽃을 가져다 여래께 뿌려드려라.’ 하였다.
그러자 곧 꽃을 가져다 부처님께 공양해 뿌려드리고는 부처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돌고 앞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스스로 부처님의 법과 성스러운 대중들에게 귀의합니다. 이 덕의 근본으로써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권고하여 돕게 해 주십시오. 큰 성인이시여, 상금광수라는 방일한 여인이 있는데, 국왕도 알고 있고, 군ㆍ고을ㆍ성의 존자들도 알고 있는 여자입니다. 실은 그녀와 함께 즐기려고 유관원으로 갔었는데 갑자기 오늘 얼굴 모습이 추악하게 변하더니 곧 목숨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여러 일체의 종친과 권속들을 내버리고 도망치며 국왕의 문책을 받지 않을까 하며 크게 두려워졌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그대는 탐욕 때문에 두려움을 품고 있으니, 내가 너를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부처에게 귀명하는 자는 다시는 두려워해서는 안 되니, 두렵게 되는 연유인 그 뿌리를 끊어야 한다.”
또 여쭈었다.
“두려움은 어떤 인연으로 있게 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두려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몸이다 하며 교만하게 스스로 잘난 체하기 때문에 뒤바뀐 걸 보고 은혜나 사랑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吾我]가 있다고 헤아려 가진 것에 의지하고, 사랑과 욕심에 눈멀어 싸움을 초래하며, 스스로 그 몸을 보고
얽매어 집착하기 때문이다.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 생각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생각하며, 몸이란 없는 것인데 몸이라 생각하고, 공을 보고 실체라고 생각하며, 5음을 받아 그것으로 업을 짓기 때문이며, 4대종을 관찰하고 모든 입의 처소를 구하는 까닭이며, 몸의 결점을 살피지 않고 수명을 즐기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니 그런 마음을 없애야 한다.
너는 그 여인의 몸이 문드러지는 것을 보았느냐?”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여, 일체의 모든 법은 다 뿔뿔이 흩어져야만 하는 것이니, 아무리 애써 근심하여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어리석게 그걸 탐내지만 또한 견고하게 오래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성취한 것은 곧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며, 죄와 복의 응보는 위험만 많고 편안함은 적다. 색(色)은 허깨비와 같고 또 꿈과 같으며, 아지랑이가 나타나 목마른 이를 현혹하는 것과 같으며, 색은 마치 그림자와 같다. 행(行)은 살펴보면 문득 지나가 버리니 비유하면 거울 속 형상과 같다.
인연이 합해진 것인 죄와 복의 응보도 곧 없어지는 것이니 물속의 달처럼 성취를 인연해 곧 패배하는 것이며, 메아리가 말이 없는 것처럼 상대를 따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행은 그림자와 같아 잠깐사이에 곧 사라지는 것이며, 마치 주먹과 같아 움켜쥐면 주먹이지만 펴면 흩어지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본래의 깨끗함으로써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바람과 같아 보호하고 지킬 수 없고, 허망하고 거짓되어 실체가 없으며, 집착할 것도 없고, 황홀하여 허공과 같은 것이다. 의식이 이름을 지음으로 인해 공상(共相)이 이루어지지만 일체 모든 법에는 이와 같이 주인이 없으니, 곧 그것을 즐기거나 탐착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의 생각에는 탐욕스런 습관과 생각의 대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리석은 범부는 단정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얼굴을 생각하면 곧 탐욕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현의 계율과 법의 가르침과 경의 이치에서 그것을 관찰하면 더러운 것이라 탐내고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바른 이치와 진실을 사유하지 않으면 곧 탐욕을 익히며 방일을 쫓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젊은이의 말과 같다. 욕심내는 버릇의 의지와 성품은 그와 같으니,
삿된 생각을 버리고 마음으로 순리대로 생각하며, 그 업을 받들어 닦아 다시는 그러지 말라. 이미 나라는 소견을 벗어나 그 평등함을 관찰하였구나.”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마음으로 모든 법을 사유하여 항상 그대로 순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여, 만일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모든 번뇌가 본래 다 청정하다는 것을 사유하고 분별한다면 그것이 곧 보살이 부처님 도를 구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젊은이가 형상이 있는 물건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게 되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일체를 분명히 깨닫고 모든 법을 분별하여 자재하게 노니는 곳에서 그 3독은 곧 근본이 없으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임자 없는 집은 그 집 안팎이 담박하고 빈 것처럼, 나[吾我]를 벗어났기 때문에 나[我]ㆍ남[人]ㆍ오래 삶[壽]ㆍ목숨[命]도 곧 형상이 없게 되며, 집착하고 생각하던 것도 곧 없애버리게 된다. 집착하던 것을 떠나기 때문에 곧 소원이 없게 되고, 뜻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던 은혜와 사랑을 모두 제거하게 되며, 모든 행이 없고 짓는 것 역시 없게 되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성품은 본래 다 청정한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아서 일체의 법을 환히 깨달아 자재함을 얻는다.
가령 보살이 그대로 순응하는 것을 익히고 법을 받들어 닦는다면 일으키는 뜻마다 모두 곧 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곧 여여한 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일체의 법을 깨닫고 분별하여 이해하면 곧 색(色)이란 없는 것이고 그림자도 없으며, 자연이니 환과 같다느니 하는 가르침도 없다. 그는 안팎에서 서로 의지하더라도 또한 도가 되는 것이다.
보살이 되려는 자에게 다른 길은 없으니, 마땅히 시행해야 할 것은 자기의 마음을 환히 깨닫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자기의 마음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으면 곧 일체 중생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마음이 고요하면 중생의 마음도 곧 담박하게 되며, 자기 마음이 본래 깨끗하면 중생의 마음도 청정하며,
자기의 마음이 청결하면 중생의 마음도 청결한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욕심을 벗어나면 중생의 마음도 욕심을 벗어나며, 자기의 마음에 성냄이 없으면 중생의 마음에도 성냄과 원한이 없으며, 자기의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으면 중생의 마음도 현명하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자기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중생의 마음에도 번뇌가 없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일을 환히 깨닫는다면 곧 모든 통달한 지혜와 일체지(一切智)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순응하며 받들어 닦고 행하는 자를 보살이라 한다. 본래의 깨끗함을 가까이하면 곧 일체 중생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 될 것이다. 가령 다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행하여 나그네 같은 생각과 번뇌가 마음에 의지하여 때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싫어해 법관(法觀)을 닦아서는 안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을 환히 깨닫는다면 나그네 같은 번뇌의 생각에 곧 번뇌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마자 장자의 아들 외관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게 되었다.
상금광수는 장자의 아들이 교화를 입어 계율과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을 보고는, 곧 권속인 5백의 옥녀(玉女)와 함께 하늘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물러나 부처님 앞에 섰다.
그때 문수사리가 외간 장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이 누이를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때 외간 장자의 아들이 문수사리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색(色)은 덩어리 진 물거품과 같고
통양(痛痒:受)은 거품이 잠깐 이는 듯
상(想)은 깨닫고 보면 아지랑이라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압니다.
행(行)은 허망한 것이 파초와 같고
식(識)이란 비유하면 허깨비와 같은 것
이름이란 거짓된 나그네가 온 것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몸뚱이 탐낼 것 없어
풀이나 담장과 같으며
그 마음도 볼 수가 없나니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거기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오래 삶도 없고 목숨도 없으며
여러 종(種)이 합해 몸이 된 것이니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음욕과 성냄 이런 것도 없고
어리석음도 곧 처소가 없으며
청정하여 번뇌가 없다는 것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미혹하여
반대로 생각하고 전도됐으나
현명하게 통달한 자 물드는 것 없나니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비유하면 빽빽한 숲 속에 버려진
더럽고 냄새나는 여인의 몸과 같아
그 색은 자연이 되나니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장차 오는 세상도 본래 없고
어디에서 죽어 또 현재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없나니
이와 같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연수(軟首:문수사리)여, 들으소서.
진실한 이치로 해탈한 자는
곧 허물과 더러움을 벗어나는데
어찌 나아가거나 물러나겠습니까.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지만
현재 생사에서
중생을 일깨우고 교화해 바로 세우나니
그 누가 도의 뜻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저의 음욕과 성냄
바르지 못한 온갖 번뇌처럼
일체 모든 법은 근본이 없나니
훌륭합니다, 경전의 긴요한 가르침이여.
그때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시자, 입에서 곧 오색의 광명이 나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국토를 비추고는 돌아와 세 바퀴를 돌고 정수리로 들어갔다.
현자 아난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다시 가다듬고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일로 웃으셨습니까?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함부로 웃는 일이 없으니, 반드시 뜻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상금광수를 보았느냐?”
대답하였다.
“본 적이 있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는 오래전 옛날에 이 여인을 권유하고 교화하여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한 적이 있었고, 지금 그곳에서 다시 법을 듣게 하여 곧 유순법인을 얻게 한 것이다. 너는 또 이 장자의 아들을 보았느냐?”
대답하였다.
“네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과거 전세에 그를 권유하고 교화하여 도의 뜻을 내게 한 적이 있었고, 지금 또 나에게 다시 법을 듣고 곧 유순법인을 이루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상금광수는 920만 겁이 지난 뒤에 부처가 될 것이니, 명호는 보광명(寶光明)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일 것이다. 세계는 보개(寶蓋)이고, 겁의 이름은 보성(寶成)이며, 그때는 온 나라의 음식과 의복과 사는 집이 제2도리천과 같을 것이다.
그 불국토에는 다른 보배는 없고, 그곳에 태어나는 이들은 곧 보살을 값진 보배로 여길 것이다. 또 그 여래의 수명은 한량이 없고, 부처님의 도를 얻은 뒤에 그때 외간 장자의 아들이 덕광요(德光耀)라는 보살이 되어 세존이 펴는 법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닐 것이다. 그 보광명여래는 니원에 들기 전 덕광요보살에게 ‘이 덕광요보살개사(開士)는 내가 떠난 후 부처가 될 것이니 명호는 지염(持焰)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며, 그 불국토는 지금과 전혀 차별이 없을 것이다.’라고 수기하고 비로소 니원에 들 것이다.
이 족성자에게 수기하자마자 곧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차례 진동할 것이며, 그 큰 광명이 널리 세간을 비출 것이다. 이렇게 모든 수기를 빠짐없이 줄 때 곧 8천 명의 사람이 이 일로 인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킬 것이다.”
현자 아난이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큰 성인이시여, 이 경전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을 『대정법문품문수사리권조희변(大淨法門品文殊師利勸助戱變)』이라 할 것이며, 또는 『상금광수본지화(上金光首本之化)』라고 하여 받들어 지니고 일체에게 널리 펴서 보여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현자 아난과 젊은 남녀들, 문수사리 동진과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 등이 경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5110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하권 (2) | 2024.11.13 |
---|---|
[적어보자] #5109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상권 (3) | 2024.11.13 |
[적어보자] #5107 불설대자재천자인지경(佛說大自在天子因地經) (3) | 2024.11.13 |
[적어보자] #5106 불설대의경(佛說大意經) (3) | 2024.11.13 |
[적어보자] #5105 불설대위덕금륜불정치성광여래소제일체재난다라니경(佛說大威德金輪佛頂熾盛光如來消除一切災難陀羅尼經) (6) | 2024.1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