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가섭금계경(佛說迦葉禁戒經)
불설가섭금계경(佛說迦葉禁戒經)
송(宋)나라 저거경성(沮渠京聲) 한역
윤옥선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때마침 대비구 1,250인과 보살 만 2천 인이 함께 있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대가섭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에게 두 가지 일이 있으면 몸이 지옥 가운데 떨어진다. 첫째는 이것은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람에게 구하여 공양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외도(外道)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요, 둘째는 의복과 이불, 가사와 발우를 많이 쌓아 두고자 하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재가인과 깊이 친한 것이요, 둘째는 계를 지키기를 좋아하는 사문을 보면 도리어 질투하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면 끓는 물 가마 속에 떨어지니, 첫째는 항상 애욕(愛欲)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벗과 서로 사귀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자기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수긍하고 뉘우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도리어 다른 사람의 악을 생각하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면 마땅히 니리(泥犁:지옥) 가운데 떨어지니, 첫째는 경전의 가르침을 비방하는 것이요, 둘째는 경전의 계율을 무너뜨리고 손상시키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도읍에서 계를 범하는 것이요, 둘째는 법 가운데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면 뉘우쳐야 하니, 첫째는 억지로 법의와 가사를 벗기는 것이요, 둘째는 몸으로 계를 지키지 아니하고 계를 지키는 사문을 받들어 모시지 않는 것이다. 비구에게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면 실로 고치기 어려우니, 첫째는 마음이 삿되고 어지러운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이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사문은 무슨 까닭에 사문이라고 하는가? 사문이 되는 데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으니, 첫째는 모습과 옷의 모양이 사문과 유사한 것이요, 둘째는 겉은 사문 같으나 속은 아첨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요, 셋째는 다만 명예를 받들어 모시고 자신이 공고(貢高:스스로를 높임)하기를 구하고 찾는 것이요, 넷째는 계를 행하고 범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짜 사문이니라.
어떤 것이 모습과 옷만 사문 같은 것인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응기(應器:발우)를 가지나 마음이 스스로 바르지 않아 다만 악을 짓고자 하고 사도(邪道) 배우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겉의 옷 모양만 사문과 유사한 것이다. 속으로 아첨하는 것은, 평온하게 다녀서 천천히 나오고 천천히 들어가며, 겉으로는 옷과 먹을 것이 거칠고 나쁜 것을 취하지만 속으로는 달고 맛난 것을 바라며, 겉으로는 산간에 풀로 오두막을 짓고 살지만 속으로는 신의(信意)가 없으며, 스스로 너그럽다 평가하지만 속으로는 충직함을 질시하며, 인연을 따라서 재물을 많이 구하여 그의 이름이 받들어짐을 이루니, 이것이 바로 아첨하여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계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하게만 하려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첨을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하게 하여 스스로 엄중히 경책해 생사의 바다를 벗어날 것을 취구(趣求)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첨하는 태도만 있으니, 이것이 바로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참된 사문인가? 계를 지키고 도를 행함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몸뚱이를 버리며 만물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공양을 구하지 않는다. 비구가 공행(空行)1)을 지키면 항상 정법(淨法)을 관(觀)하여 본래 티끌도 더러움도 없으며 스스로 혜행(慧行)을 지어서 다른 사람이 얻은 것을 따르지 않으며 불법(佛法) 가운데서 열반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참된 사문이니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 참된 사문에 해당되어야 할 것이니, 이름만 받드는 사문이나 아첨하는 사문은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가난한 사람이 이름을 ‘큰 부자’라고 칭한다면 다만 부자라는 이름만 있고 안으로는 가진 게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물으셨다.
“이 사람에게 마땅함이 있느냐, 없느냐?”
가섭이 대답했다.
“마땅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비록 사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문의 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마치 가난한 사람이 큰 부자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표류하면서도 도리어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은 것과 같아서, 사문이 비록 불경을 소리 높여 많이 외우고 훌륭한 재주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정욕(情欲)을 버리지 않으면 이 정욕 때문에 주리고 목말라 죽을 지경이 되니, 앉아서 지옥과 금수(禽獸)와 벽려(薜荔:아귀) 가운데 들어가리라. 비유하자면 현명한 의사가 한 그릇에 약을 가득 채운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병을 낫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비록 경을 많이 외운다 하더라도 계를 지키지 않으면, 비유하자면 마니주(摩尼珠)가 깨끗하지 않은 곳에 떨어진 것과 같으니, 비록 경을 많이 외운다 하더라도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와 같다. 비유하자면 죽은 사람이 금이나 은이나 진귀한 보물을 붙이고 있는 것과 같아서 몸으로 계를 지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사를 입어 모양만 사문과 비슷한 것도 이와 같다. 비유하자면 장자(長者)의 아들이 옷을 아름답게 꾸미고 좋은 새옷을 입었으나 겉만 깨끗한 것과 같으니, 경을 많이 외우나 계를 지키지 않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모습의 계를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어떤 비구가 금계(禁戒)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는 범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비록 이 말을 할 만하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드러내어 착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는 만약 어떤 비구가 깊은 경전의 뜻을 모두 알고 행을 쌓아서 스스로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만약 비구가 많이 쌓고서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쌓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항상 평등심(平等心)으로 행한다’ 하고는 생사(生死)에 집착하고 두려워한다면 이것은 사문이 스스로 칭찬하기 위하여 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금계는 형체가 없어서 삼계(三界)에 드러나지 않으며 항상되지도 않고,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명(命)도 없고 의(意)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부를 것도 없으며, 교화도 없고 교화하는 사람도 없으며, 따라서 온 것도 없고 따라서 갈 것도 없으며, 형체가 없으니 없어질 것도 없으며, 몸이 없으니 범할 것도 없으며, 입이 없으니 범할 것도 없으며, 마음이 없으니 범할 것도 없으며, 세간(世間)이 없으니 꾀할 것도 없으며, 세간의 일[事]이 없으니 머무를 것도 없고, 또한 계도 없고 생각할 바도 없으며, 또한 무너져 부서짐도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금계’라 하느니라.”
이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금계에는 흠이나 더러움이 없고 또한 집착할 바도 없으니, 계라는 것은 모든 성냄이 없고 편안하게 좌정(坐定)하여 세간의 도(道)를 헤아릴 수 있으니, 이와 같은 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니라. 몸뚱이를 아끼지 아니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또한 5도(道)를 즐거워하지 않아서 모두 깨달아 불도(佛道) 가운데 들어가니,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니라. 또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가장자리에 있지도 않으며, 고착되어 있지 않고 또한 굴러다니지도 않으며, 비유하자면 허공 중에 바람과 같으니,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종인(種人)은 없으나 정심(定心)은 있으며, 또한 집착할 바도 없고 나[我]도 없다고 하느니라.
하늘과 사람의 모습이 되어서 이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깨끗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되느니라. 금계를 바꾸지 않고 스스로 잘난 체하지도 않으며 항상 도를 지키고 계를 지키고자 해야 하니, 이와 같아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허물이 없는 이러한 사람은 공(空)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를 따라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세간의 어두운 곳으로부터 환하고 밝은 데로 들어가며, 머물러 서지 않으며 또한 삼계에도 없으니, 이것이 계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계법을 설명하시니, 3만 3천의 여러 하늘과 백성이 모두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고, 8백 명의 사문이 이 인연을 따라 뜻을 이해하여 득도(得度)하니, 행(行)과 지(智)와 혜(慧)가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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