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110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하권

by Kay/케이 2024. 11. 13.
728x90
반응형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하권

 

불설대집법문경 하권
서천 역경 삼장 조봉대부 시광록경 전법대사
사자신 시호가 조서를 받들어 한역
“여러 비구들이여, 알아 두라. 다섯 가지의 취온[五取蘊]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색취온(色取蘊)ㆍ수취온(受取蘊)ㆍ상취온(想取蘊)ㆍ행취온(行取蘊)ㆍ식취온(識取蘊) 등이다.
또 다섯 가지 욕락[五欲]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눈으로 예쁜 색(色)을 보고 마음으로 좋아하여 욕심을 내어서 색 경계에 애착하게 되며,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알며, 몸으로 촉감을 깨닫는 것도 눈으로 색 경계를 반연하는 것과 같다.
또 다섯 가지 장애[五障]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좋아하는 욕심의 장애, 성내는 장애, 잠자는 장애, 갖가지 나쁜 짓의 장애, 의혹의 장애 등이다. 또 다섯 가지 번뇌의 결박[五種煩惱分結]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탐욕으로 인한 번뇌의 결박, 성냄으로 인한 번뇌의 결박, 신견으로 인한 번뇌의 결박, 계금취견(戒禁取見)으로 인한 번뇌의 결박, 의혹으로 인한 번뇌의 결박 등이다.
또 다섯 가지 간탐[五慳]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음식에 대한 간탐, 좋은 일에 대한 간탐, 제 몸을 잘 기르는[利養] 간탐, 색상(色相)에 대한 간탐, 법에 대한 간탐 등이다. 또 다섯 가지 감각하는 근[五受根]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즐거움을 느끼는 근[樂受根], 괴로움을 느끼는 근[苦受根], 기쁨을 느끼는 근[喜受根], 근심을 느끼는 근[憂受根], 고통과 즐거움이 아닌 것을 감각하는 근[捨受根] 등이다.
또 다섯 가지 우수한 근성[五勝根]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근성, 정진의 근성, 올바로 기억하는 근성, 정(定)의 근성, 지혜의 근성 등이다. 또 다섯 가지 힘[五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바른 기억의 힘, 선정의 힘, 지혜의 힘 등이다. 또 다섯 가지 학력[五學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학력, 정진의 학력, 바른 기억의 학력, 선정의 학력, 지혜의 학력 등이다.
또 다섯 가지 벗어나는 경계[五出離界]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비구가 법은 많이 들었으나 능히 고통의 실제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그 마음의 감수하는 경계를 따라 능히 욕심을 여의지 못하고, 온갖 욕심의 경계를 따라 욕심을 일으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이 인연으로 뒤에 다시 온갖 욕심의 경계를 관찰하고, 욕심을 여읜 마음을 일으키므로 욕심을 물리치고 벗어나기를 좋아하여 바른 행을 잘하여서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해탈의 마음이 일어나므로 능히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고 욕심이 없는 마음에 머무르니, 이런 이치로 욕심을 인연하여 무루(無漏)의 법을 내게 된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많이 듣긴 하였으나 능히 고통의 실지를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이 감수하는 경계를 따라 능히 성내는 마음을 여의지 못하고, 걸리는 경계에 당하여 성내고 분해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분한 마음에서 물러가지도 못하고 성내는 마음을 없애 버리지도 못하여 벗어나지 못한다.
뒤에 이 인연으로 다시 온갖 어기고 거슬리는 경계를 관찰하여 성냄을 떠난 마음을 일으켜 성내는 마음이 스러지고 벗어나기를 좋아하므로 바른 행을 잘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나니, 해탈의 마음이 일어나므로 능히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고, 성냄이 없는 마음에 머무르나니, 이런 이치로 성내는 마음을 인연하여 무루법을 내게 된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많이 들었으나 고통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이 감수하는 경계를 따라 능히 해(害)를 여의지 못하며, 마음에 맞지 않는 나쁜 경계를 당하여 해심(害心)을 일으켜 해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없애지도 못하여 벗어나지 못한다.
곧 이 인연으로써 뒤에 다시 능히 온갖 마음에 맞지 않는 좋지 않은 경계를 관찰하여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해치는 마음이 없어져 벗어나기를 좋아하여 바른 행을 잘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나니, 해탈의 마음이 일어나므로 능히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고
해치지 않는 마음에 머무르나니, 이런 이치로써 해치는 마음을 인연하여 무루법을 내게 된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능히 고통의 근본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감수(感受)하매 색상(色相)을 여의지 못하고 온갖 색 경계를 당하여 색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색의 집착에서 물러가지도 못하고 없애지도 못하여 벗어나지 못한다.
이 인연으로 뒤에 다시 색 경계를 관찰하여 색을 여읜 마음을 일으키므로 색의 마음이 없어지고 벗어나기를 좋아하여 바른 행을 잘하므로 마음의 해탈을 얻게 되니, 해탈의 마음이 일어나므로 능히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고 색을 여읜 마음에 머무르나니, 이런 이치로써 색을 인연하여 무루법을 내게 된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고(苦)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자기의 몸에 집착하여 몸이란 생각을 여의지 못하고 몸에 대하여 실제로 있다는 생각을 일으켜 그 생각에서 물러가지도 못하며 없애지도 못하여 능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 이치로써 뒤에 다시 능히 이 몸이 없어질 것임을 관찰하고 몸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던 마음이 없어지고 벗어나기를 좋아하여 바른 행을 잘하므로 마음의 해탈을 얻나니, 해탈의 마음이 일어나서 능히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고 몸이 없어진 생각에 머무르나니, 이런 이치로써 이 몸으로 인연하여 무루법을 내게 된다.
이러한 것을 다섯 가지 벗어나는 경계라 한다.
또 다섯 가지 해탈하는 곳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비구는 법을 말하는 스승에게 친근히 받들어 섬기며 존중하고 공경하며 범행을 닦아 익히되 잠시도 쉬지 아니하므로 그 친근히 받들어 섬김을 따라 곧 이익을 얻는다.
만일 때때로 스승의 법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으로 기뻐하여 법을 존중하는 생각을 일으키며 그 마음을 냄으로써 널리 듣고 다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다만 그 가운데 한 법만이라도 알고, 이 한 법을 앎을 따라 곧 한 뜻이라도 알게 되리라. 만일 그 뜻을 알지 못한다면 곧 법에
기쁜 마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앎으로 마음에 기쁨을 내게 되고 마음이 기쁨으로써 몸이 가볍고 편안하여지며, 몸이 가볍고 편안함으로써 곧 즐거운 감수(感受)가 서로 응하게 되니, 즐거운 감수로 말미암아 마음이 삼마희다(三摩呬多)에 머무르게 된다.
그 마음에 머무르므로 능히 여실히 알게 되고 다시 여실히 관하게 된다. 여실히 관하므로 곧 번뇌를 여의고 탐욕을 여의어 해탈지(解脫智)를 얻게 되며, 해탈지가 일어나므로 곧 나의 나는 일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성립되고 할 일을 이미 다하였으므로 뒤의 몸[後有]을 받지 않는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말하는 스승의 처소에서 친근히 받들어 섬기며, 존중하고 공경하며 범행을 닦아 익히되 잠시도 쉬지 않고 그 친근히 섬김을 따라 법을 듣게 되고, 그 들은 바를 따라 마음에 기쁨을 내고 법을 존중히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그 마음을 냄을 따라 능히 그 가운데 널리 법을 들어 모두 기억하여 온갖 법을 알므로 곧 모든 뜻을 알게 되니, 만일 모든 뜻을 알지 못했다면 곧 법에 기쁜 마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뜻을 알므로 마음에 기쁨을 내고, 마음이 기쁨으로써 몸이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하므로 곧 즐거움의 감수가 서로 응하게 되며, 즐거움의 감수로 말미암아 마음이 삼마희다에 머무르게 된다.
그 마음에 머무르므로 능히 여실히 알고 여실히 관하게 되며, 여실히 관하므로 번뇌를 여의고 탐욕을 여의어 해탈지를 얻으며, 해탈지가 일어나므로 곧 나의 나는 일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성취되며 할 일을 이미 다하여 뒤의 몸을 받지 않는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말하는 스승을 친근히 섬겨 존중하고 공경하며, 범행을 닦아 익히되 잠시도 쉬지 않고 그 친근히 섬김을 따라 곧 법을 듣고, 그 들은 바를 따라 마음에 기쁨을 내어 법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그 마음을 내므로 능히 널리 법을 들어 받아 기억하며, 다시 낱낱이 여실히
온갖 뜻을 알고 널리 남을 위하여 분별해 연설하느니라. 만일 온갖 뜻을 알지 못했다면 곧 그 법에 기쁜 마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뜻을 알고 마음으로 기쁨을 내며, 마음이 기쁨으로써 몸이 가볍고 편안하고, 몸이 가볍고 편안함으로 말미암아 곧 즐거움의 감수가 서로 응하고, 즐거움의 감수로써 마음이 삼마희다에 머물게 되느니라. 마음에 머묾으로써 여실히 알고 다시 여실히 관하게 되며, 여실히 관하므로 곧 번뇌를 여의고 해탈지를 얻게 되며, 해탈지가 일어나므로 곧 나의 나는 일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성취되며 할 일을 이미 다하여 뒤의 몸을 받지 않는다.
어떤 비구는 법을 말하는 스승을 친히 섬기며 존중하고 공경하며, 범행을 닦아 익히되 잠시도 쉬지 않고 친근히 섬기므로 곧 법을 듣고 그 들은 대로 마음에 기쁨을 내어 법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그 마음을 내므로 능히 널리 법을 듣고 다 기억하고 다시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러 물러감이 없고 없어지지 아니하며, 들은 바 법에 따라 그 뜻을 찾고 살피어 바른 지혜를 발생케 하고, 찾고 살핌을 일으키는 대로 온갖 법을 낱낱이 깨닫고 모든 법을 앎을 따라 곧 그 뜻을 해석하여 다른 이들을 위하여 분별해 연설하나니, 만일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곧 그 법에 기쁜 마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뜻을 알아 깨닫고 마음에 기쁨을 내며 마음이 기쁨으로써 몸이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상쾌함으로 말미암아 곧 즐거움의 감수가 서로 응하며, 즐거움의 감수로써 마음이 삼마희다에 머무르고 저 마음에 머무르므로 여실히 알고 다시 여실히 관하게 되며, 여실히 관하므로 곧 번뇌를 여의고 탐욕을 여의어 해탈지를 얻게 되며, 해탈지가 일어나므로 곧 나의 나는 일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성취되며 할 일을 이미 마치어 뒤의 몸을 받지 않는다.
어떤 비구가 법을 말하는 스승을
친근히 섬기며 존중하고 공경하며, 범행을 닦아 익히되 잠시도 쉬지 않아서 친근히 섬기므로 곧 법을 듣고 들은 바를 따라 마음에 기쁨을 내어 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그 마음을 내므로 능히 널리 듣고 기억하여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무르되 물러가지 않고, 들은바 법에 그 뜻을 찾고 살펴 바른 지혜를 발생하며, 다시 능히 다른 삼마지에 잘 머물러 마음을 수습하고 그 머무르는 마음이 더 한층 훌륭해지며 곧 모든 법을 낱낱이 깨달아 알게 되고, 모든 법을 아는 대로 그 뜻을 해석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분별해 연설하나니, 만일 그 뜻을 알지 못했다면 그 법에 기쁨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깨달아서 마음에 기쁨을 내고 마음이 기쁨으로써 몸이 가볍고 편안해지고, 몸과 마음이 상쾌하므로 즐거움의 감수가 서로 응하고, 즐거움의 감수로써 마음이 삼마희다에 머무르게 되고, 그 마음에 머무름으로써 여실히 알고 다시 여실히 관하며 여실히 관하므로 곧 번뇌를 여의고 해탈지를 얻게 되며, 해탈지가 일어나므로 곧 나의 나는 일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성취되며 할 일을 이미 다하여 뒤의 몸을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을 다섯 가지 해탈하는 곳이라 한다.
또 다섯 가지 나아가는 길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 등이다. 또 다섯 정거천[五淨居天]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 등이다.
또 다섯 가지 사부로서[五士夫] 법에 들어오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중(中)으로 드는 것, 생(生)으로 드는 것, 유행(有行)으로 드는 것, 무행(無行)으로 드는 것, 상류(上流)로 드는 것 등이다. 이것을 다섯 가지 사부가 들어오는 법이라 한다.
이러한 법들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인간과 천상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안의 여섯 곳[內六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이다. 또 밖의 여섯 곳[外六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부딪침ㆍ법 등이다. 또 여섯 가지 식[六識]의 작용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눈의 알음알이ㆍ귀의 알음알이ㆍ코의 알음알이ㆍ혀의 알음알이ㆍ몸의 알음알이ㆍ마음으로 분별하는 알음알이 등이다.
또 여섯 가지 감촉하는 작용[六觸]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눈으로 감촉(感觸)함, 귀로 감촉함, 코로 감촉함, 혀로 감촉함, 몸으로 감촉함, 뜻으로 감촉함 등이다. 또 여섯 가지 감각[六受]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눈으로 빛을 보는 것이 인연이 되어 생긴 감각, 코로 냄새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생긴 감각, 혀로 맛을 본 것이 인연이 되어 생긴 감각, 몸으로 부딪침이 인연이 되어 생긴 감각, 뜻으로 법진을 분별함이 인연이 되어 생긴 감각 등이다.
또 여섯 가지 생각[六想]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빛깔에 의한 생각, 소리에 의한 생각, 냄새에 의한 생각, 맛에 의한 생각, 부딪침에 의한 생각, 법의 분별에 의한 생각 등이다. 또 여섯 가지 애착[六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빛깔에 대한 애착, 소리에 대한 애착, 냄새에 대한 애착, 맛에 대한 애착, 부딪침에 대한 애착, 법의 분별심에 대한 애착 등이다.
또 여섯 가지 뜻을 기쁘게 하는 곳[六悅意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맞는 사랑스러운 빛을 보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이며, 마음에 맞는 사랑스러운 소리를 듣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이며, 마음에 맞는 사랑스러운 냄새를 맡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이며, 마음에 맞는 사랑스러운 맛을 보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이며, 사랑스러운 부딪침을 느끼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이며, 좋은 사물의 대상을 분별하는 것이
뜻을 기쁘게 하는 곳 등이다.
또 여섯 가지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六不悅意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사랑스럽지 않은 빛을 보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며, 사랑스럽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며, 사랑스럽지 않은 냄새를 맡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며, 사랑스럽지 않은 맛을 맛보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며, 사랑스럽지 않은 부딪침을 느끼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며, 좋지 않은 사물의 대상을 분별하는 것이 뜻을 불쾌하게 하는 곳이다.
또 여섯 가지 버릴 행위[六捨行]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빛이 변함을 보는 것이 빛을 버릴 곳이며, 소리가 변천함을 듣는 것이 소리를 버릴 곳이며, 냄새가 변함을 맡는 것이 냄새를 버릴 곳이며, 맛이 변함을 맛보는 것이 맛을 버릴 곳이며, 부딪침이 변함을 깨닫는 것이 부딪침을 버릴 곳이며, 분별하는 의식(意識)의 변천을 아는 것이 분별하는 그 자체를 버릴 곳이다.
또 여섯 가지 생각[六念]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부처님을 생각하며, 법을 생각하며, 스님을 생각하며, 계(戒)를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며,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여섯 가지 행[六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는 행, 듣는 행, 이익되는 행, 배우는 행, 분별하는 행, 생각하는 행이다.
또 여섯 가지 번뇌를 여의는 법[六離塵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일 비구가 현재의 몸으로 자비를 행하여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아니하고, 어떤 비구가 현재의 입으로 자비를 행하여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아니하며, 비구가 뜻으로 자비를 행하여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아니하고, 어떤 비구가 법답게 이익을 받고 법답게 밥을 빌며 얻은 대로 법답게 먹고 스스로의 행을 지녀 법 아닌 것을 멀리 여의어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아니하고,

어떤 비구가 깨끗한 계행을 닦아서 헐지 않으며 이지러짐이 없으며 모든 허물을 여의며 착한 힘을 더욱 늘게 하며 모든 행한 바를 따라 계행이 구족하여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아니하고, 어떤 비구가 신견(身見)에 집착하지 아니하여 벗어나려는 생각을 내며 괴로움을 끊어 없애려 하며 온갖 행한 바를 따라 모든 견해에 머무르지 아니하며 처음부터 닦아 익힌 범행이 굳건하여 무너지지 않으니, 이러한 것을 여섯 가지 번뇌를 여의는 법이라고 한다.
또 여섯 가지 투쟁의 근본[六種鬪爭根本]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보특가라는 스스로 죄 짓기를 좋아하고 죄 지은 이와 친하기를 좋아하면서 항상 남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바란다. 어떤 보특가라는 스스로 죄 짓기를 좋아하고 또 죄 지은 이와 친하면서 항상 남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바라며, 부처님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존경하지 않으며 법을 관하지도 않는다.
어떤 보특가라는 스스로 죄 짓기를 좋아하고 또 죄 짓는 사람과 친하기를 좋아하면서 항상 남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바라며, 스님들과 싸우기를 좋아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아첨하고 속이며 간탐하고 시기하며 허물을 덮는 따위의 온갖 번뇌와 신견(身見)ㆍ사견(邪見)ㆍ변견(邊見)ㆍ견취(見取)를 갖추어 능히 멀리 여의지 못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신견 등을 갖추고 뒤바뀐 마음을 일으키며 또 부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 능히 법을 관하지 못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신견 등을 갖추고 뒤바뀐 마음을 일으키며, 또 항상 스님들과 싸우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은 것을 여섯 가지 투쟁의 근본이라 한다.
또 여섯 가지 대치하여 벗어나는 경계[六種對治出離界]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마음의 해탈관을 닦아서 하는 일을 따라 다 여실히 알고 더욱 정진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치하므로 내가 성내는 마음을 모두 없애 버렸다. 이와 같은 사랑하는 마음의 해탈관으로 말미암아 온갖 성내는 마음을 용납할 곳이 없고, 다만 사랑함을 관하는 마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성내는 마음이 이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저 사랑하는 마음이 벗어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해탈관을 닦으므로 하는 일을 따라 다 여실히 알며 더욱 정진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치하므로 내가 해치려는 마음을 없애 버렸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해탈관으로 말미암아 해치려는 마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해치려는 마음이 이 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불쌍한 마음이 벗어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기쁜 마음의 해탈관을 닦으므로 하는 일마다 다 여실히 알며, 더욱 정진하여 기쁜 마음으로 대치하므로 내가 기뻐하지 않는 마음을 다 없애 버렸다. 이와 같이 기쁜 마음의 해탈관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않는 마음은 이곳에 용납할 수 없으며, 다만 기쁨을 관하여 마음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는 마음이 이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기쁜 마음이 벗어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버리는 마음의 해탈관을 닦으므로 하는 일마다 모두 여실히 알며, 더욱 정진하여 버리는 마음으로 대치하므로 내가 욕탐을 다 없애 버렸다. 이와 같이 버리는 해탈관으로 말미암아 탐욕심이 용납할 곳이 없으며,
다만 버림을 관하는 마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탐욕심이 이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버리는 마음이 벗어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상없는 마음의 해탈관을 닦으므로 하는 일마다 모두 여실히 알며, 더욱 정진하여 상 없는 마음으로 대치하므로 내가 상을 취하는 마음을 다 없애 버렸다. 이와 같이 상 없는 마음의 해탈관으로 말미암아 상을 취하는 마음이 용납할 곳이 없으며, 다만 상 없는 것을 관하는 마음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상 취하는 마음이 이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상 없는 마음이 벗어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내가 결정행(決定行)을 닦아서 결정법으로써 대치하므로 의혹의 마음을 다 없애 버렸다. 이와 같은 결정행으로 말미암아 의혹된 마음이 용납할 곳이 없으며, 다만 결정을 관하는 마음만이 앞에 드러나니, 그러므로 의혹의 마음이 이곳에 생겨나지 못한다. 왜냐 하면 결정심이 벗어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의 대치하여 벗어나는 경계라고 하니,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온갖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인간과 천상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七覺支]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생각하는 깨달음의 갈래, 법을 가리는 깨달음의 갈래, 정진하는 깨달음의 갈래, 기쁜 깨달음의 갈래, 가볍고 편안한 깨달음의 갈래, 선정의 깨달음의 갈래, 버림의 깨달음의 갈래 등이다.
또 일곱 가지 삼마지의 인연[七三摩地緣]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바른 관찰,
바른 주량(籌量), 바른 말, 바른 시작(施作), 바른 생활, 바른 용맹, 바른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또 일곱 가지 해탈행[七解脫行]의 생각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부정하다는 생각, 죽음이라는 생각, 음식을 탐내지 않는 생각, 모든 세간이 즐거울 것이 못 된다는 생각, 덧없다는 생각, 덧없음이 괴로움이라는 생각, 괴로움이 끝없다는 생각 등이다.
또 일곱 가지 힘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는 힘, 생각하는 힘, 두려움이 없는 힘, 정진하는 힘, 참는 힘, 定(정)의 힘, 지혜의 힘 등이다.
또 일곱 가지 보특가라[七種補特伽羅]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의 해탈, 함께 된 해탈[俱解脫], 지혜의 해탈, 몸으로 증득하는 것, 믿음의 해탈, 법의 행[法行], 믿음의 행 등이다.
또 일곱 가지 식의 머무름[七識住]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갖가지의 몸에 갖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은 욕계(欲界)의 인간이나 천상이나,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몸은 다르지만 생각을 같이하는 것은 초선천(初禪天)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한 가지의 몸에 갖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은 2선천(禪天)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한 가지의 몸에 한 가지의 생각은 3선천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공(空)한 것이 끝없는 경계의 하늘[空邊處天]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식이 끝없는 경계의 하늘[識無邊處天]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계의 하늘[空無邊處天]이니, 이것이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이것을 일곱 가지 식의 머무름이라 한다.
이와 같은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안으로 색(色)의 생각이 있어 밖으로 색의 형상을 관하는 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안에 색욕의 생각이 없되 밖으로 색의 형상을 관하는 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깨끗한 해탈에 구족하게 머무름[淨解脫具足住], 공이 끝없는 경계의 해탈[空無邊處解脫],
식이 끝없는 경계의 해탈[識無邊處解脫], 아무것도 없는 경계의 해탈[無所有處解脫], 생각도 아니며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계의 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생각과 느낌의 작용이 없어진 경계의 해탈[想受滅解脫] 등이다.
또 여덟 가지 훌륭한 경계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안으로 색의 생각이 있되 바깥 색을 적게 관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으로 색의 생각이 있어 바깥 색을 많이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에 색의 생각이 없으나 바깥 색을 조금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에 색의 생각이 없으나 바깥으로 색깔이 푸르게 멍듦을 관하나니, 마치 오마화(烏摩華) 빛이나 푸른 빛깔의 옷, 두 가지 푸른 것 가운데 다 이 푸르스름한 빛깔이 나타남을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에 색욕의 생각이 없으나 밖으로 색의 누르스름한 것을 관하나니, 흘리슬나아가라꽃[訖哩瑟拏阿迦羅華]이나 누른빛 옷, 이 두 가지 누른빛 가운데 모두 이 누르스름한 빛깔이 나타남을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에 색욕의 생각이 없되 밖으로 색의 붉은 것을 관하나니, 만도니바가꽃[滿度★嚩迦華]이나 붉은색의 옷, 이 두 가지의 붉은빛 가운데 다 이 불그스름한 빛깔이 나타남을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안에 색욕의 생각이 없되 밖으로 색의 흰 빛깔을 관하나니, 흰 빛깔의 꽃이나 흰색의 옷, 이 두 가지의 흰 빛깔 가운데 모두 흰 빛깔이 나타남을 관하나니, 이 관을 할 적에 훌륭한 지견을 일으키면 이것이 훌륭한 경계가 된다.
이러한 것을
여덟 가지의 훌륭한 경계라 한다.
또 여덟 가지 세속 법[八種世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로움ㆍ쇠잔(衰殘)함ㆍ훼방함ㆍ기리는 것ㆍ칭찬함ㆍ흉봄ㆍ괴로움ㆍ즐거움 등이다.
또 여덟 가지 바른 도[八正道]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바로 봄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위[正業]ㆍ바른 생활ㆍ바른 정진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 등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의 바른 도라 한다.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천상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아홉 가지 중생이 사는 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갖가지 몸에 갖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욕계의 인간과 천상이니,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몸은 다르지만 생각이 같은 것은 초선천(初禪天)이니,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한 가지 몸에 갖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2선천이니,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한 가지 몸에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3선천이니,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공이 끝없는 경계의 하늘[空無邊處天]도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식이 끝없는 경계의 하늘[識無邊處天]도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계의 하늘[無所有處天]도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닌 하늘도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생각이 없는 하늘도 이것이 중생이 사는 곳이다.
이러한 것을 중생이 사는 아홉 가지 세계라 한다.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열 가지 구족한 행[十具足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무너짐이 없는 바른 견해, 무너짐이 없는 바른 생각, 무너짐이 없는 바른 말, 무너짐이 없는 바른 행동, 무너짐이 없는 바른 생활, 무너짐이 없는 바른 정진, 무너짐이 없는 바른 인(忍), 무너짐이 없는 바른 정(定), 무너짐이 없는 바른 해탈, 무너짐이 없는 바른 지혜이다. 이것을
열 가지의 구족한 행이라 한다.
이러한 법들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존자 사리불이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그들의 정도에 알맞도록 법을 말한 줄을 아시고 곧 조용히 누우셨던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셨다.
“장하다, 장하다. 사리불아, 네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모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 이 법을 ‘크게 모은 법문[大集法門]’이라고 이름할 테니 말세에 있어서 중생들에게 큰 이익을 주리라. 나중의 말세에 나의 여러 비구들로서 범행을 닦는 이는 이 ‘크게 모은 법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선포하여라.
또 사리불아, 저 말세에 이 ‘크게 모은 법문’을 받아 지니는 이 사람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법 가운데 깨끗하게 믿는 선남자가 되어 부처님의 교법에 깊이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크게 깨닫고 기뻐하리라.”
자리에 있던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이 ‘크게 모은 법문’을 칭찬하시는 말씀을 듣잡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 말씀을 믿어 지니고 절을 하고 각기 물러갔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