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9권
불본행집경 제19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23.차닉등환품 ②
그때 마하파사파제와 구다미는 이미 태자의 머리에 꽂는 구슬이며 일산ㆍ차는 칼ㆍ마니보배로 장엄한 총채와 그 밖의 영락과 말 건척과 차닉을 보았다. 이런 것을 보자 크게 놀랍고 두려워 두 손을 각각 들어 몸을 치고 두드리며 근심스럽게 차닉에게 물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 실달다를 어디 두고 너만 홀로 돌아왔느냐?”
차닉은 아뢰었다.
“황후마마여, 실달태자께옵서는 5욕을 버리고 도를 구하고자 출가하여 산에 들어가, 멀리 친족을 여의고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고 골똘히 깊이 생각하며 고행하시나이다.”그때 마하파사파제는 차닉에게 이런 말을 듣자 마치 암소가 송아지를 잃고 슬픔을 참지 못해 울부짖듯, 두 손을 들어 저으며 마음이 놀라 찢어지는 듯 부르짖었다.
“아아 내 아들아, 아아 내 아들아!”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문득 기절하여 몸이 땅에 넘어져 흙 가운데 뒹굴었다. 고기가 물에서 육지에 나와 팔딱거리고 괴로워하듯, 마하파사파제도 그러하여 땅에 뒹굴고 흐느끼면서 차닉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 내 몸에 허물이 없고, 마음과 입에 실수 없이 너를 거두었는데 너는 지금 무슨 까닭에 내 아들을 데려다 나무 토막 버리듯 빈 벌판에 던져 버렸느냐? 너는 내 아들을 데려다가 온갖 악충(惡虫)과 짐승들의 공포가 있는 숲 속에 홀로 버려두고 왔으니,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몸으로 배반하였느냐?”차닉은 대답했다.
“왕후마마여, 종의 몸으로 어찌 감히 태자님을 버리겠습니까? 태자께서 이 종을 버리셨습니다. 태자님께서는 저에게 말 건척과 모든 영락을 주시고 속히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왕후마마께서 걱정하실까 두려워, 근심없이 편안하게 해드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궁중의 모든 채녀들도 각각 울며 외쳤다.
‘아아, 아버지여’하기도 하고 혹은 ‘아아, 형제여’, ‘아아, 마마시여’, ‘아아, 우리 낭군이여’라고도 하며, 사랑과 고통에서 나오는 갖가지 말로 애욕이 근본이 되어 부르짖고 몸을 괴롭혔다. 어떤 채녀는 눈을 굴리며 울고 어떤 채녀는 서로 보고 울며, 어떤 채녀는 몸을 돌리고 울고 어떤 채녀는 머리를 들고 울며, 혹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울고 두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울며, 혹은 두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고 울고 두 팔로 팔짱을 끼고 울며, 혹은 두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울고 혹은 재와 흙을 머리에 뿌리고 울며, 혹은 머리털을 풀어 헤쳐 얼굴을 가리우고 울고 어떤 이는 귀밑털을 빼고 머리를 숙이고 울며, 혹은 두 손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고 어떤 채녀들은 슬픔과 괴로움에 동서남북으로 이리저리 쫓아가기도 하여 마치 사슴이 독한 살을 맞은 것 같았다. 어떤 채녀는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르짖고 울고 어떤 채녀는 온몸을 덜덜 떨어 마치 바람이 파초잎에 불듯 숙였다 쳐들었다 하고 울며, 어떤 이는 땅에 넘어져 기절했다가 조금 남은 목숨으로 겨우 소리를 내어 울며, 어떤 채녀는 고기가 물에서 나와 뭍에 던져지듯 뒹굴고 누워 겨우 숨만 헐떡거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가느다란 목숨으로 흑흑 느껴 울며, 어떤 채녀는 마치 나무가 뽑혀져 넘어지듯 땅에 넘어져 뒹굴며 울어서 갖가지 고뇌로 이렇게 몸을 핍박하여 태자를 부르고 울었다.이때 차닉과 말 건척과 한량없는 채녀들이 통곡하고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었다.
마하파사파제도 눈물을 흘리고 울다가 기절하여 얼마 뒤에 깨어나자 곧 태자를 부르고 큰소리로 울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내 아들아, 아아 내 아들아, 네 몸은 본래 온갖 향으로 문지르고 바르고 씻고 닦아 위신(威神)과 큰 덕으로 장엄했었는데, 이제 어째서 산골에 있으면서 온갖 모기와 등에와 자질구레한 독벌레들에게 네 몸을 쏘이고 빨리며, 이런 괴로움을 어찌 참고 빈 벌판에 머물겠느냐? 아아 내 아들아, 네 몸에는 항상 향기 쏘인 가시가 옷이 덮였었는데 이제 어떻게 굵고 껄끄럽고 냄새나는 옷을 차마 몸에 걸치겠느냐? 아아 내 아들아, 네가 집에 있을 때는 청정하고 묘하고 향기로운 백 가지 맛으로 만든 갖가지 고깃국과 깨끗하고 흰밥을 먹었고, 그 밖에 추악하고 잡된 것은 입에 대지도 않았었는데 이제 어찌 거칠고 떫고 차고 싱거운 음식, 밥, 빵, 보리떡, 장물 같은 것을 차마 먹으며 맨밥이 목에 내려가느냐? 아아 슬프다. 내 아들아, 궁 안에 있을 때는 매끄러운 침상에 부드러운 담요나 하늘 옷을 덮었으며 혹은 양 옆에 기대는 베개를 놓고 눕고 기대며 마음대로 했는데, 지금 맨 땅 위나 가시밭 억센 풀 위에서 어떻게 누워 잔단 말이냐?아아 슬프다. 내 아들아, 집에 있을 때는 노비도 있고 좌우에 시위하는 사람도 있어 항상 받들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몸을 의지하거나 무릎을 꿇거나 서서 네 얼굴을 향하여 모자람 없이 섬겼는데, 지금은 심술궂은 사람이며 빈궁한 사람이며 혹은 초췌한 것들이 너에게 자비가 없으리니, 너는 어찌 그것을 보며 그 비위를 맞추겠느냐? 아아 슬프다. 내 아들아, 집 안에 있을 때는 꽃답고 아름다우며 단정한 채녀들이 무리를 지어 좌우에서 에워싸고 쾌락을 누렸는데, 너는 지금 어째서 황량한 산에서 들짐승들처럼 항상 공포 가운데 홀로 앉고 홀로 다니며 마음이 즐겁단 말이냐?
아아 슬프다. 내 아들아, 좋은 그물 무늬가 덮인 곧고 긴 다리와 부드러운 손가락과 발뒤꿈치ㆍ복사뼈ㆍ종아리들이 마치 사슴과 같고, 손바닥이 부드러워 연잎과 같고 두 바퀴의 장엄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지금 너는 어찌하여 이런 발로 버선도 없이 땅을 밟으며 가시밭이나 자갈밭이나 혹은 얼음판이나 혹은 불꽃같은 더운 흙과 티끌을 참고 이리 저리 밟고 다닌단 말이냐?”마하파사파제는 이런 한량없는 말로 태자를 부르고 울고 나서 마음이 점점 회생하여 제 정신이 들자 땅에서 일어나 차닉에게 물었다.
“차닉아, 일이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 내 아들 실달이 길을 갈 때 너에게 무슨 부탁을 하더냐? 차닉아, 부드럽고 푸르고 검붉은 내 아들의 머리털을 누가 깎았단 말이냐? 차닉아, 그래 내 아들의 머리털은 지금 어디 있단 말이냐?”차닉은 대답했다.
“왕후마마여, 태자 실달께서 소인에게 위촉해 말씀했습니다.
‘차닉아, 네가 집에 가거든 나를 위하여 정중히 우리 어머니 마하파사파제 왕후마마에게 두 번 절하고 문안하고 나서 이렇게 여쭈어라. 어머님은 바라옵건대 크게 근심하지 마시고 저를 생각하지 마소서. 저는 오래지 않아 마음에 소원을 이루고 곧 돌아가 어머님을 받들어 뵈옵겠습니다’라고. 그리고 태자님은 손수 칼을 빼서 왼손에 상투를 쥐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끊어 허공에 던지자 모든 천왕들이 받들어 가졌으니 장차 천궁으로 돌아가 공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하파사파제 왕비는 차닉에게 이 말을 듣고 다시 통곡했다.
“태자의 머리 상투를, 아아 내 아들의 머리털은 매우 길고 부드러우며 소라 상투는 매우 단정하여 낱낱 털이 털마다 바로 돌았으되 어지럽지 않고 끊어짐도 없었다. 왕관을 쓰고 왕위를 받을 것인데 너는 이제 어찌 그렇게 끊어 버렸단 말이냐? 아아 슬프다. 내 아들의 두 팔은 매우 길고 걸음걸이도 편안하고 절도가 있어 사자왕 같고 두 눈이 원만하여 우왕(牛王)과 같으며 몸은 황금빛이요, 가슴과 어깨가 넓고 크며 목소리가 은은하여 북소리 같고 우렛소리 같았는데 이런 사람이 어찌 출가하여 산야에 있단 말이냐? 이제 우리 이 땅은 복상(福相)이 없도다. 이러한 사람은 법행을 행하련마는 이 땅이 거꾸러지면 다시 일어나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으리라. 내 원하노니 일체 유덕한 사람으로 모든 공덕을 갖춘 법왕이 세상에 출현하여 모든 중생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소서.”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반드시 이 땅에 복이 없다면
지혜 있는 이 사람을 내지 않았으리라.
이미 이런 공덕의 몸을 나투었으니
이 세상을 위하여 성주(聖主)가 되시라.
그때 야수다라는 대성통곡을 하고 성을 냈다가, 욕을 했다가 하면서 여러 가지 말로 차닉을 꾸짖고 이렇게 말했다.
“차닉아, 나는 젊은 부녀자의 몸으로 밤중에 깊은 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했지만 너는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거룩한 지아비를 데려다가 어디에 두었단 말이냐? 차닉아, 여기서 얼마나 되느냐? 우리 성주(聖主) 착한 대장부께서 너와 말과 셋이 함께 갔는데 차닉과 건척 둘만이 내 앞에 왔고,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성주는 보지 못하니 이런 까닭에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떨린다.
차닉아, 너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구나. 차닉아, 내 이제 말하거니와 가령 혹독하고 포악하고 극히 미워하는 원수라도 이렇게까지는 손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너는 오늘 이렇게 나를 밟아버린단 말이냐? 차닉아, 너는 내가 의지하는 사람이다. 응당 나를 보호하고 나를 봉양해야 할 것인데, 너는 지금 어째서 내가 밤중에 정신없이 자는 것을 보고 가만히 우리 성주를 훔쳐 가지고 어느 곳에 두었단 말이냐.
차닉아, 너는 이제 가장 큰 원수가 하는 일을 끝냈으면서 어찌 괴로워하고 우느냐. 얼굴을 닦아라. 어찌 억지로 슬퍼하여 헛눈물을 짜느냐?
차닉아, 너는 착하지 못한 일을 이제 다 끝냈으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차닉아, 너는 나의 거룩한 남편의 착한 벗이므로 출입을 통제하여 갈 만하면 가게 하고 그렇지 못하면 막을 일인데 ,이제 도리어 우리 성주를 마음대로 가게 하였단 말이냐! 차닉아, 너를 이제 무엇에 쓴단 말이냐. 너는 착하지 못한 일을 했으니 응당 크게 기뻐하라. 나는 네가 지금 큰 과보와 큰 보리를 얻은 줄을 알았다.차닉아, 무릇 세간 사람은 차라리 지혜로운 이와 원수가 될지언정 어리석고 미련한 자와 벗이 되지 않는 법이다. 차닉아, 너는 비록 내 남편의 벗이 되었지만 네가 한 일을 일찍 생각지 못했구나. 무슨 까닭이냐. 차닉아, 너는 우리집에 이롭지 못한 일을 했으니 너에게 큰 경사와 행복이 생기겠구나. 차닉아, 이 모든 궁전의 드높은 장엄이 마치 구름더미 같고 또 갖가지 영락으로 가득 차고 재물과 보배가 충만하지만 이젠 너 때문에 모두가 공허하구나.”
그리고 차닉을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사람은 지혜있는 이와 원수가 되더라도
어리석은 자와는 벗이 되지 않는 법.
너는 일을 하면서 생각하고 살피지 못해서
나의 집안이 모두 고뇌로 들끓게 했구나.
야수다라는 이 게송을 읊고 나서 거듭 차닉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닉아, 지금 어찌 내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겠는가? 지난날 나의 남편과 상대할 때는 오늘의 이 모든 채녀들은 몸이 눈같이 희고 입술이 주홍같이 붉어 어여쁘기 짝이 없고 단정하기 제일이었다. 몸에 영락을 풀고 묘한 의상을 벗고 함께 모든 욕락을 누렸는데 하루아침에 외로운 과부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주인이 없는 까닭에 흐르는 물같이 밤낮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불고 한다. 차닉아, 또 이 건척도 나에게는 오래도록 항상 원수를 짓고, 이익이 되지 못하리라. 내가 밤중에 아무 것도 모르고 자는 것을 보고 내 마음에 사랑하는 주인을 업고 성에서 나갔으니 이 말이 한 짓은 매우 착하지 못한데 어째서 지금 내 앞에서 고통스레 울어 그 소리가 왕궁 안에 가득 차게 하느냐? 먼저 우리 성자를 태우고 나갈 때 이 착하지 않은 말이 어째서 묵묵히 기운을 죽이고 갔던가? 만약 처음 나갈 때 이렇게 울었다면 그때 그 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잠이 깨었을 것이며 나도 이렇게 큰 고통을 맛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착하지 못한 말은 가령 활을 쏘아 몸에 구멍을 뚫거나 혹은 지팡이로 때려죽이더라도, 떠나서 산 숲을 향해 나가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니 이 말은 우리집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의 회초리가 두려워 내 사랑하는 가장 거룩한 남편을 산 숲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 지금 우리 궁전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전각이나 방실(房室)이나 마을ㆍ성황ㆍ나라ㆍ서울ㆍ거리ㆍ누각의 창문ㆍ성문의 난간ㆍ굽은 난간과 반달 모양의 전각 등 가장 미묘하고 가장 화려한 것들이 모두 텅 비고 말았다. 이 악한 말 건척 때문에 우리 왕실의 규방은 마치 쓸쓸한 들판과 같아서 눈을 들어 땅을 씻어 봐도 탐나는 것이 없구나.”야수다라는 이런 온갖 쓰라리고 슬프고 애끊는 말을 하면서 잠깐이라도 번민을 멈출 수 없었다. 차닉은 야수다라의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머리를 숙이고 숨을 죽이고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성자의 비 야수다라에게 대답했다.
“왕비마마여, 건척을 꾸짖지 마소서. 또 소인도 꾸짖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소인은 허물이 없습니다. 소인과 건척은 참으로 죄과가 없습니다. 태자께서 처음 나가시려던 밤에 소인은 여러 가지로 방해를 했으니, 즉 크게 소리쳤습니다. 소인은 그때 큰소리로 마마를 부르면서 갖가지 말을 했습니다.
‘대비여, 속히 일어나소서. 대비여, 속히 잠을 깨소서. 오늘 밤 이 궁에는 대비의 사랑하는 태자께서 나와 건척을 데리고 나가시려 하옵니다.’”
그때 손에 머리털을 쥐고 낱낱이 야수다라에게 보이면서
“이 머리털은 그때 소인이 아무 채녀에게서 뽑은 것이요, 이것은 갑 채녀의 머리털이요 이것은 을 채녀의 머리털입니다.”
각각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그들은 그때 몰랐으며 다른 채녀들도 모두 다 그러했습니다. 이 건척도 태자님이 가시려 하자 막아서며 천여 번이나 소리를 내어 울었으며, 발꿈치로 땅을 구르고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또 턱짓을 하며 코를 벌름거리고 흐르렁거렸습니다. 이 말이 울 때 그 소리는 반 유순에 들리고 발굽소리는 1구로사에 들렸습니다. 소인도 그때 마마의 사랑하는 남편이 오늘밤에 간다고 소리쳤습니다. 마마와 그 밖의 채녀들은 모두 이런 소리들을 듣지 못했습니다. 또 모든 천왕들의 신통력으로 그 소리를 감추어 듣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대비여, 굽어살피소서. 소인과 건척은 참으로 감히 태자님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헤아려 주소서. 마마의 성주(태자)께서 소인의 말을 듣겠습니까? 성자께서 소인의 말을 따라 행하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저는 아직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합장하고 머리 숙여 다시 아뢰옵나니
마마께서는 정말 이 말을 꾸짖지 마시고
또 저에게도 성을 내지 마시옵소서.
“대비여, 소인도 일찍부터 일체 좌우 시종들은 조심하여 태자를 수호하라는 정반대왕의 엄한 칙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인도 비록 먼저 이런 명을 알았으나 다만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하늘들의 힘이 강하여 소인의 마음과 뜻을 혼미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성자께서 행하는 일에는 모든 천신들이 신통력으로 출가하라고 외쳤습니다.그때 마음으로 생각하시자 성문도 절로 열렸습니다. 저 모든 궁문에는 본래 각각 수천의 무리들이 방심하지 않고 지켰으나 그들도 다 곤한 잠에 취해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자께서 처음 궁문을 나가실 때는 해가 처음 돋을 때처럼 큰 광명을 놓아 모든 어둠을 깨었습니다. 소인은 그때 이 모두가 하늘이 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대비여, 성자께서 성에서 나가 길을 가실 적에 소인이 앞에서 걸어갔지만 몸이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대비여, 이 건척도 길을 갈 때 마치 어떤 사람이 떠메고 가는 것처럼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소리를 낼 때도 멀리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비여, 소인은 그 때도 속으로 역시 모든 하늘이 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대비여, 그때 성자께서 법대로 사문의 물든 가사 옷을 즐기셔서 남에게 빌려 입고, 자신의 옷을 벗어 소인에게 주시고 수발을 깎아 허공에 던졌는데,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든 하늘들이 받았습니다. 소인은 그때도 속으로 모든 하늘이 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대비여, 이런 까닭에 저희들에게 미움이나 원한을 내실 것이 아닙니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성자께서 출가하심은 소인 때문도 아니요 말과도 관계가 없습니다.”그때 태자비 야수다라는 땅 위에 누워 잠깐 생각하다가 갖가지 말로 슬피 울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슬프다. 내 주인이여, 어째서 지금 나도 법대로 행하여 남편에게 효순했는데 나를 버리고 갔단 말인가. 그를 의지해 법행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그는 정법이 없으니 그는 법행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오.아아 나의 주인이여, 듣지 못했나이까? 지난 옛날 모든 왕들은 산 숲에 가서 법을 구하려 할 때, 처자를 데리고 함께 갔으나 성도(聖道)를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아 슬프다. 나의 주인이여, 어찌 이런 법이 있음을 알지 못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은 오히려 부인과 같이 머리를 깎고 출가 수도하며 정진 고행하였고, 좋은 말을 가지고 모든 하늘에 제사하며 무차회를 베풀어 미래세에 두 사람이 함께 가장 묘한 과보를 받지 않았습니까?
만약 위타론의 설법을 알면 어째서 지금 유독 내 곁에서만 법행을 아끼고 함께 법을 행하지 않는가? 아아, 헛되이 가서 한갖 사람 가운데 산단 말인가?
만약 세간에 부인과 은애의 정이 있음을 안다면 어찌 버린단 말이오. 저 33천에 나서 옥녀(玉女)를 탐하려 하시오? 내 생각에는 이런 일을 볼 때 그 하늘의 옥녀들은 무슨 탐낼 것이 있으며 무슨 단정함과 무슨 5욕의 쾌락이 있겠소. 만약 그런 쾌락을 탐내지 않는다면 이 왕위의 위신 공덕이며 우리들 모든 채녀를 버리고 출가하여 쓸쓸한 산 숲에 들어가 고행을 한단 말이오. 나는 지금 천상의 과보를 취하지도 않으며 하늘 옥녀의 몸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내 마음은 만족할 줄 알고 나는 이런 힘이 있고 나는 여기 있으며 하늘에 나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고행을 닦기가 소원입니다. 인간에 있든지 천상에 있든지 오직 당신 같은 남편을 법답게 섬기기가 소원입니다. 그의 마음은 결정코 이렇듯 강인하게 우리들을 버리고 빈 산의 한가하고 고요한 숲에 들어갔으니 내 마음도 그러합니다. 견고하여 구르지 않음은 반석과 다름이 없어 가장 굳고 가장 실합니다. 내 지금 남편 없는 여자라 주인이 집에서 나가 산 숲에 간 것을 보았으며, 나로 하여금 외로이 홀로 빈집에 있게 하니 어찌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나는 이제 몸과 마음이 매우 억세어
쇠나 돌과 다름이 없노라.
주인이 산에 들어가고 궁실은 비었으니
어찌하여 내 마음 깨어지지 않으랴.
그때 야수다라는 이 일로 태자를 위해 절절히 고뇌하다가 마음이 혼미해져 문득 땅에 쓰러졌다가 겨우 도로 깨어났다. 어떤 때는 소리를 내어 슬피 울고, 어떤 때는 아무 말 없이 앉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며, 어떤 때는 문득 놀라 미친 듯한 말과 실없는 말을 했다.
“내 남편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나의 거룩한 남편은 지금 어느 곳에 있길래 나 홀로 궁안에 외로이 있게 하고, 나를 버리고 나를 등지고 갔는가? 나는 오늘부터 성자를 찾지 못하면 본 자리에 눕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향탕으로 목욕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이 몸을 꾸미지 않을 것이며, 매만지고 닦지도 않고 연지분을 바르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여러 가지 빛깔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여러 가지 영락을 걸치지 않으며 향과 꽃을, 몸에 풍기거나 차지 않으며 맛좋은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요, 맛있는 국이나 일체 술도 마시지 않을 것이며, 항상 좋은 음식을 먹었으나 이젠 다시 먹지 않을 것이다. 머리카락도 다시는 장식하지 않을 것이며 집에 있더라도 항상 산 숲만 생각하여 고행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높고 훌륭한 장부를 보지 못하니 나에게는 모든 동산 숲과 샘물과 못과 전당이 모두 티끌과 흙이 차서 마치 광야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비라성에는 성자가 없기 때문에 어느 궁전, 어느 누각이나 모두 정기와 빛이 없어 마치 자갈 무더기와 같다.”
이렇듯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에 스스로 바른 생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야수다라가 땅 위에 누워서 이렇게 괴로워 뒹굴며 완전히 미친 듯 중얼거릴 때, 궁 안의 모든 채녀들도 다 같은 소리로 울며불며 얼굴 가득 눈물을 흘렸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이와 같은 고뇌가 그를 괴롭힐 때
모든 채녀들과 야수다라는
각기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려
한여름에 큰비 오듯 하였네.
그때 차닉은 야수다라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아뢰었다.
“대비여, 이렇게 쓰리게 괴로워하지 마시고 너무 슬퍼 고민하지 마시고 잠깐 진정하고 성자님을 생각하지 마소서. 성자께서 출가하실 때 비록 인간에 있으나 하늘과 다름이 없었으며 위신과 기력도 하늘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성자께서 나가실 때 모든 하늘이 에워쌌는데 오른편에는 모든 범천왕과 그 권속들, 왼편에는 제석천왕과 33천의 권속들, 동쪽에는 제두뢰타ㆍ건달바왕, 남쪽에는 비루륵차ㆍ구반다왕, 서쪽에는 비루박차 및 모든 용왕들, 북쪽에는 비사문천이 모든 야차들을 거느리고 이렇게 좌우에서 에워쌌습니다. 몸에는 금강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화살을 잡거나 창을 들고 성자님 앞에서 길을 인도했으며, 혹은 뒤에서 성자님을 호위했으며 혹은 왼편에서 혹은 좌우로 따라 갔습니다. 허공 가운데는 항상 한량없는 백천만의 하늘 옥녀 무리들이 모두 온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의 온갖 꽃을 성자님 위에 뿌리고 또 뿌렸습니다. 그러나 성자께서는 하늘의 옥녀들을 보시고 내심 기뻐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았으며 사랑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았으며 잡거나 부딪치지도 않았사오니, 성자님의 정은 이렇듯 그들에게 집착이 없었나이다. 국모 대비여, 성자께서 출가하실 때 모든 하늘들이 이렇게 신통을 나타내고 모든 것으로 성자님께 공양했사오나 소인은 지금 낱낱이 갖추 말하기 어렵습니다.”이 말을 마치자 그때 제2비인 구이성녀(鸜姨聖女)는 부러져 내린 나뭇가지처럼 스스로 몸을 들지 못했다. 구이성녀는 태자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고 마음이 번민에 싸였다. 근심 걱정의 치열한 불이 타서 온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땅위에 누워 뒹굴며 크게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내 님의 마음은 항상 기뻤다. 아아, 내 님의 얼굴은 둥근 달 같았다. 아아, 내 님은 단정하기 짝이 없었다. 아아, 내 님은 가장 우수한 모든 상호가 구족하였다. 아아, 내 님은 청정한 몸이 세간에서 비길 데 없었고 뼈마디가 결함이 없이 차례로 잘 생겨 마치 황금의 상(像)과 같았다. 아아, 내 님의 공덕은 가장 뛰어났다. 아아, 내 님은 용맹스럽고 힘이 세서 나라연과 같아 어떤 원적도 그를 굴복시킨 이가 없었다. 아아, 내 님의 청정한 음성은 미묘하여 가릉빈가 같은 소리를 냈다. 아아, 내 님의 명성은 멀리까지 퍼졌다. 아아, 내 님은 백 가지로 장엄한 복덕의 모임이 천상과 인간 세상에 한가지도 비길 데 없었다.아아, 내 님의 공덕은 원만하여 보는 신선들마다 모두 기뻐했다. 아아, 내 님의 명성은 상하와 사방에 퍼져 공경하고 공양하는 모임이 지혜의 숲과 같았다. 아아, 내 님은 저 세간 가운데 입맛이 최고였다. 아아, 내 님의 입술은 빈바과일같이 붉었다. 아아, 내 님의 두 눈은 푸른 연꽃같이 짙푸른 색이었다. 아아, 내 님의 입에 난 40개의 치아는 젖과 같고 비단과 같고 눈과 같고 서리같이 희고 깨끗했다. 아아, 내 님의 코는 높고 곧아서 마치 황금으로 만든 대롱 같았다. 아아, 내 님의 미간에는 흰 털이 바르고 청정하였다. 아아, 내 님의 두 어깨는 둥글고 넓으며 허리는 가늘고 길어 마치 활통 같고 손발도 부드러웠다.
아아, 내 님은 넓적다리ㆍ종아리ㆍ팔ㆍ팔꿈치가 마치 코끼리 코 같고 손발이 반듯하며 손톱이 다 붉었다. 아아 나의 님이여, 길한 날 길한 시를 가려 이 영락을 만들었을 때 정반대왕께서 크게 기뻐하셨는데 지금 어찌 해 이별이란 말이오. 나는 이제 영락이 보기도 싫구나.”그때 구다미는 고뇌하는 마음으로 자주 두려워하고 자주 놀랐다. 마치 들사슴이 쫓기다가 포위망에 떨어져 칼이나 창이나 혹은 화살을 맞고 매우 고통스러워 동서로 달아나며 사방을 관찰해도 구호되고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구다미의 마음도 그러하여 말이 똑똑하지 않고 궁내에 있으면서 동ㆍ서ㆍ남ㆍ북으로 두루 찾아도 찾지 못하고 슬피 소리내어 울며 눈물이 온 얼굴에 흘러도 구호할 이가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성자께서 여기 계실 때는 이곳이 마치 도리천궁과 다름없이 모든 물건이 구족했으며 또한 제석천왕처럼 위덕이 드높고 광명이 치성하더니 지금은 다 잃어버렸구나. 이제 성자께서 문득 없어졌기 때문에 이 성은 시다림과 같고 산에 있는 못과 같고 쓸쓸한 벌판과 같다. 내가 이 궁전에 성자와 함께 있을 때는 비길 데 없는 낙을 누리고 큰 기쁨을 내어 싫증이 없었는데 이제 성자가 없으니 즐길 마음이 없다. 고기와 자라가 물에서 육지에 나와 있으면 잠시도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하물며 즐길 마음을 내랴. 나도 그러해서 성자가 없으니 무슨 기쁜 마음이 있으랴. 봄이 지나면 모든 꿀벌들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꽃이 없는 까닭에 숲에 애착하지 않고 나무를 탐내지 않으니 나도 이제 그렇다. 성자가 없으니 이 방 안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아아 나의 님이여, 앉고 일어나는 곳에 항상 음악소리를 내어 궁중의 채녀들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크게 노래하고 춤추었으나, 이제 이 궁전은 한 가지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문득 근심과 괴로움을 내어 마음이 기쁘지 않으니 어찌 하물며 기악이겠느냐. 아아 나의 주인이여, 몸에 미묘한 갖가지 향기로운 꽃과 영락을 달고, 바르는 향과 가루 향으로 꾸미고 때맞춰 충분히 공양을 받아 낙을 누리고 마음대로 기뻐했는데 어찌 문득 버리고 갔는가. 마치 허공에 큰 구름 떼가 일어 번개가 치고 우레가 나며 큰 우박이 쏟아지다가 문득 없어져 버리듯 성자도 그러하다.
다음에 왕위를 이어 낙을 누리면서 아무런 모자람도 없을 것인데, 내버리고 갔구나. 필시 내가 지난 옛날에 정성으로 보시하다가 다시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리라. 후회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이제 이 과보를 받는구나. 한량없이 좋은 과보를 받았다가도 문득 다시 잃어 버렸다. 후회한 업 때문에 이제 과부의 몸이 되었구나. 나는 이제 박복하여 이렇게 가장 훌륭한 사람을 잃었구나. 아아, 이 은애는 마침내 오래가지 못하고 잠깐 동안에 잃어버렸다. 마치 연극장에서 큰 환락을 지었다가 문득 도로 흩어지는 것과 같이 지금 일이 이러하다. 또 전하는 말을 듣건대, 지난 옛날 왕선(王仙)이 적정(寂靜)을 수행하며 모든 근(根)을 조복받고 선정을 증득하여 저 빈 숲에 이르러 모든 살생을 끊고 고행에 전념하면서, 모든 묘한 약과 단 과실을 먹으며 산 숲에 은거하면서도 부부가 함께 범행을 하였다는데, 이제 그는 무슨 까닭에 산야에서 홀로 정근하는가?”그때 구다미는 건척의 목을 안고 큰소리로 통곡하였다.
“아아 슬프다. 건척아, 자비가 없는 말아, 너와 같은 때에 난 성자는 이제 어디 있느냐? 너는 또 어찌하여 밤중에 모시고 나가면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
차닉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 차닉아, 그리도 자비로운 마음이 없느냐. 내가 잠들었는데 왜 부르지 않았느냐. 그이는 내 마음 속에 사랑하는 님인데 이제 나를 버리고 가셨거늘 너는 무슨 까닭에 나에게 알리지 않고, 나로 하여금 오래 홀로 자고 홀로 앉게 하니 참으로 괴롭다. 차닉아, 나를 위해 말하여라. 성자께서 가실 때 어떻게 갔으며, 또 누가 길을 인도했으며, 이 궁에서는 누가 인도해 나갔으며, 어느 방향으로 갔으며, 지금 어느 곳에 이르렀느냐?”
왕비 구다미는 이렇게 차닉을 꾸짖고 나서 또 다시 차닉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일이 이제 이리 되었는데 너 착한 차닉아, 네가 친히 보내고 왔으니 너는 성자의 거처를 알 것이다. 너는 우리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자. 우리들은 마땅히 성자를 따라 고행을 닦으며 정진에 전념하여 도를 구하여 내생에나마 성자와 함께 천상에 나기를 바란다.”그때 차닉은, 고오다미가 성내다가 기뻐하다가 하는 갖가지 말을 듣고서 슬프고 미안하여 배나 더 번민하였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고통이 몸을 핍박하며 얼굴 가득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조용히 구다미의 마음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왕비마마께서는 부디 잘 들으소서. 다만 근심과 걱정을 마소서. 또 이렇게 울지도 마소서. 아마도 머지 않아 성자를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성자께서 소인을 돌려보낼 때 소인에게 말했습니다.
‘너 차닉아, 궁에 돌아가거든 나를 위해 모든 권속들과 나의 비(妃)들과 모든 석가족 친척들에게 문안 드려라. 내가 짐짓 너를 궁으로 돌려보내 그들을 위로하리니 나를 위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이제 이미 탐(貪)ㆍ에(恚)ㆍ치(痴)의 그물을 제거하였으니 오래지 않아 지혜등각(智慧等覺)을 이룰 것이며, 이루고서 곧 가비라성에 돌아갈 것이다>라고. 소인은 성자께서 결정코 날카로운 지혜를 원하는 대로 얻어서 돌아오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렇게 가장 수승한 중생은 허망한 말을 하지 않을 줄 확실히 아나이다.”그때 정반왕은 이렇게 고민하면서 궁 안에서 모든 하늘에 제사하려고 준비를 갖추었다. 멀리 태자 궁전에서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왕은 곧 궁전에서 나왔다.
이때 차닉은 태자의 영락과 일산을 가지고 말 건척을 몰고 대왕 앞에 나아가 낱낱이 보이며, 태자에게 간곡하고 중한 부탁을 받은 까닭에 머리로 정반왕의 발에 정례하고, 얼굴 가득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흐느껴 울며 자세히 아뢰었다.그때 정반왕은 태자의 모든 보배 영락과 일산과 말 건척 등을 보고, 태자가 부촉한 애정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울부짖고 소리 놓아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나의 아들아, 마음속에 사랑하던 것이 이리 될 줄 뉘라서 기약하였으랴.”
그때 정반왕은 태자 생각에 근심하고 괴로워한 까닭에 기절하여 땅에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왕은 보살의 중한 서원을 듣고
차닉과 건척이 돌아온 것을 보고
마치 제석천왕의 깃대가 부러지듯
문득 기절해 몸이 쓰러졌다네.
그때 정반왕궁의 모든 석가족 친척들은 정반왕이 땅에 쓰러진 것을 보고 모두 매우 걱정하고 괴로워했다. 잠깐도 마음에 즐거움이 없이 각각 소리높여 울부짖으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갖가지 슬프고 괴로운 말을 외치며 크게 고함치고 크게 불렀다.
그때 가비라성 안의 남녀노소 인민들도 성태자를 이별했기 때문에 원통하다고 큰소리로 각각 통곡하며 태자를 생각하여 차례로 모두들 함께 정반왕을 위로했다.그때 정반왕은 태자 생각에 걱정과 번뇌를 잠깐도 버리지 못하였다. 모든 친족들은 말로 왕을 달래고 혹 어떤 이는 왕을 부축하여 앉혔다. 왕은 비록 앉았으나 잠시 후에 도로 쓰러져 기절하고 깨어나지 않았다. 얼마 뒤에 겨우 깨어나 온 얼굴에 눈물을 가득 흘리며 차닉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 차닉아, 어째서 태자를 데리고 환궁하지 않았느냐?”
그때 차닉은 아뢰었다.
“대왕마마여, 굽어살피소서. 소인도 매우 은근히 방편을 지어 성자의 뜻을 굽혀 돌아오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성자님 마음이 세간의 모든 속된 법에 물들지 않아 일체를 모두 버리고 즐겨하는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소인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나에게 간하지 말라. 나는 이제 일체 5욕이 필요하지 않으며 모든 권속과 나라와 성도 버리고 오직 산숲 샘물 흐르는 조용한 곳을 즐기노라’고 하였습니다.”정반왕은 거듭 차닉에게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또 태자의 모든 영락 도구들이 땅 위에 있음을 보고, 몸으로 정례하고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통곡하여 차닉에게 일렀다.
“내 이제 힘이 다하여 더 이상은 기운도 마음도 없다. 손발도 다 꺾여 마치 부러진 나무등걸과 같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아들과 이별했기 때문에 가지는 없고 오직 뿌리와 줄기만 남은 나무와 같다. 밖의 모든 나라에게 지금 경멸을 당하여도 또 나는 혼자 몸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우박 맞은 나무가 모든 어린이들에게 희롱거리가 되는 것과 같다.
아아 슬프다. 내 아들아, 가장 미묘한 장부로서 어여쁘고 단정한 모습이 비길 데 없었는데, 부드러운 동자가 내 소원을 어기고 무슨 까닭에 출가하여 마음에 즐기는 5욕을 버리고 나를 등지고 갔느냐?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상호가 구족하여 백복의 장엄을 낱낱 상호 가운데 빠짐없이 갖추었다. 아아 내 아들아, 몸에 모든 상호가 두루 찼다.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채녀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틈을 타서 문득 나갔구나.
아아 내 아들아, 지난날 궁 안에 있을 때 나는 한 가지 근심도 없었다.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왕가 중에 수승하였다. 아아 내 아들아, 위로부터 항상 훌륭한 왕족 가운데 태어났다. 아아 내 아들아, 어찌하여 문득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느냐? 아아 내 아들아,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볼 때 항상 기뻐했으니, 젊은 남자나 젊은 여자나 노파나 장부들이 눈으로 보기만 해도 기뻐했었다.아아 내 아들아, 재주 많고 지혜로웠다. 아아 내 아들아, 사방의 모든 7보(寶)와 일체 권속을 버리고 홀로 출가했구나. 아아 내 아들아, 마치 흰 코끼리가 큰 나무를 꺾듯 궁을 등지고 출가했구나. 아아 내 아들아, 모든 성문은 열기도 어렵고 닫기도 어려우며 열고 닫을 때에는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는데, 네가 궁에서 나갈 때는 어찌 내가 듣지 못했더냐. 아마도 모든 하늘들이 그 소리를 숨겨 덮었겠구나.
아아 내 아들아, 지금 이곳 가비라성의 모든 석가족들은 너 실달이 출가했기 때문에 아무런 희망이 없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가비라성 모든 석가족의 모든 재산이며 금은 진보와 곡물 창고며 그 밖의 재물을 다 버리고 마치 침을 뱉듯이 등지고 출가했구나.
아아 내 아들아, 내 너를 위해 모든 철에 맞춰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전각을 지었는데, 너는 어찌 버리고 가서 사람 없는 쓸쓸한 벌판을 즐기며 온갖 짐승과 산 숲만을 좋아하느냐?
아아 내 아들아, 지난날 모든 선인들이 두 가지로 수기했었다. 이 일로 나는 그때 기쁨을 참지 못해 너의 두 발에 정례했었다. 아아 나의 아들아, 너는 이제 출가하였으니 성을 지키는 모든 신도 모두 성을 버리고 갔구나. 아아 내 아들아, 얼굴이 둥글어 달과 같았지. 아아 내 아들아, 치아가 희고 깨끗하며 눈은 우왕(牛王)과 같았구나. 아아 내 아들아, 지난날 네 말을 들으면 마음으로 기뻐했지만 오늘에 와 생각하니 도리어 걱정과 괴로움이 되었도다.
아아 내 아들아, 항상 묘하고 좋은 다가라향ㆍ전단침수향ㆍ우두전단향을 몸에 바르고, 갖가지 영락으로 장엄했으며 가루 향ㆍ쏘이는 향ㆍ태우는 향을 풍기던 부드러운 몸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살ㆍ가죽ㆍ근육ㆍ맥ㆍ골수에 사무쳐 그 속에 머물더니, 이제 문득 버리고 출가하여 산숲에 들어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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