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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109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상권

by Kay/케이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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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상권

 

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1)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 지음



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계작성교서(繼作聖教序)21)

어제(御製)

높고 밝은 것이 처음으로 나뉘자 삼진(三辰)22)이 비로소 차례로 나타났고, 두텁게 실어주는 것이 비로소 안정되자,
만물이 이로써 실마리를 일으켰으니, 맑음과 탁함의 본체가 이미 밝혀진 것이요, 선과 악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다음에 문물(文物)로 그 가르침을 세우고 바른 법전[正典]으로 그 세속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익의 공은 모두 이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상법(像法)이 서쪽 나라에서 와 진제(眞諦)가 중국에 유포되었지만 천고의 세월을 관통하는 진실한 이치는 궁구할 방법이 없고, 구위(九圍)23)를 포괄하는 현묘한 문은 궁구할 수가 없다. 허망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참된 모습을 나타내자면 터럭 하나에도 원만하니, 광대한 그 가르침을 어찌 기술할 수 있겠는가!
삼가 살피건대,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께서는 법성이 두루 원만하시어 인자함을 널리 베푸셨다. 오랑캐들을 교화하시자 만방(萬邦)이 바큇살처럼 몰려들어 온 백성을 인수(仁壽)의 영역에 올려놓으셨고, 교법을 숭상하시자 사해(四海)가 구름처럼 뒤따라 창생에게 풍요로운 땅을 베푸셨다. 존귀한 경전이 방대함을 보시고는 방편을 시설해 물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셨고, 법계가 광활함을 알시고는 정진을 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거두셨다. 이에 아늑한 절을 선택해 저 참된 문서24)들을 교열하고는 천축의 고승들에게 명령하여 패다라(貝多羅)의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다.25) 상아 붓대가 휘날리며 황금의 글자를 완성하고, 구슬을 엮어 다시 낭함(琅函)에 안치하자26) 용궁(龍宮)의 성스러운 문장27)이 새롭게 탈바꿈하였으니, 취령(鷲嶺)의 필추(苾芻)28)들마저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승(三乘)이 모두 하나로 꿰뚫어지고 사제(四諦)가 함께 원만해졌으니, 고(苦)가 공하다는 참되고 바른 말씀을 완전히 밝히고, 정밀히 연구한 비밀스러운 뜻을 환히 드러냈다. 상(相)을 찬탄하는 상이 바로 진실한 상이고, 공(空)을 논하는 것도 공하여 모조리 공이라 하였으니, 화엄(華嚴)의 이치와 궤도를 같이하고, 금상(金像)29)의 가르침과 규구(規矩)30)가 동일하였다.
짐은 대업(大業)을 계승하여 삼가 황위에 임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매일 긍긍하면서 선황의 훈계를 지켜왔다.
불교경전[釋典]에 대해서는 더구나 정밀하지도 상세하지도 못하니, 진실로 그 그윽하고 심오한 뜻을 어찌 탐색하고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경원(譯經院)31)의 서역 승려 법현(法賢)32)이 간절한 글을 올리고 그 뜻을 너무도 열심히 피력하였다. “선황제께서는 참된 교화의 바람을 크게 펼치고 부처님의 뜻을 높이 전하셨으며, 전대의 왕들이 빠뜨린 전적을 흥성시키고 각로(覺路)33)의 무너진 기강을 다시 떨치셨다”고 하면서, 하늘이 이룬 공로를 높이 휘날리고 성황의 글34)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서문을 지어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해달라고 청하였다.
성고(聖考)35)께서 승하하시고 추호(追號)36)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는데 정사 밖에 마음을 둘 겨를 어디 있었겠는가? 담제(禫祭)37)를 마치고 이제야 생각이 은미하고 오묘한 곳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려서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능통한 재주가 본래 부족한 걸 어쩌랴. 법해(法海)의 나루터와 언덕을 어찌 궁구하리오! 공문(空門)의 문턱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대략 대의나마 서술하여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할 따름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이라 태양을 씻는 파도에 빗대기에는 부족하니, 한척짜리 채찍이 어찌 드넓은 하늘의 그림자를 측량할 수 있으랴! 이렇게나마 짧은 서문을 지어 이로써 성인들의 공로를 기록할 따름이다.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 상권
서천(西天) 시호(施護)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이곳 곳으로 행각하시다가 말리성(末利城)에 이르러 비구들과 자리를 같이하셨다. 마침 이 성에는 부처님을 신봉하는 우바새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도 말리였다. 그는 성안에 새로 절을 짓고 여러 가지로 아름답게 꾸몄는데 매우 깨끗하고 넓고 아담한 집이었다.
이 절에는 아직 사문이나 바라문 등을 머물게 하지 아니하였다. 이 때에 우바새 말리는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행각하시다가 이곳에 이르셨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부처님께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나서 합장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우바새 말리라 하옵니다. 저는 부처님께 깨끗한 마음을 내어서 이 성안에다 새로 절을 지었사온데, 깨끗하고 아담하며 넓고 조용하옵니다. 그러나 이 절에는 아직 사문이나 바라문을 한 번도 머물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이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이 절에 머무시도록 하소서. 바라옵나니 부처님께서는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의 청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그의 청을 받으시었다. 말리 우바새는 부처님께서 잠자코 청을 들어주신 줄을 알고, 곧 머리를 땅에 대어 부처님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돌고 나서 부처님 처소를 떠나갔다. 그는 바로 절에 와서 거듭 손질을 하여 한층 훌륭하게 꾸미고, 절 주위에다 향수를 뿌려 안팎을 모두 깨끗이 해 놓았다. 말리 우바새는 이와 같이 절을 다시 꾸며 놓고는 부처님께 가서 다시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을 하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먼저 지은 절의 주위에 향수를 뿌려 안팎을 다 깨끗이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데리고 그 절에 가시어 계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과 같이 말리 우바새가 지은 새 절에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발을 씻으시고 나서 안에 들어가 두루 살펴보시고는 한가운데에 조용히 앉으셨다. 여러 비구들도 또한 발을 씻고 차례로 들어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뒤쪽에 가서 차례로 앉았다. 말리 우바새도
들어와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합장 공경하여 여러 비구들에게도 두루 예배하고 나서 부처님 앞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말리 우바새를 위로하시고 곧 그의 근기에 맞도록 법을 말씀하시어 기쁘고 이익되게 하셨다. 말리 우바새는 법을 듣고 기뻐하여 마음속으로 깨끗한 믿음을 내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우바새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어 이익되고 기쁘게 하시면서 며칠을 지났다. 부처님께서는 말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말리여, 이 밤을 지나고는 스스로 때를 알 것이니라.”
말리 우바새는 이 말씀을 듣고 곧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합장 공경하고 나서 두루 여러 비구들에게도 예를 마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물러갔다. 부처님께서는 말리 우바새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성문 비구는 이미 수면(睡眠)을 여의었으니 세속을 떠난 깨끗한 대중이로다. 만일 모든 비구들이 설법하기를 좋아하거든 정도에 알맞게 설법하여 이익되는 바를 따라 쉬지 말지어다.”
존자 사리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번 접어 사자상(師子狀)에 펴고 오른쪽 옆으로 누워 상서롭게 조용히 다리를 포개셨다. 부처님께서 누우신 지 오래지 않아서 다른 곳에 있는 외도(外道) 니건타야제자(尼乾陀惹提子) 등이 성문 비구를 업신여기고 훼방하는 마음을 내어 파괴하고 투쟁하려 하고, 법답지 못한 말을 내어 여러 가지로 훼방하고 나무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가 아는 법은 저 성문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의 법은 우리가 자세히 안다. 그러므로 사행(邪行)은 저들이요, 정행(正行)은 우리들이다. 이익이 있는 것은 우리요, 이익이 없는 것은 저들이다. 저들이 말한 것은 앞의 말은 비록 옳더라도 뒤의 말은 그르며, 뒤의 말이 혹 옳으면 앞의 말은 도리어 그른 것이다. 그리고 크게 사자후(獅子吼)를 하여 법을 말해서 이익되게 하지 못한다.”
니건타야제자 등이 크게 싸움을 벌이려고 이렇게 비방하면서 서로 바라보니 얼굴과 눈꼴이 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성문 비구는 모양과 거동이 고요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도 못했고, 해탈을 얻지 못했으며 법을 알지 못하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도 모르며, 향해 나갈 바의 성인의 과를 얻지 못하고, 저들이 익히는 법은 정등정각(正等正覺) 한 분이 말한 것이 아니로다.”
이렇게 훼방하고 나무라면서 싸움을 걸려고 하였다.
이 때에 존자 사리불은 이러한 일을 알고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편안히 누우신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이런 일을 부처님께 여쭐 수는 없구나.’
그리하여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알아두오. 지금 다른 곳에서 여러 외도 니건타야제자 등이 성문 비구를 업신여기고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켜 파괴하고 투쟁하려 하여 법답지 못한 말을 하며, 여러 가지로 훼방하고 나무라며 말하기를, ‘우리가 아는 법은 성문들은 능히 알지 못하지만, 저들의 법이란 것은 우리는 모두 알 수 있다. 사행은 저들이요 정행은 우리들이다. 유익한 이는 우리들이며 무익한 이는 저들이다. 저들이 말한 법은 앞의 것은 비록 옳다 하더라도 뒤의 말은 그르며, 뒤의 말이 혹 옳으면 앞의 말이 그른 것이다. 사자후를 하여
법을 말해서 이익되게 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소.
비구들이여, 니건타야제자 등이 크게 싸움을 일으키려고 이렇게 헐뜯고 나무라는 말을 할 때에 서로 바라보는 얼굴과 눈꼴이 사나웠는데 오히려 이런 말을 하기를, ‘모든 비구들은 모양과 거동이 고요하지 못하고 해탈을 얻지 못했고 법을 깨닫지 못하고 번뇌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며 향해 나갈 바의 성인의 과를 얻지 못하고 익히는 법은 옳게 깨달은 분이 말한 것이 아니다’고 훼방하고, 나무라는 말을 하며 싸움을 하려고 하니,
여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아시오. 우리들 성문 대중은 다 번뇌를 여읜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법을 증득하여 모든 뛰어나는 길을 잘 알고 각기 이미 성인의 과를 얻었으며, 우리들 성문이 닦아 익히는 법은 낱낱이 다 부처님 큰 스승ㆍ응공(應供)ㆍ정등 정각(正等正覺)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니, 낱낱이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도다.
비구들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계경(契經)ㆍ기야(祗夜)ㆍ기별(記別)ㆍ가타(伽陀)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연기(緣起)ㆍ방광(方廣)ㆍ희유법(希有法) 등이다.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치와 같이 말씀하시어 중생들이 그 말씀과 같이 닦아 익혀 모든 범행을 행하게 하므로 천상ㆍ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마땅히 알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일체 중생이 모두 먹고사는 데 의지한다 하는 이것이 곧 한 가지 법이다.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치와 같이 말씀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닦아 익혀 모든 범행(梵行)을 하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두 가지 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곧 이름(名)과 색(色)이다. 이러한 법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말씀하셔서 중생들로 하여금 닦아 익혀서 온갖 범행을 하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세 가지 업[三業]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몸으로 짓는 업[身業]이요, 둘째는 말로 짓는 업[語業]이요, 셋째는 뜻으로 짓는 업[意業]이다.
이 세 가지 업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착한 업이요, 다른 하나는 착하지 못한 업이다. 무엇이 착한 것이냐 하면, 몸으로 하는 착한 짓과 입으로 하는 착한 짓과 뜻으로 짓는 착한 행위 등이다. 그리고 무엇이 착하지 못한 것이냐 하면, 역시 몸으로 저지르는 좋지 못한 행위, 입으로 하는 나쁜 말, 뜻으로 범하는 옳지 못한 짓 등이다.
또 세 가지의 착하지 못한 생각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 따위이다. 또 세 가지의 착한 생각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을 여읜 생각ㆍ성냄이 없는 생각ㆍ해침이 없는 생각 등이다. 또 세 가지 착하지 못한 근성(根性)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탐내는 착하지 못한 근성, 성내는 착하지 못한 근성, 어리석은 좋지 못한 근성 등이다.
또 세 가지 선근(善根)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탐욕이 없는 선근, 성내지 않는 선근, 어리석지 않은 선근이다. 또 세 가지 새는 것[三漏]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의 새는 것[欲漏], 유의 새는 것[有漏], 무명의 새는 것[無明漏] 등이다. 또 세 가지 구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으로 구하는 것[欲求], 유의 구하는 것[有求], 범행을 구하는 것[梵行求] 등이다.
또 세 가지 애착[三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계의 애착, 색계의 애착, 무색계의
애착 등이다. 또 세 가지 세계[三界]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계ㆍ색계ㆍ무색계 등이다. 또 세 가지 착하지 못한 경계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의 경계, 진심(瞋心)의 경계, 해롭게 하는 경계 등이다.
또 세 가지 착한 경계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심 없는 경계, 성냄이 없는 경계, 해침이 없는 경계 등이다. 또 세 가지 유[三有]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 등이다. 또 세 가지 취[三聚]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사정취(邪定聚)ㆍ정정취(正定聚)ㆍ부정취(不定聚) 등이다.
또 세 가지 느낌[三受]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로운 느낌[苦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非苦樂受] 등이다. 또 세 가지 괴로움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윤회의 괴로움[輪廻苦]ㆍ괴로움의 괴로움[苦苦]ㆍ무너짐의 괴로움[非苦樂受] 등이다.
또 세 가지 욕심으로 나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현처욕(現處欲)으로 나는 것, 화락욕(化樂欲)으로 나는 것, 타화자재욕(他化自在欲)으로 나는 것 등이다.
또 세 가지 즐거운 삶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중생이 나면서 바로 낙을 받는 이가 있는데 인간 가운데 한 무리가 그러하다. 이런 이를 제1의 즐거운 삶이라 한다. 또 어떤 중생은 길이 기쁘고 즐거움을 받는데, 이 즐거움이 대단히 많으며 매우 기쁘며 유쾌한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으니, 이러한 것을 제2의 즐거운 삶이라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목숨이 다하도록 쾌락을 받는 것이 변정천(遍淨天)과 같으니, 이러한 것을 제3의 즐거운 삶이라 한다.

또 세 가지 복을 성취할 지혜로운 행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시로 장엄하여 성취한 지혜로운 행이요, 계행으로 장엄하여 성취한 지혜로운 행이며, 선정(禪定)으로 장엄하여 성취한 지혜로운 행이다. 또 세 가지 삼마지(三摩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심(尋)도 있고 사(伺)도 있는 삼마지, 심은 없고 사만 있는 삼마지, 심과 사가 다 없는 삼마지 등이다.
또 세 가지 삼마지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공해탈(空解脫)의 삼마지, 소원이 없는 해탈의 삼마지, 형상이 없는 해탈의 삼마지 등이다.
또 세 가지 머묾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하늘에 머물며[天住], 범에 머물며[梵住], 성도[聖住]에 머무는 것이다. 또 세 가지 근성(根性)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모르는 것을 아는 근성[未知當知根]ㆍ이미 아는 근성[已知根]ㆍ갖추어 아는 근성 등이다. 또 세 가지 증상(增上)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세간의 증상ㆍ법의 증상ㆍ아(我)의 증상 등이다. 또 세 가지 부처님[三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과거의 모든 부처님ㆍ미래의 모든 부처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등이다.
또 세 가지 말하는 일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과거의 말한 일ㆍ미래의 말할 일ㆍ현재의 말하는 일 등이다. 또 세 가지 눈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 등이다. 또 세 가지 지혜의 밝음[三明]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숙명(宿命)을 아는 지혜의 밝음ㆍ중생의 나고 죽는 일을 아는 지혜의 밝음ㆍ번뇌가 다한 지혜의 밝음 등이다. 또 세 가지의 신통함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신경통(神境通)ㆍ설법통(說法通)ㆍ
교계통(敎誡通) 등이다.
또 세 가지 깨끗하지 못함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몸이 깨끗하지 못함, 말이 깨끗하지 못함, 마음이 깨끗하지 못함 등이다. 또 세 가지 깨끗함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몸이 깨끗하며 말이 깨끗하며 마음이 깨끗한 것 등이다. 또 세 가지 배움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계학(戒學)ㆍ정학(定學)ㆍ혜학(慧學) 등이다.
또 세 가지 품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계품(戒品)ㆍ정품(定品)ㆍ혜품(慧品) 등이다. 또 세 가지 불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탐욕의 불ㆍ성냄의 불ㆍ어리석음의 불 등이다. 또 세 가지 분위(分位)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생분위(生分位)ㆍ성분위(成分位)ㆍ법분위(法分位) 등이다.
이러한 법들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말씀과 같이 닦아 익혀 온갖 범행을 닦게 하므로 천상과 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또 네 가지의 대상을 생각하는 관찰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몸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 관찰하되,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무명(無明)을 조복 받고 번뇌의 업을 여의는 것이며, 둘째는 감수(感受)함이 괴로운 것이라 관찰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이 났다 없어졌다 함을 관찰하는 것이며, 넷째는 온갖 법을 잘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또 네 가지 바로 끊는 것[四正斷]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미 일어난 온갖 좋지 못한 법은 부지런히 정진해서 마음을 수습하여 모두 끊어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온갖 좋지 못한 법은 부지런히 정진해서 마음을 수습하고 조심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온갖 좋은 법은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수습하여 일어나게 하며, 이미 생긴 온갖 좋은 법은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수습하여 더욱 자라게 하며 원만히 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바로 끊는 것이라 한다.
또 네 가지 신족[四神足]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삼마지(欲三摩地)로 꾸준히 실행하여 신족을 갖추는 것이요, 정진삼마지로 꾸준히 실행하여 신족을 갖추는 것이요, 바른 마음의 삼마지로 꾸준히 실행하여 신족을 갖추는 것이요, 지혜의 삼마지로 꾸준히 실행하여 신족을 갖추는 것 등이다.
또 네 가지 선정[四禪定]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일 비구가 이미 모든 욕심과 좋지 못한 법을 여의고, 심(尋)이 있고 사(伺)가 있으면 이것을 제1의 여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정[第一離生喜樂定]이라 하며, 만일 비구가 심하고 사하는 마음을 쉬고 마음이 깨끗하여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하여 심도 없고 사하는 것도 없으면 이것은 제2의 정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정[第二定生喜樂定]이라 하며, 만일 비구가 기쁨에 탐내지 아니하고 주기를 좋아해서 몸이 가볍고 마음이 편하여 묘한 즐거움을 얻으면 이것을 제3의 기쁨을 여읜 미묘한 즐거운 정[第三離喜妙樂定]이라 하며, 만약 비구가 즐겁다는 생각을 버리고 괴롭다는 생각도 없고 좋다는 마음도 없으며, 번거롭다는 마음도 없고 고통과 향락된 마음이 다 없으면 이것을 제4의 생각을 놓아 버린 맑고 깨끗한 정[第四捨念淸淨定]이라고 하니, 이러한 것 등을 네 가지 선정이라 한다.
또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약 비구가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먼저 동방에서부터 사랑하는 마음을 내서 행하고, 남쪽ㆍ서쪽ㆍ북쪽ㆍ4유ㆍ상방(上方)ㆍ하방(下方)도 또한 이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실행하여 그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곳 어느 세계 어떠한 종류에게든지 넓고 크고 한량없이 끝도 없고 또한 한계도 없이 하면, 이것을 사랑이 한량없는 마음[慈無量]이라 한다. 슬퍼하고[悲] 즐겁고[喜] 버리는[捨]세 가지 한량없는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이것을 네 가지의 끝없는 마음이라 한다.
또 네 가지 무색정[四無色定]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약 비구가
온갖 색을 여의고 대(對)가 없고 걸림도 없으며 생각을 일으킴이 없이 끝없는 텅 빈 경계를 관한다면, 이렇게 관하는 행상(行相)을 빈 것이 끝없는 경계의 정[空無邊處定]이라 한다. 다시 이 텅 빈 경계를 여의어 관하는 대상을 삼지 않고 다만 끝없는 식(識)을 관하니, 이 관하는 행상을 식이 끝없는 경계의 정[識無邊處定]이라 한다. 다시 식의 경계를 여의어 관하는 대상을 삼지 않고 다만 아무것도 없는 것을 관하니, 이렇게 관하는 행상을 아무것도 없는 경계의 정[無所有處定]이라 한다. 다시 이 아무것도 없는 경계를 여의면,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계의 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 한다.
이와 같은 것을 네 가지 무색정이라 한다.
또 네 가지 지혜[四智]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법을 깨달은 지혜[法智], 생이 없는 지혜[無生智], 평등한 지혜[等智],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 등이다. 또 네 가지 편안히 머묾[四安住]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온갖 행위에 편안히 머물며,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행에 편안히 머물며, 고요한 행에 편안히 머물며, 지혜로운 행에 편안히 머무는 것 등이다.
또 네 가지 성제[四聖諦]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온갖 것이 괴로운 성제[苦聖諦], 괴로움이 모이게 하는 성제[苦集聖諦], 괴로움이 없어지는 성제[苦滅聖諦]ㆍ괴로움이 없어지는 길로 향해 나아가는 성제[苦滅往向聖諦] 등이다.
또 네 가지 보시의 깨끗함[四種布施]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보시는 주는 이는 깨끗한데 받는 이가 깨끗하지 못하며, 어떤 보시는 받는 이는 깨끗한데 주는 이가 깨끗하지 못하며, 어떤 보시는 주는 이나 받는 이가 다 깨끗하지 못하되 보시하는 물품만 깨끗하며, 어떤 보시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다 깨끗한 것 등이다.
또 네 가지로 태어남[四生]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태로 나는 것[胎生], 알로 나는 것[卵生], 습기로 나는 것[濕生], 변화하여 나는 것[化生] 등이다.
또 네 가지 모태에 들고 나는 일[四母胎事]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모태에 드는 것, 모태에 머무는 것, 모태에서 나오는 일을 분명히 아는 것을
제일모태사(第一母胎事)라 한다. 혹은 모태에 드는 것, 모태에 머무르는 것은 알되 모태에서 나오는 것은 알지 못하니, 이것을 제이모태사(第二母胎事)라 한다. 혹은 모태에 드는 것은 알지만 모태에 머무르고 나오는 것은 알지 못하니, 이것을 제삼모태사(第三母胎事)라 한다. 혹은 모태에 드는 것, 머무르는 것, 나오는 것을 다 알지 못하니, 이것을 제사모태사(第四母胎事)라 한다. 이것이 네 가지 모태의 일이다.
또 네 가지 식에 머묾[四識住]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색(色)에서 나고 색을 반연하여 색에 머물러서 기뻐함이 크게 증장하니 이것을 식의 머물 데라 하며, 수(受)에서 나고 수를 반연하여 수에 머물러서 기뻐함이 크게 증장하니 이것을 식의 머물 데라 하며, 상(想)에서 나고 상을 반연하여 상에 머물러서 기뻐함이 크게 증장하니 이것을 식의 머물 데라 하며, 행(行)에서 나고 행을 반연하여 행에 머물러서 기뻐함이 크게 증장하니 이것을 식의 머물 데라 한다. 이런 것을 네 가지 식의 머묾이라 한다.
또 네 가지 법구[四法句]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신통(神通)의 법구, 성냄을 여읜 법구, 평등한 법구, 평등 삼마지의 법구 등이다.
또 네 가지 사마나낭법(娑摩那囊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일 지금은 즐거움을 누리는데 나중에는 고통을 받게 되기도 하며, 현재도 고통을 받고 나중에도 괴로움을 받으며, 현재는 괴롭지만 다음에는 즐겁게 되기도 하며, 현재에 즐거움을 받고 또 다음에도 즐거움을 받기도 한다. 이것을 네 가지 사마나낭법이라 한다.
또 네 가지 향[四向]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인(忍)이 없는 것과 인(忍)과 조복(調伏)과 적정(寂靜) 등이다. 또 네 가지 신통한 길[四神通道]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고통을 더디게 감득하는 신통,
고통을 빨리 감득하는 신통, 즐거움을 더디게 감득하는 신통, 즐거움을 빨리 감득하는 신통 등이다.
또 네 가지 예류의 몸[四預流身]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예류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사문ㆍ바라문ㆍ천상ㆍ인간ㆍ마군ㆍ범천 등을 헐뜯지 아니하고 세상 법을 안다. 어떤 예류는 마음이 깨끗해서 불법을 증득하고 바른 견해와 바른 행동으로 자기가 닦을 법을 분명히 안다. 어떤 예류는 마음에 기쁨이 생겨 재가(在家)한 이와 출가한 이로서 깨끗한 계행을 지니는 이를 보면 마음으로 존경한다. 어떤 예류는 스스로 깨끗한 계행을 닦아 구족히 하여 무너지지 않게 하고, 지혜가 밝고 날카로우며 모습이 좋으며 고요하고 침착하다. 이러한 것 등을 네 가지 예류의 몸이라고 한다.
또 사문이 정진하여 얻은 결과를 네 가지로 나누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 등이다. 또 네 가지 취착[四取]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애욕의 취착[欲取]ㆍ견해의 취착[見取]ㆍ계금의 취착[戒禁取]ㆍ자기 말의 취착[我語取] 등이다.
또 네 가지 삼마지[四三摩地]의 생각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법을 보고 즐거운 행을 얻어 고요한 경계로 옮아가는 것이 삼마지의 생각이며, 지견이 생기어 고요한 경계로 옮아가는 것이 삼마지의 생각이며, 지혜로 분별하는 힘이 있어서 고요한 경계로 옮겨가는 것이 삼마지의 생각이며, 몸으로 번뇌가 다함을 얻어 고요한 경계로 들어가는 것이 삼마지의 생각이다.
또 네 가지 힘[四力]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지혜의 힘, 정진의 힘, 걸림이 없는 힘, 포섭하여 받아들이는 힘[攝力] 등이다. 또 네 가지 보특가라[四補特伽羅]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보특가라는,
내가 능히 수행하고 내가 계를 지니며 내가 법답게 하지마는 다른 이는 수행할 수 없고, 다른 이는 계율을 지니지 못하며, 다른 이는 법답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다른 이는 능히 수행하고 다른 이는 계율을 지니며, 다른 이는 법답게 하지마는 나는 수행하지 못하며, 나는 계율을 지니지 못하며, 나는 법답게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나도 능히 수행하고 남도 또한 수행하며, 나도 계율을 지니고 남도 또한 계율을 지니며, 나도 법답게 하고 남도 또한 법답게 한다고 한다. 어떤 보특가라는, 나도 수행하지 못하고 남도 수행하지 못하며, 나도 계율을 지니지 못하고 남도 계율을 지니지 못하며, 나도 법답게 하지 못하고 다른 이도 법답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을 네 가지 보특가라라고 한다.
또 네 가지 대중과 같이하는 일[四隨衆事]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대중과 함께 거처하며, 대중과 함께 먹으며, 대중과 함께 참회하고, 대중과 같이 수용(受用)하는 것 등이다. 또 네 가지 큰 수레바퀴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미묘한 법을 잘 연설하고 바른 스승과 친구에 의지하며 원하는 마음이 평등하고 닦는 것은 지혜의 행을 먼저 하는 것 등이다.
또 네 가지 포섭하는 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시, 사랑스러운 말, 이롭게 하는 행위, 일을 함께하는 행위 등이다. 또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해[四無礙解]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치에 걸림이 없는 지해, 법에 걸림이 없는 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지해, 변재가 걸림이 없는 지해 등이다. 또 네 가지 번뇌[四煩惱]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의 번뇌, 유(有)의 번뇌, 견(見)의 번뇌, 무명(無明)의 번뇌 등이다.

또 네 가지 행[四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욕(欲)의 행, 유(有)의 행, 견(見)의 행, 무명(無明)의 행 등이다. 또 네 가지 모임[四身聚]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무명의 모임[無明身聚], 진심의 모임[瞋身聚], 계금취[戒禁取身]의 모임, 일체착신의 모임[一切着身聚] 등이다.
또 네 가지 애착[四愛]이 생기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비구는 의복으로 인하여 애착심을 내며, 애착심이 일어나므로 곧 취착심[取着]을 내게 된다. 어떤 비구는 음식으로 인하여 애착심을 내며, 애착심이 일어나므로 곧 취착심을 낸다. 어떤 비구는 앉고 눕는 도구로 인하여 애착심을 내며, 애착심이 일어나므로 곧 취착심을 낸다. 어떤 비구는 온갖 수용(受用)으로 인하여 애착심을 내며, 애착심이 일어나므로 곧 취착심을 내나니, 이것이 네 가지의 애착이 생김이다.
또 네 가지 먹는 것[四食]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떤 음식물을 직접 먹는 것[段食], 음식물을 접촉하는 것만으로 먹음이 되는 것[觸食], 생각하는 것만으로 먹음이 되는 것[思食], 식으로 먹음을 삼는 것[識食] 등이다.
또 네 가지 방호하지 않는 것[四不護]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부처님께서는 신업(身業)을 방호하지 않으시고도 몸이 저절로 온갖 허물을 여의고, 부처님께서는 어업(語業)을 방호하지 않으시고도 말씀이 온갖 허물을 여의며, 부처님께서는 의업(意業)을 삼가지 않으시고도 마음의 온갖 허물을 여의고, 부처님께서는 수명을 방호하지 않으시고도 수명이 손감됨이 없는 것 등이다.
또 네 가지 뒤바뀐 것[四顚倒]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무상한 것을 항상한 것이라 하고, 그러므로 생각이 잘못되고 마음이 그릇되며 소견이 거꾸로 되는 것이다.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 하니, 그러므로 생각이 잘못 되고 마음이 그릇되며 소견이 거꾸로 되는 것이다.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 하니,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과 보는 것이 잘못된다. 나라고 고집할 것이 없는 것을 나라고 여기나니,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과 보는 것 등이 잘못된다. 깨끗하지 못한 것을 깨끗하다고 고집하니,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과 보는 것 등이 잘못된다. 이러한 것을 네 가지 뒤바뀐 것이라 한다.

또 네 가지 나쁜 말이란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거짓말, 비단결처럼 꾸며대는 부질없는 말[綺語], 이간질하는 말, 악한 말 등이다. 또 네 가지 좋은 말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진실한 말, 내용이 바르고 충실한 말[質直語], 이간하지 않는 말, 법다운 말[依法語] 등이다.
또 네 가지 거짓 말[非阿曳囉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못 본 것을 보았다 하며, 듣지 못한 것을 들었다 하며, 잊어버린 것을 기억한다 하며,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거짓말 등이다.
또 네 가지 바른 말[阿曳囉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실지로 본 것만을 보았다고 말하며, 실지로 들은 것만을 들었다고 말하며, 잊지 않은 것을 기억한다고 말하며, 실지로 아는 것만을 안다고 하는 말 등이다.
또 네 가지 기론[四記]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일향기론(一向記論)ㆍ분별기론(分別記論)ㆍ반문기론(返問記論)ㆍ묵연기론(黙然記論) 등이다.
이러한 법들을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이치에 맞게 말씀을 하셔서 중생들로 하여금 말씀과 같이 닦아 익혀 온갖 범행을 행하게 함으로써 천상ㆍ인간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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